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세부 강해 · Romans
2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바로 그 사람이다

1절부터 29절까지 — 율법을 가진 사람도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핑계할 수 없다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ROMANS 2:29
Introduction · 들어가며

2장 들어가며

1장을 읽으며 고개를 끄덕이던 사람에게 바울이 돌아섭니다

1장 후반부에서 바울은 하나님을 버린 이방 세계의 모습을 낱낱이 고발했습니다. 우상숭배, 성적 타락, 시기, 살인, 교만, 무자비. 이 대목을 들으며 가장 크게 고개를 끄덕였을 사람은 누구일까요? 바로 율법을 가진 유대인, 그리고 스스로 도덕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래, 저 이방인들은 정말 타락했어."

2장 첫 절에서 바울은 그 사람에게로 홱 돌아섭니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선지자 나단이 다윗에게 남의 이야기를 들려준 뒤 "당신이 그 사람이라"(삼하 12:7)고 말한 것과 같은 장면입니다.

2장은 처음에는 '남을 판단하는 사람' 일반에게(1-16절), 그다음에는 분명하게 '유대인이라 칭하는 너'에게(17-29절) 말합니다. 바울의 메시지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 율법을 '가진 것', 할례를 '받은 것', 하나님을 '아는 것'만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3:9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는 결론으로 독자를 이끌어 갑니다.

누구에게

남을 판단하는 도덕주의자, 그리고 유대인

1-16절의 "사람아"는 누구든지 남을 정죄하는 사람, 17절부터는 율법을 자랑하는 유대인입니다. 둘 다 '나는 저들과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어떤 방식으로

디아트리베 — 가상의 상대와 대화

바울은 가상의 상대를 '너'라고 부르며 질문을 던집니다. 당시 철학자들이 학생을 가르칠 때 쓰던 생생한 대화식 논증법입니다.

핵심 단어

판단 · 행함 · 할례 · 마음

'판단하다'가 1-3절에만 일곱 번 나옵니다. 그리고 장 끝에서 모든 것이 '마음'의 문제로 모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무론 누구든지"毋論, 물론. "누구든지 상관없이". 『개역개정』은 "누구를 막론하고".
4절 "용납하심"容納, 너그럽게 받아들임. 원문은 '참아 줌, 잠시 멈춰 둠'(아노케).
8절 "당을 지어"黨, 무리를 지어 파벌을 만든다는 뜻. 원문 에리테이아는 '이기적 야망, 자기 이익만 추구함'에 가깝습니다.
11절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사람의 겉모습(민족, 신분, 재산)을 보고 편들지 않으신다는 뜻.
15절 "송사하며 변명하여"訟事, 고소함. 양심 속에서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고 변호하는 법정의 그림.
20절 "훈도"訓導, 가르쳐 이끄는 사람, 교사.
22절 "신사 물건을 도적질"神社, 이방 신전. 원문은 '신전을 약탈하다'(히에로쉴레오).
27, 29절 "의문"儀文, 글자로 적힌 율법 조문. 7:6에서도 나오는 단어.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2:1–5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 너도 같은 일을 한다

1장 32절에서 바울은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는" 사람들을 고발했습니다. 그런데 2장에서는 정반대 사람, 곧 그런 일을 '옳지 않다'고 판단하는 사람을 향합니다. 놀랍게도 바울은 그 사람도 똑같이 핑계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남의 죄를 정확히 알아본다는 것 자체가, 자기도 무엇이 옳은지 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1남을 판단하는 것이 곧 자기 정죄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직역 그러므로, 오 사람아, 판단하는 누구든지 너는 변명할 수 없다. 네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그것으로 네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다.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들을 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로 시작합니다. 1장의 결론(이런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한다는 하나님의 정하심을 안다, 1:32)을 그대로 이어받습니다. 남을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엇이 죄인지 안다는 뜻이고, 안다면 자기에게도 같은 기준이 적용된다는 것입니다.

"핑계치 못할 것은"은 1:20에서 이방인에게 썼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바울은 일부러 같은 말을 씁니다. 1장에서 이방인이 핑계할 수 없었던 것처럼, 2장에서 판단하는 사람도 핑계할 수 없습니다. 판단하는 자리에 앉아 있던 사람이 갑자기 피고석에 서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 물론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 우상을 섬기거나 살인을 하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1:29-31 목록에는 시기, 분쟁, 수군거림, 교만, 자랑, 무자비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대로 마음의 미움은 살인이고(마 5:22), 마음의 음욕은 간음입니다(마 5:28). 겉모양은 달라도 같은 뿌리의 죄를 행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흔히 자기에게 있는 죄를 남에게서 가장 먼저 알아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사람아 오 안트로페 — "오, 사람아!" 당시 철학자들이 가상의 상대를 꾸짖을 때 쓰던 호칭입니다. 9:20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에도 나옵니다.
  • 판단하다 크리노 — '분별하다'라는 중립적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정죄하다, 단죄하다'. 자기를 재판관 자리에 올려놓는 태도입니다.
  • 정죄함이니 카타크리노 — '아래로(카타) 판결하다', 곧 유죄 판결. 8:1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와 같은 어근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마 7:1-2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의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 마 7:3-5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삼하 12:5-7다윗이 그 사람을 크게 노하여… 나단이 다윗에게 이르되 당신이 그 사람이라
  • 요 8:7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 약 4:11-12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
2하나님의 판단은 진리대로 된다

이런 일을 행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판단이 진리대로 되는 줄 우리가 아노라

직역 우리가 알기로,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판단은 진리를 따라 이루어진다.

"우리가 아노라" — 바울은 상대가 동의할 수밖에 없는 원리를 꺼냅니다.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님이 공정한 재판장이심을 믿었습니다. "온 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창 18:25).

"진리대로"는 하나님의 판단이 겉모습이 아니라 실제 사실에 따라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사람의 재판은 증거가 부족하거나 재판관이 속으면 틀릴 수 있지만, 하나님의 판단은 마음속 은밀한 것까지 보시기에(16절) 언제나 정확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그러니 남을 판단하며 자기는 빠져나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판단 크리마 — '판결, 심판'. 3절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에도 쓰입니다.
  • 우리가 아노라 — 바울이 공통 전제를 끌어낼 때 쓰는 표현(3:19, 7:14, 8:22, 8:28).
함께 읽을 말씀
  • 창 18:25세상을 심판하시는 이가 공의를 행하실 것이 아니니이까
  • 삼상 16:7나의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 시 96:13저가 의로 세계를 판단하시며 그의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판단하시리로다
3너는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 아느냐

이런 일 하는 자들을 판단하고 같은 일을 행하는 사람아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직역 이런 일들을 행하는 자들을 판단하면서 같은 일들을 행하는 사람아, 너는 네가 하나님의 판단에서 빠져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느냐?

바울은 상대의 속마음을 꿰뚫는 질문을 던집니다. 남을 판단하는 사람은 은연중에 이렇게 생각합니다. "나는 적어도 저 사람들보다는 낫다. 내가 죄를 죄라고 부를 줄 아니까, 하나님도 나를 저들과 같이 보시지는 않을 거야." 남을 정죄하는 것이 마치 자기는 안전하다는 보험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바울은 묻습니다. "네가 하나님의 판단을 피할 줄로 생각하느냐?" 예수님 당시의 바리새인도 성전에서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눅 18:11)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의롭다 함을 받고 내려간 사람은 가슴을 치며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 기도한 세리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생각하느냐 로기제 — '계산하다, 여기다'. 로마서 4장에서 "의로 여기셨다"(로기조마이)로 중요하게 쓰이는 단어입니다. 여기서는 사람의 잘못된 계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눅 18:9-14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
  • 히 2:3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 갈 6:3만일 누가 아무것도 되지 못하고 된 줄로 생각하면 스스로 속임이라
4하나님의 인자하심은 회개로 이끄신다

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그의 인자하심과 용납하심과 길이 참으심의 풍성함을 멸시하느뇨

직역 아니면 너는 하나님의 친절하심이 너를 회개로 이끈다는 것을 모르고, 그분의 친절과 참아 주심과 오래 참으심의 풍성함을 업신여기느냐?

