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1절까지 — 감추었던 비밀의 일꾼이 된 바울,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 그리고 무릎 꿇은 기도와 송영
그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EPHESIANS 3:19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3장 들어가며
기도하려다 멈추고, 자기 사명을 설명하고, 다시 무릎을 꿇는 바울
3장은 독특하게 시작합니다. 1절에서 바울은 "이러므로… 나 바울이" 하고 기도를 시작하려다가 갑자기 말을 멈춥니다. 그리고 2–13절에서 긴 옆길로 들어갑니다. 자기가 왜 갇힌 몸이 되었는지, 하나님이 자기에게 맡기신 ‘비밀’이 무엇인지를 설명합니다. 그러고 나서 14절에서 1절의 말을 다시 붙잡습니다. "이러므로 내가… 아버지 앞에 비노니."
왜 바울은 기도를 멈추고 옆길로 갔을까요? 1절에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라고 말하는 순간, 이방인 독자들이 ‘우리 때문에 바울이 감옥에 있구나’ 하고 마음 아파할 것을 생각했을 것입니다(13절 "낙심하지 말라"). 그래서 그는 자기의 갇힘이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을 위한 것임을 먼저 설명합니다.
3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① 바울이 받은 은혜의 경륜과 그 비밀의 내용 — 이방인들이 함께 후사, 함께 지체,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1–7절). ② 그 비밀을 전하는 사명, 그리고 교회를 통해 하늘의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남(8–13절). ③ 무릎 꿇은 바울의 두 번째 기도(14–19절). ④ 1–3장 전체를 닫는 장엄한 송영(20–21절).
핵심 구절
3:6
그리스도의 비밀의 내용. 이방인이 ‘함께’ 후사, ‘함께’ 지체, ‘함께’ 참예자가 됨.
교회의 사명
3:10
교회는 하늘의 권세들 앞에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보여 주는 무대입니다.
두 번째 기도
3:14–19
1장의 기도가 ‘알게’ 해 달라는 기도라면, 3장의 기도는 ‘강건하게, 거하게, 충만하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송영
3:20–21
1–3장의 교리 부분이 찬송과 아멘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4장에서 ‘그러므로’ 삶으로 내려갑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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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이러므로… 나 바울이"
문장이 끊어집니다. 14절에서 다시 이어집니다.
2절 "경륜"
經綸, 맡겨진 관리 직분. 1:10과 같은 말(오이코노미아).
3절 "대강 기록함"
앞(1–2장)에서 간단히 쓴 것. 다른 편지가 아님.
6절 "후사", "참예"
後嗣, 상속자. 參預, 함께 참여함.
7절 "일군"
일꾼. 원문 디아코노스, ‘섬기는 자’.
8절 "측량할 수 없는"
원문 아넥시크니아스톤, ‘발자국을 다 따라갈 수 없는’.
10절 "각종 지혜"
원문 폴뤼포이킬로스, ‘여러 빛깔로 수놓은’ 지혜.
13절 "환난"
患難, 원문 쓸립시스, 짓누르는 고난.
15절 "족속"
族屬, 원문 파트리아, ‘아버지(파테르)에게서 난 집안’.
16절 "속사람"
겉사람(몸)과 대조되는 내면의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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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7그리스도의 비밀 — 이방인들이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바울은 2장에서 말한 ‘둘이 하나 됨’이 자기가 지어낸 생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계시로’ 알려 주신 ‘비밀’입니다. 그리고 그 비밀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일이 바울이 받은 사명, 곧 ‘은혜의 경륜’입니다. 바울이 감옥에 있는 것도 바로 이 사명 때문입니다.
이 단락의 중심은 6절입니다. 비밀의 내용이 세 개의 ‘함께’로 정리됩니다. 2장 5–6절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나고 일어나고 앉았듯, 3장 6절에서 이방인들은 유대인과 ‘함께’ 상속자, ‘함께’ 지체, ‘함께’ 참예자가 됩니다.
1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직역 이 때문에 나 바울은, 너희 이방인들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죄수로서 —
"이러므로." 2장에서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집이 되었다는 그 놀라운 사실 때문에, 바울은 무릎을 꿇고 기도하려 합니다(14절에서 이어짐). 그런데 자기를 소개하다가 말이 끊어집니다. 원문에도 1절에는 동사가 없습니다. 『개역한글』도 "나 바울이"에서 문장을 그대로 끊어 두었습니다. 감정이 북받친 사람이 말을 하다가 다른 생각으로 넘어가는 모습입니다.
바울은 자기를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 자"라고 부릅니다. 사람들 눈에 그는 로마 황제의 죄수였습니다. 쇠사슬에 묶여 군인의 감시를 받으며 재판을 기다렸습니다(행 28:16, 20). 그러나 바울은 자기를 ‘네로의 죄수’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께 매인 사람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의 뜻이 아니었다면 아무도 그를 가둘 수 없었습니다. 자기 처지를 사람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보는 것, 이것이 감옥에서도 찬송할 수 있었던 비결입니다.
그리고 그는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혔습니다. 2장의 노트에서 보았듯, 바울이 체포된 직접적인 이유는 이방인을 성전에 데리고 들어갔다는 오해였습니다(행 21:28). 바울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이방인과 유대인이 하나라고 선포한 대가로 쇠사슬을 찼습니다. 그는 2장에서 말한 그 하나 됨을 위해 실제로 값을 치르고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끊어진 문장 — 1절에서 시작된 생각은 14절 "이러므로(투투 카린) 내가… 비노니"에서 같은 말로 다시 시작됩니다. 2–13절은 긴 삽입구입니다. 이런 문장 중단(아나콜루톤)은 바울이 편지를 받아쓰게 하면서 생각이 흐르는 대로 말했다는 흔적입니다.
갇힌 자데스미오스 — 4:1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빌레몬서 1, 9절 "그리스도 예수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바울", 딤후 1:8.
이러므로투투 카린 — ‘이것 때문에’. 3:14에서 똑같이 반복되어 끊어진 문장을 다시 잇는 표지가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4: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엡 6: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행 21:28또 헬라인을 데리고 성전에 들어가서 이 거룩한 곳을 더럽혔다 하니
행 28:20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빌 1:12-13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위대 안과 그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2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직역 너희가 분명 들었겠지만,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청지기 직분)에 대하여 —
"은혜의 경륜." 1:10에서 ‘경륜’은 하나님이 온 우주의 역사를 관리하시는 계획이었습니다. 여기서는 그 큰 계획 안에서 바울에게 맡겨진 관리 직분입니다. 부잣집 주인이 청지기에게 창고 열쇠를 맡기듯, 하나님은 바울에게 ‘은혜’라는 창고를 맡기시고 그것을 이방인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은혜의 주인이 아니라 은혜의 청지기입니다.
이 직분은 "너희를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바울의 사도직은 바울 자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은혜를 흘려보내도록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와 직분도 결국 ‘다른 사람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4:12, 벧전 4:10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에베소에서 3년이나 지낸 바울이 ‘너희가 들었겠지만’이라고 말하는 것이 조금 어색합니다. 1:1 노트에서 본 것처럼, 이 편지가 바울을 직접 만나지 못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에도 돌려 읽혔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혹은 에베소 교회에 바울이 떠난 뒤 새로 온 성도가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경륜오이코노미아 — 고전 9:17 "내가 내 임의로 아니한다 할지라도 나는 직분을 맡았노라(오이코노미안 페피스튜마이)", 골 1:25 "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9절에서는 하나님 편에서의 ‘비밀의 경륜’을 말합니다.
