1절부터 48절까지 — 미스바 총회, 레위인의 증언, 베냐민의 거절, 두 번의 패배와 벧엘의 울음, 셋째 날의 매복, 그리고 거의 사라진 한 지파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JUDGES 20:28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20장 들어가며
죄를 심판하러 나선 이스라엘이 스스로를 찢을 때
19장의 열두 덩이는 온 이스라엘을 움직였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사사기 전체에서 처음으로 이스라엘 모든 지파가 “한 사람 같이” 미스바에 모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하나 된 목적은 외적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자기 형제 지파 베냐민을 치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아의 범인들을 넘기라고 요구하지만, 베냐민은 거절하고 오히려 기브아를 지키려 군대를 일으킵니다. 그 결과는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참혹한 내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올라가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첫째 날 2만 2천 명, 둘째 날 1만 8천 명이 쓰러집니다. 이스라엘은 벧엘에서 저물도록 울고 금식하며 번제를 드린 뒤에야 승리를 약속받습니다.
셋째 날, 아이성 전투(수 8장)를 떠올리게 하는 매복 작전으로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무너뜨립니다. 베냐민 군사 2만 5천 명이 죽고, 600명만이 림몬 바위로 도망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베냐민의 모든 성읍과 사람과 가축까지 칼로 치고 불사릅니다. 악을 제하려던 정의가 한 지파를 거의 지워 버리는 복수로 번져 갑니다. 왕이 없던 시대의 정의는 이렇게 끝없이 흔들렸습니다.
핵심 구절
20:28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두 번의 패배 뒤에 주어진 약속.
한 사람 같이
20:1, 8, 11
사사기에서 처음으로 온 이스라엘이 하나 됨. 그러나 형제를 치기 위해서.
벧엘의 울음
20:23, 26
두 번 패한 뒤에야 저물도록 울고 금식하며 번제를 드림.
600명
20:47
2만 6천 7백 명 가운데 남은 600명. 한 지파가 거의 사라짐.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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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이스라엘 땅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1절 “미스바”
베냐민 땅의 성읍. 훗날 사무엘의 총회 장소.
2절 “칼을 빼는 보병”
칼로 무장한 보병.
3절 “정형”
情形, 사정과 형편.
10절 “백에 열”
열 명 중 한 명을 보급 담당으로 뽑음.
13절 “비류”
匪類, 벨리알의 자식들.
16절 “호리도 틀림이 없는”
毫釐, 털끝만큼도 빗나가지 않음.
18절 “벧엘”
하나님의 집. 당시 언약궤가 있던 곳.
20절 “항오를 벌이고”
行伍, 전열을 갖추고.
28절 “비느하스”
아론의 손자. 출애굽 세대의 제사장.
33절 “바알다말”
기브아 근처의 장소. 위치 미상.
38절 “군호”
軍號, 군사 신호.
45절 “림몬 바위”
기브아 동북쪽 광야의 바위산.
45절 “이삭 줍듯”
남은 자까지 샅샅이 죽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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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1한 사람 같이 모였으니 — 레위인의 증언과 이스라엘의 결의
열두 덩이의 소식을 들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미스바에 모입니다. 40만 명의 군사입니다. 그들은 레위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레위인은 자기의 관점에서 사건을 증언합니다. 그런데 그의 증언에는 빠진 것이 있습니다. 자기가 첩을 밖으로 내보냈다는 사실입니다.
이스라엘은 분노하여 결의합니다. 아무도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기브아를 치겠다. 이스라엘은 하나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먼저 결정하고, 나중에 하나님께 묻습니다.
1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와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그 회중이 일제히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직역 그러자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 그리고 길르앗 땅에서 온 이스라엘 자손이 나왔다. 회중이 한 사람처럼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다.
19장 30절의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가 실제 행동으로 옮겨집니다.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나왔는데.”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이스라엘 땅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뜻하는 표현입니다. 거기에 요단 동편의 길르앗까지. 온 이스라엘이 모였습니다.
“그 회중이 일제히.” 원문은 ‘한 사람 같이’(케이쉬 에하드)입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 된 적은 없었습니다. 드보라 때는 여러 지파가 오지 않았고(5:15–17), 기드온 때는 에브라임이 다투었고(8:1), 입다 때는 에브라임과 내전이 벌어졌습니다(12:1–6). 그런데 이제 온 이스라엘이 하나가 됩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처음으로 하나 된 목적은 가나안 사람들을 몰아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형제 지파 베냐민과 싸우기 위해서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연합이 형제를 치는 일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그들은 “미스바에서 여호와 앞에 모였으니.” 미스바는 훗날 사무엘이 이스라엘을 모아 회개시키고(삼상 7:5–6), 사울을 왕으로 뽑은 곳입니다(삼상 10:17).
원어 · 번역 노트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 삼상 3:20, 삼하 3:10, 17:11, 24:2, 15, 왕상 4:25. 18장에서 단 지파가 북쪽 라이스로 옮긴 뒤의 표현입니다.
한 사람 같이 — 8, 11절에도 반복. 6:16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삼상 11:7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함께 읽을 말씀
삿 19:30이런 일은 행치도 아니하였고 보지도 못하였도다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 하니라
삼상 7:5사무엘이 가로되 온 이스라엘은 미스바로 모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리라 하매
삼상 11:7여호와의 두려움이 백성에게 임하매 그들이 한 사람 같이 나온지라
2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직역 온 백성의 지도자들,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백성의 총회에 나와 섰다. 칼을 빼는 보병이 40만 명이었다.
“온 백성의 어른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어른들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에 섰고.” ‘어른’은 원문으로 ‘모퉁이돌’(피노트)입니다. 공동체를 지탱하는 지도자들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모임은 ‘하나님 백성의 총회’라고 불립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기억하며 모였습니다.
“칼을 빼는 보병은 사십만이었으며.” 40만 명의 군대입니다. 민수기 26장의 인구 조사(60만 1,730명)와 비교하면 큰 숫자입니다. 히브리어 ‘엘레프’(천)는 ‘부대, 가문 단위’를 뜻하기도 하여, 실제로는 400개 부대였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스라엘 전체가 동원된 대규모 군대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어른피나 — ‘모퉁이’. 삼상 14:38 “백성의 어른들”, 사 19:13 “모퉁이돌”.
엘레프 — ‘천’ 또는 ‘가문, 부대’. 큰 숫자에 대한 해석 문제는 민수기, 사사기, 역대기에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26:51이스라엘 자손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육십만 일천 칠백 삼십명이었더라
3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가로되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직역 베냐민 자손은 이스라엘 자손이 미스바로 올라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말하였다. “이 악한 일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말해 보라.”
“이스라엘 자손의 미스바에 올라간 것을 베냐민 자손이 들었더라.” 베냐민은 총회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소식만 들었습니다. 이미 이스라엘과 베냐민 사이에 틈이 생겼습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사실을 확인하려 합니다. “이 악한 일의 정형을 우리에게 고하라.” ‘정형’은 사정과 형편입니다. 율법은 중대한 일을 심판하기 전에 “자세히 사실하여 볼찌니”고 명했습니다(신 17:4, 19:18). 이것은 올바른 출발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정형 — 情形. 원문 ‘에카 니흐예타’, ‘어떻게 일어났는가’.
