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세부 강해 · Romans
8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성령 안의 삶

1절부터 39절까지 — 정죄함 없음에서 시작해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끝나는, 로마서의 정상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ROMANS 8:1
Introduction · 들어가며

8장 들어가며

7장의 "누가 나를 건져내랴"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

많은 사람들이 로마서 8장을 '성경 안의 성경', '로마서의 정상'이라고 부릅니다. 청교도 목회자 토머스 맨턴은 이 장으로 47편의 설교를 했고, 마르틴 로이드 존스는 8장 하나로 수년 동안 설교했습니다. 정죄함 없음(1절)으로 시작해서,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39절)으로 끝나는 이 장은 그리스도인의 확신의 노래입니다.

7장 끝에서 바울은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7:24)고 부르짖었습니다. 8장은 그 부르짖음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그 대답의 열쇠는 성령입니다. 7:7-25에는 '성령'이라는 말이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8장에는 스무 번 가까이 나옵니다. 율법은 할 수 없었지만 성령은 하십니다.

8장은 여섯 단락으로 흘러갑니다. ① 정죄함이 없다(1-4절) → ② 육신이 아니라 영을 따라 산다(5-11절) → ③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12-17절) → ④ 고난 중에 영광을 소망한다(18-25절) → ⑤ 성령께서 간구하시고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26-30절) → ⑥ 아무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31-39절).

핵심 인물

성령

8장에서 '영(프뉴마)'이 21번 나옵니다. 성령은 우리를 해방하시고(2절), 거하시고(9절), 살리시고(11절), 인도하시고(14절), 증거하시고(16절), 간구하십니다(26절).

뼈대

정죄 → 사랑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절)로 시작해 "누가 정죄하리요"(34절)를 지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절)로 끝납니다.

세 가지 탄식

피조물 · 우리 · 성령

22절 피조물이, 23절 우리가, 26절 성령께서 탄식하십니다. 고난의 현실과 영광의 소망이 함께 있는 장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정죄함이 없나니"원문 우덴 카타크리마, "아무 정죄도 없다". 강한 부정. 일부 사본(킹제임스)은 끝에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이 덧붙어 있습니다.
3절 "육신에 죄를 정하사"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다. 죄에 대해 유죄 판결을 내리고 형을 집행하셨다는 뜻.
6절 "생각"원문 프로네마는 '마음가짐, 사고방식'. 단순한 생각이 아니라 삶의 지향.
15절 "양자의 영"養子. 원문 휘오테시아는 '아들로 세움'. 로마법의 입양 제도.
15절 "아바"아람어 '아버지'. 예수님이 겟세마네에서 쓰신 말(막 14:36).
20절 "허무한 데"원문 마타이오테스, '헛됨, 목적을 잃음'. 전도서의 '헛되다'와 같은 단어(70인역).
23절 "처음 익은 열매"첫 수확물. 앞으로 올 전체 수확의 보증.
28절 "합력하여"함께 일하여. 일부 사본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합력하게 하사'.
35절 "적신"赤身, 벌거벗은 몸. 헐벗음, 입을 것이 없는 가난.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8:1–4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율법이 못한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

7장의 탄식 뒤에 8장의 첫마디는 '해방 선언'입니다. 이 네 절은 8장 전체의 기초입니다. 바울은 우리가 왜 정죄받지 않는지(1절), 어떻게 해방되었는지(2절), 하나님께서 무엇을 하셨는지(3절), 그 목적이 무엇인지(4절)를 차례로 말합니다.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직역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어떤 정죄도 없다.

성경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무엇 때문에 '그러므로'일까요? 7: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를 받으면서, 동시에 3-7장 전체, 곧 그리스도의 대속(3장),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4장), 아담과 그리스도(5장), 그리스도와의 연합(6장), 율법에서의 해방(7:1-6)을 모두 받는 '그러므로'입니다.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원문은 "어떤 정죄도 없다"입니다. 작은 정죄도, 일부의 정죄도, 나중에 다시 꺼낼 정죄도 없습니다. '정죄'는 5:16, 18에서 아담의 범죄로 모든 사람에게 내려진 유죄 판결이었습니다. 그 판결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완전히 취소되었습니다.

이것은 7장의 고백과 어떻게 연결될까요? 7장의 '나'는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원치 않는 악을 행하는 자신을 보며 절망했습니다. 그런데 8:1은 말합니다. 그 싸움 속에 있는 사람도,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정죄받지 않는다. 우리의 실패가 하나님의 판결을 바꾸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우리의 성적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완성된 일에 근거하기 때문입니다.

조건은 단 하나,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입니다. 내 행위 안에 있는 자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입니다. 노아의 방주 안에 있는 사람은 홍수에 휩쓸리지 않았습니다. 그 사람이 얼마나 착했는지가 아니라, 방주 '안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정죄 카타크리마 — '형벌을 동반한 유죄 판결'. 신약에서 롬 5:16, 18, 8:1에만 나옵니다. 고대 파피루스에서는 '벌금, 형벌'이라는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판결만이 아니라 그에 따르는 형벌까지 없다는 뜻입니다.
  • 사본 차이 — 일부 사본(킹제임스 성경의 바탕)에는 1절 끝에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이 붙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없고, 4절에서 옮겨 온 것으로 봅니다. 이 구절이 붙으면 '정죄함 없음'이 우리의 행위에 달린 것처럼 오해될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요 3:18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 요 5:24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 롬 5:1, 16, 18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 사 54:17무릇 일어나서 너를 대적하여 송사하는 혀는 네게 정죄를 당하리니
  • 롬 8:33-34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2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직역 왜냐하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기 때문이다.

왜 정죄함이 없을까요?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7:23에서 바울은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라고 탄식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더 강한 법이 왔습니다. "생명의 성령의 법."

여기서 '법'은 '원리, 작동 방식'에 가깝습니다. 중력의 법칙이 모든 것을 아래로 끌어당기듯, '죄와 사망의 법'은 사람을 죄로, 결국 사망으로 끌어당깁니다. 7장의 '나'는 아무리 위로 올라가려 해도 이 법칙에 끌려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비행기는 중력을 없애지 않고도 하늘을 납니다. 더 강한 '양력의 법칙'이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실 때, 죄의 끌어당김보다 강한 생명의 힘이 작동합니다.

"너를" — 원문은 단수 '너'입니다. 7장에서 단수 '나'가 탄식했다면, 8장에서 하나님은 단수 '너'를 해방하셨다고 선언하십니다. 탄식하던 바로 그 한 사람에게 주시는 개인적인 해방 선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법 노모스 — 2절에 두 번 나오는 '법'을 '원리'로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다른 해석은 첫 번째 '법'을 '성령으로 바르게 지켜지는 모세 율법'으로, 두 번째를 '죄가 악용하는 모세 율법'으로 봅니다. 어느 쪽이든 성령의 능력이 죄의 지배를 깨뜨린다는 것은 같습니다.
  • 너를 — 사본에 따라 "나를(메)", "너를(세)", "우리를(헤마스)"로 나뉩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은 '너를'입니다.
  • 해방하였음이라 엘류테로센 — 6:18, 22 "죄에게서 해방되어"와 같은 단어.
함께 읽을 말씀
  • 롬 7:23-25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 고후 3:6, 17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라…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
  • 갈 5:1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 요 8:36아들이 너희를 자유케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하리라
  • 겔 37:14내가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살게 하고
3율법이 할 수 없던 것을 하나님이 하셨다 — 아들을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심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직역 율법이 육신 때문에 연약하여 할 수 없었던 그것을,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그리고 죄를 위하여 보내셔서 육신 안에서 죄를 정죄하셨다.

어떻게 해방이 가능했을까요? 바울은 7장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 율법이 나빠서가 아닙니다(7:12). 율법은 거룩한 기준을 제시했지만, 그것을 지켜야 할 인간의 '육신'이 연약해서 지킬 수 없었습니다. 좋은 설계도가 있어도 재료가 썩었으면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니." 율법이 할 수 없었던 일을 하나님께서 직접 하셨습니다. 어떻게?

"자기 아들을… 보내어." 하나님은 천사나 선지자가 아니라 '자기 아들'을 보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오셨습니다. 바울은 단어를 매우 조심스럽게 고릅니다. '죄 있는 육신으로'라고 하면 예수님께 죄가 있다는 뜻이 되고, '육신의 모양으로'만 하면 진짜 사람이 아닌 것처럼 들립니다.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는 예수님이 우리와 똑같은 진짜 인간의 몸을 입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서 4:15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죄를 인하여" — 원문은 '죄에 관하여'로, 70인역 레위기에서 '속죄제'를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은 속죄제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육신에 죄를 정하사." 하나님은 죄를 '정죄'하셨습니다. 1절에서 우리에게 정죄가 없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정죄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다른 곳에 떨어졌습니다. 그리스도의 육신 위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정죄를 죄 자체가, 그리스도의 몸에서 받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할 수 없는 그것 — 원문 토 아뒤나톤 투 노무, "율법의 불가능함". 동사 없이 명사로 시작하는 독특한 문장입니다.
  • 모양 호모이오마 — 6:5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같은 모양으로)", 빌 2:7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에 쓰였습니다.
  • 죄를 인하여 페리 하마르티아스 — 70인역 레 5:6-7, 9:2 등에서 '속죄제'를 뜻하는 전문 용어입니다. 히 10:6, 8 "속죄제는"에서도 같은 표현이 쓰입니다.
  • 정하사 카테크리넨 — 1절 '정죄(카타크리마)'의 동사형. 우리에게 없는 정죄가 죄에게 내려졌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요 3:16-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 갈 4: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 빌 2:7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 히 4:15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 고후 5:21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 레 4:3그 범한 죄를 인하여 흠 없는 수송아지로 속죄제를 삼아 여호와께 드릴지니
4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직역 이는 육신을 따라 걷지 않고 성령을 따라 걷는 우리 안에서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성취되게 하려 하심이다.

