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BC 6세기 — AD 5세기자연철학자들
BC 6세기
탈레스를 비롯한 이들이 신화 대신 물, 불, 원자 같은 자연의 원리로 세계를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소크라테스
BC 470 – 399
"너 자신을 알라." 문답법으로 사람들이 스스로 무지를 깨닫고 참된 앎을 찾도록 이끌었습니다.
플라톤
BC 427 – 347
눈에 보이는 세계는 그림자일 뿐, 그 너머에 변치 않는 참된 실재(이데아)가 있다고 보았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
BC 384 – 322
논리학과 형이상학을 체계화하고, 모든 사물에는 목적이 있다는 세계관을 제시했습니다.
스토아 · 에피쿠로스학파
BC 3세기 ~
거대한 체계보다 어떻게 마음의 평정을 얻고 잘 살 것인가를 고민한 실천 중심의 철학입니다.
플로티노스 (신플라톤주의)
205 – 270
모든 것이 근원인 '하나(the One)'로부터 흘러나온다고 보며, 이후 기독교 신학에 큰 영향을 남겼습니다.
구약 정경의 형성
~ BC 2세기
율법서, 예언서, 성문서가 차례로 정리되며 유대교의 경전으로 확정되어 갔습니다.
필론
BC 20 – AD 50
헬라 철학과 유대 신앙을 연결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로고스'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초대교회와 사도들
1세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선포하며 복음이 퍼져나갔고, 복음서와 서신들이 기록되었습니다.
변증가들
2세기
유스티누스 등이 당대 헬라 철학의 언어를 빌려 기독교 신앙의 합리성을 변호했습니다.
교부신학
2 – 4세기
이레니우스, 오리게네스 등이 이단의 도전에 맞서 신앙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정리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325년
예수 그리스도가 성부와 동일한 본질임을 확정하며 삼위일체 교리의 뼈대를 세웠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354 – 430
은혜와 원죄, 하나님 나라와 인간의 도성을 깊이 있게 풀어내며 서방신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칼케돈 공의회
451년
그리스도가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동시에 지닌다는 이해를 공식적으로 확정했습니다.
필론이 다듬은 '로고스' 개념은 훗날 요한복음이 "태초에 말씀(로고스)이 계시니라"고 그리스도를 소개하는 언어가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로티노스의 신플라톤주의를 통과하며 회심했고, 그 사유의 틀 위에서 은혜의 신학을 세워갔습니다.
중세
5세기 — 15세기보에티우스
480 – 524
「철학의 위안」을 통해 고대 철학의 유산을 중세로 이어주는 다리 역할을 했습니다.
안셀무스
1033 – 1109
"이해를 추구하는 신앙"을 내세우며, 이성만으로 신 존재를 논증하려 시도했습니다.
아벨라르
1079 – 1142
찬반 논증을 나란히 놓고 검토하는 변증법적 방법으로 스콜라철학의 형식을 다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재발견
12 – 13세기
아베로에스 등 이슬람 철학자들의 주석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 전집이 서방에 다시 소개되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1225 – 1274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기독교 신앙을 하나의 체계로 종합한 「신학대전」을 남겼습니다.
둔스 스코투스 · 오캄
13 – 14세기
하나님의 자유의지를 강조하고 보편 개념의 실재성에 의문을 던지며 스콜라철학에 균열을 냈습니다.
수도원 운동
6세기 ~
베네딕도 규칙을 따라 기도와 노동으로 신앙을 훈련하는 공동체들이 유럽 전역에 세워졌습니다.
스콜라 신학의 발전
11 – 13세기
대학이 세워지며, 이성의 논리로 신앙의 진리를 정교하게 설명하려는 흐름이 자리 잡았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종합
13세기
자연을 통해 알 수 있는 지식(자연신학)과 계시로만 알 수 있는 진리를 하나의 체계 안에 담았습니다.
신비주의 전통
13 – 14세기
마이스터 에크하르트 등은 논증보다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인격적 만남을 강조했습니다.
중세 말 개혁의 조짐
14 – 15세기
위클리프와 얀 후스가 성경의 권위를 앞세우며 교회의 부패를 지적하고 개혁을 외쳤습니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 체계를 빌려와 「신학대전」을 구성했습니다. 철학은 더 이상 신학의 도구가 아니라, 함께 진리를 향해가는 동반자로 자리매김했습니다.
오캄의 유명론이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면서, 신앙의 자리를 다시 묻는 흐름이 생겨났고 이는 훗날 종교개혁의 토양이 되었습니다.
