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5절까지 — 삼만 이천에서 삼백으로, 보리떡 한 덩어리의 꿈, 그리고 깨진 항아리 속의 횃불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JUDGES 7:7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7장 들어가며
하나님은 군대를 늘리시지 않고 줄이셨습니다. 승리가 누구의 것인지 분명히 하시려고
7장은 성경에서 가장 유명한 전쟁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의 대부분은 전투가 아니라 준비입니다. 그리고 그 준비는 군대를 강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게 만드는 과정입니다. 3만 2천 명이 1만 명으로, 다시 300명으로 줄어듭니다. 상대는 13만 5천 명(8:10). 450대 1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하신 이유는 2절에 분명히 나옵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승리 뒤에 사람이 자기 힘을 자랑하지 못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당신의 이름으로 이기십니다.
그리고 이 장에서 하나님은 또다시 기드온의 두려움을 헤아려 주십니다. 기드온이 구하지도 않았는데, 적진에 내려가 미디안 병사의 꿈 이야기를 들려주십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굴러와 장막을 무너뜨리는 꿈. 그 꿈을 들은 기드온은 비로소 엎드려 경배하고 일어섭니다. 마지막 전투는 칼이 아니라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로 시작됩니다.
핵심 구절
7:2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이 군대를 줄이신 이유입니다.
삼백 명
7:6–7
물을 핥아 먹은 사람들. 하나님이 고르신 작은 무리입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
7:13–14
가장 값싼 음식이 미디안의 장막을 무너뜨립니다. 작은 이스라엘의 상징입니다.
깨진 항아리
7:19–20
항아리가 깨질 때 빛이 드러났습니다. 질그릇에 담긴 보배의 그림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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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하롯샘”
‘떨림의 샘’. 3절의 ‘두려워서 떠는 자’와 같은 말에서 온 이름.
1절 “모레산”
‘가르치는 자의 산’. 이스르엘 골짜기 북쪽의 작은 산.
2절 “자긍하기를”
自矜, 스스로 자랑함. 원문 파아르 ‘스스로 높이다’.
3절 “길르앗산에서 떠나”
원문이 어려운 구절. 길보아산 착오, 또는 ‘서둘러 떠나’로 보기도 한다.
5절 “핥는 자”
개처럼 혀로 물을 핥는 자. 6절은 손으로 움켜 입에 댔다고 설명.
13절 “보리떡”
보리로 만든 둥근 빵. 가난한 사람의 음식.
16절 “빈 항아리”
토기 항아리. 횃불의 빛을 감추는 덮개.
19절 “이경 초”
二更 初, 밤의 중간 경점이 막 시작될 때. 밤 10시 무렵.
19절 “번병의 체번”
番兵의 遞番, 보초가 교대하는 때.
20절 “좌수… 우수”
左手, 右手. 왼손과 오른손.
24절 “나루턱”
강을 건너는 여울목.
25절 “방백”
方伯, 원문 사르. 장군, 지휘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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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3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 두려워 떠는 자는 돌아가라
기드온과 이스라엘 군대가 하롯샘 곁에 진을 칩니다. 북쪽 골짜기에는 미디안의 거대한 진이 펼쳐져 있습니다. 6장에서 모인 군사는 3만 2천 명. 13만 5천 명의 적에 비하면 턱없이 적은 숫자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놀라운 말씀을 하십니다. “너무 많다.” 하나님은 군대가 적어서 걱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많아서 걱정하십니다. 그리고 첫 번째 줄이기가 시작됩니다. 두려워 떠는 자는 집으로 돌아가라. 2만 2천 명이 돌아갑니다.
1여룹바알 기드온이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은 모레산 앞 골짜기에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과 그를 좇은 모든 백성이 일찌기 일어나서 하롯샘 곁에 진 쳤고 미디안의 진은 그들의 북편이요 모레산 앞 골짜기에 있었더라
직역 여룹바알, 곧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모든 백성이 일찍 일어나 하롯 샘 곁에 진을 쳤다. 미디안의 진영은 그의 북쪽, 모레 언덕에서부터 골짜기에 있었다.
7장은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는 기드온”이라고 부르며 시작합니다. 바알의 단을 헐고 얻은 이름(6:32)입니다. 하나님은 이 전쟁이 단순히 미디안과의 싸움이 아니라 바알과의 싸움임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하롯샘 곁에 진을 칩니다. ‘하롯’은 ‘떨림’이라는 뜻입니다. 3절에서 하나님은 “두려워서 떠는(하레드) 자”는 돌아가라고 하십니다. 같은 말입니다. ‘떨림의 샘’ 곁에서 떨리는 사람들이 걸러집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런 말놀이로 장면의 분위기를 전합니다.
하롯샘은 길보아산 북쪽 기슭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미디안은 그 북쪽, 모레산 앞 골짜기에 진을 쳤습니다. 두 진영 사이에는 이스르엘 골짜기의 동쪽 끝자락이 놓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높은 곳에서 적의 거대한 진영을 내려다볼 수 있었습니다. 밤이 되면 수없이 많은 모닥불이 골짜기를 가득 채웠을 것입니다.
하롯샘이 있는 길보아산은 훗날 사울 왕과 요나단이 블레셋과 싸우다 죽는 곳이기도 합니다(삼상 31:1). 같은 장소가 한 번은 하나님을 의지한 작은 군대의 승리를, 한 번은 하나님을 떠난 왕의 패배를 보게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롯샘 — 오늘날 ‘마얀 하롯’(아인 잘루드). 길보아산 서북쪽 기슭에서 솟는 샘으로, 지금도 물이 흐릅니다. 1260년 몽골군과 맘루크 군대의 ‘아인 잘루트 전투’가 벌어진 곳으로도 유명합니다.
모레 — ‘가르치다(야라)’에서 온 말. 창 12:6 아브라함이 세겜의 ‘모레 상수리나무’에 이르렀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 북쪽의 해발 약 515m 언덕(기브앗 하모레).
일찌기 일어나서 — 사사기에서 결단과 행동의 시작을 보여 주는 표현(6:28, 38, 19:5, 8, 21:4).
함께 읽을 말씀
삿 6:32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삼상 29:1블레셋 사람들은 그 모든 군대를 아벡에 모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스르엘에 있는 샘 곁에 진 쳤더라
삼상 31:1블레셋 사람이 이스라엘을 치매 이스라엘 사람들이 블레셋 사람 앞에서 도망하여 길보아산에서 엎드러져 죽으니라
2백성이 너무 많은즉 —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내가 그들의 손에 미디안 사람을 붙이지 아니하리니 이는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직역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너와 함께한 백성이 내가 미디안을 그들의 손에 주기에는 너무 많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슬러 스스로 자랑하며 ‘내 손이 나를 구원했다’고 말할까 하여서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충격적입니다. “너를 좇은 백성이 너무 많은즉.” 3만 2천 명. 13만 5천 명의 미디안 연합군에 비하면 4분의 1도 안 되는 숫자입니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너무 적어서 걱정해야 할 숫자인데,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이유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하나님이 걱정하신 것은 패배가 아니라 승리 뒤의 교만이었습니다. 만약 3만 2천 명으로 이긴다면, 이스라엘은 ‘우리가 열심히 싸워서 이겼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 승리를 자기의 공로로 삼을 것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또다시 하나님을 잊을 것입니다. 사사기 전체가 보여 주듯, 이스라엘의 가장 큰 위험은 패배가 아니라 하나님을 잊는 것이었습니다.
“나를 거스려.” 사람이 자기 힘으로 이겼다고 자랑하는 것은 단순한 교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거스르는 일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할 영광을 가로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신명기 8:17–18은 이것을 미리 경고했습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하나님은 이렇게 일하십니다. 사람이 자랑할 수 없도록, 사람의 힘이 바닥날 때까지 줄이신 다음, 그 빈자리를 당신의 능력으로 채우십니다. 바울은 말했습니다.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기록된 바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전 1:29, 31).
