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2절까지 — 이름만 살아 있는 사데, 작은 능력의 빌라델비아,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그리고 문을 두드리시는 주님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REVELATION 3:20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3장 들어가며
일곱 편지의 마지막 세 통 — 살았다 하나 죽은 교회, 작지만 칭찬만 받은 교회, 부자라 하나 가난한 교회
2장에 이어 3장은 남은 세 교회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이 세 편지는 서로 놀랍도록 대조됩니다. 사데는 이름은 살았으나 실제로는 죽은 교회, 빌라델비아는 힘은 작았으나 책망 하나 없이 칭찬만 받은 교회, 라오디게아는 스스로 부자라 했으나 주님 보시기에 가장 비참한 교회입니다.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사데와 라오디게아는 밖에서 박해를 받았다는 말이 전혀 없습니다. 세상과 아무 마찰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교회가 일곱 교회 가운데 가장 심한 책망을 받습니다. 반대로 핍박받던 서머나와 빌라델비아는 책망을 받지 않았습니다. 세상과 편안하게 지내는 교회가 반드시 건강한 교회는 아닙니다.
3장은 일곱 편지의 결론처럼 두 가지 그림으로 끝납니다. 교회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 주님(20절), 그리고 이기는 자를 자기 보좌에 함께 앉히시는 주님(21절). 그리고 4장부터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그 보좌를 보게 됩니다.
사데
이름과 실상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평판과 실제가 다른 교회.
빌라델비아
작은 능력, 열린 문
힘은 작았지만 말씀을 지킨 교회. 주님이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열어 주심.
라오디게아
미지근함
차지도 덥지도 않은 교회. 그러나 주님은 그 교회 문 밖에서 여전히 두드리심.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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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일깨워"
잠에서 깨어 정신을 차려라. 원문 그레고레오 ‘깨어 있다’.
5절 "흐리지 아니하고"
지우지 않고. 원문 엑살레이포 ‘지워 없애다’. 『개역개정』 "지우지 아니하고".
7절 "진실하사"
원문 알레디노스, ‘참된, 진짜의’. 거짓 신들과 대비되는 참된 분.
15–16절 "더웁지도", "미지근하여"
덥지도. 미지근(微溫)하다, 따뜻하지도 차지도 않다.
17절 "곤고한", "가련한"
困苦, 몹시 고달프고 비참함. 可憐, 불쌍함.
18절 "안약"
眼藥, 눈에 바르는 약. 라오디게아의 유명한 특산물.
19절 "징계하노니"
懲戒, 바로잡으려고 훈육함. 원문 파이듀오 ‘자녀를 가르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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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사데 교회 —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사르디스)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주전 6세기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고, 전설적인 부자 크로이소스 왕이 다스렸습니다. 근처 강에서 사금이 나왔고, 세계 최초로 금화와 은화를 만든 곳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시의 성채는 450m 높이의 가파른 바위 언덕 위에 있어 결코 함락될 수 없다고 자랑했습니다.
그러나 1세기의 사데는 지나간 영광으로 사는 도시였습니다. 이름은 화려했지만 실제로는 쇠락해 있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도 도시를 닮아 있었습니다.
1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 — 살았다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라
사데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가 가라사대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직역 사데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지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살아 있다는 이름을 가졌으나 죽은 자다."
주님은 사데 교회에게 "하나님의 일곱 영… 을 가진 이"로 오십니다. 1:4에서 보좌 앞에 있던 일곱 영, 곧 충만하신 성령입니다. 죽은 교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생명을 주시는 성령이시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가득한 골짜기에 생기(영)가 불어 오자 뼈들이 살아났습니다. 주님은 그 영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리고 칭찬 없이 바로 진단하십니다.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 사데 교회는 평판이 좋았습니다. 아마 다른 교회들이 "사데 교회는 살아 있는 교회야"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활동도 많고, 모임도 있고, 행사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눈에는 시체였습니다. 겉은 멀쩡하지만 숨을 쉬지 않는 몸.
이것은 가장 무서운 진단입니다. 에베소나 두아디라는 문제가 있어도 살아 있었습니다. 사데는 문제가 무엇인지조차 모를 만큼 잠들어 있었습니다. 박해도 없었고(박해할 만큼 눈에 띄지 않았기에), 이단 논쟁도 없었습니다(지킬 만큼의 열정이 없었기에). 아무 일도 없는 교회.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하신 말씀이 떠오릅니다.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마 23:27).
원어 · 번역 노트
이름오노마 — 여기서는 ‘명성, 평판’. 사람들이 붙여 준 이름과 하나님이 보시는 실상의 대비. 사데 편지에는 ‘이름’이 네 번 나옵니다(1, 4, 5절 두 번). 4절의 "몇 명"도 원문은 ‘몇 이름’입니다.
일곱 영과 일곱 별 — 성령과 교회의 사자들이 함께 주님 손에 있습니다. 교회를 살리는 것은 지도자의 능력이 아니라 성령이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겔 37:9-10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서는데 극히 큰 군대더라
마 23:27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딤후 3: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삼상 16:7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2깨어서 남은 것,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 온전한 행위를 찾지 못했다
너는 일깨워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직역 "깨어 있어라. 그리고 남아 있으나 죽어 가는 것들을 굳세게 하라. 나는 네 행위가 내 하나님 앞에서 완성된 것을 보지 못했다."
"너는 일깨워." 사데 사람들에게 이 말은 뼈아팠을 것입니다. 사데의 성채는 난공불락이라 여겨졌지만, 두 번이나 함락되었습니다. 주전 546년 페르시아 왕 고레스 때, 그리고 주전 214년 안티오코스 3세 때. 두 번 모두 같은 이유였습니다. 군인들이 절벽을 아무도 올라올 수 없다고 믿고 경계를 서지 않았는데, 적군이 밤에 바위 틈을 타고 올라와 성을 빼앗았습니다. 사데는 ‘깨어 있지 않아서’ 무너진 도시였습니다(아래 ‘더 깊이’ 참고).
그러나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남은 바 죽게 된 것을 굳게 하라." 사데 교회 안에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었습니다. 거의 죽어 가지만 아직 숨이 붙어 있는 것들. 몇 사람의 기도, 남아 있는 말씀 사랑, 희미한 섬김. 주님은 그것을 붙들어 세우라고 하십니다. 이사야 42:3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주님은 꺼져 가는 심지를 버리지 않으십니다.
