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33절까지 — 사랑 가운데서, 빛 가운데서, 지혜 가운데서 걷고, 성령으로 충만하여 서로 복종하며,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사랑하는 가정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EPHESIANS 5:8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5장 들어가며
하나님을 본받는 자녀의 걸음 — 사랑, 빛, 지혜, 그리고 가정
5장은 4장의 흐름을 그대로 이어 갑니다. 4:32에서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라고 했던 바울은 5:1에서 "그러므로…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고 합니다. 자녀는 아버지를 닮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닮아 갑니다.
5장에는 ‘행하라(걸으라)’가 세 번 나옵니다.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2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8절), 지혜 있는 자 같이 행하라(15절). 사랑, 빛, 지혜. 그리고 그 걸음을 가능하게 하는 힘이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18절)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노래하고, 감사하고, 서로 복종합니다(19–21절).
그리고 21절의 ‘피차 복종하라’는 22절부터 6:9까지 이어지는 가정의 질서로 펼쳐집니다. 아내와 남편(5:22–33), 자녀와 부모(6:1–4), 종과 상전(6:5–9). 바울은 당시 세상의 가정 규범의 틀을 빌려 쓰지만, 그 안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라는 완전히 새로운 내용을 채워 넣습니다. 특히 남편과 아내의 관계를 말하다가 바울은 결국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32절)라고 외칩니다.
핵심 구절
5:8
전에는 어두움, 이제는 빛. 빛 ‘가운데’ 있는 것이 아니라 빛 ‘자체’가 되었습니다.
성령 충만
5:18–21
술이 아니라 성령에 사로잡히라. 그 열매는 노래, 감사, 그리고 서로 복종입니다.
가정의 기준
5:25
남편들이 받은 명령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같이’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큰 비밀
5:32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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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생축"
牲畜, 제사에 바치는 짐승. 여기서는 제물, 희생.
3절 "음행"
淫行, 원문 포르네이아. 결혼 밖의 모든 성적 부도덕.
4절 "누추함", "희롱의 말"
陋醜, 추잡함. 戲弄, 상스러운 농담. 원문 유트라펠리아.
10절 "시험하여 보라"
試驗, 분별하여 확인하라. 금속을 시험하듯.
16절 "세월을 아끼라"
원문 ‘때를 사들이라’. 기회를 붙잡으라.
18절 "방탕"
放蕩, 원문 아소티아. 구원받을 수 없는 지경의 낭비.
19절 "화답하며"
和答, 서로 주고받으며 노래함.
21절 "피차 복종하라"
彼此, 서로. 원문 휘포타소, ‘아래에 자리를 잡다’.
26절 "물로 씻어"
결혼 전 신부의 목욕, 또는 침례를 떠올리게 하는 표현.
33절 "경외하라"
敬畏, 원문 포베오. 존경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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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7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바울은 그리스도인 삶의 가장 높은 기준을 제시합니다. 하나님을 본받으라. 그리고 그 본받음의 중심은 사랑입니다(1–2절). 이어서 사랑을 흉내 내는 가짜들, 곧 음행과 탐욕을 경계합니다(3–7절). 세상은 종종 욕망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참 사랑은 자기를 내어 주고(2절), 거짓 사랑은 남을 이용합니다(3절).
1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라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직역 그러므로 사랑받는 자녀들로서 하나님을 본받는 자들이 되라.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 신약에서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말이 직접 나오는 곳은 여기뿐입니다. ‘본받는 자’는 원문으로 미메테스, 영어 mimic(흉내 내다)의 어원입니다. 아이들이 아버지의 걸음걸이와 말투를 흉내 내듯,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을 흉내 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나님을 흉내 낼 수 있습니까?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무한하신 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이나 전지를 흉내 낼 수는 없습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바로 앞 4:32, 곧 하나님께서 우리를 용서하신 것, 그리고 다음 5:2,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흉내 내는 것, 그것이 하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눅 6:36)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입니다.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명령은 ‘잘하면 사랑해 주겠다’가 아니라 ‘너는 이미 사랑받는 자녀이니’에서 시작합니다. 사랑받는 아이는 부모를 닮고 싶어 합니다. 두려워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1:5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신 뜻대로 아들들로 삼으셨습니다. 그 사랑을 아는 자녀가 아버지를 닮아 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본받는 자미메테스 — 바울은 자주 ‘나를 본받으라’(고전 4:16, 11:1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 된 것같이 너희는 나를 본받는 자 되라", 빌 3:17)고 말하지만, ‘하나님을 본받으라’는 여기뿐입니다.
사랑을 입은아가페타 — ‘사랑받는’. 1:6 "그의 사랑하시는 자(그리스도)"와 같은 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러므로 — 원문 ‘운’. 4:32에서 바로 이어집니다. 장 구분이 없었다면 4:32–5:2는 한 덩어리로 읽혔을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눅 6:35-36원수를 사랑하고… 그리하면 너희 상이 클 것이요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아들이 되리니… 너희 아버지의 자비하심같이 너희도 자비하라
마 5:44-45, 48원수를 사랑하며… 이같이 한즉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아들이 되리니… 너희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심과 같이 너희도 온전하라
레 19:2너희 하나님 여호와 내가 거룩함이니라 너희도 거룩하라
요일 4:11, 19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벧전 1:14-16너희가 순종하는 자식처럼… 너희를 부르신 거룩한 자처럼 너희도 모든 행실에 거룩한 자가 되라
2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같이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 향기로운 제물로 자신을 버리셨다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리셨느니라
직역 그리고 사랑 안에서 걸으라. 그리스도께서도 너희를 사랑하셔서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하나님께 향기로운 예물과 제물로 내어 주신 것처럼.
하나님을 본받는 구체적인 모습은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입니다. 4–6장에 나오는 다섯 번의 ‘행하라(걸으라)’ 가운데 두 번째입니다. 사랑은 가끔 하는 특별한 행동이 아니라 매일 걷는 길입니다.
그 사랑의 기준은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이 어떤 사랑이었는지 바로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원문은 ‘자기를 내어 주셨다’입니다. 세상의 사랑은 대개 ‘네가 나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를 묻지만, 그리스도의 사랑은 ‘내가 너를 위해 무엇을 줄 수 있나’를 묻습니다. 그리고 그분은 가장 귀한 것, 자기 자신을 주셨습니다. 사랑은 감정이기 전에 희생입니다. 이 표현은 25절에서 남편들에게 다시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그 자신을 주심같이."
그 희생은 "향기로운 제물과 생축으로 하나님께" 드려졌습니다. 레위기의 제사 언어입니다. 번제를 드리면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레 1:9, 13, 17)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제사를 기쁘게 받으셨다는 뜻입니다. 구약의 모든 제사가 가리키던 단 하나의 완전한 제사가 십자가였습니다. 그리고 그 제사를 하나님은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이제 우리가 서로를 위해 희생하며 사랑할 때, 그 사랑도 하나님 앞에 향기로운 제물이 됩니다(빌 4:18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원어 · 번역 노트
자신을 버리사파레도켄 헤아우톤 — ‘자기를 넘겨주셨다’. 갈 2:20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5:25. 4:19에서 이방인들이 자신을 방탕에 ‘방임했다(넘겨주었다)’고 한 같은 동사가,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우리를 위해 ‘넘겨주셨다’로 쓰였습니다. 같은 동사, 정반대의 내어 줌입니다.
향기로운오스메 유오디아스 — 창 8:21 노아의 제사 "여호와께서 그 향기를 흠향하시고", 출 29:18, 레 1:9. 고후 2:15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제물과 생축 — 원문 ‘프로스포라 카이 쒸시아’. 시 40:6(70인역 39:7) "제사와 예물을 기뻐 아니하시며"와 같은 짝으로, 히 10:5–10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드려진 단번의 제사에 적용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 13:34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요 15:13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갈 2:20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레 1:9제사장은 그 전부를 단 위에 불살라 번제를 삼을지니 이는 화제라 여호와께 향기로운 냄새니라
히 10:10, 14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단번에 드리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거룩함을 얻었노라…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
요일 3:16그가 우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셨으니 우리가 이로써 사랑을 알고 우리도 형제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이 마땅하니라
3음행과 더러운 것과 탐욕은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음행과 온갖 더러운 것과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이는 성도의 마땅한 바니라
직역 음행과 온갖 더러움과 탐욕은 너희 가운데 이름조차 불리지 않게 하라. 이것이 성도들에게 어울리는 것이다.
2절의 참 사랑과 정반대되는 것들입니다. 음행과 탐욕은 둘 다 사랑처럼 보이지만 실은 사랑의 가짜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위해 나를 주고, 음욕과 탐욕은 나를 위해 상대를 가집니다. 2절의 그리스도는 ‘자신을 내어 주셨고’, 3절의 탐욕은 ‘더 가지려’ 합니다.
"음행." 원문 포르네이아는 혼전 성관계, 간음, 매춘 등 결혼 밖의 모든 성적 관계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로마 세계는 성적으로 매우 방종했습니다. 결혼한 남자가 노예나 창녀와 관계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고, 신전에서 제의적인 매춘이 이루어지기도 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성을 결혼 안에서만 귀하게 지키는 것은 놀랍도록 다른 삶이었습니다.
"탐욕." 바울은 성적인 죄와 물질에 대한 탐욕을 나란히 둡니다(4:19에서도 그랬습니다). 둘 다 ‘더, 더’를 외치며 만족을 모르는 마음에서 나옵니다. 우리는 성적인 죄는 심각하게 여기면서도 탐욕은 너그럽게 봅니다. 그러나 바울은 탐욕도 똑같이 ‘이름조차 부르지 말라’고 합니다.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아예 교회 안에서 그런 이야기가 나올 여지조차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런 죄가 있다는 소문조차 들리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그 이유는 "성도의 마땅한 바", 곧 거룩한 사람들에게 어울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1:1과 1:4에서 우리는 ‘거룩하고 흠이 없게’ 택함받은 ‘성도’입니다. 왕자가 거지 옷을 입지 않는 것처럼, 성도는 성도답게 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음행포르네이아 — 영어 pornography의 어원. 고전 6:18 "음행을 피하라", 살전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이름이라도 부르지 — 성경이 성에 대해 말하지 말라는 뜻은 아닙니다. 성경은 성을 하나님의 선물로 아름답게 말합니다(아가서, 창 2:24–25). 다만 교회 안에서 음행이 일상적인 화제가 되거나 용인되지 않게 하라는 뜻입니다.
마땅한프레페이 — ‘어울리다, 걸맞다’. 딛 2:1 "바른 교훈에 합한 것을 말하여".
함께 읽을 말씀
고전 6:18-20음행을 피하라…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살전 4:3-5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곧 음란을 버리고…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과 같이 색욕을 좇지 말고
골 3:5그러므로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 곧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히 13:4-5모든 사람은 혼인을 귀히 여기고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 하라…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출 20:14, 17간음하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4누추함과 어리석은 말과 희롱의 말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하라
누추함과 어리석은 말이나 희롱의 말이 마땅치 아니하니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직역 추잡함과 어리석은 말과 상스러운 농담도 어울리지 않는다. 오히려 감사하라.
