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32절까지 — 바울의 자기소개에서 로마서의 주제문, 그리고 인류의 죄에 대한 고발까지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ROMANS 1:16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장 들어가며
로마서 전체의 문을 여는 장 — 복음의 정의와, 그 복음이 왜 필요한지
로마서는 바울이 한 번도 가 본 적 없는 교회에 보낸 편지입니다. 주후 57년경, 바울은 고린도에 머물며 예루살렘으로 구제 헌금을 전달하러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15:25-26). 그 뒤에는 로마를 거쳐 당시 세상의 서쪽 끝인 서바나(스페인)까지 복음을 전하려는 계획이 있었습니다(15:24).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 자기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 차근차근 설명하는 긴 편지를 씁니다.
1장은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먼저 인사(1-7절)에서 바울은 자기를 소개하는 짧은 말 안에 복음의 핵심을 다 담아 냅니다. 이어서 감사와 방문 소원(8-15절)을 나누고, 로마서 전체의 주제문(16-17절)을 선언합니다. 그리고 곧바로 분위기가 바뀌어, 하나님을 알면서도 버린 인류에게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난다(18-32절)는 무거운 고발로 들어갑니다.
왜 기쁜 소식(복음)을 말하다가 갑자기 진노와 죄를 말할까요? 병을 알아야 약이 귀한 줄 알기 때문입니다. 1:18부터 3:20까지 바울은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것을 보여 주고, 3:21에서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라고 해답을 내놓습니다. 1장은 그 긴 진단의 첫 장입니다.
누가
사도 바울
다메섹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이방인의 사도로 부름받은 사람. 이 편지는 더디오라는 사람이 받아 적었습니다(16:22).
언제·어디서
주후 57년경, 고린도
3차 선교여행 막바지, 예루살렘으로 떠나기 직전. 편지는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 뵈뵈가 로마로 가져간 것으로 보입니다(16:1-2).
핵심 단어
복음 · 의 · 믿음 · 진노
1장에서 처음 나오는 이 네 단어가 로마서 전체를 끌고 갑니다. 특히 "하나님의 의"(17절)가 로마서의 열쇠말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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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택정함을 입었으니"
擇定, 골라서 정해 놓았다. 원문은 '구별되었다'(아포리조). 바리새인('구별된 자')이었던 바울의 말장난일 수 있습니다.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성령으로는'으로 읽는 해석이 많습니다. 3절 "육신으로는"과 짝을 이루는 표현입니다.
5절 "믿어 순종케"
원문은 "믿음의 순종".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 또는 믿음이라는 순종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14절 "야만"
헬라어 바르바로스. 헬라 말을 못하는 외국인을 가리키는 말이지, 오늘날의 '야만인'처럼 잔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17절 "믿음으로 믿음에"
원문 "믿음에서 믿음으로". 해석이 여럿인 구절입니다. 노트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22절 "우준하게"
愚蠢, 어리석고 미련하다. 『개역개정』은 "어리석게".
28절 "상실한 마음"
원문 아도키모스, '검사에서 불합격한, 쓸모없게 된' 마음. 바로 앞 "싫어하매"(도키마조, 인정하다)와 말놀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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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7인사 — 자기소개 안에 담은 복음
고대 편지는 "보내는 사람 → 받는 사람 → 인사말"이라는 정해진 형식이 있었습니다. 보통은 한두 줄로 끝납니다. 그런데 바울은 이 인사를 일곱 절, 원문으로는 한 문장으로 길게 늘립니다. 그 안에 자기가 누구인지, 복음이 무엇인지, 예수님이 누구신지, 로마 성도들이 누구인지를 모두 담았습니다. 처음 만나는 교회에 보내는 일종의 '신앙고백서'입니다.
1종, 사도, 택정된 사람 — 바울의 세 가지 정체성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직역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 부르심을 받은 사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따로 구별된 자.
바울은 자기를 세 가지로 소개합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의 종". 로마 사회에서 '종(노예)'은 가장 낮은 신분이었습니다. 그런데 구약에서 "여호와의 종"은 모세(수 1:1), 다윗(삼하 7:5), 선지자들에게 붙은 영예로운 칭호였습니다. 바울은 낮아짐과 영예를 동시에 담은 이 말로 시작합니다.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고백입니다.
둘째,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바울은 스스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다메섹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직접 그를 부르셨습니다(행 9장, 갈 1:1).
셋째,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택정'은 '골라서 정해 두었다'는 뜻이고, 원문은 '따로 구별했다'입니다. 재미있게도 '바리새인'이라는 이름도 '구별된 사람'이라는 뜻으로 풀이되곤 합니다. 예전에는 율법을 위해 스스로를 구별했던 바리새인 바울이, 이제는 하나님께서 복음을 위해 구별하신 사람이 된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1:15에서는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라고 말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종둘로스 — '하인'보다 강한 '노예'. 『개역개정』도 "종". 바울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 전에 자기 소속부터 밝힙니다.
복음유앙겔리온 — 로마 세계에서는 황제의 탄생, 즉위, 전쟁 승리를 알리는 '기쁜 소식'에 쓰였습니다. 바울은 같은 단어로 참된 왕의 소식을 전합니다.
갈 1:15-16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그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행 9:15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수 1:1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 구약의 '여호와의 종'
사 49:1여호와께서 나를 태에서부터 부르셨고 — 바울이 자기 소명을 이해한 배경
2이 복음은 새것이 아니라 오래전 약속된 것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직역 그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분의 선지자들을 통해 거룩한 기록들 속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다.
바울은 첫 문장부터 중요한 점을 분명히 합니다. 복음은 바울이 새로 만든 종교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의 성취라는 것입니다. 로마 교회의 유대인 성도들에게는 "바울은 모세와 율법을 버린 사람"이라는 의심이 있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처음부터 "내가 전하는 복음은 우리가 함께 믿는 구약의 약속 그 자체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이 원칙은 로마서 전체에 흐릅니다. 바울은 로마서에서 구약을 50번 넘게 인용합니다. 아브라함(4장), 아담(5장), 모세의 율법(7장), 이삭과 야곱(9장), 이사야와 호세아(9-11장)가 계속 등장합니다. 예수님도 부활 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풀어 주셨습니다(눅 24:27).
원어 · 번역 노트
성경 — 원문은 "거룩한 기록들(그라파이스 하기아이스)". 신약에서 '거룩한 성경'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드문 곳입니다. 당시 '성경'은 구약을 뜻합니다.
미리 약속하신프로에팡겔로 — '미리'(프로) + '약속하다'. 고후 9:5에만 한 번 더 나오는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3:21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눅 24:27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고전 15:3-4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창 3:15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 첫 복음의 약속
3육신으로는 다윗의 자손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직역 그 아들은 육체를 따라서는 다윗의 씨(혈통)에서 나셨다.
복음은 한 '사상'이 아니라 한 '분'에 관한 소식입니다. 바울은 3-4절에서 그 아들을 두 줄로 소개합니다. 첫째 줄은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입니다.
이것은 구약의 가장 중요한 약속 중 하나와 연결됩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네 몸에서 날 네 자식을 네 뒤에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리라… 내가 그 나라 위를 영원히 견고케 하리라"(삼하 7:12-13)고 약속하셨습니다. 이후 선지자들은 다윗의 가문에서 나올 왕, 곧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사 11:1, 렘 23:5). 예수님은 마리아와 요셉을 통해 법적·혈통적으로 다윗의 집안에 오셨습니다(마 1:1, 눅 1:32). 예수님은 진짜 사람으로, 이스라엘 역사 한가운데로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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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신으로는카타 사르카 — 7장에서 '육신'은 죄에 붙잡힌 상태를 뜻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단순히 '인간적 출생과 혈통의 면에서'라는 중립적인 뜻입니다. 같은 단어도 문맥에 따라 뜻이 달라집니다.
딤후 2:8나의 복음과 같이 다윗의 씨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라 — 3-4절과 같은 짝
4부활로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선포되심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직역 거룩함의 영을 따라서는, 죽은 자들의 부활로부터 능력 가운데 하나님의 아들로 정해지신(선포되신) 분,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둘째 줄은 "성결의 영으로는…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입니다. 3절과 4절은 정확한 대구를 이룹니다. "육신으로는 / 성결의 영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 부활하여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다".
조심해서 읽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때 '비로소' 하나님의 아들이 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3절 "이 아들로 말하면"이 이미 그분을 아들이라 부릅니다). 4절은 이 땅에서 연약한 모습으로 계셨던 그 아들이, 부활을 통해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 공개적으로 선포되고 그 자리에 오르셨다는 뜻입니다. 시편 2:7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를 사도행전 13:33에서 바울이 부활에 적용한 것과 같은 생각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을 한 이름으로 모읍니다.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예수'(사람의 이름), '그리스도'(메시아, 기름 부음 받은 왕), '주'(구약에서 하나님을 부르던 칭호). 이 짧은 호칭 안에 기독교 신앙고백 전체가 들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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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결의 영프뉴마 하기오쉬네스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표현으로, 히브리어 '거룩함의 영'(시 51:11, 사 63:10-11)을 그대로 옮긴 말입니다. 대부분 성령으로 이해하며, 부활을 일으키신 성령(8:11)과 연결됩니다.