함께 읽을 말씀
신 17:4네게 고하므로 네가 듣거든 자세히 사실하여 볼찌니
4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대답하여 가로되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직역 살해된 여인의 남편인 레위 사람이 대답하였다. “내가 내 첩과 함께 베냐민의 기브아에 밤을 지내려고 갔습니다.”
“레위 사람 곧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 사사기 기자는 그를 ‘죽임을 당한 여인의 남편’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녀는 이제 ‘죽임을 당한 여인’입니다. 19장에서 끝까지 말하지 못한 그녀를, 성경은 분명한 희생자로 기록합니다.
레위인은 증언을 시작합니다. “내가 내 첩으로 더불어 베냐민에 속한 기브아에 유숙하러 갔더니.” 여기까지는 사실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죽임을 당한 — 원문 ‘하니르차하’, ‘살해된’. 출 20:13 “살인하지 말찌니라”(로 티르차)와 같은 뿌리.
함께 읽을 말씀
출 20:13살인하지 말찌니라
5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직역 “기브아의 주민들이 나를 치려고 일어나 밤에 내가 머문 집을 에워쌌습니다. 그들은 나를 죽이려 했고, 내 첩을 욕보여 그녀가 죽었습니다.”
“기브아 사람들이 나를 치러 일어나서 밤에 나의 우거한 집을 에워싸고 나를 죽이려 하고.” 19:22에서 그들은 “상관하리라”고 했습니다. 레위인은 그것을 ‘죽이려 했다’로 말합니다. 그들의 의도가 결국 죽음에 이를 폭력이었을 수 있으니 틀린 말은 아닙니다.
“내 첩을 욕보여서 그로 죽게 한지라.”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이 빠졌습니다. 그녀가 어떻게 밖으로 나가게 되었는지. 19:25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내매.” 레위인은 자기가 그녀를 내보냈다는 사실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의 증언에서 그는 오직 피해자입니다. 그리고 아침에 “일어나라 우리가 떠나가자” 했던 그 무정함도 말하지 않습니다.
진실의 절반은 거짓보다 위험할 수 있습니다. 레위인의 증언은 사실이었지만, 온전한 진실은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이 반쪽 진실을 바탕으로 전쟁을 결정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레위인의 생략 — 19:25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내매”와 비교. 많은 해석자들이 레위인이 자신의 책임을 감추었다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9:25무리가 듣지 아니하므로 그 사람이 자기 첩을 무리에게로 붙들어내매
잠 18:17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
6첩의 시체를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로라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직역 “그래서 내가 내 첩을 붙잡아 조각내어 이스라엘 기업의 모든 지역에 보냈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음란하고 수치스러운 일을 저질렀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첩의 시체를 취하여 쪼개어 이스라엘 기업의 온 땅에 보내었노니.” 레위인은 자기 행동의 이유를 설명합니다.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중에서 음행과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을 인함이로라.”
‘음행’(짐마)은 계획적인 음란함, ‘망령된 일’(네발라)은 19:23–24에서 노인이 쓴 말로, 공동체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수치스러운 악행입니다. 기브아의 죄는 분명 그런 죄였습니다. 레위인의 고발 자체는 옳았습니다. 그러나 그 자신도 그 밤의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음행짐마 — ‘악한 계획, 음란’. 레 18:17, 19:29.
망령된 일네발라 — 19:23–24, 20:10, 창 34:7, 수 7:15.
함께 읽을 말씀
삿 19:29칼을 취하여 첩의 시체를 붙들어 그 마디를 찍어 열 두덩이에 나누고 그것을 이스라엘 사방에 두루 보내매
수 7:15이는 여호와의 언약을 어기고 이스라엘 가운데서 망령된 일을 행하였음이라 하셨다 하라
7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찌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찌니라
직역 “여러분 모두 이스라엘 자손이니, 여기서 의견을 내고 방책을 세우십시오.”
레위인은 결론을 맺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아 너희가 다 여기 있은즉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낼찌니라.” 이것은 19:30의 “생각하고 상의한 후에 말하자”와 같은 말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빠진 것이 있습니다. ‘여호와께 묻자’는 말이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1절) 모였지만, 그들이 구한 것은 사람의 의견과 방책이었습니다. 결정은 이미 내려질 것이고, 하나님께는 나중에 ‘누가 먼저 갈지’만 물을 것입니다(18절).
원어 · 번역 노트
의견과 방책 — 원문 ‘다바르 베에차’, ‘말과 계획’. 19:30과 같은 단어 ‘에차’(의논).
함께 읽을 말씀
잠 19:21사람의 마음에는 많은 계획이 있어도 오직 여호와의 뜻이 완전히 서리라
수 9:14무리가 그들의 양식을 취하고 어떻게 할 것을 여호와께 묻지 아니하고
8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가로되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직역 모든 백성이 한 사람처럼 일어나 말하였다. “우리 가운데 누구도 자기 장막으로 가지 않고, 누구도 자기 집으로 돌아가지 않겠다.”
“모든 백성이 일제히 일어나며.” 다시 ‘한 사람 같이’입니다. 그들은 결의합니다. “우리가 하나라도 자기 장막으로 돌아가지 아니하며 하나라도 자기 집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이 악을 해결할 때까지 아무도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
이스라엘이 악에 대해 분노한 것은 옳았습니다. 죄를 보고도 무관심한 공동체보다는 낫습니다. 그러나 분노는 쉽게 지나침으로 흐릅니다. 이 결의의 열정은 뒤에 한 지파를 거의 멸절시키는 데까지 이어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4: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9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 뽑아서 그들을 치되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 뽑아서 그들을 치되
직역 “이제 우리가 기브아에 대해 이렇게 하겠다. 제비를 뽑아 그곳을 치겠다.”
“우리가 기브아 사람에게 이렇게 행하리니 곧 제비 뽑아서 그들을 치되.” 제비는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방법이었습니다(잠 16:33). 그들은 누가 싸우러 갈지, 누가 보급을 맡을지 제비로 정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기브아를 친다’는 결정 자체는 이미 내려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제비고랄 — 수 18:10 땅의 분배, 삼상 14:41–42, 잠 16:33 “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함께 읽을 말씀
잠 16:33사람이 제비는 뽑으나 일을 작정하기는 여호와께 있느니라
10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양식을 예비하고 — 망령된 일을 행한 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우리가 이스라엘 모든 지파 중에서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그들로 베냐민의 기브아에 가서 그 무리의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하니라
직역 “이스라엘 모든 지파에서 백 명에 열 명, 천 명에 백 명, 만 명에 천 명을 뽑아 군대를 위한 양식을 마련하게 하고, 군대는 베냐민의 기브아로 가서 그들이 이스라엘 가운데서 행한 모든 수치스러운 일대로 갚게 하겠다.”
전쟁 계획입니다. “백에 열, 천에 백, 만에 천을 취하고 그 백성을 위하여 양식을 예비하고.” 10분의 1을 보급 담당으로 세웠습니다. 40만 명 가운데 4만 명이 양식을 나르고, 나머지가 싸우는 체계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잘 조직되어 있었습니다.
