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세부 강해 · Judges
6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1절부터 40절까지 —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포도주 틀에 숨은 농부, 무너진 바알의 단, 그리고 두 번의 양털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JUDGES 6:12
Introduction · 들어가며

6장 들어가며

사사기에서 가장 길게 다루어지는 사사, 기드온 이야기의 시작입니다

6장부터 8장까지는 기드온의 이야기입니다. 사사기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사사이자, 사사기 전체의 전환점이 되는 인물입니다. 그는 겁 많은 농부로 시작해서 300명으로 13만 5천 명을 이긴 용사가 되지만, 마지막에는 금 에봇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다시 우상으로 끌고 갑니다. 기드온 이전의 사사들은 대체로 위를 향해 가지만, 기드온 이후의 이야기는 눈에 띄게 아래로 내려갑니다.

6장은 기드온의 부르심을 다룹니다. 이번 압제는 이전과 다릅니다. 미디안은 성을 점령하고 왕을 세운 것이 아니라, 해마다 추수 때가 되면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 모든 것을 먹어 치우고 떠났습니다. 이스라엘은 산의 굴에 숨어 살았고, 기드온은 들킬까 봐 포도주 틀 안에서 몰래 밀을 타작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이렇게 부릅니다. “큰 용사여.” 이 장 전체는 하나님이 한 겁 많은 사람을 어떻게 인내하시며 빚어 가시는지 보여 줍니다. 기드온은 묻고, 의심하고, 표징을 구하고, 밤에 몰래 순종하고, 다시 표징을 구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모든 연약함을 참으시며 그를 용사로 세우십니다.

핵심 구절

6:12

숨어 있는 농부를 “큰 용사”라 부르신 하나님. 하나님은 지금의 나보다 앞으로의 나를 보십니다.

먼저 할 일

6:25–26

미디안과 싸우기 전에 아버지 집의 바알 단부터. 개혁은 집 안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살롬

“여호와는 평강이시라.” 두려움에 떨던 기드온이 받은 고백입니다.

두 번의 양털

6:36–40

이미 들은 약속을 확인하려는 연약한 믿음. 하나님은 그 연약함까지 참아 주십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산성”山城, 원문 메추도트. 바위 틈의 요새, 숨을 곳.
3절 “동방 사람”베네 케뎀. 요단 동쪽 사막의 유목민들.
5절 “약대”낙타. 사막을 빠르게 건너는 기습 부대.
6절 “미약함”微弱, 원문 달랄. 가난하고 약해짐.
11절 “포도주 틀”바위를 파서 만든 포도 짜는 구덩이. 숨어서 일하기 좋은 곳.
12절 “큰 용사”기보르 헤하일. 용맹하고 유능한 사람.
15절 “극히 약하고”원문 ‘가장 가난한, 가장 작은’.
19절 “가루 한 에바”에바는 곡식 단위로 약 22리터. 밀가루 약 13–15kg, 오늘날 값으로 3–4만 원어치.
19절 “양푼”놋쇠로 만든 넓은 그릇. 원문 파루르, 솥.
24절 “여호와살롬”‘여호와는 평강이시라’.
26절 “견고한 성”원문 마오즈. 요새, 산성 꼭대기.
31절 “쟁론하느냐”爭論, 원문 리브. 변호하다, 다투다.
32절 “여룹바알”‘바알이 다투게 하라’.
34절 “강림하시니”원문 라베샤. 옷 입듯 덧입히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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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6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 굴에 숨은 이스라엘

4장의 압제자 야빈은 성 안에 앉아 철병거로 이스라엘을 눌렀습니다. 그런데 6장의 미디안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이스라엘을 괴롭힙니다. 그들은 땅을 차지하지 않습니다. 해마다 추수 때가 되면 낙타를 타고 몰려와 모든 곡식과 가축을 쓸어 가고 떠납니다.

이스라엘은 농사를 지어도 거둘 수가 없었습니다. 1년 내내 땀 흘린 수고가 한순간에 사라졌습니다. 그렇게 7년. 이스라엘은 산의 굴과 바위 틈에 숨어 살며 극도로 가난해졌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1또 악을 행하였으므로 칠 년 동안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칠년 동안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붙이시니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눈에 악을 행하였다. 그러자 여호와께서 그들을 미디안의 손에 칠 년 동안 주셨다.

5:31의 아름다운 기도,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바로 뒤에, 6:1은 다시 어둠으로 시작합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40년의 평화가 끝나자 바퀴가 다시 돕니다.

이번 압제자는 미디안입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사라가 죽은 뒤 맞은 아내 그두라에게서 난 아들의 자손입니다(창 25:2). 이스라엘과 먼 친척입니다. 그리고 미디안에는 특별한 기억이 있습니다.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쳤을 때 40년을 살았던 곳이 미디안이고, 그의 장인 이드로가 미디안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러나 광야 끝에서 미디안은 모압과 함께 발람을 불러 이스라엘을 저주하려 했고, 브올에서 이스라엘을 음행과 우상 숭배로 끌어들였습니다(민 25장, 31:16). 그래서 모세는 마지막으로 미디안과 전쟁을 치렀습니다(민 31장).

이번 압제는 칠 년이었습니다. 야빈의 20년보다 짧지만, 그 고통은 훨씬 더 컸습니다. 6절에서 이스라엘은 “미약함이 심한지라”, 극도로 가난해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미디안 — 창 25:1–4, 출 2:15–3:1, 민 22:4, 7, 25:6–18, 31:1–12. 사 9:4 “미디안의 날과 같이”, 10:26, 시 83:9, 11은 기드온의 승리를 하나님의 위대한 구원의 본보기로 기억합니다.
  • 압제의 길이 — 구산 8년, 에글론 18년, 야빈 20년, 미디안 7년. 기간은 짧아졌지만 2–6절의 묘사는 이전 어느 압제보다 처참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5:31여호와여 주의 대적은 다 이와 같이 망하게 하시고 주를 사랑하는 자는 해가 힘있게 돋음 같게 하시옵소서 하니라 그 땅이 사십년 동안 태평하였더라
  • 민 31:1-2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이스라엘 자손의 원수를 미디안에게 갚으라
  • 민 25:17-18미디안인들을 박해하며 그들을 치라 이는 그들이 궤계로 너희를 박해하되
  • 사 9:4이는 그들의 무겁게 멘 멍에와 그 어깨의 채찍과 그 압제자의 막대기를 꺾으시되 미디안의 날과 같이 하셨음이니이다
2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만들었으며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이긴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으며

직역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 위에 강하였다. 미디안 때문에 이스라엘 자손은 산에 있는 굴들과 동굴들과 요새들을 자기를 위해 만들었다.

미디안의 손이 이스라엘을 눌렀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산에서 구멍과 굴과 산성을 자기를 위하여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짐승처럼 굴속으로 숨어들었습니다.

가나안 땅은 석회암 지대여서 자연 동굴이 많고, 바위를 파서 굴을 만들기도 쉬웠습니다. 이스라엘은 그런 굴에 곡식과 가축을 숨기고, 미디안이 오면 그 안으로 피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주인이 되어야 할 사람들이 땅 밑으로 숨어 사는 모습입니다.

이 모습은 사무엘상 13:6에서 블레셋 앞의 이스라엘이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라고 한 모습과 같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백성은 결국 두려움 속에 숨어 삽니다. 에덴에서 아담이 하나님을 피해 나무 사이에 숨었듯이(창 3:8).

원어 · 번역 노트
  • 구멍 민하라 — 여기에만 나오는 말. ‘굴, 바위 틈, 지하 통로’로 봅니다.
  • 산성 메추다 — ‘요새, 피난처’. 다윗이 사울을 피해 숨은 ‘요새’(삼상 22:4–5, 24:22)도 같은 말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삼상 13:6이스라엘 사람들이 위급함을 보고 절박하여 굴과 수풀과 바위 틈과 은밀한 곳과 웅덩이에 숨으며
  • 창 3:8아담과 그 아내가 여호와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동산 나무 사이에 숨은지라
  • 사 2:19사람들이 암혈과 토굴로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할 것이라
  • 히 11:38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치 못하도다 저희가 광야와 산중과 암혈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3파종한 때면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치러 올라와서

직역 이스라엘이 씨를 뿌릴 때마다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자손이 올라와 그를 쳤다.

미디안 혼자 온 것이 아닙니다. 미디안 사람, 아말렉 사람, 동방 사람이 연합해서 왔습니다. 아말렉은 3:13에서 모압 왕 에글론과 함께 왔던 민족이고, 동방 사람은 요단 동쪽 아라비아 사막의 유목 부족들입니다. 사막의 약탈자들이 모두 손을 잡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스라엘이 파종한 때면” 왔습니다. 이것은 계획적인 약탈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씨를 뿌리고 가꾸어 곡식이 익을 때쯤 몰려와서 거두어 갔습니다. 마치 남의 밭을 자기 창고처럼 여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해마다 농사를 지었지만, 해마다 빼앗겼습니다. 신명기 28:33의 경고 그대로입니다.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원어 · 번역 노트
  • 동방 사람 — 창 29:1 야곱이 “동방 사람의 땅”에 이르렀고, 욥 1:3 욥은 “동방 사람 중에 가장 큰 자”였습니다. 왕상 4:30 “솔로몬의 지혜가 동양 모든 사람의 지혜와”.
  • 파종 — 원문 ‘자라’, 씨를 뿌리다. 레 26:16 “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함께 읽을 말씀
  • 신 28:33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 레 26:16너희의 파종은 헛되리니 너희의 대적이 그것을 먹을 것임이며
  • 미 6:15네가 씨를 뿌리나 추수하지 못할 것이며
4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고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도록 토지 소산을 멸하여 이스라엘 가운데 식물을 남겨두지 아니하며 양이나 소나 나귀도 남기지 아니하니

직역 그들이 그들을 향해 진을 치고, 가사에 이르기까지 땅의 소산을 망가뜨렸다. 이스라엘에 먹을 것을 남기지 않았고, 양도 소도 나귀도 남기지 않았다.

미디안은 이스라엘 땅 동쪽 요단에서부터 서쪽 끝 해안의 가사까지 진을 치며 휩쓸었습니다. 땅 전체가 약탈당했습니다. 그들은 곡식만 빼앗은 것이 아니라 “토지 소산을 멸하여”, 가져가지 못하는 것은 망가뜨렸습니다. 그리고 양, 소, 나귀까지 하나도 남기지 않았습니다.