3절이 행동이었다면 4절은 말입니다. 4:29의 ‘더러운 말’을 더 구체적으로 짚습니다. 세 가지입니다.
① "누추함." 추잡하고 수치스러운 말이나 태도입니다. ② "어리석은 말." 원문은 ‘바보의 말’, 아무 생각 없이 내뱉는 저속한 잡담입니다. ③ "희롱의 말." 원문 유트라펠리아는 흥미로운 단어입니다. 원래 아리스토텔레스는 이 말을 ‘재치 있는 대화’라는 좋은 뜻으로 썼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재치를 가장한 상스러운 농담, 특히 성적인 농담을 가리키게 되었습니다. 모임에서 분위기를 띄운다며 하는 야한 농담, 누군가를 웃음거리로 만드는 농담이 여기에 해당합니다.
바울은 유머 자체를 금하지 않습니다. 웃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잠 17:22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 다만 3절의 음행과 탐욕을 가볍게 만들고, 사람을 더럽히는 말을 경계합니다. 죄를 농담거리로 삼으면 죄를 가볍게 여기게 됩니다.
그 대신 바울이 제안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돌이켜 감사하는 말을 하라." 놀라운 해결책입니다. 더러운 농담의 반대는 엄숙한 침묵이 아니라 감사입니다. 원문에서 ‘희롱의 말(유트라펠리아)’과 ‘감사(유카리스티아)’는 소리가 비슷한 말놀이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과 몸과 물질을 더럽히는 대신, 그것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면 그 선물이 다시 거룩해집니다. 감사하는 입에서는 추한 말이 나오기 어렵습니다. 20절 "범사에…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로 이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희롱의 말유트라펠리아 — ‘잘(유) + 방향을 바꾸다(트레포)’, 곧 말을 재치 있게 돌리는 것. 아리스토텔레스 『니코마코스 윤리학』 4.8에서는 무례함과 익살꾼 사이의 중용인 ‘재치’였습니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어리석은 말모롤로기아 — ‘바보(모로스) + 말(로고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감사유카리스티아 — ‘좋은(유) + 은혜(카리스)’. 성찬을 ‘유카리스트’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서 왔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3: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엡 4:29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살전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딤전 4:4-5하나님의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니라
잠 10:19말이 많으면 허물을 면키 어려우나 그 입술을 제어하는 자는 지혜가 있느니라
5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하나님 나라의 기업을 얻지 못한다
너희도 정녕히 이것을 알거니와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직역 너희는 이것을 확실히 알라. 음행하는 자나 더러운 자나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는 누구도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에서 유업을 갖지 못한다.
바울은 아주 엄숙하게 경고합니다. "너희도 정녕히 이것을 알거니와." 이것은 새로운 말이 아니라 성도라면 분명히 아는 진리입니다.
먼저 놀라운 동일시가 있습니다. "탐하는 자 곧 우상 숭배자." 탐욕은 우상 숭배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탐욕은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서 만족과 안전과 의미를 찾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돈, 소유, 성공이 내 마음의 왕좌에 앉으면, 그것이 내 신이 됩니다. 예수님은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마 6:24)고 하셨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아데미 신상 앞에 절했지만, 오늘날 우리는 통장 잔고 앞에 절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경고가 나옵니다. 이런 자들은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에서 기업을 얻지 못하리니." 1:14, 18에서 성도들은 영광스러운 기업을 약속받았습니다. 그런데 음행과 탐욕을 삶의 방식으로 삼는 사람은 그 기업이 없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이 한 번이라도 이런 죄를 지으면 구원을 잃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원문은 ‘음행하는 자, 탐하는 자’라는 명사로, 그것이 정체성이 되고 삶의 방식이 된 사람을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고 그 죄 가운데 계속 사는 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면, 그 사람은 정말 그리스도를 만났는지 스스로 물어보아야 합니다(고전 6:9–11).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원문은 하나의 관사로 ‘그리스도와 하나님의 나라’를 묶습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는 같은 나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게 그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우상 숭배자 — 골 3:5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유대 문헌에서도 탐욕과 우상 숭배를 연결했습니다(『열두 족장의 유언』 유다 19:1 "돈을 사랑하는 것은 우상 숭배로 이끈다").
그리스도와 하나님 나라 — 원문 ‘엔 테 바실레이아 투 크리스투 카이 테우’. ‘그리스도’와 ‘하나님’이 한 관사 아래 묶여, 일부 학자는 ‘하나님이신 그리스도의 나라’로 읽기도 합니다(딛 2:13, 벧후 1:1과 같은 구조).
정녕히 이것을 알거니와이스테 기노스콘테스 — ‘알아라, 알고 있다’를 겹친 강조. 『새번역』 "여러분은 이것을 확실히 알아 두십시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6:9-11불의한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갈 5:19-21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마 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계 21: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음행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딤전 6:9-10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정욕에 떨어지나니…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6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 이로 인하여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직역 아무도 빈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런 일들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한다.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어떤 헛된 말일까요? ‘몸은 중요하지 않으니 몸으로 무엇을 하든 영혼과는 상관없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니 이 정도는 이해하실 거야’, ‘다들 그렇게 사는데 뭐’, ‘은혜로 구원받았으니 어떻게 살아도 괜찮아’. 초대교회 안에도 이런 말로 죄를 가볍게 만드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고전 6:12–13, 유 1:4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문화, 드라마, 광고, 때로는 교회 안의 목소리까지 죄를 별것 아닌 것처럼 말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이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하나님은 죄를 가볍게 보지 않으십니다. 2:2–3에서 우리도 한때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있었고 ‘본질상 진노의 자녀’였습니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그 진노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그러니 그 진노에서 건짐받은 사람이 다시 그 진노를 부르는 삶으로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임하나니’는 현재형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마지막 날에만 오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죄의 결과 속에 나타나고 있습니다(롬 1:18 "하나님의 진노가…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무너진 가정, 망가진 몸과 마음, 깨어진 관계는 죄가 결코 공짜가 아니라는 증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헛된케노스 — ‘텅 빈’.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노략할까 주의하라". 진리가 담기지 않은 말.
불순종의 아들들 — 2:2와 같은 표현. 골 3:6 "이것들을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느니라".
롬 1:18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
유 1:4경건치 아니하여 우리 하나님의 은혜를 도리어 색욕거리로 바꾸고
갈 6:7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만홀히 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렘 6:14평강하지 않으나 평강하다 평강하다 하도다
7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그러므로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직역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지 말라.
"저희와 함께 참예하는 자 되지 말라." 원문의 ‘함께 참예하는 자’는 3:6에서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되었다고 할 때 쓴 바로 그 단어입니다. 바울은 일부러 같은 말을 씁니다. 너희는 이미 하나님의 약속에 함께 참여하는 자가 되었다. 그런데 어떻게 다시 불순종의 아들들의 일에 함께 참여할 수 있겠느냐?
이 말은 불신자들과 아예 교제하지 말라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9–10에서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예수님도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식사하셨습니다. 문제는 그들과 함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죄에 함께 참여하는 것입니다. 그들을 사랑하되 그들의 어두움을 함께 나누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8절 이하처럼 빛으로 그들 사이를 비춥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참예하는 자쉼메토코이 — 신약에서 3:6과 5:7에만 나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함께 참여할 것인가, 불순종의 일에 함께 참여할 것인가.
11절과의 연결 —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쉰코이노네이테) 도리어 책망하라". 7절의 원칙이 11절에서 다시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고전 5:9-11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너희가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고후 6:14-17너희는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 빛과 어두움이 어찌 사귀며
요 17:15-16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위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게 보전하시기를 위함이니이다
시 1:1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사랑의 반대는 미움이 아니라 탐욕입니다
세상은 욕망을 사랑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사랑은 ‘자신을 내어 주는’ 사랑이었고, 음욕과 탐욕은 ‘남을 가지려는’ 욕망입니다. 사랑은 상대를 위해 나를 쓰고, 탐욕은 나를 위해 상대를 씁니다.
오늘 나의 관계와 소유를 돌아봅시다. 나는 사람을 사랑하고 있습니까, 사용하고 있습니까? 내 마음의 왕좌에 앉아 있는 것은 하나님입니까, 다른 무엇입니까? 그리고 더러운 말 대신 감사하는 말로 입술을 채워 봅시다. 감사는 탐욕의 가장 좋은 해독제입니다.
5:8–14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바울은 이제 빛과 어두움의 그림으로 그리스도인의 정체성과 삶을 말합니다. 2장의 ‘전에는… 이제는’이 여기서 다시 나옵니다. 그런데 바울은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 속에 있었다’고 하지 않고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었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제는 빛 속에 있다’가 아니라 ‘이제는 빛이다’라고 합니다.
이 단락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너희는 빛이다(8절) → 빛의 열매를 맺으라(9절) → 주께서 기뻐하실 것을 분별하라(10절) → 어두움의 일을 드러내라(11–13절) → 잠자는 자여 깨어라(14절).
8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직역 너희는 한때 어두움이었으나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다. 빛의 자녀들로서 걸으라.
2장의 ‘전에는… 이제는’이 여기서 가장 선명하게 나옵니다. "너희가 전에는 어두움이더니." 바울은 ‘어두움 속에 있었다’가 아니라 ‘어두움이었다’고 말합니다. 어두움은 우리가 있던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였습니다. 4:18 "총명이 어두워지고"처럼, 어두움이 우리 안에 가득해서 우리가 곧 어두움이었습니다.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제 빛 ‘속에’ 있을 뿐 아니라 빛 ‘자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마 5:14)고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스스로 빛나는 것이 아닙니다. "주 안에서" 빛입니다. 달이 스스로 빛나지 않고 태양 빛을 반사하듯, 우리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요 8:12)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빛납니다. 주 밖으로 나가면 다시 어두워집니다.
그러므로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다시 ‘존재 → 행동’의 순서입니다. 너는 빛이니 빛답게 걸으라. 빛은 숨기려 해도 숨겨지지 않습니다. 빛은 어두움을 밝히고, 길을 보여 주고, 생명을 자라게 합니다. 빛의 자녀는 숨기는 것 없이 투명하게 살고(12–13절), 주변을 밝히며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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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두움, 빛 — 원문은 ‘에테 가르 포테 스코토스, 뉜 데 포스 엔 퀴리오’. 두 명사 모두 관사 없이 술어로 쓰여, ‘어두움 같은’이 아니라 ‘어두움 자체’를 말합니다.
빛의 자녀들 — 히브리식 표현으로, 빛의 성품을 가진 사람들. 눅 16:8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요 12:36, 살전 5:5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사해 문서(쿰란 공동체)도 자신들을 ‘빛의 아들들’, 원수들을 ‘어두움의 아들들’이라고 불렀습니다.