3절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의 목적이 여기 있습니다.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놀라운 말입니다. 3:31에서 바울은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복음은 율법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율법이 원래 원했던 것을 실제로 이루어 냅니다.

율법의 '요구'는 단수입니다. 율법의 수많은 계명이 결국 하나의 요구로 모인다는 뜻입니다. 13:8-10에서 바울은 그것을 말합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 율법이 원했던 바로 그것이 이제 성령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동사가 수동태입니다. "이루어지게." 우리가 율법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 율법의 요구가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누가 이루십니까? 성령께서 하십니다. 에스겔 36:27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이것이 새 언약의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사람입니다. '행하다'는 '걷다'입니다. 6:4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와 같은 단어입니다. 한 번의 체험이 아니라 매일의 걸음입니다. 이 표현이 5-13절에서 자세히 펼쳐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요구 디카이오마 — 1:32 "하나님의 정하심", 2:26 "율법의 규례", 5:16, 18에 쓰인 단어. 여기서는 '율법이 요구하는 의'.
  • 우리에게 — 원문 엔 헤민, '우리 안에서'. 우리 '에 의해'가 아니라 우리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 그 영 — 원문은 정관사가 붙은 '그 영'. 성령을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겔 36:26-27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 렘 31:33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 롬 13:8-10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 갈 5:16, 22-23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 마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를 정죄하는 목소리에게

우리 안에는 여전히 정죄하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너는 또 넘어졌어", "너 같은 사람이 무슨 그리스도인이야." 그 목소리는 때로 내 양심이고, 때로 다른 사람이고, 때로 원수 마귀입니다.

그 목소리에게 로마서 8:1로 대답하십시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 정죄는 이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육신 위에 떨어졌습니다. 같은 죄로 두 번 형벌을 받는 법은 없습니다.

8:5–11육신의 생각과 영의 생각 — 성령이 거하시는 사람

4절에서 '육신을 좇는 것'과 '영을 좇는 것'이 나왔습니다. 바울은 이 두 삶의 방식을 대조합니다. 두 방식은 생각하는 것도, 향하는 곳도, 결과도 다릅니다. 그리고 9절에서 결정적인 질문을 던집니다. 너희 안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가?

5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한다

육신을 좇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좇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직역 왜냐하면 육신을 따라 사는 자들은 육신의 일들에 마음을 두고, 성령을 따라 사는 자들은 성령의 일들에 마음을 두기 때문이다.

사람이 어떤 존재인지는 그 사람이 무엇을 '생각'하는지로 드러납니다. 여기서 '생각하다'는 단순히 머리로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두다, 관심과 열정을 쏟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루 종일 무엇을 걱정하고, 무엇을 바라고, 무엇에 시간과 돈을 쓰는지, 그것이 우리의 '생각'입니다.

"육신을 좇는 자"는 하나님 없이 자기 힘과 자기 욕구를 중심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육신의 일', 곧 눈에 보이는 것, 당장의 만족, 자기 이익에 마음을 둡니다. "영을 좇는 자"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사는 사람입니다. 그는 '영의 일', 곧 하나님의 뜻, 하나님 나라,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둡니다. 골로새서 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원어 · 번역 노트
  • 생각하나니 프로네오 — 빌 2: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골 3:2, 롬 12:16 "서로 마음을 같이 하며"에 쓰였습니다. 머리와 마음과 의지를 모두 포함하는 '지향'입니다.
  • 육신을 좇는 자 — 원문 호이 카타 사르카 온테스, "육신을 따라 있는 자들". 존재 방식 자체를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3:1-2위엣 것을 찾으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 갈 5:16-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 마 6:21네 보물 있는 그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 빌 3:19-20그 마침은 멸망이요 저희의 신은 배요…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6육신의 생각은 사망,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직역 육신의 마음가짐은 사망이요, 성령의 마음가짐은 생명과 평화다.

두 생각의 결과입니다. 바울은 '사망에 이른다'가 아니라 "사망이요"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으로 '가는 길'일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이미 '사망'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된 삶은 살아 있어도 죽은 것입니다. 에베소서 2:1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삶은 그 자체가 생명이고 평안입니다. 미래에 받을 보상이기 전에, 지금 누리는 현실입니다. 5:1의 '하나님과의 화평'이 마음 깊이 흘러드는 것입니다. 이사야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이 구절은 우리가 매일 점검할 수 있는 기준이 됩니다. 지금 내 마음을 차지하고 있는 생각이 나를 불안과 메마름(사망)으로 끌고 가는지, 아니면 생명과 평안으로 이끄는지.

원어 · 번역 노트
  • 생각 프로네마 — 신약에서 롬 8:6, 7, 27에만 나오는 단어. 5절 동사 '프로네오'의 명사형으로, '마음가짐, 사고방식'.
함께 읽을 말씀
  • 사 26:3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하고 평강하도록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 갈 6: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엡 2:1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 요 6:63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7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 — 하나님의 법에 굴복할 수도 없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직역 왜냐하면 육신의 마음가짐은 하나님께 대한 적대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하나님의 율법에 복종하지 않고, 사실 복종할 수도 없다.

왜 육신의 생각은 사망일까요?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5:10에서 우리는 "원수 되었을 때에" 화목되었다고 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바로 그 원수의 마음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모른 척하는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대적하는 마음입니다.

그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7장의 '나'가 경험한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원하는데도 할 수 없었습니다. 육신은 하나님의 법을 '하지 않는' 것을 넘어 '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라 본성의 문제입니다. 고양이에게 짖으라고 할 수 없듯, 육신에게 하나님의 법을 지키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본성 자체를 새롭게 하시는 성령이 필요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굴복치 휘포타소 — '아래에(휘포) 줄 세우다(타소)'. 군대 용어. 10:3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13:1 "위에 있는 권세들에게 굴복하라"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5:10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 약 4:4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 렘 13:23구스인이 그 피부를, 표범이 그 반점을 변할 수 있느뇨
  • 요 3: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
8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직역 육신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결론입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아무리 착한 일을 하고, 아무리 종교적으로 열심이어도, 육신 안에 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습니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이것은 무서운 말이지만 동시에 해방의 말입니다. 우리가 자기 힘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애쓰던 모든 노력을 내려놓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길은 더 열심히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9절이 놀라운 소식을 전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육신에 있는 자들 — 5절 "육신을 좇는 자(카타 사르카)"와 같은 상태를 다르게 표현합니다. 7:5 "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과 같은 표현으로, 그리스도를 믿기 전의 상태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 롬 7:5우리가 육신에 있을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는 죄의 정욕이 우리 지체 중에 역사하여
  • 요 15:5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9하나님의 영이 너희 속에 거하시면 너희는 육신에 있지 않고 영에 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직역 그러나 하나님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는 육신 안에 있지 않고 영 안에 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는 그리스도께 속한 자가 아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에게로 돌아섭니다.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5-8절은 '육신에 있는 자'를 묘사했지만, 그리스도인은 그 사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에 있는' 사람입니다.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여기서 '거하다'는 7:17, 20에서 "내 속에 거하는 죄"에 쓰였던 바로 그 동사입니다. 7장에서는 죄가 내 안에 세 들어 살았습니다. 8장에서는 하나님의 영이 내 안에 사십니다. 새 집주인이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분명한 기준을 줍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성령은 '특별한 그리스도인'만 받는 추가 선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성령을 모시고 있습니다. 성령이 없으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영'이 같은 분을 가리킨다는 것도 중요합니다. 10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이라고 합니다. 성령께서 내주하시는 것은 곧 그리스도께서 내주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서 내주하시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집을 지으셨습니다(요 14:23).

원어 · 번역 노트
  • 거하시면 오이케이 — 7:17, 18, 20 "거하는 죄", 8:11 "거하시는 그의 영"에 쓰였습니다. 고전 3:16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만일 에이페르 — '만일'이지만 의심이 아니라 '~이므로, ~인 이상'에 가깝습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 안에 성령이 계심을 전제합니다.
  • 그리스도의 영 — 빌 1:19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 갈 4:6 "그 아들의 영", 벧전 1:11 "그리스도의 영"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3:16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고전 12:3, 13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 갈 4:6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 요 14:16-17, 23그는 진리의 영이라…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요일 4:13그의 성령을 우리에게 주시므로 우리가 그 안에 거하고 그가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을 아느니라
10그리스도께서 계시면 몸은 죄로 죽었으나 영은 의로 산다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직역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 때문에 죽은 것이지만 영은 의 때문에 생명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신다면 모든 것이 완성된 것일까요? 바울은 정직하게 말합니다. 아직은 아닙니다. "몸은 죄로 인하여 죽은 것이나." 우리 몸은 여전히 죄의 결과인 죽음 아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도 늙고, 병들고, 죽습니다. 6:12의 "너희 죽을 몸"입니다.

