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3절까지 — 믿음이 강한 자와 연약한 자, 판단과 업신여김, 그리고 형제 앞에 걸림돌을 두지 않는 사랑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ROMANS 14:17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4장 들어가며
12–13장의 ‘서로 사랑하라’가 로마 교회의 실제 갈등 속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 보여 줍니다
14장에서 바울은 원리에서 현장으로 내려옵니다. 13:8에서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 빚도 지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랑이 실제로 시험받는 곳은 어디입니까? 의견이 다른 형제를 만날 때입니다.
로마 교회에는 실제 갈등이 있었습니다. 어떤 성도들은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었으며, 특정한 날을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다른 성도들은 모든 음식을 자유롭게 먹고 모든 날을 같게 여겼습니다. 바울은 앞의 사람들을 "믿음이 연약한 자", 뒤의 사람들을 "강한 자"(15:1)라고 부릅니다. 이 갈등의 배경에는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의 문화 차이가 깔려 있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울의 해법은 놀랍습니다. 그는 누가 옳은지 판정하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그는 자신이 ‘강한 자’ 쪽이라고 밝힙니다, 14절, 15:1). 그 대신 양쪽 모두에게 말합니다. ① 서로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다(1–12절). ② 강한 자는 자기 자유로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말라(13–23절). 이 장은 오늘날 교회 안의 수많은 ‘회색 지대’ 문제들을 다루는 원리를 줍니다.
두 무리
강한 자와 약한 자
모든 것을 먹는 자와 채소만 먹는 자. 모든 날을 같게 여기는 자와 어떤 날을 중히 여기는 자.
핵심 원리
14:7–8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 형제도 주의 것이니 내가 판단할 수 없습니다.
핵심 구절
14:17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음식이 아니라 성령 안의 의와 평강과 희락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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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의심하는 바"
원문 디알로기스모스 — 생각, 견해. ‘그의 견해를 두고 논쟁하지 말라’.
3절 "업신여기지"
원문 엑수데네오 — 하찮게 여기다, 깔보다.
5절 "확정할지니라"
確定, 원문 플레로포레오 — 충분히 확신하다.
12절 "직고하리라"
直告, 사실대로 아룀. 회계 보고하듯 셈을 드림.
13절 "거칠 것"
원문 스칸달론 — 걸림돌, 넘어지게 하는 덫.
14절 "속된"
俗된, 원문 코이노스 — 부정한, 의식적으로 더러운.
19절 "덕을 세우는"
원문 오이코도메 — 집을 짓다. 서로를 세워 올림.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14:1–12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 — 그는 주의 종이다
바울은 먼저 교회 전체에게, 특히 ‘강한 자’에게 말합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으라." 그리고 양쪽 모두에게 서로를 판단하거나 업신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유는 세 가지입니다.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다(3절). 그는 주님의 종이다(4절).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이다(10–12절).
이 단락의 중심에는 7–9절이 있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내가 주님의 것이라면, 내 형제도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의 소유를 내가 함부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1믿음이 연약한 자를 받되 그의 생각을 두고 논쟁하지 말라
믿음이 연약한 자를 너희가 받되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직역 믿음이 약한 사람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러나 그의 생각을 두고 시비를 가리려 하지는 마십시오.
"믿음이 연약한 자." 누구를 말합니까? 2절과 5절이 보여 줍니다. 고기를 먹지 않고 채소만 먹는 사람, 특정한 날을 특별히 지키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신앙이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오히려 매우 진지한 사람들입니다. 다만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 자유를 아직 충분히 누리지 못하고, 양심이 특정한 규례에 묶여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이 누구인지에 대해서는 아래 ‘더 깊이’ 참고.)
"너희가 받되." ‘받다’(프로스람바노)는 단순히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하는 정도가 아닙니다. 따뜻하게 맞아들이고, 식탁에 함께 앉히고, 한 가족으로 품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15:7에서 다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우리가 받아들여진 방식 그대로 서로를 받아들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의심하는 바를 비판하지 말라." 원문을 직역하면 ‘그의 생각들을 두고 논쟁(판가름)하려고 하지 말라’입니다. 약한 형제를 교회에 받아들이고서는 곧바로 그의 생각이 틀렸다고 따지고 바로잡으려 드는 것을 경계합니다.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를 고쳐야 할 프로젝트로 보는 것이 아니라, 형제로 품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연약한아스테네오 — 4:19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아브라함). 여기서 ‘약함’은 구원받는 믿음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라, 그 믿음이 함의하는 자유를 아직 다 깨닫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롬 15:1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담당치 못하는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롬 15:7이러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고전 8:9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9:22약한 자들에게는 내가 약한 자와 같이 된 것은 약한 자들을 얻고자 함이요
2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는다
어떤 사람은 모든 것을 먹을 만한 믿음이 있고 연약한 자는 채소를 먹느니라
직역 어떤 사람은 무엇이든 먹을 수 있다는 믿음이 있고, 약한 사람은 채소만 먹습니다.
첫 번째 쟁점은 음식입니다. 한쪽은 모든 것을 먹습니다. 다른 쪽은 채소만 먹습니다.
왜 채소만 먹었을까요? 건강이나 동물 보호 때문이 아닙니다. 1세기 로마의 시장에서 팔리는 고기의 상당수는 이방 신전에서 제사를 드린 뒤 나온 것이었습니다(고전 8장, 10장). 또한 유대 율법에서 금하는 돼지고기 등이 섞여 있거나, 율법대로 피를 빼지 않은 고기일 수 있었습니다. 율법을 지키고 싶은 유대인 성도나, 우상 숭배와 완전히 단절하고 싶은 성도는 그런 고기를 피하기 위해 아예 채소만 먹는 쪽을 택했을 것입니다. 다니엘과 친구들도 왕의 음식으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으려고 채식을 했습니다(단 1:8, 12).
