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31절까지 — 기업을 얻지 못한 단 지파, 레위인의 값싼 축복, 훔친 신상과 갈아탄 제사장, 평안한 라이스의 멸망, 그리고 북쪽 끝에 세워진 우상 성소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JUDGES 18:24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8장 들어가며
하나님 없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땅을 정복한 지파
17장의 미가 이야기가 18장에서 한 지파 전체의 이야기로 커집니다. 단 지파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차지하지 못했습니다. 1:34에 따르면 아모리 사람이 그들을 산지로 몰아넣었고, 삼손 시대에는 블레셋의 압박 아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라 새로운 땅을 찾아 정탐꾼 다섯을 보냅니다.
정탐꾼들은 미가의 집에서 레위인을 만나고, 그에게 “하나님께 물어보라” 합니다. 레위인은 하나님께 물었다는 기록도 없이 “평안히 가라”고 대답합니다. 정탐꾼들은 북쪽 끝의 평화로운 도시 라이스를 발견하고, 단 지파 600명이 무장하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가는 길에 미가의 집에 들러 그의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훔치고, 레위인 제사장에게 “한 집의 제사장보다 한 지파의 제사장이 낫지 않느냐” 하며 데려갑니다. 레위인은 기뻐하며 따라갑니다.
미가가 쫓아오며 울부짖습니다.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러나 단 자손은 위협하고 떠납니다. 그들은 평안하게 살던 라이스 사람들을 칼로 치고 불사르고, 그곳을 ‘단’이라 이름 짓고, 훔친 신상을 세웁니다. 그리고 그 제사장이 바로 모세의 손자였다는 충격적인 사실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의 집은 실로에 있었지만, 단 지파는 북쪽 끝에 자기들의 성소를 세웠습니다.
핵심 구절
18:24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사람이 만든 신은 사람이 빼앗아 갈 수 있습니다.
값싼 축복
18:5–6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평안히 가라” 한 고용된 제사장.
갈아탄 제사장
18:19–20
더 좋은 조건이 오자 기뻐하며 떠난 레위인.
모세의 손자
18:30
위대한 지도자의 손자가 우상 성소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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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기업의 땅”
하나님이 분배하신 상속 땅.
2절 “용맹 있는”
용사, 유능한 자.
2절 “유숙하니라”
留宿, 머물러 잤다.
3절 “음성을 알아듣고”
말투(사투리)로 알아보고.
4절 “고빙하여”
雇聘, 고용하여.
6절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여호와께서 살피고 계신다. 좋게도 나쁘게도 읽힘.
7절 “라이스”
갈릴리 북쪽, 헤르몬산 아래의 성읍. 후에 ‘단’.
7절 “상거가 멀며”
相距, 서로 떨어진 거리가 멀며.
12절 “기럇여아림”
‘숲의 성읍’. 예루살렘 서쪽.
12절 “마하네단”
‘단의 진영’.
19절 “네 손을 입에 대라”
입을 다물라.
28절 “베드르홉”
‘르홉의 집’. 라이스 근처 골짜기.
30절 “사로잡히는 날”
그 땅이 포로로 잡혀가는 날. 앗수르 포로(기원전 8세기)로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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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1–6하나님께 물어보아서 — 평안히 가라
단 지파는 아직 기업의 땅을 얻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용사 다섯을 보내 새 땅을 정탐하게 합니다. 정탐꾼들은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서 하룻밤을 묵다가, 레위 청년의 목소리를 알아봅니다.
그들은 레위인에게 왜 여기 있느냐고 묻고, 그는 미가가 자기를 고용했다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정탐꾼들은 하나님께 물어 자기들의 길이 형통할지 알려 달라고 합니다. 레위인은 즉시 대답합니다.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하나님께 물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1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직역 그 시절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다. 그 시절에 단 지파는 자기들이 거할 기업을 찾고 있었다. 그날까지 이스라엘 지파들 가운데서 그들에게 기업이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고.” 17:6의 후렴이 다시 나옵니다. 이번에는 앞부분만입니다. 이어지는 모든 일이 ‘왕이 없던 시대’, 사람마다 자기 소견대로 행하던 시대의 일임을 상기시킵니다.
“단 지파는 이 때에 거할 기업의 땅을 구하는 중이었으니 이는 그들이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 이 때까지 기업의 땅 분배함을 얻지 못하였음이라.” 그런데 이 말은 정확하지 않습니다. 여호수아 19:40–48에 따르면 단 지파는 분명히 기업을 분배받았습니다. 소라, 에스다올, 아얄론, 딤나, 에그론, 욥바 근처까지, 지중해 해안 평야의 비옥한 땅이었습니다. 문제는 분배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받은 땅을 차지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1:34–35는 그 이유를 말합니다. “아모리 족속이 단 자손을 산지로 몰아넣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였으며.” 단 지파는 하나님이 주신 땅을 위해 싸우지 않았거나, 싸워서 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들은 그 땅을 포기하고, 더 쉽게 얻을 수 있는 다른 땅을 찾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지키는 대신, 자기들이 보기에 좋은 땅을 찾아 떠납니다. 이것도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기업나할라 — 하나님이 분배하신 상속 땅. 수 19:40–48 단 지파의 기업 목록. 수 19:47 “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서 레센을 단이라 하였더라” — 사사기 18장 사건의 요약.
삼손과의 연결 — 삼손도 단 지파였습니다(13:2). 그리고 18장의 출발지도 “소라와 에스다올”(2절)로, 삼손의 고향입니다(13:25, 16:31).
함께 읽을 말씀
삿 1:34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수 19:47단 자손의 지경이 더욱 확장되었으니 이는 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칼날로 치고 그것을 얻어 거기 거하였음이라
삿 17:6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마다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2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게 하며 — 미가의 집에 유숙하니라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부터 자기 온 가족중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하며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가서 땅을 살펴보라 하매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직역 단 자손이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자기 가문 가운데 용사 다섯 명을 보내어 땅을 정탐하고 살피게 하며 말하였다. “가서 그 땅을 살펴보라.” 그들이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밤을 지냈다.
단 자손은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정탐꾼을 보냅니다. 삼손의 고향입니다. 삼손이 태어나고, 여호와의 영이 처음 그를 움직이시고, 그가 묻힌 곳(13:25, 16:31). 그러나 삼손의 지파는 삼손이 지키려 했던 그 땅을 떠나려 합니다.
그들은 용맹 있는 다섯 사람을 보내어 땅을 탐지하고 살피게 합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의 다른 정탐 이야기들을 떠올리게 합니다. 모세가 가나안에 열두 정탐꾼을 보냈고(민 13장), 여호수아가 여리고에 두 정탐꾼을 보냈습니다(수 2장). 그때는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정탐했습니다. 그런데 단 지파는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라 자기들이 원하는 땅을 찾으러 정탐꾼을 보냅니다. 그리고 1:1의 이스라엘처럼 “여호와께 묻자와”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정탐꾼들은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합니다. 17장의 그 집, 우상과 신당과 고용된 레위인이 있는 그 집입니다. 두 이야기가 만납니다.
