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0절까지 — 하늘에서 열린 계시, 환난 속의 교회에 보낸 인사, 그리고 일곱 금 촛대 사이를 거니시는 살아 계신 주님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REVELATION 1:17–18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장 들어가며
요한계시록은 무서운 책이 아니라, 박해받는 교회에게 보낸 위로의 편지로 시작합니다
요한계시록이라고 하면 많은 성도들이 먼저 겁을 냅니다. 짐승, 용, 666, 재앙, 아마겟돈… 어렵고 무섭고, 잘못 읽으면 이단에 빠질 것 같은 책. 그래서 아예 펴지 않거나, 반대로 신문 기사와 맞춰 보며 날짜를 계산하는 데 빠지기도 합니다. 그런데 1장을 천천히 읽어 보면 이 책이 어떤 마음으로 쓰였는지가 분명히 보입니다. 이 책은 "복이 있나니"(3절)로 시작하고, "두려워 말라"(17절)로 1장을 맺습니다. 겁주려는 책이 아니라, 겁에 질린 교회를 일으켜 세우려는 책입니다.
1세기 말, 소아시아(오늘날 튀르키예 서부)의 작은 교회들은 힘든 시간을 지나고 있었습니다. 황제를 ‘주’와 ‘신’으로 섬기라는 압력이 커졌고, 신앙을 지키면 장사 길이 막히고, 감옥에 가고, 목숨을 잃기도 했습니다. 사도 요한도 복음 때문에 밧모라는 작은 섬에 갇혀 있었습니다(9절). 바로 그때 부활하신 주님께서 요한에게 나타나셨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세상의 주인처럼 보이던 그 시대에, 주님은 "참 주인이 누구인지" 보여 주셨습니다.
1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① 이 책이 무엇인지 —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계시이며, 읽고 듣고 지키는 자에게 복이 있다(1-3절). ② 일곱 교회에 보내는 인사와 찬송 — 삼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 그리고 다시 오실 주님(4-8절). ③ 밧모섬에서 받은 부르심 — 주의 날 성령에 감동하여(9-11절). ④ 일곱 금 촛대 사이에 서신 인자의 모습(12-16절). ⑤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산 자라(17-20절). 그리고 1장에서 그려진 그리스도의 모습은 2-3장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마다 하나씩 다시 등장합니다.
책의 제목
1:1 ‘계시’
헬라어 아포칼륍시스, ‘덮개를 벗겨 드러냄’. 무언가를 감추는 책이 아니라 드러내는 책입니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신지를 드러냅니다.
받는 사람
일곱 교회
에베소부터 라오디게아까지, 실제로 있었던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동시에 ‘일곱’은 모든 시대의 온 교회를 대표합니다.
1장의 중심
13–18절
촛대(교회) 사이에 서서 일곱 별(교회의 사자)을 오른손에 붙드신 그리스도. 교회는 혼자 버려지지 않았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세 가지 글이 합쳐진 책
1장의 근거
읽을 때 기억할 것
묵시 — 하늘의 장막을 걷고 보여 주는 환상
"계시라"(1절), "내가 보니"(12절)
그림 언어입니다. 상징은 문자 그대로가 아니라 그것이 가리키는 실체를 읽습니다.
예언 — 하나님의 말씀을 지금 이 사람들에게 전함
"이 예언의 말씀"(3절)
미래 달력이 아니라, 지금 회개하고 신실하라는 부르심입니다.
편지 — 실제 교회에 보낸 서신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4절)
처음 받은 1세기 성도들에게 무슨 뜻이었을지를 먼저 묻습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계시"
啓示, ‘열어서 보여 줌’. 원문 아포칼륍시스. 영어 Apocalypse의 어원. ‘종말·파멸’이라는 뜻이 아님.
1절 "지시하신 것"
指示, 원문 에세마넨 ‘표징(그림)으로 알게 하다’. 『개역개정』은 "알게 하신 것". 이 책이 상징으로 말한다는 첫 신호.
4절 "일곱 영"
천사 일곱이 아니라 성령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으로 보는 것이 일반적. 노트 참고.
5절 "해방하시고"
사본에 따라 ‘풀어 주시고(뤼산티)’와 ‘씻으시고(루산티)’가 있음. 『개역한글』은 앞쪽을 따름.
7절 "각인", "애곡하리니"
各人, 각 사람. 哀哭, 가슴을 치며 슬피 울다. 『개역개정』 "각 사람의 눈이", "그로 말미암아 애곡하리니".
13절 "촛대"
원문 뤼크니아는 기름 등잔을 올려 두는 ‘등잔대’. 양초가 아님.
15절 "주석"
빛나는 구리 합금(청동·놋쇠 계열)을 가리킴. 원문 칼콜리바논은 성경에서 계시록에만 나오는 낱말.
18절 "음부"
陰府, 죽은 자들의 세계. 원문 하데스. 지옥 형벌의 장소(게헨나)와는 구별되는 말.
20절 "사자"
使者, ‘심부름하는 이’. 원문 앙겔로스(천사·전령 둘 다 가능). 노트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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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3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요한계시록의 첫 세 절은 책의 ‘표지’와 같습니다. 이 책이 누구에게서 와서, 어떤 길을 거쳐, 누구에게 전해지는지를 말하고, 이 책을 대하는 바른 태도까지 알려 줍니다. 처음 세 절만 바르게 붙잡아도 계시록을 잘못 읽는 많은 길이 막힙니다.
1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께 주신 계시를 천사를 통해 종 요한에게 알리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직역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 하나님께서 반드시 속히 일어나야 할 일들을 그분의 종들에게 보여 주시려고 그것을 그(예수)에게 주셨고, 그는 자기 천사를 보내어 자기 종 요한에게 표징으로 알게 하셨다.
성경의 마지막 책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 한 줄이 책 전체의 열쇠입니다. ‘계시’로 번역된 헬라어 아포칼륍시스는 ‘덮여 있던 것을 벗겨 내다’라는 뜻입니다. 무대의 막이 올라가는 장면을 떠올리시면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감추는 책이 아니라 드러내는 책입니다.
그러면 무엇을 드러냅니까? 원문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두 가지로 다 읽힙니다. 예수께서 주시는 계시이면서, 동시에 예수 그리스도를 드러내는 계시입니다. 그래서 계시록을 다 읽고 나서 짐승과 숫자는 기억나는데 예수님이 흐릿하다면, 그것은 이 책을 잘못 읽은 것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처음부터 끝까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어서 계시가 전해지는 길이 나옵니다. 하나님 → 예수 그리스도 → 천사 → 요한 → 종들(교회). 마치 왕의 칙서가 여러 손을 거쳐 백성에게 전달되듯, 이 말씀은 하나님 아버지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요한이 지어낸 상상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지는 "그 종들", 곧 평범한 성도들입니다. 계시록은 몇몇 특별한 사람만 해독하는 암호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종 모두에게 주신 책입니다.
"반드시 속히 될 일." 다니엘 2:28에서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다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그 표현을 가져오면서 ‘후일에’를 ‘속히’로 바꿉니다. 다니엘에게 먼 미래였던 일이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시하신"이라는 말은 ‘표징으로, 그림으로 알려 주다’라는 뜻입니다. 이 책이 상징의 언어로 말할 것이라는 첫 번째 신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계시 啓示 / 아포칼륍시스 — ‘아포(떼어 내다)+칼륍토(덮다)’. 영어 Apocalypse의 어원입니다. 오늘날 ‘아포칼립스’가 ‘대재앙’이라는 뜻으로 쓰이지만, 원래 뜻은 ‘드러냄’입니다. 갈 1:12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롬 16:25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나타난바 된 비밀의 계시"에 쓰였습니다.
지시하신에세마넨(세마이노) — ‘표(세메이온, 표적)로 알리다’. 요 12:33 "자기가 어떠한 죽음으로 죽을 것을 보이심이러라", 요 21:19에도 쓰여, 그림 같은 말로 넌지시 알리는 것을 가리킵니다. 『개역개정』은 "알게 하신 것이라".
속히엔 타케이 — ‘곧, 신속하게’. 22:6, 7, 12, 20에서 책의 끝을 다시 감쌉니다. 시간표를 계산하라는 말이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긴박함의 언어입니다.
반드시데이 — ‘반드시 ~해야 한다’.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꼭 이루어질 일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단 2:28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그가 느부갓네살 왕에게 후일에 될 일을 알게 하셨나이다
암 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리라
계 22:6주 곧 선지자들의 영의 하나님이 그의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될 일을 보이시려고 그의 천사를 보내셨도다
요 17:8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갈 1:12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2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가 본 것을 다 증거했다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직역 그(요한)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언, 곧 자기가 본 모든 것을 증언하였다.
요한은 자기 역할을 한마디로 정리합니다. 증인입니다. 그는 새로운 교리를 만든 사람이 아니라, 본 것을 본 대로 전한 사람입니다. 법정의 증인이 자기 의견이 아니라 목격한 사실을 말하듯, 요한은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했습니다. 더하지도 빼지도 않았습니다(22:18-19).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이 두 표현은 계시록에서 짝을 이루어 계속 나옵니다(1:9, 6:9, 20:4). 성도들이 고난받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요한이 밧모섬에 있는 이유도 이것이고(9절), 제단 아래 순교자들이 죽임을 당한 이유도 이것입니다(6:9). 말씀과 증거를 붙든다는 것은 세상과 다른 쪽에 서는 일이었습니다.
