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세부 강해 · Ephesians
2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둘로 하나를 만드사

1절부터 22절까지 — 죽음에서 생명으로, 멀리 있던 자에서 가까운 자로, 외인에서 하나님의 권속으로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EPHESIANS 2:8
Introduction · 들어가며

2장 들어가며

1장의 능력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가 — 한 사람을 살리고, 갈라진 두 민족을 하나로 만들었다

1장 끝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다고 노래했습니다(1:20). 2장은 그 능력이 우리에게 무엇을 했는지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에게 일어난 일이 그대로 우리에게 일어났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다가 살아나 하늘에 앉으셨듯, 죽었던 우리도 함께 살아나 함께 하늘에 앉았습니다(5–6절).

2장은 두 개의 큰 그림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1–10절)은 한 사람의 구원입니다. 죽었던 사람이 은혜로 살아납니다. 뒷부분(11–22절)은 공동체의 구원입니다. 서로 원수였던 유대인과 이방인이 십자가로 한 몸이 됩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나의 관계를 회복할 뿐 아니라, 나와 이웃의 관계도 회복합니다. 수직의 화해와 수평의 화해가 함께 갑니다.

2장 전체를 꿰는 열쇠는 "전에는… 이제는"입니다. 전에는 죽었고(1절) 이제는 살았다(5절). 전에는 그리스도 밖에, 멀리 있었고(12절) 이제는 가까워졌다(13절). 전에는 외인이요 손님이었고 이제는 하나님의 권속이다(19절). 그리고 그 모든 변화의 경첩에 서 있는 말이 4절의 "그러나 하나님이"입니다(『개역한글』은 이 접속사를 옮기지 않았지만 원문에 있습니다).

핵심 구절

2:8–10

은혜로, 믿음으로, 선물로. 그리고 선한 일을 위하여. 종교개혁의 표어가 된 말씀입니다.

전환점

2:4

원문 첫머리의 "그러나 하나님은". 죽음의 이야기가 생명의 이야기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세 번의 "함께"

2:5–6

함께 살리시고, 함께 일으키시고, 함께 앉히셨다. 그리스도의 일이 곧 우리의 일이 되었습니다.

허물어진 담

2:14

예루살렘 성전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 사이의 담. 십자가가 그 담을 헐었습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허물과 죄"허물은 넘어진 잘못(파라프토마), 죄는 과녁을 빗나감(하마르티아).
2절 "풍속"風俗. 원문 아이온, ‘시대, 시대정신’. 이 세상이 흘러가는 방식.
2절 "공중의 권세 잡은 자"하늘과 땅 사이 ‘공중’을 다스리는 악한 영, 곧 사탄.
3절 "본질상"本質上, 원문 퓌세이 ‘본성으로, 태어나면서부터’.
10절 "만드신 바"원문 포이에마. 작품, 걸작. 영어 poem의 어원.
11절 "할례당, 무할례당"할례받은 무리(유대인), 할례받지 않은 무리(이방인)를 낮춰 부르던 말.
12절 "외인"外人, 시민권이 없는 바깥사람.
15절 "의문에 속한 계명"儀文, 규정문으로 된 계명. 원문 도그마, 조항·법령.
19절 "손", "권속"손(客)은 잠시 머무는 나그네. 권속(眷屬)은 한집 식구.
20절 "모퉁이 돌"건물 전체의 기준이 되는 첫 주춧돌.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2:1–3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 — 은혜 이전의 우리 모습

바울은 은혜를 말하기 전에 먼저 은혜가 필요한 이유를 정직하게 보여 줍니다. 어둠을 알아야 빛이 얼마나 밝은지 압니다. 1–3절은 성경에서 사람의 상태를 가장 어둡게 그린 그림 가운데 하나입니다. 사람은 조금 아픈 것이 아니라 죽었고, 혼자 길을 잃은 것이 아니라 세 가지 힘에 끌려 다녔으며,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 아래 있었습니다.

원문으로 보면 1절에는 동사가 없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죽었었다"로 문장을 시작해 놓고, 죽음의 모습을 설명하다가 3절 끝까지 가서야 문장을 멈춥니다. 정작 주동사 "살리셨도다"는 5절에 가서야 나옵니다. 『개역한글』은 이 5절의 동사를 1절로 가져와 "살리셨도다"라고 미리 넣어 읽기 쉽게 했습니다.

1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직역 그리고 너희는 너희의 허물들과 죄들로 죽어 있었다.

"죽었던 너희." 바울은 은혜 이전의 사람을 ‘아픈 사람’이나 ‘약한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은 구명조끼를 던져 주면 붙잡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미 물속에 가라앉아 숨이 멎은 사람은 아무것도 붙잡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그를 건져 올려 숨을 불어넣어 주어야 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그런 상태였다고 말합니다.

물론 그들은 몸으로는 살아 있었습니다. 먹고, 일하고, 웃고,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끊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에덴에서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고 하셨습니다. 아담은 그날 몸이 쓰러지지 않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숨었고 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그것이 죽음의 시작이었습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 가장 깊은 죽음입니다.

죽음의 원인은 "허물과 죄"입니다. ‘허물’은 넘어서는 안 될 선을 넘어 넘어진 구체적인 잘못들이고, ‘죄’는 하나님이 정하신 과녁을 빗나간 삶 전체입니다. 둘 다 복수형입니다. 한두 번의 실수가 아니라 쌓이고 쌓인 잘못들이 우리를 죽음에 묶었습니다.

그러나 『개역한글』이 1절에 미리 당겨 넣은 동사가 있습니다. "살리셨도다." 죽음의 이야기를 시작하는 첫 줄에 이미 생명의 결말이 들어 있습니다. 바울은 독자가 3절까지 어둠을 지나가는 동안 이 소망을 붙들게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허물 파라프토마 — ‘옆으로(파라) 떨어지다(핍토)’. 1:7 "죄 사함"의 ‘죄’도 이 단어입니다. 롬 5:15–20에서 아담의 ‘범죄’를 가리킬 때 쓰였습니다.
  • 죄 하마르티아 — ‘과녁을 맞히지 못함’.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 문장 구조 — 원문 1절은 "그리고 너희는(카이 휘마스)…"로 시작해 주어만 있고 동사가 없습니다. 바울은 4절에서 "그러나 하나님은"으로 다시 시작하고, 5절에서 "살리셨다(쉬네조오포이에센)"를 말합니다. 『개역한글』과 『개역개정』 모두 이 동사를 1절에 미리 넣었습니다. 영어 KJV도 ‘hath he quickened’를 이탤릭으로 넣었습니다.
  • 죽었던 — 골 2:13 "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는 이 구절과 거의 같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2:17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 골 2:13또 너희의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 눅 15:24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았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 요 5:24-25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 겔 37:3-5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내가 생기로 너희에게 들어가게 하리니 너희가 살리라
2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다

그 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직역 그 가운데서 너희가 한때 걸었다. 이 세상의 시대를 따라, 공중 권세의 통치자,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일하고 있는 영을 따라.

죽은 사람은 아무것도 하지 않을 것 같은데, 바울은 그들이 "행하였다", 곧 ‘걸어 다녔다’고 말합니다. 영적으로 죽은 사람도 바쁘게 삽니다. 다만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이끌려 걸어 다닙니다. 바울은 사람을 끌고 다니는 세 가지 힘을 말합니다. 2절에 두 가지, 3절에 하나입니다.

첫째, "이 세상 풍속"입니다. ‘풍속’은 원문으로 ‘시대’, 곧 이 세상이 흘러가는 방향입니다. 오늘날의 말로 하면 ‘시대정신’, ‘다들 그렇게 사는 방식’입니다. 성공이 최고다, 내가 행복하면 그만이다, 남들만큼은 가져야 한다. 강물에 떠 있는 나뭇잎이 저절로 흘러가듯, 하나님 없는 사람은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지 못하고 떠내려갑니다. 롬 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둘째, "공중의 권세 잡은 자"입니다. 그 흐름 뒤에는 인격적인 악한 존재가 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땅과 하늘 사이의 ‘공중’에 영들이 산다고 생각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언어를 빌려, 사탄이 그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사람들을 움직인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사탄을 "이 세상 임금"(요 12:31)이라고 부르셨습니다. 그는 "지금"도 일하고 있습니다. 1:19–20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했다’고 했는데, 같은 단어로 사탄도 ‘역사한다’고 말합니다. 두 힘 사이에 사람이 서 있습니다.