고대 농경 사회에서 양은 고기와 털을, 소는 밭을 갈 힘을, 나귀는 짐을 나를 힘을 주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빼앗기면 내년 농사도 지을 수 없습니다. 미디안은 이스라엘의 현재만이 아니라 미래까지 빼앗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가사 — 1:18. 이스라엘 땅의 남서쪽 끝. 미디안이 동쪽에서 들어와 서쪽 끝까지 휩쓸었다는 뜻입니다.
  • 멸하여 샤하트 — ‘망가뜨리다, 부패시키다’. 2:19 ‘패괴하여’와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 앞에서 ‘부패’하자, 미디안이 이스라엘의 땅을 ‘망가뜨렸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28:31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아 감을 당하여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 욜 1:4팟종이가 남긴 것을 메뚜기가 먹고 메뚜기가 남긴 것을 늣이 먹고 늣이 남긴 것을 황충이 먹었도다
5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메뚜기 떼 같이 들어오니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이는 그들이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올라와서 메뚜기떼 같이 들어오니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그들이 그 땅에 들어와 멸하려 하니

직역 그들과 그들의 가축이 올라왔고, 그들의 장막들도 메뚜기 떼처럼 많이 들어왔다. 그들과 그들의 낙타는 셀 수가 없었다. 그들이 땅을 망가뜨리려고 들어왔다.

성경은 미디안을 “메뚜기떼 같이”라고 묘사합니다. 메뚜기 떼는 고대 근동에서 가장 무서운 재앙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하늘을 새까맣게 덮고 내려와 들판의 모든 푸른 것을 순식간에 먹어 치우고 다음 곳으로 날아갑니다. 출애굽 때 여덟 번째 재앙이 메뚜기였습니다(출 10:12–15). 그런데 이번에는 이스라엘이 애굽처럼 메뚜기 재앙을 당합니다.

그리고 “그 사람과 약대가 무수함이라.” 약대, 곧 낙타입니다. 낙타는 물 없이도 오래 사막을 건널 수 있어서, 사막의 유목민들은 낙타를 타고 멀리서 갑자기 나타나 약탈하고 순식간에 사라질 수 있었습니다. 성경에서 낙타를 이렇게 대규모 군사 기습에 쓴 기록은 여기가 처음입니다. 이스라엘에게는 막을 방법이 없는 새로운 위협이었습니다.

“그 짐승과 장막을 가지고.” 그들은 군대만이 아니라 가족과 가축과 장막을 다 끌고 왔습니다. 이스라엘 땅을 자기들의 목초지로 여기고 아예 눌러앉아 풀을 먹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밭이 그들의 가축 먹이가 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메뚜기 아르베 — 출 10:4–15, 욜 1:4, 2:25. 7:12에서 미디안 군대를 다시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라고 합니다.
  • 낙타 — 낙타는 기원전 2천년대 말부터 아라비아에서 본격적으로 길들여져 장거리 이동과 무역에 쓰였습니다. 미디안의 낙타 기병은 정착 농민들에게 새로운 형태의 위협이었습니다.
  • 무수함 — 원문 ‘엔 미스파르’, ‘수가 없다’. 7:12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함께 읽을 말씀
  • 출 10:14-15메뚜기가 애굽 온 땅에 이르러… 온 지면에 덮여 날으매 땅이 어둡게 되었고 메뚜기가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채소와 나무 열매를 다 먹었으므로
  • 삿 7:12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
  • 나 3:15거기서 불이 너를 삼키며 칼이 너를 베기를 늣의 먹는 것 같이 하리라
6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이스라엘이 미디안을 인하여 미약함이 심한지라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직역 이스라엘은 미디안 앞에서 몹시 가난해졌다. 그러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미약함이 심한지라.” 원문은 ‘이스라엘이 몹시 가난해졌다(달랄)’입니다. 해마다 추수를 빼앗기고 가축을 잃은 결과, 이스라엘은 굶주리고 가난해졌습니다. 2:15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가 이제 몸으로 느껴지는 굶주림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라.” 바닥에 이르러서야 부르짖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나님의 응답이 조금 다릅니다. 이전에는 부르짖으면 곧바로 구원자를 세우셨는데(3:9, 15), 이번에는 먼저 선지자를 보내십니다(8절). 구원보다 먼저,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미약하다 달랄 — ‘가난해지다, 약해지다’. 형용사 ‘달’은 ‘가난한 자’(출 23:3, 룻 3:10). 15절에서 기드온은 자기 집이 “극히 약하고”(달)라고 말합니다. 온 이스라엘이 가난해졌고, 기드온의 집은 그중에서도 가장 가난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2:15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 시 107:6이에 저희가 그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 고통에서 건지시고
  • 호 5:15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기다리리라 저희가 고난을 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여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을 떠나면 내 수고의 열매를 남이 먹습니다

미디안의 압제는 독특했습니다. 땅을 차지하지 않고, 이스라엘이 땀 흘려 가꾼 열매만 해마다 쓸어 갔습니다. 씨를 뿌려도 거두지 못하는 삶. 이스라엘은 열심히 일했지만 결국 굴속에 숨어 굶주렸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삶도 이와 같습니다. 열심히 일하고 애쓰지만, 그 열매가 메뚜기 떼에게 먹힌 것처럼 남는 것이 없습니다. 학개 선지자는 말했습니다. “너희가 많이 뿌릴찌라도 수입이 적으며… 삯을 받아도 그것을 구멍 뚫어진 전대에 넣음이 되느니라”(학 1:6). 그러나 하나님은 약속하십니다. “내가 전에 너희에게 보낸 큰 군대 곧 메뚜기와 늣과 황충과 팟종이의 먹은 햇수대로 너희에게 갚아주리니”(욜 2:25).

6:7–10부르짖음에 대한 첫 대답 — 구원자보다 먼저 온 선지자

이스라엘이 부르짖자 하나님은 응답하십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곧바로 구원자를 보내지 않으십니다. 먼저 이름 없는 한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선지자는 위로 대신 책망을 전합니다.

이것은 사사기에서 새로운 변화입니다. 이스라엘은 너무 자주 부르짖고 너무 쉽게 잊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번에는 그들이 왜 이런 고통을 겪는지 먼저 깨닫게 하십니다. 진짜 문제는 미디안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불순종이었습니다.

7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 고로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미디안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었을 때,

6절의 내용이 다시 반복됩니다. “미디안을 인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은고로.” 이 반복은 의도적입니다. 그들이 부르짖은 이유는 ‘미디안 때문’이었습니다. 자기들의 죄 때문이 아니라, 미디안의 압제가 괴로워서였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도와도 닮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아프니까, 힘드니까, 막혔으니까. 그런 부르짖음도 하나님은 들으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문제만 해결해 주시기보다, 그 문제의 뿌리를 보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다음 절에서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반복 — 6절 끝과 7절 처음이 같은 내용을 되풀이합니다. 히브리 이야기에서 이런 반복은 장면 전환이나 강조를 나타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호 7:14성심으로 나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며 오직 침상에서 슬피 부르짖으며
  • 약 4:3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8한 선지자를 보내사 —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선지자를 보내사 그들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에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직역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한 사람, 선지자를 보내셨다. 그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였고 너희를 종들의 집에서 나오게 하였다.”

하나님은 “한 선지자”를 보내십니다. 그의 이름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사사기에서 드보라 외에 선지자가 등장하는 유일한 장면입니다. 이름이 없다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는 뜻이 아니라, 그가 전하는 말씀이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종은 자기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남깁니다.

선지자의 첫마디는 2:1 여호와의 사자의 말과 거의 같습니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며 너희를 그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오게 하여.” 이것은 십계명의 서문 그대로입니다(출 20: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하나님은 먼저 당신이 하신 일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지금 굴속에 숨어 있는 것은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은혜를 잊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한 선지자 — 원문 ‘이쉬 나비’, ‘한 사람, 선지자’. 13:6 마노아의 아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유대 전승 일부는 이 선지자를 비느하스로 보았지만 근거는 없습니다.
  • 종 되었던 집 — 출 13:3, 14, 20:2, 신 5:6, 6:12, 7:8, 8:14.
함께 읽을 말씀
  • 출 20: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 삿 2:1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 암 2:10-11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이끌어 내어… 또 너희 아들 중에서 선지자를… 일으켰나니
9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건져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애굽 사람의 손과 너희를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너희를 건져내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었으며

직역 “내가 너희를 애굽의 손과 너희를 짓누르는 모든 자의 손에서 건져내었고,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었으며, 그들의 땅을 너희에게 주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신 일을 계속 말씀하십니다. 애굽에서 건지셨고,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건지셨고,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셨고, 그 땅을 주셨습니다. 문장마다 주어가 ‘나(하나님)’입니다. 이스라엘이 가진 모든 것, 자유와 땅과 생명은 다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은 그 땅에서 미디안에게 짓눌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학대하는 모든 자의 손에서’ 건져내셨는데, 다시 학대받는 자리로 돌아갔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시는 것 같습니다. 내가 이렇게 다 해 주었는데, 너희는 왜 다시 종이 되었느냐?

원어 · 번역 노트
  • 건져내다 나찰 — ‘구하다, 빼내다’. 출 3:8 “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18:9–10.
함께 읽을 말씀
  • 출 3:8내가 내려와서 그들을 애굽인의 손에서 건져내고
  • 수 24:11-13내가 그들을 너희의 손에 붙였으며… 너희의 수고하지 아니한 땅과 너희가 건축지 아니한 성읍을 너희에게 주었더니
  • 갈 5:1그리스도께서 우리로 자유케 하려고 자유를 주셨으니 그러므로 굳세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
10아모리 사람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내가 또 너희에게 이르기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 너희의 거하는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셨다 하니라

직역 “그리고 내가 너희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호와 너희 하나님이다. 너희가 살고 있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러나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선지자의 메시지가 핵심에 이릅니다.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여기서 ‘두려워하다’(야레)는 단순한 공포가 아니라 ‘경외하다, 섬기다’라는 뜻도 됩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의 신들을 두려워했습니다. 그 신들을 섬기지 않으면 비가 안 올까, 농사가 안 될까 두려워서 바알에게 제사했습니다.

그리고 판결이 나옵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2:2, 2:20과 똑같은 말입니다. 사사기 내내 문제는 하나입니다. 하나님의 목소리를 듣지 않는 것.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지자의 말은 여기서 끝납니다. 위로도, 약속도, 해결책도 없이 책망으로 끝납니다. 이스라엘이 이 말씀을 듣고 어떻게 반응했는지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바로 다음 절에서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납니다. 하나님은 먼저 죄를 깨닫게 하시고, 그 다음에 은혜로 구원하십니다. 진단 없이 처방은 없습니다.

여기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 사람의 신들을 두려워했는데, 다음 장면의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을 두려워해 포도주 틀에 숨어 있습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두려워하면, 결국 모든 것을 두려워하게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두려워하다 야레 — ‘두려워하다, 경외하다’. 왕하 17:35–39 “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오직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라”. 수 24:14–15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 아모리 사람 — 여기서는 가나안 원주민 전체를 가리키는 이름으로 쓰였습니다(1:34–36 참고).
함께 읽을 말씀
  • 수 24:15너희 열조가 강 저편에서 섬기던 신이든지 혹 너희의 거하는 땅 아모리 사람의 신이든지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 왕하 17:35-36너희는 다른 신을 경외하지 말며… 오직 큰 능력과 편 팔로 너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여호와만 너희가 경외하여
  • 삿 2:2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 마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구원보다 먼저 진단이 옵니다

이스라엘은 미디안 때문에 부르짖었지만, 하나님은 먼저 선지자를 보내 그들의 진짜 문제를 짚으셨습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 문제는 미디안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 아닌 신들을 두려워한 것이었습니다.

