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31절까지 — 산이 진동하고 별이 싸우고 강이 휩쓴 날, 그리고 창가에서 기다리는 한 어머니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JUDGES 5:31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5장 들어가며
4장의 승리가 노래가 되었습니다. 같은 사건을, 이번에는 하늘의 눈으로 다시 봅니다
5장은 사사기에서 가장 오래된 부분 가운데 하나로 여겨지는 드보라의 노래입니다. 히브리어가 고풍스럽고 어려워서 학자들도 해석에 애를 먹는 구절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만큼 생생합니다. 승리를 직접 겪은 사람들이 그 감격이 식기 전에 부른 노래이기 때문입니다.
4장과 5장은 같은 사건을 두 번 말합니다. 4장이 땅에서 본 전쟁 기록이라면, 5장은 하늘에서 본 찬양입니다. 4장에는 비가 왔다는 말이 없지만, 5장은 하늘이 물을 쏟고 별들이 싸우고 기손강이 원수를 휩쓸어 갔다고 노래합니다. 4장이 “여호와께서… 패하게 하시매”라고 한 줄로 지나간 장면을, 5장은 하나님이 시내산에서처럼 땅을 흔들며 오셨다고 노래합니다.
이 노래에는 찬양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기꺼이 목숨을 걸고 나온 지파들에 대한 칭찬, 양 우리에 앉아 머뭇거린 지파들에 대한 날카로운 질문, 여호와를 돕지 않은 메로스에 대한 저주, 야엘에 대한 축복, 그리고 아들을 기다리는 시스라의 어머니의 쓸쓸한 장면까지. 이 노래는 하나님 나라의 싸움 앞에서 사람들이 어떤 자리에 섰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핵심 구절
5:31
주의 대적은 망하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떠오르는 해처럼. 노래 전체의 결론입니다.
즐거이 헌신함
5:2, 9
억지로가 아니라 기꺼이 자원한 백성. 하나님은 자원하는 마음을 기뻐하십니다.
하늘의 전쟁
5:20–21
별들이 싸우고 강이 휩쓸었습니다. 4장에서 숨겨진 승리의 비밀입니다.
창가의 어머니
5:28–30
돌아오지 않을 아들을 기다리는 시스라의 어머니. 승리의 노래 끝에 놓인 깊은 여운.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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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원문 해석이 어려운 구절. ‘머리털을 풀다’(서원), 또는 ‘지도자들이 앞장서다’.
2절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원문 나다브. 자원하여 스스로 나섰다.
4절 “세일… 에돔 들”
시내산 쪽 남방. 하나님이 남쪽에서 행진해 오시는 그림.
6절 “소로”
小路, 좁은 샛길. 큰길이 위험해 사람들이 피해 다닌 길.
7절 “관원”
원문 페라존. 뜻이 분명치 않은 말. ‘마을, 농촌 생활’로 보기도 한다.
10절 “화문석”
花紋席, 꽃무늬 돗자리. 부유한 사람들이 앉던 깔개.
10절 “선파할찌어다”
宣播, 널리 알리라. 원문 ‘생각하라, 노래하라’.
11절 “지꺼림”
떠드는 소리. 원문은 ‘활 쏘는 자들’ 또는 ‘물 나누는 자들’로 해석이 갈린다.
11절 “칭술하라”
稱述, 칭찬하여 이야기하라. 원문 타나 ‘되풀이해 말하다’.
14절 “대장군의 지팡이”
원문 ‘서기관(소페르)의 지팡이’. 병적을 기록하는 관리로 볼 수 있다.
15절 “심사”
心思, 마음. 원문은 ‘그와 같이’.
16절 “목자의 저 부는 소리”
양 떼를 부르는 피리 소리.
17절 “해빈”
海濱, 바닷가.
19절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은을 노략하지 못하였다. 전리품을 얻지 못했다는 뜻.
28절 “살창”
격자 창. 원문 에슈나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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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5여호와를 찬송하라 — 시내산처럼 땅을 흔들며 오신 하나님
노래는 찬양의 부름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리고 이 노래가 누구를 위한 노래인지 분명히 합니다. 드보라는 왕들과 방백들에게 귀를 기울이라고 외치고, 자신은 여호와께 노래하겠다고 선언합니다.
4–5절은 하나님이 전쟁터로 오시는 모습을 그립니다. 남쪽 세일과 에돔에서 출발하여, 땅이 흔들리고 하늘이 비를 쏟고 산들이 진동합니다. 이것은 출애굽기 19장의 시내산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입니다. 하나님은 시내산에서 율법을 주실 때처럼, 이번에는 당신의 백성을 구하시려고 오셨습니다.
1이 날에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하여
이 날에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가로되
직역 그날 드보라와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노래하여 말하였다.
“이 날에.” 4:23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패하게 하신지라”의 그날입니다. 승리의 감격이 식기 전에, 그날 바로 노래가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의 첫 반응은 찬양입니다.
드보라와 바락이 노래하여. 흥미롭게도 ‘노래하였다’는 동사가 여성 단수형입니다. 드보라가 노래를 이끌고 바락이 함께했다는 뜻으로 보입니다. 홍해를 건넌 뒤 모세와 이스라엘이 노래했고(출 15:1), 미리암이 소고를 잡고 여인들과 함께 응답했던 것처럼(출 15:20–21), 드보라도 승리의 노래를 이끕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구원 뒤에는 언제나 노래가 따라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노래하다쉬르 — 출 15:1 “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와 같은 동사. 성경의 대표적인 승리의 노래: 모세의 노래(출 15장), 드보라의 노래(삿 5장), 한나의 노래(삼상 2장), 다윗의 노래(삼하 22장), 마리아의 노래(눅 1장).
오래된 히브리어 — 학자들은 드보라의 노래를 구약에서 가장 오래된 시 가운데 하나로 봅니다. 고풍스러운 문법과 낱말이 많아 해석이 어려운 구절이 여럿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5:1이 때에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이 이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니 일렀으되 내가 여호와를 찬송하리니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출 15:20-21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소고를 잡고 춤추니
시 40:3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계 15:3하나님의 종 모세의 노래, 어린 양의 노래를 불러 가로되
2이스라엘의 두령이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직역 이스라엘에서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백성이 자원하여 나섰을 때, 여호와를 송축하라!
노래의 첫 구절은 승리의 원인을 두 가지로 말합니다. 첫째,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이 구절은 히브리어가 아주 어려워서 해석이 갈립니다. 하나는 ‘지도자들이 앞장서서 이끌었을 때’라는 해석이고, 또 하나는 ‘이스라엘에서 머리털을 길게 풀었을 때’라는 해석입니다. 고대 전사들은 거룩한 전쟁에 나갈 때 머리털을 자르지 않고 길러 하나님께 헌신을 표시했습니다(민 6:5 나실인 서원 참고). 어느 쪽이든, 지도자들이 먼저 일어나 헌신했다는 뜻입니다.
둘째,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원문 ‘히트나데브’는 ‘자원하다, 기꺼이 스스로 바치다’입니다. 출애굽기 35장에서 성막을 지을 때 백성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린 바로 그 마음입니다. 아무도 강제로 끌려 나오지 않았습니다. 무기도 없는 백성이 철병거 900대 앞에 목숨을 걸고 스스로 나섰습니다.
그리고 노래는 곧바로 결론을 짓습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라.” 지도자들이 앞장서고 백성이 자원하여 나선 것도 결국 하나님이 하신 일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 자원하게 하시는 분입니다. 빌립보서 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원어 · 번역 노트
두령이 영솔하였고 — 원문 ‘비프로아 페라오트’. ‘파라’는 ‘(머리털을) 풀다, 늘어뜨리다’(민 5:18, 레 10:6) 또는 ‘앞장서다, 이끌다’로 볼 수 있습니다. 『개역개정』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지도하였고”, 『새번역』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앞장서서 이끌고”.
헌신하다나다브 재귀형 — ‘자원하다’. 9절에서 반복됩니다. 대상 29:5–9 성전 건축을 위해 백성이 즐거이 드림, 느 11:2 예루살렘에 살기를 자원한 사람들, 시 110:3 “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찬송하라바라크 — ‘복을 빌다, 송축하다’. 24절에서 야엘을 ‘복 받을’(바라크) 자라 노래할 때도 같은 동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35:21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시 110:3주의 권능의 날에 주의 백성이 거룩한 옷을 입고 즐거이 헌신하니
삿 5:9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고후 9: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롬 12:1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3왕들아 들으라 —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하리라
너희 왕들아 들으라 방백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직역 왕들아, 들으라! 통치자들아, 귀를 기울이라! 나, 곧 나는 여호와께 노래하리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내가 찬송을 타리라.
드보라는 먼저 세상의 왕들과 방백들을 부릅니다. 야빈은 가나안의 ‘왕’이었고, 19절에서도 ‘가나안 열왕’이 이스라엘과 싸웁니다. 드보라는 그들에게 외칩니다. 들으라! 너희가 의지하던 철병거와 군대가 어떻게 되었는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누구신지 들으라!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원문은 ‘나’를 두 번 써서 강조합니다. 이 노래는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나의 고백입니다. 드보라는 왕들의 이름을 높이지 않고, 자기의 공을 노래하지도 않습니다. 그녀가 노래하는 분은 오직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세상의 왕들 앞에서 우리 하나님을 당당히 노래하는 것, 그것이 예배이자 증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방백로즈님 — ‘통치자, 고관’. 시 2:2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 기름 받은 자를 대적하며”, 잠 8:15.