"불순종의 아들들." 히브리 사람들은 어떤 성질이 몸에 밴 사람을 ‘그 성질의 아들’이라고 불렀습니다(‘평안의 아들’, 눅 10:6). 불순종이 단지 가끔 하는 행동이 아니라 본성이 되어 버린 사람들입니다. 바울이 이렇게 말하는 것은 그들을 정죄하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바로 거기서 건짐을 받았다는 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행하여 페리파테오 — ‘주위를 걷다’. 에베소서의 중요한 동사로 일곱 번 나옵니다(2:2, 10, 4:1, 17, 5:2, 8, 15). 2장은 ‘전에 걸었던 길’과 ‘새로 걷게 하신 길’(10절)을 대조합니다.
  • 풍속 아이온 — 보통 ‘시대, 세대’로 번역되는 말입니다(1:21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여기서는 세상(코스모스)과 함께 쓰여 ‘이 세상의 흐름, 시대정신’을 뜻합니다.
  • 공중 아에르 — 땅에 가까운 아래쪽 공기. 고대 유대 문헌과 그리스 사상에서 악한 영들이 머무는 영역으로 여겨졌습니다. 6:12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과 연결됩니다.
  • 불순종 아페이테이아 — ‘설득되지 않음, 듣기를 거부함’. 5:6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에 다시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 요일 5:19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 요 12:31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
  • 고후 4: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 엡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3우리도 다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

직역 그들 가운데 우리도 모두 한때 우리 육체의 욕심들 안에서 지냈다. 육체와 생각들의 원하는 것들을 행하면서. 그리고 우리는 본성상 진노의 자녀들이었다, 나머지 사람들처럼.

1–2절에서 ‘너희’(이방인)라고 했던 바울이 3절에서 "우리도 다"라고 말합니다. 율법을 받은 유대인,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던 바울 자신도 예외가 아니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그나마 낫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롬 3:9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

셋째 힘은 바깥이 아니라 안에 있습니다. "육체의 욕심." 성경에서 ‘육체’는 몸 자체가 나쁘다는 뜻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나 자기 중심으로 굽어진 사람의 본성을 말합니다. 세상(바깥의 흐름), 마귀(위에서 끄는 힘), 육체(안에서 당기는 갈망). 이 셋이 하나님 없는 사람을 끌고 다닙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것을 ‘세상, 육신, 마귀’라는 세 원수로 불러 왔습니다.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 죄는 몸의 쾌락만이 아닙니다. 바울은 ‘마음’, 곧 ‘생각’의 욕구도 말합니다. 교만, 질투, 미움, 남보다 나아지려는 욕망,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생각. 점잖고 교양 있는 죄도 똑같이 사람을 죽입니다.

그 결과 우리는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본질상’은 태어나면서부터, 본성으로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된 것이기도 하지만, 그 이전에 죄인의 본성을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짓습니다(시 51:5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그리고 하나님의 ‘진노’는 화가 나서 감정이 폭발하는 것이 아니라, 거룩하신 하나님이 악을 결코 그냥 두지 않으시는 공의로운 반대입니다. 1장에서 우리는 ‘아들들’이 되게 예정되었다고 했는데(1:5), 원래 우리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 4절이 대답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육체 사르크스 — 바울에게 ‘육체’는 몸(소마)과 다릅니다.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려는 인간 본성. 갈 5:19–21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의 목록에는 음행뿐 아니라 원수 맺음, 분쟁, 시기, 분냄, 당 짓는 것도 들어 있습니다.
  • 본질상 퓌세이 — ‘본성으로’. 갈 2:15 "우리는 본래(퓌세이) 유대인이요". 교회는 이 구절을 원죄 교리의 중요한 근거로 읽어 왔습니다.
  • 진노의 자녀 — ‘불순종의 아들들’(2절)과 같은 히브리식 표현. ‘진노를 받기로 된 자들’. 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함께 읽을 말씀
  • 롬 3:9-10, 23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갈 5:16-17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 시 51:5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 요일 2:16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 딛 3:3우리도 전에는 어리석은 자요 순종치 아니한 자요 속은 자요 각색 정욕과 행락에 종노릇한 자요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정직한 진단이 치료의 시작입니다

의사가 병을 정확하게 말해 주지 않으면 환자는 치료받을 생각을 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우리의 옛 모습을 이렇게 어둡게 그리는 것은 우리를 절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은혜가 얼마나 큰지 보여 주려는 것입니다.

나는 ‘조금 부족했던 사람’이 아니라 ‘죽었던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살리셨도다"라는 말이 기적으로 들립니다. 그리고 아직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들을 바라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그들은 나보다 못한 사람들이 아니라, 전에 내가 있던 바로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2:4–10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 은혜로, 믿음으로, 선한 일을 위하여

원문 4절은 "그러나 하나님은(호 데 데오스)"으로 시작합니다.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두 단어라고 불리는 말입니다. 사람의 이야기가 죽음과 진노로 끝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 끼어드십니다. 상황을 바꾼 것은 우리가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이 단락은 하나님의 성품(4절), 하나님이 하신 일(5–6절), 그 목적(7절), 구원의 방식(8–9절), 구원의 열매(10절)로 이어집니다. 그 가운데 8–9절은 종교개혁의 세 표어 가운데 두 가지,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의 가장 분명한 근거가 되었습니다.

4그러나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큰 사랑을 인하여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직역 그러나 하나님은 긍휼에 부요하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분의 큰 사랑 때문에,

『개역한글』에서는 빠졌지만 원문에는 "그러나"가 있습니다. 1–3절의 어둠과 4절 이후의 빛 사이에 세워진 문입니다. 우리 인생에도 이런 ‘그러나’가 있습니다. "나는 죽었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 고백이 그리스도인의 간증입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신" 분입니다. ‘긍휼’은 비참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보고 불쌍히 여겨 돕는 마음입니다. 은혜가 ‘받을 자격 없는 자에게 주시는 것’이라면, 긍휼은 ‘마땅히 받을 벌을 거두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긍휼에 ‘부자’이십니다. 1:7 "은혜의 풍성함", 2:7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바울은 하나님의 마음을 말할 때마다 부자의 언어를 씁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바닥나지 않습니다(애 3:22–23 "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아침마다 새로우니").

그리고 하나님이 움직이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입니다. 원문은 ‘사랑’이라는 명사와 ‘사랑하다’라는 동사를 함께 써서 ‘그분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사랑으로’라고 강조합니다. 우리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니었습니다. 3절에서 보았듯 우리는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랑할 만한 대상을 사랑하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셔서 사랑스럽게 만드십니다. 롬 5:8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원어 · 번역 노트
  • 그러나 하나님은 호 데 데오스 — 원문 4절의 첫머리. 영어 번역들은 대부분 ‘But God’으로 살렸습니다. 『새번역』은 "그러나 자비가 넘치는 하나님께서는"으로 옮겼습니다.
  • 긍휼 엘레오스 — 70인역에서 히브리어 ‘헤세드’(변함없는 언약의 사랑)를 옮긴 말. 출 34:6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
  • 큰 사랑 — 원문 ‘디아 텐 폴렌 아가펜 아우투 헨 에가페센 헤마스’, ‘그가 우리를 사랑하신 그의 많은 사랑 때문에’. 사랑(아가페)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 애 3:22-23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 출 34:6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 요일 4:9-10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
  • 딛 3:4-5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나타낼 때에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5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직역 우리가 허물들로 죽어 있었을 때에도,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다. 은혜로 너희는 구원받은 자들이다.

드디어 주동사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죽은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충고나 교육이나 개선이 아니라 생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치신 것이 아니라 살리셨습니다.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나사로야 나오라" 하셨을 때(요 11:43), 죽은 나사로가 스스로 걸어 나올 힘을 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이 생명을 주었습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우리의 상태를 말합니다. "허물로 죽은 우리를." 1절과 같은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살아날 준비를 다 하고 손을 내밀 때 살리신 것이 아니라, 아직 죽어 있을 ‘때에’ 살리셨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단독 작품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1:20에서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이제 같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리스도 혼자만의 사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그 부활에 참여했습니다. 우리의 새 생명은 그리스도의 부활 생명입니다.