이 말투는 요한복음과 요한일서를 떠올리게 합니다. "이 일들을 증거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요 21:24),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우리가 보고 들은 바를 너희에게도 전함은"(요일 1:1, 3). 예수님의 품에 기대었던 제자가, 이제 영광 중의 예수님을 보고 증언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증거마르튀리아 — ‘증언’. 같은 뿌리의 마르튀스(증인)는 계시록 시대를 지나며 ‘목숨으로 증언한 사람’, 곧 영어 martyr(순교자)라는 뜻이 되었습니다. 2:13 "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가 그 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 원문 소유격은 ‘예수께서 하신 증언’(주어적)과 ‘예수에 대한 증언’(목적어적) 둘 다 가능합니다. 19:10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와 함께 보면, 예수께서 친히 증언하신 진리를 요한이 전한다는 뜻이 앞섭니다.
요한 — 초대교회 전통(순교자 유스티누스, 이레네우스)은 이 요한을 사도 요한으로 봅니다. 그는 자기를 ‘사도’라 하지 않고 ‘종’(1절), ‘형제’(9절)라고 부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21:24이 일들을 증거하고 이 일들을 기록한 제자가 이 사람이라 우리는 그의 증거가 참인줄 아노라
요일 1:1-3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주목하고 우리 손으로 만진 바라
계 6:9하나님의 말씀과 저희의 가진 증거를 인하여 죽임을 당한 영혼들이 제단 아래 있어
계 22:18-19만일 누구든지 이것들 외에 더하면… 만일 누구든지 이 책의 예언의 말씀에서 제하여 버리면
3이 예언의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복이 있다 — 때가 가깝다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직역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사람과, 듣고 그 안에 기록된 것들을 지키는 사람들은 복이 있다. 왜냐하면 때가 가깝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성경에서 유일하게 처음부터 복을 약속하는 책입니다. "이 책을 읽으면 복이 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이 책을 가장 덜 읽습니다. 3절은 계시록을 피하지 말고 펴서 읽으라는 초대입니다.
자세히 보면 "읽는 자"는 단수, "듣는 자들"은 복수입니다. 1세기 교회에는 성경 사본이 귀했습니다. 한 사람이 회중 앞에서 소리 내어 읽고, 온 교회가 함께 들었습니다(골 4:16, 살전 5:27). 요한계시록은 처음부터 예배 때 함께 읽도록 쓰인 책입니다. 혼자 골방에서 암호를 푸는 책이 아니라, 교회가 함께 듣고 함께 순종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복의 조건은 듣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 계시록에는 ‘지키라’는 말씀이 가득합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 죽도록 충성하라, 거짓 가르침을 멀리하라, 짐승에게 절하지 말라, 끝까지 인내하라. 예수님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눅 11:28)고 하셨습니다. 계시록을 ‘미래 알아맞히기’로만 읽으면 지킬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예언의 말씀’은 언제나 오늘의 순종을 요구합니다.
"때가 가까움이라." 여기서 ‘때’는 시계의 시간(크로노스)이 아니라 결정적인 기회의 때(카이로스)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마지막 때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히 1:2, 요일 2:18). 그래서 모든 세대의 성도는 "때가 가깝다"는 긴장 속에 깨어 살아야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복이 있나니마카리오스 — 팔복(마 5:3-11)의 ‘복이 있나니’와 같은 말. 계시록에는 이 말이 일곱 번 나옵니다: 1:3, 14:13, 16:15, 19:9, 20:6, 22:7, 22:14. 처음(1:3)과 끝(22:7) 모두 ‘이 말씀을 지키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예언프로페테이아 — 성경에서 예언은 ‘미리 말함(fore-telling)’보다 먼저 ‘하나님을 대신해 말함(forth-telling)’입니다. 구약 선지자들의 말씀 대부분이 당대 백성을 향한 회개와 소망의 메시지였던 것처럼, 계시록도 그렇습니다.
지키는테레오 — ‘간직하다, 지켜 행하다’. 계시록에 11번 나옵니다. 3:10 "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킨즉", 22:9 "이 책의 말을 지키는 자들".
함께 읽을 말씀
계 22:7볼지어다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눅 11:28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느니라
약 1:22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골 4: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롬 13:11-12이는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왔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계시록은 덮어 둘 책이 아니라 펴서 지킬 책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의 마지막 책을 ‘복이 있다’는 말로 여셨습니다. 이 책은 몇몇 전문가가 풀어 주어야 비로소 열리는 암호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모든 종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두려워서 덮어 두거나, 호기심으로 날짜를 맞추는 데 쓰는 것 모두 이 책을 주신 뜻과 다릅니다.
이번 장부터 계시록을 함께 읽어 가면서, 한 가지를 계속 물어보면 좋겠습니다. "이 말씀이 보여 주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신가? 그리고 나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가?" 이 두 질문을 붙들면 계시록은 위로와 순종의 책이 됩니다.
1:4–8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 우리를 사랑하사 피로 해방하신 이에게
이제 계시록은 ‘편지’의 형식을 취합니다. 바울 서신처럼 보내는 사람, 받는 사람, 인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인사는 평범하지 않습니다. 성부, 성령, 성자 삼위 하나님이 차례로 등장하고, 인사가 그대로 찬송(송영)으로 터져 나오며, 마지막에는 다시 오실 주님에 대한 선언과 하나님의 자기 소개가 이어집니다.
박해받는 작은 교회들에게 이 인사는 엄청난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황제는 자신을 ‘신의 아들’, ‘세상의 구원자’라 불렀지만, 요한은 진짜 영원하신 분, 진짜 땅의 임금들의 머리, 진짜 전능자가 누구신지를 인사말 속에 담아 보냅니다.
4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 영원하신 하나님과 일곱 영으로부터 은혜와 평강
요한은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 편지하노니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시고 장차 오실 이와 그 보좌 앞에 일곱 영과
직역 요한이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에게.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과, 그분의 보좌 앞에 있는 일곱 영으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아시아에 있는 일곱 교회." 여기서 ‘아시아’는 오늘날의 아시아 대륙이 아니라, 로마 제국의 ‘아시아 속주’, 곧 지금의 튀르키예 서쪽 해안 지방입니다. 11절에 그 이름들이 나옵니다.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그런데 그 지역에는 골로새, 히에라볼리, 드로아 같은 다른 교회들도 있었습니다. 왜 하필 ‘일곱’일까요? 계시록에서 7은 완전함을 나타내는 숫자입니다. 이 일곱 교회는 실제 교회들이면서, 동시에 모든 시대 모든 곳의 교회 전체를 대표합니다. 그래서 2-3장의 편지는 오늘 우리 교회에게도 보낸 편지입니다.
이어서 은혜와 평강을 보내시는 분이 소개됩니다. 첫째는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장차 오실 이."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고 하신 그 이름을 풀어 쓴 표현입니다. 그런데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보통이라면 ‘과거–현재–미래’ 순서로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계실 이"라고 해야 할 텐데, 요한은 ‘이제’를 맨 앞에 둡니다. 고난받는 성도들에게 가장 먼저 필요한 말은 "하나님은 지금 여기 계신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은 ‘장차 계실 이’가 아니라 ‘장차 오실 이’입니다. 하나님은 미래에 그저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에게 오시는 분입니다.
둘째는 "그 보좌 앞에 일곱 영." 은혜와 평강을 주시는 분의 자리에 천사를 놓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일곱 영’을 충만하고 완전하신 성령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으로 봅니다. 이사야 11:2의 일곱 가지로 묘사된 여호와의 신, 스가랴 4장의 일곱 등잔과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 그 배경입니다(계 5:6 참고). 셋째 분, 예수 그리스도는 5절에서 소개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이제도 계시고 — 원문 호 온 카이 호 엔 카이 호 에르코메노스. 문법을 일부러 어긴 표현입니다. 전치사 ‘~로부터(아포)’ 뒤에는 소유격이 와야 하는데, 요한은 출 3:14 70인역의 ‘호 온(스스로 있는 자)’을 바꾸지 않고 주격 그대로 둡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문법에도 굽히지 않는다는 듯이. 이 칭호는 4:8, 11:17, 16:5에 다시 나옵니다.
일곱 영 — 3:1, 4:5, 5:6에 다시 나옵니다. 5:6에서는 어린양의 ‘일곱 눈’이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고 설명됩니다. 성부-성령-성자 순서로 인사가 이어지는 것도 일곱 영이 성령이심을 뒷받침합니다.
은혜와 평강 — 헬라식 인사 ‘카이레인(기뻐하라)’과 비슷한 소리의 ‘카리스(은혜)’에, 유대식 인사 ‘샬롬(평강)’을 합친 그리스도인의 인사. 바울 서신과 같은 형식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3:14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
사 11:2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강림하시리니
슥 4:2, 10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이 일곱은 온 세상에 두루 행하는 여호와의 눈이라
계 4:5보좌 앞에 켠 등불 일곱이 있으니 이는 하나님의 일곱 영이라
계 5:6일곱 뿔과 일곱 눈이 있으니 이 눈은 온 땅에 보내심을 입은 하나님의 일곱 영이더라
5충성된 증인, 먼저 나신 이, 땅의 임금들의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
또 충성된 증인으로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직역 또 신실한 증인이시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맏아들로 나신 분이시며 땅의 왕들의 통치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우리를 사랑하시고 그분의 피로 우리를 우리 죄에서 풀어 주신 분에게,
세 번째로 은혜와 평강을 보내시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은 예수님께 세 가지 칭호를 붙입니다. 이 셋은 예수님의 과거, 현재, 미래, 또는 십자가, 부활, 통치를 차례로 보여 줍니다.