판단하는 사람이 왜 자기는 괜찮다고 생각할까요? 하나님께서 아직 벌을 내리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렇게 잘 살고 있잖아. 하나님이 나를 인정하신다는 증거지." 그러나 바울은 그것을 완전히 다르게 해석합니다. 지금 심판이 오지 않는 것은 하나님이 내 죄를 괜찮게 여기셔서가 아니라, 내가 회개하도록 기다리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성품을 세 단어로 쌓아 올립니다. 인자하심(친절하고 선하심), 용납하심(심판을 잠시 멈추고 참아 주심), 길이 참으심(오래도록 분노를 참으심). 출애굽기 34:6에서 하나님이 자신을 소개하신 말씀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의 메아리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풍성"합니다.

그런데 이 풍성한 인자하심을 "멸시"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인내를 내 죄에 대한 허락으로 오해하는 것입니다. 베드로후서 3:9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이 구절에는 복음의 아름다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회개는 위협이 아니라 친절이 이끌어 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두려움으로 몰아붙이기보다 선하심으로 이끄십니다. 탕자를 집으로 돌아오게 한 것도 결국 "내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눅 15:17)라는, 아버지의 선하심에 대한 기억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자하심 仁慈 / 크레스토테스 — '쓸모 있고 친절한 선함'. 갈 5:22 성령의 열매 "자비", 엡 2:7 "자비하심"에 쓰인 단어입니다. 11:22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에서 다시 나옵니다.
  • 용납하심 容納 / 아노케 — 신약에서 여기와 3:26 "길이 참으시는 중에"에만 나옵니다. 원래 '휴전, 정전'에 쓰이던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잠시 멈추고 기다려 주신다는 그림입니다.
  • 인도하여 아게이 — 현재형. 지금 이 순간에도 이끌고 계신다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34:6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 벧후 3:9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롬 9:22진노의 그릇을 오래 참으심으로 관용하시고
  • 전 8:11악한 일에 징벌이 속히 실행되지 아니하므로 인생들이 악을 행하기에 마음이 담대하도다
  • 눅 15:17-20내 아버지에게는 양식이 풍족한 품군이 얼마나 많은고… 일어나서 아버지께 돌아가니라
5회개하지 않는 마음은 진노를 쌓는다

다만 네 고집과 회개치 아니한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직역 그러나 너는 너의 완고함과 회개하지 않는 마음을 따라, 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 계시되는 날에 임할 진노를 네 자신을 위해 쌓고 있다.

4절의 반대편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 앞에서 마음이 녹아 회개하는 대신,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 버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같은 햇볕을 받아도 밀랍은 녹고 진흙은 굳습니다. 하나님의 친절을 계속 거절하면 마음은 점점 더 굳어집니다.

"진노를 쌓는도다"에서 '쌓다'는 원래 '보물을 쌓아 두다'라는 뜻입니다(마 6:19-20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무서운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의 '풍성함'(4절)을 업신여기는 사람은, 그 대신 진노를 '보물처럼' 차곡차곡 쌓고 있습니다. 매일 조금씩 저금하다 보면 어느 날 큰돈이 되듯, 회개하지 않는 날들이 쌓여 마지막 날에 그대로 돌아옵니다.

"진노의 날"은 구약 선지자들이 말한 '여호와의 날'입니다(습 1:14-15 "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1:18에서 진노가 지금 '내버려 두심'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했다면, 여기서는 마지막 날에 완전히 나타날 진노를 말합니다. 그날은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날"입니다. 지금은 가려져 있는 모든 것이 드러나고, 하나님의 판단이 옳았다는 것이 모두에게 분명해지는 날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고집 스클레로테스 — '딱딱함'. 의학 용어 '경화증(sclerosis)'의 어원입니다. 신 9:27 "이 백성의 강퍅과", 그리고 마음이 굳은 바로를 떠올리게 합니다. 9:18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와 같은 어근입니다.
  • 쌓는도다 테사우리조 — '보물 창고(테사우로스)에 넣다'. 영어 thesaurus(어휘 보고)의 어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습 1:14-15여호와의 큰 날이 가깝도다… 그 날은 분노의 날이요 환난과 고통의 날이요
  • 시 95:7-8너희가 오늘날 그 음성 듣기를 원하노라 너희는 므리바에서와 같이… 마음을 강퍅케 말지어다
  • 히 3:13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 약 5:3너희 금과 은은 녹이 슬었으니… 너희가 말세에 재물을 쌓았도다
  • 롬 1:18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침묵을 오해하지 마십시오

죄를 짓고도 아무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우리는 쉽게 '괜찮은가 보다'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하나님의 침묵은 허락이 아니라 기다림이고, 기다림은 회개하라는 초대입니다.

그리고 남의 죄가 유난히 크게 보일 때, 그것은 내 마음을 먼저 살피라는 신호일 수 있습니다. 판단의 손가락을 내리고, 하나님의 인자하심 앞에 내 마음을 열어 보십시오.

2:6–11행한 대로 — 외모로 취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이 단락은 정교한 대칭 구조(교차대구)로 되어 있습니다. 6절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로 시작해서 11절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로 끝나고, 그 사이에 선을 행하는 자(7, 10절)와 악을 행하는 자(8, 9절)가 번갈아 나옵니다. 그리고 그 한가운데에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가 두 번 반복됩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하나님은 같은 기준으로 판단하신다는 것입니다.

"행한 대로 보응하신다"는 말이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로마서의 메시지와 모순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이 문제는 아래 '더 깊이'에서 다룹니다.

6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되

직역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들을 따라 갚으실 것이다.

이 구절은 시편 62:12 "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와 잠언 24:12의 인용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행위를 따라' 이루어진다는 것은 구약과 신약 전체의 일관된 가르침입니다(마 16:27, 고후 5:10, 계 22:12).

여기서 핵심은 "각 사람에게"입니다. 유대인이라서 봐주시거나, 이방인이라서 더 엄하게 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신분'이 심판을 면제해 주지 않고, 각 사람의 실제 삶이 드러납니다. 판단하는 사람이 '나는 하나님의 백성이니 안전하다'고 생각하던 것을 무너뜨리는 말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보응하시되 報應 — '갚아 응하다'. 원문 아포디도미, '마땅히 줄 것을 돌려주다'. 상도 벌도 모두 포함합니다.
  • 행한 대로 — 원문은 복수 "행위들을 따라". 한 번의 행동이 아니라 삶 전체의 방향과 열매를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62:12주여 인자함은 주께 속하오니 주께서 각 사람이 행한 대로 갚으심이니이다
  • 잠 24:12마음을 저울질하시는 이가 어찌 통찰하지 못하시겠으며… 각 사람의 행위대로 보응하시리라
  • 마 16:27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 고후 5:10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 계 22:12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
7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

참고 선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직역 참고 견디며 선한 일을 행하여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않음을 추구하는 자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으로 갚으시고,

첫 번째 길입니다. 이 사람은 세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참는다(끝까지 견딘다), 선을 행한다, 그리고 영광과 존귀와 썩지 아니함을 구한다. 이 사람의 삶의 방향은 하나님을 향해 있습니다.