수 2:1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으로 가만히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삿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3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무엇을 하며 무엇을 얻었느냐
그들이 미가의 집에 가까이 올 때에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고 그리로 돌이켜 가서 그에게 이르되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직역 그들이 미가의 집 근처에 있을 때, 그 젊은 레위인의 목소리를 알아보았다. 그들이 그리로 돌아서서 그에게 말하였다. “누가 너를 여기로 데려왔느냐?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느냐? 여기서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정탐꾼들은 레위 소년의 음성을 알아듣습니다. 그의 목소리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그가 유다 베들레헴 출신이어서 에브라임 사람들과 다른 남쪽 말투를 썼기 때문에 알아보았다는 것입니다(12:6 십볼렛처럼). 다른 하나는 단 지파의 소라와 유다의 베들레헴이 가까워 전에 알던 사이였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세 가지를 묻습니다.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네가 여기서 무엇을 하며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 이 질문은 단순한 안부가 아닙니다. 특히 마지막 질문,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마 레카 포)는 ‘여기서 네가 가진 것이 무엇이냐’, 곧 ‘여기서 얼마를 받느냐’는 뜻으로 들립니다. 정탐꾼들은 처음부터 레위인을 이해관계의 관점에서 봅니다.
그리고 첫 질문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으며.” 하나님의 사람이라면 대답은 “하나님이 나를 인도하셨다”여야 합니다. 그러나 레위인의 대답은 다음 절에 나옵니다.
그가 그들에게 이르되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직역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미가가 나에게 이러이러하게 해 주었소. 그가 나를 고용하였고, 나는 그의 제사장이 되었소.”
레위인의 대답은 솔직합니다. “미가가 여차여차히 나를 대접하여 나를 고빙하여 나로 자기 제사장을 삼았느니라.” ‘여차여차히’는 ‘이러이러하게’로, 그가 받는 대우, 곧 연봉 은 10세겔과 옷과 음식을 설명했다는 뜻입니다.
“나를 고빙하여.” 원문 ‘사카르’는 ‘고용하다, 삯을 주고 사다’라는 뜻입니다. 9:4에서 아비멜렉이 건달들을 ‘샀다’, 신명기 23:4에서 모압이 발람을 ‘뇌물로 샀다’고 할 때의 그 말입니다. 레위인은 스스로 자기가 ‘고용된’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누가 너를 이리로 인도하였느냐”는 질문에 그는 하나님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미가가 그를 고용했다. 그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고용 계약으로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고빙하다사카르 — ‘고용하다’. 9:4, 신 23:4, 삼하 10:6 암몬이 아람 군대를 ‘고용하고’.
함께 읽을 말씀
삿 9:4아비멜렉이 그것으로 방탕하고 경박한 유를 사서
요 10:12-13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5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알게 하라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하라
직역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제발 하나님께 물어서, 우리가 가는 길이 성공할지 우리가 알게 해 주시오.”
정탐꾼들은 요청합니다. “청컨대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께 물어보아서 우리의 행하는 길이 형통할는지 우리에게 알게하라.”
하나님께 묻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1:1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묻자와” 전쟁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질문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까’를 묻지 않았습니다. ‘우리 길이 형통할까요’를 물었습니다. 그들은 이미 자기들의 길을 정했고, 하나님께는 그 길에 대한 확인만 받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묻는 방법도 문제였습니다. 미가의 집에서, 미가가 만든 에봇으로, 미가가 고용한 제사장을 통해. 하나님이 금하신 우상 신당에서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나님께 묻다 — 원문 ‘샤알 베엘로힘’. 1:1, 20:18, 23, 27 “여호와께 묻자와”. 대제사장의 에봇과 우림과 둠밈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것(민 27:21, 삼상 23:9–12).
민 27:21그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법으로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잠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약 4:13-15너희가 도리어 말하기를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 저것을 하리라 할것이거늘
6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직역 그 제사장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평안히 가시오. 당신들이 가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소.”
레위인은 즉시 대답합니다. “평안히 가라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그런데 이 장면에는 빠진 것이 있습니다. 레위인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20:23, 27이나 사무엘상 23:9–12에서는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이 대답하시는 장면이 분명히 기록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요청을 듣자마자 바로 대답합니다. 그는 손님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대답은 교묘하게 모호합니다.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여호와 앞에’(노카흐 YHWH)는 ‘여호와께서 인정하신다’로도, 단순히 ‘여호와께서 지켜보신다’로도 읽힐 수 있습니다. 성공하면 “여호와께서 인정하셨다”, 실패하면 “여호와께서 다 보고 계셨다”고 할 수 있는 말입니다. 고대의 점쟁이들이 흔히 쓰던 양쪽 다 맞는 말이었습니다.
이것은 값싼 축복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지도 않고, 듣는 사람이 원하는 대로 “평안히 가라”고 축복하는 것.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도 그랬습니다. “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렘 6:14). 하나님의 사람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평안히 가라 — 원문 ‘레쿠 레샬롬’. 삼상 1:17 엘리가 한나에게 “평안히 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의 기도하여 구한 것을 허락하시기를 원하노라”, 삼상 20:42.
여호와 앞에 — 원문 ‘노카흐 YHWH’. 렘 17:16 “내 입술에서 나온 것이 주의 목전에 있나이다”. 긍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의도적으로 모호한 것으로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렘 6:14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겔 13:10이렇게 칠 것은 그들이 내 백성을 유혹하여 평강이 없으나 평강이 있다 함이라
딤후 4:3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왕상 22:6선지자 사백인쯤 모으고 저희에게 이르되 내가 길르앗 라못에 가서 싸우랴 말랴 저희가 가로되 올라가소서 주께서 그 성을 왕의 손에 붙이시리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듣고 싶은 말, 들어야 할 말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하나님께 물어 달라고 했지만, 그들이 원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기들 계획에 대한 확인이었습니다. 그리고 고용된 레위인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 주었습니다. “평안히 가라.”
우리도 하나님께 기도하지만, 실은 내가 이미 정한 것을 확인받으려 할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내 생각을 지지해 주는 말만 듣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참된 신앙은 내 계획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그리고 하나님의 사람들은 사람들이 듣고 싶은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그것이 때로 불편하더라도.
18:7–13한가하고 평안하니 — 쉬운 먹잇감을 찾은 지파
정탐꾼들은 북쪽 끝 헤르몬산 아래의 라이스에 이릅니다. 그곳 사람들은 시돈 사람처럼 한가하고 평안하게 살았고, 다스리는 자도 없고, 다른 민족과 교류도 없었습니다. 공격하기 쉬운 곳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돌아와 형제들에게 보고합니다. “그 땅이 매우 좋더라 …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그리고 단 지파 600명이 무장하고 출발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그 땅을 그들에게 주셨을까요? 하나님이 단 지파에게 주신 땅은 남쪽 해안이었지, 북쪽 라이스가 아니었습니다.
7라이스에 이르러 — 염려 없이 시돈 사람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이에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러 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직역 그 다섯 사람이 떠나 라이스에 이르렀다. 그들이 보니 그곳 백성은 시돈 사람의 방식대로 안전하게 살고 있었으며, 평온하고 걱정 없었다. 그 땅에는 아무것도 부족하지 않았고 권력을 쥔 자도 없었다. 그들은 시돈 사람과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무와도 교류가 없었다.
정탐꾼들은 북쪽으로 계속 올라가 라이스에 이릅니다. 라이스는 갈릴리 바다 북쪽, 헤르몬산 기슭에 있었습니다. 요단강의 수원지 가운데 하나가 이곳에서 솟아납니다. 물이 풍부하고 땅이 비옥한 곳이었습니다. 남쪽 소라에서 약 160km 떨어진 이스라엘의 최북단입니다.