① "충성된 증인." 예수님은 빌라도 앞에서 "내가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요 18:37)고 하셨고, 그 증언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로마 권력 앞에서 굽히지 않고 끝까지 진리를 증언하신 분. 지금 황제 앞에서 신앙을 고백해야 하는 성도들에게 예수님은 먼저 그 길을 걸으신 맏증인이십니다.
②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시고." ‘먼저 나신 이’는 ‘맏아들’, 곧 장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라, 뒤따를 많은 형제들의 부활의 시작입니다(고전 15:20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그래서 순교의 위협 앞에서도 성도는 죽음이 끝이 아님을 압니다.
③ "땅의 임금들의 머리가 되신." 이 말은 1세기 독자들에게 거의 반역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로마 황제가 세상의 왕들 위에 군림하던 시대에, 요한은 십자가에 처형당한 유대인 예수가 그 모든 왕들의 왕이시라고 선언합니다(17:14, 19:16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 시편 89:27 "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37절 "궁창의 확실한 증인 같이"에서 이 세 칭호가 모두 메아리칩니다.
그리고 인사는 그대로 찬송으로 넘어갑니다. "우리를 사랑하사 그의 피로 우리 죄에서 우리를 해방하시고." ‘사랑하사’는 원문에서 현재형입니다. 예수님은 과거에 한 번 사랑하신 분이 아니라 지금도 계속 우리를 사랑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죄의 사슬에서 풀어 주신 사건으로 증명되었습니다(해방은 과거형). 출애굽에서 어린양의 피로 이스라엘이 종살이에서 풀려났던 것처럼, 어린양 예수의 피로 우리가 죄의 종살이에서 풀려났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충성된 증인 — 3:14 라오디게아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로 다시 나옵니다. 2:13 "나의 충성된 증인 안디바"는 같은 칭호를 받은 순교자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증인은 예수님의 칭호를 함께 얻습니다.
먼저 나시고프로토토코스 — 골 1:18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롬 8:29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처음 창조된 존재’라는 뜻이 아니라 ‘으뜸, 상속자’의 지위를 말합니다.
해방하시고 — 사본 차이가 있습니다. 오래되고 좋은 사본들은 뤼산티(풀어 주신), 후대 사본들은 루산티(씻으신)로 읽습니다. 헬라어로 한 글자 차이입니다. 『개역한글』과 대부분의 현대 번역은 ‘해방하시고’를, 옛 영어 흠정역(KJV)은 ‘washed(씻으시고)’를 따랐습니다. 어느 쪽이든 그리스도의 피가 하신 일을 말합니다(7:14 "어린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 하였느니라").
함께 읽을 말씀
요 18:37내가 이를 위하여 났으며 이를 위하여 세상에 왔나니 곧 진리에 대하여 증거하려 함이로라
시 89:27, 37내가 또 저로 장자를 삼고 세계 열왕의 으뜸이 되게 하며… 궁창의 확실한 증인 같이 영원히 견고케 되리라
골 1:18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
계 19:16그 옷과 그 다리에 이름 쓴 것이 있으니 만왕의 왕이요 만주의 주라 하였더라
요 13:1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갈 1:4그리스도께서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의 뜻을 따라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우리 죄를 위하여 자기 몸을 드리셨으니
6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이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그 아버지 하나님을 위하여 우리를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직역 그리고 우리를 나라로, 그분의 하나님 곧 아버지께 제사장들로 삼으신 그분에게 영광과 권능이 영원무궁하도록 있기를. 아멘.
예수님은 우리를 죄에서 해방하셨을 뿐 아니라(5절), 새로운 신분을 주셨습니다.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신."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출애굽한 이스라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애굽에서 건져 내신 목적이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의 피로 해방된 교회가 그 부르심을 이어받습니다.
‘나라’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백성이면서, 장차 그분과 함께 다스릴 백성입니다(5:10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제사장’은 하나님께 나아가 예배하고, 세상을 위해 하나님 앞에 서는 사람입니다. 구약에서는 레위 지파 아론의 자손만 제사장이 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 앞에 직접 나아가는 제사장입니다. 침례교회가 소중히 여기는 ‘만인제사장’의 신앙이 바로 이 말씀 위에 서 있습니다(벧전 2:9).
박해받는 성도들은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노예도 있었고, 가난한 장사꾼도 있었고, 감옥에 갇힌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보시기에 그들은 왕족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그 사실을 깨달은 요한은 찬송을 멈출 수 없습니다. "그에게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성경 마지막 책의 첫 번째 찬송은 예수 그리스도께 드려집니다. 영원한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릴 수 있는 것이니, 이 송영은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나라와 제사장 — 5:10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저희가 땅에서 왕노릇 하리로다", 20:6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출 19:6 70인역은 "왕 같은 제사장"(바실레이온 히에라튜마)으로 옮겼고, 벧전 2:9가 그 표현을 씁니다.
그 아버지 하나님 — 원문은 "그의(예수의)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이신 분께". 요 20:17 "내 아버지 곧 너희 아버지, 내 하나님 곧 너희 하나님께로 올라간다".
아멘 — 히브리어 ‘아만(확실하다, 믿을 만하다)’에서 온 말. 계시록에서 예수님 자신이 "아멘이시요"(3:14)라고 불립니다.
계 5:9-10일찍 죽임을 당하사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 가운데서 사람들을 피로 사서 하나님께 드리시고 저희로 우리 하나님 앞에서 나라와 제사장을 삼으셨으니
히 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7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 찌른 자들도 그를 보리라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직역 보라, 그가 구름과 함께 오신다. 모든 눈이 그를 볼 것이요, 그를 찌른 자들도 (볼 것이다). 그리고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가슴을 치며 애곡할 것이다. 그렇다. 아멘.
송영 바로 뒤에 갑자기 외침이 들립니다. "볼지어다!" 마치 예언자가 하늘을 가리키며 소리치는 것 같습니다. 이 한 절은 요한계시록 전체의 주제를 압축한 구절입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입니다.
요한은 구약의 두 예언을 하나로 엮습니다. 첫째는 다니엘 7:13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다니엘서에서 짐승 같은 세상 나라들이 차례로 일어났다가 무너진 뒤, 인자 같은 이가 영원한 나라를 받으십니다. 둘째는 스가랴 12:10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예수님 자신도 이 두 구절을 합쳐서 재림을 말씀하셨습니다(마 24:30).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재림은 몰래, 일부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사건이 아닙니다. 모든 눈이 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어느 골방에 와 있다", "특정 장소에 재림했다"는 주장은 이 말씀 앞에서 설 수 없습니다(마 24:26-27). 첫 번째 오심은 베들레헴의 구유에서 아무도 모르게 오셨지만, 두 번째 오심은 온 세상이 다 보는 가운데 영광으로 오십니다.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십자가에서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던 그 일(요 19:34, 37)이 여기서 다시 떠오릅니다. 세상이 거절하고 찔러 죽인 그분이 심판주로 다시 오십니다.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이 애곡은 두 가지로 읽힙니다. 스가랴 12장처럼 회개의 눈물일 수도 있고, 마태복음 24:30처럼 심판 앞에서의 통곡일 수도 있습니다. 같은 재림이 어떤 사람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어떤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입니다.
"그러하리라 아멘." 헬라어 ‘나이(그렇다)’와 히브리어 ‘아멘(진실로)’을 나란히 붙였습니다. 이방인 성도와 유대인 성도가 함께 외치는 "반드시 그렇게 됩니다!"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찌른 자들엑세켄테산 — 신약에서 요 19:37과 여기에만 나옵니다. 두 곳 모두 슥 12:10을 인용하며, 둘 다 요한의 글입니다.
애곡하리니 哀哭 / 콥손타이 — ‘가슴을 치다’에서 나온 말. 장례식에서 가슴을 치며 우는 모습입니다. 눅 23:27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구름을 타고 — 원문 ‘메타 톤 네펠론(구름과 함께)’.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의 표시입니다(출 13:21, 19:9, 시 104:3). 예수님이 승천하실 때도 구름이 그를 가렸습니다(행 1:9).
함께 읽을 말씀
단 7:13-14내가 또 밤 이상 중에 보았는데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슥 12:10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독자를 위하여 애통하듯 하며
마 24:30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요 19:37또 다른 성경에 저희가 그 찌른 자를 보리라 하였느니라
행 1:11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하시더라
직역 "나는 알파요 오메가라."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지금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고 앞으로 오실 분, 전능하신 분이.