시 2:10-11그런즉 군왕들아 너희는 지혜를 얻으며 세상의 관원들아 교훈을 받을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섬기고 떨며 즐거워할지어다
시 138:4여호와여 땅의 열왕이 주께 감사할 것은 저희가 주의 입의 말씀을 들음이오며
시 57:9주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오며 열방 중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4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이 물을 내렸나이다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직역 여호와여, 주께서 세일에서 나오실 때, 에돔 들에서 행진하실 때, 땅이 흔들렸고, 하늘도 쏟아졌으며, 구름들도 물을 쏟았습니다.
노래는 하나님이 전쟁터로 오시는 장면을 그립니다. “주께서 세일에서부터 나오시고 에돔 들에서부터 진행하실 때에.” 세일과 에돔은 이스라엘 남쪽, 시내 광야 쪽입니다. 하나님이 남쪽 광야에서, 곧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처음 만났던 그곳에서 북쪽 갈릴리 전쟁터까지 행진해 오십니다. 모세도 죽기 전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신 33:2).
그분이 오시자 “땅이 진동하고 하늘도 새어서 구름이 물을 내렸나이다.” 여기서 4장의 숨겨진 비밀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이 큰비를 내리신 것입니다. 그 비가 기손강을 넘치게 했고(21절), 철병거 900대를 진흙에 빠뜨렸습니다. 4:15에서 “여호와께서… 패하게 하시매”라고 한 줄로 지나간 장면이, 5장에서는 우주적인 장면으로 펼쳐집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을 ‘구름을 타는 자’, 비와 폭풍의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런데 드보라의 노래는 하늘을 열고 구름에서 비를 쏟으신 분이 바알이 아니라 여호와라고 고백합니다. 바알의 땅에서, 바알의 무기(비)로, 바알을 섬기는 자들을 이기신 분. 그분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신현(神顯, Theophany) —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 자연이 흔들리는 장면을 그리는 성경의 전통적인 표현. 출 19:16–18, 신 33:2, 시 18:7–15, 68:7–8, 합 3:3–15. 시 68:7–8은 이 구절과 거의 같습니다.
새어서나타프 — ‘방울져 떨어지다, 쏟아지다’. 시 68:8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세일에서 — 하나님이 남쪽(시내, 바란, 데만)에서 오신다는 표현은 합 3:3 “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에도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3:2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시 68:7-8하나님이여 주의 백성 앞에서 앞서 나가사 광야에 행진하셨을 때에(셀라) 땅이 진동하며 하늘이 하나님 앞에서 떨어지며
합 3:3-6하나님이 데만에서부터 오시며 거룩한 자가 바란산에서부터 오시도다
시 18:9-14저가 또 하늘을 드리우시고 강림하시니 그 발 아래는 어둑캄캄하도다
5산들이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였도다
직역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흘러내렸다. 저 시내산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진동하니.” 원문은 ‘산들이 흘러내렸다’, 곧 녹아내렸다는 말입니다. 거대하고 단단한 산도 하나님 앞에서는 밀랍처럼 녹아내립니다(시 97:5 “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 같이 녹았도다”).
그리고 노래는 “저 시내산”을 부릅니다. 시내산은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신 산입니다. 그때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출 19:18) 하나님이 불 가운데 강림하셨습니다. 드보라는 기손강의 승리를 시내산의 그 장면과 연결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율법을 주신 그 하나님이, 언약의 백성을 구하시려고 다시 땅을 흔들며 오셨습니다.
원문 ‘제 시나이’를 ‘시내의 그분’, 곧 ‘시내산의 하나님’이라는 칭호로 읽는 학자도 많습니다(시 68:8도 같은 표현). 그렇게 읽으면 ‘산들이 여호와 앞에서, 시내산의 그분 앞에서 흘러내렸다’가 됩니다. 어느 쪽이든 메시지는 같습니다. 기손강에서 싸우신 분은 시내산의 언약의 하나님이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진동하다나잘 — ‘흘러내리다, 녹다’. 사 64:1, 3 “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제 시나이 — 아랍어와 우가릿어의 비슷한 표현으로 보아 ‘시내의 그분’이라는 하나님의 칭호로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9:18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 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시 97:5산들이 여호와의 앞 곧 온 땅의 주 앞에서 밀 같이 녹았도다
사 64:1-3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주의 앞에서 산들로 진동하기를 불이
히 12:26그 때에는 그 소리가 땅을 진동하였거니와 이제는 약속하여 가라사대 내가 또 한번 땅만 아니라 하늘도 진동하리라 하셨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구원 뒤에는 노래가 따라옵니다
드보라는 승리의 날, 그날 바로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그 노래의 주인공은 자기도, 바락도, 야엘도 아니었습니다. “나 곧 내가 여호와를 노래할 것이요.” 시내산을 흔드신 하나님이, 하늘을 여시고 비를 쏟아 원수의 철병거를 무너뜨리셨다고 노래했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하늘을 여시고 일하신 날이 있습니다. 그날을 그냥 지나치지 맙시다. 기억하고, 고백하고, 노래합시다. 그리고 그 노래가 세상의 ‘왕들과 방백들’ 앞에서도 울려 퍼지게 합시다. 찬양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이자 세상을 향한 증언입니다.
5:6–11대로가 비었더니 — 나 드보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노래는 이제 압제 시절의 비참함을 회상합니다. 큰길은 텅 비었고, 사람들은 샛길로 숨어 다녔으며, 마을 생활은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가 한 줄로 나옵니다.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리자 삶의 기초가 무너졌습니다.
그 어둠 속에서 드보라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노래는 승리를 맛본 백성에게 이제 길에서, 우물가에서, 성문에서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이야기하라고 부릅니다.
6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직역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야엘의 날에, 큰길들은 그쳤고, 길 가는 자들은 구불구불한 길로 다녔다.
드보라는 압제 시절을 이렇게 기억합니다.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큰길은 사람과 물건이 오가는 생명줄입니다. 그런데 그 길이 텅 비었습니다. 가나안의 전차와 강도와 블레셋의 약탈 때문에 큰길로 다니면 위험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눈에 띄지 않는 구불구불한 샛길로 몰래 다녔습니다. 무역이 끊기고, 시장이 서지 않고, 이웃 마을을 찾아가는 것조차 두려운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를 드보라는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라고 부릅니다. 삼갈(3:31)과 야엘(4장)은 그 시대에 하나님이 쓰신 사람들입니다. 어려운 시대였지만, 하나님은 그 시대에도 사람들을 일으키셨습니다.
레위기 26:22은 언약을 어긴 백성에게 이런 경고를 했습니다. “너희 도로가 황폐하리라.” 이사야 33:8도 “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라고 말합니다. 큰길이 비는 것은 하나님을 떠난 사회가 겪는 저주의 모습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대로가 비었고 — 원문 ‘하델루 오라호트’, ‘길들이 그쳤다’. 7절 ‘그치고 그쳤더니’(하델루)와 같은 동사로, 6–7절 전체가 ‘그침’의 시대를 그립니다.
소로 — 원문 ‘구불구불한 길들’. 사 59:8 “굽은 길을 스스로 만드나니”.
함께 읽을 말씀
삿 3:31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레 26:22내가 들짐승을 너희 중에 보내리니… 너희 도로가 황폐하리라
사 33:8대로가 황폐하여 행인이 끊치며
7관원이 그쳤더니 — 나 드보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직역 마을 사람들이 이스라엘에서 그쳤다, 그쳤다. 마침내 내가 일어났다, 드보라가. 마침내 내가 일어났다, 이스라엘의 어머니가.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치고 그쳤더니.” ‘관원’으로 옮긴 히브리어 ‘페라존’은 뜻이 분명하지 않은 말입니다. 『개역한글』은 ‘관원’, 곧 지도자로 보았지만, 많은 학자들은 1:4의 ‘브리스 사람’(성벽 없는 마을 사람)과 관련된 말로 보아 ‘마을 생활, 농촌 사람들’로 해석합니다. 그렇게 읽으면 6절과 이어져, 성벽 없는 시골 마을들이 압제 때문에 텅 비어 버렸다는 뜻이 됩니다. 어느 쪽이든 이스라엘의 일상과 질서가 무너졌다는 것입니다.
그때 “나 드보라가 일어났고 내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의 어미가 되었도다.” 드보라는 자기를 ‘장군’이나 ‘재판관’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어미’라고 부릅니다. 어머니는 자녀를 낳고 기르고 지키는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무너진 이스라엘을 어머니의 마음으로 품고 일으켜 세웠습니다. 그녀의 지도력은 군림하는 힘이 아니라 돌보는 사랑이었습니다.
이 표현은 28절의 ‘시스라의 어미’와 짝을 이룹니다. 노래 속에는 두 어머니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의 어머니 드보라는 백성을 살리려 일어났고, 시스라의 어머니는 창가에서 돌아오지 않을 아들을 기다립니다. 같은 어머니의 마음이지만 어느 편에 서 있느냐에 따라 결말이 갈렸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페라존 — 여기와 11절에만 나오는 말. ‘페라짐’(성벽 없는 마을, 에 9:19, 겔 38:11)과 관련 있다고 보는 견해(“마을 사람들이 그쳤다”)와 ‘지도자, 전사’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개역개정』 “이스라엘에 관원이 그쳤으니”, 『새번역』 “이스라엘에서는 농촌 사람들이 사라졌다”.
