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35절까지 — 부드러운 대답, 쓴 보복, 거절한 왕관, 그리고 이스라엘을 다시 넘어지게 한 금 에봇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JUDGES 8:23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8장 들어가며
승리 뒤의 기드온은 승리 전의 기드온과 다른 사람이 되어 갑니다
7장까지 기드온은 두려움 많지만 하나님을 의지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연약함을 참으시며 300명으로 13만 5천 명을 이기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8장의 기드온은 조금씩 다른 사람이 되어 갑니다. 승리가 사람을 바꾸기 시작합니다.
8장 전반부(1–21절)에서 기드온은 요단 건너편까지 미디안의 두 왕을 추격합니다. 그런데 이 추격은 점점 ‘하나님의 전쟁’에서 ‘기드온의 전쟁’으로 바뀝니다. 도움을 거절한 이스라엘 성읍을 가혹하게 징벌하고, 미디안 왕들을 죽이는 이유도 결국 자기 형제들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습니다. 7장에는 “여호와께서”라는 말이 가득했는데, 8장에서는 그 말이 눈에 띄게 줄어듭니다.
후반부(22–35절)는 더 슬픕니다. 이스라엘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하자, 그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는 아름다운 고백으로 거절합니다. 그러나 곧바로 금을 모아 에봇을 만들고, 그것이 온 이스라엘을 음란하게 섬기게 만드는 올무가 됩니다. 그리고 그는 많은 아내를 두고 왕처럼 살며, 한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 곧 ‘내 아버지는 왕’이라 짓습니다.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바알에게 돌아갑니다. 바알의 단을 헐며 시작한 이야기가, 바알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핵심 구절
8:23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기드온의 가장 아름다운 고백입니다.
부드러운 대답
8:1–3
화난 에브라임을 겸손한 말로 달랜 지혜. 잠언 15:1의 실례입니다.
바뀐 전쟁
8:4–21
하나님의 전쟁이 개인의 원한 갚기로 변해 갑니다.
금 에봇
8:27
고백은 옳았지만 행동은 올무가 되었습니다. 끝이 무너진 사사의 비극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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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끝물 포도”
추수 뒤에 남은 포도를 줍는 것. 원문 올렐로트, 이삭줍기.
2절 “맏물 포도”
본 추수, 원문 바치르. 포도 거두기 전체.
4절 “피곤하나 따르며”
지쳤지만 계속 추격하며.
5절 “종자”
從者, 따르는 사람들.
5절 “떡덩이”
둥근 빵 덩어리.
7절 “들가시와 찔레”
광야의 가시나무와 엉겅퀴.
9절 “망대”
望臺, 망보는 탑, 성의 요새.
11절 “안연히”
安然히, 마음 놓고 편안하게.
14절 “신문하매”
訊問, 캐어물음.
15절 “기롱하여”
譏弄, 비웃고 놀림.
21절 “새 달 형상의 장식”
초승달 모양 장신구. 달신 숭배와 관련된 부적.
26절 “금 일천 칠백 세겔”
약 19.4kg. 2026년 금 시세로 약 45억 원 안팎.
27절 “에봇”
대제사장의 예복, 또는 신탁을 묻는 도구. 여기서는 숭배의 대상이 됨.
33절 “바알브릿”
‘언약의 바알’. 세겜에서 섬기던 바알.
35절 “후대치”
厚待, 두터이 대접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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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3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 — 노를 풀게 한 부드러운 대답
승리의 기쁨이 가시기도 전에 갈등이 터집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몰려와 따집니다.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 에브라임은 이스라엘 중앙의 크고 자부심 강한 지파였습니다. 영광스러운 승리에서 자기들이 빠진 것에 몹시 화가 났습니다.
기드온의 대답은 지혜롭습니다. 그는 에브라임이 한 일을 높이고 자기가 한 일을 낮춥니다. 그러자 에브라임의 노가 풀립니다. 잠언 15:1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진 장면입니다. 그러나 12장에서 에브라임은 입다에게도 똑같이 따지는데, 그때는 결과가 완전히 다릅니다.
1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어찜이뇨
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직역 에브라임 사람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 우리를 부르지 않았으니, 네가 우리에게 한 이 일은 무엇이냐?” 그들이 그와 세게 다투었다.
7:24–25에서 에브라임 사람들은 요단 나루를 막고 미디안의 두 장군 오렙과 스엡을 죽였습니다. 큰 공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기쁘지 않았습니다. 기드온에게 몰려와 따집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에브라임은 요셉의 아들 가운데 야곱이 특별히 축복한 지파였습니다(창 48:19–20). 여호수아도 에브라임 사람이었고, 성막이 있던 실로도 에브라임 땅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이스라엘의 지도적인 지파라는 자부심이 강했습니다. 그런데 작은 므낫세 지파의, 그것도 가장 약한 집안 출신인 기드온이 자기들을 빼고 다른 지파들만 불러 싸웠습니다. 그들의 자존심이 상했습니다.
그들의 분노는 미디안이 아니라 기드온을 향했습니다. 원수를 이긴 승리의 날에, 형제끼리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이것은 사사기에서 점점 커져 가는 문제의 시작입니다. 12장에서 에브라임은 입다에게 똑같이 따지다가 4만 2천 명이 죽고, 20장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베냐민과 내전을 벌입니다. 외부의 원수가 사라지면, 내부의 교만과 질투가 드러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다투다리브 — 6:31–32 ‘쟁론하다’와 같은 말. 기드온은 바알과 ‘다투는 자’(여룹바알)였는데, 이제 형제 지파가 그와 ‘다툽니다’.
12장과의 비교 — 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너와 네 집을 불사르리라”.
함께 읽을 말씀
삿 12:1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창 48:19-20그 아우가 그보다 큰 자가 되고 그 자손이 여러 민족을 이루리라 하고… 에브라임을 므낫세보다 앞세웠더라
잠 13:10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권면을 듣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약 4:1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서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2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직역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지금 한 일이 너희와 비교해 무엇이냐? 에브라임의 이삭줍기가 아비에셀의 포도 추수보다 낫지 않으냐?”
기드온의 대답은 지혜롭습니다. 그는 변명하지도, 맞서 화를 내지도 않습니다. 대신 에브라임을 높이고 자기를 낮춥니다. “나의 이제 행한 일이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내가 한 일은 너희가 한 일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그리고 농부다운 비유를 듭니다.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끝물 포도’는 포도 수확이 끝난 뒤 밭에 남은 포도송이를 줍는 것입니다. ‘맏물 포도’는 본격적인 포도 수확 전체입니다. 기드온의 뜻은 이렇습니다. 너희 에브라임이 마지막에 주운 것(오렙과 스엡을 잡은 것)이, 우리 아비에셀 가문이 처음에 거둔 것(미디안 진을 친 것) 전체보다 더 크다.
사실 이것은 과장입니다. 300명으로 13만 5천 명을 무너뜨린 것이 두 장군을 잡은 것보다 작을 리 없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사실을 따지는 대신 상대의 마음을 살폈습니다. 그는 에브라임이 원하는 것이 공의 인정이라는 것을 알았고, 그것을 넉넉하게 주었습니다. 승리의 공을 다투는 대신 내려놓았습니다. 빌립보서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원어 · 번역 노트
끝물 포도올렐로트 — 레 19:10 “포도원의 열매를 다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추수 뒤 남은 것을 줍는 일은 원래 가난한 사람들의 몫이었습니다. 사 17:6, 24:13, 렘 49:9.
맏물 포도바치르 — ‘포도 수확’. 레 26:5 “너희의 타작은 포도 딸 때까지 미치며”.
함께 읽을 말씀
빌 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롬 12: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잠 25:15오래 참으면 관원이 그 말을 용납하나니 부드러운 혀는 뼈를 꺾느니라
3하나님이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나의 한 일이 어찌 능히 너희의 한 것에 비교되겠느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직역 “하나님이 미디안의 장군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주셨다. 내가 너희와 비교해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느냐?” 그가 이 말을 하자 그들을 향한 그들의 노가 누그러졌다.
기드온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하나님이 미디안 방백 오렙과 스엡을 너희 손에 붙이셨으니.” 그는 승리의 공을 하나님께 돌리면서, 동시에 에브라임이 하나님께 쓰임받았다고 인정해 줍니다. 너희도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았다. 너희 손에 하나님이 원수를 붙이셨다.
그러자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원문은 ‘그들의 영이 누그러졌다’입니다. 크게 다투며 몰려왔던 에브라임 사람들이 조용히 돌아갑니다.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기드온의 부드러운 말 한마디가 내전을 막았습니다.
이 장면은 기드온의 가장 지혜로운 순간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지혜는 오래가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단락에서 기드온은 숙곳과 브누엘 사람들에게 전혀 다른 모습을 보입니다. 같은 이스라엘 사람인데, 에브라임에게는 부드럽게, 숙곳과 브누엘에게는 가혹하게 대합니다. 에브라임은 강했고, 숙곳과 브누엘은 약했기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 기드온이 이 장에서 하나님을 언급하는 몇 안 되는 장면입니다(3, 7, 19, 23절).
함께 읽을 말씀
잠 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잠 16:32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삼상 25:23-33아비가일이 다윗을 보고 급히 나귀에서 내려 다윗의 앞에 엎드려… 다윗이 아비가일에게 이르되 오늘날 너를 보내어 나를 영접케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찌로다
마 5: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부드러운 대답이 분노를 쉬게 합니다
승리의 날에 형제가 따지러 왔습니다. 기드온은 자기의 공을 주장할 수도 있었고, 에브라임을 꾸짖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를 낮추고 상대를 높였습니다. “너희가 거둔 이삭줍기가 우리의 추수보다 낫다.” 그 한마디에 분노가 풀렸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가정에서도 이런 순간이 옵니다. 누가 더 많이 했는지, 누가 인정받지 못했는지를 두고 다툼이 일어납니다. 그때 필요한 것은 옳고 그름을 따지는 말이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는 부드러운 말입니다. 공을 내려놓을 때 평화가 옵니다.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8:4–9피곤하나 따르며 — 떡을 거절한 숙곳과 브누엘
기드온과 300명은 요단을 건너 계속 추격합니다.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가 남은 군대를 이끌고 동쪽으로 도망치고 있었습니다. 300명은 지치고 굶주렸습니다. 그래서 요단 동쪽의 이스라엘 성읍 숙곳과 브누엘에 빵을 구합니다.