서론의 마지막은 하나님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곳은 여기와 21:5-8 두 곳뿐입니다. 책의 시작과 끝에서 하나님이 직접 서명하시는 셈입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알파(Α)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 오메가(Ω)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나는 ‘ㄱ’이요 ‘ㅎ’이다"쯤 됩니다. 처음과 끝, 그리고 그 사이의 모든 것. 역사의 첫 페이지를 쓰신 분이 마지막 페이지도 쓰십니다. 지금 성도들이 지나고 있는 박해의 페이지도 그분의 손 밖에 있지 않습니다. 이사야 44:6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전능한 자." 헬라어 판토크라토르는 ‘모든 것을 붙잡고 다스리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70인역은 구약의 ‘만군의 여호와’를 이 말로 옮겼습니다. 신약에서는 고린도후서 6:18 한 번을 빼고 모두 계시록에 나옵니다(아홉 번). 황제가 온 세상을 쥐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진짜 판토크라토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있습니다. 8절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하신 바로 그 말씀을, 17절에서 예수님이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라고 하시고, 22:13에서는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고 똑같이 말씀하십니다. 요한계시록은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와 동등한 하나님이심을 이런 방식으로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알파와 오메가 — 21:6, 22:13에 다시 나옵니다. 유대 랍비들도 히브리 알파벳의 처음(알레프)과 끝(타우)으로 ‘전부, 처음부터 끝까지’를 표현했습니다.
전능한 자판토크라토르 — 계 1:8, 4:8, 11:17, 15:3, 16:7, 14, 19:6, 15, 21:22. 70인역 암 3:13, 슥 1:3 등에서 ‘만군의 여호와’를 옮긴 말입니다.
주 하나님 — 70인역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옮기는 표현. 4절의 칭호(이제도 계시고…)가 여기서 다시 반복되며 서론(4-8절)을 감싸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4:6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1:4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계 21:6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계 22:13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계 4:8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전에도 계셨고 이제도 계시고 장차 오실 자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지금 누구의 나라 백성으로 살고 있습니까
1세기 성도들은 매일 "가이사가 주"라고 외치는 세상 속에서 살았습니다. 그 세상에서 그들은 힘없는 소수였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인사말 하나로 그들의 눈을 열어 줍니다. 진짜 영원하신 분, 진짜 땅의 임금들의 머리, 진짜 전능자는 따로 계신다고. 그리고 그분이 너희를 사랑하셔서 피로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고.
오늘 우리를 짓누르는 ‘황제’는 다른 얼굴을 하고 있을지 모릅니다. 돈일 수도, 사람들의 시선일 수도, 불안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알파와 오메가이신 분이 역사의 처음과 끝을 붙들고 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반드시 구름을 타고 다시 오십니다. 그 사실을 믿는 사람은 오늘을 다르게 삽니다.
1:9–11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 — 주의 날에 들린 나팔 소리
이제 요한은 자기가 어디서 어떻게 이 계시를 받았는지 이야기합니다. 그는 높은 자리에서 내려다보는 지도자가 아니라, 같은 고난을 겪고 있는 ‘형제’로서 말을 꺼냅니다. 그리고 모든 것이 막힌 유배지에서, 주의 날에, 하늘의 문이 열립니다.
9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로 밧모섬에 있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에 동참하는 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밧모라 하는 섬에 있었더니
직역 나 요한은 너희의 형제이며, 예수 안에서 환난과 나라와 인내를 함께 나누는 자라. 나는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언 때문에 밧모라 불리는 섬에 있었다.
요한은 자기를 이렇게 소개합니다. "나 요한은 너희 형제요." 그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이제는 교회의 마지막 남은 사도였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나는 사도요 너희 지도자라"고 하지 않고, "나는 너희 형제"라고 말합니다. 위에서 내려다보며 "힘내라"고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같은 고난 속에 있는 사람이 하는 위로입니다.
그리고 그가 성도들과 함께 나누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의 환난과 나라와 참음." 이 세 단어의 순서가 의미 깊습니다. 가운데 ‘나라’를 ‘환난’과 ‘참음’이 감싸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하나님 나라의 백성입니다(6절). 그러나 그 나라는 지금 이 세상에서 환난과 함께 오고, 인내로 살아 냅니다. 사도행전 14:22 "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영광의 나라와 고난의 길은 이 땅에서 함께 갑니다.
"참음"으로 번역된 휘포모네는 ‘아래에(휘포) 머물다(메노)’라는 뜻입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그 짐 아래서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것입니다. 수동적으로 견디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자리를 지키는 적극적인 인내입니다. 계시록은 이 인내를 거듭 강조합니다(2:2, 19, 3:10, 13:10, 14:12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동참하는 자"는 헬라어로 쉰코이노노스, ‘코이노니아(교제, 나눔)를 함께하는 사람’입니다. 기쁨만 나누는 것이 교제가 아니라, 고난도 함께 나누는 것이 진짜 코이노니아입니다.
"밧모라 하는 섬." 밧모는 에베소에서 남서쪽 바다로 하루쯤 배를 타고 가야 하는 작은 바위섬입니다(길이 약 16km). 로마는 정치범이나 골칫거리를 이런 섬에 유배 보내곤 했습니다. 요한이 그곳에 간 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를 인하여", 곧 복음 때문이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그 고립된 섬이, 성경 마지막 책이 쓰인 자리가 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동참하는 자쉰코이노노스 — 롬 11:17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고전 9:23 "복음에 참예하고자 함이라", 빌 1:7 "나와 함께 은혜에 참예한 자"에 쓰였습니다.
예수의 — 원문은 "예수 안에서(엔 이에수)". 환난도, 나라도, 인내도 모두 ‘예수 안에서’ 겪는 것입니다.
밧모 — 초대교회 전통(이레네우스, 유세비우스)은 요한이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주후 81-96년) 때 밧모로 유배되었다가, 황제가 죽은 뒤 풀려나 에베소로 돌아갔다고 전합니다. 그래서 계시록이 쓰인 때를 주후 95년 무렵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네로 황제 시대(60년대 후반)로 보는 소수 견해도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14:22우리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많은 환난을 겪어야 할 것이라
요 16:33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롬 8:17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딤후 2:12참으면 또한 함께 왕노릇 할 것이요
계 14:12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10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을 들으니
직역 나는 주의 날에 성령 안에 있게 되었고, 내 뒤에서 나팔 같은 큰 음성을 들었다.
"주의 날에." 요한은 자기가 환상을 본 날을 기억합니다. ‘주의 날’로 번역된 퀴리아케 헤메라는 ‘주님께 속한 날’이라는 뜻입니다. 초대교회는 예수님이 부활하신 ‘안식 후 첫날’, 곧 일요일에 모여 예배했습니다(행 20:7, 고전 16:2). 1세기 말부터 이날을 ‘주의 날’이라 불렀고, 우리가 말하는 ‘주일(主日)’이 여기서 나왔습니다.
이 장면을 떠올려 보십시오. 에베소의 성도들은 주일마다 모여 함께 예배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그 예배에 갈 수 없었습니다. 그는 혼자 바다 한가운데 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외로운 주일에, 주님께서 친히 요한을 찾아오셨습니다. 교회에 갈 수 없는 사람에게 교회의 주인이 오셨습니다. 병상에서, 군대에서, 낯선 땅에서 홀로 주일을 맞는 성도들에게 이 장면은 큰 위로가 됩니다.
"성령에 감동하여." 원문은 "내가 성령 안에 있게 되었다"입니다. 요한이 스스로 신비 체험을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그를 붙드셔서 보게 하셨다는 뜻입니다. 에스겔도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겔 3:12)라고 했습니다. 계시록에서 이 표현은 네 번 나오며(1:10, 4:2, 17:3, 21:10), 책의 큰 단락이 바뀌는 자리마다 등장합니다.
"내 뒤에서 나는 나팔 소리 같은 큰 음성."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강림하실 때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출 19:16)라고 했습니다. 나팔은 하나님의 임재, 왕의 등장, 중요한 선포를 알리는 소리였습니다. 요한은 지금 시내산의 모세처럼 하나님의 계시를 받는 자리에 서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주의 날 — 형용사 퀴리아코스(주께 속한)는 신약에서 여기와 고전 11:20 "주의 만찬"에만 나옵니다. 구약의 ‘여호와의 날’(심판의 날)과는 다른 표현입니다. 2세기 초 문서 『디다케』(14:1)와 이그나티우스의 편지도 이날을 ‘주의 날’이라 부릅니다.
성령에 감동하여 — 『개역개정』 "성령에 감동되어". 원문 엔 프뉴마티를 ‘영 안에서(환상 상태로)’라고 옮기는 번역도 있습니다.
로마 세계의 ‘황제의 날’ — 아시아 지방에는 매달 황제를 기념하는 ‘세바스테(아우구스투스의) 날’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성도들이 자기들의 날을 ‘주(퀴리오스)의 날’이라 부른 것은 진짜 주님이 누구신지 고백하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20:7안식 후 첫날에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고전 16:2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겔 3:12때에 주의 신이 나를 들어 올리시는데 내가 내 뒤에서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으니
출 19:16셋째 날 아침에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이 산 위에 있고 나팔 소리가 심히 크니
계 4:1-2내가 들은바 처음에 내게 말하던 나팔 소리 같은 그 음성이… 내가 곧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11네가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
직역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베소와 서머나와 버가모와 두아디라와 사데와 빌라델비아와 라오디게아로 보내라."
음성이 처음 하신 말씀은 명령입니다.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보내라." 요한이 본 환상은 개인의 신비 체험으로 끝나지 않아야 했습니다. 교회를 위해 기록되고 전달되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보여 주신 것은 요한 한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전체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일곱 교회의 이름이 순서대로 나옵니다. 이 순서는 아무렇게나 정한 것이 아닙니다. 지도를 펴 보면, 밧모에서 배를 타고 에베소 항구에 내린 전령이 북쪽으로 서머나, 버가모까지 올라간 뒤, 동남쪽으로 꺾어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를 지나 라오디게아까지 내려오는 둥근 순회길입니다. 실제로 편지를 들고 이 길을 따라 한 교회씩 들르며 읽어 주었을 것입니다(아래 ‘일곱 교회 순회길’ 참고).
