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1절까지 — 자기 의를 세우려던 열심, 가까이 있는 믿음의 말씀, 그리고 보내심을 받은 발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ROMANS 10:9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0장 들어가며
9장이 하나님의 주권을 말했다면, 10장은 사람의 책임과 복음의 초대를 말합니다
9장 끝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이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9:32)고 말했습니다. 10장은 그 말을 자세히 풀어 갑니다. 이스라엘이 왜 넘어졌는지, 그리고 그 넘어짐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길이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넓게 열려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9장이 하나님의 주권을 강조했다면, 10장은 사람의 책임을 강조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의를 '몰랐고'(3절), '복종치 아니했고'(3절), '순종치 아니했습니다'(16절, 21절). 동시에 10장은 로마서에서 가장 분명한 복음 초대의 장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13절).
10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① 이스라엘의 잘못된 열심 — 자기 의를 세우려 했다(1-4절). ② 믿음의 의는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5-13절). ③ 그러므로 전하는 자가 필요하다(14-17절). ④ 이스라엘은 듣지 못한 것이 아니라 순종하지 않았다(18-21절). 바울은 이 장에서 구약을 열 번 가까이 인용하며, 특히 신명기 30장을 놀랍게 해석합니다.
핵심 구절
10:9–10, 13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는 것, 그리고 누구든지 부르는 자. 로마서에서 가장 많이 전도에 쓰이는 구절입니다.
전도의 사슬
14–15절
보냄 → 전파 → 들음 → 믿음 → 부름. 구원의 사슬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전도자의 필요를 보여 줍니다.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지식을 좇은 것"
원문 에피그노시스, '바른 앎'. 열심은 있으나 바른 앎이 없었다는 뜻.
4절 "율법의 마침"
원문 텔로스는 '끝'과 '목적, 완성' 두 뜻을 다 가짐. 노트 참고.
7절 "음부"
陰府, 죽은 자들의 세계. 원문 아뷔소스(깊은 곳, 무저갱).
9절 "시인하며"
是認, 옳다고 인정하여 공개적으로 고백함.
12절 "부요하시도다"
富饒, 넉넉하고 풍성하심. 아낌없이 베푸심.
15절 "발이여"
먼 길을 걸어 소식을 전하는 사람의 발.
19절 "시기 나게"
질투하게 하다. 11장의 열쇠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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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 자기 의를 세우려다
바울은 다시 이스라엘을 향한 마음으로 시작합니다(9:1-3처럼). 그리고 이스라엘의 문제를 진단합니다. 그들의 문제는 열심이 없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열심은 넘쳤습니다. 문제는 그 열심의 방향이었습니다.
1내 마음의 소원과 기도는 이스라엘의 구원이다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함이라
직역 형제들아, 내 마음의 소원과 그들을 위한 하나님께 드리는 나의 간구는 그들이 구원받는 것이다.
9장에서 하나님의 주권적 선택과 강퍅케 하심을 말한 바울이, 10장을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한 기도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 것이 기도를 멈추게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이 주권자이시기에 기도합니다. 하나님만이 마음을 바꾸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내 마음에 원하는 바." 이것은 의무감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의 소원입니다. 그리고 그 소원은 "하나님께 구하는 바", 곧 기도로 이어집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구원을 진심으로 원하면, 자연스럽게 기도하게 됩니다. 사무엘은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삼상 12:23)라고 말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원하는 바유도키아 — '좋게 여김, 기쁜 뜻'. 엡 1:5, 9 "그 기쁘신 뜻대로", 빌 1:15 "착한 뜻으로"에 쓰였습니다.
형제들아 — 1:13, 7:1, 4에 이어 다시 부릅니다. 어려운 주제를 다루며 독자들과의 관계를 따뜻하게 확인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9:1-3내가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삼상 12:23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치 아니하고
딤전 2:1-4모든 사람을 위하여 간구와 기도와 도고와 감사를 하되…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2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다
내가 증거하노니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니라
직역 나는 그들에 대해 증언한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열심이 있으나, 그것은 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을 정직하게 평가합니다. 먼저 칭찬합니다. "저희가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무관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율법을 연구하고, 안식일을 철저히 지키고,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히 여겼습니다. 마카비 시대에는 율법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버린 순교자들도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 열심을 누구보다 잘 압니다. 바울 자신이 그랬기 때문입니다. "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빌 3:6), "내가 내 동족 중 여러 연갑자보다 유대교를 지나치게 믿어 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갈 1:14). 바울의 그 열심은 스데반을 죽이는 데 동의하게 했고, 교회를 잔멸하게 했습니다.