일어났고 — 원문 ‘샤쾀티’. 고어형으로 ‘내가 일어났다’ 또는 ‘네가 일어났다’로 모두 읽힙니다. 일부 번역은 “드보라여, 네가 일어나”로 옮깁니다.
이스라엘의 어미 — 삼하 20:19 아벨 성의 지혜로운 여인이 자기 성을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이라 부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9:15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살전 2:7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삼하 20:19당신이 이스라엘 가운데 어미 같은 성을 멸하고자 하시는도다
사 66:13어미가 자식을 위로함 같이 내가 너희를 위로할 것인즉
8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직역 그들이 새 신들을 택하였다. 그때 전쟁이 성문에 있었다. 이스라엘 사만 명 가운데 방패나 창이 보였던가?
노래는 압제의 원인을 한 줄로 짚습니다. “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신명기 32:17 “그들은…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너희 열조의 두려워하지 않던 것들이로다” 이스라엘은 출애굽의 하나님, 시내산의 하나님 대신 가나안의 ‘새 신들’을 택했습니다. 오래된 것은 지루해 보이고 새로운 것은 매력적으로 보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선택의 결과는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원수가 성문 앞까지 쳐들어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탄식이 이어집니다.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사만 명이 있었지만 무기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가나안과 블레셋이 철 무기를 독점하고, 이스라엘은 무장 해제된 채 살았습니다(삼상 13:19–22 참고). 새 신들을 택한 백성은 결국 자기를 지킬 힘조차 잃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 사실이 승리를 더 빛나게 합니다. 방패도 창도 없던 백성이 철병거 900대를 이겼습니다. 그것은 무기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승리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새 신들 — 신 32:16–17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이 구절은 원문이 어려워 ‘하나님이 새로운 지도자들을 택하셨다’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사만 명 — 4장의 일만 명은 실제로 싸운 군사 수, 5장의 사만 명은 이스라엘 전체의 싸울 만한 사람 수로 보기도 합니다. 수 4:13 요단을 건넌 동쪽 지파의 무장한 군사도 “사만 명 가량”이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2:16-17그들은 하나님께 제사하지 아니하고 마귀에게 하였으니 곧 그들의 알지 못하던 신, 근래에 일어난 새 신,
삼상 13:22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렘 2:13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슥 4:6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9내 마음이 즐거이 헌신한 방백을 사모함이라 — 여호와를 찬송하라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여호와를 찬송하라
직역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지휘관들에게로 향한다. 백성 가운데 자원하여 나선 자들에게로. 여호와를 송축하라!
드보라는 함께 싸운 지도자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습니다. “내 마음이 이스라엘의 방백을 사모함은.” 그들이 특별히 뛰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백성 중에서 즐거이 헌신하였음이라.” 2절의 고백이 다시 나옵니다. 위험한 싸움에 기꺼이 자원한 사람들. 드보라는 그들을 진심으로 존경하고 사랑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여호와를 찬송하라.” 2절과 같은 순서입니다. 자원하는 사람들을 칭찬하지만, 결국 찬양은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들 마음에 자원하는 마음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좋은 공동체는 서로의 헌신을 기뻐하고 칭찬하되, 그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방백호케킴 — ‘새기는 자, 법을 정하는 자’에서 ‘지휘관, 통치자’. 14절 ‘다스리는 자들’(메호케킴)과 같은 뿌리.
2절과 9절 — 2절과 9절은 모두 ‘즐거이 헌신함’과 ‘여호와를 찬송하라’를 짝지어, 노래 앞부분의 틀을 만듭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5:2이스라엘의 두령이 그를 영솔하였고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 여호와를 찬송하라
빌 2:29-30이와 같은 자들을 존귀히 여기라 저가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한 것은
살전 5:12-13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저의 역사로 말미암아 사랑 안에서 가장 귀히 여기며
10흰 나귀를 탄 자들, 화문석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선파할찌어다
흰 나귀를 탄 자들, 귀한 화문석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선파할찌어다
직역 흰 나귀를 탄 자들, 깔개 위에 앉은 자들, 길을 걷는 자들아, 노래하라!
드보라는 이제 모든 계층의 사람들을 부릅니다. “흰 나귀를 탄 자들”은 귀족과 지도자들입니다. 흰 나귀는 귀하고 비싸서 지위가 높은 사람만 탔습니다(10:4, 12:14 사사들의 아들들이 나귀를 탐). “귀한 화문석에 앉은 자들”은 집에서 좋은 깔개 위에 편히 앉는 부유한 사람들입니다. “길에 행하는 자들”은 걸어 다니는 평범한 백성입니다.
부자든 가난한 자든, 지도자든 백성이든, 모두 함께 “선파할찌어다.” 원문은 ‘묵상하라, 이야기하라’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특정 계층의 것이 아닙니다. 6절에서 큰길이 텅 비었던 시대가 끝나고, 이제 다시 사람들이 나귀를 타고 길을 다닐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길에서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하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흰 나귀 — 원문 ‘아토노트 체하로트’, ‘누르스름한(얼룩진) 암나귀들’. 귀한 품종의 나귀. 슥 9:9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화문석 — 원문 ‘미딘’. 뜻이 불분명한 말로, ‘깔개, 안장 담요’ 또는 ‘재판 자리’로 봅니다.
선파하다시아흐 — ‘묵상하다, 이야기하다, 노래하다’. 시 105:2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찌어다”, 145:5.
함께 읽을 말씀
시 105:2그에게 노래하며 그를 찬양하며 그의 모든 기사를 말할찌어다
시 145:4-5대대로 주의 행사를 크게 칭송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주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활 쏘는 자의 지꺼림에서, 멀리 떨어진 물 긷는 곳에서도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의 이스라엘을 다스리시는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직역 물 긷는 곳들 사이에서 물 나누는 자들의 소리에, 거기서 그들이 여호와의 의로운 일들을 되풀이하여 말한다. 이스라엘에서 그분의 마을 사람들의 의로운 일들을. 그때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으로 내려갔다.
이 구절은 원문이 어려워 번역이 다양합니다. 그러나 그림은 분명합니다. “물 긷는 곳”, 마을 우물가입니다. 고대에 우물가는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었습니다. 6–7절의 압제 시대에는 우물가에도 마음 놓고 갈 수 없었습니다. 물을 길으러 가다가 약탈자를 만날 수 있었으니까요(‘활 쏘는 자’라는 번역은 이런 위험을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이제 그 우물가에서 사람들이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칭술하라.” ‘칭술하다’는 ‘되풀이하여 이야기하다’입니다. 물을 길으며, 물동이를 기다리며, 사람들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하고 또 이야기합니다. 이것이 2:10의 비극,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를 고치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일을 일상의 자리에서 되풀이해 이야기하는 것. 신명기 6:7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그 때에 여호와의 백성이 성문에 내려갔도다.” 성문은 마을의 중심, 재판이 열리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었습니다. 8절에서는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원수가 성문을 위협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의 백성이 당당히 성문에 모입니다. 공동체의 삶이 회복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의로우신 일치드코트 — ‘의’(체데크)의 복수. 하나님이 언약에 신실하셔서 백성을 구원하신 구체적인 행동들. 삼상 12:7 “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미 6:5.
칭술하다타나 — ‘되풀이하다, 이야기하다’. 아람어 ‘테나’(반복하다)와 같은 뿌리. 유대교 구전 율법 ‘미쉬나’(되풀이하여 배움)도 같은 계열의 말입니다.
다스리시는 — 원문 ‘피르조노’, 7절의 ‘페라존’(마을 사람/지도자)과 같은 말. ‘그분의 마을 사람들의’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2:7여호와께서 너희와 너희 열조에게 행하신 모든 의로운 일에 대하여… 여호와 앞에서 너희와 담론하리라
신 6:7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
시 145:6-7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세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광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요 4:28-29여자가 물동이를 버려두고 동네에 들어가서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의 행한 모든 일을 내게 말한 사람을 와 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우물가에서 하나님의 일을 이야기합시다
압제의 시대에는 큰길이 비었고, 마을은 텅 비었고, 우물가에도 마음 놓고 갈 수 없었습니다. 그 원인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드보라를 일으키시고 구원을 주시자, 길이 다시 열리고 우물가에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물을 길으며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되풀이하여 이야기했습니다.
하나님의 일은 예배당 안에서만 이야기되어서는 안 됩니다. 식탁에서, 출근길에서, 커피 한 잔을 나누는 자리에서, 아이를 재우는 머리맡에서 이야기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일상의 우물가에서 되풀이될 때,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아니라 ‘여호와의 의로우신 일을 아는 세대’가 됩니다.
5:12–18깰찌어다 드보라여 — 목숨을 건 지파들과 양 우리에 앉은 지파들
노래는 다시 전쟁의 시작으로 돌아갑니다. “깰찌어다 깰찌어다 드보라여!” 그리고 전쟁에 나온 지파들의 이름이 하나씩 불립니다.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므낫세),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 그들은 칭찬받습니다.
그러나 노래는 오지 않은 지파들도 그냥 지나치지 않습니다. 르우벤은 시냇가에서 고민만 하다가 양 우리에 남았고, 길르앗은 요단 건너편에 머물렀으며, 단은 배에, 아셀은 바닷가에 앉아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싸움이 벌어질 때 누가 나왔고 누가 나오지 않았는지, 노래는 이름을 하나하나 기록합니다.