바울은 모든 것을 먹는 쪽을 "믿음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음식법은 성취되었다는 것을 아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은 "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한다"고 하셨고, 마가는 "이러므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막 7:19)고 덧붙였습니다. 베드로도 환상을 통해 같은 것을 배웠습니다(행 10:15).
막 7:18-19무엇이든지 밖에서 들어가는 것이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함을 알지 못하느냐… 이러므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행 10:14-15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단 1:8, 12다니엘은 뜻을 정하여 왕의 진미와 그의 마시는 포도주로 스스로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고전 8:4, 7우상의 제물을 먹는 일에 대하여는…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3먹는 자는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판단하지 말라 — 하나님이 그를 받으셨다
먹는 자는 먹지 않는 자를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자는 먹는 자를 판단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직역 먹는 사람은 먹지 않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먹지 않는 사람은 먹는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받아들이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양쪽 모두가 빠지기 쉬운 유혹을 정확히 짚습니다.
강한 자의 유혹은 ‘업신여김’입니다. "그런 것까지 신경 쓰다니, 아직 신앙이 어리구나." 자유를 누리는 사람은 자유롭지 못한 사람을 답답하게, 율법적으로, 미성숙하게 봅니다. 그래서 웃거나, 무시하거나, 깔봅니다.
약한 자의 유혹은 ‘판단’입니다. "저렇게 아무거나 먹다니, 신앙이 세속적이구나." 규례를 지키는 사람은 지키지 않는 사람을 경건하지 않다고, 타협했다고, 심지어 구원받지 못했다고 정죄합니다.
오늘날 교회에도 똑같은 모습이 있습니다. 주일에 무엇을 해도 되는지, 어떤 음악을 써야 하는지, 술 한 잔은 괜찮은지 — 이런 문제에서 ‘자유로운’ 쪽은 ‘보수적인’ 쪽을 답답하다 업신여기고, ‘보수적인’ 쪽은 ‘자유로운’ 쪽을 세속적이라 판단합니다.
바울의 대답은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그를 가족으로 받아들이셨습니다. 그가 먹든 안 먹든, 그는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속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받아들이신 사람을 내가 거절할 수 있습니까?
원어 · 번역 노트
업신여기지엑수데네오 — 10절에서 반복. 눅 18:9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엑수데네오) 자들에게", 고전 1:28 "멸시받는 것들".
판단하지크리노 — 4, 5, 10, 13절에서 반복되는 이 장의 열쇠말. 2:1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함께 읽을 말씀
골 2:16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롬 2: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행 15:8-9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치 아니하셨느니라
마 7:1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4남의 종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냐 — 그를 세우시는 능력이 주께 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직역 당신이 누구이기에 남의 종을 판단합니까? 그가 서 있든지 넘어지든지 그것은 그의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그리고 그는 서게 될 것입니다. 주께서 그를 세우실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일상의 예를 듭니다. 이웃집 종이 일을 잘하든 못하든, 그것을 판단하는 것은 그 집 주인의 일이지 나의 일이 아닙니다. 남의 집 종을 내가 꾸짖는 것은 주제넘은 일입니다.
"남의 하인을 판단하는 너는 누구뇨."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관대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와 같은 어조입니다. 내 형제는 나의 종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그를 판단할 권한은 그의 주인이신 그리스도께만 있습니다.
"그 섰는 것이나 넘어지는 것이 제 주인에게 있으매." 그가 주님 앞에서 인정받을지 책망받을지는 주님께서 판단하실 일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확신을 덧붙입니다. "저가 세움을 받으리니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 내 눈에는 그 형제가 위태로워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를 붙드시는 분은 내가 아니라 주님이십니다. 주님은 그를 세우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나는 그를 넘어뜨리지만 않으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인오이케테스 — 집에서 일하는 종. 눅 16: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권능이 주께 — 일부 사본은 ‘하나님께’로 되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를 세우시는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약 4:12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고전 4:3-5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전 곧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유 1:24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롬 9:20이 사람아 네가 누구관대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
5어떤 이는 이 날을 더 중히 여기고 어떤 이는 모든 날을 같게 여긴다 — 각자 마음에 확정하라
혹은 이 날을 저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직역 어떤 사람은 이 날이 저 날보다 낫다고 여기고, 어떤 사람은 모든 날을 똑같이 여깁니다. 각자 자기 마음에 확신을 가지십시오.
두 번째 쟁점은 날입니다. 어떤 사람은 특정한 날 — 아마도 안식일이나 유대 절기, 금식일 — 을 특별히 거룩하게 지켰습니다. 다른 사람은 모든 날을 똑같이 여겼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날이 주님의 날이라는 생각입니다.
바울은 여기서도 어느 쪽이 맞다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각각 자기 마음으로 확정할지니라." ‘확정하다’(플레로포레오)는 ‘충분히 확신하다, 가득 채워 확신하다’입니다. 4:21에서 아브라함이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에 쓰인 단어입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무엇을 하느냐보다, 그것을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하느냐입니다. 다른 사람이 하니까 따라 하거나, 눈치 보느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생각하고 기도하여 내린 결론대로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23절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로 이어집니다.
이 원리는 성경이 분명히 명령하거나 금하지 않은 문제들, 곧 ‘회색 지대’에 적용됩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아디아포라(adiaphora, 무관한 것들)’라고 부릅니다. 성경이 분명히 말하는 문제(우상 숭배, 음행, 거짓 등)는 각자의 확신에 맡길 수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확정할지니라플레로포레오 — 4:21, 골 4:12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딤후 4:5 "네 직무를 다하라(온전히 이루라)".