원어 · 번역 노트
자긍하다파아르 재귀형 — ‘스스로 영화롭게 하다, 자랑하다’. 사 10:15 “도끼가 어찌 찍는 자에게 스스로 자랑하겠으며”. 4:9의 ‘영광(티프아레트)’과 같은 뿌리입니다. 바락은 영광을 잃었고, 이스라엘은 영광을 가로챌 뻔했습니다.
내 손 — 사사기에서 ‘손’은 중요한 말입니다. 하나님이 원수를 ‘네 손에 붙이신다’(7:7, 9, 14, 15)고 하시는데, 사람이 ‘내 손이 구원했다’고 하면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바꾸는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8:17-18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삼상 14:6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슥 4:6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고전 1:29, 31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
고후 12:9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3두려워서 떠는 자는 돌아가라 — 이만 이천이 돌아가고 일만이 남다
이제 너는 백성의 귀에 고하여 이르기를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길르앗산에서 떠나 돌아가라 하라 하시니 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명이었더라
직역 “이제 백성의 귀에 외쳐 말하라. ‘누구든지 두려워하고 떠는 자는 돌아가라. 길르앗 산에서 떠나라.’” 백성 가운데 이만 이천 명이 돌아갔고, 만 명이 남았다.
첫 번째 줄이기가 시작됩니다. “누구든지 두려워서 떠는 자여든… 돌아가라.” 이것은 하나님이 새로 만드신 규칙이 아니라, 신명기 20:8의 전쟁 규례에 이미 있던 것입니다. “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두려움은 전염됩니다. 한 사람의 두려움이 온 군대를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결과가 놀랍습니다.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명이었더라.” 3만 2천 명 가운데 2만 2천 명, 곧 3분의 2가 넘는 사람이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기드온의 나팔 소리를 듣고 모였지만(6:34–35), 막상 골짜기를 가득 채운 미디안 진을 내려다보자 마음이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보십시오. 이 명령을 들은 사람 가운데 가장 두려워 떠는 사람은 누구였을까요? 기드온 자신이었을 것입니다. 포도주 틀에 숨었고, 밤에 몰래 순종했고, 양털로 두 번이나 확인한 사람. 그런데 기드온은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10절에서 하나님은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이라고 하시며 그의 두려움을 아십니다. 두려워도 남은 사람, 그것이 기드온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길르앗산 —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입니다. 그런데 기드온의 군대는 요단 서쪽 길보아산 기슭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원래 ‘길보아산’이었던 것이 필사 과정에서 바뀌었다고 보거나, ‘이츠포르’(떠나다)를 ‘새처럼 서둘러 떠나다’로 읽어 ‘산에서 서둘러 떠나라’로 해석합니다. 또는 길르앗 출신 군사들에게 하는 말로 보기도 합니다.
신 20:8 — 전쟁에서 집으로 돌려보내야 할 사람들: 새 집을 짓고 낙성식을 못한 자, 포도원을 만들고 과실을 먹지 못한 자,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자, 그리고 두려워하는 자(신 20:5–8).
함께 읽을 말씀
신 20:8두려워서 마음에 겁내는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찌니 그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떨어질까 하노라
삿 6:15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요 6:66-68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딤후 1:7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근신하는 마음이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많아서 걱정하십니다
사람은 적어서 걱정하지만, 하나님은 많아서 걱정하십니다. 3만 2천 명은 13만 5천 명 앞에서 너무 적어 보였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너무 많았습니다. 그들이 승리한 뒤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고 자랑할까 봐서입니다.
우리도 무언가 부족할 때 하나님을 원망하곤 합니다. 사람이 부족하고, 돈이 부족하고, 힘이 부족하다고. 그러나 어쩌면 하나님은 바로 그 부족함을 통해 일하시려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내가 자랑할 수 없을 만큼 작아질 때,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내가 약한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7:4–8아직도 많으니 물가로 내려가라 — 물을 핥아 먹은 삼백 명
1만 명이 남았지만, 하나님은 또 말씀하십니다. “아직도 많다.” 두 번째 시험은 물가에서 이루어집니다. 사람들이 물을 마시는 방식에 따라 하나님이 직접 사람을 고르십니다.
결과는 300명. 3만 2천 명에서 시작해 1퍼센트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이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리라.” 이제 누구도 이 승리를 자기 것이라 말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4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물가로 내려가라 — 거기서 내가 시험하리라
여호와께서 또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그들을 인도하여 물가로 내려가라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무릇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가 너와 함께 가리라 하면 그는 너와 함께 갈 것이요 내가 누구를 가리켜 이르기를 이는 너와 함께 가지 말 것이니라 하면 그는 가지 말 것이니라 하신지라
직역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백성이 아직도 많다. 그들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가라. 내가 거기서 너를 위해 그들을 걸러 내겠다.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갈 것이다’ 하는 자는 너와 함께 갈 것이고, 내가 너에게 ‘이 사람은 너와 함께 가지 않을 것이다’ 하는 자는 가지 않을 것이다.”
1만 명이 남았습니다. 그래도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백성이 아직도 많으니.” 이제 남은 사람들은 두려움을 이기고 남은 용감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더 줄이십니다. 용기도 자랑거리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를 위하여 그들을 시험하리라.” 여기서 ‘시험하다’는 히브리어 ‘차라프’로, 금속을 불에 녹여 찌꺼기를 걸러 내는 ‘정련하다’라는 뜻입니다. 금을 단련하듯 사람을 거르신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기드온이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십니다. “내가 누구를 가리켜… 하면.” 누가 갈지는 하나님이 직접 가리키십니다.
하나님의 일에 쓰임받는 사람은 하나님이 고르십니다. 사람의 눈에 강해 보이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가리키시는 사람입니다. 사무엘이 이새의 아들들 가운데 키 크고 용모가 뛰어난 엘리압을 보고 기름을 부으려 했을 때, 하나님은 “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 16:7) 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시험하다차라프 — ‘정련하다, 녹여 순수하게 하다’. 시 66:10 “우리를 단련하시기를 은을 단련함 같이 하셨으며”, 사 48:10, 말 3:2–3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2:22, 3:1, 4의 ‘시험하다(나사)’와는 다른 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6:7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말 3:3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
요 15:16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5개의 핥는 것 같이 물을 핥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이에 백성을 인도하여 물가에 내려가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무릇 개의 핥는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너는 따로 세우고 또 무릇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그같이 하라 하시더니
직역 그가 백성을 물가로 데리고 내려갔다.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개가 핥듯이 그의 혀로 물을 핥는 자는 모두 따로 세우고,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도 모두 그렇게 하라.”
하나님은 물을 마시는 방식으로 사람을 나누십니다. 두 무리입니다. “개의 핥는것 같이 그 혀로 물을 핥는 자”와 “무릎을 꿇고 마시는 자.”
무릎을 꿇고 마시는 사람은 물가에 엎드려 얼굴을 물에 대고 직접 마시는 사람들입니다. 반면 ‘핥는 자’는 6절의 설명대로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마신 사람들입니다. 손으로 물을 떠서 개처럼 혀로 핥아 먹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어느 쪽을 택하실지는 아직 말씀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아무것도 모른 채 물가에 가서 평소대로 물을 마셨을 것입니다. 시험은 종종 이렇게 우리가 시험인 줄도 모를 때, 가장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이루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핥다라카크 — ‘핥다’. 왕상 21:19, 22:38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무릎을 꿇다카라 — 5:27 시스라가 야엘의 발 앞에 ‘꾸부러졌다(카라)’와 같은 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10:7길가의 시냇물을 마시고 인하여 그 머리를 드시리로다
고전 9:26-27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
6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가 삼백 명이요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명이요 그 외의 백성은 다 무릎을 꿇고 물을 마신지라
직역 손으로 입에 대고 핥은 자의 수가 삼백 명이었고, 나머지 모든 백성은 무릎을 꿇고 물을 마셨다.