인정되셨으니호리조 — '경계선(호로스, horizon의 어원)을 긋다'. 행 10:42 "하나님이 산 자와 죽은 자의 재판장으로 정하신 자"에도 쓰였습니다. '공식적으로 지명되고 선포되었다'는 뜻입니다.
능력으로 — "능력으로 인정되셨다"(선포 방식)로도, "능력 있는 하나님의 아들로"(아들의 상태)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후자가 3절과의 대조(연약함 → 능력)를 더 잘 살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2:7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도다
행 13:33하나님이 예수를 일으키사 우리 자녀들에게 이 약속을 이루게 하셨다 함이라 시편 둘째 편에 기록한 바와 같이…
롬 8:11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빌 2:8-9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5은혜와 사도직 — 모든 민족을 믿음의 순종으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직역 그를 통하여 우리는 은혜와 사도직을 받았다.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 가운데서 믿음의 순종이 일어나게 하려는 것이다.
바울은 자기 사명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목표는 "모든 이방인(민족)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 12:3)의 성취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한 민족을 통해 온 민족을 복 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오랜 계획이, 이방인의 사도 바울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믿어 순종케", 원문으로 "믿음의 순종"은 로마서의 처음(1:5)과 끝(16:26)에 똑같이 나오는 표현입니다. 로마서 전체를 감싸는 괄호와 같습니다. 바울에게 믿음과 순종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 아닙니다. 참된 믿음은 순종으로 나타나고, 참된 순종은 믿음에서 나옵니다. 로마서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을 말하지만, 그 믿음은 결코 게으른 믿음이 아닙니다.
"은혜와 사도의 직분"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바울은 사도직을 자랑할 지위가 아니라 받은 은혜로 이해합니다. 고린도전서 15:9-10에서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라고 고백한 것과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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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어 순종케휘파코에 피스테오스 — "믿음이라는 순종"(믿는 것 자체가 하나님께 대한 순종), 또는 "믿음에서 나오는 순종"으로 읽을 수 있습니다. 두 뜻이 다 들어 있다고 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방인에트네 — '민족들'. 영어 ethnic의 어원. 유대인 입장에서 이스라엘 밖의 모든 민족을 뜻합니다.
우리가 — 여기서 '우리'는 바울 자신을 가리키는 겸손한 복수형으로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6:26모든 민족으로 믿어 순종케 하시려고 알게 하신 바 그 신비의 계시를 좇아 된 것이니 — 로마서의 마지막 괄호
창 12:3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고전 15:10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마 28:19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6너희도 부르심을 받은 자들
너희도 그들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직역 그들 가운데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다.
이제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이야기 안으로 끌어들입니다. "너희도 그들 중에서." 로마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이 바로 바울이 섬기는 "모든 이방인" 가운데 열매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 교회를 세우지는 않았지만, 그들도 자기 사명의 범위 안에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에 편지할 자격이 있는 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 — 1절에서 바울이 "부르심을 받은 사도"였듯, 성도들은 "부르심을 받은 자"입니다. 같은 단어입니다. 사도와 평신도가 모두 같은 부르심 아래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르심의 결과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 곧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1절의 바울이 "그리스도의 종"이었듯, 성도도 그리스도의 소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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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 원문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 받은 자들(클레토이 예수 크리스투)". "예수 그리스도께 부르심을 받은"으로도, "예수 그리스도께 속하도록 부르심을 받은"으로도 읽힙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2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롬 8:28-30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벧전 2:9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7받는 이들에게 — 사랑받는 자, 성도, 그리고 은혜와 평강
로마에서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모든 자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
직역 로마에 있는, 하나님께 사랑받는 모든 이들,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화가 너희에게 있기를.
드디어 받는 사람이 나옵니다. 바울은 로마 성도들을 세 가지로 부릅니다.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 "성도로 부르심을 받은", 그리고 "로마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사랑받는 자"와 "성도(거룩한 자)"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에게 쓰던 칭호입니다. "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신 7:6). 이제 그 칭호가 로마의 이방인 성도들에게도 주어집니다. 신분, 민족, 노예와 자유인을 가리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사랑받는 거룩한 백성입니다. 여기서 '성도'는 특별히 경건한 소수가 아니라 부르심을 받은 모든 신자를 가리킵니다.
"은혜와 평강"은 바울의 모든 편지에 나오는 인사입니다. 당시 헬라 사람들은 편지에서 "카이레인"(안녕하시오)이라고 인사했고, 유대인들은 "샬롬"(평강)이라고 인사했습니다. 바울은 헬라식 인사와 발음이 비슷한 "카리스"(은혜)와 히브리식 "샬롬"을 함께 씁니다. 이방인과 유대인이 함께 있는 교회에 딱 맞는 인사이며, 동시에 복음 전체의 요약이기도 합니다. 은혜는 하나님의 값없는 호의이고, 평강은 그 은혜로 누리는 하나님과의 화해된 관계입니다(5:1).
원어 · 번역 노트
성도 聖徒 / 하기오이 — '거룩한 자들'. 도덕적 완성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되어 속한 사람'이라는 신분을 말합니다. 바울은 문제 많은 고린도 교회도 "성도"라고 불렀습니다(고전 1:2).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 은혜의 출처로 아버지와 예수님을 나란히 둡니다. 예수님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보는 초대교회 신앙이 자연스럽게 드러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7:6너는 여호와 네 하나님의 성민이라
민 6:24-26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구약의 축도
롬 5:1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고전 1:2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누구의 것입니까
바울은 자기를 소개하면서 이름보다 먼저 소속을 밝혔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 그리고 로마 성도들에게도 똑같이 말합니다. "너희도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받은 자니라."
세상은 우리를 직업, 재산, 성과로 소개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의 첫 번째 정체성은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 '하나님께 사랑받는 사람'입니다. 오늘 하루 나를 소개하는 첫 문장이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
1:8–15감사와 방문 소원 — 빚진 자의 마음
인사를 마친 바울은 감사로 넘어갑니다. 그리고 왜 한 번도 가 보지 않은 로마 교회를 그토록 방문하고 싶어 하는지를 털어놓습니다. 이 단락에는 바울의 따뜻한 마음과 겸손, 그리고 사명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8온 세상에 소문난 너희 믿음 때문에 감사한다
첫째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너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함은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됨이로다
직역 먼저, 나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너희 모두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께 감사한다. 너희 믿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바울은 거의 모든 편지에서 인사 뒤에 감사를 먼저 드립니다. 칭찬할 것이 많지 않았던 고린도 교회에도 감사로 시작했습니다(고전 1:4). 바울은 교회를 볼 때 먼저 하나님께서 그 안에 하신 일을 찾는 사람이었습니다.
로마 교회의 믿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다는 것은 과장이 아닙니다. 로마는 제국의 수도였고, 모든 길이 로마로 통했습니다. 수도 한복판에 그리스도인 공동체가 있다는 소식은 제국 곳곳으로 퍼졌을 것입니다.
"나의 하나님께"라는 표현도 따뜻합니다. 바울에게 하나님은 추상적인 신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드려집니다. 기도와 감사도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첫째는프로톤 멘 — '먼저'. 원문에는 '둘째'가 이어지지 않습니다. 순서를 매기려는 것보다 '무엇보다 먼저'라는 뜻입니다.
전파됨이로다 — 현재형. 지금도 계속 퍼져 나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살전 1:8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고전 1:4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나님께 항상 감사하노니
빌 1:3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9하나님이 증인이시다 — 쉬지 않는 기도
내가 그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항상 내 기도에 쉬지 않고 너희를 말하며
직역 내가 그 아들의 복음 안에서 내 영으로 섬기는 하나님께서 나의 증인이시다. 내가 얼마나 쉬지 않고 너희를 기억하는지를.
바울은 하나님을 증인으로 부를 만큼 진지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아십니다. 내가 얼마나 너희를 위해 기도하는지." 왜 이렇게까지 말할까요? 바울은 로마에 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로마 교회에 관심이 없다'는 오해가 있었을 수 있습니다. 바울은 몸은 가지 못했지만 기도로는 이미 로마에 가 있었다고 말합니다.
"내 심령으로 섬기는"에서 '섬기다'는 원래 성전에서 제사장이 예배를 드리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바울은 복음 전하는 일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로 이해했습니다. 15:16에서도 자기를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라 마음(영) 깊은 곳에서 드리는 섬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섬기는라트류오 — 70인역에서 성전 예배와 제사에 쓰이던 단어. 12:1 "영적 예배"(라트레이아)와 같은 어근입니다.