그곳 사람들의 모습.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그들은 평화롭게 살았습니다. 시돈은 지중해 해안의 부유한 상업 도시였는데, 라이스 사람들도 시돈 사람들처럼 여유롭고 평안하게 살았습니다. 아마 시돈의 식민지나 그와 관련된 공동체였을 것입니다.
“그 땅에는 권세 잡은 자가 없어서 무슨 일에든지 괴롭게 함이 없고.” 그들을 억압하는 통치자도 없었습니다. “시돈 사람과 상거가 멀며 아무 사람과도 상종하지 아니함이라.” 그리고 그들은 고립되어 있었습니다. 시돈과는 레바논 산맥으로 떨어져 있었고, 다른 민족과 동맹을 맺지 않았습니다.
정탐꾼들이 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평화로운 공동체, 비옥한 땅, 그리고 무엇보다 공격하기 쉬운 대상. 군대도 없고, 동맹도 없고, 도와줄 사람도 없는 곳.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땅을 위해 싸우는 대신, 가장 약하고 무방비한 상대를 찾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라이스 — ‘사자’라는 뜻. 수 19:47에서는 ‘레센’. 오늘날 텔 단(Tel Dan). 고고학 발굴로 청동기 시대의 거대한 성문(‘아브라함의 문’)과 철기 시대의 성소가 발견되었습니다.
안전하게베타흐 — 8:11 미디안 진영이 ‘안연히’ 있던 것과 같은 말. 27절에서 반복됩니다.
권세 잡은 자 — 원문이 어려운 부분입니다. ‘통치권을 물려받는 자’ 또는 ‘부족함을 꾸짖는 자’로 읽기도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8:11적군이 안연히 있는 중에 기드온이… 적군을 치니
겔 38:11평원의 고을들로 올라가리라 성벽도 없고 문이나 빗장이 없어도 염려없이 다 평안히 거하는 백성에게 나아가서
수 19:47단 자손이 올라가서 레센을 쳐서 취하여
8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돌아와서 그 형제에게 이르매 형제들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직역 그들이 소라와 에스다올에 있는 자기 형제들에게 돌아오자, 형제들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본 것이 어떠하냐?”
정탐꾼들은 소라와 에스다올로 돌아옵니다. 형제들이 묻습니다. “너희 보기에 어떠하더뇨.” 민수기 13장에서 모세가 보낸 정탐꾼들이 돌아왔을 때와 같은 장면입니다. 그때 열 명의 정탐꾼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민 13:31)며 불신앙의 보고를 했고, 여호수아와 갈렙만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민 13:30)고 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13:27모세에게 보고하여 가로되 당신이 우리를 보낸 땅에 간즉 과연 젖과 꿀이 그 땅에 흐르고 이것은 그 땅의 실과니이다
9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 게을리 말라
가로되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직역 그들이 말하였다. “일어나 그들을 치러 올라갑시다. 우리가 그 땅을 보니 정말 좋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가만히 있겠습니까? 가서 그 땅에 들어가 차지하기를 주저하지 마십시오.”
정탐꾼들은 열정적으로 보고합니다. “일어나서 그들을 치러 올라가자 우리가 그 땅을 본즉 매우 좋더라.” ‘매우 좋더라’(토바 메오드)는 민수기 14:7에서 여호수아와 갈렙이 “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고 했던 말과 같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31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을 보시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하신 말과도 같습니다.
“너희는 가만히 있느냐 나아가서 그 땅 얻기를 게을리 말라.” 그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말합니다. 믿음으로 나아가자. 그런데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을 말했습니다. 단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이 약속하지 않으신 땅, 평화롭게 사는 무방비한 사람들의 땅을 말합니다. 같은 신앙의 언어를 쓰지만, 그 내용은 전혀 달랐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매우 좋더라 — 원문 ‘토바 메오드’. 창 1:31, 민 14:7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토바 하아레츠 메오드 메오드).
게을리 말라 — 원문 ‘알 테아체루’, ‘주저하지 말라, 머뭇거리지 말라’. 수 18:3 여호수아 “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함께 읽을 말씀
민 14:7우리가 두루 다니며 탐지한 땅은 심히 아름다운 땅이라
수 18:3너희가 너희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신 땅을 취하러 가기를 어느 때까지 지체하겠느냐
10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부족함이 없느니라 —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 땅은 넓고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직역 “여러분이 가면 안심하고 있는 백성에게 이를 것입니다. 그 땅은 사방으로 넓습니다. 하나님이 그것을 여러분 손에 주셨습니다. 그곳은 땅에 있는 어떤 것도 부족함이 없는 곳입니다.”
정탐꾼들은 계속 말합니다. “너희가 가면 평안한 백성을 만날 것이요.” 그들은 라이스 사람들이 평화롭게 사는 것을 공격의 이유로 삼습니다. 무방비하니까 쉽게 이길 수 있다.
“그곳에는 세상에 있는 것이 하나도 부족함이 없느니라.” 신명기 8:9에서 모세가 약속의 땅을 묘사한 말과 같습니다.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들은 약속의 땅의 언어로 라이스를 묘사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이것은 사사기에서 하나님이 원수를 이스라엘 손에 붙이실 때 쓰던 표현입니다(1:2, 3:28, 4:7, 7:15). 그런데 하나님이 정말 라이스를 단 지파에게 주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런 약속을 하신 적이 없습니다. 라이스는 이스라엘을 위협한 원수도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그저 평화롭게 살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정탐꾼들은 레위인의 “평안히 가라”는 모호한 말을 근거로, 자기들의 계획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기 욕심을 정당화한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넓은 땅 — 원문 ‘라하바트 야다임’, ‘양손이 넓은’, 곧 사방으로 넓은. 창 34:21 “이 땅은 넓어 그들을 용납할 만하니”, 대상 4:40.
신 8:9 — “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함께 읽을 말씀
신 8:9너의 먹는 식물의 결핍함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삿 3:28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렘 23:16너희에게 예언하는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말라 그들은 너희에게 헛된 것을 가르치나니 그들의 말한 묵시는 자기 마음으로 말미암은 것이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온 것이 아니니라
11단 지파 가족 중 육백 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단 지파 가족 중 육백명이 병기를 띠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여
직역 단 가문의 사람 육백 명이 전쟁 무기를 차고 소라와 에스다올에서 출발하였다.
“단 지파 가족 중 육백명이 병기를 띠고.” 600명의 무장한 전사가 출발합니다. 그리고 21절에 따르면 그들은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도 함께 가지고 갔습니다. 전쟁을 위한 원정이 아니라 지파의 이주였습니다.
600명은 단 지파 전체에 비하면 작은 수입니다. 민수기 26:43에 따르면 단 지파의 전사는 64,400명이었습니다. 그러니까 단 지파의 일부만 북쪽으로 이주했고, 나머지는 남쪽에 남았을 것입니다(삼손 시대에도 단 지파가 소라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이주는 결국 단 지파의 정체성이 되었습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는 이스라엘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뜻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20:1).
원어 · 번역 노트
600명 — 3:31 삼갈이 블레셋 600명을 죽임, 20:47 베냐민 생존자 600명, 삼상 13:15 사울의 600명. 사사기에서 600은 작은 무리를 뜻하는 수로 자주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26:43수함 모든 가족의 계수함을 입은 자가 육만 사천 사백명이었더라
삿 20:1이에 모든 이스라엘 자손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와 길르앗 땅에서
12유다 기럇여아림에 진 치니 —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올라가서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치니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그곳은 기럇여아림 뒤에 있더라
직역 그들이 올라가 유다의 기럇여아림에 진을 쳤다. 그래서 그곳은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라 불린다. 그곳은 기럇여아림 서쪽에 있다.
