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31절까지 — 남겨 두신 열국, 모범 사사 옷니엘, 왼손잡이 에훗, 그리고 소 모는 막대기의 삼갈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JUDGES 3:9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3장 들어가며
2장이 그려 준 설계도가 3장에서 처음으로 실제 이야기가 되어 돌아가기 시작합니다
3장은 사사 이야기의 첫 장입니다. 그러나 곧바로 영웅이 등장하지는 않습니다. 먼저 1–6절에서 2장의 마지막 주제, 곧 하나님이 왜 가나안 민족들을 남겨 두셨는지를 마무리합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그 민족들과 결국 어떻게 되었는지 보여 줍니다. 혼인하고,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6절). 2장의 경고가 현실이 되었습니다.
이어서 세 명의 사사가 등장합니다. 옷니엘(7–11절)은 짧지만 완벽한 이야기입니다. 2장의 순환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있어서, 사사 이야기의 ‘표준 모델’ 역할을 합니다. 에훗(12–30절)은 반대로 길고 생생하며 극적입니다. 왼손잡이 암살자, 몸집이 큰 이방 왕, 잠긴 다락방, 그리고 우스꽝스러운 신하들. 사사기 기자는 여기서 이야기꾼의 솜씨를 마음껏 보여 줍니다. 그리고 삼갈(31절)은 단 한 절로 지나갑니다.
세 사사는 모두 다릅니다. 옷니엘은 명문가 출신의 정통 용사, 에훗은 장애를 가진 듯한 왼손잡이, 삼갈은 이방 이름을 가진 농부. 그러나 세 이야기 모두 같은 고백으로 모입니다. 구원은 사람이 아니라 여호와께서 세우신 구원자를 통해 온다는 것입니다.
핵심 구절
3:9–10
부르짖음 → 구원자를 세우심 → 여호와의 신이 임하심. 사사 이야기의 뼈대입니다.
표준 모델
옷니엘
흠 없이 기록된 유일한 사사. 이후 사사들을 재는 잣대가 됩니다.
뜻밖의 도구
에훗의 왼손
‘오른손의 아들’ 베냐민 지파의 왼손잡이. 하나님은 약점을 통로로 쓰십니다.
한 절의 사사
삼갈
소 모는 막대기로 육백 명. 손에 든 평범한 것으로 일하시는 하나님.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3절 “방백”
方伯, 원문 세렌. 블레셋 다섯 도시의 통치자를 부르는 특별한 칭호.
3절 “하맛 어구”
레보 하맛. ‘하맛으로 들어가는 길목’, 이스라엘 땅의 북쪽 끝.
7절 “아세라들”
가나안의 어머니 여신. 나무 기둥 형태로 세운 상.
8절 “구산 리사다임”
‘이중으로 악한 구산’이라는 뜻. 별명으로 보인다.
10절 “여호와의 신”
여호와의 영(루아흐). 사사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
11절 “태평”
太平, 원문 샤카트 ‘조용하였다, 쉬었다’.
15절 “왼손잡이”
원문 ‘오른손이 묶인(막힌) 자’. 장애인지 훈련인지 해석이 갈린다.
16절 “한 규빗”
원문 고메드. 일반 규빗(약 45cm)보다 짧은 길이로 보인다(약 30cm 남짓).
17절 “비둔한”
肥鈍, 살이 쪄서 둔함. 원문 바리 ‘살진’.
19절 “돌 뜨는 곳”
원문 페실림. ‘새긴 상들’, 우상들이 서 있던 곳으로 보는 해석이 많다.
19절 “종용케 하라”
從容, 조용히 하라. 원문 하스 ‘쉿!’.
24절 “발을 가리우신다”
용변을 보다의 완곡한 표현.
29절 “역사요 용사”
力士, 살지고 힘센 자들. 원문 샤멘 ‘기름진’.
31절 “소 모는 막대기”
끝에 쇠 꼬챙이를 단 긴 막대기. 원문 말마드 하바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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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6이스라엘을 시험하려 남겨 두신 민족들 — 그리고 결국 섞여 버린 이스라엘
2:20–23에서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들을 남겨 두신 이유를 ‘시험’이라고 하셨습니다. 3:1–6은 그 이야기를 이어서 두 가지를 더 말합니다. 하나는 남겨 두신 민족이 누구인가(3절), 또 하나는 그들을 남겨 두신 두 번째 이유, 곧 전쟁을 가르치시려는 것입니다(2절).
그리고 5–6절에서 이 단락은 슬프게 끝납니다. 이스라엘은 시험을 통과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가나안 민족들 사이에 살면서 혼인하고, 그들의 신을 섬겼습니다. 1장부터 시작된 타협이 마침내 가정과 예배까지 삼켜 버렸습니다.
1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직역 이것들이 여호와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이다. 그들로 이스라엘, 곧 가나안의 모든 전쟁을 알지 못한 모든 자를 시험하려 하셨다.
3장은 2장 끝의 주제를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들을 남겨 두셔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셨습니다. 대상은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 곧 2:10의 ‘다른 세대’입니다.
앞 세대는 여호수아와 함께 싸웠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여리고 성벽을 무너뜨리시고, 하늘에서 우박을 내리시며, 해를 멈추게 하신 전쟁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는 그 전쟁을 몰랐습니다. 이야기로 들었을지는 몰라도, 하나님이 앞서 싸우시는 것을 직접 경험한 적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도 그 경험을 주기를 원하셨습니다. 남겨 두신 민족들은 그 경험의 무대가 될 것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원문의 구조 — 1절 원문은 “이것들이 여호와께서 남겨 두신 민족들이니”로 시작해서, 그 목적을 설명한 뒤 3절에서 민족의 목록을 줍니다. 『개역한글』은 문장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순서를 조정했습니다.
알다야다 — 2:10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와 같은 동사. 다음 세대는 하나님도, 하나님의 전쟁도 ‘알지’ 못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2:22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수 23:3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이 모든 나라에 행하신 일을 너희가 다 보았거니와 너희 하나님 여호와 그는 너희를 위하여 싸우신 자시니라
출 14:14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2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가르쳐 알게 하려 하사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 중에 아직 전쟁을 알지 못하는 자에게 그것을 가르쳐 알게 하려하사 남겨두신 열국은
직역 오직 이스라엘 자손의 세대들로 알게 하시려고, 전에 그것을 알지 못한 자들에게 전쟁을 가르치시려고 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민족들을 남겨 두신 두 번째 이유가 나옵니다. 전쟁을 가르쳐 알게 하시려고. 이 말은 이상하게 들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좋아하셔서 싸우는 법을 가르치셨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전쟁’은 단순히 칼 쓰는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 싸우시는 전쟁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전쟁은 언제나 ‘여호와의 전쟁’이었습니다(민 21:14, 삼상 17:47). 그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묻고,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었습니다. 다음 세대는 이것을 배워야 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편안한 땅에서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고 착각하지 않도록, 하나님 없이는 이길 수 없는 상황을 남겨 두셨습니다.
신앙은 이야기로만 전해지지 않습니다. 직접 부딪치고, 넘어지고, 부르짖고,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할 때 ‘알게’ 됩니다. 우리 인생에 남겨진 어려움들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 우리가 직접 하나님을 경험하기를 원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가르치다라마드 강세형 — ‘가르치다, 훈련하다’. 신 4:10 “나 경외함을 배우게 하며 그 자녀에게 가르치게 하려”. 시 144:1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여호와의 전쟁 — 신명기 20장은 이스라엘의 전쟁 규칙을 줍니다. 제사장이 먼저 나서서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대적을 치고 너희를 구원하시는”(신 20:4)고 선포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44:1나의 반석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저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치게 하시도다
삼상 17:47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엡 6: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3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사람과 시돈 사람과 히위 사람
블레셋 다섯 방백과 가나안 모든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산에서부터 하맛 어구까지 레바논산에 거하는 히위 사람이라
직역 블레셋의 다섯 통치자와 모든 가나안 사람과 시돈 사람과, 바알 헤르몬 산에서부터 하맛 어귀까지 레바논 산에 사는 히위 사람이다.
남겨 두신 민족들의 목록입니다. 남서쪽 해안의 블레셋, 땅 곳곳의 가나안 사람, 북서쪽 해안의 시돈 사람, 그리고 북쪽 레바논 산지의 히위 사람. 지도로 그려 보면 이스라엘을 남서쪽에서 북쪽까지 둘러싼 띠 모양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방에 시험거리를 두고 살아야 했습니다.
이 목록의 첫머리에 블레셋이 있다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사사기 후반부의 삼손 이야기(13–16장), 사무엘상의 엘리와 사무엘과 사울과 다윗 이야기까지,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가장 오래되고 강력한 적이 됩니다. 1:18에서 유다가 가사와 아스글론과 에그론을 ‘취했다’고 했지만, 결국 그들은 남았습니다.
그리고 시돈은 2:13에서 말한 아스다롯 숭배의 중심지였습니다(왕상 11:5).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가장 강력한 군사적 적(블레셋)과 가장 강력한 종교적 유혹(시돈) 사이에 두셨습니다. 그 앞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택하는지 보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방백세렌 — 블레셋 통치자에게만 쓰이는 특별한 말. 히브리어가 아니라 블레셋 사람들이 쓰던 말로, 헬라어 ‘튀라노스’(통치자, 영어 tyrant의 어원)와 관련이 있다고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블레셋이 에게해 쪽에서 왔다는 증거로 봅니다.
히위 사람 — 수 9:7 기브온 사람도 히위 사람이었습니다. 창 34:2 세겜의 하몰도 히위 사람. 수 11:3 “미스바 땅 헤르몬산 아래 히위 사람들”.
레보 하맛 — 민 34:8, 수 13:5, 왕상 8:65. 하맛은 오늘날 시리아 중부의 하마. ‘레보’를 지명으로 보아 ‘르보하맛’으로 옮기는 번역도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13:2-6이 남은 땅은 이러하니 블레셋 사람의 온 지방과… 헤르몬산 아래 바알갓에서부터 하맛에 들어가는 곳까지와
삼상 4:1-11블레셋 사람이 쳤더니 이스라엘이 패하여…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왕상 11:5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4모세로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남겨두신 이 열국으로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직역 그들이 이스라엘을 시험하는 도구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손으로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하신 여호와의 명령들을 그들이 듣는지 알려고 하신 것이다.