결과가 나옵니다. “손으로 움켜 입에 대고 핥는 자의 수는 삼백명이요.” 1만 명 가운데 300명. 나머지 9,700명은 모두 무릎을 꿇고 물에 얼굴을 대고 마셨습니다.
이 시험의 의미에 대해 오랫동안 많은 해석이 있었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해석은, 손으로 물을 떠 마신 사람들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며 경계를 늦추지 않은 ‘깨어 있는 군사’였고, 무릎 꿇고 마신 사람들은 물에 정신이 팔려 경계를 놓친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해석은, 무릎을 꿇는 모습이 가나안 사람들이 우상 앞에 절하는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은 300명이 더 용감하거나 더 경건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2절의 목적을 생각하면, 하나님은 ‘가장 적은 쪽’을 고르셨을 뿐입니다. 만약 9,700명 쪽이 300명이었다면 하나님은 그쪽을 택하셨을지도 모릅니다. 핵심은 300명의 자질이 아니라 300명이라는 숫자입니다. 그렇게 적은 사람으로 이겨야 승리가 하나님의 것임이 분명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우월함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에 근거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해석의 역사 —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1세기)는 300명이 오히려 겁이 많아 서둘러 마신 자들이었다고 해석했습니다(『유대 고대사』 5.6.3). 그렇게 보면 하나님은 가장 약한 자들을 고르신 셈입니다. 중세와 근대의 많은 설교자들은 ‘경계하는 군사’ 해석을 따랐습니다.
문장의 어려움 — 5절과 6절을 함께 읽으면 ‘핥는 자’와 ‘손으로 움켜 입에 댄 자’가 어떻게 연결되는지가 어렵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손으로 입에 대고’라는 말이 원래 5절의 ‘무릎 꿇은 자’에 대한 설명이었다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7:7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너희가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은 연고가 아니라 너희는 모든 민족 중에 가장 적으니라
롬 9:16그런즉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눅 12:32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7내가 이 삼백 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을 네 손에 붙이리니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미디안 사람을 네 손에 붙이리니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
직역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말씀하셨다. “핥아 먹은 삼백 명으로 내가 너희를 구원하고 미디안을 네 손에 주겠다. 나머지 모든 백성은 각자 자기 곳으로 가게 하라.”
하나님의 선언이 나옵니다. “내가 이 물을 핥아 먹은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며.” 주어가 분명합니다. ‘내가’ 구원하리라. 300명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300명으로 구원하십니다. 300명은 도구이고, 구원자는 하나님이십니다.
13만 5천 명 대 300명. 450대 1입니다. 사람의 계산으로는 불가능한 싸움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래서 하나님의 승리가 됩니다. 요나단도 블레셋 진영에 단둘이 올라가며 말했습니다.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삼상 14:6).
“남은 백성은 각각 그 처소로 돌아갈 것이니라.” 9,700명은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들은 용기가 없어서 돌아간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두려움을 이기고 남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이 그들을 쓰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일에서 쓰임받는 것과 쓰임받지 않는 것 모두 하나님의 주권에 달려 있습니다. 그리고 24절에서 보듯, 하나님은 나중에 그들도 다시 부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구원하다야샤 — 2절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야샤)’와 대비. 이스라엘의 손이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구원하십니다.
숫자의 대비 — 6:5 메뚜기 떼, 7:12 해변의 모래 같은 낙타, 8:10 13만 5천 명 vs 300명.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4:6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의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대하 14:11여호와여 강한 자와 약한 자 사이에는 주 밖에 도와줄 이가 없사오니
레 26:8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너희 대적들이 너희 앞에서 칼에 엎드러질 것이며
시 33:16-17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8양식과 나팔을 손에 들고 — 삼백 명은 머물러 두니라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기드온이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각 그 장막으로 돌려보내고 그 삼백명은 머물러 두니라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직역 그들은 백성의 식량과 그들의 나팔을 자기 손에 가졌다. 그가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을 각자 자기 장막으로 보내고, 삼백 명은 붙들어 두었다. 미디안의 진영은 그의 아래 골짜기에 있었다.
“이에 백성이 양식과 나팔을 손에 든지라.” 원문을 보면 남은 300명이 돌아가는 사람들의 식량과 나팔을 받아 손에 든 것으로 보입니다. 16절에서 300명이 모두 나팔을 들고 있는 것을 보면, 이때 9,700명의 나팔을 거두어 300명에게 나누어 주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다음 전략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문장이 장면을 마무리합니다. “미디안 진은 그 아래 골짜기 가운데 있었더라.” 300명이 산 위에서 내려다보는 저 아래,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진이 골짜기를 가득 채우고 있습니다. 숫자의 대비가 극명합니다. 이제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하셔야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양식체다 — ‘여행 식량’. 창 42:25 요셉이 형제들에게 준 ‘길 양식’.
나팔 — 각 사람이 나팔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다는 것은 이례적입니다. 보통 나팔은 지휘관만 가졌습니다. 300개의 나팔은 300개의 부대가 있는 것처럼 들리게 하는 전략이 됩니다(18–22절).
함께 읽을 말씀
삿 7:16삼백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수 6:4-5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언약궤 앞에서 행할 것이요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일에는 1퍼센트로도 충분합니다
3만 2천 명에서 300명. 하나님은 기드온의 군대를 1퍼센트도 안 되게 줄이셨습니다. 그리고 선언하셨습니다. “내가 이 삼백명으로 너희를 구원하리라.” 300명이 대단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는 작습니다. 우리의 힘도 작고, 우리의 자원도 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하나님은 큰 교회, 큰 힘을 통해서만 일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오히려 작은 무리를 통해 당신의 이름을 드러내기를 기뻐하십니다. “적은 무리여 무서워 말라 너희 아버지께서 그 나라를 너희에게 주시기를 기뻐하시느니라.”
7:9–15적진의 꿈 이야기 — 보리떡 한 덩어리가 장막을 무너뜨리다
그날 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공격하라고 명하십니다. 그런데 곧이어 놀라운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하나님은 기드온이 아직도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구하지도 않은 표징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기드온은 종 부라와 함께 적진 가장자리로 숨어 내려갑니다. 그리고 거기서 한 미디안 병사가 동료에게 꿈 이야기를 하는 것을 듣습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굴러와 장막을 무너뜨린 꿈. 동료는 그것이 기드온의 칼이라고 해석합니다. 원수의 입에서 승리의 예언이 나왔습니다.
9이 밤에 —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네 손에 붙였느니라
이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직역 그 밤에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진영으로 내려가라. 내가 그것을 네 손에 주었다.”
300명을 고른 바로 그 밤, 하나님은 명령하십니다. “일어나 내려가서 적진을 치라.” 그리고 약속하십니다.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1:2, 3:28, 4:7, 14과 같은 완료형입니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승리는 이미 정해졌습니다.
하나님은 기다리게 하지 않으십니다. 군대를 줄이자마자, 기드온이 또 망설이기 전에, 곧바로 공격 명령을 내리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붙였느니라 — ‘나탄’의 완료형. 하나님의 약속은 미래의 일도 과거처럼 말할 만큼 확실합니다(1:2 노트 참고).