안식일 문제 — 바울은 골 2:16-17에서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이 "장래 일의 그림자"이며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라고 말합니다. 갈 4:10-11에서는 날과 절기를 구원의 조건처럼 지키는 것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그러나 여기 로마서에서는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개인의 경건 습관일 때 서로 존중하라고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2:16-17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갈 4:10-11너희가 날과 달과 절기와 해를 삼가 지키니 내가 너희를 위하여 수고한 것이 헛될까 두려워하노라
롬 4:21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6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먹는 자도,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하며 하나님께 감사한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직역 날을 중히 여기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고, 먹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습니다. 그가 하나님께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먹지 않는 사람도 주님을 위하여 먹지 않으며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바울은 양쪽의 공통점을 보여 줍니다. "주를 위하여." 이 말이 세 번 반복됩니다. 날을 지키는 사람도, 먹는 사람도, 먹지 않는 사람도 — 모두 주님을 위하여 그렇게 합니다. 행동은 정반대이지만, 동기는 같습니다.
그리고 둘 다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고기를 먹는 사람은 식탁에 앉아 "이 음식을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합니다. 채소만 먹는 사람도 똑같이 감사 기도를 드립니다. 유대인들은 식사 전에 반드시 감사 기도를 드렸고, 초대교회도 그랬습니다(딤전 4:4-5).
이것이 핵심입니다. 형제의 행동이 나와 다를 때, 먼저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그도 주님을 위해서 저렇게 하는 것이 아닐까?’ 그의 행동 뒤에 있는 주님을 향한 마음을 보면, 판단하거나 업신여기기 어렵습니다. 같은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끼리 표현 방식이 다를 뿐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본 — 일부 후대 사본(KJV)에는 "날을 중히 여기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지 아니하며"가 덧붙어 있습니다. 초기 사본에는 없습니다.
감사함유카리스테오 — 성찬(유카리스트)의 어원. 고전 10:30-31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딤전 4:4-5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골 3: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7우리 중 누구도 자기를 위해 살지 않고 자기를 위해 죽지도 않는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
직역 우리 가운데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사람이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6절의 ‘주를 위하여’를 바울은 삶 전체로 넓힙니다. 그리스도인은 먹고 마시는 것만이 아니라 사는 것과 죽는 것, 존재 전체가 주님을 향해 있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이것은 ‘그리스도인은 이기적이면 안 된다’는 도덕적 권면이라기보다, 그리스도인의 정체성에 대한 선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더 이상 자기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6:19-20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고린도후서 5:15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이것이 왜 판단의 문제와 연결됩니까? 내가 나의 것이 아니듯, 내 형제도 그 자신의 것이 아니고 나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그는 주님의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문맥 — 7–9절은 14장의 신학적 중심입니다. 음식과 날의 문제를 그리스도의 주되심이라는 가장 큰 그림 안에 놓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후 5:15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니라
고전 6:19-20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갈 2:20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8살아도 주를 위해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해 죽는다 —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직역 우리가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살든지 죽든지 우리는 주님의 것입니다.
7절을 긍정으로 바꿔 말하며 절정에 이릅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이 가질 수 있는 가장 깊은 위로입니다. 1563년에 작성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첫 번째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빌립보서 1:20-21에서 바울은 감옥에서 이렇게 썼습니다.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삶도 죽음도 우리를 그리스도에게서 끊을 수 없습니다(8:38-39).
그리고 이 장엄한 고백이 음식 다툼 한가운데 놓여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큰 진리 — 사나 죽으나 주님의 것 — 를 함께 붙들고 있는데, 고기 한 점, 날 하루 때문에 서로를 판단하겠느냐고.
원어 · 번역 노트
주의 것 — 원문 ‘투 퀴리우 에스멘’은 소유격으로 ‘주께 속한 자들이다’. 고전 3:23 "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함께 읽을 말씀
빌 1:20-21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니라
롬 8:38-39사망이나 생명이나…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살전 5:10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사 우리로 하여금 깨든지 자든지 자기와 함께 살게 하려 하셨느니라
고전 3:23너희는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니라
9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사신 것은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직역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신 것은 바로 이것, 곧 죽은 사람과 산 사람의 주님이 되시려는 것입니다.
8절의 ‘주의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바울은 그 근거를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둡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을 직접 통과하셨고, 부활로 그것을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삶의 영역과 죽음의 영역 모두의 주인이 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1:18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목적 중 하나가 바로 우리의 ‘주’가 되시는 것이었습니다. 10:9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의 그 ‘주’입니다. 빌립보서 2:8-11에서도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셨기에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합니다. 그리스도가 주이시라면, 나는 주가 아닙니다. 내 형제의 주인도 내가 아닙니다. 판단하는 자리는 주님의 자리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주가 되려퀴리유오 — 6:9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6:14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죄와 사망이 주인이던 자리에 이제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셨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1:18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빌 2:8-11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행 10:42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가 곧 이 사람인 것을
10어찌하여 형제를 판단하고 업신여기느냐 — 우리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선다
네가 어찌하여 네 형제를 판단하느뇨 어찌하여 네 형제를 업신여기느뇨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직역 그런데 당신은 왜 당신의 형제를 비판합니까? 또 당신은 왜 당신의 형제를 업신여깁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3절의 두 유혹이 두 개의 날카로운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첫 질문은 약한 자에게("어찌하여 판단하느뇨"), 둘째 질문은 강한 자에게("어찌하여 업신여기느뇨") 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둘 다 "네 형제"라고 부릅니다. 그는 남이 아니라 형제입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심판대’(베마)는 로마 관원이 앉아 재판하던 높은 단입니다. 고린도에서 바울 자신이 총독 갈리오의 ‘재판 자리(베마)’ 앞에 섰습니다(행 18:12). 빌라도도 이 자리에 앉아 예수님을 재판했습니다(요 19:13).
바울이 하고 싶은 말은 이것입니다. 나는 재판석에 앉은 사람이 아니라 피고석에 설 사람입니다. 형제를 판단하는 사람은 자기가 재판관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사실 그도 똑같이 하나님 앞에서 심판받을 사람입니다. 나도 심판대 앞에 설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면, 형제를 판단하는 손이 내려갑니다.