단 지파는 먼저 유다 기럇여아림에 진을 칩니다. ‘숲의 성읍’이라는 뜻으로, 예루살렘 서쪽에 있었습니다. 훗날 블레셋에게서 돌아온 언약궤가 이곳에 20년 동안 머물게 됩니다(삼상 7:1–2).
“이러므로 그곳 이름이 오늘까지 마하네단이며.” ‘마하네단’은 ‘단의 진영’이라는 뜻입니다. 13:25에서 “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고 했던 바로 그 이름입니다. 삼손에게 여호와의 영이 처음 임했던 곳이, 단 지파가 우상을 훔치러 가는 길에 진을 쳤던 곳이 되었습니다. (13:25의 마하네단과 이 마하네단이 같은 곳인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갈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기럇여아림 — 수 9:17 기브온 동맹 성읍, 15:9, 60 유다의 경계, 삼상 6:21–7:2 언약궤가 머문 곳, 대상 13:5–6 다윗이 언약궤를 옮겨 옴.
뒤에 — 원문 ‘아하레’, ‘뒤에’, 히브리어에서는 ‘서쪽에’를 뜻합니다(동쪽을 앞으로 봄).
함께 읽을 말씀
삿 13:25소라와 에스다올 사이 마하네단에서 여호와의 신이 비로소 그에게 감동하시니라
삼상 7:2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년 동안을 오래 있은지라
13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무리가 거기서 떠나서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르니라
직역 그들이 거기서 에브라임 산지로 건너가 미가의 집에 이르렀다.
단 지파는 북쪽으로 올라가는 길에 에브라임 산지 미가의 집에 이릅니다. 정탐꾼들이 묵었던 바로 그 집입니다. 그리고 그 집에는 그들이 기억하는 것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8:2그들이 에브라임 산지에 가서 미가의 집에 이르러 거기서 유숙하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 욕심
단 지파의 정탐꾼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말했습니다. “그 땅이 매우 좋더라 … 게을리 말라 …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그러나 그들이 말한 땅은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이 아니라, 평화롭게 사는 무방비한 사람들의 땅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위해 싸우는 대신, 가장 쉬운 먹잇감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이름을 내 욕심에 붙일 수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쉬운 길을 하나님이 열어 주신 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을 쓴다고 하나님의 뜻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인지, 아니면 내가 원하는 것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인 것인지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
18:14–20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겠느냐 — 신상과 제사장을 함께 가져가다
미가의 집 앞에서 정탐꾼들은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이 있다. 너희가 마땅히 할 일을 생각하라. 600명이 무장하고 문 앞에 서 있는 동안, 다섯 정탐꾼이 들어가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가지고 나옵니다.
레위인 제사장이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묻자, 그들은 말합니다. “잠잠하라 …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레위인은 기뻐하며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을 직접 챙겨 그들을 따라갑니다. 더 좋은 조건이 오자 그는 고용주를 배신하고 떠났습니다.
14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신상이 있는 줄을 아느냐 —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전에 라이스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 형제들에게 말하여 가로되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하고
직역 라이스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들의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이 집들에 에봇과 드라빔과 조각한 신상과 부어 만든 신상이 있는 것을 여러분은 아십니까? 이제 여러분이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 보십시오.”
미가의 집 앞에서 정탐꾼들이 형제들에게 말합니다. “이 집에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신상과 부어만든 신상이 있는줄을 너희가 아느냐.” 그들은 지난번 이 집에 묵었을 때 그것들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레위인이 그 에봇으로 자기들에게 “평안히 가라”는 축복을 주었습니다. 그들은 그 축복이 효과가 있었다고 생각했습니다. 라이스를 발견했으니까요.
“그런즉 이제 너희는 마땅히 행할 것을 생각하라.” 노골적으로 말하지 않지만 의도는 분명합니다. 저것들을 가져가자. 새 땅에서도 우리에게 복을 가져다줄 신상과 제사장이 필요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려는 것이 아니라 복을 가져다주는 도구를 원했습니다. 17:13의 미가와 똑같은 생각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마땅히 행할 것 — 원문 ‘데우 마 타아수’, ‘너희가 무엇을 할지 알라’. 삼상 25:17 “이제 당신은 어떻게 할것을 알아 생각하실찌니”.
함께 읽을 말씀
출 20:15도적질하지 말찌니라
삿 17:13레위인이 내 제사장이 되었으니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
15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다섯 사람이 그 편으로 향하여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하고
직역 그들이 그쪽으로 돌아서 젊은 레위인의 집, 곧 미가의 집으로 가서 그에게 평안을 물었다.
다섯 정탐꾼은 소년 레위 사람의 집 곧 미가의 집에 이르러 문안합니다. 원문은 ‘그에게 평안을 물었다’(샤알 레샬롬)입니다. 친근하게 인사했습니다. 6절에서 레위인이 그들에게 “평안히 가라”고 했는데, 이제 그들이 레위인에게 ‘평안’을 묻습니다. 그런데 그 평안의 인사 뒤에는 도둑질의 계획이 숨어 있었습니다.
시 28:3악인과 행악하는 자와 함께 나를 끌지 마옵소서 저희는 그 이웃에게 화평을 말하나 그 마음에는 악독이 있나이다
마 26:49곧 예수께 나아와 랍비여 안녕하시옵니까 하고 입을 맞추니
16단 자손 육백 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단 자손 육백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서니라
직역 전쟁 무기를 찬 단 자손 육백 명이 문 입구에 서 있었다.
그 사이 단 자손 육백명은 병기를 띠고 문 입구에 섭니다. 무력 시위입니다. 600명의 무장한 전사가 문 앞을 막고 서 있으면, 미가와 그의 가족과 이웃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다섯 사람은 친근하게 인사하고, 600명은 무기를 들고 서 있습니다. 부드러운 말과 위협이 함께 갑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미 2:2밭들을 탐하여 빼앗고 집들을 탐하여 취하니 그들이 사람과 그 집 사람과 그 산업을 학대하도다
17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문 입구에 섰더니
땅을 탐지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할 때에 제사장은 병기를 띤 육백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직역 땅을 정탐하러 갔던 다섯 사람이 올라가 그곳에 들어가서 조각한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졌다. 그동안 제사장은 무기를 찬 육백 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서 있었다.
다섯 사람이 그리로 들어가서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합니다. 미가의 신당에 있던 모든 것을 가져갑니다.
그동안 제사장은 병기를 띤 육백명과 함께 문 입구에 섰더니. 레위인은 문 앞에서 600명의 전사들과 함께 서 있었습니다. 아마 정탐꾼들과 인사를 나눈 뒤 밖으로 나와 그들과 이야기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 신당 안에서는 도둑질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네 가지 물건 — 14, 17, 18, 20절에서 순서가 조금씩 바뀌며 반복됩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우상들을 반복해서 나열하며 그것들이 얼마나 쉽게 옮겨지고 빼앗기는지 강조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6:1-2벨은 엎드러졌고 느보는 구부러졌도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18신상과 에봇과 드라빔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그 다섯 사람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그 새긴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만든 신상을 취하여 내매 제사장이 그들에게 묻되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직역 그들이 미가의 집에 들어가서 조각한 신상과 에봇과 드라빔과 부어 만든 신상을 가지고 나오자, 제사장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는 것입니까?”