12깰찌어다 드보라여 노래할찌어다 — 일어날찌어다 바락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드보라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너는 노래할찌어다 일어날찌어다 바락이여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찌어다
직역 깨어나라, 깨어나라, 드보라여! 깨어나라, 깨어나라, 노래를 말하라! 일어나라, 바락이여! 네 포로를 사로잡으라, 아비노암의 아들이여!
노래가 갑자기 긴박해집니다. “깰찌어다 깰찌어다 드보라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깨어나라’를 네 번이나 외칩니다. 잠든 사람을 흔들어 깨우듯, 드보라를 부릅니다. 압제 아래 잠들어 있던 이스라엘이 깨어나는 순간입니다.
드보라에게는 “노래할찌어다”, 바락에게는 “일어날찌어다…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찌어다.” 선지자에게는 노래가, 장군에게는 싸움이 맡겨졌습니다. 각자의 부르심이 달랐지만, 함께 하나님의 일을 이루었습니다. 4:14에서 드보라가 바락에게 “일어나라”고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찌어다.” 20년 동안 사로잡혀 있던 이스라엘이 이제 원수를 사로잡는 자가 됩니다. 에베소서 4:8은 시편 68:18을 인용하며 그리스도의 승리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원어 · 번역 노트
깨어나라우리 — 사 51:9 “여호와의 팔이여 깨소서 깨소서 능력을 베푸소서”, 52:1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시 57:8 “내 영광아 깰찌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찌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사로잡다 — 원문 ‘셰베 셰브예카’, ‘네 포로를 포로로 잡으라’. 시 68:18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와 같은 표현.
함께 읽을 말씀
사 52:1-2시온이여 깰찌어다 깰찌어다 네 힘을 입을찌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찌어다
시 68:18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인간에게서,
엡 4:8그러므로 이르기를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엡 5:14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13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강림하셨도다
그 때에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직역 그때 남은 자가 귀족들에게로 내려왔고, 여호와의 백성이 용사들을 치러 나를 위해 내려왔다.
“남은 귀인과 백성이 내려왔고.” 20년의 압제 속에서 살아남은 사람들, 지도자와 백성이 함께 내려왔습니다. 4:14에서 바락과 일만 명이 다볼산에서 “내려간” 것과 같은 말입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용사를 치시려고 강림하셨도다.” 백성이 산에서 내려올 때, 하나님도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 같은 동사 ‘야라드’(내려오다)가 쓰였습니다. 우리가 순종하여 한 걸음 내려갈 때, 하나님은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함께 싸우십니다. 출애굽기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이 구절은 원문이 어려워 번역이 다양합니다. 『개역한글』은 하나님이 강림하셨다고 읽었고, 다른 번역들은 ‘여호와의 백성이 용사들을 치러 나를 위해 내려왔다’로 읽습니다. 어느 쪽이든, 하나님과 백성이 함께 내려와 싸운 전쟁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원문의 어려움 — 마소라 본문의 모음 표기로는 ‘그가 다스리게 하였다(라다)’로도 읽히고, 다른 모음으로는 ‘내려왔다(야라드)’로 읽힙니다. 70인역은 ‘내려왔다’로 읽었습니다.
강림하다 — 출 3:8, 19:20 “여호와께서 시내산 곧 그 산꼭대기에 강림하시고”, 시 18:9.
함께 읽을 말씀
출 3:8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삿 4:14이에 바락이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니
사 64:1원컨대 주는 하늘을 가르고 강림하시고
14에브라임, 베냐민, 마길, 스불론에게서 내려왔도다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요 그 다음에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마길에게서는 다스리는 자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도다
직역 에브라임에게서 그들의 뿌리가 아말렉에 있는 자들이, 네 뒤를 따라, 베냐민이 네 백성과 함께. 마길에게서 지휘관들이 내려왔고, 스불론에게서 서기관의 지팡이를 잡은 자들이.
이제 노래는 전쟁에 나온 지파들의 이름을 부릅니다. 마치 승리의 행진에서 각 부대의 깃발을 소개하듯이. 에브라임은 “아말렉에 뿌리 박힌 자”라고 불립니다. 에브라임 땅 안에 ‘아말렉 산지’라는 곳이 있었기 때문입니다(12:15). 한때 아말렉이 살던 땅에 이제 에브라임이 뿌리를 내렸다는 뜻입니다.
베냐민은 “너희 백성 중에 섞였으며”, 곧 에브라임 뒤를 따라 함께 왔습니다. 마길은 므낫세의 맏아들로, 므낫세 지파(요단 서편 부분)를 가리킵니다. 그들에게서 “다스리는 자들”, 곧 지휘관들이 내려왔습니다. 그리고 스불론에게서는 “대장군의 지팡이를 잡은 자”가 내려왔습니다. 원문은 ‘서기관의 지팡이’인데, 군대를 모으고 병적을 기록하는 관리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입니다.
각 지파가 서로 다른 역할로 참여했습니다. 지휘하는 사람, 기록하는 사람, 싸우는 사람. 하나님의 일은 한 사람이 다 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말렉에 뿌리 박힌 — 원문 해석이 어렵습니다. 12:15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 70인역은 ‘골짜기에 뿌리 박힌’으로 읽었습니다.
마길 — 창 50:23, 민 32:39–40. 므낫세의 아들. 요단 동편 길르앗을 차지했지만, 여기서는 서편의 므낫세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서기관의 지팡이 — ‘소페르’는 서기관, 기록하는 사람. 왕하 25:19 “초모하는 장관의 서기관”. 군대 소집과 명단 작성을 맡은 직책으로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2:15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고전 12:18-20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이제 지체는 많으나 몸은 하나라
롬 12:6-8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15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잇사갈의 심사를 바락도 가졌도다 그 발을 좇아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직역 잇사갈의 지휘관들은 드보라와 함께하였고, 잇사갈은 바락처럼, 그의 발 뒤를 따라 골짜기로 보내졌다. 르우벤의 갈래들 가운데에는 마음의 결정들이 컸도다.
잇사갈도 함께했습니다. 잇사갈 지파는 이스르엘 골짜기, 바로 철병거가 기다리던 그 평야를 받은 지파입니다. 자기 땅이 전쟁터였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드보라와 함께, 바락의 발을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갔습니다. 철병거가 있는 골짜기로 기꺼이 내려간 것입니다.
그리고 노래의 분위기가 바뀝니다. “르우벤 시냇가에 큰 결심이 있었도다.” 르우벤은 야곱의 맏아들 지파로, 요단강 동쪽에 살았습니다. 그들은 소식을 듣고 시냇가에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큰 결심’, 원문은 ‘마음의 큰 결정들’입니다. 그런데 16절을 보면 그 큰 결심은 결국 아무 행동으로도 이어지지 않았습니다. 르우벤은 회의만 크게 하고 오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날카로운 풍자입니다. 결심은 컸지만 발걸음은 없었습니다. 교회도 이럴 수 있습니다. 회의는 길고 계획은 크지만, 정작 골짜기로 내려가는 사람은 없는. 잇사갈은 결심을 말하지 않고 그냥 달려 내려갔습니다.
큰 결심 — 15절 끝 ‘큰 마음의 결정(힉케 레브)’과 16절 끝 ‘큰 마음의 살핌(히크레 레브)’은 소리가 비슷한 말놀이입니다. 결정했다가, 다시 살피고 따지다가, 결국 오지 않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49:3-4르우벤아 너는 내 장자요… 물의 끓음 같았은즉 너는 탁월치 못하리니
수 19:17-18잇사갈 자손을 위하여… 그 지경 안은 이스르엘과
약 1:22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약 2:17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16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 목자의 피리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직역 어찌하여 너는 양 우리 사이에 앉아 양 떼를 부르는 피리 소리를 들었느냐? 르우벤의 갈래들 가운데 마음의 살핌이 컸도다.
드보라는 르우벤에게 묻습니다. “네가 양의 우리 가운데 앉아서 목자의 저 부는 소리를 들음은 어찜이뇨.” 르우벤은 목축을 하던 지파였습니다(민 32:1). 다른 지파들이 전쟁의 나팔 소리를 듣고 달려 나갈 때, 르우벤은 양 우리 곁에 앉아 양 떼를 부르는 피리 소리를 듣고 있었습니다. 전쟁의 나팔이 아니라 일상의 피리 소리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르우벤 시냇가에서 마음에 크게 살핌이 있도다.” 15절의 ‘큰 결심’이 16절에서 ‘큰 살핌’으로 바뀝니다. 결정했다가, 다시 따져 보고, 이것저것 살피다가, 결국 양 우리에 남았습니다. 너무 많이 따지는 사람은 결국 아무것도 하지 않습니다. 전도서 11:4 “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르우벤의 문제는 악한 일을 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냥 자기 일상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양을 돌보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목숨 걸고 싸울 때 자기 양 우리만 지킨 것, 그것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싸움 앞에서 ‘내 일이 바빠서’는 좋은 대답이 아닙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양의 우리미쉬페타임 — 쌍수형. ‘두 짐 사이’, ‘양 우리’, ‘모닥불 자리’ 등으로 해석됩니다. 창 49:14 잇사갈을 “사이에 꿇어 앉은 건장한 나귀로다”라 할 때 같은 말이 쓰였습니다.
