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1절까지 —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누리는 것들, 그리고 아담과 그리스도의 거대한 대조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ROMANS 5:8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5장 들어가며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에서 '의롭게 된 사람은 무엇을 누리는가'로
5장은 로마서의 큰 전환점입니다. 1:18-4:25가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는가"를 다뤘다면, 5-8장은 "의롭게 된 사람은 어떤 삶을 누리는가"를 다룹니다. 5:1의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이 그 다리입니다.
눈에 띄는 변화가 있습니다. 1-4장에서 바울은 주로 '그들', '너'라고 말했습니다(그들이 핑계치 못하고, 네가 판단하고). 그런데 5장부터는 '우리'가 주어가 됩니다. "우리가… 화평을 누리자", "우리가… 즐거워하느니라." 고발의 언어가 고백과 찬양의 언어로 바뀝니다.
5장은 두 부분입니다. 1-11절은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이 누리는 복, 곧 화평, 은혜, 소망, 환난 중의 기쁨, 그리고 결코 흔들리지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합니다. 12-21절은 시야를 인류 역사 전체로 넓혀, 첫 사람 아담과 그리스도를 대조합니다. 한 사람 아담을 통해 죄와 죽음이 들어왔듯, 한 사람 그리스도를 통해 의와 생명이 '더욱 넘치게' 들어왔습니다.
핵심 단어
화평 · 소망 · 사랑 · 더욱
1-11절에는 '즐거워하다(자랑하다)'가 세 번(2, 3, 11절), 9-17절에는 '더욱(얼마나 더)'이 다섯 번 나옵니다. 넘치는 은혜의 장입니다.
두 대표
아담과 그리스도
12-21절은 인류의 두 '머리'를 대조합니다. 고린도전서 15:22, 45도 같은 대조를 씁니다. "첫 사람 아담… 마지막 아담."
성령의 첫 등장
5:5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로마서에서 성령이 신자 안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처음 나오는 곳입니다. 8장의 예고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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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화평을 누리자"
사본에 따라 "누리자"(권유) 또는 "누린다"(사실)로 읽힙니다. 노트 참고.
2절 "즐거워하느니라"
원문은 '자랑하다'(카우카오마이). 3:27에서 추방된 '자랑'이 하나님 안에서 새롭게 돌아옵니다.
4절 "연단"
鍊鍛, 쇠를 불에 달구고 두드려 단련함. 원문 도키메는 '검증된 인격'.
6절 "기약대로"
期約, 정해진 때에 맞춰. 하나님이 정하신 바로 그때.
11절 "화목"
和睦, 원수 관계가 풀리고 사이가 좋아짐. 『개역개정』도 "화목".
14절 "표상"
表象, 미리 보여 주는 모형. 원문 튀포스(type, 예표).
20절 "가입한 것은"
加入, 끼어 들어옴. 율법이 아담과 그리스도 사이에 '곁들여 들어왔다'는 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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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의롭다 하심의 열매 — 화평, 은혜, 소망, 그리고 환난 중의 기쁨
바울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이 지금 누리는 것들을 하나씩 꺼내 놓습니다. 과거(의롭다 하심을 얻었다), 현재(은혜에 서 있다, 화평을 누린다), 미래(하나님의 영광을 바란다)가 한 문단 안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이 기쁨은 고난 속에서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1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하나님과 화평을 누린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직역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고 있다(누리자).
"그러므로"는 1-4장 전체를 받습니다. 바울은 지금까지의 논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원문은 부정과거형으로, 이미 완료된 사건입니다. 의롭다 하심은 우리가 노력해서 얻어 가는 목표가 아니라, 이미 받은 출발점입니다.
그리고 그 첫 번째 열매가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입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일인지 알려면 1-3장을 기억해야 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고(1:18),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10절). 그런데 이제 전쟁이 끝났습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평화 조약이 맺어졌습니다.
여기서 '화평'은 마음이 편안한 감정 이상의 것입니다. 마음이 불안한 날에도, 하나님과의 관계 자체는 평화입니다. 내 감정이 오르락내리락해도, 하나님께서 나를 대하시는 태도는 더 이상 진노가 아니라 평화입니다. 이 객관적인 평화 위에서 마음의 평안(빌 4:7 "하나님의 평강")이 자라납니다.
이 화평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옵니다. 에베소서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원수 된 것을 허시고 평화를 이루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누리자 / 누린다 — 가장 오래된 사본 다수는 에코멘(권유: 누리자, 장음 오메가)이지만, 문맥상 에코멘(사실: 누린다, 단음 오미크론)이 더 자연스럽다고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당시 두 단어는 발음이 거의 같아 받아쓸 때 혼동되기 쉬웠습니다. 『개역』은 "누리자", 『새번역』은 "누리고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습니다. 화평은 이미 주어졌고, 우리는 그것을 누립니다.
엡 2:14-17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골 1:20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사 53:5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요 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빌 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2은혜에 들어가 서 있고,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한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직역 그를 통하여 우리는 또한 믿음으로 우리가 서 있는 이 은혜에 나아가는 길을 얻었고, 하나님의 영광의 소망 안에서 자랑한다.
두 번째 열매는 "은혜에 들어감"입니다. '들어감'으로 번역된 단어는 왕궁에서 왕을 알현할 수 있는 출입 허가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아무나 왕 앞에 나아갈 수 없었습니다. 에스더는 부르심 없이 왕 앞에 나아가면 죽을 수 있었습니다(에 4:11). 그런데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 앞에 언제든지 나아갈 수 있는 허가를 받았습니다. 에베소서 2:18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리고 우리는 그 은혜 안에 "서 있습니다". 원문은 완료형으로, '들어가서 지금도 굳게 서 있다'는 뜻입니다. 은혜는 잠깐 들렀다 나오는 곳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자리입니다. 오늘 잘했다고 은혜 안에 들어가고 내일 넘어졌다고 은혜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세 번째는 미래를 향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3:23에서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잃어버린 그 영광을 이제 우리는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 소망 때문에 '즐거워(자랑)'합니다. 3:27에서 사람의 자랑은 추방되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향한 새로운 자랑이 시작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들어감프로사고게 — '앞으로 인도함'. 엡 2:18, 3:12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에만 나옵니다. 성전 제사장이 제물을 '가지고 나아가는' 것에도 쓰이는 말입니다.