바울은 너무 감격스러워서 문장 중간에 괄호를 엽니다.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8절에서 다시 설명할 말을 여기서 참지 못하고 먼저 외칩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 것을 두고 ‘내가 노력해서’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오직 은혜입니다. ‘구원을 얻은’은 완료형입니다. 과거에 구원받았고, 그 구원이 지금도 그대로 유효하다는 뜻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함께 쉰 — 5–6절에는 ‘함께’가 붙은 동사가 세 개 이어집니다. 함께 살리셨고(쉬네조오포이에센), 함께 일으키사(쉬네게이렌), 함께 앉히시니(쉬네카티센). 바울은 ‘쉰’ 접두사를 좋아합니다. 롬 6:4–8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그와 함께 살 줄을 믿노니", 골 2:12–13, 3:1.
  • 구원을 얻은 세소스메노이 — ‘구원하다(소조)’의 완료 수동 분사. 과거의 완성된 행위와 그 결과의 지속을 함께 말합니다. 8절에서 한 번 더 같은 형태로 나옵니다.
  • 괄호 — 원문에는 괄호가 없지만, 문장 흐름을 끊고 끼어든 말이라서 많은 번역이 괄호나 줄표로 표시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2:13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에게 모든 죄를 사하시고
  • 롬 6:4-5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도 되리라
  • 요 11:25, 43-44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 겔 37:9-10생기야 사방에서부터 와서 이 사망을 당한 자에게 불어서 살게 하라… 생기가 그들에게 들어가매 그들이 곧 살아 일어나서
6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셨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직역 또 함께 일으키시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늘에 있는 곳들에 함께 앉히셨다.

두 번째, 세 번째 ‘함께’입니다. 1:20과 나란히 놓고 보면 놀랍습니다.
· 1:20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고" → 2:6 우리를 "함께 일으키사"
· 1:20 그리스도를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 2:6 우리를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높아지심이 그대로 우리의 것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우리는 지금 땅에 있지 않습니까? 바울도 로마 감옥에 앉아 있었습니다. 어떻게 ‘이미’ 하늘에 앉았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열쇠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입니다. 우리 몸은 땅에 있지만, 우리의 생명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감추어져 있습니다(골 3:3). 하나님 보시기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계신 자리에 함께 있습니다. 우리의 진짜 주소, 진짜 신분은 하늘에 있습니다(빌 3:20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앉았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앉는 것은 일을 마친 사람의 자세입니다.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다 이루셨습니다. 또 앉는 것은 다스리는 자의 자세입니다. 1:21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앉으셨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앉은 우리도 더 이상 2절의 ‘공중의 권세 잡은 자’ 밑에 있지 않습니다. 6:10–20의 영적 싸움은 이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먼저 앉아야(2:6), 바르게 걸을 수 있고(4:1), 굳게 설 수 있습니다(6:11).

원어 · 번역 노트
  • 함께 일으키사 쉬네게이렌 — 골 2:12,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 하늘에 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 1:3, 1:20과 같은 표현. 우리가 받은 복이 있는 곳(1:3), 그리스도께서 앉으신 곳(1:20), 우리가 함께 앉은 곳(2:6)이 같은 곳입니다.
  • 워치만 니 — 중국의 그리스도인 지도자 워치만 니는 에베소서를 ‘앉으라(2:6), 행하라(4:1), 서라(6:11)’로 요약한 『좌행참(坐行站, Sit Walk Stand)』이라는 책을 썼습니다. 앉음, 곧 그리스도의 완성된 일 안에서 쉬는 것이 모든 삶의 출발점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엡 1:20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 골 3:1-3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 빌 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계 3:21이기는 그에게는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7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직역 이는 다가오는 시대들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한 친절로 그분의 은혜의 넘치는 부요를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를 살리시고 하늘에 앉히셨을까요? 우리가 행복해지는 것도 물론 하나님의 뜻이지만, 그보다 더 큰 목적이 있습니다.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나타내다’는 원문으로 ‘증거물로 내보이다, 전시하다’는 뜻입니다. 미술관이 걸작을 걸어 두고 모든 사람이 와서 보게 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구원받은 우리를 영원히 전시하셔서 당신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지 보여 주실 것입니다. 앞으로 올 모든 시대, 영원 속에서 천사들과 모든 피조물이 구원받은 죄인들을 보며 ‘하나님의 은혜가 저 정도구나’ 하고 놀랄 것입니다. 3:10에서 바울은 교회를 통해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알게 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자비하심으로써" 나타납니다. ‘자비’는 친절하고 다정한 선함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신 뒤 마지못해 데리고 사시는 분이 아니라, 영원히 다정하게 대하시는 분입니다. 탕자에게 가장 좋은 옷과 가락지와 신을 신기고 잔치를 여신 아버지처럼(눅 15:22–23).

원어 · 번역 노트
  • 자비하심 크레스토테스 — ‘쓸모 있게 선함, 친절’. 롬 2:4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딛 3:4 "우리 구주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을". 마 11:30 "내 멍에는 쉽고"의 ‘쉽다’(크레스토스)와 같은 뿌리입니다.
  • 오는 여러 세대 — ‘다가오는 시대들’. 1:21의 "오는 세상"과 같은 말의 복수형. 영원한 미래 전체를 가리킵니다.
  • 나타내려 엔데이크뉘미 — 롬 9:22–23 "그 영광의 부요함을 알게 하고자 하셨을지라도"와 같은 생각.
함께 읽을 말씀
  • 엡 3:10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 딤전 1:16내가 긍휼을 입은 까닭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먼저 일체 오래 참으심을 보이사 후에 주를 믿어 영생 얻는 자들에게 본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눅 15:22-24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
  • 사 61:10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8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다 — 하나님의 선물이라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직역 왜냐하면 은혜로 너희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받은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너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5절의 괄호 속 외침을 바울이 이제 천천히 풀어 설명합니다. 구원의 원리가 세 마디로 정리됩니다.

① "그 은혜를 인하여" — 구원의 근원입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값없는 호의에서 흘러나옵니다. 우리가 받을 만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고 싶으셔서 주신 것입니다.

② "믿음으로 말미암아" — 구원을 받는 통로입니다. 원문은 ‘믿음 때문에’가 아니라 ‘믿음을 통하여’입니다. 믿음은 구원을 사는 값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미신 선물을 받는 빈손입니다. 굶주린 거지가 빵을 받으려고 손을 내밀었다고 해서 그 손이 빵값을 치른 것은 아닙니다. 믿음도 공로가 아니라 의지함입니다. 믿음의 가치는 믿음 자체에 있지 않고 믿음이 붙드는 그리스도께 있습니다.

③ "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 구원의 성격입니다. 선물은 일해서 받는 월급이 아닙니다. 월급을 받고 고맙다고 절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선물을 받으면 감사합니다. 구원이 선물이기에 그리스도인의 삶은 감사로 가득합니다.

여기서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오래된 논쟁이 있습니다(노트 참고). 바로 앞의 ‘믿음’만이 선물이라는 뜻일까요, 아니면 ‘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받은 것’ 전체가 선물이라는 뜻일까요? 문법적으로는 구원 전체를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러나 그 ‘전체’ 안에는 믿음도 들어 있습니다. 은혜도 선물이고, 믿음도 선물이고, 구원도 선물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너희에게서 난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이것이 투토 — 중성 대명사입니다. 그런데 ‘은혜(카리스)’도 ‘믿음(피스티스)’도 여성 명사입니다. 그래서 문법상 ‘이것’이 믿음 하나만을 가리킨다고 보기는 어렵고, 앞 문장 전체, 곧 ‘은혜로 믿음을 통해 구원받은 일’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칼뱅도 이 ‘이것’을 구원 전체로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믿음 자체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라는 점은 빌 1:29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행 18:27 "은혜로 말미암아 믿은 자들" 등에서 따로 확인됩니다.
  • 선물 도론 — 신약에서 바울은 이 단어를 여기서만 씁니다. 다른 곳에서는 ‘도레아’(롬 5:15, 고후 9:15 "말할 수 없는 그의 은사")를 씁니다.
  • 오직 은혜, 오직 믿음 —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오직 성경,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그리스도,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외쳤습니다. 이 구절은 그 가운데 은혜와 믿음의 가장 짧고 분명한 요약으로 여겨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3:24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 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 롬 4:4-5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겨지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겨지거니와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 딛 3:5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 요 4:10네가 만일 하나님의 선물과 또 네게 물 좀 달라 하는 이가 누구인 줄 알았더면
  • 사 55:1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 창 15:6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9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직역 행위들에서 난 것이 아니다. 이는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8절의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를 한 번 더 못 박습니다.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착하게 살기, 종교 의식에 참여하기, 많이 봉사하고 헌금하기. 이 모든 것은 아름다울 수 있지만 구원의 원인이 될 수는 없습니다. 죽은 사람(1절)은 아무리 노력해도 스스로 살아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가 나옵니다.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구원이 행위로 얻는 것이라면 천국은 자기 자랑으로 가득할 것입니다. "나는 기도를 이만큼 했지." "나는 저 사람보다 착하게 살았지." 하나님은 그런 자랑이 들어설 자리를 아예 없애셨습니다. 천국에서는 오직 한 가지 자랑만 울려 퍼질 것입니다. 어린 양의 자랑입니다(계 5:12).