그런데 두 성읍은 모두 거절합니다. 아직 미디안 왕들이 잡히지 않았으니, 기드온 편을 들었다가 미디안이 돌아오면 보복당할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기드온은 분노하며 돌아와서 그들을 벌하겠다고 위협합니다. 에브라임에게 보였던 부드러움은 사라지고, 날카로운 분노가 나타납니다.
4기드온과 삼백 명이 요단을 건너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기드온과 그 좇은 자 삼백명이 요단에 이르러 건너고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직역 기드온이 요단에 이르러 건넜다. 그와 그와 함께한 삼백 명은 지쳤지만 계속 추격하였다.
기드온과 300명은 요단을 건넙니다. 밤새 전투를 치르고, 도망치는 적을 쫓아 요단 골짜기를 따라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이제 강을 건너 동쪽 땅으로 들어갑니다. 미디안의 두 왕을 끝까지 잡기 위해서입니다.
“비록 피곤하나 따르며.” 이 짧은 말에 300명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지쳤습니다. 밤새 싸웠고, 먹지 못했고, 수십 킬로미터를 달렸습니다. 그러나 멈추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을 끝까지 완성하기 위해 지친 몸을 이끌고 계속 따라갔습니다.
신앙의 길도 이렇습니다. 처음 승리의 감격은 지나가고, 피곤함이 몰려옵니다. 그러나 끝까지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이사야 40:31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의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갈라디아서 6:9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원어 · 번역 노트
피곤하나아예프 — ‘지친, 기진한’. 4:21 시스라가 ‘곤비하여’ 잠든 말과 같습니다. 같은 피곤함이지만, 시스라는 피곤해서 잠들었다가 죽었고, 300명은 피곤해도 계속 따라갔습니다.
따르며라다프 — ‘추격하다’. 3:28 “나를 따르라(라다프)”.
함께 읽을 말씀
사 40:29-31피곤한 자에게는 능력을 주시며 무능한 자에게는 힘을 더하시나니… 걸어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
갈 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찌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빌 3:14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5숙곳 사람들에게 — 나의 종자가 피곤하니 떡덩이를 주라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종자가 피곤하여 하니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직역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제발 내 뒤를 따르는 백성에게 빵 덩이들을 주라. 그들이 지쳤다. 나는 미디안 왕 세바와 살문나를 추격하는 중이다.”
기드온은 요단 동쪽의 숙곳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합니다. 숙곳은 갓 지파에게 주어진 이스라엘 성읍입니다(수 13:27). 그리고 이 이름에는 오래된 기억이 있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와 에서와 화해한 뒤, 이곳에 집을 짓고 가축을 위해 우릿간(숙곳, 초막)을 지었습니다(창 33:17).
기드온의 요청은 정중하고 소박합니다. “청컨대 그들에게 떡덩이를 주라.” 그는 군량미나 무기를 요구한 것이 아닙니다. 지친 300명이 먹을 빵 몇 덩어리를 구했습니다. 같은 이스라엘 형제로서, 미디안과 싸우는 하나님의 군대를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유를 밝힙니다. “나는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따르노라.” 이 두 왕의 이름에도 뜻이 있습니다. ‘세바’는 ‘제물’, ‘살문나’는 ‘보호가 거부된 자’ 또는 ‘그늘이 없는 자’로 풀이됩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그들의 운명을 조롱하며 부른 이름일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숙곳 — 창 33:17, 수 13:27. 요단 동쪽, 얍복 강이 요단으로 흘러드는 곳 근처로 추정합니다(텔 데이르 알라 근처). 솔로몬은 숙곳 근처에서 성전 기구를 놋으로 부어 만들었습니다(왕상 7:46).
세바와 살문나 — 시 83:11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제바’(제물), ‘찰문나’(그늘이 막힌 자)로 풀이되며, 실제 이름을 비튼 별명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떡덩이킥카르 — ‘둥근 것’. 둥글고 납작한 빵. 삼상 2:36 “은 한 조각과 떡 한 덩이”.
함께 읽을 말씀
창 33:17야곱은 숙곳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짐승을 위하여 우릿간을 지은고로 그 땅 이름을 숙곳이라 부르더라
삼상 25:8하라 우리가 좋은 날에 왔은즉 네 손에 있는대로 네 종들과 네 아들 다윗에게 주기를 원하노라 하더라 하라
잠 3:27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
마 25:35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6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네 손에 있관대 — 숙곳 방백들의 거절
숙곳 방백들이 가로되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직역 숙곳의 장관들이 말하였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바닥이 지금 네 손에 있느냐? 우리가 네 군대에게 빵을 주게?”
숙곳 방백들의 대답은 차갑습니다.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군대에게 떡을 주겠느냐.” 원문은 ‘세바와 살문나의 손바닥이 지금 네 손에 있느냐?’입니다. 고대에는 죽인 적의 손을 잘라 전공을 증명하는 관습이 있었습니다. 숙곳 사람들은 비웃습니다. 아직 그 왕들을 잡지도 못했으면서 무슨 승리를 자랑하느냐?
그들의 거절에는 계산이 있었습니다. 숙곳은 요단 동쪽, 미디안이 오가는 길목에 있었습니다. 만약 기드온을 도왔는데 기드온이 지고 미디안 왕들이 돌아온다면, 숙곳은 보복당할 것입니다. 그들은 어느 편이 이길지 확실해질 때까지 중립을 지키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의 편이 아니라 이기는 편에 서고 싶었습니다.
이것은 5장에서 드보라가 저주했던 메로스와 같은 태도입니다(5:23).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숙곳은 같은 이스라엘 형제였지만, 하나님의 전쟁에서 형제를 외면했습니다. 아니, 외면을 넘어 조롱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손바닥카프 — ‘손바닥, 손’. 고대 이집트 기록에는 전투 뒤 적의 손을 잘라 세어 전공을 확인한 장면이 나옵니다.
방백사르 — 7:25 미디안의 ‘방백’ 오렙과 스엡과 같은 말. 이스라엘 성읍의 지도자들이 미디안 장군처럼 행동했다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5:23메로스를 저주하라…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삼상 25:10-11나발이 다윗의 사환들에게 대답하여 가로되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뇨… 내가 어찌 내 떡과 물과… 어디로서인지 알지도 못하는 자들에게 주겠느냐
약 2:15-16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이익이 있으리요
7여호와께서 붙이신 후에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기드온이 가로되 그러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하고
직역 기드온이 말하였다. “그렇다면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주실 때, 내가 광야의 가시와 엉겅퀴로 너희 살을 타작하리라.”
기드온의 대답에는 두 가지가 섞여 있습니다. 하나는 믿음입니다. “여호와께서 세바와 살문나를 내 손에 붙이신 후에.” 그는 하나님이 반드시 그 왕들을 붙이실 것을 확신합니다. 6장의 기드온, 양털로 두 번이나 확인하던 기드온이 이제는 흔들림 없이 승리를 말합니다.
그러나 또 하나는 분노입니다. “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원문은 ‘너희 살을 타작하리라’입니다. 6:11에서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했습니다. 이제 그는 사람의 살을 가시로 ‘타작’하겠다고 합니다. 가시나무 위에 사람을 눕히고 타작 썰매로 밟거나, 가시로 채찍질하는 끔찍한 형벌입니다.
에브라임에게 그토록 부드러웠던 기드온이, 숙곳에게는 이렇게 가혹합니다. 물론 숙곳의 거절은 잘못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의 반응은 지나쳤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원수에 대한 심판이라기보다 자기를 모욕한 사람에 대한 개인적 보복에 가까웠습니다. 승리를 거둔 기드온 안에서 무언가가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찢다(타작하다)두쉬 — ‘타작하다, 밟다’. 신 25:4 “곡식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찌니라”, 암 1:3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사 41:15.
들가시와 찔레 — 원문 ‘코체 함미드바르 베하바르카님’, ‘광야의 가시들과 찔레들’. ‘바르카님’은 여기만 나오는 말로 ‘가시덤불’ 또는 ‘타작 썰매’로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2: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잠 24:29너는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찌니라
암 1:3다메섹의 서너가지 죄로 인하여 내가 그 벌을 돌이키지 아니하리니 이는 저희가 철 타작기로 타작하듯 길르앗을 압박하였음이라
8브누엘에 올라가 구한즉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거기서 브누엘에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같이 구한즉 브누엘 사람들의 대답도 숙곳 사람들의 대답과 같은지라
직역 그가 거기서 브누엘로 올라가서 그들에게도 그와 같이 말하였다. 브누엘 사람들도 숙곳 사람들이 대답한 것처럼 그에게 대답하였다.
기드온은 동쪽으로 더 올라가 브누엘에서도 같은 부탁을 합니다. 그러나 대답은 똑같았습니다. 거절.
브누엘이라는 이름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브누엘’(브니엘)은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야곱이 얍복 강가에서 밤새 하나님과 씨름하고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하며 붙인 이름입니다(창 32:30). 거기서 야곱은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하나님의 얼굴’이라는 이름의 성읍이, 하나님의 전쟁을 하는 이스라엘 형제를 외면합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태어난 곳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저버렸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브누엘 — 창 32:22–32. 얍복 강가, 숙곳에서 동쪽으로 약 8km 떨어진 곳으로 추정합니다(텔 아드다합). 왕상 12:25 여로보암이 브누엘을 건축했습니다.
올라가서 — 숙곳은 요단 골짜기에 있고, 브누엘은 얍복 강을 따라 동쪽 고원으로 올라가는 길에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32:28-30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그러므로 야곱이 그곳 이름을 브니엘이라 하였으니
창 32:31그가 브니엘을 지날 때에 해가 돋았고 그 환도뼈로 인하여 절었더라
9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기드온이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일러 가로되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하니라
직역 그가 또 브누엘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 이 탑을 허물리라.”