"내 하나님 앞에 네 행위의 온전한 것을 찾지 못하였노니." 사데 교회는 많은 일을 시작했지만 끝까지 완성한 것이 없었습니다. 겉모양은 갖추었지만 속이 채워지지 않았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충분해 보였을지 모르지만, "내 하나님 앞에"서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기준은 사람의 평판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일깨워그레고레오 — 마 24: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 26:41 "깨어 기도하라". 계 16:15 "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온전한페플레로메나 — ‘가득 채워진, 완성된’. 완료형 수동태.
함께 읽을 말씀
사 42: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엡 5:14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취이시리라
살전 5:6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3어떻게 받고 들었는지 기억하여 지키고 회개하라 — 깨지 않으면 도적 같이 이르리라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지키어 회개하라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하리라
직역 "그러므로 네가 어떻게 받았고 들었는지를 기억하고, 그것을 지키며 회개하라. 만일 네가 깨어 있지 않으면 내가 도둑처럼 올 것이니, 내가 어느 때에 네게 갈지 너는 결코 알지 못할 것이다."
회복의 길은 에베소와 비슷합니다. "네가 어떻게 받았으며 어떻게 들었는지 생각하고." 처음 복음을 받던 때를 기억하라. 그 복음이 얼마나 놀라운 선물이었는지, 얼마나 기쁘게 들었는지. 그리고 "지키어 회개하라." 기억에서 멈추지 말고 지키고 돌이키라.
그리고 경고가 따릅니다.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 같이 이르리니." 도둑은 미리 알리고 오지 않습니다. 사데 성채가 함락되었을 때처럼, 가장 안전하다고 믿는 순간에 옵니다. 예수님도 재림을 도둑에 비유하셨습니다(마 24:43-44). 바울도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살전 5:2) 말했습니다.
그러나 데살로니가전서 5:4은 이어서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깨어 있는 사람에게 주님의 오심은 도둑의 습격이 아니라 기다리던 분의 도착입니다. 도둑 같은 오심은 잠든 사람에게만 해당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받았으며… 들었는지 — ‘받았다’(완료형)는 지금도 소유하고 있는 것, ‘들었다’(부정과거)는 처음 들었던 그 사건. 처음의 그 순간과 지금 가진 것을 함께 붙들라는 것입니다.
도적 같이 — 16:15에서 재림과 관련해 다시 나옵니다. 여기서는 재림과 함께, 회개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역사 속 심판의 방문도 포함한다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24:43-44집 주인이 만일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살전 5:2-4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계 16:15보라 내가 도적 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벧후 3:10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4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명이 있으니 흰 옷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라
그러나 사데에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이 네게 있어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직역 "그러나 사데에는 자기 옷을 더럽히지 않은 몇 이름이 있다. 그들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닐 것이다. 그들은 그럴 자격이 있기 때문이다."
죽은 교회에도 살아 있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자 몇 명." 원문은 ‘몇 이름’입니다. 교회는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지만, 주님은 진짜로 살아 있는 몇 사람의 이름을 하나하나 기억하십니다. 교회 전체가 잠들어 있어도 깨어 있는 한 사람을 주님은 놓치지 않으십니다.
"옷을 더럽히지 아니한." 사데는 양모 염색과 의류 산업으로 유명했습니다. 옷은 그 사람의 삶과 인격을 상징합니다. 이사야 64:6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이들은 사데 도시의 이교 문화와 도덕적 타락에 자기 삶을 물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에게 주시는 약속은 "흰 옷을 입고 나와 함께 다니리니." 당시 신전에 들어가는 예배자는 흰 옷을 입어야 했고, 개선 행진이나 축제 때도 흰 옷을 입었습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나와 함께 다니리니"입니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했듯이(창 5:24), 이들은 그리스도와 나란히 걷습니다. 촛대 사이를 다니시는 주님(2:1)과 함께 걷는 것입니다.
"그들은 합당한 자인 연고라." 이들이 스스로의 공로로 자격을 얻었다는 뜻이 아닙니다. 7:14에서 흰 옷은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한" 것입니다. 은혜로 씻음받고, 그 은혜 안에서 신실하게 살아 낸 사람들을 주님이 합당하다고 인정해 주시는 것입니다.
흰 옷 — 계시록에 자주 나옵니다: 3:5, 18, 4:4, 6:11, 7:9, 13-14, 19:14. 19:8에서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7:14이는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인데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유 1:23혹 어떤 자를 불에서 끌어내어 구원하라 또 혹 어떤 자를 그 육체로 더럽힌 옷이라도 싫어하되 두려움으로 긍휼히 여기라
창 5:24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전 9:8네 의복을 항상 희게 하며 네 머리에 향 기름을 그치지 않게 할지니라
5이기는 자는 흰 옷을 입고,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우지 않고 아버지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직역 "이기는 자는 이처럼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나는 그의 이름을 생명책에서 결코 지우지 않을 것이며, 내 아버지 앞과 그분의 천사들 앞에서 그의 이름을 인정할 것이다."
이기는 자에게 세 가지 약속이 주어집니다. 모두 ‘이름’과 관련 있습니다. 사람들 앞에서 ‘살았다는 이름’만 가졌던 교회에게, 주님은 하늘에서 영원히 남을 이름을 말씀하십니다.
① "흰 옷을 입을 것이요." 4절의 약속이 모든 이기는 자에게 확장됩니다.
②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고대 도시들은 시민 명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범죄를 저지르거나 반역하면 그 이름이 명부에서 지워졌고, 시민권을 잃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황제를 섬기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시의 명부에서 이름이 지워졌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주님은 하늘의 명부, 생명책에서는 결코 지우지 않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원문은 강한 이중 부정입니다. "절대로, 결코 지우지 않겠다." 이것은 지워질 수도 있다는 위협이 아니라, 결코 지워지지 않는다는 확신입니다.