문제는 "지식을 좇은 것이 아니니라"입니다. 열심은 있었지만 방향이 틀렸습니다. 지도 없이 빠르게 달리면 더 빨리 길을 잃습니다. 잘못된 방향의 열심은 오히려 위험합니다. 예수님도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 16:2)고 하셨습니다. 열심 자체가 신앙의 증거가 아닙니다. 그 열심이 하나님에 대한 바른 앎에 근거해야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열심젤로스 — 영어 zeal(열심)과 jealous(질투)의 어원. 비느하스(민 25:11), 엘리야(왕상 19:10 "내가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열심이 특심하오니")의 열심이 유대인들에게 모범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에도 '셀롯(열심당원) 시몬'이 있었습니다.
지식에피그노시스 — '정확하고 바른 앎'. 1:28 "하나님 두기를(지식 안에)", 3:20 "죄를 깨달음(에피그노시스)"과 같은 단어.
함께 읽을 말씀
갈 1:13-14내 조상의 유전에 대하여 더욱 열심이 있었으나
빌 3:6열심으로는 교회를 핍박하고
행 22:3-4오늘 너희 모든 사람처럼 하나님께 대하여 열심하는 자라 내가 이 도를 핍박하여
요 16:2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호 4:6내 백성이 지식이 없으므로 망하는도다
3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다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직역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알지 못하고 자기 자신의 의를 세우려고 힘쓰면서,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절의 '지식이 없는 열심'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세 단계입니다.
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시는 의, 1:17과 3:21에서 "복음에 나타난" 그 의를 몰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의를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기준으로만 알았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로는 몰랐습니다.
②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그래서 자기 힘으로 의를 쌓아 올리려 했습니다. 바벨탑을 쌓듯, 행위라는 벽돌로 하나님께 이르는 탑을 쌓으려 했습니다. '자기 의'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빌립보서 3:9에서 바울은 회심 후를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자기 의)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서 난 의라."
③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여기서 놀라운 표현이 나옵니다. 하나님의 의를 받는 것은 '복종'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으려면 내 의를 내려놓아야 합니다. 내가 아무것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것이 자존심 강한 사람에게는 가장 어려운 '굴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가 '걸림돌'(9:32-33)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세우려고스테사이 — '세우다, 확립하다'. 마치 기념비를 세우듯 자기 의를 세우는 그림.
복종치휘포타소 — 8:7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13:1 "굴복하라"와 같은 단어.
함께 읽을 말씀
빌 3:9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롬 9:31-32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행위를 의지함이라
눅 18:9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
사 64:6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롬 1:17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4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한 율법의 마침이 되신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직역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믿는 모든 사람에게 의가 되도록 율법의 마침(목표)이시기 때문이다.
로마서에서 가장 중요하면서도 해석이 다양한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마침'으로 번역된 헬라어 텔로스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첫째, '끝, 종결'. 마라톤의 결승선처럼, 무언가가 끝나는 지점입니다. 이렇게 읽으면, 그리스도께서 오심으로 '율법으로 의를 얻으려는 시도'는 끝났다는 뜻이 됩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롭게 되는 길은 이제 막혔습니다(그 길은 처음부터 막혀 있었지만). 둘째, '목표, 완성'. 화살이 과녁을 향하듯, 율법 전체가 향하던 목표가 그리스도이시라는 뜻입니다. 율법은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가리키고 있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의 목적이 이루어졌습니다(마 5:17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대부분의 해석자는 두 뜻이 다 들어 있다고 봅니다. 그리스도는 율법이 가리키던 '목표'이시며, 그분이 오심으로 율법을 '의를 얻는 수단'으로 쓰는 것은 '끝났습니다'. 갈라디아서 3:24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그리고 그 목적은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입니다. 율법으로는 아무도 의에 이르지 못했지만(3:20), 그리스도 안에서는 '모든 믿는 자'가 의에 이릅니다. 3절의 '자기 의'와 대조되는 '하나님의 의'가 바로 이것입니다.
문장 구조 — 원문은 "율법의 마침(텔로스 노무)이 그리스도이시니, 믿는 모든 자에게 의를 위하여". '텔로스'가 문장 맨 앞에 와서 강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5:17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갈 3:23-25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이 되어… 믿음이 온 후로는 우리가 몽학선생 아래 있지 아니하도다
롬 3:21-22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요 5:39, 46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모세를 믿었더면 또 나를 믿었으리니 이는 그가 내게 대하여 기록하였음이라
눅 24:27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의 열심은 어디를 향하고 있습니까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봉사하고, 열심히 헌신하는 것은 귀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열심' 자체가 구원의 증거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 열심이 내 의를 세우려는 것이라면, 그것은 오히려 하나님의 의에 대한 거부일 수 있습니다.
내 신앙생활의 동력이 무엇인지 돌아보십시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는 것입니까, 이미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입니까?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이 되셨습니다. 이제 더 이상 내 의의 탑을 쌓지 않아도 됩니다.