각 도시는 저마다의 사정이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거대한 아데미 신전이 있는 아시아 최대의 항구 도시였고, 서머나와 버가모는 황제 숭배에 앞장선 도시였으며, 라오디게아는 은행과 직물 산업으로 부유한 도시였습니다. 2-3장의 편지들은 이런 도시의 형편을 잘 아시는 주님께서 그 상황에 꼭 맞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주님은 교회가 어떤 도시, 어떤 골목에서 어떤 압력을 받으며 살고 있는지 아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책비블리온 — 1세기에는 오늘날 같은 제본된 책이 아니라 두루마리였습니다. 계시록은 대략 두루마리 하나에 다 들어가는 분량입니다.
일곱 교회의 순서 — 2-3장 편지들의 순서와 똑같습니다. 이 일곱 도시는 모두 주요 도로로 이어진 거점 도시였고, 주변 마을로 소식을 퍼뜨리기 좋은 자리였습니다.
기록하라 — 계시록에는 ‘기록하라’는 명령이 열두 번 나옵니다(1:11, 19, 일곱 편지의 서두, 14:13, 19:9, 21:5).
함께 읽을 말씀
사 30:8이제 가서 백성 앞에서 서판에 기록하며 책에 써서 후세에 영영히 있게 하라
렘 30:2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일러 가라사대 내가 네게 일러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하라
행 19:10두 해 동안 이같이 하니 아시아에 사는 자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
계 2:1에베소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갇힌 섬에서도 하늘은 열립니다
요한은 모든 것을 빼앗긴 사람이었습니다. 사역도, 교회도, 자유도 빼앗기고 바다 한가운데 바위섬에 홀로 있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서 성경의 마지막 책을 여셨습니다. 사람이 막아 놓은 곳에서 하나님은 하늘의 문을 여십니다.
혹시 지금 밧모섬 같은 시간을 지나고 있습니까?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외롭고, 왜 여기 있는지 모르겠는 자리. 그 자리에서도 주의 날은 옵니다. 그 자리에서도 성령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자리에서 보게 하신 것을 통해, 다른 많은 사람을 위로하는 도구로 우리를 쓰십니다.
1:12–16일곱 금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 — 영광 중의 그리스도
음성을 듣고 돌아선 요한의 눈앞에, 성경에서 가장 장엄한 그리스도의 모습이 펼쳐집니다. 요한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먹고 자고 걸었던 제자입니다. 예수님의 품에 기대어 앉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을 봅니다.
이 묘사는 사진처럼 읽으면 안 됩니다. 입에서 칼이 나오는 모습을 그대로 그림으로 그리면 오히려 이상해집니다. 하나하나가 구약에서 하나님과 메시아를 묘사할 때 쓰던 그림 언어입니다. 각 요소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읽을 때, 이 환상은 놀라운 위로와 경외로 다가옵니다.
12음성을 알아보려고 돌이켰을 때 일곱 금 촛대를 보았다
몸을 돌이켜 나더러 말한 음성을 알아 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금 촛대를 보았는데
직역 나는 나에게 말하던 그 음성을 보려고 돌아섰다. 돌아서자 일곱 금 등잔대를 보았다.
원문을 직역하면 재미있습니다. "나에게 말하는 음성을 보려고 돌아섰다." 음성을 ‘본다’는 것입니다. 소리가 들려오면 누가 말하는지 보려고 고개를 돌리게 됩니다. 요한은 음성의 주인을 보려고 돌아섰습니다. 그런데 그가 처음 본 것은 사람이 아니라 일곱 금 촛대였습니다.
‘촛대’로 번역된 뤼크니아는 양초를 꽂는 것이 아니라, 올리브기름을 넣은 등잔을 올려놓는 등잔대입니다. 성막의 성소에는 정금으로 만든 일곱 가지 등잔대(메노라)가 있었습니다(출 25:31-37). 스가랴도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슥 4:2)라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본 것은 하나의 등잔대에 일곱 가지가 달린 메노라가 아니라, 일곱 개의 따로 선 등잔대입니다.
20절에서 주님은 직접 풀어 주십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교회는 등잔대입니다. 스스로 빛을 내는 존재가 아니라, 빛을 담아 세상에 비추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그 등잔대는 ‘금’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교회는 귀하고 거룩한 것입니다. 각 교회가 하나의 등잔대로 서 있으면서, 동시에 모두 함께 하나님의 성소에 놓여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촛대뤼크니아 — 마 5:15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의 ‘등경’과 같은 단어. 『개역개정』도 ‘촛대’로 옮겼습니다.
음성을 알아보기 위하여 — 원문 ‘블레페인 텐 포넨’, "음성을 보려고". 소리와 시각을 섞는 이런 표현은 출 20:18 "뭇 백성이 우뢰와 번개와 나팔 소리와… 를 본지라"(70인역)를 떠올리게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25:31, 37너는 정금으로 등대를 쳐서 만들되… 등잔 일곱을 만들어 그 위에 두어 앞을 비추게 하며
슥 4:2내가 보니 순금 등대가 있는데 그 꼭대기에 기름 그릇이 있고 또 그 등대에 일곱 등잔이 있으며
마 5:14-16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빌 2:15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13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셨다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직역 그 등잔대들 한가운데에 인자 같은 분이 발까지 닿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두르고 계셨다.
드디어 음성의 주인이 보입니다. 그런데 그분이 서 계신 곳이 중요합니다. "촛대 사이에." 하늘 보좌 저 높은 곳이 아니라, 교회들 한가운데 서 계십니다. 박해받으며 흔들리는 일곱 교회가 혼자 버려져 있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그 한가운데를 거니고 계셨습니다(2:1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마 18:20)는 약속이 환상으로 펼쳐진 장면입니다.
"인자 같은 이." 예수님이 땅에 계실 때 가장 즐겨 쓰신 자기 호칭이 ‘인자(사람의 아들)’였습니다. 이 칭호는 다니엘 7:13에서 왔습니다. 짐승 같은 제국들이 차례로 일어난 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영원한 권세와 나라를 받습니다. 7절에서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고 했던 바로 그분이 지금 요한 앞에 서 계십니다.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발끝까지 닿는 긴 옷과 띠는 구약의 대제사장의 복장입니다(출 28:4). 70인역은 대제사장의 겉옷을 바로 이 단어(포데레스)로 옮겼습니다. 성소에서 대제사장이 등잔대의 불을 살피고 기름을 채우고 심지를 다듬었듯이(출 27:20-21, 레 24:1-4),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라는 등잔대 사이를 다니시며 그 불이 꺼지지 않도록 돌보십니다. 동시에 금띠는 왕의 위엄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왕이시며 제사장이십니다.
일하는 사람은 허리에 띠를 매지만, 이분은 가슴에 띠를 매셨습니다. 이제 서둘러 일할 필요가 없으신, 일을 다 이루신 분의 위엄과 평안입니다. "다 이루었다"(요 19:30) 하신 분이 영광 중에 서 계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인자 같은 이 — 원문은 관사 없이 ‘사람의 아들 같은 이’. 단 7:13의 70인역 표현 그대로입니다. 14:14에도 "구름 위에 인자와 같은 이가 앉았는데"로 다시 나옵니다.
발에 끌리는 옷포데레스 — 70인역 출 28:4, 29:5, 슥 3:4 등에서 대제사장의 옷을 가리킵니다. 단 10:5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더라"도 배경입니다.
금띠 — 15:6에서 일곱 천사도 "가슴에 금띠를 띠고" 나옵니다. 하늘 성전에서 섬기는 이들의 복장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단 7:13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에게 나아와 그 앞에 인도되매
단 10:5눈을 들어 바라본즉 한 사람이 세마포 옷을 입었고 허리에는 우바스 정금 띠를 띠었더라
출 28:4그들의 지을 옷은 이러하니 곧 흉패와 에봇과 겉옷과 반포 속옷과 관과 띠라
계 2:1오른손에 있는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가 가라사대
히 4:14-15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시라
마 18:20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14머리와 털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눈은 불꽃 같다
그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그의 눈은 불꽃 같고
직역 그의 머리, 곧 머리털은 흰 양털처럼, 눈처럼 희었고, 그의 눈은 불꽃 같았다.
"머리와 털의 희기가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놀라운 묘사입니다. 다니엘 7:9에서 이 모습은 인자가 아니라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곧 하나님 아버지의 모습입니다. "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요한은 다니엘서에서 하나님께 쓰였던 묘사를 그대로 인자에게 돌립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계신 하나님과 하나이십니다.
흰 머리는 늙음이 아니라 영원하심과 지혜와 존귀를 나타냅니다. 잠언 16:31 "백발은 영화의 면류관이라." 또 흰색은 계시록에서 거룩함과 순결의 색입니다(3:4-5, 7:14, 19:14). 시간에 쫓기고 늙어 가는 우리와 달리, 그분은 시간 위에 계신 분입니다.
