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4절까지 — 철병거 구백 승, 종려나무 아래의 여선지, 망설이는 장군, 그리고 장막 말뚝을 든 여인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JUDGES 4:14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4장 들어가며
1:19의 “철병거”가 다시 등장합니다. 이번에는 하나님이 그것을 어떻게 무너뜨리시는지 보여 주십니다
사사기 1:19에서 유다는 “철병거가 있으므로” 골짜기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4장에서 그 철병거가 다시 나타납니다. 이번에는 구백 승입니다. 가나안 왕 야빈과 그의 장군 시스라는 이 철병거로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학대”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 장에서 분명히 보여 주십니다. 철병거는 하나님께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4장은 사사기에서 여인들이 가장 빛나는 장입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사람은 여선지 드보라이고, 원수의 장군을 죽이는 사람은 겐 사람의 아내 야엘입니다. 그 사이에서 남자 장군 바락은 망설이고, 드보라는 “영광이 여인의 손에 돌아가리라”고 예언합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누구의 힘으로 오는지 다시 한번 보여 줍니다.
이 장의 이야기는 5장에서 노래로 다시 불립니다. 4장이 산문으로 된 전쟁 기록이라면, 5장은 그 승리를 기념하는 드보라의 노래입니다. 두 장을 함께 읽으면, 4장에서 짧게 지나간 장면(예를 들어 기손강의 범람)이 5장에서 어떻게 일어났는지 알 수 있습니다.
핵심 구절
4:14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싸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나온 철병거
4:3, 13
1:19의 핑계였던 철병거. 이번에는 구백 승도 하나님 앞에서 진흙에 빠집니다.
두 여인
드보라와 야엘
종려나무 아래서 재판하는 여선지와 장막 말뚝을 든 유목민의 아내.
망설이는 장군
바락
“당신이 함께 가면 가겠다.” 그래도 히브리서 11장은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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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하솔에 도읍한”
하솔에서 다스리던. 하솔은 갈릴리 북쪽의 가나안 최대 도시.
2절 “이방 하로셋”
하로셋 학고임. ‘민족들의 하로셋’, 시스라의 기지.
3절 “철병거 구백승”
철로 보강한 전차 900대. ‘승(乘)’은 수레를 세는 단위.
3절 “학대”
虐待, 원문 라하츠 ‘짓누르다’.
4절 “여선지”
女先知, 원문 네비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여인.
4절 “랍비돗의 아내”
‘횃불들의 여인’, 곧 ‘불같은 여인’으로 읽을 수도 있다.
11절 “상수리나무”
원문 엘론. 큰 나무, 상수리나무 또는 테레빈나무.
15절 “패하게 하시매”
원문 하맘. 혼란에 빠뜨리다. 출애굽 홍해에서 쓰인 말.
18절 “이불”
원문 세미카. 여기에만 나오는 말로 담요나 덮개.
19절 “젖부대”
가죽 부대에 담은 우유(엉긴 젖).
21절 “살쩍”
관자놀이. 귀와 눈 사이의 머리 옆쪽.
21절 “기절하여”
원문 ‘아예프’, 기진하여. 『개역개정』도 “기절하여 죽으니라”.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4:1–3하솔 왕 야빈과 철병거 구백 승 — 이십 년의 학대
에훗이 죽자 바퀴가 다시 돕니다. 이번 압제자는 가나안 북쪽의 강력한 왕 야빈입니다. 그는 바깥에서 쳐들어온 이방 민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한 바로 그 ‘가나안 사람’의 왕입니다. 1장에서 남겨 둔 가나안이 이제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이번 압제는 앞의 것들보다 더 깁니다. 구산 8년, 에글론 18년, 그리고 야빈 20년. 그리고 처음으로 “심히 학대하였다”는 강한 표현이 쓰입니다. 바퀴는 점점 더 깊이 내려가고 있습니다.
1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악을 행하매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기를 더하였다. 에훗이 죽었기 때문이다.
“에훗의 죽은 후에.” 2:19에서 예고된 일이 그대로 일어납니다.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에훗이 준 80년의 평화는 길었지만, 그 평화가 이스라엘의 마음을 하나님께 묶어 두지는 못했습니다.
원문의 순서를 보면 더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기를 더하였다. 에훗이 죽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하나님이 아니라 에훗이라는 한 사람에게 기대어 있었습니다. 그가 죽자 기둥이 무너졌습니다. 3:31의 삼갈도 함께 살았던 사사였을 수 있지만, 사사기 기자는 에훗의 죽음을 이번 위기의 시작점으로 잡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원문 순서 — “바요시푸 베네 이스라엘 라아소트 하라… 베에후드 메트”. 마지막 구절 ‘에훗이 죽었을 때(또는 죽었으므로)’가 원인처럼 붙어 있습니다.
삼갈과의 관계 — 3:31 삼갈 이야기가 끼어 있지만 4:1은 ‘에훗의 죽음’으로 바로 이어집니다. 그래서 삼갈은 에훗의 80년 기간 중 서쪽에서 활동한 사사였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2: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삿 3:12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시 146:3-4방백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찌니 그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2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시다 — 군대 장관 시스라
여호와께서 하솔에 도읍한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그들을 파셨는데 그 군대 장관은 이방 하로셋에 거하는 시스라요
직역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에서 다스리는 가나안 왕 야빈의 손에 파셨다. 그의 군대 장관은 시스라였는데, 그는 민족들의 하로셋에 살았다.
이번에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파신 상대는 하솔의 가나안 왕 야빈입니다. 하솔은 갈릴리 바다 북쪽에 있던 가나안 최대의 도시로, 고고학자들의 발굴에 따르면 면적이 약 80헥타르(축구장 100개가 넘는 넓이)에 인구가 1만 명을 훌쩍 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성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1:10은 하솔을 “그 모든 나라의 머리”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이 있습니다. 여호수아 11장에서 여호수아는 이미 하솔 왕 야빈을 죽이고 하솔을 불살랐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4장에 다시 하솔 왕 야빈이 등장합니다. 이것은 가나안이 무너진 뒤 다시 일어섰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한 가나안 사람들이 하솔을 재건했고, 옛 왕의 이름(또는 왕조의 칭호)을 이어받은 새 왕이 나타났습니다. 1:26에서 루스 사람이 다른 곳에 ‘루스’를 다시 세웠던 것처럼, 가나안은 쓰러져도 다시 일어났습니다.
그의 군대 장관은 시스라입니다. 이 이름은 히브리어도 가나안어도 아닌 것 같아서, 블레셋과 같은 바다 민족 출신일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그는 “이방 하로셋”, 곧 ‘민족들의 하로셋’에 살았는데, 여러 민족이 섞인 군사 기지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제 가나안과 이방 연합 세력 아래 놓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솔 — 수 11:1–13. 텔 하솔 발굴(이가엘 야딘, 1955–58; 암논 벤토르, 1990년대 이후)에서 기원전 13세기 무렵의 큰 화재 흔적이 발견되었습니다. 여호수아의 정복과 연결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솔로몬은 나중에 하솔을 요새로 재건합니다(왕상 9:15).
야빈 — ‘야빈’은 ‘그가 이해한다’라는 뜻. 고대 마리 문서에 하솔 왕 ‘이브니 아두’가 나오는데, ‘야빈’과 관련된 이름으로 봅니다. 하솔 왕조의 대대로 쓰인 이름이었을 수 있습니다.
하로셋 학고임 — 위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 서쪽, 기손강 하류 근처로 추정합니다. ‘하로셋’은 ‘숲’ 또는 ‘경작지’라는 뜻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11:10-11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였더니 그때에 여호수아가 돌아와서 하솔을 취하고 그 왕을 칼날로 쳐 죽이고… 또 불로 하솔을 살랐으며
시 83:9주는 미디안인에게 행하신 것 같이, 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삼상 12:9그들이 그 하나님 여호와를 잊은지라 여호와께서 그들을 하솔 군장 시스라의 손과… 손에 붙이셨더니
3철병거 구백 승으로 이십 년 동안 심히 학대한 고로 부르짖었더라
야빈왕은 철병거 구백승이 있어서 이십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심히 학대한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에게 철 전차 구백 대가 있었고, 그가 이십 년 동안 이스라엘 자손을 힘으로 짓눌렀기 때문이다.
