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세부 강해 · Ephesians
4

부르심에 합당하게,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1절부터 32절까지 — 하나 됨을 힘써 지키고, 은사로 서로를 세우며 그리스도까지 자라고, 새 사람의 옷을 입고 살아가라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EPHESIANS 4:1–2
Introduction · 들어가며

4장 들어가며

"그러므로" — 1–3장의 교리가 4–6장의 삶으로 내려오는 경첩

4장은 에베소서의 경첩입니다. 1–3장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무엇을 주셨는지 노래했습니다. 택하심, 구속, 인치심, 은혜로 받은 구원, 둘이 하나 된 새 사람, 하나님의 처소가 된 교회. 그리고 3:21 "아멘"으로 그 노래를 마쳤습니다. 이제 4:1의 "그러므로"와 함께, 그 모든 은혜에 걸맞게 어떻게 살 것인지를 말합니다.

이 순서가 중요합니다. 바울은 3장 동안 단 하나의 명령도 하지 않았습니다(2:11 "생각하라"를 빼면). 성경의 윤리는 ‘이렇게 살면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가 아니라 ‘너는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니 그렇게 살라’입니다. 존재가 먼저이고 행동이 나중입니다. 1–3장이 앉음(2:6)이었다면 4–5장은 걸음(4:1)입니다. ‘행하다(걷다)’라는 동사가 4–5장에 다섯 번 나옵니다(4:1, 17, 5:2, 8, 15).

4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①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일곱 개의 ‘하나’(1–6절). ②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시고 직분자들을 주셔서 몸을 세우고 자라게 하신다(7–16절). ③ 이방인처럼 허망하게 살지 말고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17–24절). ④ 새 사람의 구체적인 생활 — 말, 분노, 일, 언어, 용서(25–32절).

경첩

4:1

"그러므로." 교리에서 생활로, 앉음에서 걸음으로 넘어가는 문입니다.

일곱 개의 하나

4:4–6

몸, 성령, 소망, 주, 믿음, 침례, 하나님. 교회의 하나 됨은 삼위 하나님께 뿌리를 둡니다.

직분의 목적

4:11–12

직분자들은 일을 대신 해 주는 사람이 아니라 성도들이 봉사하도록 준비시키는 사람입니다.

옷 갈아입기

4:22–24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25–32절은 그 옷을 입은 사람의 구체적인 모습입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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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합당하게"合當, 원문 악시오스. 저울의 양쪽이 균형을 이루듯 걸맞게.
2절 "용납하고"容納, 참아 주고 받아들임. 원문 아네코, ‘견디어 받쳐 줌’.
3절 "매는 줄"묶어 주는 띠. 원문 쉰데스모스.
5절 "침례"『개역한글』은 ‘세례’로 옮겼습니다. 원문 밥티스마, ‘물에 잠김’.
8절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포로들을 이끌고 개선하시는 그림. 시 68:18 인용.
12절 "온전케 하여"원문 카타르티스모스, 그물을 수선하듯 준비시킴.
14절 "궤술", "풍조"詭術, 속임수(원문은 주사위 노름). 風潮, 바람의 흐름.
19절 "방임하여"放任, 아무렇게나 내버려 둠. 원문 ‘넘겨주다’.
22절 "구습"舊習, 옛 습관, 이전의 생활 방식.
29절 "덕을 세우는"德, 원문 오이코도메, ‘집을 지음’. 세워 줌.
31절 "악독", "훼방"惡毒, 쓴 독. 毁謗, 남을 헐뜯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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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6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 일곱 개의 하나

교회의 삶에 대한 첫 번째 권면은 하나 됨입니다.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로 둘을 하나로 만드셨고, 3장에서 그 하나 됨이 하나님의 영원한 비밀이라고 했습니다. 이제 바울은 그 하나 됨을 지키라고 합니다. 만들라는 것이 아니라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 됨은 이미 성령께서 이루셨습니다.

그리고 하나 됨을 지키는 방법(2절)과 하나 됨의 근거(4–6절)를 말합니다. 4–6절에는 ‘하나’라는 말이 일곱 번 나옵니다. 그 일곱 개의 ‘하나’는 성령(4절), 주(5절), 아버지(6절)의 순서로, 다시 삼위일체에 뿌리를 둡니다.

1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권하노니 부르심에 합당하게 행하라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직역 그러므로 주 안에 갇힌 자인 내가 너희에게 권한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으라.

"그러므로." 성경에서 ‘그러므로’를 보면 앞에 무엇이 있는지 보라는 말이 있습니다. 여기서 ‘그러므로’ 앞에는 에베소서 1–3장 전체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모든 일을 하셨으니, 이제 너희는 이렇게 살라. 순종은 은혜에 대한 반응입니다. 로마서 12:1도 11장의 교리 뒤에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로 시작합니다.

"주 안에서 갇힌 내가." 3:1에서 했던 말을 다시 합니다. 바울은 자기 권면의 무게를 감옥에서 얻습니다. 편안한 서재에서 하는 충고가 아니라, 바로 이 복음 때문에 쇠사슬을 찬 사람의 부탁입니다. 그리고 그는 명령하지 않고 "권하노니"라고 말합니다. ‘곁에 불러서 간곡히 부탁한다’는 뜻입니다. 사도의 권위로 누를 수 있었지만, 사랑으로 호소합니다.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습니다(1:18 "그의 부르심의 소망"). 그 부르심은 높고 영광스럽습니다. 창세 전에 택하시고, 자녀 삼으시고, 하늘에 앉히시고, 하나님의 처소로 삼으신 부르심입니다. 이제 그 부르심에 ‘합당하게’ 걸으라고 합니다. ‘합당하다’는 원래 저울의 양쪽이 균형을 이루는 모습입니다. 한쪽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올려놓고, 다른 쪽에 우리의 삶을 올려놓았을 때 균형이 맞도록. 왕자로 입양된 아이가 왕자답게 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이 그 이름에 걸맞게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부르심을 ‘얻기’ 위해 그렇게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받은 부르심에 ‘걸맞게’ 살라는 것입니다. 순서를 거꾸로 하면 신앙은 무거운 짐이 되고, 순서를 바로 하면 신앙은 감사의 응답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그러므로 운 — 에베소서의 전반부와 후반부를 잇는 접속사. 4:17, 5:1, 5:7, 5:15에서도 같은 말로 새 권면을 시작합니다.
  • 권하노니 파라칼로 — ‘곁에(파라) 부르다(칼레오)’. 위로(고후 1:4), 격려, 간청의 뜻을 함께 가집니다. 성령을 ‘보혜사(파라클레토스)’라고 부르는 것도 같은 뿌리입니다(요 14:16).
  • 부르심, 부름, 부르심을 입은 — 원문은 같은 뿌리의 단어를 겹쳐 씁니다. ‘너희가 부름받은(에클레테테) 부름(클레시스)’. 4절에서도 ‘부르심을 입었느니라(에클레테테)… 부르심의(클레세오스)’가 반복됩니다. 교회(에클레시아)도 같은 뿌리로, ‘불러낸 사람들’입니다.
  • 합당하게 악시오스 — ‘무게가 같은’. 빌 1:27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골 1:10 "주께 합당히 행하여", 살전 2:12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라".
함께 읽을 말씀
  • 롬 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 빌 1:27오직 너희는 그리스도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 골 1:10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 살전 2:12이는 너희를 부르사 자기 나라와 영광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께 합당히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 엡 2:10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2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직역 모든 겸손과 온유로, 오래 참음으로, 사랑 안에서 서로를 용납하며,

부르심에 합당한 삶의 첫 모습은 거창한 업적이 아니라 성품입니다. 바울은 네 가지를 말합니다.

① 겸손. 원문은 ‘낮은 마음’입니다. 놀랍게도 그리스·로마 세계에서 이 말은 미덕이 아니었습니다. 노예나 비굴한 사람의 성품을 가리키는 부정적인 말이었습니다. 자존심과 명예가 최고의 덕이었던 세상에서 겸손은 약함의 표시였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마 11:29)라고 하셨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은 겸손을 미덕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교회의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은 대개 교리가 아니라 교만입니다. ‘내가 옳다’, ‘내가 더 중요하다’는 마음입니다.

② 온유. 온유는 약함이 아니라 다스려진 힘입니다. 헬라 사람들은 길들여진 말(馬)을 ‘온유하다’고 했습니다.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 힘이 주인의 손에 다스림을 받는 것입니다.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민 12:3)고 했지만, 바로 앞에서 담대히 맞섰던 사람이었습니다.

③ 오래 참음. 원문은 ‘긴 숨’, ‘긴 마음’입니다. 화가 금방 나지 않고 늦게 납니다. 상대방이 바로 변하지 않아도 기다려 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오래 참으셨듯이(롬 2:4, 벧후 3:9).

④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용납’은 상대의 약점과 허물을 참아 주고 받쳐 주는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함께 들어 주듯이. 바울은 교회 안에 짜증 나는 사람, 서운하게 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서로’ 용납하라고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참아 주는 동안, 다른 사람도 나를 참아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이 "사랑 가운데서" 이루어집니다. 이를 악물고 견디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그 힘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겸손 타페이노프로쉬네 — ‘낮은(타페이노스) + 마음(프렌)’. 빌 2:3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골 3:12. 그리스 철학자 에픽테토스는 이 말을 비굴함과 같은 뜻으로 썼습니다.
  • 온유 프라위테스 —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갈 5:23 성령의 열매.
  • 오래 참음 마크로튀미아 — ‘긴(마크로스) + 분노/마음(튀모스)’. 고전 13:4 "사랑은 오래 참고", 갈 5:22.
  • 골 3:12–13과의 비교 — "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에베소서와 골로새서는 같은 시기에 쓰여 비슷한 표현이 많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마 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 빌 2:3-5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 골 3:12-13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누가 뉘게 혐의가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 갈 6:2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
  • 민 12:3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승하더라
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직역 평화의 띠로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기를 힘쓰라.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 하나 됨은 우리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이미 만드신 것입니다. 2:18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2:22 "성령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느니라". 교회는 서로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모여 하나가 된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서로 전혀 다른 사람들을 하나로 묶으신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할 일은 하나 됨을 새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키는 데도 "힘써"야 합니다. 원문은 ‘서두르다, 전력을 다하다’입니다. 하나 됨은 저절로 유지되지 않습니다. 정원을 가꾸지 않으면 잡초가 자라듯, 공동체를 돌보지 않으면 오해와 서운함과 분열이 자랍니다. 하나 됨을 지키는 일은 수동적인 평화주의가 아니라 적극적인 노력입니다. 먼저 찾아가고, 먼저 사과하고, 먼저 오해를 풉니다(마 5:23–24).

그 도구는 "평안의 매는 줄"입니다. ‘매는 줄’은 여러 개를 하나로 묶는 띠입니다. 고대에는 뼈와 뼈를 잇는 인대, 장작을 묶는 끈을 이 말로 불렀습니다. 2:14에서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셨습니다. 그 평화가 성도들을 서로 묶는 띠가 됩니다. 골로새서 3:14에서는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고 말합니다. 평화와 사랑이 교회를 하나로 묶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매는 줄 쉰데스모스 — ‘함께(쉰) 묶는 것(데스모스)’. 4:16 "마디(합)", 골 2:19 "마디와 힘줄", 골 3:14 "사랑은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흥미롭게도 바울은 자기를 ‘갇힌 자(데스미오스)’라고 불렀는데, 같은 뿌리의 단어로 성도들을 ‘묶는 띠(쉰데스모스)’를 말합니다. 그리스도께 묶인 사람이 성도들을 평화로 묶으라고 권합니다.
  • 힘써 스푸다조 — 딤후 2:15 "네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변하며… 힘쓰라", 히 4:11 "그러므로 우리가 저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쓸지니", 벧후 1:10.
  • 하나 되게 하신 것 헤노테스 — ‘하나 됨, 일치’. 신약에서 여기와 13절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에만 나옵니다. 3절은 지금 지켜야 할 하나 됨, 13절은 앞으로 이르러야 할 하나 됨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3:14-15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그리스도의 평강이 너희 마음을 주장하게 하라 너희는 평강을 위하여 한 몸으로 부르심을 받았나니
  • 요 17:21-23아버지여… 저희도 다 하나가 되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 시 133:1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 롬 12:18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 마 5:9, 23-24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4몸이 하나요 성령이 한 분이시니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몸이 하나요 성령이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느니라

직역 몸이 하나이고 영이 하나이다. 너희가 부르심을 받을 때 너희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이.

