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9절까지 —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주님이 네 교회에게 보내신 편지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REVELATION 2:10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2장 들어가며
1장에서 촛대 사이를 거니시던 주님이, 이제 각 촛대 앞에 멈춰 서서 말씀하십니다
2장과 3장은 요한계시록에서 가장 친숙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가장 ‘지금의 교회’와 가까운 부분입니다. 미래의 환상이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던 일곱 교회에게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1장 13절에서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서신 주님은, 이제 촛대 하나하나 앞에 멈춰 서서 그 교회의 형편을 살피시고 말씀하십니다.
일곱 편지는 거의 같은 틀로 짜여 있습니다. ① 받는 교회 ② 1장에서 가져온 주님의 칭호 ③ "내가 아노니"로 시작하는 칭찬 ④ "그러나… 책망할 것이 있나니" ⑤ 회개와 권면 ⑥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⑦ "이기는 자에게"의 약속. 이 틀을 알면 같은 자리를 서로 비교하며 읽을 수 있습니다(아래 ‘일곱 편지의 틀’ 표 참고).
2장에는 네 교회가 나옵니다. ① 에베소 — 바른 교리와 수고는 있으나 처음 사랑을 잃은 교회(1-7절). ② 서머나 — 가난과 박해 속에서 책망 하나 받지 않은 교회(8-11절). ③ 버가모 —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서 신앙을 지켰으나 타협을 용납한 교회(12-17절). ④ 두아디라 — 사랑과 섬김이 자라지만 거짓 선지자를 용납한 교회(18-29절). 네 교회 모두 오늘 우리 교회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일곱 편지의 열쇠
"내가 아노니"
주님은 모든 교회에 "내가 안다"로 말씀을 시작하십니다. 수고도, 가난도, 사는 곳도, 숨은 타협도 다 아십니다.
반복되는 부름
"귀 있는 자는"
각 편지는 한 교회에 보냈지만, "성령이 교회들에게(복수) 하시는 말씀"입니다. 모든 교회가 함께 들어야 합니다.
일곱 약속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 생명의 면류관,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 새벽 별… 약속들은 21–22장 새 예루살렘에서 다시 만납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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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사자"
使者, 원문 앙겔로스. 1:20 노트 참고. 교회를 대표하는 이에게 쓰지만 결국 교회 전체가 듣는 편지.
2절 "용납지"
容納, 받아들이다, 참고 두다. 원문 바스타조 ‘짊어지다, 견디다’.
9절 "궁핍", "부요한 자"
窮乏, 몹시 가난함. 富饒, 넉넉하고 풍성함.
9절, 13절 "사단"
『개역개정』은 "사탄". 원문 사타나스, ‘대적자, 고발자’.
13절 "사단의 위"
位, 자리·보좌. 원문 트로노스. 『개역개정』 "사탄의 권좌".
20절 "용납함이니"
이번에는 원문 아피에미 ‘내버려 두다, 허용하다’. 2절과 다른 단어.
26–27절 "철장"
鐵杖, 쇠로 된 지팡이(막대기). 시 2:9 인용. 목자의 지팡이이자 왕의 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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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7에베소 교회 — 수고와 인내는 있으나 처음 사랑을 버렸다
에베소는 아시아 속주에서 가장 큰 도시였습니다. 인구 20만 명이 넘는 항구 도시였고,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습니다. 바울이 3년 가까이 머물며 세운 교회이고(행 19-20장), 디모데가 목회했으며, 전통에 따르면 사도 요한도 말년을 이곳에서 보냈습니다. 말하자면 ‘가장 좋은 목회자들의 가르침을 받은 교회’였습니다.
그런 교회에게 주님은 많은 칭찬을 하십니다. 그런데 단 하나의 책망이 그 모든 칭찬을 무겁게 누릅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1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말씀하신다
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직역 에베소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일곱 별을 그의 오른손에 굳게 쥐고 일곱 금 등잔대 사이를 거니시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첫 편지는 에베소에 갑니다. 밧모에서 배가 닿는 첫 항구이자 아시아 교회들의 어머니 같은 교회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주님은 1장에서 보여 주신 모습 가운데 두 가지를 가지고 오십니다. "오른손에 일곱 별을 붙잡고." 1:16에서는 ‘가지고 있다’였는데, 여기서는 더 강한 동사, ‘꽉 붙잡다(크라테오)’를 씁니다. 교회는 주님의 손에 단단히 붙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주님은 교회들 가운데 서 계실 뿐 아니라 ‘다니십니다’. 대제사장이 성소의 등잔을 하나하나 살피며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다듬었듯이(레 24:1-4), 주님은 교회 사이를 다니시며 불이 잘 타고 있는지 살피십니다. 그리고 5절에서 보듯, 꺼져 가는 등잔은 옮기실 수도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게 이 칭호는 위로이면서 경고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붙잡고크라톤 — ‘힘으로 쥐다, 장악하다’. 1:16의 ‘에콘(가지고)’보다 강합니다.
다니시는페리파톤 — ‘걸어 다니다’. 레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70인역 같은 동사)를 떠올리게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19:10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행 20:29-31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레 26:12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니라
계 1:13, 16, 20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2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알고, 거짓 사도를 시험하여 드러낸 것을 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직역 "나는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 또 네가 악한 자들을 견디지 못하고, 자기를 사도라 하나 사도가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들이 거짓말쟁이임을 밝혀낸 것을 안다."
"내가… 아노니." 일곱 편지의 칭찬은 모두 이 말로 시작합니다. 주님은 멀리서 보고를 받는 분이 아니라 촛대 사이를 다니시며 직접 보신 분입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수고도 주님은 아십니다. 이것이 먼저 위로입니다.
에베소 교회의 칭찬 목록은 깁니다. 행위(열심히 일함), 수고(코포스, 지칠 만큼 애씀), 인내(박해와 어려움 속에서 버팀). 그리고 무엇보다 교리적으로 깨어 있었습니다.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 1세기 교회에는 순회하며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았고, 그 가운데는 돈과 명예를 노리는 거짓 교사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일찍이 에베소 장로들에게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아노니"(행 20:29-30)라고 경고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 경고를 기억하고 깨어 있었습니다.
오늘 한국 교회에도 "자칭 사도", "자칭 재림주", "자칭 보혜사"가 넘쳐납니다. 에베소 교회처럼 말씀으로 시험하여 거짓을 드러내는 분별력은 교회의 귀한 덕목입니다. 요한일서 4:1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원어 · 번역 노트
수고코포스 — 지치고 녹초가 될 만큼 하는 노동. 3절 "게으르지 아니한"(우 케코피아카스, 지치지 않은)과 말놀이를 이룹니다. ‘수고로 지쳤으나 지쳐 포기하지 않았다’는 뜻.
자칭 사도 — 『디다케』(11장)는 순회 사도가 사흘 이상 머물거나 돈을 요구하면 거짓 선지자라고 가르쳤습니다. 1세기 말 교회가 이런 문제로 씨름했음을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일 4:1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고후 11:13저런 사람들은 거짓 사도요 궤휼의 역군이니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가장하는 자들이니라
행 20:29-30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자기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아노니
살전 1: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3내 이름을 위하여 참고 견디며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안다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직역 "또 네가 인내를 가지고 있고, 내 이름 때문에 견디었으며, 지치지 않았다는 것을 안다."
칭찬이 이어집니다.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에베소 교회의 수고는 자기 이름을 내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이름 때문이었습니다. 아데미 숭배가 도시의 경제와 자부심을 지배하던 곳에서(행 19:23-41 은장색 데메드리오 사건), 예수의 이름을 붙든다는 것은 손해와 미움을 감수하는 일이었습니다.
