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ROMANS 6:23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6장 들어가며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면, 그럼 마음껏 죄를 지어도 되는가?
5장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5:20)라는 영광스러운 선언으로 끝났습니다. 그런데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위험한 결론을 끌어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더 넘치게 하려고 죄를 더 지으면 되겠네?" 3:8에서 바울이 이미 받았던 비난,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가 다시 고개를 듭니다.
6장은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입니다. 바울은 두 번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1절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15절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리고 두 번 다 "그럴 수 없느니라!"로 답합니다.
바울의 대답은 단순한 도덕적 훈계가 아닙니다. "죄를 짓지 말아야 한다"가 아니라 "죄를 지을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1-14절은 침례의 그림으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다는 연합의 진리를 설명합니다. 15-23절은 종의 그림으로, 우리의 주인이 죄에서 하나님으로 바뀌었다는 소속의 진리를 설명합니다. 그리고 두 부분 모두 같은 결론에 이릅니다. 너희가 누구인지 알고, 그대로 살라.
두 그림
침례와 노예 해방
1-14절은 물속에 잠겼다가 올라오는 침례의 그림, 15-23절은 주인이 바뀐 종의 그림입니다. 둘 다 '신분의 변화'를 말합니다.
세 동사
알라 · 여기라 · 드리라
3, 6, 9절 "알지 못하느뇨, 우리가 알거니와", 11절 "여길지어다", 13, 19절 "드리라". 진리를 알고, 믿음으로 그렇게 여기고, 삶을 드리는 순서입니다.
핵심 단어
죄 · 종 · 왕 노릇
6장에서 '죄'는 16번 나오며 거의 모두 단수로, 사람을 다스리는 주인처럼 그려집니다. '종(노예)'과 관련된 말은 13번 나옵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3–4절 "침례"
『개역한글』은 "세례". 헬라어 밥티조는 '물에 잠그다'. 본문은 교회 표기에 따라 "침례"로 실었습니다.
5절 "본받아 연합한"
원문 쉼퓌토스는 '함께 자란, 접붙여져 하나가 된'. 식물의 접붙임 그림.
6절 "옛 사람"
아담 안에 있던 예전의 나. 『개역개정』도 "옛 사람".
6절 "멸하여"
원문 카타르게오는 '무력하게 하다, 효력을 잃게 하다'. 몸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님.
12절 "사욕"
私慾, 자기만을 위한 욕심. 원문은 '욕망들'(에피튀미아).
13절 "병기"
兵器, 무기. 원문 호플라는 '무기, 도구'.
17절 "교훈의 본"
가르침의 틀. 원문은 '너희가 넘겨진 가르침의 틀'. 노트 참고.
19절 "사람의 예대로"
사람들이 흔히 쓰는 비유로. 종의 비유가 완전하지 않다는 양해.
23절 "삯"
원문 옵소니아는 군인의 급료.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6:1–4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 침례가 말하는 것
바울은 5:20에서 나올 수 있는 잘못된 결론을 먼저 질문으로 꺼냅니다. 그리고 단호하게 부정한 뒤, 모든 성도가 경험한 한 사건을 떠올리게 합니다. 바로 침례입니다. 침례는 단지 입교 의식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다시 살아났다는 것을 몸으로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1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직역 그러면 우리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은혜가 많아지도록 죄 안에 계속 머물겠는가?
5: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를 들은 사람이 물을 만한 질문입니다.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더 넘친다면, 은혜를 더 경험하기 위해 계속 죄 가운데 살면 되지 않는가?"
이 질문은 억지가 아닙니다. 실제로 바울의 복음은 그런 오해를 받았습니다(3:8). 그리고 교회 역사에서도 '은혜를 핑계로 한 방종'은 계속 나타났습니다. 유다서 1:4는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라고 경고합니다. 오늘날에도 "어차피 용서받을 텐데"라는 생각은 우리 마음에 쉽게 스며듭니다.
"죄에 거하겠느뇨"에서 '거하다'는 잠깐 들르는 것이 아니라 '계속 머물러 살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묻는 것은 '그리스도인이 실수로 죄를 지을 수 있는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인이 죄를 삶의 거처로 삼고 계속 살 수 있는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 바울이 반론을 꺼낼 때 쓰는 신호(3:5, 4:1, 6:15, 7:7, 8:31, 9:14, 9:30).
거하겠느뇨에피메노 — '계속 머물다'. 11:22-23 "그 인자에 거하면… 믿지 아니하는 데 거하지 아니하면"에도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5:20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 3:8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유 1:4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갈 5:13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2그럴 수 없다 —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직역 절대 그럴 수 없다!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떻게 여전히 그 안에서 살겠는가?
바울의 대답은 '그러면 안 된다'가 아니라 '그럴 수 없다'입니다. 도덕적인 금지가 아니라 존재의 불가능성입니다. 왜냐하면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사람은 더 이상 그 이전 삶을 살 수 없습니다. 7:1에서 바울은 "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죽음은 관계를 끝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에 대하여 '죽었습니다'. 죄가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그 주인 밑으로 돌아가 살 수 있겠습니까?
여기서 중요한 것은 시제입니다. "죽은"은 부정과거형으로, 이미 일어난 한 번의 결정적 사건입니다. 바울은 "죄에 대해 죽어야 한다"가 아니라 "이미 죽었다"고 말합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죄에 대해 점점 죽어 가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죽은 사람이라는 사실에서 출발합니다. 그럼 언제 죽었을까요? 3-4절이 답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죄에 대하여테 하마르티아 — 여격 '죄에게'. 죄의 지배권과의 관계에서 죽었다는 뜻입니다. 죄라는 '충동'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 아니라, 죄라는 '주인'과의 관계가 끝났다는 뜻입니다(12절 "왕 노릇 하지 못하게"가 필요한 이유).
