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끝에서 바울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3:31)고 했습니다. 4장은 그 말의 증명입니다. 바울은 율법(모세오경)의 첫 책 창세기를 펼쳐, 유대인이 가장 존경하는 조상 아브라함을 증인석에 세웁니다.
왜 하필 아브라함일까요? 유대인들은 아브라함을 '율법을 완벽하게 지킨 사람'으로 여겼습니다. 유대 문헌에는 "아브라함은 율법이 주어지기 전에 이미 온 율법을 지켰다"는 말까지 있었습니다. 만일 아브라함조차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바울의 복음은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오래된 방식이라는 것이 증명됩니다.
4장은 아브라함 이야기를 네 각도에서 비춥니다. ①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1-8절, 다윗의 증언 포함). ② 할례 이전에(9-12절). ③ 율법이 아니라 약속으로(13-17절). ④ 그 믿음은 어떤 믿음이었나(17-25절). 그리고 마지막에 이 모든 이야기가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핵심 구절
창세기 15:6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4장 전체가 이 한 구절의 강해입니다.
핵심 단어
여기다 (로기조마이)
'계산에 넣다, 장부에 기록하다'. 4장에만 11번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의로 계산하신다'는 것이 4장의 중심입니다.
두 증인
아브라함과 다윗
유대 법에서는 두 증인의 증언이 있어야 사실이 확정되었습니다(신 19:15). 바울은 율법의 대표 아브라함과 시편의 대표 다윗을 함께 세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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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육신으로 우리 조상"
혈통으로 따진 조상. 16절에서는 '믿음으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으로 넓어집니다.
3절 "의로 여기신 바"
'의로 계산하셨다'. 장부에 '의'라고 기록하셨다는 회계 용어.
4절 "빚으로 여기거니와"
마땅히 받을 권리, 갚아야 할 채무로 여긴다는 뜻.
11절 "인친 것"
도장을 찍어 확인함. 할례는 이미 받은 의를 확인해 주는 '도장'이었다는 뜻.
13절 "후사"
後嗣, 상속자. 『개역개정』도 "상속자".
16절 "굳게 하려"
확실하게, 보장되게 하려. 원문 베바이오스는 '법적으로 효력 있는, 확실한'.
19절 "죽은 것 같음"
원문은 '이미 죽은'. 생식 능력이 완전히 끝났다는 뜻. 일부 사본은 '알고도' 대신 '생각지 아니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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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 아브라함과 다윗의 증언
바울은 먼저 질문을 던집니다. "아브라함은 무엇을 얻었는가?" 그리고 창세기 15:6을 인용해서,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어서 '일하는 자의 삯'과 '은혜의 선물'을 대조하고, 다윗의 시편 32편을 두 번째 증언으로 덧붙입니다.
1그렇다면 우리 조상 아브라함은 무엇을 얻었는가
그런즉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 하리요
직역 그렇다면 혈통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다고 말하겠는가?
3:27-31에서 바울은 "자랑할 데가 없다",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 "하나님은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신다"고 말했습니다. 유대인 독자는 즉시 이렇게 반박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은 어떤가?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을 보시고 그를 택하셨고, 그 순종 때문에 복을 주시지 않았는가?"
바울은 이 질문을 먼저 꺼냅니다. "육신으로 우리 조상인 아브라함." '육신으로'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혈통으로 따지면 아브라함은 유대인의 조상입니다. 그러나 16절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1절에서 '유대인의 조상'이었던 아브라함이, 4장 끝에서는 '모든 믿는 자의 조상'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얻었다휴레케나이 — '발견하다'. 70인역 창 18:3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은혜를 발견했다면)"이라는 표현을 떠올리게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발견했는가', 행위의 공로인가 은혜인가를 묻는 것입니다.
사본 차이 — 원문 어순과 사본에 따라 "육신으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무엇을 얻었는가" 또는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육신으로(자기 힘으로) 무엇을 얻었는가"로 읽힙니다. 후자로 읽으면 '아브라함이 인간적 노력으로 얻은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이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1:2너희 조상 아브라함과 너희를 생산한 사라를 생각하여 보라 아브라함이 혈혈단신으로 있을 때에 내가 부르고
마 3: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요 8:39, 56아브라함은 우리 조상이라…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2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면 자랑할 것이 있겠지만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써 의롭다 하심을 얻었으면 자랑할 것이 있으려니와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직역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면 자랑할 것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서는 없다.
3:27에서 바울은 '자랑이 추방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만일 아브라함이 행위로 의롭게 되었다면, 아브라함에게는 자랑할 것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3:27의 결론이 무너집니다.
바울은 짧게 답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없느니라." 사람들 앞에서 아브라함은 존경받을 만한 인물입니다. 고향을 떠났고, 조카에게 좋은 땅을 양보했고, 이삭을 바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아브라함은 자랑할 것이 없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거짓말(창 12:13, 20:2), 하갈을 통한 조급함(창 16장) 같은 연약함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경이 직접 말하는 것은 그가 '믿었고' 하나님이 그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입니다(3절).
원어 · 번역 노트
있으려니와… 없느니라 — 원문은 "자랑이 있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서는(프로스 톤 테온) 아니다". 사람 사이의 평판과 하나님 앞의 판단을 구별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3: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고전 1:29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수 24:2-3옛적에 너희 조상들 곧 아브라함의 아비… 다른 신들을 섬겼으나 내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을 강 저편에서 이끌어 내어
3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의로 여기셨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직역 성경이 무엇이라 말하는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고,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바울은 논쟁을 성경 자체로 결판냅니다. "성경이 무엇을 말하느뇨?" 그리고 창세기 15:6을 인용합니다. 이 구절의 배경을 알면 훨씬 깊이 다가옵니다.