기드온은 브누엘에도 경고합니다. “내가 평안히 돌아올 때에 이 망대를 헐리라.” 망대는 성을 지키는 높은 탑입니다. 브누엘 사람들은 그 망대를 믿고 기드온을 거절했을 것입니다. 우리는 튼튼한 망대가 있으니 미디안이든 기드온이든 두렵지 않다. 기드온은 그들이 의지하는 바로 그것을 무너뜨리겠다고 합니다.
“평안히 돌아올 때에.” 원문은 ‘샬롬으로 돌아올 때’입니다. 기드온은 승리를 확신합니다. 6:24에서 그가 쌓은 제단의 이름이 ‘여호와 샬롬’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가 말하는 ‘샬롬’은 하나님의 평강이라기보다 원수를 이기고 돌아와 보복하겠다는 승리자의 말입니다. 같은 낱말이 다른 마음을 담고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망대미그달 — 9:46–52 세겜 망대, 데베스 망대. 창 11:4 바벨탑도 ‘미그달’입니다. 사람이 의지하는 높은 탑은 사사기에서 계속 무너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잠 18:10-11여호와의 이름은 견고한 망대라 의인은 그리로 달려가서 안전함을 얻느니라 부자의 재물은 그의 견고한 성이라 그가 높은 성벽 같이 여기느니라
시 61:3주는 나의 피난처시요 원수를 피하는 견고한 망대심이니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형제를 외면한 숙곳, 형제를 벌하려는 기드온
숙곳과 브누엘은 지친 형제들에게 빵 한 덩어리를 거절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편이 아니라 이기는 편에 서고 싶었습니다. 확실해질 때까지 기다리며 계산했습니다. 그 계산이 형제를 굶주리게 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도 달라지고 있었습니다. 에브라임에게는 부드러웠던 그가, 숙곳과 브누엘에게는 살을 찢고 망대를 헐겠다고 위협합니다. 승리는 사람을 담대하게도 하지만, 교만하고 가혹하게도 만듭니다. 우리는 이 두 모습을 모두 경계해야 합니다. 어려운 형제를 외면하는 계산적인 마음, 그리고 나를 거절한 사람에게 갚아 주려는 분노의 마음. 둘 다 하나님 나라의 마음이 아닙니다.
8:10–12안연히 있는 적군을 치니 —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다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는 남은 군대 1만 5천 명을 이끌고 사막 깊숙한 갈골까지 도망쳤습니다. 12만 명이 이미 죽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 유목민들의 길 깊숙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기드온과 300명이 사막 유목민의 길로 돌아 들어가 방심하고 있던 적진을 기습합니다. 두 왕은 도망치다 사로잡히고, 남은 군대는 무너집니다.
10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 십이만이 죽었고 일만 오천이 남았더라
이 때에 세바와 살문나가 갈골에 있는데 동방 사람의 모든 군대 중에 칼 든 자 십 이만명이 죽었고 그 남은 일만 오천명 가량은 그들을 좇아 거기 있더라
직역 세바와 살문나는 갈골에 있었고, 그들의 진영도 그들과 함께 약 일만 오천 명이었다. 동방 자손의 온 진영 가운데 남은 자 전부였다. 칼을 빼는 자 십이만 명이 쓰러졌기 때문이다.
여기서 미디안 연합군의 규모가 처음으로 숫자로 나옵니다. “칼 든 자 십 이만명이 죽었고 그 남은 일만 오천명 가량.” 원래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6–7장에서 “메뚜기 떼 같고 해변의 모래 같다”던 그 군대의 실제 규모입니다. 300명과 비교하면 450대 1입니다.
그리고 12만 명이 이미 죽었습니다. 7:22에서 하나님이 그들끼리 칼로 치게 하셨고, 도망치는 동안 이스라엘 지파들이 추격해 쳤습니다. 300명은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았는데, 12만 명이 쓰러졌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남은 1만 5천 명도 여전히 300명보다 50배나 많습니다. 그러나 지금 그들은 패잔병입니다. 지도자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사막 깊숙이 도망쳤고, 군대는 사기가 꺾여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갈골 —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요단 동쪽 사막, 와디 시르한 근처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칼 든 자 — 원문 ‘숄레프 헤레브’, ‘칼을 빼는 자’. 전투 가능한 군사를 가리키는 표현(20:2, 15, 17, 25, 35, 46).
함께 읽을 말씀
삿 7:12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레 26:7-8너희가 대적을 쫓으리니 그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 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신 32:30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11적군이 안연히 있는 중에 장막에 거한 자의 길로 올라가서 치니
적군이 안연히 있는 중에 기드온이 노바와 욕브하 동편 장막에 거한 자의 길로 올라가서 적군을 치니
직역 기드온은 노바와 욕브하 동쪽, 장막에 사는 자들의 길로 올라가 진영을 쳤다. 그 진영은 안심하고 있었다.
미디안 진영은 “안연히”, 곧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원문 ‘베타흐’는 ‘안전하다고 믿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스라엘 땅에서 멀리 떨어진 사막 깊숙한 곳까지 왔으니, 이제 아무도 쫓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18장에서 단 지파가 라이스를 칠 때도 그곳 사람들이 “안연히” 살고 있었습니다(18:7, 27).
그런데 기드온은 “장막에 거한 자의 길”로 올라갑니다. 유목민들이 다니는 사막의 길입니다. 정착민인 이스라엘이 보통 다니지 않는 길, 미디안 사람들만 아는 길로 돌아 들어간 것입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이 그 길을 알 리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기드온은 적이 가장 방심하는 방향, 가장 예상하지 못한 길로 들어갔습니다.
사람이 가장 위험한 순간은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낄 때입니다.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데살로니가전서 5:3 “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욕브하 — 민 32:35 갓 지파가 건축한 성읍. 오늘날 요르단 암만 북서쪽 아즈부하트로 추정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살전 5: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고전 10: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삿 18:27라이스에 이르러 한가하고 평안한 백성을 만나 칼날로 그들을 치며
12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사로잡고 그 온 군대를 파하니라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하는지라 기드온이 추격하여 미디안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고 그 온 군대를 파하니라
직역 세바와 살문나가 도망쳤다. 그가 그들을 추격하여 미디안의 두 왕 세바와 살문나를 사로잡았고, 그 온 진영을 공포에 빠뜨렸다.
기습을 당한 두 왕은 또 도망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끝까지 쫓아간 기드온에게 사로잡힙니다. 숙곳 방백들이 비웃었던 그 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6절)가 이제 현실이 되었습니다. 두 왕은 정말로 기드온의 손에 있습니다.
“그 온 군대를 파하니라.” 원문 ‘헤에리드’는 ‘떨게 하다, 공포에 빠뜨리다’입니다. 7:3에서 “두려워서 떠는(하레드) 자”는 돌아가라고 했던 말과 같은 뿌리입니다. 한때 두려워 떨던 쪽은 이스라엘이었는데, 이제 떠는 쪽은 미디안입니다. 하나님은 두려움의 방향을 바꾸셨습니다.
이로써 미디안과의 전쟁은 끝납니다. 6:1의 7년 압제가 시작되어, 300명의 나팔과 횃불로 뒤집히고, 요단 건너 사막 깊은 곳에서 두 왕이 사로잡히며 끝났습니다. 28절은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이제 돌아가서 갚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파하다하라드 사역형 — ‘떨게 하다’. 7:3 ‘하레드’(떠는 자), 7:1 ‘하롯’(떨림의 샘). 7–8장은 ‘떨림’이라는 말로 이스라엘과 미디안의 처지가 뒤바뀌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8:6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시 83:11-12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저희가 말하기를 우리가 하나님의 목장을 우리의 소유로 취하자 하였나이다
사 9:4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안심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세바와 살문나는 사막 깊숙이 도망쳐서 안심하고 있었습니다. 이제 아무도 여기까지는 오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기드온은 그들이 생각하지 못한 길로 들어와 그들을 사로잡았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사람이 가장 안전하다고 느낄 때 옵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큰 시험을 이겨 낸 뒤, 이제는 괜찮다고 안심할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그리고 거꾸로, 하나님의 일은 우리가 포기하지 않고 “피곤하나 따를” 때 완성됩니다. 300명은 지쳤지만 끝까지 따라갔고, 마침내 두 왕을 사로잡았습니다. 끝까지 가는 믿음, 그리고 끝까지 깨어 있는 믿음을 구합시다.
8:13–21돌아와서 갚다 — 숙곳 징벌, 브누엘 망대, 다볼의 형제들
전쟁에서 이긴 기드온이 돌아옵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그는 약속(위협)한 대로 숙곳과 브누엘을 벌합니다. 숙곳 장로들은 가시로 징벌을 받고, 브누엘 망대는 무너지고 성읍 사람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미디안을 이긴 칼이 이스라엘 형제를 향합니다.
그리고 세바와 살문나의 처형 장면에서 기드온이 왜 그토록 끝까지 그들을 쫓았는지 드러납니다. 그들이 다볼에서 기드온의 친형제들을 죽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이 어느새 기드온의 개인적인 원수 갚기가 되어 있었습니다.
13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비탈 전장에서 돌아오다가
직역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헤레스 오르막에서 전쟁으로부터 돌아왔다.
기드온이 전쟁터에서 돌아옵니다. “헤레스 비탈”을 지나서입니다. ‘헤레스’는 ‘태양’이라는 뜻으로, 1:35의 ‘헤레스산’, 2:9의 ‘딤낫 헤레스’와 같은 말입니다. 해가 뜨는 쪽 오르막길을 따라 돌아왔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70인역은 이것을 ‘해가 뜨기 전에’라고 읽어, 기드온이 동이 트기 전에 이른 새벽 돌아왔다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이제 그는 승리자로서 돌아옵니다. 그런데 그의 발걸음은 집으로 바로 향하지 않습니다. 숙곳과 브누엘로 향합니다. 갚아야 할 것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아스의 아들 — 8장에서 기드온은 여러 번 ‘요아스의 아들’로 불립니다(13, 29, 32절). 6장에서 아버지 요아스가 그를 변호했던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35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삿 2:9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14숙곳 소년을 잡아 신문하매 방백과 장로 칠십칠 인을 기록한지라
숙곳 사람 중 한 소년을 잡아 신문하매 숙곳 방백과 장로 칠십 칠인을 그를 위하여 기록한지라
직역 그가 숙곳 사람 가운데 한 젊은이를 붙잡아 그에게 물었다. 그가 그를 위해 숙곳의 장관들과 장로들, 칠십칠 명을 적어 주었다.
