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18절까지 — 조용한 두 사사, 일곱 신들, “다시는 구원치 아니하리라”, 그리고 백성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JUDGES 10:16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0장 들어가며
거절의 말씀 뒤에 숨은 하나님의 아픈 마음
아비멜렉의 피비린내 나는 이야기가 끝나고, 사사기는 잠시 숨을 고릅니다. 돌라와 야일, 두 명의 이른바 ‘소사사’가 45년 동안 이스라엘을 이끕니다. 극적인 전쟁 이야기도, 큰 기적도 없습니다. 그저 한 사람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23년 동안 사사로 섬겼고, 또 한 사람은 아들 서른 명과 나귀 서른 마리와 성읍 서른 개를 두고 22년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6절부터 이스라엘의 죄가 그 어느 때보다 깊어집니다. 바알과 아스다롯만이 아니라 아람, 시돈, 모압, 암몬, 블레셋의 신들까지 일곱 종류의 신을 섬깁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블레셋과 암몬에게 파시고, 요단 동쪽 길르앗은 18년 동안 학대를 당합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게 대답하십니다.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 그러나 이스라엘이 이방 신들을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자, 성경은 놀라운 말을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원문은 ‘그의 영혼이 이스라엘의 고통을 더 참지 못하셨다’입니다. 거절의 말씀 뒤에는, 자기 백성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핵심 구절
10:16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하나님의 마음이 드러나는 구절입니다.
조용한 사사들
10:1–5
돌라와 야일. 극적인 이야기 없이 45년을 섬긴 사람들.
일곱 신들
10:6
사사기에서 가장 깊은 배교. 이스라엘은 주변 모든 민족의 신을 섬겼습니다.
거절과 긍휼
10:13–16
“다시는 구원치 아니하리라” — 그러나 하나님은 끝내 백성을 버리지 못하십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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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사밀”
에브라임 산지의 마을. 위치 미상.
4절 “어린 나귀”
귀족이나 지도자의 탈것.
4절 “하봇야일”
‘야일의 장막촌들’.
6절 “아스다롯”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아스타르테)의 복수형.
8절 “학대하니”
산산이 부수고 짓밟았다.
9절 “곤고”
困苦, 몹시 어렵고 고통스러움.
12절 “마온 사람”
아라비아 남쪽의 민족, 또는 미디안을 가리킴.
16절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그 영혼이 이스라엘의 고통을 더 참지 못하셨다.
17절 “미스바”
‘망대’. 길르앗의 집결지.
18절 “머리”
지도자, 우두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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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5조용히 섬긴 두 사사 — 돌라와 야일
아비멜렉이 죽은 뒤 하나님은 두 사사를 세우십니다. 잇사갈 지파의 돌라와 길르앗 사람 야일입니다. 학자들은 이들처럼 짧게 기록된 사사들(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을 ‘소사사’라고 부릅니다.
그들의 이야기는 짧지만, 합치면 45년입니다. 아비멜렉의 3년 혼란 뒤에 온 긴 안정의 시간이었습니다. 화려한 기록은 없지만,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조용히 백성을 지키셨습니다.
1아비멜렉의 후에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아비멜렉의 후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손자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그가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거하여
직역 아비멜렉 뒤에 잇사갈 사람, 도도의 아들 부아의 아들 돌라가 일어나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다. 그는 에브라임 산지의 사밀에 살았다.
“아비멜렉의 후에.” 사사기 기자는 아비멜렉을 사사의 계보에 넣지 않으면서도, 시간의 기준점으로 삼습니다. 아비멜렉이 남긴 것은 무너진 세겜, 불탄 천 명, 흩어진 백성이었습니다. 그 혼란 뒤에 돌라가 일어나서 이스라엘을 구원하니라.
돌라가 누구로부터 이스라엘을 구원했는지는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외부의 적이 언급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아비멜렉 이후의 내부 혼란과 분열에서 이스라엘을 건져 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전쟁이 아니라 질서를 회복하는 구원도 있습니다.
그는 잇사갈 사람이었지만 에브라임 산지 사밀에 살았습니다. 북쪽 지파 사람이 중앙 산지에 거하며 다스렸습니다. 아비멜렉의 세겜이 있던 바로 그 지역입니다. 무너진 곳 가까이에서 그는 회복의 일을 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돌라와 부아 — 창 46:13 “잇사갈의 아들 곧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민 26:23. 사사 돌라와 그 아버지 부아는 조상의 이름을 이어받았습니다.
도도 — ‘그의 사랑하는 자’. 다윗(다비드)과 같은 뿌리의 이름입니다.