"그의 눈은 불꽃 같고." 다니엘 10:6 "그 눈은 횃불 같고". 불꽃 같은 눈은 모든 것을 꿰뚫어 봅니다. 겉모습 뒤에 숨은 마음까지, 사람들이 모르는 동기까지 다 보십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주님은 이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 눈이 불꽃 같고…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2:18, 23). 이 눈은 거짓을 행하는 자에게는 두려움이지만, 억울하게 고난받는 성도에게는 위로입니다. 아무도 몰라주는 신실함도 그분은 다 보고 계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흰 양털 같고 눈 같으며 — 사 1:18 "너희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눈과 같이 희어질 것이요 진홍 같이 붉을지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에서도 눈과 양털이 짝을 이룹니다.
눈은 불꽃 같고 — 2:18, 19:12 "그 눈이 불꽃 같고"에 다시 나옵니다. 19장의 재림하시는 그리스도와 1장의 그리스도가 같은 분임을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단 7:9그 옷은 희기가 눈 같고 그 머리털은 깨끗한 양의 털 같고 그 보좌는 불꽃이요
단 10:6그 얼굴은 번갯빛 같고 그 눈은 횃불 같고 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계 2:18, 23그 눈이 불꽃 같고… 나는 사람의 뜻과 마음을 살피는 자인 줄 알지라
히 4:13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15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음성은 많은 물소리 같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직역 그의 발은 용광로에서 정련된 빛나는 청동 같았고, 그의 음성은 많은 물들의 소리 같았다.
"그의 발은 풀무에 단련한 빛난 주석 같고." ‘풀무’는 쇠를 녹이는 용광로입니다. 불 속에서 불순물을 다 걸러 낸 금속은 눈부시게 빛납니다. 진흙과 쇠가 섞여 쉽게 부서지는 다니엘 2장 신상의 발과 달리(단 2:33, 41-42), 그리스도의 발은 견고하고 순결합니다. 그분은 흔들리지 않고 서 계십니다. 그리고 그 발은 원수를 짓밟는 발이기도 합니다. 두아디라 교회에 주님이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2:18)로 오시는 것은, 거짓 선지자 이세벨의 무리를 심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음성은 많은 물소리와 같으며." 에스겔이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으로 돌아오는 것을 볼 때 "그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겔 43:2)라고 했습니다. 거대한 폭포 앞에 서 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 소리는 다른 모든 소리를 덮어 버립니다. 사람의 말소리도, 자기 생각의 소리도 다 묻힙니다. 밧모섬에서 요한은 날마다 에게해의 파도 소리를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보다 더 크고 압도적인 음성을 듣습니다.
황제의 칙령, 세상의 위협, 두려움의 목소리가 크게 들리던 그때, 이 음성은 그 모든 것을 덮는 음성입니다. 지금 우리 귀에 가장 크게 들리는 소리는 무엇입니까? 주님의 음성은 그 모든 소리보다 크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빛난 주석칼콜리바논 — 성경 전체에서 계 1:15와 2:18에만 나오는 낱말이라 정확한 금속이 무엇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구리(칼코스)’가 들어 있어, 금이나 은을 섞어 빛나게 한 최고급 청동 계열의 합금으로 봅니다. 두아디라는 구리 세공 조합으로 이름난 도시였기에, 그 교회 사람들은 이 표현을 금방 알아들었을 것입니다.
풀무 — 쇠를 녹이는 화덕, 용광로. 단 3장의 풀무불을 떠올리게도 합니다.
많은 물소리 — 14:2, 19:6에서는 하늘의 찬양 소리가 "많은 물소리" 같다고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겔 43:2그 음성이 많은 물소리 같고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단 10:6그 팔과 발은 빛난 놋과 같고 그 말소리는 무리의 소리와 같더라
겔 1:7, 24그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 같고 마광한 구리 같이 빛나며… 그 날개 소리는 많은 물소리와도 같으며
계 2:18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이 가라사대
시 93:4높이 계신 여호와의 능력은 많은 물소리와 바다의 큰 파도보다 위대하니이다
16오른손에 일곱 별,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 얼굴은 힘있게 비취는 해 같다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직역 그분은 오른손에 일곱 별을 가지고 계셨고, 그분의 입에서는 양날이 선 날카로운 칼이 나왔으며, 그분의 얼굴은 해가 힘차게 비치는 것 같았다.
"그 오른손에 일곱 별이 있고." 20절에서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라고 풀이됩니다. 오른손은 능력과 권위의 손입니다. 교회와 그 교회를 섬기는 이들은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1세기 로마의 동전에는 황제의 아들이 손에 일곱 별을 쥐고 노는 모습이 새겨지기도 했습니다. 세상은 황제의 가문이 하늘의 별들까지 다스린다고 선전했지만, 요한은 진짜 별들을 손에 쥐신 분이 누구신지 봅니다. 요한복음 10:28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그 입에서 좌우에 날선 검이 나오고." 이 검(롬파이아)은 짧은 단검이 아니라 양날이 선 큰 칼입니다. 그러나 손에 들린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옵니다. 그분의 무기는 말씀입니다. 이사야 49:2 "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11:4 "그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히브리서 4:12 "하나님의 말씀은…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로마는 칼로 다스렸고, 로마 총독은 ‘칼의 권세(사형 집행권)’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입의 말씀으로 다스리십니다. 그 말씀은 거짓을 베어 심판하고(2:16, 19:15), 동시에 사람의 마음을 찔러 살립니다.
"그 얼굴은 해가 힘있게 비취는 것 같더라." 요한은 이 얼굴을 전에 한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변화산에서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마 17:2). 그때 요한은 베드로, 야고보와 함께 엎드려 심히 두려워했습니다. 이제 그 영광이 숨김없이, 한낮의 태양처럼 힘 있게 비칩니다. 사사기 5:31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라는 드보라의 노래가 여기서 메아리칩니다.
아래의 ‘그리스도의 모습’ 표에서 보듯, 13-16절의 요소들은 대부분 구약에서 하나님과 메시아에게 쓰인 그림들입니다. 요한은 예수님을 묘사할 새로운 말을 지어내지 않았습니다. 구약 전체가 가리켜 온 그분, 바로 그분이 예수님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좌우에 날선 검롬파이아 디스토모스 — ‘두 입을 가진 큰 칼’. 롬파이아는 트라키아식 긴 칼로, 70인역에서는 하나님의 심판의 칼에 자주 쓰였습니다. 2:12, 16(버가모 교회), 19:15, 21에 다시 나옵니다.
일곱 별과 로마 동전 —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어려서 죽은 아들을 신격화하며 만든 동전에, 그 아이가 지구 위에 앉아 일곱 별을 향해 손을 뻗는 모습이 새겨져 있습니다. 1세기 독자들이 이 장면을 보며 그 동전을 떠올렸을 가능성이 있습니다.
힘있게 비취는 — 원문 ‘엔 테 뒤나메이 아우투’, "그 힘 가운데". 구름에 가리지 않은 정오의 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9:2내 입을 날카로운 칼 같이 만드시고 나를 그 손 그늘에 숨기시며
히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마 17:2저희 앞에서 변형되사 그 얼굴이 해 같이 빛나며 옷이 빛과 같이 희어졌더라
삿 5:31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요 10:28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계 19:15그의 입에서 이한 검이 나오니 그것으로 만국을 치겠고
그리스도의 모습
구약의 배경
무엇을 말하나
인자 같은 이 (13절)
단 7:13
영원한 나라를 받으신 메시아
발에 끌리는 옷, 가슴의 금띠 (13절)
출 28:4, 단 10:5
대제사장이자 왕 — 교회를 돌보시는 분
양털과 눈 같은 흰 머리 (14절)
단 7:9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
영원하심, 지혜, 거룩 — 아버지와 하나이심
불꽃 같은 눈 (14절)
단 10:6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심
풀무에 단련한 주석 같은 발 (15절)
단 10:6, 겔 1:7
흔들림 없는 힘과 순결, 심판
많은 물소리 같은 음성 (15절)
겔 43:2, 단 10:6
모든 소리를 덮는 하나님의 위엄
오른손의 일곱 별 (16절)
(20절에서 풀이)
교회를 붙드시고 보호하심
입에서 나오는 날선 검 (16절)
사 49:2, 11:4
심판하고 살리는 말씀의 권세
해 같은 얼굴 (16절)
삿 5:31, 마 17:2
감출 수 없는 하나님의 영광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주님은 교회 한가운데 서 계십니다
요한이 본 그리스도는 하늘 저편에 멀리 계신 분이 아니라, 촛대 사이에 서 계신 분입니다. 박해받던 일곱 교회 한가운데를, 그리고 오늘 우리 교회 한가운데를 거니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눈은 모든 것을 보시고, 그분의 손은 교회를 붙드시고, 그분의 말씀은 모든 거짓을 베십니다.
교회가 작아 보이고, 세상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릴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교회의 크기를 보지 말고, 교회 한가운데 서 계신 분의 크기를 보아야 합니다. 일곱 별을 오른손에 쥐신 분이 우리 교회를 붙들고 계십니다.
1:17–20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산 자라
영광의 주님을 본 요한은 쓰러집니다. 그리고 주님은 쓰러진 요한에게 손을 얹으시고, 계시록에서 가장 따뜻한 말씀을 하십니다. "두려워 말라." 이 단락은 1장의 절정이며, 환상의 의미를 풀어 주고 책 전체를 쓰라는 사명을 주는 자리입니다.