르우벤의 땅 — 민 32:1–5 “르우벤 자손과 갓 자손은 심히 많은 가축의 떼가 있었더라”. 그들은 요단 동편 목초지를 원해 그곳에 정착했습니다. 모세는 그때 “너희 형제들은 싸우러 가거늘 너희는 여기 앉았고자 하느냐”(민 32:6)라고 물었습니다. 사사기 5장은 같은 질문을 다시 던집니다.
전 11:4풍세를 살펴보는 자는 파종하지 아니할 것이요 구름을 바라보는 자는 거두지 아니하리라
학 1:4이 전이 황무하였거늘 너희가 이 때에 판벽한 집에 거하는 것이 가하냐
눅 14:18-20나는 밭을 샀으매 불가불 나가 보아야 하겠으니… 나는 장가 들었으니 그러므로 가지 못하겠노라
17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단은 배에, 아셀은 바닷가에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거하거늘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직역 길르앗은 요단 저편에 머물렀다. 단은 어찌하여 배들 곁에 머물렀느냐? 아셀은 바닷가에 앉아 그 포구들에 머물렀다.
오지 않은 지파는 르우벤만이 아니었습니다. 길르앗(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은 요단강 건너편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강 하나를 건너는 것이 그렇게 어려웠을까요? 아니면 강 건너의 일은 자기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단은 배에 머무름은 어찜이뇨.” 단 지파는 해안 근처에 땅을 받았는데, 1:34에서 보았듯 아모리 사람에게 밀려 산지에 갇혔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배’에 머물렀다고 합니다. 아마 페니키아나 블레셋 사람들의 배에서 일하며 무역으로 생계를 꾸렸을 것입니다. 이방인의 배에서 일하느라 하나님의 싸움에 나오지 못했습니다.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1:31–32에서 아셀은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고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습니다. 가나안 사람과 섞여 살던 아셀은, 가나안 왕과의 전쟁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바닷가에 앉아 자기 포구를 지켰습니다. 세상과 너무 깊이 섞인 사람은 하나님의 전쟁에 나서기 어렵습니다.
르우벤은 양 때문에, 길르앗은 거리 때문에, 단은 배(사업) 때문에, 아셀은 이웃(타협) 때문에 오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달랐지만 결과는 같았습니다. 하나님의 일에 빠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길르앗 — 갓 지파와 므낫세 반 지파의 땅(수 13:24–31). 여기서 ‘갓’의 이름은 나오지 않고 ‘길르앗’으로 대신 불립니다.
배에 머무름 — 원문 ‘야구르 오니요트’. ‘구르’는 ‘나그네로 머물다’. 단 지파가 해양 민족(블레셋, 페니키아)의 배에서 품팔이를 했다는 해석이 있습니다.
오지 않은 지파 — 노래에는 유다와 시므온의 이름이 아예 나오지 않습니다. 남쪽 지파들은 이 북쪽 전쟁과 거리가 멀었거나, 이미 따로 떨어진 공동체로 여겨졌을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31-32아셀이 악고 거민과 시돈 거민과… 쫓아내지 못하고 그 땅 거민 가나안 사람 가운데 거하였으니
삿 1:34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산지로 쫓아들이고 골짜기에 내려오기를 용납지 아니하고
창 49:13스불론은 해변에 거하리니 그곳은 배 매는 해변이라
마 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18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그러하도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직역 스불론은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걸었던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판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였다.
오지 않은 지파들의 이야기 뒤에, 노래는 다시 영웅들을 부릅니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원문은 ‘죽기까지 자기 목숨을 하찮게 여겼다’입니다. 철병거 900대 앞에서 무기도 없이 나간다는 것은 죽음을 각오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기 목숨보다 하나님의 백성의 자유를 더 귀하게 여겼습니다.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바락의 고향 지파 납달리도 다볼산 높은 곳에서 그렇게 싸웠습니다. 4장에서 하나님이 부르신 바로 그 두 지파, 스불론과 납달리가 가장 큰 칭찬을 받습니다.
1장에서 스불론과 납달리는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한 지파들이었습니다(1:30, 33). 그런데 이제 그들이 목숨을 걸고 가나안과 싸운 지파로 기억됩니다. 과거의 실패가 영원한 꼬리표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일어서면, 새로운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사야는 훗날 이 땅에 큰 빛이 비칠 것이라 예언했고(사 9:1–2), 예수님은 바로 이 스불론과 납달리 땅, 갈릴리에서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마 4:13–16).
원어 · 번역 노트
무릅쓰다하라프 — ‘조롱하다, 하찮게 여기다’. 여기서는 ‘자기 목숨을 하찮게 여기다’, 곧 목숨을 아끼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요한계시록과의 연결 — 계 12:11 “또 여러 형제가 어린 양의 피와 자기의 증거하는 말을 인하여 저를 이기었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함께 읽을 말씀
계 12:11그들은 죽기까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행 20:24나의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 증거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을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 9:1-2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마 4:13-16나사렛을 떠나 스불론과 납달리 지경 해변에 있는 가버나움에 가서 사시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싸움 앞에서 나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드보라의 노래는 출석부처럼 지파의 이름을 하나씩 부릅니다. 목숨을 걸고 내려온 스불론과 납달리, 골짜기로 달려간 잇사갈, 각자의 자리에서 함께한 에브라임과 베냐민과 마길. 그리고 시냇가에서 회의만 하다 양 우리에 남은 르우벤, 강 건너에 머문 길르앗, 배에 매인 단, 바닷가에 앉은 아셀.
오지 않은 지파들은 대단한 악을 행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자기 일상, 자기 사업, 자기 편안함에 머물렀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싸울 때 그 자리에 없었다는 것이 그들의 이름 옆에 영원히 기록되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일이 벌어지는 자리에서, 내 이름은 어떻게 기록되고 있을까요? “큰 결심”만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5:19–23별들이 하늘에서 싸우고 기손강이 휩쓸었도다 — 그리고 메로스를 저주하라
노래는 이제 전쟁의 절정을 그립니다. 가나안 왕들이 므깃도 물가에서 싸웠지만 전리품을 얻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늘의 별들이 싸웠고, 기손강이 그들을 휩쓸어 갔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 숨겨졌던 승리의 비밀이 여기서 시처럼 펼쳐집니다.
그리고 갑자기 저주가 나옵니다. “메로스를 저주하라.” 메로스는 여호와를 도우러 오지 않은 성읍입니다. 앞에서 오지 않은 지파들은 질문을 받았지만, 메로스는 저주를 받습니다. 하나님의 싸움 앞에서의 중립이 얼마나 무거운 일인지를 보여 줍니다.
19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가나안 열왕이 므깃도 물 가 다아낙에서 싸웠으나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직역 왕들이 와서 싸웠다. 그때 가나안의 왕들이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다. 은의 이득을 그들은 취하지 못하였다.
“열왕이 와서 싸울 때에.” 야빈 한 사람이 아니라 가나안의 여러 왕들이 연합했습니다. 그들은 므깃도 물가 다아낙에서 싸웠습니다. 므깃도와 다아낙은 1:27에서 므낫세가 쫓아내지 못한 바로 그 성읍들입니다. 이스라엘이 남겨 둔 가나안 성읍들이 연합군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결과는 “돈을 탈취하지 못하였도다.” 원문은 ‘은의 이익을 취하지 못했다’입니다. 고대 전쟁에서 군인들은 전리품을 기대하고 싸웠습니다. 가나안 왕들은 이스라엘을 쳐서 은과 노예를 얻을 생각이었습니다(30절 참고). 그런데 하나도 얻지 못했습니다. 이익을 바라고 온 자들이 빈손으로, 아니 목숨을 잃고 돌아갔습니다.
삿 1:27므낫세가 벧스안과… 다아낙과 그 향리의 거민과… 므깃도와 그 향리의 거민들을 쫓아내지 못하매
시 48:4-6열왕이 모여 함께 지났음이여 저희가 보고 놀라고 두려워 빨리 갔도다
시 2:1-4어찌하여 열방이 분노하며 민족들이 허사를 경영하는고
20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직역 하늘에서 별들이 싸웠다. 그들의 궤도에서 그들이 시스라와 싸웠다.
노래는 놀라운 장면을 그립니다.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땅에서 이스라엘이 싸울 때, 하늘에서는 별들이 싸웠습니다. 별들이 자기 궤도에서 시스라를 상대로 전쟁을 벌였습니다.
이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시적인 표현으로, 온 우주가 하나님의 편에서 싸웠다는 것입니다. 고대 사람들은 별들이 비와 날씨를 다스린다고 믿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별과 하늘의 신들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 별들조차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시스라를 대적했습니다. 그리고 구체적으로는 4절의 큰비, 21절의 기손강 범람과 연결됩니다. 하늘에서 쏟아진 폭우가 바로 ‘별들의 싸움’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혼자 싸우지 않습니다. 엘리사의 종이 아람 군대를 보고 두려워할 때, 엘리사는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하고 기도했고, 산에 불말과 불병거가 가득했습니다(왕하 6:16–17). 눈에 보이지 않는 하늘의 군대가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싸웁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별들 — 성경에서 별은 하나님의 군대(만군)로 그려지기도 합니다(욥 38:7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사 40:26). ‘만군의 여호와’의 ‘만군(체바오트)’은 하늘의 군대를 포함합니다.