눈여겨볼 단어가 있습니다. "썩지 아니함". 1:23에서 사람들은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우상으로 바꾸었"습니다. 2:7의 사람은 정반대로, 바로 그 썩지 않는 영광을 '구합니다'. 1장의 사람들이 버린 것을 이 사람은 찾고 있습니다.

이 사람은 영광을 '얻은' 사람이 아니라 '구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힘으로 영광을 쟁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영광을 바라보며 인내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영생입니다. 로마서에서 '영생'이라는 말이 처음 나오는 곳이며, 마지막 결론은 6:23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입니다. 영생은 결국 행위의 삯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참고 휘포모네 — '아래에(휘포) 머물다(메노)'. 무거운 짐 아래서도 도망치지 않고 버티는 인내. 5:3 "환난은 인내를"에 다시 나옵니다.
  • 썩지 아니함 아프타르시아 — 고전 15:42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의 부활의 몸을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 롬 6:22-23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하나님의 은사는… 영생이니라
  • 갈 6:9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 고전 15:53-54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8자기 이익만 좇아 진리를 거스르는 자에게는 진노

오직 당을 지어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는 자에게는 노와 분으로 하시리라

직역 그러나 이기적 야망으로 진리에 순종하지 않고 불의에 순종하는 자들에게는 진노와 격분으로 갚으실 것이다.

두 번째 길입니다. 7절의 사람이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다면', 8절의 사람은 자기 이익을 구합니다. '당을 지어'로 번역된 단어는 원래 '품삯을 받고 일하는 일꾼'에서 나온 말로, 자기 이익과 출세만을 위해 움직이는 이기적 야망을 뜻합니다. 정치판에서 자기 편을 만들어 이익을 챙기는 모습과 비슷해서 '당을 짓다'로 옮겼습니다.

이 사람은 "진리를 좇지 아니하고 불의를 좇습니다". 원문은 "진리에 불순종하고 불의에 순종한다"입니다. 누구나 무언가에 '순종'합니다. 문제는 무엇에 순종하느냐입니다. 6:16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뇨." 그리고 1:18에서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습이 여기 그대로 나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당을 지어 黨 — '무리, 파벌'. 원문 에리테이아는 고후 12:20, 갈 5:20 "당 짓는 것", 빌 2: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다툼)에 쓰였습니다. 『새번역』은 "이기심에 사로잡혀서".
  • 노와 분 怒와 忿 — 원문 오르게(진노, 지속적인 분노)와 튀모스(격노, 끓어오르는 분노). 두 단어를 겹쳐 강조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18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 롬 6:16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 살후 1: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 약 3:16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9악을 행하는 자에게는 환난 — 유대인에게 먼저

악을 행하는 각 사람의 영에게 환난과 곤고가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며

직역 악을 행하는 모든 사람의 영혼에게 환난과 곤경이 있을 것이다.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에게도.

8절의 결과를 다시 말하면서, 바울은 1:16에서 썼던 표현을 그대로 가져옵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 1:16에서는 복음의 구원이 '유대인에게 먼저' 주어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심판도 '유대인에게 먼저' 임한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이 심판에서 자신들을 보호해 준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히려 특권이 클수록 책임도 크다고 말합니다. 예수님도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눅 12:48)라고 하셨고, 아모스 선지자도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암 3:2)고 경고했습니다. 먼저 빛을 받은 사람이 먼저 책임을 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환난과 곤고 患難과 困苦 — 원문 뜰립시스(눌림, 압박)와 스테노코리아(좁은 공간, 꼼짝할 수 없음). 8:35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에서 같은 단어가 성도의 고난에 쓰입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그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일시적 고난입니다.
  • 영에게 — 원문 프쉬케, '혼, 목숨, 사람'. "모든 사람에게"라는 뜻의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16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암 3:2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그러므로 너희 모든 죄악을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 눅 12:47-48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찾을 것이요
  • 벧전 4:17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10선을 행하는 자에게는 영광과 평강 — 유대인에게도 헬라인에게도

선을 행하는 각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강이 있으리니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

직역 그러나 선을 행하는 모든 사람에게는 영광과 존귀와 평화가 있을 것이다.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에게도.

7절의 내용을 다시 말합니다. 대칭 구조의 마지막 짝입니다. 7절에서는 사람이 '영광과 존귀'를 구했고,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를 주십니다. 그리고 7절의 '썩지 아니함' 대신 '평강'이 들어갑니다.

여기서도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라"가 반복됩니다. 9절과 10절을 함께 보면, 바울의 요점이 선명해집니다. 하나님은 악을 행하는 자를 벌하실 때도, 선을 행하는 자에게 상 주실 때도 유대인과 헬라인을 똑같이 대하십니다. 이방인도 하나님의 영광과 평강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것은 유대인이 아닌 로마 성도들에게 큰 위로였을 것이고, 동시에 유대인 성도들에게는 하나님의 공평하심을 일깨우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선을 행하는 에르가조메노 토 아가톤 — '선을 일구는, 선을 만들어 내는'. 현재 분사로 삶의 지속적인 방향을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5:1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롬 8:6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 행 10:34-35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각 나라 중 하나님을 경외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은 다 받으시는 줄 깨달았도다
11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직역 하나님께는 편애가 없기 때문이다.

6-11절 전체의 결론이자, 2장 전체의 핵심 원리입니다. 하나님은 편애하지 않으십니다. '외모로 취한다'는 말은 히브리어 표현을 그대로 옮긴 것으로, 문자적으로 '얼굴을 들어 준다', 곧 그 사람의 겉모습(신분, 재산, 민족, 지위)을 보고 봐준다는 뜻입니다.

구약은 하나님께서 이런 분이 아니시라고 거듭 말합니다. "여호와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신 10:17). 그리고 재판관들에게도 "재판할 때에 외모를 보지 말고 귀천을 일반으로 듣고"(신 1:17)라고 명령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이 원리를 이방 재판관이나 가난한 자와 부자 사이의 문제로만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것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적용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후손이라는 '얼굴'을 보고 봐주시지 않습니다. 이 원리가 3:22-23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와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로 이어집니다. 심판에 차별이 없기 때문에, 구원에도 차별이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 원문 프로소폴렘프시아는 '얼굴(프로소폰)' + '받다(람바노)'. 신약에서만 쓰이는 단어로 엡 6:9, 골 3:25, 약 2:1에 나옵니다. 야고보서 2:1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너희가 가졌으니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함께 읽을 말씀
  • 신 10:17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 대하 19:7우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는 불의함도 없으시고 사람의 외모를 취하심도 없으시고
  • 행 10:34내가 참으로 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 갈 2:6하나님은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시나니
  • 롬 3:22-23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 앞에는 '우리 편'이 없습니다

우리는 은연중에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기를 바랍니다. 우리 교회, 우리 교단, 우리 나라, 우리 가족 편이시기를. 그러나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십니다. 교회에 오래 다녔다는 사실이, 직분이, 성경 지식이 나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보호해 주지 않습니다.

이 말씀은 무섭기도 하지만 동시에 큰 위로입니다. 하나님이 외모를 보지 않으시기에, 아무것도 내세울 것 없는 사람도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모두가 같은 땅 위에 서 있습니다.

2:12–16율법 있는 자와 율법 없는 자 — 양심이라는 법정

이제 바울은 예상되는 반론에 답합니다. "이방인은 율법을 받지 못했는데 어떻게 공정하게 심판받을 수 있는가? 그리고 우리 유대인은 율법을 가졌으니 유리하지 않은가?"