자랑하지 못한다는 것은 슬픈 일이 아니라 자유로운 일입니다. 남과 비교하며 더 잘해야 한다는 압박에서 벗어납니다. 나보다 못해 보이는 사람을 깔볼 이유도, 나보다 나아 보이는 사람을 질투할 이유도 사라집니다. 모두가 똑같이 은혜로 살아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11–22절에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가 될 수 있는 바탕입니다. 할례를 자랑하던 유대인도,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던 이방인도 은혜 앞에서는 똑같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행위 에르곤 — 로마서와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주로 ‘율법의 행위’(롬 3:20, 28, 갈 2:16)라고 말했는데, 여기서는 ‘율법’을 빼고 그냥 ‘행위’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율법 준수뿐 아니라 모든 종류의 인간적 공로를 포함합니다.
  • 자랑 카우카오마이 — 바울이 자주 쓰는 말(신약 37회 중 35회가 바울 서신). 롬 3: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고전 1:29–31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함께 읽을 말씀
  • 롬 3:27-28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고전 1:29-31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 갈 6:14그러나 내게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으니
  • 렘 9:23-24지혜로운 자는 그 지혜를 자랑치 말라… 자랑하는 자는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이것으로 자랑할지니라
  • 눅 18:11-14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10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 —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직역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행위들을 위하여 창조되었다. 그 행위들은 하나님께서 미리 준비하셔서 우리가 그 안에서 걷도록 하신 것이다.

9절에서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다’라고 했는데, 10절에서 바울은 바로 ‘선한 행위를 위하여’ 우리가 지어졌다고 말합니다. 모순이 아닙니다. 순서의 문제입니다.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아 행위하는 것입니다. 선행은 구원의 뿌리가 아니라 열매입니다. 사과나무는 사과를 맺어서 사과나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사과나무이기 때문에 사과를 맺습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만드신 바’는 헬라어 포이에마로, 영어 poem(시)의 어원입니다. 장인이 공들여 만든 작품, 걸작을 뜻합니다. 신약에서 이 단어는 여기와 로마서 1:20(하나님께서 ‘만드신 만물’)에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지으신 것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지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쓰고 계신 한 편의 시입니다. 아직 다듬어지는 중이지만,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지으심을 받은 자." ‘짓다(크티조)’는 성경에서 하나님만 주어가 되는 동사입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구원은 옛사람을 수리한 것이 아니라 새로 창조한 것입니다(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이라").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선한 일들을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마치 길을 먼저 닦아 놓으시고 우리가 그 길을 걷게 하시는 것처럼. 2절에서 우리는 ‘세상 풍속을 좇아’ 걸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예비하신 선한 일 가운데로 걷습니다. 같은 동사 ‘행하다(걷다)’가 2장의 처음과 끝을 감쌉니다. 옛길과 새 길. 오늘 내 앞에 놓인 작은 섬김의 기회, 누군가를 돕고 위로할 기회는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예비해 두신 선한 일일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만드신 바 포이에마 — 70인역에서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쓰였습니다(시 92:4 "주의 행사로 나를 기쁘게 하셨으니", 143:5). 롬 1:20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지으심을 받은 크티스텐테스 — 2:15 "한 새 사람을 지어", 4:24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에 다시 나옵니다. 개인의 새 창조(2:10)가 공동체의 새 창조(2:15)로 이어집니다.
  • 전에 예비하사 프로에토이마센 — 롬 9:23 "영광 받기로 예비하신 바 긍휼의 그릇", 1:4–5의 ‘창세 전에, 예정하사’와 같은 흐름. 하나님은 구원만 미리 계획하신 것이 아니라 구원받은 사람의 삶도 미리 계획하셨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딛 2:14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선한 일에 열심하는 친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 약 2:17-18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 마 5:16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시 139:13-16주께서 내 장부를 지으시며… 나의 형질이 이루기 전에 주의 눈이 보셨으며 나를 위하여 정한 날이 하나도 되기 전에 주의 책에 다 기록이 되었나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하나님의 걸작입니다

은혜로 구원받았다는 말은 ‘이제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걸작으로 지으셨고, 그 걸작이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도록 선한 일들을 미리 준비해 두셨습니다.

구원받기 위해 애쓰던 삶은 끝났습니다. 이제는 구원받은 사람으로 기쁘게 걷는 삶이 시작됩니다. 오늘 하나님이 내 앞에 예비해 두신 선한 일은 무엇일까요? 잘하려고 애쓰기보다,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하며 그 길을 걸어 봅시다.

2:11–13그 때에 너희는… 이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바울은 이제 시선을 개인에서 공동체로 옮깁니다. 1–10절이 ‘죄인이 하나님과 화목함’이었다면, 11–22절은 ‘원수였던 두 무리가 서로 화목함’입니다. 특히 이방인 신자들에게 그들이 전에 어떤 자리에 있었는지 "생각하라", 곧 기억하라고 합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의 벽은 오늘날 우리가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높았습니다. 유대인은 이방인을 ‘개’라고 불렀고(마 15:26 참고), 이방인의 집에 들어가거나 함께 식사하는 것을 부정하게 여겼습니다(행 10:28). 이방인들도 유대인을 이상한 민족이라 경멸했습니다. 그런데 에베소 교회에서 바로 그 두 무리가 한 식탁에 앉아 떡을 떼고 있었습니다.

11기억하라 —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던 자들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에게 무할례당이라 칭함을 받는 자들이라

직역 그러므로 기억하라. 한때 너희, 육체로는 이방인들, 손으로 육체에 행한 이른바 ‘할례’라는 자들에게 ‘무할례’라고 불리던 자들이었다는 것을.

"그러므로 생각하라." 은혜를 받은 사람은 과거를 기억해야 합니다. 과거를 붙들고 괴로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내가 어디에서 건짐 받았는지 잊지 말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도 늘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신 5:15). 기억하는 사람이 감사하고, 기억하는 사람이 겸손하며, 기억하는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습니다.

이방인들은 유대인들에게 "무할례당"이라고 불렸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의 표시였습니다(창 17:10–11).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할례는 유대인이 이방인을 깔보는 자랑의 표시가 되었습니다. ‘무할례자’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더러운 자’라는 욕이었습니다(삼상 17:26 "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그런데 바울의 말투가 미묘합니다. "손으로 육체에 행한 할례당이라 칭하는 자들." ‘칭하는’, 곧 ‘이른바’라는 말을 붙이고, ‘손으로 육체에 행한’이라고 덧붙입니다. 성경에서 ‘손으로 만든’은 우상이나 사람이 만든 성전처럼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 아니라는 뜻으로 쓰입니다(행 7:48, 17:24). 바울은 진짜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롬 2:28–29, 골 2:11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이라고 말합니다. 유대인이 자랑하던 겉모양의 표시는 하나님 앞에서 결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렇게 바울은 양쪽 모두를 낮추어 같은 자리에 세웁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생각하라 므네모네우에테 — 현재 명령형, ‘계속 기억하라’. 바울 서신에서 기억은 감사와 순종의 출발점입니다(골 4:18, 살전 2:9).
  • 할례당, 무할례당 — 원문은 ‘할례(페리토메)’와 ‘포피(아크로뷔스티아)’라는 신체 용어를 그대로 써서 두 집단을 부릅니다. 『개역한글』의 ‘당(黨)’은 ‘무리’라는 뜻으로 붙였습니다.
  • 손으로 행한 케이로포이에토스 — ‘손으로 만든’. 막 14:58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히 9:11, 24. 2장 끝(21–22절)의 ‘성령 안에서 지어져 가는 성전’과 대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5:15너는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네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나니
  • 창 17:10-11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
  • 롬 2:28-29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 골 2: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 갈 6: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뿐이니라
12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소망도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였다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직역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없이 있었고, 이스라엘의 시민권에서 소외되었으며, 약속의 언약들에 대해서는 나그네였고, 소망을 갖지 못했으며, 세상에서 하나님 없는 자들이었다.

바울은 이방인들의 옛 처지를 다섯 가지로 그립니다. 1–3절이 ‘죄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끊어진 상태’였다면, 12절은 ‘하나님의 백성 바깥에 있던 상태’입니다.

