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세부 강해 · Romans
12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1절부터 21절까지 — 자비하심에 대한 응답, 한 몸의 많은 지체, 거짓 없는 사랑, 그리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삶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ROMANS 12:2
Introduction · 들어가며

12장 들어가며

1–11장이 ‘하나님이 하신 일’이라면, 12–16장은 ‘그래서 우리가 사는 삶’입니다

로마서는 12장에서 큰 전환을 맞습니다. 1–11장이 복음의 교리 — 죄, 칭의, 성화, 이스라엘의 미래 — 를 설명했다면, 12–16장은 그 복음을 받은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말합니다. 그 전환점에 놓인 말이 "그러므로"(12:1)입니다.

바울의 순서가 중요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말하고, 그 다음에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합니다. 은혜가 먼저, 순종은 그 다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구원을 얻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이미 받은 구원에 대한 감사의 응답입니다. 12:1의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가 바로 1–11장 전체를 가리킵니다.

12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① 삶 전체를 산 제사로 드리라(1–2절). ② 교회는 한 몸이며 각자 받은 은사로 섬기라(3–8절). ③ 거짓 없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라(9–16절). ④ 원수까지도 선으로 이기라(17–21절). 하나님 앞에서, 교회 안에서, 세상 속에서 — 관계의 원이 점점 넓어집니다.

전환점

12:1 "그러므로"

1–11장의 은혜가 12–16장의 삶으로 넘어가는 다리.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순종의 동기입니다.

핵심 그림

산 제사, 한 몸

죽은 짐승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내 몸 전체를 드리는 예배. 그리고 서로 지체가 된 공동체.

예수님의 메아리

14–21절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는 산상수훈(마 5:44)을 그대로 울립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영적 예배"원문 로기케 라트레이아 — ‘합당한, 이치에 맞는 예배’로도 번역 가능. 노트 참고.
2절 "본받지 말고"원문 쉬스케마티조 — 틀에 맞추다. ‘세상의 틀에 끼워 맞춰지지 말라’.
2절 "변화를 받아"원문 메타모르포오 — 변형되다.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에 쓰인 단어.
3절 "믿음의 분량"分量,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몫.
8절 "권위하는"勸慰, 권면하고 위로함. 오늘날의 ‘권위(權威)’가 아님.
13절 "손 대접"나그네를 대접함. 원문 필로크세니아, ‘낯선 이를 사랑함’.
20절 "숯불을 그 머리에"잠 25:21-22 인용. 부끄러움으로 뉘우치게 함. 노트 참고.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12:1–2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 몸을 드리고 마음을 새롭게

로마서 12–16장 전체의 주제문입니다. 1절은 무엇을 드릴지(몸 전체), 2절은 어떻게 살지(세상의 틀이 아니라 새로워진 마음으로)를 말합니다. 이 두 절은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를 요약합니다.

1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권한다 — 너희 몸을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직역 그러므로 형제들이여, 내가 하나님의 자비하심을 힘입어 여러분에게 간곡히 권합니다. 여러분의 몸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여러분이 드릴 합당한 예배입니다.

"그러므로." 로마서에서 가장 무게가 실린 접속사입니다. 이 ‘그러므로’는 바로 앞 11:36의 송영만이 아니라 1–11장 전체를 받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의롭다 하시고, 성령을 주시고, 아무것도 끊을 수 없는 사랑으로 붙드시고, 이방인과 유대인 모두에게 긍휼을 베푸셨으니 — 그러므로.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바울은 명령하지 않고 ‘권합니다’(파라칼로). 이 단어는 ‘곁으로 부르다’, 옆에 다가와 간곡히 청하는 말입니다. 그리고 그 권면의 근거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입니다. 두려움이나 의무가 아니라, 받은 자비가 순종의 동기입니다. 11:30-32에서 네 번이나 반복된 ‘긍휼’이 여기서 ‘자비하심’으로 이어집니다.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 구약의 제사에서는 짐승을 잡아 죽여서 제단 위에 드렸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살아 있는 제물’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단번에 자신을 드리셨으므로(히 10:10), 이제 더 이상 죽은 제물이 필요 없습니다. 대신 우리는 살아 있는 채로, 매일매일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드립니다.

왜 ‘몸’일까요? 바울에게 몸은 단지 육체가 아니라, 우리가 세상과 만나고 행동하는 삶 전체입니다. 6:13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의 연장입니다. 예배는 주일 한 시간에 마음으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월요일 아침 직장에서 내 손과 발과 입과 눈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자비하심 오이크티르모스 — ‘불쌍히 여기는 마음’. 고후 1:3 "자비의 아버지", 빌 2:1 "긍휼이나 자비". 복수형으로 쓰여 하나님의 자비가 여러 모양으로 넘쳐 났음을 나타냅니다.
  • 드리라 파리스테미 — ‘곁에 세우다, 바치다’. 6:13, 16, 19에서 ‘드리다’로 다섯 번 쓰인 단어. 성전에서 제물을 바칠 때 쓰는 말이기도 합니다.
  • 거룩한, 기뻐하시는 — 구약 제물의 조건은 ‘흠 없는 것’(레 1:3)이었습니다. 이제 거룩함과 하나님의 기뻐하심이 우리 삶의 조건이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6:13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산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병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 고전 6:19-20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 히 13:15-16이러므로 우리가 예수로 말미암아 항상 찬미의 제사를 하나님께 드리자… 선을 행함과 서로 나눠 주기를 잊지 말라 이같은 제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느니라
  • 벧전 2:5너희도 산 돌같이 신령한 집으로 세워지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를 드릴 거룩한 제사장이 될지니라
  • 시 51:16-17주는 제사를 즐겨 아니하시나니…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2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하여 변화를 받으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직역 이 시대의 틀에 여러분 자신을 맞추지 말고,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곧 무엇이 선하고 기뻐하실 만하고 온전한 것인지 분별하십시오.