그러나 "영은 의를 인하여 산 것이니라." 우리 안에는 이미 새 생명이 있습니다. 그 생명은 '의',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주신 의 때문입니다. 겉사람은 낡아 가지만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집니다(고후 4:16).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이미와 아직'입니다. 영은 이미 살았지만, 몸은 아직 구속을 기다립니다. 그 긴장이 11절과 18-25절에서 이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영 — 여기서 '영(프뉴마)'이 사람의 영인지 성령인지 해석이 갈립니다. "영은 산 것이니라"(사람의 영)로도, "성령은 생명이시니라"(성령)로도 읽힙니다. 원문은 '산 것(조온)'이 아니라 '생명(조에)'입니다. 『새번역』은 "영은 의 때문에 살아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4:16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갈 2:20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 골 1:27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 고전 15: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11예수를 살리신 이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직역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분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신 그분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을 통하여 너희 죽을 몸들도 살리실 것이다.

10절의 "몸은 죽은 것이나"로 끝나지 않습니다.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몸도 결국 구속받습니다.

그 근거는 이렇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입니다.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바로 그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 살아 계십니다. 그렇다면 그 성령께서 예수님께 하신 일을 우리에게도 하시지 않겠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첫 열매'입니다(고전 15:20).

바울은 같은 표현을 두 번 반복합니다.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 반복은 확신을 강조합니다. 우리의 부활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예수님의 부활에 묶여 있는 확실한 미래입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에서 몸이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 줍니다. 기독교는 '영혼만 천국에 간다'는 신앙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 몸도 구속하시고 부활시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몸을 함부로 대하지 않고,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립니다(12:1).

원어 · 번역 노트
  • 살리시리라 조오포이에세이 — '생명을 만들다'. 4:17 "죽은 자를 살리시며", 고전 15:22, 36, 45 "살려 주는 영"에 쓰였습니다.
  •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 사본에 따라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디아 + 속격)" 또는 "그의 영 때문에(디아 + 대격)"로 나뉩니다. 뜻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 현재적 의미 — 일부 해석자는 이것을 마지막 날의 부활뿐 아니라, 지금 성령께서 우리 죽을 몸에 새 힘을 주셔서 순종하게 하시는 것으로도 봅니다(6:12-13과 연결).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5:20-23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 고전 6:14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 고후 4:14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자가 우리를 예수와 함께 다시 살리사
  • 빌 3:21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 겔 37:5-6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내 안에 누가 살고 계십니까

7장에서는 "내 속에 거하는 죄"가 있었습니다. 8장에서는 "너희 속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계십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 열심히 노력하는 삶이 아니라, 내 안에 계신 분께 삶의 주도권을 내어 드리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분은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바로 그 영이십니다. 내 안의 메마른 곳, 죽은 것 같은 곳에도 그분은 생명을 주실 수 있습니다. 오늘 내 생각이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 살피고, 성령께 마음을 열어 드리십시오.

8:12–17아바 아버지 — 성령께서 증거하시는 하나님의 자녀

바울은 5-11절의 진리를 실제 삶에 적용합니다(12-13절). 그리고 성령의 또 다른 사역을 소개합니다. 성령은 우리를 '인도'하시고,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십니다. 로마서에서 처음으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친밀한 관계가 나타납니다.

12우리는 빚진 자이지만 육신에게 빚진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직역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는 빚진 자다. 그러나 육신에게 빚져서 육신대로 살 자가 아니다.

"그러므로" —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 몸까지 살리실 것이라면(11절),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가 빚진 자로되." 우리는 빚을 진 사람입니다. 그런데 누구에게 빚졌습니까?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육신은 우리에게 아무것도 해 준 것이 없습니다. 육신이 준 것은 사망뿐이었습니다(6절). 우리는 육신에게 아무 의무도 없습니다. 육신이 아무리 "나를 따라라, 내가 원하는 대로 해라" 하고 요구해도, 우리는 그 빚을 갚을 의무가 없습니다.

바울은 문장을 완성하지 않지만, 그 뒷말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성령께, 하나님께 빚진 자입니다. 그 빚은 13절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이라는 삶으로 갚아 갑니다. 그러나 그것은 억지로 갚는 빚이 아니라 사랑으로 갚는 빚입니다(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원어 · 번역 노트
  • 빚진 자 오페일레테스 — 1:14 "내가 빚진 자라", 15:27 "그들에게 빚진 자니". 의무와 책임을 진 사람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6:12-13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 고전 6:19-20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 갈 5:13, 16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성령을 좇아 행하라
13육신대로 살면 죽고,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산다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직역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죽게 되어 있다. 그러나 성령으로 몸의 행실들을 죽이면 살 것이다.

두 길이 있습니다.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육신대로 계속 산다면, 그 끝은 사망입니다. 바울은 이 경고를 그리스도인에게 합니다. 은혜는 방종의 허가증이 아닙니다(6:1).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에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싸움이 있습니다. '몸의 행실'은 6:12-13에서 말한 것처럼, 죄가 우리 몸을 도구로 삼아 저지르는 행동들입니다. 그것을 '죽여야' 합니다. 이것은 신학에서 '죽임(mortification)'이라 부르는 성화의 한 면입니다.

중요한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영으로써'입니다. 우리 의지력으로 죄를 죽이려 하면 7장처럼 실패합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해야 합니다. 둘째, '죽이면'은 현재형입니다. 한 번 죽이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계속해서 죽여 가는 것입니다. 6장에서 우리의 옛 사람은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사실). 이제 그 사실에 근거해 매일 남아 있는 죄의 행실을 죽여 갑니다(실천).

청교도 존 오웬은 『죄 죽이기』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죄를 죽이든지, 아니면 죄가 당신을 죽일 것이다(Be killing sin or it will be killing you)."

원어 · 번역 노트
  • 반드시 죽을 것 — 원문 멜레테 아포트네스케인, "죽게 되어 있다, 죽을 운명이다".
  • 죽이면 타나토오 — 7:4 "율법에 대하여 죽임을 당하였으니"와 같은 동사. 골 3:5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네크로오)"와 비슷한 말입니다.
  • 몸의 행실 — 일부 사본은 "육신의 행실"입니다. 뜻은 같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갈 5:24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
  • 갈 6: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
  • 마 5:29-30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케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14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

직역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받는 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아들들이다.

13절의 '영으로써 죽이는' 삶이 어떻게 가능할까요? 성령께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령의 인도를 받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아들이라."

'인도함을 받다'는 현재 수동형입니다. 계속해서 이끌림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성령의 인도는 가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만 받는 특별한 신호가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죄를 거부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도록 이끄시는 지속적인 인도입니다. 문맥상(13절) 이 인도는 특히 거룩한 삶으로의 인도입니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아들'은 이스라엘에게 주어진 칭호였습니다. "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출 4:22).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듯이(구름 기둥과 불기둥), 이제 성령께서 우리를 죄의 종살이에서 이끌어 내십니다. 9:4에서 바울은 "양자 됨"이 이스라엘의 특권이었다고 말합니다. 그 특권이 이제 성령 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믿는 자에게 주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도함을 받는 아고 —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에 같은 동사가 쓰였습니다.
  • 아들 휘오스 — 14, 19절은 '아들(휘오이)', 16, 17, 21절은 '자녀(테크나)'. 바울은 두 단어를 거의 같은 뜻으로 씁니다. '아들'은 남성만이 아니라 상속권을 가진 지위를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4:22이스라엘은 내 아들 내 장자라
  • 갈 5:18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 갈 3:26너희가 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이 되었으니
  • 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시 23:2-3푸른 초장에 누이시며 쉴만한 물가으로 인도하시는도다…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15무서워하는 종의 영이 아니라 양자의 영 — 아바 아버지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직역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빠지게 하는 종살이의 영을 받지 않았고, 아들로 세우는 영을 받았다. 그 영 안에서 우리는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는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가져오시는 가장 큰 변화는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이전에 우리는 "무서워하는 종의 영" 아래 있었습니다. 종은 늘 두렵습니다. 주인이 화내지 않을까, 일을 잘못하면 쫓겨나지 않을까, 벌을 받지 않을까. 율법 아래 사는 사람의 신앙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지 않을까", "이 정도면 충분할까". 그 신앙은 두려움으로 움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로마 사회에서 입양은 중요한 법적 제도였습니다. 입양된 아이는 이전의 모든 빚과 관계가 청산되고, 새 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는 완전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친아들과 법적으로 똑같은 지위를 얻었습니다. 로마 황제들도 후계자를 입양으로 세웠습니다(아우구스투스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였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바'는 예수님이 쓰시던 아람어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어린아이가 아빠를 부르는 친밀한 말이기도 했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막 14:36)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이렇게 친밀하게 부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성령께서 우리에게도 예수님이 쓰시던 그 말로 하나님을 부르게 하십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은 자리에서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릅니다.

'부르짖다'는 큰 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어려움 속에서, 기쁨 속에서, 아이가 아빠를 부르듯 하나님을 부릅니다. 갈라디아서 4:6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원어 · 번역 노트
  • 양자 養子 / 휘오테시아 — '아들(휘오스)로 세움(티테미)'. 신약에서 바울만 쓰는 단어(롬 8:15, 23, 9:4, 갈 4:5, 엡 1:5). 유대 사회에는 입양 제도가 거의 없었지만, 그리스-로마 사회에서는 흔했습니다. 로마 교회 성도들에게 매우 생생한 그림이었습니다.
  • 아바 — 아람어 압바. 신약에 세 번 나오며(막 14:36, 롬 8:15, 갈 4:6), 모두 '아바 아버지(압바 호 파테르)'로 아람어와 헬라어를 나란히 씁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성도가 함께 부르던 기도의 말이었을 것입니다.
  • 다시 —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이전에는 두려움의 종살이 아래 있었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막 14:36아바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 갈 4:4-7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 엡 1:5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 요일 4:18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 딤후 1: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16성령이 친히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신다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직역 성령 자신이 우리 영과 함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증언하신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을까요? "성령이 친히… 증거하시나니." 성령께서 직접 증언하십니다.