① "그리스도 밖에." 1장에서 ‘그리스도 안에서’가 열한 번 나왔던 것과 정반대입니다. 모든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었는데, 그들은 그 밖에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은 적어도 메시아를 기다리기라도 했지만(1:12), 이방인들은 메시아가 누구인지조차 몰랐습니다.

②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세우신 공동체였습니다. 그 시민권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의 백성에 속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③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모세에게, 다윗에게 약속을 주셨고, 예레미야를 통해 새 언약을 약속하셨습니다. 이방인들은 그 약속의 상속자 명단에 이름이 없었습니다.

④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당시 그리스·로마 세계는 겉으로는 화려했지만 깊은 절망이 깔려 있었습니다. 그들의 묘비에는 이런 글귀가 흔했습니다. "나는 없었다. 나는 있었다. 나는 없다.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 죽음 너머의 소망이 없었습니다. ⑤ "하나님도 없는 자." 이상한 말입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를 비롯해 수많은 신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들을 ‘무신론자’(원문 아테오이)라고 부릅니다. 신이 많았지만 참 하나님은 없었습니다. 신이 많다는 것과 하나님을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일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하나님도 없는 아테오이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흥미롭게도 2세기 로마 사람들은 황제와 신들을 섬기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아테오이(무신론자)’라고 고발했습니다. 서머나의 폴리갑은 재판관이 "무신론자들을 없애라!"고 외치라고 하자, 이교도 군중을 가리키며 "무신론자들을 없애소서"라고 기도했다고 전해집니다.
  • 나라 폴리테이아 — ‘시민권, 공동체’. 19절 "동일한 시민"(쉼폴리타이)과 짝을 이룹니다.
  • 약속의 언약들 — 복수형. 아브라함 언약(창 12, 15, 17), 시내산 언약(출 19–24), 다윗 언약(삼하 7), 새 언약(렘 31:31–34). 롬 9:4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 소망이 없고 — 살전 4:13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함께 읽을 말씀
  • 롬 9:4-5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 살전 4:13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 갈 4:8그러나 너희가 그 때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여 본질상 하나님이 아닌 자들에게 종노릇하였더니
  • 행 17:23알지 못하는 신에게라 새긴 단도 보았으니
  • 렘 31:31보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13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다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

직역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한때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다.

"이제는." 4절의 ‘그러나 하나님은’에 이어 2장의 두 번째 큰 전환입니다. ‘그 때에’(11, 12절)와 ‘이제는’(13절)이 대조됩니다. 12절의 ‘그리스도 밖에’가 13절에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로 바뀌었습니다. 위치가 바뀌니 모든 것이 바뀌었습니다.

"멀리 있던 너희가… 가까와졌느니라." ‘멀다, 가깝다’는 이사야 57:19에서 온 표현입니다(17절에서 인용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께 가까운 백성, 이방인은 먼 백성으로 불렸습니다. 성전의 구조도 그랬습니다. 지성소에 가까울수록 거룩하고, 이방인은 가장 바깥뜰까지만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가장 멀리 있던 사람들이 가장 가까이 오게 되었습니다.

그 거리를 없앤 것은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1:7에서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죄를 용서했습니다. 2:13에서 그리스도의 피는 거리를 없앱니다. 십자가는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리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도 없앴습니다. 학벌, 재산, 출신, 민족, 세대의 거리.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사람들 사이에 다시 거리를 만드는 것은 십자가를 거스르는 일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이제는 뉘니 데 — 롬 3: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6:22, 7:6에서도 이 말이 바울 신학의 결정적 전환을 표시합니다.
  • 멀리, 가까이 — 유대 문헌에서 이방인이 개종하는 것을 ‘가까이 데려오다’라고 표현했습니다. 행 2: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57:19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내가 그를 고치리라
  • 행 2:39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 히 10:19-22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 골 1:20-21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어디에서 왔는지 잊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래 다니면 내가 처음부터 안에 있었던 사람처럼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면 새로 온 사람, 나와 다른 사람을 은근히 바깥사람 취급하게 됩니다. 바울은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우리도 모두 멀리 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데려왔고, 동시에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까이 데려왔습니다. 오늘 내가 일부러 거리를 두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까? 십자가가 없애신 그 거리를, 내가 다시 만들고 있지는 않습니까?

2:14–18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 한 새 사람을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두 무리를 하나로 만드셨는지 설명합니다. 이 단락에서 ‘화평(평안)’이라는 말이 네 번(14, 15, 17절 두 번), ‘하나, 한’이라는 말이 다섯 번 나옵니다(14, 15, 16, 18절). ‘둘’이라는 말도 반복됩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 그것이 십자가의 수평적 열매입니다.

흐름은 이렇습니다. 그리스도께서 ① 담을 허셨고(14절), ② 율법을 폐하셨으며(15절), ③ 한 새 사람을 지으셨고(15절), ④ 둘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으며(16절), ⑤ 오셔서 평안을 전하셨고(17절), ⑥ 그 결과 둘이 함께 아버지께 나아갑니다(18절).

14그는 우리의 화평 — 둘로 하나를 만드사 중간에 막힌 담을 허셨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직역 왜냐하면 그분 자신이 우리의 평화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은 양쪽을 하나로 만드시고, 가로막는 울타리의 가운데 벽, 곧 원수 됨을 그분의 육체로 허무셨다.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화평을 주셨다’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께서 바로 화평이시다’라고 말합니다. 화평은 그리스도와 떨어진 어떤 협정문이나 기술이 아니라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이사야는 메시아를 "평강의 왕"(사 9:6)이라고 불렀고, 미가는 "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미 5:5)고 했습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는 그리스도라는 화평이 있습니다.

"둘로 하나를 만드사." 유대인과 이방인, 이 둘을 하나로 만드셨습니다. 그 방법은 "중간에 막힌 담을… 허시고"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이 말을 듣고 아마 예루살렘 성전의 담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헤롯 성전에는 이방인의 뜰과 이스라엘의 뜰 사이에 사람 가슴 높이쯤 되는 돌담이 있었습니다. 그 담에는 헬라어와 라틴어로 경고문이 붙어 있었습니다. "이방인은 누구든지 이 담을 넘어 안으로 들어오지 말라. 붙잡히는 자는 죽음을 당할 것이며 그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 이 경고문 돌판이 1871년 실제로 발굴되어 지금 이스탄불 박물관에 있습니다.

바울은 그 담 때문에 감옥에 갇혔습니다. 사도행전 21:27–36에서 유대인들은 바울이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를 성전 안으로 데리고 들어갔다고 오해하여 폭동을 일으켰고, 그 일로 바울은 체포되어 결국 로마 감옥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에베소서를 쓰는 바울에게 ‘막힌 담’은 그를 쇠사슬에 묶이게 한 바로 그 담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감옥에서 선언합니다. 그 담은 이미 무너졌다고.

그리스도께서 담을 허무신 방법은 "자기 육체로"였습니다. 십자가에서 찢기신 몸으로입니다. 예수님이 숨을 거두실 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막 15:38).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휘장이 찢어진 그 순간,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도 무너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막힌 담 메소토이콘 투 프라그무 — ‘울타리(프라그모스)의 중간 벽(메소토이콘)’. 메소토이콘은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성전의 담 외에도, 율법이 유대인을 이방인에게서 지키는 ‘울타리’라는 유대 전통의 표현(『아리스테아스의 편지』 139절, "율법이 우리를 깨뜨릴 수 없는 울타리와 쇠벽으로 둘렀다")도 배경일 수 있습니다. 15절에서 율법을 말하는 것을 보면 두 그림이 함께 있습니다.
  • 성전 경고문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도 이 경고문을 기록했습니다(『유대 고대사』 15.417). 1871년 클레르몽-가노가 발견한 비문은 지금 이스탄불 고고학 박물관에, 1935년에 발견된 다른 조각은 예루살렘 이스라엘 박물관에 있습니다.
  • 원수 된 것 에크트라 — 원문에서 ‘원수 된 것’이 ‘막힌 담’과 동격으로 놓였는지, 15절의 ‘폐하셨으니’의 목적어인지 해석이 갈립니다. 『개역한글』은 담과 동격으로 읽었습니다. 16절 끝에도 ‘원수 된 것’이 다시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9:6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미 5:5이 사람은 평강이 될 것이라
  • 행 21:28-29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이는 저희가 전에 에베소 사람 드로비모가 바울과 함께 성내에 있음을 보고
  • 막 15:37-38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운명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15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시고 둘로 한 새 사람을 지으셨다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직역 그분은 조문들로 된 계명들의 율법을 폐하셨다. 이는 둘을 자기 안에서 하나의 새 사람으로 창조하여 평화를 이루시고,

그리스도께서는 담을 허무신 데서 그치지 않고 그 담의 뿌리를 뽑으셨습니다. "의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 말은 조심해서 읽어야 합니다. 예수님은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 5:17)고 하셨고, 바울도 "율법은 거룩하며"(롬 7:12)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폐하셨다는 것일까요?