이 심판은 구원 여부를 가리는 심판이 아니라(8:1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리스도인의 삶과 섬김에 대한 평가입니다. 고린도후서 5:10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원어 · 번역 노트
심판대베마 — 고후 5:10에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심판이 하나입니다(2:16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이라").
사본 — 일부 후대 사본은 ‘그리스도의 심판대’로 되어 있습니다(KJV). 초기 사본은 ‘하나님의 심판대’.
함께 읽을 말씀
고후 5:10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 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 7:1-2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약 5:9형제들아 서로 원망하지 말라 그리하여야 심판을 면하리라 보라 심판자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
전 12:14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11기록되었으되 — 모든 무릎이 내게 꿇고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가라사대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직역 기록되어 있기를, "주께서 말씀하신다. 내가 살아 있으니, 모든 무릎이 내 앞에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고백할 것이다" 하였습니다.
10절의 심판대를 구약으로 뒷받침합니다. 이사야 45:23과 49:18("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을 결합한 인용입니다.
"내가 살았노니." 하나님께서 자신의 살아 계심을 걸고 맹세하시는 표현입니다. 하나님보다 더 큰 이가 없으므로 자기 자신을 두고 맹세하십니다(히 6:13).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이사야 45장은 이방 민족들을 향해 "땅의 모든 끝이여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45:22)고 초대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빌립보서 2:10-11에서 이 같은 구절을 예수 그리스도께 적용합니다.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마지막 날, 강한 자도 약한 자도, 먹는 자도 먹지 않는 자도 모두 같은 자세로 무릎을 꿇을 것입니다. 그 자리에서 누가 누구를 판단하겠습니까?
원어 · 번역 노트
인용 — 사 45:23(70인역) + 사 49:18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빌 2:10-11에서도 사 45:23이 인용됩니다.
자백하리라엑소몰로게오 — ‘인정하다, 고백하다’. 15:9 "이러므로 내가 열방 중에서 주께 감사하리로다(엑소몰로게오)"에서는 ‘찬양하다’로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5:22-23땅의 모든 끝이여 나를 앙망하라 그리하면 구원을 얻으리라… 모든 무릎이 내게 꿇겠고 모든 혀가 맹세하리라
빌 2:10-11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계 5:13내가 또 들으니 하늘 위에와 땅 위에와 땅 아래와… 모든 만물이 가로되 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12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
직역 그러므로 우리 각 사람은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접 보고하게 될 것입니다.
1–12절의 결론입니다. 세 단어가 중요합니다.
"각인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 공동체 뒤에 숨을 수 없습니다.
"자기 일을." 남의 일이 아니라 자기 일입니다. 마지막 날 하나님께서 나에게 ‘네 형제는 무엇을 먹었느냐’고 묻지 않으실 것입니다. ‘너는 어떻게 살았느냐’고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의 일을 보고하는 감독관이 아니라, 자기 일을 보고하는 청지기입니다. 베드로가 요한의 미래를 물었을 때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요 21:22).
"직고하리라." ‘직고(直告)’는 ‘사실대로 아뢰다’입니다. 원문 로곤 디도미는 ‘셈을 드리다’, 회계 장부를 들고 주인 앞에서 결산하는 그림입니다(마 25:19 달란트 비유 "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내가 하나님 앞에서 보고해야 할 내 일만으로도 충분히 무겁습니다. 형제를 판단할 여유가 어디 있겠습니까?
원어 · 번역 노트
직고하리라로곤 도세이 — 마 12:36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히 13:17 "너희 영혼을 위하여 경성하기를 자기가 회계할 자인 것같이 하느니라", 벧전 4:5.
함께 읽을 말씀
갈 6:4-5각각 자기의 일을 살피라… 각각 자기의 짐을 질 것이라
요 21:21-22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마 25:19오랜 후에 그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새
마 12:36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형제는 나의 종이 아니라 주님의 종입니다
교회 안에는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형제자매가 있습니다. 나는 그들이 답답해 보일 때 업신여기거나, 세속적으로 보일 때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들도 ‘주를 위하여’ 그렇게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미 그들을 받으셨습니다.
사나 죽으나 우리는 주의 것입니다. 나도, 내 형제도. 마지막 날 나는 내 일만 보고하면 됩니다. 오늘 내가 판단하고 있던 그 형제를 주님의 손에 맡기고, 그를 따뜻하게 받아들이십시오.
14:13–18형제 앞에 걸림돌을 두지 말라 — 사랑으로 행하라
1–12절이 양쪽 모두에게 ‘판단하지 말라’였다면, 13절부터는 주로 강한 자에게 말합니다. 바울 자신도 강한 자 쪽입니다(14절). 그는 강한 자의 신학이 옳다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그러나 옳다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옳은 것을 사랑 없이 행사하면, 형제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13절에는 언어유희가 있습니다. "서로 판단(크리노)하지 말고, 도리어 이것을 판단(크리노)하라 — 걸림돌을 두지 않기로." 판단할 것은 형제가 아니라 나 자신의 행동입니다.
13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형제 앞에 걸림돌을 두지 않기로 결심하라
그런즉 우리가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 도리어 부딪힐 것이나 거칠 것을 형제 앞에 두지 아니하도록 주의하라
직역 그러므로 더 이상 서로 판단하지 맙시다. 오히려 이것을 결심하십시오. 형제 앞에 걸림돌이나 넘어질 덫을 두지 않기로.
"다시는 서로 판단하지 말고"는 1–12절의 정리이고, "도리어… 주의하라"는 13–23절의 시작입니다.
여기서 바울의 언어유희가 빛납니다. ‘주의하라’로 번역된 단어가 원문에서는 ‘판단하다’(크리노)와 같은 동사입니다. "서로 판단하지 말고, 대신 이것을 판단하라(결정하라)." 우리의 판단력은 형제를 향할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의 행동을 향해야 합니다. ‘내 행동이 형제를 넘어지게 하지 않을까?’