다섯 사람이 신상들을 들고 나옵니다. 그것을 본 레위인이 묻습니다.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
그의 질문은 형식적인 항의였을 것입니다. 그는 미가의 제사장이었고, 그 신상들은 그가 섬기던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막아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항의는 단 한 마디로 끝납니다. 그리고 다음 절의 제안을 듣자마자 그의 태도가 완전히 바뀝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4:20그는 재를 먹고 미혹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스스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거짓 것이 있지 아니하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19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과 한 지파의 제사장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직역 그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조용히 하시오. 손을 입에 대고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버지와 제사장이 되시오. 당신이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겠소, 아니면 이스라엘의 한 지파와 한 가문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겠소?”
단 자손의 대답은 위협과 제안이 섞여 있습니다. 먼저 위협. “잠잠하라 네 손을 입에 대라.” 입을 다물라. 600명의 무장한 사람들 앞에서 이것은 분명한 경고였습니다.
그리고 제안. “우리와 함께 가서 우리의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이것은 17:10에서 미가가 했던 말과 똑같습니다.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이제 단 지파가 같은 제안을 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질문. “네가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이 되는 것과 이스라엘 한 지파, 한 가족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어느 것이 낫겠느냐.” 한 개인 집안의 제사장보다 한 지파 전체의 제사장이 더 낫지 않느냐? 이것은 승진 제안이었습니다. 더 큰 자리, 더 많은 사람, 더 높은 지위. 아마 더 많은 보수도.
이 질문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가 아니라, 어느 것이 더 나으냐. 어느 것이 더 큰 자리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경력 관리가 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손을 입에 대라 — 욥 21:5 “너희는 나를 보아라, 놀라라, 손으로 입을 가리우라”, 29:9, 40:4 “손으로 내 입을 가릴 뿐이로소이다”, 미 7:16. 침묵의 표시.
아비와 제사장 — 17:10과 같은 표현.
함께 읽을 말씀
삿 17:10네가 나와 함께 거하여 나를 위하여 아비와 제사장이 되라
요 10: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빌 2:21저희가 다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되
20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가니라
직역 제사장의 마음이 기뻤다. 그가 에봇과 드라빔과 조각한 신상을 가지고 그 백성 가운데로 들어갔다.
레위인의 반응.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 원문은 ‘제사장의 마음이 좋았다’입니다. 그는 기뻤습니다. 고용주를 배신하는 순간에, 자기를 먹이고 입히고 아들처럼 대해 준 미가를 버리는 순간에, 그는 기뻤습니다.
그리고 에봇과 드라빔과 새긴 우상을 취하고 그 백성 중으로 들어갑니다. 그는 단순히 따라간 것이 아니라 직접 우상들을 챙겼습니다. 도둑질의 공범이 되었습니다. 18절에서 “너희가 무엇을 하느냐”고 항의했던 그가, 한 마디 제안에 직접 그 우상들을 들고 나섭니다.
이 레위인은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됩니다. 그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조건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베들레헴을 떠난 것도 살 곳을 찾아서, 미가의 집에 들어간 것도 연봉 때문에, 이제 미가를 떠나는 것도 더 큰 자리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0:12의 “삯군”입니다. “삯군은 목자가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그에게 미가는 섬겨야 할 영혼이 아니라 고용주였고, 더 좋은 고용주가 나타나자 그를 버렸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마음이 기뻐하다 — 원문 ‘바이타브 레브’, ‘마음이 좋았다’. 16:25 블레셋 사람들이 “마음이 즐거울 때에”(토브 립밤), 19:6, 9, 22 레위인과 장인.
함께 읽을 말씀
요 10:12-13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딤후 4:10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잠 25:19환난날에 진실치 못한 자를 의뢰하는 의뢰는 부러진 이와 위골된 발 같으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어느 것이 더 나으냐는 질문
단 지파는 레위인에게 물었습니다.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과 한 지파의 제사장, 어느 것이 낫겠느냐.” 레위인은 기뻐하며 우상을 챙겨 따라갔습니다. 그는 자기를 아들처럼 대해 준 미가를 버렸습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더 큰 자리, 더 좋은 조건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질문 앞에 섭니다. 더 큰 교회, 더 높은 자리, 더 많은 사람, 더 좋은 조건.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질문이 ‘어느 것이 더 나으냐’가 아니라 ‘어느 것이 하나님의 뜻이냐’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섬기는 사람들을 고용주나 발판으로 보지 말고, 하나님이 맡기신 영혼으로 보아야 합니다.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8:21–26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 빼앗긴 신들
단 지파는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세우고 떠납니다. 뒤에서 공격을 받을 것을 대비한 것입니다. 미가와 이웃들이 모여서 그들을 쫓아갑니다.
단 자손이 돌아서서 “무슨 일로 이렇게 모여 왔느냐” 하자, 미가는 울부짖습니다.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러나 단 자손은 오히려 위협합니다. 조용히 하지 않으면 네 생명과 가족의 생명을 잃을 것이다. 미가는 그들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21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그들이 돌이켜서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하더니
직역 그들은 돌아서서 어린아이들과 가축과 귀중품을 앞세우고 떠났다.
단 자손은 어린 아이들과 가축과 물품을 앞에 두고 진행합니다. 보통 행렬에서는 전사들이 앞장서고 약한 사람들이 뒤를 따릅니다. 그런데 그들은 반대로 했습니다. 왜일까요? 뒤에서 공격받을 것을 예상했기 때문입니다. 미가와 그의 이웃들이 쫓아올 것을 알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한 일이 도둑질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이 장면은 창세기 33:1–2에서 야곱이 에서를 만날 때 가족을 배치한 모습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제 단 지파 전체가 이주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전쟁 원정이 아니라 온 가족이 함께 새 땅을 향해 가는 행렬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물품케부다 — ‘무거운 것, 귀중품, 재산’.
함께 읽을 말씀
창 33:2여종과 그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22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난 때에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미쳐서는
직역 그들이 미가의 집에서 멀리 떠났을 때, 미가의 집 근처 집들에 사는 사람들이 소집되어 단 자손을 따라잡았다.
단 자손이 미가의 집을 멀리 떠났을 때, 미가의 이웃집 사람들이 모여서 단 자손을 따라 잡습니다. 미가 혼자가 아니라 이웃들도 함께 왔습니다. 이것은 미가의 신당이 그의 집안만이 아니라 마을 사람들도 함께 이용하던 마을 성소였음을 보여 줍니다. 그들에게도 그 신상은 중요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31:23칠일 길을 쫓아가 길르앗산에서 그에게 미쳤더니
23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단 자손을 부르는지라 그들이 낯을 돌이켜 미가에게 이르되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직역 그들이 단 자손을 불렀다. 단 자손이 얼굴을 돌려 미가에게 말하였다. “네게 무슨 일이 있기에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 왔느냐?”
미가 일행이 단 자손을 부르자, 그들은 돌아서서 말합니다. “네가 무슨 일로 이같이 모아가지고 왔느냐.” 뻔뻔한 질문입니다. 그들은 방금 미가의 신당을 털었습니다. 그런데 모르는 척하며 오히려 미가를 문제 삼습니다. 왜 이렇게 사람들을 모아서 왔느냐? 강자는 자기가 한 일을 모르는 척하고, 약자의 항의를 문제로 만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무슨 일로 — 원문 ‘마 레카’, ‘네게 무엇이냐’. 3절에서 정탐꾼들이 레위인에게 “여기서 무엇을 얻었느냐”(마 레카 포)고 물었던 것과 같은 표현.