"게으르지 아니한 것." 원문은 ‘지치지 않았다’입니다. 2절의 ‘수고(코포스)’와 같은 뿌리입니다. 지칠 만큼 수고했지만, 지쳐서 주저앉지는 않았습니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에베소 교회는 모범 교회입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서 반전이 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견디고에바스타사스 — 2절 "용납지 아니한"과 같은 동사(바스타조). 악한 자들은 ‘견디지 못했지만’, 주님 때문에 오는 고난은 ‘견뎠습니다’. 무엇을 견디고 무엇을 견디지 말아야 하는지 알았던 교회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히 12:3너희가 피곤하여 낙심치 않기 위하여 죄인들의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자를 생각하라
행 19:26-27우리 사업만 천하여질 위험이 있을 뿐 아니라 큰 여신 아데미의 전각도 경홀히 여김이 되고
4그러나 책망할 것이 있으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직역 "그러나 나는 너를 대적할 것이 있다. 네가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한 마디가 앞의 모든 칭찬을 멈춰 세웁니다. 원문은 더 강합니다. "그러나 나는 너를 대적할 것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단 하나입니다.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처음 사랑’이 무엇을 가리킬까요? 세 가지가 함께 들어 있다고 봅니다. ① 주님을 향한 사랑.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그 감격과 친밀함. 예레미야 2:2 "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나를 좇았음을 내가 기억하노라." ② 형제를 향한 사랑. 거짓 교사를 가려내다 보니, 서로를 의심하고 날카롭게 판단하는 교회가 되었을지 모릅니다. 바울이 처음 에베소서를 썼을 때 칭찬했던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엡 1:15)이 식었습니다. ③ 잃은 자를 향한 사랑. 진리를 지키는 데만 힘을 쏟다가 세상을 향해 빛을 비추는 일을 잊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무엇을 하는가’는 훌륭했지만 ‘왜 하는가’를 잃었습니다. 바른 교리, 열심, 인내가 있어도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울리는 꽹과리"(고전 13:1)입니다. 예수님도 마지막 때에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마 24:12)고 경고하셨습니다.
"버렸느니라." ‘잃어버렸다’가 아니라 ‘버렸다, 떠나 버렸다’입니다. 사랑은 어느 날 갑자기 사라지지 않습니다. 조금씩 다른 것에 자리를 내어 주다가, 어느새 내려놓게 됩니다. 그래서 회복도 ‘사랑의 감정이 다시 생기기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5절처럼 ‘돌아서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책망할 것이 있나니 — 원문 ‘알라 에코 카타 수’, "그러나 나는 너를 대적할 것을 가지고 있다". 14절, 20절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처음프로테 — 시간상 ‘처음’과 순위상 ‘으뜸’ 둘 다 뜻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 가졌던 사랑’이면서 ‘무엇보다 앞서야 할 사랑’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렘 2:2네 소년 때의 우의와 네 결혼 때의 사랑 곧 씨 뿌리지 못하는 땅, 광야에서 나를 좇았음을 내가 기억하노라
엡 1:15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고전 13:1-3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마 24: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요 21:15-17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5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직역 "그러므로 네가 어디서 떨어졌는지 기억하고, 회개하고, 처음 행위들을 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네게 가서, 네가 회개하지 않는다면, 네 등잔대를 그 자리에서 옮길 것이다."
주님은 책망만 하시지 않고 회복의 길을 주십니다. 세 단계입니다. ①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기억하라.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 말씀이 꿀처럼 달고 기도가 기다려지고 형제가 사랑스러웠던 그때를 기억하라. 탕자가 "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눅 15:17) 하고 아버지 집을 기억했을 때 돌아가는 길이 시작되었습니다.
② "회개하여." 돌이키라. 회개는 감정이 아니라 방향 전환입니다. ③ "처음 행위를 가지라." 처음 사랑에서 나오던 행동을 다시 하라. 처음에 하던 대로 다시 기도하고, 다시 말씀을 펴고, 다시 형제를 섬기라. 감정이 먼저 돌아오기를 기다리지 말고 행동을 먼저 돌이키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행동할 때 다시 자랍니다.
그리고 엄중한 경고가 따릅니다. "내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사랑이 없는 교회는 건물과 프로그램이 남아 있어도 더 이상 등잔대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주님은 그 교회의 존재 이유, 곧 빛을 비추는 증거를 거두어 가실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에베소에는 웅장한 폐허만 남아 있고, 그 땅의 교회들은 오래전에 사라졌습니다. 촛대는 영원히 그 자리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생각하고므네모뉴에 — 현재 명령형, ‘계속 기억하라’. 3:3 사데 교회에도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라고 하십니다.
회개하라메타노에손 — 일곱 편지에서 회개 명령은 다섯 교회에게 주어집니다(에베소,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라오디게아). 서머나와 빌라델비아만 회개하라는 말을 듣지 않습니다.
임하여에르코마이 — ‘가다, 오다’. 마지막 재림만이 아니라, 역사 속에서 교회를 찾아와 심판하시는 주님의 방문을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눅 15:17-18이에 스스로 돌이켜 가로되… 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호 2:7이제는 본 남편에게로 돌아가리니 그 때의 내 형편이 지금보다 나았음이라
히 10:32전날에 너희가 빛을 받은 후에 고난의 큰 싸움을 참은 것을 생각하라
마 5:14-16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6그러나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니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오직 네게 이것이 있으니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직역 "그러나 네게는 이것이 있다. 네가 니골라파의 행위를 미워하는데, 나도 그것을 미워한다."
주님은 책망 뒤에 다시 칭찬 하나를 덧붙이십니다. 회개하라고 하시면서도 그 교회의 좋은 점을 잊지 않으십니다. "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니골라 당이 정확히 누구인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15절에서 버가모의 ‘발람의 교훈’과 나란히 나오는 것으로 보아,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하는 것을 ‘자유’라는 이름으로 허용한 무리였던 것 같습니다. "우리는 은혜 아래 있으니 이방 신전 잔치에 가도 괜찮다, 몸으로 무엇을 하든 영은 상관없다." 신앙과 생활을 분리하고 세상과 타협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표현이 있습니다.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한다. 사람이 아니라 그들의 행위를 미워합니다. 에베소 교회가 회복해야 할 사랑과, 지켜야 할 거룩함은 서로 충돌하지 않습니다. 죄를 미워하는 것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함께 갈 수 있습니다. 주님이 바로 그렇게 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니골라 당 — 2세기 교부 이레네우스는 이들을 사도행전 6:5의 일곱 집사 중 하나인 ‘안디옥 사람 니골라’와 연결했지만, 근거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름의 뜻(니카오 ‘이기다’ + 라오스 ‘백성’ = ‘백성을 정복함’)이 히브리어 ‘발람’(백성을 삼킴)과 비슷하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39:21-22여호와여 내가 주를 미워하는 자를 미워하지 아니하오며
롬 12:9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유 1:4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7이기는 그에게는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직역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에서 먹게 해 줄 것이다."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예수님이 비유를 마치실 때 자주 하시던 말씀입니다(마 13:9, 43). 귀는 누구에게나 있지만, 듣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성령이 교회들에게", 복수입니다. 에베소에 보낸 편지지만 서머나도, 라오디게아도, 오늘 은혜교회도 함께 들어야 합니다. 1장에서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인데 여기서는 "성령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은 성령을 통해 교회에 들려옵니다.
"이기는 그에게는." 일곱 편지는 모두 ‘이기는 자’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이기는 것은 세상을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신실하게 남는 것입니다. 12:11 "어린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에베소 교회에게 ‘이김’은 처음 사랑을 회복하여 끝까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죄 때문에 생명나무에 다가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그룹과 화염검이 그 길을 지켰습니다(창 3:22-24).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그 막힌 길을 다시 여십니다. 요한계시록 22:2에서 새 예루살렘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서 있고, 22: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로 이 약속이 성취됩니다. 성경은 생명나무로 시작해서 생명나무로 끝납니다.
에베소에는 아데미 신전이 있었고, 그 신전은 도망자가 숨는 ‘성역’이었으며, 아데미의 상징 가운데 하나가 신성한 나무였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성도들은 사람이 만든 성역이 아니라 하나님의 낙원, 참 생명나무를 약속받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낙원파라데이소스 — 페르시아어에서 온 말로 ‘담으로 둘러싼 정원’. 70인역 창 2:8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의 ‘동산’이 이 말입니다. 신약에서는 눅 23:43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고후 12:4에 나옵니다.
이기는니카오 — 승리의 여신 ‘니케(Nike)’와 같은 뿌리. 계시록에 17번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이기셨고(3:21, 5:5), 성도들은 그 승리에 참여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2:9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
창 3:22-24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계 22:2, 14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열두 가지 실과를 맺히되…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마 13:9귀 있는 자는 들으라 하시니라
요일 5:4-5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바른 교회인데, 사랑이 식은 교회
에베소 교회는 칭찬받을 것이 많은 교회였습니다. 부지런했고, 오래 참았고, 교리에 밝았고, 이단을 분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가장 중요하게 보신 것은 그 모든 것의 뿌리였습니다. 사랑이 빠진 열심은 주님 앞에서 촛대를 잃을 만큼 심각한 문제였습니다.