들었을 터이라에이 게 — ‘만일 정말로 ~했다면’. 의심이 아니라 ‘물론 들었겠지만’ 하는 부드러운 확인의 표현입니다. 4:21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1:25내가 교회 일군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고전 4:1-2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군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 그리고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갈 2:9또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저희는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벧전 4: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3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셨다 — 내가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직역 곧 계시를 따라 그 비밀이 내게 알려졌다는 것이다. 내가 앞에서 간략하게 쓴 것처럼.
바울은 이 비밀을 "계시로" 받았다고 말합니다. 사람에게 배우거나 스스로 연구해서 알아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직접 덮개를 벗겨 보여 주신 것입니다. 다메섹 길에서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났을 때부터(행 9장, 26:16–18 "내가… 너를 이방인에게 보내어"), 그리고 아라비아에서의 시간(갈 1:17)을 거치며 바울은 이 계시를 받았습니다. 갈라디아서 1:12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내가 이미 대강 기록함과 같으니." 다른 편지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이 편지의 앞부분, 1장 9–10절(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는 비밀)과 2장 11–22절(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됨)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내가 앞에서 짧게 말한 그 내용’이라고 독자들의 기억을 되살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계시아포칼륍시스 — ‘덮개를 벗김’. 1:17 "지혜와 계시의 정신", 갈 1:12, 16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아포칼륍사이)". 요한계시록의 제목(계 1:1)도 이 단어입니다.
대강엔 올리고 — ‘적은 말로, 간략히’. 『새번역』 "간략하게 적은 바와 같이".
함께 읽을 말씀
갈 1:11-12내가 전한 복음이 사람의 뜻을 따라 된 것이 아니라 이는 내가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이라
행 26:16-18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과 이방인들에게서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그 눈을 뜨게 하여
엡 1:9-10그 뜻의 비밀을 우리에게 알리셨으니… 하늘에 있는 것이나 땅에 있는 것이 다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하려 하심이라
암 3:7주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비밀을 그 종 선지자들에게 보이지 아니하시고는 결코 행하심이 없으시리라
4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알 수 있으리라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직역 너희가 그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에 대한 나의 깨달음을 이해할 수 있다.
"이것을 읽으면." 당시 편지는 대부분 교회 모임에서 한 사람이 소리 내어 읽었습니다(골 4:16, 살전 5:27). 글을 읽지 못하는 성도도 많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 편지를 들으면서 하나님의 비밀을 이해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특별한 소수만 아는 비밀 지식이 아니라, 성경을 읽고 듣는 모든 성도에게 열려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비밀." 이 비밀은 그리스도에 대한 비밀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 자신이 비밀의 내용입니다. 골로새서 1:27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 그리스도를 알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 보입니다.
바울은 자기의 "깨달은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자랑하는 것처럼 들릴 수 있지만, 8절에서 바울은 곧바로 자기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그의 깨달음은 그의 똑똑함이 아니라 받은 은혜의 결과입니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독자들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읽으면아나기노스콘테스 — 신약에서 ‘읽다’는 보통 공적인 낭독을 뜻합니다(눅 4:16 예수님이 회당에서 이사야서를 읽으심, 계 1:3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
깨달음쉬네시스 — ‘함께(쉰) 놓다’, 조각들을 맞추어 전체를 이해함. 골 1:9 "신령한 지혜와 총명(쉬네시스)", 골 2:2 "이해(쉬네시스)의 모든 부요에 이르러".
함께 읽을 말씀
골 1:26-27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이 비밀은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시니
골 4:16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딤후 2:7내가 말하는 것을 생각하라 주께서 범사에 네게 총명을 주시리라
5다른 세대에서는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나 이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셨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
직역 그것은 다른 세대들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려지지 않았으나, 이제 그분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계시되었다.
이 비밀은 "다른 세대에서는… 알게 하지 아니하셨으니"입니다. 그런데 구약에도 이방인이 하나님께 돌아오리라는 약속이 많지 않습니까? 아브라함에게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창 12:3), 이사야에게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사 49:6). 맞습니다. 구약 선지자들도 이방인의 구원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본 그림은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에 들어와 유대인이 되는 모습이었습니다. 이방인들이 시온으로 올라오고, 이스라엘의 율법을 배우고, 할례를 받아 이스라엘 백성에 합류하는 것(사 2:2–3, 슥 8:23). 감추어졌던 것은, 이방인들이 유대인이 되지 않은 채로, 할례도 율법도 없이,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과 완전히 동등한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둘 다 아닌 ‘한 새 사람’(2:15)이 된다는 것, 이것은 구약 성도들이 상상하지 못한 일이었습니다.
이 비밀은 "이제…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입니다. 베드로는 고넬료의 집에서 이 비밀을 깨달았습니다(행 10장).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들에게 성령이 똑같이 임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능히 하나님을 막겠느냐"(행 11:17)고 고백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행 15장)도 같은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도들과 선지자들 — 2:20, 4:11과 같은 짝. 여기서 ‘거룩한’이 붙은 것은 그들이 하나님께 구별되어 계시를 맡았다는 뜻입니다. 이 순서(사도 → 선지자)를 보아 구약 선지자보다는 신약 시대 교회의 선지자들로 보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다른 세대에서는 — 롬 16:25–26 "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을 좇아 선지자들의 글로 말미암아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롬 16장은 이 비밀이 선지자들의 글 속에 씨앗처럼 있었다가 이제 드러났다고 말합니다. 감추어졌다는 것은 아예 없었다는 뜻이 아니라, 아직 꽃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아들들 — 히브리어 ‘브네 아담’, 곧 인류 전체. 막 3:28 "사람의 모든 죄와".
함께 읽을 말씀
행 10:44-47베드로가 이 말할 때에 성령이 말씀 듣는 모든 사람에게 내려오시니… 이방인들에게도 성령 부어 주심을 인하여 놀라니
행 11:17-18그런즉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과 같은 선물을 저희에게도 주셨으니 내가 누구관대 능히 하나님을 막겠느냐…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방인에게도 생명 얻는 회개를 주셨도다
벧전 1:10-12이 구원에 대하여는 너희에게 임할 은혜를 예언하던 선지자들이 연구하고 부지런히 살펴서…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사 49:6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슥 8:23그 날에는 방언이 다른 열국 백성 열 명이 유다 사람의 옷자락을 잡을 것이라 곧 잡고 말하기를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하심을 들었나니 우리가 너희와 함께 가려 하노라
6이방인들이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직역 곧 이방인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을 통하여, 함께 상속자요 함께 한 몸이요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들이라는 것이다.
드디어 비밀의 내용이 한 문장으로 나옵니다. 원문에서 세 단어가 모두 ‘함께(쉰)’로 시작합니다. 한국어로 옮기면 ‘함께 상속자, 함께 몸, 함께 참여자’입니다.