우리도 문제 때문에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은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그러나 때로는 문제를 해결해 주시기 전에 먼저 말씀으로 우리를 비추십니다. 그 책망이 아프더라도 그것은 은혜입니다. 진단이 정확해야 치료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책망으로 끝내지 않으십니다. 바로 다음 장면에서 구원자를 부르십니다.

6:11–24포도주 틀의 농부를 “큰 용사”라 부르시다 — 여호와 살롬

하나님이 부르신 사람은 뜻밖이었습니다.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약한 집안의 막내, 미디안이 무서워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타작하던 젊은이 기드온입니다. 여호와의 사자는 그런 그에게 “큰 용사여” 하고 부릅니다.

이 단락은 하나님과 기드온 사이의 긴 대화입니다. 기드온은 질문하고, 변명하고, 표징을 구합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것을 참으시며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라”고 거듭 약속하십니다. 그리고 반석에서 불이 나와 제물을 사르는 표징을 보여 주십니다. 두려움에 떠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평강을 주시고, 기드온은 그곳에 단을 쌓아 “여호와 살롬”이라 부릅니다.

11여호와의 사자가 오브라에 이르니 —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서 밀을 타작하더니

여호와의 사자가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이르러 상수리나무 아래 앉으니라 마침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직역 여호와의 사자가 와서 아비에셀 사람 요아스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는 상수리나무 아래 앉았다. 그의 아들 기드온은 미디안 앞에서 그것을 숨기려고 포도주 틀에서 밀을 털고 있었다.

여호와의 사자가 오브라에 와서 상수리나무 아래 앉습니다. 그는 조용히 앉아 한 젊은이를 지켜봅니다. 하나님은 종종 이렇게 조용히, 우리가 일하는 자리 가까이에 오셔서 기다리십니다.

그 젊은이 기드온은 지금 이상한 곳에서 이상한 일을 하고 있습니다. “밀을 포도주 틀에서 타작하더니.” 원래 밀은 바람이 잘 부는 언덕 위의 넓은 타작마당에서 텁니다. 막대기로 이삭을 두드리고 바람에 날려 쭉정이를 날려 보내야 하니까요. 그런데 기드온은 포도주 틀, 곧 바위를 파서 만든 좁은 구덩이 안에서 밀을 털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미디안 사람에게 알리지 아니하려 하여.” 언덕 위에서 타작하면 멀리서도 보입니다. 미디안에게 들키면 다 빼앗깁니다. 그래서 숨어서, 조금씩, 몰래 털고 있었습니다.

이것이 기드온의 첫 모습입니다. 두려움에 숨은 사람. 넓은 마당이 아니라 좁은 구덩이에서, 바람이 없어 쭉정이도 잘 날리지 않는 곳에서, 몇 줌의 밀이라도 지키려고 애쓰는 사람. 당시 이스라엘 전체의 모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이름 ‘기드온’의 뜻은 ‘베어 넘기는 자, 찍는 자’입니다. 지금은 숨어 있지만, 그는 곧 바알의 단을 찍어 넘기고(25절), 미디안 군대를 베어 넘길 사람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 이름 안에 이미 그의 미래를 담아 두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포도주 틀 가트 — 바위를 얕게 파서 만든 위쪽 구덩이(포도를 밟는 곳)와 아래쪽 구덩이(즙이 모이는 곳)로 되어 있었습니다. 사방이 막혀 있어 숨기에 좋지만, 바람이 없어 타작하기에는 매우 불편한 곳입니다.
  • 기드온 — ‘가다’(찍다, 베어 넘기다)에서 온 이름. 신 7:5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25절에서 그는 아세라 상을 ‘찍습니다’(카라트).
  • 아비에셀 — 수 17:2 므낫세의 자손 가운데 한 가문. 8:2 “아비에셀의 포도 거둘 것”.
  • 상수리나무 — 창 35:4 야곱이 이방 신상들을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 묻었고, 수 24:26 여호수아가 상수리나무 아래 큰 돌을 세웠습니다. 큰 나무는 종종 거룩한 장소의 표지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18:1-2여호와께서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시니라 오정 즈음에 그가 장막 문에 앉았다가
  • 룻 2:17룻이 밭에서 저녁까지 줍고 그 주운 것을 떠니 보리가 한 에바쯤 되는지라
  • 사 41:14-15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 말라… 보라 내가 너로 이가 날카로운 새 타작 기계를 삼으리니
12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여호와의 사자가 기드온에게 나타나 이르되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직역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나타나 말하였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신다, 힘센 용사여!”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털던 기드온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말합니다. “큰 용사여.” 이 말을 들은 기드온은 아마 뒤를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누구를 부르는 거지? 자기는 용사가 아니라 숨어 있는 겁쟁이였으니까요. 어쩌면 이 말이 놀림처럼 들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농담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지금의 기드온이 아니라 하나님이 만드실 기드온을 보고 부르셨습니다. 시몬을 처음 보시고 “장차 게바라 하리라”(요 1:42, 게바는 ‘반석’, 곧 베드로)고 하신 예수님처럼. 흔들리던 시몬을 반석이라 부르셨듯, 숨어 있던 기드온을 용사라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름은 우리의 현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그리고 그 근거가 함께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기드온이 용사인 이유는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이 사람을 부르실 때마다 주시는 약속입니다. 모세에게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여호수아에게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수 1:9), 마리아에게 “주께서 너와 함께하시도다”(눅 1:28). 그리고 예수님은 마지막에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약속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큰 용사 — ‘기보르 하일’. 11:1 입다, 룻 2:1 보아스(“유력한 자”), 삼상 9:1 사울의 아버지 기스(“유력한 사람”), 왕상 11:28 여로보암(“큰 용사”). ‘하일’은 힘, 능력, 재산, 덕을 모두 뜻해 ‘유력한 사람, 덕 있는 사람’으로도 쓰입니다.
  • 함께 계시다 — 원문 ‘YHWH 임메카’. 룻 2:4 보아스가 일꾼들에게 하는 인사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도 같은 표현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3:11-12내가 누구관대 바로에게 가며… 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 요 1:42예수께서 보시고 가라사대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 눅 1:28그에게 들어가 가로되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찌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 마 28:20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 고후 5:17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13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나의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또 우리 열조가 일찍 우리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것이 아니냐 한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미디안의 손에 붙이셨나이다

직역 기드온이 그에게 말하였다. “제발, 내 주여.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면 왜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닥쳤습니까? 우리 조상들이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지 않으셨느냐’ 하며 우리에게 이야기해 준 그분의 모든 놀라운 일들은 어디 있습니까?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시고 미디안의 손에 주셨습니다.”

기드온은 “큰 용사여”라는 말에는 대꾸하지 않고,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도다”라는 말을 붙잡고 질문합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 우리에게 미쳤나이까.” 이것은 고통 속에 있는 사람이 하나님께 던지는 가장 정직한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면,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그리고 기드온은 계속합니다. “우리 열조가… 이르기를…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기드온은 출애굽 이야기를 들으며 자랐습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하늘에서 만나가 내리고, 반석에서 물이 나온 이야기. 그런데 지금은 그런 기적이 하나도 보이지 않습니다. 할아버지의 하나님은 기적의 하나님이었는데, 내 하나님은 어디 계십니까? 2:10의 “여호와께서…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는 세대의 목소리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적어도 그 이야기를 들었고, 그 이야기가 왜 지금은 사실이 아닌지 묻습니다.

“이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 기드온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8–10절의 선지자가 말했듯, 사실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징계하고 계셨습니다. 그리고 지금 바로 그 하나님이 기드온 앞에 앉아 계십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이 질문을 꾸짖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정직한 질문을 두려워하지 않으십니다. 시편의 많은 탄식시, 욥의 질문, 하박국의 “어느 때까지리이까”(합 1:2). 하나님은 그런 질문을 하는 사람과 대화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나의 주여 — 원문 ‘비 아도니’, ‘제발, 내 주여’. 정중하게 이의를 제기할 때 쓰는 표현입니다. 기드온은 아직 이분이 여호와의 사자인 줄 모르고 낯선 나그네에게 하듯 말합니다.
  • 이적 니플라오트 — ‘놀라운 일들, 기이한 일들’. 출 3:20, 수 3:5, 시 78:4, 11. 13:18–19에서 여호와의 사자는 자기 이름이 ‘기묘(펠리)’라 하고 ‘기이한(마플리) 일’을 행합니다.
  • 버리다 나타쉬 — ‘내버리다, 내던지다’. 삼상 12:22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함께 읽을 말씀
  • 시 44:1, 9하나님이여 주께서 우리 열조의 날 곧 옛날에 행하신 일을 저희가 우리에게 이르매 우리 귀로 들었나이다… 그러나 이제는 주께서 우리를 버려
  • 합 1:2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까지리이까
  • 사 49:14-15오직 시온이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 하였거니와 여인이 어찌 그 젖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 삼상 12:22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14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구원하라 —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여호와께서 그를 돌아보아 가라사대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직역 여호와께서 그에게로 돌아서서 말씀하셨다. “너의 이 힘으로 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내지 않았느냐?”

여기서 화자가 바뀝니다. 12절에서는 ‘여호와의 사자’였는데, 14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기드온과 대화하는 이분이 단순한 천사가 아니라 여호와 자신처럼 말씀하시는 분이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가’에 대한 설명 대신, “가서 구원하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하나님은 종종 우리의 ‘왜?’라는 질문에, ‘네가 가라’는 부르심으로 대답하십니다. 고통의 이유를 다 설명해 주시기보다, 그 고통을 끝낼 사람으로 우리를 부르십니다.

“너는 이 네 힘을 의지하고.” 어떤 힘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기드온에게는 군대도, 무기도, 지위도 없었습니다. 그가 가진 힘은 무엇이었을까요? 아마 방금 그가 보여 준 그 힘, 하나님의 옛 이적을 기억하고 그 하나님이 왜 지금은 일하지 않으시느냐고 묻는 그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또는 12절에서 하나님이 주신 그 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약속의 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없는 힘을 요구하지 않으십니다. 지금 가진 그것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결정적인 말씀.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기드온이 갈 수 있는 이유는 그가 강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 같습니다.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출 3:12). 보내신 분이 책임지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여호와께서 — 12절 ‘여호와의 사자’, 14절 ‘여호와’, 16절 ‘여호와’, 20절 ‘하나님의 사자’, 21–22절 ‘여호와의 사자’. 화자가 사자와 여호와 사이를 오가는 것이 여호와의 사자의 특별한 정체를 보여 줍니다(2:1 ‘더 깊이’ 참고).
  • 돌아보아 파나 — ‘얼굴을 돌리다’. 하나님이 기드온에게 얼굴을 향하셨습니다. 민 6:26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 보내다 샬라흐 — 출 3:10, 12, 14, 15 모세를 ‘보내심’, 사 6:8 “내가 누구를 보내며”.
함께 읽을 말씀
  • 출 3:10-12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
  • 사 6:8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 때에 내가 가로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 요 20:21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 고후 3:5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 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15내가 무엇으로 구원하리이까 — 나의 집은 극히 약하고 나는 제일 작은 자니이다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보소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직역 그가 그에게 말하였다. “제발, 내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겠습니까? 보십시오, 나의 천(가문)은 므낫세 가운데 가장 약하고, 나는 내 아버지 집에서 가장 어린 자입니다.”