목적은 “이스라엘 중에서 망령된 일을 행한대로 징계하게 하리라.” 그들이 행한 악에 상응하는 벌을 주겠다. 이것은 공의의 원칙입니다. 처음 목표는 기브아의 범죄자들을 처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전쟁이 진행되면서 이 목표는 훨씬 넘어서게 됩니다.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하나 같이 합심하여 그 성읍을 치려고 모였더라.” 1, 8절에 이어 세 번째로 ‘한 사람 같이’가 나옵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연합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이 이렇게 하나 된 적은 없었습니다.
연합 자체는 아름다운 것입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시 133:1). 그러나 연합의 목적이 무엇이냐가 중요합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을 정복하기 위해 이렇게 하나 되었다면 사사기의 역사는 달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형제를 치기 위해서야 비로소 하나가 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합심하여하베림 — ‘동료, 동맹’. 시 119:63 “나는 주를 경외하는 모든 자와… 동무라”.
함께 읽을 말씀
시 133:1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반쪽 진실과 서두른 결정
미스바 총회는 좋은 출발처럼 보였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하나 되었고, 먼저 사실을 확인하려 했고, 악에 대해 분노했습니다. 그런데 레위인의 증언은 반쪽 진실이었습니다. 자기가 첩을 내보낸 사실을 감추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 증언만 듣고 곧바로 전쟁을 결의했습니다. ‘너희의 의견과 방책을 내라.’ 그들은 사람의 의견을 모았지만, 하나님께 먼저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분노할 때 서두르기 쉽습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판단하고, 결정을 내린 뒤에야 하나님께 축복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송사에 원고의 말이 바른 것 같으나 그 피고가 와서 밝히느니라”(잠 18:17). 정의를 구할 때에도, 아니 정의를 구할 때일수록 먼저 하나님 앞에 엎드리고, 온전한 진실을 구해야 합니다.
20:12–17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이라 — 형제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이스라엘은 전쟁 전에 베냐민 지파에 사람을 보내 범인들을 넘기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은 지혜롭고 공정한 요구였습니다. 기브아의 범죄자들만 처벌하면 전쟁은 필요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은 거절합니다. 그들은 죄를 처벌하는 대신 자기 지파를 감쌌습니다. 그리고 2만 6천 명의 군사와 기브아의 정예 700명을 모아 이스라엘과 맞섭니다. 혈연이 정의보다 앞섰고, 그 대가는 참혹했습니다.
12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이르기를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직역 이스라엘 지파들이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말하였다. “너희 가운데서 일어난 이 악한 일이 도대체 무엇이냐?”
이스라엘은 바로 공격하지 않습니다. “베냐민 온 지파에 사람들을 보내어 두루 행하며.” 먼저 사람을 보내 협상합니다. 이것은 지혜로운 일이었습니다. 신명기 20:10은 성을 치기 전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고 했습니다.
“너희 중에서 생긴 이 악이 어찜이뇨.” 이스라엘은 베냐민 지파 전체에게 책임을 묻습니다. 기브아는 베냐민의 성읍이었고, 베냐민 지파는 자기 안에서 일어난 악을 처리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20:10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할 때에 그 성에 먼저 평화를 선언하라
마 18: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13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 그러나 듣지 아니하고
그런즉 이제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하나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직역 “그러니 이제 기브아에 있는 그 불량배들을 넘겨 다오. 우리가 그들을 죽여 이스라엘에서 악을 없애겠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자기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았다.
이스라엘의 요구는 분명하고 공정했습니다.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를 우리에게 붙여서 우리로 죽여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베냐민 지파 전체를 치겠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른 ‘비류들’, 곧 19:22의 그 불량배들만 넘기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악을 제하여 버리게 하라.” 이것은 신명기에 반복되는 구절입니다(신 13:5, 17:7, 12, 19:19, 21:21, 22:21–24).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 가운데 있는 악을 처리할 책임이 있었습니다. 악을 방치하면 공동체 전체가 오염됩니다.
그런데 “베냐민 자손이 그 형제 이스라엘 자손의 말을 듣지 아니하고.” 베냐민은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기브아 사람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알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을 넘기지 않았습니다. 왜일까요? 그들은 우리 지파 사람이니까. 혈연과 지파의 충성심이 정의보다 앞섰습니다. 그들은 죄를 처벌하는 대신 죄인을 감쌌습니다.
이 거절이 모든 것을 바꾸었습니다. 몇몇 범죄자의 처벌로 끝날 수 있었던 일이, 수만 명이 죽는 전쟁이 되었습니다. 죄를 감싸는 것은 결국 공동체 전체를 파멸로 이끕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악을 제하라 — 원문 ‘우비아르타 하라 미키르베카’. 신 13:5, 17:7, 19:19, 21:21, 22:21, 24:7. 고전 5:13 “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듣지 아니하고 — 베냐민의 거절은 공동체 전체를 비극으로 몰아넣었습니다. 교회가 내부의 죄를 덮을 때 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17:7너는 이와 같이 하여 너의 중에 악을 제할찌니라
고전 5:13이 악한 사람은 너희 중에서 내어 쫓으라
고전 5:6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14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직역 오히려 베냐민 자손은 여러 성읍에서 기브아로 모여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러 나가려 하였다.
“도리어 각 성읍에서 기브아에 모이고 나가서 이스라엘 자손과 싸우고자 하니.” ‘도리어’. 베냐민은 범죄자를 넘기는 대신, 각 성읍에서 기브아로 모여 그들을 지키려 했습니다. 그리고 온 이스라엘과 싸우기로 결정했습니다.
이것은 무모한 선택이었습니다. 40만 명과 싸우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를 감싸려는 마음은 이성을 마비시킵니다. 자기 쪽이 잘못했다는 것을 인정하기보다, 끝까지 맞서는 것을 택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잠 28:13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15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이만 육천이요 기브아 거민 중 택한 자가 칠백
그 때에 성읍들에서 나온 베냐민 자손의 수는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직역 그날 여러 성읍에서 모인 베냐민 자손은 칼을 빼는 자가 2만 6천 명이었고, 그 밖에 기브아 주민 가운데서 뽑힌 사람이 700명이었다.
베냐민의 군대. “칼을 빼는 자가 모두 이만 육천이요 그 외에 기브아 거민중 택한 자가 칠백인데.” 2만 6천 7백 명입니다. 이스라엘 40만 명에 비하면 약 15분의 1입니다. 숫자로는 전혀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숫자 — 70인역 일부 사본은 2만 5천. 35, 46절의 전사자 수(2만 5천 1백, 2만 5천)와 47절 생존자 600명을 합하면 약 2만 5천 7백. 첫 두 전투의 베냐민 전사자 1천 명 정도를 고려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26:41베냐민 자손이라 계수함을 입은 자가 사만 오천 육백명이었더라
16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직역 이 모든 군대 가운데 뽑힌 700명은 왼손잡이였는데, 물매로 돌을 던지면 머리카락 하나도 빗나가지 않았다.