기드온은 숙곳에 들어가기 전에 그 성읍의 젊은이 하나를 붙잡아 신문합니다. 그리고 그 젊은이가 숙곳의 방백과 장로 77명의 이름을 적어 줍니다. 누가 기드온을 조롱했는지, 누가 책임자인지 명단을 받아 낸 것입니다.
이 구절에는 흥미로운 사실이 숨어 있습니다. 평범한 젊은이가 77명의 이름을 “기록”했습니다. 글을 쓸 줄 알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에 생각보다 글을 아는 사람이 많았음을 보여 주는 단서로 자주 언급됩니다. 고대 가나안에서는 이미 자음 알파벳이 쓰이고 있었고, 상형문자나 쐐기문자보다 훨씬 배우기 쉬웠습니다.
그러나 이 기록의 목적은 슬픕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하거나 조상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처벌할 사람들의 명단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기록하다카타브 — ‘쓰다’.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기원전 10세기 무렵의 ‘게셀 달력’(어린 학생의 글씨 연습으로 보는 견해가 있음)이나 ‘이즈벳 사르타 토판’(알파벳 연습판) 등은 초기 이스라엘에 글쓰기가 퍼져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창 4:24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찐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마 18:21-22네게 이르노니 일곱번 뿐 아니라 일흔번씩 일곱번이라도 할찌니라
15너희가 기롱하던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기드온이 숙곳 사람들에게 이르러 가로되 너희가 전에 나를 기롱하여 이르기를 세바와 살문나의 손이 지금 어찌 네 손에 있관대 우리가 네 피곤한 사람에게 떡을 주겠느냐 한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하고
직역 그가 숙곳 사람들에게 와서 말하였다. “보라, 세바와 살문나다. 너희가 나를 조롱하며 ‘세바와 살문나의 손바닥이 지금 네 손에 있느냐? 우리가 네 지친 사람들에게 빵을 주게?’ 했던 그들이다.”
기드온은 숙곳 사람들 앞에 사로잡은 두 왕을 내세웁니다. “그 세바와 살문나를 보라.” 너희가 비웃던 그 일이 이루어졌다. 그리고 그는 그들이 했던 말을 그대로 되풀이합니다. 한 마디도 잊지 않았습니다.
“너희가 전에 나를 기롱하여.” 기드온은 그 말을 ‘조롱’으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6절에서 숙곳 사람들은 “네 군대에게”라고 했는데, 기드온은 지금 “네 피곤한 사람에게”라고 고쳐 말합니다. 그는 지친 부하들을 위해 분노한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 분노의 중심에는 ‘나를’ 조롱했다는 상처가 있었습니다. 7장에서 하나님이 막으려 하셨던 그 일, 사람의 영광과 사람의 자존심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기롱하다하라프 — ‘조롱하다, 모욕하다’. 5:18 스불론이 ‘죽음을 무릅쓰고’(목숨을 하찮게 여기고)와 같은 동사. 삼상 17:10, 26 골리앗이 이스라엘 군대를 ‘모욕’함.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7:26이 할례 없는 블레셋 사람이 누구관대 사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벧전 2:23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16성읍 장로들을 잡고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그 성읍 장로들을 잡고 들가시와 찔레로 숙곳 사람들을 징벌하고
직역 그가 그 성읍의 장로들을 붙잡고, 광야의 가시들과 찔레들을 가져다가, 그것으로 숙곳 사람들을 알게 하였다.
원문의 표현이 섬뜩합니다. ‘징벌하다’로 옮긴 말은 히브리어로 ‘알게 하다, 가르치다’(야다)입니다. 기드온은 가시로 숙곳 사람들을 ‘가르쳤습니다’. 형제를 외면하면 어떻게 되는지 몸으로 알게 했다는 것입니다. 3:2에서 하나님은 다음 세대에게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려’ 하셨는데, 기드온은 형제에게 가시를 ‘알게’ 합니다.
숙곳의 잘못은 분명했습니다. 그러나 이 징벌은 하나님이 명하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은 이 일을 하면서 여호와께 묻지 않았습니다. 6–7장에서 그토록 하나님께 묻고 확인하던 기드온이, 승리 뒤에는 자기 판단으로 형제를 벌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징벌하다 — 마소라 본문은 ‘바요다’(알게 하였다). 일부 사본과 70인역은 7절과 같이 ‘바야다쉬’(타작하였다)로 읽습니다. 두 낱말은 히브리어로 철자가 비슷합니다.
장로자켄 — 성읍을 다스리는 원로들. 룻 4:2 베들레헴 성문의 장로들.
함께 읽을 말씀
삿 8:7내가 들가시와 찔레로 너희 살을 찢으리라
잠 29:22노하는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분하여 하는 자는 범죄함이 많으니라
약 1:20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17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브누엘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직역 그리고 그가 브누엘의 탑을 허물고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다.
브누엘에서는 더 나아갑니다. 9절에서 기드온은 “이 망대를 헐리라”고만 했습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망대를 헐 뿐 아니라 그 성읍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위협보다 더 가혹한 보복입니다.
이것은 사사기에서 이스라엘 사람이 이스라엘 사람을 죽인 첫 장면입니다. 미디안을 이긴 칼이 이제 형제를 향했습니다. 이 일은 앞으로 이어질 더 큰 비극의 시작입니다. 9장에서 기드온의 아들 아비멜렉은 형제 70명을 죽이고, 12장에서 입다는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 명을 죽이고, 20장에서는 온 이스라엘이 베냐민 지파를 거의 멸절시킵니다. 형제를 죽이는 칼은 한 번 뽑히면 쉽게 칼집으로 들어가지 않습니다.
브누엘, ‘하나님의 얼굴’. 야곱이 형 에서와 화해하기 직전, 하나님의 얼굴을 보고 살아난 곳입니다. 그리고 그다음 날 야곱은 에서를 만나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창 33:10)라고 말했습니다. 화해의 장소가 이제 형제 살육의 장소가 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위협과 실행 — 9절 “이 망대를 헐리라” → 17절 “망대를 헐며 그 성읍 사람들을 죽이니라”. 기드온은 자기가 말한 것보다 더 나아갔습니다.
브누엘의 재건 — 왕상 12:25 “여로보암이… 부느엘을 건축하고”. 수백 년 뒤 다시 세워졌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33:10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삿 9:5아비의 집으로 가서 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삿 12:6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명이었더라
마 26:52검을 가지는 자는 다 검으로 망하느니라
18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자이더뇨 —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 같더라
이에 세바와 살문나에게 묻되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자이더뇨 대답하되 그들이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 같더라
직역 그가 세바와 살문나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그 사람들은 어떠하였느냐?” 그들이 말하였다. “그들은 너와 같았다. 하나하나가 왕의 아들들의 모습 같았다.”
이제 이야기의 숨겨진 배경이 드러납니다. 기드온은 사로잡은 두 왕에게 묻습니다. “너희가 다볼에서 죽인 자들은 어떠한 자이더뇨.” 다볼은 4장에서 바락이 진을 쳤던 산입니다. 미디안의 7년 압제 기간 중 어느 때, 세바와 살문나가 다볼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을 죽인 일이 있었습니다.
두 왕의 대답. “그들이 너와 같아서 모두 왕자 같더라.” 그들은 당당하고 위엄 있는 사람들이었다. 너처럼 생겼다. 이 대답 속에서 두 왕은 그 사람들이 기드온과 닮았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서 그 이유가 밝혀집니다.
그런데 이 대답에는 묘한 울림이 있습니다. ‘너와 같아서 왕자 같더라.’ 미디안 왕들은 기드온에게서 왕의 모습을 봅니다. 그리고 22절에서 이스라엘 사람들도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원수도, 백성도 기드온을 왕처럼 보기 시작했습니다.
다볼의 학살 — 사사기는 이 사건을 따로 기록하지 않습니다. 6:1–6의 약탈 기간 중 일어난 일로 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4:6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삿 8:22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삼상 16:12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19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 살렸더면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가로되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하고
직역 그가 말하였다. “그들은 내 형제들, 내 어머니의 아들들이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말하노니, 너희가 그들을 살려 두었더라면 내가 너희를 죽이지 않았을 것이다.”
기드온의 대답이 충격적입니다.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다볼에서 죽은 사람들은 기드온의 친형제, 같은 어머니에게서 난 형제들이었습니다. 고대에는 아버지가 여러 아내를 두는 일이 흔했기에, ‘어머니의 아들’은 가장 가까운 친형제를 뜻했습니다.
이제 모든 것이 이해됩니다. 기드온이 왜 피곤한 몸으로 요단을 건너 사막 깊숙이까지 세바와 살문나를 쫓았는지. 왜 숙곳과 브누엘의 거절에 그토록 분노했는지. 그것은 하나님의 전쟁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형제의 원수를 갚는 기드온 개인의 전쟁이었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은 말합니다. “너희가 만일 그들을 살렸더면 나도 너희를 죽이지 아니하였으리라.” 놀라운 말입니다. 미디안의 두 왕은 7년 동안 이스라엘을 약탈하고 수많은 사람을 죽인 하나님의 원수입니다. 그들을 죽이는 이유는 하나님의 심판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들이 자기 형제를 죽였기 때문에 죽인다고 말합니다. 만약 자기 형제만 살려 두었다면, 그들이 이스라엘에 무슨 짓을 했든 살려 주었을 것이라는 말입니다.
“내가 여호와의 사심으로 맹세하노니.” 기드온은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그런데 그 맹세는 하나님의 뜻을 위한 것이 아니라 자기 원한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개인의 복수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습니다. 7장의 함성은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였습니다. 8장에서는 점점 ‘여호와’는 작아지고 ‘기드온’만 커지고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어머니의 아들 — 창 43:29 요셉이 베냐민을 “자기 어머니의 아들”이라 부름. 일부다처 사회에서 같은 어머니의 형제는 특별히 가까웠습니다.