행하라 — 4–5장의 다섯 번의 ‘행하라(페리파테오)’ 가운데 네 번째(4:1, 17, 5:2, 8, 15).
함께 읽을 말씀
마 5:14-16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요 8:12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살전 5:4-5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라
벧전 2:9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사 60:1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9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다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직역 (빛의 열매는 모든 선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기 때문이다.)
8절과 10절 사이에 들어간 괄호 문장입니다. 빛의 자녀가 어떤 모습인지 보여 줍니다. 빛은 "열매"를 맺습니다. 햇빛을 받은 나무가 열매를 맺듯, 그리스도의 빛을 받은 사람은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습니다. 11절의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과 대조됩니다. 어두움은 아무것도 자라게 하지 못합니다.
빛의 열매는 세 가지입니다. ① 착함.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고 선을 베푸는 것. ② 의로움. 하나님과 사람 앞에서 바르게 사는 것. ③ 진실함. 거짓 없이 참되게 사는 것. 이 세 가지는 각각 3–6절의 세 가지 어두움과 대비됩니다. 탐욕 대신 착함(너그러움), 음행과 더러움 대신 의로움, 헛된 말과 속임 대신 진실함.
그리고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빛의 열매는 삶의 일부 영역이 아니라 모든 영역에서 맺힙니다. 교회에서만 착하고 직장에서는 그렇지 않은 것은 빛의 열매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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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열매 — 대부분의 오래된 사본은 ‘빛의 열매’이지만, 일부 후대 사본(KJV가 따른 사본)은 갈 5:22의 영향으로 ‘성령의 열매’로 되어 있습니다. 문맥상 ‘빛의 열매’가 원래 본문으로 보입니다.
착함아가토쉬네 — 갈 5:22 성령의 열매 가운데 ‘양선’, 롬 15:14 "선함이 가득하고".
괄호 — 원문의 문장 흐름은 8절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에서 10절 ‘시험하여 보라’로 바로 이어집니다. 9절은 설명을 위한 삽입이라 『개역한글』도 괄호로 묶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갈 5:22-23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요 15:5, 8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얻으실 것이요
빌 1:11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미 6:8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
10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직역 무엇이 주께 기쁨이 되는지 분별하면서.
빛의 자녀는 어떻게 걷습니까? "주께 기쁘시게 할 것이 무엇인가 시험하여 보라." ‘시험하다’는 원래 금속 세공인이 금이나 은의 순도를 불로 시험하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진짜인지 가짜인지 확인하는 것입니다. 빛의 자녀는 매 순간 ‘이것이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를 묻고 분별합니다.
성경은 모든 상황에 대해 구체적인 규칙을 다 주지 않습니다. 이 영화를 볼까, 이 직장으로 옮길까, 이 말을 할까 말까. 그때마다 그리스도인은 ‘주께서 기뻐하실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시험해 봅니다. 이것은 규칙을 지키는 것보다 더 깊은 일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아서 그것을 하려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이 분별력은 마음이 새로워질 때 자랍니다(롬 12:2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같은 단어들이 쓰였습니다).
17절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와 짝을 이룹니다. 빛의 자녀와 지혜로운 자녀는 모두 주님의 뜻을 분별하는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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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하여 보라도키마조 — ‘시험하여 인정하다’. 롬 12:2 "분별하도록", 빌 1:10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살전 5:21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고".
기쁘시게 할유아레스토스 — ‘잘(유) + 기쁘게 하다(아레스코)’. 롬 12:1–2, 14:18, 고후 5:9 "그러므로 우리는…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함께 읽을 말씀
롬 12:2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고후 5:9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가 되기를 힘쓰노라
빌 1:9-10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골 1:10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히 13:21그 앞에 즐거운 것을 그리스도 예수로 말미암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
11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너희는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고 도리어 책망하라
직역 그리고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들에 함께 참여하지 말고, 오히려 그것들을 드러내라.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 9절의 ‘빛의 열매’와 대조됩니다. 어두움의 일은 열매가 없습니다. 당장은 즐거움을 주는 것 같지만, 결국 아무것도 남기지 않습니다. 남는 것은 후회와 공허함과 상처뿐입니다. 4:17 ‘허망함’의 다른 표현입니다.
빛의 자녀는 그 일에 "참예하지 말고", 곧 함께 교제하지 말아야 합니다(7절과 같은 원칙). 그런데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도리어 책망하라." ‘책망하다’는 원래 ‘빛에 비추어 드러내다, 폭로하다’는 뜻입니다. 숨겨진 것을 밝은 데로 끌어내어 그 실체를 보여 주는 것입니다. 여기서 시작해 ‘잘못을 깨닫게 하다, 꾸짖어 바로잡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어떻게 책망합니까? 꼭 말로 꾸짖는 것만이 아닙니다. 빛의 자녀가 다르게 사는 것 자체가 어두움을 드러냅니다. 어두운 방에 촛불 하나를 켜면 방 안의 먼지가 보이듯, 정직하게 사는 사람 하나가 있으면 주변의 부정직이 드러납니다. 물론 필요할 때는 사랑으로 말해야 합니다(4:1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그러나 그 책망의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회복입니다. 13–14절에서 보듯, 빛에 드러난 것은 빛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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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망하라엘렝코 — ‘드러내다, 확신시키다, 꾸짖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엘렝코) 함이요", 요 16:8 성령께서 "죄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딤후 3:16, 4:2.
참예하지쉰코이노네오 — ‘함께(쉰) 교제하다(코이노네오)’. 빌 4:14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계 18:4 "그 죄에 참예하지 말고".
함께 읽을 말씀
요 3:19-21빛이 세상에 왔으되 사람들이 자기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것이니라…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롬 13:12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갈 6:1형제들아 사람이 만일 무슨 범죄한 일이 드러나거든 신령한 너희는 온유한 심령으로 그러한 자를 바로잡고
레 19:17네 이웃을 인하여 죄를 당치 않도록 그를 반드시 견책하라
마 18:15네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가서 너와 그 사람과만 상대하여 권고하라
12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라
저희의 은밀히 행하는 것들은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라
직역 그들이 은밀히 행하는 일들은 말하는 것조차 부끄럽기 때문이다.
"은밀히 행하는 것들." 어두움의 일은 숨어서 합니다.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에는 밤에 열리는 비밀 종교 의식이 있었고, 그 안에서 술 취함과 성적 방종이 벌어졌습니다. 아데미 신전 주변에도 그런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1세기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오늘날도 사람들은 화면 뒤에서, 익명성 뒤에서, 닫힌 문 뒤에서 은밀한 죄를 짓습니다.
바울은 그것들이 "말하기도 부끄러운 것"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그는 그 일들을 자세히 묘사하지 않습니다. 3절의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와 같은 태도입니다. 책망한다는 것(11절)이 죄를 자세히 들추어 이야기하며 즐기는 것이 아님을 보여 줍니다. 남의 죄를 시시콜콜 이야기하는 것도 또 하나의 어두움이 될 수 있습니다.
빛의 자녀는 숨길 것이 없는 삶을 삽니다. 누가 내 휴대폰을 보아도, 내 통장을 보아도, 내 일정표를 보아도 부끄럽지 않은 삶. 그것이 빛 가운데 걷는 삶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은밀히크뤼페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롬 2:16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날", 고전 4:5 "어두움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부끄러운아이스크로스 — 4절 ‘누추함(아이스크로테스)’과 같은 뿌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롬 13:13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눅 12:2-3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요 3:20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겔 8:12인자야 이스라엘 족속의 장로들이 각각 그 우상의 방안 어두운 가운데서 행하는 것을 네가 보았느냐
13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그러나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직역 그러나 모든 것이 빛에 의해 드러나면 밝히 보이게 된다. 밝히 보이게 된 것은 모두 빛이기 때문이다.
해석하기 쉽지 않은 구절이지만, 소망이 가득한 말씀입니다. "책망을 받는 모든 것이 빛으로 나타나나니." 11절에서 어두움의 일을 ‘책망하라(드러내라)’고 했습니다. 빛이 비추면 어두움에 숨어 있던 것이 그 정체를 드러냅니다. 죄는 어두움 속에서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빛 아래에서는 얼마나 추하고 어리석은지 드러납니다.
그런데 그다음 말이 놀랍습니다. "나타나지는 것마다 빛이니라." 빛에 드러난 것이 빛이 됩니다. 이것은 무슨 뜻일까요? 빛은 단지 어두움을 폭로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어두움을 변화시킨다는 뜻입니다. 죄가 드러나 회개할 때, 그 사람은 어두움에서 빛으로 옮겨집니다. 8절에서 ‘전에는 어두움이던 너희가 이제는 빛’이 된 것과 같습니다. 숨겨 두었던 죄를 하나님 앞에, 그리고 믿을 만한 형제 앞에 내어놓을 때, 그 죄는 힘을 잃고 그 사람은 자유로워집니다(요일 1:7–9).
그러므로 빛의 자녀가 어두움을 ‘책망’하는 목적은 정죄가 아니라 구원입니다. 어두움 속에 있는 사람을 빛으로 이끌어 그도 빛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바로 다음 14절의 부름, "잠자는 자여 깨어서… 일어나라"로 이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나타나다파네로오 — ‘밝히 보이게 하다’. 요 3:21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파네로테) 함이라", 고전 4:5.
해석의 어려움 — 13절 후반은 원문이 압축되어 있어 해석이 다양합니다. ‘드러난 것은 모두 빛 앞에 있게 된다’는 뜻으로 보는 해석도 있고, 『개역한글』처럼 ‘드러난 것은 빛이 된다’는 변화의 뜻으로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14절의 부름(깨어 일어나 빛을 받으라)을 보면 변화의 뜻이 자연스럽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요일 1:5-9하나님은 빛이시라… 빛 가운데 행하면…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요 3:21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약 5:16이러므로 너희 죄를 서로 고하며 병 낫기를 위하여 서로 기도하라
시 32:3-5내가 토설치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내가 이르기를 내 허물을 여호와께 자복하리라 하고 주께 내 죄를 아뢰고
14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취이시리라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취이시리라 하셨느니라
직역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잠자는 자여 일어나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시리라."
바울은 짧은 노래 한 구절을 인용합니다.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취이시리라." 그런데 구약에는 이와 정확히 같은 구절이 없습니다. 많은 학자는 이것이 초대교회의 찬송, 특히 침례 때 부르던 노래라고 봅니다. 침례받는 사람이 물에서 올라올 때 회중이 이 노래를 불렀을 것입니다. 이사야 60:1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와 26:19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를 바탕으로 만든 찬송으로 보입니다.