구원하다야샤 — 2:16, 18, 3:9, 15, 31, 6:14, 15. 돌라에게 이 동사가 쓰인 것은 그가 진정한 사사였음을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46:13잇사갈의 아들 곧 돌라와 부와와 욥과 시므론이요
삿 2:16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대상 12:32잇사갈 자손 중에서 시세를 알고 이스라엘이 마땅히 행할 것을 아는 두목이 이백 명이니
2사사가 된 지 이십삼 년 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이십 삼년만에 죽으매 사밀에 장사되었더라
직역 그는 이스라엘을 이십삼 년 동안 다스리다가 죽어서 사밀에 장사되었다.
돌라는 23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섬겼습니다. 아비멜렉의 3년과 비교하면 거의 여덟 배입니다. 피로 세운 권력은 3년 만에 무너졌지만, 하나님이 세우신 사사는 23년 동안 조용히 백성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는 죽어서 사밀에 장사되었습니다. 그에 대한 기록은 두 절이 전부입니다. 어떤 전쟁도, 어떤 기적도, 어떤 연설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23년 동안 이스라엘을 지킨 것은 아비멜렉의 극적인 3년보다 훨씬 귀한 일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신실함은 화려함보다 귀합니다.
마 25:21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3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이 년 동안 사사가 되니라
그 후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서 이십 이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니라
직역 그 뒤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이십이 년 동안 다스렸다.
돌라 뒤에 길르앗 사람 야일이 사사가 됩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의 산지입니다. 지금까지 사사들은 대부분 요단 서쪽에서 나왔는데, 이제 동쪽에서 사사가 나옵니다. 그리고 바로 이 길르앗에서 다음 사사 입다도 나옵니다(11장).
야일은 22년 동안 사사로 섬겼습니다. 돌라의 23년과 합하면 45년의 안정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야일 — 민 32:41 “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들을 취하고 하봇야일이라 칭하였으며”, 신 3:14. 모세 시대의 야일과 사사 야일은 다른 사람이지만, 같은 가문으로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32:41므낫세의 아들 야일은 가서 그 촌락들을 취하고 하봇야일이라 칭하였으며
4아들 삼십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그 성들은 길르앗 땅에 있고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칭하더라
직역 그에게는 아들 서른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어린 나귀 서른 마리를 탔고 성읍 서른 개를 가졌다. 그것들은 오늘까지 하봇야일이라 불리며 길르앗 땅에 있다.
야일에 대한 기록은 그의 부와 지위입니다. “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아들 30명, 나귀 30마리, 성읍 30개. 원문에는 재미있는 말장난이 있습니다. ‘어린 나귀’(아야림)와 ‘성읍’(아야림)이 거의 같은 발음입니다. 서른 아들이 서른 ‘아야림’을 타고 서른 ‘아야림’을 다스렸다.
어린 나귀를 타는 것은 지도자와 귀족의 표지였습니다. 5:10에서 드보라는 “흰 나귀를 탄 자들”을 지도층으로 불렀습니다. 야일의 아들들은 각자 성읍 하나씩을 다스리는 지방 영주였던 셈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8:30의 기드온을 떠올리게 합니다. 많은 아내, 많은 아들, 왕처럼 사는 삶. 야일은 아비멜렉처럼 피를 흘리지는 않았지만, 사사가 점점 왕처럼 되어 가는 흐름은 계속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부와 안정의 시간 동안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는 어떠했을까요? 바로 다음 절(6절)이 그 답입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깊은 배교가 기록됩니다. 외적인 번영이 영적인 건강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말장난 — ‘아야림’(עֲיָרִים, 어린 나귀들)과 ‘아야림’(성읍들, 보통은 ‘아림’). 저자가 일부러 같은 꼴로 써서 운율을 맞춘 것으로 봅니다.
하봇야일 — ‘야일의 장막촌’. 민 32:41, 신 3:14, 수 13:30, 왕상 4:13. 신 3:14에서는 바산 지역의 60성읍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12:9, 14 — 입산은 아들 30, 딸 30, 압돈은 아들 40, 손자 30이 나귀 70을 탔습니다. 소사사들의 기록에는 많은 자녀와 나귀가 반복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5:10흰 나귀를 탄 자들, 귀한 화문석에 앉은 자들, 길에 행하는 자들아 선파할찌어다
삿 8:30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인이었고
삿 12:14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필을 탔었더라
슥 9:9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5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직역 야일이 죽어 가몬에 장사되었다.