서 있는헤스테카멘 — 완료형. 고전 15:1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와 같습니다.
믿음으로 — 일부 사본에는 이 말이 없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2:18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 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롬 3:23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골 1:27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벧전 5:12이것이 하나님의 참 은혜임을 증거하노니 너희는 이 은혜에 굳게 서라
3환난 중에도 즐거워한다 — 환난은 인내를
다만 이뿐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직역 그뿐 아니라 우리는 환난 가운데서도 자랑한다. 환난이 인내를 낳는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바울은 놀라운 말을 합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미래의 영광을 바라며 기뻐하는 것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지금의 고난 '중에도' 기뻐한다니요? 이것은 고난을 좋아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고난 자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고난을 통해 이루시는 일 때문에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환난'으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짓누름'이라는 뜻입니다. 포도를 압착기에 넣고 누르면 즙이 나오고, 올리브를 짜면 기름이 나옵니다. 압력이 가해질 때 그 안에 있던 것이 흘러나옵니다.
바울은 고난이 어떻게 소망으로 이어지는지 사슬처럼 연결합니다. 첫 고리는 "환난은 인내를"입니다. 고난을 겪어야 견디는 힘이 생깁니다. 근육은 무게를 들어야 자라듯, 인내는 고난이라는 무게 아래서 자랍니다. '인내'로 번역된 단어는 '짐 아래 머물러 있다'는 뜻입니다. 짐을 내던지고 도망치지 않고, 그 아래서 끝까지 버티는 것입니다.
약 1:2-4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벧전 1:6-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행 14:22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고후 12:9-10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하노니
4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직역 인내는 검증된 성품을, 검증된 성품은 소망을 낳는다.
사슬이 이어집니다.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원래 금속을 불에 넣어 불순물을 빼내고 진짜인지 검증하는 과정에서 나온 말입니다. 끝까지 견딘 사람은 '검증된 사람'이 됩니다. 고난을 통과한 믿음은 진짜임이 증명됩니다. 욥은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욥 23:10)고 고백했습니다.
"연단은 소망을." 왜 검증된 성품이 소망을 낳을까요? 고난 속에서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시는 것을 경험하면, 앞으로도 하나님께서 나를 붙드실 것이라는 확신이 생깁니다. 지난번 시련을 통과하게 하신 하나님이 다음 시련도, 그리고 마지막 날까지도 지키실 것을 믿게 됩니다. 과거의 신실하심이 미래의 소망이 됩니다.
이 사슬은 2절의 '소망'에서 시작해서 4절의 '소망'으로 돌아옵니다. 환난은 소망을 무너뜨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손 안에서는 오히려 소망을 더 단단하게 만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연단 鍊鍛 — '쇠를 불리고 두드림'. 원문 도키메는 '검증, 검증된 상태'. 고후 2:9 "너희가 범사에 순종하는지 그 증거를 알고자 하여", 빌 2:22 "디모데의 연단을 너희가 아나니"에 쓰였습니다. 1:28 "상실한(아도키모스) 마음"의 반대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욥 23:10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말 3: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벧전 4:12-13너희를 시험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고후 4:17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5소망이 부끄럽지 않은 이유 — 성령으로 부어진 하나님의 사랑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직역 그리고 그 소망은 부끄럽게 하지 않는다. 우리에게 주어진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이다.
세상의 소망은 종종 우리를 부끄럽게 합니다. 기대했다가 실망하고, 믿었다가 배신당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이 소망은 우리를 결코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마지막 날, 우리가 바랐던 것이 헛것이었다며 부끄러워하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시편 22:5 "저희가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왜 그렇게 확신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우리 소망의 근거는 우리 안의 낙관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멀리서 바라보는 사랑이 아니라 우리 마음에 '쏟아부어진' 사랑입니다. 마른 땅에 소나기가 쏟아지듯,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을 흠뻑 적셨습니다. 원문은 완료형이라, 한 번 부어져서 지금도 가득 차 있다는 뜻입니다.
그 사랑을 부으시는 분이 "우리에게 주신 성령"이십니다. 로마서에서 성령께서 신자 안에서 일하시는 분으로 처음 등장하는 순간입니다. 요엘 선지자는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욜 2:28)라고 예언했고, 오순절에 성령이 '부어졌습니다'(행 2:17, 33). 성령은 하나님의 사랑을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마음으로 경험하는 실재로 만드십니다. 8:15-16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원어 · 번역 노트
하나님의 사랑 —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사랑'인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인지 문법적으로 둘 다 가능하지만, 6-8절이 하나님의 사랑을 설명하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맞습니다.
부은 바 됨에크케퀴타이 — '밖으로 쏟다'. 70인역 욜 2:28 "내 신을 부어 주리니", 행 2:17, 33, 딛 3:6 "성령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에 같은 동사가 쓰였습니다.
부끄럽게카타이스퀴노 — 9:33, 10:11에서 사 28:16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를 인용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1:16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와도 연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욜 2:28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행 2: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시 22:5저희가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치 아니하였나이다
롬 8:15-16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갈 4:6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고난은 소망을 무너뜨리지 못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면 고난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가 실망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고난이 소망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단단하게 만든다고 말합니다.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
지금 압착기 아래 있는 것 같은 날을 보내고 있다면,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그 압력을 통해 내 안에 있는 무언가를 빚어내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과정 위에, 성령께서 부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이 흐르고 있습니다.