10:5–13말씀이 네게 가까워 — 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으면
바울은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를 대조합니다. 율법의 의는 끝없이 행해야 하는 의이고(5절), 믿음의 의는 하늘에 올라가거나 깊은 곳에 내려갈 필요 없이 가까이 있는 의입니다(6-8절). 그리고 로마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원의 초대가 나옵니다(9-13절).
특히 6-8절에서 바울은 신명기 30:11-14을 놀랍게 해석합니다. 모세가 율법에 대해 한 말을 바울은 그리스도와 복음에 적용합니다. 이것은 4절 "그리스도는 율법의 마침(목표)"의 실례입니다.
5모세가 쓴 율법의 의 —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직역 모세는 율법에서 나는 의에 대해 이렇게 기록한다. "그것들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들로 살 것이다."
바울은 레위기 18:5을 인용합니다. "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이것이 율법의 의의 원리입니다. 행하면 산다.
이 원리 자체는 틀리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히 행한다면 그 사람은 살 것입니다. 2:13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문제는 그것을 완전히 행할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것입니다(3:10, 20). 갈라디아서 3:10-12에서 바울은 같은 구절을 인용하며 말합니다. "무릇 율법 행위에 속한 자들은 저주 아래 있나니 기록된 바 누구든지 율법 책에 기록된 대로 모든 일을 항상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 아래 있는 자라."
율법의 의는 '행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끝이 없습니다. 오늘 행해도 내일 또 행해야 하고, 하나를 지켜도 다른 하나를 어기면 안 됩니다. 이 길로는 아무도 결승선에 도착하지 못합니다. 단 한 분, 율법을 완전히 행하신 그리스도를 제외하고는.
원어 · 번역 노트
인용 — 레 18:5(70인역). 갈 3:12에도 같은 구절이 인용됩니다. 겔 20:11, 13, 21, 느 9:29도 같은 원리를 말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레 18:5너희는 나의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사람이 이를 행하면 그로 인하여 살리라
갈 3:10-12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니니 율법을 행하는 자는 그 가운데서 살리라 하였느니라
약 2:10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
마 19:16-17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슨 선한 일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
6믿음의 의는 말한다 —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직역 그러나 믿음에서 나는 의는 이렇게 말한다. "네 마음에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말하지 말라." 이는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다.
이제 믿음의 의가 말합니다. 바울은 '믿음의 의'를 마치 사람처럼 등장시켜 말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의가 하는 말은 신명기 30:12-14의 말씀입니다.
신명기 30장은 모세가 이스라엘에게 마지막으로 하는 설교입니다.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하늘에 올라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우리에게 들려 행하게 하랴 할 것이 아니요"(신 30:11-12).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이 멀리 있지 않고 가까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이 말씀을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하지 말라… 올라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모셔 내리려는 것이요." 우리가 하늘에 올라가서 그리스도를 모셔 내려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하늘에서 내려오셨습니다(성육신). 구원을 위해 우리가 하늘까지 닿는 바벨탑을 쌓을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내려오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인용과 해석 — 신 30:12을 인용하면서 바울은 '곧(투트 에스틴)'이라는 해석 공식으로 그 의미를 그리스도에게 적용합니다. 이것은 당시 유대 해석(페셰르)에서 쓰던 방식입니다.
네 마음에 하지 말라 — 신 8:17, 9:4 "네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하지 말라", "내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하지 말라"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입니다. 자기 의를 경계하는 말씀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0:11-12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니
신 9:4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요 3: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엡 4:9-10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뇨
7누가 깊은 곳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 그리스도는 이미 살아나셨다
혹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직역 혹은 "누가 깊은 곳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이는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다.
신명기 30:13은 원래 "바다 저편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였습니다. 바울은 '바다'를 '깊은 곳(음부)'으로 바꾸어 읽습니다. 구약에서 바다의 깊은 곳과 죽은 자의 세계는 종종 연결되었습니다(욘 2:2-6, 시 107:26).
"내려가겠느냐 함은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이라." 우리가 죽음의 세계까지 내려가서 그리스도를 살려 올 필요가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이미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습니다(부활).
6-7절을 함께 보면, 구원에 필요한 두 가지 큰일, 곧 성육신(하늘에서 내려오심)과 부활(깊은 곳에서 올라오심)은 하나님께서 이미 다 하셨습니다. 하늘 꼭대기부터 땅 깊은 곳까지, 우리가 갈 수 없는 모든 거리를 그리스도께서 대신 다녀오셨습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거리를 다시 왕복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일을 믿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음부 陰府 — '어두운 곳', 죽은 자들의 세계. 원문 아뷔소스는 '바닥이 없는 깊은 곳'. 눅 8:31 "무저갱", 계 9:1-2, 20:1-3에 쓰였습니다. 70인역에서는 '깊은 바다'(창 1:2 "깊음")를 가리키기도 합니다.