“철병거 구백승.” 1:19에서 유다가 골짜기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한 핑계가 바로 ‘철병거’였습니다. 이제 그 철병거가 900대가 되어 이스라엘을 짓누릅니다. 이스라엘이 두려워서 피했던 것이, 피한 만큼 더 커져서 돌아왔습니다. 피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고 자랍니다.
고대 근동에서 전차는 오늘날의 탱크와 같은 무기였습니다. 말 두 마리가 끄는 전차에 마부와 궁수가 타고 평지를 달리며 보병을 쓸어버렸습니다.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세 3세가 므깃도 전투에서 빼앗은 전차가 924대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900대는 당시 강대국 수준의 군사력이었습니다. 반면 이스라엘에는 드보라의 노래가 말하듯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5:8) 할 정도로 무기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이십 년. 압제는 점점 길어집니다. 그리고 처음으로 “심히 학대한고로”라는 강한 말이 쓰입니다. ‘학대하다’(라하츠)는 출애굽기 3:9에서 애굽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학대”에 쓰인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약속의 땅 안에서 다시 애굽의 종살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20년이 걸렸습니다. 고통이 이렇게 길어진 뒤에야 그들은 하나님을 찾았습니다. 사람은 종종 바닥에 닿아야 위를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늦은 부르짖음도 외면하지 않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철병거 — 1:19, 수 17:16, 18. 전차는 바퀴와 축, 차체 테두리 등을 철로 보강한 것으로 봅니다. 철기 시대 초기라 철은 귀하고 비쌌습니다.
학대라하츠 — 1:34 “쫓아들이고”, 2:18 “압박”, 6:9, 10:12. 출 3:9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심히 — 원문 ‘베호즈카’, ‘강하게, 힘으로’. 출 1:13–14 “이스라엘 자손의 역사를 엄하게 하여”와 비슷한 분위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19골짜기의 거민들은 철병거가 있으므로 그들을 쫓아내지 못하였으며
출 3:9이제 이스라엘 자손의 부르짖음이 내게 달하고 애굽 사람이 그들을 괴롭게 하는 학대도 내가 보았으니
삿 5:8무리가 새 신들을 택하였으므로 그 때에 전쟁이 성문에 미쳤으나 이스라엘 사만명 중에 방패와 창이 보였던고
시 20:7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피한 문제는 자라서 돌아옵니다
사사기 1장에서 이스라엘은 철병거를 보고 골짜기를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4장에서 그 철병거는 900대가 되어 이스라엘을 20년 동안 짓눌렀습니다. 믿음으로 맞서지 않고 피한 문제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사이에 더 커집니다.
내 삶에도 오래 전에 ‘철병거’ 핑계를 대며 피했던 문제가 있습니까? 그것이 지금 나를 짓누르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러나 소망이 있습니다. 20년 만에라도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철병거를 단 하루 만에 진흙에 빠뜨리셨습니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도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오.
4:4–10종려나무 아래의 여선지 드보라 — “당신이 함께 가면 가겠노라”
이번 사사는 이전 사사들과 전혀 다릅니다. 옷니엘과 에훗은 전쟁에 나가 원수를 무찌른 용사였습니다. 그런데 드보라는 이미 이스라엘의 사사로서 종려나무 아래 앉아 백성을 재판하고 있던 여선지입니다. 사사기에서 유일한 여성 사사이고, 유일하게 ‘선지자’라 불리는 사사입니다.
드보라는 직접 군대를 이끌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바락을 부릅니다. 그런데 바락은 머뭇거립니다. “당신이 함께 가면 가겠다.” 드보라는 함께 가 주지만, 그 대가로 영광이 바락이 아니라 한 여인에게 돌아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 예언이 이 장 전체의 긴장을 만듭니다.
4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직역 그때 드보라, 곧 랍비돗의 아내인 여선지자 한 사람이 그때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있었다.
드보라. 이름의 뜻은 ‘꿀벌’입니다. 그녀는 “여선지”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백성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구약에서 ‘여선지’로 불린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모세의 누이 미리암(출 15:20), 요시야 왕 때의 훌다(왕하 22:14), 이사야의 아내(사 8:3), 그리고 드보라입니다. 신약에서는 안나(눅 2:36)와 빌립의 네 딸(행 21:9)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이스라엘의 사사”였습니다. 원문은 ‘그녀가 이스라엘을 재판하고 있었다’는 진행형입니다. 다른 사사들은 위기가 닥친 뒤에 세워졌는데, 드보라는 이미 사사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사기에서 ‘사사’와 ‘선지자’를 겸한 유일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선지자이자, 그 말씀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재판관이었습니다.
“랍비돗의 아내.” 랍비돗은 남편의 이름일 수도 있지만, 원문 ‘에셰트 라피도트’는 ‘횃불들의 여인’, 곧 ‘불같은 여인’, ‘불꽃 같은 여인’으로도 읽힙니다. 꿀벌처럼 부지런하고 불꽃처럼 뜨거운 여인. 어느 쪽으로 읽든 그녀는 남자들이 머뭇거리던 시대에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이스라엘을 이끈 사람이었습니다.
사사기에서 드보라가 등장하는 것은 하나님의 방식이 사람의 기대를 뛰어넘는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고대 사회에서 여성이 공적인 지도자가 되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당신의 말씀을 붙든 사람을 쓰십니다. 남자든 여자든, 왼손잡이든 농부든.
드보라 — 창 35:8 리브가의 유모 이름도 드보라였고, 그녀는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묻혔습니다(‘알론바굿’, 곡하는 상수리나무). 사사 드보라도 벧엘 근처 나무 아래에 앉아 있었습니다(5절).
랍비돗 — ‘라피드’(횃불)의 복수형. 15:4–5 삼손이 여우 꼬리에 단 ‘홰’도 이 말입니다. 유대 전통 일부는 랍비돗을 바락과 같은 사람으로 보았습니다(‘바락’은 ‘번개’, ‘랍비돗’은 ‘횃불들’로 둘 다 빛과 관련). 그러나 본문은 두 사람을 분명히 구별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5:20아론의 누이 선지자 미리암이 손에 소고를 잡으매 모든 여인도 그를 따라 나오며
왕하 22:14제사장 힐기야와… 여선지 훌다에게로 나아가니
욜 2:28-29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행 21:9그에게 딸 넷이 있으니 처녀로 예언하는 자라
5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 재판을 받더라
그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거하였고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직역 그녀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와 벧엘 사이에 있는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앉아 있곤 하였다. 이스라엘 자손은 재판을 받으러 그녀에게 올라갔다.
드보라는 “라마와 벧엘 사이 드보라의 종려나무 아래” 앉아 있었습니다. 그녀에게는 궁전도 관청도 없었습니다. 나무 한 그루 아래가 그녀의 법정이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툼이 생기거나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을 때 그 나무를 찾아왔습니다.
이 장소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벧엘은 ‘하나님의 집’입니다. 야곱이 사닥다리 꿈을 꾼 곳이고, 사사기 20장에서는 언약궤가 있던 곳입니다(20:26–27). 그리고 라마는 훗날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인 사무엘이 살면서 이스라엘을 다스린 곳입니다(삼상 7:15–17). 드보라와 사무엘은 같은 지역에서, 같은 일을 했습니다.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사사로서 백성을 재판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그에게 나아가 재판을 받더라.” 압제의 시대에도 이스라엘에는 하나님의 공의를 구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 공의를 전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드보라는 전쟁보다 먼저 공의로 백성을 섬겼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회복은 바른 재판, 곧 하나님의 말씀으로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데서 시작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앉아 있다 — 원문 ‘요쉐베트’, ‘앉아 있곤 했다’. 재판관은 앉아서 판결했습니다(출 18:13 모세, 룻 4:1–2 성문의 장로들).
종려나무토메르 — ‘타마르’(종려나무)의 다른 형태. 종려나무는 보통 저지대에서 자라는데 산지에 있었으니 눈에 띄는 표지였을 것입니다.