5:6–11아직 죄인 되었을 때 — 하나님 사랑의 확증
5절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이제 그 사랑이 얼마나 놀라운지 설명합니다. 사람의 사랑과 비교하면, 하나님의 사랑은 차원이 다릅니다. 사람은 좋은 사람을 위해서나 혹시 목숨을 걸지만, 하나님은 원수를 위해 아들을 내주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더욱'이라는 논리로 우리의 확신을 쌓아 올립니다. 가장 어려운 일(원수였던 우리를 위해 죽으심)을 이미 하셨다면, 그보다 쉬운 일(친구가 된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심)은 '더욱' 확실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 정해진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해 죽으셨다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직역 우리가 아직 무력할 때에, 정해진 때에 그리스도께서 경건하지 않은 자들을 위하여 죽으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여 주는 첫 번째 증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언제, 누구를 위해 죽으셨습니까?
언제?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우리가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때, 하나님께 무언가를 보여 드릴 수 있을 때가 아니었습니다. 완전히 무력할 때, 스스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였습니다. 그리고 "기약대로", 곧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로 그때였습니다. 갈라디아서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누구를 위해?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4:5에서 하나님은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그 이유가 드러납니다. 그리스도께서 바로 그 경건치 않은 자들을 위해 죽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경건해진 다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이 아니라, 경건치 않은 우리를 위해 먼저 죽으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연약할아스테네스 — 8:26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고전 1:25 "하나님의 약한 것이 사람보다 강하니라"에 쓰였습니다. 여기서는 도덕적·영적 무능력을 뜻합니다.
기약대로 期約 — '때를 정하여 약속함'. 원문 카타 카이론, '적절한 때에'.
위하여휘페르 — '~를 대신하여, ~를 위하여'. 대속(대신 죽음)의 의미를 담은 전치사입니다(고후 5:14-15, 21).
함께 읽을 말씀
갈 4:4-5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롬 4:5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벧전 3:18그리스도께서도 한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엡 2:1, 4-5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7의인이나 선인을 위해 죽는 사람도 드물다
의인을 위하여 죽는 자가 쉽지 않고 선인을 위하여 용감히 죽는 자가 혹 있거니와
직역 의로운 사람을 위해 누가 죽는 일은 드물다. 선한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쩌면 누군가 감히 죽을 수도 있겠지만.
바울은 사람의 사랑과 비교합니다. 누군가를 위해 목숨을 내놓는 일은 정말 드뭅니다. "의인", 곧 법을 잘 지키고 바르게 사는 사람을 위해서도 죽기는 쉽지 않습니다. 존경은 하지만 목숨까지 걸지는 않습니다.
"선인", 곧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준 따뜻하고 좋은 사람을 위해서라면, 어쩌면 "혹" 용감하게 죽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부모가 자녀를 위해, 군인이 동료를 위해, 은인을 위해 목숨을 버리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아주 드문 일이고, 그래서 우리는 그런 이야기에 감동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8절을 위한 준비입니다. 사람은 좋은 사람을 위해서도 죽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원어 · 번역 노트
의인 / 선인 — 많은 학자는 '의인'(디카이오스)을 '법적으로 올바르지만 차가운 사람', '선인'(아가토스)을 '친절하고 은혜로운 후원자'로 구별합니다. 다른 학자는 두 단어를 같은 뜻의 반복으로 봅니다.
용감히톨마 — '감히 ~하다'.
함께 읽을 말씀
요 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삼하 23:15-17다윗의 세 용사가 목숨을 걸고 베들레헴 우물물을 길어 옴
8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죽으심 — 하나님 사랑의 확증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직역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우리를 향한 자기 자신의 사랑을 증명하신다.
로마서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7절의 대조가 여기서 완성됩니다. 사람은 의인을 위해서도 죽기 어렵고 선인을 위해서나 혹 죽지만,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죽으셨습니다. 의인도 선인도 아닌, 하나님을 대적하던 죄인을 위해서입니다.
"아직"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착해진 다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만한 무언가를 갖춘 다음이 아닙니다. 아직 죄 가운데 있을 때, 아직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있을 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의 가치에 반응하는 사랑이 아니라, 가치 없는 우리에게 가치를 부여하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것을 "하나님께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놀라운 표현입니다.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이신데,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라고 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이 하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들을 내주신 것은 아버지 자신을 내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확증하다'는 현재형입니다. 2천 년 전 한 번 증명하고 끝난 것이 아니라, 지금도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지 의심이 들 때, 내 형편을 보지 말고 십자가를 보십시오. 그곳에 지금도 증거가 서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확증하셨느니라쉬니스테신 — 3:5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과 같은 단어. '함께 세우다 → 입증하다'. 『개역』은 과거형으로 옮겼지만 원문은 현재형입니다.
자기의 사랑 — 원문은 텐 헤아우투 아가펜으로 '자기 자신의'를 강조합니다. 다른 누구의 사랑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 자신의 사랑입니다.
죄인 — 6절 '연약한 자', '경건치 않은 자', 8절 '죄인', 10절 '원수'. 바울은 우리의 상태를 점점 더 강한 말로 묘사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요일 4:9-10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엡 2:4-5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딛 3:4-5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낼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렘 31:3내가 영원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 고로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다
9피로 의롭게 되었으니 더욱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직역 그러므로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의롭다 함을 받았으니, 하물며 그를 통하여 진노에서 구원받을 것은 얼마나 더 확실하겠는가!
여기서부터 바울은 유대 랍비들이 즐겨 쓰던 논증법, "하물며(얼마나 더)" 논증을 사용합니다. 더 어려운 일이 이루어졌다면, 더 쉬운 일은 당연히 이루어진다는 논리입니다.
더 어려운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죄인을 의롭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피를 대가로 치러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미 그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그렇다면 더 쉬운 일, 곧 이미 의롭게 된 사람을 마지막 날의 진노에서 지키는 것은 얼마나 더 확실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피를 흘리면서까지 의롭게 하신 사람을, 마지막에 진노 아래 버려 두실 리가 없습니다. 이것은 성도의 구원의 확신에 대한 강력한 근거입니다. 우리의 확신은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치르신 값에 근거합니다.