창세기 15장에서 아브라함은 나이가 많은데 자식이 없어 낙심해 있었습니다.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내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그러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셔서 밤하늘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그때 성경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아브라함이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제물을 드린 것도, 율법을 지킨 것도, 할례를 받은 것도 아닙니다(할례는 14년 뒤 17장에서 나옵니다). 그는 그저 밤하늘 아래서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믿음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다'는 원래 회계 용어입니다. 장부에 무언가를 '기입하다, 계산에 넣다'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장부에는 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의 믿음을 보시고 그의 장부에 '의'라고 기록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번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산해 넣으신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의로 여기신 바엘로기스테 에이스 디카이오쉬넨 — 70인역 창 15:6을 그대로 인용. 이 구절은 갈 3:6, 약 2:23에도 인용됩니다. 신약에서 가장 중요한 구약 구절 중 하나입니다.
여기다로기조마이 — 4장에 11번(3, 4, 5, 6, 8, 9, 10, 11, 22, 23, 24절). 빌레몬서 18절 "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에 쓰인 단어입니다. 바울이 오네시모의 빚을 자기 '장부로 돌려 달라'고 한 것처럼, 하나님은 우리 장부에 그리스도의 의를 '계산해 넣으십니다'.
창 15:5-6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갈 3:6-7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그것을 저에게 의로 정하셨다 함과 같으니라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약 2:23이에 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응하였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몬 1:18저가 만일 네게 불의를 하였거나 네게 진 것이 있거든 이것을 내 앞으로 계산하라
4일하는 자의 삯은 은혜가 아니라 빚이다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직역 일하는 사람에게는 품삯이 선물로 계산되지 않고, 마땅히 갚아야 할 빚으로 계산된다.
바울은 누구나 아는 일상의 예를 듭니다. 회사에서 한 달 일하고 월급을 받을 때, 우리는 사장님께 "이 은혜를 어떻게 갚을까요" 하며 감격하지 않습니다. 일한 만큼 받는 것은 당연한 권리이기 때문입니다. 사장님 입장에서도 월급은 선물이 아니라 갚아야 할 빚입니다.
만일 의롭다 하심이 '일한 대가'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빚진 분이 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 하셔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과 사람의 관계를 완전히 뒤집는 생각입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빚지신 분이 아닙니다(11: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원어 · 번역 노트
삯미스토스 — 6:23 "죄의 삯(옵소니아, 군인의 급료)은 사망이요"와는 다른 단어이지만 같은 원리입니다. 죄에는 마땅한 삯이 있고, 영생은 삯이 아니라 선물(카리스마)입니다.
빚오페일레마 — 마 6:12 주기도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빚)를 사하여 주옵시고"의 '빚'과 같은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1: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롬 11:6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마 20:1-16포도원 품꾼의 비유 — 나중 온 자에게도 같은 삯을 주시는 주인
눅 17:10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5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직역 그러나 일하지 않고 불경건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분을 믿는 사람에게는, 그의 믿음이 의로 계산된다.
4절의 반대편입니다. 그리고 로마서에서 가장 대담한 문장 중 하나가 나옵니다. 하나님은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입니다.
이 말이 얼마나 충격적인지 알려면 구약을 봐야 합니다. 출애굽기 23:7 "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잠언 17:15 "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구약은 '악인을 의롭다 하는 것'을 재판관의 가장 큰 불의로 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나님이 바로 그 일을 하신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가능할까요? 3:25-26에서 본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의 형벌을 대신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5:6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그리고 조건은 단 하나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믿는 자에게는." 의롭다 하심은 일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의 대상이 중요합니다.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나 자신의 경건을 믿는 것이 아니라, 경건치 않은 나를 받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것입니다.
여기서 큰 위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 먼저 경건해질 필요가 없습니다. 경건치 않은 모습 그대로 나아가도, 하나님은 의롭다 하십니다. 세리가 성전에서 멀리 서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했을 때, 예수님은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눅 18:14)고 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경건치 아니한 자아세베스 — 1:18 "경건치 않음(아세베이아)"과 같은 어근.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은 자. 아브라함도 원래 우상을 섬기던 집안 출신이었습니다(수 24:2).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 믿음 자체가 '의로운 행위'라서 의로 계산되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그리스도의 의를 받는 '빈손'입니다. 믿음이 공로가 되면 다시 '행위'가 되어 버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23:7나는 악인을 의롭다 하지 아니하겠노라
잠 17:15악인을 의롭다 하며 의인을 악하다 하는 이 두 자는 다 여호와의 미워하심을 입느니라
롬 5:6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에 기약대로 그리스도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위하여 죽으셨도다
눅 18:13-14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이 사람이 저보다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에 내려갔느니라
딤전 1:15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6다윗도 같은 복을 노래했다
일한 것이 없이 하나님께 의로 여기심을 받는 사람의 행복에 대하여 다윗의 말한 바
직역 다윗도 일한 것과 상관없이 하나님께서 의를 계산해 주시는 사람의 복에 대해 말한다.
바울은 두 번째 증인을 부릅니다. 다윗입니다. 아브라함이 '율법'(모세오경)의 대표라면, 다윗은 '시편'(성문서)의 대표입니다. 유대 법정에서는 두세 증인의 말로 사실이 확정되었습니다(신 19:15).