“야일이 죽으매 가몬에 장사되었더라.” 소사사들의 기록은 늘 이렇게 끝납니다. 언제 일어났고, 몇 년 섬겼고, 어디에 장사되었는가. 짧지만, 각 사람이 하나님이 맡기신 시대를 살고 떠났다는 기록입니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 이스라엘은 다시 무너집니다. 2:19의 말씀처럼,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원어 · 번역 노트
가몬 — 요단 동쪽 길르앗의 성읍. 오늘날 요르단 북부의 카마(Qamm)로 추정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2:19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히 11: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조용한 신실함도 귀합니다
돌라와 야일의 이야기는 다섯 절밖에 되지 않습니다. 기드온의 300명이나 삼손의 힘 같은 극적인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합쳐서 45년 동안 이스라엘을 섬겼습니다. 아비멜렉의 3년 혼란 뒤에 찾아온 긴 안정이었습니다.
우리 삶의 대부분도 극적인 순간이 아니라 평범한 날들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은 큰 기적만큼이나, 날마다 맡겨진 자리에서 조용히 섬기는 신실함을 귀하게 보십니다. 기록되지 않는 섬김, 알려지지 않는 충성도 하나님은 다 아십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
10:6–9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 십팔 년의 학대
야일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사사기에서 가장 깊은 배교에 빠집니다. 바알과 아스다롯뿐 아니라 아람, 시돈, 모압, 암몬, 블레셋의 신들까지, 주변 모든 민족의 신을 섬깁니다. 그리고 여호와를 버립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동쪽의 암몬과 서쪽의 블레셋에게 동시에 파십니다. 이 두 원수는 앞으로 이어지는 입다 이야기(10–12장)와 삼손 이야기(13–16장)의 배경이 됩니다. 길르앗은 18년 동안 짓밟히고, 암몬은 요단을 건너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까지 칩니다.
6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시돈·모압·암몬·블레셋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 사람의 신들을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들과 아람의 신들과 시돈의 신들과 모압의 신들과 암몬 자손의 신들과 블레셋의 신들을 섬겼다.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그를 섬기지 않았다.
“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사사기의 익숙한 문장이 다시 나옵니다(3:7, 12, 4:1, 6:1). 그런데 이번에는 그 악의 목록이 유난히 깁니다.
바알들과 아스다롯, 가나안의 남신과 여신. 그리고 아람의 신들(북쪽 시리아), 시돈의 신들(서북쪽 해안 페니키아), 모압의 신들(동남쪽, 그모스), 암몬 자손의 신들(동쪽, 밀곰/몰렉), 블레셋 사람의 신들(서남쪽 해안, 다곤).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사방에 있는 모든 민족의 신을 섬겼습니다. 동서남북 어디를 보아도 우상뿐이었습니다.
그리고 결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이스라엘은 그 많은 신들 사이에 여호와를 하나 더 끼워 두지도 않았습니다. 아예 버렸습니다. 일곱 신을 섬기고 참 하나님은 버린 것, 이것이 사사기에서 가장 깊은 배교였습니다.
숫자 일곱도 의미가 있을 수 있습니다. 11–12절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일곱 민족에게서 구원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구원하신 민족의 수만큼, 이스라엘은 다른 신들을 섬겼습니다. 은혜를 배신으로 갚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일곱 민족의 신 — 아람: 하닷(바알의 다른 이름)과 림몬, 시돈: 바알과 아스다롯(왕상 11:5), 모압: 그모스(왕상 11:7, 33), 암몬: 밀곰/몰렉(왕상 11:5, 7), 블레셋: 다곤(삿 16:23, 삼상 5:2).
버리다아자브 — 2:12, 13, 10:6, 10, 13. 렘 2:13 “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함께 읽을 말씀
삿 2:12-13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렘 2:13내 백성이 두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물을 저축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왕상 11:5이는 시돈 사람의 여신 아스다롯을 좇고 암몬 사람의 가증한 밀곰을 좇음이라
렘 2:28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유다여 너의 신들이 너의 성읍 수와 같도다
7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시매
직역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타올라, 그가 그들을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셨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2:14, 20, 3:8에 나왔던 같은 표현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블레셋 사람의 손과 암몬 자손의 손에 파십니다.
이번에는 원수가 둘입니다. 서쪽 해안 평야의 블레셋, 그리고 요단 동쪽의 암몬. 이스라엘은 양쪽에서 동시에 압박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한 구절이 사사기 후반부 전체의 무대를 엽니다. 동쪽 암몬과의 싸움은 10:17–12:7 입다 이야기에서, 서쪽 블레셋과의 싸움은 13–16장 삼손 이야기에서 펼쳐집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섬긴 신들의 주인인 그 민족들에게 이스라엘을 넘기셨습니다. 암몬의 신을 섬기던 이스라엘은 암몬에게, 블레셋의 신을 섬기던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짓밟힙니다. 사람은 자기가 섬기는 것의 종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파시매마카르 — ‘팔다’. 2:14, 3:8, 4:2, 10:7.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원수에게 ‘파셨다’는 표현은 언약의 관계가 깨어졌음을 보여 줍니다.