'구원'이 미래형이라는 것도 눈여겨보십시오. "구원을 얻을 것이니." 로마서에서 '의롭다 하심'은 이미 일어난 일(과거)이고, '진노에서의 구원'은 마지막 날 완성될 일(미래)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1:10 "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원어 · 번역 노트
더욱폴로 말론 — '훨씬 더'. 9, 10, 15, 17절에 나옵니다. 랍비들은 이것을 '가벼운 것에서 무거운 것으로(칼 바호메르)' 논증이라 불렀습니다.
그 피를 인하여 — 원문 엔 토 하이마티 아우투, "그의 피 안에서, 그의 피로". 3:25 "그의 피로써"와 연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살전 1:10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살전 5:9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심이라
롬 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요 10:28-29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10원수였을 때 화목되었으니, 더욱 그의 살으심으로 구원받을 것이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화목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으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을 것이니라
직역 왜냐하면 우리가 원수였을 때에 그 아들의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과 화해되었다면, 화해된 우리가 그의 생명 안에서 구원받을 것은 얼마나 더 확실하겠는가!
9절의 논증을 다른 그림으로 반복합니다. 9절이 법정의 그림(의롭다 하심)이었다면, 10절은 관계의 그림(화목)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원수"였습니다. 6절의 '연약한 자', 8절의 '죄인'보다 더 강한 말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한 정도가 아니라 대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미셨습니다.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중요한 것은, 원수였던 쪽은 우리인데 화해를 주도하신 쪽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5: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나니 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그리고 '하물며' 논증입니다. 원수였을 때 아들의 죽음으로 화해시키셨다면, 이제 친구가 된 우리를 아들의 살으심으로 끝까지 구원하실 것은 얼마나 더 확실하겠습니까? 그리스도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셔서 지금 살아 계십니다.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8:34, 히 7:25), 우리 안에 생명을 주시며 끝까지 지키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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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목되었은즉카탈라소 — '완전히 바꾸다' → '적대 관계를 우호 관계로 바꾸다'. 바울만 쓰는 단어로, 고후 5:18-20 "화목하게 하는 직책…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에 집중적으로 나옵니다. 고대 세계에서는 보통 화난 신을 사람이 달래 '화해'했지만, 바울에게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화해의 주체이십니다.
원수에크트로이 —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에도 쓰였습니다. 원수 관계는 우리 쪽에서만이 아니라,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1:18)라는 면에서 하나님 쪽에서도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후 5:18-20저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골 1:21-22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히 7:25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요 14:19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11이제 화목을 얻게 하신 주 안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한다
이뿐 아니라 이제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직역 그뿐 아니라,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 안에서 자랑한다. 그를 통하여 우리가 이제 화해를 받았기 때문이다.
1-11절의 절정입니다. 바울은 "즐거워하다(자랑하다)"를 세 번 썼습니다. 2절,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며 즐거워하고, 3절,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고, 11절, 이제 하나님 자신 안에서 즐거워합니다.
이것이 가장 깊은 기쁨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영광, 소망)이나,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환난을 통한 성숙)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 그분 자체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원수였던 하나님이 이제 우리의 가장 큰 기쁨이 되셨습니다.
2:17에서 유대인은 "하나님을 자랑"했지만, 그 자랑은 남과 비교하는 우월감이었습니다. 3:27에서 그런 자랑은 추방되었습니다. 이제 11절에서 '하나님을 자랑함'이 회복되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내 공로가 아니라 "우리로 화목을 얻게 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시편 43:4 "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원어 · 번역 노트
화목카탈라게 — 신약에서 바울만 쓰는 명사(롬 5:11, 11:15, 고후 5:18-19).
얻게 하신 — 원문 "우리가 이제 화해를 받았다(엘라보멘)".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라 '받은'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43:4내가 하나님의 단에 나아가 나의 극락의 하나님께 이르리이다
합 3:17-18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나는 여호와를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빌 3:3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렘 9: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할 때 십자가를 보십시오
우리는 형편이 좋을 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고 느끼고, 형편이 어려울 때 의심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를 우리의 형편이 아니라 십자가에 둡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셨습니다.
가장 나쁠 때의 나를 위해 죽으신 분이, 지금의 나를 버리실 리 없습니다. 원수였던 나를 위해 아들을 주신 하나님이, 자녀가 된 나를 끝까지 지키실 것은 '얼마나 더' 확실하겠습니까.
5:12–14한 사람으로 죄가 들어오고 — 아담과 사망의 왕 노릇
12절부터 바울은 시야를 넓힙니다. 개인의 구원을 넘어 인류 역사 전체를 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을 대조합니다. 첫 사람 아담과, 바울이 '오실 자'라고 부르는 그리스도입니다.
이 단락은 문장 구조가 복잡합니다. 12절에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들어왔나니"로 시작한 비교가 끝나지 않고, 13-14절에서 설명이 끼어들고, 실제 비교는 18절에서야 완성됩니다. 바울이 너무 중요한 말을 하다가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 떠올라 잠시 옆길로 갔다가 돌아오는 것입니다.
12한 사람으로 죄가 들어오고, 죄로 사망이 들어오고,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직역 그러므로 한 사람을 통하여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를 통하여 사망이 들어왔듯이, 그렇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퍼졌다.
"이러므로" — 1-11절에서 그리스도를 통한 화목과 구원을 말했으니, 이제 그 구원이 얼마나 거대한 것인지 인류 역사 전체의 그림으로 보여 주겠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류 비극의 시작을 세 단계로 설명합니다. ①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겼을 때(창 3장), 죄는 마치 문을 열고 들어온 침입자처럼 세상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②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 하나님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경고하셨고, 그 말씀대로 죄가 들어오자 죽음이 뒤따라 들어왔습니다. ③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 그 죽음은 아담에게서 멈추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퍼졌습니다. 창세기 5장의 족보는 "~하고 죽었더라"가 후렴처럼 반복됩니다.