이 노래는 세 마디로 복음 전체를 담습니다. ① "잠자는 자여 깨어서." 어두움 속에서 잠든 영혼을 깨우는 부름입니다. ②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2:1의 ‘죽었던 너희’에게 하는 부활의 부름입니다. 나사로를 부르신 예수님의 음성처럼(요 11:43). ③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비취이시리라." 깨어 일어난 사람 위로 그리스도께서 아침 해처럼 떠오르십니다. 어두움(8절)에서 빛으로, 잠에서 깸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이 노래는 두 부류에게 들립니다. 하나는 아직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빛의 자녀가 어두움을 드러낼 때(13절), 그들에게 이 부름이 들려야 합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인이면서 영적으로 졸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로마서 13:11–12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혹시 나의 신앙이 졸고 있다면, 오늘 이 노래는 나를 향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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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용의 출처 — ‘그러므로 이르시기를(디오 레게이)’은 4:8에서 시편을 인용할 때와 같은 공식입니다. 그러나 정확한 구약 본문이 없어, 대부분의 학자는 초대교회의 찬송이나 침례 예식의 노래로 봅니다. 사 26:19, 51:17, 52:1, 60:1–2 등이 배경으로 꼽힙니다. 2세기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이 노래의 다음 구절을 인용하기도 했습니다("부활의 주, 새벽별보다 먼저 나신 분…").
비취이시리라에피파우세이 — ‘위로 빛을 비추다, 동이 트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마 4:16 "흑암에 앉은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사망의 땅과 그늘에 앉은 자들에게 빛이 비취었도다".
침례와 빛 — 2세기 순교자 유스티누스는 침례를 ‘조명(포티스모스)’이라고 불렀고, 침례받은 사람을 ‘빛을 받은 자’라고 불렀습니다(히 6:4 "한 번 비췸을 얻고").
함께 읽을 말씀
사 60:1-2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보라 어두움이 땅을 덮을 것이며… 오직 여호와께서 네 위에 임하실 것이며
사 26:19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롬 13:11-12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으니… 밤이 깊고 낮이 가까왔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말 4:2내 이름을 경외하는 너희에게는 의로운 해가 떠올라서 치료하는 광선을 발하리니
요 11:43-44나사로야 나오라 하시니 죽은 자가 수족을 베로 동인 채로 나오는데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는 빛을 반사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전에 어두움이었지만 이제는 주 안에서 빛입니다. 달이 태양 빛을 받아 밤을 비추듯, 우리는 그리스도의 빛을 받아 우리가 있는 자리를 비춥니다. 빛의 열매는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입니다.
혹시 숨겨 둔 어두움이 있습니까? 빛 앞에 내어놓을 때, 그것은 더 이상 나를 지배하지 못하고 오히려 빛이 됩니다. 그리고 혹시 신앙이 졸고 있다면, 오늘 이 노래를 들으십시오. "잠자는 자여 깨어라. 그리스도께서 너를 비추시리라."
5:15–21지혜 있는 자 같이 — 술 취하지 말고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세 번째 걸음은 지혜입니다.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15절). 지혜로운 사람은 시간을 귀하게 쓰고(16절), 주의 뜻을 분별합니다(17절). 그리고 그 지혜로운 삶의 원천이 나옵니다.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18절).
원문을 보면 18절의 ‘충만을 받으라’라는 명령 하나에 다섯 개의 분사가 매달려 있습니다. ① 서로 화답하며(19절) ② 노래하며 ③ 찬송하며(19절) ④ 감사하며(20절) ⑤ 피차 복종하며(21절).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이렇게 삽니다. 그리고 다섯 번째 ‘복종하며’가 22절부터의 가정 이야기로 이어집니다. 그러니까 가정의 질서는 성령 충만의 열매로 읽어야 합니다.
15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있는 자 같이 하라
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직역 그러므로 너희가 어떻게 걷는지 정확하게 살피라. 지혜 없는 자처럼 하지 말고 지혜로운 자처럼 하여,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행하라(걸으라)’입니다.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자세히’는 ‘정확하게, 꼼꼼하게’라는 뜻입니다. 절벽 옆의 좁은 길을 걷는 사람처럼, 한 걸음 한 걸음 조심스럽게 살피며 걸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은 대충 흘러가는 대로 사는 삶이 아니라 깨어서 살피며 사는 삶입니다. 14절에서 ‘잠자는 자여 깨어라’고 했습니다. 깨어난 사람은 이제 자기 걸음을 살핍니다.
그 기준은 "지혜 없는 자 같이 하지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입니다. 성경에서 지혜는 머리가 좋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시작합니다(잠 9:10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지혜로운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기 삶을 보고, 영원의 관점에서 오늘을 삽니다. 잠언은 지혜로운 자와 미련한 자의 대조로 가득합니다. 예수님도 반석 위에 집을 지은 지혜로운 사람과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을 대조하셨습니다(마 7:24–27).
원어 · 번역 노트
자세히아크리보스 — ‘정확하게’. 눅 1:3 "근원부터 자세히 미루어 살핀 나도", 살전 5:2 "자세히 앎이라".
행하라 — 4–5장 다섯 번의 ‘걸음’: 부르심에 합당하게(4:1), 이방인같이 말고(4:17), 사랑 가운데서(5:2), 빛의 자녀처럼(5:8), 지혜 있는 자같이(5:15).
함께 읽을 말씀
골 4:5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잠 9:10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 거룩하신 자를 아는 것이 명철이니라
마 7:24-27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시 90: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잠 4:26네 발의 행할 첩경을 평탄케 하며 네 모든 길을 든든히 하라
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직역 때를 사들이라. 날들이 악하기 때문이다.
지혜로운 사람의 첫 번째 특징은 시간을 다루는 방식입니다. "세월을 아끼라." 원문은 아주 생생한 말입니다. ‘때를 사들이라’입니다. ‘사들이다’는 시장에서 물건을 사는 말이고, 1:7의 ‘구속하다’와 같은 뿌리입니다. 장사꾼이 좋은 물건을 보면 놓치지 않고 사들이듯, 하나님께서 주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고 붙잡으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세월(때)’은 원문으로 카이로스입니다. 헬라어에는 시간을 뜻하는 말이 두 가지 있습니다. ‘크로노스’는 시계로 재는 흘러가는 시간이고, ‘카이로스’는 무언가를 해야 할 적절한 때, 기회의 순간입니다. 바울은 단순히 ‘시간을 아껴 쓰라(크로노스)’고 하지 않고, ‘기회를 사들이라(카이로스)’고 합니다. 누군가를 위로할 기회, 복음을 전할 기회, 용서를 구할 기회, 사랑을 표현할 기회. 그런 순간은 지나가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왜 그래야 합니까? "때가 악하니라." 지금 이 시대는 악한 세력이 활동하는 시대입니다(2:2 "이 세상 풍속", 6:13 "악한 날"). 악한 시대에는 선한 기회가 귀합니다. 그리고 시간은 짧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악한 시대가 영원하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남은 시간을 귀하게 붙잡습니다. 오늘이라는 기회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끼라엑사고라조메노이 — ‘시장(아고라)에서 사들이다’. 갈 3:13, 4:5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에서 그리스도의 구속을 가리키는 말로도 쓰였습니다. 골 4:5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단 2:8(70인역)에서는 ‘시간을 벌다’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세월카이로스 — ‘정해진 때, 기회’. 막 1:15 "때가 찼고", 고후 6:2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카이로스)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갈 6:10 "기회(카이로스)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때가 악하니라 — 6:13 "악한 날에". 암 5:13 "이는 악한 때임이니라".
함께 읽을 말씀
골 4:5외인을 향하여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고후 6:2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
갈 6:9-10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 그러므로 우리는 기회 있는 대로 모든 이에게 착한 일을 하되
요 9:4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시 90:12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약 4:14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깐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17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오직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
직역 그러므로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의 뜻이 무엇인지 깨달으라.
지혜로운 사람의 두 번째 특징은 "주의 뜻이 무엇인가 이해하라"입니다. ‘어리석은 자’는 원문으로 ‘생각이 없는 자’입니다. 머리가 나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고 사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곳간을 크게 짓고 "영혼아 평안히 쉬라"고 했던 부자를 하나님은 ‘어리석은 자’라고 부르셨습니다(눅 12:20). 그는 돈을 버는 데는 영리했지만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주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많은 사람이 ‘이 사람과 결혼할까, 이 회사에 갈까’ 같은 구체적인 결정에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싶어 합니다.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뜻을 먼저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1–4장에 이미 하나님의 뜻이 가득합니다(1:5, 9, 11 "그 뜻"). 그리고 바로 다음 18–21절이 주의 뜻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고, 노래하고, 감사하고, 서로 복종하는 것. 데살로니가전서 4:3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하나님의 뜻이니라". 이미 분명하게 드러난 뜻을 행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구체적인 길도 보여 주십니다.
‘이해하라’는 3:4의 ‘깨달은 것’과 같은 뿌리로, 조각들을 맞추어 전체를 이해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를 구하고, 믿음의 공동체와 함께 분별할 때, 주의 뜻이라는 그림이 맞추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어리석은아프론 — ‘생각(프렌)이 없는(아)’. 눅 12:20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롬 2:20, 고전 15:36.
이해하라쉬니에테 — 3:4 ‘깨달은 것(쉬네시스)’과 같은 뿌리. 마 13:13–15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함이니라".
함께 읽을 말씀
롬 12:2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골 1:9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살전 4:3, 5:16-18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눅 12:20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
시 143:10주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케 하소서
18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직역 포도주에 취하지 말라. 그것은 방탕이다. 오히려 성령으로 충만하게 되라.
에베소서에서 가장 유명한 명령 가운데 하나입니다. 바울은 두 가지 ‘채움’을 대조합니다. 술로 채우는 것과 성령으로 채우는 것.
"술 취하지 말라 이는 방탕한 것이니." 당시 에베소는 포도주의 신 디오니소스(바쿠스) 숭배가 성행하던 곳이었습니다. 사람들은 술에 취해 황홀경에 빠지는 것을 신과 하나가 되는 종교 체험으로 여겼습니다. 바울은 그것이 "방탕"이라고 말합니다. ‘방탕’은 원문으로 ‘구원받을 수 없는 상태’라는 뜻이 담긴 말입니다. 탕자가 아버지의 재산을 ‘허랑방탕하여’ 다 날린 것(눅 15:13)과 같은 말입니다. 술 취함은 사람을 낭비하게 합니다. 돈을, 시간을, 건강을, 관계를, 그리고 자기 자신을.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그 대신 성령으로 채워지라고 합니다. 왜 하필 술과 성령을 비교할까요? 둘 다 사람을 ‘지배하는’ 힘이기 때문입니다. 술 취한 사람은 술의 영향 아래 말하고 행동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은 성령의 영향 아래 말하고 행동합니다. 오순절에 성령 받은 제자들을 보고 사람들이 "새 술이 취하였다"(행 2:13)고 조롱한 것도 그래서입니다. 그러나 결과는 정반대입니다. 술은 사람을 망가뜨리고 관계를 파괴하지만, 성령은 사람을 세우고 공동체를 하나로 만듭니다(19–21절).