이제 바울은 하나 됨을 지켜야 하는 근거를 말합니다. 일곱 개의 ‘하나’가 이어집니다. 세 개씩 짝을 지어 성령, 주, 아버지와 연결됩니다. 4절은 성령과 관련된 세 가지입니다.

"몸이 하나요." 교회는 하나의 몸입니다(1:23, 2:16). 그리스도의 몸이 여러 개일 수는 없습니다. 교단과 교파가 나뉘어 있고 지역 교회가 수없이 많지만, 그리스도를 머리로 모신 참 교회는 하나입니다. 다른 교회의 성도도 같은 몸의 지체입니다.

"성령이 한 분이시니." 몸이 하나인 것은 그 몸에 생명을 주시는 영이 한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내 오른손과 왼손이 하나의 몸인 것은 같은 생명이 흐르기 때문입니다. 고린도전서 12:13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부르심의 한 소망." 우리는 모두 같은 미래를 향해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이르는 것, 새 하늘과 새 땅. 지금은 서로 다른 처지에 있지만, 결국 같은 곳에서 같은 식탁에 앉을 사람들입니다. 같은 목적지를 향해 가는 사람들은 같은 배를 탄 사람들입니다. 함께 갈 사람들끼리 지금 다툴 이유가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일곱 개의 하나 — 몸, 성령, 소망(4절) / 주, 믿음, 침례(5절) / 하나님 아버지(6절). 성령 → 주(아들) → 아버지의 순서로, 교회의 경험에서 시작해 근원으로 올라갑니다. 1장의 찬송(아버지 → 아들 → 성령)과 반대 방향입니다.
  • 한 소망 — 1:18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2:12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소망 없던 이방인들이 이제 유대인과 같은 소망을 가졌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2:12-13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 롬 12:4-5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으나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니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 엡 2:16, 18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 딛 2:13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과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5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주도 하나요 믿음도 하나요 침례도 하나요

직역 주가 한 분이시고, 믿음이 하나이며, 침례가 하나이다.

두 번째 세 짝은 주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됩니다.

"주도 하나요." 1세기 사람들에게 ‘주(퀴리오스)’는 많았습니다. 황제도 주였고, 여러 신들도 주였습니다(고전 8:5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 주는 오직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고전 8:6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유대인 성도와 이방인 성도가 모두 같은 주를 섬깁니다. 주인이 같은 종들은 서로 다툴 수 없습니다.

"믿음도 하나요." 한 주를 향한 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두 가지로 읽을 수 있습니다. 하나는 그리스도를 의지하는 믿음의 행위이고(2:8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른 하나는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믿음의 내용입니다(유 1:3 "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 둘 다 하나입니다. 유대인이 믿는 방식과 이방인이 믿는 방식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침례도 하나요." 믿음을 고백하고 그리스도와 연합했다는 것을 보여 주는 예식은 하나입니다. 유대인이 받는 침례와 이방인이 받는 침례가 다르지 않습니다. 부자의 침례와 종의 침례가 다르지 않습니다. 모두 같은 물에 잠겨 같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살아났음을 고백합니다(롬 6:3–4). 할례는 유대인과 이방인을 갈라놓았지만, 침례는 그들을 하나로 묶습니다. 이 구절은 왜 ‘주의 만찬’을 말하지 않고 침례를 말할까요? 침례는 교회에 들어오는 문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도는 같은 문으로 들어왔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침례 밥티스마 — 동사 밥티조는 ‘물에 잠그다, 담그다’. 『개역한글』은 ‘세례’로 옮겼습니다. 이 강해에서는 원어의 뜻과 침례교회의 전통에 따라 ‘침례’로 적습니다. 침례교회는 침례가 구원을 주는 것이 아니라, 은혜로 이미 구원받은 사람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공개적으로 고백하는 순종의 예식이라고 믿습니다.
  • 한 침례 — 성령 침례(고전 12:13)를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지만, 대부분의 학자는 물 침례로 봅니다. 물 침례는 성령으로 그리스도와 연합한 내적 실재를 겉으로 보여 주는 표입니다.
  • 성(性)의 대칭 — 원문에서 ‘하나’는 주(헤이스, 남성), 믿음(미아, 여성), 침례(헨, 중성)로 세 가지 성이 모두 쓰였습니다. 우연이겠지만 리듬감 있는 고백문처럼 들립니다. 4–6절은 초대교회의 침례 고백문이나 찬송에서 왔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8:5-6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니
  • 롬 6:3-4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 갈 3:27-28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 유 1:3성도에게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위하여 힘써 싸우라
  • 행 2:38, 41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그 말을 받는 사람들은 침례를 받으매
6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 — 만유 위에,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직역 한 하나님, 곧 모든 것의 아버지가 계시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모든 것을 통하여, 모든 것 안에 계신다.

일곱 번째 ‘하나’, 그리고 모든 하나 됨의 근원입니다.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이스라엘이 매일 고백하던 쉐마,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니"(신 6:4)의 메아리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기에 그분의 백성도 하나입니다. 하나님이 유대인의 하나님 따로, 이방인의 하나님 따로 계시지 않습니다(롬 3:29–30 "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뇨 또는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니라").

그리고 하나님은 "만유의 아버지"이십니다. 3:15에서 하늘과 땅의 모든 족속에게 이름을 주신 그 아버지입니다. 바울은 이 아버지를 세 개의 전치사로 노래합니다.
· "만유 위에 계시고" — 하나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여 다스리십니다.
· "만유를 통일하시고" — 원문은 ‘만유를 통하여’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통하여 일하시고 모든 것을 붙드십니다.
·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 하나님은 모든 것 안에 가까이 계십니다.

위에, 통하여, 안에. 하나님은 멀리 계시면서 동시에 가까이 계시고, 모든 것을 다스리시면서 동시에 모든 것 안에서 일하십니다. 이 크신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작은 차이와 다툼은 얼마나 사소한지요. 한 아버지의 자녀들은 서로 형제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만유를 통일하시고 — 원문은 ‘디아 판톤’, ‘모든 것을 통하여’. 『개역한글』은 이 말을 1:10의 ‘통일’과 같은 뜻으로 풀어 옮겼습니다. 『개역개정』은 "만유를 통일하시고"를 그대로 두었고, 『새번역』은 "모든 것을 통하여"로 옮겼습니다.
  • 만유 판톤 — 남성(모든 사람)으로도, 중성(모든 것)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문맥상 교회의 모든 성도를 우선 가리키지만, 1:10, 23의 우주적 관점을 생각하면 만물로도 읽을 수 있습니다.
  • 쉐마 — 신 6:4–5. 유대인들은 아침저녁으로 이 말씀을 암송했습니다. 바울은 고전 8:6에서 이 쉐마를 ‘한 하나님 아버지’와 ‘한 주 예수 그리스도’로 나누어 고백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6:4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유일한 여호와시니
  • 롬 3:29-30하나님은 홀로 유대인의 하나님이시뇨 또는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뇨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 롬 11:36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 고전 15:28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시려 하심이라
  • 말 2:10우리는 한 아버지를 가지지 아니하였느냐 한 하나님의 지으신 바가 아니냐 어찌하여 우리 각 사람이 자기 형제에게 궤사를 행하여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 됨은 만드는 것이 아니라 지키는 것입니다

교회의 하나 됨은 우리가 애써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이미 십자가로 이루어 놓으셨습니다. 우리의 몫은 그것을 깨뜨리지 않고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지키는 데도 힘을 다해야 합니다.

하나 됨을 깨뜨리는 것은 대개 큰 교리 논쟁이 아니라 작은 교만, 작은 서운함, 참지 못한 한마디입니다. 오늘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으로 누군가를 ‘용납’해 봅시다. 그 사람과 나는 같은 몸, 같은 성령, 같은 소망, 같은 주, 같은 믿음, 같은 침례, 같은 아버지를 가진 사람입니다.

4:7–16각 사람에게 은혜를 주셨나니 — 성도를 온전케 하여 그리스도까지 자라게

1–6절이 교회의 하나 됨이었다면, 7–16절은 교회의 다양함입니다.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닙니다. 같은 몸이지만 지체들은 저마다 다른 역할을 맡았습니다. 바울은 ‘모두’(1–6절)에서 ‘각 사람’(7절)으로 시선을 옮깁니다.

이 단락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은혜의 선물을 주셨다(7–10절). 특히 말씀 사역자들을 교회에 주셨는데, 그 목적은 성도들이 봉사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는 것이다(11–12절). 그 결과 교회는 하나가 되고 자라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른다(13–16절). 이 단락에는 ‘자라다’, ‘세우다’, ‘충만’, ‘온전’ 같은 성장의 말들이 가득합니다.

7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다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은혜를 주셨나니

직역 그러나 우리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을 따라 은혜가 주어졌다.

원문은 ‘그러나’로 시작합니다. 1–6절에서 ‘하나’를 일곱 번이나 말한 바울이 이제 방향을 바꿉니다. 하나 됨 안에 다양함이 있습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교회 안에 은혜를 받지 못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목회자나 특별한 몇몇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께 받은 선물이 있습니다.

여기서 ‘은혜’는 구원의 은혜(2:8)라기보다 섬기는 은혜, 곧 은사입니다. 3:7–8에서 바울은 자기가 사도가 된 것을 ‘은혜의 선물’이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에게 사도의 은혜가 있었듯이, 모든 성도에게는 각자의 섬김을 위한 은혜가 있습니다. 가르치는 은혜, 돕는 은혜, 위로하는 은혜, 대접하는 은혜, 기도하는 은혜, 다스리는 은혜(롬 12:6–8, 고전 12:4–11, 벧전 4:10–11).

그 은혜는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 주어졌습니다. 누구에게 무엇을 얼마나 주실지는 그리스도께서 정하십니다. 그래서 내가 받은 은사가 다른 사람보다 작아 보인다고 열등감을 가질 필요도, 커 보인다고 교만할 필요도 없습니다. 각자의 분량은 그리스도의 지혜로운 선택입니다. 중요한 것은 크기가 아니라, 받은 것을 몸을 세우는 데 쓰는 것입니다(16절 "각 지체의 분량대로").

원어 · 번역 노트
  • 분량 메트론 — ‘자, 척도’. 4:13 "장성한 분량", 4:16 "각 지체의 분량대로", 롬 12:3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영어 meter의 어원입니다.
  • 선물 도레아 — 3:7 "은혜의 선물"과 같은 단어. 8절 인용문의 ‘선물(도마타)’과 연결됩니다.
  • 그러나 — 원문 ‘헤니 데 헤카스토’. 『개역한글』은 접속사를 생략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2:4-6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 고전 12:4-7, 11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각 사람에게 성령의 나타남을 주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 벧전 4:10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각양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같이 서로 봉사하라
  • 마 25:15각각 그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두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8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그러므로 이르기를 저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하였도다

직역 그러므로 이렇게 말한다. "그가 높은 곳으로 올라가실 때 포로들을 사로잡아 이끄시고, 사람들에게 선물들을 주셨다."