바다 → 깊은 곳 — 바울은 신 30:13의 '바다를 건너가다'를 '깊은 곳에 내려가다'로 바꿨습니다. 시 107:26 "저희가 하늘에 올라갔다가 깊은 곳에 내리니"와 같은 하늘/깊음의 대조를 쓴 것으로 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0:13바다 밖에 있는 것이 아니니 네가 이르기를 누가 우리를 위하여 바다를 건너가서 그 명령을 우리에게로 가지고 와서
시 139:8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행 2:24, 31-32하나님께서 그를 사망의 고통에서 풀어 살리셨으니…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벧전 3:18-19육체로는 죽임을 당하시고 영으로는 살리심을 받으셨으니
8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네 마음에 있다 — 곧 우리가 전하는 믿음의 말씀
그러면 무엇을 말하느뇨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직역 그러면 그것은 무엇이라 말하는가? "말씀이 네게 가까이 있어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곧 우리가 선포하는 믿음의 말씀이다.
6-7절에서 '하지 말라'고 한 뒤, 이제 믿음의 의가 긍정적으로 말합니다. 신명기 30:14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모세는 율법에 대해 이 말을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 입과 마음에 있다고. 그런데 바울은 말합니다. 이 말씀이 궁극적으로 가리키는 것은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바로 복음입니다.
구원은 하늘 꼭대기나 땅 깊은 곳에 있지 않습니다. 고행이나 특별한 체험이나 엄청난 공로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구원의 말씀은 지금 이 순간, 이 글을 읽는 사람의 바로 가까이에 있습니다. 귀로 듣고,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할 수 있는 거리에 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신명기의 '입'과 '마음'을 붙잡아 9-10절에서 구원의 고백으로 풀어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말씀레마 — '말해진 말씀, 선포된 말'. 17절 "그리스도의 말씀(레마)", 엡 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레마)"에 쓰였습니다.
신명기의 원래 의미 — 모세는 이스라엘이 율법을 '행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신 30:6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사"라는 약속과 연결해서, 이 말씀이 마음에 새겨지는 새 언약, 곧 복음으로 완성된다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0:14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와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 30:6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행하사
행 17:27그는 우리 각인에게서 멀리 계시지 아니하도다
렘 31:33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9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부활을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라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직역 왜냐하면 네가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으키셨다는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로마서에서 가장 많이 인용되는 구원의 초대입니다. 8절의 '입'과 '마음'을 그대로 가져와 풀어냅니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예수는 주시다(퀴리오스 예수스)'는 초대교회의 가장 짧고 가장 오래된 신앙고백입니다(고전 12:3, 빌 2:11). 이 말은 엄청난 무게를 지녔습니다. 70인역에서 '주(퀴리오스)'는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를 옮긴 말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주'라고 부르는 것은 그분을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또한 로마 제국에서 '주'는 황제에게 쓰던 칭호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이사가 주"라는 말 대신 "예수가 주"라고 고백했고, 그 고백 때문에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시인하다'는 '같은 말을 하다', 곧 하나님께서 예수님에 대해 하신 말에 동의하여 공개적으로 선언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믿음의 핵심 내용은 부활입니다. 4:24-25에서처럼,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예수 우리 주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입니다. 부활은 예수님이 주이심을 증명하고(1:4), 우리 칭의를 확증합니다(4:25). 부활을 믿지 않는 기독교는 없습니다(고전 15:14, 17).
그리고 결과는 "구원을 얻으리니"입니다. 조건은 놀랍도록 단순합니다. 율법의 모든 계명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시인하며 是認 / 호몰로게오 — '같은(호모) 말을 하다(로게오)'. 마 10:32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요일 4:15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예수를 주로 — 원문 퀴리온 예순. 침례식에서 침례받는 사람이 이 고백을 했을 것으로 봅니다.
빌 2:9-11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고전 12:3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행 16:31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마 10:32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고전 15:3-4, 14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10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직역 왜냐하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하여 구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9절을 다시 정리합니다. 이번에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마음이 먼저, 입이 나중입니다. 실제 신앙의 순서입니다. 마음으로 먼저 믿고, 그 믿음이 입으로 터져 나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의롭다 하심은 마음의 믿음으로 받습니다(4장, 5:1).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그 믿음은 입으로 고백됩니다. 이것은 두 개의 다른 단계가 아니라, 한 믿음의 안과 밖입니다. 마음의 믿음 없는 입의 고백은 위선이고(마 15:8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입의 고백 없는 마음의 믿음은 아직 숨어 있는 믿음입니다(요 12:42-43).
