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세부 강해 · Romans
7

율법과 죄,
그리고 속사람의 싸움

1절부터 25절까지 — 원문의 결, 구약의 배경, 바울의 논리를 따라 한 절씩 읽습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ROMANS 7:24–25
Introduction · 들어가며

7장 들어가며

율법은 선하다. 그러나 율법만으로는 죄를 이길 수 없다.

로마서 7장은 혼자 떨어진 장이 아닙니다. 바울은 6장 끝에서 아주 대담한 말을 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6:14). 유대인 성도가 이 말을 들었다면 깜짝 놀랐을 겁니다. "법 아래 있지 않다고?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주신 그 거룩한 율법이 이제 상관없다는 말인가?"

그보다 앞서 5:20에서도 바울은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로되"고 했습니다. 이렇게만 들으면 율법이 마치 죄와 한편인 것처럼 들립니다. 그래서 7장은 두 가지 질문에 답합니다. 첫째, 성도가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정확히 무슨 뜻인가?(1-6절) 둘째, 그렇다면 율법은 나쁜 것인가?(7-25절) 바울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선합니다. 문제는 율법이 아니라 내 안에 사는 죄이고, 율법은 그 죄를 이길 힘을 주지 못합니다. 그 힘은 8장에서 소개되는 성령께로부터 옵니다.

그래서 7장은 6장과 8장 사이에 놓인 '다리'입니다. 6장이 "죄에 대하여 죽었다"를, 7장이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를 말하고, 8장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 그 결론을 노래합니다.

7:5 — 과거, 육신에 있을 때율법이 죄의 정욕을 자극해 사망의 열매를 맺었다
→
7:7–25에서 자세히 풀어 줌율법과 죄, 원함과 행함 사이에서 무너지는 '나'
7:6 — 이제, 영의 새로운 것으로율법에서 벗어나 성령을 따라 섬긴다
→
8:1–17에서 자세히 풀어 줌생명의 성령의 법, 하나님의 자녀 된 삶

많은 주석가들이 주목하는 구조입니다. 5절과 6절이 일종의 '목차'처럼 이어지는 두 단락을 미리 알려 줍니다. 이 구조를 머리에 두고 읽으면 7장 후반부의 탄식과 8장의 찬송이 왜 나란히 놓였는지가 보입니다.

누구에게

로마의 유대인·이방인 성도

로마 교회에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섞여 있었습니다. 1절의 "법 아는 자들"은 특히 구약 율법에 익숙한 유대인 성도, 그리고 회당에서 구약을 배운 이방인들을 염두에 둔 말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가상의 질문과 대답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7절)는 반대자의 질문을 미리 꺼내 놓고 답하는 당시의 대화식 논증법(디아트리베)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품을 오해를 먼저 짚고 넘어갑니다.

핵심 단어

법 · 죄 · 나 · 육신

7장에는 '법(율법)'이 20번 넘게, '나'가 수십 번 나옵니다. 반면 8장에 스무 번 넘게 나오는 '영(성령)'이라는 명사는 7:7-25에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14절 "신령한"이 율법을 꾸미는 말로 한 번 나올 뿐입니다). 이 사실 자체가 7장 이해의 중요한 열쇠입니다.

Reading Guide

이 강해 읽는 법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을 실었습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부분은 노트에서 따로 짚었습니다.

각 절마다 ① 본문, ② 원문 직역(우리말 번역에서 잘 안 보이는 뉘앙스), ③ 말씀 풀이(왜 이 말을 하는지, 앞뒤 흐름), 그리고 접혀 있는 ④ 원어·번역 노트와 ⑤ 함께 읽을 말씀이 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면 되고, 위쪽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도 있습니다.

번역상 꼭 짚어 둘 곳무엇이 문제인가
3절 "음부"淫婦, 곧 '간음한 여인'입니다. 몸의 부위를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개역개정』은 "음녀"로 바꿨습니다.
6절 "의문"儀文, 곧 '글자로 적힌 규정'(헬라어 그람마, 문자). 『개역개정』은 "율법 조문"으로 풀었습니다.
9절 "법을 깨닫지 못할 때"원문은 "내가 한때 율법 없이 살았다"입니다. '깨닫다'는 번역자의 해석이 들어간 표현입니다.
15절 "알지 못하노니"지식이 없다는 뜻보다 "내가 하는 짓을 나도 납득할 수(인정할 수) 없다"에 가깝습니다.
21절 "한 법"모세의 율법이라기보다 "늘 이렇게 되더라" 하는 '원리·법칙'으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24절 "오호라"원문에는 감탄사가 따로 없습니다. "비참한 사람, 나!"라는 짧은 외침을 우리말 맛으로 살린 것입니다.
25절 "감사하리로다"미래형이 아닙니다. 원문은 "하나님께 감사!"라는 즉각적인 외침입니다.
본문 안의 색상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7:1–6결혼 비유 — 율법에 대하여 죽다

6장에서 바울은 '종과 주인'의 그림으로 "죄에 대하여 죽었다"를 설명했습니다. 이제 7장에서는 '아내와 남편'의 그림으로 "율법에 대하여 죽었다"를 설명합니다. 둘 다 고대 사회에서 법적으로 묶여 있는 관계였고, 그 묶임은 죽음으로만 풀릴 수 있었습니다.

핵심 원리는 하나입니다. 법은 산 사람에게만 효력이 있다. 그러므로 죽음은 법적 관계를 끝낸다. 성도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므로 옛 주인(율법)과의 관계가 끝났고, 이제 부활하신 그리스도께 새로 속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법은 살아 있는 동안만 다스린다

형제들아 내가 법 아는 자들에게 말하노니 너희는 그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직역 혹시 너희가 모르느냐, 형제들아 — 나는 법을 아는 이들에게 말하고 있다 — 법은 사람이 살아 있는 그 시간 동안만 그 사람의 주인 노릇을 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는 6:3("알지 못하느냐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과 같은 말투입니다. "여러분도 이미 아는 상식이지요?" 하고 공감을 끌어내며 시작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새로운 교리를 들이미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인정하는 법의 기본 원리에서 출발합니다.

눈여겨볼 단어는 "주관하다"입니다. 헬라어 퀴리에우오는 '주인(퀴리오스)이 되다'라는 뜻으로, 바로 앞에서 두 번 나왔습니다.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6:9),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6:14). 바울은 의도적으로 같은 동사를 써서, 율법 역시 사망·죄와 나란히 사람 위에 '주인'처럼 군림하는 세력이 될 수 있다고 암시합니다. 율법이 나쁘다는 말이 아니라, 율법 아래 있는 사람은 그 요구에 '매여' 산다는 말입니다.

"살 동안만"이 이 단락의 열쇠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어떤 법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유대 랍비 문헌에도 시편 88:5("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직역하면 '죽은 자들 가운데 자유로운')를 근거로 "사람이 죽으면 율법과 계명에서 자유롭게 된다"고 가르친 기록이 전해집니다. 바울은 유대인 청중이 고개를 끄덕일 원리를 붙잡고 시작하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형제들아 아델포이 — 로마서에서 1:13 이후 처음 다시 나오는 호칭입니다. 어려운 논증에 들어가기 전, 따뜻하게 부르며 마음을 엽니다.
  • 법 노모스 — 1절에는 정관사 없이 "법"이라고만 해서 '법 일반'(로마법 포함)으로 볼 수도 있지만, 2절의 결혼법과 4절의 "율법"으로 이어지므로 대부분 모세 율법을 염두에 둔 것으로 봅니다. 어느 쪽이든 '죽음이 법적 관계를 끝낸다'는 원리는 같습니다.
  • 주관하다 主管 — '주인이 되어 맡아 다스리다'. 『개역개정』도 같은 단어를 씁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6:9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 같은 동사 '주인 노릇하다'
  • 롬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 7장 전체를 낳은 문장
  • 시 88:5 사망자 중에 던지운 바 되었으며 — 랍비들이 '죽은 자는 계명에서 자유롭다'는 근거로 삼은 구절
2결혼법: 남편이 죽으면 매인 법에서 풀린다

남편 있는 여인이 그 남편 생전에는 법으로 그에게 매인 바 되나 만일 그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

직역 남편 아래 있는 여자는 살아 있는 남편에게 법으로 묶여 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여자는 '남편에 관한 법'에서 풀려난다(그 법이 그 여자에게 효력을 잃는다).

바울은 법의 원리를 누구나 아는 결혼으로 예를 듭니다. 구약 율법에서 아내는 남편이 살아 있는 한 그에게 매여 있었습니다(유대 사회에서는 남편만 이혼증서를 줄 수 있었습니다, 신 24:1).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상황은 완전히 달라집니다. 아내가 무엇을 잘해서가 아니라 죽음이라는 사건 하나가 그 관계를 끝내 버립니다.

"남편의 법"이라는 표현이 재미있습니다. 결혼법 전체가 아니라 '그 여자를 그 남편에게 묶어 두는 법 조항'을 가리킵니다. 남편이 죽으면 그 조항은 그 여자에게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집니다.