1절이 ‘드림’이라면, 2절은 ‘변화’입니다. 두 개의 명령이 대조됩니다.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본받다’(쉬스케마티조)는 ‘틀(스케마)에 맞추다’입니다. 붕어빵 틀에 반죽을 부으면 붕어빵 모양이 나오듯,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자기 틀에 맞추려 합니다. 성공의 기준, 행복의 정의, 옳고 그름의 감각까지. 필립스 성경은 이 구절을 이렇게 옮겼습니다. "세상이 너를 자기 틀 속에 짜 맞추지 못하게 하라." 이 동사는 현재형이어서 ‘계속해서 맞춰지지 말라’는 뜻입니다. 세상의 압력은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옵니다.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변화를 받다’(메타모르포오)는 영어 metamorphosis(변태, 탈바꿈)의 어원입니다.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겉모양만이 아니라 본질이 바뀌는 것입니다. 이 단어는 예수님의 변화산 사건(마 17:2 "저희 앞에서 변형되사")과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에 쓰였습니다. 그리고 이 변화도 수동태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십니다.

그 변화는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일어납니다. 여기서 ‘마음’(누스)은 감정보다 ‘생각, 사고방식’에 가깝습니다. 1:28에서 하나님을 버린 사람들은 ‘상실한 마음(누스)’에 내버려졌습니다. 이제 그 망가진 생각이 새로워집니다. 무엇을 보고 듣고 읽고 묵상하느냐가 우리를 빚습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입니다. ‘분별하다’(도키마조)는 금속을 불에 시험하여 진짜를 가려내는 말입니다. 새로워진 마음은 매 순간의 선택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아보는 눈을 갖게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이 세대 아이온 — ‘시대’. 성경은 ‘이 세대’와 ‘오는 세대’를 대조합니다(마 12:32, 갈 1:4 "이 악한 세대에서 우리를 건지시려고"). 그리스도인은 오는 세대를 이미 맛보며 이 세대를 사는 사람입니다.
  • 새롭게 함 아나카이노시스 — 딛 3:5 "성령의 새롭게 하심". 고후 4:16 "우리의 속사람은 날로 새롭도다".
  • 분별하도록 도키마조 — 2:18 "지극히 선한 것을 분간하며"(유대인의 자랑), 빌 1:10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3:18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 엡 4:22-24오직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 요일 2:15-17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이는 영원히 거하느니라
  • 빌 1:9-10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 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 롬 1:28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예배는 월요일에도 계속됩니다

하나님은 내 마음만이 아니라 내 몸을 원하십니다. 내 손이 하는 일, 내 발이 가는 곳, 내 입이 하는 말, 내 눈이 보는 것 — 그 모든 것이 산 제사입니다. 주일 예배가 끝나고 나서도 예배는 계속됩니다.

세상은 오늘도 나를 자기 틀에 맞추려 합니다. 그 틀에 저항하는 힘은 나의 의지가 아니라 새로워진 마음에서 옵니다. 이번 주, 무엇이 내 생각을 빚고 있는지 돌아보십시오. 그리고 말씀 앞에 머무는 시간을 더하십시오.

12:3–8한 몸에 많은 지체 — 받은 은사대로 섬기라

몸을 하나님께 드린 사람은 혼자 서지 않습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몸, 곧 교회의 한 지체가 됩니다. 바울은 먼저 자기를 바르게 보라고 말하고(3절), 교회가 한 몸이라는 그림을 그리고(4–5절), 각자 받은 은사로 섬기라고 권합니다(6–8절).

변화된 마음이 처음 드러나는 곳은 자기를 보는 눈입니다. 세상은 ‘너 자신을 높이라’고 말하지만, 새로워진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만큼 지혜롭게 생각하라’고 말합니다.

3마땅히 생각할 이상으로 생각하지 말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너희 중 각 사람에게 말하노니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직역 나는 내게 주신 은혜로 여러분 각 사람에게 말합니다. 마땅히 생각해야 할 것 이상으로 자기를 높이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분량에 따라 건전하게 생각하십시오.

원문에는 ‘생각하다’(프로네오)라는 말이 네 번이나 들어 있는 언어유희가 있습니다. "생각할 것 이상으로 지나치게 생각하지(휘페르프로네인) 말고, 생각할 것을(프로네인) 생각하되(프로네인), 건전하게 생각하라(소프로네인)." 새로워진 마음(2절)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나 자신을 바르게 생각하는 것입니다.

"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교만은 자기를 실제보다 크게 보는 것입니다. 11:20, 25에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높은 마음을 품지 말라", "스스로 지혜 있다 하지 말라"고 했던 경고가 이제 교회 안의 모든 관계로 확장됩니다.

그렇다고 자기를 비하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지혜롭게 생각하라"(소프로네오)는 ‘건전한 정신으로, 균형 있게’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지나친 교만도, 지나친 자기 비하도 아닌, 하나님이 보시는 대로 나를 보는 것입니다.

그 기준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입니다. 내가 가진 모든 것 — 믿음, 은사, 능력 — 은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입니다. 받은 것이니 자랑할 수 없고(고전 4:7),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 업신여길 수도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믿음의 분량 메트론 피스테오스 — 해석이 나뉩니다. ① 각자에게 다르게 주신 믿음의 정도. ② 모든 성도에게 주신 같은 믿음(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척도’로 자기를 재라는 뜻. 어느 쪽이든 핵심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 지혜롭게 생각하라 소프로네오 — 막 5:15 "정신이 온전하여(귀신 들렸던 자가)", 딛 2:6 "근신하도록". ‘제정신’, ‘건전한 정신’.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4:7누가 너를 구별하였느뇨 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 빌 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엡 4: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 잠 16:18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4한 몸에 많은 지체가 있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일을 하지 않는다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직역 우리가 한 몸 안에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지만, 모든 지체가 같은 기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교회를 설명하기 위해 우리 몸을 예로 듭니다. 이 그림은 고린도전서 12장에서 더 길게 나옵니다. 몸은 하나입니다. 그러나 그 안에 많은 지체가 있습니다. 그리고 각 지체는 다른 일을 합니다.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손은 잡고, 발은 걷습니다. 눈이 귀에게 ‘너는 왜 보지 못하느냐’고 할 수 없고, 발이 손에게 ‘나도 잡고 싶다’고 시기할 필요도 없습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다름이 몸을 살립니다. 모든 지체가 눈이라면 몸은 걸을 수도, 들을 수도 없습니다(고전 12:17).