그리스도께서 각 사람에게 선물을 주셨다는 것을 보여 주려고 바울은 시편 68:18을 인용합니다. 시편 68편은 하나님께서 원수들을 이기시고 승리의 행진을 하며 시온 산 성전으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노래합니다. 고대의 왕은 전쟁에서 이기면 포로들을 이끌고 개선 행진을 했고, 전리품을 백성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위로 올라가실 때에." 바울은 이 시편을 그리스도의 승천으로 읽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 죄와 사망과 사탄을 이기시고, 개선장군처럼 하늘로 오르셨습니다(1:20–21).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이것은 두 가지로 읽힙니다. 하나는 그리스도께서 패배한 원수들, 곧 정사와 권세들을 포로로 끌고 가셨다는 뜻입니다(골 2:15 "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다른 하나는 사탄에게 포로로 잡혀 있던 우리를 그리스도께서 사로잡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는 뜻입니다. 둘 다 진리입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 승리하신 왕이 전리품을 백성에게 나누어 주듯,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교회에 선물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 선물이 바로 7절의 은사들이고, 11절의 직분자들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신 것도 승천하신 그리스도의 선물이었습니다(행 2:33 "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원어 · 번역 노트
  • 시 68:18 인용의 차이 — 히브리어 성경과 70인역의 시 68:18(70인역 67:19)은 "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입니다. 바울은 ‘받으셨다’를 ‘주셨다’로 바꾸어 인용합니다. 그런데 유대교의 아람어 번역(타르굼)은 이 시편을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율법을 ‘받아’ 사람들에게 ‘주었다’고 풀었습니다. 바울은 이미 알려진 이 해석 전통을 따르면서, 새 모세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셔서 성령과 은사를 ‘주셨다’고 말합니다. ‘더 깊이’ 참고.
  • 사로잡힌 자를 사로잡으시고 — 원문은 같은 뿌리를 겹친 강조 표현(아이크말로테우센 아이크말로시안). 삿 5:12 "바락이여 일어나 네 사로잡은 자를 끌고 갈지어다"와 같은 표현입니다.
  • 오순절과 시 68편 — 유대인들은 오순절(칠칠절)을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날로 기념했고, 시 68편을 오순절 시편으로 읽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오순절에 성령을 부어 주셨습니다(행 2장).
함께 읽을 말씀
  • 시 68:18주께서 높은 곳으로 오르시며 사로잡은 자를 끌고 선물을 사람들에게서 받으시며
  • 골 2:15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 행 2:33하나님이 오른손으로 예수를 높이시매 그가 약속하신 성령을 아버지께 받아서 너희 보고 듣는 이것을 부어 주셨느니라
  • 요 16:7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 고후 2: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9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뇨

올라가셨다 하였은즉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것이 아니면 무엇이뇨

직역 "그가 올라가셨다"는 것은 그가 땅의 더 낮은 부분들로 내려가셨다는 것 외에 무엇을 뜻하겠는가?

바울은 잠깐 인용문을 풀이합니다. 올라가셨다는 것은 먼저 내려오셨다는 뜻입니다. 높은 곳으로 오르신 분은 원래 낮은 곳에 계셨던 분입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그분의 낮아지심을 전제로 합니다.

"땅 아랫곳으로 내리셨던." 이것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세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① 성육신. ‘땅 아랫곳’을 ‘아래에 있는 땅’, 곧 하늘에 대비되는 이 세상으로 보는 해석입니다.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오셔서 사람이 되신 것. 요 3:13 "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많은 현대 학자가 이 해석을 택합니다. ② 죽음과 무덤. 땅속 깊은 곳, 곧 무덤과 죽음의 세계까지 내려가셨다는 해석입니다. 시 63:9 "땅 깊은 곳". 롬 10:7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모셔 올리려는 것". ③ 오순절 성령 강림.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성령으로 다시 내려오셨다는 해석입니다(소수 견해).

어느 해석이든 핵심은 같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높은 곳에서 가장 낮은 곳까지 내려오셨다가, 다시 가장 높은 곳으로 오르셨습니다. 빌립보서 2:6–11의 그림입니다. 하나님의 본체이셨으나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며, 그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이셨습니다. 3:18의 ‘높이와 깊이’가 바로 이 내려오심과 올라가심의 거리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땅 아랫곳 타 카토테라 메레 테스 게스 — ‘땅의 더 낮은 부분들’. 헬라어 문법상 ‘땅이라는 더 낮은 부분’(동격, 성육신)으로도, ‘땅보다 더 낮은 부분’(비교, 음부)으로도 읽을 수 있어 해석이 갈립니다. 일부 사본에는 ‘먼저(프로톤)’가 있어 ‘먼저 내리셨던’으로 읽힙니다(KJV).
  • 사도신경 — 사도신경의 ‘음부에 내려가셨다가’(한국 교회 번역본에서는 대개 생략)는 벧전 3:19, 4:6과 함께 이 구절도 근거 중 하나로 여겨져 왔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빌 2:6-9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 요 3:13하늘에서 내려온 자 곧 인자 외에는 하늘에 올라간 자가 없느니라
  • 롬 10:6-7누가 하늘에 올라가겠느냐… 누가 음부에 내려가겠느냐 하지 말라 하니
  • 시 139:15내가 은밀한 데서 지음을 받고 땅의 깊은 곳에서 기이하게 지음을 받은 때에
10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라

내리셨던 그가 곧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자니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직역 내려가셨던 그분이 바로 모든 하늘들 위로 올라가신 분이시니, 이는 만물을 채우시려는 것이다.

"내리셨던 그가 곧… 오르신 자니." 낮아지신 분과 높아지신 분은 같은 분입니다. 베들레헴 구유의 아기, 나사렛의 목수, 갈보리의 죄수가 바로 모든 하늘 위에 오르신 왕입니다. 높아지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낮은 자리를 아시는 분입니다(히 4:15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그분은 "모든 하늘 위에" 오르셨습니다. 1:21에서 모든 정사와 권세와 이름 위에 앉으셨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하늘이 여러 층이라고 생각했습니다(고후 12:2 "셋째 하늘"). 그리스도는 그 모든 하늘보다 더 높이 계십니다. 그분보다 높은 것은 없습니다.

그리고 목적이 나옵니다. "이는 만물을 충만케 하려 하심이니라." 그리스도의 승천은 우리를 떠나 멀리 가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공간에 매이지 않으시고 온 우주를 채우시기 위해 오르셨습니다. 갈릴리에 계실 때는 한 곳에만 계실 수 있었지만,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성령으로 모든 곳에, 모든 교회에, 모든 성도 안에 계십니다. 1:23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리고 그 충만의 첫 번째 방법이 바로 다음 절에 나오는 선물들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모든 하늘 위에 휘페라노 판톤 톤 우라논 — 1:21 ‘뛰어나게(휘페라노)’와 같은 단어. 히 4:14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 히 7:26 "하늘보다 높이 되신 자".
  • 충만케 플레로세 — 1:23, 3:19, 4:13과 이어지는 에베소서의 ‘충만’ 주제. 렘 23:24 "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에서 하나님께 쓰인 말이 그리스도께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엡 1:20-23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자의 충만이니라
  • 히 4:14-15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 예수… 우리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 요 14:12, 16-18나는 아버지께로 감이니라…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너희에게로 오리라
  • 마 28:20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렘 23:24나는 천지에 충만하지 아니하냐
11혹은 사도로, 선지자로, 복음 전하는 자로, 목사와 교사로 주셨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직역 그리고 그분이 어떤 이들은 사도로, 어떤 이들은 선지자로, 어떤 이들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이들은 목자와 교사로 주셨다.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주신 선물의 목록입니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 선물이 ‘능력’이 아니라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교회에 사람들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고 섬기는 사람들입니다.

① 사도. 그리스도께서 직접 부르시고 보내신 사람들. 열두 제자와 바울처럼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 교회의 기초를 놓은 이들입니다(2:20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② 선지자. 성령의 감동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교회에 전하는 사람들(3:5). 사도와 선지자는 교회의 터를 놓는 직분이었고, 그들이 받은 계시는 이제 신약 성경으로 우리 손에 있습니다.

③ 복음 전하는 자. 전도자입니다. 아직 복음을 듣지 못한 곳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빌립(행 21:8 "전도자 빌립"), 디모데(딤후 4:5 "전도인의 일을 하며")가 그랬습니다. 오늘날의 선교사, 개척자, 전도자들이 이 역할을 합니다.

④ 목사와 교사. 원문에서 이 둘은 하나의 관사로 묶여 있습니다. 그래서 ‘가르치는 목자’, 곧 한 직분의 두 측면으로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목사’는 원문으로 ‘목자’입니다. 양을 먹이고, 돌보고, 지키고,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목자가 양을 먹이는 꼴은 말씀이므로, 목자는 곧 교사입니다. 신약에서 ‘목자(포이멘)’가 교회 지도자를 가리키는 명사로 쓰인 것은 여기뿐이지만, 동사 ‘치다(포이마이노)’는 장로들의 사역을 말할 때 쓰였습니다(행 20:28, 벧전 5:2). 신약에서 장로(프레스뷔테로스), 감독(에피스코포스), 목자(포이멘)는 같은 직분을 부르는 여러 이름입니다(행 20:17, 28, 딛 1:5, 7).

원어 · 번역 노트
  • 목사와 교사 — 원문 ‘투스 데 포이메나스 카이 디다스칼루스’. 다른 직분 앞에는 각각 ‘투스 멘… 투스 데…’로 관사가 붙었는데, 목사와 교사는 하나의 관사 아래 묶였습니다. 그래서 ① 같은 직분의 두 기능, ② 겹치지만 구별되는 두 직분(모든 목사는 교사지만 모든 교사가 목사는 아님)으로 해석됩니다.
  • 침례교회의 직분 — 침례교회는 신약 교회의 직분을 크게 목사(장로, 감독)와 집사, 두 가지로 이해해 왔습니다(빌 1:1 "감독들과 집사들", 딤전 3장). 목사는 말씀과 기도로 교회를 섬기고(행 6:4), 집사는 교회의 필요를 섬깁니다(행 6:1–3).
  • 다른 은사 목록 — 롬 12:6–8, 고전 12:8–10, 28–30, 벧전 4:10–11. 에베소서의 목록은 특히 ‘말씀 사역’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모두 말씀으로 교회를 세우는 직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행 20:28너희는 자기를 위하여 또는 온 양떼를 위하여 삼가라 성령이 저들 가운데 너희로 감독자를 삼고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를 치게 하셨느니라
  • 벧전 5:2-4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
  • 고전 12:28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첫째는 사도요 둘째는 선지자요 세째는 교사요
  • 렘 3:15내가 또 내 마음에 합하는 목자를 너희에게 주리니 그들이 지식과 명철로 너희를 양육하리라
  • 딤후 4:2, 5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전도인의 일을 하며 네 직무를 다하라
12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이는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하심이라

직역 성도들을 준비시켜 섬김의 일을 하게 하고,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기 위함이다.

직분자들을 주신 목적입니다. 이 절은 교회에 대한 우리의 생각을 바꾸어 놓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목사와 교사를 주신 목적은 그들이 교회의 모든 일을 다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를 온전케 하여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목사의 일은 성도들이 봉사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고, 봉사의 일은 성도들이 합니다.

"온전케 하여." 원문 카타르티스모스는 의미가 풍부한 말입니다. 어부들이 찢어진 그물을 깁는 것(마 4:21 "그물 깁는 것을"), 의사가 부러진 뼈를 맞추는 것, 배를 항해에 필요한 장비로 갖추는 것을 이 말로 불렀습니다. 목사와 교사는 성도들의 찢어진 곳을 깁고, 어긋난 곳을 바로 맞추고, 섬길 수 있도록 말씀으로 무장시킵니다.