기드온은 다시 변명합니다.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그는 자기를 봅니다. 그리고 두 가지 약점을 내놓습니다.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가문이 보잘것없습니다.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일 작은 자니이다”, 자기는 그 집에서도 가장 어립니다. 약한 지파의 약한 가문의 막내. 사람의 눈으로 보면 가장 쓸모없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이 말은 오히려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의 조건처럼 들립니다. 모세는 “내가 누구관대”(출 3:11) 했고, 사울은 “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삼상 9:21) 했으며, 예레미야는 “나는 이스라엘”(렘 1:6) 했습니다. 다윗은 이새의 여덟 아들 중 막내였습니다. 하나님은 큰 사람을 더 크게 하시기보다 작은 사람을 들어 당신의 크심을 나타내십니다.

기드온의 문제는 겸손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시선이었습니다. 그는 여전히 ‘나’를 보고 있었습니다. 내 집, 내 나이, 내 힘. 하나님은 다음 절에서 그 시선을 하나님께로 돌리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집 — 원문 ‘알피’, ‘나의 천(千)’. 이스라엘의 지파 아래 단위인 ‘가문, 씨족’을 가리킵니다(1:4 노트 참고). 미 5:2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 극히 약하고 달 — 6절 ‘미약함이 심한지라’(달랄)의 형용사. 가난하고 힘없는 상태.
  • 제일 작은 자 차이르 — ‘가장 어린, 가장 작은’. 창 43:33 베냐민, 삼상 9:21 사울의 가족.
함께 읽을 말씀
  • 삼상 9:21나는 이스라엘 지파의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오며 나의 가족은 베냐민 지파 모든 가족 중에 가장 미약하지 아니하니이까
  • 렘 1:6-7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보소서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아이라 하지 말고
  • 미 5: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 고전 1:26-29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16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미디안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 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직역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너는 미디안을 한 사람처럼 칠 것이다.”

기드온은 “내가 무엇으로?” 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짧습니다.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기드온이 무엇을 가졌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이 대답입니다. 문제는 ‘무엇으로’가 아니라 ‘누구와’입니다.

원문 ‘키 에흐예 임마크’는 출애굽기 3:12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과 똑같습니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그리고 ‘에흐예’(내가 있을 것이다)는 출애굽기 3:14에서 하나님이 당신의 이름을 알려 주실 때 쓰신 말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하나님의 이름 자체가 ‘함께 있는 자’입니다. 모세를 부르신 그 하나님이, 같은 말로 기드온을 부르십니다.

그리고 약속이 따릅니다. “네가 미디안 사람 치기를 한 사람을 치듯하리라.” 메뚜기 떼처럼 셀 수 없이 많은 미디안 군대가, 하나님이 함께하시면 한 사람과 싸우는 것처럼 쉬울 것입니다. 숫자가 아무리 많아도 하나님 앞에서는 하나와 같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에흐예 — ‘나는 있다/있을 것이다’. 출 3:12 “에흐예 임마크”, 3:14 “에흐예 아쉐르 에흐예”.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YHWH)’도 같은 동사 ‘하야’(있다)와 관련됩니다.
  • 한 사람처럼 — 20:1, 8, 11에서 이스라엘이 베냐민과 싸우러 “일제히(한 사람 같이)” 모입니다. 같은 표현이 하나 된 이스라엘을 말할 때 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3:12하나님이 가라사대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 수 1:5내가 모세와 함께 있던것 같이 너와 함께 있을 것임이라
  • 레 26:8너희 다섯이 백을 쫓고 너희 백이 만을 쫓으리니
  • 롬 8:31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17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기드온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가 주께 은혜를 얻었사오면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직역 그가 그에게 말하였다. “만일 내가 당신의 눈에 은혜를 입었다면, 나와 말씀하시는 분이 당신이라는 표징을 내게 보여 주십시오.”

기드온은 아직 확신하지 못합니다.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정말 하나님이신가? “나와 말씀하신 이가 주 되시는 표징을 내게 보이소서.” 기드온은 하나님께 표징을 구합니다. 이것은 기드온이 앞으로 여러 번 하게 될 일의 시작입니다(36–40절의 양털, 7:9–15의 꿈 이야기).

표징을 구하는 것은 잘못일까요? 성경은 두 가지를 다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스스로 지팡이와 손의 표징을 주셨고(출 4:1–9), 아하스 왕에게는 “징조를 구하라”고 하셨습니다(사 7:11). 그러나 예수님은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마 12:39)라고 책망하셨습니다. 차이는 마음에 있습니다. 믿고 순종하기 위해 확인하는 것과, 믿지 않으려고 증거를 요구하는 것은 다릅니다.

기드온의 요청은 믿음이 연약해서 나온 것이지 반항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그는 정말로 하나님이시기를 바랐습니다.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꾸짖지 않으시고 참아 주십니다. 다음 절에서 사자는 기다려 주겠다고 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은혜를 얻다 — 원문 ‘마차 헨’, ‘은혜를 찾다’. 창 6:8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18:3 아브라함이 나그네들에게, 출 33:13 모세.
  • 표징 오트 — 출 3:12, 4:8–9, 사 7:11, 14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38:7 히스기야의 해 그림자.
함께 읽을 말씀
  • 출 4:1-5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하며…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있는 것이 무엇이냐
  • 사 7:11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징조를 구하되 깊은 데서든지 높은 데서든지 구하라
  • 마 12:39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 요 20:27도마에게 이르시되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18예물을 가지고 다시 오기까지 떠나지 마소서 — 내가 기다리리라

내가 예물을 가지고 다시 주께로 와서 그것을 주 앞에 드리기까지 이곳을 떠나지 마시기를 원하나이다 그가 가로되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직역 “제발 여기서 떠나지 마십시오. 내가 당신께 돌아와서 나의 예물을 가져다 당신 앞에 놓을 때까지.” 그가 말하였다. “네가 돌아올 때까지 내가 앉아 있으리라.”

기드온은 예물을 가져오겠다며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합니다. 손님을 대접하는 것은 고대의 중요한 예의였고, 동시에 이분이 정말 하나님의 사자인지 확인하는 방법이기도 했습니다.

여기서 ‘예물’은 히브리어 ‘민하’입니다. 3장에서 이스라엘이 모압 왕 에글론에게 해마다 바치던 ‘공물’과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동안 이방 왕에게 ‘민하’를 바쳤는데, 이제 기드온은 하나님께 ‘민하’를 드리려 합니다. 섬김의 방향이 바뀌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대답은 놀랍습니다. “내가 너 돌아오기를 기다리리라.” 하나님이 기다리십니다. 기드온이 염소를 잡고, 가죽을 벗기고, 고기를 삶고, 밀가루를 반죽해 빵을 굽는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은 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기다리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느린 믿음을 기다려 주시는 분입니다. 탕자의 아버지처럼(눅 15:20).

원어 · 번역 노트
  • 민하 — 레 2장의 ‘소제’(곡식 제사)를 가리키는 말이지만, 넓게는 모든 예물을 뜻합니다. 창 4:3–5 가인과 아벨의 ‘제물’도 ‘민하’입니다.
  • 기다리다 — 원문 ‘에쉐브’, ‘내가 앉아 있으리라’. 11절에서 사자가 상수리나무 아래 ‘앉았던’ 것과 이어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18:3-5내 주여 내가 주께 은혜를 입었사오면 원컨대 종을 떠나 지나가지 마옵시고… 내가 떡을 조금 가져오리니
  • 사 30:18그러나 여호와께서 기다리시나니 이는 너희에게 은혜를 베풀려 하심이요
  • 벧후 3:9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19염소 새끼와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국을 양푼에 담아 드리매

기드온이 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가루 한 에바로 무교전병을 만들고 고기를 소쿠리에 담고 국을 양푼에 담아서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져다가 드리매

직역 기드온이 들어가서 염소 새끼 하나를 준비하고, 밀가루 한 에바로 누룩 없는 빵을 만들었다. 고기는 바구니에 담고 국물은 솥에 담아, 상수리나무 아래 그에게로 가지고 나와 드렸다.

기드온이 준비한 예물을 보십시오. 염소 새끼 하나, 가루 한 에바로 만든 무교전병, 그리고 고기와 국. 이것은 대단한 양입니다. 에바는 곡식을 재는 단위로 약 22리터, 밀가루로는 13–15kg쯤 됩니다. 오늘날 값으로 치면 3–4만 원어치 정도이지만, 당시로서는 한 가족이 여러 날 먹을 수 있는 양이었습니다(룻 2:17 룻이 하루 종일 주운 보리가 한 에바).

더구나 지금은 미디안이 7년째 곡식과 가축을 쓸어 가는 기근의 시대입니다. 기드온이 포도주 틀에 숨어 몰래 털던 그 밀, 미디안에게 빼앗기지 않으려고 지켜 온 그 귀한 밀과 염소를, 그는 아낌없이 하나님께 가져옵니다. 두려움 많은 기드온이지만, 그의 예물에는 진심이 담겨 있었습니다.

“무교전병.” 누룩 없이 급히 구운 빵입니다. 출애굽의 밤에 이스라엘이 누룩 없는 빵을 먹었고(출 12:8), 하나님께 드리는 소제는 누룩 없이 드렸습니다(레 2:11). 기드온의 예물은 출애굽을 기억하게 합니다. 13절에서 “애굽에서 나오게 하신…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하고 물었던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곧 그 출애굽의 하나님을 보여 주실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에바 — 곡식의 부피 단위. 약 22리터(학자에 따라 22–36리터로 추정). 밀가루 1리터가 약 0.6kg이므로 한 에바는 약 13–15kg입니다. 출 16:36 “오멜은 에바 십분의 일이더라”, 하루 한 사람의 만나가 한 오멜이었으니 한 에바는 열 사람의 하루치 만나와 같습니다.
  • 무교전병 맛차 — 창 19:3 롯이 천사들을 위해 “무교병을 구우니”. 급한 손님 대접에도 쓰였습니다.
  • 양푼 파루르 — 민 11:8 만나를 삶던 ‘가마’, 삼상 2:14 ‘솥’.
함께 읽을 말씀
  • 창 18:6-8아브라함이 급히 장막에 들어가 사라에게 이르러 이르되 속히 고운 가루 세 스아를 가져다가 반죽하여 떡을 만들라 하고
  • 레 2:11무릇 너희가 여호와께 드리는 소제물에는 모두 누룩을 넣지 말찌니
  • 삼하 24:24값 없이는 내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리지 아니하리라
  • 막 12:44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 곧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20고기와 무교전병을 반석 위에 두고 국을 쏟으라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이르되 고기와 무교전병을 가져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직역 하나님의 사자가 그에게 말하였다.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가져다 이 바위 위에 놓고, 국물은 부어라.” 그가 그렇게 하였다.