‘직분’으로 번역된 프락시스는 ‘직책, 지위’보다 ‘기능, 하는 일’에 가깝습니다. 교회의 다양성은 계급의 차이가 아니라 역할의 차이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몸 비유 — 고대 로마에도 사회를 몸에 비유하는 유명한 이야기(메네니우스 아그리파의 우화)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비유는 하층민이 상층민을 섬겨야 한다는 계급 질서를 정당화하는 데 쓰였습니다. 바울은 같은 그림을 써서 오히려 모든 지체의 동등한 가치를 말합니다(고전 12:22-25).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2:12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 고전 12:17-18만일 온 몸이 눈이면 듣는 곳은 어디며… 그러나 이제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으니
  • 엡 4: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5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직역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요, 각 사람은 서로의 지체입니다.

4절의 그림을 교회에 적용합니다. 두 가지가 강조됩니다.

첫째,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 교회의 하나 됨은 우리가 비슷해서가 아니라 모두 그리스도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 강한 자와 약한 자(14장), 부자와 가난한 자가 한 몸이 된 이유는 오직 그리스도입니다. 6장에서 본 ‘그리스도와 연합’이 이제 ‘서로와의 연합’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께 붙은 사람은 자동으로 그리스도께 붙은 다른 모든 사람과 연결됩니다.

둘째,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놀라운 표현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일 뿐 아니라 ‘서로의’ 지체입니다. 나는 너에게 속해 있고, 너는 나에게 속해 있습니다. 내 손이 다치면 온몸이 아프듯, 한 성도의 고통은 모두의 고통입니다(15절, 고전 12:26). 그리스도인에게 ‘나 혼자의 신앙’이란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서로 알렐론 — 12장부터 15장까지 ‘서로’가 반복됩니다. 10절 "서로 우애하고… 서로 먼저 하며", 16절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13:8 "서로 사랑의 빚", 14:13, 19, 15:5, 7, 14. 교회는 ‘서로’의 공동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2:26-27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 엡 4:25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 갈 3:28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고전 10:17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한 몸이니 이는 우리가 다 한 떡에 참예함이라
6받은 은혜대로 은사가 각각 다르니 —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혹 예언이면 믿음의 분수대로,

직역 우리는 받은 은혜에 따라 서로 다른 은사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언이면 믿음의 분량에 맞게 예언하고,

"은혜대로 받은 은사." 헬라어로 은혜는 카리스, 은사는 카리스마입니다. 은사는 ‘은혜가 구체적인 모양을 띤 것’입니다. 그러니 은사는 나의 능력이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3절의 ‘나눠 주신’과 같은 맥락입니다.

이제 바울은 일곱 가지 은사를 예로 듭니다(6–8절). 이것은 모든 은사의 완전한 목록이 아닙니다. 고린도전서 12장, 에베소서 4장, 베드로전서 4장에 다른 목록들이 있습니다. 바울은 대표적인 예를 들며, 각자 받은 것을 성실히 사용하라고 말합니다.

첫째, 예언입니다. 신약의 예언은 미래를 점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공동체에 전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고전 14:3)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믿음의 분수대로" 해야 합니다. 받은 믿음의 분량을 넘어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말하지 말라는 경계이며, 또한 ‘믿음(복음의 진리)과 일치하도록’ 하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믿음의 분수 아날로기아 테스 피스테오스 — ‘믿음의 비율·유비’. 종교개혁자들은 이 표현에서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 곧 성경을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맞게 해석해야 한다는 원리를 끌어내기도 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2:4-7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 고전 14:3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며 권면하며 안위하는 것이요
  • 벧전 4: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 살전 5:20-21예언을 멸시치 말고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7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혹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혹 가르치는 자면 가르치는 일로,

직역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에, 가르치는 사람이면 가르치는 일에 힘쓰고,

둘째, 섬기는 일(디아코니아). 식탁 시중드는 일에서 온 말로, 교회 안의 실제적인 필요를 채우는 모든 봉사를 가리킵니다. 사도행전 6장에서 일곱 집사가 과부들의 구제를 맡은 것이 대표적입니다. 눈에 잘 띄지 않지만 몸을 살리는 은사입니다.

셋째, 가르치는 일. 예언이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전하는 것이라면, 가르침은 이미 주어진 말씀(성경과 사도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풀어 설명하는 것입니다.

바울의 권면은 단순합니다. "섬기는 일이면 섬기는 일로." 즉, 받은 은사에 집중하라는 것입니다. 섬기는 은사를 받은 사람이 가르치는 자리를 부러워할 필요도 없고, 가르치는 사람이 섬김을 업신여겨서도 안 됩니다. 각자 자기 자리에서 충성하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섬기는 일 디아코니아 — 행 6:1 "매일 구제(디아코니아)", 고전 16:15 "성도 섬기기로 작정한", 15:25 "성도를 섬기는 일로 예루살렘에 가노니"(구제 헌금).
함께 읽을 말씀
  • 행 6:1-4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접대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우리는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전무하리라
  • 막 10: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 딤후 2:2또 네가 많은 증인 앞에서 내게 들은 바를 충성된 사람들에게 부탁하라 저희가 또 다른 사람들을 가르칠 수 있으리라
8권위하는 자, 구제하는 자, 다스리는 자, 긍휼을 베푸는 자 — 각각의 태도로

혹 권위하는 자면 권위하는 일로,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할 것이니라

직역 권면하는 사람이면 권면하는 일에, 나누어 주는 사람은 순전한 마음으로, 이끄는 사람은 부지런함으로, 긍휼을 베푸는 사람은 기쁨으로 하십시오.

나머지 네 가지 은사입니다. 여기서는 은사뿐 아니라 그 은사를 사용하는 태도가 함께 나옵니다.

넷째, 권위하는 자. 개역한글의 ‘권위’는 오늘날의 ‘권위(權威, authority)’가 아니라 ‘권위(勸慰)’, 곧 권면하고 위로한다는 뜻입니다. 1절의 ‘권하노니’와 같은 단어(파라칼레오)입니다. 낙심한 사람 곁에 다가가 일으켜 세우는 은사입니다. 바나바의 이름 뜻이 ‘권위자(위로의 아들)’였습니다(행 4:36).