"벗어나다"로 번역된 카타르게오는 '작동을 멈추게 하다, 무효로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6:6 "죄의 몸이 멸하여"와 7:6 "율법에서 벗어났으니"에 똑같이 쓰였습니다. 바울은 결혼 비유의 단어를 그대로 성도의 실제 상황에 다시 쓰려고 미리 깔아 두고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남편 있는 여인 휘판드로스 귀네 — '남자 아래 있는 여자'. 당시 아내의 법적 지위를 그대로 보여 주는 말입니다. 바울이 이 제도를 이상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아는 현실을 예로 든 것입니다.
  • 매인 바 되나 데데타이 — 완료형이어서 '한 번 묶인 뒤 계속 묶여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고전 7: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에도 같은 동사가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7:39 아내는 그 남편이 살 동안에 매여 있다가 남편이 죽으면 자유하여 자기 뜻대로 시집갈 것이나 주 안에서만 할 것이니라 — 같은 원리를 다른 맥락에서
  • 신 24:1-2 이혼증서와 재혼 규정 — 유대 결혼법의 배경
  • 롬 6:6 죄의 몸이 멸하여 — '효력을 잃다(카타르게오)'의 같은 동사
3같은 행동, 다른 이름 — 죽음이 신분을 바꾼다

그러므로 만일 그 남편 생전에 다른 남자에게 가면 음부라 이르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자유케 되나니 다른 남자에게 갈지라도 음부가 되지 아니하느니라

직역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 다른 남자의 것이 되면 그 여자는 간음한 여자라고 불릴 것이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여자는 그 법에서 자유롭다. 그래서 다른 남자의 것이 되어도 간음한 여자가 아니다.

3절은 2절을 뒤집어 다시 확인합니다. 똑같은 여자가 똑같이 '다른 남자에게 가는' 행동을 하는데, 남편이 살아 있으면 간음이고 남편이 죽었으면 정당한 재혼입니다. 행동은 같은데 법적 이름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무엇이 그 차이를 만들었습니까? 오직 '죽음'입니다.

이것이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의 뼈대입니다. 율법에 묶인 채로 그리스도께 가려고 하면 그것은 일종의 '이중 결혼'입니다. 율법을 붙들고 그리스도도 붙드는 것, 율법을 지켜서 의로워지면서 동시에 은혜로 구원받으려는 것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옛 관계가 '죽음'으로 정리되어야 새 관계가 정당해집니다.

구약 독자에게 '간음'이라는 말은 단순한 윤리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선지자들은 하나님을 남편으로, 이스라엘을 아내로, 우상숭배를 간음으로 그렸습니다(호세아 1-3장, 예레미야 3장, 에스겔 16장). 바울의 결혼 비유는 그 오래된 언약의 언어 위에 서 있습니다. 이제 신자의 '남편'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음부 淫婦 — '음란할 음(淫)' + '아내 부(婦)', 곧 간음한 여인입니다. 몸의 부위를 뜻하는 '음부(陰部)'와 소리가 같아 오해하기 쉬워 『개역개정』은 "음녀"로 고쳤습니다. 헬라어는 모이칼리스, '간음한 여자'.
  • 이르되 크레마티세이 — '공식적으로 그렇게 불리게 된다'. 사적인 평판이 아니라 법이 붙이는 이름이라는 뉘앙스입니다.
  • 다른 남자에게 가면 게네타이 안드리 헤테로 — 직역 "다른 남자의 것이 되면". 구약 헬라어역(70인역) 신명기 24:2의 재혼 표현과 똑같은 말입니다. 4절에서 이 표현이 그대로 다시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24:2 그는 그 집에서 나가서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되려니와 — 바울이 쓴 재혼 표현의 원형
  • 호 2:16, 19 네가 나를 내 남편이라 일컫고…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 하나님과 백성의 결혼 언약
  • 렘 3:20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나감 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 우상숭배를 간음으로
4너희도 죽었다 — 그리고 부활하신 분께 속했다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이는 다른 이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심을 받은 자에게 가서 우리로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히게 하려 함이니라

직역 그러므로 내 형제들아,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했다. 그것은 너희가 다른 분, 곧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분의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며, 그리하여 우리가 하나님께 열매를 맺게 하려는 것이다.

이제 비유를 실제 상황에 적용합니다. 그런데 꼼꼼한 독자라면 고개를 갸웃할 대목이 있습니다. 비유에서 죽은 사람은 '남편'(율법)이었는데, 적용에서 죽은 사람은 '너희'(성도)입니다. 율법이 죽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바울은 율법이 폐기되었다고 말하지 않도록 아주 조심합니다. 율법은 여전히 거룩합니다(12절). 바뀐 것은 율법이 아니라 나의 위치입니다. (아래 '더 깊이'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어떻게 죽었습니까?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 십자가에서 찢기신 예수님의 몸을 통해서입니다. 6장에서 말한 대로 우리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그분과 함께 죽었습니다(6:3-6). 그리스도께서 율법의 저주를 받아 죽으셨을 때(갈 3:13), 그분 안에 있는 우리도 그 죽음에 함께 들어갔습니다. 그래서 동사도 수동형, "죽임을 당하였으니"입니다. 내 결심이나 노력으로 율법에서 빠져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죽음 안에서 이루신 일입니다.

죽음으로 끝이 아닙니다. 목적은 "다른 이에게 가서", 곧 새 남편이신 부활의 그리스도와 결합하는 것입니다. 3절의 "다른 남자에게 가면"과 똑같은 표현을 쓴 것이 의도적입니다. 그리고 그 새 결혼의 목적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는 것"입니다. 결혼이 자녀라는 열매를 낳듯,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거룩한 삶이라는 열매를 낳습니다(6:22, 갈 5:22-23). 율법 아래서는 맺을 수 없었던 열매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디아 투 소마토스 투 크리스투 — 여기서 '몸'은 교회(그리스도의 몸, 고전 12장)가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의 육체입니다. 골 1:22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엡 2:15 "원수 된 것 곧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자기 육체로 폐하셨으니"와 같은 생각입니다.
  • 너희 / 우리 — 앞에서는 "너희도 죽임을 당하였으니"라고 하다가 끝에는 "우리로… 열매를 맺히게"라고 합니다. 바울이 자신도 그 열매 맺는 공동체 안에 포함시키는 따뜻한 전환입니다.
  • 열매를 맺히게 카르포포레오 — 막 4:20 씨 뿌리는 비유의 "결실하는" 것과 같은 단어. 일부 학자는 결혼 비유 속에서 '자녀를 낳는 것'까지 연상시킨다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갈 2:19-20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 7:4의 가장 가까운 짝
  • 갈 3:13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 고후 11:2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 교회와 그리스도의 결혼
  • 엡 5:25-32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남편과 아내로
  • 롬 6:22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5과거: 육신에 있을 때 맺은 열매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우리로 사망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였더니

직역 우리가 육 안에 있었을 때에는, 율법을 통해 일어난 죄들의 격정들이 우리 지체들 안에서 작동하여 죽음을 위한 열매를 맺게 했다.

4절이 "하나님을 위한 열매"를 말했다면, 5절은 그 반대인 "사망을 위한 열매"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리스도와 결합하기 전, 율법에 매여 있던 시절의 열매입니다.

"육신에 있을 때"는 '몸을 가지고 살던 때'라는 뜻이 아닙니다. 성도도 여전히 몸을 가지고 삽니다. 바울에게 '육신(사르크스)'은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살아가는 옛 인간의 존재 방식, 혹은 그 시대를 가리킵니다. 8:9이 이를 확인해 줍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그러니까 5절은 분명히 회심 이전을 과거형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놀라운 말은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입니다. 율법이 죄의 충동을 잠재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깨운다는 것입니다. 이 충격적인 주장 때문에 7절에서 "그럼 율법이 죄라는 말이냐?"는 질문이 나오고, 바울은 7-13절에서 이 메커니즘을 자세히 설명합니다. 즉 5절은 7:7-25의 예고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정욕 情欲 — 우리말 '정욕'은 보통 성욕을 떠올리게 하지만, 헬라어 파테마는 '겪는 것, 격정, 끓어오르는 감정' 전반을 가리킵니다. 『새번역』은 "죄의 욕정", 다른 번역은 "죄스러운 충동"으로 옮깁니다. 분노, 시기, 탐욕 모두 포함됩니다.
  • 죄의 — 원문은 복수 "죄들의"입니다. 여러 구체적 죄로 터져 나오는 충동들이라는 뜻입니다.
  • 역사하여 役事 — '일하다, 작동하다'(에네르게오, 에너지의 어원). 죄가 몸의 지체들을 공장처럼 돌린다는 느낌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8:8-9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 롬 6:21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 약 1:15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 '사망의 열매'의 과정
6이제: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긴다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직역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를 붙잡고 있던 것에 대하여 죽어 율법에서 풀려났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의 새로움 안에서 섬기고, 문자의 낡음 안에서 섬기지 않는다.

"이제는"이라는 짧은 말에 복음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3:21에서도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시대가 바뀌었다는 선언입니다. 5절이 '그때(과거)'라면, 6절은 '지금(현재)'입니다.

율법에서 벗어났다고 해서 이제 마음대로 산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곧바로 "섬길 것이요"라고 말합니다. 이 동사(둘류오)는 '종으로 섬기다'입니다. 6장에서 "의의 종", "하나님께 종이 되어"라고 한 것과 같습니다. 섬김은 계속됩니다. 다만 섬김의 방식과 힘이 바뀌었습니다.