③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예수님이 지상에서 하신 약속 그대로입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마 10:32). 세상 앞에서 예수님의 이름을 부끄러워하지 않은 사람을, 예수님은 하늘 법정에서 "이 사람은 내 사람입니다"라고 부르실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생명책 — 출 32:32-33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 주옵소서", 시 69:28, 단 12:1, 빌 4:3, 계 13:8, 17:8, 20:12, 15, 21:27. 계 13:8 "창세 이후로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
흐리지 — 『개역개정』 "지우지". 옛 글자는 지울 때 문질러 흐리게 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32:32-33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 버리리라
단 12:1그 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
눅 10:20귀신들이 너희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이 하늘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
마 10: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계 21:27오직 어린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6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직역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사데 편지를 시작하신 분은 "일곱 영을 가진 이"였고, 끝은 "성령이… 하시는 말씀"입니다. 죽은 교회를 살리는 것은 프로그램도, 지도자의 열심도 아니라 성령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마른 뼈들에게 처음 한 말도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겔 37:4)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겔 37:4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롬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평판이 아니라 생명
사데 교회는 좋은 이름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이름이 아니라 생명을 보십니다. 사람들의 박수, 교회의 역사, 활동의 숫자는 생명의 증거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숨 쉬는 신앙인가가 중요합니다.
잠들어 있는 교회에도 깨어 있는 몇 사람이 있습니다. 주님은 그 이름들을 기억하십니다. 아직 꺼지지 않은 불씨가 있다면, 오늘 그것을 붙들어 세우십시오. 일곱 영을 가지신 주님은 마른 뼈도 살리시는 분입니다.
3:7–13빌라델비아 교회 — 작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킨 교회, 열린 문
빌라델비아(오늘날 알라셰히르)는 일곱 도시 가운데 가장 젊은 도시였습니다. 주전 2세기 버가모의 왕 앗탈로스 2세가 세웠는데, 형 에우메네스 2세를 향한 우애가 깊어 ‘형제 사랑(필라델푸스)’이라는 별명을 얻었고, 도시 이름이 거기서 나왔습니다. 동쪽 고원으로 가는 길목에 세워져, 헬라 문화를 내륙으로 전하는 ‘열린 문’ 역할을 했습니다.
이 도시는 지진이 잦았습니다. 주후 17년 큰 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진 뒤에도 여진이 오래 계속되어, 많은 사람들이 성 밖 들판에 천막을 치고 살았다고 합니다.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고 힘없는 교회였지만, 서머나와 함께 책망을 한 마디도 받지 않은 교회입니다.
7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 열면 닫을 자 없고 닫으면 열 자 없다
빌라델비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닫으면 열 사람이 없는 그이가 가라사대
직역 빌라델비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거룩하신 분, 참되신 분,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분, 열면 아무도 닫지 못하고 닫으면 아무도 열지 못하는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빌라델비아에 오시는 주님의 칭호는 1장에서 직접 가져온 것이 아니라 새로 소개되는 이름들입니다. "거룩하고 진실하사." 구약에서 ‘거룩한 자’는 하나님의 칭호입니다(사 40:25 "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진실하사’로 번역된 알레디노스는 ‘참된, 진짜의’라는 뜻입니다. 9절에서 볼 "자칭 유대인", 곧 거짓된 자들과 대비됩니다. 회당에서 쫓겨난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진짜 메시아는 나다. 너희가 따르는 분이 참이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이사야 22:15-25의 이야기가 배경입니다. 히스기야 왕 때 왕궁 관리자 셉나는 교만하고 불의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를 쫓아내고 엘리아김을 세우시며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사 22:22). 왕궁 열쇠를 가진 사람은 누가 왕을 만날 수 있는지 결정했습니다. 예수님은 진정한 다윗의 아들, 왕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문의 열쇠를 가진 분입니다.
1:18에서 주님은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지셨다고 하셨습니다. 이제는 "다윗의 열쇠"를 가지셨습니다. 죽음의 문도, 하나님 나라의 문도 그분의 손에 있습니다. 회당은 빌라델비아 성도들을 쫓아내며 "너희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문을 닫았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열쇠는 회당이 아니라 예수님께 있습니다.
열쇠 — 마 16:19에서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천국 열쇠"를 주십니다. 열쇠의 원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며, 교회는 복음 전파로 그 문을 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22:22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계 1:18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요 10:7,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요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8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닫을 자가 없다 — 작은 능력으로 내 말을 지켰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직역 "보라,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니, 아무도 그것을 닫을 수 없다.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네가 작은 힘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고 내 이름을 부인하지 않았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이 열린 문은 두 가지로 읽힙니다. ① 구원과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문. 회당에서 쫓겨난 성도들에게 주님은 하나님께로 가는 문을 활짝 열어 두셨습니다. ② 복음 전파의 기회. 바울은 이 표현을 전도의 기회로 썼습니다. "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렸으나"(고전 16:9), "주 안에서 문이 내게 열렸으되"(고후 2:12). 빌라델비아는 내륙으로 헬라 문화를 전하는 관문 도시였습니다. 이제 그 교회가 복음을 내륙으로 전하는 관문이 됩니다.
"네가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았습니다. 사람도 적고, 돈도 없고, 사회적 영향력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은 그것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 작은 힘으로 무엇을 했는지 칭찬하십니다. "내 말을 지키며 내 이름을 배반치 아니하였도다." 주님이 교회에 요구하시는 것은 큰 능력이 아니라 신실함입니다.
이것은 작은 교회들에게 큰 위로입니다. 주님은 교회의 크기로 평가하지 않으십니다. 서른 명이 모이는 교회도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은 그 앞에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열어 두십니다. 스가랴 4:10 "작은 일의 날을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원어 · 번역 노트
열린 문 — 4:1에서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봅니다. 빌라델비아 성도들에게 열린 문은 결국 하늘 보좌로 이어집니다.
적은 능력 — ‘능력이 조금 있다’로 읽어 긍정적 의미로 보는 해석과, ‘능력이 적다’로 읽어 약함을 인정하는 해석이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큰 힘이 없었음을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6:9내게 광대하고 공효를 이루는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음이니라
골 4:3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슥 4:10작은 일의 날을 멸시하는 자가 누구냐
고후 12:9-10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요 14:23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9사단의 회에서 몇을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 알게 하리라
보라 사단의 회 곧 자칭 유대인이라 하나 그렇지 않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에서 몇을 네게 주어 저희로 와서 네 발 앞에 절하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직역 "보라, 내가 사탄의 회당에 속한 자들, 곧 스스로 유대인이라 하나 유대인이 아니고 거짓말하는 자들 중 몇을 네게 주겠다. 보라, 내가 그들을 오게 하여 네 발 앞에 엎드리게 하고, 내가 너를 사랑한 줄을 알게 하겠다."