다섯째,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성실함’(하플로테스)은 ‘단순함, 섞이지 않음’입니다. 숨은 동기 없이, 생색내지 않고, 대가를 바라지 않고 순수하게 나누라는 것입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처럼 칭찬을 바라는 섞인 동기(행 5장)와 반대입니다. 이 단어는 ‘너그러움’이라는 뜻도 있습니다(고후 8:2, 9:11).

여섯째, 다스리는 자는 부지런함으로. ‘다스리다’(프로이스테미)는 ‘앞에 서다’, 곧 공동체를 이끌고 돌보는 것입니다. 리더십은 특권이 아니라 더 부지런히 섬기는 책임입니다.

일곱째, 긍휼을 베푸는 자는 즐거움으로. 아픈 사람, 가난한 사람, 슬픈 사람을 돌보는 일은 지치기 쉽습니다. 그래서 억지로, 한숨 쉬며 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즐거움으로’(힐라로테스). 영어 hilarious(유쾌한)의 어원입니다. 고린도후서 9:7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힐라론)를 사랑하시느니라." 긍휼을 받는 사람이 ‘짐’처럼 느끼지 않도록, 기쁘게 섬기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권위 — 개역한글의 ‘권위(勸慰)’는 개역개정에서 ‘위로하는 자면 위로하는 일로’로 바뀌었습니다. 한자를 모르면 오해하기 쉬운 대표적인 단어입니다.
  • 다스리는 프로이스테미 — 살전 5:12 "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 딤전 3:4-5, 5:17 "잘 다스리는 장로들".
함께 읽을 말씀
  • 행 4:36구브로에서 난 레위족인이 있으니 이름은 요셉이라 사도들이 일컬어 바나바(번역하면 권위자)라 하니
  • 고후 9:7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 마 6:3-4너는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 살전 5:12-13너희 가운데서 수고하고 주 안에서 너희를 다스리며 권하는 자들을 너희가 알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몸의 어디입니까

하나님은 나에게도 은사를 주셨습니다. 그것은 무대 위의 은사일 수도 있고, 아무도 보지 않는 부엌의 은사일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몸에 꼭 필요한 지체입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지 말고, 내 은사를 묻어 두지도 마십시오.

그리고 은사보다 중요한 것은 태도입니다. 나누되 순수하게, 이끌되 부지런하게, 돌보되 기쁘게. 오늘 내가 맡은 작은 섬김을 ‘즐거움으로’ 해 보십시오.

12:9–16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 공동체 안에서의 사랑

은사 목록 뒤에 바울은 사랑을 말합니다. 고린도전서 12장(은사) 뒤에 13장(사랑)이 오는 것과 같은 순서입니다. 은사는 사랑으로 사용될 때만 의미가 있습니다.

9–16절은 짧은 명령들이 빠르게 이어지는 형식입니다. 원문에서는 대부분 분사와 형용사로 되어 있어서, 마치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스케치하듯 한 줄 한 줄 그려 나갑니다. 9절 ‘거짓 없는 사랑’이 머리말이고, 나머지는 그 사랑이 실제로 어떤 모양인지 보여 주는 그림들입니다.

9사랑엔 거짓이 없다 — 악을 미워하고 선에 붙어 있으라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직역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악을 몸서리치게 미워하고, 선에 꼭 붙어 있으십시오.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 ‘거짓이 없다’(아뉘포크리토스)는 ‘위선이 없다’는 뜻입니다. 위선자(휘포크리테스)는 원래 헬라 연극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하는 배우를 가리켰습니다. 거짓 없는 사랑은 가면을 쓰지 않은 사랑, 연기가 아닌 사랑입니다. 겉으로는 웃지만 속으로는 미워하는 사랑, 사람들 앞에서만 친절한 사랑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바로 이어서 놀랍게도 ‘미움’이 나옵니다. "악을 미워하고." 참된 사랑은 모든 것을 좋다고 하는 감상적인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해치는 악은 미워합니다. ‘미워하다’(아포스튀게오)는 매우 강한 말로, ‘몸서리치며 싫어하다’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사랑하기에 자녀를 망치는 것을 미워하는 것과 같습니다.

"선에 속하라." ‘속하다’(콜라오)는 ‘풀로 붙이다, 꼭 달라붙다’입니다. 창세기 2:24 "남자가… 그 아내와 연합하여(붙어)"의 70인역에 쓰인 단어와 같은 계열입니다. 선을 가끔 행하는 것이 아니라, 선에 딱 붙어서 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거짓이 없나니 아뉘포크리토스 — 고후 6:6 "거짓이 없는 사랑", 벧전 1:22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딤전 1:5 "거짓이 없는 믿음".
  • 문장 형식 — 원문 9절에는 동사가 없습니다. "사랑 — 위선 없는." 마치 표제어처럼 쓰여 9–16절 전체의 제목 역할을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3:4-7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 벧전 1:22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피차 사랑하라
  • 암 5:15너희는 악을 미워하고 선을 사랑하며
  • 시 97:10여호와를 사랑하는 너희여 악을 미워하라
  • 요일 3:18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라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직역 형제의 사랑으로 서로 정답게 아끼고, 서로 존중하는 일에 먼저 앞장서십시오.

여기서 바울은 가족의 언어를 씁니다. "형제를 사랑하여"(필라델피아)와 "우애하고"(필로스토르고이)는 둘 다 가족 간의 자연스러운 정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특히 스토르게는 부모와 자식 사이의 본능적인 애정을 뜻합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니라 가족입니다. 피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맺어진 가족입니다.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이것은 경쟁입니다. 그런데 이상한 경쟁입니다. 누가 더 존경받느냐가 아니라 누가 먼저 존경하느냐의 경쟁입니다. 세상은 ‘먼저 인정받으려’ 다투지만, 교회는 ‘먼저 인정해 주려’ 다툽니다. 빌립보서 2:3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상대가 먼저 인사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상대가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내가 먼저.

원어 · 번역 노트
  • 우애하고 필로스토르고스 — 신약에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1:31에서 죄인들의 목록에 ‘무정한 자(아스토르고스)’가 있었는데, 그 반대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잃어버린 정을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빌 2:3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 살전 4:9형제 사랑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너희가 친히 하나님의 가르치심을 받아 서로 사랑함이라
  • 요 13:34-35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 벧전 2:17뭇사람을 공경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영에 불타서 주를 섬기라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직역 열심을 내는 일에 게으르지 말고, 성령으로 뜨거워져서 주님을 섬기십시오.