나의 신앙생활은 어떻습니까? 해야 할 일은 다 하는데 주님을 향한 설렘은 사라지지 않았습니까? 옳은 것을 지키다가 사람을 향한 따뜻함을 잃지는 않았습니까?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길은 멀지 않습니다. 기억하고, 돌이키고, 처음 하던 일을 다시 하는 것입니다.
2:8–11서머나 교회 — 가난하나 부요한 교회, 죽도록 충성하라
서머나(오늘날 이즈미르)는 에베소에서 북쪽으로 약 55km 떨어진 아름다운 항구 도시였습니다. ‘아시아의 영광’이라 불릴 만큼 번성했고, 로마에 대한 충성으로 유명했습니다. 주전 195년에 이미 로마 여신의 신전을 세웠고, 주후 26년에는 여러 도시와 경쟁한 끝에 티베리우스 황제의 신전을 세울 권리를 얻었습니다. 황제 숭배의 열심이 강한 도시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은 위험한 일이었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일곱 교회 가운데 빌라델비아와 함께 책망을 한 마디도 듣지 않은 교회입니다. 그리고 가장 짧은 편지를 받았습니다. 고난 속에 있는 사람에게는 긴 설명보다 짧고 확실한 위로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8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말씀하신다
서머나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
직역 서머나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처음이요 마지막이며, 죽었다가 살아나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게 1:17-18의 모습으로 오십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이 교회는 감옥과 죽음을 앞두고 있습니다(10절). 죽음 앞에 선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주님의 모습은 죽음을 통과하여 다시 사신 분입니다. "나도 죽어 봤다. 그러나 살아났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흥미로운 배경이 있습니다. 서머나 도시는 주전 600년경 리디아 사람들에게 파괴되어 약 300년 동안 거의 버려진 마을로 지내다가, 주전 290년경 다시 세워졌습니다. 그래서 서머나는 ‘죽었다가 살아난 도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서머나 성도들은 이 칭호를 들으며 자기 도시의 역사보다 더 확실한 부활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서머나스뮈르나 — 몰약(myrrh)이라는 뜻의 말과 같은 소리입니다. 몰약은 향기를 내려면 으깨어져야 하고, 장례에 쓰이는 향료였습니다(요 19:39). 고난받는 교회의 이름으로 의미 깊습니다.
살아나신에제센 — 부정과거, ‘다시 살았다’. 한 번의 확실한 사건으로서의 부활.
함께 읽을 말씀
계 1:17-18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롬 14:9이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죽었다가 다시 살으셨으니 곧 죽은 자와 산 자의 주가 되려 하심이니라
사 48:12나는 그니 나는 처음이요 또 마지막이라
9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다 — 사단의 회의 훼방도 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실상은 유대인이 아니요 사단의 회라
직역 "나는 네 환난과 가난을 안다. 그러나 너는 부유하다. 또 자기들이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요 사탄의 회당인 자들의 비방도 안다."
"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서머나 성도들은 가난했습니다. ‘궁핍’으로 번역된 프토케이아는 일해도 겨우 사는 가난이 아니라, 구걸해야 할 만큼 아무것도 없는 가난입니다. 왜 그렇게 가난했을까요? 많은 성도가 원래 가난한 계층이었을 것이고, 무엇보다 신앙 때문에 생업을 잃었을 것입니다. 황제 제사와 조합의 신상 제사에 참여하지 않으면 일감이 끊기고, 재산을 빼앗기기도 했습니다(히 10:34 "너희 산업을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그런데 주님은 곧바로 말씀하십니다.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세상의 장부로는 서머나 교회가 가장 가난했지만, 하늘의 장부로는 가장 부요했습니다. 3:17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정반대입니다. 라오디게아는 "나는 부자라" 했지만 실상은 가난했고, 서머나는 가난했지만 실상은 부자였습니다. 야고보서 2:5 "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고린도후서 6:10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자칭 유대인이라 하는 자들의 훼방도 아노니… 사단의 회라." 이 말씀은 조심스럽게 읽어야 합니다. 이것은 유대 민족 전체를 정죄하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 자신도, 예수님도 유대인이셨습니다. 서머나의 일부 유대인 공동체가 그리스도인들을 로마 당국에 고발하고 비방했던 구체적 상황을 말합니다. 당시 유대교는 로마에서 합법 종교로 인정받아 황제 제사를 면제받았지만, 회당에서 쫓겨난 그리스도인들은 그 보호를 잃었습니다. 회당이 그들을 고발하면 바로 위험에 처했습니다. ‘사단’이라는 이름 자체가 ‘고발하는 자’라는 뜻입니다(12:10). 하나님의 백성이라 자처하면서 하나님의 백성을 고발하는 일을 한다면, 그것은 이름만 하나님의 회당일 뿐 실제로는 고발자 사탄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궁핍프토케이아 — 마 5:3 "심령이 가난한 자"의 ‘가난한’(프토코스)과 같은 뿌리. 고후 8:9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훼방블라스페미아 — ‘신성모독’이라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사람을 향한 ‘비방, 중상’.
폴리갑의 순교 — 서머나 교회의 감독 폴리갑은 주후 155년경 순교했는데, 『폴리갑의 순교기』는 그때 서머나의 유대인 무리가 이방인들과 함께 그의 처형을 외치고, 안식일인데도 화형 땔감을 날랐다고 기록합니다(12-13장).
함께 읽을 말씀
약 2:5하나님이 세상에 대하여는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
고후 6:10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계 3:17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난한 것과
롬 2:28-29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요 8:39, 44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10고난을 두려워 말라,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니 죽도록 충성하라 — 생명의 면류관
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볼지어다 마귀가 장차 너희 가운데서 몇 사람을 옥에 던져 시험을 받게 하리니 너희가 십 일 동안 환난을 받으리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직역 "네가 받으려는 고난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마귀가 너희 중 몇을 감옥에 던져 너희가 시험받게 할 것이요, 너희는 열흘 동안 환난을 당할 것이다. 죽기까지 신실하라. 그러면 내가 네게 생명의 면류관을 주겠다."
주님은 서머나 교회에 고난이 없어질 것이라고 약속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더 큰 고난이 온다고 미리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그 앞에 먼저 하시는 말씀이 있습니다. "두려워 말라." 1:17에서 쓰러진 요한에게 손을 얹으며 하신 바로 그 말씀입니다. 고난이 사라져서 두려워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고난 위에 계신 분을 알기에 두려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마귀가… 옥에 던져." 고난 뒤에는 마귀가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고난은 "시험", 곧 믿음을 연단하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마귀는 넘어뜨리려고 시험하지만, 하나님은 그 같은 시험을 통해 믿음을 정금처럼 단련하십니다(벧전 1:6-7). 로마 세계에서 감옥은 형벌의 장소라기보다 재판과 처형을 기다리는 곳이었습니다. ‘옥에 던져진다’는 것은 죽음이 가까이 왔다는 뜻이었습니다.
"십 일 동안." 문자 그대로 열흘일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십 일’은 짧고 정해진 기간을 뜻합니다(창 24:55, 단 1:12-15에서 다니엘과 친구들이 열흘 동안 시험받음). 고난에는 끝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간을 정하시는 분은 마귀가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죽도록’은 ‘죽을 만큼 열심히’라는 뜻보다 ‘죽음에 이르기까지’입니다. 죽음이 와도 신실함을 놓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약속이 있습니다.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면류관(스테파노스)’은 왕관(디아뎀)이 아니라 경기의 승리자나 충성스러운 시민에게 씌워 주던 화관입니다. 서머나는 ‘서머나의 면류관’이라 불렸는데, 도시를 둘러싼 언덕 위 건물들이 왕관처럼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또 서머나는 운동 경기로 유명했습니다. 성도들은 썩어질 화관이 아니라 생명, 곧 영원한 생명이라는 면류관을 받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죽도록아크리 타나투 — ‘죽음까지’. 12:11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와 같은 표현.