그런데 "우리 영으로 더불어", 곧 우리 영과 '함께' 증언하십니다. 유대 법정에서는 두 증인의 증언이 있어야 사실이 확정되었습니다(신 19:15). 우리 영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다"라고 믿음으로 고백하고, 성령께서는 그 고백이 맞다고 함께 증언하십니다. 15절에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짖을 때, 그 부르짖음 자체가 성령의 증거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면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이 증거는 감정적인 체험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때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되는 마음, 하나님의 말씀이 내 아버지의 말씀으로 들리는 것, 죄를 미워하고 거룩을 사랑하게 되는 변화(13-14절), 형제자매를 사랑하는 마음(요일 3:14). 이 모든 것이 성령께서 내 안에서 하시는 증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더불어 증거하시나니 쉼마르튀레이 — '함께 증언하다'. 2:15 "양심이 증거가 되어", 9:1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에 쓰였습니다.
  • 성령이 친히 — 원문 아우토 토 프뉴마, "그 영 자신이". 26절 "성령이… 친히 간구하시느니라"와 같은 표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갈 4:6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 요일 3:1-2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 요일 5:10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자는 자기 안에 증거가 있고
  • 엡 1:13-14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 신 19:15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17자녀이면 상속자 —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받고 함께 영광받으리라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직역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다.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와 함께 고난을 받는다면 말이다.

자녀가 되면 무엇이 따라옵니까? 상속입니다. 로마법에서 입양된 아들은 친아들과 똑같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후사", 곧 하나님의 상속자입니다. 무엇을 상속받습니까? 4:13에서 아브라함에게 약속된 "세상"이고, 무엇보다 하나님 자신입니다(시 16:5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그리고 더 놀라운 것은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입니다. 원문은 '공동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모든 것을 우리가 함께 받습니다. 그리스도의 몫과 우리의 몫이 같습니다. 예수님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요 17:2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한 가지를 덧붙입니다.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상속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길을 함께 걷는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거쳐 영광에 들어가셨듯(눅 24:26), 우리도 고난을 거쳐 영광에 이릅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증거가 아니라, 오히려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증거입니다. 이 말이 18절의 "현재의 고난"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후사 後嗣 / 클레로노모스 — 4:13-14 "세상의 후사", 갈 4:7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 함께 한 후사 쉥클레로노모이 — '함께(쉰) 상속자'. 엡 3:6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히 11:9, 벧전 3:7에 쓰였습니다.
  • 함께 — 17절에만 '함께(쉰)'가 붙은 단어가 세 번 나옵니다. 함께 상속자, 함께 고난, 함께 영광.
함께 읽을 말씀
  • 갈 4:7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 요 17:22, 24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저희에게 주었사오니
  • 눅 24:26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 빌 3:10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 벧전 4:13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시 16:5-6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종입니까, 자녀입니까

많은 그리스도인이 여전히 종의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합니다. "하나님이 나를 벌하실까 봐", "이만큼은 해야 사랑받을 것 같아서." 그러나 성령은 우리를 종이 아니라 자녀로 부르셨습니다.

오늘 기도할 때 "아바, 아버지"라고 불러 보십시오. 그것은 버릇없는 말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 입에 넣어 주신 말입니다. 자녀는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으로 순종합니다. 그리고 자녀에게는 아버지의 모든 것이 약속되어 있습니다.

8:18–25탄식하는 피조물과 우리 — 고난을 넘어서는 영광의 소망

17절 "고난도 함께 받아야"를 받아, 바울은 고난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룹니다. 그리고 시야를 우주 전체로 넓힙니다. 고난받는 것은 우리만이 아닙니다. 온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탄식은 죽음의 신음이 아니라 해산의 진통입니다. 새로운 것이 태어나기 직전의 고통입니다.

18현재의 고난은 장차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직역 나는 계산해 본다. 지금 이때의 고난들은 장차 우리에게 계시될 영광에 비하면 견줄 만한 것이 못 된다.

"생각건대"는 '계산해 보니'라는 뜻입니다. 4장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계산하셨다)'고 할 때 쓴 단어입니다. 바울은 감정적으로 "괜찮을 거야"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저울 양쪽에 고난과 영광을 올려놓고 냉정하게 계산합니다.

그 결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입니다. '비교할 수 없다'는 원래 저울에 올려놓을 가치조차 없다는 뜻입니다. 영광 쪽이 너무 무거워서 고난 쪽이 저울에서 튕겨 나갑니다. 고린도후서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고난은 '잠시'이고 '가볍고', 영광은 '영원'하고 '무겁습니다'.

이 말을 한 사람이 누구인지 기억해야 합니다. 바울은 고난을 모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다섯 번 매를 맞고, 세 번 태장을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굶주리고, 헐벗었습니다(고후 11:23-27). 그런 사람이 계산해 보니 비교가 안 된다고 말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생각건대 로기조마이 — 3:28 "인정하노라", 6:11 "여길지어다"와 같은 단어.
  •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원문 우크 악시아… 프로스, '~에 견주어 무게(가치)가 없다'. '악시오스'는 원래 저울이 기울어질 만큼 무겁다는 뜻입니다.
  • 나타날 아포칼뤼프테나이 — '계시되다, 덮개가 벗겨지다'. 영광은 이미 있지만 아직 가려져 있다가 드러날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4:16-18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벧전 1:6-7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 고후 11:23-27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 계 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19피조물이 고대하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직역 왜냐하면 피조물이 고개를 빼고 간절히 기다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놀랍게도 '피조물', 곧 하늘과 땅, 산과 바다, 나무와 동물, 자연 세계 전체를 마치 사람처럼 그립니다. 피조물이 무언가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고대하다'로 번역된 단어는 매우 생생합니다. '머리(카라)'를 '멀리(아포)' 내밀고 '기다리다(도케오)'. 마치 기차역에서 오는 사람을 기다리며 목을 길게 빼고 플랫폼 끝을 바라보는 모습입니다. 온 피조물이 그렇게 목을 빼고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무엇을 기다립니까?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 지금 하나님의 자녀들은 겉으로 보기에 다른 사람들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의 영광은 아직 감추어져 있습니다(골 3:3-4). 그러나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 하나님의 자녀들의 참모습이 온 세상에 드러날 것입니다. 피조물은 바로 그날을 기다립니다. 왜일까요? 21절이 답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피조물 크티시스 — 1:20, 25 "창세로부터… 조물주"와 같은 어근. 19-22절에서 '피조물'은 사람을 제외한 창조 세계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 고대하는 바 아포카라도키아 — 신약에서 여기와 빌 1:20 "나의 간절한 기대"에만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3:3-4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었음이니라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
  • 요일 3:2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 시 96:11-13하늘은 기뻐하고 땅은 즐거워하며… 그가 임하시되 땅을 판단하러 임하실 것임이라
  • 사 55:12산들과 작은 산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20피조물이 허무에 굴복한 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 굴복케 하신 분 때문 — 소망 안에서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직역 피조물이 허무함에 굴복하게 된 것은 자기 뜻이 아니라 그것을 굴복시키신 분 때문이었으니, 그것은 소망 안에서였다.

왜 피조물이 그렇게 간절히 기다릴까요? 피조물도 지금 고통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허무'는 70인역 전도서에서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의 '헛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원래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심히 좋게' 지으셨습니다(창 1:31). 그런데 지금 피조물은 원래의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헛됨' 속에 있습니다. 꽃은 피었다가 시들고, 동물은 서로 잡아먹고, 지진과 홍수와 질병이 있습니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요?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피조물이 스스로 타락한 것이 아닙니다. 아담이 죄를 지었을 때, 하나님께서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너는 종신토록 수고하여야 그 소산을 먹으리라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창 3:17-18)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죄 때문에 인간이 다스려야 할 피조물도 함께 저주 아래 놓였습니다.

그러나 이 구절의 마지막(개역은 21절 앞에 둠)은 "바라는 것은", 곧 '소망 안에서'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을 허무에 굴복시키실 때 영원히 버려 두신 것이 아니라, 소망을 남겨 두셨습니다. 창세기 3:15에서 이미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을 주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허무 마타이오테스 — 1:21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마타이오오)"와 같은 어근. 사람이 하나님을 버리고 허망해졌을 때, 피조물도 함께 허무에 빠졌습니다.
  • 굴복케 하시는 이 — 하나님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일부는 아담이나 사탄으로 보기도 하지만, '소망 안에서' 굴복시킬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 절 나눔 — 원문에서 '소망 안에서(에프 헬피디)'는 20절 끝에 있습니다. 『개역』은 이를 21절 "그 바라는 것은"으로 옮겼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3:17-19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땅이 네게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낼 것이라
  • 전 1:2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창 3:15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창 1:31하나님이 그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21피조물도 썩어짐에서 해방되어 하나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리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직역 그 소망은 피조물 자신도 부패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들어가는 것이다.

피조물의 소망이 무엇입니까?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지금 모든 피조물은 '썩어짐'의 종살이를 합니다. 모든 것은 낡고, 썩고, 죽습니다. 과학에서 말하는 '엔트로피'처럼, 세상은 점점 무질서와 소멸을 향해 갑니다. 피조물도 6장의 우리처럼 '종노릇'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피조물도 해방될 것입니다. 언제?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 하나님의 자녀들이 영광 중에 드러날 때, 피조물도 함께 해방됩니다. 사람의 죄 때문에 피조물이 저주 아래 들어갔듯, 사람의 구속과 함께 피조물도 구속받습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사 65:17, 벧후 3:13, 계 21:1).