근대
16세기 — 19세기르네상스 인문주의
15 – 16세기
고전 문헌을 새롭게 연구하며 인간의 존엄과 가능성에 주목하는 분위기가 퍼졌습니다.
데카르트
1596 – 1650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 의심할 수 없는 이성의 출발점 위에서 근대철학을 열었습니다.
스피노자 · 라이프니츠
17세기
이성만으로 신과 세계, 존재 전체를 하나의 정연한 체계로 설명하려 했던 합리론자들입니다.
로크 · 흄
17 – 18세기
모든 지식은 경험에서 온다고 보았고, 흄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과율 자체를 의심했습니다.
칸트
1724 – 1804
「순수이성비판」에서 인간 이성이 알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의 경계를 분명히 그었습니다.
헤겔
1770 – 1831
역사 전체를 절대정신이 모순과 화해를 거쳐 스스로를 실현해가는 과정으로 읽어냈습니다.
키에르케고르
1813 – 1855
거대한 체계보다 '단독자'로서 개인이 내리는 신앙의 결단과 실존을 중요하게 여겼습니다.
니체
1844 – 1900
"신은 죽었다." 전통적인 가치와 형이상학의 토대 전체에 급진적인 물음을 던졌습니다.
종교개혁
1517년 ~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에서 시작해, "오직 성경·오직 믿음·오직 은혜"를 되찾은 운동입니다.
칼빈과 개혁신학
16세기
제네바에서 「기독교강요」를 통해 성경 중심의 신학을 체계적으로 정리해냈습니다.
반종교개혁
16 – 17세기
트리엔트 공의회를 통해 로마가톨릭이 스스로를 정비하고 개혁의 도전에 응답했습니다.
개신교 정통주의
17세기
종교개혁의 통찰들을 정교한 교리 체계로 다듬어 정리한 시기입니다.
경건주의
17 – 18세기
슈페너 등은 딱딱한 교리 논쟁보다 살아있는 신앙의 체험과 실천을 강조했습니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신학
18 – 19세기
슐라이어마허는 신앙을 '절대 의존의 감정'으로 재정의하며 이성의 시대에 응답했습니다.
근본주의의 태동
19세기 말
자유주의 신학의 흐름에 맞서 성경의 권위와 핵심 교리를 지키려는 움직임이 일어났습니다.
칸트가 이성의 한계를 드러내자, 슐라이어마허는 신앙의 근거를 지식이 아닌 '감정과 체험'으로 옮겨갔습니다. 이것이 자유주의 신학의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키에르케고르가 되찾은 '단독자'의 실존적 신앙은, 다음 세기 신정통주의 신학이 다시 붙잡게 될 씨앗이었습니다.
현대
20세기 — 오늘현상학
20세기 초
후설은 선입견을 걷어내고 사물이 우리 의식에 드러나는 그대로를 기술하려 했습니다.
실존주의
20세기 중반
하이데거와 사르트르는 인간의 존재와 자유, 유한성의 문제를 정면으로 마주했습니다.
분석철학
20세기
비트겐슈타인은 철학의 많은 혼란이 언어의 오용에서 비롯된다고 보고 언어 분석에 집중했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
20세기 후반
푸코와 데리다는 하나의 절대적 진리나 거대한 체계에 대한 신뢰 자체에 의문을 제기했습니다.
신정통주의
20세기 초
칼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하며, 인간의 경험이 아닌 하나님의 말씀에서 다시 출발했습니다.
본회퍼
1906 – 1945
대가를 치르지 않는 '값싼 은혜'를 경계하며, 제자도와 현실 속 신앙의 참여를 촉구했습니다.
해방신학
20세기 중반
라틴아메리카의 가난한 이들 곁에서, 억압받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관심을 신학의 언어로 풀어냈습니다.
복음주의 부흥
20세기 중후반
세계 복음주의 운동이 확산되며 성경의 권위와 전도, 회심의 신앙이 다시 강조되었습니다.
포스트모던 시대의 신학
20세기 후반 ~
절대적 체계보다 이야기와 공동체, 삶으로 드러나는 신앙의 자리를 다시 묻는 흐름들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바르트의 신정통주의는 자유주의 신학에 대한 반작용이면서, 동시에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통찰을 신학 안으로 진지하게 받아들인 결과이기도 했습니다.
포스트모던 철학이 던진 '절대적 진리가 가능한가'라는 물음은, 오늘의 신학이 진리와 겸손, 확신과 대화의 균형을 다시 사고하게 만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