“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명은 다 왼손잡이라.” 원문은 ‘오른손이 묶인 자’입니다. 3:15에서 베냐민 사람 에훗을 소개할 때와 같은 표현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베냐민’이라는 이름은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의 지파에 왼손잡이 용사들이 유명했습니다.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호리’는 털끝만큼의 작은 거리입니다. 원문은 ‘머리카락 하나에도 빗나가지 않는다’입니다. 고대 전쟁에서 물매는 무서운 무기였습니다. 숙련된 투석병은 수십 미터 밖에서 정확히 목표를 맞혔습니다. 다윗도 물매로 골리앗을 쓰러뜨렸습니다(삼상 17:49).
흥미롭게도 ‘틀림이 없다’(하타)는 히브리어로 ‘죄를 짓다’와 같은 말입니다. 본래 뜻이 ‘과녁을 빗나가다’이기 때문입니다. 물매로는 과녁을 빗나가지 않던 베냐민이, 정의라는 과녁에서는 크게 빗나갔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왼손잡이 — 3:15 에훗, 대상 12:2 “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살도 발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빗나가다하타 — ‘과녁을 빗나가다’ → ‘죄를 짓다’. 신약 그리스어 ‘하마르티아’(죄)도 ‘과녁을 빗나감’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3:15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삼상 17:49손을 주머니에 넣어 돌을 취하여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17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 명이니 다 전사라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명이니 다 전사라
직역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 가운데 칼을 빼는 자는 40만 명이었는데, 모두 전쟁에 능한 사람들이었다.
“베냐민 자손 외에 이스라엘 사람의 칼을 빼는 자의 수는 사십만명이니 다 전사라.” 40만 대 2만 6천 7백. 결과는 뻔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숫자대로 흘러가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처음 두 번의 전투에서 참패합니다. 이 전쟁의 결과를 정하는 것은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33:16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죄를 감싸는 공동체
이스라엘의 요구는 공정했습니다. 기브아의 범죄자들만 넘기라. 그러면 전쟁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냐민은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우리 지파 사람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들을 감쌌습니다. 그리고 그 대가로 거의 지파 전체가 사라졌습니다.
교회와 공동체도 같은 유혹을 받습니다. 내부에서 일어난 잘못을 덮고, 가해자를 감싸고, 공동체의 평판을 지키려 합니다. 그러나 죄를 감싸는 것은 공동체를 지키는 것이 아니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에 퍼지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5:6). 진정한 사랑은 죄를 덮는 것이 아니라, 죄를 정직하게 다루고 피해자를 보호하며 회개로 이끄는 것입니다.
20:18–28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 두 번의 패배
이스라엘은 벧엘에 올라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과 싸우리이까?”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라고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첫째 날 이스라엘은 2만 2천 명을 잃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다시 묻습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과 싸우리이까?” 하나님은 “올라가서 치라” 하십니다. 그런데 둘째 날 또 1만 8천 명을 잃습니다. 이번에는 온 백성이 벧엘에서 울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리고 비로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18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 누가 먼저 올라가리이까 — 유다가 먼저일찌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먼저일찌니라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하나님께 여쭈었다. “우리 가운데 누가 먼저 올라가 베냐민 자손과 싸워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유다가 먼저다.”
마침내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습니다. “벧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묻자와.” 그런데 그들의 질문은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였습니다. ‘싸워야 합니까?’가 아니라 ‘누가 먼저 싸울까요?’ 싸움은 이미 결정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계획에 대한 하나님의 승인을 구했을 뿐입니다.
“유다가 먼저일찌니라.” 이 장면은 사사기 1:1–2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찌니라.” 사사기는 같은 질문으로 시작하고, 같은 질문으로 끝나 갑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1장에서 적은 가나안 사람이었습니다. 20장에서 적은 형제 베냐민입니다. 사사기 전체가 이스라엘이 얼마나 깊이 무너졌는지를 보여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벧엘 — 창 28:19 야곱이 이름 지은 곳. 27절에 따르면 이때 언약궤가 벧엘에 있었습니다. 18:31에서는 실로. 언약궤가 일시적으로 옮겨졌을 수 있습니다.
사사기의 처음과 끝 — 1:1–2와 20:18의 구조적 대칭. 가나안과의 전쟁 → 형제와의 전쟁.
함께 읽을 말씀
삿 1:1-2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유다가 올라갈찌니라
창 28:19그곳 이름을 벧엘이라 하였더라
19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 맞은편에 진을 쳤다.
“이스라엘 자손이 아침에 일어나 기브아를 대하여 진을 치니라.” 이스라엘은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물었고, 대답을 받았고, 숫자는 15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잠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20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거기서 그들과 싸우고자 하매
직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베냐민과 싸우러 나가서 기브아를 향해 전열을 갖추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나가서 항오를 벌이고.” ‘항오’는 군대의 대열입니다. 이스라엘은 기브아를 향해 전열을 갖추었습니다.
21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직역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 그날 이스라엘 사람 2만 2천 명을 땅에 쓰러뜨렸다.
그런데 결과는 충격적이었습니다. “베냐민 자손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당일에 이스라엘 사람 이만 이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나.” 2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하루 만에. 하나님께 묻고 대답을 받았는데, 15배의 군대로 싸웠는데, 참패했습니다.
하나님은 “유다가 먼저”라고 하셨지, “이기리라”고는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대답을 자기 계획에 대한 승인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도 낮아져야 할 것이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계셨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7:4-5백성 중 삼천명쯤 그리로 올라갔다가 아이 사람 앞에서 도망하니… 백성의 마음이 녹아 물 같이 된지라
22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이니라
직역 그러나 이스라엘 군대는 서로 힘을 내어 첫날 전열을 갖추었던 곳에 다시 전열을 갖추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스스로 용기를 내어.” 원문은 ‘스스로 강하게 하여’입니다. 그들은 스스로를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첫날 항오를 벌였던 곳에 다시 항오를 벌입니다. 22절과 23절의 순서에 대해 학자들은 23절의 울음과 기도가 22절보다 먼저 일어난 일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묻기 전에 이미 자기 힘으로 다시 싸울 준비를 했다는 것을 보여 주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23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서 치라 하시니라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녁까지 울며 여호와께 여쭈었다. “제가 다시 제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러 나가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올라가서 그를 치라.”
“이스라엘 자손이 올라가서 여호와 앞에서 저물도록 울며.” 패배의 충격 속에서 이스라엘은 울었습니다. 저녁이 될 때까지. 2만 2천 명의 죽음 앞에서.
그리고 다시 묻습니다. “내가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질문이 바뀌었습니다. 18절에서는 ‘누가 먼저 갈까요?’였습니다. 이제는 ‘싸워야 합니까?’입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베냐민을 “나의 형제”라고 부릅니다. 패배가 그들을 조금 낮추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싸우는 상대가 형제라는 것을 다시 기억했습니다.
“올라가서 치라.” 하나님은 다시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아직 승리를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형제 — 18절에는 ‘베냐민 자손’, 23절과 28절에는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 패배를 통한 시각의 변화.
함께 읽을 말씀
삿 2:4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시 126:5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24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직역 둘째 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에게 가까이 나아갔다.
“그 이튿날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나아가매.” 둘째 날의 전투가 시작됩니다.