그럴 수 없느니라메 게노이토 — 3:4, 6, 31에 이어 다시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2:19-20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골 3:3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
벧전 2:24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요일 3:9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3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았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직역 혹은 너희는 알지 못하느냐?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침례를 받은 우리는 모두 그의 죽음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바울은 새로운 것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이미 경험하고 알고 있어야 할 것을 일깨웁니다. 초대교회에서 침례는 믿음을 고백한 사람이 반드시 받는 것이었습니다. 로마 성도들도 모두 침례를 받았습니다. 바울은 "여러분이 침례를 받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기억하십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 원문은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침례를 받았다입니다. 침례는 물속으로 잠기는 것인데, 바울은 그것을 그리스도 '안으로' 잠기는 것으로 봅니다. 마치 천을 염료 통에 담그면 그 색깔로 완전히 물드는 것처럼, 침례받은 사람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 그리스도와 하나가 됩니다. 갈라디아서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었다면, 그리스도께 일어난 일이 우리에게도 일어난 것입니다.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을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도 함께 죽었습니다. 침례는 바로 그 죽음에 참여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물속에 잠기는 것은 죽음과 장사를 상징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침례 — 『개역한글』과 『개역개정』은 "세례"로 옮겼습니다. 헬라어 밥티조는 '물에 잠그다, 담그다'라는 뜻으로, 옷감을 염색하거나 배가 가라앉을 때도 쓰이던 말입니다. 3-4절의 "죽음, 장사, 일으킴"의 그림은 물에 완전히 잠겼다가 올라오는 침례의 모습과 잘 맞습니다. 본문은 교회 표기에 따라 "침례"로 실었습니다.
합하여에이스 — '~안으로'. 고전 10:2 "모세에게 속하여(에이스) 침례를 받고", 고전 12:13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무릇 — 원문 호소이, '~하는 자는 모두'. 일부 특별한 신자가 아니라 침례받은 모든 신자에게 해당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3: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골 2:12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고전 12: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막 10:38-39나의 받는 침례를 너희가 받을 수 있느냐 — 예수님이 자신의 죽음을 '침례'라 부르심
4함께 장사되었으니, 그리스도처럼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직역 그러므로 우리는 그의 죽음 안으로 들어가는 침례를 통하여 그와 함께 묻혔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신 것처럼, 우리도 생명의 새로움 가운데서 걷게 하려는 것이다.
침례의 그림이 더 구체적으로 펼쳐집니다. 사람이 죽으면 장사를 지냅니다. 장사는 죽음이 확정되었다는 표시입니다. 침례받는 사람이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순간은, 그리스도와 함께 무덤에 "장사되는" 순간을 그림처럼 보여 줍니다. 옛 사람은 거기서 끝났습니다.
그러나 침례는 물속에 잠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물 위로 다시 올라옵니다. 바울은 그 목적을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일으키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스도께서 무덤에서 일어나셨듯, 우리도 옛 삶의 무덤에서 일어나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 부활은 하나님의 영광, 곧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찬란하게 나타난 사건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같은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서 새 생명을 일으킵니다. 에베소서 1:19-20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 '행하다'는 '걷다'입니다. 성경에서 '걷다'는 삶의 방식을 뜻합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였더니(함께 걸었더니)"(창 5:24). 새 생명은 하루아침의 감정이 아니라, 매일 걸어가는 새로운 삶의 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장사되었나니쉰에타페멘 — '함께(쉰) 묻히다'. 골 2:12에만 다시 나옵니다. 바울은 '함께(쉰)'가 붙은 동사를 6장에서 여러 번 씁니다. 함께 장사되고(4절), 함께 자라고(5절), 함께 못 박히고(6절), 함께 살고(8절).
새 생명 — 원문 카이노테티 조에스, "생명의 새로움". '카이노스'는 시간적으로 새로운 것(네오스)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것을 뜻합니다.
침례 방식 — 초대교회 문헌 『디다케』(1세기 말-2세기 초)는 흐르는 물에 잠그는 침례를 기본으로 하되, 물이 부족하면 머리에 붓는 것도 허용했습니다. 침례교회는 6:3-4의 '장사와 일으킴'의 그림을 근거로 물에 완전히 잠그는 침례를 행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2:12너희가 침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 바 되고…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엡 1:19-20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엡 4:22-24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겔 36:26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의 침례를 기억하십니까
침례는 한 번 받고 지나가는 행사가 아닙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죄의 유혹 앞에 설 때마다 "너희가 침례받은 것을 기억하라"고 말합니다. 그날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고, 함께 묻혔고, 함께 일어났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마음이 흔들리고 유혹이 몰려올 때 책상에 "나는 침례를 받았다(Baptizatus sum)"라고 적었다고 합니다. 죄가 다시 나를 부를 때, 나는 이미 그 주인에게 죽은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6:5–11그와 함께 죽고 그와 함께 산다 — 그러므로 그렇게 여기라
3-4절의 침례의 그림을 바울은 더 깊이 설명합니다. 5-7절은 '함께 죽음'의 의미를, 8-10절은 '함께 삶'의 의미를 다룹니다. 그리고 11절에서 로마서 6장의 첫 명령이 나옵니다. "여길지어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사실들을 말했다면, 이제 우리가 그 사실을 믿음으로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5그의 죽으심에 연합했다면 그의 부활에도 연합하리라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직역 만일 우리가 그의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그와 함께 접붙여졌다면, 분명히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도 그렇게 될 것이다.
'연합한 자'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식물학 용어입니다. 두 식물을 접붙이면, 처음에는 따로였던 줄기가 하나로 붙어 같은 수액을 받고 함께 자랍니다. 접붙인 가지는 원줄기에 일어나는 일을 함께 겪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접붙여졌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일어난 일, 곧 죽음과 부활이 우리에게도 일어납니다.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침례).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 미래형입니다. 마지막 날 몸의 부활로 완성될 일이면서, 동시에 지금 새 생명 가운데 사는 것으로 이미 시작된 일입니다(4절, 11절). 죽음에 연합한 사람은 반드시 부활에도 연합합니다. 둘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연합한 자쉼퓌토스 — '함께(쉰) 자라다(퓌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11:17-24의 감람나무 접붙임 비유와 비교해 볼 만합니다.