① "함께 후사가 되고." 후사는 상속자입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다윗에게 주신 약속,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 이방인들은 이 유산을 유대인과 똑같이 나누어 받습니다. 유대인은 본처의 자녀, 이방인은 첩의 자녀가 아닙니다. 같은 아버지의 같은 상속자입니다(갈 3:29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② "함께 지체가 되고." 원문 쉬소마는 바울이 처음 만든 것으로 보이는 단어입니다. ‘같은 몸’, ‘한 몸에 속한’. 기존의 말로는 이 새로운 현실을 표현할 수 없어서 새 단어를 지어낸 것입니다. 이방인은 몸에 덧붙인 의수나 의족이 아니라, 처음부터 그 몸의 살아 있는 지체입니다(2:16 "한 몸으로").
③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 구약의 약속들, 특히 메시아와 성령에 대한 약속(1:13 "약속의 성령")에 함께 참여합니다. 2:12에서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었던 그들이, 이제 약속의 한가운데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 말미암아" 이루어졌습니다. 할례로도, 율법 준수로도, 유대 문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도 아닙니다. 오직 복음으로. 이것이 바울이 평생 지키려 했던 복음의 핵심이고, 이것 때문에 그는 감옥에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세 개의 ‘쉰’ 단어 — 쉰클레로노마(함께 상속자, 롬 8:17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 쉬소마(함께 몸, 신약에서 여기에만), 쉼메토카(함께 참여자, 5:7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에서는 부정적으로 쓰임).
2장과의 연결 — 2:5–6의 세 ‘함께’(살리시고, 일으키시고, 앉히시고)는 그리스도와 우리의 연합, 2:19–22의 ‘함께’(시민, 연결, 지어져)는 성도들 사이의 연합, 3:6의 세 ‘함께’는 유대인과 이방인의 연합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3:28-29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롬 8: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롬 11:17또한 가지 얼마가 꺾여졌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창 12:3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행 15:8-9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와 같이 저희에게도 성령을 주어 증거하시고 믿음으로 저희 마음을 깨끗이 하사 저희나 우리나 분간하지 아니하셨느니라
7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군이 되었노라
직역 나는 하나님의 능력의 작용을 따라 내게 주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이 복음의 일꾼이 되었다.
바울은 자기를 복음의 "일군"이라고 부릅니다. 원문 디아코노스는 식탁에서 시중드는 사람, 섬기는 종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교회의 ‘집사’라는 직분도 여기서 왔습니다. 위대한 사도 바울이 스스로를 ‘복음의 시중꾼’이라고 부릅니다. 복음이 주인이고 바울은 종입니다.
그는 어떻게 일군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2:8에서 구원이 선물이었듯, 직분도 선물입니다. 바울은 자격이 있어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이 은혜로 사도가 되었습니다(고전 15:9–10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그리고 그 일은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이루어집니다. 1:19–20에서 그리스도를 살리신 그 능력이, 2:5에서 죽은 우리를 살리신 그 능력이, 이제 바울을 통해 복음을 전하게 합니다. 하나님이 부르신 일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합니다. 우리가 섬기는 자리에서 지칠 때 기억해야 할 것은, 그 일이 내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하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일군디아코노스 — 6:21 두기고도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이라 불립니다. 막 10:43–45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디아코노스)가 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선물도레아 — 4:7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우리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셨나니"에 다시 나옵니다. 바울이 받은 사도의 은혜와 모든 성도가 받은 은사는 같은 근원에서 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5:9-10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골 1:23, 29나 바울은 이 복음의 일군이 되었노라…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고후 3:5-6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군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딤전 1:12-14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를 묶은 사슬도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감옥에 있었지만 자기를 ‘로마의 죄수’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갇힌 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고난이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곧 이방인을 한 몸으로 부르시는 일을 위한 것임을 알았습니다.
내 삶을 묶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사슬이 있습니까? 질병, 경제적 어려움, 막힌 길. 그것을 사람이나 운명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볼 수 있다면, 우리도 그 자리에서 복음의 일꾼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쇠사슬에 묶인 바울을 통해 에베소서를 쓰게 하셨습니다.
3:8–13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 — 교회로 말미암아 드러나는 하나님의 각종 지혜
바울은 자기가 받은 사명을 더 깊이 설명합니다. 사명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이방인에게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는 것(8절), 다른 하나는 모든 사람에게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는 것(9절)입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놀랍게도 땅을 넘어 하늘에 닿습니다. 교회를 통해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보게 하려는 것입니다(10절).
그리고 이 단락은 다시 바울의 고난으로 돌아옵니다. 그의 환난은 성도들이 낙심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의 영광이라고 말합니다(13절). 1절에서 꺼낸 ‘갇힌 자’ 이야기가 13절에서 마무리됩니다.
8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전하게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직역 모든 성도 가운데 가장 작은 자보다도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가 주어졌다. 그리스도의 탐험할 수 없는 부요를 이방인들에게 복음으로 전하게 하시려고.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바울은 문법을 깨뜨리면서까지 자기를 낮춥니다. 원문은 ‘가장 작은(엘라키스토스)’에 다시 비교급 어미를 붙여 ‘가장 작은 것보다 더 작은’이라는 말을 만들었습니다. 한국어로 하면 ‘제일 작은 사람보다 더 작은 사람’입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의 이름 ‘바울(파울로스)’은 라틴어로 ‘작은 자’라는 뜻입니다.
바울의 겸손은 시간이 갈수록 깊어졌습니다. 초기 편지에서는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고전 15:9, 주후 55년경), 이 편지에서는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엡 3:8, 60–62년경), 마지막 편지에서는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 1:15, 63–65년경). 사도 중 작은 자 → 성도 중 가장 작은 자 → 죄인 중 첫째.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록 자기를 더 정직하게 봅니다. 은혜를 더 받은 사람일수록 더 낮아집니다.
그런 그에게 맡겨진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입니다. ‘측량할 수 없는’은 원래 ‘발자국을 끝까지 추적할 수 없는’이라는 뜻입니다. 사냥꾼이 짐승의 발자국을 따라가다가 어느 지점에서 흔적을 놓쳐 버리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풍성은 아무리 따라가도 끝에 이를 수 없습니다. 아무리 탐험해도 다 탐험할 수 없는 대륙 같습니다. 바울은 평생 그리스도를 전했지만, 그 풍성의 끝을 보지 못했습니다.
가장 작은 사람에게 가장 큰 보물이 맡겨졌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원어 · 번역 노트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엘라키스토테로스 — 최상급(엘라키스토스)에 비교급 어미(-테로스)를 붙인 독특한 형태. 헬라어 문법으로는 맞지 않지만, 그래서 더 강한 표현이 됩니다.
측량할 수 없는아넥시크니아스토스 — ‘밖으로(엑스) 발자국(이크노스)을 찾을 수 없는’. 롬 11: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아넥시크니아스토이)"에도 쓰였습니다. 70인역 욥 5:9, 9:10 "측량할 수 없는 큰 일".
고전 15:9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니라
딤전 1:15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고후 4: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롬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골 2:3그 안에는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추어 있느니라
욥 9:10측량할 수 없는 큰 일을, 셀 수 없는 기이한 일을 행하시느니라
9영원부터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게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직역 그리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안에 영원부터 감추어져 있던 그 비밀의 경륜이 무엇인지 모든 사람에게 밝히 드러내게 하시려고.
바울의 두 번째 사명은 비밀의 경륜을 "드러내게" 하는 것입니다. 원문은 ‘빛을 비추다’입니다. 1:18에서 마음 눈을 ‘밝히사’와 같은 뿌리입니다. 많은 사본에는 ‘모든 사람에게’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두운 방에 등불을 켜서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모든 사람이 볼 수 있게 하는 것처럼, 바울은 하나님의 숨겨진 계획에 빛을 비추어 누구나 볼 수 있게 했습니다. 고대의 비밀 종교들이 입문자에게만 비밀을 알려 준 것과는 정반대입니다.