두 가지 그림이 나옵니다. "부딪힐 것"(프로스콤마)은 길 위의 돌, 걷다가 발이 걸리는 것입니다. "거칠 것"(스칸달론)은 원래 짐승을 잡는 덫의 방아쇠 막대기로, 건드리면 덫이 닫히는 장치입니다. 영어 scandal(추문)의 어원입니다. 둘 다 형제가 신앙의 길을 걷다가 넘어지게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강하게 경고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깊은 바다에 빠뜨리우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
마 18:6-7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소자 중 하나를 실족케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을 그 목에 달리우고
고전 8:9그런즉 너희 자유함이 약한 자들에게 거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고전 10:32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레 19:14소경 앞에 장애물을 놓지 말고 네 하나님을 경외하라
14주 예수 안에서 확신한다 — 스스로 속된 것은 없으나 속되게 여기는 자에게는 속되다
내가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노니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직역 나는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합니다. 그 자체로 부정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다만 어떤 것을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부정한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입장을 분명히 밝힙니다. "무엇이든지 스스로 속된 것이 없으되." 음식 그 자체가 사람을 더럽히지 않습니다. 이것은 바울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주 예수 안에서" 알고 확신하는 진리입니다. 예수님께서 직접 가르치신 것이기도 합니다(막 7:15-19).
‘속되다’(코이노스)는 원래 ‘공통의, 평범한’이라는 뜻인데, 유대교에서는 ‘거룩하지 않은, 의식적으로 부정한’이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베드로가 환상에서 "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행 10:14)라고 할 때 쓴 단어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곧바로 중요한 단서를 붙입니다. "다만 속되게 여기는 그 사람에게는 속되니라." 객관적으로는 음식이 깨끗해도, 그것을 더럽다고 믿는 사람이 그것을 먹으면 그에게는 죄가 됩니다. 왜일까요? 그는 하나님께 죄라고 생각하는 것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자기 양심을 거스르는 것 자체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23절).
이것이 강한 자가 조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내게는 아무렇지 않은 일이, 약한 형제에게는 양심을 짓밟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속된코이노스 — 막 7:2 "부정한(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을 먹는 것", 행 10:14, 28 "아무 사람이든지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히 10:29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함께 읽을 말씀
막 7:15무엇이든지 밖에서 사람에게로 들어가는 것은 능히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되
행 10:14-15속되고 깨끗지 아니한 물건을 내가 언제든지 먹지 아니하였삽나이다…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하지 말라
딛 1:15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고전 8:7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 고로 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15음식 때문에 형제가 근심하면 사랑으로 행하지 않는 것이다 — 그리스도께서 대신 죽으신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말라
만일 식물을 인하여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하게 하지 말라
직역 만일 음식 때문에 당신의 형제가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면, 당신은 더 이상 사랑을 따라 행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으니, 당신의 음식으로 그 형제를 망하게 하지 마십시오.
14절에서 강한 자의 신학이 옳다고 인정한 바울은, 곧바로 그 옳음을 사랑이라는 저울에 올립니다.
"만일 식물을 인하여 형제가 근심하게 되면." 약한 형제가 강한 자가 먹는 것을 보고 마음이 상하고 혼란스러워한다면, 또는 그것을 보고 따라 먹다가 양심에 찔려 괴로워한다면 — "이는 네가 사랑으로 행치 아니함이라." 내가 옳더라도, 내 행동이 형제를 아프게 한다면 나는 사랑의 길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13: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그리고 바울은 가장 강력한 논리를 꺼냅니다.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를 네 식물로 망하게 하지 말라." 저울의 한쪽에는 고기 한 접시가 있습니다. 다른 쪽에는 그리스도께서 목숨을 바쳐 구원하신 형제가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그를 위해 생명을 주셨는데, 나는 그를 위해 고기 한 점도 포기하지 못합니까? 고린도전서 8:11 "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망하게 하지 말라." 이 단어(아폴뤼미)는 매우 강합니다. 문맥상 약한 형제가 양심을 거스르고 결국 신앙에서 멀어지는 심각한 영적 손상을 가리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랑으로 행치 — 원문 ‘카타 아가펜 페리파테이스’, ‘사랑을 따라 걷다’. 6:4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걷게)", 8:4 "영을 좇아 행하는", 13:13 "단정히 행하고".
망하게아폴뤼미 — 2:12 "율법 없이 망하고", 고전 1:18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20절 ‘무너지게’와 평행.
함께 읽을 말씀
고전 8:11-13그러면 네 지식으로 그 약한 자가 멸망하나니 그는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형제라…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롬 13:10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치 아니하나니
엡 5:2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고전 13:5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16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비방받지 않게 하라
그러므로 너희의 선한 것이 훼방을 받지 않게 하라
직역 그러므로 여러분이 누리는 좋은 것이 비방거리가 되지 않게 하십시오.
"너희의 선한 것."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자유는 분명히 ‘선한 것’입니다. 율법의 멍에에서 해방된 것, 모든 음식을 감사함으로 먹을 수 있는 것은 복음이 주는 귀한 선물입니다.
그런데 그 선한 것도 사랑 없이 행사하면 "훼방을 받게" 됩니다. ‘훼방’(블라스페메오)은 영어 blasphemy(신성모독)의 어원입니다. 강한 자가 자유를 마구 휘둘러 약한 형제를 넘어뜨리면, 사람들은 ‘저것이 그리스도인의 자유냐? 남이야 어떻게 되든 자기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냐?’라고 비난할 것입니다. 그러면 복음의 자유라는 선한 것 자체가 나쁜 평판을 얻게 됩니다.
자유는 귀합니다. 그러나 자유를 어떻게 쓰느냐가 그 자유의 평판을 결정합니다. 갈라디아서 5:13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원어 · 번역 노트
훼방을 받지블라스페메오 — 2:24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3:8 "우리가 비방을 받는 것같이", 고전 10:30.