옛 방식은 "의문의 묵은 것", 곧 돌판과 두루마리에 '글자로 적힌 규정'을 바깥에서 들이밀며 "하라, 하지 말라" 요구하는 방식이었습니다. 글자는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려 줄 수는 있지만, 할 힘은 주지 못합니다. 새 방식은 "영의 새로운 것", 곧 성령께서 마음 안에서 새롭게 하시고 원하게 하시고 행하게 하시는 방식입니다.

이것은 바울이 갑자기 만든 생각이 아닙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께서 "새 언약"을 세우시고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렘 31:31-33)고 약속했고, 에스겔은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 36:26-27)라고 예언했습니다. 6절은 바로 그 새 언약이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이루어졌다는 선언이며, 8장 전체의 제목과 같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의문 儀文 — '법식 의(儀)' + '글월 문(文)'. '형식으로 정해 놓은 글'이라는 옛 한자어라 오늘날 성도들에게 가장 어려운 단어 중 하나입니다. '의문(疑問, 궁금증)'과 전혀 다른 말입니다. 헬라어 그람마는 '글자, 문자'로, 영어 grammar의 어원입니다. 『개역개정』은 "율법 조문", 『새번역』은 "낡은 문자"로 옮겼습니다.
  • 영 프뉴마 — 사람의 '영'인지 '성령'인지 논의가 있지만, 2:29와 고후 3:6, 그리고 바로 이어지는 8장 때문에 대부분 성령으로 읽습니다.
  • 새로운 것 / 묵은 것 카이노테스 / 팔라이오테스 — '새로움 / 낡음'. 6:4 "새 생명 가운데서"(카이노테스), 6:6 "옛 사람"(팔라이오스)과 짝을 이룹니다.
  • 벗어났으니 — 2절 "남편의 법에서 벗어나느니라"와 같은 동사(카타르게오). 비유와 현실이 같은 단어로 연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3:6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 7:6과 가장 가까운 평행 구절
  • 롬 2:29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 렘 31:31-33 새 언약 — 내 법을 그 마음에 기록하리라
  • 겔 36:26-27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 롬 8:2-4 생명의 성령의 법이…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6절이 펼쳐지는 곳
비유 속 (2-3절)실제 성도의 상황 (4-6절)
아내우리, 곧 성도
첫 남편율법 (율법 아래 매인 옛 관계)
죽음그리스도의 몸(십자가)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율법에 대하여 죽음
새 남편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리스도
새 결혼의 열매하나님을 위한 열매 (옛 결혼은 '사망을 위한 열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옛 남편에게 돌아가지 마십시오

많은 성도가 은혜로 구원받았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 신앙생활은 다시 '옛 남편' 앞에서 눈치를 보며 삽니다. "이번 주에 이만큼은 해야 하나님이 나를 받아 주실 거야." 그것은 이미 죽음으로 끝난 관계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혼인한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섬김은 의무의 목록이 아니라 사랑하는 남편과의 관계에서 흘러나오는 열매입니다. 오늘 내 신앙이 '글자'에 매여 있는지, '성령'과 동행하고 있는지 조용히 돌아보십시오.

7:7–13율법은 죄인가? — 죄가 율법을 이용한다

5절에서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라고 했으니, 듣는 사람은 당연히 묻게 됩니다. "그렇다면 율법이 죄의 원인이라는 말인가? 하나님이 주신 율법이 나쁘다는 말인가?" 바울은 두 가지 질문(7절, 13절)을 던지고 두 번 다 "그럴 수 없느니라"로 답합니다.

이 단락에서 바울은 갑자기 '나'로 말하기 시작하고, 동사는 모두 과거형입니다. 그리고 '죄'를 마치 살아 움직이는 존재처럼 그립니다. 죄는 기회를 엿보고, 살아나고, 속이고, 죽입니다. 이 장면은 에덴동산의 이야기를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9절 '더 깊이' 참고).

7율법이 죄냐? 아니다 — 율법은 죄를 알게 한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율법이 죄냐 그럴 수 없느니라 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곧 법이 탐내지 말라 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탐심을 알지 못하였으리라

직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율법이 죄인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나는 율법을 통하지 않고는 죄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율법이 "너는 욕망하지 말라"고 말하지 않았다면, 나는 욕망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는 로마서에서 바울이 반대 질문을 꺼낼 때마다 쓰는 신호입니다(3:5, 4:1, 6:1, 8:31, 9:14, 9:30). 5절에서 "율법이 죄의 정욕을 일으킨다"고 했으니 율법과 죄가 한편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오해를 정면으로 끄집어내고 "그럴 수 없느니라"로 단호히 끊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무슨 일을 합니까? 죄를 '알게' 합니다. 3:20에서 이미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죄를 만드는 공장이 아니라 죄를 비추는 거울이요, 병을 찾아내는 진단 기계입니다. 엑스레이가 암을 만들지 않지만, 엑스레이 없이는 암을 알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바울이 고른 예가 의미심장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하필 열 번째 계명 "탐내지 말라"입니다. 앞의 아홉 계명은 대체로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살인, 도둑질, 거짓 증거)을 다루지만, 열 번째 계명은 마음속을 겨냥합니다. 사람은 행동은 단속할 수 있어도 마음속 욕망은 단속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3:6에서 자신이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고 말합니다. 겉으로는 율법을 완벽하게 지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열 번째 계명 앞에서 무너졌습니다. 겉은 깨끗한데 속은 욕망으로 가득하다는 사실을 율법이 드러낸 것입니다.

또한 유대 전통에서는 '욕망(탐심)'을 모든 죄의 뿌리로 보았습니다. 하와가 선악과를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창 3:6) 것으로 본 순간부터 죄가 시작되었다고 읽었습니다. 야고보도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약 1:15)라고 말합니다. 바울이 '탐심'을 고른 것은 죄의 가장 깊은 뿌리를 건드린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그럴 수 없느니라 메 게노이토 — 직역 "그런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기를!" 로마서에 10번 나오며 바울의 가장 강한 부정입니다. 우리말로는 "천만에요!", "절대 아닙니다!"의 느낌입니다.
  • 탐내지 말라 우크 에피튀메세이스 — 출애굽기 20:17의 70인역(헬라어 구약)을 그대로 인용하되, 뒤에 이어지는 목적어("네 이웃의 집", "아내" 등)를 생략했습니다. 그래서 특정 대상을 탐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욕망 그 자체를 가리키게 됩니다.
  • 탐심 貪心 / 탐내다 — 우리말은 두 단어가 다르지만 헬라어는 같은 어근(에피튀미아 / 에피튀메오)입니다. "'욕망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다면 욕망을 몰랐을 것"이라는 말놀이가 들어 있습니다.
  • 알지 못하였으니 — 두 번 나오는 '알다'가 원문에서는 다른 동사입니다(기노스코 / 에이도). 단순한 정보가 아니라 '죄가 죄인 줄 경험으로 깨달았다'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20:17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 신 5:21 십계명의 반복 — 열 번째 계명
  • 창 3:6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 롬 3:20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 빌 3:6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로라 — 겉으로는 완벽했던 바울
  • 마 5:27-28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예수님도 율법을 마음의 문제로
8죄가 계명을 '작전 기지'로 삼았다

그러나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내 속에서 각양 탐심을 이루었나니 이는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임이니라

직역 그러나 죄가 계명을 통해 발판을 얻어서, 내 안에 온갖 욕망을 만들어 냈다. 율법이 없으면 죄는 죽은 것(잠잠한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바울은 범인을 정확히 지목합니다. 범인은 율법이 아니라 죄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5-7장에서 '죄'를 마치 살아 있는 폭군처럼 그립니다. 죄는 세상에 들어와 왕 노릇 하고(5:12, 21), 사람을 종으로 부리고(6:16-17), 삯을 줍니다(6:23). 7장에서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이 죄가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이용한다고 말합니다.

"기회"(아포르메)는 본래 군사 작전에서 '공격을 개시하는 기지, 교두보'를 뜻하는 말입니다. 적군이 우리 땅에 침투할 때 다리 하나를 점령해 거점으로 삼듯, 죄는 "하지 말라"는 계명을 발판 삼아 내 안에서 작전을 벌입니다.

이것은 우리 모두가 아는 경험입니다. "만지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있으면 오히려 만지고 싶어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어린 시절 배가 고프지도 않으면서 이웃집 배를 훔친 이야기를 합니다. 그 배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금지된 것'이었기 때문에 훔쳤다고 고백합니다. 금지가 욕망을 깨웁니다. 그런데 그 욕망을 만든 것은 금지가 아니라, 이미 내 안에 있던 죄의 반항심입니다.