궤도메실라 — ‘큰길, 대로’. 6절의 텅 빈 ‘대로’(오라호트)와 대비하여, 하늘의 ‘대로’에서는 별들이 행진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10:12-14태양아 너는 기브온 위에 머무르라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 이는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음이니라
왕하 6:16-17두려워하지 말라 우리와 함께 한 자가 저와 함께 한 자보다 많으니라… 불말과 불병거가 산에 가득하여 엘리사를 둘렀더라
욥 38:31-33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롬 8:31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21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 내 영혼아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강은 옛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직역 기손 시내가 그들을 휩쓸었다. 옛적의 시내, 기손 시내가. 내 영혼아, 힘차게 밟고 나아가라!
여기서 승리의 비밀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4절에서 하늘이 쏟은 비가 기손강을 넘치게 했고, 그 물이 시스라의 군대를 휩쓸어 갔습니다. 철병거 900대가 물에 떠내려가거나 진흙에 빠졌습니다. 출애굽 때 홍해가 바로의 병거를 삼킨 것처럼, 기손강이 시스라의 병거를 삼켰습니다.
“이 기손강은 옛강이라.” ‘옛강’은 원문 ‘케두밈의 강’인데, ‘오래된 강’, ‘태고의 강’이라는 뜻일 수도 있고, ‘맞서는 강’이라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창조하실 때부터 그 자리에 흐르던 강이, 마침내 하나님의 원수를 맞서 싸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드보라는 자기 영혼에게 외칩니다.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원문은 명령형으로 ‘내 영혼아, 힘차게 나아가라!’로도 읽힙니다. 승리의 감격 속에서 자기 자신을 북돋우는 외침입니다. 시편 기자들도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시 103:1) 하고 자기 영혼에게 말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표류시키다가라프 — ‘쓸어 가다’. 여기에만 나오는 드문 말입니다.
케두밈 — ‘앞, 옛날’(케뎀)에서 온 말. ‘옛적의 강’ 또는 ‘앞서 나아가는(맞서는) 강’.
밟았도다 — 원문 ‘티드레키’, 미완료형으로 ‘네가 밟으리라’ 또는 명령의 뜻 ‘밟고 나아가라’. 신 33:29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5:4-5그가 바로의 병거와 그 군대를 바다에 던지시니… 큰 물이 그들을 덮으니 그들이 돌처럼 깊음에 내렸도다
시 83:9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시 103:1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
합 3:19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라 나의 발을 사슴과 같게 하사 나로 나의 높은 곳에 다니게 하시리로다
22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 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그 때에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직역 그때 말굽들이 땅을 쳤다. 그의 용사들이 질주하고 또 질주하였다.
노래는 이제 소리를 들려줍니다. “군마가 빨리 달리니 말굽소리는 땅을 울리도다.” 원문은 ‘다하로트 다하로트’, ‘질주, 질주’라는 말을 반복해서 말발굽이 땅을 두드리는 소리를 흉내 냅니다. ‘다다닥, 다다닥.’
그런데 이 말들은 공격하러 달리는 것이 아니라 도망치는 것입니다. 기손강이 넘치고 전차 바퀴가 진흙에 빠지자, 겁에 질린 말들이 날뛰며 마구 달아났습니다. 시스라의 자랑이던 전차 부대가 혼란에 빠진 소리입니다. 4:15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말굽 — 이스라엘에는 말과 전차가 없었습니다. 신 17:16은 왕이 말을 많이 두지 말라고 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33:17구원함에 말은 헛것임이여 그 큰 힘으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나 3:2휙휙하는 채찍 소리, 굉굉하는 병거 바퀴 소리, 뛰는 말, 달리는 병거
렘 47:3힘센 것의 굽 치는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의 울리는 소리에
23메로스를 저주하라 —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였음이니라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에 메로스를 저주하라 너희가 거듭 거듭 그 거민을 저주할 것은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여호와를 도와 용사를 치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도다
직역 “메로스를 저주하라.” 여호와의 사자가 말하였다. “그 주민들을 저주하고 또 저주하라. 그들이 여호와를 도우러, 용사들과 맞서 여호와를 도우러 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승리의 노래 한가운데 갑자기 무서운 저주가 터져 나옵니다. “메로스를 저주하라.” 메로스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성읍입니다. 어디인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아마 전쟁터 가까이에 있던 이스라엘의 성읍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 저주는 드보라가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의 말씀”으로 선포됩니다.
왜 메로스는 르우벤이나 단보다 더 무거운 저주를 받았을까요? 아마 메로스는 전쟁터 바로 근처에 있어서 쉽게 도울 수 있었는데도 오지 않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어쩌면 도망치는 시스라의 군대를 막을 수 있었는데 문을 닫고 구경만 했을지도 모릅니다. 가까이 있을수록, 할 수 있는 일이 분명할수록, 외면의 책임은 커집니다.
“그들이 와서 여호와를 돕지 아니하며.” 놀라운 표현입니다. ‘여호와를 돕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별과 강으로도 이기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일에 사람을 부르시고, 그 부름에 응답하는 것을 ‘여호와를 돕는 것’이라고 귀하게 여겨 주십니다. 그리고 그 부름을 외면하는 것을 ‘여호와를 돕지 않은 것’으로 보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싸움 앞에서 중립은 없습니다. 예수님은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마 12:30)라고 하셨습니다. 또 양과 염소의 비유에서 염소들이 심판받은 이유는 악을 행해서가 아니라 “내가 주릴 때에 먹을 것을 주지 아니하였고”, 곧 마땅히 할 선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마 25:42–45).
원어 · 번역 노트
메로스 — 성경에서 여기만 나옵니다. 위치는 알려져 있지 않으며, 다볼산이나 이스르엘 골짜기 근처로 추정합니다. 저주를 받아 사라져서 이름만 남았다고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여호와를 돕다 — 원문 ‘레에즈라트 YHWH’, ‘여호와의 도움으로(도움을 위해)’. ‘에제르’(돕는 자)는 창 2:18의 ‘돕는 배필’, 시 121:1–2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꼬”에서 하나님께도 쓰이는 귀한 말입니다.
저주하다아라르 — 강한 저주. 신 27:15–26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함께 읽을 말씀
마 12:30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25:44-45주여 우리가 어느 때에 주의 주리신 것이나… 보고 공양치 아니하더이까… 이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하지 아니한 것이 곧 내게 하지 아니한 것이니라
약 4:17사람이 선을 행할 줄 알고도 행치 아니하면 죄니라
렘 48:10여호와의 일을 태만히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옵 1:11네가 멀리 섰던 날 곧 이방인이 그의 재물을 늑탈하며 외국인이 그의 성문에 들어가서… 너도 그들 중 한 사람 같았었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일에 구경꾼은 없습니다
기손강의 승리는 하늘의 별과 땅의 강이 함께 싸운 승리였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도움 없이도 이기실 수 있는 분입니다. 그런데도 노래는 “여호와를 돕지 아니한” 메로스를 저주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셔서가 아니라, 우리를 당신의 일에 동역자로 부르시기 때문입니다.
메로스는 악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오지 않았을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싸움 앞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결코 중립이 아닙니다. 오늘 내 곁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일 앞에서, 나는 문을 닫고 구경하는 메로스입니까, 아니면 달려 나가 함께 싸우는 스불론입니까?
5:24–27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복을 받을 야엘 — 그의 발 앞에 엎드러진 시스라
메로스에 대한 저주 바로 다음에, 노래는 정반대의 선언을 합니다.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이스라엘 성읍 메로스는 저주받고, 이방 겐 사람의 아내 야엘은 축복받습니다.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섰느냐가 축복과 저주를 갈랐습니다.
그리고 4:17–22의 장면이 시로 다시 노래됩니다. 노래는 장면을 천천히 느리게 보여 주며, 시스라가 쓰러지는 순간을 세 번이나 되풀이합니다.
24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직역 여인들 가운데 야엘이 복을 받으리라, 겐 사람 헤벨의 아내가. 장막의 여인들 가운데 그녀가 복을 받으리라.
23절의 저주 바로 뒤에 축복이 나옵니다.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이 대조가 의도적입니다. 이스라엘 성읍 메로스는 여호와를 돕지 않아 저주를 받았고,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겐 족속의 여인 야엘은 하나님의 편에 서서 복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축복과 저주를 가르는 것은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선택입니다.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야엘은 장막에 사는 평범한 유목민 여인이었습니다. 왕비도, 선지자도, 장군도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 평범한 장막의 여인이 하나님 나라 역사에 이름을 남겼습니다.
“여인들 가운데 복을 받으리라”는 표현은 성경에서 단 두 번 나옵니다. 여기 야엘에게, 그리고 누가복음 1:42에서 엘리사벳이 마리아에게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라고 할 때입니다. 야엘은 원수의 머리를 쳤고, 마리아는 원수의 머리를 깨뜨릴 여자의 후손을 낳았습니다(창 3:15). 두 여인 모두 하나님의 구원 역사에 쓰임받은 평범한 여인들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복을 받다바라크 — 2절, 9절의 ‘여호와를 찬송하라(바르쿠)’와 같은 동사. 하나님을 송축한 노래가 하나님 편에 선 사람을 축복합니다.
눅 1:42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창 3:15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삼상 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히 여기리라
히 11:31믿음으로 기생 라합은 정탐군을 평안히 영접하였으므로 순종치 아니한 자와 함께 멸망치 아니하였도다
25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직역 물을 그가 구했는데 젖을 그녀가 주었다. 귀인들의 대접에 엉긴 젖을 그녀가 내어 왔다.