그리고 바울은 그 이유를 짧게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이 짧은 구절은 교회 역사에서 가장 많이 논쟁된 구절 중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이 '각자'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 아니면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인가? (아래 '더 깊이'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어느 해석이든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바울에게 아담은 단지 '첫 번째 죄인'이 아니라 인류의 대표입니다. 아담의 행동은 그 개인으로 끝나지 않고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대표'의 원리가 그리스도에게도 적용됩니다. 그것이 이 단락의 핵심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죄를 지었으므로 — 원문 에프 호 판테스 헤마르톤. '에프 호'를 ① "~이므로"(because, 대부분의 현대 번역), ② "그 안에서"(in whom, 라틴어 불가타 in quo, 아우구스티누스) 등으로 읽습니다. ②로 읽으면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가 되어 원죄 교리의 중요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문법적으로 ①이 맞다고 보지만, 18-19절이 아담의 한 범죄가 모든 사람을 정죄에 이르게 했다고 말하므로 '아담 안에서'의 개념 자체는 문맥에 들어 있습니다.
이와 같이후토스 — '그렇게'. 12절 앞부분 "~처럼(호스페르)"의 짝이 될 '그와 같이'가 나와야 하는데, 바울은 비교를 완성하지 않고 13-14절로 넘어갑니다. 이 비교는 18절에서 완성됩니다.
이르렀느니라디엘텐 — '두루 퍼지다, 관통하다'. 전염병이 온 마을에 번지듯.
함께 읽을 말씀
창 2: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창 3:6, 19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고…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창 5:5그가 구백삼십세를 향수하고 죽었더라
고전 15:21-22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롬 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13율법 이전에도 죄는 있었다 — 다만 죄로 계산되지 않았을 뿐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직역 율법이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다. 그러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가 (장부에) 계산되지 않는다.
바울은 12절의 비교를 잠시 멈추고, 예상되는 반론에 답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고? 그런데 4:15에서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다'고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모세 율법 이전 사람들은 죄가 없었다는 말인가?"
바울의 대답입니다.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오기 전에도 죄는 분명히 있었습니다. 가인은 아벨을 죽였고(창 4장), 노아 시대 사람들은 "죄악이 세상에 관영"했고(창 6:5), 소돔은 심판을 받았습니다(창 19장). 다만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느니라." 명시된 법이 없으니, 죄가 '법 위반'으로 정식 장부에 기록되지는 않았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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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지엘로게이타이 — '계산에 넣다, 장부에 기입하다'. 몬 1:18 "내 앞으로 계산하라"에만 다시 나오는 상업 용어입니다. 4장의 '여기다(로기조마이)'와 비슷한 그림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4:15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롬 2:12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창 6:5-7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보시고
14그래도 사망은 왕 노릇 했다 —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직역 그럼에도 사망은 아담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방식으로 죄를 짓지 않은 자들 위에도 왕 노릇 하였다. 아담은 오실 분의 모형이다.
13절에서 율법 이전에는 죄가 '계산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그 시대 사람들은 심판을 면했을까요? 아닙니다.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부터 모세까지, 율법이 없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모두 죽었습니다. 죽음은 폭군처럼 모든 사람을 다스렸습니다.
그 사람들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이었습니다. 아담은 하나님께서 직접 주신 명시적인 계명("먹지 말라")을 어겼습니다. 그런데 아담 이후 모세까지의 사람들은 그런 명시적인 계명을 받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죽었습니다. 왜일까요? 바울이 암시하는 답은, 그들이 아담과 연결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개인이 각자 어떤 죄를 지었는가 이전에, 아담이라는 대표 안에서 모두가 죽음 아래 놓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갑자기 놀라운 말을 합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라." '표상'은 도장을 찍은 자국처럼, 원본의 모양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입니다. 아담은 그리스도의 모형입니다. 어떤 점에서요? 둘 다 한 사람의 행동이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영향을 미치는 '대표'라는 점에서입니다. 아담의 한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죽음을 가져왔듯, 그리스도의 한 순종이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생명을 가져옵니다. 다만 15-17절이 말하듯, 그리스도는 아담과 '같지 않습니다'. 훨씬 더 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표상 表象 — '겉으로 드러난 모양'. 원문 튀포스(type)는 '두드려서 생긴 자국, 모형'. 고전 10:6, 11 "이런 일이 거울(튀포스)이 되고"에 쓰였습니다. 신학에서 '예표론(typology)'의 어원입니다.
왕 노릇바실류오 — 5:14, 17(두 번), 21(두 번), 6:12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 바울은 죄와 사망과 은혜를 서로 왕좌를 다투는 왕처럼 그립니다.
오실 자 — 원문 투 멜론토스, '장차 올 자'. 아담의 시점에서 볼 때 '장차 오실' 그리스도입니다. 고전 15:45 "마지막 아담".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5:45-49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호 6:7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나를 반역하였느니라
히 2:14-15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고전 15:26맨 나중에 멸망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누구 안에 속해 있습니까
바울에 따르면 모든 사람은 두 '대표' 중 하나에 속해 있습니다. 아담 안에 있거나, 그리스도 안에 있거나. 아담 안에 있는 사람은 아담의 운명, 곧 죄와 죽음을 함께 지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운명, 곧 의와 생명을 함께 받습니다.
죽음이 모든 사람 위에 '왕 노릇' 한다는 말은 무겁습니다. 그러나 그 왕은 영원한 왕이 아닙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었습니다. 진짜 왕이 오셨습니다.
5:15–17그러나 은사는 범죄와 같지 않다 — 더욱 넘치는 은혜
14절에서 아담이 그리스도의 '모형'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곧바로 둘이 똑같지 않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15-17절은 세 번 "같지 아니하니"를 말합니다. 아담과 그리스도는 '한 사람이 많은 사람에게 영향을 준다'는 구조는 같지만, 그 영향의 크기와 성질은 비교할 수 없이 다릅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아담의 범죄를 '겨우 메우는' 정도가 아니라 '훨씬 넘칩니다'.