라마 — 베냐민 땅의 ‘라마’(수 18:25, 오늘날 에르 람). 삼상 1:19의 사무엘 고향 ‘라마다임소빔’과 같은지는 논란이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삼상 7:15-17사무엘이 사는 날 동안에 이스라엘을 다스렸으되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라마로 돌아왔으니 이는 거기 자기 집이 있음이라
창 35:8리브가의 유모 드보라가 죽으매 그를 벧엘 아래 상수리나무 밑에 장사하고
신 16:18-20너는 마땅히 공의만 좇으라 그리하면 네가 살겠고
사 1:17선행을 배우며 공의를 구하며 학대 받는 자를 도와 주며
6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 일만 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르시기를 너는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직역 그녀가 사람을 보내어 납달리 게데스에서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불렀다. 그녀가 그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명령하지 않으셨느냐? ‘가서 다볼 산으로 이끌어라.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가운데 만 명을 네게 데려가라.’”
드보라는 직접 칼을 들지 않습니다. 그녀는 사람을 보내 바락을 부릅니다. 바락은 북쪽 납달리 게데스 사람입니다. 드보라가 있던 에브라임 산지에서 북쪽으로 약 130km 떨어진 곳입니다. 야빈의 하솔과 가까운 곳, 압제를 가장 직접 받던 지역의 사람입니다.
그리고 드보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전합니다. 그런데 표현이 흥미롭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이미 하나님이 명령하셨다는 것입니다. 어쩌면 바락은 이 명령을 이미 받았는데 아직 움직이지 않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드보라는 새 명령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이미 받은 명령을 상기시킵니다.
명령은 구체적입니다. “납달리 자손과 스불론 자손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으로 가라.” 다볼산은 이스르엘 골짜기 북동쪽에 홀로 솟은 둥근 산입니다. 경사가 가팔라 전차가 올라올 수 없는 곳입니다. 철병거 900대를 가진 적과 싸우려면, 먼저 전차가 닿지 못하는 높은 곳에 진을 쳐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는 지혜가 담겨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바락 — ‘번개’.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의 아버지 ‘하밀카르 바르카’의 ‘바르카’도 같은 뜻입니다. 히 11:32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게데스 — 수 20:7, 21:32 도피성. 갈릴리 호수 북서쪽(텔 케데쉬). 일부 학자는 11절의 ‘게데스’가 다볼산 근처의 다른 게데스라고 봅니다.
다볼산 — 수 19:22 잇사갈과 스불론, 납달리의 경계.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변화산으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4세기 이후 전승).
히 11:32-34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전쟁에 용맹되어 이방 사람들의 진을 물리치기도 하며
시 89:12남북을 주께서 창조하셨으니 다볼과 헤르몬이 주의 이름을 인하여 즐거워하나이다
7내가 시스라와 병거들을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 손에 붙이리라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셨느니라
직역 “내가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와 그의 병거들과 그의 무리를 기손 시내로 너에게 끌어내어, 그를 네 손에 주리라.”
하나님의 계획이 드러납니다. “내가…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하나님이 직접 시스라를 끌어내시겠다고 하십니다. ‘이끌다’(마샤크)는 그물이나 낚싯줄을 ‘끌어당기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이 낚시꾼처럼 시스라를 원하시는 자리로 끌어내십니다.
그 자리는 기손강입니다. 기손강은 이스르엘 골짜기를 서쪽으로 흘러 지중해로 들어가는 강인데, 평소에는 작은 시내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시스라는 그 넓은 골짜기를 전차가 마음껏 달릴 수 있는 최적의 전쟁터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비가 크게 오면 기손강은 갑자기 넘쳐 골짜기 전체를 진흙탕으로 만듭니다. 5:21 “기손 강은 그 무리를 표류하였으니.” 하나님은 시스라가 가장 자신 있어 하는 곳에서 그를 무너뜨리실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약속이 따릅니다.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1:2, 3:28과 같은 약속입니다. 싸움이 시작되기 전에 결과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이끌다마샤크 — ‘끌다, 잡아당기다’. 6절 ‘다볼산으로 가라’의 ‘가라’도 원문은 같은 동사 ‘마샤크’입니다. 하나님은 바락에게 ‘이스라엘을 다볼산으로 끌고 가라’ 하시고, 당신은 ‘시스라를 기손강으로 끌어내겠다’ 하십니다. 두 ‘끌어당김’이 만나는 곳이 전쟁터가 됩니다.
기손강 — 왕상 18:40 엘리야가 바알 선지자들을 기손 시내에서 죽였습니다. 비의 신 바알을 섬기던 자들이, 하나님이 비를 내리셔서 넘치게 하신 그 강에서 심판받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5:21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이 기손강은 옛강이라 내 영혼아 네가 힘 있는 자를 밟았도다
시 83:9기손 시내에서 시스라와 야빈에게 행하신 것 같이 저희에게도 행하소서
출 14:4내가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 온 군대를 인하여 영광을 얻어
왕상 18:40엘리야가 저희를 기손 시내로 내려다가 거기서 죽이니라
8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가려니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가지 않겠노라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직역 바락이 그녀에게 말하였다.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겠습니다. 그러나 만일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않으면 나는 가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의 분명한 명령과 약속이 있었는데, 바락은 조건을 겁니다.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그는 하나님이 함께 가신다는 약속만으로는 부족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사람, 드보라가 함께 가야 했습니다.
바락의 이 말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부정적으로 보면 믿음이 부족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내가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고 하셨는데, 바락은 그 약속보다 사람을 의지했습니다. 철병거 900대가 너무 크게 보였을 것입니다. 1:19에서 유다가 철병거 앞에서 물러섰던 것처럼, 바락도 망설입니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볼 여지도 있습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는 선지자였습니다. 바락은 전쟁 중에 하나님의 뜻을 바로 알려 줄 사람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14절에서 드보라는 결정적인 순간에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붙이신 날이라”고 외칩니다. 70인역(헬라어 구약)은 8절 끝에 “나는 여호와의 사자가 언제 나와 함께 형통하게 하실지 그 날을 알지 못함이라”는 말을 덧붙여 바락의 마음을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어느 쪽이든 분명한 것은, 바락이 결국 갔다는 것입니다. 그는 머뭇거렸지만 순종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11:32은 그를 기드온, 삼손, 입다와 함께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완벽한 믿음이 아니라, 떨면서도 한 걸음 내딛는 믿음을 귀하게 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70인역의 덧붙임 — “ὅτι οὐκ οἶδα τὴν ἡμέραν ἐν ᾗ εὐοδοῖ κύριος τὸν ἄγγελον μετ᾽ ἐμοῦ” (‘주께서 그 사자를 나와 함께 형통하게 하실 날을 내가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없습니다.
비교 — 출 33:15 모세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모세는 하나님의 동행을 구했고, 바락은 하나님의 사람의 동행을 구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33:15모세가 여호와께 고하되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출 4:13-14모세가 가로되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소서 여호와께서 모세를 향하여 노를 발하시고
삿 6:36-40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양털 한 뭉치를 타작 마당에 두리니
히 11:32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 의 일을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9반드시 함께 가리라 — 그러나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시리라
가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그러나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것임이니라 하고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가니라
직역 그녀가 말하였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겠다. 그러나 네가 가는 길에서 영예는 네 것이 되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기 때문이다.” 드보라가 일어나 바락과 함께 게데스로 갔다.
드보라는 거절하지 않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망설이는 사람을 꾸짖고 버려두는 대신 함께 가 줍니다. 좋은 지도자, 좋은 신앙의 동역자는 약한 사람과 함께 걸어 줍니다.
그러나 대가가 있습니다.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것임이니라.” 고대 사회에서 군대 장관을 죽이는 것은 장군에게 최고의 영예였습니다. 그런데 그 영예가 바락에게 가지 않고 ‘한 여인’에게 갈 것입니다. 남성 중심의 고대 전쟁 문화에서 이것은 꽤 굴욕적인 일이었습니다.