바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받은 빛에 따라 심판하십니다. 율법을 가진 자는 율법으로, 율법 없는 자는 율법 없이 심판받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율법을 '듣는 것'이 아니라 '행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에게도 마음에 새겨진 법, 곧 양심이 있습니다.

12각자 받은 빛에 따라 심판받는다

무릇 율법 없이 범죄한 자는 또한 율법 없이 망하고 무릇 율법이 있고 범죄한 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심판을 받으리라

직역 율법 없이 죄를 지은 자들은 모두 율법 없이 멸망할 것이고, 율법 안에서 죄를 지은 자들은 모두 율법을 통해 심판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공정합니다. 율법을 받지 못한 이방인은 모세의 율법 기준으로 심판받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죄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율법 없이 망합니다". 1장에서 보았듯이 창조 세계와 양심을 통해 받은 빛을 거스른 죄 때문입니다.

율법을 가진 유대인은 그 율법을 기준으로 심판받습니다. 율법을 가졌다는 것은 특권이지만, 동시에 더 높은 기준 앞에 선다는 뜻입니다. 율법은 유대인을 보호해 주는 방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을 재는 자가 됩니다.

결론은 같습니다. 율법이 있든 없든, "범죄한 자"는 모두 심판을 받습니다. 바울은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범죄한 헤마르톤 — 부정과거형. 마지막 심판의 자리에서 지나온 삶 전체를 돌아보는 시점입니다.
  • 망하고 아폴룬타이 — '멸망하다, 잃어버리다'. 요 3:16 "멸망치 않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눅 12:47-48주인의 뜻을 알고도… 많이 맞을 것이요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 롬 3:19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
  • 고전 9:21율법 없는 자에게는 내가 율법 없는 자와 같이 된 것은
13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의롭다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직역 왜냐하면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들이 의로운 것이 아니라, 율법을 행하는 자들이 의롭다고 선언될 것이기 때문이다.

유대인들은 매주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율법 낭독을 '들었습니다'. 율법을 듣고 아는 것이 이방인과 자신들을 구별하는 표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듣는 것만으로는 의롭지 않다. 행해야 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같습니다.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나의 이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마 7:24-26). 야고보도 "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약 1:22)고 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생깁니다. 바울은 3:20에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라고 할 텐데, 13절에서는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라고 합니다. 모순일까요? 아닙니다. 13절은 하나님의 심판 원칙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기준은 '듣기'가 아니라 '행하기'이며, 그 기준은 정당합니다. 그런데 3장에서 바울은 그 기준을 온전히 충족한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래서 다른 길, 곧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는 길이 필요합니다(아래 '더 깊이' 참고).

원어 · 번역 노트
  •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디카이오테손타이 — 동사 디카이오오(의롭다 하다, 칭의하다)가 로마서에서 처음 나오는 곳입니다. 법정에서 '무죄, 의롭다'고 선언하는 말입니다. 3:24, 28, 4:5, 5:1 등에서 핵심 단어가 됩니다.
  • 하나님 앞에서는 — '사람들 보기에'가 아니라 '하나님 보시기에'. 사람은 율법을 아는 사람을 존경하지만, 하나님은 실제 삶을 보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마 7:21, 24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 약 1:22-25너희는 도를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 신 30:11-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 롬 3:20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 겔 33:31-32그들이… 네 말을 들으나 행치 아니하나니
14율법 없는 이방인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할 때

(율법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에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직역 (율법을 갖지 않은 이방인들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들을 행할 때에는, 이들은 율법을 갖지 않았어도 자기 자신에게 율법이 된다.

14-15절은 괄호로 묶여 있습니다. 바울이 13절과 16절 사이에 설명을 끼워 넣은 것입니다. 이방인은 모세의 율법을 받지 않았는데, 어떻게 '행하는 자'로 심판받을 수 있을까요?

바울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이방인도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가 있습니다. 율법을 한 번도 읽어 보지 않은 사람도 부모를 공경하고, 살인을 악하다고 여기고, 약속을 지키려 합니다. 세계 어느 문화에나 '남의 것을 훔치지 말라', '거짓말하지 말라' 같은 도덕 기준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으실 때 마음에 새겨 두신 도덕 감각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방인은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됩니다". 이 말은 '자기 마음대로 법을 만든다'는 뜻이 아닙니다. 율법 책은 없지만, 자기 안에 이미 하나님의 도덕 기준이 들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기준이 그들을 심판하는 근거가 됩니다. 자기가 옳다고 아는 것조차 다 지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본성으로 퓌세이 — 1:26 "순리(퓌시스)"와 같은 어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인간 본성에 새겨진 것을 가리킵니다.
  • 율법의 일 — 율법 전체를 지킨다는 뜻이 아니라, 율법이 요구하는 것들 중 일부를 행한다는 뜻입니다.
  • 다른 해석 — 일부 학자는 여기 '이방인'을 그리스도를 믿어 성령으로 율법을 마음에 새긴 이방인 그리스도인(렘 31:33)으로 봅니다. 그러나 '본성으로'라는 말 때문에 대부분은 일반 이방인으로 이해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19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 행 17:26-27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 전 3:11또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15마음에 새긴 율법 — 양심이라는 법정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혹은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율법의 행위가 그 마음에 새긴 것을 나타내느니라)

직역 이런 이들은 율법의 일이 자기들 마음에 기록되어 있음을 보여 준다. 그들의 양심이 함께 증언하고, 그들의 생각들이 서로 고발하기도 하고 변호하기도 한다.)

바울은 사람의 마음속을 하나의 법정으로 그립니다. 양심은 증인입니다. 그리고 생각들은 검사와 변호사처럼 서로 다툽니다. 어떤 생각은 "너 그거 잘못했잖아"라고 고발하고(송사), 어떤 생각은 "그럴 수밖에 없었어"라고 변호합니다(변명). 우리 모두 이 법정을 매일 경험합니다. 잠자리에 누워 낮에 한 말을 떠올리며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 그것이 바로 이 법정입니다.

이 법정이 있다는 것 자체가 증거입니다. "율법의 행위가 그 마음에 새긴 것", 곧 하나님의 도덕 기준이 사람의 마음에 새겨져 있다는 증거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율법을 돌판에 새겨 주셨지만(출 31:18), 모든 사람의 마음에도 그 기본을 새겨 두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에 새긴'이라는 표현은 예레미야 31:33의 새 언약 약속을 떠올리게 합니다.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양심에 새겨진 법은 희미하고 불완전합니다. 양심도 무뎌지거나(딤전 4:2 "화인 맞아") 잘못 길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새 언약 안에서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법을 마음에 새롭고 분명하게 새기십니다. 2장의 '양심'은 8장의 '성령'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양심 良心 / 쉬네이데시스 — '함께(쉰) 앎(에이데시스)', 곧 내가 한 일을 나 자신과 '함께 아는' 내면의 목격자. 라틴어 conscientia(양심, con+scientia)도 같은 구조입니다. 바울 서신에 20번 넘게 나오는 중요한 단어입니다.
  • 송사하며 / 변명하여 — 법정 용어. 카테고레오(고발하다, category의 어원과 관련)와 아폴로게오마이(변호하다, apology의 어원).
  • 증거가 되어 쉼마르투레오 — '함께 증언하다'. 9:1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에도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렘 31:33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라
  • 고후 3:3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 딤전 4:2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 히 9:14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 요일 3:20-21이는 우리가 마음에 책망할 일이 있어도 하나님은 우리 마음보다 크사 모든 것을 아시느니라
16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직역 하나님께서 나의 복음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를 통하여 사람들의 숨겨진 것들을 심판하시는 그날에 (그렇게 될 것이다).