피의 복수자 — 민 35:19 “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친히 죽일 것이니”. 고대 이스라엘에는 살해된 사람의 가까운 친족이 피를 보복하는 제도가 있었습니다(고엘 핫담). 기드온은 이 관습에 따라 행동했지만, 사사로서의 역할과 개인의 원한이 뒤섞였습니다.
여호와의 사심으로 — ‘하이 YHWH’. 룻 3:13, 삼상 14:39, 19:6.
함께 읽을 말씀
민 35:19피를 보수하는 자가 그 고살자를 친히 죽일 것이니 그를 만나거든 죽일 것이요
롬 12:19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삼하 3:27, 30요압이… 배를 찔러 죽이니 이는 자기의 동생 아사헬의 피를 인함이더라
출 20:7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20장자 여델에게 일어나 죽이라 하였으나 —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그 장자 여델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들을 죽이라 하였으나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직역 그가 그의 맏아들 여델에게 말하였다. “일어나 그들을 죽여라.” 그러나 그 젊은이는 칼을 빼지 않았다. 그가 두려워하였으니, 아직 어렸기 때문이다.
기드온은 맏아들 여델에게 두 왕을 죽이라고 명령합니다. 왜 아들에게 시켰을까요? 첫째, 피의 복수는 가족의 의무였습니다. 죽은 형제들의 조카인 여델이 삼촌들의 원수를 갚는 것은 명예로운 일이었습니다. 둘째, 이방 왕을 어린 소년이 처형하는 것은 그 왕들에게 가장 큰 수치였습니다.
그런데 “그 소년이 칼을 빼지 못하였으니 이는 아직 어려서 두려워함이었더라.” 여델은 두려웠습니다. 이 장면은 6장의 기드온을 떠올리게 합니다. 포도주 틀에 숨어 떨던 기드온, 밤에 몰래 바알 단을 헐던 기드온, 양털로 두 번이나 확인하던 기드온. 아들은 아버지의 처음 모습과 닮았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기드온은 그 두려움을 잊은 듯합니다.
이 장면에는 슬픈 그림자가 있습니다. 기드온은 아들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법이 아니라 원수에게 피를 갚는 법을 가르치려 했습니다. 그리고 9장에서 기드온의 또 다른 아들 아비멜렉은 칼을 빼는 데 전혀 망설이지 않습니다. 그는 이복형제 70명을 한 바위 위에서 죽입니다. 아버지가 보여 준 칼이 아들에게서 더 끔찍한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여델 — 원문 ‘예테르’, ‘남은 것, 넘치는 것’. 9:5에서 아비멜렉이 형제 70명을 죽일 때 살아남은 막내 ‘요담’과는 다른 아들입니다.
두려워함야레 — 6:27 기드온이 ‘두려워하므로’ 밤에 순종했던 말, 7:3, 10 ‘두려워하거든’과 같은 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6:27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삿 9:5여룹바알의 아들 곧 자기 형제 칠십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엡 6:4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21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 기드온이 죽이고 초승달 장식을 취하니라
세바와 살문나가 가로되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대저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기드온이 일어나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 약대 목에 꾸몄던 새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니라
직역 세바와 살문나가 말하였다. “네가 일어나 우리를 쳐라.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그러자 기드온이 일어나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그들 낙타의 목에 있던 초승달 장식들을 가졌다.
두 왕은 마지막까지 왕답게 말합니다. “네가 일어나 우리를 치라 대저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어린아이 손에 서툴게 죽어 수치를 당하느니, 용사의 손에 단번에 죽겠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장성해야 힘도 있는 법이니, 어른인 네가 직접 하라.
“기드온이 일어나서 세바와 살문나를 죽이고.” 두 왕이 죽습니다. 시편 83:11은 이 장면을 기억하며 하나님의 원수들이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동작. “그 약대 목에 꾸몄던 새 달 형상의 장식을 취하니라.” 초승달 모양의 장식은 아라비아 유목민들이 섬기던 달신의 상징이자, 악귀를 쫓는다고 믿었던 부적이었습니다. 기드온은 그것을 전리품으로 챙깁니다. 별일 아닌 것처럼 보이지만, 이 작은 행동이 26–27절의 비극으로 이어집니다. 우상의 장식을 취한 사람이, 결국 이스라엘을 우상으로 이끄는 것을 만들게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새 달 형상의 장식사하로님 — ‘작은 달들’. 사 3:18 예루살렘 여인들의 장신구 목록에 “반달 장식”으로 나옵니다. 고대 근동에서 초승달은 달신(신 또는 수엔)의 상징이었고, 아라비아 유목민 사이에서 널리 섬겨졌습니다.
사람이 어떠하면 그 힘도 그러하니라 — 고대의 격언으로 보입니다. ‘사람의 크기만큼 힘도 있다’는 뜻.
함께 읽을 말씀
시 83:11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사 3:18주께서 그 날에 그들의 장식한 발목 고리와 머리의 망사와 반달 장식과
수 7:21내가 노략한 물건 중에 시날산의 아름다운 외투 한 벌과 은 이백 세겔과… 금덩이 하나를 보고 탐내어 취하였나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전쟁이 나의 전쟁이 될 때
6–7장에서 기드온은 하나님이 부르셔서 하나님의 전쟁을 싸웠습니다. 그런데 8장에서 그 전쟁은 조금씩 기드온의 전쟁으로 바뀌었습니다. 자기를 조롱한 형제 성읍을 가시로 벌하고, 망대를 허물고 사람들을 죽였습니다. 그리고 미디안 왕들을 죽인 이유는 결국 “내 어머니의 아들들”을 죽였기 때문이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일을 하다가 어느새 나의 일로 바꾸어 놓을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시작했는데, 나의 자존심, 나의 상처, 나의 원한이 그 일을 끌고 갑니다. 그리고 그때 우리의 칼은 원수가 아니라 형제를 향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는 동안 끊임없이 물어야 합니다. 이것은 여전히 하나님의 일인가, 아니면 어느새 나의 일이 되었는가?
8:22–28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 그러나 금 에봇이 올무가 되다
전쟁이 끝나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합니다. 그것도 그 아들과 손자까지 대대로 다스려 달라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처음으로 왕정을 세우자는 요청입니다. 기드온의 대답은 사사기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고백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그런데 바로 다음 순간, 기드온은 한 가지를 부탁합니다. 전리품 가운데 금 귀고리를 달라고. 그리고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고향 오브라에 둡니다. 그 에봇은 온 이스라엘이 음란하게 섬기는 우상이 되고, 기드온과 그의 집에 올무가 됩니다. 입으로는 왕관을 거절했지만, 손으로는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22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아들과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때에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직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하였다. “당신도, 당신의 아들도, 당신의 손자도 우리를 다스려 주십시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말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7:2에서 하나님은 이 말을 막으시려고 군대를 3만 2천에서 300으로 줄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그런데 그 모든 하나님의 배려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결국 그 말을 합니다. 이번에는 ‘내 손이’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했지만, 하나님 대신 사람에게 구원의 공을 돌린 것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청합니다.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 이것은 단순히 기드온 한 사람을 지도자로 삼겠다는 것이 아니라, 대대로 이어지는 왕조를 세우자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스라엘의 사사들은 하나님이 필요하실 때 일으키신 사람들이었고, 세습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제 주변 나라들처럼 왕을 원합니다. 눈에 보이는 강한 지도자, 대대로 안정된 통치를.
이 요청은 사무엘상 8장에서 이스라엘이 사무엘에게 “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삼상 8:5) 하고 요구하는 장면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때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삼상 8:7).
원어 · 번역 노트
다스리다마샬 — ‘다스리다, 통치하다’. ‘왕’(멜레크)이라는 말을 직접 쓰지 않았지만, 대대로 다스린다는 것은 사실상 왕정입니다. 9장에서 아비멜렉은 ‘왕’(말라크)이 됩니다.
순서 — 원문은 ‘다스리소서, 당신도 당신의 아들도 당신의 손자도. 이는 당신이 구원하였기 때문입니다’. 다스림의 근거가 ‘당신이 구원했다’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7:2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삼상 8:5-7열방과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신 17:14-15네가… 주위의 열국 같이 우리 위에 왕을 세우리라는 뜻이 나거든 반드시 네 하나님 여호와의 택하신 자를 네 위에 왕으로 세울 것이며
행 12:22-23백성들이 크게 부르되 이것은 신의 소리요 사람의 소리는 아니라 하거늘 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고로
23내가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내 아들도 아니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기드온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직역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않겠고, 내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실 것이다.”
기드온의 대답은 아름답습니다.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그는 왕관을 거절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참 왕은 여호와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사사기 전체에서 가장 분명한 신학적 고백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고백은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핵심을 짚습니다. 이스라엘은 사람이 다스리는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이 다스리시는 나라였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 19:6) 하셨습니다. 홍해를 건넌 뒤 모세는 “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출 15:18)라고 노래했습니다. 기드온은 그 진리를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고백 뒤에 오는 기드온의 삶은 이 말과 다릅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그는 금을 모아 에봇을 만들고(24–27절), 많은 아내를 두며(30절), 한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 곧 ‘내 아버지는 왕’이라 짓습니다(31절). 입으로는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삶은 왕처럼 살았습니다. 기드온의 말은 옳았습니다. 그러나 말이 옳다고 삶이 옳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하지 않은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구원하셨다.” 이스라엘이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했을 때, 기드온은 그것을 바로잡지 않았습니다. 그는 왕관은 거절했지만, 구원자의 영광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리라 — 하나님의 왕권 사상. 출 15:18, 민 23:21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신 33:5, 삼상 8:7, 12:12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찌라도”.