"법이 없으면 죄가 죽은 것"이라는 말은 율법이 없으면 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는 늘 있었지만, 율법이 오기 전에는 잠자듯 잠잠했다는 것입니다. 5:13 "율법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와 같은 생각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기회를 타서 아포르멘 라부사 — 직역 "발판(교두보)을 잡아서". 신약에서는 바울만 쓰는 단어입니다. 고후 11:12 "기회를 찾는 자들의 그 기회를 끊으려", 갈 5:13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딤전 5:14 "대적에게 훼방할 기회를 도무지 주지 말기를" — 모두 '적에게 발판을 내주는' 그림입니다.
  • 각양 탐심 — 직역 "모든 종류의 욕망". 한 가지 계명이 수많은 욕망으로 번져 나갔다는 뜻입니다.
  • 계명 엔톨레 — '율법(노모스)'이 전체라면 '계명'은 그중 하나의 구체적 명령, 여기서는 "탐내지 말라"를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5:13 율법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 롬 4:15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 고전 15: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 같은 생각을 한 문장으로
  • 창 4:7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 성경에서 죄를 처음 '살아 있는 존재'처럼 그린 곳
9계명이 오자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었다

전에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내가 살았더니 계명이 이르매 죄는 살고 나는 죽었도다

직역 나는 한때 율법 없이 살아 있었다. 그런데 계명이 오자 죄가 되살아났고, 나는 죽었다.

7장에서 가장 신비로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율법 없이 살았던 때"는 언제일까요? 바울은 유대인으로 태어나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율법 없이 살았던 때가 있었을까요?

이 질문에 대해 크게 몇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① 바울의 어린 시절 — 유대 소년이 열세 살 무렵 '율법의 아들'로서 율법의 책임을 지기 전, 아직 계명의 무게를 몰랐던 순진한 시절. ② 아담 — 하나님께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는 계명(창 2:17)을 주시기 전의 아담. 계명이 오자 뱀(죄)이 그 계명을 기회로 삼아 하와와 아담을 속였고, 그들은 죽었습니다. ③ 이스라엘 —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기 전의 이스라엘. 율법을 받자마자 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출 32장).

특히 아담 해석이 힘을 얻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5:12-21에서 막 아담 이야기를 했고, 11절의 "죄가… 나를 속이고"는 하와가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라고 한 말과 헬라어 단어가 같습니다. 바울은 '나'라는 말 속에 아담의 이야기, 이스라엘의 이야기, 그리고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함께 겹쳐 놓았다고 보는 것이 가장 자연스럽습니다.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죄는 살고 나는 죽었도다" — 놀라운 역전입니다. 계명이 오기 전에는 '나'가 살아 있고 죄가 죽어(잠잠해) 있었는데, 계명이 오자 자리가 뒤바뀌었습니다. 죄는 깨어나 활동하고, 나는 죽었습니다. 여기서 '죽음'은 육체의 죽음이라기보다, 창세기 2:17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처럼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상태, 정죄 아래 놓인 상태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법을 깨닫지 못할 때에는 — 원문은 코리스 노무 포테, "한때 율법 없이".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의 "깨닫지 못할 때"는 '율법이 없었다'는 말을 '율법을 몰랐다'로 풀이한 번역입니다. 원문은 더 열려 있어서 위의 여러 해석이 가능합니다.
  • 살고 아나자오 — 접두어 '아나'는 '다시'. "되살아났다"가 정확합니다. 8절의 "죽은 것" 같던 죄가 계명을 만나 깨어났다는 뜻입니다. 눅 15:24 탕자 비유에서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에 쓰인 동사입니다.
  • 계명이 이르매 — "계명이 오자". 마치 사람이 도착하듯 그린 표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2:16-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인류가 받은 첫 '계명'
  • 출 32:1-8 시내산 아래 금송아지 — 율법을 받은 직후의 범죄
  • 롬 5:12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 롬 5:14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10생명을 위한 계명이 사망의 도구가 되다

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직역 그리고 생명을 위한 바로 그 계명이, 내게는 죽음을 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짧은 구절은 7장 전체의 비극을 한 문장에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은 생명이었습니다. 레위기 18:5은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고 말합니다. 신명기 30장에서 모세는 율법을 "생명과 복"이라고 부르며 "생명을 택하라"고 호소했습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이 하나님과 함께 복되게 사는 길을 알려 주는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결과는 사망이었습니다. 왜일까요? 계명이 나빠서가 아닙니다. 계명은 "이렇게 하면 산다"고 말하는데, 나에게는 그렇게 할 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도는 정확한데 다리가 부러진 사람에게는, 정확한 지도가 오히려 "너는 갈 수 없다"는 선고가 됩니다.

"되었도다"로 번역된 단어는 '발견되었다, 드러났다'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지키면 살 줄 알았는데, 막상 겪어 보니 그것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것으로 '판명되었다'는 것입니다. 열심 있는 바리새인이었던 바울의 쓰라린 고백이 느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생명에 이르게 할 / 사망에 이르게 하는 — 원문은 아주 짧게 "생명을 향한 계명 → 죽음을 향한 것"으로 대칭을 이룹니다(에이스 조엔 / 에이스 타나톤).
  • 내게 대하여 — "나에게는". 계명 자체의 성질이 아니라 '나에게 작용한 결과'를 말합니다. 바울은 율법의 본질과 그 결과를 조심스럽게 구별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레 18:5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 바울이 롬 10:5, 갈 3:12에서 직접 인용
  • 신 30:15, 19 내가 오늘날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너는 생명을 택하고
  • 겔 20:11 사람이 준행하면 그로 인하여 삶을 얻을 율례를 주며
  • 갈 3:21 만일 능히 살게 하는 율법을 주셨더면 의가 반드시 율법으로 말미암았으리라 — 율법에는 '살리는 능력'이 없다
11죄가 나를 속이고, 계명으로 나를 죽였다

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 나를 속이고 그것으로 나를 죽였는지라

직역 죄가 계명을 통해 발판을 얻어서 나를 철저히 속였고, 그것(계명)을 통해 나를 죽였다.

8절의 표현("죄가 기회를 타서 계명으로 말미암아")이 그대로 반복됩니다. 바울은 일부러 같은 말을 되풀이해서 범인이 누구인지 확실히 합니다. 이번에는 죄의 수법이 더해집니다. 속임입니다.

이 단어는 에덴동산을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하와에게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물으셨을 때, 하와는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창 3:13)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스어 구약성경에서 이 '꾀다'가 바로 11절의 '속이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3에서도 "뱀이 그 궤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라고 같은 단어를 씁니다.

뱀은 어떻게 속였습니까? 하나님의 계명을 이용했습니다.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계명을 비틀어 하나님을 인색한 분으로 보이게 하고, 금지된 것을 탐나는 것으로 만들었습니다. 죄는 지금도 똑같이 일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말씀을 이용해 "하나님은 너의 행복을 막는 분이야"라고 속삭입니다. 그리고 그 계명을 무기로 우리를 정죄하고 죽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속이고 엑사파타오 — 접두어 '엑'이 붙어 '완전히, 철저히 속이다'. 살후 2:3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고전 3:18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에도 쓰였습니다.
  • 그것으로 — '그것'은 계명입니다. 죄가 계명을 칼처럼 쥐고 나를 찔렀다는 그림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3:1-5 하나님이 참으로… 하시더냐 — 계명을 비틀어 속이는 뱀
  • 창 3:13 뱀이 나를 꾀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 고후 11:3 뱀이 그 궤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 히 3:13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12결론 ①: 율법은 거룩하고, 계명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이로 보건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직역 그러므로 율법은 거룩하다. 그리고 계명도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7절의 질문 "율법이 죄냐?"에 대한 최종 판결입니다. 율법에 대한 무죄 선고입니다. 그것도 세 개의 형용사로 완전한 무죄를 선언합니다. 거룩하다 — 하나님께로부터 왔고 하나님의 성품을 닮았다. 의롭다 — 그 요구가 공정하고 바르다. 선하다 — 사람에게 유익하고 생명을 위한 것이다.

바울은 율법을 깎아내리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시편 기자들처럼 율법을 귀하게 여겼습니다. 시편 19편은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라고 노래하고, 시편 119편은 176절 전체를 율법에 대한 사랑 고백으로 채웁니다. 바울도 같은 마음입니다. 문제는 율법에 있지 않습니다.

원문에는 작은 흔적이 하나 있습니다. "율법은 (한편으로는) 거룩하다…"라고 시작해 놓고, "다른 한편으로는"에 해당하는 짝이 나오지 않습니다. 바울이 "그러나 죄는…"이라고 말하려다 마음이 급해져서 바로 13절의 질문으로 넘어간 듯한 흔적입니다. 편지를 받아쓰게 하던 바울의 열정이 느껴지는 대목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율법 / 계명 — '율법(노모스)'은 하나님이 주신 토라 전체, '계명(엔톨레)'은 그 안의 개별 명령, 여기서는 특히 "탐내지 말라". 전체도 거룩하고, 나를 정죄한 그 한 계명도 거룩하다는 것입니다.
  • 이로 보건대 호스테 — "그러므로, 그래서 결론적으로". 7-11절의 결론을 내리는 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19:7-8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시키며… 여호와의 교훈은 정직하여 마음을 기쁘게 하고
  • 시 119: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 신 4:8 오늘날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 딤전 1:8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법 있게만 쓰면 선한 것인 줄 우리는 아노라
  •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13결론 ②: 선한 율법이 죄를 '심히 죄 되게' 드러낸다

그런즉 선한 것이 내게 사망이 되었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오직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선한 그것으로 말미암아 나를 죽게 만들었으니 이는 계명으로 말미암아 죄로 심히 죄되게 하려 함이니라

직역 그러면 선한 것이 나에게 죽음이 되었는가? 절대 아니다! 오히려 죄가, 죄로 드러나도록, 선한 것을 통해 내게 죽음을 만들어 냈다. 그리하여 죄가 계명을 통해 한없이 죄스러운 것이 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두 번째 질문입니다. 7절은 "율법이 죄냐?"였고, 13절은 "그럼 율법이 나를 죽인 원인이냐?"입니다. 답은 또다시 "그럴 수 없느니라!" 나를 죽인 것은 율법이 아니라 죄입니다. 율법은 죄가 사용한 도구였을 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여기서 더 깊은 하나님의 뜻을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이런 일을 허락하셨을까요? "죄가 죄로 드러나기 위하여", 그리고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입니다. 죄는 평소에 자기 정체를 숨깁니다. "이 정도는 괜찮아", "다들 그렇게 살아." 그런데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 앞에 서면 죄의 실체가 낱낱이 드러납니다. 흰 와이셔츠에 묻은 얼룩이 더 선명하게 보이듯, 선한 율법이라는 흰 바탕 위에서 죄는 '한없이 죄스러운 것'으로 정체가 폭로됩니다.