함께 읽을 말씀
갈 5:13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 하라
고전 10:29-30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만일 내가 감사함으로 참예하면 어찌하여 내가 감사하는 것에 대하여 비방을 받으리요
벧전 2:16자유하나 그 자유로 악을 가리우는데 쓰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종과 같이 하라
17하나님의 나라는 먹고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직역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입니다.
14장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이자, 이 모든 논쟁의 핵심을 꿰뚫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 가르침의 중심 주제였던 이 말이 로마서에서는 여기 단 한 번 나옵니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로마 교회는 고기를 먹느냐 마느냐로 다투고 있었습니다. 마치 그것이 신앙의 핵심인 것처럼. 바울은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나라의 본질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식탁 위의 메뉴로 정의되지 않는다.
그렇다면 하나님 나라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세 가지는 로마서 전체를 요약합니다.
① 의 — 1–4장의 주제. 하나님께서 믿음으로 주시는 의, 그리고 그 의를 따라 사는 바른 삶. ② 평강 — 5:1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과의 화평, 그리고 형제와의 화평(19절). ③ 희락 —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15:13, 갈 5:22). 그리고 이 셋 모두 "성령 안에" 있습니다. 사람이 만들어 낼 수 없는, 성령께서 주시는 것들입니다.
이 구절을 기억하면 교회의 많은 다툼이 작아집니다. 우리가 지금 다투고 있는 문제가 ‘의와 평강과 희락’에 관한 것입니까, 아니면 ‘먹고 마시는 것’에 관한 것입니까? 후자를 위해 전자를 깨뜨린다면,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거꾸로 사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나님의 나라 — 바울 서신에서는 고전 4:20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 6:9-10, 15:50, 갈 5:21, 골 1:13, 4:11, 살전 2:12 등에 나옵니다.
의와 평강과 희락 — 갈 5:22의 성령의 열매(사랑, 희락, 화평…)와 겹칩니다. 사 32:17 "의의 공효는 화평이요 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
함께 읽을 말씀
고전 8:8식물은 우리를 하나님 앞에 내세우지 못하나니 우리가 먹지 아니하여도 부족함이 없고 먹어도 더함이 없으리라
롬 5:1-2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갈 5:22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마 6:33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롬 15:13소망의 하나님이 모든 기쁨과 평강을 믿음 안에서 너희에게 충만케 하사
18이것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쁨이 되고 사람들에게도 인정받는다
이로써 그리스도를 섬기는 자는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직역 이렇게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사람들에게도 인정을 받습니다.
"이로써." 17절의 의와 평강과 희락 안에서 사는 것을 가리킵니다. 음식 규례를 지키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 의롭고 평화롭고 기쁘게 사는 것으로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
그런 사람은 두 가지를 얻습니다. ① "하나님께 기뻐하심을 받으며." 12:1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와 같은 단어입니다. ② "사람에게도 칭찬을 받느니라." ‘칭찬’(도키모스)은 ‘시험을 거쳐 진짜로 인정받은’입니다. 세상 사람들도 형제를 배려하며 사랑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을 보며 ‘저것이 진짜 신앙이구나’라고 인정하게 됩니다.
반대로 음식 문제로 서로 싸우는 교회는 하나님도 기뻐하지 않으시고, 세상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됩니다(16절 ‘훼방’). 예수님은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요 13:35)고 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칭찬도키모스 — 16:10 "그리스도 안에서 인정함을 받은 아벨레", 고후 10:18 "옳다 인정함을 받는 자는 자기를 칭찬하는 자가 아니요 오직 주께서 칭찬하시는 자니라", 약 1:12 "시험을 견딘 자".
함께 읽을 말씀
요 13:35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눅 2:52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욱 사랑스러워 가시더라
잠 3:3-4인자와 진리로 네게서 떠나지 않게 하고… 그리하면 네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
고후 8:21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옳은 것보다 큰 것
강한 자의 신학이 옳을 수 있습니다. 내가 옳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옳은 것을 사랑 없이 행사하면, 그리스도께서 목숨 바쳐 구원하신 형제를 넘어뜨릴 수 있습니다. 저울의 한쪽에 내 자유를, 다른 쪽에 그리스도의 피값을 올려 보십시오.
그리고 교회 안의 다툼 앞에서 물어보십시오. ‘지금 이것이 의와 평강과 희락의 문제인가, 먹고 마시는 문제인가?’ 하나님 나라는 메뉴로 정의되지 않습니다.
14:19–23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 —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
바울은 이 장의 권면을 정리합니다. 화평과 덕을 세우는 일에 힘쓰라(19절). 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말라(20–21절). 그리고 각자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지키되,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라는 것을 기억하라(22–23절).
여기서 ‘세우다’(19절)와 ‘무너뜨리다’(20절)가 대조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서 짓고 계신 건물입니다. 우리는 그 건물을 세우는 일꾼이 될 수도, 허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습니다.
19그러므로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써 추구하자
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직역 그러므로 우리는 평화를 이루는 일과 서로 세워 주는 일을 힘써 추구합시다.
부정적인 금지(판단하지 말라, 걸림돌을 두지 말라)에서 긍정적인 추구로 넘어갑니다. 무엇을 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두 가지가 있습니다.
"화평의 일." 17절의 ‘평강’이 실제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습니다. 평화를 만드는 행동이 필요합니다.
"서로 덕을 세우는 일." ‘덕을 세우다’(오이코도메)는 ‘집(오이코스)을 짓다(도메오)’입니다. 우리말 ‘덕(德)’이라는 번역 때문에 도덕적인 뜻으로만 생각하기 쉬운데, 원래 뜻은 ‘건축’입니다. 서로를 벽돌 쌓듯 세워 올리는 것입니다. 형제의 신앙을 튼튼하게 해 주고, 그가 더 성숙하도록 돕는 것. 고린도전서 8:1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지식은 나를 부풀리지만, 사랑은 형제를 세웁니다.