괄호(14-15절)가 끝나고 13절의 흐름으로 돌아옵니다. 의롭다 하심이 결정되는 때는 바로 "하나님이… 심판하시는 그 날"입니다. 그날 하나님은 "은밀한 것"을 심판하십니다. 사람의 재판은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 다루지만, 하나님은 마음속 동기, 숨겨진 생각, 아무도 모르는 죄까지 다 보십니다. 15절의 양심 법정에서 오고 갔던 그 생각들이 그날 다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심판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집니다. 아버지께서 심판을 아들에게 맡기셨습니다(요 5:22, 행 17:31). 우리를 위해 죽으신 그분이 우리의 재판관이십니다. 이것은 두려운 일이기도 하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큰 위로입니다. 재판관이 곧 나의 변호인이시기 때문입니다(8:34).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라는 말도 중요합니다. 바울에게 심판은 복음과 반대되는 나쁜 소식이 아니라 복음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악을 바로잡으시고 모든 숨겨진 것을 정의롭게 판단하신다는 것은, 억울한 사람들에게는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그 심판을 피할 길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은밀한 것 타 크륍타 — 29절 "이면적(엔 토 크륍토, 숨겨진 곳에서) 유대인"과 같은 어근. 장 끝에서 다시 연결됩니다.
  • 나의 복음 — 바울이 자기만의 다른 복음이 있다는 뜻이 아니라, '내가 전하는 복음'이라는 뜻입니다(16:25, 딤후 2:8).
함께 읽을 말씀
  • 전 12:14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 고전 4:5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것도 판단치 말라 그가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 행 17:31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 요 5:22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 롬 8:34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양심의 소리를 무시하지 마십시오

우리 마음에는 하나님이 세워 두신 작은 법정이 있습니다. 양심이 "그건 아니야"라고 말할 때, 우리는 종종 변명으로 그 소리를 덮어 버립니다. 그러나 그 소리를 계속 누르면 양심은 점점 무뎌지고,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양심이 나를 고발할 때, 숨기거나 변명하는 대신 그리스도께 가져가십시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 양심을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십니다(히 9:14). 그날 모든 은밀한 것이 드러나기 전에, 오늘 빛 가운데로 가져가는 것이 가장 안전한 길입니다.

2:17–24율법을 자랑하는 너 — 가르치는 자가 스스로는?

드디어 바울은 상대의 이름을 부릅니다.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1-16절에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이라고 모호하게 불렀던 그 사람이 누구였는지 분명해집니다.

17-20절은 유대인의 자부심을 하나하나 나열합니다. 바울은 비꼬려는 것이 아닙니다. 이 모든 것은 실제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주신 귀한 특권입니다(9:4-5). 그러나 21-24절에서 바울은 날카로운 질문들로 그 자부심을 무너뜨립니다. 가르치는 자가 스스로는 가르침대로 살고 있는가?

17유대인이라 불리며 율법과 하나님을 자랑하는 너

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직역 그런데 만일 네가 유대인이라고 불리고, 율법에 기대어 쉬며, 하나님을 자랑한다면,

'유대인'이라는 이름은 '유다'에서 나왔고, 유다는 '찬송'이라는 뜻입니다(창 29:35). 그 이름 자체가 자랑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유대인의 자부심을 세 가지로 시작합니다.

첫째, "유대인이라 칭하는" —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이름. 둘째, "율법을 의지하며" — 하나님의 말씀을 가졌다는 안도감. '의지하다'는 '기대어 편히 쉬다'라는 뜻입니다. 율법을 가졌으니 안전하다고 느끼는 것입니다. 셋째, "하나님을 자랑하며" — 참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민족이라는 자부심.

하나님을 자랑하는 것 자체는 나쁜 것이 아닙니다. 예레미야 9:24은 "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이라고 말하고, 바울도 5:11에서 "하나님 안에서 즐거워하느니라(자랑하느니라)"고 말합니다. 문제는 그 자랑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가 아니라 남과 비교하는 우월감이 될 때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의지하며 에파나파우오 — '위에(에피) 다시(아나) 쉬다(파우오)'. 미 3:11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처럼 잘못된 안도감을 떠올리게 합니다.
  • 자랑하며 카우카오마이 — 로마서에서 중요한 단어. 3:27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에서 인간의 자랑이 무너지고, 5:2-3, 11에서 하나님 안에서의 참된 자랑(즐거워함)으로 바뀝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렘 9:23-24자랑하는 자는 이것으로 자랑할지니 곧 명철하여 나를 아는 것과
  • 미 3:11오히려 여호와를 의뢰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시지 아니하냐 재앙이 우리에게 임하지 아니하리라 하는도다
  • 요 8:33, 39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브라함은 우리 조상이라
  • 빌 3:4-6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 바울 자신의 옛 자랑
18하나님의 뜻을 알고 선한 것을 분별하는 너

율법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뜻을 알고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직역 율법으로부터 가르침을 받아 그분의 뜻을 알고 더 나은 것들을 분별하며,

유대인의 자부심이 계속됩니다. 넷째, "율법의 교훈을 받아" — 어려서부터 회당과 가정에서 율법을 체계적으로 배웠습니다. 다섯째, "하나님의 뜻을 알고" — 이방인은 신들의 뜻을 몰라 점을 쳤지만, 유대인은 하나님의 뜻이 율법에 분명히 계시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여섯째,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 — 무엇이 더 중요하고 가치 있는지 가려낼 줄 알았습니다.

이것은 모두 사실이고 귀한 특권입니다. 그런데 '분간하다(도키마조)'는 1:28에서 이방인이 하나님을 '싫어했다(도키마조, 시험해서 인정하지 않았다)'와 같은 단어입니다. 그리고 12:2에서 새로워진 성도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바로 그 단어이기도 합니다. 분별할 줄 아는 것이 끝이 아니라, 분별한 대로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교훈을 받아 카테케오 — '귀에 울리게(에코) 가르치다'. 반복해서 가르치는 구두 교육. 교회의 '교리문답(catechism)'이 여기서 나온 말입니다.
  • 지극히 선한 것 — 원문 타 디아페론타, '차이 나는 것들, 더 나은 것들'. 빌 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에 똑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4:8오늘날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 시 147:19-20그가 그 말씀을 야곱에게 보이시며… 아무 나라에게도 이같이 행치 아니하셨나니
  • 롬 12:2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빌 1: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19소경의 인도자, 어둠 속 사람들의 빛이라 여기는 너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요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이요

직역 눈먼 자들의 인도자요, 어둠 속에 있는 자들의 빛이라고

19-20절은 유대인이 이방인을 향해 가진 사명 의식입니다. 일곱째, "소경의 길을 인도하는 자". 여덟째, "어두움에 있는 자의 빛". 이것은 유대인이 멋대로 만든 자부심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실제로 이스라엘에게 주신 사명이었습니다. 이사야 42:6-7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49:6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그러나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정반대로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마 15:14). 빛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스스로 어둠 속에 있다면, 그들의 인도는 오히려 사람들을 넘어지게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스스로 믿으니(20절 끝) — 19-20절 전체가 20절 끝의 "스스로 믿으니(페포이타스, 확신하다)"에 걸립니다. 원문은 "네가 스스로 ~라고 확신한다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42:6-7내가 너를 보호하며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네가 소경의 눈을 밝히며
  • 사 49:6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 마 15:14저희는 소경이 되어 소경을 인도하는 자로다
  • 마 5:14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20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가진 선생이라 확신하는 너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율법에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의 훈도요 어린 아이의 선생이라고 스스로 믿으니

직역 율법 안에 지식과 진리의 구현된 형태를 가진 자로서, 어리석은 자들의 교정자요 어린아이들의 선생이라고 확신한다면,

아홉째, "어리석은 자의 훈도". 열째, "어린 아이의 선생". 유대인들은 이방인을 '어리석은 자', 갓 개종한 이방인을 '어린아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유대인은 그들을 가르치는 선생의 자리에 있다고 확신했습니다.