기드온은 손님에게 식사를 대접하듯 음식을 가져왔습니다. 그런데 사자는 먹지 않습니다. 대신 이렇게 말합니다. “이 반석 위에 두고 그 위에 국을 쏟으라.” 손님상이 제단으로 바뀌는 순간입니다. 기드온은 사람을 대접하려 했는데, 하나님은 그것을 예배로 받으십니다.

국을 쏟으라는 명령은 이상하게 들립니다. 귀한 고기 국물을 바위에 그냥 부어 버리라니요. 그러나 구약에서 포도주나 물을 하나님께 쏟아 드리는 것은 ‘전제(奠祭)’라는 제사의 한 형태였습니다(창 35:14, 삼상 7:6, 삼하 23:16). 쏟아 버린 것은 다시 거둘 수 없습니다.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진 것입니다.

“기드온이 그대로 하니.” 기드온은 질문하지 않고 순종합니다. 귀한 음식을 바위에 놓고 국을 붓는 것은 기근 시대에 아까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대로 합니다. 표징을 구하던 기드온이 이제 작은 순종을 시작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반석 셀라 — ‘바위, 반석’. 13:19 마노아도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 시 18:2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 쏟다 샤파크 — ‘붓다, 쏟다’. 삼상 7:6 미스바에서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함께 읽을 말씀
  • 삿 13:19이에 마노아가 염소 새끼 하나와 소제물을 취하여 반석 위에서 여호와께 드리매
  • 삼하 23:16-17다윗이 마시기를 기뻐 아니하고 그 물을 여호와께 부어 드리며
  • 빌 2:17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봉사 위에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찌라도 나는 기뻐하고
21지팡이 끝을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사르고 사자는 보이지 아니한지라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잡은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무교전병에 대매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직역 여호와의 사자가 그의 손에 있는 지팡이 끝을 내밀어 고기와 누룩 없는 빵에 대었다. 그러자 바위에서 불이 올라와 고기와 누룩 없는 빵을 삼켰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그의 눈에서 사라졌다.

사자는 손에 든 지팡이 끝을 내밀어 제물에 댑니다. 평범한 나그네의 지팡이입니다. 그런데 그 순간, “불이 반석에서 나와 고기와 무교전병을 살랐고.” 바위에서 불이 솟아올라 제물을 삼킵니다.

이것이 기드온이 구한 표징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제물을 받으셨다는 증거, 지금 말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증거. 성경에서 하나님은 종종 불로 제물을 받으셨습니다. 아론의 첫 제사(레 9:24), 엘리야의 갈멜산 제단(왕상 18:38), 솔로몬의 성전 봉헌(대하 7:1). 13절에서 기드온은 “그 모든 이적이 어디 있나이까” 하고 물었습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의 눈앞에서 이적을 보여 주셨습니다. 출애굽 때 반석에서 물을 내셨던 하나님이, 이제 반석에서 불을 내십니다.

그리고 “여호와의 사자는 떠나서 보이지 아니한지라.” 사자가 사라집니다. 그 순간 기드온은 깨닫습니다. 지금까지 대화한 그분이 누구신지.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가 예수님이 빵을 떼실 때 눈이 밝아져 알아보자, 예수님이 그들에게서 보이지 않게 되신 것처럼(눅 24:31).

원어 · 번역 노트
  • 지팡이 미쉬에네트 — ‘기대는 것, 지팡이’. 시 23:4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의 ‘지팡이’.
  • 불 — 레 9:24 “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온 백성이 이를 보고 소리지르며 엎드렸더라”.
함께 읽을 말씀
  • 레 9:24불이 여호와 앞에서 나와 단 위의 번제물과 기름을 사른지라
  • 왕상 18:38이에 여호와의 불이 내려서 번제물과 나무와 돌과 흙을 태우고 또 도랑의 물을 핥은지라
  • 삿 13:20불꽃이 단에서부터 하늘로 올라가는 동시에 여호와의 사자가 단 불꽃 가운데로 좇아 올라간지라
  • 눅 24:31저희 눈이 밝아져 그인줄 알아 보더니 예수는 저희에게 보이지 아니하시는지라
  • 히 12:29우리 하나님은 소멸하는 불이심이니라
22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기드온이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가로되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직역 기드온은 그가 여호와의 사자였음을 보았다. 기드온이 말하였다. “아아,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보았으니!”

기드온은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가 여호와의 사자인줄 알고.” 그리고 그의 첫 반응은 기쁨이 아니라 공포입니다.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내가 여호와의 사자를 대면하여 보았나이다.”

왜 두려워했을까요? 구약의 사람들은 하나님을 직접 보면 죽는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출 33:20)고 하셨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죄인이 서면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이사야도 하나님을 보았을 때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사 6:5)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기드온은 지금까지 이분을 그냥 나그네처럼 대했습니다. 따지고, 의심하고, 표징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그분이 여호와의 사자였습니다. 그는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무례했는지, 자기가 얼마나 작은지 깨닫고 무너집니다. 진정한 하나님과의 만남은 언제나 이런 두려움과 겸손을 낳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슬프도소이다 아하 — 탄식의 감탄사. 수 7:7 “슬프도소이다 주 여호와여”, 렘 1:6, 겔 4:14.
  • 대면하여 — 원문 ‘파님 엘 파님’, ‘얼굴과 얼굴로’. 창 32:30 야곱이 “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하고 그곳을 브니엘이라 불렀습니다. 출 33:11 “사람이 그 친구와 이야기함 같이 여호와께서는 모세와 대면하여 말씀하시며”.
함께 읽을 말씀
  • 출 33:20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 창 32:30내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보았으나 내 생명이 보전되었다 함이더라
  • 사 6:5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
  • 삿 13:22그 아내에게 이르되 우리가 하나님을 보았으니 반드시 죽으리로다
23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직역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평강이 있으라. 두려워하지 말라.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두려움에 떠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자는 사라졌지만, 여호와의 음성은 여전히 들립니다. “너는 안심하라.” 원문은 ‘샬롬 레카’, “너에게 평강이 있으라”입니다. 히브리 사람들이 만나고 헤어질 때 나누는 인사이지만, 하나님의 입에서 나올 때 이것은 선언입니다. 하나님과 기드온 사이에 평화가 있다는 선언.

“두려워 말라 죽지 아니하리라.” 거룩하신 하나님을 보았는데도 죽지 않는 것, 그것은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무례함과 의심을 정죄하지 않으시고 평강을 주십니다.

이 장면은 신약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두려워 문을 잠그고 숨어 있던 제자들에게 오셔서 처음 하신 말씀이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요 20:19). 그리고 그 평강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목하게 하셨기에 가능해졌습니다(롬 5:1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원어 · 번역 노트
  • 샬롬 레카 — 창 43:23 요셉의 청지기가 형제들에게 “너희는 안심하라(샬롬 라켐) 두려워 말라”, 삼상 20:21.
  • 두려워 말라 — 성경에서 하나님이 사람에게 가장 자주 하시는 말씀 가운데 하나.
함께 읽을 말씀
  • 요 20:19예수께서 오사 가운데 서서 가라사대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찌어다
  • 롬 5:1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 사 43:1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 계 1:17두려워 말라 나는 처음이요 나중이니
24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기드온이 여호와를 위하여 거기서 단을 쌓고 이름을 여호와살롬이라 하였더라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에게 속한 오브라에 있더라

직역 기드온이 거기서 여호와를 위해 제단을 쌓고 그것을 ‘여호와 샬롬’이라 불렀다. 그것이 오늘까지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다.

기드온은 그 자리에 단을 쌓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을 “여호와살롬”, 곧 ‘여호와는 평강이시라’고 부릅니다. 23절에서 하나님이 “샬롬 레카(너에게 평강이 있으라)” 하신 그 말씀을 붙잡아,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백한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지금 이스라엘에는 평강이 없습니다. 미디안이 메뚜기 떼처럼 땅을 휩쓸고 있고, 사람들은 굴에 숨어 있습니다. 전쟁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그 한복판에서 ‘여호와는 평강이시라’고 고백합니다. 평강은 상황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환경이 평화로워서가 아니라, 평강이신 하나님이 함께 계시기 때문에 평강입니다.

구약에는 하나님의 이름을 고백하는 이런 이름들이 있습니다. ‘여호와 이레’(여호와께서 준비하시리라, 창 22:14), ‘여호와 닛시’(여호와는 나의 깃발, 출 17:15), ‘여호와 라파’(치료하는 여호와, 출 15:26), ‘여호와 삼마’(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 겔 48:35). 그리고 ‘여호와 살롬’. 이사야 9:6은 오실 메시아를 “평강의 왕”이라 부릅니다.

“그것이 오늘까지… 오브라에 있더라.” 이 제단은 사사기가 기록될 때까지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같은 오브라에 기드온은 나중에 금 에봇을 두어 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섬기게 됩니다(8:27). 같은 마을에 ‘여호와 살롬’의 제단과 우상이 된 에봇이 함께 서게 됩니다. 출발은 아름다웠지만 끝이 무너졌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여호와 살롬 — 하나님의 이름을 담은 제단이나 장소의 이름들: 창 22:14 여호와 이레, 출 17:15 여호와 닛시, 겔 48:35 여호와 삼마, 렘 23:6 여호와 치드케누(여호와 우리의 의).
  • 오브라 — 8:27, 32, 9:5. 기드온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에봇을 두고, 장사됩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아비멜렉이 이곳에서 형제 칠십 명을 죽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22:14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 출 17:15모세가 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여호와 닛시라 하고
  • 사 9:6그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
  • 엡 2:14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 요 14:27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하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지금의 나보다 앞으로의 나를 보십니다

하나님이 찾아오셨을 때 기드온은 포도주 틀에 숨어 있었습니다. 그는 질문했고, 변명했고, 표징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처음부터 그를 “큰 용사”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지금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 그가 될 모습을 보셨습니다.

우리도 스스로를 보면 숨어 있는 기드온 같을 때가 많습니다. 두렵고, 약하고, 작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큰 용사여” 하고 부르십니다. 우리가 강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라는 약속 때문입니다. 그리고 두려움에 떠는 우리에게 “샬롬, 두려워 말라” 하시며 평강이 되어 주십니다. 오늘 그 평강의 하나님 앞에 단을 쌓읍시다.

6:25–32네 아비의 바알 단을 헐라 — 밤에 행한 순종, 그리고 여룹바알

부르심을 받은 그날 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첫 번째 임무를 주십니다. 그것은 미디안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 집에 있는 바알의 단을 헐고 아세라 상을 찍는 것이었습니다. 바깥의 원수와 싸우기 전에, 집 안의 우상부터 없애야 했습니다.