시험의 목적이 다시 한번 분명해집니다.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나님이 보시려는 것은 이스라엘의 군사력이 아니라 순종이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느냐보다 말씀을 듣느냐가 중요했습니다.
“알고자 하셨더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인데 왜 ‘알고자’ 하셨을까요? 신명기 8:2도 똑같이 말합니다.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이것은 하나님이 정보를 얻으려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 숨은 것을 드러내신다는 뜻입니다. 시험은 하나님이 아시려고가 아니라 우리가 알게 하려고 오는 것입니다. 시험 앞에서 우리는 우리 마음이 정말 어디에 있는지 보게 됩니다. 아브라함도 이삭을 바치는 시험을 통해 하나님을 향한 자기 마음을 확인했습니다.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창 22:12).
원어 · 번역 노트
모세로 — 원문 ‘베야드 모셰’, ‘모세의 손으로’. 하나님의 율법이 모세를 통해 주어졌다는 표현입니다(출 9:35, 레 8:36, 민 4:37).
2:22과의 연결 — 2:22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3:4 “명령들을 청종하나”. 같은 주제를 두 번 말하며 2:20–3:6을 하나의 단락으로 묶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8:2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창 22:12네가 네 아들 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대하 32:31하나님이 히스기야를 떠나시고 그 심중에 있는 것을 다 알고자 하사 시험하셨더라
시 139:23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5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여섯 족속 사이에 거하여
이스라엘 자손은 마침내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사이에 거하여
직역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은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브리스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 가운데 살았다.
시험의 결과가 나옵니다. 이스라엘은 가나안 여섯 족속 사이에 살았습니다. 이 여섯 족속의 이름은 하나님이 쫓아내시겠다고 약속하신 바로 그 민족들의 목록입니다(출 3:8, 신 7:1). 하나님은 그들을 쫓아내시겠다고 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그들 ‘사이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사이에.” 원문 ‘베케레브’는 1:32에서 아셀이 가나안 사람 ‘가운데’ 살았다고 할 때 쓰인 말입니다. 1장에서 몇 지파의 문제였던 것이, 이제 이스라엘 자손 전체의 모습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세상 한가운데 사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예수님도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습니다(요 17:18). 문제는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과 구별되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6절이 그 결과를 보여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여섯 족속 — 출 3:8, 17, 23:23, 33:2, 34:11, 신 20:17, 수 9:1, 12:8. 신 7:1에는 기르가스 족속을 넣어 일곱 족속이 나옵니다.
마침내 — 『개역한글』이 덧붙인 말이지만, 1장부터 이어진 흐름의 결말이라는 뜻을 잘 살렸습니다.
요 17:15-16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내가 세상에 속하지 아니함 같이 저희도 세상에 속하지 아니하였삽나이다
6그들과 통혼하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직역 그들은 그들의 딸들을 자기 아내로 취하였고,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었으며, 그들의 신들을 섬겼다.
1장의 타협이 이렇게 끝납니다. 혼인, 그리고 우상 숭배. 이 둘은 한 문장 안에 붙어 있습니다. 가나안 사람과 이웃으로 살다 보니 자녀들이 서로 혼인했고, 혼인하니 배우자의 신을 함께 섬기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신명기 7:3–4에서 정확히 이것을 경고하셨습니다. “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지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 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이것은 민족 차별이 아니었습니다. 라합(가나안 사람)과 룻(모압 사람)처럼 하나님을 택한 이방인은 이스라엘 안에 들어와 존귀하게 쓰였습니다. 문제는 혈통이 아니라 신앙이었습니다.
가정은 신앙이 전해지는 가장 중요한 통로입니다. 그 통로가 막히면 다음 세대의 신앙도 끊어집니다. 2:10의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어떻게 생겨났는지 3:6이 보여 줍니다. 솔로몬도 지혜의 왕이었지만 이방 아내들 때문에 노년에 우상을 섬겼고(왕상 11:4), 에스라와 느헤미야는 포로 귀환 후 같은 문제로 통곡했습니다(스 9장, 느 13:23–27). 바울은 신약의 성도들에게도 말합니다. “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
원어 · 번역 노트
통혼 금지 — 출 34:15–16 “네가 그들의 딸들로 네 아들들의 아내를 삼음으로 그들의 딸들이 그 신들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신 7:3–4, 수 23:12–13.
삼손 — 사사기 14장에서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혼인하려 하고, 부모는 “네 형제들의 딸 중에나 내 백성 중에 어찌 여자가 없어서 네가 할례 받지 아니한 블레셋 사람에게 가서 아내를 취하려 하느냐”(14:3)라고 말립니다. 3:6의 문제가 사사 자신의 문제가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7:3-4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왕상 11:4솔로몬의 나이 늙을 때에 왕비들이 그 마음을 돌이켜 다른 신들을 좇게 하였으므로
느 13:26옛적에 이스라엘 왕 솔로몬이 이 일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느냐
고후 6:14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의와 불법이 어찌 함께하며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시험은 우리 마음이 어디 있는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들을 남겨 두셔서 다음 세대를 시험하시고, 하나님의 전쟁을 가르치려 하셨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 시험 앞에서 싸우는 대신 섞였습니다. 이웃이 되고, 사돈이 되고, 결국 같은 신을 섬겼습니다.
시험은 언제나 우리 마음의 진짜 주소를 보여 줍니다. 세상 속에 사는 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구별되어 사는가, 아니면 조금씩 섞여 결국 세상의 신을 함께 섬기게 되는가. 특히 가정은 그 싸움의 최전선입니다. 우리 가정이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통로가 되도록 지켜야 합니다.
3:7–11첫 번째 사사 옷니엘 — 여호와의 신이 임하니 땅이 사십 년 태평하였다
첫 사사 옷니엘의 이야기는 다섯 절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절 안에 2장에서 그린 사사기의 순환이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있습니다. 악을 행함(7절) → 진노하사 파심(8절) → 부르짖음(9절) → 구원자를 세우심(9–10절) → 땅이 태평함(11절). 옷니엘 이야기는 사사 이야기의 표준 모델입니다.
그리고 옷니엘은 사사기에서 흠이 하나도 기록되지 않은 유일한 사사입니다. 1:12–15에서 우리는 그가 갈렙의 집안에서 믿음을 배운 용사라는 것을 보았습니다. 사사기 기자는 첫 사사를 이렇게 깨끗하게 세워 두고, 이후 사사들이 이 기준에서 얼마나 멀어지는지를 보여 줄 것입니다.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겼다.
첫 사사 이야기는 사사기의 후렴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그리고 그 악의 내용은 “여호와를 잊어버리고”입니다.
성경에서 ‘잊다’는 단순히 기억이 안 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마음에서 밀어내고, 삶에서 고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서 배부르게 될 때 하나님을 잊을 위험을 거듭 경고했습니다. “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신 8:12–14). 2:10에서 다음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면, 3:7에서는 ‘잊어버렸습니다’. 모르는 것보다 더 아픈 것은 알던 것을 잊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바알들과 아세라들이 채웁니다. 2:13에서는 바알과 아스다롯이었는데, 여기서는 아세라가 나옵니다. 아세라는 가나안 신화에서 최고신 엘의 아내이자 신들의 어머니였고, 사람들은 나무 기둥이나 살아 있는 나무로 그 상을 세웠습니다. 하나님을 잊은 마음은 결코 비어 있지 않습니다. 무언가 다른 것이 반드시 그 자리를 차지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잊어버리다샤카흐 — 신 6:12, 8:11, 14, 19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아… 너희가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 시 106:21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아세라 — 신 16: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곁에 아무 나무로든지 아세라상을 세우지 말며”. 6:25–26에서 기드온은 아버지 집의 바알 단을 헐고 그 곁의 아세라 상을 찍어 그 나무로 번제를 드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8:11-14내가 오늘날 네게 명하는 여호와의 명령과 법도와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게 되지 않도록 삼갈찌어다
렘 2:32처녀가 어찌 그 패물을 잊겠느냐 신부가 어찌 그 고운 옷을 잊겠느냐 오직 내 백성은 나를 잊었나니 그 날 수는 계수할 수 없거늘
시 106:21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 구원자 하나님을 저희가 잊었나니
8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팔 년을 섬겼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년을 섬겼더니
직역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불타올라, 그분이 그들을 아람 나하라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다.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 동안 섬겼다.
심판이 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십니다. 메소보다미아(아람 나하라임)는 ‘두 강 사이의 아람’이라는 뜻으로, 유브라데 강 상류의 먼 북쪽 땅입니다. 아브라함의 고향 하란이 그곳에 있었고, 이삭의 아내 리브가와 야곱의 아내 레아와 라헬도 그곳에서 왔습니다. 이스라엘의 조상들이 떠나온 땅의 왕이 이제 이스라엘을 다스립니다. 하나님을 떠나니 조상이 떠나온 자리로 되돌아간 셈입니다.
“구산 리사다임.” 이 이름은 ‘이중으로 악한 구산’ 또는 ‘두 배로 사악한 구산’이라는 뜻입니다. 실제 이름이라기보다, 그를 미워한 이스라엘 사람들이 붙인 별명으로 보입니다. 무서운 압제자를 이름으로 조롱하는 것은 고대 이야기꾼들이 즐겨 쓰던 방법이었습니다.
그리고 “팔년을 섬겼더니.” 여기서 ‘섬기다’는 7절의 ‘바알들을 섬겼다’와 똑같은 동사(아바드)입니다.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기기로 선택하자, 하나님은 그들이 이방 왕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면, 결국 그것에 종노릇하게 됩니다. 섬김의 대상을 바꾸면 자유가 아니라 다른 종살이가 시작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구산 리사다임 — ‘쿠샨 리쉬아타임’. ‘리쉬아타임’은 ‘악(레샤)’의 쌍수형으로 ‘두 배의 악’. 그의 정체에 대해서는 학설이 많습니다. 메소보다미아의 실제 왕, 에돔의 왕(‘아람’과 ‘에돔’의 히브리어 철자가 비슷함), 또는 남쪽의 ‘구산’ 족속(합 3:7) 등. 옷니엘이 남쪽 유다 출신이므로 남쪽의 적이 더 어울린다는 견해도 있습니다.