더 나아가, 선한 것까지 악용하는 모습을 보면 죄가 얼마나 악한지 알 수 있습니다. 거룩한 계명마저 살인 도구로 바꾸는 것이 죄의 본성입니다. 이것은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로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의 앞부분이 실제로 어떻게 일어나는지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뒷부분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는 25절과 8장에서 펼쳐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심히 카트 휘페르볼렌 — '던져서(발로) 넘어가다(휘페르)', 곧 '한계를 넘어서'. 고후 4:17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 고전 12:31 "제일 좋은 길"에도 쓰였습니다. 죄가 '보통 나쁜 것'이 아니라 '측량할 수 없이 악한 것'으로 드러난다는 강조입니다.
  • 죄로 심히 죄되게 — 원문은 "죄가 (계명을 통해) 지나치게 죄인(죄스러운) 것이 되도록". 같은 단어를 겹쳐 쓴 강조법입니다.
  • 문장 구조 — 13절 원문은 문법적으로 매끄럽지 않아 번역마다 다르게 옮깁니다. 핵심은 분명합니다: 죽인 자는 죄, 죽인 도구는 선한 계명, 그 목적은 죄의 폭로.
함께 읽을 말씀
  • 롬 5:20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로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 갈 3:19 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한 것이라
  • 갈 3:24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 죄를 드러내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율법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규칙을 탓하지 말고, 거울 앞에 정직하게 서십시오

말씀이 나를 찌를 때 우리는 종종 말씀을 피하거나, "요즘 세상에 그건 너무 엄격하다"며 기준을 탓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다. 문제는 거울이 아니라 거울에 비친 내 얼굴이다.

말씀이 내 죄를 드러낼 때는 정죄받는 순간이 아니라 치료가 시작되는 순간입니다. 진단 없는 치료는 없습니다. 죄가 '심히 죄'로 보이기 시작할 때, 비로소 은혜가 '심히 은혜'로 보이기 시작합니다.

7:14–20내 속에서 벌어지는 싸움 — 원함과 행함 사이

14절부터 분위기가 확 바뀝니다. 7-13절은 모두 과거형("죽었도다", "속이고")이었는데, 이제부터는 현재형("팔렸도다", "알지 못하노니", "행하는도다")입니다. 과거의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일처럼 생생하게 말합니다.

7-13절이 "율법이 죄냐?"에 답했다면, 14-25절은 "그럼 왜 선한 율법을 알면서도 지키지 못하는가?"에 답합니다. 답은 하나입니다. 내 안에 죄가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14-17절과 18-20절은 거의 같은 구조로 두 번 반복됩니다. 깨달음 → 원함과 행함의 분열 → "그러므로 그것을 행하는 것은 내 속에 거하는 죄다". 반복은 고통의 깊이를 보여 줍니다.

14율법은 신령하나, 나는 육신에 속해 죄 아래 팔렸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직역 우리가 알기로, 율법은 영적인(성령에게서 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육적인 존재, 죄 아래 팔려 버린 존재다.

"우리가 알거니와" — 바울과 독자가 함께 인정하는 사실로 시작합니다. 율법은 신령합니다. '신령하다'는 '신비롭다'는 뜻이 아니라 '성령께로부터 왔다, 성령께 속했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성령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문제는 '나'입니다. 나는 "육신에 속하여" 있습니다. 율법은 하늘에서 왔는데, 나는 땅의 흙과 살로 된 연약한 존재입니다. 둘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율법은 높은 수준을 요구하는데, 나에게는 그 수준에 도달할 능력이 없습니다.

더 충격적인 표현은 "죄 아래 팔렸도다"입니다. 로마 시대 독자들은 이 말을 들으면 곧바로 노예 시장을 떠올렸습니다. 로마 제국 인구의 상당수가 노예였고, 사람이 물건처럼 경매대에 올라 팔리는 장면은 흔했습니다. 한번 팔린 노예는 자기 뜻대로 살 수 없습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바울은 '나'가 죄라는 주인에게 팔려 간 노예와 같다고 말합니다.

구약에도 같은 표현이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에게 "네가 스스로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음이라"(왕상 21:20)고 했고, 이사야는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팔렸고"(사 50:1)라고 했습니다. 이 단어 때문에 7장의 '나'가 그리스도인일 수 있는지 큰 논쟁이 생깁니다. 6:18에서 바울은 성도가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아래 '나는 누구인가'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신령한 神靈 / 프뉴마티코스 — 『개역개정』도 "신령한". 오늘날 '신령하다'는 무속적 느낌이 있어 오해하기 쉽습니다. 『새번역』은 "신령한", 영어 성경은 대개 spiritual. 핵심은 '성령께 속한'입니다. 고전 2:15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고전 10:3-4 "신령한 식물… 신령한 음료"에 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 육신에 속하여 사르키노스 — 5절의 "육신에 있을 때"(엔 테 사르키)와 다른 표현입니다. '살로 만들어진, 육적 성질의'. 흥미롭게도 바울은 고전 3:1에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이라고 이 단어를 씁니다. 그래서 이 단어 하나만으로 '나'가 비신자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습니다.
  • 팔렸도다 페프라메노스 휘포 텐 하마르티안 — 완료 수동 분사. '팔린 뒤 지금도 그 상태'. 마 18:25 "그 몸과 아내와 자식들과 모든 소유를 다 팔아 갚게 하라"에 같은 동사가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왕상 21:20, 25 네가 스스로 팔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음이라 — 아합
  • 왕하 17:17 스스로 팔려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 북이스라엘의 멸망 원인
  • 사 50:1 너희는 너희의 죄악으로 인하여 팔렸고
  • 롬 6:17-18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 14절과 대조되는 말씀
  • 고전 3:1 내가 신령한 자들을 대함과 같이 너희에게 말할 수 없어서 육신에 속한 자 곧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 아이들을 대함과 같이 하노라
15나도 나를 모르겠다 — 원하는 것은 못 하고 미워하는 것을 한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직역 내가 이루어 내는 것을 나는 이해하지(인정하지) 못한다. 내가 원하는 것, 그것은 행하지 않고, 도리어 내가 미워하는 것, 그것을 하기 때문이다.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고백입니다. "왜 내가 이런 짓을 했을까?" 화내지 않겠다고 다짐한 날 더 크게 화를 내고, 그 말만은 하지 말자 해 놓고 결국 그 말을 하고 맙니다. 그러고 나서 스스로에게 묻습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러는 걸까?"

"알지 못하노니"는 정보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자기가 무엇을 했는지 모를 리 없습니다. 이것은 "내가 한 일을 나도 납득할 수 없다", "그건 내가 동의한 일이 아니다"라는 당혹감의 표현입니다. 내 행동과 내 마음이 따로 놉니다.

이런 고백은 성경 밖에서도 오래전부터 있었습니다. 로마 시인 오비디우스는 비극의 주인공 메데이아의 입을 빌려 "나는 더 나은 것을 보고 인정하지만, 더 나쁜 것을 따른다"고 썼습니다. 스토아 철학자 에픽테토스도 죄짓는 사람은 "원하는 것을 하지 않고 원하지 않는 것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인류가 오래도록 느껴 온 이 분열을 붙잡아 그 원인을 정확히 짚어 줍니다. 철학자들은 '이성이 감정을 다스리면 된다'고 처방했지만, 바울은 문제가 훨씬 깊다고 말합니다. 내 안에 죄라는 세력이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17절).

원어 · 번역 노트
  • 행하는 것 — 15절 한 절에 '행하다'가 세 개의 다른 동사로 나옵니다. 카테르가조마이(이루어 내다), 프라소(실행하다), 포이에오(하다). 우리말 번역에서는 모두 '행하다'가 되어 구별되지 않지만, 바울은 다양한 단어로 '행동 전체'를 포괄합니다.
  • 원하는 텔로 —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의지적으로 '바라고 뜻하는' 것입니다. 18절, 19절, 21절에서 계속 반복되는 핵심 단어입니다.
  • 행치 아니하고 行치 — '행하지'의 옛 줄임말.
함께 읽을 말씀
  •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 성도 안의 싸움
  • 마 26:41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 겟세마네의 제자들
  • 렘 17:9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
16원하지 않는다는 것 자체가 율법이 옳다는 증거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내가 이로 율법의 선한 것을 시인하노니

직역 그런데 만일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한다면, 나는 율법이 좋다는 것에 동의하는 셈이다.