그 비밀은 "영원부터…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것입니다. 이방인을 한 몸으로 부르시는 계획은 바울 시대에 갑자기 생각해 내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마음속에 영원부터 있었습니다. 1:4 "창세 전에"와 같은 이야기입니다.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경계하던 그 오랜 세월 동안에도, 하나님은 이미 이방인을 품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하나님을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왜 여기서 창조를 말할까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를 지으신 분은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은 처음부터 모든 민족의 하나님이셨습니다(행 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구속의 계획은 창조의 계획과 하나입니다. 만물을 지으신 분이 만물을 다시 하나로 모으십니다(1:10).
원어 · 번역 노트
드러내게포티사이 — ‘조명하다’. 딤후 1:10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포티산토스)", 요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모든 사람에게 — 대부분의 사본에 ‘판타스(모든 사람을)’가 있지만, 시내 사본 원래 본문 등 몇 사본에는 없습니다. 『개역한글』은 이 말 없이 옮겼고, 『개역개정』도 같습니다. 영어 KJV, NIV 등은 ‘everyone’을 넣었습니다.
골 1:26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추었던 것인데 이제는 그의 성도들에게 나타났고
롬 16:25-26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는 나타내신 바 되었으며… 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행 17:24-26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물을 지으신 신께서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고전 2:7오직 비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이니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10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직역 이는 이제 하늘에 있는 곳들의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교회를 통하여 하나님의 다채로운 지혜가 알려지게 하려는 것이다.
에베소서에서 가장 놀라운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비밀을 드러내신 목적이 땅의 사람들을 넘어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까지 이릅니다. 1:21에서 그리스도께서 그들 위에 앉으셨고, 6:12에서 우리가 그들과 씨름한다고 했던 바로 그 보이지 않는 영적 존재들입니다. 선한 천사들일 수도 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한 세력들일 수도 있습니다(아마 둘 다일 것입니다).
그들은 무엇을 봅니까? "하나님의 각종 지혜." ‘각종’으로 번역된 폴뤼포이킬로스는 ‘여러 빛깔로 수놓은, 다채로운’이라는 뜻입니다. 고대에는 꽃밭, 수놓은 옷감, 무지개를 묘사할 때 이 말을 썼습니다. 70인역에서 요셉의 ‘채색옷’(창 37:3)을 묘사하는 말과 같은 뿌리입니다. 하나님의 지혜는 단색이 아니라 수많은 색실로 짠 화려한 직물과 같습니다.
그런데 그 지혜는 어디서 보입니까?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의 존재들이 하나님의 지혜를 보는 곳은 하늘이 아니라 땅의 교회입니다. 그들은 서로 원수였던 유대인과 이방인, 주인과 종, 부자와 가난한 자, 헬라인과 야만인이 한 식탁에 앉아 같은 아버지를 부르는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놀랍니다. ‘하나님은 저렇게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 아름다운 무늬를 만드시는구나.’ 다양한 색실이 하나의 그림이 되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각종 지혜’입니다.
이 말은 교회의 존재 자체가 하나의 선포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무엇을 말하기 전에, 교회가 어떤 공동체인가가 이미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말하고 있습니다. 사탄과 악한 세력들은 인간을 갈라놓는 데서 승리를 거두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로 하나 된 교회는 그들의 패배를 공개적으로 보여 줍니다. 반대로 교회가 분열하고 다투면, 하늘의 관중 앞에서 하나님의 지혜를 가리는 일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각종폴뤼포이킬로스 — ‘많이(폴뤼) + 다채로운(포이킬로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포이킬로스는 벧전 4:10 "하나님의 각양(포이킬레스) 은혜", 약 1:2 "여러 가지(포이킬로이스) 시험"에도 쓰였습니다. 고대 그리스 작가 에우리피데스는 꽃으로 수놓은 화관을 이 말로 묘사했습니다.
하늘에서 — ‘하늘에 있는 곳들에서(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 에베소서의 다섯 번 가운데 네 번째. 1:3, 1:20, 2:6, 3:10, 6:12.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 벧전 1:12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고전 4:9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성경은 천사들이 구원의 역사를 지켜보며 배운다고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벧전 1:12하늘로부터 보내신 성령을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자들로 이제 너희에게 고한 것이요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니라
고전 4:9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노라
골 2:15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롬 11: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요 17:21아버지여…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11영원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직역 이것은 그분이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이루신 영원한 목적을 따른 것이다.
교회를 통해 하나님의 지혜가 드러나는 것은 우연이 아니라 "영원부터… 예정하신 뜻대로"입니다. 원문은 ‘시대들의 목적을 따라’입니다. 모든 시대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하나의 큰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여기서 동사 "하신 것이라"는 과거형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그 영원한 목적은 이미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는 그 이루어진 일을 세상과 하늘에 보여 주는 곳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실패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불순종도, 로마의 핍박도, 바울의 투옥도 그 계획을 막지 못했습니다.
에베소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계획이 얼마나 확실한지 말합니다. 1:4 창세 전에, 1:5 예정하사, 1:9 예정하신 것,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2:10 전에 예비하사, 3:9 영원부터 감추었던, 3:11 영원부터 예정하신 뜻대로. 이 반복은 감옥에 있는 바울과 박해 속의 성도들에게 큰 위로였습니다. 지금 보이는 상황이 어떻든, 하나님의 영원한 목적은 이미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고 반드시 완성될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예정하신 뜻프로테시스 — ‘앞에(프로) 놓다(티테미)’. 1:11 "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프로테시스)을 따라", 롬 8:28 "그 뜻(프로테시스)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 딤후 1:9. 성전의 ‘진설병’(떡을 하나님 앞에 진열해 둠)도 이 단어로 불렸습니다(히 9:2).
하신 것이라에포이에센 — 부정과거. ‘계획하셨다’로도 ‘이루셨다’로도 읽을 수 있지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를 보면 그리스도의 사역으로 ‘이루셨다’는 뜻이 자연스럽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딤후 1:9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롬 8:28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사 14:24만군의 여호와께서 맹세하여 가라사대 나의 생각한 것이 반드시 되며 나의 경영한 것이 반드시 이루리라
엡 1:11모든 일을 그 마음의 원대로 역사하시는 자의 뜻을 따라 우리가 예정을 입어
12그 안에서 믿음으로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는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직역 그분 안에서 우리는 그분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담대함과 확신 가운데 나아감을 가지고 있다.
하늘의 큰 이야기(10–11절)가 우리의 기도 자리로 내려옵니다. 영원한 계획이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기에, 우리는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었습니다.
"담대함." 원문 파레시아는 원래 아테네 같은 도시국가에서 자유 시민이 공적인 자리에서 거리낌 없이 말할 수 있는 권리를 뜻했습니다. 노예나 외국인은 이 권리가 없었습니다. 2:19에서 우리는 이제 외인도 손도 아니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시민의 권리, 곧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열고 숨김없이 말할 권리를 얻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 나라 시민의 자유 발언입니다.