"힘쓰나니." 12:13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12:14 ‘핍박하는 자’와 같은 동사 디오코(뒤쫓다)입니다. 평화와 세움을 사냥꾼이 사냥감을 쫓듯 적극적으로 추구하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덕을 세우는오이코도메 — 15:2 "선을 이루고 덕을 세우도록", 고전 14:12, 26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엡 4:12, 16, 29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함께 읽을 말씀
고전 8:1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엡 4: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히 12: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살전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 하는 것같이 하라
20음식 때문에 하나님의 일을 무너뜨리지 말라 — 모든 것이 깨끗하나 거리낌으로 먹으면 악하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만물이 다 정결하되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직역 음식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허물지 마십시오. 모든 음식이 다 깨끗하지만, 남을 넘어지게 하면서 먹는 사람에게는 그것이 악한 것입니다.
"식물을 인하여 하나님의 사업을 무너지게 말라." 19절의 ‘세우다’와 정반대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사업’(에르곤 투 테우)은 ‘하나님의 작품,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문맥상 15절의 ‘그리스도께서 대신하여 죽으신 형제’, 곧 하나님께서 은혜로 빚어 가고 계신 형제와 그 형제들로 이루어진 교회를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 오랜 시간 공들여 지으신 건물을, 나는 고기 한 접시로 허물 수 있습니다. 음식은 금방 소화되어 사라지지만, 무너진 형제의 신앙은 다시 세우기 어렵습니다.
"만물이 다 정결하되." 바울은 14절의 원칙을 다시 확인합니다. 음식 자체는 깨끗합니다. "거리낌으로 먹는 사람에게는 악한 것이라."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① 강한 자가 약한 형제를 넘어지게 하면서(걸림돌이 되면서) 먹으면 악하다. ② 약한 자가 양심에 거리끼면서 먹으면 악하다. 문맥(19–21절)은 ①을, 23절은 ②를 지지합니다. 둘 다 사실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무너지게카탈뤼오 — 마 24:2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고후 5:1 "장막 집이 무너지면", 갈 2:18 "내가 헐었던 것을 다시 세우면".
함께 읽을 말씀
고전 3:9, 17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라
엡 2: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빌 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막 7:19이러므로 모든 식물을 깨끗하다 하시니라
21고기도 먹지 않고 포도주도 마시지 않고,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
고기도 먹지 아니하고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고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것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직역 고기를 먹지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 않는 것, 그 밖에 무엇이든 당신의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일을 하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이 장의 결론적 원칙입니다. 처음으로 ‘포도주’가 등장합니다. 이방 신전에서는 고기만이 아니라 포도주도 신들에게 부어 드렸습니다(전제). 그래서 약한 자들은 고기와 함께 포도주도 피했을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네 형제로 거리끼게 하는 것을 아니함이 아름다우니라." 바울은 강한 자에게 자유를 포기하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대신 그것이 ‘아름답다’(칼론)고 말합니다. 사랑 때문에 자기 권리를 기꺼이 내려놓는 것은 아름다운 일입니다.
바울 자신이 이렇게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고전 8:13). 고린도전서 9장 전체가 바울이 복음을 위해 자기 권리를 포기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결국 그리스도의 길입니다. 15:3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모든 권리를 가지셨지만, 우리를 위해 그것을 내려놓으셨습니다(빌 2:6-7).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위해 자유를 내려놓을 때, 그는 가장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이 됩니다.
단, 이것은 약한 자가 강한 자를 영원히 통제하는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 율법주의자들이 ‘약함’을 무기로 복음의 자유를 빼앗으려 할 때는 단호히 맞섰습니다(갈 2:3-5, 11-14). 사랑으로 양보하는 것과, 복음의 진리를 타협하는 것은 다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름다우니라칼론 — 고전 7:1, 8 "좋으니라", 갈 4:18 "좋은 일에 대하여 열심으로 사모함을 받음은 좋으니". 도덕적 의무보다 ‘훌륭하고 마땅한 일’이라는 어감.
사본 — 일부 사본은 끝에 "혹은 실족하게 하거나 약하게 하는 것"을 덧붙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8:13그러므로 만일 식물이 내 형제로 실족케 하면 나는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여 내 형제를 실족치 않게 하리라
고전 9:19, 22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롬 15:1-3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담당치 못하는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그리스도께서도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하셨나니
빌 2:4-7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22네가 가진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간직하라 — 자기가 옳다는 일로 스스로 정죄하지 않는 자는 복되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라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직역 당신이 가진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당신 자신의 것으로 간직하십시오. 자기가 옳다고 인정하는 일로 스스로를 정죄하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마지막 두 절은 강한 자와 약한 자에게 각각 한 마디씩 합니다. 22절은 주로 강한 자에게입니다.
"네게 있는 믿음을 하나님 앞에서 스스로 가지라." 모든 것을 먹을 수 있다는 너의 확신, 그 믿음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모든 사람 앞에서 과시하거나 약한 형제에게 강요할 필요는 없다. 그것은 너와 하나님 사이에 간직하라. 자유를 누리되, 자유를 자랑하지는 말라는 것입니다. 진짜 자유로운 사람은 자기 자유를 증명할 필요를 느끼지 않습니다.
"자기의 옳다 하는 바로 자기를 정죄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자기가 옳다고 확신하는 일을 할 때, 양심의 가책 없이 깨끗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사람은 복됩니다. 강한 자는 이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이것은 경고이기도 합니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도, 그것이 형제를 넘어뜨린다면 결국 나를 정죄하는 근거가 될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옳다 하는 바도키마조 — 12:2 "분별하도록", 2:18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1:28 "마음에 두기 싫어하매(합당하게 여기지 않으매)".