본받아호모이오마 — '같은 모양, 닮은꼴'. 8:3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에도 쓰였습니다. 우리가 문자적으로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아니지만, 그 죽음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빌 3:10-11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
요 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고전 15:20-23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롬 11:17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6옛 사람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종노릇을 끝내려고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직역 우리는 이것을 안다. 우리의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무력하게 되어 우리가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알거니와" — 바울은 다시 성도들이 알아야 할 진리를 짚습니다.
"우리 옛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리스도를 믿기 전, 아담 안에 있던 예전의 '나'입니다. 5장에서 본 대로 아담에게 속해 죄와 죽음 아래 있던 존재입니다. 옛 사람은 나의 일부분(나쁜 습관이나 성격)이 아니라, 아담 안에 있던 나 전체입니다.
그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갈라디아서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은 우리가 노력해서 옛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이미 일어난 일입니다.
목적은 무엇입니까? "죄의 몸이 멸하여." '멸하다'는 몸이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무력해진다, 힘을 잃는다'는 뜻입니다. '죄의 몸'은 죄가 지배하던 우리의 존재, 죄가 우리 몸을 도구로 쓰던 상태를 말합니다. 그 지배력이 무력해졌습니다. 그래서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죄는 여전히 유혹하지만, 더 이상 우리의 주인으로서 명령할 권리가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옛 사람팔라이오스 안트로포스 — 엡 4:22, 골 3:9에도 나옵니다. 거기서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라"(명령)고 하고, 여기서는 "옛 사람이 못 박혔다"(사실)고 합니다. 이미 일어난 사실을 삶에서 실제로 살아 내라는 것입니다.
멸하여카타르게오 — 3:3, 31 "폐하다", 7:2, 6 "벗어나다"와 같은 단어. '효력을 잃게 하다'.
죄의 몸 — '몸 자체가 죄악되다'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몸이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려질 수 있다고 말합니다(13절, 12:1). '죄가 다스리던 몸'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2:20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갈 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갈 6:14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
엡 4:22-24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라
골 3:9-10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7죽은 자는 죄에서 벗어났다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직역 왜냐하면 죽은 자는 죄로부터 의롭다 함을 받았기(벗어났기) 때문이다.
6절의 근거입니다. 아주 간단한 원리입니다. 죽은 사람은 죄에서 벗어난다.
당시 유대 랍비들 사이에 "사람이 죽으면 그의 빚은 청산된다"는 말이 있었습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법도 더 이상 요구할 수 없고, 빚쟁이도 받으러 올 수 없습니다. 노예가 죽으면 주인은 더 이상 그에게 일을 시킬 수 없습니다. 죽음은 모든 의무와 지배를 끝냅니다.
흥미롭게도 원문은 '벗어났다'가 아니라 '의롭다 함을 받았다'(디카이오오)입니다. 3-5장에서 칭의를 말할 때 쓰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바울은 칭의(법적 선언)와 해방(죄의 지배에서 벗어남)을 떼어 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고 선언하실 때, 죄는 더 이상 우리에게 법적 권리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죄의 고발에서도, 죄의 지배에서도 우리는 풀려났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 — 원문 데디카이오타이 아포 테스 하마르티아스. 『개역』은 '벗어나'와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을 둘 다 살려 옮겼습니다. 『개역개정』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새번역』은 "죽은 사람은 이미 죄의 세력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행 13:39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에서도)"에 같은 구조가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7:1-4법이 사람이 살 동안만 그를 주관하는 줄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벧전 4:1육체의 고난을 받은 자는 죄를 그쳤음이니
행 13:38-39이 사람을 힘입어 죄 사함을 너희에게 전하는 이것이며 또 모세의 율법으로 너희가 의롭다 하심을 얻지 못하던 모든 일에도
8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함께 살 줄을 믿는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직역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면, 그와 함께 또한 살 것을 믿는다.
5절의 내용을 다른 말로 반복합니다. 5-7절이 '함께 죽음'에 초점을 맞췄다면, 8-10절은 '함께 삶'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이것은 믿음의 문제입니다. 우리 눈에는 여전히 옛 습관과 연약함이 보입니다. 우리가 정말 새 생명을 가진 사람인지 의심이 들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것이 사실이라면,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그것을 '믿습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미래의 부활 생명(살전 4:17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이면서, 동시에 지금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입니다(11절 "산 자로 여길지어다"). 디모데후서 2:11 "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원어 · 번역 노트
살 줄을쉬제소멘 — '함께(쉰) 살다(자오)'. 고후 7:3 "함께 죽고 함께 살게", 딤후 2:11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딤후 2:11미쁘다 이 말이여 우리가 주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함께 살 것이요
고후 4:10-11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살전 4:17이와 같이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9살아나신 그리스도는 다시 죽지 않으시고 사망이 그를 주장하지 못한다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직역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켜지셨으니 더 이상 죽지 않으시고, 사망이 더 이상 그에게 주인 노릇 하지 못한다는 것을 우리가 알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 것을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떤 부활인지 알기 때문입니다.
성경에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엘리야와 엘리사가 살린 아이들, 예수님이 살리신 야이로의 딸, 나인 성 과부의 아들, 나사로. 그러나 그들은 모두 결국 다시 죽었습니다. 그들의 경험은 '소생'이었지 '부활'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릅니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그리스도는 죽음을 통과해 죽음이 결코 닿을 수 없는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5장에서 사망은 인류 위에 '왕 노릇' 했습니다(5:14, 17).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에서 잠시 그 사망의 권세 아래 들어가셨습니다. 그러나 부활로 그 권세를 깨뜨리셨고, 이제 사망은 더 이상 그분의 주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요한계시록 1:18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원어 · 번역 노트
주장하지퀴리에우오 — '주인(퀴리오스)이 되다'. 14절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7:1 "법이… 주관하는"과 같은 동사입니다. 사망, 죄, 율법이 모두 '주인 노릇' 하려는 세력으로 그려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1:18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행 2:24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 매여 있을 수 없었음이라
히 7:16, 25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고전 15:54-55사망을 이기고 삼키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10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시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신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직역 그가 죽으신 그 죽음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신 것이요, 그가 사시는 그 삶은 하나님께 대하여 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과 삶을 대조합니다.