여기서 독자는 당연히 ‘그 여인’이 드보라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야기가 진행되면 그 여인은 드보라가 아니라, 전혀 예상하지 못한 사람,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로 밝혀집니다(21절). 사사기 기자는 이렇게 독자의 기대를 뒤집으며 이야기를 끌고 갑니다.
“파실것임이니라.” 2:14과 3:8, 4:2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원수의 손에 ‘파셨습니다’. 이제 같은 말로 원수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십니다. 하나님은 파시기도 하고 되찾으시기도 하는 주권자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영광티프아레트 — ‘아름다움, 영예, 자랑’. 사 62:3 “너는 또 여호와의 손의 아름다운 면류관”.
여인의 손 — 고대 근동 문화에서 전사가 여인의 손에 죽는 것은 큰 수치였습니다. 9:54에서 아비멜렉은 여인이 던진 맷돌에 맞자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여자에게 죽었다 할까 하노라” 하며 병기 든 자에게 자기를 죽이라고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4:21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삿 9:53-54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사람들이 나를 가리켜 이르기를 그가 여인에게 죽었다 할까 하노라
삼상 2:30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고전 1:29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10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부르니 일만 인이 따라 올라가다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부르니 일만인이 그를 따라 올라가고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직역 바락이 스불론과 납달리를 게데스로 불러 모았다. 만 명이 그의 발 뒤를 따라 올라갔다.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갔다.
바락은 이제 움직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를 부르자, 일만 명이 그를 따라 올라갑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숫자 그대로입니다. 철병거 900대 앞에 무기도 변변치 않은 보병 일만 명. 사람의 눈으로 보면 계란으로 바위 치기입니다.
스불론과 납달리는 1장에서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했던 지파들입니다(1:30, 33). 그런데 이제 그들이 일어섭니다. 5:18의 드보라 노래는 이들을 이렇게 칭찬합니다. “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실패했던 지파도 하나님이 부르실 때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드보라도 그와 함께 올라가니라.” 드보라는 약속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백성과 함께 전쟁터로 올라갑니다. 그녀는 칼을 들지 않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 함께 갔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그를 따라 — 원문 ‘베라글라브’, ‘그의 발로’, 곧 ‘그의 발 뒤에서’. 5:15 “잇사갈의 방백들이 드보라와 함께하니… 바락의 발을 따라 골짜기로 달려 내려가니”.
5장의 지파들 — 5:14–18에서는 에브라임, 베냐민, 마길(므낫세), 스불론, 잇사갈, 납달리가 참여했고, 르우벤, 길르앗(갓), 단, 아셀은 오지 않았다고 노래합니다. 4장은 스불론과 납달리만 언급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5:18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납달리도 들의 높은 곳에서 그러하도다
사 9:1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으로 멸시를 당케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편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마 4:15-16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과…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떨리는 믿음도 한 걸음을 내디딜 때 귀합니다
바락은 담대한 영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과 약속이 있었는데도 “당신이 함께 가면 가겠다”고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결국 갔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를 통해 철병거 900대를 무너뜨리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은 그의 망설임이 아니라 그의 걸음을 기억합니다.
우리의 믿음도 종종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알면서도 떨리고, 누군가 함께 가 주기를 바랍니다. 괜찮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에게 드보라 같은 동역자를 보내 주십니다. 중요한 것은 떨림이 없는 것이 아니라, 떨면서도 하나님이 가라 하신 곳으로 한 걸음을 내딛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가리라” 말해 주는 드보라가 될 수 있습니다.
4:11–16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 철병거 구백 승이 무너지다
이 단락은 11절의 짧은 정보로 시작합니다.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 근처에 장막을 쳤다는 것입니다. 이야기의 흐름과 상관없어 보이는 이 정보는, 17절 이후의 결말을 위한 복선입니다.
그리고 전투가 시작됩니다. 시스라는 바락이 다볼산에 올랐다는 소식을 듣고 철병거 900대를 기손강으로 모읍니다. 드보라가 외칩니다. “일어나라!” 바락이 산에서 내려가고, 여호와께서 시스라의 군대를 혼란에 빠뜨리십니다. 4장은 전투 장면을 놀랍도록 짧게 기록합니다. 싸움의 주인공은 바락이 아니라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11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장막을 치다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 중 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직역 겐 사람 헤벨은 모세의 장인 호밥의 자손인 가인(겐 족속)에게서 갈라져 나와, 게데스 곁에 있는 차아난님의 큰 나무까지 그의 장막을 쳤다.
전투가 시작되기 직전, 성경은 갑자기 한 사람에 대한 정보를 끼워 넣습니다. 겐 사람 헤벨. 그는 1:16에서 유다와 함께 남쪽 광야에 정착한 겐 족속의 후손입니다. 모세의 장인 집안, 이스라엘과 오랜 우정을 나눈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헤벨은 “자기 족속을 떠나” 북쪽 게데스 근처까지 올라와 장막을 쳤습니다. 겐 사람은 대장장이 일을 하던 유목민으로 보입니다(1:16 노트 참고). 철병거 900대를 가진 야빈의 영토 근처에 온 것은 아마 사업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전차를 수리하고 철을 다룰 대장장이가 필요했을 테니까요. 실제로 17절은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고 말합니다. 헤벨은 이스라엘의 오랜 친구 집안이었지만, 이스라엘을 압제하는 왕과 손을 잡았습니다.
이 정보가 왜 여기에 있을까요? 독자는 처음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17절에 이르면 그 의미가 드러납니다. 시스라는 헤벨이 야빈과 화평한 사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그의 장막으로 도망칠 것입니다. 하나님은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시스라가 숨을 곳, 그리고 그가 최후를 맞을 곳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헤벨헤베르 — ‘동료, 동맹, 친구’. 그의 이름 자체가 ‘동맹’입니다. 그는 야빈과 동맹을 맺었지만, 그의 아내 야엘은 다른 선택을 합니다.
자기 족속을 떠나 — 원문 ‘니프라드 믹카인’. ‘카인’은 겐 족속을 가리키는 집합 명사로 쓰였습니다(민 24:22 “가인이 쇠미하리니”).
사아난님 — 수 19:33 납달리의 경계 “헬렙과 사아난님의 상수리나무”. 정확한 위치는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16모세의 장인은 겐 사람이라 그 자손이 유다 자손과 함께… 유다 황무지에 이르러 그 백성 중에 거하니라
민 10:29모세가 그 장인 미디안 사람 르우엘의 아들 호밥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주마 하신 곳으로 우리가 진행하나니 우리와 동행하자
삼상 15:6사울이 겐 사람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12바락이 다볼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산에 오른 것을 혹이 시스라에게 고하매
직역 사람들이 시스라에게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이 다볼 산에 올라갔다고 알렸다.
바락이 다볼산에 올랐다는 소식이 시스라에게 전해집니다. 누가 알렸을까요? 본문은 그냥 ‘그들이 알렸다’고만 합니다. 그런데 바로 앞 11절에서 야빈과 화평한 헤벨이 게데스 근처에 장막을 쳤다는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헤벨이 정보를 넘겼을 가능성을 암시하는 배치입니다.
하지만 이 소식이 전해진 것 자체가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7절에서 하나님은 “내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시스라는 정보를 얻었다고 생각했겠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펼치신 그물 속으로 끌려 들어가고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혹이 고하매 — 『개역한글』의 ‘혹이’는 ‘어떤 이가’라는 옛말입니다. 원문은 주어 없이 복수 동사 ‘그들이 알렸다’.
함께 읽을 말씀
잠 21:30지혜로도, 명철로도, 모략으로도 여호와를 당치 못하느니라
욥 5:13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13시스라가 철병거 구백 승과 온 군사를 기손강으로 모으다
시스라가 모든 병거 곧 철병거 구백승과 자기와 함께 있는 온 군사를 이방 하로셋에서부터 기손강으로 모은지라
직역 시스라가 그의 모든 병거, 곧 철 전차 구백 대와 그와 함께 있는 모든 백성을 민족들의 하로셋에서부터 기손 시내로 불러 모았다.