서머나처럼 빌라델비아 교회도 지역 회당과 갈등이 있었습니다. 회당은 그리스도인들을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며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놀라운 반전을 약속하십니다.
이사야 60:14은 이스라엘을 향한 약속이었습니다. "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려." 이방 나라들이 이스라엘에게 와서 절하리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이 약속을 뒤집어, 유대인들이 이방인이 대부분인 교회에 와서 절하리라고 하십니다. 누가 참 하나님의 백성인지는 혈통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관계가 결정합니다.
그리고 목적은 복수가 아니라 이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하는 줄을 알게 하리라." 이사야 43:4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쫓겨나고 멸시받은 작은 교회가 하나님의 사랑받는 백성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게 될 것입니다. ‘절하다’는 교회를 경배한다는 뜻이 아니라 굴복하고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몇을 네게 주어"라는 말에는 그들 중 일부가 회심하여 교회에 들어오리라는 소망도 담겨 있다고 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네게 주어디도 — ‘주다’. 회심하여 교회의 일원이 된다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많습니다. 2세기 초 이그나티우스는 빌라델비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유대교식 가르침에 관한 논쟁을 다룹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60:14너를 괴롭게 하던 자의 자손이 몸을 굽혀 네게 나아오며 너를 멸시하던 모든 자가 네 발 아래 엎드려
사 43:4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
롬 11:25-26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빌 2:10-11모든 무릎을 꿇게 하시고
10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니 나도 너를 지켜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라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직역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으니, 나도 너를 지켜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사는 자들을 시험할 시험의 때로부터 보호하겠다."
아름다운 말놀이가 있습니다. "네가…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같은 동사(테레오)입니다. 너는 내 말씀을 지켰고, 나는 너를 지키겠다. 우리가 말씀을 붙들 때, 주님은 우리를 붙드십니다.
"나의 인내의 말씀." 그리스도께서 인내하신 것처럼 인내하라는 말씀, 또는 그리스도의 오심을 인내하며 기다리라는 말씀입니다. 1:9에서 요한도 "예수의…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 이 구절은 해석이 갈리는 대표적인 구절입니다. ① 어떤 이들은 이것을 마지막 대환난이 오기 전에 교회가 들림받는(휴거) 약속으로 봅니다. "그 시간으로부터" 지키신다는 것은 그 시간 자체를 겪지 않게 하신다는 뜻이라고 읽습니다. ② 다른 이들은 환난 ‘속에서’ 지키신다는 약속으로 봅니다. 요한복음 17:15에서 예수님은 같은 표현으로 기도하셨습니다.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서(ἐκ) 보전하시기를(τηρήσῃς)." 노아가 홍수를 피한 것이 아니라 방주 안에서 홍수를 통과한 것처럼, 하나님의 백성은 환난 중에도 영적으로 보호받는다고 읽습니다(7:3 인 맞은 자들, 12:6 광야에서 양육받는 여자).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그 시험의 표적은 "땅에 거하는 자들"입니다. 계시록에서 이 말은 하나님을 거부하고 짐승을 따르는 불신 세상을 가리킵니다(6:10, 8:13, 13:8, 17:8). 하나님의 진노는 그분의 백성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작은 능력으로 말씀을 지킨 성도는 그 무엇이 오든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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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에 거하는 자들 — 계시록에 열 번 정도 나오는 표현으로, 거의 항상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상을 가리킵니다. 13:8 "죽임을 당한 어린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시험페이라스모스 — 2:10에서는 성도를 ‘연단’하는 시험이었지만, 여기서는 불신 세상을 드러내고 심판하는 시험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17:15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벧후 2:9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살전 1:10장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살전 5:9하나님이 우리를 세우심은 노하심에 이르게 하심이 아니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심이라
계 7:3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11내가 속히 임하리니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도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직역 "내가 속히 오겠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붙잡아 아무도 네 면류관을 가져가지 못하게 하라."
"내가 속히 임하리니." 다른 교회들에게 ‘임하리라’는 심판의 경고였지만(2:5, 16, 3:3), 빌라델비아에게는 위로의 약속입니다. 같은 오심이 잠든 자에게는 도둑이고, 깨어 있는 자에게는 기다리던 신랑입니다.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빌라델비아 교회는 이미 면류관을 가진 것처럼 말씀하십니다. 이제 남은 것은 결승선까지 그것을 놓치지 않는 것입니다. 마라톤 선수가 마지막 몇백 미터에서 넘어지지 않도록, 경기 끝까지 규칙을 지켜 실격당하지 않도록. 고린도전서 9:24-25 "달음질하기를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런데 누가 면류관을 빼앗을 수 있습니까? 주님이 빼앗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 교사, 세상의 유혹, 낙심이 우리에게서 그것을 가져가려 합니다. 그러므로 굳게 잡아야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2:25다만 너희에게 있는 것을 내가 올 때까지 굳게 잡으라
고전 9:24-25달음질하기를 상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골 2:18누구든지 일부러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딤후 4:8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12이기는 자는 하나님 성전의 기둥이 되고, 하나님의 이름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기록하리라
이기는 자는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내가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그이 위에 기록하리라
직역 "이기는 자는 내가 내 하나님의 성전에 기둥으로 삼을 것이니, 그는 다시는 결코 밖으로 나가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 위에 내 하나님의 이름과,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 곧 내 하나님의 성의 이름과, 나의 새 이름을 쓸 것이다."
빌라델비아 사람들은 이 약속을 들으며 눈시울을 붉혔을 것입니다. 지진이 잦은 도시에서 가장 먼저 무너지는 것이 건물이었고, 지진이 지나간 뒤 폐허에 홀로 서 있는 것이 신전의 기둥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여진이 무서워 성 안에 살지 못하고 들판으로 ‘나가’ 천막을 치고 살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주님은 약속하십니다. "내 하나님 성전에 기둥이 되게 하리니." 흔들리는 땅에서 흔들리지 않는 자리. 회당에서 쫓겨난 작은 무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떠받치는 기둥이 됩니다. 그리고 "그가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 더 이상 쫓겨나지도, 피난을 떠나지도 않습니다. 영원히 하나님의 집에 삽니다. 시편 23:6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그리고 그 기둥 위에 세 이름이 새겨집니다. 고대에는 도시에 큰 공헌을 한 사람의 이름을 신전 기둥에 새겨 기념했습니다. ① 하나님의 이름 —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시(14:1, 22:4). ② 새 예루살렘의 이름 — 그 성의 영원한 시민권. 빌라델비아는 지진 후 황제의 지원을 받아 도시 이름을 ‘네오카이사레아(새 황제의 도시)’로, 나중에는 ‘플라비아’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세상의 도시는 이름을 바꾸며 권력에 기대지만, 성도는 결코 무너지지 않는 하나님의 성의 이름을 받습니다. ③ 나의 새 이름 — 그리스도와의 영원한 연합.