"그의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리스도께는 죄가 없으셨는데 '죄에 대하여' 죽으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짊어지시고 죄의 권세 아래 들어가셔서, 그 죄의 값을 치르시고 죄와의 관계를 완전히 끝내셨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단번에"였습니다. 구약의 제사는 해마다, 날마다 반복되어야 했지만, 그리스도의 죽음은 단 한 번으로 영원히 충분했습니다. 히브리서 9:26-28과 10:10이 이 단어를 강조합니다.
"그의 살으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으심이니."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이제 오직 하나님을 향해, 하나님과의 온전한 교제 안에서 사십니다. 죄와는 영원히 상관이 없고, 오직 하나님과만 상관이 있는 삶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것이 11절에서 우리에게 적용됩니다. 그리스도께 일어난 일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에게도 일어났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단번에에파팍스 — 히 7:27, 9:12, 10:10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반복이 필요 없는 완전한 사건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죽으심 / 살으심 — 원문은 "그가 죽은 것(호 아페타넨) / 그가 사는 것(호 제)". 관계대명사로 '그 죽음', '그 삶'의 내용을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히 9:26-28이제 자기를 단번에 제사로 드려 죄를 없게 하시려고 세상 끝에 나타나셨느니라…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바 되셨고
히 10:10-14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벧전 3:18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고후 5:15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11너희도 그렇게 여기라 —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
직역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
드디어 6장의 첫 명령이 나옵니다. 1-10절은 모두 '사실'을 말했습니다. "우리는 죽었다", "함께 장사되었다", "못 박혔다". 이제 바울은 그 사실을 붙잡으라고 명령합니다. "여길지어다."
'여기다'는 4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고 할 때 쓴 바로 그 단어입니다. 원래 회계 용어로, 장부에 '계산해 넣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장부에 그리스도의 의를 계산해 넣으셨듯이, 이제 우리도 우리 자신에 대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계산하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상상하라', '그런 척하라'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미 사실인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통장에 이미 돈이 들어와 있는데, 그것을 모르고 가난하게 사는 사람에게 "당신 통장에 돈이 있다고 계산하고 사세요"라고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리는 실제로 죄에 대해 죽었고, 실제로 하나님께 대해 살아 있습니다. 문제는 그 사실을 믿고 그에 따라 사느냐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로마서에서 이 표현이 처음 나오는 곳입니다. 우리가 죽은 것도, 산 것도 모두 그리스도 안에서입니다. 그리스도 밖에서 내 힘으로 죄에 대해 죽으려 하면 실패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붙잡을 때, 새 생명이 실제로 펼쳐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여길지어다로기제스테 — 현재 명령형. 한 번 여기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그렇게 여기라'는 뜻입니다. 매일, 매 순간 유혹이 올 때마다 다시 계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엔 크리스토 예수 — 바울 서신의 핵심 표현으로 약 160번 나옵니다. 로마서에서는 6:11, 23, 8:1, 2, 39 등. 신자의 존재 전체가 그리스도와의 연합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일부 사본 —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로 되어 있는 사본도 있습니다(킹제임스).
함께 읽을 말씀
골 3:1-3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
갈 2:19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고후 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롬 4:3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 같은 동사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이 나를 보시는 대로 나를 보십시오
우리는 거울을 보며 "나는 아직 이렇게 연약한데, 정말 죄에 대해 죽은 사람인가?" 하고 의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울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보라고 합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나를 '죄에 대해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해 산 자'로 보십니다.
유혹이 올 때 이렇게 말해 보십시오. "나는 이미 그 주인에게 죽은 사람이다.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대해 산 사람이다." 이것은 자기 최면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이루신 사실을 믿음으로 붙잡는 것입니다.
6:12–14죄가 왕 노릇 하지 못하게 —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라
11절의 '여기라'에 이어, 이제 구체적인 실천 명령이 나옵니다.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누구인지(죄에 죽고 하나님께 산 자) 알았다면, 그에 맞게 살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부정 명령(죄에게 드리지 말라)과 긍정 명령(하나님께 드리라)을 짝지어 줍니다. 그리고 14절에서 그것이 가능한 이유를 말합니다.
12죄가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라
그러므로 너희는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직역 그러므로 죄가 너희의 죽을 몸 안에서 왕 노릇 하여 너희가 그 몸의 욕망들에 순종하는 일이 없게 하라.
"그러므로" — 우리가 죄에 대해 죽었으니(11절), 이제 죄가 다시 왕좌에 앉지 못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사실이 드러납니다. 죄는 '죽지' 않았습니다. 죽은 것은 '우리'(옛 사람)이고, 죄는 여전히 살아서 다시 왕좌를 노립니다. 5:21에서 죄는 '왕 노릇' 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 왕을 왕좌에서 끌어내리셨습니다. 이제 문제는, 쫓겨난 왕이 다시 들어오도록 문을 열어 줄 것인가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이것은 우리의 책임입니다.
"너희 죽을 몸" — 우리 몸은 아직 구속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죽음을 향해 가고, 연약하고, 유혹에 반응합니다(8:23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죄는 바로 이 몸을 통해 다시 우리를 다스리려 합니다. 배고픔, 피곤, 욕망, 두려움 같은 몸의 필요를 이용해서요.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 욕망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욕망이 명령하는 대로 '순종'하면, 욕망이 왕이 되고 우리는 그 신하가 됩니다. 성도는 몸의 욕망을 느끼지만, 그 욕망에게 왕좌를 내주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죽을 몸트네톤 소마 — 8:11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후 4:11 "예수의 생명도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에 쓰였습니다. 몸이 악하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완전히 구속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사욕 私慾 — '자기만을 위한 욕심'. 원문 에피튀미아, 1:24 "마음의 정욕", 7:7 "탐심"과 같은 단어입니다.