이것은 매우 중요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사람의 영혼만 건져서 다른 곳으로 옮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신 온 세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가 지으신 세상을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과 자연을 함부로 대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썩어짐 프토라 — 고전 15:42, 50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갈 6:8 "썩어진 것을 거두고"에 쓰였습니다. 1:23 "썩어질"과 같은 어근입니다.
  • 영광의 자유 — "영광스러운 자유"(형용사적)로도, "영광에 속한 자유"로도 읽힙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65:17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 사 11:6-9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나의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니
  • 벧후 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계 21:1, 5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 행 3:21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22온 피조물이 함께 탄식하며 해산의 고통을 겪고 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직역 우리는 안다. 온 피조물이 지금까지 함께 신음하며 함께 해산의 진통을 겪고 있다는 것을.

첫 번째 탄식은 피조물의 탄식입니다.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자연재해, 동물의 고통, 환경의 파괴, 모든 생명의 죽음. 이것은 피조물 전체의 신음 소리입니다.

그런데 그 고통은 어떤 고통입니까? "함께 고통하는"으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해산의 진통'을 뜻합니다. 이것은 죽어 가는 자의 신음이 아니라, 아기를 낳는 산모의 진통입니다. 산모의 고통은 극심하지만 의미 없는 고통이 아닙니다. 그 끝에 새 생명이 태어납니다. 예수님도 "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그 때가 이르렀으므로 근심하나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요 16:21)고 하셨습니다.

지금 세상의 모든 고통은 새 하늘과 새 땅이 태어나기 위한 해산의 진통입니다. 고통은 실제이고 극심하지만, 그것이 마지막이 아닙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탄식하며 쉬스테나조 — '함께(쉰) 신음하다'. 23절 "우리까지도… 탄식하여(스테나조)", 26절 "말할 수 없는 탄식(스테나그모스)"으로 이어집니다.
  • 고통하는 쉬노디노 — '함께 해산의 고통을 겪다'. 갈 4:19 "다시 너희를 위하여 해산하는 수고를 하노니"(오디노). 유대 묵시 문학에서 메시아 시대 직전의 고난을 '메시아의 해산 진통'이라 불렀습니다(막 13:8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직역 '해산 고통의 시작').
함께 읽을 말씀
  • 요 16:21여자가 해산하게 되면… 아기를 낳으면 세상에 사람 난 기쁨을 인하여 그 고통을 다시 기억지 아니하느니라
  • 막 13:8처처에 지진이 있으며 기근이 있으리니 이는 재난의 시작이니라
  • 사 66:7-8시온은 구로하는 즉시에 그 자민을 순산하였도다
  • 렘 12:4언제까지 이 땅이 슬퍼하며 온 지방의 채소가 마르리이까
23성령의 첫 열매를 받은 우리도 탄식하며 몸의 구속을 기다린다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직역 그뿐 아니라 성령의 첫 열매를 가진 우리 자신도 속으로 신음하며, 양자 됨,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간절히 기다린다.

두 번째 탄식은 우리의 탄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통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우리도 병들고, 늙고,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여전히 죄와 싸웁니다. 고린도후서 5:2, 4 "과연 여기 있어 탄식하며… 이 장막에 있는 우리가 짐진 것같이 탄식하는 것은."

그러나 우리의 탄식은 소망 없는 탄식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사람입니다. 구약에서 첫 수확한 곡식이나 열매를 하나님께 드렸습니다(레 23:10). 첫 열매는 앞으로 올 전체 수확의 '맛보기'이자 '보증'입니다. 첫 열매가 익었다면 나머지도 곧 익을 것입니다. 성령은 우리가 앞으로 받을 모든 영광의 첫 몫입니다. 지금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이 장차 올 완전한 구원의 보증입니다(엡 1:14).

무엇을 기다립니까?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15절에서 우리는 이미 '양자의 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23절에서는 '양자 될 것'을 기다린다고 합니다. 모순일까요? 아닙니다. 이것이 '이미와 아직'입니다. 우리는 이미 법적으로 하나님의 자녀입니다(15절). 그러나 그 자녀 됨이 완전히 드러나는 것, 곧 우리 몸까지 구속받아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은 아직 기다립니다. 입양 서류에는 이미 서명이 끝났지만, 아버지 집에 실제로 들어가 사는 날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처음 익은 열매 아파르케 — 11:16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16:5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 고전 15:20, 23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엡 1:14 "우리 기업에 보증(아라본)"과 비슷한 개념입니다.
  • 기다리느니라 아페크데코마이 — '간절히 기다리다'. 19, 23, 25절, 고전 1:7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심을 기다림이라", 빌 3:20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5:2-5과연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라…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 엡 1:13-14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 빌 3:20-21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 레 23:10너희 곡물의 첫 이삭 한 단을 제사장에게로 가져갈 것이요
  • 고전 15:42-44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24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다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직역 우리는 소망 안에서 구원받았다. 그러나 보이는 소망은 소망이 아니다. 누가 보는 것을 바라겠는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우리의 구원은 이미 받은 것이지만(과거형), 그 구원의 완성은 아직 소망 속에 있습니다. 구원은 지금 '소망'의 형태로 우리 손에 있습니다. 약혼 반지를 받은 사람이 결혼식을 기다리는 것처럼, 우리는 확실한 약속을 받고 그 완성을 기다립니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이미 손에 쥐고 눈으로 보는 것을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소망은 본질적으로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합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그러니 지금 우리 몸의 구속과 새 하늘 새 땅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그것이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기 때문에 '소망'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소망으로 — 원문 테 엘피디, 여격. "소망 안에서", "소망을 품은 채로", 또는 "소망을 위하여" 등으로 읽힙니다.
  • 구원을 얻었으매 에소테멘 — 부정과거형. 로마서에서 '구원'은 주로 미래형인데(5:9-10, 10:9, 13), 여기서는 과거형입니다. 구원의 '이미'와 '아직'을 한 문장에 담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히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 고후 5:7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
  • 고후 4:18우리의 돌아보는 것은 보이는 것이 아니요 보이지 않는 것이니 보이는 것은 잠간이요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함이니라
  • 벧전 1:3-5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25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라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직역 그러나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란다면, 우리는 인내로 간절히 기다린다.

소망은 우리를 '기다리는 사람'으로 만듭니다. 그런데 어떻게 기다립니까? "참음으로." 5:3-4에서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서는 소망이 다시 인내를 낳습니다. 인내와 소망은 서로를 붙들어 줍니다.

'참음'은 수동적으로 손 놓고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5:3에서 본 것처럼, 무거운 짐 아래서도 도망가지 않고 버티며 앞으로 나아가는 적극적인 인내입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고 수확을 기다리듯(약 5:7), 우리는 일하면서, 섬기면서, 기도하면서 기다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참음 휘포모네 — 2:7 "참고 선을 행하여", 5:3-4 "환난은 인내를", 15:4-5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에 쓰였습니다.
  • 기다릴지니라 — 원문은 직설법 "기다린다". 명령이라기보다 소망을 가진 사람의 자연스러운 모습을 묘사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약 5:7-8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 사 40: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 시 130:5-6나 곧 내 영혼은 여호와를 기다리며 내가 그 말씀을 바라는도다 파숫군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 히 10:36너희에게 인내가 필요함은 너희가 하나님의 뜻을 행한 후에 약속을 받기 위함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지금의 고통은 해산의 진통입니다

세상은 신음하고 있고, 우리도 신음합니다. 바울은 그 고통을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 고통이 죽음의 신음이 아니라 해산의 진통이라고 말합니다. 새로운 무언가가 태어나기 직전입니다.

지금 고통 중에 있다면, 그 고통이 끝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은 장차 올 영광의 첫 열매입니다. 저울의 한쪽에 지금의 고통을, 다른 쪽에 장차 올 영광을 올려놓아 보십시오.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8:26–30성령께서 간구하시고 하나님께서 합력하여 선을 이루신다

세 번째 탄식은 성령의 탄식입니다. 피조물이 탄식하고(22절), 우리가 탄식하는데(23절), 성령께서도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간구하십니다(26절). 우리는 고난 속에서 홀로 신음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고난 속에서도 확신할 수 있는 근거를 제시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고(28절),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구원의 '황금 사슬'로 우리를 붙드십니다(29-30절).

26성령께서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직역 마찬가지로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신다. 우리는 마땅히 무엇을 위해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하지만, 성령 자신이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신다.

"이와 같이 성령도." 피조물이 탄식하고 우리가 탄식하는 것처럼, 성령께서도 탄식하십니다. 우리의 고난 속에 성령께서 함께 들어오십니다.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돕다'로 번역된 단어는 매우 아름답습니다. '함께(쉰)' + '맞은편에서(안티)' + '붙잡다(람바노)'. 무거운 짐을 혼자 들 수 없을 때, 누군가 맞은편에서 짐의 다른 쪽을 함께 들어 주는 모습입니다. 성령은 우리 짐을 대신 들어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드십니다.

특히 성령께서 도우시는 연약함은 기도입니다.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고난이 너무 클 때, 우리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릅니다. 고통을 없애 달라고 해야 할지, 견딜 힘을 달라고 해야 할지. 때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고 그저 신음만 나옵니다. 바울 자신도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의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고후 12:9)였습니다.