그리고 성도들이 하는 일은 "봉사의 일"입니다. ‘봉사’는 원문 디아코니아, 섬김입니다. 3:7에서 바울이 자기를 ‘일군(디아코노스)’이라고 불렀던 그 말입니다. 바울이 복음의 일군이었듯, 모든 성도는 섬김의 일군입니다. 교회의 사역은 목회자의 것만이 아니라 모든 성도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만인 제사장’, 그리고 침례교회가 소중히 여겨 온 ‘모든 신자가 사역자’라는 원리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결과는 "그리스도의 몸을 세우려", 곧 교회가 건축되는 것입니다. 2:21–22의 공사 중인 성전이 여기서 다시 나옵니다. 목사가 혼자 벽돌을 다 쌓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이 저마다 받은 은사로 함께 쌓아 올립니다. 축구에 비유하면, 목사는 경기장에서 혼자 뛰는 선수가 아니라 선수들을 훈련시키는 코치입니다. 경기는 모든 성도가 함께 뜁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온전케 카타르티스모스 — 신약에서 명사형은 여기에만 나옵니다. 동사 카타르티조는 마 4:21 "그물 깁는 것", 갈 6:1 "바로잡고", 히 13:21 "온전케 하사", 벧전 5:10 "친히 온전케 하시며"에 쓰였습니다.
  • 쉼표 문제 — 12절의 세 구절(성도를 온전케 하여 /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몸을 세우려)을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집니다. 옛 영어 번역(KJV)은 쉼표를 넣어 ‘성도를 온전케 하기 위해, 봉사의 일을 위해, 몸을 세우기 위해’로 읽어서 세 가지 모두 직분자의 일처럼 보였습니다. 대부분의 현대 학자와 번역은 『개역한글』처럼 ‘성도를 온전케 하여 → (성도들이) 봉사의 일을 하게 하며 → 몸을 세우려’로 읽습니다. 전치사가 첫째는 ‘프로스’, 둘째와 셋째는 ‘에이스’로 다른 것이 근거입니다.
  • 봉사 디아코니아 — 행 6:1–4에서 사도들은 ‘말씀 사역(디아코니아 투 로구)’에, 일곱 일꾼들은 ‘공궤(디아코니아)’에 힘쓰기로 했습니다. 둘 다 디아코니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벧전 2:9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 고전 14:12, 26교회의 덕 세우기를 위하여 풍성하기를 구하라…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 딤후 3:16-17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 행 6:2-4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제쳐 놓고 공궤를 일삼는 것이 마땅치 아니하니… 우리는 오로지 기도하는 것과 말씀 전하는 것을 힘쓰리라
  • 출 18:17-22네가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이 일이 네게 너무 중함이라 네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13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리니

직역 마침내 우리 모두가 믿음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지식의 하나 됨에, 성숙한 사람에, 그리스도의 충만함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까지.

교회가 세워지는 목표입니다. "이르리니", 우리는 어딘가를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 목적지가 세 가지로 그려집니다.

①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3절에서는 이미 주어진 ‘성령의 하나 됨’을 지키라고 했다면, 13절은 앞으로 이르러야 할 ‘믿음과 앎의 하나 됨’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아는 일에서 교회가 점점 더 하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하나 됨은 출발점이기도 하고 목적지이기도 합니다.

②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원문은 ‘성숙한 어른 한 사람’입니다. 복수가 아니라 단수입니다.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른이 되는 것을 넘어, 교회 전체가 하나의 성숙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2:15의 ‘한 새 사람’이 자라서 어른이 됩니다. 14절의 ‘어린아이’와 대조됩니다.

③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장성한 분량’은 다 자란 키를 말합니다. 아이들이 문설주에 키를 재며 자라듯, 교회의 키를 재는 기준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키만큼 자라야 합니다. 이 목표는 너무 높아서 이 땅에서 완전히 이루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목표가 높다는 것은 우리가 멈추지 않고 계속 자랄 이유가 됩니다. 3:19의 ‘하나님의 모든 충만’과 같은 목적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온전한 텔레이오스 — ‘목적(텔로스)에 이른, 성숙한, 다 자란’. 고전 14:20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히 5:14 "단단한 식물은 장성한 자의 것이니". 도덕적 완전무결함보다는 성숙을 뜻합니다.
  • 장성한 분량 메트론 헬리키아스 — ‘헬리키아’는 키(눅 19:3 삭개오가 ‘키’가 작아서) 또는 나이(요 9:21 "그가 장성하였으니")를 뜻합니다. 눅 2:52 "예수는 그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 하나님의 아들 — 에베소서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칭호는 여기에만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1:28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 엡 3:19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 롬 8:29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요일 3:2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 히 6:1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고 완전한 데 나아갈지니라
14어린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이는 우리가 이제부터 어린 아이가 되지 아니하여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에 빠져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치 않게 하려 함이라

직역 그리하여 우리가 더 이상 어린아이가 되지 않아, 사람들의 속임수와 미혹의 계략을 꾸미는 교활함으로 인해 가르침의 온갖 바람에 이리저리 밀리고 파도에 흔들리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13절의 성숙한 어른과 반대되는 모습이 "어린 아이"입니다. 어린아이는 귀엽지만 쉽게 속습니다. 사탕 하나에 낯선 사람을 따라갑니다. 신앙의 어린아이도 그렇습니다. 그럴듯한 말, 신기한 체험, 화려한 약속에 쉽게 끌려갑니다.

바울은 바다의 그림을 씁니다. 어린 신앙은 돛도 키도 없는 작은 배와 같아서, "모든 교훈의 풍조에 밀려 요동"합니다. 오늘은 이 가르침의 바람에, 내일은 저 가르침의 바람에 이리저리 밀려다닙니다. ‘풍조’는 ‘바람의 흐름’입니다. 거짓 가르침은 유행처럼 불어왔다가 사라집니다. 성숙하지 않은 성도는 그때마다 휩쓸립니다.

그 바람 뒤에는 "사람의 궤술과 간사한 유혹"이 있습니다. ‘궤술’은 원래 ‘주사위 노름’이라는 말입니다. 노름꾼이 속임수 주사위로 사람을 속이듯, 거짓 교사들은 교묘하게 사람을 속입니다. ‘간사한 유혹’은 원문으로 ‘미혹하기 위한 계략(메토데이아)’입니다. 6:11에서 같은 단어가 ‘마귀의 궤계’로 나옵니다. 거짓 가르침 뒤에는 마귀의 전략이 있습니다. 바울은 에베소 장로들에게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또한 너희 중에서도 제자들을 끌어 저희를 좇게 하려고 어그러진 말을 하는 사람들이 일어날 줄을 내가 아노라"(행 20:29–30)고 경고했었습니다.

그렇다면 흔들리지 않는 길은 무엇입니까? 11–12절의 말씀 사역자들을 통해 바른 말씀으로 양육받고, 그 말씀 위에 뿌리를 내리는 것입니다(3:17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원어 · 번역 노트
  • 궤술 퀴베이아 — ‘주사위(퀴보스) 놀이’. 영어 cube의 어원. 속임수 주사위로 속이는 노름꾼의 수법을 가리킵니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 간사한 유혹 — 원문 ‘엔 파누르기아 프로스 텐 메토데이안 테스 플라네스’. ‘파누르기아’는 ‘무엇이든 할 수 있는’ 교활함(고후 11:3 "뱀이 그 간계로 이와를 미혹케 한 것같이"). ‘메토데이아’는 ‘방법, 전략, 계략’(영어 method의 어원), 6:11 "마귀의 궤계".
  • 에베소의 거짓 가르침 — 디모데전서(1:3–7, 4:1–3)와 요한계시록 2:2, 6(니골라당)은 에베소 교회가 실제로 거짓 교사들과 싸웠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행 20:29-31내가 떠난 후에 흉악한 이리가 너희에게 들어와서 양떼를 아끼지 아니하며…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 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약 1:6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 히 13:9여러 가지 다른 교훈에 끌리지 말라 마음은 은혜로써 굳게 함이 아름답고
  • 고전 14:20형제들아 지혜에는 아이가 되지 말고 악에는 어린 아이가 되라 지혜에는 장성한 사람이 되라
  • 딤후 4:3-4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15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랄지라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직역 오히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며, 모든 면에서 머리이신 그분, 곧 그리스도에게까지 자라 가자.

어린아이처럼 흔들리는 모습의 반대는 무엇입니까?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원문은 ‘진리를 말하다, 진리대로 살다’라는 동사 하나입니다. 14절의 거짓 교사들이 속임수와 계략을 썼다면, 성도들은 진리를 말하고 진리대로 삽니다.

그런데 그 진리는 "사랑 안에서" 말해야 합니다. 이 두 가지가 함께 있어야 합니다. 사랑 없는 진리는 사람을 찌르는 칼이 되고, 진리 없는 사랑은 사람을 망치는 달콤한 독이 됩니다. 진리만 외치는 사람은 옳지만 차갑고, 사랑만 말하는 사람은 따뜻하지만 흐릿합니다. 그리스도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고 하신 분입니다. 성숙한 교회는 진리를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으로 말하는 공동체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는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신앙의 어느 한 부분만이 아니라 ‘범사에’, 모든 면에서 자랍니다. 지식만, 봉사만, 기도만이 아니라 성품과 관계와 말과 생활 전체가 자랍니다. 그리고 그 목표는 "그에게까지", 머리이신 그리스도입니다. 13절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과 같은 목표입니다.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몸은 머리를 향해 자랍니다. 그리고 다음 절에서 보듯, 몸은 머리로부터 자랍니다. 그리스도는 성장의 목표이자 성장의 근원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참된 것을 하여 알레튜온테스 — ‘진리를 말하다(알레튜오)’의 분사. 신약에서 여기와 갈 4:16 "내가 너희에게 참된 말을 하므로"에만 나옵니다. 말뿐 아니라 진리대로 사는 것까지 포함한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개역한글』의 ‘참된 것을 하여’는 이 두 뜻을 모두 살린 번역입니다.
  • 자랄지라 아욱세소멘 — 2:21 "성전이 되어 가고(자라 가고)"와 같은 동사. 골 2:19 "온 몸이…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함께 읽을 말씀
  •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 잠 27:6친구의 통책은 충성에서 말미암은 것이나 원수의 잦은 입맞춤은 거짓에서 난 것이니라
  • 벧후 3:18오직 우리 주 곧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 가라
  • 골 1:9-10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 엡 1:22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16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연락하고 상합하여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운다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직역 그분에게서 온 몸이, 공급하는 모든 마디를 통해 꼭 맞게 짜맞추어지고 서로 결합되어, 각 부분이 자기 분량대로 일함으로써 몸이 자라 사랑 안에서 스스로를 세워 간다.

7절에서 시작한 단락이 몸의 그림으로 마무리됩니다. 이 절은 원문으로 매우 복잡한 문장이지만, 그림은 분명합니다. 건강한 몸이 어떻게 자라는가입니다.

① 성장의 근원은 머리입니다. "그에게서 온 몸이." 몸의 모든 생명과 방향은 머리에서 옵니다. 교회의 성장은 프로그램이나 전략이 아니라 그리스도께로부터 흘러오는 생명에서 시작됩니다.

② 성장은 연결을 통해 일어납니다.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입음으로 연락하고 상합하여." ‘마디’는 관절, 이음매입니다. 머리에서 오는 생명은 관절과 인대를 통해 온몸에 전달됩니다. 손가락이 아무리 좋아도 손목과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피가 통하지 않습니다. 성도도 다른 성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생명이 흐르지 않습니다. 혼자 하는 신앙은 몸에서 떨어진 지체와 같습니다. ‘연락하고 상합하여’는 2:21에서 성전의 돌들이 ‘서로 연결하여’라고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③ 성장은 모든 지체의 참여로 일어납니다.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7절의 ‘각 사람에게 그리스도의 선물의 분량대로’가 여기서 열매 맺습니다. 몸의 모든 부분이 제 몫을 할 때 몸이 자랍니다. 눈은 보고, 귀는 듣고, 손은 일하고, 발은 걷습니다. 어느 하나라도 일하지 않으면 몸은 절뚝거립니다. 작아 보이는 지체가 오히려 더 요긴합니다(고전 12:22).

