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3절까지 — 아버지의 택하심, 아들의 구속, 성령의 인치심, 그리고 그것을 알게 해 달라는 바울의 기도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EPHESIANS 1:3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장 들어가며
감옥에 갇힌 사도가 쓴, 신약에서 가장 높이 올라가는 찬송으로 시작하는 편지
에베소서는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을 때(주후 60–62년경) 쓴 편지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고 부릅니다(3:1, 4:1, 6:20 "쇠사슬에 매인 사신").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편지에는 감옥의 어두움이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오히려 바울은 감옥 벽을 뚫고 하늘로 올라가듯,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신 일을 내려다보며 찬송합니다.
에베소는 오늘날 튀르키예 서쪽 해안에 있던 대도시로, 로마 제국의 아시아 지방 수도이자 인구 20만이 넘는 상업 도시였습니다. 고대 세계 7대 불가사의 중 하나인 아데미(아르테미스) 신전이 있었고, 마술과 주술이 성행했습니다(행 19:19, 마술 책을 불태운 값이 은 오만, 오늘날로 치면 수십억 원에 이르는 엄청난 금액이었습니다). 바울은 이 도시에서 3년 가까이 머물며 복음을 전했고(행 19:10, 20:31), 에베소 장로들과 눈물로 작별했습니다(행 20:17–38).
에베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1–3장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을 받았는가’(신분, 교리)이고, 4–6장은 ‘그러므로 어떻게 살 것인가’(생활, 실천)입니다. 4:1의 "그러므로"가 그 경첩입니다. 앉아 있는 것(2:6 "하늘에 앉히시니")이 먼저 있고, 그다음에 걷는 것(4:1 "행하여")이 오며, 마지막에 서는 것(6:11 "능히 서기 위하여")이 옵니다.
1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① 짧은 인사(1–2절). ② 헬라어로 한 문장인 거대한 찬송 — 아버지께서 택하시고(3–6절), 아들께서 구속하시고(7–12절), 성령께서 인치셨다(13–14절). ③ 그 복을 성도들이 실제로 ‘알게’ 해 달라는 기도(15–19절). ④ 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만물 위에 앉히셨으며, 그분을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20–23절).
핵심 구절
1:3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이 한 절이 3–14절 전체의 제목이고, 에베소서 전체의 출발점입니다.
열쇠 말
그리스도 안에서
3–14절에만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에서,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가 열한 번 나옵니다. 모든 복은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후렴구
6, 12, 14절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가 세 번 반복됩니다. 성부·성자·성령의 일을 하나씩 노래한 뒤 같은 후렴으로 맺습니다.
기도의 핵심
17–19절
더 많이 받게 해 달라는 기도가 아니라, 이미 받은 것을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에베소에 있는"
가장 오래된 몇 사본에는 이 말이 없습니다. 여러 교회에 돌려 읽힌 편지였을 가능성. 노트 참고.
3절 "신령한 복"
神靈한, ‘성령에 속한’ 복. 원문 프뉴마티코스. 막연히 ‘정신적인’ 복이 아님.
5절 "예정하사"
豫定, 미리 정함. 원문 프로오리조, ‘미리 경계를 긋다’.
6, 14절 "찬미하게"
『개역개정』은 ‘찬송하게’. 뜻은 같습니다.
7, 14절 "구속"
救贖, 값을 치르고 건져 냄. 『개역개정』은 ‘속량’.
10절 "통일되게"
원문 아나케팔라이오오, ‘하나의 머리 아래 모으다’. 노트와 ‘더 깊이’ 참고.
14절 "보증"
保證, 원문 아라본은 ‘계약금, 선금’.
17절 "계시의 정신"
『개역개정』은 ‘계시의 영’. 여기서 ‘정신’은 성령을 가리킵니다.
21절 "정사와 권세"
政事·權勢,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들의 이름.
23절 "충만"
充滿, 원문 플레로마. 가득 채움, 그리고 가득 채워진 것.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1:1–2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된 바울이 성도들에게
고대의 편지는 ‘보내는 사람 → 받는 사람 → 인사’ 순서로 시작했습니다. 바울도 이 형식을 따르지만, 짧은 인사 안에 복음의 핵심을 담습니다. 사도직은 하나님의 뜻에서 나왔고, 받는 이들은 ‘성도’이자 ‘신실한 자’이며, 그들에게 은혜와 평강을 빕니다.
1하나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직역 하나님의 뜻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인 바울이,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믿는 자들에게.
바울은 자기를 소개하면서 먼저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라고 말합니다. 그가 사도가 된 것은 스스로 원해서도, 교회가 투표로 뽑아서도 아니었습니다. 다메섹 길에서 교회를 핍박하러 가던 그를 하나님께서 붙드셨습니다(행 9장). 그래서 이 편지는 바울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신의 말로 읽어야 합니다.
"사도"는 ‘보냄을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당시에는 왕이나 도시가 보낸 전권 대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대사의 말은 그를 보낸 왕의 말과 같은 무게를 가졌습니다.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도(6:20 "쇠사슬에 매인 사신") 바울은 여전히 그리스도의 대사였습니다.
받는 이들은 "성도들"입니다. 성도는 특별히 훌륭한 몇몇 신자를 부르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된 모든 그리스도인을 부르는 이름입니다. 바울은 문제가 많았던 고린도 교회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고전 1:2). 성도라는 이름은 내 행위의 성적표가 아니라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 ‘신실한’으로 번역된 말은 ‘믿는 사람’이라는 뜻도 되고 ‘믿음직한 사람’이라는 뜻도 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또한 그분께 믿음직한 사람으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일어납니다. 이 짧은 표현이 1장 전체를 꿰는 실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에베소에 있는 —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사본 몇 개(파피루스 46, 시내 사본, 바티칸 사본의 원래 본문)에는 ‘에베소에 있는’이라는 말이 없습니다. 또 이 편지에는 3년이나 머문 교회에 보내는 개인적인 인사가 거의 없고,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3:2, 4:21)처럼 서로 잘 모르는 사람에게 하는 말투가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이 편지가 에베소를 중심으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에 돌려 읽힌 회람 서신이었다고 봅니다. 골 4:16의 "라오디게아로서 오는 편지"가 바로 이 편지라는 견해도 있습니다.
성도하기오이 — ‘거룩한 자들’.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부르던 말입니다(출 19:6 "거룩한 백성"). 이제 이방인 신자들도 같은 이름으로 불립니다. 에베소서에 아홉 번 나옵니다.
신실한피스토이 — 명사 ‘믿음(피스티스)’과 같은 뿌리. 여기서는 ‘믿는 자들’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9:15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갈 1:1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고전 1: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행 20:31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출 19:6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2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직역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당시 헬라 사람들은 편지 첫머리에 ‘카이레인’(기뻐하라, 안녕하시오)이라고 썼습니다. 바울은 이 말과 소리가 비슷한 ‘카리스’(은혜)로 바꾸었습니다. 그리고 유대인의 인사 ‘샬롬’(평강)을 붙였습니다. 이방인의 인사와 유대인의 인사가 한 줄 안에서 만납니다. 2장에서 펼쳐질 ‘둘이 하나 됨’이 인사말에서 벌써 시작됩니다.
순서도 중요합니다. 언제나 은혜가 먼저, 평강이 나중입니다. 하나님의 값없는 호의(은혜)를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과 화목하고 사람과 화목한 평강을 누립니다. 에베소서는 은혜로 시작해서(1:2) 은혜로 끝납니다(6:24 "은혜가 있을지어다").
은혜와 평강의 근원은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바울은 아버지와 예수님을 한 전치사 아래 나란히 둡니다. 은혜를 주실 수 있는 분은 하나님뿐이시므로, 이 짧은 인사 안에 예수님의 신성에 대한 고백이 담겨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은혜카리스 — 에베소서에 열두 번 나옵니다. 1장에만 세 번(2, 6, 7절).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베푸는 호의’.
평강에이레네 — 히브리어 샬롬의 번역. 단지 다툼이 없는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 안에서 온전하고 건강한 상태. 에베소서에서는 2:14–17에서 핵심 주제가 됩니다("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함께 읽을 말씀
엡 6:23-24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은혜가 있을지어다
롬 5:1-2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내 이름표는 누가 붙여 주었습니까
바울은 자기 이름 앞에 "하나님의 뜻으로 사도 된"이라는 이름표를 붙였고, 성도들에게는 "성도"와 "신실한 자"라는 이름표를 붙였습니다. 둘 다 스스로 얻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붙여 주신 이름입니다.