해석의 차이 — 일부 학자들은 기드온의 거절이 진심이 아니라 겸손을 가장한 정치적 수사였다고 봅니다. 고대 근동에서 왕위를 처음에는 사양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그의 말을 그대로 기록하며, 이후의 행동과의 차이를 통해 판단을 독자에게 맡깁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5:18여호와의 다스리심이 영원무궁하시도다 하였더라
삼상 12:12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너희의 왕이 되실찌라도 너희가 내게 이르기를 아니라 우리를 다스릴 왕이 있어야 하겠다 하였도다
시 145:13주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니 주의 통치는 대대에 이르리이다
요 6:15그러므로 예수께서 저희가 와서 자기를 억지로 잡아 임금 삼으려는 줄을 아시고 다시 혼자 산으로 떠나 가시니라
약 1:22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24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찌니라 —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 귀고리가
기드온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청구하노니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찌니라 하니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직역 기드온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한 가지를 청하겠다. 각 사람은 자기가 노략한 귀고리를 내게 달라.” 그들은 이스마엘 사람들이었으므로 금 귀고리를 가지고 있었다.
왕관을 거절한 기드온이 바로 다음 순간 한 가지를 청합니다. “너희는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내게 줄찌니라.” 미디안 군사들에게서 빼앗은 금 귀고리를 달라는 것입니다.
“그 대적은 이스마엘 사람이므로 금 귀고리가 있었음이라.” 성경은 미디안과 이스마엘을 종종 섞어서 부릅니다. 요셉을 애굽에 판 상인들도 ‘이스마엘 사람’이자 ‘미디안 사람’이었습니다(창 37:25–28, 36). 아라비아의 유목민들은 금 장신구를 많이 지니고 다녔습니다. 재산을 몸에 지니고 다니는 것이 유목민의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장면은 이스라엘 역사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아론은 백성에게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출 32:2) 했고, 그 금으로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백성이 그것을 섬기며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 했습니다. 기드온의 요청은 그 장면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귀고리네젬 — 귀고리 또는 코걸이. 창 24:22, 47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에게 준 ‘금 코걸이’, 창 35:4 야곱 가족이 이방 신상과 함께 묻은 ‘귀고리’, 출 32:2–3 금송아지를 만든 ‘금고리’.
이스마엘과 미디안 — 창 37:25 ‘이스마엘 족속’, 37:28 ‘미디안 사람 상고들’, 37:36 ‘미디안 사람들’. 둘 다 아브라함의 후손(하갈과 그두라)으로 아라비아 유목민을 넓게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32:2-4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창 37:25-28한 떼 이스마엘 족속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고들이 지나는지라
창 35:4그들이 자기 손에 있는 모든 이방 신상과 자기 귀에 있는 고리를 야곱에게 주는지라
25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 겉옷을 펴고 귀고리를 던지니
무리가 대답하되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하고 겉옷을 펴고 각기 탈취한 귀고리를 그 가운데 던지니
직역 그들이 말하였다. “우리가 기꺼이 드리겠습니다.” 그들이 겉옷을 펴고, 각 사람이 자기가 노략한 귀고리를 그 위에 던졌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기쁘게 응합니다. “우리가 즐거이 드리리이다.” 그리고 겉옷을 펴고 각자 빼앗은 금 귀고리를 그 위에 던집니다. 그들은 왕이 되기를 거절한 기드온에게 무언가 보답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장면은 씁쓸합니다. 5장에서 드보라는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5:2)고 노래했습니다. 그때 백성은 하나님의 전쟁에 목숨을 즐거이 바쳤습니다. 지금 백성은 기드온에게 금을 즐거이 바칩니다. 같은 기꺼운 마음인데, 향하는 곳이 다릅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마음이 사람에게 드려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 35장에서 백성은 성막을 짓기 위해 금고리와 귀고리를 ‘자원하여’ 드렸습니다(출 35:22). 그 금은 하나님이 거하실 성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출애굽기 32장의 금고리는 금송아지가 되었습니다. 같은 금, 같은 기꺼움이지만, 하나는 예배가 되었고 하나는 우상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의 금은 어느 쪽이 될까요?
원어 · 번역 노트
즐거이 드리다 — 원문 ‘나톤 니텐’, ‘주기를 우리가 주겠다’. 같은 동사를 반복한 강조형으로 ‘기꺼이, 확실히 드리겠다’는 뜻입니다. 5:2, 9의 ‘헌신하다(나다브)’와는 다른 말입니다.
겉옷을 펴고 — 고대에 겉옷은 낮에는 옷, 밤에는 이불로 쓰는 넓은 천이었습니다(출 22:26–27).
함께 읽을 말씀
출 35:22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가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 예물을 드렸으며
삿 5:2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출 32:3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26금 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 칠백 세겔이요 — 초승달 장식과 자색 의복과
기드온의 청한바 금 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 칠백 세겔이요 그 외에 또 새 달 형상의 장식과 패물과 미디안 왕들의 입었던 자색 의복과 그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이 있었더라
직역 그가 청한 금 귀고리의 무게는 금 천칠백 세겔이었다. 그 밖에 초승달 장식들과 귀걸이들과 미디안 왕들이 입었던 자주색 옷들과 그들 낙타의 목에 있던 사슬들도 있었다.
모인 금의 양이 기록됩니다. “금 귀고리 중수가 금 일천 칠백 세겔이요.” 한 세겔은 약 11.4g입니다. 1,700세겔이면 약 19.4kg, 거의 20kg에 이르는 금입니다. 오늘날 금 시세(2026년, 1그램에 약 23만 원)로 치면 약 45억 원 안팎입니다. 당시 이스라엘처럼 7년 동안 약탈당해 가난해진 나라에서는 상상할 수 없는 거대한 재산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새 달 형상의 장식(21절에서 기드온이 낙타 목에서 취한 그 달신 부적), 패물, 미디안 왕들의 자색 의복, 약대 목에 둘렀던 사슬. 자색(자주색) 옷은 고대에 가장 비싼 옷이었습니다. 지중해의 뿔소라에서 아주 조금씩 얻는 염료로 물들였기 때문에, 왕과 귀족만 입을 수 있었습니다. 기드온은 왕의 옷까지 손에 넣었습니다.
왕관은 거절했지만, 왕의 재산과 왕의 옷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신명기 17:17은 왕에 대해 이렇게 경고했습니다.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자기를 위하여 은금을 많이 쌓지 말 것이니라.” 기드온은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바로 이 두 가지, 많은 금과 많은 아내(30절)를 갖게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세겔 — 무게 단위. 약 11.4g(학자에 따라 10–13g). 1,700세겔 ≈ 19.4kg. 비교: 창 23:15 막벨라 굴 값 은 400세겔, 삼하 24:24 다윗이 아라우나 타작마당을 산 값 은 50세겔.
오늘날 가치 — 2026년 국내 금 시세는 1돈(3.75g)에 약 87만 원, 1g에 약 23만 원 안팎입니다. 19.4kg × 23만 원 ≈ 44억 6천만 원. 시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자색아르가만 — 자주색 염료. 출 25:4 성막의 휘장, 에 8:15 모르드개의 왕복, 막 15:17 군병들이 예수님께 입힌 ‘자색 옷’, 행 16:14 자주 장사 루디아.
함께 읽을 말씀
신 17:17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것이며 은금을 자기를 위하여 많이 쌓지 말것이니라
왕상 10:14솔로몬의 세입금의 중수가 육백 륙십 륙 금 달란트요
딤전 6:9-10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27그 금으로 에봇을 만들어 오브라에 두었더니 — 온 이스라엘이 음란하게 위하므로 올무가 되니라
기드온이 그 금으로 에봇 하나를 만들어서 자기의 성읍 오브라에 두었더니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
직역 기드온이 그것으로 에봇을 만들어 자기 성읍 오브라에 두었다. 온 이스라엘이 거기서 그것을 따라 음행하였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의 집에 덫이 되었다.
기드온은 그 금으로 에봇을 만듭니다. 에봇은 원래 대제사장이 입는 거룩한 예복으로, 가슴에 우림과 둠밈을 넣어 하나님의 뜻을 묻는 데 쓰였습니다(출 28:6–30). 기드온은 왜 에봇을 만들었을까요? 아마 좋은 의도였을 것입니다. 6–7장에서 그는 하나님께 묻고 응답받는 경험을 여러 번 했습니다. 이제 사사로서 백성을 위해 하나님의 뜻을 묻는 도구를 갖고 싶었을지 모릅니다. 또는 하나님이 주신 승리를 기념하고 싶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문제가 있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에봇을 만들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기드온은 제사장이 아니었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뜻을 묻는 곳은 성막이 있는 실로였지, 기드온의 고향 오브라가 아니었습니다. 기드온은 좋은 의도로, 그러나 하나님의 방식이 아닌 자기 방식으로 예배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결과는 비극이었습니다.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백성은 그 금 에봇을 숭배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 묻는 도구가 숭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음란하게 위하다’는 2:17에서 이스라엘이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라고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바알의 단을 헐며 시작한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새로운 우상으로 이끌었습니다.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 2:3에서 하나님은 가나안의 신들이 이스라엘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셨습니다. 이제 가나안 신이 아니라 기드온 자신이 만든 금 에봇이 올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올무는 기드온의 ‘집’에 걸렸습니다. 9장에서 그의 집안은 처참하게 무너집니다. 6:24에서 ‘여호와 살롬’ 제단을 쌓았던 바로 그 오브라에, 이제 이스라엘을 넘어뜨리는 올무가 서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에봇 — 출 28:6–30 대제사장의 에봇, 삼상 2:18 어린 사무엘이 입은 ‘세마포 에봇’, 삼상 23:9–12, 30:7–8 다윗이 에봇으로 하나님께 물음. 삿 17:5, 18:14–20 미가의 집에도 에봇과 드라빔이 있었습니다. 기드온의 에봇은 금 1,700세겔로 만들어졌으니, 입는 옷이라기보다 세워 두는 신상이나 성물에 가까웠을 것으로 봅니다.
음란하게 위하다자나 — 2:17, 8:33. 출 34:15–16.
오브라 — 6:11, 24. 같은 마을에 ‘여호와 살롬’ 제단과 금 에봇이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28:6, 30그들이 금실과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늘게 꼰 베실로 공교히 짜서 에봇을 짓되…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삿 2:3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삿 17:5사람 미가에게 신당이 있으므로 또 에봇과 드라빔을 만들고
왕하 18:4모세가 만들었던 놋뱀을 이스라엘 자손이 이때까지 향하여 분향하므로 그것을 부수고 느후스단이라 일컬었더라
요일 5: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서 멀리하라
28미디안이 복종하여 다시는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사십 년에 태평하였더라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기드온의 사는날 동안 사십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
직역 미디안은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굴복하여 다시는 그들의 머리를 들지 못하였다. 그리고 그 땅은 기드온의 날 동안 사십 년간 조용하였다.