아람 나하라임 — 창 24:10 아브라함의 종이 리브가를 찾으러 간 곳, 신 23:4 발람의 고향 “메소보다미아의 브돌”.
창 24:10이에 종이 그 주인의 약대 중 열 필을 취하고 떠났는데… 떠나 메소보다미아로 가서 나홀의 성에 이르러
삿 2:14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대하 12:8그러나 저희가 시삭의 종이 되어 나를 섬기는 것과 열국을 섬기는 것이 어떠한지 알게 되리라
롬 6: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9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한 구원자를 세우시니 곧 옷니엘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라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구원자를 일으키셨고, 그가 그들을 구원하였다.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었다.
8년 동안 압제를 받은 이스라엘이 마침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여기서 ‘부르짖다’(자아크)는 고통 속에서 도와 달라고 외치는 소리입니다. 출애굽기 2:23에서 애굽의 이스라엘이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라고 할 때도 이 말이 쓰였습니다. 이것이 꼭 깊은 회개였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은 다른 신이 아니라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 바알에게 부르짖지 않았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했습니다.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자를 세우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옷니엘이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구원자는 바로 1장에서 만난 옷니엘입니다. 갈렙의 가정에서 믿음을 배우고, 기럇 세벨을 믿음으로 취한 그 용사입니다. 하나님은 위기가 오기 전에 이미 구원자를 준비해 두셨습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기며 무너지는 동안에도, 갈렙의 집에서는 하나님이 쓰실 사람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입니다. 세상이 아무리 어두워도, 하나님은 어딘가에서 다음 세대를 위한 사람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우리 가정이 그런 사람을 길러 내는 갈렙의 집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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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르짖다자아크 — 사사기에서 3:9, 15, 6:6–7, 10:10에 나옵니다. 그런데 10:13–14에서 하나님은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으니…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가서 부르짖어 너희의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케 하라”고 하십니다. 부르짖음이 점점 형식이 되어 가는 것을 보여 줍니다.
구원자모쉬아 — ‘야샤’(구원하다)의 분사형. 하나님께도 쓰이는 칭호입니다(사 43:3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요 네 구원자임이라”). 15절 에훗에게도 같은 말이 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13갈렙의 아우요 그나스의 아들인 옷니엘이 그것을 취한고로 갈렙이 그 딸 악사를 그에게 아내로 주었더라
출 2:23-25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역으로 인하여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한지라
시 107:6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사 19:20이는 그들이 그 압박하는 자의 연고로 여호와께 부르짖겠고 여호와께서는 한 구원자, 보호자를 보내사 그들을 건지실 것임이라
10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사사가 되어 이기니라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직역 여호와의 영이 그에게 임하였다. 그는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전쟁하러 나갔다. 여호와께서 아람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의 손에 주셨다. 그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 위에 강하였다.
옷니엘이 이긴 비결은 한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사사기에서 ‘여호와의 영’이 처음으로 나오는 구절입니다. 옷니엘은 훌륭한 용사였고 믿음의 가정에서 자랐지만, 그것만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이 그에게 임하셨기에 이겼습니다.
이 구절의 순서를 보십시오. ① 여호와의 신이 임하심 → ② 사사가 됨 → ③ 나가서 싸움 → ④ 여호와께서 원수를 그 손에 붙이심 → ⑤ 옷니엘의 손이 이김. 처음도 하나님, 중간도 하나님, 결과도 하나님입니다. 옷니엘이 한 일은 하나님의 영에 이끌려 ‘나가서 싸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언제나 이렇게 이루어집니다. 성령께서 먼저 일하시고, 사람은 순종하여 나가고,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십니다.
“사사가 되어.” 원문은 ‘그가 이스라엘을 재판하였다(샤파트)’입니다. 흥미롭게도 옷니엘은 먼저 ‘재판’하고 그 다음에 ‘싸웁니다’. 전쟁에 나가기 전에 먼저 백성 안의 잘못을 바로잡았을 것입니다. 우상을 제거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했을 것입니다. 진정한 구원은 바깥의 적을 이기는 것만이 아니라 안의 죄를 바로잡는 데서 시작합니다.
구약에서 성령은 특별한 사람에게 특별한 일을 위해 임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엘 선지자는 언젠가 성령이 “만민에게” 부어질 날을 예언했습니다(욜 2:28). 오순절에 그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행 2:16–18). 이제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사람 안에 성령께서 계십니다. 옷니엘에게 임하신 그 영이 오늘 우리 안에 계십니다.
임하다 — 옷니엘에게는 단순히 ‘그 위에 있었다(하야 알)’. 기드온에게는 ‘옷 입혔다(라바쉬, 6:34)’, 삼손에게는 ‘세차게 덮쳤다(찰라흐, 14:6)’. 표현이 사사마다 다릅니다.
이기니라 — 원문 ‘바타오즈 야도 알’, ‘그의 손이 ~위에 강하였다’.
함께 읽을 말씀
삿 6:34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민 11:25여호와께서 구름 가운데 강림하사… 그에게 임한 신을 칠십 장로에게도 임하게 하시니
슥 4:6이는 힘으로 되지 아니하며 능으로 되지 아니하고 오직 나의 신으로 되느니라
욜 2:28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행 1:8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11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 년에 옷니엘이 죽었더라
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직역 그리고 그 땅이 사십 년 동안 조용하였다. 그리고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다.
옷니엘의 승리 후 “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년.” ‘태평하다’는 원문으로 ‘조용하다, 쉬다’입니다. 전쟁의 소음이 그치고, 농부들이 안심하고 씨를 뿌리며, 아이들이 거리에서 놀 수 있는 시간입니다. 사십 년은 한 세대 전체입니다. 옷니엘 덕분에 한 세대가 평화를 누렸습니다.
그리고 “옷니엘이 죽었더라.” 이 짧은 말이 다음 위기를 예고합니다. 2:19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바로 다음 12절에서 그 말이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옷니엘 이야기는 이렇게 짧고 단순하게 끝납니다. 그에 대한 화려한 무용담도, 극적인 장면도, 실패도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어쩌면 그것이 옷니엘의 가장 큰 칭찬일지도 모릅니다. 그는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일어나 싸웠고, 백성을 다스렸고, 한 세대에 평화를 주고 조용히 죽었습니다. 화려하지 않아도 신실한 삶, 그것이 사사기 전체가 기준으로 삼는 삶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태평하다샤카트 — 수 11:23, 14:15 “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사사기에서 3:11, 30, 5:31, 8:28에만 나옵니다. 입다 이후로는 이 말이 다시 나오지 않습니다. 평안의 기간이 사라진 것입니다.
평안의 기간 — 옷니엘 40년, 에훗 80년, 드보라 40년, 기드온 40년. 그 뒤로는 ‘태평하였다’는 기록 대신 사사가 몇 년 ‘사사로 있었다’는 기록만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2:18-19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수 11:23그 땅에 전쟁이 그쳤더라
시 29:11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힘을 주심이여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에게 평강의 복을 주시리로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화려하지 않아도 신실한 사람
옷니엘은 사사기에서 가장 짧게 기록된 대사사이지만, 가장 흠 없이 기록된 사사입니다. 그의 이야기에는 기적 같은 장면도, 극적인 반전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니 그는 일어나 다스리고 싸웠고, 한 세대에 평화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위기가 오기 훨씬 전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화려한 영웅보다 신실한 사람을 찾으십니다. 그리고 그런 사람은 대개 위기가 닥친 날 갑자기 나타나지 않습니다. 평범한 날들 속에, 믿음의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조용히 자랍니다. 나는 다음 세대를 위해 어떤 옷니엘을 기르고 있습니까? 그리고 나 자신은 하나님의 영이 임하실 때 일어설 준비가 되어 있습니까?
3:12–14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 종려나무 성읍을 빼앗기고 18년
옷니엘이 죽자 바퀴가 다시 돕니다. 이번 압제자는 이스라엘 동쪽의 이웃 모압입니다. 모압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의 자손으로(창 19:37), 이스라엘과 먼 친척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 시절부터 이스라엘을 미워했던 민족입니다. 모압 왕 발락은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 모압 여인들은 브올에서 이스라엘을 음행과 우상 숭배로 끌어들였습니다(민 22–25장).
주목할 것은 12절의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이방 왕을 강하게 만드신 분이 여호와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원수까지도 이스라엘을 징계하시는 도구로 쓰십니다.
12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대적하게 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기를 더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이스라엘에게 맞서도록 강하게 하셨다. 그들이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였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 ‘또’는 원문으로 ‘더하였다’입니다. 악을 행하는 일에 악을 더했습니다. 이 구절은 ‘악을 행하였다’를 두 번이나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죄가 다시, 그리고 거듭되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놀라운 말입니다. 에글론을 강하게 만드신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만의 하나님이 아니라 온 열방의 주인이십니다. 이사야 10:5에서 하나님은 앗수르를 “나의 진노의 막대기”라고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이방 나라도 당신의 백성을 징계하는 도구로 쓰십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에게 두렵고도 소망이 되는 사실이었습니다. 두려운 것은, 그들의 고통이 하나님의 손에서 왔다는 것입니다. 소망이 되는 것은, 그 고통도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모압 왕을 강하게 하신 하나님은, 언제든 그를 무너뜨리실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곧 그렇게 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또야사프 — ‘더하다, 다시 하다’. 4:1, 10:6, 13:1에서도 같은 표현으로 새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에글론 — ‘에겔’(송아지)과 관련된 이름으로 봅니다. 그래서 일부 학자들은 이야기 전체가 ‘살진 송아지’를 잡는 제사 장면을 풍자한다고 봅니다(17, 22절).