쉬지 않고아디알레입토스 — 살전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와 같은 단어.
함께 읽을 말씀
빌 1:8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롬 15:16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살전 5:17쉬지 말고 기도하라
10하나님의 뜻 안에서 길이 열리기를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제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로 나아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
직역 혹시 이제라도, 하나님의 뜻 안에서 너희에게 가는 길이 순조롭게 열리기를 구하고 있다.
바울의 기도 제목 중 하나는 로마에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뜻을 고집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 안에서"를 붙입니다. 야고보서 4:15 "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와 같은 태도입니다.
흥미롭게도 이 기도는 바울이 상상한 방식으로 응답되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결국 로마에 갔지만, 자유로운 선교사가 아니라 죄수의 몸으로, 배가 난파되는 죽을 고비를 넘기며 갔습니다(행 27-28장).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에 응답하셨지만, 바울이 예상하지 못한 길로 응답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길 덕분에 바울은 황제의 근위대에까지 복음을 전했습니다(빌 1:12-13).
원어 · 번역 노트
좋은 길 얻기를유오도오 — '좋은(유) 길(호도스)'. 원래 '여행길이 순탄하다'는 뜻에서 '형통하다'로 넓어진 말입니다(요삼 1:2 "네가 범사에 잘되고"에 쓰임).
어떠한 방법으로든지 이제 — 원문 에이 포스 에데 포테, "혹시 이제는 마침내". 오래 기다린 간절함이 묻어납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19:21바울이… 내가 거기 갔다가 후에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 하고
행 23:11담대하라 네가 예루살렘에서 나의 일을 증거한 것같이 로마에서도 증거하여야 하리라 — 주님의 약속
약 4:15주의 뜻이면 우리가 살기도 하고 이것이나 저것을 하리라
11신령한 은사를 나누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고
내가 너희 보기를 심히 원하는 것은 무슨 신령한 은사를 너희에게 나눠 주어 너희를 견고케 하려 함이니
직역 내가 너희를 보기를 간절히 원하는 것은, 어떤 영적 선물을 너희와 나누어 너희가 굳게 서도록 하려는 것이다.
바울이 로마에 가고 싶은 이유는 구경이나 명예가 아니라 나눔입니다. "신령한 은사", 곧 성령께서 주신 어떤 선물을 나누어 성도들을 '견고하게' 세우고 싶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은사는 방언 같은 특정 은사라기보다, 바울이 받은 복음의 이해와 가르침, 격려와 같은 영적 유익 전체를 말하는 것으로 봅니다.
이 바람은 사실 이 편지로 먼저 이루어졌습니다. 로마서 자체가 바울이 로마 교회에 나눠 준 가장 큰 '신령한 은사'입니다. 그리고 이 편지는 2천 년 동안 수많은 교회를 '견고하게' 세웠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은사 恩賜 / 카리스마 — '은혜(카리스)로 주어진 것'. 12:6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견고케스테리조 — 로마서 마지막 송영 16:25 "나의 복음… 대로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에 다시 나옵니다. 로마서의 처음과 끝이 '견고하게 세움'으로 이어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6:25나의 복음과 예수 그리스도를 전파함은… 너희를 능히 견고케 하실
살전 3:2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고전 12:7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12아니, 서로 위로를 얻으려고 — 바울의 겸손
이는 곧 내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피차 믿음으로 인하여 피차 안위함을 얻으려 함이라
직역 다시 말하면, 너희 가운데서 너희와 나의 서로의 믿음을 통해 함께 위로(격려)를 받으려는 것이다.
11절에서 "내가 너희에게 나눠 주어"라고 했다가, 바울은 곧바로 말을 바꿉니다. "이는 곧… 피차". 일방적으로 주러 가는 것이 아니라, 서로 주고받으며 함께 격려받고 싶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사도가 처음 만나는 성도들에게 "나도 여러분의 믿음에서 힘을 얻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겸손한 예의이면서 동시에 교회의 본질에 대한 진실입니다. 교회 안에서는 가르치는 사람도 배우고, 목자도 양에게서 위로를 받습니다. 믿음은 혼자 붙드는 것이 아니라 서로의 믿음을 통해 함께 자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피차 彼此 — '저쪽과 이쪽', 곧 서로. 원문에는 '서로 안에서(엔 알렐로이스)'.
안위함 安慰 — 편안하게 위로함. 원문 쉼파라칼레오는 '함께(쉰) 격려받다(파라칼레오)'. 성령을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 부르는 말과 같은 어근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5:32나로 하나님의 뜻을 좇아 기쁨으로 너희에게 나아가 너희와 함께 편히 쉬게 하라
살전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같이 하라
히 10:24-25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며… 오직 권하여
13여러 번 가려 했지만 길이 막혔다
형제들아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가고자 한 것을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너희 중에서도 다른 이방인 중에서와 같이 열매를 맺게 하려 함이로되 지금까지 길이 막혔도다
직역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이것을 모르기를 원하지 않는다. 다른 이방인들 가운데서처럼 너희 가운데서도 열매를 얻으려고 여러 번 너희에게 가려고 계획했지만, 지금까지 막혀 왔다.
"너희가 모르기를 원치 아니하노니"는 바울이 중요한 것을 알려 줄 때 쓰는 표현입니다(11:25, 고전 10:1). 바울은 오해를 풀고 싶었습니다. 로마에 가지 않은 것은 관심이 없어서가 아니라 길이 막혔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이 막았을까요? 15:22에서 바울은 그 이유를 밝힙니다. "그러므로 또한 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앞 절들(15:19-21)을 보면, 아직 복음이 전해지지 않은 지역을 먼저 개척하느라 바빴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먼저 인도하셨습니다(행 16:6-7에서도 성령이 길을 막으신 적이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열매를 맺게 — 원문 "열매를 얻으려고(카르폰 스코)". 농부가 수확을 거두는 그림입니다.
막혔도다 — 수동형. 누가 막았는지 말하지 않지만, 바울은 하나님의 섭리 안에서 이해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5:22-24내가 너희에게 가려 하던 것이 여러 번 막혔더니… 서바나로 갈 때에 지나가는 길에 너희를 보고
행 16:6-7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는지라
살전 2:18나 바울은 한번 두번 너희에게 가고자 하였으나 사단이 우리를 막았도다
14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
헬라인이나 야만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다 내가 빚진 자라
직역 헬라인에게나 비헬라인에게나, 지혜로운 자에게나 어리석은 자에게나, 나는 빚진 자다.
바울은 자기 사명을 "빚"으로 표현합니다. 놀라운 말입니다. 바울은 헬라인이나 야만인에게 돈을 빌린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왜 빚진 자일까요? 하나님께서 바울에게 복음을 맡기셨기 때문입니다. 누군가 나에게 다른 사람에게 전해 줄 큰 돈을 맡겼다면, 나는 그 돈을 받을 사람에게 빚진 사람이 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 받은 은혜를 모든 사람에게 전해야 할 빚으로 느꼈습니다.
바울이 나열한 두 쌍은 당시 세상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이나"는 문화와 언어로 나눈 구분,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는 교육 수준으로 나눈 구분입니다. 세련된 아테네의 철학자에게도, 글을 모르는 시골 사람에게도 바울은 똑같이 빚진 자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9:16에서 바울은 같은 마음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전할지라도 자랑할 것이 없음은 내가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원어 · 번역 노트
야만 野蠻 / 바르바로스 — 헬라 사람들 귀에 외국어가 "바르바르"처럼 들린다고 해서 생긴 말이라고 합니다. '헬라 말을 못하는 사람'이라는 뜻이지 '잔인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닙니다. 행 28:2의 멜리데 섬 원주민도 같은 단어로 불렸는데, 그들은 바울 일행에게 "특별한 동정"을 베풀었습니다. 오늘날 말로는 "문명인이나 외국인이나" 정도입니다.
빚진 자오페일레테스 — 8:12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에도 쓰였습니다.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와 함께 읽으면 좋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9:16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고전 9:22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골 3:11거기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야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 분별이 있을 수 없나니
롬 13:8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15그러므로 로마에도 복음을 전하고 싶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
직역 그러므로 내 쪽에서는,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간절히 원한다.
빚진 자의 결론은 "그러므로"입니다. 모든 사람에게 빚졌으니 로마에도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합니다. 로마 성도들은 이미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왜 '복음을 전하고' 싶다는 걸까요? 바울에게 복음은 처음 믿을 때만 필요한 입문 과정이 아니었습니다. 복음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세우고 이끄는 능력입니다. 믿는 사람도 복음을 날마다 더 깊이 들어야 합니다. 로마서 전체가 바로 '이미 믿는 사람들에게 전하는 복음'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할 수 있는대로 — 원문은 "나에 관한 한, 열망이 있다(프로튀몬)". '최선을 다하겠다'보다 '내 마음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에 가깝습니다. 길을 여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자기 쪽 열심만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28:30-31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담대히 가르치되 금하는 사람이 없었더라 — 이 소원의 성취
고전 15:1-2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누구에게 빚진 사람입니까
바울은 복음을 받은 순간부터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가 되었다고 생각했습니다. 은혜를 받은 사람은 그 은혜를 흘려보내야 할 책임도 함께 받습니다.