그 근거는 "지식과 진리의 모본을 율법에 가진 자"라는 것입니다. 율법 안에 하나님에 대한 지식과 진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는 것이지요. 이것도 사실입니다. 3:2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가장 큰 유익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라고 말합니다.

17-20절에서 바울은 유대인의 자부심을 열 가지 정도로 쌓아 올렸습니다. 이제 그 높은 탑을 21절부터 질문 하나로 무너뜨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모본 模本 — '본보기, 틀'. 원문 모르포시스는 '형태, 구현'. 딤후 3:5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의 '모양'과 같은 단어입니다. 바울은 같은 단어로 '겉모양만 있고 실체가 없는' 경건을 경고하기도 했습니다.
  • 훈도 訓導 — '가르쳐 이끄는 사람'. 오늘날 잘 쓰지 않는 말로, '교사, 교정자'로 이해하면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3:2첫째는 저희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 롬 9:4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있고
  • 딤후 3:5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자니
  • 약 3:1내 형제들아 너희는 선생된 우리가 더 큰 심판을 받을 줄 알고 선생이 많이 되지 말라
21남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않느냐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도적질 말라 반포하는 네가 도적질하느냐

직역 그렇다면 남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않느냐? 도둑질하지 말라고 선포하는 네가 도둑질하느냐?

17-20절의 긴 '만일' 문장이 여기서 날카로운 질문으로 꺾입니다. "그러면 다른 사람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가르치는 것과 사는 것은 다릅니다. 남에게는 엄격한 기준을 말하면서 자기에게는 그 기준을 적용하지 않는 것, 그것이 1절에서 말한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의 실제 모습입니다.

바울은 십계명을 하나씩 들이댑니다. 먼저 "도적질 말라"(제8계명). 유대인이 실제로 도둑질을 했을까요? 겉으로 남의 물건을 훔치지는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 당시 종교 지도자들은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막 12:40), 성전을 "강도의 굴혈"(막 11:17)로 만들었습니다. 십일조를 정확히 드리면서도 "의와 인과 신"을 버렸습니다(마 23:23). 도둑질의 형태는 여러 가지입니다.

이 질문은 오늘 교회의 모든 가르치는 사람, 곧 목회자, 교사, 부모, 그리고 성경을 아는 모든 성도에게 던지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남을 가르치는 네가 네 자신은 가르치지 아니하느냐?" 바울 자신도 이 두려움을 알았습니다.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

원어 · 번역 노트
  • 반포하는 頒布 — '널리 알리다'. 원문 케뤼소는 '전령이 큰 소리로 선포하다', 신약에서 '복음을 전파하다'에 쓰이는 단어입니다(10:14-15).
함께 읽을 말씀
  • 마 23:2-4모세의 자리에 앉았으니 무엇이든지 저희의 말하는 바는 행하고 지키되 저희의 하는 행위는 본받지 말라 저희는 말만 하고 행치 아니하며
  • 마 23:23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 시 50:16-18너는 어찌하여 내 율례를 전하며 내 언약을 네 입에 두느냐… 도적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 고전 9:27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
22간음하지 말라 하면서 간음하고, 우상을 미워하면서 신전을 약탈하느냐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직역 간음하지 말라고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 우상을 혐오하는 네가 신전을 약탈하느냐?

바울은 계속 묻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말하는 네가 간음하느냐?"(제7계명). 예수님은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마 5:28). 그리고 당시 랍비들 사이에서는 사소한 이유로도 아내와 쉽게 이혼할 수 있다는 해석이 있었는데, 예수님은 그것도 간음이라고 하셨습니다(마 19:9).

세 번째 질문은 특히 날카롭습니다. "우상을 가증히 여기는 네가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유대인은 우상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그런데 이방 신전의 물건(금, 은으로 된 신상이나 제물)을 훔치거나 거래하는 일은 꺼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신명기 7:25는 "너는 그들의 조각한 신상들을 불사르고 그 위에 입힌 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고 금했습니다. 사도행전 19:37에서 에베소 서기장이 바울 일행에 대해 "이 사람들은 신전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라고 변호한 것을 보면, 당시 유대인들이 신전 약탈 혐의를 받는 일이 실제로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울의 요점은 이것입니다. 우상을 미워한다고 말하면서 우상의 금은 탐낸다면, 그 사람의 진짜 신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일까요, 금일까요?

원어 · 번역 노트
  • 가증히 여기는 可憎 — '미워할 만하다'. 원문 브델뤼소마이는 '구역질 나서 피하다'. 구약의 '가증한 것(우상)'을 대하는 유대인의 감정입니다.
  • 신사 물건을 도적질하느냐 — '신사(神社)'는 이방 신을 모신 곳, 곧 신전입니다. 원문 히에로쉴레오는 '신전(히에론)을 약탈하다(쉴라오)'. 『개역개정』도 "신전 물건을 도둑질하느냐". 일부 해석자는 이것을 넓게 '하나님께 드려야 할 것을 빼돌리다'(말 3: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7:25-26은이나 금을 탐내지 말며 취하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가증히 여기시는 것임이니라
  • 행 19:37이 사람들은 신전의 물건을 도적질하지도 아니하였고 우리 여신을 훼방하지도 아니하였느니라
  • 마 5:27-28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 말 3:8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23율법을 자랑하면서 율법을 범하여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직역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써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세 가지 구체적인 질문 뒤에 바울은 종합합니다. "율법을 자랑하는 네가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느냐?" 이 문장은 질문이 아니라 단정으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너는 율법을 자랑하면서, 율법을 범함으로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다."

무서운 역설입니다. 1:21에서 이방인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율법을 가진 유대인은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님을 '욕되게' 하고 있습니다. 1:24에서 이방인이 자기 몸을 '욕되게' 했던 그 단어가 여기서는 하나님을 향해 쓰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가장 높여야 할 사람들이 가장 크게 그 이름을 더럽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범함으로 — 원문 파라바시스, '선을 넘어감, 위반'. 율법이 그어 놓은 선을 알면서 넘는 것입니다. 4:15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 5:14 "아담의 범죄"에 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21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 말 1:6내가 아비일진대 나를 공경함이 어디 있느냐… 내 이름을 멸시하는 제사장들아
  • 딛 1:16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24너희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이방인 중에서 모독받는다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 중에서 모독을 받는도다

직역 기록된 바와 같이, "하나님의 이름이 너희 때문에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

바울은 자기 말의 근거로 구약을 인용합니다. 이사야 52:5 "내 이름이 항상 종일 더럽힘을 받도다"(70인역 "너희 때문에 내 이름이 이방인들 가운데서 모독을 받는다")와 에스겔 36:20-23입니다.

이 인용은 매우 아픈 것입니다. 원래 이사야 52장에서는 이스라엘이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 있는 상황입니다. 이방인들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자기 백성도 못 지키는 약한 신이구나"라며 하나님을 모독했습니다. 에스겔 36:20도 "그들이 이른바 그 열국에 이르러서는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죄를 지어 포로로 끌려갔기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을 받은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도 같은 일이 일어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가르침과 다르게 살면, 세상 사람들은 그 사람만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믿는 하나님을 비웃습니다. 이것은 오늘 한국 교회에도 아프게 들리는 말씀입니다. 교회 안의 부정과 위선 때문에 세상은 "그래서 기독교는 안 돼"라고 말합니다. 성도의 삶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거나, 아니면 모독받게 합니다.