바울은 율법을 세 겹으로 꾸며 말합니다. ‘율법’ → ‘계명의 율법’ → ‘의문(조문)에 속한 계명의 율법’. 특히 ‘의문’(도그마)은 규정, 조항을 뜻합니다. 그리스도께서 폐하신 것은 하나님의 거룩한 뜻 자체가 아니라,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던 조항들입니다. 할례, 음식 규정, 정결 의식, 절기 규정 같은 것들입니다. 이런 규정들은 원래 그리스도가 오실 때까지 이스라엘을 구별하는 그림자였는데(골 2:16–17), 이제 실체가 오셨으니 그 역할이 끝났습니다. 또 율법을 지켜 의롭게 되려는 길, 율법이 우리를 정죄하던 효력도 십자가에서 끝났습니다(골 2:14 "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그리고 그 목적은 "이 둘로 자기의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그리스도께서 이방인을 유대인으로 만드신 것도, 유대인을 이방인으로 만드신 것도 아닙니다. 둘 다 아닌 제3의 새로운 인류를 지으셨습니다. 2세기의 한 문서는 그리스도인을 ‘제3의 종족’이라고 불렀습니다. 유대인도 헬라인도 아닌,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10절에서 개인을 ‘지으셨다’고 한 그 동사가 여기서 공동체를 ‘지으셨다’에 쓰였습니다. 교회는 사람들이 모여서 만든 단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새 인류입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보이지 않는 ‘조항’들이 생겨납니다. 이런 옷을 입어야 하고, 이런 말투를 써야 하고, 이런 배경이어야 우리 사람이라는 무언의 규칙들. 그리스도께서 허무신 담을 다시 쌓는 일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의문 도그마 — ‘결정, 칙령, 조항’. 눅 2:1 "가이사 아구스도가 영을 내려(도그마)", 골 2:14, 20 "의문에 순종하느냐". 영어 dogma의 어원입니다.
  • 폐하셨으니 카타르게오 — ‘무력하게 하다, 효력을 정지시키다’.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에서도 같은 동사가 쓰였습니다. 바울은 율법의 도덕적 뜻은 세우고, 구별과 정죄의 기능은 폐하였다고 봅니다.
  • 한 새 사람 — 4:24 "새 사람을 입으라"는 개인의 새 사람이지만, 여기서는 공동체 전체가 ‘한 사람’입니다. 2세기 『디오그네투스에게 보낸 편지』와 『베드로의 설교』 단편은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종족’, ‘제3의 방식으로 예배하는 사람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2:14우리를 거스리고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 골 2:16-17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이것들은 장래 일의 그림자나 몸은 그리스도의 것이니라
  • 행 10:28하나님께서 내게 지시하사 아무 사람이든지 속되다 하거나 깨끗지 않다 하지 말라 하시기로
  • 고후 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 갈 6:15할례나 무할례가 아무것도 아로되 오직 새로 지으심을 받는 것뿐이니라
16십자가로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 원수 된 것을 소멸하시고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직역 그리고 둘을 한 몸 안에서 십자가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시키려 하심이다. 그 십자가로 원수 됨을 죽이시고.

14–15절이 사람과 사람 사이의 화해였다면, 16절은 하나님과의 화해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서로 화해시키셨을 뿐 아니라,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습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사람끼리 먼저 사이좋게 지내고 함께 하나님께 나아간 것이 아닙니다. 둘 다 하나님과 원수였는데(롬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둘 다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고, 그렇게 하나님께 함께 가까워지자 서로도 가까워졌습니다. 원의 중심에 가까워질수록 반지름 위의 점들끼리도 가까워지는 것처럼.

‘한 몸’은 두 가지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는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입니다(1:23). 다른 하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한 몸에 유대인의 죄와 이방인의 죄를 함께 지셨습니다. 십자가에서 함께 담당된 사람들이 부활하신 몸 안에서 함께 살아납니다.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소멸하다’는 원문으로 ‘죽이다’입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셨는데, 바로 그 죽음으로 그리스도께서 원수 됨을 죽이셨습니다. 미움이 미움을 죽인 것이 아니라 사랑이 미움을 죽였습니다. 십자가는 패배처럼 보였지만, 사실은 원수 됨이 처형된 자리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화목하게 아포카탈랏소 — 보통 ‘화목하다’(카탈랏소, 롬 5:10, 고후 5:18–20)에 ‘완전히’(아포)를 더한 말. 신약에서 여기와 골 1:20, 22에만 나옵니다.
  • 한 몸 — 고전 10:17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고전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교회가 함께 떡을 떼는 주의 만찬은 이 ‘한 몸’을 눈으로 보여 주는 일입니다.
  • 소멸하시고 아포크테이나스 — ‘죽이다, 처형하다’. 그리스도께서 죽임을 당하신(아포크테이노, 마 16:21) 바로 그 십자가에서 원수 됨을 죽이셨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5:18-19하나님이 그리스도를 인하여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 롬 5:10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 골 1:21-22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몸으로 말미암아 죽음을 인하여 화목케 하사
  • 고전 12:13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17먼 데 있는 너희와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다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직역 그리고 그분이 오셔서, 먼 데 있던 너희에게 평화를, 가까운 데 있던 자들에게 평화를 복음으로 전하셨다.

바울은 이사야 57:19를 인용합니다. "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이사야서에서 원래 ‘먼 데 있는 자’는 바벨론 포로로 흩어진 유대인이었지만, 바울은 이 말씀이 이방인까지 포함하는 것으로 읽습니다. 13절에서 ‘멀리 있던 너희’가 가까워졌다고 한 그 말씀입니다.

"오셔서… 평안을 전하셨으니." 그리스도께서 언제 이방인에게 평안을 전하셨을까요? 예수님의 지상 사역은 주로 이스라엘에 집중되었습니다(마 15:24). 바울이 말하는 것은 십자가와 부활 이후의 일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셔서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요 20:19, 21)라고 하셨고, 성령을 보내셔서 사도들의 입을 통해 온 세상에 평안의 복음을 전하셨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서 전한 복음도 바울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해 오셔서 전하신 것입니다.

평안을 두 번 말합니다. 먼 데 있는 자에게도 평안,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도 평안. 둘이 받는 평안은 같은 평안입니다. 이방인에게는 할인된 평안, 유대인에게는 고급 평안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같은 복음, 같은 평안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전하고 유앙겔리사토 — ‘복음을 전하다’. 사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의 70인역과 같은 동사입니다. 바울은 이사야 52:7과 57:19를 함께 떠올리고 있는 것 같습니다.
  • 오셔서 — 성육신(지상 사역)으로 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부활 이후 성령과 사도들을 통한 복음 선포로 봅니다. 행 10:36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보내신 말씀".
함께 읽을 말씀
  • 사 57:19먼 데 있는 자에게든지 가까운 데 있는 자에게든지 평강이 있을지어다 평강이 있을지어다
  • 사 52:7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 요 20:19-21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 행 10:34-36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만유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화평의 복음을 전하사
18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었다

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직역 왜냐하면 그분을 통해 우리 양쪽 모두가 한 영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화해의 최종 열매입니다. "우리 둘이…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성전에서 이방인은 바깥뜰까지만 갈 수 있었고, 유대인 남자는 이스라엘의 뜰까지, 제사장은 성소까지,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길은 단계별로 막혀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대인과 이방인이 함께, 같은 길로,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이 짧은 절 안에 삼위일체가 다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아들), 한 성령 안에서(성령), 아버지께(아버지). 1장의 찬송이 아버지–아들–성령의 순서였다면, 여기서는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이 아들을 통하여,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로 이어집니다. 기도와 예배는 바로 이 길을 걸어가는 일입니다.