기드온은 순종합니다. 그러나 두려워서 낮이 아닌 밤에 합니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며 기드온을 죽이라고 요구합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바알 단의 주인이었던 아버지 요아스가 아들을 변호합니다. “바알이 신이라면 스스로 다투게 하라.”

25이날 밤에 — 네 아비의 바알의 단을 헐며 아세라 상을 찍고

이날 밤에 여호와께서 기드온에게 이르시되 네 아비의 수소 곧 칠년된 둘째 수소를 취하고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직역 그날 밤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의 수소, 곧 일곱 살 된 둘째 수소를 가져다가, 네 아버지에게 속한 바알의 제단을 헐고, 그 곁에 있는 아세라를 찍어라.”

하나님은 기드온을 부르신 “이날 밤에” 바로 첫 임무를 주십니다. 그런데 그 임무는 미디안과의 전쟁이 아니었습니다. “네 아비에게 있는 바알의 단을 헐며 단 곁의 아세라 상을 찍고.”

놀라운 사실이 드러납니다.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의 집에 바알의 단이 있었습니다. 13절에서 “여호와께서 우리를 버리사”라고 탄식하던 기드온의 집 마당에, 바알을 섬기는 제단이 서 있었습니다. 8–10절의 선지자가 말한 “아모리 사람의 땅의 신들을 두려워 말라 하였으나 너희가 청종치 아니하였느니라”가 바로 기드온의 집 이야기였습니다.

하나님의 순서는 분명합니다. 바깥의 원수와 싸우기 전에 집 안의 우상부터. 미디안이 이스라엘을 누르는 것은 이스라엘이 바알을 섬겼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니 미디안을 이기려면 먼저 바알을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개혁은 언제나 내 집에서, 내 마음에서 시작합니다. 예수님도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마 7:5) 하셨습니다.

“칠년된 둘째 수소.” 왜 하필 일곱 살 된 소일까요? 미디안의 압제가 7년이었습니다(1절). 이 소는 압제가 시작될 때 태어나 압제의 세월 동안 자란 소입니다. 그 7년의 세월을 하나님께 제물로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둘째’ 수소라고 한 것은, 첫째 수소는 바알에게 바쳐질 소였을지도 모릅니다. 바알에게 갈 뻔한 것을 여호와께 드리게 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칠년된 둘째 수소 — 원문 ‘파르 하쇼르… 우파르 하셰니 셰바 샤님’. 히브리어 본문이 다소 어려워 ‘네 아버지의 수소, 곧 둘째 수소’로 읽기도 하고 ‘수소와 둘째 수소 두 마리’로 읽기도 합니다.
  • 바알의 단 — 요아스의 집에 있었지만 28–30절을 보면 마을 전체가 이 제단에서 예배했습니다. 요아스는 마을의 지도자였고 바알 성소의 관리자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 아세라 — 3:7 노트 참고. 신 16:21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쌓은 단 곁에 아무 나무로든지 아세라상을 세우지 말며”.
함께 읽을 말씀
  • 신 7:5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 출 34:13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그들의 주상을 깨뜨리고 그들의 아세라 상을 찍을찌어다
  • 창 35:2-4야곱이 이에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한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 중의 이방 신상을 버리고
  • 마 7:5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 벧전 4:17하나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26견고한 성 위에 규례대로 단을 쌓고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

또 이 견고한 성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규례대로 한 단을 쌓고 그 둘째 수소를 취하여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

직역 “그리고 이 요새 꼭대기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해 질서 있게 제단을 쌓고, 둘째 수소를 가져다가 네가 찍은 아세라의 나무로 번제를 드려라.”

하나님의 명령은 무너뜨리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바알의 단을 헌 자리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한 단을 쌓고”. 우상을 없애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그 빈자리에 참 하나님을 모셔야 합니다. 예수님은 귀신이 나간 집이 비어 있으면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돌아온다고 하셨습니다(마 12:43–45).

그리고 놀라운 명령이 있습니다. “네가 찍은 아세라나무로 번제를 드릴찌니라.” 사람들이 신이라고 섬기던 아세라 나무 기둥을 찍어서, 그것을 참 하나님께 드리는 번제의 땔감으로 쓰라는 것입니다. 우상이 땔감이 되는 순간입니다. 이사야 44:15–17은 사람이 나무 반쪽으로는 불을 때고 나머지 반쪽으로는 신상을 만들어 절한다고 우상 숭배의 어리석음을 비꼬았습니다. 기드온은 그 신상 전체를 불에 넣습니다.

“이 견고한 성 위에.” 마을의 가장 높은 곳, 모두가 볼 수 있는 곳입니다. 이 개혁은 숨어서 할 일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보도록 공개적으로 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견고한 성 마오즈 — ‘요새, 피난처’. 시 27:1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31:2–4. 2절에서 이스라엘이 숨었던 ‘산성’(메추다)과 다른 말이지만 비슷한 장소입니다.
  • 규례대로 — 원문 ‘바마아라카’, ‘정돈된 방식으로’. 돌을 차곡차곡 쌓은 정식 제단.
  • 번제 — 제물 전체를 태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완전한 헌신을 뜻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44:15-17그 중에 얼마는 불사르고… 그 나머지로 신상 곧 자기의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부복하여 경배하며
  • 마 12:43-45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
  • 행 19:19또 마술을 행하던 많은 사람이 그 책을 모아 가지고 와서 모든 사람 앞에서 불사르니
  • 살전 1:9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며
27종 열을 데리고 말씀대로 행하되 — 두려워하므로 밤에 행하니라

이에 기드온이 종 열을 데리고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되 아비의 가족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므로 이 일을 감히 백주에 행하지 못하고 밤에 행하니라

직역 기드온은 그의 종들 가운데 열 사람을 데리고 여호와께서 그에게 말씀하신 대로 행하였다. 그러나 그가 그의 아버지 집과 그 성읍 사람들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에 낮에 하지 못하고 밤에 하였다.

기드온은 순종합니다. “여호와의 말씀하신대로 행하되.” 그런데 한 가지 단서가 붙습니다. “두려워하므로… 밤에 행하니라.” 그는 아버지의 가족과 마을 사람들이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모두가 잠든 밤에 몰래 했습니다.

이 모습이 기드온답습니다.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털던 사람이, 이제는 밤에 숨어서 바알의 단을 헙니다. 두려움이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 전에는 두려움 때문에 숨기만 했다면, 이제는 두려움 속에서도 순종합니다. 용기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의 ‘밤의 순종’을 책망하지 않으십니다. 니고데모도 처음에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지만(요 3:2), 나중에는 예수님의 장례를 위해 공개적으로 나섰습니다(요 19:39). 믿음은 자랍니다. 밤에 시작한 순종이 낮의 담대함으로 자랍니다.

그리고 흥미로운 사실이 있습니다. 기드온에게는 종이 열 명이나 있었습니다. 15절에서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라고 했던 것과 비교하면, 그렇게까지 약한 집은 아니었던 것 같습니다. 사람은 두려울 때 자기의 약함을 크게 보곤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종 열 — 원문 ‘아사라 아나쉼 메아바다브’, ‘그의 종들 가운데 열 사람’. 종이 열 명보다 더 많았다는 뜻입니다.
  • 백주 — 白晝, 대낮.
함께 읽을 말씀
  • 요 3:2그가 밤에 예수께 와서 가로되 랍비여 우리가 당신은 하나님께로서 오신 선생인 줄 아나이다
  • 요 19:38-39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제자나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은휘하더니… 일찍 예수께 밤에 나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근쯤 가지고 온지라
  • 시 56:3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28아침에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아세라가 찍혔고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찌기 일어나 본즉 바알의 단이 훼파되었으며 단 곁의 아세라가 찍혔고 새로 쌓은 단 위에 그 둘째 수소를 드렸는지라

직역 성읍 사람들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 보니, 보라, 바알의 제단이 허물어졌고, 그 곁의 아세라가 찍혔으며, 둘째 수소가 새로 쌓은 제단 위에 드려져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마을 사람들은 평소처럼 일찍 일어나 바알에게 제사하러 나왔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본 것은 놀라운 광경이었습니다. 바알의 단은 무너졌고, 아세라 상은 찍혔고, 그 자리 근처에 처음 보는 새 단이 서 있고, 그 위에서 수소가 타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불의 땔감은 그들이 섬기던 아세라 나무였습니다.

바알은 자기 제단이 무너지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밤새 자기 집이 허물어지는데도 막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우상의 정체입니다. 시편 115편이 말하듯,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고 손이 있어도 만지지 못합니다. 그 사실이 아침 햇살 아래 드러났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훼파되었으며 나타츠 — ‘허물다, 무너뜨리다’. 2:2 “그들의 단을 헐라”(나타츠)와 같은 말. 하나님이 처음부터 명하신 일을 기드온이 드디어 행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삼상 5:3-4아스돗 사람이 이튿날 일찌기 일어나 본즉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 시 115:4-8저희 우상은 은과 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입이 있어도 말하지 못하며
  • 삿 2:2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29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행하였도다

서로 물어 가로되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하고 그들이 캐어 물은 후에 가로되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하고

직역 그들이 서로 말하였다. “누가 이 일을 했는가?” 그들이 조사하고 찾아본 뒤에 말하였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 일을 했다.”

마을 사람들은 분노하며 범인을 찾습니다. “이것이 누구의 소위인고.” 그리고 캐어 물은 후에, 아마 기드온을 도운 종들 가운데 누군가가 말했을 것입니다. 범인이 밝혀집니다. “요아스의 아들 기드온이 이를 행하였도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위해 바알의 단을 헌 사람을 찾아 처벌하려고 합니다. 얼마나 뒤집힌 세상입니까. 2:10의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어디까지 왔는지 보여 줍니다. 그들은 바알이 자기들의 신이라고 생각했고, 여호와의 제단을 쌓은 사람을 범죄자로 여겼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캐어 묻다 — 원문 ‘다라쉬’와 ‘바카쉬’, 두 동사 모두 ‘찾다, 구하다’. 하나님을 ‘찾아야’ 할 사람들이 하나님의 종을 ‘찾아’ 죽이려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행 16:20-21이 사람들이 유대인인데 우리 성을 심히 요란케 하여 로마 사람인 우리가 받지도 못하고 행치도 못할 풍속을 전한다 하거늘
  • 요 16:2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30네 아들을 끌어내라 — 그는 당연히 죽을찌니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이르되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찌니 이는 바알의 단을 훼파하고 단 곁의 아세라를 찍었음이니라

직역 성읍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말하였다.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죽어야 한다. 그가 바알의 제단을 허물고 그 곁의 아세라를 찍었기 때문이다.”

마을 사람들이 요아스에게 몰려옵니다. “네 아들을 끌어내라 그는 당연히 죽을찌니.” 이것은 끔찍한 역전입니다. 신명기 13:6–10과 17:2–5에 따르면, 다른 신을 섬기도록 꾀는 자를 죽여야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 율법을 정반대로 적용해서, 바알을 무너뜨린 사람을 죽이려 합니다. 우상을 섬기는 자가 살고, 우상을 무너뜨린 자가 죽어야 하는 세상.