면류관스테파노스 — 스데반(Stephen)의 이름이 이 말에서 왔습니다. 최초의 순교자 스데반은 이름 그대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은 사람입니다. 약 1:12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폴리갑 — 서머나의 감독 폴리갑(사도 요한의 제자로 전해짐)은 86세에 "그리스도를 저주하라"는 요구에 "86년 동안 나는 그분을 섬겼고 그분은 내게 한 번도 해를 끼치지 않으셨다"고 답하고 화형을 당했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 그대로 살아 낸 사람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벧전 1:6-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단 1:12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딤후 4:7-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마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11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직역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자는 둘째 사망으로 결코 해를 입지 않을 것이다."
서머나 교회에게 주시는 약속은 그들의 상황에 꼭 맞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은 첫째 사망, 곧 몸의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아니하리라."
‘둘째 사망’은 20:14에서 설명됩니다.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영원한 심판, 하나님에게서 영원히 끊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은 몸을 죽일 수 있지만 그것이 전부입니다. 둘째 사망은 아무도 성도에게 가져올 수 없습니다. 원문은 이중 부정(우 메)으로 "결코, 절대로 해를 입지 않으리라"고 강조합니다. 예수님은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마 10:28) 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가 받을 수 있는 최악의 것은 죽음이었고, 주님이 약속하신 것은 죽음보다 더 큰 것이었습니다. 이것이 순교자들이 웃으며 죽음을 맞을 수 있었던 이유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둘째 사망 — 계시록에만 나오는 표현(2:11, 20:6, 14, 21:8). 20:6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유대 랍비 문헌(타르굼)에도 ‘둘째 죽음’이라는 말이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20:6, 14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요 11:25-26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마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가난하지만 부요한 교회
서머나 교회에는 책망이 없었습니다. 가진 것도 없었고 앞날은 감옥과 죽음이었지만, 주님 보시기에 그들은 부자였습니다. 세상의 장부와 하늘의 장부는 다릅니다.
혹시 신앙 때문에 손해를 보고 있습니까? 정직하게 살다가 기회를 놓치고, 주일을 지키다 불이익을 받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오해받고 있습니까? 주님은 "내가 아노니"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고 하십니다. 고난에는 끝이 있고, 그 끝에는 생명의 면류관이 있습니다.
2:12–17버가모 교회 — 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서, 그러나 발람의 교훈을 용납하다
버가모(오늘날 베르가마)는 서머나에서 북쪽으로 약 100km 떨어진, 아시아 속주의 옛 수도였습니다. 300m 높이의 가파른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로, 거대한 제우스 제단,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치료 신전, 그리고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황제 숭배 신전(주전 29년, 아우구스투스와 로마)이 있었습니다. 20만 권의 장서를 가진 도서관으로도 유명했고, 양피지(parchment)라는 이름이 이 도시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이런 도시에서 버가모 교회는 순교자까지 내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밖으로부터의 핍박을 견딘 교회가, 안에서 스며든 타협은 막지 못했습니다.
12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말씀하신다
버가모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직역 버가모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양날이 선 날카로운 칼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주님은 버가모 교회에게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로 오십니다(1:16). 로마의 총독은 ‘칼의 권세(ius gladii)’, 곧 사형을 선고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버가모는 아시아 총독이 재판을 여는 도시였습니다. 성도들은 늘 그 칼 아래 살았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짜 칼은 내게 있다."
그런데 이 칼은 박해자들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16절에서 주님은 회개하지 않으면 교회 안의 타협하는 자들과 "내 입의 검으로" 싸우겠다고 하십니다. 말씀의 검은 밖의 원수를 심판할 뿐 아니라 교회 안의 거짓도 베어 냅니다. 이 칭호는 위로이면서 경고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좌우에 날선 — 원문 ‘디스토모스’, 직역하면 ‘두 입을 가진’. 양쪽에 날이 선 칼을 말합니다.
칼의 권세 — 로마법에서 총독 같은 고위 관리만 가질 수 있었던 사형 집행권. 롬 13:4 "공연히 칼을 가지지 아니하였으니"가 같은 배경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1:16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히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사 11:4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13사단의 위가 있는 곳에 살면서도 안디바가 죽임당할 때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네가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너희 가운데 곧 사단의 거하는 곳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나를 믿는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하였도다
직역 "나는 네가 어디에 사는지 안다. 거기는 사탄의 보좌가 있는 곳이다. 그런데도 너는 내 이름을 굳게 붙잡고, 내 신실한 증인 안디바가 사탄이 사는 너희 가운데서 죽임을 당한 그 때에도 나에 대한 믿음을 부인하지 않았다."
"네가 어디 사는 것을 내가 아노니." 주님은 우리가 사는 곳을 아십니다. 그 동네의 분위기, 그 직장의 압력, 그 가정의 형편을 아십니다. 버가모 성도들은 이사 갈 수 없었습니다. 그곳이 그들의 삶의 자리였습니다. 주님은 "거기를 떠나라"고 하지 않으시고, "거기서 신실하라"고 하십니다.
"거기는 사단의 위가 있는 데라." ‘사단의 위(보좌)’가 무엇을 가리킬까요?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① 언덕 꼭대기의 거대한 제우스 제단. 멀리서 보면 거대한 보좌처럼 보였습니다(지금은 베를린 페르가몬 박물관에 옮겨져 있습니다). ② 뱀을 상징으로 삼은 아스클레피오스 신전. ③ 가장 유력하게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황제 숭배의 중심지이자 총독이 사형을 선고하던 곳이라는 점. 어느 쪽이든 버가모는 세상 권력과 우상 숭배가 하나로 엉켜 그리스도인을 압박하는 영적 전쟁의 최전선이었습니다.
그런 곳에서 버가모 교회는 "내 이름을 굳게 잡아서" 믿음을 지켰습니다. 심지어 "내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죽임을 당했을 때에도 그랬습니다. 안디바에 대해서는 이 구절 외에 확실한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이름을 기억하시고, 자신의 칭호인 "충성된 증인"(1:5)을 그에게 붙여 주십니다. 역사가 잊은 이름을 주님은 기억하십니다. 그리고 그가 죽임당한 곳을 다시 한 번 "사단의 거하는 곳"이라 부르십니다. 사탄이 그곳에 ‘보좌’를 차리고 ‘살고’ 있었지만, 성도들도 바로 그곳에 ‘살며’ 믿음을 지켰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는카토이케이스 — ‘영구히 거주하다’. 계시록에서 이 말은 주로 "땅에 거하는 자들"(믿지 않는 세상, 3:10, 6:10 등)에게 쓰입니다. 여기서는 성도와 사탄이 같은 곳에 ‘거한다’는 긴장을 보여 줍니다.
안디바 — 후대 전설은 그가 놋쇠 황소 속에 넣어져 불태워졌다고 전하지만 역사적 확인은 어렵습니다. 이름 뜻은 ‘모든 것에 맞서는 자(안티 파스)’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저버리지아르네오마이 — ‘부인하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할 때 쓰인 동사(마 26:70, 72).
함께 읽을 말씀
계 1:5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마 10:32-33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요 17: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엡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14그러나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다 — 우상의 제물과 행음
그러나 네게 두어 가지 책망할 것이 있나니 거기 네게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발람이 발락을 가르쳐 이스라엘 앞에 올무를 놓아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였고 또 행음하게 하였느니라
직역 "그러나 나는 너를 대적할 몇 가지가 있다. 거기 너희 가운데 발람의 가르침을 붙잡는 자들이 있다. 발람은 발락에게 이스라엘 자손 앞에 걸림돌을 놓으라고 가르쳐,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고 음행하게 하였다."
밖의 박해를 견딘 교회가 안의 타협에 무너지고 있었습니다. "발람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 민수기 22-24장에서 모압 왕 발락은 선지자 발람을 돈으로 사서 이스라엘을 저주하게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발람의 입을 막으시고 저주 대신 축복하게 하셨습니다. 저주로는 이스라엘을 무너뜨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자 발람은 다른 꾀를 냈습니다. 민수기 25장과 31:16에 따르면, 그는 모압 여인들을 보내 이스라엘 남자들을 우상 잔치에 초대하게 했습니다. 잔치에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음행하고, 바알브올에게 절했습니다. 저주가 아니라 유혹으로, 밖에서가 아니라 안에서 무너뜨린 것입니다. 그 결과 24,000명이 죽었습니다.