모압 — 창 19:30–38 롯과 그 딸 사이에서 난 모압과 암몬. 신 23:3 “암몬 사람과 모압 사람은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오지 못하리니”. 그러나 모압 여인 룻은 하나님을 택하여 다윗의 증조모가 되었습니다(룻 4:17).
함께 읽을 말씀
사 10:5화 있을진저 앗수르 사람이여 그는 나의 진노의 막대기요 그 손의 몽둥이는 나의 분한이라
민 22:4-6때에 십볼의 아들 발락이 모압 왕이었더라 그가 사자를 브올의 아들 발람의 본향 강변 브돌에 보내어… 이 백성을 저주하라
민 25:1-3이스라엘이 싯딤에 머물러 있더니 그 백성이 모압 여자들과 음행하기를 시작하니라… 바알브올에게 부속된지라
잠 21:1왕의 마음이 여호와의 손에 있음이 마치 보의 물과 같아서 그가 임의로 인도하시느니라
13암몬과 아말렉을 모아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하다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직역 그가 암몬 자손과 아말렉 자손을 자기에게 모았다. 그가 가서 이스라엘을 쳤고, 그들이 종려나무 성읍을 차지하였다.
에글론은 혼자 오지 않고 암몬과 아말렉을 모아 연합군을 만듭니다. 암몬은 모압의 형제 민족이고,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 직후 르비딤에서 처음 싸운 원수입니다(출 17:8–16). 그때 하나님은 “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아말렉이 지금 이스라엘을 치러 옵니다. 이스라엘 동쪽과 남쪽의 적들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종려나무 성읍”, 곧 여리고를 점령합니다. 여리고는 이스라엘이 약속의 땅에 들어와 처음 무너뜨린 성입니다. 하나님이 성벽을 무너뜨리셨고, 여호수아는 그 성을 다시 쌓는 자는 저주를 받으리라고 했습니다(수 6:26). 그런데 이제 그 자리가 이방 왕의 거점이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승리로 얻은 첫 땅을, 하나님을 버림으로 처음 잃어버렸습니다.
여리고는 요단강 서쪽에 있습니다. 모압 왕이 요단을 건너 이스라엘 땅 안에 진지를 세운 것입니다. 1:16에서 겐 사람이 머물렀던 곳이기도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말렉 — 출 17:8–16, 신 25:17–19. 사사기에서 6:3, 33, 7:12에 미디안과 함께 다시 나옵니다. 사울은 아말렉을 진멸하라는 명령을 어겨 왕위를 잃습니다(삼상 15장).
여리고 재건 — 수 6:26의 저주는 아합 시대에 벧엘 사람 히엘이 여리고를 건축하면서 이루어집니다(왕상 16:34). 에글론은 성을 다시 쌓았다기보다 그 터의 오아시스에 궁이나 진지를 둔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7:14내가 아말렉을 도말하여 천하에서 기억함이 없게 하리라
수 6:26누구든지 일어나서 건축하는 자는 여호와 앞에서 저주를 받을 것이라
시 83:5-7저희가 일심으로 의논하고 주를 대적하여 서로 언약하니 곧 에돔의 장막과 이스마엘인과 모압과… 암몬과 아말렉이며
14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 팔년을 섬기니라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 동안 섬겼다.
십팔 년. 구산 리사다임 때는 8년이었습니다(8절). 이번에는 두 배가 넘습니다. 압제의 기간이 길어집니다. 2:19의 말대로, 바퀴가 돌 때마다 상황은 더 나빠집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이스라엘은 ‘섬깁니다’. 바알을 섬기는 백성은 결국 이방 왕을 섬기게 됩니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모압 왕에게 공물을 바쳐야 했습니다(15절). 열여덟 해 동안 해마다 자기 땅에서 거둔 것을 이방 왕에게 실어 날랐습니다. 하나님께 드려야 할 첫 열매가 바알에게 갔고, 이제 그들의 수확 전체가 모압 왕에게 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18년 — 10:8 암몬의 압제도 18년입니다.
공물 — 15, 17, 18절. 원문 ‘민하’, 예물, 조공. 레위기에서는 ‘소제’(곡식 제사)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소제를 드리는 대신 이방 왕에게 ‘민하’를 바쳤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28:47-48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을 인하여 네가…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대적을 섬기게 될 것이니
삿 10:8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 팔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원수도 쓰십니다 — 그리고 원수도 다스리십니다
모압 왕을 강하게 하신 분은 하나님이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겪은 18년의 고통은 하나님이 손을 놓으신 결과가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서 온 징계였습니다. 그것은 두려운 사실이지만, 동시에 소망입니다. 고통을 보내신 하나님은 그 고통의 끝도 정하고 계십니다.
내 삶의 ‘에글론’ 앞에서 우리는 그 존재가 너무 크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에글론을 강하게 하신 분도, 무너뜨리실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니 원수를 두려워하기보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사람을 보내셨습니다.
3:15–25왼손잡이 에훗 — 공물과 함께 간 칼, 그리고 잠긴 다락방
이 단락은 사사기에서 가장 생생하고 극적인 이야기 가운데 하나입니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사사기 기자는 시간을 늦추고 세부를 하나하나 보여 줍니다. 칼의 길이, 칼을 숨긴 위치, 왕의 몸집, 다락방의 구조, 문을 잠근 순서, 신하들의 오해. 이 모든 세부가 이야기의 긴장과 풍자를 만들어 냅니다.
오늘의 독자에게는 불편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에훗은 거짓말을 하고, 방심한 왕을 찌르고, 문을 잠그고 도망칩니다. 성경은 이것을 칭찬할까요? 사사기 기자는 에훗의 방법을 평가하지 않고 그냥 보여 줍니다. 다만 분명히 말하는 것은 하나뿐입니다. 이 구원자를 세우신 분이 여호와시라는 것입니다(15절).
15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 — 공물을 바칠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모압 왕 에글론에게 공물을 바칠 때에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구원자를 일으키셨다.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에훗,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의 손으로 모압 왕 에글론에게 예물을 보냈다.
두 번째 사사가 등장합니다. 에훗. 성경은 그를 소개하면서 특이한 점을 하나 강조합니다. “왼손잡이.” 그런데 원문은 단순히 ‘왼손잡이’가 아니라 ‘오른손이 묶인(막힌) 사람’입니다. 오른손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장애가 있었다는 뜻일 수도 있고, 어릴 때부터 오른손을 묶어 왼손을 쓰도록 훈련받았다는 뜻일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베냐민 사람입니다. ‘베냐민’은 히브리어로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오른손의 아들’ 지파에서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 나왔습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말놀이를 즐깁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20:16에서 베냐민 지파에는 “왼손잡이 칠백 명”이 있었는데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였다고 합니다. 베냐민 지파에는 왼손을 쓰는 전사들이 특별히 많았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장애였든 훈련이었든, 에훗의 왼손은 이 이야기의 열쇠가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를 의탁하여… 공물을 바칠 때에.” 에훗은 모압 왕에게 조공을 바치러 가는 사절단의 대표였습니다. 18년 동안 해마다 가던 그 굴욕의 길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굴욕의 자리를 구원의 자리로 바꾸십니다. 이스라엘이 고개를 숙이고 공물을 바치던 그날이, 해방의 날이 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약점이라고 여기는 것을 통로로 쓰십니다. 고린도전서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원어 · 번역 노트
왼손잡이이테르 야드 예미노 — 직역 ‘그의 오른손이 묶인(막힌)’. 같은 표현이 20:16에만 다시 나옵니다. 대상 12:2에는 다윗에게 온 베냐민 용사들이 “좌우 손을 놀려 물매로 돌도 던지며 살도 쏘는 자”였다고 합니다. 일부러 오른손을 묶어 양손잡이로 훈련시켰다는 해석이 여기서 나옵니다.
게라 — 창 46:21 베냐민의 아들 중 하나. 삼하 16:5 다윗을 저주한 시므이도 “게라의 아들”입니다. 게라는 베냐민 지파의 한 가문 이름이었을 것입니다.
그의 손으로 — 원문 ‘베야도’. 이스라엘이 공물을 에훗의 ‘손으로’ 보냈는데, 그 ‘손’이 칼을 쥘 손이 됩니다. 이 단락에는 ‘손’이 계속 나옵니다(15, 21, 28, 30절).
함께 읽을 말씀
삿 20:16이 모든 백성 중에서 택한 칠백 명은 다 왼손잡이라 물매로 돌을 던지면 호리도 틀림이 없는 자더라
대상 12:2활을 가지며 좌우 손을 놀려 물매도 던지며 살도 발하는 자요 베냐민 지파 사울의 동족인데
창 35:18그가 죽기에 임하여 그 혼이 떠나려할 때에 아들의 이름은 베노니라 불렀으나 그 아비가 그를 베냐민이라 불렀더라
고전 1:27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후 12:9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16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에훗이 장이 한 규빗 되는 좌우에 날선 칼을 만들어 우편 다리 옷 속에 차고
직역 에훗이 자기를 위해 칼을 만들었는데, 그것은 두 날을 가졌고 길이가 한 고메드였다. 그가 그것을 옷 아래 오른쪽 넓적다리에 찼다.
에훗은 칼을 직접 만듭니다. 그 칼은 좌우에 날이 선 양날 단검이고, 길이는 한 규빗입니다. 원문은 ‘고메드’라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위입니다. 보통 규빗(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 약 45cm)보다 짧은 길이로, 오늘날로 치면 약 30cm 남짓으로 봅니다. 옷 속에 숨기기 딱 좋은 크기입니다.
그리고 그는 그것을 “우편 다리 옷 속에” 찹니다. 여기가 이 이야기의 핵심입니다. 오른손잡이는 칼을 왼쪽 허리에 차서 오른손으로 뽑습니다. 그래서 왕궁의 경비병들은 손님이 들어올 때 왼쪽 허리를 검사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훗은 왼손잡이였기에 칼을 오른쪽에 찼고, 아무도 그곳을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남들이 약점이라 여기던 그의 왼손이, 경비를 통과하는 비밀이 되었습니다.