원어 · 번역 노트
기둥스튈로스 — 갈 2:9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 솔로몬 성전 앞의 두 기둥 야긴(‘그가 세우리라’)과 보아스(‘그에게 능력이 있다’, 왕상 7:21).
새 예루살렘 — 21:2, 10에서 자세히 그려집니다. "하늘에서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니". 21:22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 결국 성도가 기둥이 될 성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왕상 7:21이 두 기둥을 전 낭실 앞에 세우되 우편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야긴이라 하고 좌편 기둥을 세우고 그 이름을 보아스라 하였으며
시 23:6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하리로다
계 21:2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계 22: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갈 4: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13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직역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빌라델비아 편지는 책망 없이 칭찬과 약속만으로 끝납니다. 이 말씀을 모든 교회가 함께 들어야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작은 교회들에게는 희망을, 큰 교회들에게는 교회의 진짜 힘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주님이 보시는 것은 힘의 크기가 아니라 말씀을 지키는 신실함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2:7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작은 능력, 열린 문
빌라델비아 교회는 작았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그 작음을 꾸짖지 않으셨습니다. 그 작은 힘으로 주님의 말씀을 지키고 주님의 이름을 부인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셨고, 그 앞에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열어 두셨습니다.
작은 교회, 작은 섬김, 작은 믿음이라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열쇠는 주님 손에 있습니다. 주님이 여시면 아무도 닫지 못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크게 되는 것이 아니라, 받은 말씀을 지키며 주님 오실 때까지 면류관을 굳게 잡는 것입니다.
3:14–22라오디게아 교회 — 미지근하고 스스로 부자라 하는 교회, 문 밖의 주님
라오디게아는 빌라델비아에서 동남쪽으로 약 70km, 리쿠스 골짜기에 자리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세 가지로 유명했습니다. ① 금융 — 큰 은행들이 있었습니다. ② 직물 — 이 지역에서 나는 부드럽고 윤기 나는 검은 양털로 만든 옷이 유명했습니다. ③ 의학 — 유명한 의학교가 있었고, ‘프리기아 가루’라는 안약이 특산품이었습니다.
주후 60년 큰 지진으로 도시가 무너졌을 때, 라오디게아는 로마의 원조를 거절하고 자기 재산으로 도시를 다시 세웠습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는 이 일을 특별히 기록했습니다. 그만큼 자부심이 대단한 도시였습니다. 골로새와 히에라볼리가 가까이 있었고, 바울의 동역자 에바브라가 이 지역 교회들을 세웠습니다(골 4:12-16).
14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말씀하신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직역 라오디게아에 있는 교회의 천사에게 이렇게 써라. "아멘이신 분, 신실하고 참된 증인이신 분, 하나님의 창조의 근원이신 분이 이렇게 말씀하신다."
마지막 편지에서 주님은 세 칭호로 오십니다. ① "아멘이시요." 사람 이름처럼 ‘아멘’이라 불리십니다. 이사야 65:16 "땅에서 자기를 위하여 축복하는 자는 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축복할 것이요"에서 ‘진리의 하나님’은 히브리어로 ‘아멘의 하나님’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이 "예"가 되는 분입니다(고후 1:20). 그분의 말씀은 확실합니다.
②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1:5의 칭호입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자기 자신에 대해 거짓 증언을 하고 있었습니다(17절 "나는 부자라"). 주님은 참된 증인으로서 그들의 실상을 정직하게 말씀하시려 합니다. 듣기 좋은 말이 아니라 진실을 말씀하십니다.
③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 이 말은 예수님이 처음 창조된 존재라는 뜻이 아닙니다. ‘근본(아르케)’은 ‘시작, 근원, 다스리는 자’라는 뜻입니다. 모든 창조가 그분에게서 시작되었고 그분이 다스리십니다. 바로 이웃 도시 골로새에 바울이 보낸 편지가 같은 말을 합니다.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그가 근본(아르케)이요"(골 1:16, 18). 라오디게아 교회도 그 편지를 읽었을 것입니다(골 4:16). 스스로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교회에게, 주님은 모든 것의 근원이 누구신지 상기시키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멘 —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말씀을 시작할 때 "진실로(아멘) 너희에게 이르노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멘을 말씀하시는 분이자, 아멘 자체이십니다.
근본아르케 — 21:6, 22:13 "시작과 끝"의 ‘시작’과 같은 말. 요 1:1-3 "태초에…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함께 읽을 말씀
사 65:16진리의 하나님을 향하여 축복할 것이요
고후 1:20하나님의 약속은 얼마든지 그리스도 안에서 예가 되니 그런즉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아멘 하여
골 1:15-18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골 4: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15네가 차지도 덥지도 아니하도다, 차든지 덥든지 하기를 원한다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직역 "나는 네 행위를 안다. 너는 차갑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 나는 네가 차갑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한다."
주님은 칭찬 한 마디 없이 진단하십니다.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이 말씀은 흔히 ‘신앙이 뜨거우냐 차가우냐’로 이해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읽으면 이상한 점이 있습니다. 주님이 "차든지"를 원하신다고요? 차라리 하나님을 반대하는 것이 낫다는 말일까요?
라오디게아의 지리를 알면 이 말씀이 훨씬 선명해집니다. 라오디게아에는 자체 수원이 없어서 남쪽 약 10km 떨어진 곳에서 돌로 만든 수로로 물을 끌어왔습니다. 그 물은 도착할 때쯤 미지근해지고 석회질이 많아 맛이 역했습니다. 지금도 그 수로관 안쪽에는 석회가 두껍게 쌓여 있습니다. 반면 북쪽으로 약 10km 떨어진 히에라볼리에는 유명한 온천이 있었습니다. 뜨거운 물은 병을 고치는 약이었습니다. 동쪽으로 약 16km 떨어진 골로새에는 차고 맑은 샘물이 흘렀습니다. 찬물은 목마른 사람을 시원하게 했습니다.