그러나 에스겔 36장은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내 거룩한 이름을 아낌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어서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되…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겔 36:26-27)라고 약속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모독받는 문제의 해결책은 더 열심히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새 마음과 성령입니다. 바로 그 약속이 29절의 "마음의 할례"로 이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모독을 받는도다 블라스페메오 — '비방하다, 모독하다'. 영어 blasphemy(신성모독)의 어원. 3:8 "어떤 이들이 우리를 비방하여"에도 쓰였습니다.
  • 인용의 위치 — 바울은 보통 "기록된 바와 같이"를 인용 앞에 두는데, 여기서는 원문상 인용 뒤에 붙어 있습니다. 바울이 자기 말을 하다가 '이것이 바로 성경이 말한 그대로다'라고 덧붙인 느낌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52:5내 백성이 까닭 없이 잡혀갔으니… 내 이름이 항상 종일 더럽힘을 받도다
  • 겔 36:20-23그들이 이른바 그 열국에 이르러서는 내 거룩한 이름이 그들로 인하여 더러워졌나니
  • 겔 36:26-27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고 새 영을 너희 속에 두되…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 삼하 12:14이 일로 인하여 여호와의 원수로 크게 훼방할 거리를 얻게 하였으니
  • 벧전 2:12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어떻게 불리고 있습니까

세상은 성경을 읽지 않습니다. 대신 그리스도인을 읽습니다. 직장 동료, 이웃, 가족은 나를 보고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판단합니다.

많이 아는 것보다 아는 만큼 사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지만 바울이 말하고 싶은 것은 "더 노력하라"가 아니라 "너도 은혜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자도, 오래 믿은 자도, 모두 새 마음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2:25–29참 할례 — 마음에, 성령으로, 하나님께 칭찬받는

유대인의 마지막 안전장치는 할례였습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창 17:10-14). 유대인들은 "할례받은 자는 결코 지옥에 가지 않는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할례의 가치를 부정하지 않습니다(25절). 그러나 할례가 무엇을 가리키는 표징인지 묻습니다. 결론은 구약 자체가 이미 말했던 것, 곧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25율법을 범하면 할례가 무할례가 된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직역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는 실로 유익하다. 그러나 네가 율법을 범하는 자라면, 네 할례는 무할례가 된 것이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주신 언약의 표징입니다.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창 17:10). 유대인에게 할례는 '나는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다'라는 몸에 새긴 증표였습니다.

바울은 할례가 무가치하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네가 율법을 행하면 할례가 유익하나." 할례는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가리키는 표징이고, 그 관계 안에서 사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결혼반지는 결혼 생활을 하는 사람에게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배우자를 배신하며 사는 사람이 반지만 끼고 있다면, 그 반지는 오히려 그를 고발하는 증거가 됩니다.

그래서 바울은 말합니다. "만일 율법을 범하면 네 할례가 무할례가 되었느니라." 언약을 깨뜨리면 언약의 표징은 의미를 잃습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그는 할례받지 않은 이방인과 다를 바 없습니다. 예레미야 9:25-26도 같은 말을 합니다. "날이 이르리니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이스라엘 온 족속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원어 · 번역 노트
  • 할례 割禮 — '살을 베는 예식'. 원문 페리토메, '둘레를 자름'. 남자 아기가 태어난 지 8일째 받았습니다(창 17:12, 눅 2:21).
  • 무할례 — 원문 아크로뷔스티아는 할례받지 않은 상태,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방인)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습니다(엡 2:11 "무할례당").
함께 읽을 말씀
  • 창 17:10-14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 렘 9:25-26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이스라엘 온 족속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
  • 갈 5:3내가 할례를 받는 각 사람에게 다시 증거하노니 그는 율법 전체를 행할 의무를 가진 자라
  • 고전 7:19할례 받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요 할례 받지 아니하는 것도 아무것도 아니로되 오직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따름이니라
26무할례자가 율법을 지키면 할례자로 여겨지지 않겠느냐

그런즉 무할례자가 율법의 규례를 지키면 그 무할례를 할례와 같이 여길 것이 아니냐

직역 그러므로 무할례자가 율법의 의로운 요구들을 지킨다면, 그의 무할례가 할례로 여겨지지 않겠느냐?

25절의 반대 경우를 생각해 봅니다. 할례받은 사람이 율법을 어기면 무할례자처럼 됩니다. 그렇다면 반대로 할례받지 않은 사람이 율법이 요구하는 의를 지키면, 하나님은 그를 할례받은 사람처럼, 곧 언약 백성처럼 여기시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유대인에게는 충격적인 말이었을 것입니다. 할례 없이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 있다니! 그런데 바울은 이 생각을 로마서 4장에서 아브라함으로 증명합니다. 아브라함은 할례를 받기 전에 믿음으로 의롭다 여김을 받았습니다(4:10-11). 할례는 그 의의 '인'(도장)일 뿐이었습니다.

"여길 것"이라는 단어에 주목하십시오. 4장에서 11번이나 나오는 '여기다(로기조마이)', 곧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매 이것이 저에게 의로 여기신 바 되었느니라"(4:3)의 그 단어입니다. 바울은 2장에서 이미 4장의 씨앗을 뿌리고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규례 規例 — 원문 디카이오마타, '의로운 요구들'.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디카이오마)가 이루어지게"와 연결됩니다. 성령 안에서 사는 성도에게 율법의 의로운 요구가 이루어진다는 8장의 말씀이 26절의 답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4:9-11그런즉 이를 어떻게 여기셨느뇨 할례시냐 무할례시냐 할례시가 아니라 무할례시니라
  • 롬 8:4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 갈 5: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27무할례자가 오히려 너를 판단하리라

또한 본래 무할례자가 율법을 온전히 지키면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 율법을 범하는 너를 판단치 아니하겠느냐

직역 그리고 태생적으로 무할례인 자가 율법을 완수하면, 문자와 할례를 가지고도 율법을 범하는 너를 심판하지 않겠느냐?

여기서 2장의 처음과 끝이 연결됩니다. 1절에서 유대인은 이방인을 '판단하는'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런데 27절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뒤집혀, 율법을 지키는 이방인이 율법을 어기는 유대인을 판단합니다. 판단하던 자가 판단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어니와"(마 12:41). 하나님에 대해 훨씬 적게 알았던 이방인들이 더 많이 알았던 이스라엘을 정죄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의문과 할례를 가지고"라는 표현이 중요합니다. '의문'은 글자로 기록된 율법을 말합니다. 유대인은 기록된 율법도 가졌고 몸에 할례도 받았습니다. 겉으로는 모든 것을 갖췄습니다. 그러나 그 '글자'와 '표징'을 가지고도 율법을 어긴다면, 그것들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 '의문'이 29절에서 '신령'(성령)과 대조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본래 — 원문 에크 퓌세오스, '본성(태생)으로부터'. 14절 "본성으로"와 같은 어근입니다.
  • 의문 儀文 — 7:6 "의문의 묵은 것"과 같은 단어(그람마). 겉에 쓰인 글자로서의 율법.
  • 가지고 — 원문 디아, '~을 통하여, ~을 가진 채로'. '의문과 할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라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마 12:41-42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 롬 2:1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 롬 7:6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28겉모양의 유대인이 참 유대인이 아니다

무릇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 표면적 육신의 할례가 할례가 아니니라

직역 왜냐하면 겉으로 드러난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고, 겉으로 육체에 드러난 할례가 할례가 아니기 때문이다.