다윗을 증인으로 세운 것은 절묘합니다. 아브라함은 비교적 '좋은 사람'이었다고 반박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간음하고 살인한 왕이었습니다. 율법에 따르면 사형에 해당하는 죄를 지었습니다(레 20:10, 24:17). 율법의 행위로는 결코 의롭다 함을 받을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다윗이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노래합니다. 행위로 의를 얻은 사람이 아니라, "일한 것이 없이" 의로 여기심을 받은 사람의 복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행복 幸福 — 원문 마카리스모스, '복되다고 선포함'. 7절의 '복이 있고(마카리오이)'와 같은 어근으로, 팔복(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의 '복'입니다. 『개역개정』은 "복".
일한 것이 없이코리스 에르곤 — 3:21 "율법 외에(코리스 노무)", 3:28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코리스 에르곤 노무)"와 같은 구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19:15두 증인의 입으로나 세 증인의 입으로 그 사건을 확정할 것이며
삼하 11-12장다윗이 밧세바를 범하고 우리아를 죽임, 나단의 책망과 다윗의 회개
시 51:1-4하나님이여 주의 인자를 좇아 나를 긍휼히 여기시며… 내 죄악을 말갛게 씻으시며
7불법을 사함받고 죄가 가리워진 자는 복이 있다
그 불법을 사하심을 받고 그 죄를 가리우심을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직역 "그 불법들이 용서받고 그 죄들이 덮인 자들은 복되도다."
시편 32:1의 인용입니다. 이 시는 다윗이 자기 죄를 숨기다가 고백하고 용서받은 경험을 노래한 시입니다. "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내 죄악을 숨기지 아니하였더니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시 32:3-5).
다윗은 용서를 두 가지 그림으로 노래합니다. 첫째, "불법을 사하심". '사하다'는 원래 '놓아 주다, 빚을 탕감해 주다'라는 뜻입니다. 갚을 수 없는 빚이 장부에서 지워진 것입니다. 둘째, "죄를 가리우심". 죄가 덮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 죄를 보지 않으시도록 덮어 주셨습니다. 3:25의 '속죄소'(죄를 덮는 자리)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다윗이 말하는 '복 있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은 사람이 아니라 죄를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시편 1편의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는 우리 누구도 온전히 될 수 없는 이상입니다. 그러나 시편 32편의 복은 실패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하심 赦 — '용서할 사'. 원문 아피에미, '놓아 보내다'. 마 6:12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막 2:5 "작은 자야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에 쓰였습니다.
가리우심 — 히브리어 카사(덮다). 구약의 '속죄하다'(키페르)도 '덮다'에서 나온 말로 이해되곤 합니다.
인용 — 7-8절은 시 32:1-2 상반절을 70인역 그대로 인용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32:1-5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가 가리워진 자는 복이 있도다… 곧 주께서 내 죄의 악을 사하셨나이다
사 1:18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미 7:19우리의 모든 죄를 깊은 바다에 던지시리이다
요일 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8주께서 죄를 계산하지 않으실 사람은 복이 있다
주께서 그 죄를 인정치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직역 "주께서 결코 죄를 계산하지 않으실 사람은 복되도다."
시편 32:2 상반절입니다. 바울이 이 구절을 인용한 결정적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인정치 아니하실"은 3절의 '여기다(로기조마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아브라함에게는 하나님께서 의를 '계산해 넣으셨고'(3절), 다윗에게는 하나님께서 죄를 '계산하지 않으셨습니다'(8절).
이것이 칭의의 두 얼굴입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장부에서 죄를 지우시고, 그 자리에 의를 기록하십니다. 마이너스를 0으로 만드실 뿐 아니라 플러스로 채우십니다. 고린도후서 5:19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계산하지) 아니하시고."
원문에는 강한 부정(우 메)이 쓰였습니다. "결코, 절대로 계산하지 않으신다." 한 번 용서받은 죄를 하나님은 다시 꺼내어 계산하지 않으십니다. 히브리서 8:12 "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원어 · 번역 노트
인정치 아니하실 — 원문 우 메 로기세타이. '우 메'는 헬라어에서 가장 강한 부정 표현으로 '결코 ~하지 않을 것이다'.
주께서퀴리오스 — 시편의 '여호와'를 70인역이 '주'로 옮긴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후 5:19저희의 죄를 저희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히 8:12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사 43:25나 곧 나는 나를 위하여 너의 허물을 도말하는 자니 너의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시 103:12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장부를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우리는 마음속에 보이지 않는 장부를 하나 들고 삽니다. 잘한 일은 플러스, 잘못한 일은 마이너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그 장부가 플러스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계산해 보면 늘 마이너스입니다.
복음은 그 장부를 하나님께 넘겨 드리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믿는 자의 장부에서 죄를 지우시고(다윗), 그리스도의 의를 기록하십니다(아브라함). 이제 우리는 장부를 맞추려고 애쓰는 사람이 아니라, 은혜로 채워진 장부를 받은 '복 있는 사람'입니다.
4:9–12할례보다 먼저 — 모든 믿는 자의 조상
유대인 독자가 다시 반박합니다. "좋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나 아브라함은 할례받은 사람이었다. 그러니 그 복은 할례받은 우리 유대인에게만 해당하는 것 아닌가?"
바울은 창세기의 연대를 꺼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창 15장)은 할례를 받은 것(창 17장)보다 먼저였습니다. 유대 전통에 따르면 그 사이는 약 14년(또는 29년)입니다. 이 간단한 사실이 모든 것을 바꿉니다.