그러니 ‘뜨거움’과 ‘차가움’은 둘 다 좋은 것입니다. 뜨거운 물은 치료하고, 찬물은 상쾌하게 합니다. 둘 다 쓸모가 있습니다. 그러나 미지근한 물은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상처 입은 사람을 치료하지도, 지친 사람을 시원하게 하지도 못하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이 원하시는 것은 쓸모 있는 교회, 세상에 실제로 무언가를 주는 교회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차지도프쉬크로스 — 마 10:42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의 ‘냉수’와 같은 뿌리.
라오디게아 수로 — 지금도 유적지에 석회가 두껍게 낀 돌 수도관이 남아 있습니다. 히에라볼리(오늘날 파묵칼레)의 하얀 석회 계단 온천은 지금도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5:13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롬 12: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마 10:42또 누구든지 제자의 이름으로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16미지근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직역 "네가 이처럼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차갑지도 않으니, 나는 너를 내 입에서 토해 내려 한다."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매우 강하고 생생한 표현입니다. 라오디게아 사람들은 이 말을 듣자마자 자기 도시의 수돗물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수로로 끌어온 미지근하고 석회 섞인 물을 마시면 속이 메스꺼워 토하고 싶었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너희 교회가 바로 그 물 같다."
이 말씀은 듣기 불편합니다. 그러나 아직 토해 내신 것은 아닙니다. 원문은 ‘토해 내려 한다, 토해 낼 참이다’입니다. 아직 시간이 있습니다. 그래서 18-20절에서 주님은 길게 권면하시고, 문 밖에서 두드리십니다. 가장 심하게 책망하신 교회에게 가장 따뜻한 초대를 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토하여 내치리라 — 원문 ‘멜로 세 에메사이’, ‘내가 너를 토하려 한다’. 멜로는 ‘~하려 하다, 막 ~하려는 참이다’. 아직 회개할 여지가 있음을 보여 줍니다.
미지근하여클리아로스 — 성경 전체에서 이곳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레 18:28너희도 땅을 더럽히면 땅이 너희 있기 전 거민을 토함 같이 너희를 토할까 하노라
렘 48:11모압은 예로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그 마음이 술의 찌끼 같이 가라앉았고
습 1:12마음 속에 스스로 이르기를 여호와께서는 복도 내리지 아니하시며 화도 내리지 아니하시리라 하는 자를 벌하리니
17나는 부자라 부족함이 없다 하나,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직역 "너는 ‘나는 부자다. 부유해졌다.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지만, 네가 비참하고 불쌍하고 가난하고 눈멀고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진짜 문제는 미지근함보다 더 깊은 곳에 있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지진 후에 로마의 도움도 거절할 만큼 자부심이 강했던 도시처럼, 교회도 "우리는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영적으로도 그렇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우리 교회는 부족한 게 없어. 재정도 넉넉하고, 건물도 좋고, 사람들도 점잖아." 호세아 12:8 "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그러나 참된 증인이신 주님의 진단은 정반대입니다. 다섯 가지 단어가 줄지어 나옵니다. 곤고하고, 가련하고, 가난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다. 그리고 그 마지막 세 가지는 정확히 라오디게아의 자랑을 뒤집습니다. 금융의 도시가 영적으로는 가난했고, 안약의 도시가 영적으로는 눈멀었고, 직물의 도시가 영적으로는 벌거벗었습니다.
가장 비극적인 말은 이것입니다. "알지 못하도다." 자기가 가난한 줄 아는 가난한 사람은 도움을 구합니다. 그러나 자기가 부자인 줄 아는 가난한 사람은 도움을 거절합니다. 예수님은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마 5:3)라고 하셨습니다. 서머나 교회는 가난했으나 부자였고(2:9),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자라 했으나 가난했습니다. 영적인 자기만족은 교회를 가장 위험하게 만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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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고한탈라이포로스 — 롬 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와 같은 단어. 바울은 자기 비참함을 알았기에 구원을 구했습니다.
부요하여 — 원문 ‘페플루테카’, 완료형 ‘부자가 되었다’. 스스로 이룬 부라는 자부심이 담겨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호 12:8에브라임이 말하기를 나는 실로 부자라 내가 재물을 얻었는데
마 5:3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눅 12:19-21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고전 4:8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부요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계 2:9내가 네 환난과 궁핍을 아노니 실상은 네가 부요한 자니라
18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사서 부요하고 입고 보게 하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직역 "내가 너에게 권한다. 내게서 불로 정련한 금을 사서 부유하게 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네 벌거벗은 수치가 드러나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네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은 정죄로 끝내지 않으시고 처방을 주십니다. 그것도 라오디게아 사람들이 가장 잘 아는 상거래의 언어로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명령하지 않고 권하십니다. 그리고 "내게서… 사서." 라오디게아 시장에서가 아니라 주님께 와서 사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이 무엇으로 삽니까? 이사야 55:1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은혜의 시장에서는 돈 없이 삽니다. 자기가 가난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오는 것이 값입니다.
세 가지 처방이 세 가지 병에 꼭 맞습니다. ① 가난 → "불로 연단한 금." 은행의 금이 아니라 시련을 통해 순수해진 믿음, 참된 영적 부요입니다(벧전 1:7). ② 벌거벗음 → "흰 옷." 라오디게아의 유명한 검은 양털 옷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입혀 주시는 의의 흰 옷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벌거벗김은 큰 수치였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은 뒤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했을 때 하나님이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듯이(창 3:21),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수치를 덮으십니다. ③ 눈멂 →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의학교에서 만든 프리기아 안약이 아니라, 자기 실상을 보게 하는 영적 분별력입니다. 성령께서 눈을 열어 주셔야 자기가 가난하고 벌거벗었음을 봅니다(엡 1: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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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약콜뤼리온 — 가루를 반죽해 만든 작은 덩이 형태의 안약. 라오디게아 의학교의 의사들이 만든 ‘프리기아 가루’ 안약이 로마 세계에 널리 알려져 있었습니다.