함께 읽을 말씀
삿 4:14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수 8:1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아이 왕과 그 백성과 그 성읍과 그 땅을 다 네 손에 주었노니
10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부하 부라를 데리고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직역 “그러나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한다면, 너와 네 시종 부라가 진영으로 내려가서,”
하나님의 다음 말씀이 참 따뜻합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하나님은 기드온의 마음을 다 아셨습니다. 그는 300명을 데리고 13만 5천 명을 치러 가야 합니다. 두렵지 않을 리가 없습니다. 하나님은 그 두려움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대신 길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리고 혼자 가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두려운 길을 함께 갈 사람을 붙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길에 동행자를 주시는 분입니다. 엘리야에게 엘리사를, 바울에게 디모데를 주셨듯이.
6장에서 기드온은 양털로 하나님께 표징을 구했습니다. 이번에는 기드온이 구하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먼저 표징을 준비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십니다(마 6:8).
원어 · 번역 노트
부하나아르 — ‘젊은이, 종, 시종’. 무기를 들어 주는 종을 가리키기도 합니다(9:54 아비멜렉의 ‘병기 잡은 소년’, 삼상 14:1 요나단의 ‘병기 든 소년’).
부라 — 히브리어 ‘푸라’. 뜻은 분명하지 않습니다. 성경에 이 장면에만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6:8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
삼상 14:1요나단이 자기 병기를 든 소년에게 이르되 우리가 건너편 블레셋 사람의 부대에게로 건너가자
전 4:9-10두 사람이 한 사람보다 나음은… 혹시 저희가 넘어지면 하나가 그 동무를 붙들어 일으키려니와
시 103:14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11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지리라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능히 내려가서 그 진을 치리라 기드온이 이에 그 부하 부라를 데리고 군대가 있는 진 가에 내려간즉
직역 “그들이 무엇을 말하는지 들으라. 그 뒤에 네 손이 강해질 것이고, 너는 진영으로 내려갈 것이다.” 그와 그의 시종 부라가 진영 안 무장한 자들의 가장자리까지 내려갔다.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그 후에 네 손이 강하여져서.” 하나님은 기드온의 손을 강하게 하실 방법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것은 적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시기 위해 뜻밖의 통로를 쓰십니다.
기드온은 순종합니다. 부라와 함께 밤의 어둠을 틈타 진 가, 곧 미디안 진영의 가장자리까지 내려갑니다. 원문은 ‘무장한 자들의 가장자리’입니다. 보초들이 지키는 전초 지역까지 들어갔다는 뜻입니다. 두려운 마음으로, 숨을 죽이며, 한 걸음씩.
원어 · 번역 노트
강하여지다하자크 — 수 1:6–9 “하고 담대히 하라”(하자크 베에마츠), 삼하 2:7.
무장한 자들하무심 — 출 13:18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항오를 지어’ 나왔다, 수 1:14 ‘무장하고’. 전투 대형을 갖춘 군사들.
함께 읽을 말씀
수 1:9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사 35:3-4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여주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여주며 겁내는 자에게 이르기를 너는 굳세게 하라, 두려워 말라,
12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 같은지라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직역 미디안과 아말렉과 모든 동방 자손이 골짜기에 메뚜기처럼 많이 엎드려 있었다. 그들의 낙타는 바닷가의 모래처럼 많아서 셀 수가 없었다.
진영 가장자리에 다다른 기드온의 눈에 펼쳐진 광경입니다.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골짜기를 가득 메운 적군, 끝없이 늘어선 낙타들. 300명을 데리고 이들과 싸워야 한다고 생각하니 기드온의 심장이 얼마나 뛰었을까요.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해변의 모래”라는 표현입니다. 이것은 원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그 자손을 약속하실 때 쓰신 말입니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창 22:17). 그런데 지금 해변의 모래처럼 많은 것은 이스라엘이 아니라 원수입니다. 이스라엘은 300명뿐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이 거꾸로 된 것 같은 장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로 이 상황에서 약속을 이루실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해변의 모래 — 창 22:17, 32:12, 수 11:4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가나안 연합군), 삼상 13:5 블레셋 군대도 같은 표현.
누웠는데 — 원문 ‘노플림’, ‘엎드려 있다, 누워 있다’. 밤이라 잠들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22:17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수 11:4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고
왕하 6:16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13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을 무너뜨리니
기드온이 그 곳에 이른즉 어떤 사람이 그 동무에게 꿈을 말하여 이르기를 내가 한 꿈을 꾸었는데 꿈에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직역 기드온이 갔다. 그리고 보라, 한 사람이 그의 동료에게 꿈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였다. “보라, 내가 꿈을 꾸었는데, 보라, 보리빵 한 덩이가 미디안 진영으로 굴러 들어와 장막에까지 와서 그것을 쳤다. 그러자 그것이 쓰러졌다. 그것을 뒤집어엎었고, 장막이 무너졌다.”
기드온이 진영 가장자리에 도착한 바로 그 순간, 한 미디안 병사가 동료에게 꿈 이야기를 하고 있었습니다.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정확히 그 시간에 기드온을 그곳으로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언제나 정확합니다.
꿈의 내용은 이렇습니다. “보리떡 한 덩어리가 미디안 진으로 굴러 들어와서 한 장막에 이르러 그것을 쳐서 무너뜨려 엎드러뜨리니 곧 쓰러지더라.” 둥근 보리떡 하나가 굴러 와서 장막을 쳤더니, 장막이 뒤집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보리떡에 주목해야 합니다. 당시 밀로 만든 빵은 비교적 귀했고, 보리떡은 가난한 사람들이 먹는 가장 값싼 빵이었습니다. 보리는 밀보다 거칠고 맛이 없었지만 값이 절반 정도였습니다(왕하 7:1). 그러니 보리떡은 가난하고 작은 농부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6장에서 미디안에게 곡식을 다 빼앗기고 포도주 틀에서 몰래 밀을 털던 농부들. 그 보잘것없는 농부의 빵이 굴러 와서 유목민 미디안의 장막을 무너뜨립니다.
그리고 ‘장막’은 유목민 미디안의 상징입니다. 그들은 장막을 끌고 와서 이스라엘의 땅에 눌러앉았습니다(6:5). 농부의 빵이 유목민의 장막을 무너뜨리는 그림. 하나님은 세상이 하찮게 여기는 것으로 강한 것을 무너뜨리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보리떡 — 원문 ‘첼릴 레헴 세오림’. ‘첼릴’은 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 말로, ‘둥근 빵 덩이’ 또는 ‘구운 빵’으로 봅니다. 왕하 7:1 “고운 가루 한 스아에 한 세겔을 하고 보리 두 스아에 한 세겔을 하리라” — 보리는 밀의 절반 값이었습니다.
요 6:9 — 예수님의 오병이어 기적에서 한 아이가 가져온 것도 “보리떡 다섯 개”였습니다. 하나님은 가장 보잘것없는 보리떡으로 큰일을 하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6: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고전 1:27-28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창 41:25바로의 꿈은 하나이라 하나님이 그 하실 일을 바로에게 보이심이니이다
단 2:34-35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신상의 철과 진흙의 발을 쳐서 부숴뜨리매
14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기드온의 칼날이라 — 하나님이 붙이셨느니라
그 동무가 대답하여 가로되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더라
직역 그의 동료가 대답하였다. “이것은 다름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이다.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온 진영을 그의 손에 주셨다.”
동료 병사의 해석이 놀랍습니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그는 기드온의 이름과 아버지의 이름까지 알고 있었습니다. 바알의 단을 헐고 나팔을 분 기드온의 소식이 이미 미디안 진영까지 퍼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미디안 사람들은 그 이름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말. “하나님이 미디안과 그 모든 군대를 그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원수의 입에서 하나님의 약속이 그대로 나옵니다. 9절에서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내가 그것을 네 손에 붙였느니라” 하셨는데, 지금 미디안 병사가 똑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입을 통해서도 당신의 말씀을 확증하십니다.