바울은 15절의 고통스러운 경험에서 한 가지 결론을 끌어냅니다. 내가 악을 행하면서도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면, 내 마음은 이미 율법 편에 서 있는 것입니다. 율법은 "그것은 악하다"고 말하고, 내 마음도 "그것은 하기 싫다"고 말합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 나는 율법에 "맞습니다, 율법이 옳습니다"라고 동의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7-25절 전체의 목적과 연결됩니다. 바울은 지금 율법을 변호하고 있습니다. 내가 실패하는 것은 율법이 틀려서가 아닙니다. 오히려 내 실패를 괴로워한다는 것 자체가 율법이 옳다는 증거입니다. 율법은 무죄이고, 내 마음은 율법이 옳다고 증언합니다. 그러면 범인은 누구입니까? 17절이 답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시인하노니 是認 — '옳을 시(是)' + '인정할 인(認)', 곧 '옳다고 인정하다'. '시를 짓는 사람(詩人)'이 아닙니다! 『개역개정』도 "시인하노니", 『새번역』은 "율법이 좋다는 것을 인정하는 셈입니다".
  • 선한 칼로스 — 12절의 '선하다'(아가토스)와 다른 단어입니다. 칼로스는 '보기에 아름답고 훌륭하다'는 느낌이 더 있습니다. 바울은 율법을 칭찬하는 단어를 계속 바꿔 가며 씁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7:12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
  • 롬 2:15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율법의 행위가 그 마음에 새긴 것을 나타내느니라 — 양심의 증언
17그것을 하는 것은 내 속에 '세 들어 사는' 죄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직역 그렇다면 이제 그것을 이루어 내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고 있는 죄다.

얼핏 들으면 책임을 회피하는 말 같습니다. "내가 한 게 아니라 죄가 한 거야." 그러나 바울은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24절에서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라고 통곡하는 사람은 책임을 피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바울은 지금 원인 분석을 하고 있습니다. 내 진짜 마음은 선을 원하는데도 악이 나온다면, 그 악의 근원은 '원하는 나'보다 더 깊은 곳, 내 안에 자리 잡은 죄의 세력이라는 것입니다.

"거하는"(오이케오)은 '집에 살다, 거주하다'라는 뜻입니다. 죄가 내 안에 잠깐 들른 손님이 아니라 아예 '세 들어 사는' 거주자라는 말입니다. 이 단어가 중요한 이유는 8장에서 똑같은 동사가 다시 나오기 때문입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8:9),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8:11). 7장에서는 죄가 내 안에 살고, 8장에서는 성령이 내 안에 사십니다. 누가 내 안에 사느냐가 모든 것을 결정합니다.

창세기 4:7에서 하나님은 가인에게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죄는 문 앞에 웅크린 짐승처럼 들어올 틈을 엿봅니다. 바울은 그 짐승이 이미 집 안에 들어와 살고 있다고 말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이제는 뉘니 데 — 6절의 "이제는"과 같은 말이지만 여기서는 시간이 아니라 논리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적으로". 6절처럼 '구원의 새 시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 내가 아니요 — 원문 우케티 에고, "더 이상 내가 아니다". 갈 2:20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우케티 에고)와 똑같은 표현입니다. 하나는 죄가,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8:9, 11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 같은 동사, 새 거주자
  • 갈 2:20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창 4:7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 고전 3:16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18원함은 손 닿는 곳에 있는데, 해낼 힘은 없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직역 나는 안다. 내 안에, 곧 내 육 안에는 선한 것이 살고 있지 않다는 것을. 원하는 것은 내 곁에 있지만, 선을 이루어 내는 것은 없다.

18절부터 14-17절의 내용이 두 번째로 반복됩니다. 이번에는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내 속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한다." 그런데 바울은 곧바로 말을 다듬습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바울은 '나' 전체가 완전히 악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선을 원하는 마음은 분명히 있습니다(16절, 22절). 다만 '육신', 곧 죄에 붙잡힌 내 인간적 본성 안에는 선을 이루어 낼 능력이 없다는 것입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를 직역하면 "원하는 것은 내 곁에 놓여 있다"입니다. 원하는 마음은 손만 뻗으면 닿는 곳에 있습니다. 그런데 선을 끝까지 이루어 내는 것은 찾을 수 없습니다. 출발선에는 서는데, 결승선까지 가지 못합니다. 결심은 쉬운데 완수는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빌립보서 2:13을 함께 읽으면 복음의 빛이 비칩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7장의 '나'에게 '원함'은 있었지만 '행함'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원함과 행함 둘 다를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8장에서 말할 성령의 일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곧 투트 에스틴 — "그러니까, 정확히 말하면". 바울이 자기 말을 바로잡는 표시입니다. '나'와 '내 육신'을 구별해서, '나'에게는 선을 원하는 부분이 있음을 남겨 둡니다.
  • 원함은 내게 있으나 파라케이타이 — '곁에(파라) 놓여 있다(케이마이)'. 21절에서 "악이 함께 있는 것"에도 같은 동사가 쓰입니다. 원함도 곁에 있고, 악도 곁에 있습니다.
  • 행하는 것은 없노라 — 원문은 "이루어 내는 것은 (찾을 수) 없다". 일부 사본에는 '찾다'(휴리스코)가 붙어 "찾지 못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빌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원함'과 '행함' 모두 하나님께서
  • 창 6:5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 창 8:21 사람의 마음의 계획하는 바가 어려서부터 악함이라
  • 렘 13:23 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할 수 있을진대 악에 익숙한 너희도 선을 행할 수 있으리라
19원하는 선은 못 하고, 원치 않는 악은 한다

나의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직역 내가 원하는 선은 하지 않고, 내가 원하지 않는 악, 그것을 행하고 있다.

15절을 거의 그대로 반복합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15절에서는 "원하는 이것", "미워하는 그것"이라고 막연하게 말했는데, 19절에서는 "선"과 "악"이라고 분명히 이름을 붙인다는 것입니다. 이제 싸움의 정체가 분명해졌습니다. 선과 악의 싸움입니다.

왜 같은 말을 반복할까요? 히브리 문학과 시편에서 반복은 강조이자 탄식입니다. 시편 42편의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가 되풀이되듯, 바울도 같은 고백을 되풀이하며 그 고통이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 반복되는 현실임을 보여 줍니다. 한 번 넘어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넘어지고 또 넘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행하는도다 프라소 — 현재형이어서 '반복적으로, 습관처럼 행한다'는 뉘앙스가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7:15 원하는 이것은 행치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 반복
  •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 신자의 현실
  • 시 42:5, 11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 반복되는 탄식
20두 번째 결론: 역시 내 속에 거하는 죄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직역 그런데 내가 원하지 않는 그것을 내가 한다면, 그것을 이루어 내는 것은 더 이상 내가 아니라 내 안에 살고 있는 죄다.

17절의 결론을 단어까지 거의 똑같이 다시 말합니다. 두 번의 같은 분석이 같은 결론에 도착했습니다. 문제는 율법이 아니다. 선을 원하는 '나'도 아니다. 내 안에 사는 죄다.

그런데 이 결론은 위로가 아니라 더 큰 절망으로 이어집니다. 범인을 찾았는데, 그 범인이 내 집 안에 살고 있고 내 힘으로는 쫓아낼 수 없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원인을 아는 것만으로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진단은 정확한데 치료약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음 단락에서 바울은 결국 "누가 나를 건져내랴" 부르짖게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7:17 이제는 이것을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나니 — 진단 뒤에 오는 치료
첫 번째 (14–17절)두 번째 (18–20절)
깨달음율법은 신령하나 나는 육신에 속했다 (14)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않는다 (18상)
분열원하는 것은 안 하고 미워하는 것을 한다 (15)원하는 선은 안 하고 원치 않는 악을 한다 (18하-19)
결론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 (17)행하는 자는 내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는 죄 (20)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내 안에 누가 살고 있습니까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는 자신을 보며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자책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그 괴로움은 당신이 이상하다는 증거가 아니라,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의 법 편에 서 있다는 증거입니다. 악을 미워하지 않는 사람은 이런 괴로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나 결심을 더 단단히 한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내 안에 '세 들어 사는' 죄는 내 힘으로 쫓아낼 수 없습니다. 더 강한 분이 내 안에 들어와 사셔야 합니다. 7장의 "내 속에 거하는 죄"가 8장의 "너희 속에 거하시는 성령"으로 바뀌는 것, 그것이 복음입니다.

7:21–25두 법의 전쟁, 곤고한 사람의 부르짖음, 그리고 감사

지금까지의 분석을 바울은 '법(원리)'이라는 말로 정리합니다. 이 짧은 단락에 '법'이라는 단어가 무려 여섯 번이나 나옵니다. 그리고 싸움의 언어가 전쟁의 언어로 바뀝니다. "싸워", "사로잡아". 마침내 절망의 부르짖음이 터져 나오고, 그 바로 뒤에 놀라운 감사가 이어집니다.

21한 가지 법칙을 발견했다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로다

직역 그래서 나는 이런 법칙을 발견한다.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바로 곁에 놓여 있다는 것을.