25베냐민이 기브아에서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베냐민도 그 이튿날에 기브아에서 그들을 치러 나와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다 칼을 빼는 자였더라
직역 베냐민도 둘째 날 기브아에서 나와 그들과 맞서, 다시 이스라엘 자손 1만 8천 명을 땅에 쓰러뜨렸다. 그들은 모두 칼을 빼는 자들이었다.
그리고 또 패배합니다. “다시 이스라엘 자손 일만 팔천을 땅에 엎드러뜨렸으니.” 이틀 동안 4만 명이 죽었습니다. 40만 군대의 10분의 1입니다.
하나님이 “올라가서 치라” 하셨는데 왜 또 졌을까요? 이스라엘은 아직 하나님 앞에 충분히 낮아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울었지만, 회개의 제사는 아직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베냐민의 죄를 심판하러 나섰지만, 자기들의 죄는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이스라엘 모든 지파는 우상 숭배와 불순종의 죄를 지었습니다. 베냐민만 죄인이 아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7:3어찌하여 형제의 눈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26온 이스라엘 자손이 벧엘에 이르러 울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직역 그러자 온 이스라엘 자손, 곧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았다. 그날 저녁까지 금식하고 여호와 앞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두 번째 패배 뒤, 이스라엘의 반응이 달라집니다. “이에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이 올라가서 벧엘에 이르러 울며 거기서 여호와 앞에 앉고.” 이번에는 군대만이 아니라 ‘온 이스라엘 자손 모든 백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여호와 앞에 앉았습니다’. 서서 묻는 것이 아니라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그 날이 저물도록 금식하고.” 첫 번째에는 울기만 했지만, 이번에는 금식이 더해졌습니다. 금식은 자기를 낮추고 하나님만 바라는 표현입니다.
“번제와 화목제를 여호와 앞에 드리고.” 그리고 제사를 드립니다. 번제는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리는 제사로, 온전한 헌신과 속죄를 뜻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을 뜻합니다. 이스라엘은 비로소 자기들도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베냐민을 심판하기 전에, 먼저 자기들이 하나님과 화목해야 했습니다.
울음 → 울음과 금식과 제사. 이스라엘의 기도가 점점 깊어졌습니다. 패배는 이스라엘을 낮추는 하나님의 도구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번제올라 — 레 1장. ‘올라가는 것’. 전체를 불살라 드림.
화목제쉘라밈 — 레 3장. ‘샬롬’과 같은 뿌리.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먹는 제사.
21:2–4 — 이스라엘은 전쟁 후에도 벧엘에서 울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21:2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대성통곡하여
욜 2:12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약 4:10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27여호와께 물으니라 —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쭈었다. (그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었고,
“여호와께 물으니라.” 그리고 사사기 기자는 괄호 안에 설명을 덧붙입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언약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물을 때, 언약궤 앞에서 대제사장을 통해 물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언약궤 — 출 25:10–22. 하나님의 임재와 언약의 상징. 수 18:1 이후 실로에 있었으나, 이 전쟁 때에는 벧엘로 옮겨져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25:22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위 곧 증거궤 위에 있는 두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28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스라엘 자손이 묻자오되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직역 아론의 손자요 엘르아살의 아들인 비느하스가 그 당시 그 앞에 서서 섬기고 있었다.) “제가 다시 제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러 나가야 합니까, 아니면 그만두어야 합니까?” 여호와께서 말씀하셨다. “올라가라. 내일 내가 그를 네 손에 넘겨주겠다.”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그 앞에 모셨더라.” 이 짧은 언급은 놀라운 정보를 줍니다. 비느하스는 출애굽 세대의 제사장입니다. 민수기 25장에서 그는 바알브올 사건 때 하나님의 질투로 질투하여 이스라엘의 염병을 그치게 한 사람입니다. 그가 아직 살아서 대제사장으로 섬기고 있었다는 것은, 이 사건이 사사기 맨 끝에 기록되었지만 실제로는 여호수아가 죽은 직후, 사사 시대 초기에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중요한 메시지를 줍니다. 이스라엘의 타락은 사사 시대 말기에 서서히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여호수아 세대가 죽자마자, 출애굽을 경험한 비느하스가 아직 살아 있을 때 이미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이야기를 맨 끝에 두어, 사사 시대 전체가 처음부터 얼마나 어두웠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세 번째 질문. “내가 다시 나가 나의 형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이번에는 ‘말리이까’가 더해졌습니다. 싸울지 말지를 완전히 하나님께 맡깁니다. 이것이 진정한 물음입니다. 자기 계획에 대한 승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묻는 것.
그때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마침내 승리의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세 번의 질문, 두 번의 패배, 울음과 금식과 제사 끝에.
원어 · 번역 노트
비느하스 — 출 6:25, 민 25:7–13 “비느하스를…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31:6, 수 22:13, 30–32. 수 24:33 엘르아살이 죽어 “그 아들 비느하스”의 산에 장사됨.
연대 — 18:30 단 지파의 제사장 요나단도 “모세의 손자”. 두 부록 모두 사사 시대 초기 사건으로 봅니다.
세 질문의 변화 — ① “누가 먼저?”(18절) ② “싸우리이까?”(23절) ③ “싸우리이까 말리이까?”(28절).
함께 읽을 말씀
민 25:11제사장 아론의 손자 엘르아살의 아들 비느하스가 나의 질투심으로 질투하여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나의 노를 돌이켜서 나의 질투심으로 그들을 진멸하지 않게 하였도다
수 24:33아론의 아들 엘르아살도 죽으매 무리가 그를 그 아들 비느하스가 에브라임 산지에서 받은 산에 장사하였더라
눅 22:42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어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이스라엘은 세 번 물었습니다. 처음에는 “누가 먼저 갈까요?” 이미 결정을 내리고 하나님의 승인만 구했습니다. 그리고 패했습니다. 두 번째는 울며 “싸워야 합니까?” 그리고 또 패했습니다. 세 번째에는 온 백성이 울고 금식하며 제사를 드린 뒤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만두겠다는 마음으로. 그때 비로소 하나님은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이렇게 자라야 합니다. 내 계획을 들고 와서 축복해 달라고만 하는 기도에서, 하나님의 뜻이라면 내 계획을 내려놓겠다는 기도로.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이렇게 기도하셨습니다.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때로 하나님은 실패를 통해 우리를 그 기도의 자리로 이끄십니다.
20:29–48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 셋째 날의 매복과 600명
셋째 날, 이스라엘은 기브아 사방에 군사를 매복시킵니다. 본대가 전처럼 싸우다 거짓으로 도망하자, 베냐민은 또 이긴다고 생각하고 성읍에서 멀리 추격해 나옵니다. 그 사이 복병이 기브아에 쳐들어가 성을 불사르고, 연기가 하늘로 치솟습니다. 뒤를 돌아본 베냐민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깨닫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 8장의 아이성 전투와 거의 같은 작전입니다. 그러나 이번의 적은 가나안 사람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형제였습니다. 베냐민 군사 2만 5천 명이 쓰러지고 600명만이 림몬 바위로 도망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베냐민의 모든 성읍과 사람과 가축을 칼로 치고 불사릅니다. 범죄자를 처벌하려던 정의가 한 지파를 거의 지워 버리는 진멸이 되었습니다.