④ 성장의 환경과 목표는 사랑입니다.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2절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15절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그리고 16절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 이 단락은 사랑으로 감싸여 있습니다. 교회는 사랑이라는 토양에서 자라고, 사랑이라는 열매를 맺습니다. 사랑 없는 성장은 몸이 아니라 종양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마디 하페 — ‘접촉점, 이음매, 인대’. 골 2:19 "온 몸이 마디와 힘줄로 말미암아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고대 의학자 갈레노스도 이 말을 관절을 가리키는 데 썼습니다.
  • 연락하고 쉬나르몰로구메논 — 2:21 "서로 연결하여"와 같은 단어. 상합하여 쉼비바조메논 — ‘함께 결합되다’. 골 2:2 "사랑 안에서 연합하여".
  • 스스로 세우느니라 — 원문은 ‘몸의 성장을 이루어 자기를 세운다’. 몸이 스스로 자라는 것은 머리에게서 생명을 받기 때문입니다. 고전 8:1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함께 읽을 말씀
  • 골 2:19머리를 붙들지 아니하는지라 온 몸이 머리로 말미암아 마디와 힘줄로 공급함을 받고 연합하여 하나님이 자라게 하시므로 자라느니라
  • 고전 12:21-26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가 없다 하거나… 그 뿐 아니라 몸의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도리어 요긴하고
  • 요 15:4-5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절로 과실을 맺을 수 없음 같이…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
  • 고전 8:1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
  • 고전 13:13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교회는 구경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뛰는 곳입니다

많은 교회가 소수의 사람이 일하고 다수가 구경하는 모습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각 사람에게 은혜가 주어졌고, 목사와 교사는 성도들이 섬기도록 준비시키는 사람이며, 몸은 각 지체가 제 분량대로 일할 때 자란다고 말합니다.

내가 받은 은혜의 선물은 무엇입니까? 작아 보여도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분량입니다. 오늘 내가 연결되어야 할 성도는 누구이고, 내가 맡아야 할 몫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모든 일을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되 사랑으로 해 봅시다.

4:17–24이방인같이 행하지 말라 —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바울은 다시 "그러므로"로 새 권면을 시작합니다. 1–16절이 교회 공동체의 삶이었다면, 17–24절은 개인의 삶입니다. 먼저 이방인들, 곧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의 삶을 그리고(17–19절),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은 그렇게 살 수 없다고 말합니다(20–21절). 그리고 옷을 갈아입는 그림으로 새 삶을 설명합니다(22–24절).

여기서 ‘이방인’은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 아닙니다. 에베소의 성도들도 민족으로는 이방인이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고 사는 사람들의 방식’이라는 뜻으로 이 말을 씁니다. 너희는 이방인 출신이지만, 이제 이방인처럼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17이제부터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그러므로 내가 이것을 말하며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행하지 말라

직역 그러므로 나는 이것을 말하고 주 안에서 증언한다. 너희는 더 이상 이방인들이 그들의 생각의 헛됨 가운데 걷는 것처럼 걷지 말라.

"주 안에서 증거하노니." 바울은 이 말을 아주 엄숙하게 합니다. ‘증거하다’는 법정에서 증인이 맹세하고 증언하는 말입니다. 주님 앞에서 단언하건대, 너희는 이제 예전처럼 살 수 없다.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같이." 하나님을 모르는 삶의 첫 번째 특징은 ‘허망함’입니다. ‘허망하다’는 ‘헛되다, 목적이 없다, 아무 결과를 맺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전도서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와 같은 말입니다(70인역은 같은 단어 마타이오테스를 씁니다). 열심히 살지만 그 열심이 어디를 향하는지 모릅니다. 많이 생각하지만 그 생각이 진리에 닿지 못합니다.

특히 그 허망함은 "마음", 곧 생각에서 시작합니다. 삶은 생각을 따라갑니다. 생각이 비뚤면 걸음도 비뚤어집니다. 그래서 바울은 23절에서 ‘심령(생각)으로 새롭게 되라’고 할 것입니다. 로마서 12:2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원어 · 번역 노트
  • 증거하노니 마르튀로마이 — 행 20:26 "오늘 너희에게 증거하거니와", 살전 2:12, 갈 5:3. 엄숙한 경고의 말투입니다.
  • 허망한 것 마타이오테스 — 롬 1:21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롬 8:20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70인역 전도서에서 ‘헛되다(헤벨)’를 옮긴 말입니다.
  • 마음 누스 — ‘생각, 지성, 마음’. 23절의 ‘심령(누스)’과 같은 단어입니다. 17절의 ‘마음의 허망함’이 23절에서 ‘마음(심령)이 새롭게 됨’으로 바뀝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21-22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 벧전 1:18너희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된 것은
  • 전 1:2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 렘 2:5너희 열조가 나에게서 무슨 불의함을 보았기에 나를 멀리하고 가서 허탄한 것을 좇아 허탄하여졌느냐
18총명이 어두워지고 마음이 굳어져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다

저희 총명이 어두워지고 저희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저희 마음이 굳어짐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직역 그들은 생각이 어두워져 있고, 그들 안에 있는 무지와 그들 마음의 굳음 때문에 하나님의 생명에서 소외되어 있다.

바울은 하나님을 모르는 삶을 더 깊이 진단합니다. 순서를 거꾸로 따라가면 뿌리가 보입니다.

가장 깊은 뿌리는 "마음이 굳어짐"입니다. ‘굳어짐’은 원래 뼈가 부러진 자리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 또는 돌처럼 단단해지는 것을 뜻합니다. 손에 굳은살이 박이면 감각이 둔해지듯,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굳은살이 박이면 하나님의 음성에 무감각해집니다. 처음에는 양심이 찔리던 일이 반복될수록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굳어진 마음은 "무지함"을 낳습니다.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이 아니라(롬 1:19–20),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모릅니다. 그리고 무지함은 "총명이 어두워짐"으로 이어집니다. 똑똑한 사람도 하나님에 대해서는 어둠 속에 있을 수 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2:1의 ‘죽었던 너희’와 같은 말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끊어졌습니다. 2:12에서 이방인들은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 곧 하나님의 백성에게서 ‘소외되었다’고 했는데, 같은 단어가 여기서 ‘하나님의 생명에서 소외되었다’에 쓰였습니다. 하나님 없는 삶은 겉으로는 화려해도 속으로는 생명이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굳어짐 포로시스 — 막 3:5 "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사", 롬 11:25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바로의 마음이 강퍅해진 것(출 7–14장)과 같은 상태입니다.
  • 떠나 있도다 아펠로트리오메노이 — ‘남이 되다, 소외되다’. 2:12, 골 1:21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 하나님의 생명 — 하나님께서 주시는 생명, 하나님 자신의 생명.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요일 5:12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함께 읽을 말씀
  • 롬 1:21, 28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 두사
  • 고후 4:4그 중에 이 세상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케 하여
  • 겔 36:26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 히 3:13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 사 6:10이 백성의 마음으로 둔하게 하며 그 귀가 막히고 그 눈이 감기게 하라
19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한다

저희가 감각 없는 자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직역 그들은 감각을 잃고 자신을 방탕에 넘겨주어, 탐욕으로 온갖 더러운 일을 행한다.

굳어진 마음의 마지막 단계입니다. "감각 없는 자 되어." 원문은 ‘아픔을 느끼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나병(한센병)이 무서운 것은 통증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손이 불에 타도 모르고, 상처가 나도 모릅니다. 양심도 그렇습니다. 처음에 죄를 지을 때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러나 그 아픔을 계속 무시하면 결국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게 됩니다. 아픔을 느끼는 양심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로마서 1장에서는 하나님이 그들을 ‘내어 버려 두셨다’(롬 1:24, 26, 28)고 했는데, 여기서는 그들이 스스로를 ‘넘겨주었다’고 합니다. 같은 동사입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사람의 선택이 함께 있습니다. 사람이 죄에 자기를 넘겨주면, 하나님도 그를 그 죄에 넘겨주십니다. ‘방탕’은 수치심 없이 공공연하게 저지르는 절제 없는 쾌락입니다.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욕심’은 원문으로 ‘더 가지려는 탐욕’입니다. 성적인 방종과 물질적 탐욕이 함께 나옵니다. 둘 다 ‘더, 더, 더’를 외칩니다. 아무리 채워도 만족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마음은 밑 빠진 독과 같아서, 쾌락과 소유로 채우려 하지만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5:3, 5에서 바울은 이 ‘탐욕’을 우상 숭배라고까지 부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감각 없는 아팔게오 — ‘아픔(알고스)을 그치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고대 문헌에서는 슬픔이나 고통에 무뎌진 상태를 가리켰습니다. 딤전 4:2 "양심이 화인 맞아서".
  • 방탕 아셀게이아 — ‘부끄러움 없는 방종’. 갈 5:19 육체의 일, 벧전 4:3, 벧후 2:7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
  • 욕심 플레오넥시아 — ‘더(플레온) 가지다(에코)’. 5:3 "탐욕은 너희 중에서 그 이름이라도 부르지 말라", 5:5, 골 3:5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눅 12:15 "모든 탐심을 물리치라".
함께 읽을 말씀
  • 롬 1:24-28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 딤전 4:2자기 양심이 화인을 맞아서
  • 벧전 4:3너희가 음란과 정욕과 술취함과 방탕과 연락과 무법한 우상 숭배를 하여 이방인의 뜻을 좇아 행한 것은 지나간 때가 족하도다
  • 전 5:10은을 사랑하는 자는 은으로 만족함을 얻지 못하고 풍부를 사랑하는 자는 소득으로 만족함을 얻지 못하나니
  • 골 3:5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니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20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이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직역 그러나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렇게 배우지 않았다.

짧지만 강력한 문장입니다. "오직 너희는." 17–19절의 어두운 그림과 정반대로 방향을 틉니다.

"그리스도를… 배우지."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 배웠다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배웠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배우는 것은 단지 교리나 도덕 규칙이 아니라 그리스도라는 인격입니다. 예수님은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마 11:29)고 하셨습니다. 제자는 스승을 배웁니다. 스승의 말만이 아니라 스승의 생각, 스승의 마음, 스승의 삶을 배웁니다.

그리고 그렇게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은 "이같이", 곧 17–19절처럼 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를 진짜로 배웠다면, 허망하고 어둡고 굳어지고 방탕한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는 탐욕이 아니라 자기를 내어 주신 분이고, 방탕이 아니라 거룩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배운 그리스도가 나를 어떻게 살게 하는지 보면, 내가 정말 그리스도를 배웠는지 알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배우지 마테테 — ‘배우다(만타노)’. 제자(마테테스)와 같은 뿌리입니다. 신약에서 ‘그리스도를 배운다’는 표현은 여기에만 나옵니다. 고대 그리스에서 학생은 스승의 학교에 들어가 스승의 삶 전체를 본받았습니다.
  • 이같이 후토스 — ‘그런 식으로’. 17–19절에 묘사된 이방인의 방식을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마 11:29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 골 2:6-7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를 주로 받았으니 그 안에서 행하되… 교훈을 받은 대로 믿음에 굳게 서서
  • 빌 3:8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 요 13:15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21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그에게서 듣고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 너희가 참으로 그에게서 듣고 또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직역 만일 너희가 참으로 그를 들었고,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그대로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다면,

20절의 ‘그리스도를 배웠다’를 더 자세히 설명합니다. 그 배움은 세 가지로 이루어졌습니다. ① "그에게서 듣고." 원문은 ‘그를 들었다’입니다. 에베소 성도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과 다른 이들이 복음을 전할 때, 그들은 사람의 말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었습니다(2:17 "오셔서… 평안을 전하셨으니"). 복음이 바르게 선포될 때, 그리스도께서 친히 말씀하십니다. ② "그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을진대."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한 공동체 안에서 가르침을 받았습니다.

③ 그 가르침의 기준은 "진리가 예수 안에 있는 것같이"입니다. 에베소서에서 ‘그리스도’나 ‘주’ 없이 ‘예수’라는 이름만 단독으로 쓴 곳은 여기뿐입니다. 바울은 일부러 역사 속의 인간 예수, 나사렛에서 자라시고 갈릴리에서 가르치시고 십자가에 달리신 그분을 가리킵니다. 진리는 추상적인 철학이 아니라 한 인격, 예수 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요 14:6)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삶이 곧 진리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삶은 예수님을 닮아 가는 것입니다.