9이 복은 할례자에게만인가, 무할례자에게도인가
그런즉 이 행복이 할례자에게뇨 혹 무할례자에게도뇨 대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는 그 믿음을 의로 여겼다 하노라
직역 그렇다면 이 복은 할례자에게만인가, 무할례자에게도인가? 우리가 말하기를, "아브라함에게 그 믿음이 의로 여겨졌다" 하기 때문이다.
다윗이 노래한 그 복, 곧 일한 것 없이 의로 여김을 받는 복은 누구에게 주어지는가? 할례받은 유대인에게만인가, 아니면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에게도인가?
다윗은 할례받은 유대인이었으니, 유대인은 이 복이 자기들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다시 아브라함에게로 돌아갑니다. 아브라함의 경우를 보면 답이 나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대저 大抵 — '대체로 보아, 왜냐하면'. 옛 접속어입니다. 원문 가르, '왜냐하면'.
함께 읽을 말씀
롬 3:29-30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뇨 또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갈 3:14이는 아브라함의 복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10언제 의로 여기셨나? 할례 받기 전이다
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직역 그러면 어떻게 그것이 여겨졌는가? 그가 할례받은 상태에서인가, 할례받지 않은 상태에서인가? 할례받은 상태에서가 아니라 할례받지 않은 상태에서였다.
결정적인 질문입니다. 아브라함이 의롭다 여김을 받은 것은 할례받기 전인가, 후인가?
창세기를 펼쳐 보면 답은 분명합니다. 창세기 15:6에서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그때 그의 이름은 아직 '아브람'이었고, 이스마엘도 태어나기 전이었습니다(창 16장, 아브람 86세). 할례는 창세기 17장에서 아브라함이 99세일 때 받았습니다(창 17:24). 그 사이에 적어도 13년 이상이 흐릅니다.
그러니 결론은 분명합니다.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아브라함은 할례받지 않은 사람, 곧 '이방인'의 상태에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 유대인들이 가장 자랑하는 조상 아브라함은, 의롭다 함을 받던 그 순간 오히려 '무할례자'였습니다. 이것은 유대인 독자에게 엄청난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연대 — 창 16:16 이스마엘 출생 시 아브람 86세, 창 17:1, 24 할례 시 99세. 창 15장은 16장보다 앞섭니다. 유대 전통은 15장과 17장 사이를 29년으로 계산하기도 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창 16:16하갈이 아브람에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팔십 륙세이었더라
창 17:24아브라함이 그 양피를 벤 때는 구십 구세이었고
갈 3:17하나님의 미리 정하신 언약을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 같은 연대 논증
11할례는 이미 받은 의에 찍은 도장 —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
저가 할례의 표를 받은 것은 무할례시에 믿음으로 된 의를 인친 것이니 이는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저희로 의로 여기심을 얻게 하려 함이라
직역 그리고 그는 할례의 표징을 받았으니, 그것은 그가 할례받지 않았을 때 가졌던 믿음의 의에 대한 인장이었다. 그리하여 그가 할례받지 않은 상태로 믿는 모든 이들의 아버지가 되어, 그들에게도 의가 계산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할례는 무엇이었을까요? 바울은 두 단어로 설명합니다. "표"와 "인친 것"입니다.
할례는 의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의를 확인하는 표였습니다. '인친다'는 것은 도장을 찍는 것입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다고 계약이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이미 맺은 계약을 확인하고 보증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먼저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고, 그 뒤에 할례라는 '도장'으로 그 의를 확인받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목적이 드러납니다. 아브라함이 무할례 상태에서 의롭다 함을 받은 것은 우연이 아니었습니다. "무할례자로서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 되어." 하나님은 처음부터 아브라함을 이방인 믿는 자들의 조상으로 계획하셨습니다. 할례받지 않은 로마의 이방인 성도들도, 오늘 한국의 우리도, 아브라함과 똑같은 방식, 곧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습니다. 우리는 혈통으로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니지만, 믿음으로는 그의 자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표세메이온 — 창 17:11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오트, 70인역 세메이온)이니라"에서 가져온 말입니다.
인친 것스프라기스 — '도장, 봉인'. 고전 9:2 "너희는 주 안에서 나의 사도 됨을 인친 것이라", 엡 1:13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에 쓰였습니다. 신약에서는 성령께서 믿는 자를 '인치십니다'. 할례가 아브라함에게 한 일을, 성령께서 신자에게 하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7:9-11너희는 양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엡 1:13-14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갈 3:7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들은 아브라함의 아들인 줄 알지어다
갈 3: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12할례자의 조상도 —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자에게
또한 할례자의 조상이 되었나니 곧 할례 받을 자에게뿐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의 무할례시에 가졌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에게도니라
직역 또한 할례자들의 아버지가 되었으니, 곧 단지 할례받은 자들일 뿐만 아니라,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할례받지 않았을 때 가졌던 그 믿음의 발자국을 따라 걷는 자들의 아버지다.
아브라함은 이방인 신자의 조상일 뿐 아니라 "할례자의 조상"도 됩니다. 바울은 유대인을 밀어내지 않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할례를 '받았다는 것'만으로는 아브라함의 참 자손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자취를 좇는 자들"이어야 합니다.
'자취를 좇는다'는 표현이 아름답습니다. 원문은 군대가 앞사람의 발자국을 따라 줄을 맞춰 행진하는 모습입니다. 눈 덮인 길에서 앞서간 사람의 발자국을 그대로 밟으며 따라가듯, 우리는 아브라함이 걸어간 믿음의 발자국을 따라 걷습니다.