세상은 성적, 직업, 재산, 외모로 우리에게 이름표를 붙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의 첫 이름은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사람’입니다. 오늘 그 이름으로 하루를 시작해 보십시오.
1:3–6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 아버지께서 택하시고 예정하셨다
3절부터 14절까지는 헬라어 원문에서 단 하나의 문장입니다. 202개의 단어가 쉼 없이 이어집니다. 바울은 숨을 고르지 않고 하나님의 복을 쏟아 놓습니다. 너무 감격스러워서 문장을 끊을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학자들은 이 문장을 ‘신약에서 가장 긴 찬송’, 또는 구약의 성전 찬송을 닮았다 하여 ‘송영(베라카)’이라고 부릅니다.
이 긴 찬송은 삼위일체의 순서로 흘러갑니다. 먼저 아버지께서 창세 전에 택하시고 예정하셨습니다(3–6절). 그 단락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는 후렴으로 끝납니다.
3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복 주셨다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에게 복 주시되
직역 송축받으실 분이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이신 분. 그분은 하늘에 있는 곳들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으로 우리를 복 주셨다.
첫 단어가 "찬송하리로다"입니다. 유대인들은 기도를 시작할 때마다 "바루크 아타 아도나이"(송축받으실 주여)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평생 드리던 이 기도를 이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드립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막연한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십니다.
이 절 안에서 같은 단어가 세 번 반복됩니다. 원문으로 보면 "복받으실(율로게토스) 하나님께서 복(율로기아)으로 우리를 복 주셨다(율로게사스)." 하나님은 우리를 복 주시고, 우리는 그 복을 돌려드리며 하나님을 ‘복되다’ 하고 찬송합니다. 찬송은 받은 복에 대한 메아리입니다.
그런데 그 복은 어떤 복입니까?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신령한’은 ‘성령에 속한’이라는 뜻입니다. 건강, 재물, 성공 같은 복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다만 바울이 말하는 복은 그것보다 훨씬 크고 영원한, 성령께서 주시는 복입니다. 택하심, 아들 됨, 죄 사함,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 기업, 성령의 인치심. 이어지는 4–14절이 바로 그 ‘모든 신령한 복’의 목록입니다.
그리고 동사의 시제가 중요합니다. "복 주시되"는 원문에서 이미 일어난 일(부정과거)입니다. 하나님은 앞으로 복을 주실 것이 아니라 이미 주셨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복을 더 받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이미 받은 복이 얼마나 큰지 알라고 말합니다(17–19절의 기도). 감옥에 갇혀 가진 것이 아무것도 없던 바울이 "모든 복"을 노래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늘에 속한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 직역하면 ‘하늘에 있는 곳들에서’. 신약에서 에베소서에만 다섯 번 나옵니다. 1:3(복이 있는 곳), 1:20(그리스도께서 앉으신 곳), 2:6(우리가 함께 앉은 곳), 3:10(정사와 권세들이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를 보는 곳), 6:12(악한 영들과 씨름하는 곳). 저 멀리 있는 하늘나라라기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지금 실제로 있는 영적 세계를 가리킵니다.
신령한프뉴마티코스 — ‘영(프뉴마)’에서 온 말. 13–14절의 성령과 연결됩니다. 고전 2:13–15, 15:44(신령한 몸)에도 쓰였습니다.
한 문장 — 3–14절은 원문에서 한 문장입니다. 『개역한글』은 읽기 쉽게 여러 문장으로 나누었습니다. 한 문장이라는 것은 택하심, 구속, 인치심이 따로 떨어진 세 가지 복이 아니라 하나의 구원 이야기라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후 1:3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벧전 1:3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 긍휼대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시 103:1-2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창 12:2-3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엡 2:6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4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거룩하고 흠이 없게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직역 곧 그분은 세상의 기초를 놓기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가 그분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 되도록 하셨다. 사랑 안에서.
‘모든 신령한 복’의 첫 번째는 택하심입니다. 그리고 그 택하심의 시점은 "창세 전"입니다. 우리가 태어나기 전, 우리가 무엇을 잘하거나 잘못하기 전, 아니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도 전에 하나님은 우리를 생각하셨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구원은 우리 행위의 결과일 수 없습니다(롬 9:11 "자식들이 아직 나지도 아니하고 무슨 선이나 악을 행치 아니한 때에").
택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와 상관없이 몇몇 사람을 골라내신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먼저 택하시고(벧전 2:4 "하나님께는 택하심을 입은 보배로운 산 돌"), 그분 안에 있는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그래서 내가 택함을 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내 속을 들여다볼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됩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다면, 나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던 사람입니다.
택하심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택하심은 ‘이제 어떻게 살아도 괜찮다’는 허가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택하셨습니다. ‘흠이 없는’은 구약에서 하나님께 드릴 제물을 고를 때 쓰던 말입니다(레 22:21). 하나님께 드려질 만큼 온전한 사람으로 만드시는 것, 그것이 택하심의 목표입니다. 이 목표는 5:27에서 다시 나옵니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사랑 안에서." 이 말을 4절 끝에 붙이면 ‘우리가 사랑 안에서 거룩하고 흠 없게’가 되고, 5절 앞에 붙이면 ‘사랑 안에서 우리를 예정하사’가 됩니다. 어느 쪽이든, 택하심의 동기와 분위기는 차가운 계산이 아니라 사랑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창세 전에프로 카타볼레스 코스무 — ‘카타볼레’는 건물의 기초를 놓는 것. 요 17:24 "창세 전부터 나를 사랑하신고로", 벧전 1:20 "그는 창세 전부터 미리 알린 바 된 자나"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택하사엑셀렉사토 — 중간태 동사로 ‘자기를 위하여 골라내셨다’. 신 7:6–8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는 그들이 많거나 뛰어나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심으로"였습니다. 같은 사랑이 이제 그리스도 안의 모든 사람에게 향합니다.
흠이 없게아모모스 — 70인역에서 제물의 조건(출 29:1, 레 1:3)에 쓰였습니다. 히 9:14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렸은즉", 벧전 1:19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
사랑 안에서 — 원문의 위치가 4절 끝과 5절 처음 사이에 있어 어느 쪽에도 붙일 수 있습니다. 『개역한글』은 4절에, 많은 영어 번역(NIV 등)은 5절에 붙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7:6-8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심으로
롬 8:29-30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살후 2:13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엡 5: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요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5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아들들이 되게 하셨다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직역 그분은 사랑 안에서 그 뜻의 기쁨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자기를 향하여 우리를 아들의 자격으로 받아들이도록 미리 정하셨다.
두 번째 복은 아들 됨입니다. ‘아들들이 되게’로 번역된 말은 당시 로마 사회의 입양을 가리키는 법률 용어입니다. 로마에서 입양된 사람은 이전의 빚과 신분이 모두 지워지고, 새 아버지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받는 완전한 아들이 되었습니다.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도 율리우스 카이사르의 양자였습니다. 입양은 열등한 자식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확실한 상속자가 되는 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종으로 쓰시려고 택하신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려고 택하셨습니다. 죄인을 용서만 하셔도 놀라운 일인데, 하나님은 거기서 멈추지 않으시고 우리를 집 안으로 들이셔서 아들의 자리에 앉히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바 아버지"라고 부릅니다(롬 8:15, 갈 4:5–6).
이 모든 일은 "그 기쁘신 뜻대로"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억지로, 마지못해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자녀 삼는 일을 기뻐하셨습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돌아온 아들을 보고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춘 그 기쁨입니다(눅 15:20).
"예정하사." 예정은 사람을 숙명에 가두는 차가운 운명론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이 아이를 반드시 내 자녀로 삼겠다’고 미리 마음먹으셨다는 뜻입니다. 이 단어가 놓인 자리를 보십시오. 사랑 안에서, 기쁘신 뜻대로, 아들 됨을 위하여. 예정은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끝까지 붙드신다는 확신의 언어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예정하사프로오리사스 — ‘미리(프로) + 경계를 정하다(호리조)’. 영어 horizon(지평선, 경계)과 같은 뿌리. 롬 8:29–30, 고전 2:7, 행 4:28에 쓰였습니다.