블레셋 — 3:3, 31에도 나왔지만, 13장부터 본격적인 원수가 됩니다. 사무엘서까지 이스라엘의 가장 큰 적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2:14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삿 13:1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사십년 동안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니라
롬 6: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8요단 저편 길르앗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팔 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요단 저편 길르앗 아모리 사람의 땅에 거한 이스라엘 자손이 십 팔년 동안 학대를 당하였고
직역 그들이 그해에 이스라엘 자손을 부수고 짓밟았다. 요단 저편, 길르앗에 있는 아모리 사람의 땅에 사는 모든 이스라엘 자손을 십팔 년 동안 그렇게 하였다.
“그들이 그 해부터 이스라엘 자손을 학대하니.” 원문에서는 두 동사가 겹쳐 있습니다. ‘부수고 짓밟았다’(라아츠, 라차츠). 비슷한 소리의 두 낱말을 연달아 써서 그 고통이 얼마나 심했는지 강조합니다.
특히 요단 저편 길르앗에 사는 이스라엘 자손이 18년 동안 학대를 당했습니다. 길르앗은 요단강 동쪽, 암몬과 바로 맞닿은 땅이었습니다. 원래 아모리 왕 시혼과 옥의 땅이었는데, 모세 시대에 이스라엘이 정복하여 르우벤, 갓, 므낫세 반 지파에게 주어졌습니다(민 32장). 암몬은 그 땅이 원래 자기 것이라고 주장했고(11:13), 18년 동안 그곳 이스라엘 사람들을 짓밟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학대하다 — ‘라아츠’(부수다, 출 15:6 “원수를 부수시니이다”)와 ‘라차츠’(짓누르다, 신 28:33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두 말의 소리가 비슷합니다.
그 해부터 — 원문 ‘바샤나 하히’. 학대가 시작된 해를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민 32:33모세가 갓 자손과 르우벤 자손과 요셉의 아들 므낫세 반 지파에게 아모리인의 왕 시혼의 국토와 바산 왕 옥의 국토를 주되
신 28:33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삿 3:14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 팔년을 섬기니라
9암몬 자손이 요단을 건너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을 치므로 곤고가 심하였더라
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직역 암몬 자손이 요단을 건너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의 집과도 싸웠다. 그래서 이스라엘이 몹시 곤경에 처하였다.
암몬은 길르앗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요단강 서쪽, 이스라엘의 심장부까지 쳐들어왔습니다. 남쪽의 유다, 중앙의 베냐민과 에브라임. 이제 이스라엘 전체가 위협받습니다.
“이스라엘의 곤고가 심하였더라.” 원문은 ‘이스라엘에게 몹시 좁아졌다’입니다. 사방이 막혀 숨 쉴 공간이 없는 상태입니다. 서쪽에는 블레셋, 동쪽에는 암몬. 2:15 “괴로움이 심하였더라”와 같은 표현입니다. 그리고 이 막다른 곳에서 이스라엘은 비로소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곤고하다차라르 — ‘좁다, 괴롭다’. 2:15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삼상 30:6 “다윗이 크게 군급하였으나”, 시 18:6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차르).
함께 읽을 말씀
삿 2:15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시 107:6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시 118:5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우리는 섬기는 것의 종이 됩니다
이스라엘은 사방 모든 민족의 신을 섬겼습니다. 그리고 그 신들을 섬기던 민족들에게 짓밟혔습니다. 암몬의 신을 섬긴 이스라엘은 암몬에게, 블레셋의 신을 섬긴 이스라엘은 블레셋에게. 사람은 자기가 섬기는 것의 종이 됩니다.
오늘 우리가 섬기는 것은 무엇입니까? 돈, 성공, 사람의 인정, 편안함. 그것들은 처음에는 우리에게 무언가를 줄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우리를 짓누르고 묶습니다. 사방이 막힌 것처럼 느껴질 때, 그것은 어쩌면 우리가 섬기던 것들의 실체가 드러나는 때일 수 있습니다. 그때가 다시 참 하나님께 돌아갈 때입니다.