그때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우리가 말을 잃었을 때, 성령께서 우리 대신 기도하십니다. 우리의 신음이 성령의 신음과 합쳐져 하나님께 올라갑니다. 우리가 기도를 '잘' 해야만 하나님이 들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도,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기도하고 계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도우시나니 쉬난틸람바노마이 — 신약에서 여기와 눅 10:40(마르다가 "저를 명하여 나를 도와주라 하소서")에만 나옵니다. 70인역 출 18:22 "그들이 너와 함께 담당할 것인즉", 민 11:17에서 모세의 짐을 장로들이 '함께 지는' 데 쓰였습니다.
  • 말할 수 없는 탄식 — 원문 스테나그모이스 알랄레토이스. '말로 표현되지 않는', 또는 '말이 필요 없는'. 이것을 방언 기도로 보는 해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깊은 중보로 이해합니다.
  •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휘페렌튕카네이 — '위하여(휘페르) 중재하다(엔튕카노)'.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27절, 34절(그리스도의 간구)과 연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12:7-9이것이 내게서 떠나가게 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 엡 6:18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 유 1:20성령으로 기도하며
  • 시 38:9주여 나의 모든 소원이 주의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의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
  • 출 2:23-24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27마음을 살피시는 하나님이 성령의 생각을 아신다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직역 그리고 마음을 살피시는 분은 성령의 생각이 무엇인지 아신다. 성령께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성도들을 위하여 중재하시기 때문이다.

성령의 탄식이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실까요?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하나님은 마음을 살피시는 분입니다(삼상 16:7). 말이 없어도 마음을 아십니다. 그리고 성령은 하나님의 영이시니, 아버지와 성령 사이에는 완벽한 소통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안심할 수 있습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우리 기도는 종종 잘못된 것을 구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기도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과 일치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몰라도, 성령께서 바로 그것을 정확하게 구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대로 구하는 기도는 반드시 응답됩니다(요일 5:14).

원어 · 번역 노트
  • 감찰하시는 에라우나오 — '샅샅이 살피다'. 고전 2:10 "성령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나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계 2:23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에 쓰였습니다.
  • 성도 하기오이 — 1:7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과 같은 단어. 모든 신자를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삼상 16:7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시 139:1-4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 고전 2:10-11성령은 모든 것을 통달하시나니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 요일 5:14-15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28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직역 우리는 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들, 곧 그분의 목적을 따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함께 일하게 하셔서 선을 이루신다는 것을.

성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고, 동시에 가장 많이 오해받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문맥 안에서 정확하게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26절에서 우리는 무엇을 기도해야 할지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만은 '압니다'. 고난 속에서 많은 것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신다는 것은 압니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에는 18-27절에서 말한 고난, 탄식, 연약함이 다 포함됩니다. 좋은 일만이 아니라 나쁜 일도, 기쁨만이 아니라 슬픔도, 성공만이 아니라 실패도. 그 모든 것이 '합력하여', 곧 함께 일하여 선을 이룹니다. 하나하나는 선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약 하나하나는 독일 수 있지만, 의사가 정확하게 섞으면 병을 고치는 약이 됩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창 50:20)라고 말했습니다.

그렇다면 '선'은 무엇입니까? 오해하기 쉬운 부분입니다. 이 구절은 "그리스도인에게는 결국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29절이 그 '선'의 내용을 말합니다.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하나님이 이루시는 선은 우리의 편안함이나 성공이 아니라, 우리가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입니다. 고난이 그 목적을 위해 쓰인다면, 고난조차 '선'입니다.

이 약속은 누구에게 주어집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두 가지로 설명합니다. 우리 쪽에서 보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이고, 하나님 쪽에서 보면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부르셨기 때문입니다(요일 4:19).

원어 · 번역 노트
  • 합력하여 쉬네르게이 — '함께(쉰) 일하다(에르곤)'. 영어 synergy의 어원. 일부 오래된 사본에는 "하나님이(호 테오스)"가 들어 있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력하게 하사"로 읽힙니다.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이 서로 협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하신다". 어느 쪽이든 그 일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모든 것이 '저절로' 잘 되는 것이 아닙니다.
  • 뜻 프로테시스 — '미리(프로) 세움(테시스)', 곧 목적, 계획. 9:11 "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엡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50: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 엡 1: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 고후 4: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 약 1:2-4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 요일 4:19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9미리 아신 자들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도록 미리 정하셨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직역 하나님께서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양이 되도록 미리 정하셨다. 이는 그 아들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다.

28절의 '선'이 무엇인지 여기서 밝혀집니다. 하나님의 최종 목적은 우리를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27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나 죄로 그 형상은 깨지고 일그러졌습니다(1:23, 3:23). 그리스도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골 1:15)이십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깨진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 곧 원래의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시키는 것입니다. 모든 고난과 기쁨, 모든 '합력'은 이 하나의 목적을 향해 갑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외아들 하나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아들을 닮은 '많은 형제'가 있는 큰 가족을 원하셨습니다. 그리스도는 그 가족의 '맏아들'이십니다. 맏아들은 처음 난 자이면서 동시에 가족의 으뜸이고 상속의 대표입니다. 히브리서 2:11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미리 아신"과 "미리 정하셨으니"는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택을 말합니다. 이 구원은 우리에게서 시작된 것이 아니라 영원 전 하나님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여기서 '미리 아심'은 단순히 정보를 미리 아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 의미에서 '사랑으로 알고 택하심'입니다. 아모스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예레미야 1:5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예정에 관한 해석은 9장 '더 깊이'에서 더 다룹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미리 아신 프로에그노 — 11:2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되신 자나". 성경에서 '알다(야다)'는 친밀한 관계와 선택을 뜻합니다(창 4:1, 암 3:2).
  • 미리 정하셨으니 프로오리조 — '미리(프로) 경계를 긋다(호리조)'. 1:4 "인정되셨으니(호리조)"와 같은 어근. 엡 1:5, 11 "예정하사", 행 4:28에 쓰였습니다.
  • 본받게 쉼모르포스 — '함께(쉰) 모양(모르페)'. 빌 3:21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12:2 "본받지 말고(쉬스케마티조)… 변화를 받아(메타모르포오)"와 연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1:26-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 골 1:15, 18그는 보이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니…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 고후 3:18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 요일 3:2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 히 2:10-11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
  • 엡 1:4-5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30미리 정하신 자를 부르시고, 의롭다 하시고, 영화롭게 하셨다 — 구원의 황금 사슬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직역 그리고 미리 정하신 자들, 그들을 또한 부르셨고, 부르신 자들,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셨고, 의롭다 하신 자들,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다.

29-30절은 교회 역사에서 '구원의 황금 사슬'이라고 불립니다. 다섯 개의 고리가 영원 전부터 영원까지 끊어짐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미리 아심 → 미리 정하심 → 부르심 → 의롭다 하심 → 영화롭게 하심.

이 사슬에서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첫째, 모든 동사의 주어가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한 일은 하나도 없습니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일입니다. 둘째, 한 고리도 빠지지 않습니다. 미리 정하신 '그들을'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영화롭게 하십니다. 중간에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은 반드시 영화롭게 됩니다.

셋째, 가장 놀라운 것은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가 과거형이라는 것입니다. 영화(우리 몸의 구속과 완전한 영광)는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18, 23절). 그런데 바울은 이미 이루어진 일처럼 과거형으로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일은 이미 이루어진 것과 같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는 미래도 이미 완료된 과거처럼 확실합니다. 4:17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

그래서 이 사슬은 고난 중에 있는 성도에게 가장 큰 위로가 됩니다. 지금 내 형편이 아무리 흔들려도, 하나님의 사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일은 반드시 끝을 내십니다(빌 1:6). 이 확신이 31-39절의 승리의 노래로 터져 나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부르시고 에칼레센 — 28절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연결. 단순한 초대가 아니라 실제로 사람을 믿음으로 이끄는 '효과적인 부르심'(고전 1:9, 24)을 가리킵니다.
  • 성화는 어디에? — 이 사슬에 '거룩하게 하심(성화)'이 빠져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29절의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가 바로 성화의 목적이고, 영화는 성화의 완성입니다.
  • 예언적 과거 — 구약 선지자들도 미래의 확실한 일을 과거형으로 말하곤 했습니다(사 53장 "그는 찔렸고… 상하였고"). 이를 '예언적 완료'라고 부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빌 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 요 6:37, 39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자는 다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주신 자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 요 10:28-29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 살후 2:13-14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 고전 1:9너희를 불러 그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더불어 교제케 하시는 하나님은 미쁘시도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

너무 아프면 기도가 나오지 않습니다. 무엇을 구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그저 한숨만 나옵니다. 바로 그때 성령께서 우리 대신 기도하고 계십니다. 우리의 한숨이 성령의 탄식과 합쳐져 아버지께 올라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든 것, 아픔까지도 사용하셔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빚어 가십니다. 지금 이해되지 않는 일들도, 하나님의 황금 사슬 안에 있습니다. 시작하신 분이 끝내실 것입니다.

8:31–39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로마서 1-8장의 절정입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말한 모든 것, 곧 칭의, 화목, 연합, 성령, 자녀 됨, 소망, 황금 사슬을 하나로 모아 승리의 찬송을 부릅니다. 이 단락은 마치 법정 장면처럼 시작해서(누가 고발하리요? 누가 정죄하리요?), 전쟁터를 지나(환난이나 칼이랴?), 온 우주를 향한 선언으로 끝납니다(아무것도 끊을 수 없다).

바울은 다섯 개의 질문을 던집니다. 그리고 그 질문들은 대답이 필요 없는 질문들입니다. 답은 이미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31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직역 그렇다면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엇이라 말하겠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니,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는가?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로마서에서 이 질문은 보통 반론을 꺼낼 때 썼습니다(3:5, 6:1, 7:7). 그런데 여기서는 반론이 아니라 감탄입니다. 지금까지 말한 이 놀라운 일들 앞에서 무슨 말을 더 할 수 있겠느냐는 것입니다.