이 명령의 문법이 중요합니다(노트 참고). ① 명령형 — 성령 충만은 선택 사항이 아니라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② 수동태 — ‘충만하게 하라’가 아니라 ‘충만하게 되라’입니다. 우리가 노력해서 성령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 나를 내어 드려 그분이 채우시게 하는 것입니다. ③ 현재형 — 한 번 받고 끝나는 체험이 아니라 계속, 날마다 채워지라는 것입니다. 오늘 채워져도 내일 또 채워져야 합니다. ④ 복수 — 개인뿐 아니라 공동체 전체에게 주어진 명령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술 취하지 말라 — 잠 23:31(70인역) "너는 포도주에 취하지 말라(메 메튀스케스테 오이노)"와 거의 같은 말입니다. 성경은 포도주를 마시는 것 자체를 모두 금하지는 않지만(요 2장, 딤전 5:23), 술 취함은 일관되게 죄로 봅니다(잠 20:1, 롬 13:13, 고전 6:10, 갈 5:21). 많은 한국 교회는 성도들의 거룩한 삶과 연약한 형제를 위한 배려(롬 14:21)를 위해 절제를 넘어 금주를 권해 왔습니다.
충만을 받으라플레루스테 엔 프뉴마티 — ‘엔 프뉴마티’는 ‘성령으로(도구)’ 또는 ‘영 안에서(영역)’로 읽힐 수 있습니다. 3:19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게’, 1:23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과 연결하면, 성령께서 하나님의 충만으로 우리를 채우신다는 뜻입니다.
다섯 개의 분사 — 원문에서 18절의 명령(플레루스테) 뒤에 ‘화답하며(랄룬테스), 노래하며(아돈테스), 찬송하며(프살론테스), 감사하며(유카리스툰테스), 복종하며(휘포타소메노이)’가 이어집니다. 이것들은 성령 충만의 결과이자 표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행 2:4, 13-17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또 어떤 이들은 조롱하여 가로되 저희가 새 술이 취하였다 하더라… 때가 제 삼시니 너희 생각과 같이 이 사람들이 취한 것이 아니라
잠 23:29-32재앙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그것이 마침내 뱀같이 물 것이요 독사같이 쏠 것이며
롬 13:13-14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갈 5:16, 25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
행 4:31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눅 15:13그 후 며칠이 못되어 둘째 아들이 재물을 다 모아 가지고 먼 나라에 가 거기서 허랑방탕하여 그 재산을 허비하더니
19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직역 시편과 찬송과 신령한 노래로 서로 말하며, 너희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고 찬양하며,
성령 충만의 첫 번째 열매는 노래입니다. 술 취한 사람들도 노래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노래는 방탕의 노래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은 하나님을 노래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노래하는 신앙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빌립보 감옥에서 한밤중에 찬미했습니다(행 16:25). 감옥에서 이 편지를 쓰는 바울도 노래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노래의 종류가 세 가지로 나옵니다. ① "시" — 구약의 시편입니다. 초대교회는 회당에서 하던 대로 시편을 노래했습니다. ② "찬미" —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찬양하는 새로운 찬송입니다. 빌립보서 2:6–11, 골로새서 1:15–20, 그리고 5:14처럼 신약에 그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③ "신령한 노래" — 성령께서 주시는 노래, 어쩌면 그 자리에서 성령의 감동으로 불렀던 노래입니다. 세 가지를 너무 엄격하게 구분할 필요는 없지만, 오래된 노래와 새로운 노래, 전통과 성령의 새로움이 모두 교회의 예배 안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그 노래에는 두 방향이 있습니다. 첫째, "서로 화답하며". 원문은 ‘서로에게 말하며’입니다. 찬송은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서로에게 들려주는 것이기도 합니다. 찬송 가사를 통해 서로 진리를 가르치고, 서로 위로하고, 서로 격려합니다(골 3:16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함께 부르는 찬송은 공동체를 하나로 묶습니다. 둘째, "너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의 최종 청중은 주님이십니다. 입술로만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릅니다. 목소리가 아름답지 않아도, 음정이 틀려도,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를 주님은 기뻐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시프살모스, 찬미휨노스, 신령한 노래오데 프뉴마티케 — 골 3:16에도 같은 세 단어가 나옵니다. ‘프살모스’는 원래 현악기를 튕기며 부르는 노래, ‘휨노스’는 신을 찬양하는 노래, ‘오데’는 일반적인 노래(영어 ode)입니다.
노래하며 찬송하며 — 원문 ‘아돈테스 카이 프살론테스’. ‘프살로’는 원래 ‘현을 튕기다’로, 악기 반주를 떠올리게 합니다. 시 33:2–3 "수금으로 여호와께 감사하고 열 줄 비파로 찬송할지어다 새 노래로 그를 노래하며".
플리니우스의 편지 — 주후 112년경 로마 총독 플리니우스는 황제 트라야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정해진 날 동트기 전에 모여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하며 서로 번갈아 노래한다"고 보고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3:16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행 16:25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
고전 14:15, 26내가 영으로 찬미하고 또 마음으로 찬미하리라… 각각 찬송시도 있으며
시 96:1-2새 노래로 여호와께 노래하라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할지어다
계 5:9새 노래를 노래하여 가로되 책을 가지시고 그 인봉을 떼기에 합당하시도다
20범사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며
직역 모든 일에 대하여 항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며,
성령 충만의 두 번째 열매는 감사입니다. 4절에서 더러운 말 대신 ‘감사하는 말’을 하라고 했는데, 여기서 다시 감사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 감사의 범위가 놀랍습니다. "범사에… 항상." 모든 일에 대하여, 언제나.
모든 일에 감사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질병에도, 실패에도, 상실에도? 바울은 감옥에서 이 말을 썼습니다. 그의 감사는 상황이 좋아서 나온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고통 자체가 좋다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의 감사는 ‘이 일이 좋다’가 아니라 ‘이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선하시고, 이 일까지도 하나님이 선으로 바꾸실 것이다’라는 고백입니다(롬 8:28). 데살로니가전서 5:18은 ‘범사에(엔 판티)’, 곧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라고 했습니다. 모든 상황 ‘때문에’가 아니라 모든 상황 ‘속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
이 감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집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는 근거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1–3장의 모든 복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졌으니, 감사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립니다. 그리고 그 감사는 "아버지 하나님께" 드려집니다. 여기서도 삼위일체가 보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18절), 그리스도의 이름으로(20절), 아버지께(20절).
원어 · 번역 노트
범사에휘페르 판톤 — ‘모든 것을 위하여, 모든 일에 대하여’. 살전 5:18의 ‘엔 판티(모든 일 안에서)’와 조금 다른 표현입니다. ‘판톤’은 남성으로 ‘모든 사람을 위해’라고 읽을 수도 있습니다.
감사 — 바울 서신에서 감사는 성령 충만한 사람의 표지입니다. 골 3:17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함께 읽을 말씀
살전 5:18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골 3:17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빌 4:6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합 3:17-18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나는 여호와로 인하여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 기뻐하리로다
성령 충만의 세 번째 열매이자, 22절 이하 가정 이야기의 문입니다. "피차 복종하라." ‘피차’는 ‘서로’입니다. 이 말이 중요합니다. 22절부터 아내, 자녀, 종에게 하는 권면만 따로 떼어 읽으면 한쪽만 일방적으로 복종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먼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로에게 복종하라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는 위에서 군림하는 사람과 아래에서 굽실거리는 사람으로 나뉘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서로를 섬기는 곳입니다.
‘복종하다’는 원문으로 휘포타소, ‘아래에 자리를 잡다’입니다. 원래 군대에서 대열을 정렬할 때 쓰던 말입니다. 복종은 열등함이 아니라 자발적으로 상대를 나보다 앞세우는 것입니다. 빌립보서 2:3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동등하시지만 아버지께 복종하신 것처럼(고전 15:28), 복종은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사랑의 선택입니다.
그리고 그 동기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입니다. 사람이 무서워서, 사회 질서가 그래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서로 복종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사람의 주인이십니다. 남편도, 아내도, 부모도, 자녀도, 상전도, 종도 모두 그리스도 앞에 서 있습니다(6:9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분을 경외하는 사람은 자기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다른 사람을 섬깁니다. 그리고 이 ‘피차 복종’이 다음 절부터 가정의 각 관계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바울은 하나씩 보여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문법 — 21절은 원문에서 독립된 명령이 아니라 18절 ‘충만을 받으라’에 걸린 다섯 번째 분사입니다(‘복종하며’). 그리고 22절에는 동사가 없습니다(직역: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주께 하듯"). 22절은 21절의 ‘복종하며’를 빌려 씁니다. 그래서 21절은 앞 단락(성령 충만)의 끝이면서 동시에 뒤 단락(가정)의 시작입니다.
복종휘포타소 — 1:22 "만물을 그 발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5:24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중간태로 쓰여 ‘스스로를 아래에 두다’, 곧 자발적인 복종을 뜻합니다.
경외포보스 — ‘두려움’. 여기서는 공포가 아니라 깊은 존경과 경외입니다. 고후 5:11 "주의 두려우심을 알므로", 고후 7:1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가자". 33절에서 아내가 남편을 ‘경외하라’도 같은 단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빌 2:3-5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벧전 5:5다 서로 겸손으로 허리를 동이라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
갈 5:13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
막 10:42-45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요 13:14-15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겼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기는 것이 옳으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무엇이 나를 채우고 있습니까
사람은 무언가로 채워져 삽니다. 술로, 일로, 걱정으로, 욕망으로, 혹은 성령으로. 무엇에 채워져 있느냐가 내가 어떤 말을 하고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결정합니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은 노래하고, 감사하고, 서로 복종합니다. 오늘 나의 입술에는 노래가 있습니까, 불평이 있습니까? 내 마음에는 감사가 있습니까, 원망이 있습니까? 나는 내 권리를 주장합니까, 다른 사람을 섬깁니까? 오늘 성령께 나를 다시 내어 드립시다. 한 번이 아니라 날마다, 그분이 나를 채우시도록.
5:22–33그리스도와 교회처럼 — 이 비밀이 크도다
이제 ‘피차 복종’(21절)이 가정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봅니다. 먼저 아내와 남편입니다. 바울은 당시 사회의 ‘가정 규범’ 형식을 빌려 쓰지만, 그 내용을 완전히 새롭게 합니다. 무엇보다 결혼의 모델이 그리스도와 교회입니다.
눈여겨볼 것이 있습니다. 아내들에게는 세 절(22–24절)을 말하는데, 남편들에게는 아홉 절(25–33절)을 말합니다. 당시 세상에서 남편은 가정의 절대 권력자였고, 아내에게 무엇이든 요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남편들에게 훨씬 더 많이, 훨씬 더 무거운 책임을 지웁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같이 아내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32절에서 바울은 결혼의 진짜 의미를 밝힙니다.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비추는 ‘큰 비밀’입니다.
22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
직역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라), 주께 하듯.
