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ART Ⅰ
목장과 목자, 우리는 무엇인가
기술을 배우기 전에, 먼저 왜 우리가 목장으로 모이고 이 자리에 서 있는지를 붙잡는 시간입니다.
목장은 사람이 편의상 만든 조직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18장을 보면, 모세가 홀로 모든 백성의 송사를 재판하느라 지쳐 있을 때 장인 이드로가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그대가 하는 것이 선하지 못하도다 ... 그대와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이드로의 해법은 백성을 천 명, 백 명, 오십 명, 열 명 단위로 나누고, 그 단위마다 재판할 사람을 세우는 것이었습니다. 큰 무리를 그대로 두면 아무도 제대로 돌봄받지 못하지만, 작은 단위로 나누면 각 사람이 실제로 보살핌을 받을 수 있다는 것, 이것이 목장이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성경적 이유입니다.
"그대와 함께한 이 백성이 필경 기력이 쇠하리니 ... 그대가 혼자 할 수 없으리라 ... 백성 중에서 능력 있는 사람들을 뽑아 ... 천부장과 백부장과 오십부장과 십부장을 삼아"
출애굽기 18:18, 21
신약에서도 교회는 처음부터 큰 모임과 작은 모임, 두 결로 함께 움직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은 성도들이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도 모이고 집에서도 떡을 떼며" 지냈다고 기록합니다. 성전 모임이 오늘의 예배라면, 집 모임이 오늘의 목장입니다. 바울의 편지에도 "그 집에 있는 교회"(롬 16:5),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집에 있는 교회"(골 4:15)처럼, 신약 교회는 처음부터 가정 단위의 작은 모임을 통해 존재했습니다.
그러니 목장은 사역의 효율을 위한 행정 단위가 아니라, 교회가 교회답게 존재하는 가장 오래된 형태입니다. 교회 성장을 연구해 온 학자들도 비슷한 결론에 이릅니다. 목장이 편성되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많아서가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실제로 이름 불리고 돌봄받는 교회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함께 생각해봐요
만약 우리 교회에 목장이 없다면, 지금 내 목장원 중 누가 가장 먼저 보이지 않게 될까요?
요한복음 10장에서 예수님은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말씀하십니다. 목자는 관리자가 아니라, 양 한 마리 한 마리의 이름을 알고 그 앞에서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에스겔 34장은 반대로 자기 배만 채운 목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을 담고 있습니다. 이 두 본문을 나란히 놓고 보면, 목자의 자격은 능력이 아니라 방향에 있다는 걸 알게 됩니다. 누구를 향해 걷고 있는가, 누구를 위해 시간을 쓰는가 하는 방향이요.
구약에서 목자를 가리키는 히브리어 '로에(רֹעֶה)'는 본래 양을 '먹이는 자'라는 뜻이고, 신약의 헬라어 '포이멘(ποιμήν)' 역시 단순한 관리자가 아니라 양 무리와 함께 살아가며 돌보는 자를 가리킵니다. 두 단어 모두 공통적으로 '먹이고 인도한다'는 돌봄의 행위에 초점이 있지, 다스리고 명령한다는 권위에 초점이 있지 않습니다. 목자라는 이름 자체가 이미 섬김의 방향을 담고 있는 셈입니다.
우리 목장의 목자님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완벽한 리더가 아니라, 매주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기억하려는 사람이면 충분합니다. 그 마음이 목자의 첫 자격입니다.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 "내 백성을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만 먹인 이스라엘 목자들은 화 있을진저"
요한복음 10:11 · 에스겔 34:2
함께 생각해봐요
지금 내 목장원 한 사람의 이름을 떠올려보세요. 그 사람의 요즘 마음은 어떨까요?
목자는 혼자 목회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담임목사가 전체 양무리를 향해 품은 마음이, 목자를 통해 각 목장의 언어로 다시 전해지는 구조입니다. 그래서 목자에게 가장 중요한 건 창의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담임목사와 같은 방향을 보고 있다는 신뢰입니다. 이런 평신도가 목양의 실제 주체가 되는 구조는 한국 교회의 여러 제자훈련 전통에서도 오랫동안 강조되어 온 부분입니다.
베드로전서 5장은 이 구조를 명확히 보여줍니다. 장로들에게 양 무리를 치라고 권면한 뒤, 마지막에는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고 말합니다. 즉 담임목사도, 목자도 모두 궁극적인 목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아래 있는 '아래 목자(under-shepherd)'입니다. 이 구조를 기억하면 담임목사와 목자의 관계는 위아래의 지시 관계가 아니라, 한 분 목자장을 함께 바라보는 동역의 관계가 됩니다.
이 신뢰는 하루아침에 생기지 않습니다. 정기적으로 만나 이야기 나누고, 목장에서 있었던 크고 작은 일들을 솔직하게 나누는 시간이 쌓일 때 자연스럽게 만들어집니다. 목자는 담임목사의 손과 발이면서 동시에, 담임목사가 미처 보지 못하는 목장의 사정을 전해주는 눈이기도 합니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관을 얻으리라"
베드로전서 5:2-4
목자 훈련이라고 하면 흔히 모임 진행법이나 대화 기술을 먼저 떠올리기 쉽습니다. 하지만 정말 오래가는 목자는 기술이 아니라 기도에서 만들어집니다. 목장원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놓고 기도하는 시간이 있는 목자와, 모임 준비만 하는 목자는 시간이 지날수록 확연히 다른 목장을 만듭니다.
섬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것처럼, 목자의 섬김은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시작됩니다. 문자 한 통, 짧은 안부, 작은 기억. 그것이 쌓여 목장의 온도가 됩니다.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요한복음 13:14-15
실천 제안
이번 주, 목장원 명단을 놓고 하루 5분만 이름을 부르며 기도해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