사랑은 게으를 수 없습니다.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일은 미루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한 달란트 받은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아"(마 25:26)라고 부르셨습니다. 같은 단어(오크네로스)입니다.

"열심을 품고." 원문은 토 프뉴마티 제온테스, 직역하면 ‘영으로 끓어오르며’입니다. 물이 끓듯 뜨거운 상태입니다. 여기서 ‘영’은 사람의 영(심령)일 수도, 성령일 수도 있는데, 많은 해석자들은 둘 다를 포함한다고 봅니다. 곧 ‘성령으로 내 심령이 뜨거워져서’. 사도행전 18:25에서 아볼로를 묘사할 때 같은 표현이 쓰였습니다. "열심으로(영으로 끓어올라)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그 뜨거움은 어디로 향합니까? "주를 섬기라." 열정이 나의 성취나 인정이 아니라 주님을 향할 때, 그 열정은 지치지 않습니다. 10:2에서 이스라엘의 ‘지식 없는 열심’을 보았습니다. 여기서는 ‘주를 섬기는 열심’입니다. 방향이 바른 열심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사본 — 일부 사본은 ‘주(퀴리오)를 섬기라’ 대신 ‘때(카이로)를 섬기라’, 곧 ‘기회를 잘 활용하라’로 되어 있습니다. 철자가 비슷해서 생긴 차이로, 대부분의 번역은 ‘주’를 따릅니다.
  • 열심을 품고 — 계 3:15-16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덥지도 아니하도다"와 대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행 18:25열심으로 예수에 관한 것을 자세히 말하며 가르치나
  • 계 3:15-16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 골 3:23-24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 살전 5:19성령을 소멸치 말며
12소망 중에 즐거워하고, 환난 중에 참고, 기도에 항상 힘쓰라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환난 중에 참으며 기도에 항상 힘쓰며

직역 소망 안에서 기뻐하고, 환난 가운데서 견디며, 기도를 꾸준히 계속하십시오.

세 개의 짧은 명령이 한 세트를 이룹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의 세 가지 리듬입니다.

"소망 중에 즐거워하며." 그리스도인의 기쁨은 지금 상황이 좋아서가 아니라 미래가 확실해서 오는 기쁨입니다. 5:2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8:18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결말을 아는 사람은 중간의 어려움 속에서도 웃을 수 있습니다.

"환난 중에 참으며." 소망이 있다고 환난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참다’(휘포메노)는 ‘아래에 머물다’입니다. 무거운 짐 아래에서 도망가지 않고 버티는 것입니다. 5:3-4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 소망이 인내를 가능하게 하고, 인내가 다시 소망을 단단하게 합니다.

"기도에 항상 힘쓰며." 그렇다면 무엇으로 버팁니까? 기도입니다. ‘항상 힘쓰다’(프로스카르테레오)는 ‘끈질기게 붙들다’입니다. 초대교회가 오순절을 기다리며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행 1:14)에 쓰인 단어입니다. 소망은 기도로 유지되고, 인내는 기도로 공급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순서 — 소망(미래) → 환난(현재) → 기도(현재의 수단). 5:2-5, 8:18-27의 흐름을 한 절로 압축한 것과 같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5:2-4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 행 1:14여자들과 예수의 모친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로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전혀 기도에 힘쓰더라
  • 살전 5:16-18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 약 1:2-4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골 4: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13성도들의 필요를 채우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쓰라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직역 성도들의 필요를 함께 나누고, 나그네 대접하기를 힘써 추구하십시오.

사랑은 구체적입니다. 마음뿐 아니라 지갑과 식탁으로 표현됩니다.

"성도들의 쓸 것을 공급하며." ‘공급하다’(코이노네오)는 ‘코이노니아(교제)’의 동사형입니다. 성경에서 교제는 함께 차 마시는 것 이상입니다. 가진 것을 함께 나누는 것입니다. 초대교회는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행 2:44) 가난한 성도를 도왔습니다. 바울도 지금 이방 교회들에서 모은 헌금을 예루살렘의 가난한 성도들에게 전하러 가는 길입니다(15:25-26).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 ‘손 대접’(필로크세니아)은 ‘낯선 사람(크세노스)을 사랑함’입니다. 1세기에는 여관이 비싸고 위험했기 때문에, 여행하는 그리스도인들, 특히 복음 전도자들에게 집을 열어 주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힘쓰라’(디오코, 뒤쫓다)고 말합니다. 손님이 올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대접할 사람을 찾아 나서라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3:2 "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아브라함이 그랬습니다(창 18장).

원어 · 번역 노트
  • 손 대접 필로크세니아 — 딤전 3:2, 딛 1:8에서 감독(장로)의 자격 중 하나가 ‘나그네를 대접하는 자’입니다. 벧전 4:9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함께 읽을 말씀
  • 히 13:2손님 대접하기를 잊지 말라 이로써 부지중에 천사들을 대접한 이들이 있었느니라
  • 창 18:1-5아브라함이… 달려 나가 영접하며 몸을 땅에 굽혀
  • 벧전 4:9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 갈 6:10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더욱 믿음의 가정들에게 할지니라
  • 요일 3:17누가 이 세상 재물을 가지고 형제의 궁핍함을 보고도 도와줄 마음을 막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그 속에 거하겠느냐
14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축복하고 저주하지 말라

직역 여러분을 박해하는 사람들을 축복하십시오. 축복하고 저주하지 마십시오.

갑자기 시야가 교회 밖으로 넓어집니다. 그리고 가장 어려운 명령이 나옵니다.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축복하라."