원문에는 이 절에 동사가 없습니다. 직역하면 "아내들은 자기 남편에게, 주께 하듯"입니다. 21절의 ‘피차 복종하라’에서 동사를 빌려 옵니다. 그러니까 아내의 복종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서로에게 하는 복종(21절)의 한 모습입니다. 그리고 바로 뒤에 남편들도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으로 아내를 섬기라는 말이 나옵니다(25절).
바울은 먼저 "아내들이여"라고 직접 부릅니다. 당시 그리스·로마의 가정 교훈서들은 남편(가장)에게만 말했습니다. ‘아내를 이렇게 다스려라, 자녀를 이렇게 다스려라, 종을 이렇게 다스려라.’ 아내, 자녀, 종은 명령을 받는 대상일 뿐, 말을 건네받는 인격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내에게, 자녀에게, 종에게 먼저 직접 말을 겁니다. 그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인격, 그리스도 앞에 선 독립된 신자로 대합니다. 이것만으로도 당시로서는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자기 남편에게." 모든 남자에게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남편에게입니다. 여자가 남자보다 열등하다는 말이 아닙니다. 갈라디아서 3:28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베드로전서 3:7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 하나님 앞에서 남편과 아내는 똑같이 귀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것은 가치의 차이가 아니라 결혼이라는 언약 관계 안에서의 질서입니다.
그리고 "주께 하듯 하라." 이 말은 동기와 한계를 동시에 정합니다. 동기 — 아내는 남편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주님을 섬기는 마음으로 남편을 존중합니다. 한계 — 그 복종은 주님께 하는 복종 ‘같은’ 것이지 주님을 ‘대신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남편이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 곧 죄를 요구할 때는 따를 수 없습니다(행 5:29 "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이 말씀은 결코 폭력이나 학대를 견디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런 상황이라면 아내는 자신과 자녀를 보호하고 교회와 공동체의 도움을 구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복종은 25절의 그리스도 같은 사랑을 받는 관계 안에서의 복종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동사가 없음 — 가장 오래된 사본들(파피루스 46, 바티칸 사본)에는 22절에 동사가 없습니다. 후대 사본들은 ‘복종하라(휘포타세스테)’ 또는 ‘복종할지어다(휘포타세스토산)’를 넣었습니다. 원래 본문은 21절의 분사에 기대어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가정 규범(Haustafel) — 아리스토텔레스(『정치학』 1.1253b)를 비롯한 고대 저자들은 가정을 ‘남편–아내, 아버지–자녀, 주인–종’의 세 관계로 다루었습니다. 에베소서 5:22–6:9, 골 3:18–4:1, 벧전 2:18–3:7이 이 형식을 따릅니다. ‘더 깊이’ 참고.
주께 하듯 — 골 3:18 "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주 안에서’가 복종의 틀과 한계를 정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3:18-19아내들아 남편에게 복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마땅하니라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벧전 3:1-7아내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자기 남편에게 순복하라… 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행 5:29사람보다 하나님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
창 2:18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
23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으니 그가 몸의 구주시니라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 됨과 같음이니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직역 남편이 아내의 머리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시고 그분 자신이 몸의 구원자이신 것처럼.
"남편이 아내의 머리 됨이." ‘머리’라는 말은 에베소서에서 이미 두 번 나왔습니다. 1:22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4:15–16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자라게 하며". 에베소서에서 ‘머리’는 다스림의 뜻도 있지만, 무엇보다 몸에 생명과 양분을 공급하고 몸을 자라게 하는 근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이신 것은 교회를 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살리고 자라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바로 덧붙입니다. "그가 바로 몸의 구주시니라." 그리스도의 머리 되심은 구원자의 머리 되심입니다. 그분은 몸을 위해 죽으신 머리입니다. 세상의 머리(권력자)는 몸을 이용해 자기를 높이지만, 그리스도라는 머리는 몸을 살리기 위해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그렇다면 남편이 아내의 머리라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위해 책임지고, 보호하고, 살리고, 자라게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남편의 머리 됨은 특권이 아니라 섬김의 책임입니다. 25절에서 그 책임이 얼마나 무거운지 나옵니다.
물론 남편은 아내의 구원자가 아닙니다. 구원자는 그리스도뿐이십니다. 바울은 ‘그가 바로’라는 강조어로 이 점을 분명히 합니다. 남편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사람이지,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머리케팔레 — 이 단어가 ‘권위’를 뜻하는지 ‘근원’을 뜻하는지 학자들 사이에 오랜 논쟁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안에서는 두 뜻이 함께 있습니다. 1:22에서는 만물 위의 권위가, 4:15–16에서는 몸을 자라게 하는 근원이 강조됩니다. 고전 11:3 "각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시라".
그가 바로아우토스 — ‘그분 자신이’. 그리스도만이 몸의 구주이심을 강조합니다.
구주소테르 — 에베소서에서 ‘구주’라는 칭호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1:22-23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엡 4:15-16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그 몸을 자라게 하며
고전 11:3, 11-12여자의 머리는 남자요… 그러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아니하니라 이는 여자가 남자에게서 난 것같이 남자도 여자로 말미암아 났음이라
막 10:45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24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직역 그러나 교회가 그리스도께 복종하는 것처럼 아내들도 모든 일에 자기 남편에게 그렇게 하라.
아내의 복종의 모델은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 어떻게 복종합니까? 억지로, 두려움에 떨며, 노예처럼 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위해 죽으셨다는 것을 알기에, 그분을 신뢰하고 사랑하며 기쁘게 따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에 대한 응답으로서의 복종입니다.
"범사에." 모든 일에라는 말이 무겁게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22절의 ‘주께 하듯’이라는 틀이 여전히 유효합니다. 주님께서 원하지 않으시는 일, 죄가 되는 일까지 따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범사에’는 신앙생활과 집안일을 나누어 교회에서는 경건하고 집에서는 다르게 사는 것을 경계합니다. 결혼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그리스도를 섬기는 마음으로 남편을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홀로 서 있지 않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남편들에게, 교회가 그리스도께 기꺼이 복종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께서 먼저 무엇을 하셨는지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먼저 자신을 주셨습니다. 남편이 그리스도처럼 사랑할 때, 아내의 존중은 짐이 아니라 기쁨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그러나알라 — 23절의 ‘그는 몸의 구주’라는 말 다음에 오는 ‘그러나’는, 남편이 아내의 구주는 아니지만 그래도 질서 자체는 같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범사에엔 판티 — 골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3:22 "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모두 ‘주 안에서’라는 한계 안에서 읽어야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5:21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벧전 3:1-2이는 혹 도를 순종치 않는 자라도 말로 말미암지 않고 그 아내의 행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게 하려 함이니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잠 31:10-12, 28-30누가 현숙한 여인을 찾아 얻겠느냐 그 값은 진주보다 더하니라… 그 자식들은 일어나 사례하며 그 남편은 칭찬하기를
요 14:15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25남편들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자신을 주심같이 아내를 사랑하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그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직역 남편들아, 너희 아내를 사랑하라.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이제 남편들 차례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명령은 당시 사람들을 깜짝 놀라게 했을 것입니다.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당시 그리스·로마의 가정 교훈서 어디에도 남편에게 아내를 ‘사랑하라’고 명령하는 말은 거의 없었습니다. 남편은 아내를 ‘다스리라’, ‘관리하라’, ‘가르치라’는 말을 들었을 뿐입니다. 결혼은 대개 집안끼리 맺은 계약이었고, 사랑은 결혼의 조건이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아내에게는 ‘복종하라’고 했지만, 남편에게는 ‘다스리라’고 하지 않고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그것도 보통 사랑이 아닙니다. 원문은 아가파오,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그 자신을 주심같이"입니다. 2절에서 "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라고 했던 바로 그 사랑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를 위해 무엇을 하셨습니까? 하늘 영광을 버리고 내려오셨고, 종의 형체를 입으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고, 십자가에서 목숨을 내어 주셨습니다. 그것도 교회가 사랑스러워서가 아니라 교회가 아직 원수였을 때(롬 5:8).
그러니 남편에게 주어진 명령이 아내에게 주어진 명령보다 훨씬 무겁습니다. 아내에게는 남편을 존중하라고 했지만, 남편에게는 아내를 위해 죽으라고 합니다. 남편의 머리 됨(23절)은 이렇게 십자가의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은 가정에서 가장 많이 누리는 사람이 아니라 가장 많이 내어 주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편안함, 자기의 고집, 자기의 권리를 아내를 위해 내려놓는 사람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존중하기 어렵다면, 남편은 먼저 자신이 그리스도처럼 사랑하고 있는지 물어야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랑하라아가파테 — 25, 28, 33절에서 남편에게 세 번 반복됩니다. 골 3:19 "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그 자신을 주심 — 2절 ‘자신을 버리사’와 같은 표현(파레도켄 헤아우톤). 갈 2:20.
당시의 결혼관 — 그리스 연설가 데모스테네스는 이렇게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우리는 쾌락을 위해 창녀를, 몸의 일상적인 돌봄을 위해 첩을, 그리고 적법한 자녀를 낳고 집안을 지키기 위해 아내를 둔다." 이런 세상에서 ‘그리스도처럼 아내를 사랑하라’는 명령은 혁명이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5:2그리스도께서 너희를 사랑하신 것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그는 우리를 위하여 자신을 버리사
골 3:19남편들아 아내를 사랑하며 괴롭게 하지 말라
벧전 3:7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귀히 여기라 이는 너희 기도가 막히지 아니하게 하려 함이라
요 13:1, 4-5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 대야에 물을 담아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호 3:1너는 또 가서 타인에게 연애를 받아 음부 된 그 여인을 사랑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여호와가 저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하라
26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직역 이는 그분이 교회를 말씀 안에서 물의 씻음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시려는 것이다.
바울은 남편 이야기를 하다가 그리스도와 교회 이야기로 깊이 들어갑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목적이 26–27절에 나옵니다. 거룩하게 하시려고(26절), 영광스럽게 세우시려고(27절).
"물로 씻어." 이 그림은 결혼식을 앞둔 신부의 모습입니다. 고대 근동과 그리스에서는 결혼식 전에 신부가 정결한 물로 목욕하는 예식이 있었습니다. 에스겔 16:8–14에서 하나님은 버려진 아기 같던 이스라엘을 물로 씻기시고 아름다운 옷을 입혀 신부로 삼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그리스도께서도 교회를 신부로 맞이하시기 위해 씻기십니다.
이 ‘물로 씻음’은 또한 침례를 떠올리게 합니다. 침례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씻음 받았음을 보여 주는 표입니다(행 22:16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딛 3:5 "중생의 씻음"). 물론 물 자체가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가 깨끗하게 합니다. 침례는 그 씻음을 눈에 보이게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씻음은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복음의 말씀이 선포되고, 그 말씀을 믿고 고백할 때 사람은 깨끗해집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요 15:3)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는 지금도 말씀으로 교회를 계속 씻으십니다.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을 때마다 우리의 더러움이 씻겨 나갑니다(요 17:17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원어 · 번역 노트
물로 씻어토 루트로 투 휘다토스 — ‘물의 목욕(루트론)으로’. 루트론은 신약에서 여기와 딛 3:5 "중생의 씻음(루트루)"에만 나옵니다. 고대 아테네에서는 결혼 전 신부가 특정 샘물로 목욕하는 관습(루트로포로스)이 있었습니다.