왕 노릇 하지 못하게 — 현재 명령형의 부정. '계속 왕 노릇 하게 두지 말라'.
함께 읽을 말씀
롬 5:21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창 4:7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벧전 2:11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약 1:14-15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롬 8:13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13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직역 또한 너희 지체들을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어 주지 말고, 오히려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난 자로서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고, 너희 지체들을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바울은 전쟁의 그림을 씁니다. 우리 몸의 '지체', 곧 눈, 귀, 입, 손, 발은 "병기", 곧 무기입니다. 무기는 그 자체로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습니다.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느냐에 따라 달라집니다. 같은 칼이 강도의 손에 있으면 사람을 해치고, 의사의 손에 있으면 사람을 살립니다.
부정 명령: "너희 지체를 불의의 병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드리다'는 군인이 사령관 앞에 나아가 '저를 써 주십시오' 하고 보고하는 그림입니다. 죄라는 사령관에게 우리 눈을 정욕의 도구로, 입을 험담의 도구로, 손을 불의의 도구로 내어 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원문은 현재형으로, '계속해서 내어 주는 습관을 버리라'는 뜻입니다.
긍정 명령: "오직 너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이 명령은 부정과거형으로, '결정적으로, 한 번에 자신을 드리라'는 뜻입니다. 먼저 "너희 자신", 곧 존재 전체를 드리고, 그다음 "너희 지체", 곧 각 부분을 드립니다. 12:1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와 같은 단어입니다.
어떤 사람으로서 드립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산 자같이." 우리는 이미 죽었다가 살아난 사람입니다(4, 11절). 그러니 그 새 생명에 맞게, 새 주인께 자신을 드리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병기 兵器 — '무기'. 원문 호플라는 '도구'로도, '무기'로도 쓰입니다. 바울은 고후 6:7 "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10:4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엡 6:11-17 "하나님의 전신갑주"에서도 군사 그림을 씁니다.
시제의 대조 — 죄에게 '드리지 말라'는 현재형(습관을 끊으라), 하나님께 '드리라'는 부정과거형(결단하여 한 번에 드리라).
함께 읽을 말씀
롬 12:1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고후 6:7의의 병기로 좌우하고
엡 6:13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약 3:5-6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고전 6:19-20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14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 법 아래가 아니라 은혜 아래 있기 때문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직역 왜냐하면 죄가 너희를 주인으로 다스리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다.
12-13절의 명령이 가능한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것은 명령이 아니라 약속입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라'가 아니라,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할 것이다'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장하시는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이 짧은 문장이 7장과 8장 전체를 낳습니다.
'법 아래' 있는 사람은 율법이 주인입니다. 율법은 '하라, 하지 말라'고 명령하지만, 그것을 행할 힘은 주지 않습니다. 오히려 7장에서 보듯 죄가 그 계명을 기회로 삼아 더 활발해집니다(7:8). 그래서 법 아래 있는 사람은 결국 죄에게 집니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은혜가 주인입니다. 은혜는 먼저 우리를 받아 주시고, 의롭다 하시고, 새 생명을 주시고, 성령을 주십니다. 은혜는 '해야 한다'고 압박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있다'고 힘을 줍니다. 디도서 2:11-12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은혜는 방종의 허가증이 아니라 거룩의 능력입니다.
그러나 이 말을 들은 사람은 다시 질문할 것입니다. "법 아래 있지 않다고? 그럼 율법을 어겨도 된다는 뜻인가?" 바로 15절의 질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주관치 못하리니우 퀴리에우세이 — 미래형. 9절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과 같은 동사입니다. 그리스도께 사망이 주인 노릇 못하듯, 그리스도 안의 우리에게 죄가 주인 노릇 못합니다.
법 아래 — 여기서 '법'은 모세 율법을 가리킵니다. 고전 9:20, 갈 3:23, 4:4-5, 21, 5:18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함께 읽을 말씀
갈 5: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롬 7:4-6너희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
롬 8:2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딛 2:11-12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요 1: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내 손과 눈과 입은 누구의 무기입니까
오늘 하루, 내 눈은 무엇을 보았습니까? 내 입은 무엇을 말했습니까? 내 손은 무엇을 했습니까? 바울은 우리 몸의 모든 부분이 어느 편의 '무기'가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습니다. 은혜는 "더 열심히 해라"고 다그치지 않고, "너는 이미 새 생명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아침마다 내 몸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로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6:15–19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의 종이 된다 — 죄의 종에서 의의 종으로
14절의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는 새로운 오해를 낳을 수 있습니다. 1절의 질문이 '은혜를 위해 죄를 짓자'였다면, 15절의 질문은 '법이 없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입니다. 바울은 이번에는 종(노예)의 그림으로 답합니다.
당시 로마 제국 인구의 상당수가 노예였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 중에도 노예이거나 노예였던 사람들이 많았습니다(16장의 이름들 중 상당수가 노예 이름입니다). 그들에게 '주인이 바뀐다'는 그림은 피부에 와닿는 말이었습니다.
15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되는가? 그럴 수 없다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직역 그러면 어떤가? 우리가 율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어도 되겠는가? 절대 그럴 수 없다!
1절과 비슷하지만 조금 다른 질문입니다. 1절은 "죄에 '거하겠느냐'(계속 머물겠느냐)"였고, 15절은 "죄를 '지으리요'"(부정과거형, 가끔 한 번씩)입니다. 1절이 '죄 가운데 계속 사는 것'을 물었다면, 15절은 '법이 없으니 이따금 죄를 지어도 괜찮지 않느냐'는 좀 더 교묘한 질문입니다.