10:10–16내가 다시는 구원치 아니하리라 — 그러나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이스라엘이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지금까지와 다릅니다. 그들은 처음으로 자기 죄를 구체적으로 고백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대답도 지금까지와 다릅니다. 하나님은 일곱 번의 구원을 하나하나 상기시키신 뒤,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고 하십니다. 이스라엘은 다시 고백하고, 이번에는 말만이 아니라 이방 신들을 실제로 버립니다.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10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말하였다. “우리가 주께 범죄하였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겼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여러 번 부르짖었습니다(3:9, 15, 4:3, 6:6). 그런데 이전에는 그저 고통 때문에 부르짖었을 뿐, 죄를 고백한 기록은 없었습니다. 이번에 처음으로 이스라엘은 자기 죄를 분명히 말합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버리고 바알들을 섬김으로 주께 범죄하였나이다.” 이 고백은 정확합니다. 6절의 고발(“여호와를 버려”, “바알들을 섬기고”)을 그대로 인정합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버렸지만 여전히 우리 하나님이시라는 고백입니다.
그런데 이 고백만으로 충분했을까요? 하나님의 대답(11–14절)은 그렇지 않다고 말합니다.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한 고백과 진정한 회개는 다릅니다.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고통이 오면 부르짖고, 구원받으면 다시 돌아섰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그 패턴을 그냥 넘기지 않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범죄하다하타 — ‘과녁을 빗나가다, 죄를 짓다’. 삼상 7:6 “우리가 여호와께 범죄하였나이다”, 12:10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김으로 범죄하였나이다” — 거의 같은 고백이 사무엘 시대에 반복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2:10백성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가로되 우리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섬기므로 범죄하였나이다
시 51:4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
요일 1:9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11내가 애굽과 아모리와 암몬과 블레셋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시되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직역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씀하셨다. “애굽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내가 너희를 구원하지 않았느냐?”
하나님이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바로 용서하지 않으시고, 먼저 지난 일을 상기시키십니다. “내가 애굽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암몬 자손과 블레셋 사람에게서 너희를 구원하지 아니하였느냐.”
일곱과 일곱 — 6절 일곱 신, 11–12절 일곱 민족. 이것이 의도된 대칭인지에 대해서는 학자들의 의견이 갈리지만, 하나님의 은혜와 이스라엘의 배반이 짝을 이루는 것은 분명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출 17:13여호수아가 칼날로 아말렉과 그 백성을 쳐서 파하니라
느 9:27-28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평강을 얻은 후에 다시 주 앞에서 악을 행하므로
시 106:43여호와께서 여러 번 저희를 건지시나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자기 죄악으로 인하여 낮아짐을 당하였도다
13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직역 “그런데 너희는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겼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겠다.”
“너희가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니.” 일곱 번의 구원에 대한 이스라엘의 응답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긴 것.
그리고 하나님은 사사기에서 가장 무서운 말씀을 하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 원문은 ‘내가 너희를 구원하기를 더하지 않겠다’입니다. 이제 그만이다. 더는 안 된다.
이 말씀은 2:21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라.” 하나님의 인내에도 한계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를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언제든 부르짖으면 구원해 주실 것이라고. 하나님은 그 생각을 깨뜨리십니다.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끝까지 읽어야 합니다. 16절에서 하나님은 결국 마음에 근심하십니다. 이 거절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이스라엘을 진정한 회개로 이끄시려는 사랑의 충격 요법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다시는 … 아니하리라 — 원문 ‘로 오시프’, ‘더하지 않겠다’. 2:21 “다시는 … 쫓아내지 아니하리라”(로 오시프), 호 1:6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로 오시프) — 그러나 호세아서도 결국 긍휼로 끝납니다(호 2:23).
함께 읽을 말씀
삿 2:21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호 1:6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사하지 않을 것임이니라
렘 7:16그런즉 너는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 말라 그들을 위하여 부르짖어 구하지 말라 내게 간구하지 말라 내가 너를 듣지 아니하리라
롬 6:1-2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4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 그들로 구원하게 하라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직역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 너희 환난의 때에 그들이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하나님의 말씀은 날카로운 아이러니입니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어서 너희 환난 때에 그들로 너희를 구원하게 하라.” 너희가 나 대신 그 신들을 ‘택했다’. 그러니 이제 그 신들에게 가서 구원해 달라고 해 보라.
물론 하나님은 그 신들이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그리고 이스라엘도 그것을 알아야 했습니다. 바알, 아스다롯, 그모스, 밀곰, 다곤. 그 많은 신들 가운데 누구도 암몬의 칼에서 이스라엘을 구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시 115:5)였습니다.
‘택하다’는 말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는 바로 그 세겜에서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때 여호와를 택하겠다고 했지만(수 24:21–22), 결국 다른 신들을 택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선택의 결과를 직면하게 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택하다바하르 — 수 24:22 “너희가 여호와를 택하고 그를 섬기리라 하였으니 스스로 증인이 되었느니라”, 신 30:19 “생명을 택하고”.