15첫째 차이 — 범죄는 죽음을, 은혜는 넘치는 선물을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으리라
직역 그러나 은사는 범죄와 같지 않다. 한 사람의 범죄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 있는 선물은 얼마나 더 많은 사람에게 넘쳤겠는가!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첫 번째 차이는 힘의 크기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한 번의 행동이었지만, 그 결과는 엄청났습니다.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모든 인류가 죽음 아래 놓였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어떨까요? 바울은 다시 '하물며' 논증을 씁니다. "더욱". 한 사람의 죄가 그렇게 큰 파괴력을 가졌다면, 하나님의 은혜와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는 그보다 '얼마나 더' 강력하겠습니까? 그 은혜는 "넘쳤으리라". 컵에 물을 부으면 가득 찬 뒤 흘러넘치듯, 하나님의 은혜는 아담이 망가뜨린 것을 회복하고도 남아 넘쳐흐릅니다.
바울은 '은혜'를 두 번 말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 은혜의 근원은 하나님 아버지이시고, 그 은혜가 흘러오는 통로는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그것은 '선물'입니다. 아담에게서 받은 것은 마땅한 삯(죽음)이었지만, 그리스도에게서 받는 것은 값없는 선물(생명)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은사 恩賜 / 카리스마 — '은혜(카리스)로 주어진 것'. 6:23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니라"와 같은 단어.
많은 사람호이 폴로이 — 히브리어 '라빔'(많은 자들)을 옮긴 표현으로, 소수와 대비되는 '모든 사람'을 가리킵니다. 사 53:11-12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에서 가져온 표현일 수 있습니다. 12절, 18절에서는 '모든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3:11-12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그가 많은 사람의 죄를 지며
엡 1:7-8그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요 10:10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딤전 1: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16둘째 차이 — 한 범죄가 정죄를, 많은 범죄에서 칭의를
또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심판은 한 사람을 인하여 정죄에 이르렀으나 은사는 많은 범죄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직역 또 그 선물은 죄를 지은 한 사람을 통해 온 것과 같지 않다. 판결은 한 (범죄)에서 나와 정죄에 이르렀지만, 은사는 많은 범죄들에서 나와 의롭다 하심에 이르렀다.
두 번째 차이는 출발점과 결과입니다.
아담의 경우, 한 번의 범죄가 출발점이었고, 그 결과는 정죄였습니다. 하나의 죄가 판결을 낳았습니다. 그것은 공정합니다. 죄에는 마땅한 판결이 따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경우는 완전히 다릅니다. 출발점은 "많은 범죄"였습니다. 아담 이후 수천 년 동안 인류가 쌓아 온 셀 수 없는 죄들, 그리고 내가 평생 지은 모든 죄입니다. 상식적으로 많은 범죄에서는 더 큰 정죄가 나와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선물은 그 많은 범죄를 출발점으로 삼아 의롭다 하심이라는 결과를 냅니다. 이것이 은혜의 놀라움입니다. 정의의 논리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쌓인 죄가 많을수록 은혜가 더 크게 드러납니다(20절).
원어 · 번역 노트
정죄카타크리마 — 18절과 8:1에만 나오는 단어.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가 이 정죄의 완전한 반전입니다.
의롭다 하심디카이오마 — 여기서는 '의롭다는 판결'. 정죄(카타크리마)와 운율을 맞춘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8: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골 2:13-14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사 1:18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17셋째 차이 — 사망이 왕 노릇 했다면, 더욱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라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직역 한 사람의 범죄로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사망이 왕 노릇 하였다면, 넘치는 은혜와 의의 선물을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얼마나 더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겠는가!
세 번째 차이는 가장 놀랍습니다. 누가 왕 노릇 하는가입니다.
아담의 범죄 이후 "사망이… 왕 노릇 하였은즉." 사망이 폭군이 되어 모든 인류를 다스렸습니다. 우리는 사망의 신하, 아니 노예였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 이후에는 무엇이 왕 노릇 할까요? 우리는 "생명이 왕 노릇 하리로다"를 기대합니다. 그런데 바울은 다르게 말합니다.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왕 노릇 하는 것은 '생명'이 아니라 '은혜를 받은 자들', 곧 우리 자신입니다! 사망의 노예였던 우리가 이제 생명 안에서 왕이 됩니다. 신분의 완전한 역전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처음 사람을 지으실 때의 계획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땅을 정복하라…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창 1:28)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왕으로 지음받았지만 죄로 그 왕관을 잃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그 왕관을 되찾습니다. 디모데후서 2:12 "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요한계시록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이것은 미래의 일이면서('하리로다'), 동시에 지금 시작된 일입니다. 6장에서 바울은 "죄로 너희 죽을 몸에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하여"(6:12)라고 말합니다.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한다는 것은, 지금 여기서 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은혜 안에서 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넘치게 받는 자들 — 원문 텐 페릿세이안… 람바논테스, "넘침을 받는 자들". 현재 분사로 '계속 받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은혜는 한 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넘치게 흘러옵니다.
의의 선물 — 의는 우리가 이룬 것이 아니라 '선물(도레아)'로 받는 것입니다. 3:24 "값없이(도레안)"와 같은 어근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26-28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딤후 2:12참으면 또한 함께 왕 노릇 할 것이요
계 5:10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계 22:5저희가 세세토록 왕 노릇 하리로다
엡 2: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은혜는 언제나 '더욱'입니다
아담의 범죄는 인류 전체를 무너뜨릴 만큼 강력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더욱"이라고 거듭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은혜는 죄를 겨우 상쇄하는 정도가 아니라 넘치고, 넘치고, 또 넘칩니다.
내 죄가 너무 크다고, 너무 많다고 느껴질 때, 16절을 기억하십시오. 은혜는 '많은 범죄'를 출발점으로 삼아 '의롭다 하심'에 이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사망의 노예가 아니라,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할 사람들입니다.
5:18–21한 순종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 은혜가 왕 노릇 하다
12절에서 시작했다가 끊겼던 비교가 드디어 18절에서 완성됩니다. "한 범죄로… 처럼, 한 의의 행동으로…"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조를 두 개의 짧은 대구로 정리하고(18-19절), 율법이 그 사이에서 무슨 역할을 했는지 설명한 뒤(20절), 은혜가 왕좌에 오르는 장면으로 5장을 마무리합니다(21절).