"당당히 나아감." 2:18의 ‘나아감’(왕을 알현함)에 ‘확신 가운데’가 붙었습니다. 에스더는 부름 받지 않고 왕 앞에 나아갔다가 죽을 수도 있었습니다(에 4:11, 16 "죽으면 죽으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우주의 왕 앞에 두려움 없이, 확신을 가지고 나아갑니다. 내가 의로워서가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집니다. 담대함의 근거는 내 기도 실력이나 신앙 경력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기도의 자리가 망설여진다면, 이 구절을 기억하십시오. 문은 이미 열려 있고, 그리스도께서 손을 잡고 계십니다.
그를 믿음으로 — 원문 ‘디아 테스 피스테오스 아우투’는 ‘그분에 대한 믿음’(목적격)으로도, ‘그분의 신실하심’(주격)으로도 읽힐 수 있어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롬 3:22, 갈 2:16도 같은 문제). 『개역한글』은 ‘그를 믿음’으로 옮겼습니다. 어느 쪽이든 우리의 담대함은 그리스도께 근거합니다.
당당히엔 페포이테세이 — ‘확신 안에서’. 고후 3:4 "우리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향하여 이같은 확신(페포이테신)이 있으니".
함께 읽을 말씀
히 4:16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히 10:19-22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참 마음과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자
요일 5:14그를 향하여 우리의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엡 2:18이는 저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에 4:16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13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낙심하지 말라 —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직역 그러므로 나는 너희를 위한 나의 환난들 때문에 너희가 낙심하지 않기를 구한다. 그것은 너희의 영광이다.
1절에서 시작한 이야기가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바울은 성도들이 "낙심하지 말라"고 부탁합니다. 사도가 감옥에 갇혀 있다는 소식은 교회에 큰 충격이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바울과 함께하신다면 왜 감옥에 두실까?’ ‘우리 이방인들 때문에 바울이 고생하는구나.’ 낙심하고 죄책감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내 고난은 "너희의 영광이니라." 이상한 말입니다. 어떻게 바울의 고난이 그들의 영광이 될까요? 바울이 고난을 받으면서까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한다는 것은, 그만큼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귀하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를 위해 큰 값을 치렀다면, 그것은 내가 그만큼 소중하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피를 흘리셨다는 것이 우리의 가치를 말해 주듯, 사도가 이방인을 위해 쇠사슬을 찼다는 것은 이방인들이 하나님의 계획에서 얼마나 영광스러운 자리에 있는지를 말해 줍니다.
또한 고난은 영광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받으시고 영광에 들어가신 것처럼(눅 24:26), 복음을 위한 고난은 결국 영광으로 이어집니다. 고후 4:17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바울은 자기의 처지를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을 성도들을 위로하는 재료로 씁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환난쓸립시스 — ‘누르다, 짜내다’에서 온 말. 포도즙 틀에서 포도를 짜는 압박. 골 1:24 "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파테마)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쓸립시스)을 내 육체에 채우노라".
낙심하지엥카케오 — ‘악(카코스) 안에(엔) 있다’, 곧 지쳐서 포기하다. 눅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고후 4:1, 16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갈 6:9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누가 낙심하지 않기를 — 원문은 주어가 분명하지 않아 ‘내가 낙심하지 않기를 구한다’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번역은 『개역한글』처럼 ‘너희가’로 읽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1:24내가 이제 너희를 위하여 받는 괴로움을 기뻐하고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을 그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내 육체에 채우노라
고후 4:16-17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잠시 받는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우리에게 이루게 함이니
빌 1:12-14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형제 중 다수가 나의 매임을 인하여 주 안에서 신뢰하므로
딤후 2:10그러므로 내가 택함을 받은 자를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저희로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얻게 하려 함이로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작은 우리 교회가 하늘의 무대입니다
우리는 교회를 너무 작게 봅니다. 몇십 명이 모이는 예배, 서로 부딪히는 성도들, 늘 부족한 재정. 그러나 바울은 교회가 하늘의 정사와 권세들 앞에 하나님의 다채로운 지혜를 보여 주는 무대라고 말합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한 식탁에 앉아 같은 아버지를 부를 때, 하늘이 그것을 봅니다. 오늘 내가 서로 다른 성도를 품고 하나 됨을 지키는 작은 행동 하나가, 하늘을 향한 하나님의 지혜의 선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우리는 담대하게 아버지께 나아갑니다.
3:14–19아버지 앞에 비노니 — 속사람이 강건하고,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고, 충만하게
1절에서 멈추었던 기도가 드디어 시작됩니다. "이러므로 내가… 아버지 앞에 비노니." 원문은 ‘내가 무릎을 꿇는다’입니다. 유대인은 대개 서서 기도했습니다(막 11:25, 눅 18:11, 13). 무릎을 꿇는 것은 특별히 간절하거나 깊이 경배할 때의 자세였습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인 채로 무릎을 꿇었을 것입니다.
이 기도는 사다리처럼 한 계단씩 올라갑니다. ① 성령으로 속사람이 강건하게(16절) → ②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거하시게(17절) → ③ 사랑에 뿌리박고 터가 굳어져서(17절) → ④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깨닫고(18절) → ⑤ 지식에 넘치는 그 사랑을 알아(19절) → ⑥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19절). 그리고 1장의 기도처럼 이 기도에도 삼위 하나님이 모두 나옵니다. 아버지께(14절), 성령으로(16절), 그리스도께서(17절).
14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이러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
직역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다.
"이러므로." 1절의 ‘이러므로’와 같은 말입니다. 바울은 긴 삽입(2–13절)을 마치고 원래 하려던 기도로 돌아옵니다. 무엇 ‘때문에’ 기도합니까? 2장에서 말한 하나 됨, 그리고 3장 앞부분에서 말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큰일을 하셨으니, 성도들이 그 큰일에 걸맞게 자라도록 기도합니다.
『개역한글』은 원문의 문장을 14절과 15절에 나누어 옮겼습니다. 원문 14절은 "이 때문에 나는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는다", 15절은 "그 아버지에게서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이 이름을 얻는다"입니다. 『개역한글』은 우리말 어순에 맞추어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를 14절에,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비노니’를 15절에 두었습니다. 그래서 14절만 따로 읽으면 문장이 끝나지 않습니다. 15절과 함께 읽어야 합니다.
원문의 핵심 동사는 ‘무릎을 꿇다’입니다. 『개역한글』은 이것을 15절의 ‘비노니’로 옮겼습니다. 바울의 몸은 감옥에 묶여 있었지만, 그의 무릎은 하늘 아버지 앞에 꿇어 있었습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의 위협 속에서도 하루 세 번 무릎을 꿇었듯이(단 6:10).
원어 · 번역 노트
원문 14절 — ‘투투 카린 캄프토 타 고나타 무 프로스 톤 파테라’, ‘이 때문에 나는 나의 무릎을 아버지께로 꿇는다’. 일부 후대 사본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가 덧붙어 있지만(KJV), 가장 오래된 사본에는 없습니다.
무릎 꿇음 — 솔로몬(왕상 8:54), 에스라(스 9:5), 다니엘(단 6:10), 스데반(행 7:60), 베드로(행 9:40), 바울(행 20:36, 21:5), 그리고 겟세마네의 예수님(눅 22:41). 빌 2:10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절 구분 — 『개역한글』의 14–15절은 원문의 절 구분과 내용이 조금 어긋나 있습니다. 이 강해에서는 『개역한글』의 절 구분을 따르되, 원문 직역은 원문 절 구분을 따랐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단 6:10하루 세 번씩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그 하나님께 감사하였더라
행 20:36이 말을 한 후 무릎을 꿇고 저희 모든 사람과 함께 기도하니
눅 22:41저희를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빌 2:10-11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시 95:6오라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15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비노니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비노니
직역 그 아버지로부터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이름을 얻는다.