“좌우에 날선 칼.” 원문은 ‘두 입을 가진 칼’입니다. 히브리어는 칼날을 ‘입’이라고 부릅니다(1:8 “칼날로” = ‘칼의 입으로’). 히브리서 4:12은 하나님의 말씀을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라고 말합니다. 에훗의 칼은 모압 왕의 배를 찔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을 찌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고메드 — 70인역은 ‘한 뼘’(스피타메)으로, 불가타는 ‘손바닥 길이’로 옮겼습니다. 일반 규빗(암마)은 약 44.5cm(이집트 왕의 규빗은 약 52cm). 고메드는 팔꿈치에서 주먹까지의 길이, 곧 약 30–35cm 정도로 추정됩니다.
두 입 — ‘피피요트’. 잠 5:4 “두 날 가진 칼같이 날카로우며”, 시 149:6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계 1:16 그리스도의 입에서 나오는 “좌우에 날선 검”.
청동 단검 — 당시 이스라엘은 철을 다루는 기술이 부족했으므로(삼상 13:19–22), 에훗의 칼은 청동이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손잡이 없이 날과 자루가 이어진 형태였을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히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시 149:6그 입에는 하나님의 존영이요 그 수중에는 두 날 가진 칼이로다
엡 6: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17공물을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공물을 모압 왕 에글론에게 바쳤는데 에글론은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직역 그가 모압 왕 에글론에게 예물을 바쳤다. 에글론은 매우 살진 사람이었다.
에훗은 공물을 바칩니다. 그리고 성경은 에글론에 대해 딱 하나의 정보를 줍니다. “심히 비둔한 자이었더라.” 매우 뚱뚱했다는 것입니다. 왜 이런 정보를 줄까요? 이것은 단순한 외모 묘사가 아니라 이야기의 복선이자 풍자입니다.
첫째, 22절에서 칼이 그의 배에 완전히 묻히는 장면의 복선입니다. 둘째, 풍자입니다. 에글론은 18년 동안 이스라엘의 공물을 받아 먹고 살쪘습니다. 이스라엘이 땀 흘려 거둔 곡식으로 배를 불린 왕입니다. 셋째, 히브리어 ‘바리’(살진)는 제사에 바치는 살진 짐승을 묘사할 때 쓰는 말입니다(창 41:2 “살진 일곱 암소”). ‘에글론’이라는 이름도 ‘송아지’와 소리가 비슷합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스라엘의 ‘공물(민하)’을 받던 살진 송아지 같은 왕이, 결국 하나님의 심판의 제물이 된다는 그림을 그립니다.
에스겔 34장에서 하나님은 양 떼를 먹이지 않고 살진 양을 잡아먹는 목자들을 책망하시며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공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겔 34:16)고 하십니다. 남의 것으로 배를 불리는 자의 끝이 어떠한지 사사기는 보여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비둔바리 — ‘살진, 기름진’. 창 41:2, 4 바로의 꿈의 ‘살진’ 암소, 왕상 4:23 솔로몬 궁의 ‘살진 소’, 겔 34:3, 20, 슥 11:16. 사람에게 쓰인 예는 드뭅니다(시 73:4 “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의 ‘건강하며’가 이 말).
제사의 풍자 — 일부 학자들은 이 장면이 ‘민하’(공물/소제)와 ‘살진 송아지’, ‘기름’(22절)이라는 제사 용어를 섞어, 이방 왕의 처형을 일종의 희생 제사로 그린다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겔 34:2-3, 16자기만 먹이는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찐저… 너희가 살진 양을 잡아 그 기름을 먹으며… 살찐 자와 강한 자는 내가 멸하고
삼상 2:29어찌하여 내가 나의 처소에서 명한 나의 제물과 예물을 밟으며… 내 백성 이스라엘의 드리는 가장 좋은 것으로 스스로 살찌게 하느냐
시 73:4-7저희는 죽는 때에도 고통이 없고 그 힘이 건강하며… 살찜으로 저희 눈이 솟아나며
18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에훗이 공물 바치기를 마친 후에 공물을 메고 온 자들을 보내고
직역 그가 예물 바치기를 마쳤을 때, 그는 예물을 메고 온 백성을 떠나보냈다.
공물을 다 바친 에훗은 함께 온 사람들을 먼저 돌려보냅니다. 짐꾼들은 아무것도 몰랐을 것입니다. 에훗은 일을 혼자 감당하기로 했습니다. 실패하면 혼자 죽고, 다른 사람들은 위험에 빠지지 않게 하려는 배려였을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혼자 남아야 왕에게 ‘은밀한 일’을 고할 핑계가 생깁니다.
이 짧은 구절은 이야기의 숨 고르기입니다. 처음 방문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에훗은 공물을 바치고, 왕궁을 나와, 사람들과 함께 돌아갑니다. 모압 사람들은 해마다 그랬듯 이스라엘이 굴복했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메고 온 자들 — 공물이 상당히 많았음을 보여 줍니다. 곡식, 기름, 가축, 은 등 여러 사람이 날라야 할 양이었을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삼하 8:2모압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19돌 뜨는 곳에서 돌아와 — 왕이여 은밀한 일을 고하려 하나이다
자기는 길갈 근처 돌 뜨는 곳에서부터 돌아와서 가로되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왕이 명하여 종용케 하라 하매 모셔 선 자들이 다 물러간지라
직역 그러나 그 자신은 길갈 곁에 있는 새긴 상들에서 돌아와서 말하였다. “왕이시여, 제게 왕께 드릴 은밀한 말씀이 있습니다.” 왕이 “쉿!” 하자, 그 곁에 서 있던 모든 자가 그에게서 나갔다.
에훗은 일행과 함께 “길갈 근처 돌 뜨는 곳”까지 갔다가 혼자 돌아섭니다. 『개역한글』은 ‘돌 뜨는 곳’(채석장)으로 옮겼지만, 원문 ‘페실림’은 보통 ‘새긴 상들’, 곧 우상들을 뜻합니다(신 7:5, 25).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기념의 돌 열두 개를 세운 곳입니다(수 4:20). 어쩌면 모압 사람들이 그곳에 자기들의 신상을 세워 경계 표지로 삼았을지도 모릅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 장면은 깊은 의미를 갖습니다. 이스라엘의 첫 진영이자 하나님의 기념비가 있던 길갈에 이방 우상이 서 있습니다. 에훗은 바로 그 우상들 앞에서 발길을 돌립니다.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겨 압제를 받았는데, 이제 우상 앞에서 해방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에훗은 왕에게 말합니다. “왕이여 내가 은밀한 일을 왕에게 고하려 하나이다.” ‘은밀한 일’(데바르 세테르)은 ‘비밀스러운 말’, ‘숨겨진 것’이라는 이중의 뜻을 가집니다. 에훗에게는 정말 숨겨진 ‘것’이 있었습니다. 오른쪽 다리에 숨긴 칼입니다. 에글론은 아마 신탁이나 첩보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는 “쉿!” 하며 신하들을 다 내보냅니다. 자기 손으로 경호원을 물린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페실림 — ‘파살’(새기다)에서 온 말. 신 7:5, 25 “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사 10:10, 렘 8:19. 26절에서 다시 나옵니다. 『개역개정』은 “돌 뜨는 곳”을 그대로 두었고, 『새번역』은 “돌 우상들이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은밀한 일 — ‘다바르’는 ‘말’과 ‘일, 물건’을 모두 뜻합니다. 20절에서 에훗은 ‘하나님의 다바르’(하나님의 말씀/일)라고 바꾸어 말합니다.
종용케 하라 — 원문 ‘하스’는 감탄사 ‘쉿!’. 암 6:10, 8:3 “잠잠하라”, 합 2:20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
함께 읽을 말씀
수 4:19-20십일에 백성이 요단에서 올라와서 여리고 동편 지경 길갈에 진 치매 여호수아가 그 요단에서 가져 온 열 두 돌을 길갈에 세우고
신 7:25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것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합 2:20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찌니라
20서늘한 다락방 —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고할 일이 있나이다
에훗이 왕의 앞으로 나아가니 왕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는 중이라 에훗이 가로되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하매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나니
직역 에훗이 그에게 들어갔다. 그는 자기만을 위해 있는 시원한 윗방에 앉아 있었다. 에훗이 말하였다. “제게 왕께 드릴 하나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자 그가 의자에서 일어났다.
에글론은 “서늘한 다락방에 홀로 앉아” 있었습니다. 요단 골짜기의 여리고는 몹시 더운 곳입니다. 부자들은 지붕 위에 창이 많은 방을 지어 바람이 통하게 했습니다. 왕의 여름 별실, 가장 사적이고 편안한 공간입니다. 그리고 왕은 ‘홀로’ 있었습니다. 경호원도 신하도 없는 자리입니다.
에훗이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왕에게 고할 일이 있나이다.” 19절에서는 ‘은밀한 말’이었는데, 이제는 ‘하나님의 말’(데바르 엘로힘)입니다. 이 말은 거짓말일까요, 진실일까요? 묘하게도 둘 다입니다. 에글론은 신탁, 곧 신이 주는 메시지를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훗이 가져온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심판이었습니다. 에훗은 정말로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로서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러 왔습니다.
그러자 왕이 그 좌석에서 일어납니다. 신의 말씀을 들을 때는 일어서는 것이 예의였을 것입니다(느 8:5 참고).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앉아 있던 몸집 큰 왕이 일어서며 배가 무방비로 드러납니다. 왕은 하나님의 말씀을 경건하게 받으려고 일어섰는데, 그 말씀은 칼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다락방알리야 — 지붕 위의 방. 왕상 17:19 엘리야가 머문 ‘다락’, 왕하 4:10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위해 지은 ‘작은 방’. 고대 근동 궁전에서 이런 윗방에는 화장실이 딸려 있기도 했습니다(24절 참고).
하나님의 명 — ‘엘로힘’은 일반적인 ‘신’이라는 뜻도 됩니다. 에글론은 이것을 모압의 신 그모스나 다른 신의 말씀으로 들었을 수 있습니다. 에훗은 ‘여호와’라는 이름을 쓰지 않았습니다.