히브리적 표현에서 '마음'과 '입'은 사람 전체를 가리킵니다. 내면과 외면, 생각과 말, 개인과 공동체. 믿음은 사람 전체를 사로잡습니다. 초대교회에서는 침례를 받을 때 공개적으로 "예수는 주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믿음은 비밀이 아니라 선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의 / 구원 — '의'와 '구원'을 구별하려는 해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히브리식 대구법(같은 것을 다른 말로 반복)으로 봅니다. 의롭다 하심과 구원은 같은 실재의 두 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12:34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요 12:42-43관원 중에도 저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을 인하여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고후 4:13기록한 바 내가 믿는 고로 말하였다 한 것같이 우리가 같은 믿음의 마음을 가졌으니 우리도 믿는 고로 또한 말하노라
시 116:10내가 크게 곤란을 당하였다고 말할 때에도 나는 믿었도다
11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으리라
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치 아니하리라 하니
직역 성경이 말하기를,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 하였다.
바울은 9:33에서 인용했던 이사야 28:16을 다시 인용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 단어를 덧붙입니다. "누구든지." 원문의 이사야 구절에는 이 말이 없지만, 바울은 그 말씀의 뜻을 살려 '누구든지'를 넣습니다.
이 한 단어가 9장과 10장을 잇습니다. 9장에서 걸림돌에 넘어진 사람이 있었다면, 10장에서는 그 돌을 믿는 '누구든지'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과거가 어떻든, 지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은 마지막 날 결코 실망하지 않습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직역 유대인과 헬라인 사이에 차별이 없기 때문이다. 같은 주께서 모든 이의 주가 되시며, 그를 부르는 모든 이에게 풍성하시다.
'누구든지'의 근거입니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3:22-23에서 바울은 '죄'에 있어서 차별이 없다고 했습니다.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여기서는 '구원'에 있어서 차별이 없다고 말합니다. 죄에 차별이 없었기에, 은혜에도 차별이 없습니다.
왜 차별이 없습니까? "한 분이신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3:29-30에서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고 했듯, 여기서는 주(그리스도)가 한 분이시라고 합니다. 유대인의 주와 이방인의 주가 따로 계신 것이 아닙니다. 사도행전 10:36 "그는 만유의 주시라."
그리고 그 주님은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도다." '부요하다'는 풍성하게 베푸신다는 뜻입니다. 주님은 인색하지 않으십니다. 부르는 사람마다 넘치도록 주십니다. 에베소서 2:4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2:7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 그 풍성함은 고갈되지 않습니다. 천 명이 부르든 만 명이 부르든, 모두에게 충분합니다.
롬 3:22-23, 29-30차별이 없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행 10:34-36하나님은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아니하시고… 그는 만유의 주시라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엡 2:4, 7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그 은혜의 지극히 풍성함을
13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직역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을 것이다."
요엘 2:32의 인용입니다. 베드로도 오순절 설교에서 같은 구절을 인용했습니다(행 2:21). 성경에서 가장 넓은 초대 중 하나입니다.
"누구든지." 조건이 없습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착하든 악하든, 오래 믿었든 처음 듣든, 누구든지입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부르다'는 단순히 이름을 발음하는 것이 아니라, 도움을 청하며 부르짖는 것입니다. 물에 빠진 사람이 "살려 주세요!" 하고 외치듯, 자기 힘으로는 구원받을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주님께 도움을 청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4:26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부터 성경 전체에 흐르는 기도의 표현입니다.
여기서 놀라운 점이 있습니다. 요엘서 원문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9절의 "예수를 주로"와 12절의 "한 분이신 주"를 이어서, 이 '주'가 예수님이시라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여호와께 하던 기도가 이제 예수님께 드려집니다. 예수님이 곧 여호와이십니다. 초대교회는 처음부터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며 기도했습니다(고전 1:2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부르는에피칼레오 — 행 7:59 "스데반이 부르짖어 가로되 주 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행 9:14, 21, 22:16 "그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욜 2:32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행 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하였느니라
행 4:12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고전 1:2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창 4:26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눅 23:42-43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구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구원을 아주 먼 곳에 있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하늘까지 올라가야 하거나, 깊은 곳까지 내려가야 하거나, 엄청난 선행을 쌓아야 닿을 수 있는 것처럼.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말씀이 네게 가까와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지금 이 순간,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주의 이름을 부르는 '누구든지' 구원을 받습니다. 아직 이 고백을 하지 않았다면, 오늘이 그날입니다.
10:14–17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 — 믿음은 들음에서
13절의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는 위대한 약속입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질문을 던집니다. 사람이 어떻게 그 이름을 부를 수 있는가? 바울은 구원의 사슬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부름 ← 믿음 ← 들음 ← 전파 ← 보냄. 이 사슬의 시작에는 '보내심을 받은 사람'이 있습니다.