‘나아감’은 원래 왕궁에서 왕을 알현하도록 안내받는 것을 뜻하는 말입니다. 아무나 왕 앞에 나갈 수 없었습니다. 누군가 데리고 들어가야 했습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손을 잡고 아버지 앞으로 데리고 들어가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도할 때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 왕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두려워 떨며 나가는 신하가 아니라, 반겨 주시는 아버지께 달려가는 자녀입니다(3:12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원어 · 번역 노트
  • 나아감 프로사고게 — 신약에서 세 번(롬 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엡 2:18, 3:12). 동사형은 벧전 3:18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 한 성령 — 4:4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한 분이시니"를 미리 보여 줍니다. 성령은 한 분이시기에, 성령 안에 있는 사람들은 하나입니다. 고전 12:13.
함께 읽을 말씀
  • 롬 5:1-2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 엡 3:12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 히 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 요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 벧전 3:18그리스도께서도 한 번 죄를 위하여 죽으사 의인으로서 불의한 자를 대신하셨으니 이는 우리를 하나님 앞으로 인도하려 하심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십자가가 허문 담을 다시 쌓지 맙시다

예루살렘 성전의 경고문은 ‘이 선을 넘으면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 담을 당신의 몸으로 허무셨습니다. 이제 교회 안에는 ‘들어오지 마시오’라는 표지판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온 사람, 나와 세대가 다른 사람, 배경이 다른 사람, 다른 나라에서 온 사람을 생각해 보십시오. 그들과 나는 같은 십자가로, 같은 성령 안에서, 같은 아버지께 나아가는 한 몸입니다. 오늘 내가 먼저 그 사람에게 평안의 인사를 건네 봅시다.

2:19–22하나님의 권속이요 — 성령 안에서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처소

2장은 세 가지 그림으로 마무리됩니다. 이방인 신자들은 이제 ① 한 나라의 시민이고, ② 한 집안의 식구이며, ③ 한 성전의 돌들입니다. 나라에서 집으로, 집에서 성전으로 점점 더 가까워지고 친밀해집니다.

특히 성전 그림은 14절의 ‘막힌 담’과 짝을 이룹니다. 예루살렘 성전에는 이방인을 막는 담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지금 짓고 계신 새 성전은 이방인이 들어가는 곳이 아니라, 이방인들이 바로 그 성전의 재료가 되는 곳입니다.

19이제부터 너희는 외인도 손도 아니요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

그러므로 이제부터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

직역 그러므로 이제 너희는 더 이상 나그네도 거류민도 아니요, 성도들과 함께 시민이요, 하나님의 집 식구들이다.

"그러므로 이제부터." 11–18절의 결론입니다. 바울은 먼저 ‘아닌 것’을 말하고, 다음에 ‘인 것’을 말합니다.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외인’은 외국에서 온 나그네이고, ‘손’은 원문으로 ‘거류민’, 곧 그 도시에 살지만 시민권이 없는 사람입니다. 로마 시대에 거류민은 세금은 냈지만 투표권이나 법적 보호가 제한되었습니다. 늘 ‘우리는 여기 사람이 아니다’라는 느낌을 안고 살았습니다. 이방인 신자들도 교회 안에서 혹시 그런 느낌을 받았을지 모릅니다. ‘우리는 원래 이스라엘이 아니니까, 손님처럼 조심스럽게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바울은 단호하게 말합니다.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이방인 신자들은 이스라엘의 성도들, 그리고 모든 세대의 하나님의 백성과 똑같은 시민권을 가졌습니다. 12절에서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었던 그들이 이제 하나님 나라의 정식 시민이 되었습니다. 이등 시민은 없습니다.

그리고 더 가까운 말이 이어집니다. "하나님의 권속이라." ‘권속’은 한집에 사는 식구입니다. 시민은 같은 나라에 살지만 서로 모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식구는 한 식탁에 앉습니다. 1:5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되었습니다. 아버지가 같으니 우리는 형제자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집안입니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서로를 ‘형제’, ‘자매’라고 불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손 파로이코이 — ‘곁에(파라) 사는 자(오이코스)’. 벧전 2:11 "나그네와 행인 같은 너희를 권하노니"에도 쓰였습니다. 흥미롭게도 베드로는 그리스도인이 이 세상에서는 ‘거류민’이라고 말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기에, 이 세상에서는 나그네가 됩니다.
  • 동일한 시민 쉼폴리타이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폴리테이아’(12절 ‘나라’)와 짝을 이룹니다.
  • 권속 오이케이오이 — 갈 6:10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오이케이우스 테스 피스테오스), 딤전 5:8 "자기 친족 특히 자기 가속을 돌아보지 아니하면".
  • 권속(眷屬) — ‘돌보아야 할 식구’라는 뜻의 한자어. 『개역개정』도 같은 말을 씁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빌 3:20오직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 갈 6:10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 히 11:13-16외국인과 나그네로라 증거하였으니… 저희가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
  • 막 3:34-35내 모친과 내 동생들을 보라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내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 사 56:6-7또 나 여호와에게 연합하여… 이방인마다… 나의 집은 만민의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
20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직역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졌고, 그리스도 예수 자신이 모퉁이 돌이시다.

이제 그림이 집안에서 건물로 바뀝니다. 하나님의 집안(19절)이 하나님의 집(성전)이 됩니다.

건물의 터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입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 자신이라기보다, 그들이 전한 복음과 하나님의 계시가 터입니다. 여기서 ‘선지자’는 구약 선지자일 수도 있지만, 순서가 ‘사도들과 선지자들’인 것과 3:5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4:11을 보면 초대교회의 선지자들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들이 받은 계시는 지금 우리 손에 있는 신약 성경으로 남아 있습니다. 교회는 이 터 위에 세워집니다. 새로운 터를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터는 한 번 놓으면 다시 놓지 않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돌,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고대 건축에서 모퉁이 돌은 건물을 지을 때 가장 먼저 놓는 큰 돌입니다. 두 벽이 만나는 모서리에 놓여, 그 돌을 기준으로 건물 전체의 방향과 수평이 정해졌습니다. 모퉁이 돌이 비뚤면 건물 전체가 비뚤어집니다. 유대인의 벽과 이방인의 벽이 그리스도라는 모퉁이 돌에서 만나 하나의 건물이 됩니다.

이 그림은 시편 118:22와 이사야 28:16에서 왔습니다. "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사람들이 버린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모퉁이 돌로 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시편을 당신에게 적용하셨고(마 21:42), 베드로도 그렇게 설교했습니다(행 4:11, 벧전 2:6–7).

원어 · 번역 노트
  • 터 테멜리온 — 고전 3:10–11 "내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매… 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고린도전서에서는 그리스도가 터, 여기서는 사도와 선지자가 터이고 그리스도가 모퉁이 돌입니다. 같은 진리를 다른 각도에서 그린 것입니다. 계 21:14 "그 성의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 모퉁이 돌 아크로고니아이오스 — ‘가장 끝(아크로) 모퉁이(고니아)의’. 70인역 사 28:16에서 온 말입니다. 대부분은 기초의 모퉁이 돌로 보지만, 일부 학자는 아치나 문 꼭대기에 끼워 전체를 고정하는 ‘쐐기돌(갓돌)’로 봅니다. 21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를 보면 두 해석 모두 그리스도가 건물 전체를 붙드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118:22-23건축자의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는 여호와의 행하신 것이요 우리 눈에 기이한 바로다
  • 사 28:16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그것을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 마 21:42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나니 이것은 주로 말미암아 된 것이요
  • 벧전 2:4-7사람에게는 버린 바가 되었으나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이신 예수에게 나아와 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 고전 3:10-11이 닦아 둔 것 외에 능히 다른 터를 닦아 둘 자가 없으니 이 터는 곧 예수 그리스도라
21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간다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이 되어 가고

직역 그분 안에서 건물 전체가 꼭 맞게 짜맞추어져, 주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 간다.

건물은 아직 공사 중입니다. "성전이 되어 가고." 원문은 ‘자라 간다’입니다. 건물이 자란다는 것은 이상한 말이지만, 이 건물은 살아 있는 돌들로 지어지기 때문입니다(벧전 2:5 "산 돌같이"). 새 신자가 더해질 때마다,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성숙할 때마다 성전은 자랍니다.

"서로 연결하여." 원문은 석공이 돌을 다듬어 옆 돌과 빈틈없이 맞추는 모습을 그리는 말입니다. 돌들은 원래 모양이 제각각입니다. 그대로 쌓으면 틈이 생기고 무너집니다. 그래서 석공은 돌을 깎고 다듬어 서로 맞춥니다. 교회 안에서 성도들이 부딪히고 깎이는 아픔이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로 꼭 맞는 돌로 다듬고 계시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솔로몬 성전은 돌을 채석장에서 미리 다듬어 와서 공사 현장에서는 망치 소리가 나지 않았다고 합니다(왕상 6:7). 하나님은 우리를 삶의 현장에서 다듬어 하늘의 성전에 꼭 맞게 하십니다.