신 32:37–38 — “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그들로 일어나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피난처가 되게 하라” — 하나님의 아이러니한 도전이 모세의 노래에 이미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2:37-38그들의 신들이 어디 있으며 그들의 피하던 반석이 어디 있느냐… 것들로 일어나서 너희를 돕게 하라 너희의 보장이 되게 하라
렘 2:28만든 네 신들이 어디 있느뇨 그들이 너의 환난을 당할 때에 구원할 수 있으면 일어날 것이니라
수 24:15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시 115:4-5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15주의 보시기에 좋은 대로 행하시려니와 오직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여짜오되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하고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말하였다. “우리가 범죄하였습니다. 주의 눈에 좋은 대로 무엇이든 우리에게 행하십시오. 다만 제발 오늘 우리를 건져 주십시오.”
이스라엘은 다시 고백합니다. 그런데 이번 고백은 10절보다 깊습니다. “우리가 범죄하였사오니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려니와.” 우리가 벌받아 마땅합니다. 주께서 무엇을 하시든 받아들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를 하나님의 처분에 완전히 맡깁니다. 다윗이 범죄한 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 했던 것과 같은 마음입니다.
“오직 주께 구하옵나니 오늘날 우리를 건져내옵소서.” 그러면서도 그들은 다른 신에게 가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가라”고 하셨지만, 그들은 오직 여호와께만 구합니다. 벌을 받더라도 주님께 받겠습니다. 구원도 주님께만 구합니다. 다른 곳에는 갈 데가 없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회개의 모습입니다. 베드로가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고백했던 것처럼, 다른 모든 것을 시도해 본 끝에 오직 하나님만이 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주의 보시기에 좋은대로 — 원문 ‘케콜 하토브 베에네카’, ‘당신 눈에 좋은 모든 것대로’. 삼상 3:18 엘리 “이는 여호와시니 선하신 소견대로 하실 것이니라”, 삼하 15:26 다윗.
함께 읽을 말씀
삼하 24:14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
요 6:68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계시매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이까
눅 15:18-19내가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르기를 아버지여 내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얻었사오니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나이다
16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 여호와께서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직역 그들이 자기들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없애고 여호와를 섬겼다. 그러자 여호와의 마음이 이스라엘의 고통 때문에 더는 참지 못하셨다.
이번에는 말만이 아닙니다. “자기 가운데서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여호와를 섬기매.” 이스라엘은 실제로 우상들을 버렸습니다. 사사기 전체에서 이스라엘이 스스로 우상을 제거했다는 기록은 이곳이 유일합니다. 6장에서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헐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었고 마을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죽이려 했습니다. 이번에는 백성 스스로 우상을 버렸습니다. 창세기 35:2–4에서 야곱의 가족이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그것들을 세겜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던 것처럼.
그리고 성경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의 곤고를 인하여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원문은 ‘그의 영혼(네페쉬)이 이스라엘의 고통(아말) 때문에 짧아졌다’입니다. ‘영혼이 짧아지다’는 히브리어 관용구로, ‘더 이상 참을 수 없게 되다’, ‘견딜 수 없다’는 뜻입니다. 민수기 21:4에서 광야의 백성이 “마음이 상하니라”(영혼이 짧아졌다), 16:16에서 들릴라의 조름에 삼손이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영혼이 짧아졌다)고 할 때 쓰인 같은 표현입니다.
하나님은 방금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자기 백성이 고통받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의 마음이 그것을 더 이상 견디지 못하십니다. 이것은 성경에서 하나님의 마음을 가장 깊이 드러내는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호세아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하나님은 진노하시는 분이시지만, 그 진노보다 더 큰 긍휼을 가지신 분입니다. 하나님의 거절은 이스라엘을 버리시려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회개로 이끄시려는 것이었고, 이스라엘이 돌아오자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곧 입다를 통해 그들을 구원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마음에 근심하시니라 — 원문 ‘바티크차르 나프쇼’, ‘그의 영혼이 짧아졌다’. 민 21:4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삿 16:16 삼손 “마음이 번뇌하여 죽을 지경이라”, 슥 11:8. 일부 해석자들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거짓) 회개에 더는 참지 못하셨다’로 읽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번역은 하나님의 긍휼로 이해합니다.
곤고아말 — ‘수고, 고통, 고난’. 신 26:7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사 53:11 “자기 영혼의 수고한 것을 보고 만족히 여길 것이라”.
제하여 버리다수르 — 창 35:2, 수 24:23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삼상 7:3–4.