아들들이 되게휘오테시아 — ‘아들(휘오스) + 세움(테시스)’. 신약에서 바울만 다섯 번 씁니다(롬 8:15, 23, 9:4, 갈 4:5, 엡 1:5). ‘아들들’에는 딸들도 포함됩니다(고후 6:18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 당시에 상속권이 아들에게 있었기에, 여자도 남자도 똑같이 상속자의 신분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기쁘신 뜻유도키아 — 9절에도 나옵니다. 눅 2:14 "기뻐하심을 입은 사람들 중에", 눅 12:32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함께 읽을 말씀
롬 8:15-17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갈 4:4-7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요 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요일 3:1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
호 1:10저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사신 하나님의 자녀라 할 것이라
6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거저 주신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이는 그의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 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이라
직역 이는 그분이 사랑받는 분 안에서 우리에게 은혜로 베푸신 그 은혜의 영광의 찬송을 위함이다.
아버지의 일을 노래한 단락이 첫 번째 후렴으로 끝납니다. 택하시고, 거룩하게 하시고, 자녀 삼으신 모든 일의 목적은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구원의 최종 목적은 내가 행복해지는 것보다 더 큽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놀라운지 온 세상 앞에 드러나고, 우리가 그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거저 주시는 바." 원문은 ‘은혜’라는 명사를 동사로 바꾼 말입니다. 직역하면 ‘은혜로 은혜를 입히셨다’. 같은 단어가 신약에서 한 번 더 나오는데, 천사가 마리아에게 한 인사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눅 1:28). 마리아가 특별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를 입었듯, 우리도 아무 자격 없이 은혜를 덧입었습니다.
그리고 그 은혜는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이 침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린 음성이 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 3:17).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그 아들 안에 있으면, 우리도 그 사랑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바라보시는 그 눈으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를 보십니다.
사랑하시는 자호 에가페메노스 — 70인역에서 이스라엘을 부르던 이름(신 32:15, 33:5, 사 44:2 "여수룬")이기도 합니다. 신약에서는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골 1:13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찬미 — 『개역한글』은 6, 14절을 ‘찬미’, 12절을 ‘찬송’으로 옮겼습니다. 원문은 세 번 모두 같은 말(에파이노스, 칭송)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3:17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골 1:13-14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엡 2:7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자비하심으로써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오는 여러 세대에 나타내려 하심이니라
사 43:21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창세 전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가끔 우리는 ‘나는 이 세상에 우연히 왔고, 아무도 나를 원하지 않았다’는 느낌에 사로잡힙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세상의 기초가 놓이기 전부터 하나님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마지못해 우리를 받아 주신 것이 아니라 기뻐하시며 자녀로 들이셨습니다.
택하심은 자랑의 근거가 아니라 찬송의 이유입니다.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은혜로우셔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내 자리에서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는 사람으로 살아갑시다.
1:7–12그의 피로 말미암아 — 아들 안에서 구속과 비밀을 받았다
이제 찬송은 아들의 일로 넘어갑니다. 아버지께서 영원 전에 계획하신 것을, 아들께서 역사 속에서 피 흘려 이루셨습니다. 구속(7–8절), 하나님의 비밀을 알게 하심(9–10절), 기업이 됨(11–12절). 이 단락도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라는 후렴으로 끝납니다.
특히 10절은 에베소서 전체의 큰 그림입니다. 하나님은 죄로 산산조각 난 온 우주를 그리스도라는 한 머리 아래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 2장(유대인과 이방인의 하나 됨), 4장(교회의 하나 됨), 5장(남편과 아내의 하나 됨)은 모두 이 큰 계획의 작은 조각들입니다.
7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그의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피로 말미암아 구속 곧 죄 사함을 받았으니
직역 그분 안에서 우리는 그분의 피를 통한 구속, 곧 범죄들의 용서를 가지고 있다. 그분의 은혜의 부요함을 따라.
세 번째 복은 구속입니다. ‘구속’은 노예 시장의 말이었습니다. 값을 치르고 노예를 사서 풀어 주는 것을 ‘구속’이라고 했습니다. 구약에서는 하나님께서 애굽의 종살이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내신 사건을 ‘구속’이라고 불렀습니다(출 6:6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하여"). 우리는 죄의 종이었고, 스스로 몸값을 치를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 몸값은 무엇이었습니까?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은이나 금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명이었습니다(벧전 1:18–19). 예수님은 "인자가 온 것은…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속은 공짜처럼 보이지만, 실은 세상에서 가장 비싼 값이 치러진 일입니다. 우리에게 값없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값을 다 치르셨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구속을 바로 "곧 죄 사함"이라고 풀이합니다. ‘사함’은 ‘놓아 보내다, 탕감하다’는 뜻입니다. 레위기 16장의 속죄일에 대제사장은 염소 한 마리 머리에 백성의 죄를 고백하고 그 염소를 광야로 ‘놓아 보냈습니다’. 우리 죄는 그렇게 멀리 보내졌습니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 103:12).
이 모든 것은 "은혜의 풍성함을 따라" 일어났습니다. ‘따라’는 ‘~에 걸맞게, ~의 수준으로’라는 뜻입니다. 부자가 ‘자기 재산에서’ 조금 떼어 주는 것과 ‘자기 재산에 걸맞게’ 주는 것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창고에서 찔끔 떼어 주신 것이 아니라, 그 풍성함의 크기에 맞게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러니 내 죄가 너무 커서 용서받지 못할까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구속아폴뤼트로시스 — ‘풀어 줌(아포) + 몸값(뤼트론)’. 엡 1:14, 4:30(구속의 날), 롬 3:24, 골 1:14에 쓰였습니다. 『개역한글』은 ‘구속’(救贖), 『개역개정』은 ‘속량’(贖良)으로 옮겼습니다. 둘 다 ‘값을 치르고 건짐’입니다. 법정에 가두는 ‘구속(拘束)’과는 다른 한자입니다.
죄 사함아페시스 — 원문은 ‘죄(하마르티아)’가 아니라 ‘범죄들(파라프토마타)’, 곧 선을 넘어 넘어진 구체적인 잘못들. 2:1, 5 "허물"과 같은 말입니다. 70인역에서 아페시스는 희년의 ‘자유, 놓임’(레 25:10)을 옮긴 말이기도 합니다.
풍성함플루토스 — ‘부, 재산’. 에베소서에 다섯 번(1:7, 18, 2:7, 3:8, 16).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를 말할 때마다 부자의 언어를 씁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1:14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벧전 1:18-19너희가 알거니와 너희가… 구속된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한 것이니라
막 10: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레 16:21-22아론은 두 손으로 산 염소의 머리에 안수하여… 그 염소가 그들의 모든 불의를 지고 무인지경에 이르거든
사 53:5-6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8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셨다
이는 그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우리에게 넘치게 하사
직역 그분은 이 은혜를 모든 지혜와 분별로 우리에게 넘치도록 베푸셨다.
하나님의 은혜는 "넘치게" 주어졌습니다. 그릇에 딱 맞게 담긴 것이 아니라 흘러넘치게 부어졌습니다. 잔이 넘친다는 시편 23:5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은혜에는 ‘딱 필요한 만큼’이라는 계산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 은혜가 "모든 지혜와 총명으로" 주어졌다는 말은 두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지혜롭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뜻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은혜와 함께 우리에게 지혜와 총명을 주셨다는 뜻입니다. 이어지는 9절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를 보면 두 번째 뜻이 자연스럽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실 뿐 아니라, 그분이 무엇을 하고 계신지 이해할 수 있는 눈도 주셨습니다.
‘지혜’는 하나님의 깊은 뜻을 아는 것이고, ‘총명’은 그 앎을 실제 삶에 적용하는 분별력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머리로만 아는 사람도, 감으로만 사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을 알고(지혜), 그 안에서 오늘 무엇을 해야 할지 분별하는(총명) 사람입니다. 5:15–17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원어 · 번역 노트
지혜소피아와 총명프로네시스 —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피아를 ‘궁극적인 것에 대한 앎’, 프로네시스를 ‘삶에서 옳게 판단하는 실천적 지혜’로 구분했습니다. 바울은 두 말을 함께 써서 온전한 지혜를 말합니다.