흥미로운 언어유희가 있습니다. 13절 ‘손 대접하기를 힘쓰라’와 14절 ‘핍박하는 자’는 같은 동사 디오코(쫓다)입니다. 세상은 우리를 ‘쫓아와’ 핍박하지만, 우리는 나그네 대접을 ‘쫓아가’ 추구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그대로 울립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마 5:44),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눅 6:28). 바울은 예수님의 말씀을 인용 표시 없이 자연스럽게 녹여 냅니다. 로마 교회는 이미 이 가르침을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 말씀을 직접 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 23:34). 스데반도 돌에 맞으며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행 7:60)라고 기도했습니다. 그 자리에 청년 사울이 서 있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바로 그 ‘축복받은 핍박자’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축복하라 율로게오 — ‘좋게(유) 말하다(로게오)’. 영어 eulogy(찬사)의 어원. 단순히 저주를 참는 것을 넘어 적극적으로 좋은 것을 빌어 주는 것.
  • 예수님 말씀과의 연결 — 12:14-21에는 산상수훈과 겹치는 내용이 많습니다(14절–마 5:44, 17절–마 5:39, 18절–마 5:9, 21절–눅 6:27). 바울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깊이 알고 있었음을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마 5:44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 눅 6:27-28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미워하는 자를 선대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를 위하여 축복하며
  • 눅 23:34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고전 4:12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 벧전 3: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15즐거워하는 자와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와 함께 울라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직역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사람들과 함께 우십시오.

아마 로마서에서 가장 짧고 가장 따뜻한 명령일 것입니다. 사랑은 공감입니다.

흔히 우는 자와 함께 우는 것이 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오래전부터 많은 신앙인들은 오히려 함께 즐거워하는 것이 더 어렵다고 말해 왔습니다. 다른 사람이 슬플 때 위로하는 것은 그래도 할 만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이 나보다 잘될 때, 승진할 때, 자녀가 좋은 대학에 갈 때, 내가 기도하던 것을 그가 먼저 받을 때 — 진심으로 함께 기뻐하는 것은 시기라는 벽을 넘어야 합니다. 10절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를 사는 사람만이 함께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 슬픔에 빠진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해답이나 설명보다 곁에 있어 주는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처음 칠 일 동안 아무 말 없이 함께 앉아 있었을 때가 가장 좋은 친구였습니다(욥 2:13). 말을 시작하면서 그들은 욥을 더 아프게 했습니다. 예수님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곧 그를 살리실 것을 아시면서도 먼저 "눈물을 흘리셨습니다"(요 11:35).

원어 · 번역 노트
  • 문법 — 원문은 명령형이 아니라 부정사(카이레인, 클라이에인)로 되어 있어 일종의 격언처럼 들립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요 11:35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고전 12:26만일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도 함께 즐거워하느니라
  • 욥 2:13칠 일 칠 야를 그와 함께 땅에 앉았으나 욥의 곤고함이 심함을 보는 고로 한 사람도 그에게 한 말도 하는 자가 없었더라
  • 눅 15:6, 9나와 함께 즐기자 나의 잃은 양을 찾았노라
  • 히 13:3자기도 함께 갇힌 것같이 갇힌 자를 생각하고
16서로 마음을 같이하고,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낮은 데 처하라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직역 서로 한마음이 되십시오. 높은 것을 생각하지 말고, 오히려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십시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마십시오.

9–16절의 마지막은 다시 ‘생각’(프로네오)의 언어로 돌아옵니다. 3절에서 시작된 ‘바른 생각’의 주제가 여기서 마무리됩니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모든 사람이 똑같은 의견을 가지라는 것이 아니라, 같은 방향을 바라보라는 것입니다. 같은 주님, 같은 목적을 향한 한마음입니다.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 데 처하며." 이 구절은 두 가지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낮은 일(천한 일)에 참여하라’ 또는 ‘낮은 사람들과 어울리라’. 문맥상 후자가 더 자연스럽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사람들은 영향력 있는 사람, 부유한 사람, 잘 나가는 사람 곁에 서고 싶어 합니다. 야고보는 이것을 꾸짖었습니다(약 2:1-4). 그러나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들, 가난한 자들, 아이들과 함께하셨습니다. ‘낮은 데 처한다’는 것은 예수님이 계신 자리에 가는 것입니다.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 잠언 3:7의 인용이며, 11:25에서 이방인 성도들에게 했던 경고와 같은 말입니다. 공동체를 깨뜨리는 가장 큰 적은 ‘나는 다 안다’는 생각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낮은 데 처하며 쉬나파고메노이 — ‘함께 이끌려 가다’. 갈 2:13 "바나바도 저희의 외식에 유혹되었느니라"에서는 나쁜 쪽으로 이끌린 것에 쓰였습니다. 여기서는 낮은 자들 쪽으로 기꺼이 이끌려 가라는 것.
  • 인용 — 잠 3:7(70인역)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함께 읽을 말씀
  • 빌 2:2-5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약 2:1-4내 형제들아…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말라
  • 잠 3:7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눅 14:13잔치를 배설하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병신들과 저는 자들과 소경들을 청하라
  • 롬 15:5인내와 안위의 하나님이 너희로 그리스도 예수를 본받아 서로 뜻이 같게 하여 주사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사랑은 가면을 쓰지 않습니다

거짓 없는 사랑은 먼저 존경하고, 함께 웃고, 함께 울고, 낮은 사람 곁에 앉는 사랑입니다. 교회 안에서 내가 진심으로 함께 기뻐해 주기 어려운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 사람의 기쁨에 먼저 축하를 건네 보십시오.

그리고 이번 주에 우는 사람이 있다면, 해답을 주려 하기보다 곁에 앉아 주십시오. 예수님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12:17–21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 선으로 악을 이기라

14절에서 시작된 ‘핍박하는 자’ 이야기가 17–21절에서 본격적으로 펼쳐집니다. 이제 문제는 교회 밖의 사람들, 특히 나에게 해를 끼친 사람들입니다. 바울은 복수의 사슬을 끊는 길을 보여 줍니다. 복수는 하나님께 맡기고, 나는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이 단락은 구약 두 곳을 인용합니다. 신명기 32:35 "원수 갚는 것은 내 것"과 잠언 25:21-22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먹이라." 바울에게 원수 사랑은 신약의 새 발명이 아니라 구약에서부터 이어진 하나님의 뜻입니다.