오늘날에도 이 질문은 흔합니다. "율법주의는 나쁘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다. 그러니 이 정도는 괜찮다." 바울의 대답은 또 한 번 "그럴 수 없느니라!"입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16절에서 설명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지으리요 — 1절의 에피메노멘(현재, 계속 머물다)과 달리 하마르테소멘(부정과거, 한 번 짓다)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6:1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벧전 2:16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 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갈 5: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16누구에게 순종하든 그의 종이 된다 — 죄의 종은 사망으로, 순종의 종은 의로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직역 너희가 누구에게든 너희 자신을 순종하는 종으로 내어 주면, 너희가 순종하는 그 자의 종이 된다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사망에 이르는 죄의 종이든지, 의에 이르는 순종의 종이든지.
바울은 누구나 아는 원리를 꺼냅니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우리가 반복해서 순종하는 대상이 결국 우리의 주인이 됩니다.
여기에 중요한 진리가 있습니다. 사람은 누구나 종입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없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다고 해서 자유로운 것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에 순종하고 있는 것입니다. 돈, 쾌락, 인정, 성공, 두려움, 혹은 자기 자신의 욕망. 밥 딜런의 노래 가사처럼 "당신은 누군가를 섬겨야 한다(Gotta Serve Somebody)". 문제는 '종이 될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누구의 종이 될 것인가'입니다.
그리고 두 길뿐입니다.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죄를 주인으로 섬기면 그 끝은 사망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을 주인으로 섬기면 그 끝은 의입니다. 중간 지대는 없습니다. 예수님도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마 6:24)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15절의 질문, "은혜 아래 있으니 가끔 죄를 지어도 되지 않느냐"에 대한 답은 분명합니다. 죄에 '가끔' 순종하는 것은 없습니다. 죄에 순종할 때마다 우리는 죄에게 다시 종으로서 자신을 내어 주는 것이고, 그 끝은 사망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종둘로스 —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과 같은 단어. 6장에서 '종'과 관련된 말이 13번 나옵니다.
순종의 종 — '죄'와 '순종'을 대조합니다. 아담의 '불순종'(5:19)과 그리스도의 '순종'(5:19)을 떠올리게 합니다. 순종의 종은 그리스도의 순종에 참여하는 사람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요 8:34-36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바울은 논증을 하다 말고 감사를 터뜨립니다.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로마 성도들에게 실제로 일어난 일 때문입니다. 그들은 "본래 죄의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달라졌습니다. 그 변화는 그들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기에, 바울은 그들을 칭찬하지 않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어떻게 변했습니까? "너희에게 전하여 준바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교훈의 본'은 '가르침의 틀'입니다. 원문은 '너희가 넘겨진 가르침의 틀'이라는 독특한 표현입니다. 보통은 '가르침이 너희에게 넘겨졌다'고 말할 텐데, 바울은 거꾸로 '너희가 가르침에게 넘겨졌다'고 말합니다. 주인이 바뀐 노예가 새 주인에게 '넘겨지듯', 성도들은 복음의 가르침에게 넘겨졌습니다. 그리고 그 가르침이 마치 거푸집처럼 그들의 삶을 새로운 모양으로 빚어 갑니다.
그 순종은 "마음으로"였습니다. 억지로, 겉으로만 하는 순종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서 우러나온 순종입니다. 2:29의 "마음의 할례"가 실제로 일어난 것입니다. 율법 아래서는 계명이 바깥에서 강요했지만, 은혜 아래서는 마음 안에서부터 순종이 나옵니다. 에스겔 36:26-27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교훈의 본 — 원문 튀포스 디다케스. '튀포스'는 5:14 "표상"과 같은 단어로, 도장이나 거푸집에 찍힌 '틀'입니다. 녹인 금속을 거푸집에 부으면 그 모양대로 굳듯, 복음의 가르침이 성도의 삶을 빚습니다. 이것이 초대교회의 침례 교육 내용이나 신앙고백 요약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더니 — 원문은 미완료형 "~이었다"로 과거의 지속적 상태. 지금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7:25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고전 15:3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살전 2:13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겔 36:26-27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엡 6:6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여
18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직역 그리고 죄에게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다.
17절에서 시작한 문장이 여기서 끝납니다. 변화의 결과는 두 가지입니다. "죄에게서 해방되어", 그리고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여기에 기독교 자유의 역설이 있습니다. 우리는 '해방되었는데' 동시에 '종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는 자유가 아니라, 새 주인에게 속하는 자유입니다. 물고기의 자유는 물 밖으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물 안에서 마음껏 헤엄치는 것입니다. 기차의 자유는 레일을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레일 위를 달리는 것입니다. 사람의 참된 자유는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 주인은 옛 주인과 완전히 다릅니다. 죄는 우리를 착취하고 결국 사망이라는 삯을 줍니다(23절).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영생이라는 선물을 주십니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30)고 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분을 섬기는 것이 참 자유다."
종이 되었느니라에둘로테테 — 수동형. 우리가 스스로 의의 종이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의 종으로 삼으셨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8:32, 36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고전 7:22주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자는 종이라도 주께 속한 자유자요 또 그와 같이 자유자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은 자는 그리스도의 종이니라
갈 5: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마 11:29-30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나의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19전에 지체를 불법에 드렸듯, 이제는 의에게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
직역 너희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내가 인간적인 방식으로 말한다. 너희가 전에 너희 지체들을 더러움과 불법에 종으로 내어 주어 불법에 이르렀던 것처럼, 이제는 너희 지체들을 의에게 종으로 내어 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바울은 먼저 양해를 구합니다.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종'이라는 비유는 완벽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노예가 억지로 주인을 섬기는 것과 다릅니다. 그것은 사랑과 기쁨의 섬김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성도들이 영적인 진리를 쉽게 이해하도록 일상의 비유를 씁니다.