4:19의 장면이 시로 다시 나옵니다.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물을 구했는데 더 좋은 것을 주었습니다.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엉긴 젖은 요구르트나 버터처럼 발효시킨 우유로, 유목민이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귀인들의 그릇’, 곧 가장 좋은 대접에 담아 주었습니다.
야엘은 시스라를 최고의 손님으로 대접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시스라는 그 환대에 완전히 마음을 놓았을 것입니다. 노래는 이 넉넉한 환대를 강조하여, 바로 다음 장면과의 충격적인 대비를 만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엉긴 젖헴아 — 창 18:8 아브라함이 세 손님에게 대접한 ‘뻐터’, 사 7:15 “그가… 뻐터와 꿀을 먹을 것이라”.
동사들 — 원문은 ‘할마(쳤다), 마하카(부수었다), 마하차(깨뜨렸다), 할파(꿰뚫었다)’ 네 동사가 이어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4:21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시 68:21그 원수의 머리 곧 그 죄과에 항상 행하는 자의 정수리는 하나님이 쳐서 깨치시리로다
시 110:6열방 중에 판단하여 시체로 가득하게 하시고 여러 나라의 머리를 쳐서 파하시며
27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 엎드러져 죽었도다
그가 그의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그의 발 앞에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그 꾸부러진 곳에 엎드러져 죽었도다
직역 그녀의 두 발 사이에서 그가 무릎 꿇었고, 쓰러졌고, 누웠다. 그녀의 두 발 사이에서 그가 무릎 꿇었고, 쓰러졌다. 그가 무릎 꿇은 그곳에서, 거기서 그가 쓰러졌다, 파멸되어.
노래는 시스라가 쓰러지는 순간을 마치 느린 화면처럼 보여 줍니다.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쓰러졌고… 꾸부러져, 엎드러져서… 엎드러져 죽었도다.” 같은 동사를 되풀이하고 또 되풀이합니다. 원문에서 ‘무릎 꿇다(카라)’와 ‘쓰러지다(나팔)’가 반복되며, 마치 거대한 나무가 천천히 넘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 같습니다.
“그의 발 앞에.” 원문은 ‘그녀의 두 발 사이에’입니다. 900대의 철병거를 거느리던 장군이, 장막에 사는 한 여인의 발 앞에 쓰러졌습니다.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발로 짓밟던 자가, 이제 한 여인의 발 아래 엎드러졌습니다. 교만한 자가 낮아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어는 “죽었도다”, 원문으로 ‘파멸되어’입니다. 그 자리에서 끝났습니다. 시편 37:35–36의 고백처럼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원어 · 번역 노트
반복의 효과 — 원문은 ‘벤 라글레하 카라 나팔 샤카브 / 벤 라글레하 카라 나팔 / 바아셰르 카라 샴 나팔 샤두드’. 히브리 시의 계단식 반복(climactic parallelism)입니다.
두 발 사이 — 일부 학자들은 이 표현에 성적 함의가 있다고 보고, 30절 시스라의 어머니가 상상하는 장면(병사들이 여인을 얻는 것)과 날카로운 반전을 이룬다고 봅니다. 여인을 전리품으로 삼으려던 장군이 한 여인의 발 아래 쓰러졌습니다.
파멸되다샤다드 — ‘황폐하게 되다, 파멸되다’.
함께 읽을 말씀
시 37:35-36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시 20:8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사 14:12너 아침의 아들 계명성이여 어찌 그리 하늘에서 떨어졌으며 너 열국을 엎은 자여 어찌 그리 땅에 찍혔는고
눅 1:52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평범한 장막의 여인이 복을 받았습니다
메로스는 이스라엘 성읍이었지만 저주를 받았고, 야엘은 이방 족속의 여인이었지만 복을 받았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중요한 것은 출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편에 서는 선택입니다. 그리고 야엘이 가진 것은 장막 말뚝과 일꾼의 망치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의 평범한 손을 들어, 교만한 원수를 그 발 앞에 엎드러지게 하셨습니다.
마리아는 노래했습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드보라의 노래와 마리아의 노래는 같은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높은 자를 낮추시고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 그분이 오늘도 평범한 우리를 부르십니다.
5:28–31시스라의 어미가 창으로 바라보며 — 그리고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노래의 마지막 장면은 전쟁터가 아니라 한 집의 창가입니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창살 너머로 길을 바라보며 아들을 기다립니다. 왜 이렇게 늦을까? 그녀의 시녀들은 대답합니다. 전리품을 나누느라 늦는 것이겠지요. 그리고 그녀도 스스로 그렇게 믿습니다.
독자는 이미 압니다. 그 아들은 돌아오지 않습니다. 장막 바닥에 말뚝이 박힌 채 누워 있습니다. 이 아이러니가 노래에 깊은 여운을 줍니다. 그리고 노래는 마지막 기도로 끝납니다. 주의 원수는 이와 같이 망하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떠오르는 해처럼.
28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살창에서 부르짖기를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하매
직역 창을 통해 그녀가 내려다보며 외쳤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격자창을 통해. “어찌하여 그의 병거가 오기를 지체하는가? 어찌하여 그의 병거들의 발걸음이 늦어지는가?”
장면이 갑자기 바뀝니다. 전쟁터에서 한 집의 창가로. “시스라의 어미가 창문으로 바라보며.” 7절에서 드보라는 자신을 ‘이스라엘의 어미’라고 했습니다. 이제 또 한 명의 어머니가 나옵니다. 시스라의 어머니입니다. 노래는 두 어머니를 나란히 세웁니다.
그녀는 창살 너머로 길을 바라보며 부르짖습니다.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고 그의 병거 바퀴가 어찌하여 더디 구는고.” 아들이 전쟁에 나간 지 오래되었는데 돌아오지 않습니다. 평소 같으면 벌써 승리의 행렬이 돌아왔어야 할 시간입니다. 어머니의 마음에 불안이 스며듭니다.
독자는 이 장면을 읽으며 이상한 감정을 느낍니다. 원수의 어머니이지만, 아들을 기다리는 어머니의 마음은 같습니다. 노래는 원수에게도 어머니가 있다는 것, 전쟁에는 언제나 우는 어머니가 있다는 것을 숨기지 않습니다. 성경은 승리를 노래하면서도 원수의 슬픔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그녀는 아들의 ‘병거’를 기다립니다. 그러나 그 병거들은 기손강의 진흙 속에 빠져 있고(21절), 시스라는 병거를 버리고 맨발로 도망쳤습니다(4:15). 그녀가 자랑하던 병거는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창가의 여인 — 고대 근동 미술에는 ‘창가의 여인’이라는 유명한 주제가 있습니다. 상아 조각에 창틀 사이로 내다보는 여인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성경에서도 미갈(삼하 6:16)과 이세벨(왕하 9:30)이 창으로 내다보는 장면이 나오는데, 모두 비극적인 결말과 연결됩니다.
더디 오다보쉐쉬 — ‘지체하다’. 출 32:1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부끄러워하다(보쉬)’와 소리가 비슷합니다.
바퀴 — 원문 ‘파아메’, ‘발걸음들’. 병거의 ‘발걸음’, 곧 말발굽 소리나 바퀴 소리.
함께 읽을 말씀
삼하 6:16여호와의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에 사울의 딸 미갈이 창으로 내다보다가
왕하 9:30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잠 7:6내가 내 집 들창으로, 살창으로 내어다 보다가
렘 31:15라마에서 슬퍼하며 통곡하는 소리가 들리니 라헬이 그 자식을 위하여 애곡하는 것이라
29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 지혜로운 시녀들이 대답하였겠고 그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직역 그녀의 지혜로운 귀부인들이 그녀에게 대답한다. 그녀도 자기 말을 자기에게 되풀이한다.
시스라의 어머니 곁에는 “지혜로운 시녀들”이 있었습니다. 원문은 ‘지혜로운 귀부인들’로, 궁정의 높은 여인들입니다. 그들이 대답합니다. 걱정 마십시오, 이러이러해서 늦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머니도 “스스로 대답하기를”, 그 말을 자기 자신에게 되풀이합니다.
이 장면은 묘하게 아픕니다. 불안한 사람은 스스로를 안심시키는 말을 되풀이합니다. ‘괜찮아, 별일 없을 거야, 금방 올 거야.’ 그러나 아무리 되풀이해도 현실은 바뀌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지혜롭다’고 불리는 것도 아이러니입니다. 그들의 지혜는 진실을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지혜는 결국 헛된 위로에 그칩니다(고전 1:20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원어 · 번역 노트
시녀들사로트 — ‘사라’(귀부인, 공주)의 복수. 사라(아브라함의 아내) 이름도 같은 말입니다. 왕상 11:3 솔로몬의 ‘후비’.
대답하였겠고 — 원문은 미완료형으로 ‘대답한다’, 되풀이되는 장면을 그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47:10-11네가 네 악을 의지하고 스스로 이르기를 나를 보는 자가 없다 하나니 네 지혜와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음이니라
고전 1:20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렘 6:14그들이 내 백성의 상처를 심상히 고쳐 주며 말하기를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나 평강이 없도다
30노략물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 사람마다 한두 처녀를, 시스라는 수놓은 채색옷을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그것은 수놓은 채색옷이리로다 곧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이리니 노략한 자의 목에 꾸미리로다 하였으리라
직역 “그들이 찾아내어 노략물을 나누고 있지 않겠느냐? 용사 한 사람마다 처녀 하나, 둘씩. 시스라에게는 물들인 옷의 노략물, 물들인 수놓은 옷의 노략물, 물들이고 양면으로 수놓은 옷이 노략자의 목에.”