함께 읽을 말씀
창 31:26라반이 야곱에게 이르되 네가 내게 알리지 아니하고 가만히 내 딸들을 칼로 잡은 자 같이 끌고 갔으니 어찌 이같이 하였느냐
24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미가가 가로되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너희가 어찌하여 나더러 무슨 일이냐 하느냐
직역 미가가 말하였다. “내가 만든 내 신들과 제사장을 너희가 가져갔다. 그러니 내게 무엇이 더 남아 있느냐? 그런데 너희는 어찌하여 내게 ‘무슨 일이냐’고 말하느냐?”
미가의 절규.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이 말에는 깊은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나의 지은 신들.” 미가는 스스로 고백합니다. 그 신들은 ‘내가 만든’ 것이었다. 사람이 만든 신. 그런데 그 신들이 빼앗겼습니다. 자기를 지키지도 못하는 신, 도둑맞을 수 있는 신. 그런 신이 어떻게 미가를 지켜 줄 수 있겠습니까? 이사야 46:1–2는 바벨론의 신들을 조롱합니다. “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도다 …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갔느니라.” 신이 사람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신을 지켜야 했습니다. 그리고 지키지 못했습니다.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17:13에서 미가는 “이제 여호와께서 내게 복 주실 줄을 아노라”고 확신했습니다. 신상, 신당, 에봇, 드라빔, 레위인 제사장.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가 복의 보증이라고 믿었던 것들이 오히려 빼앗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고 절규합니다.
이것은 사람이 만든 신에게 의지한 사람의 결말입니다. 그러나 미가에게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을까요? 실로에는 여전히 하나님의 집이 있었습니다(31절). 참 하나님은 빼앗길 수 없으신 분입니다. 미가가 잃은 것은 자기가 만든 신이었지, 참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어쩌면 이 상실은 그가 참 하나님께 돌아갈 기회였을지도 모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나의 지은 신들 — 원문 ‘엘로하이 아쉐르 아시티’, ‘내가 만든 나의 신들’. 사 44:17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렘 2:28 “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함께 읽을 말씀
사 46:1-2그들의 우상들은 짐승과 가축에게 실리웠으니… 그 짐을 구하여 내지 못하고 자기도 잡혀갔느니라
렘 2:28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시 115:8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
마 6:19-20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는 좀과 동록이 해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하느니라
25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 노한 자들이 네 생명과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단 자손이 그에게 이르되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하고
직역 단 자손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 목소리가 우리 가운데 들리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성난 사람들이 너희를 덮쳐서, 네가 네 목숨과 네 집안의 목숨을 잃게 될 것이다.”
단 자손은 미가의 절규에 위협으로 대답합니다. “네 목소리를 우리에게 들리게 말라.” 19절에서 레위인에게 “잠잠하라”고 했듯이, 미가에게도 입을 다물라고 합니다.
그리고 노골적으로 위협합니다. “노한 자들이 너희를 쳐서 네 생명과 네 가족의 생명을 잃게 할까 하노라.” ‘노한 자들’은 원문으로 ‘영혼이 쓰라린 사람들’(마레 네페쉬)입니다. 사무엘하 17:8에서 다윗의 용사들을 “들에 있는 곰이 새끼를 빼앗긴 것 같이 격분하였고”라고 할 때 같은 표현이 쓰였습니다. 우리 사람들 중에 성질 급한 자들이 있다. 더 따라오면 너와 네 가족이 죽을 것이다.
도둑이 피해자를 위협합니다. 이것이 왕이 없는 시대의 모습입니다. 정의가 아니라 힘이 옳고 그름을 결정합니다. 강한 자가 약한 자의 것을 빼앗고, 항의하면 죽이겠다고 위협합니다.
전 4:1학대 받는 자가 눈물을 흘리되 저희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저희를 학대하는 자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26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 미가가 그들이 강한 것을 보고 집으로 돌아갔더라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직역 단 자손은 자기들의 길을 갔다. 미가는 그들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아서서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단 자손이 자기 길을 행한지라.” 그들은 아무 일 없다는 듯이 가던 길을 갑니다. “미가가 단 자손이 자기보다 강한 것을 보고 돌이켜 집으로 돌아갔더라.”
미가는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그가 만든 신들도, 그가 고용한 제사장도 없이. 힘이 정의를 이겼습니다. 이것이 사사기 마지막 부분의 세계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아니라 힘의 법이 지배하는 세계.
그런데 이 장면에는 묘한 정의도 있습니다. 미가는 어머니의 은을 훔쳤습니다(17:2). 그리고 그 은으로 만든 신상이 이제 단 자손에게 도둑맞았습니다. 훔친 것으로 시작한 것이 도둑맞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그리고 미가가 돈으로 산 제사장은 더 많은 돈과 지위에 팔려 갔습니다. 돈으로 산 것은 돈으로 빼앗길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자기 길 — 원문 ‘레다르캄’, ‘그들의 길로’. 5절 “우리의 행하는 길”, 6절 “너희의 행하는 길은 여호와 앞에 있느니라”.
함께 읽을 말씀
잠 1:19무릇 이를 탐하는 자의 길은 다 이러하여 자기의 생명을 잃게 하느니라
갈 6:7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빼앗길 수 없는 것
미가는 울부짖었습니다. “나의 지은 신들과 제사장을 취하여 갔으니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복의 보증이라고 믿었던 모든 것이 하루아침에 빼앗겼습니다. 그가 만든 신들은 자기 자신도 지키지 못했습니다. 돈으로 산 제사장은 더 많은 돈에 팔려 갔습니다.
우리가 의지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재산, 지위, 사람, 종교적 형식. 그것들은 모두 빼앗길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잃으면 우리도 “내게 남은 것이 무엇이냐”고 절규하게 됩니다. 그러나 참 하나님은 빼앗길 수 없으신 분입니다. 우리가 만든 신이 아니라 우리를 만드신 하나님. 그분을 의지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잃어도 모든 것을 가진 사람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고후 6:10).
18:27–31실로에 하나님의 집이 있을 동안에 — 북쪽 끝에 세운 우상
단 자손은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칼로 치고 성읍을 불사릅니다.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습니다. 단 자손은 성읍을 다시 세우고 조상의 이름을 따라 ‘단’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그들은 미가에게서 훔친 신상을 세웁니다. 그때 사사기 기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힙니다. 그 제사장은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이었다. 그의 자손은 이스라엘이 포로로 잡혀가는 날까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하나님의 집은 실로에 있었지만, 단 지파는 북쪽 끝에 자기들의 우상 성소를 세웠습니다.
27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칼날로 치며 불로 성읍을 사르되
단 자손이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르되
직역 그들은 미가가 만든 것과 그의 제사장을 가지고 라이스에 이르러, 평온하고 안심하고 있는 백성에게 가서 그들을 칼날로 치고 그 성읍을 불로 태웠다.
단 자손은 미가의 지은 것과 그 제사장을 취하고 라이스에 이릅니다. 훔친 우상과 배신한 제사장을 데리고. 그리고 그곳에서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불로 그 성읍을 사릅니다.