17그 발 앞에 죽은 자 같이 엎드러지니, 오른손을 얹고 두려워 말라 하셨다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직역 그분을 보았을 때 나는 그분의 발 앞에 죽은 사람처럼 쓰러졌다. 그러자 그분이 오른손을 내 위에 얹고 말씀하셨다. "두려워하지 말라. 나는 처음이요 마지막이요,"
"내가 볼 때에 그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자 같이 되매." 요한은 예수님과 가장 가까웠던 제자였습니다. 최후의 만찬에서 예수님 품에 기대어 있던 사람입니다(요 13:23). 그런 그도 영광 중의 그리스도 앞에서는 서 있을 수 없었습니다. 이사야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5) 했고, 에스겔도 다니엘도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엎드러졌습니다(겔 1:28, 단 10:8-9). 거룩하신 분을 제대로 본 사람은 가볍게 서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우리가 예수님을 너무 가볍게, 친구처럼만 대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게 합니다.
그런데 그 다음 장면이 놀랍습니다. "그가 오른손을 내게 얹고." 일곱 별을 쥐고 계시던 바로 그 오른손입니다(16절). 우주를 붙드시는 손이 쓰러진 제자의 어깨에 얹힙니다. 변화산에서 제자들이 엎드려 두려워할 때 "예수께서 나아와 저희에게 손을 대시며 가라사대 일어나라 두려워하지 말라"(마 17:7) 하셨던 그 손길입니다. 요한은 60여 년 전 그 손길을 다시 느꼈을 것입니다. 영광 중에 계신 주님은 여전히 그때 그 예수님이십니다.
"두려워 말라." 원문은 ‘이미 두려워하고 있는 것을 멈추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요한 한 사람에게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감옥과 죽음을 앞에 둔 서머나 교회에게도 "너는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2:10)고 하십니다. 계시록 전체를 여는 열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이 책이 아무리 무서운 장면들을 보여 주어도, 그 모든 것 앞에 주님은 먼저 손을 얹고 "두려워 말라" 하십니다.
그리고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말씀하십니다.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이사야 44:6, 48:12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을 소개하신 이름입니다. 8절에서 아버지께서 "알파와 오메가"라 하신 그 이름을 이제 아들이 스스로의 이름으로 말씀하십니다. 역사의 시작 전에 계셨고 역사의 끝 후에도 계실 분이 지금 내 어깨에 손을 얹고 계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두려워 말라메 포부 — 현재 명령형 부정, ‘계속 두려워하지 말라, 두려워하기를 그치라’.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장 자주 하신 말씀 중 하나입니다(창 15:1, 사 41:10, 눅 1:30, 2:10).
처음이요 나중 — 2:8 서머나 교회 편지에서 "처음이며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가 가라사대"로 다시 나옵니다. 22:13에서는 알파와 오메가, 처음과 나중, 시작과 끝을 한데 모아 말씀하십니다.
엎드러져 — 22:8-9에서 요한은 천사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다 "나는 너와… 함께 된 종이니 그리하지 말고 하나님께 경배하라"는 말을 듣습니다. 천사는 경배를 거절하지만, 그리스도는 엎드린 요한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4:6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사 41:10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단 10:9-12내가 얼굴을 땅에 대고 깊이 잠들었었느니라 한 손이 있어 나를 어루만지기로… 다니엘아 두려워하지 말라
계 2:10네가 장차 받을 고난을 두려워 말라… 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18나는 산 자라, 전에 죽었으나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다
곧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직역 "살아 있는 자라. 나는 죽었었으나, 보라,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다. 그리고 나는 사망과 음부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다."
17절의 "처음이요 나중이니"에 이어 주님은 자신을 계속 소개하십니다. 이 짧은 한 절에 복음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곧 산 자라." 구약에서 하나님은 거듭 ‘살아 계신 하나님’으로 불리셨습니다. 말 못하는 우상과 달리 참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 예수님은 바로 그 ‘살아 계신 분’이십니다. 부활 아침 천사가 여인들에게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눅 24:5)고 했던 그 분입니다.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영원히 살아 계신 분이 죽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신비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연기나 기절이 아니라 실제 죽음이었습니다.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그러나 그 죽음이 끝이 아니었습니다. 나사로처럼 살아났다가 다시 죽는 것이 아니라,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로마서 6:9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으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관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1세기 사람들은 죽은 자들의 세계(하데스)를 굳게 닫힌 문이 있는 감옥처럼 생각했습니다. 한번 들어가면 아무도 나올 수 없는 곳. 그 문의 열쇠를 누가 가졌을까요? 헬라 신화에서는 하데스 신이나 저승 문지기가 그 열쇠를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그 열쇠는 내가 가졌다." 예수님은 죽음의 감옥에 들어가셨다가 안에서 문을 부수고 나오셨고, 이제 그 열쇠를 쥐고 계십니다.
이 말씀은 죽음의 위협 앞에 선 1세기 성도들에게 가장 강력한 위로였습니다. 황제가 성도를 죽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을 열고 닫는 열쇠는 황제가 아니라 예수님께 있습니다. 성도가 죽어도 그 문은 주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문을 열어 자기 백성을 이끌어 내실 것입니다. 히브리서 2:14-15 "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원어 · 번역 노트
음부 陰府 / 하데스 — ‘보이지 않는 곳’, 죽은 자들이 머무는 세계. 구약의 ‘스올’에 해당합니다. 계시록에서 ‘사망과 음부’는 늘 짝으로 다니며(6:8, 20:13-14), 마지막에는 둘 다 불못에 던져집니다(20:14). 영원한 형벌의 장소를 가리키는 ‘게헨나(지옥)’와는 다른 말입니다.
열쇠클레이스 — 열쇠는 권한의 상징입니다. 3:7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곧 열면 닫을 사람이 없고", 마 16:19 "천국 열쇠를 네게 주리니", 계 9:1, 20:1 "무저갱 열쇠". 사 22:22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문장 구조 — "나는 죽었었다(과거 사건) / 보라 나는 살아 있다(현재 계속) / 나는 열쇠를 가지고 있다(현재 소유)". 십자가, 부활, 그리고 지금의 통치가 한 줄에 담겼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6:9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으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관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히 2:14-15죽음을 통하여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 주려 하심이니
고전 15:54-55사망이 이김의 삼킨 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요 11:25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사 22:22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그가 열면 닫을 자가 없겠고 닫으면 열 자가 없으리라
계 20:14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19네가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그러므로 네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라
직역 그러므로 네가 본 것들, 곧 지금 있는 것들과 이 후에 일어나려는 것들을 기록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 주님은 이제 요한을 일으켜 사명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기록하라." 위로는 사명으로 이어집니다. 주님이 손을 얹어 일으키시는 것은 다시 일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구절은 계시록의 구조를 보여 주는 열쇠로 자주 쓰입니다. 많은 해석자들은 이렇게 나눕니다. ① "네 본 것" — 1장의 영광의 그리스도 환상. ② "이제 있는 일" — 2-3장 일곱 교회의 현재 형편. ③ "장차 될 일" — 4장 이후의 일들. 실제로 4:1은 "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네게 보이리라"로 시작하며, 이 절의 ‘이 후에’(메타 타우타)라는 말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한편 원문의 ‘카이…카이’는 ‘곧’으로도 읽힐 수 있어서, "네가 본 것, 곧 현재의 일과 장차 될 일"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요한이 본 환상 전체가 현재와 미래를 함께 담고 있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계시록의 많은 장면은 1세기 교회의 현실과 마지막 날의 완성을 동시에 비춥니다. 어느 쪽으로 읽든, 분명한 것은 이것입니다. 처음이요 나중이신 주님이 현재와 미래를 모두 쥐고 계시며, 그것을 교회에 알려 주신다는 사실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그러므로운 — 17-18절의 자기 계시(처음이요 나중이요 산 자요 열쇠를 가진 이)가 기록 명령의 근거입니다. 이런 분이 주시는 말씀이기에 기록해야 합니다.
장차 될 일 — 원문 ‘하 멜레이 게네스타이 메타 타우타’. 단 2:29, 45 "장래 일"(70인역 ‘하 데이 게네스타이 메타 타우타’)과 비슷한 표현입니다. 1:1 "반드시 속히 될 일"과도 이어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계 4:1이리로 올라오라 이 후에 마땅히 될 일을 네게 보이리라 하더라
단 2:45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 하신 것이라
계 1:11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일곱 교회에 보내라
요 14:29이제 일이 이루기 전에 너희에게 말한 것은 일이 이룰 때에 너희로 믿게 하려 함이라
20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다
네 본 것은 내 오른손에 일곱 별의 비밀과 일곱 금 촛대라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직역 "네가 내 오른손에서 본 일곱 별과 일곱 금 등잔대의 비밀은 이것이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천사들이요, 일곱 등잔대는 일곱 교회이다."
1장은 주님께서 친히 상징을 풀어 주시는 것으로 끝납니다. 이것은 계시록을 읽는 방법에 대한 중요한 본보기입니다. 계시록의 상징은 마음대로 상상해서 푸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스스로 풀어 주는 대로, 또는 구약이 보여 주는 배경을 따라 읽어야 합니다. 여기서 ‘비밀’(뮈스테리온)은 신비주의자들만 아는 비밀 지식이 아니라, 감추어져 있다가 하나님이 열어 보여 주시는 뜻입니다.