14믿지 않는 이를 어찌 부르며, 듣지 못한 이를 어찌 믿으며, 전파하는 자 없이 어찌 들으리요
그런즉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직역 그러면 그들이 믿지 않은 분을 어떻게 부르겠는가?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는가? 선포하는 자가 없이 어떻게 듣겠는가?
바울은 13절의 약속에서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며 네 개의 질문을 던집니다. 마치 사슬을 한 고리씩 풀어 가는 것 같습니다.
①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주의 이름을 부르려면 먼저 그분을 믿어야 합니다. 믿지 않는 분께 도움을 청하지는 않습니다. ②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믿으려면 먼저 들어야 합니다.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분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③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들으려면 누군가 말해 주어야 합니다.
이 질문들은 복음 전도의 긴급함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구원의 길을 활짝 여셨습니다(13절 '누구든지'). 그러나 그 길을 모르는 사람은 그 길로 갈 수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약이 있어도 환자가 그 약의 존재를 모르면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통해 그 소식을 전하기로 하셨습니다.
9장의 하나님의 주권을 읽고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은 어차피 구원받을 테니 전도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바울은 10:14로 대답합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사람을 '전파하는 자'를 통해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주권은 전도를 멈추게 하지 않고 오히려 전도에 확신을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듣지도 못한 이를 — 원문 후 우크 에쿠산, "그분에 대해 듣지 못한" 또는 "그분의 음성을 듣지 못한". 후자로 읽으면, 전도자가 전할 때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신다는 뜻이 됩니다(고후 5:20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전파하는 자케뤼소 — '전령으로서 큰 소리로 선포하다'. 왕의 칙령을 공포하던 전령(케뤽스)에서 나온 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8:30-31읽는 것을 깨닫느뇨… 지도하는 사람이 없으니 어찌 깨달을 수 있느뇨
고후 5:20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딤후 4:2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
고전 1:21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15보내심을 받지 않았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발이여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직역 보내심을 받지 않았다면 어떻게 선포하겠는가? 기록된 바, "좋은 일들을 복음으로 전하는 자들의 발이 얼마나 아름다운가!" 함과 같다.
사슬의 마지막 고리입니다. ④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전하는 사람은 스스로 가는 것이 아니라 '보내심을 받아' 갑니다. 누가 보내십니까?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마 9:38)고 하셨고, 부활하신 후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요 20:21)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들을 보냅니다. 안디옥 교회는 성령의 지시를 따라 바울과 바나바를 '보냈습니다'(행 13:2-4).
그리고 바울은 이사야 52:7을 인용합니다.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원래 문맥은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에게 해방의 소식이 전해지는 장면입니다.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사 52:7). 먼 길을 달려와 먼지투성이가 된 전령의 발, 실제로는 지저분하고 거친 발이지만, 그 발이 가져온 소식 때문에 아름답습니다.
이사야 52:7은 이사야 53장, 곧 고난받는 종의 예언 바로 앞에 있습니다. 그 '좋은 소식'의 내용이 바로 고난받는 종,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리고 지금 그 소식을 전하는 모든 사람의 발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습니다. 땀 흘리며 이웃을 찾아가는 성도의 발, 선교지로 떠나는 선교사의 발, 병상을 찾아가는 목자의 발.
원어 · 번역 노트
보내심을 받지아포스텔로 — '보내다'. 명사형 아포스톨로스가 '사도', 곧 '보냄을 받은 자'입니다(1:1).
인용 — 사 52:7을 바울이 줄여서 인용했습니다. 나 1:15에도 비슷한 구절이 있습니다. 일부 사본(킹제임스)은 "평화의 복음을 전하며"가 더 들어 있습니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유앙겔리조메논 — '복음을 전하다'. 이사야서의 이 단어가 신약 '복음(유앙겔리온)'의 중요한 배경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2:7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나 1:15볼지어다 아름다운 소식을 알리고 화평을 전하는 자의 발이 산 위에 있도다
마 9:37-38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은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요 20:21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엡 6:15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행 13:2-4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두 사람이 성령의 보내심을 받아
16그러나 다 순종하지는 않았다 —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가로되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직역 그러나 그들이 모두 복음에 순종한 것은 아니다. 이사야가 말하기를,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다.