기드온은 두려워하고 있었지만, 사실 더 두려워하고 있던 쪽은 미디안이었습니다. 13만 5천 명의 대군이 300명의 기드온을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여리고 사람들도 그랬습니다. 라합은 정탐꾼에게 “마음이 녹았고 너희의 연고로 사람이 정신을 잃었나니”(수 2:11) 했습니다. 우리가 두려워하는 원수가 사실은 우리보다 더 두려워하고 있을 때가 많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나님 — 미디안 병사는 ‘여호와’가 아니라 ‘하나님(엘로힘)’이라고 말합니다. 이방인으로서 이스라엘의 신이 일하신다는 것을 알아본 것입니다.
기드온의 칼 — 실제로 기드온의 300명은 칼을 들고 가지 않았습니다(16절,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 그러나 20절에서 그들은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외칩니다. 이 꿈의 해석이 그대로 함성이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2:9-11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우리가 너희를 심히 두려워하고… 마음이 녹았고
출 15:14-16열방이 듣고 떨며 블레셋 거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미치매
삿 7:20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민 23:20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15꿈과 해몽을 듣고 경배하고 —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붙이셨느니라
기드온이 그 꿈과 해몽하는 말을 듣고 경배하고 이스라엘 진중에 돌아와서 이르되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고
직역 기드온이 그 꿈 이야기와 그 해석을 들었을 때, 그는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이스라엘 진영으로 돌아와 말하였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진영을 너희 손에 주셨다!”
꿈과 그 해석을 들은 기드온의 첫 반응은 “경배하고”였습니다. 원문은 ‘엎드려 절하였다’입니다. 적진 한가운데, 어둠 속에서, 들킬지도 모르는 그 자리에서, 기드온은 땅에 엎드려 하나님께 경배했습니다. 이것이 6장과 7장의 기드온이 처음으로 표징 뒤에 질문이나 확인이 아니라 예배로 반응한 순간입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달라집니다. 그는 진영으로 돌아와 외칩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미디안 군대를 너희 손에 붙이셨느니라.” 6장에서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하고 묻던 사람, 양털로 두 번이나 확인하던 사람이, 이제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입으로 선포합니다. 4:14에서 드보라가 바락에게 외쳤던 바로 그 말입니다. 망설이던 바락의 자리에 있던 기드온이, 이제 드보라처럼 다른 사람을 일으키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기드온을 바꾸었을까요? 하나님의 약속은 이미 여러 번 들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원수의 입에서, 원수의 두려움을 통해 그 약속이 사실임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이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그의 믿음을 세워 주셨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지는 것을 보며 자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경배하다샤하 재귀형 — ‘엎드려 절하다, 예배하다’. 창 24:26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만나고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출 4:31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의 말을 듣고 “머리 숙여 경배하였더라”.
해몽 — 원문 ‘시브로’, ‘그것의 깨뜨림’. 꿈의 해석을 ‘깨뜨린다’고 표현하는 독특한 말입니다. 보리떡이 장막을 ‘깨뜨린’ 꿈을 ‘깨뜨려’ 해석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24:26-27이에 그 사람이 머리를 숙여 여호와께 경배하고 가로되 나의 주인 아브라함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나이다
삿 4:14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롬 10: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대하 20:18여호사밧이 몸을 굽혀 얼굴을 땅에 대니 온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도 여호와 앞에 엎드려 경배하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믿음을 세우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두려움을 아셨습니다.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그리고 꾸짖는 대신, 그가 구하지도 않은 표징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적진의 꿈 이야기. 보리떡 한 덩어리가 장막을 무너뜨린다는 꿈. 그것을 들은 기드온은 비로소 엎드려 경배하고, 일어나 외쳤습니다. “여호와께서 붙이셨느니라!”
하나님은 우리 각자의 믿음의 크기를 아십니다. 그리고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방식으로 우리의 믿음을 세워 가십니다. 오늘 두려움 속에 있다면, 하나님께 그 두려움을 정직하게 내어놓으십시오. 하나님은 부라 같은 동행자를, 뜻밖의 확증을, 그리고 무엇보다 당신의 변함없는 말씀을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 다른 사람에게 “일어나라!” 하고 외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7:16–22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 깨진 항아리에서 빛이 터지다
기드온은 300명을 세 부대로 나누고, 각 사람에게 나팔 하나와 빈 항아리 하나를 줍니다. 항아리 안에는 횃불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칼은 없습니다. 기묘한 무기입니다.
한밤중, 보초가 교대하는 순간, 300명이 일제히 나팔을 불고 항아리를 깨뜨립니다. 어둠 속에서 300개의 횃불이 갑자기 타오르고, 300개의 나팔 소리가 골짜기를 울리고, 300명의 함성이 터져 나옵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잠에서 깬 미디안 군대는 공황에 빠져 서로를 칼로 치며 도망칩니다. 이스라엘은 칼 한 번 휘두르지 않고 이겼습니다.
16삼백 명을 세 대로 나누고 나팔과 빈 항아리, 항아리 안에 횃불을
삼백명을 세 대로 나누고 각 손에 나팔과 빈 항아리를 들리고 항아리 안에는 횃불을 감추게 하고
직역 그가 삼백 명을 세 무리로 나누고, 그들 모두의 손에 숫양 뿔 나팔들과 빈 항아리들을 주었으며, 항아리 안에는 횃불들을 두었다.
기드온의 작전이 시작됩니다. 먼저 300명을 세 대로 나눕니다. 세 방향에서 적진을 둘러싸기 위해서입니다. 그리고 각 사람에게 세 가지를 줍니다. 나팔, 빈 항아리, 그리고 항아리 안에 감춘 횃불.
이것이 무기의 전부입니다. 칼이 없습니다. 20절에서 그들은 왼손에 횃불, 오른손에 나팔을 듭니다. 두 손이 다 찼으니 칼을 들 수도 없었습니다. 이것은 사람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이 싸우시는 전쟁이었습니다.
이 작전은 기발합니다. 고대 군대에서 나팔은 보통 부대를 지휘하는 사람만 가졌습니다. 나팔 하나가 수백 명, 수천 명의 부대를 뜻했습니다. 그러니 300개의 나팔이 동시에 울리면, 미디안 사람들에게는 300개의 부대가 쳐들어온 것처럼 들렸을 것입니다. 횃불도 마찬가지입니다. 보통 횃불은 몇 사람 걸러 하나씩 들었으니, 300개의 횃불은 엄청난 대군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항아리 안에 감춘 횃불. 항아리는 횃불의 빛을 가려 적에게 들키지 않게 해 주었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이 오면 항아리를 깨뜨리고 빛을 드러낼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세 대 — 원문 ‘셸로샤 라심’, ‘세 머리’. 9:43 아비멜렉, 삼상 11:11 사울, 13:17 블레셋도 군대를 세 무리로 나눕니다. 고대의 일반적인 전술이었습니다.
횃불라피드 — 4:4 ‘랍비돗’(횃불들), 15:4–5 삼손의 여우 꼬리에 단 ‘홰’, 창 15:17 “타는 횃불이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더라”.
함께 읽을 말씀
수 6:20이에 백성은 외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매 백성이 나팔 소리를 듣는 동시에 크게 소리질러 외치니 성벽이 무너져 내린지라
고후 10:4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대하 20:21-22노래하는 자를 택하여 거룩한 예복을 입히고 군대 앞에서 행하며… 그 노래와 찬송이 시작될 때에 여호와께서 복병을 두어
17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 대로 하라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대로 하되 내가 그 진 가에 이르러서 하는대로 너희도 그리하여
직역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를 보고 그대로 하라. 보라, 내가 진영 가장자리에 이르면, 내가 하는 그대로 너희도 하라.”