시녀들과 어머니가 내린 결론은 이것입니다. “그들이 어찌 노략물을 얻지 못하였으랴 그것을 나누지 못하였으랴.” 늦는 이유는 이겼기 때문이다, 전리품을 나누느라 바쁜 것이다. 그들은 아무 의심 없이 승리를 확신합니다.
그리고 그들이 상상하는 전리품은 이것입니다. “사람마다 한 두 처녀를 얻었으리로다.” 원문의 표현은 여인을 비하하는 매우 거친 말입니다. 시스라의 군대는 전쟁에서 이기면 이스라엘의 딸들을 붙잡아 전리품으로 나누어 가졌습니다. 시스라의 어머니와 궁정 여인들은 그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오히려 자랑스럽게 상상합니다. 다른 어머니의 딸들이 끌려가는 것을, 한 어머니가 기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시스라의 군대가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학대”(4:3)했다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드러납니다.
그리고 “시스라는 채색옷을 노략하였으리니… 양편에 수놓은 채색옷.” 아들이 귀한 옷감을 가져와 자기 목에 걸어 줄 것을 기대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였습니다. 여인들을 전리품으로 삼으려던 장군은 한 여인의 장막에서 그녀의 발 앞에 쓰러졌습니다(27절). 사람마다 ‘처녀’를 얻을 것이라 상상했는데, 정작 시스라는 한 ‘여인’의 손에 죽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의 기대를 이렇게 뒤집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한 두 처녀 — 원문 ‘라함 라하마타임’. ‘라함’은 ‘자궁, 태’를 뜻하는 말로, 여인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는 군인들의 거친 표현입니다. 성경은 이 말을 원수의 입에 두어 그들의 잔인함을 고발합니다.
채색옷 — ‘체바’(물감, 물들인 것). 고대에 물들인 천, 특히 수놓은 천은 매우 비싼 사치품이었습니다. 겔 16:10, 13 “수놓은 옷”.
27절과의 반전 — 27절 ‘그녀의 두 발 사이에서 그가 쓰러졌다’와 30절 ‘여인을 얻었으리라’는 의도적인 대조로 읽힙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5:9대적의 말이 내가 쫓아 미쳐 탈취물을 나누리라 내가 그들로 인하여 내 마음을 채우리라 내가 내 칼을 빼리니 내 손이 그들을 멸하리라 하였으나
잠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시 7:15-16저가 웅덩이를 파 만듦이여 제가 만든 함정에 빠졌도다 그 잔해는 자기 머리로 돌아오고
삿 4:3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31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직역 “여호와여, 주의 모든 원수들은 이와 같이 망하게 하소서. 그러나 주를 사랑하는 자들은 해가 그 힘으로 떠오름 같게 하소서.” 그리고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조용하였다.
창가의 장면에서 노래는 갑자기 멈추고, 마지막 기도로 넘어갑니다. 시스라의 어머니가 끝내 진실을 알게 되는 장면은 보여 주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기도합니다. “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시스라의 몰락은 한 사람의 이야기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자의 운명을 보여 주는 본보기가 됩니다.
그리고 노래의 진짜 결론이 나옵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노래는 하나님의 백성을 ‘주를 사랑하는 자’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이 이긴 것은 무기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미래는 떠오르는 해와 같습니다. 어두운 밤이 아무리 길어도 해는 반드시 떠오르고, 떠오른 해는 점점 더 힘차게 빛납니다.
이 노래가 시스라의 어머니가 기다리던 ‘창가의 어둠’에서 ‘떠오르는 해’로 끝난다는 것이 아름답습니다. 원수를 의지하는 자의 기다림은 어둠 속에서 끝나지만, 주를 사랑하는 자의 길은 해처럼 밝아집니다. 잠언 4:18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그리고 말라기 4:2는 “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라고 약속합니다.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노래가 끝나고 사사기 기자의 기록이 돌아옵니다. 한 세대 동안의 평화. 그러나 6:1은 다시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로 시작합니다. 해처럼 떠오르기를 기도했던 백성이 다시 어둠으로 들어갑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로 남는 것, 그것이 언제나 하나님 백성의 과제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주를 사랑하는 자 — 출 20: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신 6:5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해가 힘있게 — 시 19:5 “해는 그 방에서 나오는 신랑과 같고 그 길을 달리기 기뻐하는 장사 같아서”. ‘힘(게부라)’은 용사의 힘을 뜻합니다.
시 68:1-3하나님은 일어나사 원수를 흩으시며… 의인은 기뻐하여 하나님 앞에서 뛰놀며 기뻐하고 즐거워할찌어다
잠 4:18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말 4: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마 13:43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롬 8:28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처럼 떠오릅니다
드보라의 노래는 두 어머니로 끝을 맺습니다. 한 어머니는 이스라엘을 살리려 일어나 하나님을 노래했고, 다른 어머니는 다른 어머니의 딸들이 전리품이 되기를 기대하며 창가에서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한 사람의 기다림은 어둠으로 끝났고, 한 사람의 노래는 떠오르는 해로 끝났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세상의 승리와 전리품을 기다리는 창가의 기다림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사랑하며 그분의 빛을 기다리는 기다림입니까?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겠다고. 오늘 하루도 그 사랑 안에서, 떠오르는 해처럼 살아갑시다.
Roll Call · 정리
드보라의 노래에 기록된 지파들
하나님의 싸움 앞에서 각 지파는 어디에 있었을까요
지파
절
노래의 평가
에브라임
14
나와서 함께함
베냐민
14
에브라임을 따라 함께함
마길(므낫세)
14
지휘관들이 내려옴
스불론
14, 18
서기관의 지팡이를 잡은 자, 죽음을 무릅쓴 백성
잇사갈
15
드보라와 함께, 골짜기로 달려 내려감
납달리
18
들의 높은 곳에서 목숨을 아끼지 않음
르우벤
15–16
큰 결심과 큰 살핌, 그러나 양 우리에 남음
길르앗(갓)
17
요단 저편에 머묾
단
17
배에 머묾
아셀
17
바닷가에 앉음
메로스 (성읍)
23
여호와를 돕지 않음 — 저주
야엘 (겐 사람)
24
장막의 여인 가운데 복을 받음
유다와 시므온, 레위는 노래에 이름이 나오지 않습니다. 남쪽 지파들은 이 북쪽 전쟁과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표에서 가장 놀라운 대조는 마지막 두 줄입니다. 이스라엘 성읍 메로스는 저주를 받고, 이방 족속의 여인 야엘은 복을 받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5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영솔領率 · 2절
거느리고 이끎.
헌신獻身 · 2, 9절
스스로 바침. 원문은 ‘자원하여 나서다’.
방백方伯 · 3, 9, 15절
통치자, 지휘관.
세일4절
에돔의 산악 지대. 하나님이 남쪽에서 오시는 길.
진동振動 · 4–5절
흔들림. 하나님이 나타나실 때의 모습.
대로大路 · 6절
큰길.
소로小路 · 6절
작은 샛길.
관원官員 · 7절
지도자. 원문 페라존, ‘마을 사람들’로도 읽음.
화문석花紋席 · 10절
꽃무늬 돗자리, 좋은 깔개.
선파宣播 · 10절
널리 알림.
칭술稱述 · 11절
칭찬하며 되풀이하여 이야기함.
귀인貴人 · 13절
지위가 높은 사람.
강림降臨 · 13절
하나님이 내려오심.
심사心思 · 15절
마음, 생각.
해빈海濱 · 17절
바닷가.
표류漂流 · 21절
물에 떠서 흘러감.
군마軍馬 · 22절
전쟁에 쓰는 말.
살창-窓 · 28절
살을 가로세로로 댄 격자창.
노략물擄掠物 · 30절
전쟁에서 빼앗은 물건, 전리품.
채색옷彩色- · 30절
물들이고 수놓은 귀한 옷.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드보라는 승리의 날 바로 노래했습니다(1절). 하나님이 내 삶에서 하신 일 가운데, 아직 감사와 찬양으로 고백하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백성이 즐거이 헌신하였으니”(2, 9절). 나는 하나님의 일에 억지로 참여합니까, 자원하는 마음으로 참여합니까?
압제의 원인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였습니다(8절). 오늘 내가 하나님 대신 택하고 있는 ‘새 신’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의로우신 일을 우물가에서 되풀이해 이야기하라고 했습니다(11절). 나는 가족과 이웃에게 하나님이 하신 일을 이야기하고 있습니까?
르우벤은 “큰 결심”만 하고 오지 않았습니다(15–16절). 내가 결심만 하고 실천하지 못하고 있는 하나님의 일은 무엇입니까?
르우벤(양), 길르앗(거리), 단(배), 아셀(바닷가).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나서지 못하게 막는 ‘양 우리’는 무엇입니까?
메로스는 여호와를 돕지 않아 저주를 받았습니다(23절). 내 곁에서 벌어지는 하나님의 일 앞에서 나는 구경꾼으로 머물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31절). 오늘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