함께 읽을 말씀
수 24:23여호수아가 가로되 그러면 이제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들을 제하여 버리고 너희 마음을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로 향하라
호 11:8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사 63:9모든 환난에 동참하사 자기 앞의 사자로 그들을 구원하시며
출 3:7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정녕히 보고 그들이 그 간역자로 인하여 부르짖음을 듣고 그 우고를 알고
히 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우리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십니다
하나님은 “내가 다시는 너희를 구원치 아니하리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진심이었습니다. 은혜는 값싼 것이 아니며, 하나님은 우리가 은혜를 이용하는 것을 기뻐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이 진심으로 돌아와 우상을 버렸을 때, 하나님의 마음은 그들의 고통을 더 견디지 못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실패하고 넘어져 고통 가운데 있을 때, 하나님은 멀리서 냉정하게 바라보시는 분이 아닙니다. 우리의 고통 때문에 그분의 마음이 아프십니다. 그리고 그 마음은 결국 십자가로 나타났습니다. 진정으로 돌아오는 자에게 하나님은 다시 구원의 손을 내미십니다. 다른 곳에 가지 말고, 오직 그분께 돌아갑시다.
10:17–18누가 먼저 싸움을 시작할꼬 — 지도자 없는 이스라엘
암몬이 길르앗에 진을 치고, 이스라엘도 미스바에 모입니다. 이제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는 지도자가 없습니다. 길르앗의 방백들은 서로 묻습니다. 누가 먼저 나가서 싸움을 시작할 것인가?
그리고 그들은 약속합니다. 먼저 나가 싸우는 자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나님께 묻지 않고, 사람이 지도자의 조건을 정합니다. 이 질문이 11장의 입다 이야기를 엽니다.
17암몬 자손이 길르앗에 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미스바에 진 치고
그 때에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 치고
직역 암몬 자손이 소집되어 길르앗에 진을 쳤고,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 미스바에 진을 쳤다.
두 군대가 마주합니다. 암몬 자손이 모여서 길르앗에 진 쳤으므로 이스라엘 자손도 모여서 미스바에 진 치고. 하나님이 마음에 근심하신 뒤(16절), 상황이 움직이기 시작합니다.
미스바는 ‘망대, 망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창세기 31:49에서 야곱과 라반이 언약을 맺으며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는 나와 너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하고 그곳을 미스바라 불렀습니다. 그 언약의 장소에 이스라엘이 모입니다. 그리고 11:11에서 입다는 바로 이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원어 · 번역 노트
미스바 — 성경에는 여러 미스바가 있습니다. 여기는 길르앗의 미스바(11:29 ‘길르앗 미스베’)로, 창 31:49의 장소와 같은 곳으로 봅니다. 베냐민의 미스바(삿 20:1, 삼상 7:5)와는 다른 곳입니다.
진 치다 — 원문 ‘바야하누’. 6:33 미디안의 진, 7:1 기드온의 진.
함께 읽을 말씀
창 31:49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 피차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너와 나 사이에 감찰하옵소서 함이라
삿 11:11입다가 미스바에서 자기의 말을 다 여호와 앞에 고하니라
18누가 먼저 나가서 싸움을 시작할꼬 —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길르앗 백성과 방백들이 서로 이르되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하니라
직역 백성, 곧 길르앗의 방백들이 서로 말하였다. “누가 암몬 자손과 싸우기를 시작할 사람이냐? 그가 길르앗 모든 주민의 머리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에는 지도자가 없습니다. 길르앗의 방백들이 서로 묻습니다. “누가 먼저 나가서 암몬 자손과 싸움을 시작할꼬.” 이 질문은 사사기 1:1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그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물었고, 하나님은 “유다가 올라갈지니라”고 대답하셨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서로” 묻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지도자의 조건을 스스로 정합니다. “그가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먼저 나가 싸우는 자에게 통치권을 주겠다. 이것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사람의 거래입니다. 지금까지 사사들은 하나님이 직접 세우셨습니다(3:9, 15, 4:6, 6:14). 그런데 이번에는 사람이 현상금을 걸고 지도자를 모집합니다.
이 거래는 11장에서 그대로 이어집니다. 길르앗 장로들은 쫓아냈던 입다를 찾아가 머리가 되어 달라고 하고(11:8), 입다는 그 조건을 확인하며 협상합니다(11:9). 하나님이 마음에 근심하셨지만(16절),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런 사람의 거래 가운데서도 일하십니다. 11:29에서 “여호와의 신이 입다에게 임하시니”.