기드온이 명령합니다. “너희는 나만 보고 나의 하는대로 하되.” 이것은 엄청난 변화입니다. 포도주 틀에 숨어 있던 사람, 두려워서 밤에 몰래 순종하던 사람, 양털로 두 번이나 확인하던 사람이 이제 “나를 보라, 내가 하는 대로 하라” 하고 맨 앞에 섭니다.
좋은 지도자는 뒤에서 명령하지 않고 앞에서 본을 보입니다. 기드온은 자기가 먼저 진영 가장자리로 가서 먼저 나팔을 불고 먼저 항아리를 깨뜨릴 것입니다. 바울도 말했습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고전 11:1). 지도자는 자기가 가지 않는 곳으로 다른 사람을 보내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나를 보라 — 3:27–28 에훗도 “나를 따르라” 하며 앞서 갔습니다. 9:48 아비멜렉은 “너희는 내가 행하는 것을 보나니 빨리 나와 같이 행하라” 하는데, 같은 말이 악한 목적에 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1: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빌 3:17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 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
벧전 5:3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18나팔을 불며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나와 나를 좇는 자가 다 나팔을 불거든 너희도 그 진 사면에서 또한 나팔을 불며 이르기를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하라 하니라
직역 “나와 나와 함께한 모든 자가 숫양 뿔 나팔을 불면, 너희도 온 진영 둘레에서 나팔을 불며 말하라. ‘여호와를 위하여, 기드온을 위하여!’”
기드온은 함성까지 정해 줍니다.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 원문은 ‘여호와께, 그리고 기드온께!’입니다. 이 싸움이 누구의 싸움인지 분명히 하는 외침입니다. 먼저 여호와, 그다음 기드온.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런데 실제 전투에서 그들이 외친 함성은 조금 다릅니다(20절).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14절 미디안 병사의 해석 “기드온의 칼날이라”가 함성 안에 들어갑니다. 원수가 두려워하던 그 말을 이스라엘이 외칩니다.
한 가지 주의할 점이 있습니다. 여기에는 ‘기드온’의 이름이 하나님과 나란히 들어갑니다. 아직은 하나님이 먼저입니다. 그러나 8장에서 이스라엘은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당신과 당신의 아들과 당신의 손자가 우리를 다스리소서”(8:22)라고 말합니다. 2절에서 하나님이 걱정하셨던 바로 그 일, 사람이 구원했다고 말하는 일이 결국 일어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여호와를 위하라 — 원문 ‘라YHWH 울레기드온’. 전쟁의 함성(테루아). 수 6:16 여리고에서 “외치라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이 성을 주셨느니라”.
사면에서 — ‘진영 둘레 모든 곳에서’. 300명이 진영 전체를 포위한 것처럼 보이게 하는 전술입니다.
시 115:1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19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르니 번병의 체번할 때라 —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니라
기드온과 그들을 좇은 일백명이 이경 초에 진 가에 이른즉 번병의 체번할 때라 나팔을 불며 손에 가졌던 항아리를 부수니라
직역 기드온과 그와 함께한 백 명이 가운데 경점이 시작될 때 진영 가장자리에 이르렀다. 그들이 막 보초를 세운 때였다. 그들이 숫양 뿔 나팔을 불고 그들 손에 있던 항아리들을 깨뜨렸다.
때는 “이경 초”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은 밤을 세 경점으로 나누었습니다. 해 질 녘부터 밤 10시, 밤 10시부터 새벽 2시, 새벽 2시부터 해 뜰 때까지. 이경 초는 둘째 경점이 막 시작되는 밤 10시 무렵입니다. 미디안 군대 대부분은 이미 깊이 잠들었을 시간입니다.
그리고 정확히 “번병의 체번할 때”, 보초가 교대한 직후였습니다. 이것은 절묘한 타이밍입니다. 새로 근무를 선 보초들은 아직 어둠에 눈이 익숙하지 않고, 교대하고 막 잠자리에 든 보초들은 아직 잠들지 않아 곧장 소란을 듣게 됩니다. 그리고 진영 안에 움직이는 사람이 있어도 교대하는 보초로 착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가장 좋은 순간을 주셨습니다.
그 순간, 기드온이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숩니다. 항아리가 깨지자 그 안에 감추어 두었던 횃불이 확 드러납니다. 어둠 속에 갑자기 빛이 터집니다.
바울은 이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말을 남겼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후 4:7). 그리고 바로 앞 절에서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고후 4:6)라고 했습니다. 질그릇이 깨질 때 빛이 드러나듯, 우리의 연약함이 깨질 때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경점 — 구약 시대에는 밤을 세 경으로 나누었고(출 14:24 “새벽에”, 삼상 11:11 “새벽에”는 셋째 경), 신약 시대에는 로마식으로 네 경으로 나누었습니다(마 14:25 “밤 사경에”, 막 13:35).
부수다나파츠 — ‘산산이 부수다, 흩어 버리다’. 시 2:9 “질그릇 같이 부수리라”, 렘 13:14.
일백 명 — 300명을 세 부대로 나누었으니 기드온이 직접 이끈 부대는 100명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후 4:6-7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출 14:24새벽에 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삼상 11:11이튿날에 사울이 백성을 삼대에 나누고 새벽에 적진 중에 들어가서 날이 더울 때까지 암몬 사람을 치매
사 60:1-2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20좌수에 횃불, 우수에 나팔 —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세 대가 나팔을 불며 항아리를 부수고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불며 외쳐 가로되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하고
직역 세 무리가 숫양 뿔 나팔을 불고 항아리들을 깨뜨렸다. 그들은 왼손에 횃불을, 오른손에 불 나팔을 쥐고 외쳤다.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한 칼이다!”
기드온을 따라 세 부대가 동시에 움직입니다. 300개의 나팔이 울리고, 300개의 항아리가 깨지고, 300개의 횃불이 타오릅니다. “좌수에 횃불을 들고 우수에 나팔을 들어.” 왼손에는 횃불, 오른손에는 나팔. 두 손이 다 찼습니다. 칼을 들 손이 없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칼을 휘두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함성이 터집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18절에서 정한 “여호와를 위하라, 기드온을 위하라”에 ‘칼’이 더해졌습니다. 14절에서 미디안 병사가 “이는 기드온의 칼날이라” 하고 두려워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미디안 사람들이 꿈속에서 두려워하던 ‘기드온의 칼’이 이제 현실의 함성이 되어 그들의 귀에 울립니다.
그런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들은 “칼이여!” 하고 외치지만, 정작 손에는 칼이 없습니다. 칼은 하나님의 것이었습니다. 22절에서 하나님이 미디안 사람들의 칼로 서로를 치게 하십니다. ‘여호와의 칼’이 실제로 싸웠습니다.
이 장면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기는 하나님 백성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우리의 무기도 그렇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고후 10:4). 그리고 우리의 칼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엡 6:17)입니다.
칼 — 원문 ‘헤레브 라YHWH 울레기드온’, ‘여호와와 기드온을 위한 칼’. 렘 47:6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사 34:6 “여호와의 칼”.
함께 읽을 말씀
엡 6: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고후 10:4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앞에서 견고한 진을 파하는 강력이라
삿 7:14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의 칼날이라
시 44:3저희가 자기 칼로 땅을 얻어 차지함이 아니요 저희 팔이 저희를 구원함도 아니라 오직 주의 오른손과 팔과 얼굴의 빛으로 하셨으니
21각기 당처에 서서 에워싸매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각기 당처에 서서 그 진을 사면으로 에워싸매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직역 그들은 각자 자기 자리에서 진영을 둘러싸고 서 있었다. 그러자 온 진영이 달리고 소리 지르며 도망쳤다.