버가모 교회 안에 바로 이런 가르침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버가모 사람들의 생활은 신전과 떼려야 뗄 수 없었습니다. 동업자 조합(길드)의 모임은 수호신에게 제사를 드리고 그 고기를 함께 먹는 잔치였고, 그 잔치에는 종종 성적 방종이 따랐습니다. 어떤 교사들은 이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니(고전 8:4) 조합 잔치에 가도 괜찮다. 생업을 잃으면 안 되지 않느냐." 그럴듯한 말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람의 꾀와 같았습니다. 박해로 무너뜨리지 못한 교회를 타협으로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사탄의 전략은 언제나 두 가지입니다. 사자처럼 으르렁거리며 겁을 주거나(13절), 뱀처럼 속삭이며 꾀거나(14절). 버가모 교회는 사자는 이겼지만 뱀에게 지고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발람의 꾀 — 민 31:16 "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벧후 2:15 "불의의 삯을 사랑하던…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유 1:11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올무스칸달론 — 짐승을 잡는 덫의 미끼 막대기. 영어 scandal의 어원.
우상의 제물 — 행 15:29 예루살렘 회의는 이방인 신자들에게 "우상의 제물과 피와 목매어 죽인 것과 음행을 멀리하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시장에서 파는 고기는 양심에 따라 먹어도 되지만(고전 10:25), 우상의 신전 잔치에 참여하는 것은 "귀신과 교제하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분명히 선을 그었습니다(고전 10:20-21).
함께 읽을 말씀
민 25:1-2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그 여자들이 그 신들에게 제사할 때에 백성을 청하매
민 31:16보라 이들이 발람의 꾀를 좇아 이스라엘 자손으로 브올의 사건에 여호와 앞에 범죄케 하여
고전 10:20-21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벧후 2:15바른 길을 떠나 미혹하여 브올의 아들 발람의 길을 좇는도다 그는 불의의 삯을 사랑하다가
15이와 같이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도 있다
이와 같이 네게도 니골라 당의 교훈을 지키는 자들이 있도다
직역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도 니골라파의 가르침을 붙잡는 자들이 있다."
"이와 같이." 니골라 당의 교훈은 발람의 교훈과 같은 종류의 가르침이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했는데(6절), 버가모 교회는 그 ‘교훈’을 지키는 자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같은 가르침이 한 교회에서는 거부되고, 다른 교회에서는 용납되었습니다.
주님이 책망하시는 것은 버가모 교회 전체가 그 가르침을 따랐다는 것이 아니라, "네게… 있도다", 곧 그런 자들이 교회 안에 있는데도 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에베소는 사랑 없이 진리만 지켰고, 버가모는 진리를 희생하며 관용했습니다. 교회는 진리와 사랑 둘 다를 붙들어야 합니다(엡 4:15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원어 · 번역 노트
교훈디다케 — ‘가르침’. 행위(6절)에서 교훈(15절)으로, 니골라 당은 체계적인 가르침을 가진 무리였음을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2:6네가 니골라 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
엡 4:14-15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갈 5:13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위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16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속히 가서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속히 임하여 내 입의 검으로 그들과 싸우리라
직역 "그러므로 회개하라. 그렇지 않으면 내가 속히 네게 가서 내 입의 칼로 그들과 싸우겠다."
"그러므로 회개하라." 회개해야 할 대상은 발람의 교훈을 따르는 자들만이 아니라 교회 전체입니다. 그들을 내버려 둔 것 자체가 회개할 일입니다.
그리고 주목할 표현이 있습니다. 주님은 "내가 네게 임하여"라고 하시면서, 싸우실 대상은 "그들", 곧 거짓 교사들입니다. 교회 전체를 멸하려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의 거짓을 도려내려는 것입니다. 외과 의사가 몸을 살리려고 병든 부위를 칼로 잘라 내는 것과 같습니다.
여기에는 아이러니가 숨어 있습니다. 민수기 22장에서 발람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러 갈 때, 여호와의 사자가 칼을 빼어 들고 길을 막았습니다(민 22:23, 31). 그리고 발람은 결국 이스라엘 칼에 죽었습니다(민 31:8). 발람의 길을 따르는 자들은 발람처럼 주님의 칼을 만나게 될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속히 임하여 — 3:11, 22:7, 12, 20의 재림의 ‘속히’와 같은 말. 그러나 여기서는 회개하지 않을 때 교회에 찾아오시는 심판의 방문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22:31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히시매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 들고 길에 선 것을 그가 보고
민 31:8또 브올의 아들 발람을 칼로 죽였더라
계 19:15, 21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 나머지는 말 탄 자의 입으로 나오는 검에 죽으매
살후 2:8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죽이고
17이기는 자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새 이름을 기록한 흰 돌을 주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감추었던 만나를 주고 또 흰 돌을 줄 터인데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직역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감추어진 만나를 줄 것이요, 또 흰 돌을 줄 것인데, 그 돌 위에는 받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모르는 새 이름이 쓰여 있다."
버가모 교회의 약속은 그들의 시험에 꼭 맞습니다. 우상의 제물을 먹으라는 유혹에 맞선 사람에게 주님은 더 좋은 음식을 약속하십니다. "감추었던 만나." 광야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 주셨고, 그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 언약궤 안에 ‘감추어’ 두게 하셨습니다(출 16:32-34, 히 9:4). 유대 전승에는 성전이 무너질 때 예레미야가 언약궤를 숨겼고, 메시아가 오실 때 그 만나가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자신이 "하늘로서 내려온 생명의 떡"(요 6:48-51)이라고 하셨습니다. 조합 잔치의 고기를 포기한 사람은 그리스도 자신을, 메시아의 잔치를 먹게 될 것입니다.
"흰 돌." 1세기 사람들에게 흰 돌은 여러 의미가 있었습니다. ① 법정에서 배심원이 무죄 판결을 내릴 때 흰 돌을, 유죄일 때 검은 돌을 던졌습니다. 세상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을지라도 하늘 법정에서는 무죄입니다. ② 잔치나 경기에 들어가는 입장권으로 작은 돌 패를 썼습니다. 우상 잔치에 가지 않은 사람은 어린양의 혼인 잔치 초대장을 받습니다. ③ 승리자에게 주는 기념패로도 쓰였습니다.
"그 돌 위에 새 이름을 기록한 것이 있나니 받는 자 밖에는 그 이름을 알 사람이 없느니라." 성경에서 새 이름은 새로운 신분과 관계를 뜻합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으로, 야곱이 이스라엘로, 시몬이 베드로로 바뀌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둘만 아는 애칭이 있듯이, 주님과 그 사람 사이에만 아는 친밀한 이름입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을 조롱하는 이름으로 불렀지만, 주님은 각 사람에게 둘도 없는 이름을 주십니다. 이사야 62:2 "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원어 · 번역 노트
흰 돌프세포스 — ‘작은 조약돌’. 투표나 계산에 쓰였습니다. 행 26:10 "죽일 때에 내가 가편 투표를 하였고"의 ‘투표’가 이 말입니다.
새 이름 — 3:12 "하나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19:12 "이름 쓴 것이 하나 있으니 자기밖에 아는 자가 없고", 22:4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함께 읽을 말씀
출 16:33-34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요 6:49-51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
사 62:2너는 여호와의 입으로 정하실 새 이름으로 일컬음이 될 것이며
사 65:15오직 나의 종들은 다른 이름으로 칭하리라
계 3:12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사자는 이겼는데, 뱀에게 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버가모 교회는 순교자를 낼 만큼 강한 핍박을 견뎠습니다. 그러나 "이 정도는 괜찮다"는 타협의 가르침은 막지 못했습니다. 밖에서 칼로 무너뜨리지 못한 교회를, 사탄은 안에서 잔칫상으로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조합 잔치’는 무엇입니까?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다고 말하는 타협, 모두가 다 그렇게 한다는 관행, 신앙과 직장은 별개라는 생각. 주님은 그 잔칫상을 내려놓는 사람에게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을 약속하십니다. 세상의 잔치보다 주님의 잔치가 훨씬 낫습니다.
2:18–29두아디라 교회 — 사랑과 섬김은 자라나, 이세벨을 용납하다
두아디라(오늘날 아키사르)는 일곱 도시 가운데 가장 작고 덜 알려진 도시였습니다. 그러나 그 도시에게 보낸 편지는 일곱 편지 가운데 가장 깁니다. 두아디라는 상공업 도시였습니다. 비문에는 양털 직공, 아마포 직공, 염색업자, 가죽 장인, 도기공, 제빵사, 노예 상인, 그리고 구리 세공인의 조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빌립보에서 바울의 복음을 듣고 처음 믿은 자색 옷감 장사 루디아가 바로 이 두아디라 사람이었습니다(행 16:14).