전쟁의 최종 결과가 기록됩니다. “미디안이 이스라엘 자손 앞에 복종하여 다시는 그 머리를 들지 못하였으므로.” 미디안은 다시는 이스라엘을 위협하지 못했습니다. 실제로 사사기의 나머지 이야기에서 미디안은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기드온의 사는날 동안 사십년에 그 땅이 태평하였더라.” 한 세대의 평화입니다. 그런데 이 문장은 사사기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그 땅이 태평하였다’는 말이 사사기에서 나오는 것은 이번이 마지막입니다. 옷니엘 40년(3:11), 에훗 80년(3:30), 드보라 40년(5:31), 그리고 기드온 40년. 이후 입다, 삼손, 그 밖의 사사들의 이야기에는 ‘태평하였다’는 말이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기드온은 사사기의 분수령입니다. 그 이전까지는 사사들이 구원하면 땅이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기드온 이후로는 구원이 있어도 평화는 오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전환점에 금 에봇이 서 있습니다. 평화의 시간에도 우상은 자라고 있었고, 그 우상은 다음 세대의 비극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머리를 들지 못하다 — 원문 ‘로 야세푸 라세트 로샴’, ‘그들의 머리를 드는 것을 더하지 못했다’. 시 83:2 “주의 원수가 훤화하며 주를 한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
태평 — 3:11, 3:30, 5:31, 8:28. 사사기에서 네 번만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3:30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삿 5:31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시 83:2대저 주의 원수가 훤화하며 주를 한하는 자가 머리를 들었나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입술의 고백과 손의 행동
기드온의 입술은 옳았습니다.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사사기에서 이보다 아름다운 고백은 드뭅니다. 그런데 그 고백을 한 바로 그 손으로, 그는 금을 모아 에봇을 만들었습니다. 그 에봇은 온 이스라엘을 음란하게 섬기게 만들었고,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었습니다.
우리도 옳은 고백을 합니다. “주님이 나의 왕이십니다.” 그러나 그 고백이 손의 행동과 일치하는지 늘 돌아보아야 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한 것이, 하나님이 명하지 않으신 방식으로 만들어질 때, 그것은 예배가 아니라 올무가 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올무는 나뿐 아니라 내 가정과 다음 세대에 걸립니다. 입술의 고백을 손의 순종으로 지켜 냅시다.
8:29–35아들 칠십 인과 아비멜렉 — 그리고 다시 바알브릿
기드온은 고향으로 돌아가 오래 삽니다. 그리고 많은 아내를 두어 아들이 70명이나 됩니다. 세겜에 있는 첩에게서도 아들이 하나 태어나는데, 그 이름이 ‘아비멜렉’, 곧 ‘내 아버지는 왕’입니다. 왕이 되지 않겠다던 기드온이 아들에게 왕의 이름을 붙였습니다.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바알에게 돌아갑니다. 이번에는 ‘바알브릿’, 곧 ‘언약의 바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도 잊고, 기드온의 은혜도 잊습니다. 바알의 단을 헐며 시작된 기드온의 이야기가 바알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그리고 9장에서 아비멜렉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29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돌아가서 자기 집에 거하였는데
직역 요아스의 아들 여룹바알이 가서 자기 집에 살았다.
기드온은 왕이 되지 않고 “자기 집에” 돌아가 삽니다. 23절의 말대로, 왕궁을 세우지 않고 고향 오브라의 자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겉으로는 겸손한 퇴장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그를 “여룹바알”이라고 부릅니다. ‘바알이 다투게 하라’, 바알의 단을 헐고 얻은 이름입니다. 사사기 기자는 의도적으로 이 이름을 씁니다. 바알과 싸운 사람이라는 이름을 가진 그가, 이제 그 집에 금 에봇을 두고 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자 이스라엘은 바알에게 돌아갑니다(33절). 이름과 삶 사이의 거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여룹바알 — 6:32, 7:1, 8:29, 35, 9장 여러 곳. 9장에서는 거의 이 이름으로만 불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6:32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삿 8:23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30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 인이었고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인이었고
직역 기드온에게는 그의 허리에서 나온 아들이 칠십 명이 있었다. 그에게 아내가 많았기 때문이다.
“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인이었고.” 아들만 70명입니다. 딸까지 합하면 훨씬 많았을 것입니다. 이만큼의 자녀를 두려면 많은 아내와 큰 재산이 필요했습니다. 기드온은 금 1,700세겔과 미디안 왕들의 재물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많은 아내와 많은 아들은 왕의 표지였습니다. 왕들은 여러 나라와 동맹을 맺기 위해 그 나라의 공주와 혼인했고, 많은 아들은 왕조의 힘을 보여 주었습니다. 신명기 17:17은 이스라엘의 왕에게 “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라고 경고했습니다. 기드온은 왕이 되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미 왕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칠십’이라는 숫자는 불길한 예고입니다. 1:7에서 아도니 베섹은 칠십 왕의 엄지를 잘랐고, 9:5에서 아비멜렉은 이 칠십 형제를 한 바위 위에서 죽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몸에서 낳은 — 원문 ‘요체 예레코’, ‘그의 넓적다리에서 나온’. 창 46:26 “야곱의 몸에서”.
칠십 — 1:7 칠십 왕, 9:5 칠십 형제, 12:14 압돈의 자손 칠십. 왕하 10:1 “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 예후가 그들을 모두 죽입니다. 왕가의 아들 칠십 명이라는 표현이 되풀이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17:17아내를 많이 두어서 그 마음이 미혹되게 말 것이며
왕상 11:3-4왕은 후비가 칠백 인이요 빈장이 삼백 인이라 왕비들이 왕의 마음을 돌이켰더라
왕하 10:1아합의 아들 칠십 인이 사마리아에 있는지라
삿 9:5자기 형제 칠십인을 한 반석 위에서 죽였으되
31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세겜에 있는 첩도 아들을 낳았으므로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하였더라
직역 세겜에 있던 그의 첩도 그에게 아들을 낳아 주었다. 그가 그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지었다.
기드온에게는 세겜에 첩도 있었습니다. 세겜은 이스라엘 중앙의 오래된 도시로, 가나안 사람과 이스라엘 사람이 섞여 살던 곳이었습니다. 9장에 따르면 그곳에는 ‘바알브릿’의 신전이 있었습니다(9:4). 기드온의 첩은 아마 가나안 계열의 세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첩에게서 아들이 태어났는데, 기드온은 그 이름을 “아비멜렉”이라 지었습니다. 뜻은 ‘내 아버지는 왕’입니다. 23절에서 “내가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하겠고 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했던 기드온이, 아들에게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이 이름은 기드온의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는지 드러냅니다. 입으로는 왕관을 거절했지만, 마음속으로는 자기를 왕으로 여기고 있었습니다. 혹은 적어도 그 아들이 자기를 그렇게 생각하며 자라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은 이름의 뜻대로 살려 할 것입니다. 9장에서 아비멜렉은 형제 70명을 죽이고 세겜의 왕이 됩니다. 아버지가 거절한 왕관을 아들이 피로 빼앗습니다.
이름은 정체성이고 기대입니다. 우리가 자녀에게 무엇을 물려주는지, 어떤 이름을 붙여 주는지가 중요합니다. 기드온은 아들에게 ‘여호와께서 다스리신다’는 신앙이 아니라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교만을 물려주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비멜렉 — ‘아비’(내 아버지) + ‘멜렉’(왕). 창 20장, 26장에 블레셋 그랄 왕 아비멜렉이 나옵니다. 이것은 블레셋 왕들의 칭호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기드온이 이방 왕의 칭호를 아들의 이름으로 지은 셈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가 왕이시다’라는 신앙적 이름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고 보지만, 이야기의 흐름은 그 반대를 보여 줍니다.
첩필레게쉬 — 19장 레위인의 첩 이야기에서도 같은 말이 쓰입니다.
세겜 — 창 12:6–7 아브라함이 처음 제단을 쌓은 곳, 창 34장 디나 사건, 수 24장 여호수아의 언약 갱신, 요셉의 뼈가 묻힌 곳(수 24:32).
함께 읽을 말씀
삿 8:23나의 아들도 너희를 다스리지 아니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삿 9:1-6여룹바알의 아들 아비멜렉이 세겜에 가서… 세겜 모든 사람과 밀로 모든 족속이 모여 가서… 아비멜렉으로
수 24:32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서 이끌어 낸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하였으니
창 20:2그랄 왕 아비멜렉이 보내어 사라를 취하였더니
32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으매 아비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하였더라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나이 많아 죽으매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하였더라
직역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좋은 노년에 죽었다. 그는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그의 아버지 요아스의 무덤에 장사되었다.
기드온은 “나이 많아” 죽습니다. 원문은 ‘좋은 노년에’입니다. 이 표현은 성경에서 아브라함(창 25:8)과 다윗(대상 29:28)에게만 쓰인 특별한 표현입니다. 기드온은 오래, 부유하게, 평안하게 살다가 죽었습니다. 겉으로는 복된 생애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의 아비 요아스의 묘실에” 장사됩니다. 6장에서 바알 단 사건으로 마을 사람들이 그를 죽이려 할 때, 그를 변호해 준 아버지입니다. 아버지 곁에 묻힌 기드온. 2:9의 여호수아처럼 자기 땅에, 정확한 장소가 기록된 무덤에 묻혔습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죽음 바로 뒤에 33절이 옵니다. 그가 남긴 것은 70명의 아들, 금 에봇, 그리고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유산이 어떤 결과를 낳는지는 9장이 보여 줄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좋은 노년 — 원문 ‘베세바 토바’. 창 15:15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25:8, 대상 29:28 다윗.