시스라는 그의 모든 힘을 끌어모읍니다. 철병거 구백 승과 온 군사. 그리고 그는 정확히 하나님이 7절에서 말씀하신 곳, 기손강으로 모입니다. 시스라는 자기 판단으로 최적의 전쟁터를 골랐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넓고 평평한 이스르엘 골짜기는 전차에게 완벽한 곳이었으니까요.
그러나 성경은 말없이 보여 줍니다. 시스라가 ‘모은’ 곳은 하나님이 그를 ‘이끄신’ 곳이었습니다. 사람은 자기가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그 결정까지 다스리십니다. 잠언 16:9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그리고 철병거 900대가 다시 강조됩니다. 3절, 13절. 이야기는 이 숫자를 두 번 말해서 독자가 그 위압감을 느끼게 합니다. 그래야 15절의 결과가 더 놀랍게 다가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모으다자아크 히필형 — ‘불러 모으다’. 3:9 이스라엘이 여호와께 ‘부르짖은’(자아크) 것과 같은 동사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께 부르짖었고, 시스라는 군대를 불러 모았습니다. 누구를 부르느냐가 승패를 갈랐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잠 16:9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시 33:10-11여호와께서 열방의 도모를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케 하시도다 여호와의 도모는 영영히 서고
14일어나라 —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드보라가 바락에게 이르되 일어나라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이에 바락이 일만명을 거느리고 다볼산에서 내려가니
직역 드보라가 바락에게 말하였다. “일어나라! 이것이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주신 날이다. 여호와께서 네 앞에 나가지 않으셨느냐?” 바락이 다볼 산에서 내려갔고, 만 명이 그의 뒤를 따랐다.
결정적인 순간에 드보라가 외칩니다. “일어나라.” 바락은 다볼산 위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산 위는 안전했습니다. 전차가 올라올 수 없으니까요. 그러나 승리는 산 위에 머물러서는 얻을 수 없습니다. 내려가야 합니다. 철병거가 기다리는 골짜기로.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 드보라는 선지자로서 하나님의 때를 압니다. 오늘이 바로 그 날입니다. 하나님의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너무 일찍 나가도 안 되고, 너무 늦게 나가도 안 됩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그 날’에 순종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사기 4장의 핵심 고백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원문은 완료형입니다. ‘여호와께서 네 앞에 나가지 않으셨느냐?’ 이미 나가셨다는 것입니다. 바락이 산에서 내려가기 전에, 하나님이 먼저 전쟁터에 나가 계셨습니다. 바락은 혼자 철병거와 맞서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이에 바락이… 다볼산에서 내려가니.” 이번에는 바락이 망설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곧바로 내려갑니다. 떨던 사람이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확신을 얻자 담대해졌습니다. 우리의 용기도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확신에서 나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앞서 행하다 — 원문 ‘야차 레파네카’, ‘네 얼굴 앞에서 나가셨다’. 신 1:30 “너희 앞서 행하시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신 31:8, 삼하 5:24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여호와의 날 — 사 9:4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하나님이 원수를 이기시는 날을 ‘그 날’로 기억하는 전통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1:8여호와 그가 네 앞서 행하시며 너와 함께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 말라 놀라지 말라
삼하 5:24뽕나무 꼭대기에서 걸음 걷는 소리가 들리거든 곧 동작하라 그 때에 여호와가 네 앞서 나아가서 블레셋 군대를 치리라
사 52:12여호와께서 너희 앞에 행하시며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너희 뒤에 호위하시리니
요 10:4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15여호와께서 시스라와 병거와 군대를 패하게 하시매 —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다
여호와께서 바락의 앞에서 시스라와 그 모든 병거와 그 온 군대를 칼날로 쳐서 패하게 하시매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직역 여호와께서 시스라와 그의 모든 병거와 그의 모든 진영을 바락 앞에서 칼날로 혼란에 빠뜨리셨다.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발로 도망쳤다.
전투 장면은 놀라울 만큼 짧습니다. 한 문장입니다. 그리고 그 문장의 주어는 바락이 아니라 여호와이십니다. “여호와께서… 패하게 하시매.”
‘패하게 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하맘’은 ‘혼란에 빠뜨리다, 공황 상태로 만들다’라는 뜻입니다. 출애굽기 14:24에서 하나님이 홍해에서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실 때, 여호수아 10:10에서 기브온에서 아모리 연합군을 “패하게” 하실 때 쓰인 말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개입하셔서 원수의 진영을 공황에 빠뜨리신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혼란에 빠뜨리셨을까요? 4장은 말하지 않지만, 5장의 노래가 그 비밀을 알려 줍니다.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5:20–21). 하나님이 큰 비를 내리셨고, 기손강이 범람했으며, 철병거 900대의 바퀴가 진흙에 빠졌습니다. 가장 강력했던 무기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었습니다. 바알을 ‘비의 신’으로 섬기던 가나안 사람들이, 여호와께서 보내신 비에 무너졌습니다.
그리고 “시스라가 병거에서 내려 도보로 도망한지라.” 철병거를 가장 믿었던 장군이 그 병거를 스스로 버리고 맨발로 도망칩니다. 사람이 의지하던 것이 무너지는 날이 옵니다. 시편 20:8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원어 · 번역 노트
패하게 하다하맘 — 출 14:24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수 10:10 “여호와께서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서 패하게 하시므로”, 삼상 7:10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뢰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도보로 — ‘베라글라브’, ‘그의 발로’. 10절에서 만 명이 바락의 ‘발’ 뒤를 따랐고, 이제 시스라는 자기 ‘발’로 도망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4:24-25여호와께서 불 구름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고 그 군대를 어지럽게 하시며 그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에 극난하게 하시니
삿 5:20-21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우되 그 다니는 길에서 시스라와 싸웠도다 기손강은 그 무리를 표류시켰으니
시 20:7-8혹은 병거, 혹은 말을 의지하나… 저희는 굽어 엎드러지고 우리는 일어나 바로 서도다
사 31:1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자들은 화 있을찐저 그들은 말을 의뢰하며 병거의 많음과… 의지하고
16바락이 하로셋까지 추격하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칼에 엎드러졌다
바락이 그 병거들과 군대를 추격하여 이방 하로셋에 이르니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직역 바락은 병거들과 진영을 뒤쫓아 민족들의 하로셋까지 갔다. 시스라의 온 진영이 칼날에 쓰러졌고, 한 사람도 남지 않았다.
바락은 도망치는 군대를 이방 하로셋까지 추격합니다. 시스라의 본거지까지 쫓아간 것입니다. 그리고 “시스라의 온 군대가 다 칼에 엎드러졌고 남은 자가 없었더라.” 3:29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와 같은 완전한 승리입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 빠졌습니다. 시스라 자신입니다. 바락은 군대를 쫓아 서쪽 하로셋으로 갔지만, 시스라는 동쪽(또는 북쪽)으로 도망쳤습니다. 군대는 다 무너졌지만, 우두머리는 아직 살아 있습니다. 이제 이야기는 전쟁터를 떠나 한 장막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9절의 예언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것임이니라”가 이루어질 시간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남은 자가 없었더라 — 출 14:28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와 같은 표현. 4장의 승리를 출애굽의 홍해 승리처럼 그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4:28물이 다시 흘러 병거들과 기병들을 덮되 그들의 뒤를 쫓아 바다에 들어간 바로의 군대를 다 덮고 하나도 남기지 아니하였더라
삿 3:29모압 사람 일만명 가량을 죽였으니…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이 앞서 가신 곳으로 내려가십시오
바락은 다볼산 위에 있으면 안전했습니다. 그러나 승리는 철병거가 기다리는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드보라는 외쳤습니다. “일어나라!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바락이 내려가자, 하나님은 이미 그 골짜기에서 일하고 계셨습니다. 하늘에서 비를 내리시고, 기손강을 넘치게 하시고, 철병거를 진흙에 빠뜨리셨습니다.
우리도 안전한 산 위에 머물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은 종종 두려운 골짜기입니다. 기억하십시오. 우리가 내려가기 전에, 하나님이 이미 그곳에 가 계십니다. 우리는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신 하나님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4:17–22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 — 젖과 이불, 그리고 장막 말뚝
전쟁터에서 도망친 시스라는 겐 사람 헤벨의 장막으로 갑니다. 헤벨은 야빈과 화평한 사이였기에, 그곳이 안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를 맞은 것은 헤벨의 아내 야엘이었습니다.