결국 9-12절의 결론은 이것입니다. 아브라함 가족의 기준은 할례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할례받은 유대인이든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이든,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이것이 2:28-29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의 구체적인 의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자취를 좇는 — 원문 스토이케오는 '줄을 맞춰 걷다'(갈 5:25 "성령으로 행할지니", 6:16 "이 규례를 행하는 자"), 이크노스는 '발자국'(벧전 2:21 "그 자취를 따라오게").
문법 — 원문은 문법적으로 매끄럽지 않아 '할례자이면서 믿음의 발자취를 따르는' 한 그룹(유대인 신자)인지, 두 그룹인지 논란이 있습니다. 대부분 한 그룹, 곧 '할례만이 아니라 믿음도 가진 유대인'으로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벧전 2:21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히 11:8-10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으며
요 8:39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롬 9:7-8아브라함의 씨가 다 그의 자녀가 아니라…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누구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습니까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 율법이 주어지기 훨씬 전에 오직 하나님의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의 발자국은 4천 년을 지나 오늘 우리에게까지 이어져 있습니다.
교회에서 받은 침례, 직분, 오랜 신앙 경력은 귀한 '도장'입니다. 그러나 도장보다 먼저 있어야 하는 것은 믿음입니다. 오늘 나는 형식의 발자국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의 발자국을 따라 걷고 있습니까?
4:13–17약속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 은혜에 속하게 하려고
9-12절이 '할례'를 다뤘다면, 13-17절은 '율법'을 다룹니다. 유대인에게 할례와 율법은 하나님의 백성을 구별하는 두 기둥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브라함에게 주신 위대한 약속이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을 통해 주어졌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16절)라고 말합니다.
13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아브라함이나 그 후손에게 세상의 후사가 되리라고 하신 언약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 오직 믿음의 의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직역 왜냐하면 아브라함이나 그의 씨에게 그가 세상의 상속자가 되리라는 약속은 율법을 통해서가 아니라 믿음의 의를 통해서 주어졌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은 무엇이었습니까? 창세기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하셨고(창 12:7, 13:15),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하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창 12:2-3). 그런데 바울은 이 약속을 "세상의 후사", 곧 온 세상의 상속자라고 요약합니다.
가나안 땅이 어떻게 '세상'이 되었을까요? 구약 자체가 이미 그 방향을 가리켰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 하셨고, 시편 2:8은 메시아에게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라고 약속합니다. 예수님도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마 5:5)라고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회복하실 온 세상, 새 하늘과 새 땅의 예고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약속은 "율법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요"입니다. 시내산의 율법은 아브라함에게 약속이 주어진 지 430년 뒤에 왔습니다(갈 3:17). 약속은 율법보다 먼저였고, 율법의 조건이 아니라 "믿음의 의로" 주어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후사 後嗣 — '뒤를 이을 사람', 상속자. 원문 클레로노모스,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에서 신자에게 적용됩니다.
후손스페르마 — '씨'. 단수형입니다. 바울은 갈 3:16에서 이 단수형에 주목해 "그 씨는 곧 그리스도라"고 해석합니다.
창 12:2-3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창 22:17-18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천하 만민이 네 씨로 말미암아 복을 얻으리니
시 2:8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갈 3:16-18이 언약은 사백 삼십년 후에 생긴 율법이 없이 하지 못하여 그 약속을 헛되게 하지 못하리라
마 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14율법에 속한 자가 상속자라면 믿음도 약속도 헛것이 된다
만일 율법에 속한 자들이 후사가 되면 믿음은 헛것이 되고 약속은 폐하여졌느니라
직역 만일 율법으로부터 난 자들이 상속자라면, 믿음은 비워지고 약속은 무효가 된 것이다.
바울은 반대 경우를 가정해 봅니다. 만일 율법을 지키는 자들이 상속자가 된다면 어떻게 될까요? 두 가지가 무너집니다.
첫째, 믿음이 헛것이 됩니다. 율법을 지켜서 상속자가 된다면 믿음은 필요 없습니다. 믿음은 '비어 있는' 껍데기가 됩니다. 둘째, 약속이 폐하여집니다. 약속은 조건 없이 '주겠다'는 것인데, 율법의 조건이 붙으면 그것은 더 이상 약속이 아니라 계약입니다. 그리고 15절이 말하듯, 아무도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으니 결국 아무도 상속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약속이 사실상 무효가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헛것이 되고케노오 — '비우다'. 빌 2:7 "자기를 비워"(그리스도의 비우심)와 같은 단어입니다. 고전 1:17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에도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3:18만일 그 유업이 율법에서 난 것이면 약속에서 난 것이 아니리라 그러나 하나님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아브라함에게 주신 것이라
갈 2:21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15율법은 진노를 이룬다 — 율법이 없으면 범함도 없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직역 왜냐하면 율법은 진노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그러나 율법이 없는 곳에는 위반도 없다.
왜 율법으로는 약속을 받을 수 없을까요?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 자체는 선합니다(7:12). 그러나 죄인에게 율법이 주어지면, 율법은 그 죄를 '위반'으로 분명하게 드러내고, 하나님의 진노 아래 세웁니다. 율법은 생명을 주는 것이 아니라 정죄를 가져옵니다.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이 말은 율법이 없으면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5:13 "율법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범함'(파라바시스)은 '명시된 선을 넘는 것'입니다. 제한 속도 표지판이 없는 길에서는 과속 '위반'이 성립하지 않지만, 위험하게 운전하는 것 자체가 괜찮은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죄를 분명한 '위반'으로 만들어 책임을 더 무겁게 합니다.