내 주변의 '헬라인과 야만인', '지혜 있는 자와 어리석은 자'는 누구입니까? 나와 생각이 다르고, 나보다 배웠거나 덜 배웠고, 문화가 다른 그 사람들에게 나는 복음의 빚을 지고 있습니다.
1:16–17로마서의 주제문 —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
이 두 절은 로마서 전체의 '주제문'입니다. 앞으로 16장에 걸쳐 바울이 할 모든 말이 이 두 절 안에 씨앗처럼 들어 있습니다. 복음, 능력, 구원, 모든 믿는 자, 유대인과 헬라인, 하나님의 의, 믿음, 그리고 구약(하박국)의 증언까지. 마르틴 루터가 종교개혁의 문을 연 것도 바로 17절의 "하나님의 의"를 새롭게 깨달으면서였습니다.
16복음은 모든 믿는 자를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직역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 그것은 믿는 모든 이에게, 먼저는 유대인에게 그리고 헬라인에게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이기 때문이다.
왜 바울은 하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라는 말로 시작할까요? 당시 복음은 부끄러운 소식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로마 사람들에게 십자가는 가장 비천한 노예나 반역자를 처형하는 수치스러운 형틀이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은 유대인 목수를 '하나님의 아들', '주'라고 부르는 것은 세련된 로마 시민에게 웃음거리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23에서 바울은 십자가가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바로 그 복음을, 제국의 수도 로마 사람들 앞에서도 부끄러워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복음은 단순히 하나님에 관한 정보나 좋은 교훈이 아닙니다. 복음 자체가 사람을 실제로 구원하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로마는 군대와 법의 '능력'을 자랑하던 도시였습니다. 바울은 그 한복판에서, 참된 능력은 십자가의 복음에 있다고 선언합니다.
그 능력은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칩니다. 조건은 단 하나, 믿음입니다.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는 차별이 아니라 순서입니다. 하나님은 먼저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시고 메시아를 보내셨으며, 이제 그 복이 모든 민족에게 흘러갑니다. 로마서 9-11장은 이 '첫째는 유대인에게'라는 말을 자세히 풀어 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 일부러 낮춰 말해서 더 강하게 뜻을 전하는 표현법입니다. "부끄럽지 않다" = "자랑스럽다". 예수님도 "누구든지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막 8:38)고 하셨습니다.
능력뒤나미스 — 다이너마이트(dynamite)의 어원으로 자주 소개되지만, 바울 시대에 폭약이 있었던 것은 아니니 '폭발적인 힘'보다는 '실제로 일을 이루는 하나님의 힘'으로 이해하면 됩니다.
구원소테리아 — 로마서에서 구원은 과거(이미 받은 구원), 현재(구원받아 가는 삶), 미래(마지막 날의 완성, 13:11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를 모두 포함합니다.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 『개역개정』은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헬라인'은 여기서 유대인이 아닌 모든 이방인을 대표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18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고전 1:23-24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막 8:38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딤후 1:8그러므로 네가 우리 주의 증거와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사 28:16그를 믿는 자는 급절하게 되지 아니하리로다 — 바울이 9:33, 10:11에서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로 인용
17복음에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 —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직역 왜냐하면 그 복음 안에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 것이다"라고 한 것과 같다.
왜 복음이 구원의 능력일까요?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입니다.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표현이 바로 이 "하나님의 의"입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차원이 함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의로우시다는 것, 곧 약속에 신실하시고 죄를 공정하게 다루시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3:25-26).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죄인에게 주시는 의, 곧 믿는 자를 '의롭다'고 선언하시는 선물로서의 의입니다(3:22, 5:17). 로마서는 이 두 가지가 십자가에서 만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시면서 동시에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3:26).
마르틴 루터는 수도사 시절 이 구절 때문에 괴로워했습니다. '하나님의 의'를 '죄인을 심판하는 하나님의 엄격한 의'로만 이해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문맥을 묵상하다가, 여기서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받는 선물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루터는 그 순간 "마치 낙원의 문이 활짝 열려 그 안으로 들어간 것 같았다"고 회고했습니다. 종교개혁은 이 한 구절의 재발견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믿음으로 믿음에"는 해석이 여럿인 표현입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직 믿음으로"라는 강조로 보는 견해가 가장 많고, "하나님의 신실하심(믿음)에서 사람의 믿음으로", "믿음이 점점 자라 가는 것" 등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느 쪽이든 핵심은 같습니다. 하나님의 의는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받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구약으로 증명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합 2:4). 하박국 선지자는 바벨론이 쳐들어오는 절망적인 시대에 "하나님, 왜 악인이 이깁니까?"라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의인은 그 믿음(신실함)으로 살리라"였습니다. 눈에 보이는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사람이 산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 말씀이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히 성취되었다고 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이 의롭다 함을 받고, 참 생명을 얻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하나님의 의디카이오쉬네 테우 — 로마서에 8번 나옵니다(1:17, 3:5, 21, 22, 25, 26, 10:3 두 번). 구약에서 하나님의 '의'는 자주 '구원'과 짝을 이룹니다. "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사 46:13). 하나님의 의는 차가운 심판만이 아니라 언약 백성을 건지시는 신실한 행동이기도 합니다.
나타나서아포칼륍테타이 — '덮개를 벗기다'(계시록 Apocalypse의 어원). 현재형이어서, 복음이 전해질 때마다 지금도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고 있다는 뜻입니다. 18절 "진노가… 나타나나니"와 같은 동사로 짝을 이룹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하박국 2:4의 히브리어는 "의인은 그의 믿음(에무나, 신실함)으로 살리라", 70인역은 "의인은 나의 신실함으로 살리라". 바울은 '그의/나의' 없이 인용해서 '믿음' 자체를 강조합니다. 신약에서 세 번 인용됩니다(롬 1:17, 갈 3:11, 히 10:38).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인은 살리라"(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산다)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로마서 1-4장(믿음으로 의롭게 됨)과 5-8장(의롭게 된 자의 삶)의 구조와 잘 맞는 읽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합 2:4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롬 3:21-22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갈 3:11하나님 앞에서 아무나 율법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되지 못할 것이 분명하니 이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하였음이니라
빌 3:9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사 46:13내가 나의 의를 가깝게 할 것인즉 상거가 멀지 아니하니 나의 구원이 지체치 아니할 것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까
바울 시대 로마에서 십자가 복음은 비웃음거리였습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도 복음은 종종 촌스럽고 편협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직장에서, 가족 모임에서, 친구들 앞에서 나는 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어색하고 부끄럽지는 않습니까?
바울이 부끄러워하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복음이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복음을 지켜 주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나를 구원했고, 지금도 살립니다. 이 사실을 깊이 경험할수록 부끄러움은 감사와 담대함으로 바뀝니다.
1:18–23하나님의 진노 — 알면서도 버린 인간
16-17절의 밝은 선언 바로 뒤에, 바울은 어두운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17절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와 18절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나니"는 같은 동사입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하나님의 의가 드러나는 것처럼,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는 지금 하나님의 진노가 드러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단락은 특정 민족이 아니라 인류 전체, 특히 하나님의 율법을 따로 받지 못한 이방 세계를 향한 고발입니다. 바울의 논리는 이렇습니다. ① 하나님은 창조 세계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셨다 → ② 사람들은 하나님을 알았다 → ③ 그런데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지도 감사하지도 않았다 → ④ 그 결과 생각이 어두워지고 우상을 섬기게 되었다. 이 흐름은 창세기 3장의 타락, 그리고 이스라엘의 금송아지 사건을 강하게 떠올리게 합니다.
18하늘로부터 나타나는 하나님의 진노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직역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부터, 불의로 진리를 억누르는 사람들의 모든 불경건과 불의 위에 계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진노'라는 말을 들으면 불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처럼 기분이 나빠서 터뜨리는 분노가 아닙니다. 사랑하는 자녀를 망가뜨리는 마약상에게 부모가 느끼는 분노처럼, 악에 대한 거룩한 하나님의 반대입니다. 악을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하나님은 선한 하나님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의 다른 얼굴입니다.
바울은 죄를 두 단어로 요약합니다. "경건치 않음"은 하나님을 향한 죄(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음), "불의"는 사람을 향한 죄(이웃을 바르게 대하지 않음)입니다. 십계명의 두 돌판, 예수님의 두 큰 계명(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뒤집어 놓은 모습입니다. 그리고 순서가 중요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면(경건치 않음) 사람과의 관계도 무너집니다(불의). 이 단락 전체가 그 순서로 전개됩니다.