그리고 13절의 명령을 다시 반복합니다. 이번에는 과거와 현재의 대조로 말합니다. "전에" 너희는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렸고, 그 결과 더 깊은 불법에 이르렀습니다. 죄는 늘 더 많은 죄를 낳습니다. 처음에는 작은 거짓말이 다음에는 큰 거짓말이 되고, 처음에는 한 번의 타협이 다음에는 습관이 됩니다.
"이제는" 같은 열정으로, 같은 헌신으로 지체를 의에게 드리라는 것입니다. 전에 죄를 섬길 때 얼마나 열심이었습니까? 이제는 그만큼 하나님을 섬기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거룩함에 이르라"입니다. 죄가 더 많은 죄로 이어졌듯, 의를 섬기는 것은 점점 더 깊은 거룩함으로 이어집니다. 이것이 '성화'입니다. 한 번에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의에게 지체를 드리면서 조금씩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과정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람의 예대로 — 원문 안트로피논 레고, "인간적인 것을 말한다". 3:5 "내가 사람의 말하는 대로 말하노니"와 비슷합니다.
육신이 연약하므로 — 성도들의 '이해력의 한계'를 말하는 것으로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또는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쉽게 죄에 끌리므로 강한 비유가 필요하다'는 뜻으로 보기도 합니다.
거룩함하기아스모스 — '거룩하게 됨, 성화'. 22절,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히 12:14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에 쓰였습니다.
히 12: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벧전 1:14-16너희가 전에 알지 못할 때에 좇던 너희 사욕을 본삼지 말고… 나는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할지어다
엡 4:28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빈궁한 자에게 구제할 것이 있기 위하여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 같은 손을 다른 주인에게
레 11:44너희는 몸을 구별하여 거룩할지어다 이는 내가 거룩함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자유는 주인을 바꾸는 것입니다
세상은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는 것이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모든 사람이 무언가의 종이라고 말합니다. 진짜 질문은 '누구의 종인가'입니다.
죄는 처음엔 자유를 약속하지만 결국 우리를 사슬로 묶습니다. 하나님은 처음엔 순종을 요구하시는 것 같지만 결국 우리를 참으로 자유롭게 하십니다. 전에 죄를 섬기던 그 열정으로, 이제 하나님을 섬기십시오.
6:20–23그 마지막은 — 죄의 삯은 사망, 하나님의 선물은 영생
6장의 마지막 단락은 두 주인을 섬긴 결과를 비교합니다. 바울은 '열매'와 '마지막'이라는 단어로, 두 삶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가운데 하나인 6:23으로 마무리합니다.
20죄의 종이었을 때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다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하였느니라
직역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다.
날카로운 아이러니입니다. 죄의 종이었을 때도 우리는 '자유'로웠습니다. 다만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습니다. 의가 우리에게 아무것도 요구할 수 없었고, 우리는 의에게 아무 의무도 느끼지 않았습니다. 옳은 일을 하든 말든 신경 쓰지 않았습니다.
세상은 이것을 자유라고 부릅니다. "나는 아무 규칙에도 매이지 않아." 그러나 바울은 묻습니다. 그것이 정말 자유였는가? 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사실 죄에게 완전히 '매인' 사람이었습니다. 한쪽에서 자유로운 것은 다른 쪽에 묶인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의에 대하여테 디카이오쉬네 — 여격. 2절 "죄에 대하여 죽은"과 같은 구조입니다. 죄에 대해 죽기 전에는 의에 대해 '자유로운'(무관한) 상태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8:34죄를 범하는 자마다 죄의 종이라
벧후 2:19저희에게 자유를 준다 하여도 자기는 멸망의 종들이니
딛 3: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 한 자요
21그때 무슨 열매를 얻었는가? 지금은 부끄러운 것, 그 끝은 사망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
직역 그러면 그때 너희가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지금 너희가 부끄러워하는 그 일들이다. 그 일들의 끝은 사망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 정직하게 돌아보라고 합니다. "너희가 그 때에 무슨 열매를 얻었느뇨?" 죄의 종으로 살던 그때, 무엇을 얻었습니까? 당시에는 즐거웠고 자유로운 것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 삶이 남긴 열매는 무엇이었습니까?
"이제는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새 생명 안에서 돌아보니, 그 시절의 일들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입니다. 깨진 관계, 상처받은 사람들, 낭비한 시간, 잃어버린 순결. 죄는 당장은 달콤하지만 지나고 나면 수치만 남깁니다.
그리고 가장 무서운 것은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니라"입니다. 죄의 길은 결국 어디로 갑니까? 사망입니다. 육체의 죽음만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영원한 단절입니다. 잠언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원어 · 번역 노트
문장 구조 — 원문은 "그러면 그때 너희가 무슨 열매를 가졌느냐? (그것은) 지금 너희가 부끄러워하는 것들이다"로 끊어 읽는 방법과, "지금 부끄러워하는 그 일들에서 그때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로 이어 읽는 방법이 있습니다.
마지막텔로스 — '끝, 목적, 결과'. 22절과 10:4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텔로스)이 되시니라"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잠 14:12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약 1:15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갈 6: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엡 5:11-12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라
22이제는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의 열매를, 그 끝은 영생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직역 그러나 이제 너희는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너희의 열매를 가지고 있다. 그 끝은 영원한 생명이다.
21절과 정확한 대조입니다. "그러나 이제는." 로마서에서 반복되는 복음의 전환어가 다시 나옵니다.
이제 우리는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있습니다. 18절에서는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고 했는데, 여기서는 "하나님께 종이 되어"라고 합니다. 의를 섬기는 것은 결국 하나님 자신을 섬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인은 추상적인 원칙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이제 우리가 얻는 열매는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입니다. 죄의 열매는 부끄러움이었지만, 하나님의 종의 열매는 거룩함입니다. 갈라디아서 5:22-23의 성령의 열매, 곧 사랑, 희락, 화평, 오래 참음, 자비, 양선, 충성, 온유, 절제가 바로 그 열매입니다.