그래서 결론은 이렇습니다. 상속의 약속이 율법에 달려 있다면, 그 결과는 복이 아니라 진노입니다. 약속이 이루어지려면 다른 길, 곧 믿음과 은혜의 길이어야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범함파라바시스 — 2:23 "율법을 범함으로", 5:14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에 쓰였습니다. 아담은 명시된 계명을 '넘었고', 모세 율법 이후의 이스라엘도 그랬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5:13, 20율법 있기 전에도 죄가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가입한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로되
롬 7:7-11율법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내가 죄를 알지 못하였으니
갈 3:10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고전 15:56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16그러므로 은혜에 속하도록 믿음으로 — 모든 후손에게 확실하게
그러므로 후사가 되는 이것이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으로 되나니 이는 그 약속을 그 모든 후손에게 굳게 하려 하심이라 율법에 속한 자에게 뿐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니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직역 이 때문에 그것은 믿음으로 되니, 은혜를 따르게 하려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 약속이 모든 씨에게 확실하게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율법에 속한 자에게만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에게도. 그는 우리 모두의 아버지다.
13-15절의 결론입니다. 원문은 아주 짧고 강렬하게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은혜를 따라 되도록." 하나님은 왜 약속을 믿음으로 받게 하셨을까요? 세 가지 이유가 나옵니다.
① 은혜에 속하기 위하여. 믿음과 은혜는 짝입니다. 행위는 '삯'을 받고(4절), 믿음은 '선물'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상속을 선물로 주시기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받는 방법도 믿음이어야 합니다.
② 약속을 굳게 하려 하심이라. 만일 약속이 우리의 율법 준수에 달려 있다면, 그 약속은 늘 흔들릴 것입니다. 내가 오늘 잘하면 상속자, 내일 넘어지면 상속자가 아닌 셈이니까요. 그러나 약속이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기에, 그것은 '확실하고 보증된' 것이 됩니다. 우리 구원의 확신은 우리의 신실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근거합니다.
③ 그 모든 후손에게. 믿음의 길이기에 유대인(율법에 속한 자)도, 이방인(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도 모두 상속자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라." 1절에서 "육신으로 우리 조상"이던 아브라함이, 여기서는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굳게 하려베바이오스 — 고대 파피루스 문서에서 '법적으로 보증된' 계약에 쓰이던 말입니다. 히 6:19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베바이오스)"에도 쓰였습니다.
율법에 속한 자 — 여기서는 14절과 달리 부정적인 뜻이 아니라, 율법을 받은 유대인 신자를 가리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에 속한 자"는 이방인 신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히 6:17-19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치 아니함을 넉넉히 나타내려고…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갈 3:28-29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롬 8:38-39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17많은 민족의 조상 —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부르시는 하나님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직역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아버지로 세웠다." 그가 믿은 그 하나님 앞에서다. 그분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고, 존재하지 않는 것들을 존재하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이시다.
바울은 16절의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을 성경으로 뒷받침합니다. 창세기 17:5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이때 하나님은 아브람의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셨습니다. '아브람'은 '존귀한 아버지', '아브라함'은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자식이 하나도 없는 99세 노인에게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매일 그 이름을 불릴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두 가지로 묘사합니다. 4장 후반부의 열쇠입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 아브라함과 사라의 몸은 생식 능력에서 '죽은 것 같았습니다'(19절). 그런데 하나님은 그 죽은 몸에서 생명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훗날 아브라함은 이삭을 바칠 때도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했습니다(히 11:19). 아브라함의 믿음은 처음부터 '부활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이것이 24절의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우리 믿음과 연결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 하나님은 창조 때 아무것도 없는 데서 "빛이 있으라" 하고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아직 없는 자손들을 마치 이미 있는 것처럼 "많은 민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현실을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창조'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인'이라 부르시면, 우리는 의인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그의 믿은 바 하나님 — 원문은 "그가 믿은 하나님 앞에서(카테난티 후 에피스튜센 테우)". 16절 끝 "하나님 앞에서 우리 모든 사람의 조상"과 연결됩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 원문 칼룬토스 타 메 온타 호스 온타. 창조(무에서 유)와 약속(아직 없는 것을 이미 있는 것처럼)을 모두 담은 표현입니다. 유대교 회당 기도 '18조 기도문' 두 번째 축복에도 "죽은 자를 살리시는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7:5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히 11:17-19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창 1: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사 48:13내 손이 땅의 기초를 정하였고… 내가 부르면 천지가 일제히 서느니라
고후 1:9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뢰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뢰하게 하심이라
고전 1:28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아직 없는 것을 이미 있는 것처럼 부르십니다
아브라함은 자식이 하나도 없을 때 '많은 무리의 아버지'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은 아직 없는 것을 이미 있는 것처럼 부르시는 분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를 무엇이라고 부르십니까? 의인, 자녀, 상속자. 내 눈에 보이는 현실이 그 이름과 맞지 않을 때도, 하나님의 부르심이 더 확실한 현실입니다. 우리의 확신은 내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4:18–25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 아브라함의 믿음, 그리고 우리
바울은 이제 아브라함의 믿음이 어떤 믿음이었는지 자세히 그립니다. 그것은 막연한 낙관주의가 아니었습니다. 현실을 정확히 보면서도(19절) 하나님의 약속을 더 크게 본 믿음이었습니다. 그리고 4장은 놀라운 전환으로 끝납니다. 이 모든 이야기는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것이라고.