14-15절의 사슬이 다 갖추어졌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가 전했고, 사람들은 들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슬픈 현실을 말합니다. "그러나 저희가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
'순종하다'와 '듣다'는 헬라어로 같은 어근입니다. 성경에서 진짜로 '듣는다'는 것은 귀로 소리를 듣는 것을 넘어 그 말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귀로는 들었지만 마음으로 듣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믿음은 들음이지만, 듣는 모든 사람이 믿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사야 53:1을 인용합니다. "주여 우리의 전하는 바를 누가 믿었나이까." 15절의 이사야 52:7 바로 다음 장입니다. 이사야는 고난받는 종에 대한 놀라운 소식을 전하면서도, 사람들이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을 알고 탄식했습니다. 요한복음 12:37-38도 예수님의 많은 표적에도 사람들이 믿지 않은 것을 이 구절로 설명합니다. 복음이 거절당하는 것은 새로운 일이 아닙니다. 선지자 시대부터 그랬습니다.
요 12:37-38이렇게 많은 표적을 저희 앞에서 행하셨으나 저를 믿지 아니하니 이는 선지자 이사야의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라
히 4:2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
살후 1:8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17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직역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고,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통해 온다.
14-16절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가장 중요한 원리 중 하나입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믿음은 사람이 스스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굳게 먹는다고, 감정을 끌어올린다고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생깁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성령께서 그 말씀으로 마음에 믿음을 일으키십니다. 그래서 믿음이 약할 때 우리가 할 일은 믿음을 짜내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그 들음의 내용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 곧 복음이면서, 동시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시는 말씀입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그리스도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요 10:27)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교회의 중심에는 말씀의 선포가 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교회의 첫 번째 표지를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선포되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설교를 듣는 것, 성경을 읽는 것, 말씀을 나누는 것, 그 모든 것이 믿음이 태어나고 자라는 자리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들음아코에 — '듣는 행위'이면서 '들은 내용, 소식'. 16절 "우리의 전하는 바(아코에)"와 같은 단어입니다. 갈 3:2, 5 "듣고 믿음으로냐", 살전 2:13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의 말씀 — 일부 사본(킹제임스)은 "하나님의 말씀". 가장 오래된 사본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3:2, 5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이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
요 10:27내 양은 내 음성을 듣나니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요 17:20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저희 말을 인하여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살전 2:13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엡 1:13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그 안에서 또한 믿어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의 발은 아름답습니까
바울의 질문은 오늘 우리에게도 향합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내 주변에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에게 '전파하는 자'는 누구일까요? 어쩌면 나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은 먼지투성이가 된 전령의 발을 아름답다고 하십니다. 유창한 말솜씨가 아니라, 좋은 소식을 들고 찾아가는 그 발걸음이 아름답습니다. 이번 주, 내 발이 향해야 할 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10:18–21이스라엘은 듣지 못했는가 — 종일 손을 벌리신 하나님
16절에서 "다 복음을 순종치 아니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을 변호하는 사람이 물을 수 있습니다. "혹시 이스라엘이 제대로 듣지 못한 것은 아닌가? 혹은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바울은 두 질문에 모두 '아니다'라고 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해 종일 손을 벌리고 계셨다는 가슴 아픈 그림으로 10장을 마무리합니다.
18그들이 듣지 못했는가? 아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다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그렇지 아니하니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직역 그러나 내가 묻는다. 그들이 듣지 못하였는가? 오히려, "그들의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들의 말이 땅 끝까지 이르렀다."
첫 번째 변명입니다. "저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뇨?" 혹시 이스라엘이 복음을 듣지 못해서 믿지 않은 것은 아닌가? 바울의 대답은 "그렇지 아니하니"입니다.
바울은 시편 19:4을 인용합니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원래 이 시편은 하늘과 궁창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는 노래입니다. 말없는 피조물이 온 땅에 하나님을 증언한다는 것입니다(1:19-20 참고). 바울은 이 말씀을 복음 전파에 적용합니다. 하늘이 온 땅에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듯, 이제 복음이 온 땅에 퍼져 나갔습니다.
바울이 이 편지를 쓸 때 복음은 이미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유대, 사마리아, 소아시아, 그리스, 로마까지 퍼져 있었습니다. 골로새서 1:6, 23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온 천하에서도… 천하 만민에게 전파된 바요." 특히 유대인들이 사는 곳마다 회당이 있었고, 바울은 가는 곳마다 회당에서 먼저 복음을 전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듣지 못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인용 — 시 19:4(70인역 18:5) 그대로. 히브리어는 "그 줄이 온 땅에", 70인역은 "그 소리가 온 땅에".
온 땅 / 땅 끝 — 과장법이라기보다, 유대인이 흩어져 사는 '알려진 세계' 전체에 복음이 전해졌다는 뜻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시 19:1-4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그 소리가 온 땅에 통하고 그 말씀이 세계 끝까지 이르도다
골 1:6, 23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마 24:14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행 1:8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19이스라엘이 알지 못했는가? 모세 — 백성 아닌 자로 너희를 시기 나게 하리라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미련한 백성으로써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고
직역 다시 내가 묻는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는가? 먼저 모세가 말하기를, "내가 백성 아닌 자들로 너희를 질투하게 하고, 깨닫지 못하는 민족으로 너희를 노엽게 하리라" 하였다.