모든 직업이 조합에 묶여 있었고, 조합마다 수호신과 제사와 잔치가 있었습니다. 조합에 속하지 않으면 사실상 장사를 할 수 없었습니다. 버가모의 문제가 여기서 더 깊고 구체적인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18눈이 불꽃 같고 발이 빛난 주석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말씀하신다
두아디라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직역 두아디라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불꽃 같은 눈을 가지고 빛나는 청동 같은 발을 가지신 하나님의 아들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아들." 계시록에서 예수님이 이 칭호로 불리는 곳은 이곳뿐입니다. 왜 하필 두아디라일까요? 두아디라의 수호신은 태양신 아폴론(티림노스)이었고, 그는 제우스의 아들로 숭배되었습니다. 황제도 ‘신의 아들’이라 불렸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참 하나님의 아들은 나다." 그리고 27절에서 인용하실 시편 2편은 "너는 내 아들이라"(시 2:7) 하시며 아들에게 열방을 다스리는 철장을 주시는 시편입니다.
"그 눈이 불꽃 같고." 두아디라 교회의 문제는 숨어 있는 문제였습니다. 겉으로는 사랑과 섬김이 넘치는 교회였습니다(19절). 그러나 그 안에 이세벨의 가르침과 "사단의 깊은 것"(24절)이 숨어 있었습니다. 불꽃 같은 눈은 그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십니다(23절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구리 세공 조합이 있던 이 도시 사람들은 이 그림을 바로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발은 원수를 질그릇처럼 깨뜨리는 심판의 발입니다(27절).
원어 · 번역 노트
하나님의 아들 — 계시록 전체에서 이 표현은 여기 한 번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을 "내 아버지"라 자주 부르십니다(2:27, 3:5, 21).
두아디라의 신 — 도시의 동전에는 아폴론과 황제가 나란히 새겨졌습니다. 황제를 아폴론의 화신으로 섬기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2:7내가 영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계 1:14-15그의 눈은 불꽃 같고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행 16:14두아디라 성의 자주 장사로서 하나님을 공경하는 루디아라 하는 한 여자가
단 10:6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19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 나중 행위가 처음보다 많다
내가 네 사업과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아노니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직역 "나는 네 행위들을, 곧 네 사랑과 믿음과 섬김과 인내를 안다. 또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안다."
두아디라 교회는 칭찬받을 점이 많았습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목록의 순서입니다. 사랑이 맨 앞에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잃었던 바로 그것을 두아디라 교회는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믿음은 인내로 나타났습니다. 사랑-섬김, 믿음-인내가 짝을 이룹니다.
더 놀라운 칭찬은 이것입니다. "네 나중 행위가 처음 것보다 많도다." 에베소는 처음보다 못했고(4절), 두아디라는 처음보다 나았습니다. 자라 가는 교회였습니다. 많은 교회가 처음의 뜨거움을 점점 잃는데, 두아디라 교회는 갈수록 더 사랑하고 더 섬겼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교회에 심각한 문제가 있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교회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품고, 아무것도 거절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에베소는 사랑 없는 진리의 위험을, 두아디라는 진리 없는 사랑의 위험을 보여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섬김디아코니아 — ‘집사(디아코노스)’와 같은 뿌리. 식탁에서 시중드는 일에서 나온 말로, 교회 안의 실제적인 섬김과 구제를 가리킵니다(행 6:1, 고전 16:15).
함께 읽을 말씀
살전 1: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살전 4:1너희가 마땅히 어떻게 행하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것을 우리에게 받았으니 곧 너희가 행하는 바라 더욱 많이 힘쓰라
빌 1:9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계 2: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20그러나 자칭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니, 그가 내 종들을 꾀어 행음하고 우상 제물을 먹게 한다
그러나 네게 책망할 일이 있노라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네가 용납함이니 그가 내 종들을 가르쳐 꾀어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하는도다
직역 "그러나 나는 너를 대적할 것이 있다. 네가 자기를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을 내버려 두었다. 그는 가르치고 꾀어서 내 종들로 음행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한다."
"자칭 선지자라 하는 여자 이세벨." 두아디라 교회 안에는 예언의 은사를 주장하며 큰 영향력을 가진 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그의 실제 이름은 이세벨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주님이 그에게 붙여 주신 이름입니다. 구약의 이세벨은 시돈의 공주로 이스라엘 왕 아합과 결혼한 뒤, 바알 숭배를 이스라엘에 들여오고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왕상 16:31, 18:4). 열왕기하 9:22은 "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라고 합니다.
두아디라의 이세벨이 가르친 것은 버가모의 발람의 교훈과 같은 내용입니다. "행음하게 하고 우상의 제물을 먹게." 아마 이렇게 가르쳤을 것입니다. "조합 잔치에 참여해도 괜찮다. 오히려 사탄의 깊은 것을 알아야 그것을 이길 수 있다(24절). 몸으로 무엇을 하든 영은 깨끗하다." 그리고 그것을 "주님께서 내게 계시하셨다"는 예언의 권위로 포장했습니다. 생계가 걸린 성도들에게 이 가르침은 달콤했을 것입니다.
주님의 책망은 이세벨보다 먼저 교회를 향합니다. "네가 용납함이니." 문제는 그런 사람이 있었다는 것보다, 교회가 그를 내버려 두었다는 것입니다. 사랑이 많고 너그러운 교회였기에, 그 사람을 정죄하기가 어려웠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거짓 가르침을 용납하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방임입니다. 양 떼를 사랑하는 목자는 이리를 용납하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여자 이세벨 — 일부 사본은 "네 아내 이세벨"(텐 귀나이카 수)로 읽어, 교회 지도자(사자)의 아내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본과 번역은 "그 여자 이세벨"을 따릅니다.
용납함이니아피에스 — 2절의 ‘용납지(바스타조)’와 다른 말. ‘그냥 두다, 손을 놓다’. 에베소는 악한 자를 견디지 않았고, 두아디라는 내버려 두었습니다.
행음 — 계시록에서 ‘음행’은 실제 성적 부도덕과 함께 영적 간음, 곧 우상 숭배를 함께 가리키는 경우가 많습니다(17:2, 18:3). 구약 선지자들도 우상 숭배를 음행이라 불렀습니다(호 2장, 겔 16장).
함께 읽을 말씀
왕상 16:31시돈 사람의 왕 엣바알의 딸 이세벨을 아내로 삼고 가서 바알을 섬겨 숭배하고
왕하 9:22네 어미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마 7:15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행 20:29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그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21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한다
또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그 음행을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직역 "나는 그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었으나, 그는 자기 음행을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는다."
심판 전에 먼저 은혜가 있습니다. "내가 그에게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되." 주님은 이세벨에게도 시간을 주셨습니다. 아마 요한이나 다른 교회 지도자들이 그에게 경고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거짓 선지자에게조차 즉시 심판하지 않으시고 돌아올 기회를 주십니다. 베드로후서 3:9 "주의 약속은…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그 기회는 무한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회개하고자 아니하는도다." 원문은 ‘원하지 않는다’입니다. 회개할 줄 몰라서가 아니라 회개하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자기가 옳다는 증거로 오해했을지도 모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잖아." 그러나 로마서 2:4-5는 경고합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너의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원어 · 번역 노트
기회크로노스 — ‘시간’. 하나님의 심판이 늦어지는 것은 무관심이 아니라 오래 참으심입니다. 계시록 9:20-21, 16:9, 11에서도 재앙 속에서 사람들이 "회개하지 아니하더라"는 말이 반복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벧후 3:9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볼지어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또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큰 환난 가운데 던지고
직역 "보라, 내가 그를 병상에 던질 것이요, 그와 함께 간음하는 자들도 그들이 그의 행위를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에 던질 것이다."
심판은 그 죄에 꼭 맞는 모습으로 옵니다. "내가 그를 침상에 던질 터이요." 음행의 침상이 이제 병상, 고통의 침상이 됩니다. 쾌락의 자리가 심판의 자리로 바뀝니다. 원문의 ‘클리네’는 침대이면서, 신전 잔치에서 기대어 앉던 식사용 긴 의자이기도 했습니다. 우상 잔치의 그 자리가 곧 심판의 자리가 됩니다.