원어 · 번역 노트
머리로쉬 — ‘머리, 우두머리’. 11:8, 9, 11에서 반복됩니다. 11:6에서는 ‘장관’(카친, 군사 지휘관)이라는 다른 말이 쓰여, 입다와 장로들의 협상 과정을 보여 줍니다.
1:1과의 대조 — 1:1 “여호와께 묻자와 … 누가 먼저”, 20:18 “하나님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에 누가 먼저 올라가서 베냐민 자손과 싸우리이까”. 사사기의 처음과 끝에서는 하나님께 묻지만, 여기서는 사람끼리 묻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우리 중 누가 먼저 올라가서 가나안 사람과 싸우리이까
삿 11:8그리하면 우리 길르앗 모든 거민의 머리가 되리라
겔 22:30이 땅을 위하여 성을 쌓으며 성 무너진 데를 막아 서서 나로 멸하지 못하게 할 사람을 내가 그 가운데서 찾다가 얻지 못한 고로
사 6:8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누가 먼저 나갈 것인가
하나님은 마음에 근심하셨지만,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께 묻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서로 묻고, 사람끼리 거래로 지도자를 정했습니다. 사사기 1:1에서 하나님께 “누가 먼저” 물었던 이스라엘이, 이제는 사람끼리 “누가 먼저” 묻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의 질문을 들었습니다.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리고 대답했습니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위기의 때에 우리가 먼저 물어야 할 것은 “누가 머리가 될까”가 아니라 “하나님, 무엇을 원하십니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부르실 때 기꺼이 나아가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Minor Judges · 한눈에
사사기의 소사사들
짧게 기록되었지만 이스라엘을 섬긴 사람들
사사
지파·지역
기간
기록
삼갈
(아낫의 아들)
—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600명(3:31)
돌라
잇사갈, 에브라임 산지 사밀
23년
이스라엘을 구원함(10:1–2)
야일
길르앗
22년
아들 30, 나귀 30, 성읍 30(10:3–5)
입산
베들레헴
7년
아들 30, 딸 30, 혼인(12:8–10)
엘론
스불론
10년
(12:11–12)
압돈
에브라임, 비라돈
8년
아들 40, 손자 30, 나귀 70(12:13–15)
소사사들의 기록에는 극적인 전쟁 이야기가 거의 없습니다. 대신 많은 자녀, 나귀, 성읍 같은 부와 지위의 표지가 반복됩니다. 이들은 안정의 시기를 이끌었지만, 동시에 사사들이 점점 지방 귀족처럼 되어 가는 흐름도 보여 줍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10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사밀1–2절
에브라임 산지의 마을. 돌라의 거처.
사사士師 · 2–3절
하나님이 세워 이스라엘을 구원하고 다스린 지도자.
하봇야일4절
‘야일의 장막촌들’.
가몬5절
길르앗의 성읍. 야일의 묘지.
목전目前 · 6절
눈앞.
아스다롯6절
가나안의 여신 아스다롯(아스타르테)들.
진노震怒 · 7절
몹시 성냄.
학대虐待 · 8절
몹시 괴롭힘.
곤고困苦 · 9, 16절
몹시 어렵고 고통스러움.
마온12절
아라비아의 민족. 또는 미디안.
압제壓制 · 12절
억누름.
환난患難 · 14절
근심과 재난.
제하여 버리다除- · 16절
없애 버리다.
미스바17절
‘망대’. 길르앗의 집결지.
방백方伯 · 18절
지도자, 관리.
거민居民 · 18절
그 땅에 사는 사람.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돌라와 야일은 극적인 이야기 없이 45년 동안 섬겼습니다(1–5절). 나는 드러나지 않는 자리에서 얼마나 신실하게 섬기고 있습니까?
이스라엘은 사방 모든 민족의 신을 섬겼습니다(6절). 내 삶의 각 영역에서 하나님 대신 의지하는 ‘신’은 무엇입니까?
이스라엘은 자기가 섬긴 신들의 민족에게 짓밟혔습니다(7–8절). 내가 의지했던 것이 오히려 나를 묶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은 지난 구원의 역사를 하나하나 상기시키셨습니다(11–12절). 하나님이 나를 건져 주신 일들을 적어 보십시오.
“가서 너희가 택한 신들에게 부르짖으라”(14절). 위기의 때에 내가 먼저 찾아가는 곳은 어디입니까?
이스라엘은 말만이 아니라 실제로 이방 신들을 버렸습니다(16절). 내가 회개하며 실제로 버려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고통을 차마 보지 못하셨습니다(16절). 내 고통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어떻게 느끼고 있습니까?
길르앗 사람들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서로 물었습니다(18절). 중요한 결정 앞에서 나는 먼저 누구에게 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