‘칼날로 치다’, ‘불로 사르다’는 여호수아서의 정복 전쟁에서 쓰인 표현입니다(수 6:21, 24 여리고, 8:24, 28 아이, 11:11 하솔). 하나님이 명하신 거룩한 전쟁(헤렘)의 언어입니다. 그런데 단 지파의 전쟁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라이스 사람들은 이스라엘을 위협한 원수가 아니었고, 하나님이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도 아니었습니다. 단 지파는 거룩한 전쟁의 형식을 흉내 냈지만, 그것은 단지 평화로운 사람들을 학살하고 땅을 빼앗은 것이었습니다.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 사사기 기자는 이 표현을 반복합니다(7, 10, 27절). 그들은 아무 잘못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평화롭게 살고 있었을 뿐입니다. 이 반복은 단 지파의 행동이 얼마나 부당했는지를 강조합니다.
수 11:11그 가운데 모든 사람을 칼날로 쳐서 진멸하여 호흡이 있는 자는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고 또 불로
삿 18:7거기 있는 백성을 본즉 염려 없이 거하여 시돈 사람 같이 한가하고 평안하니
잠 3:29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
28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그 성읍이 베드르홉 가까운 골짜기에 있어서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직역 그들을 건져 줄 자가 없었다. 그 성읍은 시돈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고 아무와도 교류가 없었다. 그 성읍은 벧르홉 근처 골짜기에 있었다. 단 자손이 그 성읍을 다시 세우고 거기 살았다.
“그들을 구원할 자가 없었으니.” 원문은 ‘건질 자가 없었다’(엔 마칠)입니다. 이 표현은 사사기에서 의미심장합니다. 이스라엘이 원수에게 억압당할 때, 하나님은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3:9, 15). 그런데 이제 이스라엘이 억압하는 자가 되었고, 그들에게 억압당하는 이방인에게는 구원자가 없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사람들처럼 행동합니다.
그 성읍이 고립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시돈과 상거가 멀고 상종하는 사람도 없음이었더라.” 7절의 정탐 보고가 정확했습니다. 도와줄 동맹이 없었습니다.
“단 자손이 성읍을 중건하고 거기 거하며.” 단 지파는 마침내 정착할 땅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땅이 아니라 그들이 빼앗은 땅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건질 자가 없다 — 원문 ‘엔 마칠’. 신 28:29, 31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시 7:2, 50:22, 사 5:29.
민 13:21이에 그들이 올라가서 땅을 탐지하되 신 광야에서부터 하맛 어귀 르홉에 이르렀고
29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이스라엘의 소생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직역 그들은 그 성읍의 이름을 이스라엘에게서 태어난 그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단이라 하였다. 그러나 그 성읍의 원래 이름은 라이스였다.
단 자손은 성읍의 이름을 바꿉니다. “그 조상 단의 이름을 따라 그 성읍을 단이라 하니라.” 단은 야곱의 다섯째 아들로, 라헬의 여종 빌하가 낳았습니다(창 30:6). 그 이름은 ‘재판하다’(딘)에서 왔습니다. 라헬이 “하나님이 나의 억울함을 푸시고(판단하시고)”라고 하며 지은 이름입니다.
이제부터 ‘단’은 이스라엘의 북쪽 끝을 가리키는 이름이 됩니다. ‘단에서 브엘세바까지’(20:1, 삼상 3:20, 삼하 17:11)는 이스라엘 전체를 뜻하는 표현이 되었습니다.
“그 성읍의 본 이름은 라이스더라.” 사사기 기자는 원래 이름을 덧붙입니다. 그 땅의 원래 주인이 있었다는 것, 이 성읍이 빼앗은 것이라는 사실을 독자가 잊지 않게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단 — ‘재판하다’(딘). 창 30:6 “라헬이 가로되 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창 49:16–17 야곱의 축복 “단은 이스라엘의 한 지파 같이 그 백성을 심판하리로다 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함께 읽을 말씀
창 30:6하나님이 내 억울함을 푸시려고 내 소리를 들으사 내게 아들을 주셨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 이름을 단이라 하였으며
창 49:17단은 길의 뱀이요 첩경의 독사리로다 말굽을 물어서 그 탄 자로 뒤로 떨어지게 하리로다
삼상 3:20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사무엘은 여호와의 선지자로 세우심을 입은 줄을 알았더라
30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이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사로잡히는 날까지
단 자손이 자기를 위하여 그 새긴 신상을 세웠고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직역 단 자손은 자기들을 위해 그 조각한 신상을 세웠다. 그리고 모세의 손자이자 게르솜의 아들인 요나단과 그의 자손이 그 땅이 사로잡혀 가는 날까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었다.
단 자손은 그 새긴 신상을 세웠습니다. 미가의 집에서 훔쳐 온 그 신상이 이제 단 지파의 공식 성소에 세워졌습니다. 한 개인 집안의 우상이 한 지파 전체의 우상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사사기 기자는 충격적인 사실을 밝힙니다. “모세의 손자 게르손의 아들 요나단과 그 자손은 단 지파의 제사장이 되어.” 17–18장 내내 ‘레위 소년’, ‘레위인’이라고만 불리던 그 사람의 정체가 마지막에 드러납니다. 그는 모세의 손자였습니다. 출애굽기 2:22에서 모세는 미디안에서 아들을 낳고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다” 하며 게르솜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그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이 이 레위인이었습니다.
모세.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십계명을 받은 사람.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라는 계명을 직접 돌판에 받아 온 사람. 금송아지를 보고 분노하여 돌판을 깨뜨린 사람. 그 모세의 손자가 새긴 우상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 단 두 세대 만에. 이것이 사사기 시대의 영적 타락이 얼마나 깊고 빨랐는지를 보여 줍니다. 2:10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위대한 신앙의 조상이 있어도, 신앙은 자동으로 유전되지 않습니다.
흥미롭게도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은 ‘모세’(משה)라는 이름 사이에 작은 글자 ‘눈’(נ)을 위에 매달아 ‘므낫세’(מנשה)로 읽히게 했습니다. 유대 서기관들이 위대한 모세의 이름이 우상 숭배와 연결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여 이렇게 한 것으로 봅니다. 개역성경은 원래 읽기인 ‘모세’를 따랐습니다.
“이 백성이 사로잡히는 날까지 이르렀더라.” 이 우상 숭배는 수백 년 동안 이어졌습니다. 훗날 여로보암은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고(왕상 12:29), 그것은 기원전 8세기 앗수르가 북이스라엘을 포로로 잡아갈 때까지 계속되었습니다(왕하 15:29). 한 사람의 신당에서 시작된 우상이 한 지파를 거쳐 나라 전체를 무너뜨렸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모세/므낫세 — 마소라 본문은 ‘므낫세’(מְנַשֶּׁה)로 읽게 했지만, 자음 본문에 ‘눈’(נ)이 위에 작게 덧붙여져 있어 원래 ‘모세’(מֹשֶׁה)였음을 보여 줍니다. 70인역 일부 사본과 불가타는 ‘모세’로 읽습니다. 바바 바트라 109b는 이것을 “그가 므낫세(왕)처럼 행동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게르손 — 출 2:22, 18:3 모세의 아들 ‘게르솜’. 대상 23:15–16 “모세의 아들은 게르솜과 엘리에셀이라 게르솜의 아들 중에 스브엘이 족장이 되었고”.