가장 무서운 표현은 "불의로 진리를 막는"입니다. 사람들은 진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알면서 억누릅니다. 진리를 받아들이면 내 삶을 바꿔야 하니까, 마음속에서 진리가 올라오지 못하도록 꾹 눌러 버립니다.
진노가 "나타나나니"는 현재형입니다. 마지막 심판의 진노(2:5)도 있지만, 바울은 지금 이미 세상에 진노가 나타나고 있다고 말합니다. 그 진노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는 24-32절에서 "내어 버려 두사"라는 말로 설명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진노오르게 — 로마서에 12번 나옵니다. 5:9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에서처럼, 복음은 이 진노에서 건짐을 받는 소식이기도 합니다.
막는카테코 — '붙잡아 두다, 억누르다'. 살후 2:6 "막는 자"에도 쓰인 단어입니다. 공이 물 위로 떠오르지 못하게 손으로 꾹 누르고 있는 모습을 떠올리면 됩니다.
하늘로 좇아 — '하나님께로부터'를 뜻하는 유대적 표현. 진노가 사람의 우연한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에서 나온다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2:5진노의 날 곧 하나님의 의로우신 판단이 나타나는 그 날에 임할 진노를 네게 쌓는도다
롬 5:9그러면 이제 우리가 그 피를 인하여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더욱 그로 말미암아 진노하심에서 구원을 얻을 것이니
요 3:36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
엡 5:6이를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시 7:11하나님은 의로우신 재판장이심이여 매일 분노하시는 하나님이시로다
19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이미 보였다
이는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직역 왜냐하면 하나님에 대하여 알 수 있는 것이 그들 가운데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그들에게 분명히 보여 주셨다.
왜 진노가 정당할까요? 사람들이 하나님을 몰랐던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 만한 것이 저희 속에 보임이라." 하나님은 숨어 계시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보여 주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를 저희에게 보이셨느니라."
'저희 속에'는 '그들 마음속에'로도, '그들 가운데(그들 주변에)'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바깥으로는 창조 세계(20절)를 통해, 안으로는 양심(2:15)을 통해 자신을 알리셨습니다. 신학에서는 이것을 '일반계시'라고 부릅니다. 성경과 그리스도를 통한 '특별계시'와 구별되는, 모든 사람에게 주어진 하나님에 대한 앎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알 만한 것토 그노스톤 — 하나님의 모든 것이 아니라 '알 수 있는 만큼의 것'. 일반계시로는 하나님이 계시고 능력 있으시다는 것은 알 수 있지만, 구원의 길(그리스도)까지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복음이 필요합니다(10:14).
저희 속에엔 아우토이스 — "그들 안에"와 "그들 가운데" 두 뜻이 다 가능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2:14-15이런 이들은… 율법의 행위가 그 마음에 새긴 것을 나타내느니라
행 14:17그러나 자기를 증거하지 아니하신 것이 아니니 곧 너희에게 하늘로서 비를 내리시며 결실기를 주시는 선한 일을 하사
행 17:27이는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인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전 3:11또 사람에게는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20창조 세계가 말한다 — 그러므로 핑계할 수 없다
창세로부터 그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그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직역 세상이 창조된 때부터 그분의 보이지 않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한 능력과 신성이 지으신 것들을 통해 깨달아져 분명히 보인다. 그러므로 그들은 변명할 수 없다.
역설적인 표현이 나옵니다.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이… 분명히 보여." 하나님 자신은 눈에 보이지 않으시지만, 그분이 만드신 세상을 보면 그분의 능력과 신성이 분명히 '보입니다'. 정교한 시계를 보면 시계공을 직접 보지 않아도 그 솜씨를 알 수 있는 것과 같습니다.
시편 19편은 이렇게 노래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언어가 없고 들리는 소리도 없으나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별이 가득한 밤하늘, 거대한 산, 작은 꽃잎의 정교함, 우리 몸의 놀라운 구조. 창조 세계 전체가 말없이 하나님을 증언합니다.
결론은 무겁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핑계치 못할지니라." 하나님 앞에 섰을 때 "저는 하나님이 계신 줄 몰랐습니다"라고 변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을 못 들어 본 사람은 어떻게 되나요?'라는 질문에 바울이 주는 일차적인 답이기도 합니다. 누구나 받은 빛이 있고, 그 빛에 대해 책임이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 — '신성(테이오테스)'은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 곧 '신적인 본성과 위엄'을 뜻합니다. 골 2:9의 "신성(테오테스)의 모든 충만"과는 조금 다른 단어입니다.
분명히 보여 알게 되나니 — 원문은 '깨달아져(누메나) 분명히 보인다(카토라타이)'.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깨닫는 두 단계가 함께 들어 있습니다.
핑계치 못할지니라아나폴로게토스 — '변호(아폴로기아)가 없는'. 법정 용어입니다. 2:1에서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이라고 같은 단어가 유대인에게 다시 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9:1-4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
욥 12:7-9이제 모든 짐승에게 물어보라 그것들이 너를 가르치리라… 여호와의 손이 이를 행하신 줄을 누가 알지 못하느냐
사 40:26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롬 2: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히 11:3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21알면서도 영화롭게도, 감사하지도 않았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직역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으로서 영화롭게 하거나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의 생각 속에서 헛되게 되었으며, 그들의 깨닫지 못하는 마음은 어두워졌기 때문이다.
인간 타락의 핵심이 여기에 있습니다. 문제는 하나님을 '모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은 것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를 지적합니다.
첫째,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하나님을 하나님의 자리에 모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가치로 높이는 대신, 다른 것을 그 자리에 앉혔습니다. 둘째, "감사치도 아니하고". 생명, 숨, 햇빛, 양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인데, 그것을 당연히 내 것으로 여겼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것은 작은 예의 문제가 아닙니다. 감사가 없다는 것은 '나는 아무에게도 빚지지 않았다, 내 삶의 주인은 나다'라는 선언입니다. 이것이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그 결과는 생각과 마음의 어두움입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사람은 더 자유롭고 지혜로워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생각이 '허망해지고'(헛된 것을 쫓고) 마음이 '어두워집니다'. 빛의 근원을 등지면 그림자 속을 걷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에베소서 4:17-18도 같은 그림을 그립니다.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원어 · 번역 노트
영화롭게독사조 — '영광(독사)을 돌리다'. 23절 "하나님의 영광을… 바꾸었느니라", 3:23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로 이어지는 로마서의 중요한 줄기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하도록 지음받았는데(창 1:27), 그 영광을 잃어버렸습니다.
허망하여지며마타이오오 — 구약 70인역에서 우상을 '헛된 것(마타이아)'이라고 부를 때 쓰는 어근입니다(렘 2:5 "헛된 것을 따라 헛되이 행하였느냐"). 헛된 것을 섬기면 사람도 헛되어집니다.
미련한 마음 — 원문은 "깨닫지 못하는 마음". 성경에서 '마음(카르디아)'은 감정만이 아니라 생각과 의지의 중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렘 2:5너희 열조가 내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하고 가서 허탄한 것을 좇아 허탄하여졌느냐
엡 4:17-18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너희는 이제부터 행하지 말라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신 8:11-14네가 먹어서 배불리고 아름다운 집을 짓고 거하게 되며…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염려하노라 — 감사를 잊는 위험
살전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22스스로 지혜롭다 하나 어리석어졌다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직역 자기들이 지혜롭다고 주장하면서 어리석게 되었다.
이 짧은 구절은 날카로운 아이러니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인간은 스스로를 '지혜롭다'고 자부합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당시 세상은 헬라 철학의 전성기를 지나, 수많은 철학 학파와 종교가 넘치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하나님을 떠난 지혜는 결국 어리석음이라고 말합니다.
시편 14:1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와 같은 생각입니다. 성경에서 '어리석음'은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방향의 문제입니다. 아무리 똑똑해도 하나님을 버리면 가장 중요한 것을 놓친 사람입니다. 고린도전서 1:20-21도 같은 말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원어 · 번역 노트
우준하게 愚蠢 — '어리석을 우', '어리석을 준'. 옛 한자어로 오늘날 거의 쓰지 않습니다. 『개역개정』은 "어리석게". 헬라어 모라이노는 영어 moron(바보)의 어원입니다.
스스로… 하나 — 원문 파스콘테스는 '주장하다, 자처하다'. 실제와 다른 것을 우기는 뉘앙스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4:1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없다 하도다
렘 10:14사람마다 우준하고 무식하도다 금장색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인하여 수치를 당하나니
고전 1:20-21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잠 1:7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어늘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하느니라
23썩지 않는 영광을 썩어질 형상과 바꾸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직역 그리고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의 형상과 새와 네 발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들의 모양으로 바꾸었다.