"을진대"는 의심이 아니라 확인입니다. ‘너희가 분명히 그렇게 배웠으니’라는 뜻입니다(3:2 "들었을 터이라"와 같은 표현).

원어 · 번역 노트
  • 예수 — 에베소서에서 ‘예수’는 대부분 ‘그리스도 예수’, ‘주 예수 그리스도’로 나옵니다. 단독으로 쓴 것은 4:21뿐입니다. 많은 학자는 바울이 역사적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의도적으로 강조한 것이라고 봅니다.
  • 그를 들었고 — 원문은 ‘그에 대해’가 아니라 ‘그를(아우톤)’ 들었다. 롬 10:14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도 원문으로는 ‘그를 듣지 못했다면’입니다. 복음 선포를 통해 그리스도의 음성이 들린다는 바울의 이해를 보여 줍니다.
  • 을진대 에이 게 — 3:2와 같은 표현. ‘물론 ~했겠지만’.
함께 읽을 말씀
  • 요 14:6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 요 10:27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 요 1:17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 살전 2:13너희가 우리에게 들은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22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너희는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직역 너희는 이전의 생활 방식에 따른 옛 사람, 곧 속임의 욕망들을 따라 썩어 가는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이제 바울은 옷을 갈아입는 그림으로 그리스도인의 삶을 설명합니다. 22–24절은 세 동작입니다. 벗고(22절), 새롭게 되고(23절), 입으라(24절).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옛 사람’은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의 나, 아담 안에 있던 나, 2:1–3에서 그렸던 그 사람입니다. 바울은 그 옛 사람을 더러운 옷에 비유합니다. 오래 입어 냄새나고 해어진 옷을 벗어 버리듯, 옛 사람의 방식을 벗어 버리라고 합니다. 로마서 6:6에서 바울은 "우리의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습니다. 이제 그 죽은 사람의 옷을 계속 입고 다닐 이유가 없습니다.

옛 사람은 "썩어져 가는" 사람입니다. 현재 진행형입니다. 지금도 계속 썩어 가고 있습니다. 죄는 처음에는 달콤하지만 결국 사람을 썩게 합니다. 관계를 썩게 하고, 마음을 썩게 하고, 몸을 썩게 합니다.

그 원인은 "유혹의 욕심"입니다. 원문은 ‘속임의 욕망들’입니다. 죄의 욕망은 언제나 거짓말을 합니다. ‘이것만 가지면 행복할 거야’, ‘한 번만은 괜찮아’, ‘아무도 모를 거야’. 에덴동산의 뱀이 하와에게 한 말도 그랬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창 3:4–5). 죄의 욕망은 생명을 약속하지만 죽음을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벗어 버리고 아포테스타이 — ‘옷을 벗다’. 25절 "거짓을 버리고(아포테메노이)", 골 3:8–9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히 12:1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약 1:21, 벧전 2:1.
  • 문법 — 22–24절의 ‘벗어 버리고, 새롭게 되어, 입으라’는 원문에서 모두 부정사로, 21절의 ‘가르침을 받았다’의 내용입니다. 곧 ‘너희가 배운 것은, 옛 사람을 벗고 새롭게 되고 새 사람을 입는 것이었다’. 이미 일어난 일(롬 6:6, 골 3:9–10)이면서 동시에 매일 실천해야 할 일입니다.
  • 침례와 옷 — 초대교회에서는 침례받을 사람이 옛 옷을 벗고 물에 들어갔다가 나와서 새 흰 옷을 입었습니다. 갈 3:27 "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함께 읽을 말씀
  • 롬 6:6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 골 3:9-10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 창 3:4-6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 히 3:13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 갈 6:8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진 것을 거두고
23오직 너희의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오직 너희의 심령으로 새롭게 되어

직역 너희 생각의 영으로 새롭게 되어,

옷을 벗고 입는 사이에 바울은 한 가지를 넣습니다. "새롭게 되어." 겉옷만 바꿔 입는 것이 아니라 속이 새로워져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새로워짐은 "심령"에서 일어납니다. 원문은 ‘마음(생각, 누스)의 영’입니다. 17절에서 이방인의 문제는 ‘마음(누스)의 허망함’이었습니다. 그렇다면 해결도 마음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생각의 가장 깊은 곳, 무엇을 가치 있게 여기고 무엇을 원하는지를 결정하는 그 자리가 새로워져야 합니다.

이 동사에는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째, 현재형입니다. 한 번 새로워지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날마다 새로워집니다(고후 4:16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둘째, 수동태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 생각을 새롭게 하십니다. 우리의 몫은 그 새롭게 하심에 우리 생각을 맡기는 것입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고, 그리스도를 생각하는 것입니다(빌 4:8 "무엇에든지 참되며… 이것들을 생각하라").

‘심령으로’를 ‘성령으로’로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원문의 ‘프뉴마’는 사람의 영도 되고 하나님의 영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의 영’이라는 표현은 사람의 내면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물론 그 내면을 새롭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딛 3:5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원어 · 번역 노트
  • 새롭게 되어 아나네우스타이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다시(아나) + 새롭게 하다(네오오)’. 롬 12:2와 골 3:10에서는 비슷한 뜻의 ‘아나카이노오’를 씁니다.
  • 심령 — 원문 ‘토 프뉴마티 투 노오스 휘몬’. ‘너희 생각의 영’. 『새번역』은 "마음의 영을 새롭게 하여", 『공동번역』은 "마음과 생각이 새롭게 되어"로 옮겼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2:2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 고후 4:16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딛 3:5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 시 51:10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 빌 4:8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이것들을 생각하라
24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

직역 그리고 하나님을 따라 진리의 의와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으라.

세 번째 동작, "새 사람을 입으라." 옛 옷을 벗었으면 새 옷을 입어야 합니다. 옛 습관을 끊기만 하고 그 자리를 새것으로 채우지 않으면, 빈자리에 더 나쁜 것이 들어옵니다(마 12:43–45). 그리스도인의 삶은 나쁜 것을 하지 않는 것만이 아니라 좋은 것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25–32절의 모든 명령이 ‘하지 말라’와 ‘하라’의 짝으로 되어 있는 이유입니다.

이 새 사람은 "지으심을 받은" 사람입니다. 2:10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였고, 2:15에서 교회는 ‘한 새 사람으로 지으심을’ 받았습니다. 같은 동사입니다. 새 사람은 우리가 노력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창조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옷을 ‘입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새 옷이 옷장에 걸려 있습니다. 매일 아침 그 옷을 꺼내 입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그 새 사람은 "하나님을 따라" 지어졌습니다. 창세기 1:26–27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죄로 일그러진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새롭게 됩니다. 골로새서 3:10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그 특징은 "의와 진리의 거룩함"입니다. ‘의’는 사람을 향한 바른 관계, ‘거룩함’은 하나님을 향한 바른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둘은 ‘진리’에서 나옵니다. 22절의 옛 사람이 ‘유혹(속임)의 욕심’을 따랐다면, 새 사람은 ‘진리’를 따릅니다. 거짓 대 진리. 이것이 바로 다음 25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참된 것을 말하라"로 이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입으라 엔뒤사스타이 — 6:11, 14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의의 흉배를 붙이고", 롬 13:12, 14 "빛의 갑옷을 입자…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갈 3:27, 골 3:10, 12.
  • 새 카이노스 — ‘질적으로 새로운’. 시간적으로 새것(네오스)이 아니라 전혀 다른 종류의 새것. 2:15 "한 새 사람", 고후 5:17 "새로운 피조물".
  • 거룩함 호시오테스 — ‘경건, 하나님께 합당함’. 신약에서 여기와 눅 1:75 "성결과 의로"에만 나옵니다. 70인역에서는 의(디카이오쉬네)와 자주 짝을 이룹니다(신 9:5, 지혜서 9:3).
함께 읽을 말씀
  • 골 3:10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자의 형상을 좇아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는 자니라
  • 창 1:26-27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 롬 13:14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 사 61:10그가 구원의 옷으로 내게 입히시며 의의 겉옷으로 내게 더하심이
  • 슥 3:3-4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날마다 옷을 갈아입는 사람

우리는 매일 아침 옷을 갈아입습니다. 어제 입던 더러운 옷을 그대로 입고 나가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도 그렇습니다.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이미 죽었지만, 그 옷은 습관처럼 우리 몸에 다시 걸쳐지려 합니다.

오늘 아침 내가 벗어야 할 옛 옷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새 옷,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신 새 사람의 옷을 입고 나가십시오. 그 옷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어 주신 것입니다. 나는 그것을 입기만 하면 됩니다.

4:25–32그런즉 — 새 사람은 이렇게 말하고, 이렇게 화내고, 이렇게 일하고, 이렇게 용서한다

새 사람의 옷을 입은 사람은 어떻게 삽니까? 바울은 아주 구체적인 다섯 가지 영역을 말합니다. 진실한 말(25절), 분노(26–27절), 일(28절), 언어(29–30절), 용서(31–32절). 거창한 영적 체험이 아니라 일상의 작은 자리들입니다.

각 권면에는 일정한 형식이 있습니다. ① 벗어라(하지 말라) → ② 입으라(대신 이렇게 하라) → ③ 이유(왜냐하면). 22–24절의 옷 갈아입기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그리고 이유는 언제나 ‘공동체’와 ‘하나님’입니다. 우리는 서로 지체이고(25절), 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아야 하고(27절), 가난한 자를 도와야 하고(28절), 성령을 근심하게 해서는 안 되고(30절),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셨기 때문입니다(32절).

25거짓을 버리고 각각 이웃과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 우리는 서로 지체이니

그런즉 거짓을 버리고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직역 그러므로 거짓을 벗어 버리고 각자 자기 이웃과 진리를 말하라. 우리는 서로의 지체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는 말의 진실함입니다. "거짓을 버리고." 22절에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라고 한 그 동사입니다. 거짓은 옛 사람의 옷입니다. 그리고 24절에서 새 사람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어졌습니다. 진리로 지어진 사람이 거짓을 말할 수는 없습니다.

"각각 그 이웃으로 더불어 참된 것을 말하라." 스가랴 8:16의 인용입니다.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거짓은 큰 사기만이 아닙니다. 체면 때문에 하는 작은 거짓말, 과장, 슬쩍 사실을 빼먹는 것, 듣기 좋은 말만 하고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하는 것. 이런 것들도 거짓입니다.

그 이유가 놀랍습니다. "이는 우리가 서로 지체가 됨이니라." 바울은 ‘거짓말은 나쁘니까’라고 말하지 않고 ‘우리는 한 몸이니까’라고 말합니다. 몸에서 눈이 손에게 거짓 정보를 주면 어떻게 됩니까? 뜨거운 것을 차갑다고 하면 손은 화상을 입습니다. 신경이 거짓 신호를 보내면 몸 전체가 망가집니다. 교회에서 서로 거짓말을 하는 것은 자기 몸에게 거짓말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신뢰가 무너지면 몸이 무너집니다. 16절에서 몸은 각 마디를 통해 서로 연결되어 자란다고 했습니다. 거짓은 그 연결을 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참된 것을 말하라 — 슥 8:16(70인역) "각각 그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랄레이테 알레테이안 헤카스토스 프로스 톤 플레시온 아우투)". 바울은 거의 그대로 인용합니다. 스가랴 8장은 포로에서 돌아온 백성이 새롭게 세워질 공동체의 모습을 그립니다.
  • 거짓 프슈도스 — 요 8:44 마귀는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 27절에서 마귀가 다시 나옵니다. 거짓은 마귀의 언어입니다.
  • 서로 지체 — 롬 12:5 "이와 같이 우리 많은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느니라".
함께 읽을 말씀
  • 슥 8:16너희가 행할 일은 이러하니라 너희는 이웃과 더불어 진실을 말하며 너희 성문에서 진실하고 화평한 재판을 베풀고
  • 골 3:9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 잠 12:22거짓 입술은 여호와께 미움을 받아도 진실히 행하는 자는 그의 기뻐하심을 받느니라
  • 요 8:44저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장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
  • 행 5:3-4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사람에게 거짓말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께로다
26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직역 화를 내더라도 죄를 짓지 말라. 너희의 분노 위로 해가 지게 하지 말라.