첫 번째 질문: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만일'은 의심이 아니라 '~이시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는 것은 1-30절이 이미 증명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습니까? 물론 대적하는 자는 많습니다. 세상, 마귀, 고난, 우리 자신의 죄. 바울은 그들이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우리를 '이길' 수 없다고 말합니다. 하나님보다 강한 대적은 없기 때문입니다.

시편 118:6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엘리사의 종이 아람 군대에 포위된 것을 보고 두려워했을 때, 엘리사는 "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종의 눈이 열리자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했습니다(왕하 6:16-17).

원어 · 번역 노트
  • 위하시면 휘페르 헤몬 — '우리를 위하여, 우리 편에'. 32절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휘페르) 내어 주신"과 같은 전치사.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아들을 내어 주신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118:6-7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꼬
  • 시 56:9-11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가 물러가리니 하나님이 나를 도우심인 줄 아나이다… 내가 하나님을 의지하였은즉 두려워 아니하리니
  • 왕하 6:16-17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한 자가 저와 함께한 자보다 많으니라
  • 사 41: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 히 13:6주는 나를 돕는 자시니 내가 무서워하지 아니하겠노라 사람이 내게 어찌하리요
32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주신 분이 무엇을 주지 않으시겠느냐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직역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그를 내어 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혜로 주시지 않겠는가?

두 번째 질문입니다. 31절의 근거를 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편이시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무엇입니까?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것입니다.

'아끼지 아니하시고'는 창세기 22장의 메아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순종했고, 하나님은 "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창 22:12, 16)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리아산에서 하나님은 마지막 순간 아브라함의 손을 멈추시고 숫양을 준비하셨습니다. 이삭은 살았습니다. 그런데 갈보리산에서는 아무도 하나님의 손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정말로 아끼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다시 '하물며' 논증을 씁니다. 가장 귀한 것, 자기 아들을 이미 주셨다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백억 원짜리 다이아몬드를 선물한 사람이 포장 리본 값을 아까워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다른 모든 것, 곧 용서, 보호, 인도, 힘, 그리고 마지막 영광까지 주지 않으실 이유가 없습니다.

여기서 '모든 것'은 우리가 원하는 모든 물질적 축복이 아니라, 28-30절의 맥락에서 우리 구원의 완성에 필요한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영광에 이르게 하시기 위해 필요한 것은 하나도 빠짐없이 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아끼지 아니하시고 페이도마이 — 70인역 창 22:12, 16 "네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였으니"와 같은 단어. 11:21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에도 쓰였습니다.
  • 내어 주신 파레도켄 — 1:24, 26, 28 "내어 버려 두사", 4:25 "내어 줌이 되고".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죄에 내어 주셨던 그 동사로, 이제는 죄인들을 위해 아들을 내어 주십니다.
  • 은사로 주지 카리조마이 — '은혜(카리스)로 주다'. 고전 2:12 "하나님께로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함께 읽을 말씀
  • 창 22:12, 16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 롬 5:8-10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 고전 3:21-23만물이 다 너희 것임이라…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 빌 4:19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33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직역 누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겠는가?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세 번째 질문은 법정 장면입니다. "누가 능히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을 송사하리요?" 우리를 고발하려는 자들은 많습니다. 사탄은 '참소하는 자'라고 불립니다(계 12:10). 스가랴 3장에서 사탄은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더러운 옷을 가리키며 그를 고발했습니다. 우리 양심도 우리를 고발하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 과거를 들추어냅니다.

그러나 대답은 이것입니다.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법정의 최고 재판관이 이미 판결을 내렸습니다. "무죄, 의롭다." 최고 재판관의 판결을 누가 뒤집을 수 있습니까? 검사가 아무리 증거를 들이밀어도, 재판관이 이미 그 모든 죄의 형벌이 치러졌다고 선언했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이사야 50:8-9이 이 구절의 배경입니다. "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와 함께 설지어다 나의 대적이 누구뇨 내게 가까이 나아올지어다 주 여호와께서 나를 도우시리니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고난받는 종의 고백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의 고백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송사하리요 엥칼레오 — 사도행전에서 법정 고소에 쓰인 단어(행 19:38, 23:28-29, 26:2, 7).
  • 문장 구조 — 33-34절은 질문과 대답으로 끊어 읽을 수도, 모두 질문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하나님이 의롭다 하시는데 [고발하겠느냐]?").
함께 읽을 말씀
  • 사 50:8-9나를 의롭다 하시는 이가 가까이 계시니 나와 다툴 자가 누구뇨… 나를 정죄할 자 누구뇨
  • 슥 3:1-5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지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 계 12:10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 골 3:12그러므로 너희가 하나님의 택하신 거룩하고 사랑하신 자처럼
34누가 정죄하리요 — 죽으시고 살아나시고 우편에서 간구하시는 그리스도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직역 누가 정죄하겠는가?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더욱이 살아나셨고, 하나님 우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하여 중재하신다.

네 번째 질문: "누가 정죄하리요?" 8장은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절)로 시작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근거를 그리스도의 사역 네 단계로 쌓아 올립니다.

① "죽으실 뿐 아니라" — 그리스도께서 우리 정죄를 대신 받으셨습니다(3절). ② "다시 살아나신 이는" —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 대속을 받아들이셨다는 증거입니다(4:25). ③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 시편 110:1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그리스도는 지금 온 우주의 최고 권위의 자리에 계십니다. ④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 그 높은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은 우리를 변호하시는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를 정죄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 계신다면 그것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기 때문입니다(요 5:22). 그런데 그 재판관이 바로 우리를 위해 죽으셨고, 지금 우리를 위해 변호하고 계십니다. 우리를 정죄할 권한을 가진 유일한 분이 우리의 변호인이십니다.

그리고 26-27절에서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간구하신다고 했습니다. 34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서' 간구하십니다. 우리는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두 분의 중보자를 모시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7:25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원어 · 번역 노트
  •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 원문 말론 데 에게르테이스, "더욱이 일으켜지신". 부활을 강조합니다.
  • 간구하시는 엔튕카노 — 27절 성령의 간구, 히 7:25 그리스도의 간구에 쓰였습니다. 원래 '누군가를 위해 왕 앞에 나아가 청원하다'라는 뜻입니다.
  • 요일 2:1 —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대언자(파라클레토스)'는 법정의 변호인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110: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 히 7:25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 요일 2:1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
  • 요 5: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히 9:24참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오직 참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35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환난이나 곤고나 칼이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직역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겠는가? 환난인가, 곤경인가, 박해인가, 굶주림인가, 헐벗음인가, 위험인가, 칼인가?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질문입니다. 법정을 떠나 이제 삶의 전쟁터로 갑니다. 정죄의 위협은 끝났지만, 현실의 고난은 여전합니다. 그 고난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을까요?

바울은 일곱 가지 고난을 나열합니다. 이것은 머릿속의 목록이 아니라 바울 자신이 실제로 겪은 일들입니다. 고린도후서 11:23-27에서 바울은 매 맞음, 옥에 갇힘, 파선, 강도의 위험, 굶주림, 추위와 헐벗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결국 바울은 '칼'로,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고난을 당할 때 흔히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으시나 보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고난은 하나님 사랑의 부재를 증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고난 속에서도 그 사랑은 끊어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을 받으셨지만 아버지의 사랑받는 아들이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그리스도의 사랑 — 일부 사본은 "하나님의 사랑". 39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합쳐집니다.
  • 적신 赤身 — '붉은 몸', 곧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맨몸. 원문 귐노테스는 '헐벗음, 입을 옷이 없는 가난'. 고후 11:27 "춥고 헐벗었노라"에 같은 단어가 쓰였습니다.
  • 곤고 — 2:9 "환난과 곤고"와 같은 짝. 원래 '좁은 곳'으로, 빠져나갈 길이 없는 상황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11:23-27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 고후 4:8-9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 요 16:33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요 10:28-29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36우리가 종일 주를 위해 죽임을 당하며 도살할 양처럼 여겨졌다

기록된 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함과 같으니라

직역 기록된 바, "우리가 주를 위하여 종일 죽임을 당하며, 도살당할 양처럼 여겨졌나이다" 함과 같다.

바울은 35절의 고난이 새로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시편 44:22로 보여 줍니다. 이 시편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신실했는데도 원수들에게 패배하고 고난받는 상황에서 부른 탄식의 시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잊어버렸거나 우리 손을 이방 신에게 향하여 폈더면…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도살할 양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시 44:20-22).

이 시편 기자는 하나님께 신실했는데도 고난을 받았습니다. 고난은 하나님을 떠났기 때문이 아니라, 오히려 "주를 위하여" 받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역사 내내 하나님 때문에 세상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도살할 양"이라는 말은 이사야 53:7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가…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도살당하는 어린 양이 되셨습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도 그 길을 갑니다. 그러나 그 길 끝에는 37절의 승리가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시 44:22(70인역 43:23)을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랍비 문헌에서도 이 구절은 순교자들에게 적용되곤 했습니다.
  • 종일 — '하루 종일', 곧 끊임없이. 고전 15:31 "나는 날마다 죽노라", 고후 4:11 "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함께 읽을 말씀
  • 시 44:17-22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임하였으나 우리가 주를 잊지 아니하며…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
  • 사 53:7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 고후 4:10-11우리 산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으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 고전 15:31나는 날마다 죽노라
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직역 그러나 이 모든 일 가운데서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신 분을 통하여 압도적으로 이긴다.