어리석음의 절정은 우상숭배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바꿈', 곧 교환이라고 부릅니다. 영원히 썩지 않는 하나님의 영광을 내주고, 그 대가로 썩어 없어질 피조물의 형상을 받아 왔습니다. 금을 주고 돌멩이를 받아 온 거래, 인류 역사상 최악의 거래입니다.
이 구절은 구약의 두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첫째는 창세기 1장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시고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라"(창 1:26-28)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나열한 순서(사람, 새, 짐승, 기는 것)는 사람이 다스려야 할 피조물 앞에 오히려 엎드린 모습입니다. 창조 질서가 거꾸로 뒤집혔습니다.
둘째는 시편 106:20입니다. 이스라엘이 시내산 아래에서 금송아지를 만든 사건을 노래하며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라고 말합니다. 바울은 거의 같은 단어를 씁니다(70인역). 놀랍게도 이방인을 고발하는 이 단락에 이스라엘의 죄가 겹쳐 있습니다. 2장에서 바울이 "유대인도 마찬가지다"라고 말할 것을 미리 깔아 두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우상은 나무나 금으로 만든 신상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하지만 원리는 같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다른 것(돈, 성공, 사람의 인정, 쾌락, 자녀, 심지어 나 자신)을 앉히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그리고 우상은 결국 '썩어질'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금수와 버러지 禽獸 — '금(禽)'은 날짐승(새), '수(獸)'는 길짐승, '버러지'는 벌레, 기어 다니는 것. 원문은 "새, 네 발 가진 것, 기는 것". 이집트에는 새(따오기, 매), 짐승(황소, 고양이), 기는 것(뱀, 풍뎅이)의 형상을 한 신들이 실제로 많았습니다.
바꾸었느니라알라소 — 25절 "바꾸어(메탈라소)", 26절 "바꾸어(메탈라소)"로 세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 → 우상, 진리 → 거짓, 순리 → 역리. 바꾸는 죄가 바꾸는 심판을 낳습니다.
썩어지지 아니하는 / 썩어질 — 아프타르토스 / 프타르토스. 고전 15:53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와 같은 단어입니다. 우리가 바꾸어 버린 '썩지 않음'을 그리스도께서 부활로 다시 주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06:20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 금송아지 사건
창 1:26-27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다스리게 하자
신 4:15-18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여 아무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 남자의 형상이든지… 새의 형상이든지 땅 위에 기는 곤충의 형상이든지
렘 2:11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요일 5:21자녀들아 너희 자신을 지켜 우상에게서 멀리하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무엇과 무엇을 바꾸고 있습니까
인류의 비극은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것과 바꾼 '교환'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교환은 지금도 우리 일상에서 조용히 일어납니다. 기도 시간을 휴대폰과 바꾸고, 주일을 성공과 바꾸고, 하나님의 인정을 사람의 인정과 바꿉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늘 같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오늘 받은 숨과 양식과 사람들을 '선물'로 보고 감사하는 연습이 우상숭배를 막는 첫걸음입니다.
1:24–32내어 버려 두심 — 죄가 죄를 낳는 심판
18절에서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나니"라고 했습니다. 그 진노가 어떻게 나타날까요? 하늘에서 불이 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세 번 반복합니다. "내어 버려 두사"(24절), "내어 버려 두셨으니"(26절), "내어 버려 두사"(28절). 하나님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을, 하나님께서 그들이 원하는 대로 가도록 놓아 두셨다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결국 세상에는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하나님께 '당신 뜻대로 하소서'라고 말하는 사람과, 하나님이 그들에게 '네 뜻대로 하라'고 말씀하시는 사람." 하나님께서 손을 놓으시는 것, 그것이 가장 무서운 심판입니다.
이 단락은 우상숭배(하나님을 향한 죄)가 어떻게 성적인 타락과 온갖 관계의 파괴(사람을 향한 죄)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18절의 "경건치 않음과 불의"가 실제로 펼쳐지는 모습입니다.
24첫 번째 내버려 두심 — 마음의 정욕대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저희 몸을 서로 욕되게 하게 하셨으니
직역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들 마음의 욕망 안에서 더러움에 넘겨주셨다. 그래서 그들이 자기들끼리 자기 몸을 욕되게 하도록.
"그러므로", 곧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과 바꾸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내어 버려 두셨습니다". 이 동사(파라디도미)는 '넘겨주다'라는 뜻으로, 죄수를 간수에게 넘겨줄 때 쓰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그들 자신의 욕망이라는 감옥에 넘겨주셨습니다. 그들이 원한 것이 바로 그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연결이 보입니다. 23절에서 사람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몸'을 가진 피조물의 형상과 바꾸었습니다. 그 결과 24절에서 그들은 자기 '몸'을 욕되게 합니다. 피조물을 하나님처럼 섬긴 사람들이, 결국 하나님이 주신 자기 몸의 존엄을 잃어버립니다. 우상숭배는 사람을 높여 주지 않고 오히려 비참하게 만듭니다.
그리고 같은 동사 파라디도미가 로마서에서 놀라운 곳에 다시 나옵니다.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하나님은 죄인들을 죄에 내어 주셨지만, 결국 그 죄인들을 구하시려고 자기 아들을 내어 주셨습니다. 1장의 어두운 '내어 줌'은 4장과 8장의 은혜로운 '내어 줌'으로 응답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내어 버려 두사파레도켄 — '넘겨주었다'. 수동적으로 손을 뗀 것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판결로 그 상태에 '넘겨주신' 적극적인 심판의 의미도 있습니다. 시 81:12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 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와 같은 생각입니다.
정욕에피튀미아 — 성적 욕망만이 아니라 하나님을 떠난 모든 욕망. 7:7-8의 '탐심'과 같은 단어입니다.
더러움아카타르시아 — 구약 정결법에서 '부정함'에 해당하는 말로, 바울 서신에서는 주로 성적인 부도덕을 가리킵니다(갈 5:19).
함께 읽을 말씀
시 81:11-12내 백성이 내 소리를 듣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내가 그 마음의 강퍅한 대로 버려 두어 그 임의대로 행케 하였도다
행 14:16하나님이 지나간 세대에는 모든 족속으로 자기의 길들을 다니게 묵인하셨으나
롬 4:25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롬 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엡 4:19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5진리를 거짓과 바꾸고, 피조물을 섬겼다
이는 저희가 하나님의 진리를 바꾸어 거짓 것으로 만들고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자이시로다 아멘
직역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를 그 거짓과 바꾸었고, 창조주 대신 피조물을 경배하고 섬겼다. 창조주는 영원히 찬송받으실 분이시다. 아멘.
바울은 23절의 '교환'을 다시 말합니다. 이번에는 더 근본적인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바꾸어 거짓 것으로." 하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진리를, '이것이 신이다'라는 거짓과 맞바꾸었습니다. 성경에서 우상은 종종 '거짓'이라 불립니다(사 44:20 "그 오른손에 있는 것이 거짓 것이 아니냐", 렘 13:25).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김이라." '조물주보다 더'는 원문에서 '조물주를 제쳐 두고, 조물주 대신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조금 덜 사랑한 정도가 아니라, 하나님의 자리를 피조물에게 넘겨준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우상숭배의 정의입니다. 선물을 준 분 대신 선물을 섬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바울은 갑자기 멈추고 찬송을 터뜨립니다. "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자이시로다 아멘." 사람들이 영화롭게 하지 않은(21절) 바로 그 하나님을, 바울은 이 어두운 단락 한가운데서 찬송합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말할 때 "찬송받으실 분"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붙였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버려도 하나님의 영광은 조금도 줄지 않습니다. 이 찬송은 어둠 속에서 빛나는 한 줄기 빛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조물주 造物主 — '만물을 지으신 주인', 곧 창조주. 원문 호 크티산, "지으신 분".
경배하고 섬김이라 — '경배하다(세바조마이)'는 마음의 경외, '섬기다(라트류오)'는 예배 행위. 9절에서 바울이 "내 심령으로 섬기는 하나님"이라 할 때 쓴 단어와 같습니다.
아멘 — 히브리어 '진실로, 확실히'. 바울은 찬송 뒤에 자주 아멘을 붙입니다(9:5, 11:36, 16:27).
함께 읽을 말씀
사 44:20그는 재를 먹고 허탄한 마음에 미혹되어서 그 영혼을 구원하지 못하며 나의 오른손에 있는 것이 거짓 것이 아니냐 하지도 못하느니라
렘 10:14-15그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 그것들은 헛것이요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곧 저희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직역 이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수치스러운 격정들에 넘겨주셨다. 그들의 여자들은 자연스러운 관계를 자연에 거스르는 관계로 바꾸었다.
두 번째 '내어 버려 두심'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버린 결과의 한 예로 동성 간의 성관계를 언급합니다. 이 본문은 오늘날 매우 민감하게 다뤄지는 구절이므로, 바울이 무엇을 말하고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 정확히 읽는 것이 중요합니다.