이 건물은 "성전"입니다. 원문 ‘나오스’는 성전 건물 전체가 아니라 하나님이 실제로 거하시는 가장 안쪽, 성소와 지성소를 가리킵니다. 그리고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예루살렘에는 아직 헤롯 성전이 서 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이 지금 짓고 계신 참 성전은 돌로 만든 그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로 지어지는 교회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몇 년 뒤인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은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건물마다 파사 오이코도메 — 관사 없이 ‘모든 건물’이라 ‘각 건물마다’(『개역한글』)로 읽을 수 있지만, 문맥상 ‘건물 전체가’로 보는 번역이 많습니다(『개역개정』 "건물마다"는 유지, 『새번역』 "건물 전체가"). 일부 사본에는 관사가 있어 ‘전체’의 뜻이 분명합니다.
  • 서로 연결하여 쉬나르몰로게오 — ‘함께 + 이음매 + 말하다(맞추다)’. 신약에서 여기와 4:16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에만 나옵니다. 건물과 몸, 두 그림에 같은 말을 씁니다.
  • 성전 나오스 — 고전 3:16 "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고후 6:16.
함께 읽을 말씀
  • 벧전 2:5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고전 3:16-17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왕상 6:7이 전은 건축할 때에 돌을 떠 가지고 와서 건축하였으므로 건축하는 동안에 전 속에서는 방망이나 도끼나 모든 철 연장 소리가 들리지 아니하였으며
  • 엡 4: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22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로 함께 지어져 간다

너희도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직역 그분 안에서 너희도 함께 지어져,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가 되어 가고 있다.

"너희도." 다시 한번 이방인 신자들을 부릅니다. 예루살렘 성전 경고문은 ‘이방인은 들어오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방인을 성전 안으로 들이신 정도가 아니라, 이방인을 성전 자체로 삼으셨습니다. 쫓겨나던 사람들이 하나님의 집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 성경 전체는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사시는 이야기’입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은 사람과 거니셨습니다(창 3:8). 죄로 쫓겨난 뒤 하나님은 광야에서 성막을 짓게 하시고 "그들 중에 거할 성소"(출 25:8)로 삼으셨습니다. 솔로몬 성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했습니다(왕상 8:11). 그리고 마침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습니다’(요 1:14, 원문 ‘장막을 치셨다’). 이제 하나님은 성령으로 교회 가운데 거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계 21:3)라는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교회는 그 이야기의 지금 장(章)입니다.

이 짧은 절에도 삼위일체가 다 들어 있습니다. 예수 안에서,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처소. 2장은 삼위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거하신다는 선언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동사는 "지어져 가느니라", 현재 진행형입니다. 교회는 완성된 건물이 아니라 공사 중인 건물입니다. 그래서 아직 먼지가 날리고 비계가 서 있고 소음이 납니다. 교회의 불완전함에 실망할 때, 이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공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고,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처소 카토이케테리온 — ‘영구히 머무는 거처’. 신약에서 여기와 계 18:2에만 나옵니다. 70인역에서는 하나님의 하늘 처소(왕상 8:39, 43 "주의 계신 곳 하늘") 또는 성전(출 15:17 "주의 처소를 삼으신 곳")을 가리켰습니다.
  • 함께 지어져 쉬노이코도메오 — ‘함께 + 집 + 짓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2장 5–6절의 세 번의 ‘함께’에 이어, 19–22절에는 ‘함께 시민’(19), ‘함께 연결하여’(21), ‘함께 지어져’(22)가 나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된 사람들은 서로 ‘함께’ 됩니다.
  • 예수 안에서 — 원문은 ‘그 안에서(엔 호)’로, 21절의 ‘주 안에서’를 받습니다. 『개역한글』은 뜻을 풀어 ‘예수 안에서’로 옮겼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25: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은 나를 위하여 짓되
  •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 고후 6:16우리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전이라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 계 21:3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 겔 37:27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하나님이 거하시는 집의 돌 하나입니다

혼자 떨어져 있는 돌은 아무리 아름다워도 집이 되지 못합니다. 다듬어지고 다른 돌과 맞추어질 때 비로소 하나님의 성전이 됩니다. 교회 안의 부딪힘과 불편함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서로 꼭 맞게 다듬으시는 과정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집에 손님으로 와 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 집의 식구이고, 그 집의 돌입니다. 오늘 내 곁의 성도를 ‘하나님이 함께 쌓고 계신 옆 돌’로 바라봅시다. 그리고 공사 중인 교회를 향해 실망 대신 기대를 품읍시다. 건축자는 하나님이십니다.

Before & Now · 대조

2장, "전에는"과 "이제는"

바울은 은혜 이전과 이후를 나란히 놓아 보여 줍니다
전에는이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자 (1)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난 자 (5)
세상 풍속과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라 걸음 (2)하나님이 예비하신 선한 일 가운데 걸음 (10)
본질상 진노의 자녀 (3)하나님의 작품, 걸작 (10)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2)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은 자 (6)
그리스도 밖에 (12)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13)
멀리 있던 자 (13)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진 자 (13)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 (12)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가는 자 (18)
외인이요 손 (19, 12)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 (19)
막힌 담으로 갈라진 둘 (14)한 새 사람, 한 몸 (15–16)
손으로 지은 성전 바깥에 서 있던 자 (11)성령 안에서 지어져 가는 하나님의 처소 (22)

이 모든 변화의 경첩에는 두 개의 문이 있습니다. 4절의 "그러나 하나님은", 그리고 13절의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변화를 일으킨 것은 우리의 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과 그리스도의 피였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2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허물1, 5절

선을 넘어 넘어진 잘못. 원문 파라프토마.

풍속風俗 · 2절

세상이 흘러가는 방식, 시대정신. 원문 아이온.

공중空中 · 2절

하늘과 땅 사이. 악한 영들이 활동하는 영역으로 여겨짐.

본질상本質上 · 3절

본성으로, 태어나면서부터.

진노震怒 · 3절

악을 그냥 두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거룩하고 공의로운 반대.

긍휼矜恤 · 4절

비참한 처지에 있는 자를 불쌍히 여겨 돕는 마음.

자비慈悲 · 7절

친절하고 다정한 선함. 원문 크레스토테스.

만드신 바10절

작품, 걸작. 원문 포이에마(영어 poem의 어원).

할례당割禮黨 · 11절

할례받은 무리, 곧 유대인.

외인外人 · 12, 19절

시민권이 없는 바깥사람, 나그네.

화평和平 · 14–17절

원수 됨이 사라지고 하나가 된 평화. 그리스도 자신.

의문儀文 · 15절

규정으로 된 조문. 원문 도그마.

폐하다廢하다 · 15절

효력을 끝내다, 무력하게 하다.

화목和睦 · 16절

원수 되었던 관계가 서로 화해함.

손客 · 19절

시민권 없이 잠시 머무는 거류민.

권속眷屬 · 19절

한집에 사는 식구.

모퉁이 돌20절

건물 전체의 기준이 되는 모서리의 주춧돌.

처소處所 · 22절

머물러 사는 곳, 거처.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1–3절은 은혜 이전의 우리를 ‘죽었던 자’라고 부릅니다. 나는 나의 옛 모습을 ‘조금 부족했던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죽었던 사람’으로 생각합니까? 그 차이가 은혜를 바라보는 내 마음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2. 나의 삶에서 "그러나 하나님은"(4절)이라고 고백할 수 있는 순간은 언제였습니까? 함께 나누어 봅시다.
  3. ‘행위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선한 행위를 위하여 지음 받았다’(8–10절). 이 순서가 바뀌면 신앙생활이 어떻게 달라질까요?
  4. 하나님이 나를 위해 ‘전에 예비하신’ 선한 일(10절)은 무엇일까요? 이번 주에 내 앞에 놓인 작은 섬김의 기회를 찾아봅시다.
  5. 우리 교회 안에, 또는 내 마음속에 아직 서 있는 ‘중간에 막힌 담’(14절)은 무엇입니까? 그 담을 허무는 첫걸음은 무엇일까요?
  6. 교회가 ‘하나님의 권속’(19절)이라는 사실은, 교회에 처음 온 사람이나 오래 다녔지만 소외된 사람을 대하는 나의 태도를 어떻게 바꿉니까?
  7. ‘공사 중인 성전’(21–22절)이라는 그림은, 교회의 부족함에 실망할 때 어떤 위로와 도전을 줍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