연단한페퓌로메논 — ‘불로 달군, 정련한’. 1:15 "풀무에 단련한"과 같은 동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5:1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벧전 1: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사 61:10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엡 1:17-18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요 9:39-41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 되게 하려 함이라
19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니, 열심을 내어 회개하라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직역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들을 꾸짖고 훈육한다. 그러므로 열심을 내고 회개하라."
여기서 주님의 마음이 드러납니다.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지금까지의 모든 엄한 말씀, 토하여 내치겠다는 말씀, 비참하고 가련하다는 말씀은 모두 사랑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 사랑해서 하는 말입니다. 잠언 3:12 "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원문의 ‘사랑하다’는 필레오로, 친구나 가족 사이의 따뜻한 애정을 뜻합니다. 가장 심한 책망을 받은 교회에게 주님은 가장 다정한 사랑의 단어를 쓰십니다. 부모는 남의 아이를 꾸짖지 않습니다. 내 아이이기 때문에 꾸짖습니다. 히브리서 12:6-8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참아들이 아니니라."
그리고 처방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열심을 내라(젤류에)’는 ‘뜨거워져라, 끓어오르라’는 뜻으로, 15절의 ‘뜨거운(제스토스)’과 소리와 뜻이 닮았습니다. 미지근한 교회에게 다시 뜨거워지라고 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징계하노니파이듀오 — ‘아이(파이스)를 가르쳐 기르다’. 벌주는 것이 아니라 성장시키는 훈육입니다.
잠 3:11-12대저 여호와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기를 마치 아비가 그 기뻐하는 아들을 징계함 같이 하시느니라
히 12:6, 11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들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고전 11:32우리가 판단을 받는 것은 주께 징계를 받는 것이니 이는 우리로 세상과 함께 정죄를 받지 않게 하려 하심이라
20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니 누구든지 문을 열면 들어가 함께 먹으리라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직역 "보라, 내가 문 앞에 서서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 들어가 그와 함께 저녁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성경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흔히 전도할 때 믿지 않는 사람에게 "예수님이 당신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라고 이 구절을 씁니다. 그렇게 적용해도 좋지만, 원래 이 말씀은 교회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그래서 더 충격적입니다.
"내가 문 밖에 서서." 주님이 교회 밖에 서 계십니다. 1장에서 촛대 사이, 교회 한가운데 서 계시던 주님이, 라오디게아에서는 문밖으로 밀려나 계십니다. "우리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하는 교회에는 주님이 들어설 자리도 없었습니다. 예배도 하고, 찬송도 하고, 헌금도 하는데, 정작 교회의 주인은 문밖에 계신 교회. 이것이 라오디게아의 진짜 비극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떠나지 않으십니다. "두드리노니." 현재형, 지금도 계속 두드리고 계십니다. 아가서 5:2 "나의 사랑하는 자의 소리가 들리는구나 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문을 열어 다고." 신랑이 신부의 문을 두드리듯, 주님은 미지근한 교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토해 내겠다고 하신 그 교회의 문을.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교회 전체가 문을 열지 않아도, 한 사람이라도 열면 주님은 들어가십니다. 그리고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먹다(데이프네오)’는 하루 일을 마치고 가족과 친구가 오래 함께하는 저녁 식사입니다. 중동에서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가장 깊은 우정과 교제를 뜻했습니다. 주님은 손님으로 오셔서 우리 식탁에 앉으시지만, 결국 우리를 당신의 잔치에 초대하십니다. 엠마오의 두 제자처럼(눅 24:29-31), 함께 떡을 뗄 때 우리 눈이 열립니다. 그리고 이 식사는 19:9의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두드리노니 — 문밖의 그리스도를 그린 윌리엄 홀먼 헌트의 그림 ‘세상의 빛’(1853)은 바깥쪽에 손잡이가 없는 문으로 유명합니다. 문은 안에서만 열 수 있다는 뜻입니다.
먹고데이프네오 — 주의 만찬(고전 11:20 ‘퀴리아콘 데이프논’)의 ‘만찬’과 같은 뿌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아 5:2문을 두드려 이르기를 나의 누이, 나의 사랑, 나의 비둘기, 나의 완전한 자야 문을 열어 다고
눅 12:36-37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하리라
요 14:23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눅 24:29-31저희와 함께 음식 잡수실 때에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떼어 저희에게 주시니 저희 눈이 밝아져
계 19:9어린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21이기는 자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리니,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앉은 것 같이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직역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나와 함께 내 보좌에 앉게 해 주겠다. 내가 이기고 내 아버지와 함께 그분의 보좌에 앉은 것처럼."
일곱 편지의 마지막 약속이자 가장 높은 약속입니다. 그것도 가장 심하게 책망받은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어집니다. 문밖에서 두드리시던 주님은, 문을 여는 사람을 결국 자신의 보좌로 데려가십니다. 우리가 주님을 식탁에 초대하면, 주님은 우리를 보좌에 초대하십니다.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의 승리가 우리 승리의 근거이자 모범입니다. 그분은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이기셨습니다. 5:5-6에서 "유대 지파의 사자… 가 이기었으니"라고 했을 때 요한이 본 것은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이었습니다. 이기는 자도 같은 길로 이깁니다. 자기를 높여서가 아니라 낮추어서, 세상과 타협해서가 아니라 끝까지 신실함으로.
그리고 이 약속은 다음 장으로 이어지는 다리입니다. 4장에서 요한은 하늘에 열린 문을 통해 보좌를 봅니다. 일곱 편지가 ‘보좌’로 끝나고, 4장이 ‘보좌’로 시작합니다. 땅의 교회들이 흔들릴 때, 하늘의 보좌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보좌에 이기는 자들이 함께 앉게 될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보좌트로노스 — 계시록에 47번 나오는 핵심 단어. 4-5장은 ‘보좌 장’이라 할 만큼 보좌 중심입니다.
함께 앉게 — 엡 2:6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이미 시작되었고, 장차 완성될 약속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2: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마 19:28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좇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요 16:33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계 5:5-6유대 지파의 사자 다윗의 뿌리가 이기었으니… 일찍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양이 섰는데
계 22:5저희가 세세토록 왕노릇 하리로다
22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직역 "귀 있는 자는 성령께서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어라."