바울의 논리는 "바꾸었다"는 단어에 있습니다. 23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우상과 '바꾸었고', 25절에서 진리를 거짓과 '바꾸었고', 26절에서 '순리를 역리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바울은 창조주를 피조물과 바꾼 근본적인 뒤바뀜이, 하나님께서 창조 때 정하신 남자와 여자의 관계(창 1:27, 2:24)의 뒤바뀜으로도 나타난다고 봅니다. 여기서 '순리'(본성대로)는 단순히 '익숙한 관습'이 아니라, 창조주가 지으신 질서를 뜻합니다.
동시에 꼭 기억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바울은 이 죄를 특별히 더 큰 죄로 떼어 내서 정죄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29-31절에서 바울은 곧바로 시기, 분쟁, 수군거림, 교만, 자랑, 부모 거역까지 같은 목록에 올립니다. 그리고 2:1에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이라고 말하며, 이 목록을 읽고 고개를 끄덕이던 독자 자신도 같은 죄인이라고 돌려 세웁니다. 1장의 목적은 '저 사람들'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복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순리 / 역리 順理 / 逆理 — '이치를 따름 / 이치를 거스름'. 원문 퓌시케 / 파라 퓌신, '본성(자연)을 따른 / 본성에 거스르는'. 당시 스토아 철학과 유대교 문헌에서도 쓰이던 표현입니다.
쓸 것크레시스 — '사용, 관계'. 고대 문헌에서 성적 관계를 완곡하게 가리키던 말입니다.
부끄러운 욕심 — 원문 "수치의 격정들(파테 아티미아스)". 24절 "몸을 서로 욕되게(아티마조)"와 같은 어근입니다.
여인들 — 신약에서 여성 간의 관계를 직접 언급하는 유일한 구절로 꼽힙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1:27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 2: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레 18:22너는 여자와 교합함같이 남자와 교합하지 말라
고전 6:9-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변화의 소망
27남자들도 — 그리고 스스로 받은 보응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 쓰기를 버리고 서로 향하여 음욕이 불일듯 하매 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여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직역 마찬가지로 남자들도 여자와의 자연스러운 관계를 버리고 서로를 향한 욕망으로 불타서, 남자가 남자와 함께 수치스러운 일을 행했다. 그리고 그들의 미혹에 합당한 대가를 자기 자신 안에 받았다.
26절의 내용을 남자들에게로 이어 갑니다. 바울은 '불일듯', '부끄러운 일' 같은 강한 표현을 씁니다. 하나님을 떠난 욕망은 통제할 수 없는 불길처럼 번진다는 것입니다.
이 절의 마지막 부분이 중요합니다. "저희의 그릇됨에 상당한 보응을 그 자신에 받았느니라." 여기서 '그릇됨'은 우상숭배, 곧 하나님에게서 '길을 잃은 것'을 가리키는 것으로 많이 봅니다. 그리고 '보응'은 바로 앞에 묘사된 상태 자체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길 잃음'의 대가가, 자기 욕망에 사로잡혀 사는 그 삶 자체라는 것입니다. 죄가 곧 죄의 형벌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불일듯 하매엑카이오 — '완전히 불붙다'. 고전 7:9 "정욕이 불 같이 타는 것보다 혼인하는 것이 나으니라"(퓌로오)와는 다른 단어지만 비슷한 그림입니다.
그릇됨플라네 — 행성(planet, '떠돌이 별')의 어원. 바른 궤도를 벗어나 떠도는 것입니다.
그 자신에 — 원문 "자기들 안에(엔 헤아우토이스)". 외부에서 떨어지는 벌이 아니라 자기 안에서 받는 대가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6:7-8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잠 5:22악인은 자기의 악에 걸리며 그 죄의 줄에 매이나니
렘 2:19네 악이 너를 징계하겠고 네 패역이 너를 책망할 것이라
28세 번째 내버려 두심 — 상실한 마음
또한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직역 그리고 그들이 하나님을 지식 안에 두는 것을 가치 있게 여기지 않았으므로, 하나님께서도 그들을 쓸모없는 마음에 넘겨주셔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하게 하셨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내어 버려 두심'입니다. 이번에는 '마음', 곧 생각과 판단력의 문제입니다. 원문에는 날카로운 말놀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 인정하지 않자'(우크 에도키마산), 하나님께서 그들을 '시험에 불합격한'(아도키모스) 마음에 넘겨주셨습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탈락시키자, 하나님도 그들의 마음을 탈락시키셨다."
마음이 '상실'되었다는 것은 도덕적 판단력이 망가졌다는 뜻입니다. 옳고 그름을 분별하는 내면의 나침반이 고장 나서,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면서도 그것이 잘못인 줄 모르게 됩니다. 32절에서 그 절정을 봅니다.
이 '마음'은 12:2에서 회복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여기서 '분별하다'가 바로 28절의 '시험해 보다(도키마조)'와 같은 단어입니다. 1장의 망가진 마음이, 복음으로 새롭게 되어 다시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마음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싫어하매 — 원문 도키마조는 '시험하다, 검증하다, 그래서 인정하다'. 금속을 불에 넣어 진짜인지 시험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을 시험해 보고 가치 없다고 판정했다"는 뜻입니다.
상실한 마음 — 아도키모스 누스, '불합격 판정을 받은 마음'. 고전 9:27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의 '버림'이 같은 단어입니다.
합당치 못한 일 — 스토아 철학에서 쓰던 '의무에 맞지 않는 행동'이라는 말입니다. 바울은 이방 독자도 알아듣는 윤리 용어를 빌려 씁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2:2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딤후 3:8저희는 마음이 부패한 자요 믿음에 관하여는 버리운 자니라
엡 4:23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호 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네가 지식을 버렸으니 나도 너를 버려
29죄의 목록 ① — 가득한 불의
곧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직역 그들은 온갖 불의와 악과 탐욕과 악의로 가득 찼고, 시기와 살인과 분쟁과 속임과 악독으로 가득하며, 수군거리는 자들이다.
29-31절은 하나님을 버린 '상실한 마음'이 만들어 낸 죄의 목록입니다. 무려 21가지입니다. 이런 '악덕 목록'은 당시 철학자와 유대 문헌에서 흔히 쓰던 형식이었고, 바울도 다른 편지에서 여러 번 사용합니다(갈 5:19-21, 고전 6:9-10).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목록 대부분이 관계를 망가뜨리는 죄입니다. 탐욕, 시기, 분쟁, 사기, 수군거림. 하나님과의 관계가 깨지면(경건치 않음) 결국 사람과의 관계가 깨집니다(불의). 그리고 '살인' 같은 큰 죄 바로 옆에 '시기', '수군거림' 같은 일상의 죄가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작은 죄'와 '큰 죄'가 같은 뿌리에서 나옵니다. 예수님도 형제에게 노하는 것이 살인과 연결된다고 하셨습니다(마 5:21-22).
"가득한 자요"라는 표현도 무섭습니다. 이런 죄가 가끔 나오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가득 채운' 상태입니다. 하나님을 비운 자리를 죄가 채웠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시기, 살인 — 헬라어로 프토노스, 포노스, 발음이 거의 같은 말놀이입니다. 가인이 아벨을 시기해서 죽였듯(창 4장), 시기와 살인은 실제로 가깝습니다.
추악 醜惡 — '더럽고 흉악함'. 원문 포네리아는 '악함' 일반을 뜻합니다.
악독 惡毒 — 원문 카코에테이아는 '남의 말과 행동을 늘 나쁜 쪽으로 해석하는 성향'을 가리킨다고 고대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했습니다.
수군수군하는 자 — 원문 프쉬튀리스테스는 발음 자체가 '쉬쉬' 속삭이는 소리를 흉내 낸 말입니다. 30절의 '비방하는 자'(공개적으로 헐뜯음)와 짝을 이룹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5:19-21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마 15:19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적질과 거짓 증거와 훼방이니
창 4:5-8가인이 심히 분하여… 그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 시기와 살인
잠 16:28패려한 자는 다툼을 일으키고 말장이는 친한 벗을 이간하느니라
30죄의 목록 ② — 교만과 반역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직역 헐뜯는 자,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 오만한 자, 교만한 자, 허풍쟁이, 악한 일을 고안해 내는 자, 부모에게 불순종하는 자.
목록이 이어집니다. 이 절에는 특히 교만과 관련된 죄가 몰려 있습니다. '능욕하는 자', '교만한 자', '자랑하는 자'.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하지 않은 사람은(21절), 결국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자리를 비우면 내가 그 자리에 앉습니다.
"악을 도모하는 자"는 원문으로 '악을 발명하는 자'입니다. 죄는 늘 새로운 방법을 찾아냅니다. 인류 역사에서 기술과 문명이 발전할수록 죄의 방법도 더 교묘해졌습니다.