기드온이 두려워했던 이유가 분명해졌습니다. 그는 목숨을 걸고 순종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따르는 길은 때로 가족과 이웃의 분노를 사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6)고 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율법의 뒤집힘 — 신 13:6–10 “네 동복 형제나 네 자녀나…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섬기자 할찌라도…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이 율법은 바알 숭배자를 처벌하라는 것이었는데, 오브라 사람들은 그 반대로 하려 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13:6-9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친구가 가만히 너를 꾀어 이르기를… 너는 용서 없이 그를 죽이되
  • 마 10:34-36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
  • 사 5:20악을 선하다 하며 선을 악하다 하며 흑암으로 광명을 삼으며 광명으로 흑암을 삼으며
31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 바알이 신일찐대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요아스가 자기를 둘러선 모든 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하여 쟁론하는 자는 이 아침에 죽음을 당하리라 바알이 과연 신일찐대 그 단을 훼파하였은즉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하니라

직역 요아스가 자기를 대적하여 서 있는 모든 자에게 말하였다. “너희가 바알을 위해 변호하겠느냐? 너희가 그를 구원하겠느냐? 그를 위해 변호하는 자는 아침까지 죽임을 당할 것이다. 만일 그가 신이라면, 누가 그의 제단을 허물었으니 그가 스스로 자기를 위해 변호하게 하라.”

뜻밖의 사람이 기드온을 변호합니다. 바알 제단의 주인, 기드온의 아버지 요아스입니다. 그리고 그의 논리는 날카롭습니다.

“너희가 바알을 위하여 쟁론하느냐 너희가 바알을 구원하겠느냐.” 생각해 보십시오. 사람이 신을 변호하고, 사람이 신을 구원해야 한다면, 그것이 무슨 신입니까? 신이라면 스스로를 지킬 수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람들은 바알이 자기들을 지켜 주고 비를 내려 주리라 믿었는데, 정작 바알은 자기 제단 하나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제 사람들이 바알을 지켜 주겠다고 나서고 있습니다.

“바알이 과연 신일찐대… 스스로 쟁론할 것이니라.” 바알이 진짜 신이라면 자기 단을 헌 자를 직접 벌하게 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에게 한 조롱과 같은 논리입니다.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왕상 18:27).

요아스는 왜 갑자기 아들 편에 섰을까요? 아들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마음이었을 수도 있고, 아들이 한 일을 보며 깨달은 것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쩌면 그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바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을지 모릅니다. 한 사람의 용기 있는 순종이 아버지의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쟁론하다 리브 — ‘다투다, 변호하다, 소송하다’. 법정에서 누군가를 변호하는 말입니다. 32절 ‘여룹바알’의 ‘룹(리브)’이 이 동사입니다.
  • 이 아침에 — 원문 ‘아드 합보케르’, ‘아침까지’. 해석이 갈립니다. ‘아침이 되기 전에 바알이 그를 죽일 것이다’로 읽기도 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왕상 18:27오정에 이르러는 엘리야가 저희를 조롱하여 가로되 큰 소리로 부르라 저는 신인즉 묵상하고 있는지 혹 잠간 나갔는지 혹 길을 행하는지 혹 잠이 들어서 깨워야 할 것인지… 하매
  • 사 46:6-7그것을 들어 어깨에 메어다가 그의 처소에 두면 그것이 서서 있고 거기서 능히 움직이지 못하며 그에게 부르짖어도 능히 응답지 못하며
  • 렘 10:5그것이 갈린 기둥 같아서 말도 못하며 걸어다니지도 못하므로 사람에게 메임을 입느니라 그것이 화를 주거나 복을 주지 못하나니
  • 시 135:15-18열방의 우상은 은금이요 사람의 수공물이라
32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그 날에 기드온을 여룹바알이라 하였으니 이는 그가 바알의 단을 훼파하였은즉 바알이 더불어 쟁론할 것이라 함이었더라

직역 그날 그를 여룹바알이라 불렀다. “바알이 그와 다투게 하라. 그가 그의 제단을 허물었으니.”

그날부터 기드온에게 새 이름이 생깁니다. “여룹바알.” 뜻은 ‘바알이 다투게 하라’, 곧 ‘바알더러 직접 상대하라고 하라’입니다. 31절 요아스의 말에서 나온 이름입니다.

이 이름은 바알에 대한 조롱입니다. 기드온이 바알의 단을 헐었는데, 바알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기드온은 멀쩡히 살아서 이제 미디안과 싸우러 갑니다. 이 이름이 불릴 때마다 사람들은 바알이 얼마나 무력한지를 떠올렸을 것입니다. 사사기는 이후에도 기드온을 ‘여룹바알’로 여러 번 부릅니다(7:1, 8:29, 35, 9장).

기드온은 이제 두 이름을 가진 사람이 되었습니다. ‘기드온’(찍는 자)과 ‘여룹바알’(바알과 다투는 자). 둘 다 우상을 무너뜨린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이 장의 마지막에서 그는 다시 연약한 모습을 보입니다(36–40절). 그리고 8장 끝에서 그는 금 에봇을 만들어 이스라엘을 다시 우상으로 이끕니다. ‘바알과 다툰 자’라는 이름을 가졌던 사람이 결국 새로운 우상을 만듭니다. 우상과의 싸움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여룹바알 — ‘야레브 바알’, ‘바알이 다투게 하라’ 또는 ‘바알이 다툰다’. 삼하 11:21에서는 ‘여룹베셋’이라 불립니다. ‘바알’ 대신 ‘보셋’(수치)을 넣어 부른 것입니다. 사울의 아들 이스보셋(대상 8:33에서는 에스바알),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대상 8:34 므립바알)도 같은 방식으로 이름이 바뀌어 기록되었습니다.
  • 원래 뜻 — 일부 학자들은 ‘여룹바알’이 원래 ‘바알이 (그를 위해) 다투신다’라는 바알 숭배식 이름이었는데, 사사기가 이 이야기로 그 뜻을 뒤집어 해석한 것이라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삼하 11:21여룹베셋의 아들 아비멜렉을 쳐 죽인 자가 누구냐
  • 삼상 12:11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나 사무엘을 보내사
  • 삿 8:33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개혁은 내 집 마당에서 시작합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미디안과 싸우기 전에 먼저 아버지 집의 바알 단부터 헐라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고통받는 진짜 이유는 미디안이 아니라 집집마다 서 있던 바알 제단이었습니다. 바깥의 원수를 이기려면 먼저 집 안의 우상을 무너뜨려야 했습니다.

기드온은 두려워서 밤에 했습니다. 완벽한 용기는 아니었지만, 순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순종은 마을을 뒤흔들었고, 아버지의 마음까지 움직였으며, 바알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모두에게 드러냈습니다. 오늘 내 삶의 ‘아버지 집 마당’에 서 있는 바알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헐고 그 자리에 여호와의 단을 쌓을 때, 하나님의 구원이 시작됩니다.

6:33–40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을 옷 입히시니 — 그리고 양털 한 뭉치

미디안과 그 연합군이 다시 요단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 이번에는 전면전입니다. 그때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에게 임하시고, 기드온은 나팔을 불어 지파들을 모읍니다. 바알의 단을 헌 일로 죽을 뻔했던 그를 이제 사람들이 따릅니다.

그런데 군대가 모이자 기드온은 다시 흔들립니다. 그는 하나님께 양털로 표징을 구합니다. 한 번으로 모자라 두 번이나.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는데도 기드온은 확인하고 또 확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연약함을 참으시며 두 번 다 응답해 주십니다.

33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치다

때에 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 사람들이 다 모여 요단을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친지라

직역 미디안과 아말렉과 동방 자손이 다 함께 모여, 건너와서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쳤다.

드디어 결전의 때가 옵니다. 미디안, 아말렉, 동방 사람들이 모두 모여 요단을 건너 이스르엘 골짜기에 진을 칩니다. 7:12은 그들을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그 약대의 무수함이 해변의 모래가 수다함 같은지라”고 묘사합니다. 8:10에 따르면 그 수는 13만 5천 명이었습니다.

이스르엘 골짜기는 4–5장에서 드보라와 바락이 시스라의 철병거를 무너뜨린 바로 그 평야입니다. 하나님은 같은 장소에서 다시 한번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실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이스르엘 — ‘하나님이 씨를 뿌리신다’라는 뜻. 왕상 21장 나봇의 포도원, 호 1:4–5, 2:22에도 나옵니다. 헬라어 이름은 에스드렐론.
함께 읽을 말씀
  • 삿 7:12미디안 사람과 아말렉 사람과 동방의 모든 사람이 골짜기에 누웠는데 메뚜기의 중다함 같고
  • 호 1:5그 날에 내가 이스르엘 골짜기에서 이스라엘의 활을 꺾으리라
34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모여 좇고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시니 기드온이 나팔을 불매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직역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입으셨다. 그가 숫양 뿔 나팔을 불자 아비에셀이 그의 뒤를 따르도록 모였다.

결정적인 순간에 여호와의 신이 기드온에게 강림하십니다. 원문의 표현이 놀랍습니다. ‘여호와의 영이 기드온을 옷 입으셨다(라베샤).’ 성령께서 기드온을 옷처럼 입으셨다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기드온이지만, 그 안에서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이셨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영이 입으신 옷이 되었습니다.

그러자 기드온이 나팔을 붑니다. 그리고 “아비에셀 족속이 다 모여서 그를 좇고.” 놀라운 변화입니다. 아비에셀은 기드온의 가문, 바로 며칠 전 바알 단 사건으로 그를 죽이라고 요구했던 그 사람들입니다(30절). 그런데 이제 그들이 기드온을 따릅니다. 성령의 역사는 원수였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돌이킵니다.

밤에 몰래 바알 단을 헐던 사람이 이제 공개적으로 나팔을 붑니다. 성령이 임하시자 두려움에 숨던 사람이 앞에 서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오순절 성령이 임하시자, 문을 잠그고 숨어 있던 베드로가 예루살렘 거리에서 담대히 설교한 것처럼(행 2:14).

원어 · 번역 노트
  • 옷 입으셨다 라바쉬 — ‘옷을 입다’. 성령이 사람을 ‘옷 입으신다’는 표현은 대상 12:18 “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대하 24:20 스가랴에게도 쓰입니다. 신약의 “그리스도로 옷입고”(롬 13:14, 갈 3:27),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눅 24:49)와 대비됩니다.
  • 나팔 — 3:27 에훗이 에브라임 산지에서 나팔을 불었습니다. 7:16–22에서 기드온의 300명은 모두 나팔을 듭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3:10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 대상 12:18때에 성신이 삼십인의 두목 아마새에게 감동하시니
  • 눅 24:49너희는 위로부터 능력을 입히울 때까지 이 성에 유하라 하시니라
  • 행 2:14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같이 서서 소리를 높여 가로되
  • 갈 3:27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입었느니라
35사자를 므낫세와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들도 올라와서

기드온이 또 사자를 온 므낫세에 두루 보내매 그들도 모여서 그를 좇고 또 사자를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 보내매 그 무리도 올라와서 그를 영접하더라

직역 그가 온 므낫세에 사자들을 보냈고, 그도 그의 뒤를 따르도록 모였다. 그가 아셀과 스불론과 납달리에도 사자들을 보냈고, 그들도 올라와 그들을 맞았다.

