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교회 신앙철학

자유의지, 그리고
죄를 허락하신 이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다 아셨다면, 왜 굳이 죄를 지을 수 있는 길을 열어두셨을까요.
비신자들이 가장 자주 던지는 이 질문에 함께 답을 찾아갑니다.

"하나님이 자유의지를 주셔서 인간이 죄를 짓게 됐다면서요. 근데 하나님은 전지전능하시니 인간이 죄를 지을 걸 이미 다 알고 계셨을 거잖아요. 알면서도 그렇게 만드신 거면, 결국 하나님한테도 책임이 있는 거 아닌가요?"

신앙을 갖지 않은 분들에게서 정말 자주 듣는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절대 가볍게 볼 게 아니에요. 오히려 이 질문 안에는 세 가지 서로 다른 질문이 섞여 있습니다. "왜 죄를 짓게 하셨나", "왜 애초에 그런 자유를 주셨나", "다 아셨으면서 왜 막지 않으셨나". 이 셋을 하나씩 풀어드리면, 훨씬 명쾌하게 설명이 됩니다.

1

"짓게 하셨다"는 말부터 다시 봐야 합니다

먼저 짚어드려야 할 게 있어요. 하나님은 인간이 죄를 짓도록 만드신 게 아니라, 죄를 지을 수도 있는 가능성을 허락하신 겁니다. 이 둘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예요. 원인을 제공한 것과, 선택의 여지를 열어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책임 문제거든요.

일상의 비유

부모가 스무 살 된 자녀에게 통금 없이 자유롭게 다닐 수 있도록 열쇠를 쥐여줬다고 해봅시다. 그런데 그 자녀가 나쁜 친구들과 어울리다 잘못된 길로 빠졌어요. 이때 "열쇠를 준 부모 책임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자유를 준 것과, 그 자유를 어떻게 쓸지는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책임은 그 자유를 오용한 쪽에 있는 거죠.

하나님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간에게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고, 그 자유 안에서 인간 스스로 하나님을 등지는 선택을 한 겁니다. 하나님이 죄의 저자가 아니라, 인간이 자유의 오용으로 죄의 문을 연 거예요.

2

그럼 왜 애초에 그런 위험한 자유를 주셨을까요

여기가 사실 이 질문의 진짜 핵심입니다. 답은 간단하지만 깊어요. 진짜 사랑은 강요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인간을 처음부터 무조건 순종하고, 무조건 하나님을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해서 만드셨다면 어떨까요. 그건 사랑이 아니라 그냥 기계적인 반응일 뿐이에요. "아니오"라고 말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예"라는 대답도 아무 의미가 없는 거죠.

일상의 비유

결혼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쉽습니다. 도망갈 수 없도록 강제로 묶여 있는 결혼과, 언제든 떠날 수 있음에도 스스로 남기로 선택한 결혼. 둘 중 어느 쪽이 진짜 사랑일까요? 당연히 후자입니다. 떠날 수 있는 가능성이 없다면, 남는다는 선택도 사랑이라 부를 수 없어요.

하나님은 로봇들의 정원이 아니라, 진짜로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는 존재들과의 관계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진짜 사랑이 가능하려면, 그 사랑을 거부할 가능성도 함께 열려 있어야 해요. 사랑의 가능성과 배신의 가능성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 있는 겁니다.

3

다 아셨으면서 왜 막지 않으셨나 — 예지와 예정은 다릅니다

이 부분이 사람들이 가장 헷갈려하는 지점이에요. 여기서 꼭 구분해야 할 게 있습니다. "안다는 것"과 "그렇게 만든다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이야기라는 점이에요.

일상의 비유

부모가 자녀를 키우면서 "이 아이는 사춘기가 되면 분명 반항하고, 몇 번은 크게 부딪히겠구나" 하고 어느 정도 예상한다고 해봅시다. 그렇다고 그 부모가 자녀의 반항을 원인 제공한 걸까요? 아니죠. 미리 안다는 것과, 그 일을 일어나게 만든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면, 하나님은 우리처럼 시간 안에 갇혀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리는 과거-현재-미래를 순서대로 지나가지만, 하나님께는 모든 순간이 동시에 열려 있다고 신학자들은 설명합니다. 그래서 사실 "미리 아셨다"는 표현 자체가, 인간의 시간 개념을 하나님께 그대로 투영한 표현이에요. 아신다는 것과 강제하신다는 것 사이에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일상의 비유

결말을 이미 알고 있는 소설가가 있다고 해봅시다. 그 소설가가 결말을 안다고 해서,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그 상황에서 내리는 선택들이 가짜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등장인물은 여전히 자기 안에서 진짜로 고민하고, 진짜로 선택합니다.

4

그래도 남는 질문 — "그냥 다 믿게 만들면 되잖아요"

여기서 기독교가 다른 종교나 철학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나옵니다. 하나님은 죄의 가능성을 열어두셨지만, 그 문제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으셨어요. 십자가가 바로 그 답입니다.

자유의지가 낳은 죄의 결과를, 하나님이 직접 짊어지셨습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준 대가를, 다른 누구도 아닌 하나님 스스로 치르신 거예요. 많은 철학과 종교들이 "왜 신은 악을 막지 않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침묵하지만, 기독교는 여기에 분명한 답을 갖고 있습니다. "신이 그 죄의 값을 대신 치렀다"는 답이요.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은 죄를 만드신 분이 아니라 자유를 허락하신 분이고, 그 자유는 진짜 사랑을 위해 반드시 필요했으며, 미리 아셨다는 것이 강제하셨다는 뜻은 아니고, 그리고 그 모든 결과를 하나님이 십자가에서 스스로 짊어지셨습니다.

비신자와 대화할 때 이런 순서로 풀어보세요
먼저 공감대부터. "사랑은 자유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지점에서 시작하면, 논리 싸움이 아니라 함께 생각해보는 대화가 됩니다.
예지와 예정을 구분해서. "안다"와 "만든다"는 다르다는 걸 결혼이나 소설가 비유로 풀어주세요.
마지막은 반드시 십자가로. 하나님이 방관자가 아니라, 그 문제를 직접 해결하러 오신 분이라는 것으로 마무리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