말씀레마 — ‘선포된 말씀’. 6:17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레마)", 롬 10:8, 17. 침례 때 하는 신앙 고백(롬 10:9)을 가리킨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침례와 씻음 — 침례교회는 침례가 죄를 씻는 능력이 있는 의식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피로 이미 씻음받은 사람이 그 사실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순종의 표라고 이해합니다(벧전 3:21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함께 읽을 말씀
겔 16:8-14내가 물로 너를 씻겨서 네 피를 없이 하고 네게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네 화려함을 인하여 네 명성이 이방에 퍼졌음은 내가 네게 입힌 영화로 네 화려함이 온전함이니라
딛 3:5우리를 구원하시되…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요 15:3너희는 내가 일러 준 말로 이미 깨끗하였으니
요 17:17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행 22:16이제는 왜 주저하느뇨 일어나 주의 이름을 불러 침례를 받고 너의 죄를 씻으라
고전 6: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27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직역 이는 그분이 친히 교회를 영광스럽게 자기 앞에 세우시려는 것이다. 얼룩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하나도 없이, 오히려 거룩하고 흠 없게.
결혼식 장면이 계속됩니다. 고대 결혼식에서는 신부의 친구가 신부를 신랑에게 데려가 세웠습니다(고후 11:2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런데 여기서는 그리스도께서 "자기 앞에", 곧 신랑이 친히 신부를 단장시켜 자기 앞에 세우십니다. 신부를 씻기는 분도, 단장시키는 분도, 맞이하는 분도 신랑이십니다.
그 신부는 "영광스러운 교회"입니다.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티’는 얼룩, 더러움이고, ‘주름’은 늙음, 쇠함입니다. 지금의 교회를 보면 얼룩도 많고 주름도 많습니다. 분열, 위선, 연약함, 실패. 우리는 교회를 보며 실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교회를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완성될 모습으로 보십니다. 마지막 날,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얼룩 하나 없고 주름 하나 없는 영원히 젊은 신부로 세우실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9:7–8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므로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거룩하고 흠이 없게." 이 말은 1:4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창세 전의 택하심의 목적이 마지막 날 혼인 잔치에서 완성됩니다. 에베소서의 시작과 끝이 여기서 만납니다. 하나님은 처음에 계획하신 것을 반드시 이루십니다.
그리고 이것이 남편들에게 주는 도전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아름답게 하시려고 자신을 주셨듯, 남편은 아내를 더 아름답게, 더 거룩하게, 더 빛나게 하기 위해 사랑합니다. 아내가 남편과 함께 살면서 더 행복해지고, 더 자유로워지고, 더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것이 남편의 사랑의 열매입니다.
세우사파라스테세 — ‘곁에 세우다, 드리다’. 고후 11:2 "드리려고", 골 1:22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 골 1:28 "완전한 자로 세우려".
1:4와의 연결 — ‘거룩하고 흠이 없게(하기오스 카이 아모모스)’가 1:4와 5:27에서 똑같이 나옵니다. 에베소서의 큰 괄호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1:4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고후 11:2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계 19:7-8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므로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계 21:2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아 4:7나의 사랑 너는 어여쁘고 아무 흠이 없구나
유 1:24능히 너희를 보호하사 거침이 없게 하시고 너희로 그 영광 앞에 흠이 없이 즐거움으로 서게 하실 자
28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직역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를 자기 몸처럼 사랑해야 한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바울은 남편의 사랑에 두 번째 기준을 줍니다. 첫째 기준은 그리스도의 사랑이었고(25절), 둘째 기준은 "제 몸같이"입니다. 레위기 19:18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런데 아내는 단순한 이웃이 아닙니다. 31절에서 보듯 남편과 아내는 ‘한 육체’입니다. 그러니 아내는 문자 그대로 남편 자신의 몸입니다.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자는 자기를 사랑하는 것이라." 이 말은 이기적인 계산이 아니라 한 몸의 원리입니다. 내 손을 다치게 하면 내가 아프고, 내 발을 돌보면 내가 편합니다. 아내를 무시하고 상처 주는 남편은 결국 자기 자신을 상처 주는 것입니다. 반대로 아내를 귀하게 여기고 돌보는 남편은 자기 자신의 삶도 풍성해집니다. 결혼 안에서 사랑은 결국 돌아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이와 같이후토스 — 25–27절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자기 몸인 교회를 사랑하신 것처럼’.
제 몸같이 — 레 19:18(70인역)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호스 세아우톤)". 33절에서 다시 "자기 같이(호스 헤아우톤)"로 반복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레 19:18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마 22:39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창 2:23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잠 5:18-19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29누구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하나니
직역 아무도 자기 육체를 미워한 적이 없고, 오히려 그것을 먹이고 따뜻하게 돌본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하시는 것처럼.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사람은 본능적으로 자기 몸을 돌봅니다. 배고프면 먹고, 추우면 옷을 입고, 아프면 약을 바릅니다. 바울은 남편이 그렇게 자연스럽게, 본능처럼 아내를 돌보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 개의 아름다운 동사가 나옵니다. ① "양육하여." ‘먹이고 기르다’입니다. 6:4에서 아버지가 자녀를 ‘양육하라’고 할 때 같은 말이 쓰입니다. 몸에 영양을 주듯 아내에게 필요한 것을 공급하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필요만이 아니라 정서적, 영적인 필요까지. ② "보호하기를." 원문은 ‘따뜻하게 품다’입니다. 어미 새가 날개로 알을 품어 따뜻하게 하는 모습입니다(살전 2:7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아내를 차갑게 대하지 않고 따뜻하게 감싸는 것입니다.
그리고 다시 모델이 나옵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에게 함과 같이." 그리스도는 지금도 교회를 먹이시고(말씀과 성찬으로) 따뜻하게 품으십니다(성령의 위로로). 교회가 아무리 연약해도 그리스도는 교회를 미워하지 않으십니다. 남편들도 아내의 연약함을 보며 미워하지 않고, 오히려 더 먹이고 품습니다.
보호하기를탈포 — ‘따뜻하게 하다’. 신약에서 여기와 살전 2:7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탈페)과 같이"에만 나옵니다. 70인역 신 22:6에서 어미 새가 알을 품는 데 쓰였습니다.
육체사르크스 — 여기서는 2:3의 부정적인 ‘육체’가 아니라 31절 "한 육체"를 준비하는 중립적인 의미의 ‘몸’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살전 2:7-8오직 너희 가운데서 유순한 자가 되어 유모가 자기 자녀를 기름과 같이 하였으니
요 21:15-17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
신 32:11마치 독수리가 그 보금자리를 어지르며 그 새끼 위에 너풀거리며 그 날개를 펴서 새끼를 받으며
마 23:37암탉이 그 새끼를 날개 아래 모음같이 내가 너희의 자녀를 모으려 한 일이 몇 번이더냐
30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직역 우리가 그분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먹이고 품으시는 이유가 짧게 나옵니다. "우리는 그 몸의 지체임이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돌보시는 것은 남을 돌보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을 돌보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의 일부입니다. 1:23 "교회는 그의 몸이니", 4:16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바울은 여기서 ‘너희’가 아니라 ‘우리’라고 말합니다. 자기 자신도 포함합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도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그리스도의 돌보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편지를 읽는 우리도 그렇습니다. 내가 아무리 작고 약한 지체여도, 그리스도는 자기 몸의 한 부분인 나를 결코 소홀히 하지 않으십니다.
이 짧은 문장은 남편과 아내 이야기와 그리스도와 교회 이야기를 하나로 엮습니다. 남편이 아내를 자기 몸처럼 돌보는 것처럼, 그리스도는 교회를 자기 몸처럼 돌보십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절에서 바울은 창세기의 결혼 말씀을 인용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추가된 사본 — 일부 후대 사본(KJV가 따른 사본)에는 이 절 끝에 ‘그의 살과 그의 뼈로부터’(창 2:23 인용)가 덧붙어 있습니다.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없습니다. 『개역한글』은 이 부분 없이 옮겼습니다.
지체멜로스 — 4:25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롬 12:5, 고전 6:15 "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고전 12:27.
함께 읽을 말씀
고전 12:27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 부분이라
고전 6:15너희 몸이 그리스도의 지체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엡 1:23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행 9:4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핍박하느냐
31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이러므로 사람이 부모를 떠나서 그 아내와 합하여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직역 "이 때문에 사람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에게 연합하고, 그 둘이 한 육체가 될 것이다."
바울은 성경에서 결혼을 처음 정의한 말씀, 창세기 2:24를 인용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하와를 이끌어 오셨을 때 주신 말씀이고, 예수님도 이혼에 대한 질문에 답하시며 인용하신 말씀입니다(마 19:4–6). 이 한 절에 결혼의 세 단계가 다 들어 있습니다.
① "부모를 떠나서." 결혼은 떠남에서 시작합니다. 부모를 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부모와의 관계보다 배우자와의 관계를 우선한다는 뜻입니다. 새 가정은 원래 가정에서 독립하여 새로운 하나의 단위가 됩니다. 결혼한 뒤에도 부모의 뜻이 배우자보다 앞서면 그 결혼은 흔들립니다. 고대 사회에서는 보통 여자가 남자의 집으로 들어갔는데, 성경은 오히려 ‘남자가’ 부모를 떠나라고 합니다.
② "그 아내와 합하여." 원문은 ‘굳게 붙다, 접착되다’입니다. 두 장의 종이를 풀로 붙이면 다시 떼어 낼 때 둘 다 찢어집니다. 결혼은 그렇게 단단히 붙는 언약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 19:6)고 하셨습니다.
③ "그 둘이 한 육체가 될지니." 몸의 연합이면서, 삶 전체의 연합입니다. 둘이 하나가 되는 것. 1:10의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통일되게’, 2:15의 ‘둘로 한 새 사람을’과 같은 하나 됨의 주제가 결혼에서도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큰 계획인 ‘하나 됨’의 가장 작은 모형이 바로 가정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창 2:24 인용 — 70인역과 거의 같습니다. 마 19:5, 막 10:7–8, 고전 6:16에서도 인용됩니다.
합하여프로스콜라오 — ‘풀(콜라)로 붙이다’. 영어 collagen과 같은 뿌리입니다. 히브리어 ‘다바크’(붙다)는 룻이 시어머니 나오미를 ‘붙좇았다’(룻 1:14)에도 쓰였습니다.