17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직역 누구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보기에 선한 일을 미리 생각하여 행하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아무에게도’는 예외가 없다는 뜻입니다. 나를 속인 사람에게도, 나를 비난한 사람에게도. 악에 악으로 갚으면 악은 두 배가 됩니다. 그리고 그 사슬은 끝없이 이어집니다. 누군가 먼저 끊어야 합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이 그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여기서 ‘선한 일’(칼라)은 ‘아름다운 일’, 곧 믿지 않는 사람들의 눈에도 ‘저것은 좋은 일이다’라고 인정받을 만한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세상 앞에서 복음의 증거가 됩니다. ‘도모하다’(프로노에오)는 ‘미리 생각하다’입니다. 선은 우연히 행해지지 않습니다. 화가 났을 때 즉흥적으로 반응하면 대부분 악으로 갚게 됩니다. 미리 선을 계획한 사람만이 그 순간에 선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잠 3:4(70인역)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은총과 귀중히 여김을 받으리라"의 표현과 비슷합니다. 고후 8:21 "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함께 읽을 말씀
  • 마 5:38-39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 살전 5:15삼가 누가 누구에게든지 악으로 악을 갚지 말게 하고 오직 서로 대하든지 모든 사람을 대하든지 항상 선을 좇으라
  • 벧전 3:9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 고후 8:21이는 우리가 주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선한 일에 조심하려 함이라
18할 수 있거든, 너희 쪽에서는 모든 사람과 화평하라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직역 할 수 있다면, 여러분에게 달린 만큼은 모든 사람과 화목하게 지내십시오.

매우 현실적인 말씀입니다. 두 개의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할 수 있거든." 바울은 모든 관계가 다 평화로울 수 있다고 순진하게 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평화를 거부합니다. 진리를 타협해야만 얻을 수 있는 평화라면, 그것은 지킬 수 없습니다. 바울 자신도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지 못했습니다(갈 2:11, 딤후 4:14).

"너희로서는." 원문은 ‘너희에게서 나오는 것에 관한 한’입니다. 평화가 깨진다면, 그것이 나 때문이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상대의 반응은 내가 통제할 수 없지만, 내 쪽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은 해야 합니다. 먼저 사과하고, 먼저 손을 내밀고, 먼저 오해를 풀려고 노력하는 것. 그러고도 평화가 오지 않는다면, 그 짐은 하나님께 맡기면 됩니다(19절).

예수님은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마 5:9)라고 하셨습니다. 화평은 기다리는 것이 아니라 ‘만드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평화하라 에이레뉴오 — 막 9:50 "서로 화목하라", 고후 13:11 "평안할지어다", 살전 5:13 "너희끼리 화목하라".
함께 읽을 말씀
  • 마 5:9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히 12:14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 롬 14:19이러므로 우리가 화평의 일과 서로 덕을 세우는 일을 힘쓰나니
  • 시 34:14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
19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라 — 원수 갚는 것은 내게 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직역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 스스로 복수하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에 맡기십시오. 기록되어 있기를, "복수는 내가 하는 것이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신다" 하였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독자들을 "내 사랑하는 자들아"라고 부릅니다. 가장 어려운 말을 하기 전에, 가장 따뜻하게 부릅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의 마음을 바울은 압니다.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원수 갚지 말라는 것은 악을 그냥 넘어가라는 뜻이 아닙니다. 정의가 없어도 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바울은 누가 원수를 갚느냐의 문제를 말합니다. 나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십니다.

"진노하심에 맡기라." 원문은 ‘진노에게 자리를 내어 드리라’입니다. 내가 재판관 자리에 앉아 있으면, 하나님께서 일하실 자리가 없습니다. 내가 그 자리에서 내려와야 하나님께서 그 자리에 앉으실 수 있습니다. 여기서 ‘진노’는 문맥상 하나님의 진노입니다(1:18, 2:5). 개역한글이 ‘하나님의’를 넣지 않았지만 뜻은 분명합니다.

그리고 신명기 32:35를 인용합니다.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이것은 위로입니다. 내가 당한 불의를 하나님께서 보셨고, 기억하시고, 반드시 바로잡으실 것입니다. 정의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다만 나의 손이 아니라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는 나의 복수보다 훨씬 공정하고 정확합니다. 내가 복수의 짐을 내려놓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이 공의로우시다는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13:4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이 땅의 정부를 통해서도 악을 벌하신다고 말할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신 32:35(히브리어 본문에 가까움). 히 10:30에도 같은 형태로 인용됩니다. 바울은 "주께서 말씀하시니라"를 덧붙여 이것이 하나님의 직접적인 선언임을 강조합니다.
  • 진노에 자리를 내어 드리라 — 엡 4:27 "마귀로 틈(토포스, 자리)을 타지 못하게 하라"와 같은 표현 방식.
함께 읽을 말씀
  • 신 32:35보수는 내 것이라 그들의 실족할 그때에 갚으리로다
  • 레 19:18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 히 10:30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 하시고
  • 벧전 2:23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
  • 잠 20:22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 여호와를 기다리라 그가 너를 구원하시리라
20원수가 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시게 하라 — 숯불을 그 머리에 쌓으리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직역 "네 원수가 굶주리면 먹이고, 목마르면 마실 것을 주어라. 그렇게 하면 너는 그의 머리 위에 숯불을 쌓게 될 것이다."