함께 읽을 말씀
행 24:16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나이다
요일 3:21사랑하는 자들아 만일 우리 마음이 우리를 책망할 것이 없으면 하나님을 향하여 담대함을 얻고
마 6:1, 6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은밀한 중에 계신 너의 아버지께 기도하라
23의심하면서 먹는 자는 정죄되었다 —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한 연고라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직역 그러나 의심하면서 먹는 사람은 이미 정죄를 받은 것입니다. 그것이 믿음에서 나온 행동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에서 나오지 않은 것은 모두 죄입니다.
22절이 강한 자에게였다면, 23절은 약한 자에게 하는 말이며, 동시에 강한 자에게 왜 약한 자를 배려해야 하는지를 설명합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약한 형제가 강한 형제의 압력 때문에, 또는 눈치를 보거나 따라 하느라 고기를 먹었다고 합시다. 그런데 그의 양심은 여전히 ‘이것은 하나님께 죄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는 고기를 먹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죄라고 믿는 일을 한 것입니다. 그 행동 자체가 하나님을 거스르는 것이 됩니다. 음식은 깨끗하지만, 그의 마음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가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의식 속에서 행한 것입니다.
"믿음으로 좇아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이 구절은 넓은 원리입니다. 여기서 ‘믿음’은 문맥상 ‘하나님 앞에서 이것이 괜찮다는 확신’입니다. 그리스도인의 모든 행동은 하나님을 향한 신뢰와 확신에서 나와야 합니다. 양심이 ‘안 된다’고 하는데 억지로 하는 것은, 그 행동이 객관적으로 괜찮더라도 그 사람에게는 죄가 됩니다.
이것이 강한 자가 약한 자를 압박해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약한 자를 설득하거나 비웃어서 그의 양심을 거스르게 만들면, 나는 그에게 죄를 짓게 만든 것입니다. 양심은 가르치고 자라게 해야 하지만, 짓밟아서는 안 됩니다. 시간을 두고 말씀과 성령으로 양심이 자라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사랑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의심하고디아크리노 — 4: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디아크리노) 않고", 약 1:6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마음이 둘로 나뉜 상태.
송영의 위치 — 일부 사본은 16:25-27의 송영을 14:23 뒤에 둡니다. 로마서 사본 전승에서 가장 복잡한 문제 중 하나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히 11:6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약 4:17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고전 8:7, 10그들의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그 약한 자들의 양심이 담력을 얻어 어찌 우상의 제물을 먹게 되지 않겠느냐
딤전 1:5, 19경계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나는 사랑이거늘… 믿음과 착한 양심을 가지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양심은 짓밟지 말고 기다려 주십시오
형제의 양심은 하나님 앞에서 귀합니다. 내 기준에서는 답답해 보여도, 그의 양심이 ‘아니’라고 하는 일을 억지로 하게 만들면 나는 그에게 죄를 짓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형제의 양심이 말씀과 성령으로 자라도록 기다려 줍니다.
그리고 내가 하는 모든 일이 ‘믿음으로부터’ 나오는지 돌아보십시오. 남이 하니까, 눈치가 보여서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확신을 가지고. 그것이 자유롭고도 거룩한 삶입니다.
Strong & Weak · 두 무리
14장, 강한 자와 약한 자에게 주시는 말씀
바울은 양쪽 모두에게 말하지만, 더 큰 책임은 강한 자에게 둡니다
믿음이 약한 자
믿음이 강한 자
음식
채소만 먹음 (2절)
모든 것을 먹음 (2절)
날
특정한 날을 중히 여김 (5절)
모든 날을 같게 여김 (5절)
빠지기 쉬운 유혹
판단 — "저 사람은 세속적이다" (3절)
업신여김 — "저 사람은 미성숙하다" (3절)
기억할 것
그도 주를 위하여 먹는다 (6절)
그리스도께서 그를 위해 죽으셨다 (15절)
주시는 말씀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죄 — 양심을 따르라 (23절)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아름답다 (21절)
양쪽 모두에게 공통된 말씀은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저를 받으셨음이니라"(3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8절),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10절). 그리고 15:7에서 바울은 이렇게 마무리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받으심과 같이 너희도 서로 받으라."
Glossary · 단어 사전
14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믿음이 연약한 자1절
그리스도 안의 자유를 아직 다 누리지 못하고 양심이 특정 규례에 묶인 형제.
받다1, 3절
따뜻하게 맞아들여 한 가족으로 품음.
업신여기다3, 10절
하찮게 여기며 깔봄. 강한 자의 유혹.
판단하다3, 10, 13절
정죄함. 약한 자의 유혹. 이 장의 열쇠말.
확정確定 · 5절
하나님 앞에서 충분히 확신함.
주의 것8절
사나 죽으나 그리스도께 속한 자.
심판대審判臺 · 10절
하나님께서 재판하시는 자리. 우리 모두 그 앞에 섬.
직고直告 · 12절
사실대로 아룀. 자기 일을 결산 보고함.
거칠 것13절
형제를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 덫.
속되다俗 · 14절
의식적으로 부정하다고 여겨짐.
의와 평강과 희락17절
하나님 나라의 본질. 성령 안에서 누림.
덕을 세우다德 · 19절
원뜻은 ‘집을 짓다’. 서로를 세워 올림.
아디아포라神學 용어
성경이 명령하거나 금하지 않아 양심에 맡겨진 영역.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교회 안에서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형제를 볼 때, 나는 주로 ‘업신여기는’ 쪽입니까, ‘판단하는’ 쪽입니까? (3절)
내가 판단하던 형제도 ‘주를 위하여’ 그렇게 하고 있을 가능성을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6절)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다." 이 고백이 오늘 나에게 주는 위로와 도전은 무엇입니까? (8절)
마지막 날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일’을 보고해야 한다면, 나는 지금 남의 일과 내 일 중 어디에 더 관심을 쏟고 있습니까? (12절)
나의 자유가 다른 형제에게 걸림돌이 된 적은 없습니까? (13, 21절)
우리 교회나 가정에서 지금 다투고 있는 문제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문제입니까, ‘먹고 마시는’ 문제입니까? (17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