원문에는 재미있는 말놀이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파테르, ‘족속’은 파트리아입니다. 파트리아는 ‘한 아버지에게서 나온 집안, 가문’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모든 부계(父系)가 그 이름을 아버지에게서 얻는다’고 말하는 셈입니다. 세상의 모든 가문, 모든 아버지됨의 원형과 근원이 하나님 아버지이시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아버지들은 하나님 아버지의 희미한 그림자일 뿐입니다.
"이름을 주신." 성경에서 이름을 지어 준다는 것은 그 존재를 지으시고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별들의 이름을 부르시고(사 40:26), 아담은 동물들의 이름을 지었습니다(창 2:19).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 유대인과 이방인, 모든 민족, 하늘의 천사들까지 한 아버지께로부터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바울이 기도하는 아버지는 유대인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세상 모든 족속의 아버지이십니다. 2–3장의 주제, 곧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을 하나로 부르시는 하나님이 이 호칭 안에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 앞에 비노니." 바울은 막연한 신에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그 크신 분이,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그 아버지 앞에서 바울은 무릎을 꿇습니다. 위대하심과 친밀하심이 함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족속파트리아 — ‘아버지(파테르)에게서 비롯된 집단’. 눅 2:4 "다윗의 집 족속(파트리아)인고로", 행 3:25 "땅 위의 모든 족속(파트리아이)이 너의 씨를 인하여 복을 받으리라" — 아브라함 언약의 인용.
하늘의 족속 — ‘하늘에 있는 족속’은 천사들의 무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유대 문헌에서는 천사들을 ‘하늘의 가족’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번역의 선택 — ‘파사 파트리아’는 ‘모든 족속(각 족속)’으로도, ‘온 가족(전체 가족)’으로도 번역됩니다. KJV는 ‘the whole family’, 대부분의 현대 번역과 『개역한글』은 ‘각 족속’으로 옮겼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0:26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주께서는 수효대로 만상을 이끌어 내시고 각각 그 이름을 부르시나니
말 2:10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행 17:26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마 23:9땅에 있는 자를 아비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나이시니 곧 하늘에 계신 자시니라
16영광의 풍성을 따라 성령으로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직역 그분의 영광의 부요를 따라 너희에게 주셔서, 그분의 영을 통하여 속사람 안에 능력으로 강건하게 되게 하시고,
첫 번째 기도 제목은 "속사람을… 강건하게"입니다. ‘속사람’은 몸(겉사람)과 대조되는 사람의 내면, 곧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고 신뢰하는 마음의 자리입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4:16에서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라고 말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바울의 겉사람은 지쳐 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도들의 겉사람이 아니라 속사람이 강해지기를 기도합니다.
우리는 대개 겉사람을 위해 기도합니다. 건강, 사업, 시험, 자녀의 진로. 그것도 소중한 기도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우선으로 구한 것은 속사람의 힘이었습니다. 겉사람의 조건이 아무리 좋아도 속사람이 무너지면 쓰러지고, 겉사람의 조건이 아무리 나빠도 속사람이 강하면 견딥니다. 바울이 감옥에서 찬송할 수 있었던 것이 그 증거입니다.
그 힘은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옵니다. 우리 안의 의지력이나 긍정적인 생각이 아니라, 우리 안에 계신 성령의 능력입니다(1:13 인치신 성령). 그리고 그 힘의 공급은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입니다. 1:7에서 은혜의 풍성 ‘따라’ 용서하셨듯이,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의 부요에 ‘걸맞게’ 힘을 주십니다. 하나님의 창고는 바닥나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속사람호 에소 안트로포스 — 롬 7:22 "내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고후 4:16. 4:22–24의 ‘옛 사람/새 사람’과는 다른 개념입니다. 속사람은 사람의 내면 자체이고, 새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음받은 존재 전체입니다.
강건하게크라타이오오 — 눅 1:80 "아이가 자라며 심령이 강하여지며", 고전 16:13 "강건하라". 1:19의 ‘강력(크라토스)’과 같은 뿌리입니다.
영광의 풍성 — 1:18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 빌 4:19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함께 읽을 말씀
고후 4:16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골 1:11그의 영광의 힘을 좇아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사 40:29-31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빌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슥 4:6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17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시고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직역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거하시게 하시기를. 너희가 사랑 안에 뿌리 박고 터가 굳어져서,
두 번째 기도 제목은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믿는 사람 안에 계시지 않습니까? 1:13에서 그들은 이미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무엇을 구하는 것일까요?
열쇠는 ‘계시다’라는 단어에 있습니다. 헬라어에는 ‘머물다’라는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파로이케오’는 손님처럼 잠시 머무는 것이고(2:19 ‘손’), ‘카토이케오’는 집주인으로 정착해서 사는 것입니다. 바울이 여기서 쓴 말은 카토이케오, ‘주인으로 정착하여 사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손님으로 계시는 것과 주인으로 계시는 것은 다릅니다. 손님은 거실에만 있지만 주인은 모든 방의 열쇠를 가집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성도들 마음의 모든 방에서, 모든 영역에서 주인으로 편안히 사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두 가지 그림이 이어집니다.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는 나무의 그림이고, "터가 굳어져서"는 건물의 그림입니다. 나무는 뿌리가 깊어야 바람에 쓰러지지 않고, 건물은 기초가 단단해야 무너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뿌리와 기초가 내린 땅은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을 지탱하는 토양은 율법이나 의무감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 그리고 그 사랑 안에서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시편 1편의 "시냇가에 심은 나무"처럼.
원어 · 번역 노트
계시게카토이케사이 — 골 1:19 "모든 충만으로 예수 안에 거하게(카토이케사이) 하시고", 골 2:9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2:22의 ‘처소(카토이케테리온)’와 같은 뿌리입니다. 2장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처소라고 했다면, 3장에서는 각 성도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처소입니다.