19절이 ‘하지 말라’(복수하지 말라)였다면, 20절은 ‘하라’(선을 행하라)입니다. 복수하지 않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원수에게 적극적으로 선을 베풀어야 합니다. 바울은 잠언 25:21-22를 인용합니다.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아주 구체적입니다. 원수를 위해 거창한 무엇을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가 배고플 때 밥 한 끼, 목마를 때 물 한 잔을 주라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감정보다 먼저 행동으로 시작됩니다.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이 표현은 오랫동안 해석이 분분했습니다. 혹시 원수에게 선을 베풀면 그가 더 큰 심판을 받는다는 뜻일까요? 그렇다면 선행이 복수의 다른 방법이 되어 버립니다. 그것은 바로 다음 21절 "선으로 악을 이기라"와 맞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해석자들은 이것을 부끄러움과 뉘우침의 표현으로 봅니다. 예상치 못한 친절을 받은 원수는 얼굴이 화끈거리듯 부끄러움을 느끼고, 그 부끄러움이 회개와 화해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고대 이집트에 회개의 표시로 숯불이 담긴 그릇을 머리에 이고 다니는 의식이 있었다는 기록도 이 해석을 뒷받침합니다. 원수를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원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원수를 친구로 바꾸는 것입니다(아래 ‘더 깊이’ 참고).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잠 25:21-22(70인역). 히브리어 본문은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로 끝납니다. 바울은 이 마지막 부분을 생략했는데, 선행의 동기가 보상이 되지 않게 하려는 것일 수 있습니다.
  • 구약의 예 — 엘리사는 자기를 잡으러 온 아람 군대를 사마리아로 이끈 뒤, 죽이지 않고 음식과 물을 대접하여 돌려보냈습니다. 그 후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왕하 6:22-23).
함께 읽을 말씀
  • 잠 25:21-22네 원수가 배고파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하거든 물을 마시우라 그리하는 것은 핀 숯으로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 왕하 6:21-23왕이 위하여 음식을 많이 베풀고 저희가 먹고 마시매 놓아 보내니… 아람 군사의 부대가 다시는 이스라엘 땅에 들어오지 못하니라
  • 출 23:4-5네가 만일 네 원수의 길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그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 눅 6:35오직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고 선대하며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꾸어 주라
21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직역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십시오.

12장의 마지막 구절이자, 17–21절 전체의 결론입니다. 단 두 마디.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바울은 이것을 싸움으로 그립니다. ‘이기다’(니카오)는 승리의 여신 니케(Nike)에서 온 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수동적인 참음이 아니라 적극적인 싸움입니다. 다만 무기가 다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언제 우리가 악에게 집니까? 누군가 나에게 악을 행했을 때, 내가 그 악에 똑같이 반응하면 나는 진 것입니다. 그 사람의 악이 나까지 악하게 만들었으니까요. 미움에 미움으로 답할 때, 악은 나를 정복한 것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라." 반대로 내가 악에 선으로 답할 때, 악은 거기서 멈춥니다. 더 이상 퍼지지 못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방식입니다. 예수님은 세상의 모든 악을 받으시고 그것을 사랑으로 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자가가 악을 이겼습니다. 5:20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그리스도인은 그 승리를 날마다 작은 선택들 속에서 이어 가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 원리는 13장으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개인에게는 복수를 금하시지만, 사회의 질서를 위해 국가 권세를 세우셔서 악을 벌하게 하십니다(13:4). 개인의 원수 사랑과 공적인 정의는 함께 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이기라 니카오 — 8:37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휘페르니카오)", 요일 5:4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계 2–3장 "이기는 자에게는".
함께 읽을 말씀
  • 롬 8:37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요일 5:4무릇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 요 16:33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 창 50:20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 골 2:15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복수의 사슬을 끊는 사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은 똑같이 갚아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순간 악은 나를 이긴 것입니다. 복수의 짐을 하나님께 내려놓으십시오. 하나님은 공의로우시고, 반드시 바로잡으십니다.

그리고 오늘 내 원수에게 할 수 있는 작은 선 하나를 찾아보십시오. 밥 한 끼, 따뜻한 말 한마디, 그를 위한 기도 한 줄. 그것이 악을 이기는 시작입니다.

Gifts · 은사

6–8절, 일곱 가지 은사와 그 태도

바울은 은사와 함께, 그 은사를 사용하는 마음가짐을 말합니다
은사무엇을 하는가어떤 마음으로
예언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공동체를 세움믿음의 분수대로
섬김실제적인 필요를 채움섬기는 일에 집중하여
가르침말씀을 풀어 설명함가르치는 일에 집중하여
권위(勸慰)권면하고 위로함권위하는 일에 집중하여
구제가진 것을 나눔성실함으로 — 숨은 동기 없이
다스림앞에 서서 이끌고 돌봄부지런함으로
긍휼아프고 약한 자를 돌봄즐거움으로

앞의 세 가지는 ‘그 일에 힘쓰라’, 뒤의 네 가지는 ‘이런 마음으로 하라’입니다. 은사는 하나님이 주시지만, 그 은사를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9절)이 ‘사랑엔 거짓이 없나니’로 시작합니다. 모든 은사의 바탕은 사랑입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12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자비하심慈悲 · 1절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1–11장의 모든 은혜.

산 제사1절

죽은 짐승이 아니라 살아 있는 내 삶 전체를 드리는 예배.

영적 예배1절

이치에 맞는, 합당한 예배. 몸과 마음이 분리되지 않는 예배.

이 세대2절

하나님을 떠난 현재의 세상 질서와 가치관.

변화2절

애벌레가 나비가 되듯 본질이 바뀌는 것. 성령께서 하시는 일.

분별分別 · 2절

시험하여 진짜를 가려냄.

믿음의 분량分量 · 3절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신 믿음의 몫.

은사恩賜 · 6절

은혜가 구체적인 모양을 띤 선물. 몸을 세우기 위해 주심.

권위勸慰 · 8절

권면하고 위로함. 오늘날의 ‘권위(權威)’가 아님.

우애友愛 · 10절

가족처럼 정답게 아끼는 사랑.

손 대접13절

나그네를 사랑하여 집과 식탁을 여는 것.

축복祝福 · 14절

좋은 말을 하고 복을 빌어 주는 것.

도모圖謀 · 17절

미리 생각하고 계획함.

숯불20절

잠 25:22 인용. 원수의 마음에 부끄러움과 뉘우침을 일으킴.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나의 예배는 주일에만 머물러 있습니까? 이번 주 월요일, 내 몸으로 드릴 ‘산 제사’는 무엇입니까? (1절)
  2. 요즘 세상의 어떤 ‘틀’이 나를 가장 강하게 빚고 있습니까? 그 틀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합니까? (2절)
  3.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는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을 어떤 ‘태도’로 사용하고 있습니까? (6-8절)
  4. 진심으로 ‘함께 즐거워하기’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15절)
  5. 내 쪽에서 아직 하지 않은, 화평을 위한 한 걸음은 무엇입니까? (18절)
  6. 내가 하나님께 맡기지 못하고 붙들고 있는 억울함이 있습니까? 오늘 그것을 기도로 내려놓아 보십시오. (19절)
  7. 나의 ‘원수’에게 이번 주 베풀 수 있는 작은 선 하나는 무엇입니까? (20-21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