"일곱 촛대는 일곱 교회니라." 교회는 등잔대입니다. 교회의 존재 이유는 빛을 비추는 것입니다. 그런데 등잔대는 스스로 빛을 만들지 못합니다. 기름과 불이 있어야 합니다. 스가랴 4장에서 등잔대에 기름을 공급하는 것은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슥 4:6)였습니다. 교회는 성령(4절의 일곱 영)의 기름으로 그리스도의 빛을 비춥니다. 그리고 2:5에서 주님은 사랑을 잃은 에베소 교회에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고 경고하십니다. 빛을 잃은 등잔대는 더 이상 등잔대의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일곱 별은 일곱 교회의 사자요." ‘사자’로 번역된 앙겔로스는 계시록에서 거의 언제나 ‘천사’를 뜻합니다. 그래서 각 교회를 돌보는 수호천사로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한편 이 말은 원래 ‘심부름꾼, 전령’이라는 뜻이어서, 편지를 받아 교회에 전하고 읽어 주는 교회의 지도자(목회자)로 보는 해석도 오래되었습니다. 또 교회의 ‘영적 성품, 하늘에서 본 교회의 모습’을 의인화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2-3장의 편지가 ‘사자에게’ 쓰이면서도 결국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끝나는 것을 보면, 사자와 교회는 함께 책임을 지는 하나로 그려집니다.
그리고 기억하십시오. 그 일곱 별은 그리스도의 오른손에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는 이들,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손에 붙들려 있습니다. 교회의 주인은 목회자도 성도도 아닌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래서 교회는 두려워할 필요가 없고, 동시에 함부로 살 수도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자 使者 / 앙겔로스 — 신약에서 사람 전령에게도 쓰였습니다: 마 11:10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침례 요한), 눅 7:24 "요한의 보낸 자들", 약 2:25 "사자를 접대하여". 말 2:7은 제사장을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라 부릅니다.
상징의 자기 해석 — 계시록은 여러 곳에서 상징을 직접 풀어 줍니다: 5:8(향은 성도의 기도), 12:9(용은 옛 뱀 마귀), 17:9, 15, 18(일곱 머리, 물, 여자), 19:8(세마포는 성도의 옳은 행실).
함께 읽을 말씀
슥 4:6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말 2:7제사장의 입술은 지식을 지키겠고…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사자가 됨이어늘
계 2:5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마 5: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엡 3:9-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단 12:3지혜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두려움 위에 얹힌 손
요한계시록에는 무서운 장면이 많이 나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장면이 시작되기 전에, 주님은 먼저 쓰러진 요한에게 손을 얹으시고 "두려워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시록은 그 손길 아래에서 읽어야 하는 책입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것들 가운데 가장 큰 것은 결국 죽음입니다. 그러나 죽음의 문 열쇠는 예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분은 죽으셨으나 영원히 살아 계십니다. 오늘 나를 짓누르는 두려움이 무엇이든, 그 위에 처음이요 나중이신 분의 오른손이 얹혀 있습니다. 그 손을 느끼며 다시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주님이 맡기신 일을 하십시오.
Seven Letters · 일곱 편지
1장의 그리스도, 일곱 교회에 다시 오시다
2–3장의 편지마다 주님은 1장에서 본 모습 가운데 하나를 가지고 그 교회에 꼭 맞게 찾아오십니다
교회
편지 첫머리의 주님
1장의 근거
왜 그 모습일까
에베소 (2:1)
일곱 별을 붙잡고 일곱 금 촛대 사이에 다니시는 이
13, 16, 20절
처음 사랑을 잃은 교회. 촛대를 옮길 수도 있는 분
서머나 (2:8)
처음이며 나중이요 죽었다가 살아나신 이
17–18절
죽음의 위협 앞의 교회. 죽음을 이기신 분
버가모 (2:12)
좌우에 날선 검을 가진 이
16절
‘칼의 권세’를 가진 총독의 도시. 거짓 가르침을 베시는 분
두아디라 (2:18)
눈이 불꽃 같고 발이 빛난 주석과 같은 하나님의 아들
14–15절
숨은 타협이 있는 교회. 마음을 살피시는 분
사데 (3:1)
하나님의 일곱 영과 일곱 별을 가진 이
4, 16절
살았다는 이름만 있는 교회. 생명을 주시는 성령
빌라델비아 (3:7)
거룩하고 진실하사 다윗의 열쇠를 가지신 이
18절
작은 능력의 교회. 열린 문을 주시는 분
라오디게아 (3:14)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
5절
미지근한 교회. 참되고 신실하신 분
1장의 환상은 그냥 장엄한 그림이 아니라, 각 교회에게 필요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담은 보물창고입니다. 지금 우리 교회, 그리고 나에게 가장 필요한 주님의 모습은 이 가운데 어느 것입니까?
The Route · 순회길
11절, 일곱 교회 순회길
편지는 밧모에서 에베소에 닿은 뒤, 둥근 길을 따라 한 교회씩 전해졌을 것입니다
순서
도시 (오늘날)
앞 도시에서
도시의 특징
①
에베소 (셀추크 부근)
밧모에서 배로
아시아 최대 항구, 아데미 신전
②
서머나 (이즈미르)
북쪽 약 55km
황제 숭배에 열심, 유대인과의 갈등
③
버가모 (베르가마)
북쪽 약 100km
옛 수도, 제우스 대제단, 황제 신전
④
두아디라 (아키사르)
동남쪽 약 65km
상공업 조합(길드)의 도시
⑤
사데 (사르트)
남쪽 약 50km
옛 리디아 왕국 수도, 지나간 영광
⑥
빌라델비아 (알라셰히르)
동남쪽 약 45km
동쪽으로 열린 관문, 잦은 지진
⑦
라오디게아 (데니즐리 부근)
동남쪽 약 70km
금융·직물·안약으로 부유, 미지근한 물
거리는 대략의 직선 거리입니다. 일곱 도시는 모두 주요 도로로 이어진 지역 거점이어서, 이곳에서 주변 마을 교회들로 말씀이 다시 퍼져 나갈 수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19:10에서 바울이 에베소에 머문 두 해 동안 "아시아에 사는 자는… 다 주의 말씀을 듣더라"고 한 것도 이런 길 덕분이었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1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계시啓示 · 1절
덮개를 벗겨 보여 줌. 원문 아포칼륍시스. ‘대재앙’이 아니라 ‘드러냄’.
지시하다指示 · 1절
여기서는 표징·그림으로 알게 하다. 『개역개정』 "알게 하신".
예언預言 · 3절
하나님을 대신해 전하는 말씀. 미래 예고만이 아니라 지금의 순종을 부름.
아시아4절
로마의 아시아 속주. 오늘날 튀르키예 서부 해안 지방.
일곱 영4절
충만하고 완전하신 성령을 가리키는 상징적 표현.
충성된 증인5절
신실하게 끝까지 진리를 증언한 분. ‘증인’은 뒤에 ‘순교자’라는 뜻이 됨.
먼저 나시다5절
맏아들(장자). 부활의 첫 열매로서 으뜸이 되심.
송영頌榮 · 5–6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 "영광과 능력이 세세토록…".
각인各人 · 7절
각 사람.
애곡哀哭 · 7절
가슴을 치며 슬피 욺.
알파와 오메가8절
헬라 문자의 처음과 끝.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의 주인.
전능한 자全能 · 8절
만물을 붙잡고 다스리는 분. 구약의 ‘만군의 여호와’.
환난患難 · 9절
눌림과 압박, 신앙 때문에 겪는 고난.
참음9절
짐 아래에 머물며 끝까지 버티는 인내(휘포모네).
동참同參 · 9절
함께 나눔. 원문 쉰코이노노스, 코이노니아의 동무.
밧모9절
에게해의 작은 바위섬. 요한의 유배지.
주의 날10절
주님께 속한 날. 부활하신 날인 일요일, 곧 주일.
촛대12절
양초가 아니라 기름 등잔을 올려놓는 등잔대. 교회를 상징.
인자人子 · 13절
사람의 아들. 단 7:13에서 온 메시아 칭호, 예수님의 자기 호칭.
풀무15절
쇠를 녹이는 화덕, 용광로.
주석15절
여기서는 불에 정련한 빛나는 구리 합금(청동·놋쇠 계열).
음부陰府 · 18절
죽은 자들의 세계(하데스, 스올). 지옥(게헨나)과는 다른 말.
사자使者 · 20절
심부름꾼, 전령. 천사 또는 교회를 대표하는 지도자.
비밀祕密 · 20절
감추어져 있다가 하나님이 풀어 보여 주시는 뜻.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요한계시록에 대해 지금까지 나는 어떤 느낌을 가지고 있었습니까?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는 3절은 그 느낌을 어떻게 바꿉니까? (1-3절)
예수님이 나를 ‘지금도’ 사랑하시고, 피로 해방하시고, 나라와 제사장으로 삼으셨다는 사실은 세상에서 작게 느껴지는 나에게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5-6절)
요한처럼 ‘밧모섬’ 같은 시간을 지나 본 적이 있습니까?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났던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9-10절)
촛대 사이에 서신 주님의 모습 가운데(13-16절) 지금 나에게 가장 위로가 되는 모습은 무엇이며, 가장 두렵게 느껴지는 모습은 무엇입니까?
2-3장 일곱 교회 편지의 첫머리를 보며(‘1장과 일곱 편지’ 표), 지금 우리 교회에 가장 필요한 주님의 모습은 어느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지금 나를 가장 두렵게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위에 "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요 산 자라" 하시는 주님의 손이 얹혀 있다고 믿는다면, 오늘 무엇이 달라질 수 있을까요? (17-18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