“각기 당처에 서서.” 300명은 진영 안으로 뛰어들지 않았습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 서서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었을 뿐입니다. 그들은 싸우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14:13의 말씀처럼. “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그런데 “그 온 적군이 달음질하고 부르짖으며 도망하였는데.” 13만 5천 명의 미디안 연합군이 공황에 빠집니다. 잠에서 깨어 보니 사방에서 수백 개의 나팔이 울리고, 어둠 속에 수백 개의 불빛이 둘러싸고 있고, 무시무시한 함성이 들립니다. 그들은 엄청난 대군에게 포위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낙타들도 놀라서 날뛰었을 것입니다. 진영 전체가 혼란에 빠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당처 — 當處, 자기가 맡은 자리. 원문 ‘타흐타브’, ‘그 자리에서’.
부르짖다 — 원문 ‘루아’, 전쟁의 함성이나 비명. 수 6:20 여리고 성벽 앞의 ‘외침’.
함께 읽을 말씀
출 14:13-14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대하 20:17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왕하 7:6-7이는 주께서 아람 군대로 병거 소리와 말소리와 큰 군대의 소리를 듣게… 일어나서 도망하되
잠 28:1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 같이 담대하니라
22여호와께서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 도망하여 벧싯다와 아벨므홀라에
삼백명이 나팔을 불 때에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적군이 도망하여 스레라의 벧 싯다에 이르고 또 답밧에 가까운 아벨므홀라의 경계에 이르렀으며
직역 삼백 명이 숫양 뿔 나팔을 불 때, 여호와께서 온 진영에 걸쳐 사람마다 칼을 그의 동료에게 향하게 하셨다. 진영은 스레라 쪽 벧싯다까지, 답밧 곁 아벨므홀라의 경계까지 도망쳤다.
그리고 결정적인 일이 일어납니다. “여호와께서 그 온 적군으로 동무끼리 칼날로 치게 하시므로.” 어둠 속에서 공황에 빠진 미디안 군사들은 옆에 있는 사람이 적인지 아군인지 구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서로를 칼로 쳤습니다.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섞인 연합군이었기에 말과 모습이 달라 더욱 서로를 적으로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것을 우연이나 혼란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여호와께서… 치게 하시므로.” 하나님이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칼 한 번 휘두르지 않았는데, 하나님이 원수의 칼로 원수를 치게 하셨습니다. 20절의 함성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에서 실제로 싸운 것은 ‘여호와의 칼’이었습니다.
이런 일은 성경에 여러 번 나옵니다. 요나단과 병기 든 소년이 블레셋 진에 들어갔을 때 “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삼상 14:20). 여호사밧 때 암몬과 모압과 세일 산 사람들이 서로를 쳐서 멸망했습니다(대하 20:23). 하나님은 원수의 힘을 원수에게 돌리십니다.
도망친 미디안 군대는 동쪽 요단 골짜기로, 벧싯다와 아벨므홀라 쪽으로 달아납니다. 요단강을 건너 자기 땅으로 돌아가려는 것입니다. 이제 추격전이 시작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동무끼리 칼날로 — 원문 ‘이쉬 베레에후’, ‘사람이 그의 이웃을’. 삼상 14:20, 대하 20:23, 겔 38:21 “각 사람의 칼이 그 형제를 칠 것이며”, 학 2:22, 슥 14:13.
지명들 — 벧싯다, 스레라, 아벨므홀라, 답밧은 모두 요단 골짜기, 벧산 남쪽에 있던 곳으로 추정됩니다. 정확한 위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아벨므홀라는 엘리사의 고향입니다(왕상 19:16).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4:20블레셋 사람이 각각 칼로 그 동무를 치므로 크게 혼란하였더라
대하 20:22-23암몬과 모압 자손이 일어나 세일산 거민을 쳐서 진멸하고 세일 거민을 멸한 후에는 저희가 피차에 살륙하였더라
시 83:9-11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 같게
사 9:4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항아리가 깨질 때 빛이 드러납니다
기드온의 300명이 든 것은 칼이 아니라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이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순간, 그들은 항아리를 깨뜨렸습니다. 깨진 항아리 사이로 빛이 터져 나왔고, 하나님은 그 빛과 나팔 소리로 13만 5천 명을 무너뜨리셨습니다.
우리는 질그릇입니다. 연약하고 깨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 안에는 그리스도라는 보배,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빛은 질그릇이 깨질 때 가장 밝게 드러납니다. 내 자존심이, 내 고집이, 내 계획이 깨질 때, 그 사이로 하나님의 빛이 비칩니다. 오늘 깨어지는 아픔이 있다면, 그것이 하나님의 빛이 드러나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7:23–25모든 지파가 미디안을 쫓고 — 오렙 바위와 스엡 포도주 틀
하나님이 미디안을 흩으시자, 이번에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쫓습니다. 집으로 돌아갔던 9,700명과 다른 지파 사람들이 다시 모여 도망치는 미디안을 추격합니다. 하나님이 시작하신 승리를 사람들이 완성합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에게도 사람을 보내 요단 나루를 막게 합니다. 에브라임은 미디안의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죽입니다. 오렙은 ‘까마귀’, 스엡은 ‘늑대’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곳은 ‘오렙 바위’와 ‘스엡 포도주 틀’이 됩니다. 기드온이 숨어 밀을 털던 그 포도주 틀이, 이제는 원수가 심판받는 자리가 됩니다.
23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이스라엘 사람들은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직역 이스라엘 사람들이 납달리와 아셀과 온 므낫세에서 불려 나와 미디안을 뒤쫓았다.
300명이 싸움을 시작하자, 이제 다른 사람들이 다시 일어납니다. “납달리와 아셀과 므낫세에서부터 모여서 미디안 사람을 쫓았더라.” 7절에서 집으로 돌려보냈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승리를 위해 그들을 쓰지 않으셨지만, 승리를 완성하는 추격에는 다시 부르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방식입니다. 처음 돌파구는 하나님이 작은 무리를 통해 여십니다. 그 뒤에 모든 백성이 함께 그 승리에 참여합니다. 2절의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 승리는 분명히 하나님의 것이었고, 이제 모든 사람이 그 승리를 함께 누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모여서 — 원문 ‘바이차에크’, ‘불려 나왔다, 소집되었다’. 6:34–35의 ‘좇고’(자아크)와 같은 말입니다.
스불론 — 6:35에는 스불론도 있었지만 여기서는 빠졌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6:35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삼상 14:22에브라임 산지에 숨었던 이스라엘 모든 사람도 블레셋 사람의 도망함을 듣고 싸우러 나와서 그들을 추격하였더라
24에브라임 온 산지에 사자를 보내 — 벧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행하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하매 이에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그 나루턱을 취하고
직역 기드온이 에브라임 온 산지로 사자들을 보내 말하였다. “내려와서 미디안을 맞서 치고, 그들보다 앞서 벧바라까지의 물과 요단을 차지하라.” 그러자 에브라임의 모든 사람이 불려 나와 벧바라까지의 물과 요단을 차지하였다.
기드온은 이번에는 에브라임에게 사람을 보냅니다. 6:35에서는 부르지 않았던 지파입니다. 에브라임은 요단강 서쪽 중앙 산지에 사는 크고 강한 지파였습니다. 기드온은 그들에게 요단 나루턱을 막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도망치는 미디안 군대가 요단을 건너 자기 땅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3:28에서 에훗이 요단 나루를 막아 모압 군대를 쳤던 것과 같은 전략입니다. 요단강은 아무 데서나 건널 수 없었으므로, 얕은 여울목만 막으면 퇴로를 끊을 수 있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응답합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그 나루턱을 취하고.” 그런데 8:1을 보면, 그들은 기드온이 처음부터 자기들을 부르지 않은 것에 크게 화가 나 있었습니다. 승리의 한가운데에서도 갈등의 씨앗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벧 바라 — ‘(강을) 건너는 집’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요 1:28 요한이 침례를 주던 ‘베다니’(일부 사본 ‘벧바라’)와 연결하는 전승이 있습니다.