이러므로 — 바울의 문맥에서 ‘이러므로’는 30절, 곧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 ‘때문에’라는 뜻으로도 읽힙니다.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연합을 반영하기 때문에, 남자가 부모를 떠나 아내와 하나가 된다는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2:24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마 19:4-6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아내에게 합하여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그런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말 2:14-16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미워하노라
고전 7:3-4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32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이 비밀이 크도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직역 이 비밀은 크다. 그러나 나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바울은 결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갑자기 멈추어 외칩니다. "이 비밀이 크도다." 에베소서에서 ‘비밀’은 하나님께서 영원부터 감추어 두셨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드러내신 계획입니다(1:9, 3:3–9). 그 비밀은 만물을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모으시는 것, 유대인과 이방인을 한 몸으로 만드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바울은 결혼도 그 비밀과 연결된다고 말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하여 말하노라." 창세기 2:24는 아담과 하와의 결혼을 말했지만, 바울은 그 말씀이 궁극적으로 그리스도와 교회를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결혼을 만드실 때부터, 결혼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이었습니다. 원본은 그리스도와 교회이고, 결혼은 그 복사본입니다. 결혼이 먼저 있고 그리스도와 교회가 그것을 흉내 낸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이 먼저 있고 결혼이 그것을 비추는 거울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를 떠나 이 땅에 오셨습니다(‘부모를 떠나서’). 교회와 굳게 연합하셨습니다(‘그 아내와 합하여’). 그리고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 되었습니다(‘그 둘이 한 육체가’). 구약의 선지자들이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남편으로 그렸던 것(호 2:19–20, 사 54:5, 렘 2:2)이 그리스도와 교회에서 완성됩니다. 그리고 성경의 마지막은 어린 양의 혼인 잔치로 끝납니다(계 19:7–9, 21:2, 9).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결혼은 단순한 사회 제도나 두 사람의 개인적인 계약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세상 앞에 보여 주는 살아 있는 설교입니다. 남편이 자기를 내어 주며 아내를 사랑할 때, 아내가 그 사랑에 신뢰와 존경으로 응답할 때, 세상은 그 가정을 보며 그리스도와 교회가 어떤 관계인지 엿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 부부의 사랑은 개인의 행복을 넘어 하나님 나라의 증언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비밀뮈스테리온 — 라틴어 성경(불가타)은 이 단어를 ‘사크라멘툼(sacramentum)’으로 옮겼고, 이것이 중세 로마 가톨릭에서 결혼을 일곱 성례 가운데 하나로 보는 근거 가운데 하나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여기서 ‘비밀’이 결혼 자체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가리킨다고 보았고, 결혼을 은혜를 전달하는 성례로 보지 않았습니다. 침례교회도 결혼을 하나님이 제정하신 거룩한 언약으로 존중하지만, 교회의 예식(ordinance)은 침례와 주의 만찬 두 가지로 봅니다.
그러나 나는 — 원문 ‘에고 데 레고’, ‘그러나 나는 말한다’. 바울이 창세기 본문의 일차적 의미(결혼)를 넘어 더 깊은 의미(그리스도와 교회)를 밝히고 있음을 강조합니다.
하나님과 백성의 결혼 — 구약: 사 54:5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사 62:5, 렘 2:2, 호 2:19–20, 겔 16장. 신약: 마 9:15 "혼인 집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을 동안에", 요 3:29, 고후 11:2, 계 19:7, 21:2.
함께 읽을 말씀
호 2:19-20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의와 공변됨과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나 여호와를 알리라
사 54:5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요 3:29신부를 취하는 자는 신랑이나 서서 신랑의 음성을 듣는 친구가 크게 기뻐하나니
계 19:7-9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어린 양의 혼인 잔치에 청함을 입은 자들이 복이 있도다
엡 3:9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었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33각각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그러나 너희도 각각 자기의 아내 사랑하기를 자기 같이 하고 아내도 그 남편을 경외하라
직역 그러나 너희도 각 사람이 자기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고, 아내는 남편을 존경하라.
큰 비밀을 말한 바울은 다시 땅으로 내려옵니다. "그러나 너희도." 그리스도와 교회의 신비는 높고 깊지만, 그것은 매일의 부부 생활에서 실천되어야 합니다. 바울은 앞의 모든 내용을 두 마디로 요약합니다.
남편에게는 "사랑하라." 그것도 "각각", 예외 없이 모든 남편이, "자기 같이". 아내를 자기 자신처럼, 자기 몸처럼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25–29절의 요약입니다.
아내에게는 "경외하라." ‘경외하다’는 원문으로 ‘두려워하다’이지만, 여기서는 공포가 아니라 깊은 존경입니다. 21절의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와 같은 단어입니다. 아내가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남편을 존중하는 것입니다. 22–24절의 요약입니다.
흥미롭게도 바울은 남편에게 ‘아내를 존경하라’고 하지 않고 ‘사랑하라’고 하며, 아내에게 ‘남편을 사랑하라’고 하지 않고 ‘존경하라’고 합니다. 물론 남편도 아내를 존중해야 하고(벧전 3:7 "귀히 여기라"), 아내도 남편을 사랑해야 합니다(딛 2:4 "남편을 사랑하며"). 그러나 많은 목회자와 상담가들은 이 구절에서 하나의 지혜를 봅니다. 아내가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희생적인 사랑이고, 남편이 가장 목말라하는 것은 진심 어린 존경이라는 것입니다. 서로가 상대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줄 때, 가정은 그리스도와 교회의 아름다운 그림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경외하라포베타이 — 21절 ‘그리스도를 경외함(포보스)’과 같은 뿌리. 벧전 3:2 "너희의 두려워하며 정결한 행위를 봄이라". 『새번역』 "아내도 자기 남편을 존경하십시오".
그러나플렌 — ‘아무튼, 어쨌든’. 32절의 높은 신비에서 실제 생활로 돌아오는 표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벧전 3:7남편 된 자들아 이와 같이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고 저는 더 연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유업으로 함께 받을 자로 알아 귀히 여기라
딛 2:4-5젊은 여자들을 교훈하되 그 남편과 자녀를 사랑하며
롬 12:10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잠 12:4어진 여인은 그 지아비의 면류관이나 욕을 끼치는 여인은 그 지아비로 뼈가 썩음 같게 하느니라
전 9:9네 헛된 평생의 모든 날 곧 하나님이 해 아래서 네게 주신 모든 헛된 날에 네가 사랑하는 아내와 함께 즐겁게 살지어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우리 가정은 그리스도와 교회를 비추는 거울입니다
바울은 결혼을 말하다가 "이 비밀이 크도다"라고 외쳤습니다. 결혼은 단지 두 사람이 함께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시는지를 세상에 보여 주는 거울입니다.
남편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같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는 교회가 그리스도를 신뢰하듯 남편을 존경합니다. 둘 다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섬깁니다. 오늘 내가 배우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먼저 줄 수 있을까요? 결혼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신부처럼 사랑하신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Household Code · 비교
1세기 가정 규범과 에베소서
바울은 당시 세상의 틀을 빌려 쓰되, 그 안을 완전히 새롭게 채웠습니다
당시 그리스·로마의 가정 교훈
에베소서 5:21–6:9
누구에게 말하나
가장(남편·아버지·주인)에게만
아내, 자녀, 종에게도 직접 말을 건넴 — 모두 책임 있는 인격
출발점
자연의 질서, 남자의 우월함
성령 충만(18절)과 피차 복종(21절)
남편에게
아내를 다스리고 관리하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위해 자신을 주신 것같이 사랑하라
아내에게
남편에게 순종하라 (말을 거는 경우가 드묾)
주께 하듯, 교회가 그리스도께 하듯 존경하라
권위의 성격
권리와 특권
섬김과 희생의 책임 — 십자가 모양의 머리 됨
최종 권위
가장
모두의 주인이신 그리스도 (6:9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결혼의 의미
가문의 유지, 상속자 출산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을 비추는 큰 비밀(32절)
바울은 당시 사회 구조를 한순간에 뒤엎자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구조 한가운데에 그리스도를 세움으로써, 그 구조를 안에서부터 바꾸어 놓았습니다. 남편의 ‘머리 됨’은 군림이 아니라 십자가의 희생이 되었고, 아내의 ‘복종’은 강요된 굴종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향한 자발적인 섬김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 위에 ‘피차 복종하라’가 있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5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본받다1절
흉내 내다, 닮아 가다. 원문 미메테스.
생축牲畜 · 2절
제사에 바치는 짐승, 희생 제물.
음행淫行 · 3절
결혼 밖의 모든 성적 부도덕.
누추陋醜 · 4절
더럽고 추함.
희롱戲弄 · 4절
상스럽게 놀리는 말, 저속한 농담.
기업基業 · 5절
물려받을 몫, 하나님 나라의 유업.
참예參預 · 7, 11절
함께 참여하여 몫을 나눔.
책망責望 · 11, 13절
빛에 비추어 드러내고 바로잡음.
세월을 아끼다16절
기회를 사들이다. 다시 오지 않을 때를 붙잡음.
방탕放蕩 · 18절
자기를 낭비하며 제멋대로 사는 것.
충만充滿 · 18절
가득 채워짐. 성령께 다스림을 받음.
화답和答 · 19절
서로 주고받으며 응답함.
범사凡事 · 20, 24절
모든 일.
피차彼此 · 21절
서로, 이쪽과 저쪽 모두.
복종服從 · 21–24절
스스로 상대 아래에 자리함. 원문 휘포타소.
경외敬畏 · 21, 33절
공경하며 두려워함. 깊은 존경.
구주救主 · 23절
구원하시는 분.
양육養育 · 29절
먹이고 길러 자라게 함.
합하다31절
굳게 붙어 하나가 되다. 접착되다.
비밀祕密 · 32절
감추었다가 드러난 하나님의 계획.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사랑받는 자녀로서 하나님을 본받으라’(1절). 내가 하나님을 닮기 위해 애쓰는 동기는 두려움입니까, 사랑받았다는 확신입니까?
내 마음의 왕좌에 하나님 대신 앉아 있는 ‘탐욕’(5절)은 무엇입니까? 감사(4, 20절)가 그 탐욕을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요?
나는 ‘주 안에서 빛’(8절)입니다. 내가 있는 직장, 학교, 가정에서 나의 빛은 어떻게 비치고 있습니까? 혹시 빛 앞에 내어놓아야 할 은밀한 어두움이 있습니까?
‘세월을 아끼라’(16절). 이번 주에 놓치지 말아야 할 하나님이 주신 기회는 무엇입니까?
성령 충만의 다섯 가지 모습(19–21절: 화답, 노래, 찬송, 감사, 복종) 가운데 지금 나에게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부부라면) 남편은 아내를 위해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까? 아내는 남편을 어떻게 존경을 표현할 수 있습니까? 서로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이야기해 봅시다.
결혼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비밀’(32절)을 비추는 거울이라면, 우리 가정(또는 내가 아는 가정들)은 세상에 그리스도의 어떤 모습을 보여 주고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