"그로 더불어 간음하는 자들도." 그를 따르는 사람들도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도 조건이 붙습니다. "만일 그의 행위를 회개치 아니하면." 이세벨은 회개할 기회를 거절했지만, 그를 따르던 사람들에게는 아직 문이 열려 있습니다. 심판의 경고 속에서도 주님은 마지막까지 회개를 부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그의 행위 — 많은 사본은 "그녀의 행위"(아우테스)로 읽습니다. 그들이 그녀와 함께 행한 일을 말합니다.
큰 환난 — 7:14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과 같은 표현이지만, 여기서는 회개하지 않는 자에게 내리는 징벌의 고통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1:30-32그러므로 너희 중에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고… 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갈 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잠 7:16-27내 침상에는 화문 요와 애굽의 문채 있는 이불을 폈고… 그의 집은 음부의 길이라
23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내가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임을 알리라
또 내가 사망으로 그의 자녀를 죽이리니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내가 너희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아주리라
직역 "또 내가 그의 자녀들을 죽음으로 쳐서 죽일 것이다. 그러면 모든 교회가 내가 사람의 생각과 마음을 살피는 자임을 알게 될 것이다. 나는 너희 각 사람에게 너희 행위대로 갚아 줄 것이다."
"그의 자녀." 이세벨의 실제 아이들이라기보다, 그의 가르침을 철저히 받아들인 제자들, 영적 자녀들을 가리킨다고 봅니다. 22절의 ‘그와 간음하는 자들’(동조자들)보다 더 깊이 그 가르침에 빠진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이 심판의 목적이 나옵니다. "모든 교회가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두아디라에서 일어난 일은 아시아의 모든 교회에, 그리고 오늘 모든 교회에 교훈이 됩니다. ‘뜻’으로 번역된 말은 원래 ‘콩팥’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은 콩팥을 감정과 욕망의 가장 깊은 자리로, 마음을 생각과 의지의 자리로 여겼습니다. 예레미야 17:10 "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구약에서 여호와 하나님께 쓰인 말을 예수님이 자신에게 쓰십니다.
이것은 18절의 "불꽃 같은 눈"이 무엇을 하는지 보여 줍니다. 이세벨은 아마 겉으로 매우 영적이고 은혜로워 보였을 것입니다. 교회는 그것에 속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겉이 아니라 가장 깊은 속을 보십니다. 그리고 "각 사람의 행위대로" 갚으십니다. 교회 안에 숨는다고 숨어지지 않고, 많은 사람과 함께했다고 책임이 덜해지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망으로 — 6:8 "검과 흉년과 사망(역병)과"처럼, 70인역에서 ‘사망’이 ‘전염병’을 옮기는 말로 자주 쓰였습니다. "역병으로 죽이리니"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뜻네프로스 — 직역 ‘콩팥’. 시 7:9 "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개역한글』은 시편에서 ‘폐부’, ‘심장’ 등으로 옮겼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렘 17:10나 여호와는 심장을 살피며 폐부를 시험하고 각각 그 행위와 그 행실대로 보응하나니
시 7:9의로우신 하나님이 사람의 심장을 감찰하시나이다
시 62:12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히 4:13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계 22:12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24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남은 자들에게는 다른 짐을 지우지 않겠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소위 사단의 깊은 것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말하노니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직역 "그러나 두아디라에 있는 나머지 너희, 곧 이 가르침을 받지 않고, 그들이 말하는 대로 ‘사탄의 깊은 것들’을 알지 못하는 너희에게 내가 말한다. 나는 너희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는다."
이제 주님은 교회 안의 신실한 사람들에게 따로 말씀하십니다. "두아디라에 남아 있어 이 교훈을 받지 아니하고." 교회 전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세벨을 따르지 않은 ‘남은 자들’이 있었습니다. 주님은 그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엘리야 시대에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이 있었듯이(왕상 19:18), 이세벨의 두아디라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소위 사단의 깊은 것." 거짓 교사들은 아마 "우리는 하나님의 깊은 것을 안다"고 자랑했을 것입니다(고전 2:10 참고). 평범한 성도들이 모르는 특별한 비밀, 더 높은 영적 지식이 있다고. 어쩌면 "죄의 깊은 곳까지 경험해 봐야 진짜 자유를 안다"고 가르쳤을지도 모릅니다. 주님은 그들의 표현을 비꼬아 뒤집으십니다. "너희가 말하는 그 ‘깊은 것’은 하나님의 깊은 것이 아니라 사단의 깊은 것이다."
그리고 남은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이 따뜻합니다. "다른 짐으로 너희에게 지울 것이 없노라." 그 깊은 비밀을 몰라도 괜찮다. 새로운 영적 비법을 배울 필요도 없다. 이미 받은 것으로 충분하다. 이것은 사도행전 15:28-29 예루살렘 회의의 결정을 떠올리게 합니다. "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우상의 제물과… 음행을 멀리할지니라." 단순한 순종이 깊은 비밀보다 낫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깊은 것타 바테아 — 고전 2:10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2세기 영지주의자들은 ‘깊은 비밀 지식(그노시스)’을 자랑하며 육체의 행위는 영혼과 상관없다고 가르쳤는데, 두아디라의 가르침은 그 초기 모습으로 보입니다.
짐바로스 — 행 15:28 "아무 짐(바로스)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함께 읽을 말씀
행 15:28-29성령과 우리는 이 요긴한 것들 외에 아무 짐도 너희에게 지우지 아니하는 것이 가한 줄 알았노니
왕상 19:18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고전 2:10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마 11:30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직역 "다만 너희가 가진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붙잡으라."
남은 자들에게 주시는 명령은 단 하나입니다. "너희에게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 새로운 것을 찾아다니지 말고, 이미 가진 것을 붙들라. 처음 받은 복음, 처음 배운 진리, 지금까지 지켜 온 사랑과 섬김과 인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내가 올 때까지." 이 붙듦에는 끝이 있습니다. 영원히 버티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이 오실 때까지입니다. 경주에는 결승선이 있습니다. 그리고 ‘굳게 잡으라(크라테오)’는 1절에서 주님이 일곱 별을 ‘붙잡고’ 계신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굳게 붙잡고 계시기에, 우리도 받은 것을 굳게 붙잡을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3: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살후 2:15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유전을 지키라
히 10:23또 약속하신 이는 미쁘시니 우리가 믿는 도리의 소망을 움직이지 말며 굳게 잡아
26이기고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자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라
이기는 자와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그에게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직역 "이기는 자, 곧 끝까지 내 일들을 지키는 자에게는 내가 민족들을 다스릴 권세를 주겠다."
두아디라 교회의 약속은 다른 편지들과 순서가 조금 다릅니다. ‘귀 있는 자는’이 약속 뒤(29절)로 갑니다. 3-7번째 편지는 모두 이 순서를 따릅니다.
"끝까지 내 일을 지키는." 22절에서 이세벨의 추종자들은 ‘그녀의 행위(일)’를 따랐습니다. 이기는 자는 ‘내(그리스도의) 일’을 끝까지 지킵니다. 누구의 일을 따르느냐의 문제입니다. 19절에서 칭찬받은 사랑과 섬김과 인내의 일, 그것이 주님의 일입니다.
그리고 약속이 놀랍습니다.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를 주리니." 두아디라의 성도들은 조합에 속하지 못해 경제적으로 밀려나고, 사회에서 아무 힘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열방을 다스리는 권세를 약속하십니다. 세상에서 가장 힘없던 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세상을 다스립니다(고전 6:2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계 20:4, 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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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까지아크리 텔루스 — ‘끝까지’. 마 24:13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함께 읽을 말씀
고전 6:2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딤후 2:12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계 20:4저희가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노릇 하니
마 24:13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27철장으로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듯 하리니, 나도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다
그가 철장을 가지고 저희를 다스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하리라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직역 "그는 쇠막대기로 그들을 목양할 것이요, 질그릇이 부서지듯 할 것이다. 나도 내 아버지께 그런 권세를 받은 것처럼."
시편 2:8-9의 인용입니다. "내게 구하라 내가 열방을 유업으로 주리니 네 소유가 땅 끝까지 이르리로다 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시편 2편은 세상의 왕들이 하나님과 그 기름 부은 자를 대적하지만, 하나님께서 그 아들을 왕으로 세우신다는 시편입니다. 18절의 "하나님의 아들"과 짝을 이룹니다.