뿌리가 박히고에리조메노이, 터가 굳어져서테메리오메노이 — 둘 다 완료 분사. 이미 뿌리 내리고 기초가 놓인 상태가 계속되는 것. 골 2:7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문장 구조 —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는 18절 ‘능히 깨달아’로 이어집니다. 사랑에 뿌리내린 사람만이 사랑의 크기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14:23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골 2:6-7그리스도 예수를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그 안에 뿌리를 박으며 세움을 받아
시 1:3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렘 17:7-8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마 7:24-25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계 3:20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18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직역 모든 성도와 함께 너희가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무엇인지 파악할 힘을 갖게 되고,
세 번째 기도 제목은 그리스도의 사랑의 크기를 "깨닫는" 것입니다. ‘깨닫다’는 원래 ‘붙잡다, 움켜쥐다’는 뜻입니다. 머리로 이해하는 것을 넘어 마음으로 꽉 붙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것이 쉽지 않아서 "능히", 곧 ‘그럴 힘이 있도록’ 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는 데도 성령의 힘이 필요합니다(16절).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모든 성도와 함께." 그리스도의 사랑은 혼자서는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내가 아는 하나님의 사랑은 내 경험만큼의 사랑입니다. 다른 성도가 겪은 하나님의 사랑, 다른 세대와 다른 민족과 다른 처지의 성도들이 경험한 사랑을 함께 나눌 때, 우리는 그 사랑의 더 큰 모습을 봅니다. 병상에서 만난 하나님, 실직 중에 만난 하나님, 아이를 잃은 슬픔 속에서 만난 하나님. 교회는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탐험하는 공동체입니다. 이것이 2장에서 말한 ‘하나 된 교회’가 필요한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바울은 사랑의 크기를 네 방향으로 말합니다. 정확히 무엇의 크기인지 원문에는 나오지 않지만, 19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면 그 사랑의 크기로 읽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네 방향을 이렇게 묵상해 왔습니다. 넓이 — 유대인과 이방인, 온 세상 모든 족속을 품을 만큼 넓은 사랑. 길이 — 창세 전부터 영원까지 이어지는 끝없는 사랑. 높이 — 죄인을 하늘에 앉히실 만큼 높은 사랑(2:6). 깊이 — 죽음과 지옥의 밑바닥까지 내려오신 깊은 사랑. 그리고 많은 교부들은 이 네 방향에서 십자가의 모양을 보았습니다. 위로, 아래로, 좌우로 뻗은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사랑의 크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깨달아카타라베스타이 — ‘아래로(카타) 잡다(람바노)’. 빌 3:12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좇아가노라", 요 1:5 "어두움이 깨닫지(카텔라벤) 못하더라". 행 4:13, 10:34에서는 ‘깨닫다’로 쓰였습니다.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 — 무엇의 크기인지에 대해 여러 해석이 있습니다. ① 그리스도의 사랑(19절과 연결, 가장 일반적), ② 하나님의 지혜(3:10), ③ 2장의 새 성전(겔 40–48장, 계 21:16의 정육면체 새 예루살렘처럼 성전의 치수), ④ 구원 계획 전체. 욥 11:7–9 "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하늘보다 높으시니… 음부보다 깊으시니… 그 도량은 땅보다 크고 바다보다 넓으니라"도 배경일 수 있습니다.
십자가 해석 — 4세기의 그레고리우스(니사)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네 차원을 십자가의 형태와 연결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넓이를 사랑의 선행, 길이를 끝까지 견딤, 높이를 위의 것을 바라는 소망, 깊이를 하나님의 은혜의 헤아릴 수 없는 뜻으로 풀었습니다.
시 103:11-12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 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 같이
롬 8:38-39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시 139:8-10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요 3:16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19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그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직역 지식을 뛰어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어, 하나님의 모든 충만에 이르기까지 너희가 채워지기를.
바울은 역설을 말합니다.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지식을 넘어서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여기서 ‘안다’는 머리로 아는 지식이 아니라 경험으로, 관계로 아는 것입니다. 바다를 다 측량할 수는 없지만 바다에 몸을 담글 수는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다 설명할 수는 없지만, 그 사랑 안에 잠길 수는 있습니다. 우리는 평생, 그리고 영원토록 그 사랑을 알아 가겠지만, 결코 다 알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국은 지루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사다리 꼭대기에 이릅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1:23에서 교회는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것이 성도들의 실제 경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것이 우리를 가득 채우는 것. 물론 우리가 하나님이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릇이 바다를 다 담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바다에 잠긴 그릇은 바닷물로 가득 찹니다.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잠긴 성도는, 그 그릇의 크기만큼 하나님으로 가득 찹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그릇을 점점 더 크게 넓혀 가십니다.
원문의 전치사는 ‘~으로’가 아니라 ‘~에 이르기까지(에이스)’입니다. 하나님의 충만이 목표 지점이고, 우리는 그곳을 향해 계속 채워져 갑니다. 4:13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와 같은 방향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하나님의 충만을 향해 끊임없이 자라는 여행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지식에 넘치는휘페르발루산 테스 그노세오스 — 1:19 "능력의 지극히 크심(휘페르발론)", 2:7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빌 4:7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과 같은 생각.
그리스도의 사랑 —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주격)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랑이 아닙니다. 롬 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고후 5: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충만하게 — 원문 ‘히나 플레로테테 에이스 판 토 플레로마 투 테우’, ‘하나님의 모든 충만을 향하여(이르기까지) 채워지도록’. 5:18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플레루스테)"와 같은 동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빌 4:7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고전 2:9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골 2:9-10그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엡 4:13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요 1:16우리가 다 그의 충만한 데서 받으니 은혜 위에 은혜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모시기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계시긴 하지만, 혹시 손님처럼 거실에만 머물러 계시지는 않습니까? 돈 문제의 방, 관계의 방, 은밀한 생각의 방은 아직 잠겨 있지는 않습니까?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의 모든 방에서 주인으로 편안히 사시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혼자서 다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늘 다른 성도가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 이야기를 들어 보십시오. 그 이야기들이 모일 때, 우리는 그 사랑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조금씩 더 알아 갑니다.
3:20–21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교회 안에서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바울의 기도는 이제 찬송으로 터져 나옵니다. 1:3 "찬송하리로다"로 시작한 에베소서 전반부가 3:21 "아멘"으로 끝납니다. 교리는 찬송에서 시작해 찬송으로 끝납니다.
이 송영은 방금 드린 기도(16–19절)가 너무 크다고 느낄 사람들을 위한 대답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그게 가능할까?’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아니 생각하는 것보다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이다.
20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직역 우리 안에서 작동하는 능력을 따라,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훨씬 더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에게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표현하려고 또 새 단어를 만듭니다. 원문 휘페레크페릿수는 ‘넘치게(페릿소스)’에 ‘밖으로(에크)’와 ‘위로 넘어(휘페르)’를 겹친 말입니다. 우리말로 하면 ‘넘치고 넘쳐 흘러넘치도록’입니다. 한 번의 ‘넘치도록’으로는 부족했던 것입니다.
이 절은 사다리를 한 칸씩 올라갑니다. ①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을 하실 수 있다. ② 우리가 구하는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 ③ 우리가 구하지 못하고 그냥 생각만 하는 것까지 하실 수 있다. ④ 생각하는 모든 것보다 넘치도록 하실 수 있다. ⑤ 넘치고 넘치도록 하실 수 있다. 우리의 상상력은 하나님의 능력의 한계가 아닙니다. 우리가 꿈꿀 수 있는 가장 큰 것보다 하나님은 더 크십니다.
그런데 이 말을 ‘무엇이든 구하면 다 이루어진다’는 뜻으로만 읽으면 안 됩니다. 문맥을 보십시오. 바로 앞에서 바울이 구한 것은 속사람의 강건함, 그리스도의 거하심, 사랑을 아는 것, 하나님의 충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드시는 일에서,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큰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능력은 저 멀리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입니다. 1:19–20에서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그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연약함을 보며 낙심할 필요가 없습니다. 내 안에 부활의 능력이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더 넘치도록휘페레크페릿수 — 신약에서 바울만 세 번 씁니다(엡 3:20, 살전 3:10 "주야로 심히 간구함은", 5:13 "저희를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바울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최상급 강조어입니다.