18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직역 그는 소망에 반하여, 소망 위에서 믿었다. 그리하여 "네 씨가 이와 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아버지가 되었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원문은 짧은 말놀이입니다. "소망에 반하여(파르 엘피다), 소망 위에서(에프 엘피디)." 인간적인 소망, 곧 상식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모든 가능성은 끝났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끝난 자리 위에 하나님께서 주신 새로운 소망을 세웠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본질입니다. 믿음은 가능성이 보일 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가능성이 다 사라졌을 때, 하나님의 말씀만 남았을 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아브라함이 붙든 것은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구체적인 "말씀"이었습니다.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창 15:5), 곧 밤하늘의 별처럼 셀 수 없이 많으리라는 약속입니다. 믿음은 근거 없는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확신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 원문 파르 엘피다 에프 엘피디. '파라'(~을 거슬러)와 '에피'(~위에)의 대조. 『새번역』 "아브라함은 희망이 사라진 때에도 바라면서 믿었으므로".
되게 하려 하심을 인함이라 — 원문 에이스 토 게네스타이는 목적("되기 위하여")으로도, 결과("그래서 되었다")로도 읽힙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5:5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히 11:1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1-12이러므로 죽은 자와 방불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하늘에 허다한 별과 또 해변의 무수한 모래와 같이 많은 후손이 생육하였느니라
롬 8:24-25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19자기 몸과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그가 백세나 되어 자기 몸의 죽은 것 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직역 그는 거의 백 세가 되어 자기 몸이 이미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도 죽은 것 같음을 직시하면서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다.
아브라함의 믿음은 현실을 외면하는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현실을 정확히 "알았습니다". 원문은 '주의 깊게 살펴보다, 똑바로 바라보다'라는 뜻입니다. 그는 거울을 보며 자기가 백 살 가까운 노인이라는 것을, 사라가 아흔 살이고 평생 아이를 갖지 못했다는 것을 냉정하게 인정했습니다. 의학적으로 두 사람의 몸은 '죽은 것'이나 다름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현실을 정확히 보면서도, 그 현실보다 하나님을 더 크게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내 몸이 할 수 있는가'를 보지 않고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가'를 보았습니다.
물론 창세기를 보면 아브라함도 완벽한 믿음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고(창 16장), 하나님의 약속을 듣고 엎드려 웃기도 했습니다(창 17:17). 그러나 바울은 그의 믿음의 전체 방향을 봅니다. 흔들림이 있었지만, 그는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놓지 않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알고도 — 원문 카테노에센, '똑바로 바라보다, 숙고하다'. 일부 사본(킹제임스 성경의 바탕)에는 "생각지 아니하고(우 카테노에센)"로 되어 있어, "자기 몸을 돌아보지 않았다"는 반대 뜻이 됩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은 '알고도'이며, 『개역』도 이를 따랐습니다.
백세나 되어 — 원문 "백 세쯤 되어(헤카톤타에테스 푸)". 창 17:1, 17 "아브람의 구십구세 때에…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태 胎 — 원문 메트라, '자궁'.
함께 읽을 말씀
창 17:17아브라함이 엎드려 웃으며 심중에 이르되 백세 된 사람이 어찌 자식을 낳을까 사라는 구십세니 어찌 생산하리요 하고
창 18:11-14사라의 경수는 끊어졌는지라… 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히 11:11믿음으로 사라 자신도 나이 늙어 단산하였으나 잉태하는 힘을 얻었으니 이는 약속하신 이를 미쁘신 줄 앎이라
눅 1:37대저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
20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해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직역 그는 불신앙으로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흔들리지 않았고, 오히려 믿음으로 강하게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의심치 않고" — 원문은 '둘로 갈라지다'라는 뜻입니다. 마음이 두 쪽으로 나뉘어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는 상태입니다. 야고보서 1:6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과 자기 몸의 현실 사이에서 마음이 둘로 갈라지지 않았습니다.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 원문은 수동태입니다. '강하게 되었다', 곧 하나님께서 그를 강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스스로 믿음의 근육을 키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볼수록 믿음이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입니다. 이 말이 1:21과 정확히 대조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류는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정반대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을 '믿음으로써'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 하나님이 하신 말씀을 그대로 신뢰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가장 큰 영광입니다. 반대로 불신앙은 하나님을 거짓말쟁이로 만드는 것입니다(요일 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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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심치디에크리테 — '나뉘다, 갈등하다'. 14:23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마 21:21 "너희가 믿음이 있고 의심치 아니하면"에 쓰였습니다.
견고하여져서에네뒤나모테 —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엡 6:10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와 같은 동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약 1:6-8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요일 5:10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엡 6:10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21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 확신했다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직역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또한 능히 행하실 수 있다고 완전히 확신했다.
아브라함의 믿음의 핵심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그는 두 가지를 확신했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셨다는 것, 그리고 하나님이 그것을 능히 이루실 수 있다는 것.
믿음은 결국 '하나님이 누구신가'에 대한 확신입니다. 아브라함이 바라본 것은 자기 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셔서 약속을 지키시고(약속하신 그것을), 전능하셔서 약속을 이루실 수 있습니다(능히 이루실). 하나님께 이 두 가지가 다 있다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는 약속도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확신하였으니"는 원래 '가득 채워지다'라는 뜻입니다. 배의 돛이 바람으로 가득 차듯, 아브라함의 마음이 확신으로 가득 찼습니다. 의심이 들어올 빈자리가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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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신하였으니플레로포레오 — '가득(플레로) 실어 나르다(포레오)'. 14:5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골 4:12 "확신 있게 서기를"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8:14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렘 32:17, 27주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 내게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히 10: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고 굳게 잡아
딤후 1:12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나의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저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
22그러므로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
그러므로 이것을 저에게 의로 여기셨느니라
직역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다.