두 번째 변명입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뇨?" 들었지만 이해하지 못한 것은 아닌가? 하나님께서 이방인을 부르실 것이라는 것을 이스라엘이 몰랐던 것은 아닌가?
바울은 이스라엘의 가장 존경받는 선지자, 모세를 증인으로 세웁니다. "먼저 모세가." 신명기 32:21, 모세의 마지막 노래입니다. 그 노래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를 꾸짖으시며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나를 신 아닌 것으로 시기가 나게 하며 허무한 것으로 나의 진노를 격발하였으니 나도 백성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국민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하나님의 방식이 놀랍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신 아닌 것'(우상)으로 질투하게 했듯이, 하나님도 이스라엘을 '백성 아닌 자'(이방인)로 질투하게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것을 보고, 이스라엘이 질투가 나서 다시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 '시기 나게'라는 말이 11장의 열쇠가 됩니다(11:11, 14). 하나님의 심판조차 이스라엘을 되찾으시려는 사랑의 전략입니다.
이스라엘은 '몰랐던'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이미 1,400년 전에 이방인의 부르심을 예언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인용 — 신 32:21(70인역). 모세의 노래는 이스라엘의 역사 전체(선택, 배신, 심판, 회복)를 요약한 예언적 노래입니다.
미련한 백성 — 원문 에트노스 아쉬네토스, '깨닫지 못하는 민족'. 1:21 "미련한(아쉬네토스) 마음이 어두워졌나니"와 같은 단어로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신 32:21나도 백성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국민으로 그들의 분노를 격발하리로다
롬 11:11, 14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는 곧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케 하여
행 13:45-48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20이사야가 담대히 말했다 — 나를 찾지 않던 자들에게 찾아졌다
또한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내가 나를 찾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바 되고 내게 문의하지 아니한 자들에게 나타났노라 말하였고
직역 또한 이사야는 대담하게 말하기를, "내가 나를 찾지 않던 자들에게 발견되었고, 나를 구하지 않던 자들에게 나타났다" 하였다.
세 번째 증인은 이사야입니다. 바울은 이사야가 "매우 담대하여" 말했다고 합니다. 왜 '담대하게'일까요? 이사야가 한 말이 유대인들에게 매우 충격적인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5:1 "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찾지도 않았던 사람들이 하나님을 만났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9:30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의 성경적 근거입니다.
여기에 은혜의 본질이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찾아서 만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찾지도 않는 사람에게 먼저 찾아오셨습니다. 3:11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라고 했던 그 인간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오셨습니다. 이방인 성도들은 모두 이 말씀의 증인입니다. 우리 중 누가 처음부터 하나님을 찾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찾아오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인용 — 사 65:1(70인역). 바울은 두 구절의 순서를 바꾸어 인용했습니다.
매우 담대하여아포톨마오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감히, 대담하게'.
함께 읽을 말씀
사 65:1나는 나를 구하지 아니하던 자에게 물음을 받았으며 나를 찾지 아니하던 자에게 찾아냄이 되었으며
롬 9:30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롬 3:11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요일 4:10, 19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21불순종하고 거스르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손을 벌렸다
이스라엘을 대하여 가로되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느니라
직역 그러나 이스라엘에 대하여는 말하기를, "불순종하고 거역하는 백성에게 내가 하루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였다.
10장의 마지막 절은 성경에서 가장 가슴 아픈 장면 중 하나입니다. 이사야 65:2의 인용입니다. 20절에서 이방인에게는 찾지 않아도 찾아오셨던 하나님이, 21절에서 이스라엘에게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하나님은 팔을 활짝 벌리고 서 계셨습니다.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는 부모처럼, 하루 종일, 아침부터 저녁까지, 그 팔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탕자의 아버지가 아들이 아직 멀리 있을 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었듯(눅 15:20),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안으려고 팔을 벌리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이었습니다. 그 팔에 안기지 않고 등을 돌렸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이 넘어진 진짜 이유입니다. 듣지 못해서도(18절), 몰라서도(19절)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팔을 벌리셨는데, 그들이 거절했습니다. 9장이 하나님의 주권을 말했다면, 10장은 이렇게 사람의 책임으로 끝납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팔은 '종일' 벌려져 있습니다. 아직 내려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11장은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11:1)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벌린 팔은 결국 십자가에서 가장 넓게 펼쳐졌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팔을 벌리신 채 "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눅 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인용 — 사 65:2(70인역). 20절의 65:1과 이어진 구절입니다. 65:1은 이방인에게, 65:2는 이스라엘에게 적용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