29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직역 이스라엘은 기브아 둘레에 복병을 두었다.
“이스라엘이 기브아 사면에 군사를 매복하니라.” 하나님이 승리를 약속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지혜롭게 작전을 세웁니다. 하나님의 약속과 사람의 지혜로운 준비는 서로 대립하지 않습니다.
이 매복 작전은 여호수아 8장의 아이성 전투와 거의 같습니다. 그때도 이스라엘은 한 번 패한 뒤(수 7장), 하나님 앞에서 죄를 처리하고, 매복으로 아이성을 정복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이성과의 평행 — 첫 패배(수 7:4–5/삿 20:21, 25), 하나님 앞의 낮아짐(수 7:6/삿 20:26), 매복(수 8:2/삿 20:29), 거짓 후퇴(수 8:5–6/삿 20:32), 성읍에서 꾀어냄(수 8:16/삿 20:31), 연기 신호(수 8:20/삿 20:40), 뒤돌아봄(수 8:20/삿 20:40).
함께 읽을 말씀
수 8:2너는 성 뒤에 복병할찌니라
30제 삼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이스라엘 자손이 제 삼일에 베냐민 자손에게로 치러 올라가서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이매
직역 셋째 날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자손을 치러 올라가서, 전처럼 기브아를 향해 전열을 갖추었다.
“제 삼일에.” 셋째 날입니다. 이스라엘은 “전과 같이 기브아를 대하여 항오를 벌입니다.” 모든 것이 앞의 두 번과 똑같아 보이도록. 베냐민은 이번에도 같은 결과를 예상했을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호 6:2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제 삼일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31베냐민 자손이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 전과 같이 삼십 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그들이 큰길 곧 한편은 벧엘로 올라가는 길이요 한편은 기브아의 들로 가는 길에서 백성을 쳐서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직역 베냐민 자손이 그 백성을 맞으러 나왔다가 성읍에서 멀리 꾀어 나오게 되었다. 그들은 전처럼 백성을 치기 시작하여, 하나는 벧엘로 올라가는 길, 다른 하나는 기브아 들판으로 가는 큰길에서 이스라엘 사람 약 30명을 죽였다.
“베냐민 자손이 나와서 백성을 맞더니 꾀임에 빠져 성읍을 떠났더라.” 베냐민은 이스라엘의 거짓 후퇴에 속아 성읍에서 멀리 추격해 나왔습니다. 두 번의 승리가 그들을 자만하게 만들었습니다.
처음에는 또 이기는 듯했습니다. “전과 같이 이스라엘 사람 삼십명 가량을 죽이기 시작하며.” 이스라엘은 일부러 조금씩 물러나며 희생을 감수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꾀임에 빠지다 — 원문 ‘혼테쿠’, ‘끌려 나갔다’. 수 8:16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함께 읽을 말씀
수 8:16그 성 모든 백성이 그들을 따르려고 모여서 여호수아를 따르며 유인함을 입어 성을 멀리 떠나니
32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큰길로 꾀어내자
스스로 이르기를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 하나 이스라엘 자손은 이르기를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길로 꾀어내자 하고
직역 베냐민 자손은 “그들이 처음처럼 우리 앞에서 패하고 있다” 하고 말했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우리가 도망쳐서 그들을 성읍에서 큰길로 끌어내자” 하고 말하였다.
두 진영의 생각이 대조됩니다. 베냐민은 “이들이 처음과 같이 우리 앞에서 패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은 “우리가 도망하여 그들을 성읍에서 큰길로 꾀어내자”고 계획했습니다. 베냐민은 지난 승리에 취해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보지 못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0: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33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그 복병은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직역 이스라엘 모든 사람이 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바알다말에서 전열을 갖추었고, 이스라엘의 복병은 자기 자리, 곧 기브아 들판에서 뛰쳐나왔다.
“이스라엘 사람이 모두 그 처소에서 일어나서 바알다말에 항오를 벌였고.” 도망하던 본대가 멈추어 다시 전열을 갖춥니다. 동시에 “그 복병은 그 처소 곧 기브아 초장에서 쏟아져 나왔더라.” 숨어 있던 군대가 일어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초장 — 원문 ‘마아레-게바’, 정확한 뜻이 불분명합니다. ‘게바의 빈 터’ 또는 70인역 ‘기브아의 서쪽’.
34택한 사람 일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온 이스라엘 사람 중에서 택한 사람 일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직역 온 이스라엘에서 뽑힌 1만 명이 기브아 맞은편으로 왔고 싸움이 치열해졌다. 그러나 베냐민 자손은 재앙이 자기들에게 닥친 줄을 알지 못하였다.
“택한 사람 일만이 기브아에 이르러 치매 싸움이 심히 맹렬하나.” 그리고 결정적인 문장. “베냐민 사람은 화가 자기에게 미친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파멸이 바로 뒤에 와 있었는데, 베냐민은 알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이기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죄를 감싸고 회개를 거부하는 사람도 그렇습니다. 심판이 다가오는데도 알지 못합니다.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살전 5:3).
함께 읽을 말씀
살전 5: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35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 다 칼을 빼는 자이었더라
직역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치셨다. 그날 이스라엘 자손은 베냐민 사람 2만 5천 1백 명을 죽였는데, 모두 칼을 빼는 자들이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앞에서 베냐민을 쳐서 파하게 하시매.” 이 문장이 35절, 전투 묘사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승리의 주체는 이스라엘의 매복 작전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28절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는 약속이 성취되었습니다.
“당일에 이스라엘 자손이 베냐민 사람 이만 오천 일백을 죽였으니.” 2만 5천 1백 명. 이 숫자는 이 전투의 요약입니다. 36–46절은 이 전투를 더 자세하게 다시 이야기합니다. 히브리 내러티브는 이렇게 요약을 먼저 주고 상세한 설명을 뒤에 붙이곤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요약과 상술 — 35절이 전체 요약, 36–46절이 상세한 재서술. 46절 “모두 이만 오천”은 어림수.
함께 읽을 말씀
삿 20:28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삼상 17:47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36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 이스라엘 사람이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깐 피하매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간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직역 그제야 베냐민 자손은 자기들이 패한 것을 알았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브아 옆에 두었던 복병을 믿고 베냐민에게 자리를 내주었던 것이다.
36절부터 전투가 다시 자세히 이야기됩니다. “이에 베냐민 자손이 자기가 패한 것을 깨달았으니.” 너무 늦은 깨달음이었습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이 기브아에 매복한 군사를 믿고 잠간 베냐민 사람 앞을 피하매.” 이스라엘의 후퇴는 작전이었습니다.
37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직역 복병이 서둘러 기브아로 돌진해 들어가 흩어지며 온 성읍을 칼날로 쳤다.
“복병이 급히 나와 기브아에 돌입하고 나아가며 칼날로 온 성읍을 쳤음이더라.” 군사들이 모두 추격하러 나간 사이 비어 있던 기브아에 복병이 들이닥쳤습니다. 19장에서 나그네를 맞아 주지 않고,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던 그 성읍에 심판이 임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8:19복병이 그 처소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에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갈 6:7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38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상약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직역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는 성읍에서 큰 연기 구름을 피워 올리는 것을 신호로 삼자는 약속이 있었다.