넘치게페리슈오 — ‘넘치다, 남다’. 오병이어 후 남은 열두 바구니(마 14:20)에 쓰인 말과 같은 뿌리입니다. 롬 5:15, 20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함께 읽을 말씀
시 23:5내 잔이 넘치나이다
롬 5:20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골 1:9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고전 2: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9그 뜻의 비밀을 알리셨다 —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곧 그 기쁘심을 따라 그리스도 안에서 때가 찬 경륜을 위하여 예정하신 것이니
직역 그분은 자기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게 하셨다. 그것은 그분이 그리스도 안에서 미리 세우신 그분의 기쁨을 따른 것으로, 때들이 찬 것을 위한 경륜이다.
네 번째 복은 하나님의 비밀을 아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비밀’은 아무도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닙니다. 오랫동안 감추어져 있었으나 이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계획을 말합니다. 비밀은 사람이 알아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알려 주셔야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 알리셨으니"입니다.
그 비밀은 어떤 것입니까? 10절이 대답합니다.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는 계획입니다. 3장에서는 그 비밀의 구체적인 내용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3:6).
"경륜." 원래 ‘집안 살림을 맡아 관리하는 일’을 뜻하는 말입니다. 영어 economy(경제)의 어원입니다. 하나님은 온 우주라는 큰 집의 주인이시고, 역사의 모든 일을 계획에 따라 관리하십니다. 그리고 "때가 찬"이라는 말처럼, 그 계획에는 때가 있습니다. 그릇에 물이 차오르듯 정해진 때들이 하나씩 채워져 가고, 마침내 가득 차면 하나님의 계획이 완성됩니다. 갈라디아서 4:4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처럼, 그리스도의 오심은 그 때가 차는 결정적인 순간이었습니다.
역사는 제멋대로 굴러가는 수레가 아닙니다. 혼란스러워 보이는 세상 속에서도 하나님은 당신의 살림을 정확하게 꾸려 가고 계십니다. 이 믿음이 있으면 감옥에 갇힌 바울처럼 어떤 상황에서도 찬송할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비밀뮈스테리온 — 에베소서에 여섯 번(1:9, 3:3, 4, 9, 5:32, 6:19). 당시 그리스의 ‘비밀 종교’(엘레우시스 등)는 입문한 소수에게만 비밀을 알려 주었지만, 복음의 비밀은 모든 사람에게 공개적으로 선포됩니다(3:9 "모든 사람에게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문장 구분 — 9절과 10절은 원문에서 한 덩어리입니다. 『개역한글』의 9절 끝 "예정하신 것이니"는 원문의 ‘미리 세우신(프로에테토)’을 옮긴 말로, 5절의 ‘예정하사(프로오리사스)’와는 다른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3:3-6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골 1:26-27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갈 4:4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나게 하신 것은
단 2:28오직 은밀한 것을 나타내실 자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시라
롬 16:25-26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10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직역 곧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머리 아래 모으는 것이다.
에베소서 전체를 여는 열쇠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비밀, 곧 영원한 계획의 내용은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것입니다.
‘통일되게’로 번역된 헬라어 아나케팔라이오오는 재미있는 말입니다. 그 안에 ‘머리(케팔레)’라는 단어가 들어 있습니다. 원래는 긴 글이나 계산의 ‘요점을 정리하다, 합계를 내다’는 뜻이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숫자들을 위에서 아래로 쭉 더한 다음, 맨 위에 합계를 적었습니다. 흩어진 항목들이 하나의 ‘머리’로 모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흩어진 온 우주를 그리스도라는 하나의 머리 아래 다시 모으실 것입니다. 이 ‘머리’라는 말은 22절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에서 다시 나옵니다.
왜 다시 모아야 합니까? 죄가 모든 것을 흩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사람은 사람에게서(가인과 아벨), 민족은 민족에게서(바벨탑), 인간은 자연에게서(창 3:17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멀어졌습니다. 피조물 전체가 탄식하고 있습니다(롬 8:22). 하나님의 계획은 이 모든 깨어진 관계를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하나로 묶는 것입니다.
그 일은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몸이 된 교회(2장)가 그 첫 열매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장차 온 우주에 이루실 일의 ‘미리보기 화면’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분열하면 하나님의 계획을 세상에 거꾸로 보여 주게 됩니다. 4:3에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통일되게아나케팔라이오사스타이 — 신약에서 여기와 롬 13:9("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모든 계명이 사랑 한마디로 요약된다)에만 나옵니다. 2세기 교부 이레네우스는 이 말을 ‘총괄 갱신(recapitulation)’ 교리로 발전시켰습니다. 첫 아담 안에서 무너진 인류의 역사를, 마지막 아담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다시 걸으시며 회복하셨다는 생각입니다.
하늘과 땅 — 창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의 짝. 창조된 모든 것이 새 창조 안에서 그리스도께 모입니다. 골 1:16, 20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하늘과 땅에서…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함께 읽을 말씀
골 1:16-20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
롬 8:19-21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빌 2:10-11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계 21:5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창 11:8-9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으므로
11모든 일을 뜻대로 이루시는 분의 계획을 따라 우리가 기업이 되었다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그 안에서 기업이 되었으니
직역 그분 안에서 우리도 기업(몫)으로 정해졌다. 모든 것을 자기 뜻의 계획대로 이루시는 분의 목적을 따라 미리 정해졌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복은 기업입니다. ‘기업이 되었으니’라는 말은 두 가지로 읽힙니다. ① 우리가 기업을 얻었다(상속자가 되었다). ② 우리가 하나님의 기업이 되었다(하나님의 소유가 되었다). 원문의 수동태를 그대로 살리면 두 번째 뜻이 더 가깝습니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신 32:9)라고 불렸습니다. 이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기업, 하나님이 가장 아끼시는 몫이 되었습니다.
물론 우리도 기업을 받습니다(14절 "우리 기업", 18절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하나님은 우리의 기업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기업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시 16:5)라고 노래했습니다. 서로가 서로의 보물이 되는 관계, 그것이 언약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은 계획만 세우시는 분이 아니라 그것을 실제로 ‘역사하시는’, 일하시는 분입니다. 그분의 계획은 사람의 반대나 상황의 어려움 때문에 무산되지 않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악을 꾀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창 50:20). 이것이 성도가 흔들리지 않는 이유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기업이 되었으니에클레로테멘 — ‘제비(클레로스)’에서 온 동사. 가나안 땅을 제비뽑아 지파별로 나눈 것(수 14:2)이 배경입니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마음의 원불레 — ‘숙고 끝에 내린 결정, 계획’. 행 2:23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행 20:27 "하나님의 뜻을 다 너희에게 전하였음이라".
역사하시는에네르게오 — 영어 energy(에너지)의 어원. 1:19–20, 2:2, 3:7, 20에도 쓰였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실제로 작동하는 힘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2:9여호와의 분깃은 자기 백성이라 야곱은 그 택하신 기업이로다
시 16:5-6여호와는 나의 산업과 나의 잔의 소득이시니…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
롬 8:28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 46:10나의 모략이 설 것이니 내가 나의 모든 기뻐하는 것을 이루리라
벧전 2: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12전부터 그리스도를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직역 그리스도 안에 먼저 소망을 두었던 우리가 그분의 영광의 찬송이 되도록 하려는 것이다.
두 번째 후렴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조금 다릅니다. 6절은 우리가 ‘찬미하게’였는데, 12절은 우리가 "찬송이 되게"입니다. 우리 입술이 찬송할 뿐 아니라, 우리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찬송이 됩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삶이 곧 하나님을 자랑하는 노래가 됩니다.
"전부터 바라던 우리." 누구를 말하는 것일까요? 많은 해석자들은 바울을 포함한 유대인 신자들로 봅니다. 구약의 약속을 받고 오랫동안 메시아를 기다려 온 사람들, 그래서 이방인보다 ‘먼저’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보면 13절의 "너희도"는 이방인 신자들이 됩니다. 11–12절의 ‘우리’(유대인)와 13절의 ‘너희’(이방인)가 14절에서 ‘우리 기업’으로 하나가 됩니다. 2장의 큰 주제가 여기서 살짝 예고됩니다.