이제 바울은 결론에 이릅니다. 참 유대인은 누구인가? 혈통으로 유대인으로 태어나고, 몸에 할례를 받고, 유대인처럼 옷을 입고 음식을 가리는 사람. 그것은 '표면적', 곧 겉으로 드러난 유대인입니다. 바울은 그것이 참 유대인의 본질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이 새로 만든 생각이 아닙니다. 침례 요한도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마 3:9)고 외쳤고, 예수님도 "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요 8:39)이라고 하셨습니다. 9:6에서 바울은 다시 말합니다. "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원어 · 번역 노트
  • 표면적 表面的 — '겉에 드러난'. 원문 엔 토 파네로, '보이는 곳에서'. 29절 "이면적(엔 토 크륍토, 숨겨진 곳에서)"과 정확한 짝을 이룹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마 3:9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 요 8:39너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면 아브라함의 행사를 할 것이어늘
  • 롬 9:6-8이스라엘에게서 난 그들이 다 이스라엘이 아니요… 오직 약속의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느니라
  • 삼상 16:7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29참 할례는 마음에, 성령으로 — 그 칭찬은 하나님께로부터

오직 이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에 할지니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직역 오히려 속으로(숨겨진 곳에서) 유대인인 자가 유대인이며, 할례는 마음의 것이요 영 안에 있고 문자 안에 있지 않다. 그런 사람의 칭찬은 사람들에게서가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2장의 마지막 절이자 절정입니다. 참 유대인은 "이면적", 곧 속사람이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참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입니다.

'마음의 할례'는 구약에 이미 있던 말입니다. 모세는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 10:16)고 명령했고, 예레미야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렘 4:4)고 외쳤습니다. 할례는 처음부터 마음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을 가리키는 표징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마음의 할례는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것"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마음을 베어 낼 수 없습니다. 모세도 결국 이렇게 약속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하실 것이며"(신 30:6). 마음의 할례는 하나님께서, 성령으로 하시는 일입니다. 이것이 7:6 "영의 새로운 것"과 8장 성령의 삶으로 이어지며, 골로새서 2:11은 이것을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부릅니다.

마지막 말이 아름답습니다. "그 칭찬이 사람에게서가 아니요 다만 하나님에게서니라." 원문에는 말놀이가 있습니다. '유대인(유다)'이라는 이름은 히브리어로 '찬송, 칭찬'이라는 뜻입니다(창 29:35, 49:8 "유다야 너는 네 형제의 찬송이 될지라"). 참 '유다 사람', 곧 '칭찬받는 사람'은 사람의 칭찬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 사람입니다. 표면적 유대인은 사람들의 인정을 받기 위해 겉모양을 꾸미지만(마 6:1-6), 이면적 유대인은 은밀한 중에 보시는 아버지의 칭찬을 받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이면적 裏面的 — '속에 있는'. 원문 엔 토 크륍토, '숨겨진 곳에서'. 마 6:4, 6, 18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의 '은밀한'과 같은 단어입니다.
  • 신령에 있고 의문에 있지 아니한 — 원문 엔 프뉴마티 우 그람마티, "영 안에, 문자 안에가 아니라". '신령'을 '성령'으로 보는 것이 대부분의 이해입니다(7:6, 고후 3:6의 같은 대조). 『개역개정』은 "영에 있고 율법 조문에 있지 아니한 것이라".
  • 칭찬 에파이노스 — 히브리어 '유다(예후다)'는 '야다(찬양하다)'에서 온 이름입니다. 고전 4:5 "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와 연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10:16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
  • 신 30: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성품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 렘 4:4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 골 2:11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 빌 3:3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
  • 고전 4:5그 때에 각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
  • 창 29:35그가 또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가로되 내가 이제는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하고 이로 인하여 그가 그 이름을 유다라 하였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누구의 칭찬을 바라고 있습니까

교회 안에서도 우리는 사람의 칭찬을 바라고 신앙생활을 하기 쉽습니다. 남이 보는 봉사, 남이 듣는 기도, 남이 아는 헌신. 그러나 하나님은 은밀한 곳을 보십니다.

침례를 받았다는 것, 교회 직분이 있다는 것, 오래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은 귀한 표징입니다. 그러나 그 표징이 가리키는 실체, 곧 성령께서 새롭게 하신 마음이 없다면 표징은 아무것도 보장하지 못합니다. 오늘 내 마음이 하나님께 드려져 있는지 조용히 물어보십시오.

Big Picture · 큰 그림

유대인의 다섯 가지 안전장치가 무너지다

바울은 유대인이 의지하던 것들을 하나씩 짚어 갑니다
의지하던 것바울의 대답
도덕적 판단력 (1–3절)남을 판단할 줄 안다는 것은 자기도 핑계할 수 없다는 증거
하나님의 참으심 (4–5절)참으심은 허락이 아니라 회개로의 초대. 무시하면 진노를 쌓는다
선민이라는 신분 (6–11절)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신다
율법을 가진 것 (12–24절)듣는 자가 아니라 행하는 자가 의롭다. 율법을 어기면 오히려 하나님 이름을 욕되게 한다
할례 (25–29절)참 할례는 마음에, 성령으로 하는 것

2장이 끝나면 유대인은 이방인보다 나을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래서 3장은 바로 이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뇨?" 바울은 유대인의 특권을 부정하지 않으면서, 결국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 있다"(3:9)는 결론에 이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장은 교회에게 같은 질문을 던집니다. 교회에 다닌다는 것, 침례를 받았다는 것, 성경을 안다는 것, 직분을 가졌다는 것. 그것들을 '안전장치'로 여기고 있지는 않습니까?

Glossary · 단어 사전

2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무론 누구든지毋論 · 1절

누구든지 상관없이, 누구를 막론하고.

인자하심仁慈 · 4절

친절하고 선하심. 원문 '크레스토테스'.

용납하심容納 · 4절

너그럽게 참아 주심. 심판을 잠시 멈추고 기다리심.

보응報應 · 6절

행한 대로 갚아 줌. 상과 벌을 모두 포함.

당을 짓다黨 · 8절

자기 이익을 위해 파벌을 만듦. 이기적 야망.

환난과 곤고患難 · 困苦 · 9절

짓눌림과 꼼짝할 수 없는 괴로움.

외모로 취하다11절

겉모습(신분·민족·재산)을 보고 편들다.

양심良心 · 15절

자기 행동을 스스로 아는 내면의 증인.

송사訟事 · 15절

고발, 고소.

훈도訓導 · 20절

가르쳐 이끄는 사람, 교사.

반포하다頒布 · 21절

널리 알리다, 선포하다.

가증히 여기다可憎 · 22절

몹시 미워하고 역겨워하다.

신사神社 · 22절

이방 신을 모신 곳, 신전.

할례 / 무할례割禮 · 25절

언약의 표징으로 행한 예식 / 할례받지 않은 상태(이방인).

표면적 / 이면적28–29절

겉으로 드러난 / 속에 숨겨진.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최근에 다른 사람을 판단했던 일이 있습니까? 그 사람에게서 본 모습이 내게는 없습니까? (1절)
  2. 하나님의 참으심을 '괜찮다는 허락'으로 오해하고 있는 영역이 있습니까? (4절)
  3. 나는 말씀을 '듣는 자'입니까, '행하는 자'입니까? 이번 주 들은 말씀 중 행하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13절)
  4. 요즘 내 양심이 나를 '송사'하고 있는 일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것을 어떻게 하고 있습니까? (15절)
  5. 나의 삶 때문에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모독을 받고 있습니까? (24절)
  6. 나는 사람의 칭찬과 하나님의 칭찬 중 어느 것을 더 바라며 신앙생활을 합니까? (29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