“처음에 이스라엘 사람과 복병 사이에 상약하기를 성읍에서 큰 연기가 치미는 것으로 군호를 삼자 하고.” ‘군호’는 군사 신호입니다. 성을 점령하면 불을 질러 연기를 올리고, 그것을 본 본대가 돌아서서 공격하기로 미리 약속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군호 — 軍號. 원문 ‘모에드’, ‘약속된 표시’.
39이스라엘 사람은 물러가고 —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이스라엘 사람은 싸우다가 물러가고 베냐민 사람은 이스라엘 사람 삼십명 가량을 쳐 죽이기를 시작하며 이르기를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직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싸우다가 돌아서자, 베냐민은 이스라엘 사람 약 30명을 쳐 죽이기 시작하며 “그들이 확실히 첫 싸움 때처럼 우리 앞에서 패하고 있다” 하고 말하였다.
“이들이 정녕 처음 싸움같이 우리에게 패한다 하다가.” 32절의 반복입니다. ‘정녕’, 확실히. 베냐민은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뒤에서 연기가 오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잠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40연기 구름이 기둥 같이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연기 구름이 기둥 같이 성읍 가운데서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직역 그러나 성읍에서 연기 기둥이 구름처럼 오르기 시작하자, 베냐민이 뒤를 돌아보았다. 보라, 온 성읍이 불타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있었다.
“연기 구름이 기둥 같이 성읍 가운데서 일어날 때에 베냐민 사람이 돌아보매 온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았고.”
이 장면은 두 이야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는 여호수아 8:20,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 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다른 하나는 창세기 19:28, 소돔이 불탄 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온 들을 향하여 눈을 들어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19장에서 기브아는 소돔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기브아는 소돔처럼 불탑니다. ‘온 성읍’으로 옮긴 말 ‘칼릴’은 ‘온전한 번제’를 뜻하기도 합니다. 성읍 전체가 심판의 제물처럼 불타올랐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칼릴 — ‘온전한 것, 온전한 번제’. 신 13:16 우상 숭배한 성읍을 “그 성읍과 그 탈취물 전부를 불살라 네 하나님 여호와께 드릴찌니”.
함께 읽을 말씀
수 8:20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 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창 19:28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치밀음을 보았더라
41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직역 그러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돌아섰고, 베냐민 사람들은 재앙이 자기들에게 닥친 것을 보고 크게 놀랐다.
“이스라엘 사람은 돌이키는지라.” 도망하던 이스라엘이 돌아섭니다. “베냐민 사람이 화가 자기에게 미친 것을 보고 심히 놀라.” 34절에서는 “알지 못하였더라”였습니다. 이제 그들은 봅니다. 앞에서는 이스라엘 본대가, 뒤에서는 불타는 성읍과 복병이. 그들은 갇혔습니다.
42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진멸하니라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서 진멸하니라
직역 그들은 이스라엘 사람들 앞에서 돌아서서 광야 길로 도망하였으나, 싸움이 그들을 바싹 따라붙었고, 성읍들에서 나온 자들이 그 가운데서 그들을 쳐 죽였다.
“이스라엘 사람 앞에서 몸을 돌이켜 광야 길로 향하였으나.” 베냐민은 동쪽 광야로 도망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군사가 급히 추격하며 각 성읍에서 나온 자를 그 가운데서 진멸하니라.” 앞뒤로 포위되었습니다.
43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직역 그들이 베냐민을 에워싸고 쫓아가서, 기브아 맞은편 해 뜨는 쪽까지 그들이 쉬는 곳에서 짓밟았다.
“그들이 베냐민 사람을 에워쌌더니 기브아 앞 동편까지 쫓으며 그 쉬는 곳에서 짓밟으매.” 도망하던 베냐민 사람들이 숨을 돌리려 멈춘 곳에서도 이스라엘은 그들을 짓밟았습니다. 쉼이 없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쉬는 곳 — 원문 ‘메누하’, ‘쉼, 안식처’. 70인역은 ‘노하’라는 지명으로 읽습니다(대상 8:2 베냐민의 아들 ‘노하’).
44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일만 팔천이니 다 용사더라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일만 팔천이니 다 용사더라
직역 베냐민에서 1만 8천 명이 쓰러졌는데, 모두 용맹한 사람들이었다.
“베냐민 중에서 엎드러진 자가 일만 팔천이니 다 용사더라.” 1만 8천 명. 둘째 날 이스라엘이 잃은 숫자와 같습니다(25절). 그들은 ‘용사’, 곧 용맹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용맹이 정의를 위해 쓰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45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오천 명을 이삭 줍듯 하고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 명을 죽였으니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명을 이삭 줍듯 하고 또 급히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명을 죽였으니
직역 그들이 돌아서서 광야의 림몬 바위 쪽으로 도망하였는데, 이스라엘이 큰길에서 그들 가운데 5천 명을 이삭 줍듯 거두었고, 기돔까지 바싹 추격하여 그들 가운데 2천 명을 쳐 죽였다.
“그들이 몸을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는 큰길에서 이스라엘이 또 오천명을 이삭 줍듯 하고.” ‘이삭 줍듯’. 추수가 끝난 뒤 밭에 떨어진 이삭을 하나하나 줍듯이, 도망하는 자들을 샅샅이 찾아 죽였습니다. 그리고 “또 급히 따라 기돔에 이르러 또 이천명을 죽였으니.”
추격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18,000 + 5,000 + 2,000. 이스라엘의 분노는 전투의 승리로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이삭 줍다알랄 — ‘이삭을 줍다, 남김없이 거두다’. 레 19:10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렘 6:9 “포도를 땀 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림몬 — 오늘날 람문으로 추정. 기브아 동북쪽 약 6km.
함께 읽을 말씀
렘 6:9포도를 땀 같이 그들이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말갛게 주우리라
46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 다 용사더라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 다 용사더라
직역 그날 베냐민에서 칼을 빼는 자로 쓰러진 사람이 모두 2만 5천 명이었는데, 모두 용맹한 사람들이었다.
“이 날에 베냐민의 칼을 빼는 자의 엎드러진 것이 모두 이만 오천이니 다 용사더라.” 35절의 2만 5천 1백을 어림수로 다시 말합니다. 2만 6천 7백 명의 베냐민 군대 가운데 2만 5천 명이 하루에 쓰러졌습니다.
47베냐민 육백 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 달을 지내었더라
베냐민 육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
직역 그러나 600명은 돌아서서 광야의 림몬 바위로 도망하여, 그 림몬 바위에서 넉 달 동안 머물렀다.
“베냐민 육백명이 돌이켜 광야로 도망하여 림몬 바위에 이르러 거기서 넉달을 지내었더라.” 600명. 베냐민 지파에서 살아남은 남자는 이 600명뿐이었습니다. 그들은 광야의 바위산에 숨어 넉 달을 지냈습니다.
넉 달. 19:2에서 첩이 친정에 가서 지낸 기간도 넉 달이었습니다. 한 여인이 넉 달 동안 떠나 있었던 이야기에서 시작된 비극이, 한 지파가 넉 달 동안 바위산에 숨어 있는 것으로 이어졌습니다.