물론 ‘우리’를 모든 그리스도인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전에, 세상보다 ‘먼저’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 소망을 둔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사람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전부터 바라던프로엘피코타스 — ‘미리(프로) + 소망하다(엘피조)’.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행 26:6–7 "하나님께서 우리 조상에게 약속하신 것을 바라는 연고로", 롬 9:4–5 참고.
우리와 너희 — 에베소서에서 ‘우리/너희’가 유대인/이방인을 가리키는 경우가 있습니다(2:3 "우리도 다 전에는", 2:11 "그러므로 생각하라 너희는 그 때에 육체로 이방인이요"). 그러나 2:1–10에서처럼 둘을 합쳐 ‘우리’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28:20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눅 2:25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빌 1:11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사 61:3그들로 의의 나무 곧 여호와의 심은바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 일컬음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죄가 크다고 은혜가 모자라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은혜의 풍성함에 ‘걸맞게’ 우리 죄를 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값은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다 치러졌습니다. 그러니 오래된 죄책감을 붙들고 사는 것은 겸손이 아니라, 이미 치러진 값을 의심하는 일입니다.
또 하나님은 흩어진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고 계십니다. 내 삶의 깨어진 조각들, 깨어진 관계들도 그 큰 계획 밖에 있지 않습니다. 오늘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실 때, 흩어진 내 삶도 제자리를 찾기 시작합니다.
1:13–14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 우리 기업의 보증
찬송의 세 번째 부분, 성령의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계획하시고 아들께서 이루신 구원을, 성령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적용하시고 확증하십니다. 그 과정이 13절에 그대로 나옵니다. 듣고 → 믿고 → 인치심을 받음. 그리고 세 번째 후렴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로 긴 찬송이 끝납니다.
13너희도 복음을 듣고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직역 그분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분 안에서 믿어, 약속의 성령으로 인침을 받았다.
"너희도." 바울은 이제 이방인 독자들을 직접 부릅니다. 이스라엘처럼 오래 기다려 온 사람들이 아니었는데도, 너희도 똑같은 복 안에 들어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복에는 일등석과 이등석이 없습니다.
구원이 한 사람에게 이르는 길이 그대로 나옵니다. ①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구원은 들음에서 시작됩니다(롬 10:17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복음은 그럴듯한 철학이 아니라 ‘진리의 말씀’, 실제로 일어난 사실에 대한 소식입니다. ② "그 안에서 또한 믿어." 들은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것입니다. ③ "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믿는 그 순간 하나님은 성령으로 도장을 찍어 주셨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인(도장)은 세 가지 뜻을 가졌습니다. 첫째, 소유. 상인은 물건에, 주인은 가축에 자기 인을 찍었습니다. 성령의 인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것’이라는 표시입니다. 둘째, 진품 증명. 왕의 편지나 계약서에 찍힌 인은 그것이 진짜라는 증거였습니다. 성령은 우리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증하십니다(롬 8:16). 셋째, 보호. 인으로 봉한 것은 아무도 함부로 열 수 없었습니다. 다니엘이 갇힌 사자굴 입구에 왕의 인을 찍은 것처럼(단 6:17). 성령의 인을 받은 사람을 하나님의 손에서 빼앗을 자는 없습니다(4:30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그 성령은 "약속의 성령"입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은 하나님께서 장차 당신의 영을 백성에게 부어 주실 것을 약속했습니다(겔 36:26–27, 욜 2:28). 예수님도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행 1:4). 오순절에 부어진 그 약속의 성령이, 이제 에베소의 이방인 신자들 안에도 계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인치심스프라기조 — 4:30, 고후 1:22 "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요 6:27 "인자는 아버지 하나님의 인치신 자니라", 계 7:3–4(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침)에 쓰였습니다.
믿어 — 원문은 ‘믿고 나서 (나중에) 인침을 받았다’가 아니라 ‘믿었을 때 인침을 받았다’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성령의 인치심은 믿음 이후 따로 얻어야 하는 두 번째 단계가 아니라, 믿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표시입니다(롬 8:9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에베소와 성령 — 행 19:1–7에서 바울은 에베소에 처음 갔을 때 요한의 침례만 알던 제자 열두 명을 만나, 예수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고 안수했고, 그때 성령이 그들에게 임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성령의 오심을 생생하게 기억하는 교회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0:14, 17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고후 1:21-22저가 또한 우리에게 인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 마음에 주셨느니라
엡 4: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겔 36:26-27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욜 2:28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행 1:4-5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게 들은바 아버지의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14성령은 우리 기업의 보증 —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직역 그 성령은 우리 기업의 보증금이시며, 하나님의 소유를 온전히 구속하실 때까지 그러하시니, 이는 그분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는 것이다.
성령께서는 우리 기업의 "보증"이십니다. ‘보증’으로 번역된 아라본은 당시 장사꾼들이 쓰던 말로, 계약금, 선금을 뜻합니다. 집을 살 때 계약금을 내면 그것은 ‘나머지 잔금도 반드시 치르겠다’는 약속이 됩니다. 계약금은 전체 값의 일부이면서, 동시에 나머지 전부에 대한 보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장차 완전한 기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부활의 몸, 죄가 없는 삶, 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을 얼굴과 얼굴로 뵙는 것. 그런데 그것을 그냥 말로만 약속하신 것이 아니라 성령이라는 계약금을 먼저 지불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누리는 성령의 위로, 기도의 기쁨, 말씀이 깨달아지는 순간, 죄를 미워하게 되는 변화는 장차 누릴 완전한 기업의 맛보기입니다. 그리고 이 계약금을 내신 분은 결코 계약을 파기하지 않으십니다.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얻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값 주고 사서 자기 소유로 삼으신 백성, 곧 우리를 가리킵니다. 7절에서 우리는 이미 ‘구속’(죄 사함)을 받았는데, 여기서는 앞으로 있을 ‘구속’을 말합니다. 이미 받은 구속과 아직 남은 구속,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현재입니다. 영혼은 이미 속량되었지만 몸은 아직 연약하고 죽음을 향해 갑니다. 그러나 마지막 날 하나님은 우리 몸까지 완전히 구속하실 것입니다(롬 8:23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그리고 마지막 후렴.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버지의 일(6절), 아들의 일(12절), 성령의 일(14절)이 모두 같은 목적지에 도착합니다. 3절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한 문장이 ‘찬미’로 닫힙니다. 구원은 찬송으로 시작해서 찬송으로 끝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보증아라본 — 히브리어에서 빌려 온 말(창 38:17–18 유다가 다말에게 준 ‘약조물’ 에라본). 고후 1:22, 5:5에도 쓰였습니다. 현대 그리스어에서 ‘아라보나’는 약혼반지를 뜻합니다. 성령은 신랑 되신 그리스도께서 신부인 교회에 주신 약혼반지와 같습니다.
얻으신 것페리포이에시스 — ‘자기를 위해 확보한 소유’. 벧전 2:9 "그의 소유된 백성", 말 3:17 "나의 특별한 소유"(70인역). 하나님은 우리를 값비싸게 사셨기에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구속하시고 — 원문은 ‘소유의 구속을 위하여’, 곧 ‘하나님의 소유가 온전히 구속될 그날까지’. 4:30 "구속의 날까지"와 같은 미래의 완성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후 5:5곧 이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하시고 보증으로 성령을 우리에게 주신 이는 하나님이시니라
롬 8:23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벧전 1:3-5썩지 않고 더럽지 않고 쇠하지 아니하는 유업을 잇게 하시나니 곧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간직하신 것이라
말 3:17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창 38:17-18네가 그것을 줄 때까지 약조물을 주겠느냐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하나님의 도장이 찍힌 사람입니다
구원의 확신이 흔들릴 때가 있습니다. 내 믿음이 약해 보이고, 같은 죄에 또 넘어질 때 ‘나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일까’ 묻게 됩니다. 그러나 확신의 근거는 내 감정의 온도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찍으신 도장입니다.