두 번째는 분노입니다. 바울은 놀랍게도 ‘절대 화내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시편 4:4(70인역)를 인용해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라고 합니다. 원문은 명령형 ‘화를 내라’입니다. 물론 화를 내라고 부추기는 것은 아니지만, 모든 분노가 죄는 아니라는 뜻입니다.

하나님도 분노하십니다(2:3 "진노의 자녀", 5:6). 예수님도 성전에서 장사하는 자들을 쫓아내실 때, 안식일에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시며 바리새인들의 완악함을 보실 때 노하셨습니다(막 3:5). 불의를 보고도 아무렇지 않은 것은 사랑이 아니라 무관심입니다. 약자가 짓밟히고, 거짓이 진리를 이기고, 하나님의 이름이 더럽혀질 때 화가 나는 것은 건강한 반응입니다.

그러나 분노는 쉽게 죄로 넘어갑니다. 그래서 바울은 두 가지 경계선을 그어 줍니다. 첫째, "죄를 짓지 말며." 화가 났을 때 하는 말과 행동이 죄가 되지 않도록 다스려야 합니다. 분노 자체보다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가 문제입니다. 둘째,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분노에는 유통기한이 있습니다. 오늘 생긴 분노는 오늘 처리해야 합니다. 해가 지기 전에 하나님께 털어놓고, 가능하면 그 사람과 풀어야 합니다. 분노를 품고 잠자리에 들면, 밤새 그 분노는 원한으로 발효됩니다. ‘품는다’는 말처럼, 분노를 품으면 그것이 알을 깨고 나와 쓴 뿌리가 됩니다(31절 "악독").

유대인의 하루는 해가 질 때 끝났습니다. 그러니 ‘해가 지도록’은 ‘하루를 넘기지 말라’는 뜻입니다. 고대의 피타고라스학파 사람들도 다툰 날에는 해가 지기 전에 서로 손을 잡고 화해했다고 전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시 4:4 인용 — 70인역 시 4:5 "오르기제스테 카이 메 하마르타네테", 『개역한글』 시 4:4 "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히브리어 ‘라그주’는 ‘떨다, 흔들리다’로, 분노나 두려움 모두로 번역될 수 있습니다. 바울은 70인역을 따라 ‘분노’로 읽었습니다.
  • 분을 품지 말고 파로르기스모스 — 26절 앞부분의 ‘분을 내다(오르기조)’와 다른 단어입니다. ‘옆에서(파라) 계속 화를 돋우는 것’, 곧 분노가 쌓여 짜증과 원한이 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 해가 지도록 — 신 24: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끌지 말라". 해가 지기 전에 처리해야 할 일의 원칙.
함께 읽을 말씀
  • 시 4:4너희는 떨며 범죄치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 막 3:5저희 마음의 완악함을 근심하여 노하심으로 저희를 둘러보시고
  • 약 1:19-20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 하며 성내기도 더디 하라 사람의 성내는 것이 하나님의 의를 이루지 못함이니라
  • 마 5:22-24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 잠 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27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직역 마귀에게 자리를 내주지 말라.

해가 지도록 분을 품으면 어떻게 됩니까?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틈’은 원문으로 ‘자리, 공간’입니다. 마귀에게 발 디딜 자리를 내주는 것입니다. 품은 분노는 마귀가 들어와 앉을 수 있는 의자를 내어 주는 것과 같습니다.

‘마귀’는 원문으로 디아볼로스, ‘비방하는 자, 이간질하는 자’라는 뜻입니다. ‘사이를(디아) 던지다(발로)’, 곧 사람과 사람 사이에 무언가를 던져 갈라놓는 자입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하나 된 공동체를 갈라놓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가 가장 쉽게 쓰는 도구가 해결되지 않은 분노와 원한입니다. 서운함이 쌓이면 마귀는 그 틈으로 들어와 속삭입니다. ‘저 사람은 일부러 그런 거야. 너를 무시하는 거야.’

4장 처음에 바울은 하나 됨을 ‘힘써 지키라’고 했습니다(3절). 분노를 그날그날 처리하는 것이 하나 됨을 지키는 구체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6:11에서 바울은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전신갑주를 입으라고 할 것입니다. 영적 전쟁은 거창한 곳이 아니라 이렇게 작은 분노의 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마귀 디아볼로스 —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사탄’(대적자, 고소자)을 옮긴 말. 욥 1–2장, 슥 3:1–2에서 사탄은 하나님 앞에서 사람을 고소합니다. 계 12:10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 틈 토포스 — ‘장소, 기회’. 롬 12:19 "진노하심에 맡기라(토폰 도테)"에서 같은 표현이 ‘자리를 내주다’로 쓰였습니다. 원수 갚는 일은 하나님께 자리를 내어 드리고, 마귀에게는 자리를 내주지 말라는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엡 6: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 약 4: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 벧전 5:8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 고후 2:10-11내가 만일 용서한 일이 있으면… 이는 우리로 사단에게 속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그 궤계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 창 4:6-7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28도적질하지 말고 제 손으로 수고하여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직역 도둑질하던 자는 더 이상 도둑질하지 말고, 오히려 자기 손으로 선한 일을 하며 수고하라. 필요한 사람에게 나누어 줄 것이 있도록.

세 번째는 일과 재물입니다. "도적질하는 자는 다시 도적질하지 말고." 교회 안에 도둑이 있었을까요? 아마 그랬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에는 사회의 밑바닥에서 살던 사람들, 노예들, 가난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노예들은 주인의 물건을 슬쩍하는 일이 흔했고(딛 2:10 "떼어 먹지 말고"), 가난한 날품팔이들도 그랬습니다. 그리고 도둑질은 꼭 남의 물건을 훔치는 것만이 아닙니다. 일하는 시간에 딴짓하는 것, 세금을 속이는 것, 빌린 것을 갚지 않는 것, 남의 공로를 가로채는 것도 도둑질입니다.

바울의 해법이 아름답습니다.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는 그림 그대로입니다. 도둑이 도둑질만 그만두면 회개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거기서 멈추지 않습니다. ① 도둑질하지 말고 → ② 제 손으로 수고하여 정직하게 일하고 → ③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남의 것을 빼앗던 손이 남에게 나누어 주는 손으로 바뀝니다. 가져가는 사람에서 나누어 주는 사람으로. 이것이 새 사람입니다.

여기서 일의 목적이 새롭게 정의됩니다. 우리가 일하는 이유는 나와 내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서만이 아니라(살후 3:10–12),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 줄 수 있기 위해서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은 손으로 하는 일을 천하게 여겼지만, 천막을 만드는 일로 생계를 꾸렸던 바울은 손으로 하는 수고를 귀하게 여겼습니다(행 20:34–35 "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원어 · 번역 노트
  • 도적질하는 자 호 클레프톤 — 현재 분사. ‘도둑질해 오던 자’로 번역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출 20:15 제8계명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 수고하여 코피아오 — ‘지칠 때까지 힘써 일하다’. 고전 4:12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살전 2:9 "밤낮으로 일하면서".
  • 구제할 메타디도나이 — ‘나누어 주다’. 롬 12:8 "구제하는 자는 성실함으로", 눅 3:11 "옷 두 벌 있는 자는 옷 없는 자에게 나눠 줄 것이요".
함께 읽을 말씀
  • 출 20:15도적질하지 말찌니라
  • 행 20:34-35이 손으로 나와 내 동행들의 쓰는 것을 당하여…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 살전 4:11-12또 너희에게 명한 것같이 종용하여 자기 일을 하고 너희 손으로 일하기를 힘쓰라
  • 눅 19:8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 잠 21:25-26게으른 자의 원하는 것이… 의인은 아끼지 아니하고 베푸느니라
29더러운 말은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선한 말로 듣는 자에게 은혜를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직역 썩은 말은 너희 입에서 하나도 나오지 않게 하고, 필요한 때에 세워 주는 선한 말만 하여, 듣는 이들에게 은혜를 주게 하라.

네 번째는 언어입니다. 25절이 말의 진실성이었다면 29절은 말의 품질입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더러운’은 원문으로 ‘썩은’입니다. 썩은 과일, 상한 생선, 썩은 나무에 쓰던 말입니다(마 7:17–18 "못된 나무", 마 13:48 "못된 것"). 썩은 과일이 옆 과일까지 썩게 하듯, 썩은 말은 듣는 사람의 마음과 공동체를 썩게 합니다. 욕설, 음담패설뿐 아니라 험담, 비꼬기, 깎아내리는 말, 상처 주는 농담도 썩은 말입니다.

그 대신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라고 합니다. ‘덕을 세우다’는 원문으로 ‘집을 짓다’입니다. 12절과 16절에서 그리스도의 몸을 ‘세운다’고 한 바로 그 말입니다. 말은 집을 짓기도 하고 무너뜨리기도 합니다. 우리의 말은 다른 사람을 세워 주는 벽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소용되는 대로", 곧 그때 그 사람에게 필요한 말입니다. 슬픈 사람에게는 위로의 말, 낙심한 사람에게는 격려의 말, 잘못한 사람에게는 사랑의 책망. 때에 맞는 말이 귀합니다(잠 25:11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그 목적은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놀라운 말입니다. 우리의 말이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듯, 우리의 말을 통해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오늘 내가 한 말을 들은 사람은 은혜를 받았습니까, 상처를 받았습니까?

원어 · 번역 노트
  • 더러운 사프로스 — ‘썩은, 쓸모없는’. 마 12:33–37 "나무도 좋고 실과도 좋다 하든지 나무도 좋지 않고 실과도 좋지 않다 하든지 하라…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 덕을 세우는 오이코도메 — 2:21 "건물", 4:12, 16 "세우려", "세우느니라". 말이 교회를 세우는 도구가 됩니다.
  • 은혜를 끼치게 — 골 4: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함께 읽을 말씀
  • 골 4:6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 잠 18: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 잠 25:11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 쟁반에 금 사과니라
  • 약 3:5-10혀도 작은 지체로되 큰 것을 자랑하도다… 한 입으로 찬송과 저주가 나는도다
  • 마 12:34-37마음에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라…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 살전 5:11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피차 덕을 세우기를 너희 하는 것같이 하라
30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직역 그리고 하나님의 거룩한 영을 슬프게 하지 말라. 너희는 그분 안에서 구속의 날을 위하여 인침을 받았다.

29절의 말에 대한 권면 한가운데 이 구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썩은 말, 거짓, 분노, 도둑질은 사람만 상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슬프게 합니다.