이 600명이 21장 이야기의 배경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한 지파가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시 또 다른 폭력의 방법을 찾게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600명 — 18:11, 16, 17 단 지파의 군사도 600명. 두 부록이 같은 숫자로 연결됩니다.
넉 달 — 19:2와 같은 표현 ‘아르바아 호다쉼’.
함께 읽을 말씀
삿 21:13온 회중이 림몬 바위에 있는 베냐민 자손에게 보내어 평화를 공포하게 하였더니
사 1:9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48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직역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성읍의 사람들로부터 가축과 눈에 띄는 모든 것에 이르기까지 칼날로 쳤다. 또 그들이 발견한 모든 성읍을 불살랐다.
전쟁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멈추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사람이 베냐민 자손에게로 돌아와서 온 성읍과 가축과 만나는 자를 다 칼날로 치고 닥치는 성읍마다 다 불살랐더라.”
군사들만이 아니었습니다. 베냐민 온 땅의 성읍, 그곳의 사람들 곧 여인과 아이들, 그리고 가축까지. 이스라엘은 가나안 사람들에게 행하라고 명령받은 진멸(헤렘)을 자기 형제 지파에게 행했습니다. 사사기 내내 가나안 사람들은 진멸하지 못했던 이스라엘이, 자기 형제는 진멸했습니다.
처음 목표는 “기브아 사람 곧 그 비류”(13절)를 처벌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한 지파 전체의 거의 완전한 멸절이었습니다. 정의가 복수가 되었고, 복수가 진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브아의 죄를 심판하셨지만(35절), 48절의 이 무차별 학살을 명령하셨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리고 21장에서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한 일을 보고 울게 됩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21:3). 그들은 자기 손으로 한 일을 하나님께 묻듯 탄식합니다. 왕이 없던 시대,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시대의 정의는 이렇게 끝없이 흔들렸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진멸 — 신 20:16–17 가나안 족속에 대한 명령. 신 13:12–18 우상 숭배한 이스라엘 성읍에 대한 진멸 규정. 이스라엘이 이 규정을 베냐민에게 적용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범죄는 기브아에 국한되었습니다.
삼상 22:19 — 훗날 베냐민 사람 사울도 놉 제사장의 성읍을 “남녀와 아이들과 젖먹는 자들과 소와 나귀와 양을 칼로 쳤더라”.
함께 읽을 말씀
삿 21:3가로되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오늘날 이스라엘 중에 어찌하여 한 지파가 이즈러졌나이까 하더니
신 13:15너는 마땅히 그 성읍 거민을 칼날로 죽이고 그 성읍과 그 중에 거하는 모든 것과 그 생축을 칼날로 진멸하고
롬 12: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약 1:20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멈출 줄 모르는 정의
하나님은 약속대로 이스라엘에게 승리를 주셨습니다. 기브아는 심판받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도망하는 자를 이삭 줍듯 쫓았고, 베냐민 온 땅의 성읍과 사람과 가축까지 불살랐습니다. 범죄자를 처벌하려던 정의가, 한 지파를 거의 지워 버리는 복수가 되었습니다. 남은 것은 바위산에 숨은 600명뿐이었습니다.
정의는 필요합니다. 악은 처벌받아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분노가 정의의 옷을 입으면 쉽게 선을 넘습니다.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약 1:20). 우리가 옳다고 확신할 때일수록, 우리의 분노가 하나님의 정의를 넘어서지 않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최종적인 정의는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거기서 하나님은 죄를 철저히 심판하시면서도, 죄인을 살리셨습니다.
Battles · 정리
기브아 전투의 세 날
두 번의 패배, 한 번의 승리
첫째 날 (18–21절)
둘째 날 (23–25절)
셋째 날 (26–48절)
질문
“누가 먼저 올라가리이까?”
“다시 나아가서 나의 형제와 싸우리이까?”
“싸우리이까 말리이까?”
이스라엘의 태도
결정 후 승인을 구함
저물도록 울며
온 백성이 울며 금식, 번제와 화목제
하나님의 대답
“유다가 먼저일찌니라”
“올라가서 치라”
“올라가라 내일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결과
이스라엘 22,000명 전사
이스라엘 18,000명 전사
베냐민 25,100명 전사, 600명 생존
질문이 깊어질수록, 이스라엘이 낮아질수록, 하나님의 대답도 분명해졌습니다. 처음에는 순서만 알려 주셨고, 다음에는 허락만 하셨고, 마지막에야 승리를 약속하셨습니다.
전체 사상자: 이스라엘 약 40,030명(22,000 + 18,000 + 약 30), 베냐민 25,100명과 48절의 비전투원. 한 범죄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6만 5천 명이 넘는 이스라엘 사람이 죽었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20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1절
이스라엘 땅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
미스바1, 3절
‘망대’. 베냐민 땅의 성읍, 총회 장소.
총회總會 · 2절
하나님 백성의 회중.
정형情形 · 3절
사정과 형편.
망령된 일妄靈- · 6, 10절
네발라. 수치스러운 악행.
방책方策 · 7절
방법과 계책.
비류匪類 · 13절
벨리알의 자식들. 불량배.
왼손잡이16절
원문 ‘오른손이 묶인 자’.
호리毫釐 · 16절
털끝만큼의 작은 차이.
벧엘18, 26절
‘하나님의 집’. 언약궤가 있던 곳.
항오行伍 · 20–33절
군대의 대열.
번제燔祭 · 26절
제물 전체를 불살라 드리는 제사.
화목제和睦祭 · 26절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한 제사.
비느하스28절
아론의 손자. 출애굽 세대 대제사장.
매복埋伏 · 29, 36절
숨어서 기다림.
상약相約 · 38절
서로 약속함.
군호軍號 · 38절
군사 신호.
림몬 바위45, 47절
기브아 동북쪽 광야의 바위산.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이스라엘은 사사기에서 처음으로 “한 사람 같이” 하나 되었지만, 그 목적은 형제를 치는 것이었습니다(1, 8, 11절). 우리 공동체가 하나 되는 목적은 무엇입니까?
레위인은 자기가 첩을 내보낸 사실을 빼고 증언했습니다(4–6절). 나는 갈등 속에서 내게 유리한 반쪽 진실만 말한 적은 없습니까?
베냐민은 우리 지파 사람이라는 이유로 범죄자들을 감쌌습니다(13절). 공동체가 내부의 죄를 덮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이스라엘의 질문은 “누가 먼저?”에서 “싸우리이까 말리이까?”로 바뀌었습니다(18, 23, 28절). 나의 기도는 내 계획의 승인을 구하는 기도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입니까?
하나님은 두 번의 패배를 통해 이스라엘을 낮추셨습니다(21, 25–26절). 실패를 통해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간 경험이 있습니까?
비느하스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도 이스라엘은 이렇게 무너졌습니다(28절). 믿음의 유산을 다음 세대에 전하기 위해 나는 무엇을 하고 있습니까?
범죄자를 처벌하려던 정의가 한 지파의 진멸로 끝났습니다(48절). 내가 옳다고 확신할 때, 내 분노가 선을 넘지 않도록 어떻게 살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