사로잡히는 날 — 원문 ‘아드 욤 겔로트 하아레츠’, ‘그 땅이 포로로 잡혀가는 날까지’. 왕하 15:29 앗수르 디글랏빌레셀이 북쪽 지역을 정복함(기원전 732년). 또는 31절과 연결하여 실로가 파괴된 때(삼상 4장)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고고학 — 텔 단에서 철기 시대의 큰 성소(높은 곳, ‘바마’)와 제단이 발굴되었습니다. 여로보암의 금송아지 성소로 봅니다. 또한 ‘다윗의 집’이 언급된 기원전 9세기 아람어 비문(텔 단 비문)도 이곳에서 발견되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2:22그가 아들을 낳으매 모세가 그 이름을 게르솜이라 하여 가로되 내가 타국에서 객이 되었음이라 하였더라
출 20:4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왕상 12:29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
삿 2:10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왕하 15:29앗수르 왕 디글랏 빌레셀이 와서… 길르앗과 갈릴리와 납달리 온 땅을 취하고 그 백성을 사로잡아 앗수르로 옮겼더라
31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 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직역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모든 날 동안, 단 자손은 미가가 만든 조각한 신상을 자기들을 위해 두었다.
18장은 이 문장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을 동안에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이 단 자손에게 있었더라.”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여호수아 18:1에서 이스라엘은 실로에 회막을 세웠습니다. 그곳에 언약궤가 있었고, 참된 제사장이 있었고, 하나님이 정하신 예배가 있었습니다. 참된 ‘하나님의 집’(베트 하엘로힘)은 실로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17:5에서 미가는 자기 집에 ‘신당’(베트 엘로힘)을 차렸고, 이제 단 지파는 그 우상을 가져와 북쪽 끝에 자기들의 성소를 세웠습니다.
단에서 실로까지는 약 130km였습니다. 단 지파가 하나님께 예배하려면 그 먼 길을 가야 했습니다. 그들은 대신 가까운 곳에 자기들의 성소를 만들었습니다. 편리한 종교였습니다. 훗날 여로보암도 같은 논리로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웠습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왕상 12:28).
“미가의 지은바 새긴 신상.” 사사기 기자는 끝까지 이것이 ‘미가가 만든’ 것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사람이 만든 신.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집이 실로에 있는 동안 내내 단 지파에게 있었습니다. 참된 예배가 가능했는데도, 그들은 거짓 예배를 선택했습니다. 이것이 17–18장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계셨고, 하나님의 집은 여전히 열려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가 만든 신을 섬겼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실로 — 수 18:1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삿 21:19, 삼상 1–4장. 삼상 4장에서 블레셋이 언약궤를 빼앗고, 시 78:60, 렘 7:12–14는 하나님이 실로를 버리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집 — 원문 ‘베트 하엘로힘’. 17:5 미가의 ‘신당’(베트 엘로힘)과 같은 말입니다. 관사의 차이(하-)로 참된 하나님의 집과 미가의 신당을 구별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18:1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실로에 모여서 거기 회막을 세웠으니
삿 17:5이 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왕상 12:28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렘 7:12너희는 내가 처음으로 내 이름을 둔 처소 실로에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의 악을 인하여 내가 어떻게 행한 것을 보라
요 4:23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집이 있는데도
단 지파는 평화롭게 사는 사람들을 학살하고 땅을 빼앗았습니다. 그리고 훔친 우상을 세우고, 모세의 손자를 제사장으로 삼았습니다. 그 우상 숭배는 수백 년 동안 이어져 결국 나라가 망하는 날까지 계속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집은 실로에 있었지만, 그들은 가깝고 편한 자기들의 성소를 택했습니다.
모세의 손자가 우상의 제사장이 되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깊은 경고를 줍니다. 신앙은 유전되지 않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가문에서 태어났다고 해서, 교회에서 자랐다고 해서, 신앙이 자동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각 세대가, 각 사람이 하나님을 직접 만나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형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전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집은 지금도 열려 있습니다. 편한 우상이 아니라 참된 하나님께 나아갑시다.
Journey · 흐름
단 지파의 이주 — 하나님 없는 정복
여호수아의 정복과 단 지파의 정복 비교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단 지파의 라이스 정복
땅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땅
정탐
모세·여호수아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보냄
지파가 스스로 새 땅을 찾아 보냄
하나님께 물음
제사장이 우림으로 물음(민 27:21)
고용된 레위인이 묻지도 않고 “평안히 가라”
상대
하나님의 심판을 받을 가나안 족속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
예배
실로의 회막
훔친 우상, 모세의 손자 제사장
결과
약속의 땅의 기업
나라가 망할 때까지 이어진 우상 숭배
레위인 요나단의 행보
동기
베들레헴을 떠남 (17:8)
“거할 곳을 찾고자 하여”
미가의 제사장이 됨 (17:10–11)
은 열과 의복과 식물
정탐꾼에게 “평안히 가라”(18:6)
손님이 듣고 싶은 말
단 지파를 따라감 (18:19–20)
“한 지파의 제사장이 되는 것이 낫겠느냐”
단의 우상 성소 제사장 (18:30)
모세의 손자가 새긴 우상의 제사장으로
Glossary · 단어 사전
18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기업基業 · 1절
하나님이 분배하신 상속 땅.
탐지探知 · 2, 14, 17절
정탐함, 살펴 알아냄.
유숙留宿 · 2절
머물러 잠.
고빙雇聘 · 4절
고용함.
형통亨通 · 5절
일이 잘 풀림, 성공.
라이스7, 14, 27, 29절
갈릴리 북쪽 성읍. 후에 ‘단’.
상거相距 · 7, 28절
서로 떨어진 거리.
상종相從 · 7, 28절
서로 사귐, 교류.
기럇여아림12절
‘숲의 성읍’. 예루살렘 서쪽.
마하네단12절
‘단의 진영’.
문안問安 · 15절
안부를 물음.
병기兵器 · 11, 16–17절
무기.
물품物品 · 21절
귀중품, 재산.
중건重建 · 28절
다시 세움.
베드르홉28절
‘르홉의 집’. 라이스 근처.
사로잡히다30절
포로로 끌려가다.
실로31절
회막이 있던 에브라임 산지의 성읍.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단 지파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위해 싸우는 대신 쉬운 땅을 찾았습니다(1–2절). 나는 하나님이 맡기신 자리에서 어려움을 피해 다른 곳을 찾고 있지는 않습니까?
레위인은 하나님께 묻지도 않고 “평안히 가라”고 했습니다(6절). 나는 하나님의 뜻을 구합니까, 내 계획에 대한 확인을 구합니까?
단 지파는 평화로운 사람들의 땅에 “하나님이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10절). 나는 내 욕심에 하나님의 이름을 붙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한 사람의 집의 제사장과 한 지파의 제사장, 어느 것이 낫겠느냐”(19절). 나는 중요한 결정 앞에서 무엇을 기준으로 선택합니까?
레위인은 자기를 아들처럼 대해 준 미가를 기뻐하며 떠났습니다(20절). 나는 내가 섬기는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내게 오히려 있는 것이 무엇이냐”(24절). 만약 내가 의지하는 것들이 모두 빼앗긴다면 나에게 무엇이 남습니까?
모세의 손자가 우상의 제사장이 되었습니다(30절). 나는 다음 세대에게 신앙의 형식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을 어떻게 전하고 있습니까?
단 지파는 실로의 하나님의 집 대신 가까운 우상 성소를 택했습니다(31절). 내 삶에서 참된 예배 대신 편한 것을 택하고 있는 부분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