하나님은 성령이라는 계약금을 이미 내셨습니다. 계약금을 낸 분이 잔금을 포기하시겠습니까? 오늘 내 안에 계신 성령을 기억하십시오. 그분은 장차 받을 영광의 맛보기이시며, 그날까지 나를 지키시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1:15–23마음 눈을 밝히사 알게 하시기를 — 그리고 만물 위에 머리 되신 그리스도
찬송이 끝나자 바울은 무릎을 꿇습니다. 그런데 그의 기도는 의외입니다. 더 많은 복을 달라고 구하지 않습니다. 이미 받은 복을 ‘알게’ 해 달라고 구합니다. 1장의 찬송이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셨는가’였다면, 1장의 기도는 ‘그것을 깨닫게 하소서’입니다.
바울은 세 가지를 알기를 구합니다. ① 그의 부르심의 소망. ②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③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그리고 세 번째 능력을 설명하다가 바울은 다시 찬송으로 넘어가, 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시고 만물 위에 앉히셨다고 노래합니다(20–23절).
15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직역 이 때문에 나도 주 예수 안에 있는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너희의 사랑을 듣고서,
"이를 인하여." 3–14절에서 노래한 그 모든 복 때문에 바울은 기도합니다. 바른 교리는 기도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많이 알수록, 기도할 이유도 많아집니다.
바울은 성도들의 소식을 "듣고" 있습니다. 감옥에 있었지만 사람들을 통해 교회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 소식은 두 가지였습니다. 믿음과 사랑. 믿음은 하나님을 향하고, 사랑은 사람을 향합니다. 두 기둥이 함께 서 있어야 교회입니다. 믿음 없는 사랑은 인간적인 친절에 머물고, 사랑 없는 믿음은 차가운 교리에 머뭅니다(약 2:17, 고전 13:2).
특히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입니다. 마음 맞는 몇 사람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입니다.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 부자와 종, 남자와 여자를 가리지 않는 사랑. 이것이 2장에서 말할 ‘하나 된 새 사람’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계시록 2:4에서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는 책망을 듣게 됩니다. 칭찬받던 사랑도 지키지 않으면 식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들음 — 바울이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렀는데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조금 이상합니다. 몇 년이 흘러 교인이 많이 바뀌었거나, 1절 노트처럼 여러 교회에 돌려 읽힌 편지이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 — 몇몇 사본에는 ‘사랑’이라는 말이 빠져 있습니다(‘모든 성도를 향한 너희 믿음’). 그러나 골 1:4 "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와 비교하면 ‘사랑’이 있는 쪽이 자연스럽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1:3-4너희의 믿음과 모든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들었음이요
살전 1:2-3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쉬지 않고 기억함이니
계 2:2-4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갈 5:6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16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고 기도할 때 너희를 말한다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직역 너희를 위해 감사하기를 그치지 않으며, 나의 기도들 가운데 너희를 기억하고 있다.
바울의 기도는 감사로 시작합니다. 문제부터 늘어놓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이미 하신 일, 그들의 믿음과 사랑을 먼저 감사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한 기도도 그 사람 안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로 시작할 때 건강해집니다.
"마지 아니하고." ‘마지 아니하다’는 ‘그치지 않다’는 옛말입니다. 바울은 감옥에서 한 번 기도하고 끝낸 것이 아니라, 기도할 때마다 그들을 기억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말씀(살전 5:17)을 바울은 이렇게 살았습니다.
"너희를 말하노라." 원문은 ‘기억하다, 이름을 떠올리다’는 뜻입니다. 바울의 기도 목록에는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로마서 16장에서 스물여섯 명의 이름을 하나하나 부르는 바울을 떠올려 보십시오. 막연히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것도 좋지만, 구체적인 사람의 이름을 하나님 앞에 올려 드리는 것이 중보 기도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마지 아니하고 — ‘마지(마지않다)’는 ‘그치지 아니하다’. 『개역개정』도 같은 표현을 유지합니다.
말하노라므네이안 포이우메노스 — ‘기억을 만들다’, 곧 기도 중에 언급하다. 롬 1:9, 빌 1:3, 살전 1:2, 몬 1:4에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바울의 편지에 공통으로 나오는 기도 습관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빌 1:3-4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살전 5:17-18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삼상 12: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17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직역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너희에게 그분을 아는 지식 안에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기를.
바울의 첫 기도 제목은 "하나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더 많이 알게 해 달라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앎’은 원문으로 ‘깊고 인격적인 앎’입니다. 책으로 어떤 사람을 아는 것과 그 사람과 함께 살며 아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님은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아는 일은 사람의 노력만으로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라고 기도합니다. 『개역한글』의 ‘정신’은 오늘날의 ‘마음가짐’이 아니라 ‘영’, 곧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은 이미 그들 안에 계십니다(13절). 그런데도 바울은 그 성령께서 지혜를 주시고 감추어진 것을 드러내시는(계시) 일을 더 풍성하게 해 주시기를 구합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도 계속해서 성령의 조명이 필요합니다.
"영광의 아버지." 독특한 호칭입니다. 영광이 근원적으로 아버지께 속하며, 아버지께서 영광을 주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그분의 영광을 보게 되고, 그 영광을 볼수록 우리도 그 형상으로 변해 갑니다(고후 3:18).
원어 · 번역 노트
계시의 정신 — 『개역한글』은 여기서 ‘프뉴마(영)’를 ‘정신’으로 옮겼습니다. 사 11:2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강림하시리니"를 떠올리게 합니다. 메시아 위에 임한 그 영을 메시아의 백성도 받습니다.
알게에피그노시스 — ‘위에(에피) + 앎(그노시스)’. 일반적인 앎보다 더 깊고 정확한 앎. 4:13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에 다시 나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 예수님은 인성으로 아버지를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르셨습니다(요 20:17, 마 27:46). 이 말이 그리스도의 신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이 되신 아들이 아버지께 순종하신 관계를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고전 2:10-12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사 11:2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강림하시리니
호 6:3그러므로 우리가 여호와를 알자 힘써 여호와를 알자
렘 9:23-24자랑하는 자는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이것으로 자랑할지니라
18마음 눈을 밝히사 부르심의 소망과 기업의 영광의 풍성을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직역 너희 마음의 눈이 밝아져서, 그분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성도들 가운데 있는 그분의 기업의 영광의 부요함이 무엇인지,
"마음 눈을 밝히사." 아름다운 표현입니다. 성경에서 ‘마음’은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하고 결정하고 사랑하는 사람의 중심입니다. 육신의 눈이 멀쩡해도 마음의 눈이 어두우면 하나님의 일을 보지 못합니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부활하신 예수님과 함께 걸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했지만, 예수님께서 떡을 떼실 때 "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눅 24:31)라고 했습니다. 그 순간을 바울은 날마다 구합니다.
바울이 알기를 구하는 첫째는 "그의 부르심의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실 때, 그 부르심에는 확실한 미래가 담겨 있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이르는 것, 그분의 형상을 온전히 닮는 것. 이 소망을 알면 오늘의 고난을 다르게 봅니다. 4:4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둘째는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입니다. 이 말은 두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① 하나님께서 성도들과 함께 나누어 주실 기업(우리가 받을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가. ② 하나님의 기업인 성도들(하나님이 받으신 것)이 하나님께 얼마나 영광스럽고 귀한가. 11절에서 본 것처럼 원문은 두 번째 뜻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을 당신의 보물로, 영광스러운 재산으로 여기십니다. 이것을 깨달으면 교회와 성도를 보는 눈이 달라집니다. 내 옆에 앉은 연약한 형제, 마음에 들지 않는 자매가 하나님께는 영광스러운 기업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마음 눈 — 고대 문헌에서 드문 표현입니다. 시 119:18 "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고후 4:4–6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와 연결됩니다.
밝히사페포티스메누스 — ‘빛을 비추다’의 완료 분사. 이미 빛을 받은 상태가 계속되는 것. 초대교회에서는 침례를 ‘조명(포티스모스)’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히 6:4 "한 번 비췸을 얻고").
기업클레로노미아 — 14절 "우리 기업"과 같은 단어지만, 여기서는 ‘그(하나님)의 기업’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눅 24:31-32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 줄 알아보더니… 길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우리에게 성경을 풀어 주실 때에 우리 속에서 마음이 뜨겁지 아니하더냐
고후 4:6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시 119:18내 눈을 열어서 주의 법의 기이한 것을 보게 하소서
왕하 6:17여호와여 원컨대 저의 눈을 열어서 보게 하옵소서…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엡 4:4몸이 하나요 성령이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19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을 알게 하시기를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직역 또 믿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능력의 넘치도록 큰 크기가 무엇인지, 곧 그분의 강한 힘의 작용을 따라 일하시는 것을 (알게 하시기를).