이 짧은 말에 놀라운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성령은 인격이십니다. 힘이나 에너지는 슬퍼하지 않습니다. 슬퍼할 수 있는 것은 인격뿐입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영, 하나님 자신이시고, 사랑하는 자들 때문에 마음 아파하시는 분입니다. 구약에서도 이스라엘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사 63:10)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아마 그 구절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왜 성령이 슬퍼하십니까? 그분은 우리 안에 사시며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빚어 가시는데, 우리가 그분의 일을 거스르기 때문입니다. 특히 문맥을 보면, 성령은 교회를 하나로 묶으시는 분입니다(3절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 거짓과 분노와 썩은 말로 그 하나 됨을 찢을 때 성령은 근심하십니다. 자녀들이 서로 싸우는 것을 보는 부모의 마음과 같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바로 이어서 위로를 줍니다.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이 구원을 잃게 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으로 도장이 찍혔고, 그 도장은 마지막 날까지 유효합니다(1:13–14). 바로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을 슬프게 해서는 안 됩니다. 나를 끝까지 지키시는 그 사랑 때문에, 그 사랑을 아프게 하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 거룩한 삶의 동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근심하게 뤼페오 — ‘슬프게 하다, 고통을 주다’. 원문에는 ‘하나님의 거룩한 영(토 프뉴마 토 하기온 투 테우)’으로 ‘거룩한’이 함께 있습니다. 『개역한글』은 ‘하나님의 성령’으로 줄였습니다.
  • 사 63:10 — "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구약에서 ‘성령(주의 성신)’이라는 표현이 나오는 드문 구절(시 51:11과 함께) 가운데 하나입니다.
  • 구속의 날 — 1:14 "그 얻으신 것을 구속하시고", 롬 8:23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우리 몸까지 완전히 구속하실 날.
  • 살전 5:19 — "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성령을 ‘근심하게’ 하는 것과 ‘소멸하는’ 것(불을 끄는 것)은 둘 다 성령의 일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63:10그들이 반역하여 주의 성신을 근심케 하였으므로 그가 돌이켜 그들의 대적이 되사 친히 그들을 치셨더니
  • 엡 1:13-14약속의 성령으로 인치심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 기업에 보증이 되사
  • 살전 5:19성령을 소멸하지 말며
  • 롬 8:23, 26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고전 6:19-20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31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너희는 모든 악독과 노함과 분냄과 떠드는 것과 훼방하는 것을 모든 악의와 함께 버리고

직역 모든 쓴 마음과 격분과 분노와 고함과 비방을 모든 악의와 함께 너희에게서 없애 버리라.

다섯 번째는 관계입니다. 31절은 ‘벗어라’, 32절은 ‘입으라’입니다. 31절의 목록은 무작위가 아니라 분노가 자라나는 단계처럼 보입니다.

① "악독." 원문은 ‘쓴맛’입니다. 상처받고 서운한 마음이 풀리지 않고 남아서 쓰게 굳은 것입니다. 26절에서 해가 지도록 분을 품으면 이것이 됩니다. 히브리서 12:15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② "노함." 그 쓴 뿌리가 어느 순간 확 끓어오르는 격분입니다. ③ "분냄." 끓어오른 화가 오래 머무는 분노입니다. ④ "떠드는 것." 그 분노가 밖으로 터져 나와 소리를 지르는 것입니다. ⑤ "훼방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이 없는 자리에서 헐뜯고 험담하는 것입니다. ⑥ "모든 악의." 이 모든 것의 밑바닥에 있는, 상대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쓴 뿌리에서 시작해 악의로 끝나는 이 사슬을 바울은 "버리고", 통째로 없애 버리라고 합니다. 가지만 쳐서는 안 됩니다. 뿌리째 뽑아야 합니다. 그 뿌리는 대개 용서하지 못한 상처입니다. 그래서 다음 32절의 해답은 ‘용서’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악독 피크리아 — ‘쓴맛’. 행 8:23 "네가 악독(피크리아)이 가득하며", 롬 3:14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신 29:18 "독초와 쑥의 뿌리".
  • 노함과 분냄 — 튀모스는 짚불처럼 확 타오르는 분노, 오르게는 숯불처럼 오래 타는 분노. 교부들(크리소스토모스 등)은 이 둘을 이렇게 구별했습니다. 골 3:8에서도 함께 나옵니다.
  • 훼방 블라스페미아 — 하나님을 향하면 ‘신성 모독’, 사람을 향하면 ‘비방’. 영어 blasphemy의 어원.
함께 읽을 말씀
  • 골 3:8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과 악의와 훼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 히 12:14-15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쓴 뿌리가 나서 괴롭게 하고 많은 사람이 이로 말미암아 더럽게 되지 않게 하며
  • 약 3:14-16너희 마음 속에 독한 시기와 다툼이 있으면… 시기와 다툼이 있는 곳에는 요란과 모든 악한 일이 있음이니라
  • 벧전 2:1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궤휼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 잠 26:20나무가 다하면 불이 꺼지고 말장이가 없어지면 다툼이 쉬느니라
32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용서하심같이 서로 용서하라

서로 인자하게 하며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기를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하라

직역 서로 친절하게 하고 따뜻한 마음을 품으며,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처럼 서로 용서하라.

31절에서 벗어 버린 옷 대신 입어야 할 새 옷입니다. 세 가지입니다.

① "인자하게 하며." ‘친절하게, 다정하게’입니다. 2:7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자비하심(크레스토테스)’과 같은 뿌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정하셨듯 우리도 서로에게 다정합니다. 친절은 작아 보이지만, 31절의 쓴 뿌리를 녹이는 해독제입니다.

② "불쌍히 여기며." 원문은 ‘좋은 창자를 가진’이라는 뜻입니다. 고대인들은 깊은 감정이 창자(내장)에서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말의 ‘애간장이 탄다’와 비슷합니다. 다른 사람의 아픔을 보고 내 속이 아파지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마 9:36)고 할 때 같은 뿌리의 말이 쓰였습니다.

③ "서로 용서하기를."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 용서입니다. 원문의 ‘용서하다’는 카리조마이, ‘은혜(카리스)를 베풀다’입니다. 용서는 은혜를 베푸는 것입니다. 상대가 용서받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은혜이기 때문에 용서합니다.

그리고 용서의 기준과 근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용서하심과 같이." 우리가 용서할 수 있는 힘은 우리가 먼저 용서받았다는 데서 나옵니다. 1:7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일만 달란트 빚을 탕감받은 종이 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못한 비유를 기억하십니까(마 18:23–35)? 일만 달란트는 오늘날로 치면 수조 원에 이르는 엄청난 돈이고, 백 데나리온은 노동자의 석 달 치 품삯, 오늘날로 치면 천만 원 남짓입니다. 하나님께 용서받은 그 엄청난 빚을 기억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작은 빚을 용서할 수 있습니다. 용서하기 어려울 때, 십자가를 보십시오. 내가 얼마나 용서받았는지 보면, 용서할 힘이 생깁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자하게 크레스토이 — 2:7 "자비하심(크레스토테스)", 눅 6:35 "그는 은혜를 모르는 자와 악한 자에게도 인자하시니라(크레스토스)", 고전 13:4 "사랑은… 온유하며(크레스튜에타이)".
  • 불쌍히 여기며 유스플랑크노이 — ‘좋은(유) + 창자(스플랑크나)’. 벧전 3:8 "불쌍히 여기며". 동사형 ‘스플랑크니조마이’는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긍휼을 묘사하는 대표적인 말입니다(마 9:36, 14:14, 눅 15:20 탕자의 아버지).
  • 일만 달란트 — 1달란트는 약 6,000데나리온, 1데나리온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하루 품삯을 오늘날 10만 원으로 잡으면, 1달란트는 약 6억 원, 일만 달란트는 약 6조 원입니다. 백 데나리온은 약 1,000만 원입니다. 6조 원을 탕감받은 사람이 1,000만 원을 용서하지 못한 것입니다.
  • 5:1과의 연결 — 32절 다음 5:1은 "그러므로 사랑을 입은 자녀같이 너희는 하나님을 본받는 자가 되고"로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용서하신 것같이 용서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본받는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골 3:12-13긍휼과 자비와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을 옷 입고…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과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 마 6:12, 14-15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 마 18:21-35일곱 번뿐 아니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할지니라…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 눅 23:34아버지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 창 50:19-21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을 기르고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새 옷은 작은 자리에서 보입니다

새 사람의 옷은 특별한 예배 시간보다 평범한 월요일에 더 잘 보입니다. 진실한 말 한마디, 해 지기 전에 푼 서운함, 정직하게 땀 흘린 노동과 그 열매를 나누는 손, 썩은 말 대신 세워 주는 말, 그리고 용서.

용서가 어려운 사람이 있습니까? 오늘 십자가 앞에서 내가 탕감받은 빚의 크기를 다시 계산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용서하신 것같이, 나도 그 사람을 은혜로 용서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성령을 기쁘시게 하고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는 길입니다.

Put Off · Put On

25–32절, 벗을 옷과 입을 옷

바울의 권면은 언제나 ‘벗어라 → 입으라 → 왜냐하면’의 짝으로 되어 있습니다
절벗어라입으라왜냐하면
25거짓이웃과 참된 것을 말함우리는 서로 지체이므로
26–27해가 지도록 품은 분분을 내어도 죄짓지 않음, 그날 안에 풂마귀에게 틈을 주지 않으려고
28도적질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함가난한 자에게 나누어 주려고
29–30썩은(더러운) 말덕을 세우는 선한 말듣는 자에게 은혜를 끼치고,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않으려고
31–32악독, 노함, 분냄, 떠듦, 훼방, 악의인자함, 불쌍히 여김, 용서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용서하셨으므로

바울은 한 번도 ‘하지 말라’로 끝내지 않습니다. 언제나 그 빈자리를 채울 ‘하라’를 줍니다. 거짓 대신 진실, 도둑질 대신 나눔, 썩은 말 대신 세우는 말, 원한 대신 용서. 그리고 그 모든 이유는 공동체(서로 지체), 이웃(가난한 자, 듣는 자), 그리고 하나님(성령, 그리스도의 용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윤리는 혼자 깨끗해지는 것이 아니라 함께 세워지는 것입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4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합당하다合當 · 1절

걸맞다. 저울의 양쪽이 균형을 이루듯.

겸손謙遜 · 2절

낮은 마음. 당시에는 천한 성품으로 여겨졌으나 그리스도께서 미덕으로 바꾸심.

온유溫柔 · 2절

다스려진 힘. 길들여진 말처럼 힘이 있으나 절제됨.

용납容納 · 2절

참아 주고 받아들임.

매는 줄3절

여럿을 하나로 묶는 띠.

만유萬有 · 6절

세상에 있는 모든 것.

분량分量 · 7, 13, 16절

정해진 몫, 척도.

목사牧師 · 11절

양을 치는 목자. 말씀으로 교회를 먹이고 돌보는 직분.

온전케 하다12절

그물을 깁듯, 뼈를 맞추듯 준비시키고 갖추게 함.

장성하다長成 · 13절

자라서 어른이 되다.

궤술詭術 · 14절

속이는 꾀. 원래 속임수 주사위 노름.

풍조風潮 · 14절

바람의 흐름, 시대의 유행.

허망虛妄 · 17절

헛되고 목적이 없음.

방탕放蕩 · 19절

부끄러움 없이 제멋대로 쾌락에 빠짐.

구습舊習 · 22절

옛 습관, 이전의 생활 방식.

심령心靈 · 23절

마음의 가장 깊은 곳, 생각의 중심.

틈27절

발판, 자리, 기회.

구제救濟 · 28절

가난한 이를 돕고 나누어 줌.

덕을 세우다德 · 29절

집을 짓듯 다른 사람을 세워 줌.

악독惡毒 · 31절

쓴 뿌리처럼 굳어진 원한.

훼방毁謗 · 31절

남을 헐뜯고 비방함.

인자仁慈 · 32절

친절하고 다정함.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1–3장의 은혜를 생각할 때, 나의 삶에서 ‘부르심에 합당하지 않은’ 부분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바꾸는 동기가 두려움이 아니라 감사가 되려면 무엇을 기억해야 할까요? (1절)
  2. 겸손, 온유, 오래 참음, 용납(2절) 가운데 지금 내가 가장 부족한 것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실천해야 할 구체적인 사람이 떠오릅니까?
  3.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3절). 우리 교회의 하나 됨을 지키기 위해 이번 주에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일은 무엇입니까?
  4.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주신 은혜의 선물(7절)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그것을 ‘봉사의 일’(12절)에 어떻게 쓰고 있습니까?
  5.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15절) 말하는 것이 어려운 관계가 있습니까? 나는 진리 쪽으로 기우는 편입니까, 사랑 쪽으로 기우는 편입니까?
  6. 오늘 내가 벗어야 할 ‘옛 사람의 옷’(22절)은 무엇이고, 그 대신 입어야 할 ‘새 사람의 옷’(24절)은 무엇입니까?
  7. 해가 지도록 품고 있는 분노(26절)나 오래된 쓴 뿌리(31절)가 있습니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용서하신 것을 기억하며(32절), 오늘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해 봅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