일어나다 — 고대 근동에서 신탁을 받을 때 일어서는 관습이 있었다는 증거는 분명하지 않지만, 민 23:18 발락에게 발람이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찌어다”라고 한 장면이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23:18가로되 발락이여 일어나 들을찌어다 십볼의 아들이여 나를 자세히 들으라
렘 23:29내 말이 불 같지 아니하냐 반석을 쳐서 부스러뜨리는 방망이 같지 아니하냐
히 4:13지으신 것이 하나라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오직 만물이 우리를 상관하시는 자의 눈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21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에훗이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왕의 몸을 찌르매
직역 에훗이 그의 왼손을 뻗어 그의 오른쪽 넓적다리에서 칼을 빼내 그의 배에 찔렀다.
모든 일이 한순간에 일어납니다. 왼손으로, 우편 다리에서, 칼을 빼어, 찌르매. 성경은 동작 하나하나를 짧게 끊어 보여 줍니다. 오른손잡이라면 왼쪽 허리로 손을 가져가겠지만, 에훗은 왼손을 오른쪽 다리로 뻗습니다. 왕은 그 움직임이 무엇인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칼에 찔립니다.
15절에서 시작된 ‘왼손’의 이야기가 여기서 완성됩니다. 사람들이 결함이라고 여겼을 그 손이, 18년의 압제를 끝내는 하나님의 손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강점만이 아니라 약점까지도 쓰십니다. 아니, 때로는 바로 그 약점을 통해 가장 큰 일을 하십니다. 모세의 둔한 입(출 4:10), 기드온의 작은 지파(6:15), 다윗의 어린 나이(삼상 17:33), 바울의 육체의 가시(고후 12:7). 하나님은 우리가 감추고 싶은 그것을 통해 당신의 능력을 드러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몸베텐 — ‘배, 복부’. 『개역개정』은 “왕의 몸을 찌르매”, 『새번역』은 “그의 배를 찔렀다”.
동작의 묘사 — 원문은 ‘바이슐라흐 에훗 에트 야드 세몰로’, ‘에훗이 그의 왼손을 보냈다’. ‘보내다(샬라흐)’는 18절에서 짐꾼들을 ‘보낸’ 동사와 같습니다. 사람들을 보낸 손이 이제 칼을 향해 ‘보내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4:10-12나는 본래 말에 능치 못한 자라… 누가 사람의 입을 지었느뇨… 이제 가라 내가 네 입과 함께 있어서 할 말을 가르치리라
고후 12:9-10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내가 약할 그 때에 곧 강함이니라
22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고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칼자루도 날을 따라 들어가서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그가 칼을 그 몸에서 빼어내지 아니하였으므로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직역 칼자루까지 칼날을 따라 들어갔고, 기름이 칼날 위로 닫혔다. 그가 칼을 그의 배에서 빼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파르셰도나’가 나왔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생생한 묘사 가운데 하나입니다. 칼은 자루까지 들어가고, 왕의 비대한 몸의 기름이 칼날을 감싸 버립니다. 에훗은 칼을 빼내지 않습니다. 빼낼 수 없었을 수도 있고, 피가 튀어 옷을 더럽히면 의심받을 테니 일부러 두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끝이 등뒤까지 나갔고.” 원문 ‘파르셰도나’는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낱말이라 뜻이 분명하지 않습니다. 『개역한글』은 ‘등 뒤’로 옮겼지만,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배설물’로 봅니다. 배를 찔리면 괄약근이 풀려 배설물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읽으면 24절에서 신하들이 문 밖에서 냄새를 맡고 왕이 용변을 보는 줄 알았다는 장면과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기름이 칼날에 엉기었더라.” ‘기름’(헬레브)은 레위기에서 제사 때 하나님께 태워 드리는 짐승의 기름을 가리키는 말입니다(레 3:16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7절의 ‘살진’과 함께, 사사기 기자는 이스라엘을 살찐 송아지처럼 착취하던 왕이 하나님의 심판 앞에 제물이 되었다는 그림을 그립니다. 다소 거칠고 불편한 묘사이지만, 이것은 압제자의 교만이 얼마나 비참하게 끝나는지를 보여 주는 고대 이스라엘의 방식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칼자루니차브 — ‘서 있는 것, 손잡이’. 여기에만 이 뜻으로 쓰였습니다.
파르셰도나 — 성경에서 단 한 번 나오는 말(하팍스 레고메논). ‘페레쉬’(똥, 출 29:14, 레 4:11)와 관련된 것으로 보아 ‘배설물이 나왔다’로 읽는 견해, ‘현관, 통로’로 보아 ‘(에훗이) 현관으로 나갔다’로 읽는 견해(23절 ‘현관’과 연결), 『개역한글』처럼 ‘등 뒤’로 읽는 견해가 있습니다.
헬레브 — 레 3:3–5, 16–17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너희는 기름과 피를 먹지 말라”. 삼상 2:15–16 엘리의 아들들이 기름을 태우기 전에 고기를 빼앗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레 3:16제사장은 그것을 단 위에 불사를찌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모든 기름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사 34:6여호와의 칼이 피 곧 어린 양과 염소의 피에 만족하고 기름 곧 수양의 콩팥 기름에 윤택하니
잠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23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에훗이 현관에 나와서 다락문들을 닫아 잠그니라
직역 에훗이 현관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가 윗방의 문들을 그 뒤로 닫고 잠갔다.
에훗은 침착합니다. 그는 다락방 문들을 닫아 잠그고 나옵니다. 어떻게 잠갔을까요? 고대의 문은 안쪽에서 빗장을 걸거나, 바깥에서 구멍에 손을 넣어 빗장을 움직이는 구조였습니다(아 5:4 참고). 에훗은 문을 잠근 채로 빠져나갔고, 그 결과 방 안은 왕이 안에서 문을 잠근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어디로 나갔을까요? 원문 ‘미스데로나’ 역시 성경에서 여기만 나오는 말입니다. 『개역한글』은 ‘현관’으로 옮겼지만, 어떤 학자들은 이것이 다락방에 딸린 변소의 배수 통로였고, 에훗이 그 구멍을 통해 아래로 빠져나갔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문은 안에서 잠긴 채로 있었고, 에훗은 아무도 생각하지 못한 길로 사라진 것입니다. 정확한 경로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들키지 않고 빠져나갔다는 사실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미스데로나 — ‘줄지어 늘어선 것, 기둥 복도’로 보아 ‘현관, 주랑’으로 옮기는 해석(『개역한글』, 『개역개정』), ‘변소 통로’로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아 5:4-5나의 사랑하는 자가 문틈으로 손을 들이밀매 내 마음이 동하여서 일어나서 나의 사랑하는 자 위하여 문을 열 때
24신하들이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 왕이 발을 가리우신다
에훗이 나간 후에 왕의 신하들이 와서 다락문이 잠겼음을 보고 가로되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하고
직역 그가 나간 뒤, 왕의 신하들이 와서 보니 윗방의 문들이 잠겨 있었다. 그들이 말하였다. “틀림없이 그분이 시원한 방 안쪽에서 발을 덮고 계시는 것이다.”
여기서부터 이야기는 거의 희극이 됩니다. 신하들이 와서 문이 잠겨 있는 것을 봅니다. 그리고 그들은 결론을 내립니다. “왕이 필연 다락방에서 발을 가리우신다.” ‘발을 가리다’는 용변을 본다는 뜻의 완곡한 표현입니다. 고대인들은 긴 옷을 입고 쪼그려 앉아 용변을 보았기 때문에 옷자락이 발을 덮었습니다. 사울이 엔게디 굴에 들어간 장면에서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삼상 24:3).
아마 22절의 ‘파르셰도나’ 때문에 방 안에서 냄새가 났을 것입니다. 그래서 신하들은 더더욱 그렇게 생각했습니다. 왕이 화장실에 있는데 감히 문을 두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문 밖에서 공손하게 기다립니다.
사사기 기자는 이 장면에서 모압 궁정을 조롱합니다. 18년 동안 이스라엘을 짓누르던 강력한 왕은 지금 자기 방 바닥에 쓰러져 있고, 그의 충성스러운 신하들은 왕이 볼일을 보는 줄 알고 문 밖에서 쩔쩔매고 있습니다. 이방 권력의 위엄이 얼마나 허무한지를 보여 주는, 고대 이스라엘 사람들이 들으며 웃었을 장면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발을 가리다 — 원문 ‘메시크 에트 라글라브’. 삼상 24:3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의 원문도 같은 표현입니다(‘발을 가리러 들어가니라’). 『개역개정』은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
풍자 — 고대 이스라엘 문학은 압제자를 조롱하는 이야기를 즐겼습니다. 사 14:4–20 바벨론 왕의 몰락, 에스더서의 하만 이야기도 그렇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삼상 24:3길가 양의 우리에 이른즉 굴이 있는지라 사울이 그 발을 가리우러 들어가니라
시 2:4하늘에 계신 자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저희를 비웃으시리로다
사 14:11네 영화가 음부에 떨어졌음이여 너의 비파 소리까지로다 구더기가 네 아래 깔림이여 지렁이가 너를 덮었도다
25오래 기다려도 열지 아니하는지라 — 열쇠로 열고 본즉 죽어 엎드러졌더라
그들이 오래 기다려도 왕이 다락문을 열지 아니하는지라 열쇠를 취하여 열고 본즉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직역 그들이 민망할 때까지 기다렸다. 그런데 보라, 그가 윗방의 문들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그들이 열쇠를 가져다가 열었다. 그리고 보라, 그들의 주인이 땅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
신하들은 “오래 기다립니다.” 원문은 ‘부끄러울 때까지 기다렸다’입니다. 왕이 용변을 보시는데 너무 오래 걸린다. 이제는 무슨 일인가 걱정해야 할지, 계속 기다려야 할지 민망해질 만큼 오래 기다렸습니다. 이 시간이 에훗에게 도망칠 시간을 벌어 주었습니다(26절).