셋째는 "능력의 지극히 크심"입니다. 바울은 이 능력을 설명하려고 단어를 겹겹이 쌓습니다. 원문에는 ‘능력(뒤나미스)’, ‘역사(에네르게이아)’, ‘강력(크라토스)’, ‘힘(이스퀴스)’, 이렇게 힘을 뜻하는 말이 네 개나 나옵니다. 한 단어로는 도저히 표현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거기에 ‘지극히 크다’(넘치도록 크다)를 붙였습니다.
그런데 이 엄청난 능력이 어디를 향합니까? "믿는 우리에게." 우주를 지으신 능력, 바다를 가르신 능력이 지금 믿는 사람들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종종 ‘나는 변할 수 없어, 이 습관은 끊을 수 없어, 이 관계는 회복될 수 없어’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그런 우리를 위해 기도합니다. 너희 안에 일하시는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기를.
그 능력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려고, 바울은 역사상 가장 큰 능력의 사건을 예로 듭니다. 바로 다음 절에 나오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능력을 뜻하는 네 단어 — 뒤나미스(가능하게 하는 힘, 영어 dynamite의 어원), 에네르게이아(실제로 작동하는 힘, energy), 크라토스(지배하고 다스리는 힘), 이스퀴스(타고난 강함). 6:10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에서도 크라토스와 이스퀴스가 함께 나옵니다.
지극히 크심휘페르발론 — ‘위로 넘어 던지다’, 과녁을 훌쩍 넘어서다. 2:7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3:19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에도 쓰였습니다. 영어 hyperbole(과장법)의 어원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는 어떤 말도 과장이 되지 않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3: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빌 3:10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예함을 알려 하여
골 1:29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렘 32:17주는 큰 능과 드신 팔로 천지를 지으셨사오니 주에게는 할 수 없는 일이 없으시니이다
20그 능력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오른편에 앉히셨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직역 그 능력을 그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발휘하셔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시고 하늘에 있는 곳들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셨다.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이 어느 정도입니까?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신 그 능력입니다. 인류 역사에서 죽음은 누구도 넘지 못한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무덤에 사흘 동안 계시던 예수님을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 부활의 능력이 지금 믿는 우리 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롬 8:11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고 그 능력은 그리스도를 살리시는 데서 멈추지 않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까지 갔습니다. 시편 110:1의 성취입니다. "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신약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약 구절입니다. ‘오른편’은 왕 다음가는 최고의 권세와 영광의 자리이고, ‘앉으셨다’는 것은 할 일을 다 마치셨다는 뜻입니다(히 10:12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이제 2장을 미리 보십시오. 2:5–6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그리스도를 살리시고 앉히신 그 능력이, 똑같이 우리를 살리시고 앉히셨습니다. 1:20의 그리스도 이야기가 2:6의 우리 이야기가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시 110:1 — 신약에서 직접 인용되거나 암시된 횟수가 스무 번이 넘습니다(마 22:44, 행 2:34–35, 고전 15:25, 히 1:3, 13, 10:12–13 등). 초대교회는 이 시편을 예수님의 승천과 통치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하늘에서 — 3절의 ‘하늘에 속한’과 같은 표현(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우리가 받은 복이 있는 곳이 바로 그리스도께서 앉아 계신 곳입니다.
역사하사에네르게센 — 19절의 ‘역사(에네르게이아)’를 동사로 받았습니다. 말로 끝나는 능력이 아니라 실제로 무덤을 연 능력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10:1여호와께서 내 주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로 네 발등상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우편에 앉으라 하셨도다
롬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엡 2:5-6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행 2:32-33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히 10:12오직 그리스도는 죄를 위하여 한 영원한 제사를 드리시고 하나님 우편에 앉으사
21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모든 이름 위에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일컫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직역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과, 이 시대뿐 아니라 오는 시대에도 불리는 모든 이름보다 훨씬 위에 (앉히셨다).
그리스도께서 앉으신 자리는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위에"입니다. 이 네 가지 이름은 당시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보이지 않는 영적 세력들을 부르던 말입니다. 에베소는 마술과 점술의 도시였습니다. 사람들은 운명을 좌우하는 신들과 별들과 영들을 두려워하며, 그들을 달래려고 부적을 지니고 주문을 외웠습니다(행 19:19).
바울은 그런 이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그 모든 이름 위에 그리스도가 계신다. 그것도 그냥 ‘위에’가 아니라 "뛰어나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이 계신다. 이 땅의 어떤 권력자도, 보이지 않는 어떤 악한 영도 그리스도의 통치 밖에 있지 않습니다. 6:12에서 바울은 우리가 이 세력들과 씨름한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싸움은 이미 이긴 왕의 군대로서 하는 싸움입니다.
"이 세상뿐 아니라 오는 세상에." 유대인들은 역사를 ‘지금 이 시대’와 ‘메시아가 오실 다가올 시대’로 나누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주권은 지금 이 시대에도, 영원히 이어질 다가올 시대에도 흔들리지 않습니다. 오늘 뉴스에 나오는 어떤 이름도, 앞으로 역사에 나타날 어떤 이름도 그리스도의 이름보다 높지 않습니다(빌 2:9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원어 · 번역 노트
정사아르케(다스림, 통치자), 권세엑수시아(권한, 권세자), 능력뒤나미스(힘, 세력), 주관하는 자퀴리오테스(주권, 지배). 같은 목록이 3:10, 6:12, 골 1:16, 2:10, 15, 롬 8:38, 고전 15:24에 나옵니다. 선한 천사와 악한 영 모두를 가리킬 수 있지만, 에베소서에서는 주로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6:12)을 염두에 둡니다.
이름 — 고대 마술 파피루스에는 신과 영들의 이름을 길게 나열하며 부르는 주문이 가득합니다. 이름을 알고 부르면 그 힘을 부릴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그 모든 이름 위에 ‘예수’라는 이름을 둡니다.
함께 읽을 말씀
빌 2:9-10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골 2:15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벧전 3:22그는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 우편에 계시니 천사들과 권세들과 능력들이 그에게 순복하느니라
롬 8:38-39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단 7:13-14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그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22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다
또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직역 그리고 모든 것을 그의 발아래 복종시키셨고, 그를 모든 것 위에 머리로 교회에 주셨다.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시편 8:6의 인용입니다. 원래 시편 8편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시고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라고 노래합니다. 창세기 1:28에서 사람에게 주신 다스림의 사명입니다. 그러나 아담은 죄로 그 사명을 잃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참 사람으로서, 마지막 아담으로서 그 다스림을 완성하셨습니다(히 2:6–9). 첫 사람이 잃어버린 왕관을 두 번째 사람이 되찾았습니다.
그리고 놀라운 말이 이어집니다.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만물을 다스리시는 그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 교회에 선물로 ‘주셨습니다’. 우주의 왕이 교회의 머리이십니다. 교회는 세상에서 작고 약해 보입니다. 에베소의 성도들은 거대한 아데미 신전 앞에서 몇십 명씩 가정에서 모이는 작은 무리였습니다. 그러나 그 작은 무리의 머리는 만물 위에 계신 분입니다.
"머리." 10절의 ‘통일되게’(한 머리 아래 모으다)가 여기서 열매를 맺습니다. 하나님께서 온 우주를 그리스도라는 머리 아래 모으실 것인데, 교회는 이미 지금 그 머리 아래 모인 공동체입니다. 머리는 몸을 다스리고, 몸에 생명과 방향을 공급합니다. 4:15–16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자라게 하느니라."
원어 · 번역 노트
시 8:6 인용 — 고전 15:27, 히 2:8에서도 이 구절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시 110:1(20절)과 시 8:6(22절)이 나란히 쓰인 것은 고전 15:25–27과 같은 패턴입니다. 초대교회가 즐겨 함께 읽은 두 시편입니다.
머리케팔레 — 에베소서에서 4:15, 5:23에 다시 나옵니다. 몸과 머리의 비유는 고린도전서 12장에도 있지만, 에베소서와 골로새서에서는 그리스도가 ‘머리’로, 교회가 ‘몸’으로 더 분명히 구분됩니다.