나루턱 — 원문은 ‘물들’. 요단으로 흘러드는 시내들의 여울목까지 포함한 것으로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3:28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삿 8:1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삿 12:5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25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또 미디안 두 방백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이고 미디안 사람을 추격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직역 그들이 미디안의 두 장군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아, 오렙은 오렙 바위에서 죽이고 스엡은 스엡 포도주 틀에서 죽였다. 그들이 미디안을 뒤쫓았고,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요단 건너편에 있는 기드온에게 가져왔다.
에브라임 사람들은 미디안의 두 방백, 곧 장군 오렙과 스엡을 사로잡습니다. 이름의 뜻이 흥미롭습니다. 오렙은 ‘까마귀’, 스엡은 ‘늑대’입니다. 까마귀는 시체를 쪼아 먹는 새이고, 늑대는 양 떼를 덮치는 짐승입니다. 이스라엘의 곡식과 가축을 약탈하던 미디안의 장군들에게 잘 어울리는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죽은 곳이 그들의 이름을 따서 “오렙 바위”와 “스엡 포도주 틀”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여기서 놀라운 연결이 있습니다. 6:11에서 기드온은 미디안이 두려워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털었습니다. 이제 미디안의 장군이 포도주 틀에서 죽습니다. 이스라엘이 숨던 자리가 원수가 심판받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상황을 뒤집으십니다.
이 승리는 이스라엘 역사에서 오래도록 기억되었습니다. 시편 83:11은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 같게”라고 기도하고, 이사야 10:26은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이신 것 같이”라고 하나님의 구원을 기억합니다. 이사야 9:4은 하나님이 압제자를 꺾으신 것을 “미디안의 날과 같이”라고 말합니다. 기드온의 승리는 하나님이 약한 자를 통해 강한 원수를 무너뜨리신 대표적인 사건이 되었습니다.
“오렙과 스엡의 머리를 가지고 요단 저편에서 기드온에게로 나아오니라.” 기드온은 이미 요단을 건너 동쪽으로 추격하고 있었습니다. 이야기는 8장에서 계속됩니다. 그러나 그 이야기는 승리의 기쁨만이 아니라 갈등과 보복과 결국 우상으로 이어지는, 훨씬 어두운 이야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방백사르 — ‘장군, 지휘관, 귀인’. 8:5의 ‘왕’(세바와 살문나)보다 낮은 지위.
오렙과 스엡 — 시 83:11 “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사 10:26.
머리를 가지고 — 고대 전쟁에서 적장의 머리를 가져와 승리를 증명했습니다(삼상 17:54 다윗과 골리앗의 머리).
함께 읽을 말씀
시 83:11저희 귀인으로 오렙과 스엡 같게 하시며 저희 모든 방백으로 세바와 살문나와 같게 하소서
사 10:26만군의 여호와께서 채찍을 들어 그를 치시되 오렙 반석에서 미디안 사람을 쳐 죽이신 것 같이 하실 것이며
사 63:3만민 중에 나와 함께 한 자가 없이 내가 홀로 포도즙 틀을 밟았는데
삿 6:11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숨던 자리가 승리의 자리가 됩니다
기드온의 이야기는 포도주 틀에서 시작했습니다. 두려워서 숨어 밀을 털던 곳. 그리고 7장은 포도주 틀에서 끝납니다. 미디안의 장군 스엡이 심판받은 ‘스엡 포도주 틀’.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숨던 자리를 원수가 무너지는 자리로 바꾸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두려움 속에 숨던 자리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를 그냥 두지 않으십니다. 그곳을 하나님의 승리를 기억하는 자리로 바꾸십니다. 그리고 그 승리는 작은 무리를 통해 시작되지만, 결국 모든 백성이 함께 누리는 승리가 됩니다. 오늘 내가 숨어 있는 그 포도주 틀에서, 하나님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될 수 있습니다.
By the Numbers · 정리
삼만 이천에서 삼백으로
하나님은 군대를 늘리지 않고 줄이셨습니다
단계
절
이스라엘
미디안 연합군
처음 모인 군사
6:35, 7:3
32,000명
약 135,000명 (8:10)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두려운 자를 돌려보낸 뒤
7:3
10,000명 (22,000명 귀가)
물가의 시험 뒤
7:6–7
300명 (9,700명 귀가)
비율
약 1 : 450
300명의 무기
7:16, 20
나팔 300, 빈 항아리 300, 횃불 300, 칼 0
하나님은 2절에서 그 이유를 분명히 밝히셨습니다. “이스라엘이 나를 거스려 자긍하기를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함이니라.” 그러나 안타깝게도 8:22에서 이스라엘은 기드온에게 “당신이 우리를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막으려 하셨던 바로 그 말입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7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하롯샘1절
‘떨림의 샘’. 길보아산 기슭의 샘.
모레산1절
‘가르치는 자의 언덕’. 이스르엘 골짜기 북쪽의 산.
자긍自矜 · 2절
스스로 자랑함.
시험試驗 · 4절
여기서는 금속을 녹여 거르듯 사람을 걸러 냄.
처소處所 · 7절
사는 곳, 집.
부하部下 · 10–11절
거느리는 사람, 시종.
중다衆多 · 12절
수가 많음.
보리떡13절
보리로 만든 빵. 가장 값싼 음식.
해몽解夢 · 15절
꿈을 풀이함.
경배敬拜 · 15절
엎드려 절하며 예배함.
대隊 · 16절
부대, 무리.
이경二更 · 19절
밤을 셋으로 나눈 가운데 경점. 밤 10시–새벽 2시 무렵.
번병番兵 · 19절
보초, 경비병.
체번遞番 · 19절
번(근무)을 서로 바꿈, 교대.
좌수, 우수左手, 右手 · 20절
왼손, 오른손.
당처當處 · 21절
맡은 자리, 그 자리.
나루턱24절
강을 건너는 여울목.
방백方伯 · 25절
장군, 지휘관.
오렙25절
‘까마귀’. 미디안의 장군.
스엡25절
‘늑대’. 미디안의 장군.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하나님은 3만 2천 명을 “너무 많다”고 하셨습니다(2절). 나는 무언가 부족할 때 하나님을 원망합니까, 아니면 그 부족함 속에서 일하실 하나님을 기대합니까?
하나님이 군대를 줄이신 이유는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할까 봐서였습니다. 최근 내 삶의 성공을 나는 누구의 공로로 여기고 있습니까?
2만 2천 명이 두려워서 돌아갔지만, 두려움 많던 기드온은 남았습니다(3절). 두려워도 끝까지 남아야 할 자리는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만일 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하시며 기드온의 두려움을 헤아리셨습니다(10절). 지금 하나님께 정직하게 털어놓아야 할 두려움은 무엇입니까?
꿈의 해석을 들은 기드온은 적진 한가운데서 엎드려 경배했습니다(15절). 하나님의 확증을 받았을 때 나의 첫 반응은 무엇입니까?
300명은 칼 대신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을 들었습니다. 나의 영적 싸움에서 나는 무엇을 무기로 삼고 있습니까?
항아리가 깨질 때 빛이 드러났습니다(19–20절). 지금 내 삶에서 깨어지고 있는 것은 무엇이며, 그 사이로 하나님의 어떤 빛이 드러나기를 원하십니까?
기드온이 숨던 포도주 틀이 원수가 심판받는 자리가 되었습니다(25절). 내가 두려워 숨던 자리를 하나님이 어떻게 바꾸어 주셨는지 나누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