일곱 번째, 마지막 부름입니다. 일곱 교회에게 일곱 번. 완전한 부름입니다. 이제 일곱 편지가 끝났습니다. 에베소에서 라오디게아까지, 주님은 각 교회의 형편을 아시고, 칭찬하시고, 책망하시고, 권면하시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일곱 편지는 1세기 교회에 보낸 편지이지만, 동시에 모든 시대 모든 교회를 향한 거울입니다. 그리고 모든 교회 안의 한 사람 한 사람을 향한 말씀입니다. 처음 사랑을 잃은 사람, 고난 속에 있는 사람, 타협의 유혹 앞에 선 사람, 거짓에 관대해진 사람, 잠든 사람, 작은 힘으로 버티는 사람, 미지근해진 사람. 성령께서 오늘 나에게 하시는 말씀을 듣는 사람이 복이 있습니다(1:3).
함께 읽을 말씀
계 1:3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계 22:17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문 밖의 주님을 다시 모시십시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족한 것이 없다고 했지만, 정작 가장 필요한 분이 문밖에 계셨습니다. 주님 없이도 잘 돌아가는 교회, 주님 없이도 괜찮은 신앙생활. 이것이 미지근함의 정체입니다.
그러나 가장 심하게 책망하신 주님이 가장 따뜻하게 두드리십니다. 그분은 사랑하기에 책망하시고, 떠나지 않고 두드리십니다. 오늘 그 음성을 듣는다면, 문을 여십시오. 그분은 들어오셔서 함께 식탁에 앉으시고, 마침내 우리를 그분의 보좌로 데려가실 것입니다.
Seven Churches · 일곱 교회
일곱 교회 한눈에 보기
2–3장 일곱 편지를 한 표에 모았습니다
교회
주님의 칭호
칭찬
책망
이기는 자에게
에베소
일곱 별, 촛대 사이
수고, 인내, 분별
처음 사랑 버림
생명나무
서머나
처음과 나중, 죽었다 사신 이
환난 속 부요
—
둘째 사망 면함
버가모
좌우에 날선 검
믿음 지킴
발람·니골라 당 용납
만나, 흰 돌, 새 이름
두아디라
불꽃 눈, 빛난 주석 발
사랑, 섬김, 성장
이세벨 용납
만국의 권세, 새벽 별
사데
일곱 영과 일곱 별
(남은 몇 사람)
이름만 살고 죽음
흰 옷, 생명책
빌라델비아
다윗의 열쇠
작은 능력으로 말씀 지킴
—
성전 기둥, 세 이름
라오디게아
아멘, 참된 증인
—
미지근함, 자기만족
보좌에 함께 앉음
책망 없는 교회는 서머나와 빌라델비아, 둘 다 가난하고 박해받던 교회였습니다. 칭찬 없는 교회는 사데와 라오디게아, 둘 다 세상과 아무 마찰 없이 편안하던 교회였습니다. 교회의 건강은 편안함이 아니라 신실함으로 잽니다.
Three Waters · 세 도시의 물
15–16절, 세 도시의 물
리쿠스 골짜기의 세 도시는 서로 가까웠고, 성도들은 서로의 물을 잘 알았습니다
도시
물
쓸모
라오디게아에서
히에라볼리 (오늘날 파묵칼레)
뜨거운 온천
몸을 치료함
북쪽 약 10km
골로새
차고 맑은 샘물
목마름을 풀어 줌
동쪽 약 16km
라오디게아
수로로 끌어온 미지근한 석회수
마시면 메스꺼움
남쪽 약 10km에서 끌어옴
뜨거움도 차가움도 각자의 쓸모가 있습니다. 문제는 아무 쓸모없는 미지근함입니다. 우리 교회는 세상에 치료가 되고 있습니까, 시원한 물 한 그릇이 되고 있습니까?
Glossary · 단어 사전
3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살았다 하는 이름1절
평판, 명성. 실제와 다른 겉모습.
일깨워2절
잠에서 깨어 정신 차려라. 깨어 있으라.
도적 같이3절
예고 없이 갑자기. 깨어 있지 않은 자에게 오는 심판.
흰 옷4–5, 18절
순결과 승리와 그리스도의 의를 상징하는 옷.
생명책生命冊 · 5절
구원받은 자의 이름이 기록된 하나님의 책.
흐리다5절
여기서는 ‘지우다’. 『개역개정』 "지우지".
시인하다是認 · 5절
공개적으로 인정하다.
다윗의 열쇠7절
하나님 나라의 문을 여닫는 권세(사 22:22).
열린 문8절
구원의 문이자 복음 전파의 기회.
적은 능력8절
작은 힘. 수와 영향력이 적음.
시험의 때10절
온 세상, 특히 하나님을 거부하는 자들에게 임할 시련과 심판.
기둥12절
하나님 성전의 흔들리지 않는 기둥. 영원한 자리.
아멘14절
진실로, 확실히. 그리스도의 칭호.
창조의 근본14절
창조의 시작이자 근원, 다스리는 분.
미지근하다微溫 · 16절
따뜻하지도 차지도 않다. 쓸모없음.
곤고하다困苦 · 17절
몹시 비참하고 고달프다.
안약眼藥 · 18절
눈에 바르는 약. 라오디게아의 특산물. 영적 분별력.
징계懲戒 · 19절
사랑하는 자녀를 바로잡아 기르는 훈육.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사람들이 보는 나의 신앙과 하나님이 보시는 나의 신앙 사이에 차이가 있습니까? 지금 ‘굳게 해야 할 남은 것’은 무엇입니까? (1-2절)
나는 지금 깨어 있습니까? 사데처럼 "우리는 안전하다"고 느끼는 영역이 있다면 어디입니까? (2-3절)
"적은 능력을 가지고도 내 말을 지키며." 작은 교회, 작은 섬김이라고 낙심했던 적이 있습니까? 이 말씀은 어떤 위로를 줍니까? (8절)
우리 교회는 세상에 ‘뜨거운 물(치료)’이나 ‘찬물(생기)’이 되고 있습니까, 아니면 미지근한 물입니까? (15-16절)
"나는 부자라 부족한 것이 없다." 내가 스스로 충분하다고 여기며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17절)
주님이 지금 나의 삶, 우리 교회의 문밖에서 두드리고 계신다면, 오늘 문을 연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하는 것일까요? (20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