묘실 — 가족 무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바위를 파서 만든 가족 묘에 대대로 장사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25:8그가 수가 높고 나이 많아 기운이 진하여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대상 29:28저가 나이 많아 늙도록 부하고 존귀하다가 죽으매
삿 2:8-10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33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바알브릿을 신으로 삼고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직역 기드온이 죽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서서 바알들을 따라 음행하였다. 그들이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았다.
“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기드온이 죽자마자 이스라엘은 돌아섭니다. 2:19의 예고 그대로입니다.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40년의 평화 동안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뿌리를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27절에서 그들이 금 에봇을 ‘음란하게 위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에봇에서 바알로 넘어가는 것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이미 우상을 섬기는 습관이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기드온의 에봇은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돌아가는 다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바알브릿’은 ‘언약의 바알’이라는 뜻입니다. 이것은 소름 끼치는 이름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와 언약(브릿)을 맺은 백성입니다. 그런데 이제 그 언약의 자리에 바알을 앉혔습니다. 2:1에서 하나님은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그 언약을 바알과의 언약으로 바꾸어 버렸습니다. 이 바알브릿의 신전은 세겜에 있었고(9:4), 그곳은 바로 기드온의 첩과 아비멜렉이 있는 곳이었습니다.
바알의 단을 헐어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얻었던 기드온. 그의 이야기는 바알과의 싸움으로 시작해서, 그가 죽자 이스라엘이 바알에게 돌아가는 것으로 끝납니다. 한 사람의 위대한 승리도, 그것이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관계로 이어지지 않으면 다음 세대를 지키지 못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바알브릿 — 9:4 “바알브릿 묘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아비멜렉에게 주매”, 9:46 “엘브릿 신당”(언약의 엘). 세겜에서 섬기던 신으로, 가나안의 바알과 지역 언약 전통이 결합된 형태로 봅니다. 수 24장에서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여호와와의 언약을 갱신했던 그 자리에, 이제 ‘언약의 바알’이 섬겨집니다.
음란하게 위하다자나 — 2:17, 8:27, 8:33.
함께 읽을 말씀
삿 2: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삿 9:4바알브릿 묘에서 은 칠십 개를 내어 그에게 주매
수 24:25-26그 날에 여호수아가 세겜에서 백성으로 더불어 언약을 세우고… 거기 여호와의 성소 곁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세우고
호 6:7저희는 아담처럼 언약을 어기고 거기서 내게 패역을 행하였느니라
34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직역 이스라엘 자손은 사방 모든 원수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다.
“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자기들을 건져내신 여호와 자기들의 하나님을 기억지 아니하며.” 이 한 문장에 사사기의 비극이 압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미디안에게서, 모압에게서, 가나안에게서, 메소보다미아에게서 건져내셨습니다. ‘사면 모든 대적의 손에서.’ 그런데 이스라엘은 그 하나님을 기억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이스라엘을 건져내신 분이 ‘여호와’로 기록되었다는 점입니다. 22절에서 이스라엘은 “당신이 우리를 구원하셨으니” 하고 기드온에게 공을 돌렸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기자는 분명히 말합니다. 건져내신 분은 기드온이 아니라 여호와이셨다. 사람에게 구원의 공을 돌린 백성은, 그 사람이 죽자 구원하신 하나님까지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을 ‘기억하는 것’은 성경에서 단순히 머릿속에 떠올리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은혜에 합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기억하라”는 말을 거듭 합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신 8:18). 이스라엘은 그 명령을 잊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기억하다자카르 — 신 5:15, 8:2, 18, 15:15, 16:3, 24:18. 시 78:42 “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106:7.
함께 읽을 말씀
시 78:42저희가 그의 권능을 기억지 아니하며 대적에게서 구속하신 날도 생각지 아니하였도다
시 106:21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신 8:18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시 103:2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 모든 은택을 잊지 말찌어다
35여룹바알 기드온이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의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서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직역 그리고 그들은 여룹바알, 곧 기드온의 집에, 그가 이스라엘에게 행한 모든 선대로 신의를 베풀지 않았다.
마지막 문장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만 잊은 것이 아닙니다.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의 이스라엘에게 베푼 모든 은혜를 따라서 그의 집을 후대치도 아니하였더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을 위해 한 일, 7년의 압제에서 건져 내고 40년의 평화를 준 그 은혜를 잊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집안에 신의를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 문장은 9장의 예고입니다. 9장에서 세겜 사람들은 아비멜렉을 도와 기드온의 아들 70명을 죽입니다. 기드온의 막내아들 요담은 살아남아 그리심산 꼭대기에서 외칩니다. “여룹바알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9:16). 하나님을 잊은 백성은 결국 사람의 은혜도 잊습니다. 그리고 은혜를 잊은 자리에는 피가 흐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후대하다 — 원문 ‘아사 헤세드’, ‘헤세드를 행하다’. 1:24 노트 참고. 삼하 9:1 다윗이 요나단 때문에 사울의 집에 ‘은총(헤세드)을 베풀리라’ — 므비보셋 이야기. 기드온의 집은 그런 헤세드를 받지 못했습니다.
은혜토바 — ‘선, 좋은 것’. 9:16 요담의 비유에서 같은 말이 반복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9:16이제 너희가 아비멜렉을 세워 왕을 삼았으니 너희 행한 것이 과연 진실하고 의로우냐 이것이 여룹바알과 그 집을 선대함이냐 이것이 그 행한대로 그에게 보답함이냐
전 9:15가난한 지혜자가 있어서 그 지혜로 그 성읍을 건진 것이라 그러나 이 가난한 자를 기억하는 사람이 없었도다
삼하 9:1사울의 집에 오히려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을 인하여 그 사람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딤후 3:2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시작보다 끝이 중요합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포도주 틀에 숨은 겁쟁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바알의 단을 헐고, 300명으로 13만 5천 명을 무너뜨렸습니다. 그런데 그의 끝은 금 에봇과 많은 아내와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죽자 이스라엘은 곧바로 바알에게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시작도 보시지만, 끝을 더 귀하게 보십니다. 바울은 생애 마지막에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딤후 4:7). 큰 승리를 거두는 것보다, 그 승리 뒤에도 끝까지 하나님만 왕으로 모시는 것이 더 어렵고 더 중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마지막 장이 기드온의 8장이 아니라 바울의 고백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Before & After · 비교
6–7장의 기드온과 8장의 기드온
같은 사람이지만 승리 전과 후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6–7장 (승리 전)
8장 (승리 후)
마음
두려워하고 의심함
담대하지만 가혹함
하나님께
묻고, 표징을 구하고, 경배함
묻는 장면이 사라짐
싸움의 이유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그들은 내 형제, 내 어머니의 아들이니라”
이스라엘 형제에게
지파들을 불러 모음
숙곳을 가시로 벌하고 브누엘 사람들을 죽임
우상에 대해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를 찍음
금 에봇을 만들어 올무가 됨
왕권에 대해
“내가 무엇으로?” 자기를 작게 여김
왕관은 거절했지만 많은 아내, 큰 재산, 아들 이름 ‘아비멜렉’
제단
‘여호와 살롬’ (6:24)
금 에봇 (8:27) — 같은 오브라에
기드온은 사사기의 분수령입니다. 그 이전의 사사들(옷니엘, 에훗, 드보라)은 대체로 하나님을 따라 위를 향했지만, 기드온 이후의 이야기(아비멜렉, 입다, 삼손)는 눈에 띄게 아래로 내려갑니다. 그리고 그 전환점에는 승리 뒤의 교만과 금 에봇이 서 있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8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끝물 포도2절
추수 뒤 밭에 남은 포도를 줍는 것.
맏물 포도2절
본 포도 수확.
노怒 · 3절
성냄, 분노.
종자從者 · 5절
따르는 사람들.
떡덩이5절
둥근 빵 덩어리.
방백方伯 · 6, 14절
성읍의 지도자, 관리.
들가시와 찔레7, 16절
광야의 가시나무와 엉겅퀴.
망대望臺 · 9, 17절
망보는 높은 탑, 성의 요새.
안연히安然- · 11절
마음 놓고 편안하게.
신문訊問 · 14절
캐어물음.
기롱譏弄 · 15절
비웃고 놀림.
징벌懲罰 · 16절
잘못을 벌함.
장자長子 · 20절
맏아들.
새 달 형상21, 26절
초승달 모양. 달신 숭배의 부적.
청구請求 · 24절
달라고 요구함.
중수重數 · 26절
무게.
세겔26절
무게 단위. 약 11.4g.
패물佩物 · 26절
몸에 차는 장신구.
자색紫色 · 26절
자주색. 왕과 귀족의 옷감.
에봇27절
대제사장의 예복. 하나님의 뜻을 묻는 도구.
올무27절
덫.
첩妾 · 31절
정식 아내보다 낮은 지위의 아내.
묘실墓室 · 32절
무덤 안의 방, 가족 묘.
바알브릿33절
‘언약의 바알’. 세겜에서 섬긴 신.
후대厚待 · 35절
두터이 대접함. 원문 헤세드.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기드온은 부드러운 말로 에브라임의 노를 풀었습니다(1–3절). 최근 나에게 화를 낸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대답했습니까? 내가 공을 내려놓아야 할 관계는 어디입니까?
300명은 “피곤하나 따랐습니다”(4절). 지금 내가 피곤하지만 포기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숙곳과 브누엘은 이기는 편이 확실해질 때까지 형제를 돕지 않았습니다(6, 8절). 나는 하나님의 편에 서는 것을 계산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기드온은 자기를 조롱한 형제들을 가혹하게 벌했습니다(16–17절). 나를 상처 준 사람에게 갚아 주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그것을 어떻게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을까요?
기드온의 전쟁은 어느새 “내 어머니의 아들들”을 위한 개인의 복수가 되었습니다(19절). 내가 하는 하나님의 일 속에 나의 상처나 욕심이 섞여 있지는 않습니까?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23절). 나는 이 고백을 입으로만 하고 있습니까, 삶으로도 하고 있습니까?
좋은 의도로 만든 금 에봇이 온 이스라엘의 올무가 되었습니다(27절). 내 신앙생활에서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진 ‘에봇’은 무엇입니까?
기드온은 아들에게 ‘내 아버지는 왕’이라는 이름을 주었습니다(31절). 나는 자녀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