"그러나!" 36절의 비참한 현실 뒤에 반전이 나옵니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일에"입니다. 원문은 '이 모든 일 가운데서'입니다. 고난을 피해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서' 이깁니다. 환난이 없어져서 이기는 것이 아니라, 환난 속에서 이깁니다. 다니엘의 세 친구는 풀무불에 던져지지 않아서 산 것이 아니라, 풀무불 '속에서' 넷째 사람과 함께 걸었습니다(단 3:25).

"넉넉히 이기느니라." 바울은 '이기다(니카오)'에 '넘어서(휘페르)'를 붙여 새 단어를 만듭니다. 그냥 이기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이기다', '이기는 것 이상으로 이기다'. 고난이 우리를 무너뜨리지 못할 뿐 아니라, 오히려 고난을 통해 우리가 더 강해지고 더 그리스도를 닮아 갑니다(28-29절). 원수의 무기가 오히려 우리를 위한 도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입니다. 우리 힘으로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원문은 과거형으로 '우리를 사랑하신 분', 곧 십자가에서 그 사랑을 증명하신 분입니다. 승리의 근거는 우리의 강함이 아니라 그분의 사랑입니다. 요한일서 5:4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원어 · 번역 노트
  • 넉넉히 이기느니라 휘페르니코멘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5:20 "더욱 넘쳤나니(휘페르페릿슈오)"처럼 바울은 '휘페르'를 붙여 은혜와 승리의 넘침을 표현합니다. 라틴어 성경은 'superamus'(우리가 능가한다)로 옮겼습니다.
  • 사랑하시는 이 — 원문 투 아가페산토스, 부정과거 분사 "사랑하신 분". 갈 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과 같은 표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요일 5:4-5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고전 15:57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 고후 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 단 3:25내가 보니 결박되지 아니한 네 사람이 불 가운데로 다니는데 상하지도 아니하였고
  • 요 16:33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38내가 확신하노니 —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나 권세나 현재나 장래나 능력이나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직역 나는 확신한다. 사망도 생명도, 천사들도 통치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들도,

35절은 질문이었습니다. 38-39절은 선언입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원문은 완료형으로, '나는 설득되었고, 지금도 그 확신 안에 서 있다'는 뜻입니다. 바울은 감정적으로 들떠서 하는 말이 아니라, 1-37절의 모든 논증을 통해 완전히 설득된 결론을 말합니다.

35절의 목록이 이 땅의 고난이었다면, 38-39절의 목록은 온 우주의 모든 영역을 망라합니다. 바울은 짝을 지어 나열합니다.

"사망이나 생명이나" — 인생의 두 극단. 죽음이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죽음은 오히려 우리를 그 사랑의 한가운데로 데려갑니다(빌 1:21-23). 그리고 삶, 곧 살면서 겪는 모든 유혹과 시련도 끊을 수 없습니다.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의 세력들. 선한 천사든 타락한 천사(악한 영)든, 어떤 영적 존재도 하나님의 사랑을 넘어설 수 없습니다. 에베소서 6:12 "우리의 씨름은…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 시간의 모든 차원. 지금 겪는 일도, 앞으로 닥칠 어떤 일도. 우리가 미래를 두려워할 이유가 없습니다.

"능력이나" — 초자연적인 힘들. 어떤 능력도 하나님의 능력을 넘어서지 못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확신하노니 페페이스마이 — 14:14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15:14, 딤후 1:12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에 쓰였습니다.
  • 권세자들 아르카이 — '통치자들, 시작들'. 엡 1:21, 3:10, 6:12, 골 1:16, 2:15에서 영적 세력을 가리킵니다. 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 사본 순서 — 일부 사본(킹제임스)은 "권세자들이나 능력이나 현재 일이나"의 순서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빌 1:21-23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을 욕망을 가진 이것이 더욱 좋으나
  • 엡 1:20-21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 골 2:15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 고전 3:22-23세계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지금 것이나 장래 것이나 다 너희의 것이요
39높음이나 깊음이나 어떤 피조물도 그리스도 예수 안의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직역 높음도 깊음도,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없을 것이다.

"높음이나 깊음이나" — 공간의 모든 차원. 가장 높은 하늘에서 가장 깊은 심연까지. 당시 사람들은 하늘의 별들과 땅 아래의 세력들이 인간의 운명을 지배한다고 믿었습니다(점성술). 바울은 그 어떤 우주적 힘도 하나님의 사랑을 넘어서지 못한다고 선언합니다. 시편 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모든 것을 한 번에 묶습니다.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혹시 빠진 것이 있을까 봐, 바울은 '그 밖의 어떤 피조물도'라고 덧붙입니다. 하나님 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피조물은 창조주의 사랑을 끊을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하나님의 사랑을 거두실 수 있는데, 하나님은 결코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30절의 황금 사슬).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남습니다. "그렇다면 나 자신은? 내가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지 않을까?" 그러나 나도 '피조물'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나의 신실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입니다. 그 사랑은 나에게서 시작되지 않았고, 나에 의해 유지되지도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하셨고, 그리스도 안에서 지키십니다.

8장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1절)로 시작해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39절)로 끝납니다. 처음과 끝이 모두 "그리스도 예수 안에"입니다. 그 안에 있는 사람에게는 정죄가 없고, 그 사랑에서 끊어짐도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높음이나 깊음이나 — 원문 휘프소마 / 바토스. 고대 점성술에서 '휘프소마'는 별이 하늘 꼭대기에 있을 때(가장 큰 영향력), '바토스'는 지평선 아래 있을 때를 가리키는 말이었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엡 3:18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 끊을 수 없으리라 — 35절 질문 "누가… 끊으리요"에 대한 최종 답입니다.
  • 열 가지 — 38-39절에 나열된 것은 정확히 열 가지입니다(사망, 생명, 천사, 권세자, 현재, 장래, 능력, 높음, 깊음, 다른 피조물). 완전함을 상징하는 숫자로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139:7-10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 엡 3:17-19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고
  • 렘 31:3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 사 54:10산들은 떠나며 작은 산들은 옮길지라도 나의 인자는 너를 떠나지 아니하며
  • 요 13:1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 롬 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아무것도 끊을 수 없습니다

사망도, 생명도, 지금 겪는 이 일도, 앞으로 닥칠 어떤 일도, 내 과거도, 내 연약함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 사랑은 내가 붙들고 있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붙들고 계셔서 유지됩니다. 오늘 어떤 두려움 앞에 서 있든, 로마서 8:38-39을 소리 내어 읽고, 그 목록에 지금 나를 위협하는 것의 이름을 넣어 보십시오. "그것도 나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

The Spirit · 성령

8장에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

7장에는 없던 성령이 8장에서는 스무 번 가까이 등장합니다
절성령께서 하시는 일
2절죄와 사망의 법에서 해방하심
4절우리 안에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심
5–6절우리의 생각을 생명과 평안으로 이끄심
9절우리 안에 거하심 — 그리스도인의 표지
11절우리 죽을 몸을 살리심 (부활)
13절몸의 행실을 죽이는 능력을 주심
14절우리를 인도하심
15절양자의 영 —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심
16절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심
23절장차 올 영광의 첫 열매가 되심
26–27절우리 연약함을 도우시고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심

7장의 '나'는 혼자 싸우다 무너졌습니다. 8장의 '우리'는 성령과 함께 걷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더 강한 의지력의 삶이 아니라 성령께 의지하는 삶입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8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정죄定罪 · 1절

유죄 판결과 그에 따르는 형벌.

생명의 성령의 법2절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일하시는 원리.

죄 있는 육신의 모양3절

진짜 사람의 몸이지만 죄는 없으심.

육신 / 영4–13절

하나님 없이 자기 힘으로 사는 방식 / 성령을 따라 사는 방식.

생각5–7절

마음가짐, 삶의 지향.

양자養子 · 15, 23절

아들로 입양됨. 친자와 같은 상속권.

아바15절

아람어 '아버지'. 예수님이 쓰신 친밀한 부름.

후사後嗣 · 17절

상속자. 그리스도와 함께한 공동 상속자.

허무虛無 · 20절

헛됨, 원래 목적을 이루지 못함.

처음 익은 열매23절

첫 수확. 앞으로 올 전체의 보증.

구속救贖 · 23절

몸값을 치르고 풀어 줌. 여기서는 몸의 부활.

감찰하다監察 · 27절

샅샅이 살피다.

합력하다合力 · 28절

함께 일하다.

예정豫定 · 29–30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심.

맏아들29절

처음 난 자, 가족의 으뜸이자 상속의 대표.

송사訟事 · 33절

법정 고소.

적신赤身 · 35절

벌거벗은 몸, 헐벗음.

넉넉히 이기다37절

압도적으로, 이기는 것 이상으로 이기다.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나를 정죄하는 목소리(양심, 사람, 원수)가 들릴 때, 8:1은 나에게 어떤 대답이 됩니까?
  2. 요즘 내 마음은 주로 무엇에 '생각'(관심과 열정)을 두고 있습니까? 그것은 생명과 평안으로 이끕니까? (5-6절)
  3. 성령으로 '죽여야' 할 몸의 행실이 지금 내 삶에 있다면 무엇입니까? (13절)
  4.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이 나에게 자연스럽습니까, 어색합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5절)
  5. 지금 겪고 있는 고난을 장차 올 영광과 저울에 달아 보면 어떻습니까? (18절)
  6. 기도할 힘조차 없었던 때가 있었습니까? 그때 성령께서 나를 위해 간구하셨다는 것이 어떻게 위로가 됩니까? (26절)
  7. 38-39절의 목록에 지금 나를 두렵게 하는 것의 이름을 넣어 소리 내어 읽어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