마침내 그들은 열쇠를 가져와 문을 엽니다. 그리고 원문은 ‘보라!’라는 말을 두 번 씁니다. ‘보라, 그가 문을 열지 않았다… 보라, 그들의 주인이 땅에 쓰러져 죽어 있었다.’ 독자는 이미 알고 있지만, 신하들의 눈으로 다시 그 충격을 보게 합니다.
“자기 주가 이미 죽어 땅에 엎드러졌더라.” 하나님이 강성하게 하신 왕(12절)이, 하나님이 세우신 구원자의 손에 무너졌습니다. 18년의 압제는 이렇게 한순간에 끝났습니다. 시편 37:35–36 “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그 본토에 선 푸른 나무의 무성함 같으나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원어 · 번역 노트
열쇠마프테아흐 — ‘열다(파타흐)’에서 온 말. 고대의 열쇠는 문의 구멍으로 넣어 빗장을 들어 올리는 긴 나무 막대였습니다. 사 22:22 “내가 또 다윗 집의 열쇠를 그의 어깨에 두리니”.
엎드러지다 — 4:22 시스라도 “엎드러져 죽었고 말뚝이 그 살쩍에 박혔더라”, 5:27 “그가 그 발 앞에 꾸부러지며 엎드러지고”. 압제자들이 땅에 쓰러지는 장면이 사사기에 되풀이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4:22시스라가 죽어 누웠고 말뚝은 그 살쩍에 박혔더라
시 37:35-36내가 악인의 큰 세력을 본즉… 사람이 지날 때에 저가 없어졌으니 내가 찾아도 발견치 못하였도다
행 12:23헤롯이 영광을 하나님께로 돌리지 아니하는 고로 주의 사자가 곧 치니 충이 먹어 죽으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우리의 왼손을 쓰십니다
에훗의 이야기에서 가장 빛나는 것은 그의 용기나 꾀가 아니라, 하나님이 그의 ‘왼손’을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사람들이 결함이라 여겼을 그 손, 그가 어쩌면 평생 부끄러워했을 그 손이, 18년의 압제를 끝내는 하나님의 도구가 되었습니다. 경비병들이 검사하지 않은 자리, 아무도 기대하지 않은 방향에서 하나님의 구원이 왔습니다.
우리에게도 감추고 싶은 왼손이 있습니다. 부족한 학력, 아픈 몸, 내세울 것 없는 배경, 실패의 기억.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통해서도, 아니 바로 그것을 통해 일하실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없애 달라고 세 번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오늘 내 왼손을 하나님께 내어 드립시다.
3:26–31나를 따르라 — 요단 나루를 지켜 모압을 이기고 팔십 년, 그리고 삼갈
에훗의 이야기는 다락방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왕 한 사람을 죽인 것은 시작일 뿐이었습니다. 에훗은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어 이스라엘을 모으고, 요단 나루를 막아 모압 군대가 도망치지 못하게 하여 일만 명을 칩니다. 개인의 용기가 공동체의 승리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결과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합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긴 평화입니다. 장의 마지막 31절은 짧게 또 한 명의 사사 삼갈을 소개합니다.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인 사람입니다.
26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스이라로 도망하다
그들의 기다리는 동안에 에훗이 피하여 돌 뜨는 곳을 지나 스이라로 도망하니라
직역 그들이 머뭇거리는 동안 에훗은 피하였다. 그는 새긴 상들을 지나 스이라로 피하였다.
신하들이 문 밖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에훗은 멀리 도망쳤습니다. 신하들의 공손함과 오해가 에훗을 살렸습니다. 하나님은 원수의 어리석음까지 사용하십니다.
에훗은 다시 “돌 뜨는 곳”, 곧 19절의 ‘새긴 상들’을 지나갑니다. 그는 그 우상들 앞에서 발길을 돌려 왕궁으로 갔고, 이제 일을 마치고 그 우상들을 지나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옵니다. 우상들은 그 자리에 서 있었지만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모압 왕을 지켜 주지도, 에훗을 막지도 못했습니다. 시편 115:5–7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발이 있어도 걷지 못하며.”
스이라 — 성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지명. ‘숲이 우거진 곳’이라는 뜻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15:4-8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욥 5:12-13하나님은 궤휼한 자의 계교를 파하사 그 손으로 하는 일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며 간교한 자로 자기 궤휼에 빠지게 하시며
27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따라 내려오니
그가 이르러서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매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오니 에훗이 앞서 가며
직역 그가 도착하자 에브라임 산지에서 숫양 뿔 나팔을 불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와 함께 산지에서 내려왔고, 그가 그들 앞에 있었다.
에훗은 숨지 않습니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붑니다. 쇼파르, 숫양의 뿔로 만든 나팔입니다. 이 소리는 전쟁을 알리는 신호였습니다. 여리고 성이 무너질 때도 제사장들이 이 나팔을 불었습니다(수 6:4–5). 기드온도 나팔을 불어 사람들을 모았습니다(6:34).
나팔 소리를 듣고 이스라엘 자손이 산지에서 그를 따라 내려옵니다. 18년 동안 고개를 숙이고 살던 사람들이, 한 사람의 용기 있는 행동을 보고 일어섭니다. 에훗은 혼자 왕을 무너뜨렸지만, 혼자 전쟁을 끝내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백성을 불러 함께 싸우게 했습니다.
그리고 “에훗이 앞서 가며.” 좋은 지도자는 뒤에서 명령하지 않고 앞에서 걸어갑니다. 위험한 일을 먼저 했고, 이제는 맨 앞에서 길을 엽니다. 목자는 양 떼 앞에서 걸어가고 양들은 그 음성을 듣고 따라갑니다(요 10:4).
원어 · 번역 노트
쇼파르 — 숫양이나 염소 뿔로 만든 나팔. 출 19:16 시내산의 “나팔 소리”, 레 25:9 희년을 알리는 나팔, 수 6장 여리고. 오늘날에도 유대인들은 신년(로쉬 하샤나)에 쇼파르를 붑니다.
앞서 가다 — 4:14 “여호와께서 너보다 앞서 행하지 아니하시느냐”. 사사기에서 진정으로 앞서 가시는 분은 여호와이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6:4-5제사장 일곱은 일곱 양각 나팔을 잡고… 백성은 다 큰 소리로 외쳐 부를것이라 그리하면 그 성벽이 무너져 내리리니
삿 6:34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요 10:4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 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28나를 따르라 — 요단강 나루를 잡아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다
무리에게 이르되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하매 무리가 에훗을 따라 내려가서 모압 맞은편 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직역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 뒤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원수 모압을 너희 손에 주셨다.” 그들이 그의 뒤를 따라 내려가서 모압으로 가는 요단의 여울목들을 차지하였고, 한 사람도 건너가게 두지 않았다.
에훗이 외칩니다.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너희 대적 모압 사람을 너희의 손에 붙이셨느니라.” 에훗은 자기를 따르라고 하면서도, 승리의 공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내가 모압 왕을 죽였다”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붙이셨다.” 그리고 그 말은 완료형입니다. 1:2에서 하나님이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고 하셨던 바로 그 약속의 말입니다. 싸움이 시작되기도 전에 이미 이긴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단강 나루를 지킵니다. 왕을 잃은 모압 군대는 여리고 쪽에서 요단을 건너 고향 모압으로 도망치려 할 것이었습니다. 요단강은 깊고 물살이 세서 아무 데서나 건널 수 없었고, 걸어서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목(나루)은 몇 군데 되지 않았습니다. 에훗은 그곳들을 막아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했습니다. 지도자를 잃은 군대가 퇴로까지 막혔습니다. 훌륭한 전략이었습니다.
요단강 나루는 사사기에서 다시 중요한 장소가 됩니다. 7:24에서 기드온은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요단 나루를 막게 하고, 12:5–6에서 입다의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나루를 지키며 “쉽볼렛”을 발음하게 해서 에브라임 사람 사만 이천 명을 죽입니다. 같은 나루가 처음에는 이스라엘의 원수를 막는 곳이었다가, 나중에는 이스라엘 형제끼리 죽이는 곳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나를 따르라 — 원문 ‘리드푸 아하라이’, ‘내 뒤를 쫓으라, 추격하라’. ‘라다프’는 추격하다는 뜻이 강한 말입니다. 일부 사본은 ‘레두’(내려오라)로 읽습니다.
나루마바라 — ‘건너는 곳’. 수 2:7 정탐꾼을 쫓던 자들이 “요단 길로 나루턱까지” 갔습니다. 여리고 맞은편에는 여러 여울목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2보라 내가 이 땅을 그 손에 붙였노라
삿 7:24기드온이 사자를 보내어 에브라임 온 산지로 두루 행하게 하여 이르기를 내려와서 미디안 사람을 치고 그들을 앞질러 벧 바라와 요단에 이르기까지 나루턱을 취하라
삿 12:5-6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고전 11:1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29모압 사람 일만 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그 때에 모압 사람 일만명 가량을 죽였으니 다 역사요 용사라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직역 그들이 그때 모압 사람을 약 일만 명 쳤는데, 모두 기름지고 모두 용사였다.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다.
이스라엘은 모압 사람 일만 명을 칩니다. 그들은 “다 역사요 용사”였습니다. ‘역사(力士)’로 옮긴 원문 ‘샤멘’은 ‘기름진, 살진’이라는 뜻입니다. 17절에서 에글론이 ‘살진’ 자였던 것처럼, 그의 군대도 ‘살진’ 자들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공물로 살쪄 온 자들입니다. 그들은 강하고 힘센 군대였지만, 지도자를 잃고 퇴로가 막히자 무너졌습니다.
“한 사람도 피하지 못하였더라.” 28절의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와 짝을 이룹니다. 완전한 승리였습니다. 18년의 압제가 하루 만에 끝났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샤멘 — ‘기름진, 비옥한’. 사 10:16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찐 자로 파리하게 하시며”, 신 32:15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이쉬 하일 — ‘힘의 사람’. 6:12 기드온을 부를 때 “큰 용사여”, 11:1 입다를 “큰 용사”라 할 때도 ‘기보르 하일’이 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2:15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시 33:16-17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용사가 힘이 커도 스스로 구하지 못하는도다
30모압이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직역 모압이 그날 이스라엘의 손 아래 굴복하였다. 그리고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조용하였다.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원문은 ‘이스라엘의 손 아래’입니다. 이 단락은 처음부터 끝까지 ‘손’의 이야기였습니다. 이스라엘이 공물을 에훗의 ‘손으로’ 보냈고(15절), 에훗이 ‘왼손’으로 칼을 뽑았고(21절), 하나님이 모압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고(28절), 이제 모압이 이스라엘의 ‘손 아래’ 굴복합니다. 18년 동안 이스라엘은 모압의 손 아래 있었는데, 이제 상황이 완전히 뒤집혔습니다.