교회에클레시아 — ‘불러낸 무리, 모임’. 70인역에서 이스라엘의 회중(카할)을 옮긴 말. 에베소서에서 아홉 번 나오는데, 모두 한 지역 교회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온 교회를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8:4-6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 발 아래 두셨으니
창 1:28땅을 정복하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히 2:8-9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저에게 복종한 것을 보지 못하고 오직… 예수를 보니
고전 15:25-27저가 모든 원수를 그 발 아래 둘 때까지 불가불 왕노릇 하시리니
골 1:18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라 그가 근본이요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나신 자니
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직역 교회는 그의 몸이며,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을 채우시는 분의 충만이다.
1장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교회는 건물이나 기관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몸은 머리와 생명을 나눕니다. 머리 없는 몸은 시체이고, 몸 없는 머리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서 일하시는 손과 발이 바로 교회입니다. 바울이 다메섹 길에서 들은 음성을 기억하십시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행 9:4). 교회를 핍박하는 것이 곧 그리스도를 핍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입니다. 신약에서 해석하기 어려운 표현 중 하나입니다. ‘충만(플레로마)’이라는 말은 ‘가득 찬 것’도 되고 ‘가득 채우는 것’도 됩니다. 그래서 크게 두 가지로 읽힙니다.
① 교회는 그리스도로 가득 채워진 곳이다. 온 우주를 채우시는 그리스도께서 특별히 교회를 당신의 임재로 가득 채우신다. 구약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과 성전에 가득했던 것처럼(출 40:34, 왕상 8:11), 이제 그리스도의 충만이 교회에 거합니다. 3:19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4:1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와 잘 어울립니다. 많은 해석자가 이 뜻을 따릅니다.
② 교회는 그리스도를 완성하는 것이다. 머리가 몸이 있어야 온전하듯, 그리스도께서는 교회를 통해 당신의 충만을 이루어 가신다. 그리스도께서 부족하셔서가 아니라, 스스로 교회를 당신의 짝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신부 없는 신랑이 온전하지 않은 것처럼(5:31–32).
어느 쪽이든 교회의 자리가 놀랍도록 높습니다. 우리는 교회를 너무 낮게 봅니다. 문제 많고 연약한 사람들의 모임으로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교회를 만물을 채우시는 그리스도의 충만으로 보십니다. 그 교회의 한 지체가 바로 나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충만플레로마 — 에베소서에서 1:10(때가 찬), 1:23, 3:19, 4:13에 나옵니다. 골 1:19 "아버지께서는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 하시고", 골 2:9–10 "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후대의 영지주의자들은 이 말을 신적 존재들의 세계를 부르는 말로 썼지만, 바울에게 충만은 언제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충만케 하시는플레루메누 — 중간태/수동태 모두 가능한 형태입니다. 중간태로 읽으면 ‘(그리스도께서) 채우시는’, 수동태로 읽으면 ‘(그리스도께서) 채워지시는’. 대부분의 번역은 『개역한글』처럼 중간태로 읽습니다. 4:10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가 그 근거입니다.
몸소마 — 에베소서에 아홉 번. 2:16(한 몸으로), 4:4(몸이 하나요), 4:12, 16, 5:23, 30(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함께 읽을 말씀
엡 4: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골 2:9-10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라
고전 12:12, 27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행 9:4-5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나는 네가 핍박하는 예수라
왕상 8:10-11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함이었더라
렘 23:24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더 달라는 기도보다, 알게 해 달라는 기도
우리의 기도는 대개 ‘주세요’로 가득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미 받은 것을 ‘알게’ 해 달라고 기도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가난하게 사는 이유는 가진 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진 것을 몰라서입니다. 통장에 큰돈이 있는 줄 모르고 굶는 사람처럼.
오늘 이렇게 기도해 보십시오. "하나님, 제 마음의 눈을 밝혀 주십시오. 제가 받은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인지, 하나님께 제가 얼마나 귀한 기업인지, 제 안에서 일하시는 부활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 알게 해 주십시오." 그리고 내가 속한 교회를 만물 위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몸으로 다시 바라보십시오.
The Structure · 구조
3–14절, 한 문장에 담긴 삼위일체의 찬송
아버지, 아들, 성령의 일이 차례로 노래되고 같은 후렴으로 끝납니다
절
누구의 일
받은 복
후렴
3–6
아버지 — 계획하심
택하심(4), 거룩하게 하심(4), 아들 삼으심(5), 은혜를 입히심(6)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미하게"(6)
7–12
아들 — 이루심
구속과 죄 사함(7), 지혜와 총명(8), 비밀을 알게 하심(9–10), 기업이 됨(11)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12)
13–14
성령 — 적용하고 확증하심
인치심(13), 기업의 보증(14)
"그의 영광을 찬미하게"(14)
구원은 한 분 하나님께서 세 위격으로 함께 이루신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영원 전에 계획하지 않으셨다면, 아들께서 역사 속에서 피 흘려 이루지 않으셨다면, 성령께서 오늘 내 안에 오셔서 인치지 않으셨다면, 나는 구원받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찬송은 언제나 삼위일체의 찬송입니다.
시간의 흐름으로 보면 이렇게 됩니다. 과거(창세 전의 택하심) → 현재(지금 받은 구속과 인치심) → 미래(장차 받을 기업과 몸의 구속). 하나님의 구원은 영원에서 시작해 영원으로 이어집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1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사도使徒 · 1절
보냄을 받은 자. 그리스도께서 직접 세우신 전권 대사.
성도聖徒 · 1절
하나님께 속하도록 구별된 사람. 모든 그리스도인을 부르는 이름.
평강平康 · 2절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온전한 평화. 히브리어 샬롬.
신령한神靈한 · 3절
성령에 속한, 성령께서 주시는.
창세 전創世前 · 4절
세상을 지으시기 전, 영원 전.
예정豫定 · 5, 11절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심. 사랑과 목적이 담긴 결정.
거저6절
값없이, 아무 대가 없이.
구속救贖 · 7, 14절
값을 치르고 건져 냄. 『개역개정』 ‘속량’.
총명聰明 · 8절
실제로 옳게 판단하는 슬기, 분별력.
비밀祕密 · 9절
오래 감추어졌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계획.
경륜經綸 · 9절
집안 살림을 다스리듯 하나님께서 역사를 계획하고 운영하심.
통일統一 · 10절
흩어진 것을 하나의 머리 아래 다시 모음.
기업基業 · 11, 14, 18절
물려받을 몫, 유산. 또는 하나님의 소유.
인치다印치다 · 13절
도장을 찍다. 소유와 진품과 보호의 표시.
보증保證 · 14절
계약금, 선금. 나머지를 반드시 주겠다는 약속.
마지 아니하다16절
그치지 아니하다. 쉬지 않고 계속하다.
정신精神 · 17절
여기서는 ‘영’, 곧 성령. 『개역개정』 ‘영’.
정사政事 · 21절
다스림. 여기서는 보이지 않는 영적 통치 세력.
충만充滿 · 23절
가득 참, 가득 채움. 원문 플레로마.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3절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신령한 복을 주셨다고 말합니다. 내가 요즘 하나님께 구하는 것들 가운데, 이미 받았는데 깨닫지 못한 것은 없습니까?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택하셨다’(4절)는 말씀은 나의 자존감과 불안에 어떤 영향을 줍니까? 이 진리가 교만이 아니라 찬송이 되려면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나를 ‘종’이 아니라 ‘아들(자녀)’로 삼으셨다(5절)는 사실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나의 태도를 어떻게 바꿉니까?
‘흩어진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10절). 내 가정, 내 교회, 내 관계 가운데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셔야 할 깨어진 곳은 어디입니까?
성령의 ‘인’과 ‘보증(계약금)’(13–14절)이라는 그림은 흔들리는 구원의 확신에 어떤 위로를 줍니까?
17–19절의 바울의 기도를 내 이름이나 가족, 교우의 이름을 넣어 기도문으로 바꾸어 보십시오. 어떤 부분이 가장 마음에 와닿습니까?
교회가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23절)이라면, 내가 교회를 바라보고 대하는 태도에서 바뀌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