18-21절의 결론으로 창세기 15:6을 다시 인용합니다. 3절에서 시작한 인용이 여기서 다시 울립니다. 4장 전체가 이 한 구절을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 바로 이런 믿음, 곧 불가능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신뢰한 믿음이었기에,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 하나님은 믿음 자체를 '의로운 행위'로 보상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이 자기를 바라보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바라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통해 의를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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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디오 카이 — "그래서 또한". 18-21절의 믿음이 원인이 되어 22절의 결과가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롬 4:3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
23이 말씀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저에게 의로 여기셨다 기록된 것은 아브라함만 위함이 아니요
직역 그러나 "그에게 여겨졌다"고 기록된 것은 그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4장이 갑자기 방향을 틉니다. 지금까지 아브라함 이야기를 했는데, 바울은 말합니다. "이 말씀은 아브라함만을 위해 기록된 것이 아니다."
성경은 옛날이야기 모음집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기록하실 때 이미 4천 년 뒤 이 말씀을 읽을 우리를 생각하셨습니다. 바울은 15:4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우리로 하여금 인내로 또는 성경의 안위로 소망을 가지게 함이니라." 고린도전서 10:11도 같은 말을 합니다. 구약의 이야기는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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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함이 아니요 — 원문 디 아우톤 모논, "그만을 위하여". 유대 랍비들도 비슷한 해석 원칙을 썼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은 우리를 위해 기록되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5:4무엇이든지 전에 기록한 바는 우리의 교훈을 위하여 기록된 것이니
고전 10:6, 11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되었느니라
고전 9:9-10하나님께서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 오로지 우리를 위하여 말씀하심이 아니냐
24우리도 —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
의로 여기심을 받을 우리도 위함이니 곧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를 믿는 자니라
직역 의로 여김을 받을 우리를 위한 것이기도 하니, 곧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분을 믿는 우리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우리도 위함"입니다. 우리도 아브라함과 똑같이 의로 여김을 받습니다. 어떤 조건으로? 아브라함과 똑같은 하나님을, 똑같은 방식으로 믿는 것입니다.
여기에 놀라운 연결이 있습니다. 17절에서 아브라함이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분이셨습니다. 19절에서 그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사라의 '죽은 것 같은' 몸에서 생명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24절에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입니다.
아브라함은 죽은 것 같은 몸에서 생명을 주실 하나님을 믿었고, 우리는 실제로 죽으신 예수님을 무덤에서 일으키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의 믿음과 우리의 믿음은 같은 하나님, 곧 부활의 하나님을 향한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앞을 내다보며 믿었고, 우리는 뒤를 돌아보며 믿습니다. 그러나 대상은 같습니다. 예수님은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요 8:56)고 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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받을멜레이 — '~하게 되어 있다, ~할 것이다'. 미래의 마지막 심판을 가리킬 수도 있고, 믿을 때마다 이루어지는 확실한 일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살리신 이를 믿는 — 흥미롭게도 바울은 여기서 '예수님을 믿는 자'가 아니라 '예수님을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자'라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며, 그 믿음의 내용이 예수님의 부활입니다(10:9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함께 읽을 말씀
롬 10:9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요 8:56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벧전 1:21너희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갈 3:9그러므로 믿음으로 말미암은 자는 믿음이 있는 아브라함과 함께 복을 받느니라
25우리 범죄 때문에 내어 줌이 되고, 우리를 의롭다 하시려고 살아나셨다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직역 그분은 우리의 범죄들 때문에 넘겨지셨고,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일으켜지셨다.
4장, 그리고 1:18부터 이어진 로마서 첫 부분 전체가 이 한 절의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리듬이 딱 맞는 두 줄로 되어 있어, 초대교회가 함께 외우던 신앙고백이었을 것으로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첫째 줄: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이것은 이사야 53장의 메아리입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5-6). 70인역 이사야 53:12은 "그가 그들의 죄 때문에 넘겨졌다(파레도테)"고 말하는데, 바울이 쓴 단어와 똑같습니다. '내어 줌'은 1:24, 26, 28에서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죄에 '내어 버려 두신' 바로 그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내어 주셨던 그 심판을, 이제 그리스도께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둘째 줄: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십자가와 부활은 떨어질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죽기만 하시고 부활하지 않으셨다면, 그 죽음이 정말 하나님께 받아들여졌는지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부활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대속을 받아들이셨다는 '영수증'이요, 하나님의 '무죄 판결'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살아나셨기에 우리의 칭의가 확증되었고, 살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십니다(8:34). 고린도전서 15:17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신 것이 없으면 너희의 믿음도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죄 가운데 있을 것이요."
이 한 구절에서 5장으로 넘어갑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5:1). 4장이 '어떻게 의롭게 되는가'를 마무리했다면, 5장부터는 '의롭게 된 사람은 무엇을 누리는가'가 시작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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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하여 — 두 줄 모두 원문 디아(+대격), '~때문에'. 첫 줄은 '우리 범죄 때문에'(원인), 둘째 줄은 '우리 칭의를 위하여'(목적)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내어 줌이 되고파레도테 — 신적 수동태. 하나님께서 그를 넘겨주셨습니다.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