이 단락은 3장의 에훗 이야기와 짝을 이룹니다. 원수의 우두머리가 홀로 있는 은밀한 공간, 방심한 순간의 공격, 그리고 뒤늦게 들어온 사람이 발견하는 시체. 그리고 9절의 예언이 성취됩니다. 영광은 장군 바락이 아니라 한 유목민 여인에게 돌아갑니다.
17시스라가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 야빈은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시스라가 도보로 도망하여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이르렀으니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직역 시스라는 발로 도망쳐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으로 갔다. 하솔 왕 야빈과 겐 사람 헤벨의 집 사이에 평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시스라는 병거를 버리고 맨발로 도망쳐 야엘의 장막에 이릅니다. 왜 그곳이었을까요? 성경이 이유를 말해 줍니다. “하솔 왕 야빈은 겐 사람 헤벨의 집과 화평이 있음이라.” 11절에서 심어 둔 복선이 여기서 드러납니다. 시스라는 동맹의 집으로 피했습니다. 그곳이라면 안전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주목할 점이 있습니다. 시스라가 간 곳은 ‘헤벨의 장막’이 아니라 ‘야엘의 장막’입니다. 고대 유목민 사회에서 아내는 자기 장막을 따로 가지고 있었습니다(창 24:67 사라의 장막, 31:33 레아와 라헬의 장막). 그리고 낯선 남자가 다른 사람의 아내의 장막에 들어가는 것은 매우 부적절한 일이었습니다. 아무도 남자가 여인의 장막에 숨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할 것이라고 시스라는 계산했을지도 모릅니다.
야엘. 이름의 뜻은 ‘산양’입니다. 험한 바위산을 날렵하게 오르내리는 짐승입니다. 남편 헤벨은 야빈과 동맹을 맺었지만, 야엘은 다른 선택을 할 것입니다. 남편의 정치적 동맹보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편에 설 것입니다. 그녀는 겐 족속, 곧 모세의 장인 집안의 오랜 신앙과 이스라엘과의 우정을 기억했을지도 모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야엘야엘 — ‘산양, 야생 염소’. 시 104:18 “높은 산들은 산양을 위함이여”, 욥 39:1.
아내의 장막 — 창 24:67, 31:33. 유목민 사회에서 여인의 장막은 그 남편 외의 남자가 들어갈 수 없는 사적 공간이었습니다.
화평샬롬 — 여기서는 정치적 ‘평화 조약’. 삼상 7:14 “이스라엘과 아모리 사람 사이에 평화가 있었더라”.
함께 읽을 말씀
삿 4:11겐 사람 헤벨이 자기 족속을 떠나 게데스에 가까운 사아난님 상수리나무 곁에 이르러 장막을 쳤더라
삿 5:24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장막에 거한 여인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로다
시 118:8-9여호와께 피함이 사람을 신뢰함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함이 방백들을 신뢰함보다 낫도다
18야엘이 나가 영접하며 —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두려워하지 마소서
야엘이 나가 시스라를 영접하며 그에게 말하되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하매 그 장막에 들어가니 야엘이 이불로 덮으니라
직역 야엘이 시스라를 맞으러 나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내 주여, 돌아서 들어오십시오. 내게로 돌아서 들어오십시오.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가 그녀에게로 돌아서 장막에 들어갔고, 그녀는 덮개로 그를 덮었다.
야엘은 시스라를 먼저 나가서 맞이합니다. 그리고 정중하게 말합니다. “나의 주여 들어오소서 내게로 들어오시고 두려워하지 마소서.” ‘들어오소서’를 두 번 말합니다. 간곡한 환대입니다. 전쟁에서 지고 맨발로 도망쳐 온 장군에게, 이보다 더 반가운 말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두려워하지 마소서”라는 말이 묘합니다. 성경에서 이 말은 대개 하나님이나 하나님의 사자가 하는 위로의 말입니다(창 15:1, 수 1:9, 삿 6:23). 그런데 여기서는 원수를 죽일 사람이 원수에게 하는 말입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아이러니를 독자가 느끼게 합니다. 시스라는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순간에 “두려워하지 마소서”라는 말을 듣고 안심합니다.
그리고 야엘은 이불로 그를 덮습니다. 지친 손님을 위한 배려처럼 보입니다. 또한 누가 장막을 들여다보더라도 그가 보이지 않게 숨기는 것처럼 보입니다. 시스라는 완전히 안심했을 것입니다.
창 18:2-5장막 문에서 달려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당신들의 마음을 쾌활케 하신 후에 지나가소서
잠 26:24-25감정 있는 자는 입술로는 꾸미고 속에는 궤휼을 품나니 그 말이 좋을찌라도 믿지 말 것은
살전 5:3저희가 평안하다, 안전하다 할 그 때에 잉태된 여자에게 해산 고통이 이름과 같이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19물을 조금 마시우라 — 젖부대를 열어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시스라가 그에게 말하되 청하노니 내게 물을 조금 마시우라 내가 목이 마르도다 하매 젖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우고 그를 덮으니
직역 그가 그녀에게 말하였다. “제발 내게 물 조금만 마시게 해 주시오. 목이 마르오.” 그녀가 우유 부대를 열어 그에게 마시게 하였고, 그를 덮었다.
시스라가 물을 조금 달라고 합니다. 전쟁터에서 맨발로 수십 킬로미터를 도망쳐 왔으니 목이 몹시 말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야엘은 물 대신 젖을 줍니다. 5:25의 노래는 이것을 이렇게 말합니다.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젖을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물을 구했는데 더 좋은 것, 귀한 손님에게 대접하는 것을 줍니다.
왜 젖을 주었을까요? 환대의 표시이기도 하지만, 따뜻한 우유나 엉긴 젖(요구르트 같은 발효유)은 사람을 나른하게 하고 잠이 오게 합니다. 지친 몸에 따뜻한 젖을 마신 시스라는 곧 깊은 잠에 빠집니다(21절). 야엘은 손님을 대접하면서 동시에 다음 일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를 덮으니.” 18절에 이어 두 번째로 그를 덮습니다. 아이를 재우는 어머니처럼. 사사기 기자는 이 장면을 부드럽게 그려서, 바로 다음에 올 장면과 날카로운 대조를 만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젖부대 — 가죽으로 만든 부대에 우유를 담아 흔들어 버터나 엉긴 젖(할라브, 헴아)을 만들었습니다. 지금도 베두인 유목민들이 이런 방식을 씁니다.
5장과의 비교 — 5:25 “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젖을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 주었고”. 4장은 ‘젖부대’, 5장은 ‘귀한 그릇’에 담은 ‘엉긴 젖’으로 노래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5:25시스라가 물을 구하매 우유를 주되 곧 엉긴 젖을 귀한 그릇에 담아주었고
창 18:8아브라함이 뻐터와 우유와 하인이 요리한 송아지를 가져다가 그들의 앞에 진설하고
잠 25:21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20장막 문에 섰다가 누가 묻거든 없다 하라
그가 또 가로되 장막문에 섰다가 만일 사람이 와서 네게 묻기를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하고
직역 그가 그녀에게 말하였다. “장막 문에 서 있다가, 누가 와서 너에게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고 묻거든 너는 ‘없다’고 하라.”
시스라는 야엘에게 망을 봐 달라고 부탁합니다. “만일 사람이 와서… 여기 어떤 사람이 있느냐 하거든 너는 없다 하라.” 장군이 유목민 여인에게 거짓말을 시키며 자기 목숨을 맡깁니다. 900대의 철병거를 거느리던 사람이 이제 한 여인의 입에 모든 것을 걸고 있습니다.