"질그릇 깨뜨리는 것과 같이." 두아디라에는 도기공 조합도 있었습니다. 질그릇은 한번 깨지면 다시 붙일 수 없습니다. 지금은 조합과 황제의 권력이 단단해 보이지만, 그리스도의 철장 앞에서 그것들은 질그릇처럼 부서질 것입니다.
"나도 내 아버지께 받은 것이 그러하니라." 주님은 아버지께 받은 권세를 이기는 자들과 나누십니다. 3:21 "이기는 그에게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원어 · 번역 노트
다스려포이마네이 — 70인역 시 2:9가 히브리어 ‘라아(부수다)’를 ‘라아(목양하다)’로 읽어 이렇게 옮겼습니다. 히브리어 자음이 같은 두 단어입니다. 마 2:6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리라"의 ‘목자가 되다’도 같은 말.
함께 읽을 말씀
시 2:8-9네가 철장으로 저희를 깨뜨림이여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계 12:5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철장으로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계 19:15친히 저희를 철장으로 다스리며
계 3:21이기는 그에게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28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직역 "또 내가 그에게 새벽 별을 주겠다."
두아디라 교회에게 주시는 두 번째 약속은 짧고 아름답습니다. "새벽 별을 주리라." 새벽 별(금성)은 밤이 가장 깊을 때 떠올라 곧 아침이 온다는 것을 알리는 별입니다.
이 새벽 별이 무엇인지 계시록은 마지막에 직접 알려 줍니다. 22:16 "나 예수는…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주님이 이기는 자에게 주시는 가장 큰 상은 주님 자신입니다. 권세(26-27절)보다 더 큰 선물은 그리스도를 소유하는 것입니다.
이세벨의 가르침을 거절하고 손해를 보며 어두운 밤을 지나는 두아디라의 남은 자들에게 이것은 큰 위로였을 것입니다. 지금은 가장 어두운 시간 같아도, 새벽 별이 떠오르고 있습니다. 민수기 24:17에서 발람조차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라고 예언했습니다. 별과 홀(철장), 26-28절의 두 약속이 이미 거기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새벽 별 — 로마 군대는 금성을 승리의 상징으로 여겨 깃발에 새기기도 했습니다. 벧후 1:19 "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함께 읽을 말씀
계 22:16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하시더라
민 24:17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벧후 1:19날이 새어 샛별이 너희 마음에 떠오르기까지 너희가 이것을 주의하는 것이 가하니라
단 12:3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29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직역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네 번째 편지도 같은 부름으로 끝납니다. 2장에서만 네 번째 듣는 말씀입니다. 반복은 강조입니다. 에베소의 사랑 잃음, 서머나의 고난, 버가모의 타협, 두아디라의 거짓 관용, 이 모든 것은 다른 교회의 이야기가 아니라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네 교회를 다 읽고 나서 나 자신에게 물어보십시오. 나는 에베소처럼 열심은 있으나 사랑을 잃지는 않았는가? 서머나처럼 고난 속에서 신실한가? 버가모처럼 밖의 압력은 견디면서 안의 타협에는 무감각하지 않은가? 두아디라처럼 사랑이 많지만 분별을 잃지 않았는가? 성령께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은 무엇입니까?
함께 읽을 말씀
계 2:7, 11, 1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히 3:7-8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날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너희 마음을 강퍅케 말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사랑 많은 교회가 지켜야 할 것
두아디라는 자라 가는 교회였습니다. 사랑과 섬김이 날마다 더 풍성해졌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분별을 잃을 때, 교회는 이리를 양 떼 한가운데 들여놓게 됩니다. 주님의 불꽃 같은 눈은 겉으로 영적으로 보이는 것 너머를 보십니다.
‘깊은 비밀’을 말하며 성도를 미혹하는 가르침은 오늘도 많습니다. 주님은 남은 자들에게 다른 짐을 지우지 않으십니다. 새로운 비법이 아니라 이미 받은 복음을 주님 오실 때까지 굳게 잡으면 됩니다. 그 끝에는 새벽 별이신 주님 자신이 계십니다.
The Pattern · 편지의 틀
2장 네 편지를 한눈에
같은 틀에 담긴 네 교회의 서로 다른 얼굴. 3장의 세 교회는 다음 장에서 이어집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주님의 칭호
일곱 별, 촛대 사이 (1:13, 16)
처음과 나중, 죽었다 사신 이 (1:17-18)
좌우에 날선 검 (1:16)
불꽃 눈, 빛난 주석 발 (1:14-15)
칭찬
수고, 인내, 거짓 사도 분별
환난과 가난 속 부요
사단의 위 아래서 믿음 지킴
사랑, 믿음, 섬김, 인내, 성장
책망
처음 사랑을 버림
없음
발람·니골라 당 용납
이세벨 용납
권면
기억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로
두려워 말고 죽도록 충성하라
회개하라
있는 것을 굳게 잡으라
이기는 자에게
생명나무 과실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
감추었던 만나, 흰 돌, 새 이름
만국 다스리는 권세, 새벽 별
새 예루살렘에서
22:2, 14
20:6, 21:4
19:9, 22:4
22:5, 16
네 교회는 서로 다른 약점을 보여 줍니다. 에베소는 사랑 없는 진리, 버가모와 두아디라는 진리 없는 관용의 위험입니다. 그리고 서머나는 고난 속에서 진리와 사랑을 함께 지킨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진리와 사랑 둘 다를 붙듭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2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사자使者 · 1, 8, 12, 18절
편지를 받는 교회의 대표. 천사 또는 교회 지도자로 해석.
수고2절
지칠 만큼 애씀(코포스).
용납容納 · 2, 20절
받아들임, 내버려 둠. 2절은 ‘견딤’, 20절은 ‘허용함’의 뜻.
처음 사랑4절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사랑, 그리고 무엇보다 앞서야 할 사랑.
니골라 당6, 15절
우상 제물과 음행을 허용하며 세상과 타협하도록 가르친 무리.
낙원樂園 · 7절
에덴동산. 회복된 하나님의 정원(파라데이소스).
궁핍窮乏 · 9절
구걸해야 할 만큼 극심한 가난.
사단의 회9절
하나님의 백성을 자처하나 성도를 고발하던 무리. 『개역개정』 "사탄의 회당".
면류관冕旒冠 · 10절
승리자의 화관(스테파노스). 생명의 면류관은 영생.
둘째 사망11절
불못.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20:14).
사단의 위13절
사탄의 보좌. 황제 숭배와 우상 숭배의 중심지 버가모를 가리킴.
발람의 교훈14절
유혹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우상과 음행에 빠뜨린 꾀(민 25, 31장).
올무14절
걸려 넘어지게 하는 덫(스칸달론).
감추었던 만나17절
언약궤에 감추어 둔 만나. 그리스도, 하늘 양식.
흰 돌17절
무죄 판결, 잔치 입장권을 뜻하던 작은 돌.
이세벨20절
두아디라 교회 안의 거짓 여선지자에게 붙인 이름. 아합의 아내에게서 온 이름.
사단의 깊은 것24절
거짓 교사들이 자랑한 ‘깊은 비밀’을 주님이 비꼬아 부르신 말.
철장鐵杖 · 27절
쇠막대기. 왕의 홀이자 목자의 막대기.
새벽 별28절
샛별. 22:16에서 예수님 자신.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처음 예수님을 만났을 때와 지금, 나의 사랑은 어떻게 달라졌습니까? 다시 시작해야 할 ‘처음 행위’는 무엇입니까? (4-5절)
세상의 장부로는 가난하지만 하늘의 장부로는 부요하다는 말씀은 지금 나의 형편에 어떤 위로가 됩니까? (9절)
"죽도록 충성하라." 내가 끝까지 붙들어야 할 신실함의 자리는 어디입니까? (10절)
오늘 나에게 ‘조합 잔치’ 같은 타협의 압력은 무엇입니까? 교회는 그런 성도들을 어떻게 함께 지켜 줄 수 있을까요? (14, 20절)
우리 교회는 에베소처럼 진리만 남은 쪽과 두아디라처럼 분별 없는 사랑 쪽 가운데 어디에 더 가깝습니까? (4, 19-20절)
이기는 자에게 주신 약속 가운데(생명나무, 생명의 면류관, 흰 돌, 새벽 별) 지금 나의 마음에 가장 와닿는 약속은 무엇이며, 왜 그렇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