그리고 “그 땅이 팔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사사기 전체에서 가장 긴 평화입니다. 옷니엘의 40년보다 두 배, 두 세대에 걸친 쉼입니다. 하나님은 왼손잡이 한 사람의 순종을 통해 두 세대에게 평화를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사기 기자는 이 80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무것도 말하지 않습니다. 평화의 시간은 기록할 사건이 없는 시간입니다. 그리고 4:1은 다시 “에훗이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로 시작합니다. 평안이 길어도, 그 평안 속에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을 전하지 않으면 바퀴는 다시 돕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항복하다카나 수동형 — ‘낮아지다, 굴복하다’. 4:23 “그 날에 하나님이 가나안 왕 야빈으로 이스라엘 자손 앞에 굴복하게 하신지라”, 8:28, 11:33.
80년 — 일부 학자들은 사사기의 연대를 더해 보면 출애굽부터 솔로몬 성전까지 480년(왕상 6:1)보다 길어지므로, 사사들의 시기 일부가 겹쳤을 것이라고 봅니다. 삼갈(31절)의 활동도 에훗의 80년 사이 서쪽 블레셋 지역에서 있었던 일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3:11그 땅이 태평한지 사십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
삿 4:1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시 46:9저가 땅 끝까지 전쟁을 쉬게 하심이여 활을 꺾고 창을 끊으며 수레를 불사르시는도다
31아낫의 아들 삼갈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이다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직역 그 뒤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있었다. 그는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소 모는 막대기로 쳤다.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3장은 단 한 절로 또 한 명의 사사를 소개합니다. 삼갈. 그에 대해 우리가 아는 것은 이 한 절과 5:6 “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대로가 비었고”가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한 절에 이상한 점이 많습니다.
첫째, 그의 이름입니다. ‘삼갈’은 히브리 이름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는 “아낫의 아들”입니다. 아낫은 1:33의 ‘벧아낫’처럼 가나안의 잔인한 전쟁 여신 이름입니다. 그의 아버지 이름이 아낫이었을 수도 있고, ‘벧아낫’ 출신이라는 뜻일 수도 있으며, ‘전쟁 여신의 아들’, 곧 ‘용맹한 전사’라는 별명일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는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이방 이름을 가진 사람까지 들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셨습니다.
둘째, 그의 무기입니다. “소 모는 막대기.” 길이가 2–3미터나 되는 긴 장대로, 한쪽 끝에는 소를 찔러 모는 뾰족한 쇠 꼬챙이가, 다른 쪽 끝에는 쟁기 날에 붙은 흙을 긁어내는 넓적한 날이 달려 있었습니다. 평범한 농기구입니다. 당시 블레셋은 철 무기를 독점하고 이스라엘에게는 대장장이도 두지 못하게 했습니다(삼상 13:19–22). 이스라엘 농부의 손에 있는 것은 농기구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평범한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물리치셨습니다.
셋째, 이 구절은 앞으로의 이야기를 예고합니다. 3절에서 블레셋이 남겨 두신 민족의 첫머리에 있었고, 31절에서 그들이 처음으로 이스라엘과 싸웁니다. 그리고 13–16장에서 삼손이 블레셋과 싸울 때, 삼손도 평범한 물건, 곧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죽입니다(15:15). 삼갈은 삼손의 예고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손에 있는 것을 쓰십니다. 모세에게는 지팡이(출 4:2), 다윗에게는 물매(삼상 17:40), 소년에게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요 6:9). 지금 내 손에 있는 평범한 것도 하나님께 드리면 구원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삼갈 — ‘샴가르’. 후리아어(북쪽 메소포타미아의 민족) 이름과 비슷하다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5:6에서 그의 시대에는 “대로가 비었고 길에 행인들은 오솔길로 다녔으며”라고 해서, 블레셋 등의 위협으로 큰길이 위험했던 혼란기였음을 보여 줍니다.
소 모는 막대기말마드 — ‘가르치다(라마드)’에서 온 말. 소를 ‘가르치는’ 도구. 3:2 “전쟁을… 가르쳐(라마드) 알게 하려하사”와 같은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전쟁을 ‘가르치시는’ 장에서, 소를 ‘가르치는’ 막대기로 이깁니다. 삼상 13:21, 행 26:14 “가시채를 뒤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전 12:11 “지혜자의 말씀은 찌르는 채찍 같고”.
사사로 있어 — 원문에는 ‘사사로 있다’는 말이 없습니다. 『개역한글』이 문맥을 살려 넣었습니다. 다만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는 그를 사사로 보게 합니다.
육백 — 18:11, 16, 17에서 단 지파의 군사도 육백 명, 20:47 베냐민 생존자도 육백 명. 삼상 13:15, 14:2 사울과 함께한 사람도 육백 명.
함께 읽을 말씀
삿 5:6아낫의 아들 삼갈의 날에 또는 야엘의 날에는 대로가 비었고 행인들은 소로로 다녔도다
삿 15:15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삼상 13:19-22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어졌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출 4:2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가 가로되 지팡이니이다
요 6:9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졌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삽나이까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내 손에 있는 것을 드립시다
3장의 사사들은 모두 다릅니다. 옷니엘은 믿음의 명문가 출신 용사, 에훗은 오른손이 묶인 베냐민 사람, 삼갈은 이방 이름을 가진 농부. 그들의 무기도 다릅니다. 옷니엘에게는 성령의 능력, 에훗에게는 직접 만든 단검, 삼갈에게는 소 모는 막대기. 그러나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세우셨고, 그들은 자기 손에 있는 것을 들고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것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것이 왼손이든, 평범한 막대기든, 작은 재능이든, 하나님께 드려질 때 그것은 구원의 도구가 됩니다. 오늘 내 손에 있는 것을 하나님 앞에 내어 놓읍시다.
Three Judges · 정리
3장의 세 사사, 한눈에 보기
출신도 방법도 다르지만, 세우신 분은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옷니엘
에훗
삼갈
본문
3:7–11
3:12–30
3:31
출신
유다, 갈렙 집안
베냐민, 게라의 아들
아낫의 아들 (이방 이름?)
압제자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
모압 왕 에글론 (+암몬, 아말렉)
블레셋
압제 기간
8년
18년
기록 없음
특징
여호와의 신이 임하심
왼손잡이, 직접 만든 단검
소 모는 막대기
결과
40년 태평
80년 태평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흠의 기록
없음
속임수 (평가 없이 기록)
기록 없음
옷니엘은 사사기의 ‘표준 모델’입니다. 이후 사사들의 이야기는 점점 길어지고 복잡해지며, 사사 자신의 흠도 커집니다. 사사기를 읽을 때 옷니엘을 기준으로 놓고 비교해 보면, 이스라엘이 어떻게 내려가는지가 선명하게 보입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3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방백方伯 · 3절
블레셋 다섯 도시의 통치자. 원문 세렌.
하맛 어구3절
하맛으로 들어가는 길목. 이스라엘 땅의 북쪽 끝.
통혼6절
서로 혼인함. (본문 표현: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아세라7절
가나안의 어머니 여신. 나무 기둥 형태의 상.
메소보다미아8, 10절
‘두 강 사이’. 유브라데 상류의 아람 나하라임.
구원자救援者 · 9, 15절
하나님이 세우신, 백성을 건지는 사람. 원문 모쉬아.
여호와의 신10절
여호와의 영. 사사에게 능력을 주시는 성령.
태평太平 · 11, 30절
전쟁이 그치고 조용함.
강성強盛 · 12절
힘이 강해짐.
종려나무 성읍13절
여리고.
공물貢物 · 15–18절
속국이 바치는 예물, 조공. 원문 민하.
규빗16절
길이 단위. 여기서는 짧은 단위 ‘고메드’로 약 30cm 남짓.
비둔肥鈍 · 17절
살이 쪄서 몸이 둔함.
종용從容 · 19절
조용함. 원문 ‘쉿!’.
다락방20절
지붕 위의 시원한 윗방.
발을 가리다24절
용변을 보다의 완곡한 표현.
나루28절
강을 건널 수 있는 얕은 여울목.
역사力士 · 29절
힘센 사람. 원문은 ‘기름진, 살진’.
수하手下 · 30절
손 아래, 지배 아래.
소 모는 막대기31절
끝에 쇠 꼬챙이를 단 긴 농기구 장대.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을 남겨 두셔서 다음 세대에게 ‘하나님의 전쟁’을 가르치려 하셨습니다(2절). 내 삶에서 하나님을 직접 경험하게 해 준 ‘남겨진 어려움’은 무엇이었습니까?
이스라엘의 타협은 결국 혼인과 우상 숭배로 이어졌습니다(6절). 우리 가정이 다음 세대에게 신앙을 전하는 통로가 되기 위해 지켜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옷니엘은 위기가 오기 전부터 믿음의 가정에서 준비된 사람이었습니다. 나는 지금 어떤 준비를 하며 살고 있습니까?
옷니엘의 승리는 “여호와의 신이 임하셨으므로” 시작되었습니다(10절). 내 힘이 아니라 성령을 의지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에훗의 ‘왼손’처럼, 내가 약점이라고 여기며 감추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그것을 어떻게 쓰실 수 있을까요?
에훗은 “나를 따르라 여호와께서… 붙이셨느니라”(28절)고 외쳤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 먼저 앞서 가며 하나님을 가리키는 사람입니까?
삼갈은 소 모는 막대기로 이스라엘을 구원했습니다(31절). 지금 내 손에 있는 평범한 것 가운데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