18한 범죄로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생명에 이르렀다
그런즉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같이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직역 그러므로 한 범죄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정죄가 이른 것처럼, 그렇게 한 의로운 행위를 통하여 모든 사람에게 생명의 칭의가 이르렀다.
12절의 비교가 마침내 완성됩니다. 원문은 동사도 없이 짧고 강렬한 대구입니다. "한 범죄 → 모든 사람 → 정죄. 한 의로운 행위 → 모든 사람 → 생명의 칭의."
"한 범죄"는 에덴동산에서 아담이 금지된 열매를 먹은 그 한 번의 행동입니다. "의의 한 행동"은 무엇일까요? 대부분의 해석자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으로 봅니다. 또는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른 그리스도의 순종하는 삶 전체로 봅니다(19절 "한 사람의 순종하심"). 한 동산(에덴)에서 한 사람이 불순종했고, 또 다른 동산(겟세마네)에서 한 사람이 "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눅 22:42) 하고 순종했습니다.
여기서 "많은 사람"은 원문으로 '모든 사람'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이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일까요? 문맥상 그렇지 않습니다. 17절에서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는 사람은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요점은 숫자가 아니라 범위입니다. 아담의 정죄가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미쳤듯, 그리스도의 의도 그에게 속한 모든 사람에게,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차별 없이 미친다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많은 사람 — 18절 원문은 두 번 모두 판타스 안트로푸스, '모든 사람'입니다. 『개역』과 『개역개정』은 "많은 사람"으로 옮겼고, 『새번역』은 "모든 사람"으로 옮겼습니다. 19절은 원문도 "많은 사람(호이 폴로이)"입니다.
고전 15:22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
빌 2: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눅 22:42내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요 5:24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19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죄인이 되었듯, 한 사람의 순종으로 의인이 되리라
한 사람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한 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직역 한 사람의 불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죄인으로 세워진 것처럼, 그렇게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의인으로 세워질 것이다.
18절을 다른 말로 다시 말합니다. 18절이 '행동'과 '결과'(정죄/생명)를 말했다면, 19절은 그 행동의 본질(불순종/순종)과 사람의 '신분'(죄인/의인)을 말합니다.
아담의 죄의 본질은 "순종치 아니함"이었습니다. 원문은 '곁에서 듣다', 곧 하나님의 말씀을 듣긴 했지만 흘려들은 것입니다.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죄인 된 것같이". '되었다'로 번역된 단어는 '그런 신분으로 세워졌다, 지정되었다'는 법적 용어입니다. 아담 안에서 우리는 '죄인'이라는 신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의 본질은 "순종하심"이었습니다. 원문은 '아래에서 듣다', 곧 하나님의 말씀 아래 엎드려 귀 기울여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삶 전체가 순종이었습니다. "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요 6:38). 그리고 그 순종은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렀습니다.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 그 결과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의인'이라는 새 신분을 받습니다.
이것이 신학에서 말하는 '전가(轉嫁)'입니다. 아담의 죄가 그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계산되었듯, 그리스도의 의가 그에게 속한 사람들에게 계산됩니다. 우리가 의인이 되는 것은 우리의 순종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순종 때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순종치 아니함 / 순종하심 — 파라코에 / 휘파코에. 둘 다 '듣다(아쿠오)'에서 나온 말입니다. '곁에서(파라) 듣다' vs '아래에서(휘포) 듣다'. 1:5 "믿어 순종케(휘파코에)"와 같은 단어입니다.
되리라 — 미래형. 마지막 심판에서의 확정을 가리키거나,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오는 사람마다 계속 의인이 될 것이라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3:11나의 의로운 종이 자기 지식으로 많은 사람을 의롭게 하며 또 그들의 죄악을 친히 담당하리로다
빌 2:8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히 5:8-9그가 아들이시라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 온전하게 되었은즉 자기를 순종하는 모든 자에게 영원한 구원의 근원이 되시고
요 6:38내가 하늘로서 내려온 것은 내 뜻을 행하려 함이 아니요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고후 5:21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20율법이 들어와 범죄가 더했으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로되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직역 율법이 곁으로 들어온 것은 범죄가 많아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죄가 많아진 곳에 은혜는 넘치고도 넘쳤다.
유대인 독자는 물을 것입니다. "아담과 그리스도 이야기만 하는데, 모세의 율법은 어디 있는가? 율법은 아무 역할도 없었는가?" 바울은 율법의 자리를 짧게 정리합니다. "율법이 가입한 것은." '가입하다'는 '곁으로 끼어 들어오다'라는 뜻입니다. 구원 역사의 주인공은 아담과 그리스도이고, 율법은 그 사이에 '곁들여' 들어왔습니다. 율법은 주연이 아니라 조연입니다.
율법은 무엇을 했을까요?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로되." 충격적인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일부러 죄를 늘리려고 율법을 주셨다는 뜻일까요? 그렇다기보다, 율법이 들어오자 죄가 명확한 '범죄(위반)'로 드러나고(4:15), 7장에서 보듯 죄가 계명을 기회 삼아 오히려 더 활발해졌습니다(7:8). 율법은 인간의 죄를 숨김없이 드러내서, 인간이 스스로는 결코 의롭게 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의사가 정확한 진단을 위해 조영제를 넣으면 병이 더 선명하게 보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문장 중 하나가 나옵니다.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죄가 넘친 곳에서 은혜는 지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넘치다'라는 단어에 '넘어서'라는 접두어를 붙여 새 단어를 만듭니다. '넘치고 또 넘쳤다', '초과해서 넘쳤다'. 죄가 아무리 깊어도 은혜는 더 깊고, 죄가 아무리 높이 쌓여도 은혜는 그보다 높이 쌓입니다. 존 번연은 『죄인 중의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라는 자서전을 썼고, 찬송가 '놀라운 은혜(Amazing Grace)'를 쓴 존 뉴턴은 노예 무역선 선장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가입한 것은 加入 — '더하여 들어옴'. 원문 파레이세르코마이, '곁으로(파라) 안으로(에이스) 들어오다'. 갈 2:4 "가만히 들어온 거짓 형제"에도 쓰였습니다.