"한 법을 깨달았노니"는 "이런 법칙(원리)을 발견했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머피의 법칙'이라고 말할 때처럼, "늘 이렇게 되더라" 하는 반복되는 규칙을 말합니다. 그 법칙은 이것입니다. 내가 선을 행하려고 할 때마다, 악이 꼭 내 곁에 붙어 있다.

18절에서 "원함은 내 곁에 있다"고 했는데, 21절에서는 "악도 내 곁에 있다"고 같은 동사를 씁니다. 선을 원하는 마음과 악이 나란히 붙어 있습니다. 좋은 일을 하려고 하면 교만이 따라오고, 기도하려고 하면 잡념이 따라오고, 섬기려고 하면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따라옵니다. 선한 행동 안에도 악이 섞여 들어옵니다.

다만 이 '법'을 모세 율법으로 읽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렇게 보면 "선을 행하려고 율법을 붙잡을 때마다, 그 율법 곁에 악이 함께 있다", 곧 죄가 율법을 이용하는 7-13절의 현상이 계속된다는 뜻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결론은 같습니다. 선을 원하는 마음만으로는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깨달았노니 휴리스코 — '발견하다'(유레카의 어원). 10절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발견되었다)"와 같은 동사입니다. 바울은 경험을 통해 '발견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 그러므로 아라 — "그래서 결국". 14-20절 전체를 요약하는 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4:7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 늘 가까이 웅크린 죄
  • 벧전 5:8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히 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22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한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직역 나는 속사람을 따라서는 하나님의 율법을 진심으로 기뻐한다.

절망적인 고백 한가운데 밝은 빛 한 줄기가 비칩니다. '나'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합니다. 단지 '옳다고 인정한다'(16절) 정도가 아니라 기뻐하고 좋아합니다. 이것은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의 모습입니다.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속 사람"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이 말을 다른 두 곳에서 씁니다.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고후 4:16),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엡 3:16). 두 곳 모두 성도에 관한 말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몸과 대조되는,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내면입니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들이 22절을 7장의 '나'가 거듭난 사람이라는 중요한 근거로 봅니다. 하나님의 법을 진심으로 즐거워하는 것은 성령께서 새롭게 하신 마음의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다른 해석자들은 경건한 유대인도 율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했다는 점(시편 119편)을 들어, 회심 전 경건한 유대인도 충분히 이렇게 고백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도 '내면의 사람'이라는 표현을 쓴 적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고백은 분명합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의 법을 싫어하지 않습니다. 사랑합니다. 그런데도 지키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통스럽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즐거워하되 쉰헤도마이 — '함께(쉰)' + '기뻐하다(헤도마이, 쾌락 hedonism의 어원)'. 하나님의 법과 '한마음으로 기뻐한다'는 뉘앙스입니다. 신약 성경 전체에서 이 구절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 속 사람 — 원문은 "속사람을 따라서는(카타)". "~의 면에서 보면"이라는 뜻입니다. 23절의 "지체 속에서"와 대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1:2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 시 40:8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 시 119:16, 35 주의 율례를 즐거워하며… 나로 주의 계명의 첩경으로 행케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 고후 4:16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엡 3:16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23내 안의 전쟁 — 다른 법이 나를 포로로 끌고 간다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직역 그러나 나는 내 지체들 안에서 다른 법을 본다. 그것이 내 마음(이성)의 법에 맞서 전쟁을 벌이고, 나를 내 지체들 안에 있는 죄의 법에 포로로 끌고 간다.

이제 싸움은 '전쟁'이 됩니다. 두 단어 모두 군대 용어입니다. "싸워"는 '맞서서 군사 작전을 벌이다', "사로잡아"는 '창끝으로 붙잡아 전쟁 포로로 끌고 가다'입니다. 8절에서 죄가 계명을 '교두보'로 삼았다고 했는데, 이제 그 교두보에서 출발한 군대가 내 마음을 공격해 나를 포로로 끌고 갑니다.

"포로"라는 말은 유대인들에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게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율법을 가졌지만 지키지 못해 결국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바울은 개인의 마음 안에서 그 포로 됨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하는 듯합니다.

이 절에는 여러 '법'이 등장해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아래 표로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결국 두 진영의 싸움입니다. 한쪽은 하나님의 법 + 마음의 법, 다른 쪽은 다른 법 + 죄의 법. 그리고 지금 7장에서는 죄의 진영이 이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8:2에서 세 번째 법이 등장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7장의 전쟁은 8장의 해방으로 끝납니다.

'법'무엇인가편
하나님의 법 (22, 25절)하나님이 주신 율법, 하나님의 뜻선
마음의 법 (23절)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따르려는 내 마음의 원리선
다른 법 (23절)내 지체 안에서 작동하는 반대 원리악
죄의 법 (23, 25절)죄의 지배력, 죄가 나를 다스리는 원리악
생명의 성령의 법 (8:2)그리스도 안에서 성령께서 일하시는 원리 — 승리의 열쇠해방
원어 · 번역 노트
  • 마음 누스 — 우리말 '마음'은 감정까지 포함하지만, 헬라어 누스는 '생각, 이성, 판단력'에 가깝습니다. 12:2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의 그 '마음'입니다. 머리로는 하나님의 법이 옳다고 판단하는 것입니다.
  • 싸워 안티스트라튜오마이 — '스트라티아(군대)'에서 온 말. '맞서 진을 치다, 전쟁을 벌이다'. 신약에서 이곳에만 나옵니다.
  • 사로잡아 오는 아이크말로티조 — '아이크메(창끝)'에서 온 말. 눅 21:24 "모든 이방에 사로잡혀 가겠고", 고후 10:5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에 쓰였습니다. 고후 10:5에서는 방향이 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군사가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데려갑니다!
  • 보는도다 — 현재형. 지금도 계속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을 '목격한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8:2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갈 5: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 약 4:1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 벧전 2:11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 고후 10:5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케 하니 — 사로잡는 방향이 바뀜
24"누가 나를 건져내랴" — 절망의 밑바닥에서 터져 나온 부르짖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직역 비참한 사람이로다, 나는! 누가 나를 이 죽음의 몸에서 구출해 낼 것인가?

7장 전체가 도착한 절망의 밑바닥입니다. 율법은 선하고, 나는 그것을 원하고, 심지어 즐거워합니다. 그런데도 나는 포로로 끌려갑니다. 원인도 알고 무엇이 옳은지도 아는데, 할 수 있는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터져 나오는 외침이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입니다.

"곤고하다"(탈라이포로스)는 '비참하다, 기진맥진하다, 고통으로 지쳐 쓰러졌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 3:17에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도 쓰였습니다. "너는 네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가 곤고한 줄 몰랐습니다. 7장의 '나'는 자기가 곤고한 줄 압니다. 그것이 구원의 시작입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의 거룩하심 앞에서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5)라고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선 사람은 이 탄식을 압니다.

"이 사망의 몸"은 죄에 붙잡혀 죽음으로 향하는 지금의 몸, 죄가 지체를 통해 활동하는 무대가 된 몸을 말합니다. 6:6의 "죄의 몸"과 같은 생각입니다. 몸 자체가 악하다는 말이 아닙니다(바울은 몸의 부활을 믿습니다, 8:11, 23). 지금 이 몸이 죄와 죽음에 묶여 있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단어 하나, "누가"입니다. 바울은 "무엇이 나를 건져낼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더 좋은 방법, 더 강한 결심, 더 엄격한 규칙을 찾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은 이미 다 실패했습니다. 바울은 구원자, 곧 사람을 찾습니다. 이 질문이 25절의 답을 부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오호라 — 원문 탈라이포로스 에고 안트로포스는 감탄사 없이 "비참한 사람, 나!"입니다. 『개역』의 "오호라"는 원문의 감정을 우리말로 살린 것입니다. 『개역개정』도 "오호라", 『새번역』은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 곤고한 困苦 — '곤할 곤(困)' + '쓸 고(苦)', 곧 '형편이 어렵고 괴로운'. 오늘날 잘 쓰지 않는 말이라 '비참한, 지칠 대로 지친'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 사망의 몸 투 소마토스 투 타나투 투투 — "이(투투)"가 '몸'을 꾸미는지 '죽음'을 꾸미는지 원문이 모호합니다. "이 죽음의 몸"(개역)으로 읽으면 '죽음에 속한 이 몸'이고, "이 몸의 죽음"으로 읽으면 '이 몸이 겪는 죽음'입니다. 대부분 "이 죽음의 몸"으로 봅니다.
  • 건져내랴 뤼오마이 — 미래형. 위험에서 끌어내어 구조하는 말입니다. 11:26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사 59:20 인용)의 '구원자(호 뤼오메노스)'와 같은 어근입니다. 마태복음 6:13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의 '구하다'도 이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6:5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 계 3:17 네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 같은 단어
  • 롬 6:6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롬 8:23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 성도의 탄식과 몸의 구속
  • 롬 11:26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 시 18:17 나를 강한 원수와 미워하는 자에게서 건지셨음이여
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직역 하나님께 감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러므로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지만 육으로는 죄의 법을 섬긴다.