능히 하실 이토 뒤나메노 — 롬 16:25 "능히 너희를 견고케 하실 지혜로우신 하나님", 유 1:24 "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신약의 송영은 자주 하나님의 ‘하실 수 있음’을 노래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 ‘우리 안에서(엔 헤민)’. 개인 안에서이기도 하고, 공동체 가운데서이기도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1:19-20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그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고전 2:9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도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도 생각지 못하였다
렘 33:3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창 18:14여호와께 능치 못한 일이 있겠느냐
빌 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유 1:24-25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21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 아멘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하노라 아멘
직역 그분에게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모든 세대에, 영원 무궁하도록 있기를. 아멘.
"교회 안에서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는 자리가 두 곳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신약의 송영 가운데 교회를 이렇게 그리스도와 나란히 놓은 것은 여기뿐입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 몸인 교회 안에서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십니다. 3:10에서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를 하늘에 보여 주는 무대였다면, 3:21에서 교회는 하나님의 영광이 영원히 울려 퍼지는 성전입니다.
"대대로 영원무궁하기를." 원문은 ‘시대들의 시대의 모든 세대에 이르기까지’입니다. 바울은 시간을 나타내는 말들을 겹겹이 쌓습니다. 세대는 지나가고, 시대는 바뀌고, 제국은 무너집니다. 바울을 가둔 로마 제국도 무너졌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하나님께 돌려지는 영광은 끝이 없습니다. 2천 년이 지난 오늘, 우리가 이 편지를 읽으며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도 그 ‘대대로’의 한 세대입니다.
그리고 "아멘." ‘진실로 그렇습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합니다’라는 뜻의 히브리어입니다. 1–3장의 모든 교리, 택하심과 구속과 인치심, 은혜로 받은 구원, 둘이 하나 됨, 그리스도의 비밀이 이 한마디로 봉인됩니다. 이제 4장부터 바울은 ‘그러므로’ 이 아멘을 어떻게 삶으로 살 것인지 말할 것입니다. 입술의 아멘이 삶의 아멘이 될 차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교회 안에서 — 신약의 송영 대부분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롬 16:27, 유 1:25). 교회를 영광의 자리로 함께 언급한 것은 에베소서의 교회론이 얼마나 높은지 보여 줍니다.
대대로 영원무궁 — 원문 ‘에이스 파사스 타스 게네아스 투 아이오노스 톤 아이오논’. ‘세대(게네아)’와 ‘시대(아이온)’를 함께 써서 끝없는 시간을 표현합니다.
아멘 — 히브리어 ‘아만’(확고하다, 믿을 만하다)에서 온 말. 구약에서 회중이 기도나 찬송에 동의하며 외친 말입니다(신 27:15–26, 느 8:6). 계 3:14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으로 불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1: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롬 16:27지혜로우신 하나님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 아멘
시 72:19그 영화로운 이름을 영원히 찬송할지어다 온 땅에 그 영광이 충만할지어다 아멘 아멘
계 5:13-14보좌에 앉으신 이와 어린 양에게 찬송과 존귀와 영광과 권능을 세세토록 돌릴지어다 하니 네 생물이 가로되 아멘 하고
느 8:6모든 백성이 손을 들고 아멘 아멘 하고 응답하고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고 여호와께 경배하였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내 기도가 하나님을 작게 만들지 않게
우리는 종종 하나님의 크기를 내 기도의 크기에 맞춥니다. ‘이 정도면 들어주시겠지’ 하고 작게 구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생각하는 것보다 넘치고 넘치도록 하실 수 있는 분입니다. 특히 나를 그리스도를 닮은 사람으로 만드시는 일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1–3장의 모든 진리는 "아멘"으로 끝났습니다. 이제 그 아멘이 내 삶에서 이루어질 차례입니다.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대대로 드러나는 일에, 오늘 나도 한 사람으로 참여합니다.
Two Prayers · 비교
1장의 기도와 3장의 기도
에베소서 전반부에는 바울의 기도가 두 번 나옵니다
1:15–23
3:14–21
시작
"이를 인하여" — 받은 복 때문에
"이러므로" — 하나 됨의 비밀 때문에
자세
감사하며 기도할 때마다 기억함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음
중심 동사
알게 하시기를 (계몽)
강건하게, 거하게, 충만하게 (능력)
구하는 것
부르심의 소망, 기업의 영광, 능력의 크심을 알게
속사람의 힘, 그리스도의 거하심, 사랑의 크기를 알고 충만해지게
성령
지혜와 계시의 정신(영)
성령으로 속사람을 강건하게
마무리
그리스도께서 만물 위에 머리, 교회는 그의 충만
교회 안에서 영광이 영원무궁하기를, 아멘
첫 번째 기도는 머리를 향합니다. 이미 받은 것이 무엇인지 ‘알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두 번째 기도는 마음을 향합니다. 아는 것이 실제로 내 안에 ‘살게’ 해 달라는 기도입니다. 진리를 아는 것과 진리로 사는 것, 그 둘 사이를 잇는 것은 무릎 꿇은 기도입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3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경륜經綸 · 2, 9절
맡겨진 관리 직분, 하나님의 계획 운영. 원문 오이코노미아.
계시啓示 · 3절
덮개를 벗기듯 하나님이 직접 드러내 보이심.
대강大綱 · 3절
간략하게, 큰 줄거리만.
후사後嗣 · 6절
대를 잇는 상속자.
지체肢體 · 6절
몸의 한 부분. 교회의 구성원.
참예參預 · 6절
함께 참여하여 몫을 나눔.
일군7절
일꾼. 섬기는 자. 원문 디아코노스.
측량測量 · 8절
깊이나 크기를 잼. ‘측량할 수 없는’은 끝까지 다 잴 수 없는.
각종 지혜各種 · 10절
여러 빛깔로 수놓은 다채로운 지혜.
정사와 권세政事 · 權勢 · 10절
보이지 않는 영적 통치 세력들.
담대함大膽함 · 12절
거리낌 없이 말하는 자유. 원문 파레시아.
환난患難 · 13절
짓누르는 고난, 압박.
족속族屬 · 14–15절
한 조상에게서 난 집안, 가문.
속사람16절
하나님과 교통하는 사람의 내면.
강건強健 · 16절
굳세고 튼튼함.
송영頌榮 · 20–21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짧은 찬송.
영원무궁永遠無窮 · 21절
끝없이 영원함.
아멘21절
진실로, 그렇게 되기를. 히브리어.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바울은 자기를 ‘로마의 죄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 자’라고 불렀습니다(1절). 지금 나를 묶고 있다고 느끼는 상황을 하나님의 손에서 바라본다면 어떻게 보입니까?
이방인들이 ‘함께 후사, 함께 지체, 함께 참예자’가 되었다는 비밀(6절)은, 우리 교회 안에서 누구를 ‘우리’로 받아들이는가에 어떤 도전을 줍니까?
바울은 시간이 갈수록 자기를 더 낮추었습니다(8절). 신앙이 자랄수록 나는 더 겸손해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더 자랑할 것이 많아지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가 하늘의 관중 앞에서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보여 주는 무대라면(10절), 지금 우리 교회는 무엇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
그리스도께서 내 마음에 ‘손님’이 아니라 ‘주인’으로 계시도록(17절), 아직 열어 드리지 못한 마음의 방은 어디입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의 넓이, 길이, 높이, 깊이(18절) 가운데 내가 가장 깊이 경험한 것은 무엇입니까? 다른 성도와 나누어 봅시다.
나는 하나님께 너무 작게 구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20절) 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오늘 어떤 기도를 드리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