더욱 넘쳤나니휘페레페릿슈센 — '넘치다(페릿슈오)'에 '초월(휘페르)'을 붙인 말. 고후 7:4 "내가… 기쁨이 넘치는도다(휘페르페릿슈오마이)"에만 다시 나옵니다. 바울은 은혜를 말할 때 말이 모자라 새 단어를 만듭니다.
롬 7:7-13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죄로 심히 죄 되게 하려 함이니라
갈 3:19그런즉 율법은 무엇이냐 범법하므로 더한 것이라
롬 6: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 20절에서 나오는 다음 질문
딤전 1:13-14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폭행자이었으나… 우리 주의 은혜가…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눅 7:47저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저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21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했듯, 은혜가 의로 왕 노릇 하여 영생에 이르게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
직역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의를 통하여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려는 것이다.
5장의 마지막 절은 대관식 장면처럼 끝납니다. 두 왕국이 있습니다.
옛 왕국: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죄가 왕이었고, 그 왕국의 영토는 사망이었습니다. 아담 이후 모든 인류가 이 왕국의 백성이었습니다.
새 왕국: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이제 새 왕이 즉위했습니다. 그 왕의 이름은 은혜입니다. 은혜는 어떻게 다스립니까? "의로 말미암아." 은혜는 불의를 눈감아 주는 방식으로 다스리지 않습니다. 3:26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의 의를 온전히 만족시키는 방식, 곧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다스립니다. 은혜와 의가 함께 다스립니다. 그리고 그 왕국의 목적지는 "영생"입니다. 옛 왕국은 사망으로 끝났지만, 새 왕국은 영원한 생명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입니다. 5장은 1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로 시작했고, 11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를 지나, 21절에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로 끝납니다. 5장 전체가 이 이름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그러나 20절의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는 위험한 질문을 낳습니다. "그렇다면 은혜를 더 넘치게 하려고 죄를 더 지을까?" 바로 6:1의 질문입니다. 6장은 그 질문에 대한 바울의 대답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왕 노릇 — 5장에서 '왕 노릇'은 14, 17(두 번), 21(두 번)절에 나옵니다. 사망 → 죄 → 은혜 → 우리. 왕좌의 주인이 바뀌는 이야기입니다.
영생 — 2:7 이후 두 번째로 나오는 '영생'. 6:22-23에서 다시 나옵니다. 요한복음에서 영생은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요 17:3)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롬 6:1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딛 2:11-12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치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지금 내 삶의 왕좌에는 누가 앉아 있습니까
5장은 두 왕국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왕국, 그리고 은혜와 의가 다스리는 왕국.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이미 새 왕국으로 옮겨졌습니다.
그러나 옛 왕은 여전히 우리를 다시 다스리려 합니다. 습관, 두려움, 죄책감, 유혹. 오늘 내 삶의 왕좌에 은혜가 앉아 있는지, 아니면 옛 왕이 슬그머니 다시 앉아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6장은 바로 그 싸움을 다룹니다.
Two Adams · 대조
아담과 그리스도 — 한눈에 보는 대조
5:12-21을 표로 정리했습니다
첫 사람 아담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
행동
한 범죄, 불순종 (18, 19절)
의의 한 행동, 순종 (18, 19절)
들어온 것
죄와 사망 (12절)
은혜와 선물 (15절)
판결
정죄 (16, 18절)
의롭다 하심 (16, 18절)
사람의 신분
죄인 (19절)
의인 (19절)
왕 노릇 하는 것
사망이, 죄가 (14, 17, 21절)
은혜가, 그리고 우리가 (17, 21절)
결국
사망 (12, 21절)
생명, 영생 (18, 21절)
크기
한 범죄가 모든 사람에게
"더욱", "넘치고 또 넘쳐" (15, 17, 20절)
이 대조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도 이어집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15:22),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15:45). 성경 전체를 두 사람의 이야기로 볼 수 있습니다. 동산에서 무너진 첫 아담, 그리고 동산(겟세마네)에서 순종하고 동산(무덤이 있던 동산)에서 부활하신 마지막 아담.
Glossary · 단어 사전
5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화평和平 · 1절
하나님과의 원수 관계가 끝나고 화해된 상태. 샬롬.
들어감2절
왕 앞에 나아갈 수 있는 허가. 하나님께 언제든 나아갈 수 있는 길.
환난患難 · 3절
짓눌림, 압박. 포도를 짜는 압착기의 그림.
인내忍耐 · 3절
짐 아래 머물러 끝까지 버팀.
연단鍊鍛 · 4절
시험을 통과해 검증된 성품. 불로 단련된 금.
기약期約 · 6절
정해진 때. 하나님이 정하신 바로 그때.
확증하다確證 · 8절
확실하게 증명하다.
화목和睦 · 10–11절
원수 관계가 화해로 바뀜. 하나님이 먼저 손 내미심.
표상表象 · 14절
원본을 미리 보여 주는 모형, 예표.
왕 노릇14, 17, 21절
왕으로 다스림. 사망→죄→은혜→우리로 바뀌는 왕좌.
은사恩賜 · 15절
은혜로 주어진 선물.
범죄15–20절
바른 길에서 미끄러져 넘어짐.
정죄定罪 · 16, 18절
유죄 판결. 8:1에서 '결코 없다'고 선언됨.
가입하다加入 · 20절
곁으로 끼어 들어오다.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하나님과의 '화평'은 내 감정과 상관없는 객관적인 사실입니다. 마음이 불안할 때 이 사실이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1절)
지금까지의 인생에서 '환난 → 인내 → 연단 → 소망'의 과정을 경험한 적이 있습니까? 나누어 보십시오. (3-4절)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나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언제 가장 깊이 느꼈습니까? (8절)
'하물며(더욱)' 논증은 내 구원의 확신에 어떤 힘을 줍니까? (9-10절)
나는 아담 안에 있습니까,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까? 그 차이가 오늘 나의 삶에서 어떻게 드러나야 할까요? (12-19절)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내 삶에서 은혜가 죄보다 넘쳤던 경험이 있습니까?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