"부모를 거역하는 자"가 이 무서운 목록에 들어 있다는 것이 놀랍습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부모 공경은 하나님을 공경하는 것과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십계명에서 다섯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계명과 이웃에 대한 계명 사이에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는 마음은 가장 가까운 권위인 부모에게서 먼저 드러납니다. 바울은 디모데후서 3:2에서 말세의 모습으로 같은 죄를 나열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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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테오스튀게스 — 문법적으로 '하나님께 미움받는 자'(수동)로도,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능동)로도 읽힙니다. 목록 전체가 사람의 행동을 나열하므로 '하나님을 미워하는 자'로 읽는 경우가 많습니다.
능욕하는 자휘브리스테스 — 헬라 비극의 '휘브리스(오만)'와 같은 어근. 신들에게 도전하고 남을 짓밟는 교만입니다. 바울은 회심 전 자신을 이 단어로 불렀습니다(딤전 1:13 "폭행자").
교만한 자휘페레파노스 — '위로(휘페르) 드러나 보이다'. 약 4:6 "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에 쓰인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딤후 3:2-4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긍하며 교만하며 훼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치 아니하며
출 20: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약 4:6하나님이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
잠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31죄의 목록 ③ — 마음이 사라진 사람들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직역 깨닫지 못하는 자, 약속을 지키지 않는 자, 정이 없는 자, 긍휼이 없는 자들이다.
목록의 마지막 네 단어는 원문에서 모두 '아'(없음)로 시작합니다. 아쉬네토스, 아쉰테토스, 아스토르고스, 아넬레에몬. 리듬을 맞춘 말놀이입니다. 우리말로 옮기면 '깨달음 없는 자, 신의 없는 자, 정 없는 자, 자비 없는 자'입니다.
하나님을 버린 사람의 마지막 모습은 "없음"입니다. 깨달음도, 신의도, 정도, 자비도 사라졌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긍휼이 풍성하신 분입니다(엡 2:4). 그 하나님을 떠나면 사람에게서도 사랑과 긍휼이 말라 버립니다.
특히 "무정한 자"(아스토르고스)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자연스러운 정(스토르게)조차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버려지는 아이들과 홀로 죽어 가는 노인들이 늘어 가는 오늘 우리 사회의 모습과도 겹쳐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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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약하는 자 背約 — '약속을 등지는 자'. 계약과 맹세를 쉽게 깨는 사람입니다.
무정한 자 — 아스토르고스는 딤후 3:3 "무정하며"에도 나옵니다. 가족 간의 사랑을 뜻하는 '스토르게'가 없는 상태입니다.
무자비한 자 — 일부 사본에는 이 앞에 "화목할 줄 모르는 자(아스폰도스)"가 더 있습니다(킹제임스 성경 등).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없어 최근 번역들은 빼고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2:4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딤후 3:3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참소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마 24:12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미 6:8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 반대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32알면서도 행하고, 행하는 자를 옳다 한다
저희가 이같은 일을 행하는 자는 사형에 해당하다고 하나님의 정하심을 알고도 자기들만 행할 뿐 아니라 또한 그 일을 행하는 자를 옳다 하느니라
직역 그들은 이런 일을 행하는 자들이 죽음에 합당하다는 하나님의 의로운 판결을 알면서도, 그것들을 스스로 행할 뿐 아니라 그런 일을 행하는 자들에게 맞장구를 친다.
1장의 마지막 절은 인간 타락의 밑바닥을 보여 줍니다. 세 단계가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이런 일이 하나님 앞에서 죽음에 해당한다는 것을 압니다. 양심이 그것을 압니다(2:15). 둘째, 그런데도 스스로 행합니다. 셋째, 더 나아가 그런 일을 행하는 다른 사람을 옳다고 박수 쳐 줍니다.
왜 세 번째가 더 나쁠까요? 연약해서 죄를 짓는 것과, 죄를 좋은 것이라고 부추기고 문화로 만드는 것은 다릅니다. 자기가 죄를 지으면서 괴로워하는 사람에게는 아직 양심이 살아 있습니다(7장의 '곤고한 사람'처럼). 그러나 죄를 함께 축하하는 사회는 양심 자체가 마비되었습니다. 이사야 5:20은 이렇게 경고합니다. "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바울은 방향을 홱 돌립니다. 2:1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1장을 읽으며 '저 이방인들은 참 타락했다'고 고개를 끄덕이던 독자에게, 바울은 "당신도 같은 일을 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1장은 남을 판단하라고 쓴 장이 아니라, 우리 모두를 하나님 앞에 세우기 위해 쓴 장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정하심디카이오마 — '의로운 법령, 판결'. 2:26, 8:4 "율법의 요구"와 같은 단어입니다. 율법을 따로 받지 않은 이방인도 하나님의 기본적인 의의 요구를 양심으로 알고 있다는 뜻입니다.
옳다 하느니라쉰유도케오 — '함께(쉰) 기뻐하며 찬성하다'. 행 8:1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스데반 순교)에 쓰인 단어입니다. 바울은 이 단어를 쓰며 자기 과거를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20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하는 그들은 화 있을진저
롬 2:1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롬 6:23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행 8:1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시 50:18도적을 본즉 그와 연합하고 간음하는 자와 동류가 되며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께서 손을 놓으시기 전에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은 벼락이 아니라 '내어 버려 두심'입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도록 놓아 두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양심이 찔리고 마음이 불편한 것은 하나님이 아직 나를 놓지 않으셨다는 은혜의 표시입니다.
그리고 이 장을 읽고 '세상이 참 타락했다'로 끝나면 바울의 의도를 놓친 것입니다. 이 목록 속에 내 이름이 들어 있는 줄을 볼 때(수군거림, 시기, 교만, 감사 없음), 비로소 3장의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가 기쁜 소식으로 들립니다.
Big Picture · 큰 그림
1장은 어디로 가는가
1:18에서 시작한 고발은 3:20까지 이어지고, 3:21에서 복음으로 뒤집힙니다
단락
누구를 향한 말인가
핵심
1:18–32
하나님을 버린 이방 세계
창조로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지 않음 → 우상 → 내버려 두심
2:1–3:8
남을 판단하는 사람, 율법을 가진 유대인
율법을 '가진 것'으로는 의롭게 되지 못함
3:9–20
온 인류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 모두 죄 아래
3:21–26
모든 믿는 자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1장 후반부만 따로 떼어 읽으면 '정죄의 장'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의 큰 그림 안에서 보면, 1장은 3:21의 "이제는"을 향해 달려가는 이야기의 첫걸음입니다. 어둠이 깊을수록 빛이 밝게 보입니다. 1:18의 "하나님의 진노가 나타나나니"는 1:17의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를 위해 존재합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1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택정함擇定 · 1절
골라서 정해 둠. 원문은 '따로 구별함'.
복음福音 · εὐαγγέλιον
기쁜 소식. 로마 세계에서는 황제의 승전 소식에도 쓰던 말.
성결의 영4절
거룩함의 영, 곧 성령으로 이해하는 것이 일반적.
은혜와 평강7절
헬라식 인사(은혜)와 히브리식 인사(샬롬)를 합친 복음의 인사.
안위함安慰 · 12절
편안하게 위로함. 서로 격려함.
야만野蠻 · 14절
헬라 말을 못하는 외국인. '잔인한 사람'이라는 뜻이 아님.
하나님의 의17절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믿는 자에게 선물로 주시는 의. 로마서의 핵심어.
진노震怒 · 18절
악에 대한 거룩하신 하나님의 반대. 감정적 분풀이가 아님.
경건치 않음18절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하지 않는 죄. '불의'는 사람에 대한 죄.
우준하다愚蠢 · 22절
어리석고 미련하다.
금수와 버러지禽獸 · 23절
새와 짐승과 기어 다니는 것.
조물주造物主 · 25절
만물을 지으신 분, 창조주.
순리 / 역리順理 / 逆理 · 26절
창조 질서를 따름 / 거스름.
상실한 마음28절
시험에 불합격해 쓸모없게 된 마음. 도덕적 분별력을 잃은 상태.
배약背約 · 31절
약속을 저버림.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바울은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먼저 소개했습니다. 나를 소개하는 첫 문장은 무엇입니까? (1절)
바울은 모든 사람에게 "빚진 자"라고 했습니다. 내가 복음의 빚을 지고 있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14절)
나는 어떤 자리에서 복음(신앙)을 드러내는 것이 부끄럽게 느껴집니까?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16절)
"하나님을 알되 영화롭게도, 감사치도 아니하고"(21절). 요즘 나의 감사는 어떤 상태입니까?
하나님의 영광을 다른 것과 '바꾸고' 있는 영역이 내 삶에 있다면 무엇입니까? (23, 25절)
29-31절의 목록 중 내 마음을 찌르는 단어는 무엇입니까? 그 단어 앞에서 2:1의 말씀은 나에게 무엇을 말합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