여기에도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사람’(이쉬)이 있느냐고 묻거든 ‘없다’고 하라. 원문에서 ‘이쉬’는 ‘사람’이면서 ‘남자, 용사’라는 뜻도 됩니다. 시스라는 곧 정말로 ‘없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쓰러지는 것은 ‘남자’의 손이 아니라 ‘여인’의 손에 의해서입니다. 바락이 왔을 때 그 장막에는 ‘용사’가 없고, 죽은 사람만 누워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문법적으로도 재미있는 점이 있습니다. 시스라는 야엘에게 명령하면서 ‘서 있으라’를 남성형 명령문으로 말합니다(히브리어 본문). 실수일 수도 있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이 장면의 성 역할 뒤집기를 보여 주는 의도된 표현으로 봅니다. 문을 지키는 ‘남자’ 역할을 여인이 맡고, 장군은 이불 속에 숨어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섰다가 — 원문 ‘아모드’. 여성에게 하는 명령인데 남성 명령형(또는 부정사)으로 되어 있습니다. 일부 사본은 여성형 ‘이메디’로 고쳤습니다.
사람이쉬 — ‘사람, 남자, 남편’. 22절 “네가 찾는 사람(이쉬)”.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9:14사울이 사자들을 보내어 다윗을 잡으려 하매 미갈이 가로되 그가 병들었느니라
시 33:16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21야엘이 장막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시스라가 죽으니라
그가 곤비하여 깊이 잠든지라 헤벨의 아내 야엘이 장막 말뚝을 취하고 손에 방망이를 들고 그에게로 가만히 가서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시스라가 기절하여 죽으니라
직역 그러나 헤벨의 아내 야엘은 장막 말뚝을 가지고 망치를 손에 들고, 그에게로 조용히 가서 그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았다. 그것이 땅에까지 꿰뚫고 들어갔다. 그는 깊이 잠들어 있었고 지쳐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
시스라가 깊이 잠듭니다. 그 순간 야엘이 움직입니다. 그녀의 손에는 칼이 아니라 장막 말뚝과 방망이가 들려 있습니다. 유목민 사회에서 장막을 치고 걷는 것은 여인들의 일이었습니다. 야엘은 평생 수없이 장막 말뚝을 땅에 박아 왔을 것입니다. 그녀가 가장 익숙하게 다루던 도구가 그녀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3:31 삼갈의 소 모는 막대기처럼, 하나님은 평범한 사람이 늘 쓰던 평범한 도구를 쓰십니다.
“말뚝을 그 살쩍에 박으매 말뚝이 꿰뚫고 땅에 박히니.” 장막을 땅에 고정하듯, 그녀는 시스라를 땅에 고정시켰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9절의 예언을 성취하십니다.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것임이니라.” 그 여인은 드보라가 아니라 야엘이었습니다.
이 장면은 오늘의 독자에게 불편할 수 있습니다. 야엘은 손님을 대접하는 척하다가 잠든 사람을 죽였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손님 환대는 신성한 의무였습니다. 그러나 사사기와 드보라의 노래(5:24–27)는 야엘을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그 이유는 이것이 개인적인 살인이 아니라,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심히 학대한” 원수의 장군을 하나님의 심판대로 넘긴 전쟁의 마지막 장면이었기 때문입니다. 야엘은 남편의 동맹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하나님 편에 서기로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장면은 성경 전체를 꿰는 한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창세기 3:15에서 하나님은 뱀에게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짓누르던 원수의 ‘머리’가 한 ‘여인’의 손에 박살 납니다. 9:53에서 아비멜렉도 한 여인이 던진 맷돌에 ‘머리’가 깨집니다. 그리고 이 모든 장면은 마침내 여자의 후손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실 날을 가리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원문 순서 — 히브리어 본문은 말뚝을 박는 장면을 다 묘사한 뒤에 “그는 깊이 잠들어 있었고 지쳐 있었다. 그리고 그가 죽었다”를 붙입니다. 『개역한글』은 읽기 쉽게 순서를 바꾸었습니다.
곤비하여아이프 — ‘지치다, 기진하다’. 『개역한글』은 ‘기절하여 죽으니라’로 옮겼지만, 원문의 ‘바야아프’를 ‘그가 지쳐 있었다’로 보아 죽음 직전의 상태로 읽는 학자가 많습니다.
살쩍라카 — ‘관자놀이’. 아 4:3, 6:7 “너울 속의 네 뺨은 석류 한 쪽 같구나”.
5장의 노래 — 5:26–27은 이 장면을 시적으로 다시 노래합니다. “손으로 말뚝을 잡으며 오른손에 장인의 방망이를 들고 시스라를 쳐서 그 머리를 뚫되 곧 그 살쩍을 꿰뚫었도다”.
함께 읽을 말씀
창 3:15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삿 5:24-27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은 다른 여인보다 복을 받을 것이니… 시스라를 쳐서 머리를 뚫되 곧 살쩍을 꿰뚫었도다
삿 9:53한 여인이 맷돌 윗짝을 아비멜렉의 머리 위에 내려 던져 그 두골을 깨뜨리니
삼상 17:49돌이 그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롬 16:20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단을 너희 발 아래서 상하게 하시리라
22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보이리라 — 시스라가 죽어 누웠더라
바락이 시스라를 따를 때에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아 가로되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이 그에게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직역 그리고 보라, 바락이 시스라를 쫓아오고 있었다. 야엘이 그를 맞으러 나가서 그에게 말하였다. “오십시오. 당신이 찾고 있는 사람을 보여 드리겠습니다.” 그가 그녀에게로 들어갔다. 그리고 보라, 시스라가 쓰러져 죽어 있었고 말뚝이 그의 관자놀이에 박혀 있었다.
시스라를 쫓던 바락이 마침내 도착합니다. 그리고 야엘이 나가서 그를 맞습니다. 18절에서 시스라를 맞이했던 것과 똑같은 방식입니다. 같은 장막 문 앞, 같은 여인, 다른 손님. 한 사람에게는 죽음의 환대였고, 한 사람에게는 승리의 환대였습니다.
“오라 내가 너의 찾는 사람을 네게 보이리라.” 바락은 이 말을 듣고 장막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그가 본 것은 이미 죽어 누운 시스라였습니다. 바락이 그토록 쫓던 원수는 이미 한 여인의 손에 쓰러져 있었습니다. 9절에서 드보라가 한 말 그대로입니다. “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바락은 이 장면 앞에서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성경은 말하지 않습니다. 아쉬웠을까요, 부끄러웠을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정확히 이루어진 것에 놀랐을까요?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영광을 누구에게 주실지 스스로 정하십니다.
이 장면은 3:25 에훗 이야기의 끝과 비슷합니다. 모압 신하들이 문을 열고 보니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여기서도 바락이 장막에 들어가 보니 “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두 압제자 모두 은밀한 방에서, 뒤늦게 들어온 사람에게 발견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보라 — 원문은 22절에 ‘보라(힌네)’를 두 번 씁니다. ‘보라, 바락이 쫓아오고 있었다… 보라, 시스라가 쓰러져 죽어 있었다’. 3:24–25 에훗 이야기에서도 ‘보라’가 두 번 나옵니다.
찾는 사람 — ‘아쉐르 아타 메박케쉬’, ‘네가 찾고 있는 그 사람’. 영광을 찾던 장군에게, 찾던 사람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영광은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되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3:25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삿 4:9네가 이제 가는 일로는 영광을 얻지 못하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것임이니라
사 42:8나는 여호와니 이는 내 이름이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리라
야엘의 손에는 칼도 창도 없었습니다. 그녀가 가진 것은 매일 장막을 칠 때 쓰던 말뚝과 방망이였습니다. 그리고 그녀가 한 선택은 남편이 맺은 정치적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편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택과 그 평범한 도구를 통해 20년의 압제를 끝내셨습니다.
우리에게도 매일 손에 익은 것이 있습니다. 부엌의 도구, 직장의 컴퓨터, 집안일, 아이를 돌보는 손.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도 하나님 나라의 일을 하실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손이 누구 편에 서느냐입니다. 세상의 동맹보다 하나님 편에 서기로 선택할 때, 평범한 손이 하나님의 손이 됩니다.
4:23–24이 날에 하나님이 야빈을 굴복시키시니 — 점점 더 이기어 마침내 진멸하였더라
4장의 마지막 두 절은 이 모든 이야기를 신학적으로 요약합니다. 승리를 거둔 것은 바락도, 드보라도, 야엘도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패하게 하신지라.” 그리고 그 승리는 하루로 끝나지 않고 점점 더 커져서, 마침내 야빈을 완전히 멸합니다.