그리고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21절에서 죄의 길의 끝은 '사망'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종의 길의 끝은 '영생'입니다. 두 길은 출발점도 다르고, 지나는 길도 다르고, 도착지도 정반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얻었으니 — 원문 에케테, 현재형 "가지고 있다". 열매는 미래의 일이 아니라 지금 이미 맺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종이 되어둘로텐테스 토 테오 — 18절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와 같은 동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요 15:8, 16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빌 1:11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구하노라
벧전 1:9믿음의 결국 곧 영혼의 구원을 받음이라
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니라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직역 왜냐하면 죄의 삯은 사망이지만, 하나님의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이다.
6장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한, 로마서에서 가장 많이 외우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두 주인의 차이를 극명하게 보여 줍니다.
"죄의 삯은 사망이요." '삯'으로 번역된 단어는 로마 군인이 받던 급료나 배급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죄는 마치 사령관처럼 자기 군대(13절 '불의의 병기')에게 급료를 지급합니다. 그 급료는 '사망'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정확히 일한 만큼 받는 '정당한' 삯입니다. 죄를 섬긴 사람은 마땅히 받을 것을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니라." 여기서 바울은 일부러 단어를 바꿉니다. '하나님의 삯'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사', 곧 선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일한 대가로 영생을 '지급'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영생은 결코 우리가 벌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값없이 주시는 선물입니다(4:4-5, 5:15-17). 우리가 의의 종으로 거룩하게 사는 것(22절)조차 영생을 '버는' 수단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받은 선물을 누리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선물은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습니다. 영생은 그리스도와 따로 떨어진 어떤 물건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만 받을 수 있는 생명입니다. 요한일서 5:11-12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6장은 11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로 시작한 진리를 23절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로 마무리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삯옵소니아 — 원래 '생선(옵손)을 사기 위한 돈'에서 군인의 급료, 배급을 가리키게 된 말입니다. 눅 3:14 "받는 요(급료)를 족한 줄로 알라", 고전 9:7 "누가 자비량하고 병정을 다니겠느냐"에 쓰였습니다. 13절의 '병기(무기)'와 함께 군사적 그림을 완성합니다.
은사카리스마 — 5:15-16 "은사"와 같은 단어. '은혜(카리스)로 주어진 것'.
사망 / 영생 — 5:21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영생에 이르게"를 다시 울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2:17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요 3:16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일 5:11-12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엡 2:8-9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겔 18:4, 20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삯을 받겠습니까, 선물을 받겠습니까
로마서 6:23은 인생의 두 길을 보여 줍니다. 하나는 일한 만큼 받는 길입니다. 죄를 섬긴 대가는 정확히 '사망'입니다. 다른 하나는 값없이 받는 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은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선물은 받는 사람이 손을 내밀어야 자기 것이 됩니다. 아직 이 선물을 받지 않았다면, 오늘 그리스도께 손을 내미십시오. 이미 받았다면, 그 선물에 합당하게, 하나님의 종으로서 거룩함의 열매를 맺으며 사십시오.
Two Masters · 대조
두 주인, 두 길
6장에 나오는 대조를 한눈에 정리했습니다
전에 — 죄의 종
이제 — 하나님의 종
정체성
옛 사람 (6절)
새 생명 가운데 행하는 자 (4절)
관계
의에 대하여 자유 (20절)
죄에 대하여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하여 산 자 (11절)
지체의 용도
불의의 병기 (13절)
의의 병기 (13절)
지배
법 아래 (14절)
은혜 아래 (14절)
방향
불법에 이름 (19절)
거룩함에 이름 (19절)
열매
지금 부끄러운 것 (21절)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22절)
마지막
사망 (21, 23절)
영생 (22, 23절)
받는 방식
삯, 마땅한 급료 (23절)
은사, 값없는 선물 (23절)
Glossary · 단어 사전
6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거하다1절
계속 머물러 살다.
침례浸禮 · 3–4절
물에 잠그는 예식.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장사되고 살아남을 보여 줌. 『개역』은 '세례'.
장사葬事 · 4절
죽은 사람을 묻음. 죽음의 확정.
연합한 자5절
접붙여져 함께 자라는 사람. 그리스도께 일어난 일이 내게도 일어남.
옛 사람6절
아담 안에 있던 예전의 나 전체.
멸하다滅 · 6절
여기서는 '무력하게 하다, 힘을 잃게 하다'.
단번에10절
단 한 번으로 영원히. 반복이 필요 없음.
여기다11절
계산하다. 이미 사실인 것을 사실로 받아들임.
사욕私慾 · 12절
자기만을 위한 욕심.
지체肢體 · 13절
몸의 각 부분.
병기兵器 · 13절
무기, 도구.
교훈의 본17절
가르침의 틀, 거푸집. 복음이 삶을 빚는 모양.
거룩함 (성화)聖化 · 19, 22절
거룩하게 되어 가는 과정. 그리스도를 닮아 감.
삯23절
군인의 급료. 일한 만큼 마땅히 받는 것.
은사恩賜 · 23절
은혜로 주어진 선물. 값없이 받는 것.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은혜를 '핑계'로 삼고 싶었던 적이 있습니까? 6장은 그런 생각에 어떻게 답합니까? (1-2절)
나의 침례를 기억하십니까? 그날의 의미를 오늘 나의 삶과 연결해 나누어 보십시오. (3-4절)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 하나님께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기라"는 말씀을 이번 주 어떤 유혹 앞에서 붙잡아야 합니까? (11절)
내 몸의 지체(눈, 입, 손, 발, 시간, 재능) 중 아직 '불의의 병기'로 쓰이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13절)
나는 지금 무엇의 종으로 살고 있습니까? 돈, 인정, 두려움, 쾌락 중 나를 붙잡고 있는 것이 있습니까? (16절)
죄의 종이었던 '그때'와 하나님의 종인 '이제'를 비교할 때, 내 삶에 맺힌 열매는 어떻게 다릅니까? (21-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