"누가 나를 건져내랴?" 대답은 설명이 아니라 찬양으로 터져 나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답은 '방법'이 아니라 '분'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율법이 할 수 없었던 일, 내 결심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해 하셨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바울은 거의 같은 흐름을 보여 줍니다.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고전 15:56-57). 죄, 율법, 사망,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 로마서 7장을 한 문장으로 줄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감사 바로 뒤에 이상한 문장이 나옵니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해답이 선포된 직후에 다시 분열 상태로 돌아가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일까요? 많은 해석자들은 이것을 7장 전체의 요약으로 봅니다. 핵심은 "내 자신이"(아우토스 에고), 곧 "나 혼자서는, 나 스스로는"입니다. 그리스도 없이 나 혼자 남겨진다면, 나는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섬기면서도 몸으로는 죄에 끌려다니는 분열된 존재일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이들은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이미와 아직'의 긴장으로 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승리하셨으므로 감사하지만, 우리는 아직 '사망의 몸'을 입고 있고 몸의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8:23). 그래서 감사와 싸움이 함께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문장은 8장으로 넘어가는 문입니다. 바로 다음 절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8:1). 7장의 탄식은 8장의 찬송을 위한 무대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감사하리로다 — 가장 신뢰받는 사본들은 카리스 토 테오, "하나님께 은혜(감사)!"입니다. 동사가 없는 감탄문입니다. 일부 사본은 유카리스토 토 테오(나는 하나님께 감사한다)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감사하리라"는 미래형이 아니라 지금 터져 나오는 감사입니다. 『새번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 내 자신이 아우토스 에고 — "바로 나 자신은, 나 홀로는". 고후 10:1 "너희를 대면하면 겸비하고… 나 바울은"(아우토스 에고)처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 섬기노라 둘류오 — 6절의 "섬길 것이요"와 같은 '종으로 섬기다'. 6절에서는 성령의 새로움으로 섬긴다고 했는데, 여기서는 나 혼자서는 두 주인을 섬기는 분열된 종이라고 말합니다.
  • 문장 순서에 관한 논의 — 25절 후반부가 24절 바로 앞에 와야 자연스럽다고 보거나, 후대의 설명 문구라고 추측한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모든 사본이 지금의 순서를 따르므로, 대부분은 바울이 의도한 요약으로 받아들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5:56-57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롬 8: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 롬 6:17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 같은 감탄 "하나님께 감사"
  •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마 6:24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 분열된 섬김의 불가능성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무엇이"가 아니라 "누가"

우리는 넘어질 때마다 '무엇'을 찾습니다. 더 좋은 습관, 더 강한 결심, 더 엄격한 규칙. 그러나 바울은 그 모든 것을 다 해 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결국 "누가 나를 건져내랴"고 물었습니다.

신앙의 해답은 기술이 아니라 인격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 나의 곤고함을 숨기지 말고 그분 앞에 정직하게 내어놓으십시오. 탄식이 감사로 바뀌는 자리가 바로 거기입니다.

The Big Question

7장의 '나'는 누구인가

교회 역사 2천 년 동안 이어진 질문 — 정답을 외우기보다 각 견해의 근거를 이해해 봅시다

"내가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한다." 이 '나'는 누구일까요? 예수님을 믿기 전의 바울일까요, 사도가 된 지금의 바울일까요, 아니면 바울이 대표로 말하는 다른 누구일까요? 이 질문은 신앙생활에 대한 이해와 직결됩니다. 신실한 믿음의 선배들도 서로 다른 결론을 내렸습니다. 대표적인 견해는 다음과 같습니다.

견해 1

지금 싸우는 그리스도인

근거 14절부터 현재형으로 바뀜.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는 속사람'(22절)은 거듭난 사람의 특징(고후 4:16, 엡 3:16). 25절 감사 뒤에도 분열이 남아 있음. 갈 5:17의 성도 안의 싸움과 닮음.
지지 후기 아우구스티누스, 루터, 칼빈, 스펄전, 패커 등 개혁·복음주의 전통의 많은 이들.

견해 2

율법 아래 있는 사람 (그리스도 밖)

근거 "죄 아래 팔렸다"(14절)는 "죄에게서 해방되었다"(6:18)와 정면으로 충돌. "죄의 법 아래 사로잡혔다"(23절)는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되었다"(8:2)와 충돌. 7:7-25에는 성령이 한 번도 나오지 않음. 7:5 "육신에 있을 때"가 이 단락의 예고편.
지지 초대 동방 교부들, 초기 아우구스티누스, 웨슬리, 오늘날 많은 신약학자.

견해 3

아담·이스라엘을 대표하는 '나'

근거 7-13절의 에덴 이야기 메아리(9, 11절). 율법을 받고도 지키지 못한 이스라엘의 역사. 바울이 수사적 기법(가상의 인물로 말하기)을 사용했다는 분석.
지지 여러 현대 학자들. 견해 1, 2와 함께 쓰이기도 함.

견해 4

깨어났지만 아직 자유를 모르는 사람

근거 죄를 깊이 깨닫고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게 되었으나, 아직 성령의 능력과 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경험하지 못한 상태. 회심 직전의 각성 상태로 보거나, 율법적 방식으로 거룩해지려 애쓰는 신자로 봄.
지지 마틴 로이드 존스 등.

바울은 이 단락에서 '나'를 통해 율법과 인간의 관계를 해부하고 있습니다. 확실한 것이 있습니다. 첫째, 7장의 목적은 율법을 변호하는 것입니다(7, 12, 13, 14, 16, 22절). 둘째, 7장은 율법만으로는 사람이 죄를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셋째, 해답은 그리스도와 성령입니다(25절, 8장). 어떤 견해를 택하든 이 세 가지는 변하지 않습니다.

목회적으로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여전히 죄와 싸웁니다. 그 싸움은 실제이고 고통스럽습니다(견해 1의 통찰).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율법과 자기 힘만으로 싸우는 '7장의 사람'으로 머물도록 부름받지 않았습니다. 성령 안에서 싸우고, 이미 승리하신 그리스도 안에서 싸웁니다(견해 2의 통찰). 7장에서 멈추지 말고 반드시 8장까지 읽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Bridge to Chapter 8

7장에서 8장으로

7장의 질문에 8장이 하나하나 대답합니다
7장의 문제8장의 해답
죄의 법 아래 사로잡힘 (7:23)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 (8:2)
율법은 선하나 행할 힘이 없음 (7:18)율법이 육신으로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이 하심 (8:3)
원하는 선을 이루지 못함 (7:19)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짐 (8:4)
내 속에 거하는 죄 (7:17, 20)너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 (8:9, 11)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건져내랴 (7:24)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8:11), 몸의 구속을 기다림 (8:23)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7:24)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8:35)
Glossary

7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주관하다主管 · 1절

주인처럼 맡아서 다스리다. 율법이 사람 위에 '주인 노릇' 한다는 뜻.

음부 / 음녀淫婦 · 3절

간음한 여인. 몸의 부위를 뜻하는 '음부(陰部)'와 다른 말.

육신σάρξ 사르크스 · 5, 18, 25절

단순히 '몸'이 아니라,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사는 옛 인간의 상태. 죄가 붙잡고 있는 인간 본성.

정욕情欲 · 5절

성적 욕망만이 아니라 끓어오르는 모든 죄의 충동(분노, 시기, 탐욕 포함).

지체肢體 · 5, 23절

팔다리를 비롯한 몸의 각 부분. 죄가 활동하는 '도구'이자 '무대'.

의문儀文 · 6절

글자로 적힌 규정, 율법 조문. '궁금증(疑問)'이 아님. 겉에서 요구만 하고 힘은 주지 못하는 방식.

탐심貪心 · 7, 8절

하나님을 떠나 무언가를 갖고 싶어 하는 욕망. 모든 죄의 뿌리로 여겨짐.

기회ἀφορμή 아포르메 · 8, 11절

군사 용어로 '작전 기지, 교두보'. 죄가 계명을 발판 삼아 공격한다는 뜻.

신령한神靈 · 14절

성령께로부터 나온, 성령께 속한. 무속적인 '신령'과 무관.

시인하다是認 · 16절

옳다고 인정하다, 동의하다. 시를 쓰는 '시인(詩人)'이 아님.

속사람ὁ ἔσω ἄνθρωπος · 22절

겉으로 보이는 몸과 대비되는, 하나님을 향하는 사람의 내면.

곤고하다困苦 · 24절

비참하다, 고통으로 지칠 대로 지쳤다.

For Reflection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나의 신앙생활에서 '옛 남편(율법)'에게 다시 돌아가 눈치 보며 사는 모습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1-6절)
  2. "하지 말라"는 말씀이 오히려 내 안의 욕망을 깨운 경험이 있습니까? 그때 문제는 말씀이었습니까, 내 마음이었습니까? (7-11절)
  3. 말씀이 내 죄를 비출 때 나는 주로 어떻게 반응합니까? 피합니까, 변명합니까, 정직하게 인정합니까? (12-13절)
  4. "원하는 선은 행치 아니하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는" 반복되는 싸움이 내 삶에서는 어떤 모습으로 나타납니까? (14-20절)
  5. 나는 넘어질 때 '무엇'(방법, 결심)을 찾습니까, 아니면 '누구'(그리스도)를 찾습니까? (24-25절)
  6. "내 속에 거하는 죄"가 아니라 "내 속에 거하시는 성령"을 의지하며 산다는 것은 이번 주 나에게 구체적으로 어떤 의미입니까? (17절, 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