이어지는 5장은 이 승리를 노래로 다시 부릅니다. 4장의 마지막은 그 노래로 들어가는 문입니다.
23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이와 같이 이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패하게 하신지라
직역 그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을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시키셨다.
4장의 결론입니다. “이 날에 하나님이… 패하게 하신지라.” 이 모든 일의 주어는 하나님이십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고, 바락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내려갔고, 야엘은 하나님의 원수를 쓰러뜨렸습니다. 그러나 사사기 기자는 마지막에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립니다. 9절에서 영광이 바락에게 가지 않을 것이라 했는데, 결국 영광은 야엘에게도 아니고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이 날에.” 14절에서 드보라는 “이는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네 손에 붙이신 날이라”고 외쳤습니다. 그 날이 정말 그런 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날은 반드시 옵니다.
‘패하게 하다’로 옮긴 히브리어 ‘카나’는 ‘낮추다, 굴복시키다’라는 뜻입니다. 3:30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와 같은 말입니다. 20년 동안 이스라엘을 짓누르던 높은 자가 하나님 앞에서 낮아졌습니다.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하였느니라”(약 4:6).
원어 · 번역 노트
하나님 — 4장 본문에서 주로 ‘여호와’를 쓰다가 여기서는 ‘엘로힘’(하나님)을 씁니다. 이스라엘의 언약의 하나님이 동시에 온 세상의 주권자 하나님이심을 강조하는 듯합니다.
굴복시키다카나 히필형 — 대상 17:10 “네 모든 대적으로 네게 복종하게 하리라”, 시 81:14.
함께 읽을 말씀
삿 3:30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시 44:5-8우리가 주를 의지하여 우리 대적을 누르고… 나는 내 활을 의지하지 아니할 것이라 내 칼도 나를 구원치 못하리이다
시 115:1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의 인자하심과 진실하심을 인하여 주의 이름에 돌리소서
약 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24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점점 더 이기어 마침내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을 점점 더 이기어서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직역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가나안 왕 야빈 위에 점점 더 무겁게 내려졌고, 마침내 그들이 가나안 왕 야빈을 끊어 내었다.
승리는 하루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손이… 점점 더 이기어서.” 원문은 ‘가면서 점점 더 무거워졌다’입니다. 처음 승리가 다음 승리로 이어지고, 이스라엘의 힘이 점점 더 강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23절에서 하나님이 야빈을 굴복시키셨고, 24절에서 이스라엘의 손이 그 일을 완성합니다. 하나님의 일과 사람의 일이 이렇게 함께 갑니다. 하나님이 길을 여시고, 사람은 그 길을 끝까지 걸어갑니다. 1장에서 이스라엘은 ‘쫓아내지 못하였다’로 멈췄지만, 4장에서는 ‘마침내 진멸하였다’까지 갑니다.
이 승리의 의미는 큽니다. 하솔은 가나안 북쪽 최대의 도시였고, 야빈은 가나안 세력의 중심이었습니다. 그가 무너지자 이스라엘은 북쪽 갈릴리에서 숨을 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5:31은 이 승리 뒤에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고 말합니다. 그 승리를 기념하는 노래가 바로 5장, 드보라와 바락의 노래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점점 더 — 원문 ‘할로크 베카쇼’, ‘가는 것과 무거운 것’. 히브리어에서 ‘가다(할라크)’의 부정사를 붙이면 ‘점점 더 ~하다’라는 뜻이 됩니다(창 8:3, 26:13 “그 사람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삼하 3:1).
진멸하다카라트 히필형 — ‘잘라 내다, 끊어 버리다’. 2:2 ‘언약을 세우다(카라트)’와 같은 동사입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언약을 ‘자르지’ 말아야 했고, 이제 가나안 왕을 ‘잘라 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5:31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잠 4:18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빌 1:6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영광은 하나님께, 그리고 끝까지 갑니다
4장은 드보라, 바락, 야엘이라는 세 사람의 이야기이지만, 마지막 문장은 하나님의 이야기로 끝납니다. “하나님이… 패하게 하신지라.” 누가 더 큰 공을 세웠는지 다툴 필요가 없습니다.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 돌아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시작하신 승리를 이스라엘은 끝까지 이어 갔습니다. 1장의 ‘쫓아내지 못하였다’에서 멈추지 않고, 4장의 ‘마침내 진멸하였다’까지. 신앙의 싸움도 하루의 승리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열어 주신 문을 끝까지 걸어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이 할 일입니다.
Iron Chariots · 정리
1장의 철병거와 4장의 철병거
같은 무기, 다른 결말 — 차이는 철병거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었습니다
1:19 유다
4장 바락
적의 무기
철병거
철병거 구백 승
하나님의 약속
“여호와께서 유다와 함께 하신 고로”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7절)
사람의 반응
골짜기의 거민을 쫓아내지 못함
망설였지만 결국 산에서 내려감
하나님의 일
(기록 없음)
기손강을 넘치게 하시고 원수를 혼란에 빠뜨리심
결과
가나안 사람이 남아 이스라엘을 괴롭힘
“마침내 가나안 왕 야빈을 진멸하였더라”
철병거는 처음부터 하나님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여호수아는 이미 “가나안 사람이 비록 철병거를 가졌고 강할찌라도 네가 능히 그를 쫓아내리라”(수 17:18)고 했습니다. 4장은 그 말이 사실이었음을 보여 줍니다. 차이를 만든 것은 무기의 크기가 아니라, 하나님이 앞서 가신다는 말씀을 믿고 골짜기로 내려가느냐였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4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도읍都邑 · 2절
나라의 수도로 삼아 다스림.
군대 장관軍隊將官 · 2, 7절
군대를 지휘하는 장군.
이방 하로셋2, 13, 16절
‘민족들의 하로셋’. 시스라의 기지.
승乘 · 3, 13절
수레나 전차를 세는 단위.
학대虐待 · 3절
심하게 괴롭히고 짓누름.
여선지女先知 · 4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여인.
사사士師 · 4절
하나님이 세우신 재판관이자 구원자.
재판裁判 · 5절
옳고 그름을 판단함. 원문 미쉬파트.
기손강7, 13절
이스르엘 골짜기를 흐르는 강. 비가 오면 범람한다.
상수리나무11절
큰 나무. 원문 엘론.
혹이12절
어떤 이가, 누군가가.
도보徒步 · 15, 17절
걸어서 감.
영접迎接 · 18절
손님을 맞아들임.
젖부대19절
우유를 담은 가죽 부대.
곤비困憊 · 21절
몹시 지쳐 고단함.
장막 말뚝21–22절
천막을 땅에 고정하는 나무 말뚝.
방망이21절
말뚝을 박는 망치, 메.
살쩍21–22절
관자놀이. 귀와 눈 사이의 머리 옆쪽.
진멸殄滅 · 24절
남김없이 없앰. 여기서는 원문 ‘잘라 냄’.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장에서 피했던 철병거가 4장에서는 900대가 되어 돌아왔습니다. 내가 오래전 피했던 문제 가운데 지금 더 커져서 나를 짓누르는 것이 있습니까?
드보라는 종려나무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백성을 섬겼습니다. 나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 주는 ‘드보라’는 누구입니까? 그리고 나는 누구에게 그런 사람이 되어 줄 수 있을까요?
바락은 “당신이 함께 가면 가겠다”고 했지만 결국 갔습니다. 하나님이 가라 하시는데 내가 조건을 걸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여호와께서 너의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14절). 지금 내 앞에 놓인 두려운 골짜기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이미 그곳에 가 계신다는 사실이 어떤 용기를 줍니까?
야엘은 남편의 동맹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편에 섰습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나는 어느 편에 서 있습니까?
야엘은 매일 손에 익은 장막 말뚝을 들었습니다. 내 일상에서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손에 익은 것’은 무엇입니까?
4장의 마지막은 “하나님이 패하게 하신지라”로 끝납니다. 최근 내 삶의 작은 승리에서, 나는 영광을 누구에게 돌리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