기드온은 자기 가문을 넘어 온 므낫세, 그리고 북쪽의 아셀, 스불론, 납달리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그들이 모두 옵니다. 7:3에 따르면 모인 군사가 3만 2천 명이었습니다.

여기 아셀이 있다는 것이 눈에 띕니다. 5:17에서 드보라의 노래는 “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라고 아셀이 오지 않은 것을 책망했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아셀이 옵니다. 한 번 실패한 지파도 다시 부르심에 응답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목록에 에브라임이 없습니다. 기드온은 에브라임에게는 사람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8:1에서 에브라임은 이 일로 기드온에게 크게 화를 냅니다.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작은 소홀함이 나중에 갈등의 씨앗이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영접하더라 — 원문 ‘리크라탐’, ‘그들을 맞으러’. 북쪽 지파들이 올라와 기드온의 군대와 합류했다는 뜻입니다.
  • 에브라임 — 7:24에서 기드온은 나중에 에브라임을 불러 요단 나루를 지키게 하지만, 8:1에서 에브라임은 처음부터 부르지 않은 것에 불평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5:17아셀은 해빈에 앉고 자기 시냇가에 거하도다
  • 삿 7:3이에 돌아간 백성이 이만 이천명이요 남은 자가 일만 명이었더라
  • 삿 8:1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36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구원하려 하시거든

기드온이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려 하시거든

직역 기드온이 하나님께 말하였다. “만일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라면,”

성령이 임하셨고, 나팔을 불었고, 3만 2천 명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다시 흔들립니다. 군대가 눈앞에 모이고, 저 건너 메뚜기 떼 같은 미디안 군대가 보이자, 두려움이 다시 올라왔습니다.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기드온 자신도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습니다(14, 16절). “가서 구원하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그런데도 그는 “구원하려 하시거든”, ‘만일 정말 그러시다면’이라고 조건을 답니다. 약속을 들었지만 확신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연약한 믿음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알지만, 그 말씀만으로는 마음이 놓이지 않는 상태. 우리도 자주 그렇습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읽고도, 눈에 보이는 무언가로 다시 확인받고 싶어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하나님께 — 36–40절에서는 ‘여호와’ 대신 ‘하나님(엘로힘)’이 쓰입니다. 일부 학자들은 기드온이 언약의 하나님 여호와보다 더 일반적인 ‘신’에게 시험하듯 말하는 거리감을 나타낸다고 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6:14, 16가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하리니
  • 막 9:24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 약 1:6-8오직 믿음으로 구하고 조금도 의심하지 말라 의심하는 자는 마치 바람에 밀려 요동하는 바다 물결 같으니
37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보소서 내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주께서 이미 말씀하심 같이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줄 내가 알겠나이다 하였더니

직역 “보십시오, 내가 깎은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겠습니다. 만일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온 땅은 마르면, 주께서 말씀하신 대로 내 손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줄 내가 알겠습니다.”

기드온은 구체적인 표징을 구합니다. “양털 한 뭉치를 타작마당에 두리니 이슬이 양털에만 있고 사면 땅은 마르면.” 밤새 양털 위에만 이슬이 내리고 주변 땅은 말라 있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이 장면에서 “타작마당”이라는 장소가 의미 있습니다. 11절에서 기드온은 미디안이 두려워 타작마당이 아니라 포도주 틀에 숨어 밀을 털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그는 넓게 트인 타작마당에 양털을 내놓습니다. 비록 아직 믿음은 흔들리지만, 그가 서 있는 자리는 달라졌습니다.

그리고 기드온이 구한 것은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자연의 질서에 관한 표징입니다. 이슬은 비가 귀한 여름철 팔레스타인 농작물에게 생명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이 이슬과 비를 준다고 믿었습니다. 기드온은 ‘바알과 다투는 자(여룹바알)’로서, 이슬을 주관하시는 분이 여호와이심을 확인하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양털 기자트 하체메르 — ‘깎은 털’. 양털은 습기를 잘 빨아들입니다.
  • 이슬 탈 — 건기에 농작물을 살리는 중요한 수분. 창 27:28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네게 주시기를”, 호 14:5 “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왕상 17:1 엘리야가 “있지 아니하리라”.
함께 읽을 말씀
  • 창 24:12-14오늘날 나로 순적히 만나게 하사… 그는 주께서 주의 종 이삭을 위하여 정하신 자라
  • 왕상 17:1나의 섬기는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사심을 가리켜 맹세하노니 내 말이 없으면 수년 동안 우로가 있지 아니하리라
  • 호 14:5내가 이스라엘에게 이슬과 같으리니 저가 백합화 같이 피겠고
38그대로 된지라 — 양털에서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그대로 된지라 이튿날 기드온이 일찌기 일어나서 양털을 취하여 이슬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직역 그렇게 되었다. 그가 이튿날 일찍 일어나 양털을 눌러 짜자, 양털에서 이슬이, 대접 가득한 물이 나왔다.

“그대로 된지라.” 하나님이 응답하셨습니다. 기드온은 이튿날 일찌기 일어나서 달려가 양털을 확인합니다. 정말로 양털만 젖어 있었습니다. 그가 양털을 짜니 “물이 그릇에 가득하더라.” 이슬 몇 방울이 아니라 대접 하나가 가득 찰 만큼 흠뻑 젖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믿음의 요청에도 넉넉하게 응답하셨습니다. 그런데 기드온은 이것으로 만족했을까요? 다음 절에서 우리는 그가 다시 한번 구하는 것을 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그릇 세펠 — ‘대접, 큰 그릇’. 5:25 야엘이 시스라에게 엉긴 젖을 담아 준 ‘귀한 그릇’과 같은 말입니다.
  • 짜니 주르 — ‘누르다, 짜다’.
함께 읽을 말씀
  • 엡 3:20우리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능력대로 우리의 온갖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것에 더 넘치도록 능히 하실 이에게
  • 시 23:5내 잔이 넘치나이다
39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이번만 말하리이다 — 양털만 마르고 땅에는 이슬이

기드온이 또 하나님께 여짜오되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구하옵나니 나로 다시 한번 양털로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직역 기드온이 하나님께 말하였다. “주의 노가 나에게 타오르지 않게 하소서. 이번 한 번만 말하겠습니다. 제발 양털로 이번 한 번만 시험하게 하소서. 양털만 마르고 온 땅에는 이슬이 있게 하소서.”

기드온은 다시 구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도 자기가 지나치다는 것을 압니다. “주여 내게 진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말하리이다.” 아브라함이 소돔을 위해 중보할 때 마지막에 했던 말과 같습니다(창 18:32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왜 다시 구했을까요? 첫 번째 표징에 의심이 생겼을 수 있습니다. 양털은 원래 습기를 잘 빨아들이니, 양털만 젖은 것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반대로 구합니다.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게 하옵소서.” 습기를 빨아들이는 양털이 마르고 주변 땅만 젖는 것은 자연적으로 일어날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입니다.

기드온의 모습은 우리의 모습입니다. 한 번 응답을 받아도 의심이 다시 고개를 듭니다. “혹시 우연은 아니었을까?” 신앙은 이런 흔들림을 지나면서 자랍니다. 중요한 것은 그 흔들림 속에서도 하나님께 묻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드온은 다른 데가 아니라 하나님께 갔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시험하다 나사 — ‘시험하다’. 2:22, 3:1, 4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시험’하신 말입니다. 신 6:16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라고 경고합니다. 기드온도 이 말을 하면서 조심스러워합니다.
  • 이번만 — 원문 ‘아크 합파암’. 창 18:32, 삿 16:28 삼손의 마지막 기도 “이번만 나로 강하게 하사”에도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18:32아브라함이 또 가로되 주는 노하지 마옵소서 내가 이번만 더 말씀하리이다
  • 신 6:16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고
  • 시 103:13-14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 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 사 42:3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40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양털만 마르고 땅에는 이슬이 있었더라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곧 양털만 마르고 사면 땅에는 다 이슬이 있었더라

직역 하나님이 그 밤에 그렇게 행하셨다. 양털만 말랐고, 온 땅에는 이슬이 있었다.

“이 밤에 하나님이 그대로 행하시니.” 하나님은 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기드온의 두 번째 요청에도 그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양털만 마르고 온 땅은 이슬에 젖었습니다.

이 장면이 보여 주는 것은 기드온의 믿음보다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하나님은 이미 약속하셨고(14, 16절), 반석에서 불을 내어 표징을 보이셨고(21절), 성령으로 기드온을 옷 입히셨습니다(34절). 그런데도 기드온은 두 번이나 더 확인을 구했습니다. 하나님은 그 모든 연약함을 참으시고, 꾸짖지 않으시고, 그가 원하는 대로 응답해 주셨습니다. 시편 103:14 “이는 저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진토임을 기억하심이로다.”

그렇다면 우리도 기드온처럼 ‘양털’을 놓고 하나님의 뜻을 확인해야 할까요? 신중해야 합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 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이미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알면서도 확신이 없어서 구했습니다. 그러니 이 이야기는 ‘하나님의 뜻을 아는 방법’을 가르치기보다, ‘하나님이 연약한 믿음을 얼마나 오래 참아 주시는지’를 보여 줍니다. 오늘 우리에게는 기드온보다 더 분명한 확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완성된 말씀(성경)과, 우리 안에 계신 성령과,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롬 8:32) 것으로 이미 가장 큰 표징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7장에서 하나님은 기드온이 구하지도 않은 세 번째 표징을 주십니다. 미디안 군대 진영에서 들은 꿈 이야기(7:13–15). 하나님은 우리가 구하는 것보다 더 넉넉하게 우리의 연약함을 붙들어 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기드온의 표징들 — ① 반석에서 나온 불(6:21), ② 젖은 양털(6:38), ③ 마른 양털(6:40), ④ 미디안 사람의 꿈(7:13–15, 하나님이 먼저 주심).
  • “양털을 놓다” — 영어권에서는 ‘put out a fleece’(양털을 놓다)라는 말이 ‘하나님의 뜻을 확인하려고 조건을 걸다’는 관용구가 되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103:8여호와는 자비로우시며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 삿 7:10-11네가 내려가기를 두려워하거든 네 부하 부라를 데리고 그 진으로 내려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들으라
  • 롬 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
  • 히 4:15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흔들리는 믿음을 참아 주십니다

기드온은 성령이 임하시고 군대가 모였는데도 다시 흔들렸습니다. 이미 약속을 받았으면서 양털로 한 번, 또 한 번 확인을 구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진노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밤에도, 다음 밤에도 그대로 응답하셨습니다. 이 장의 진짜 주인공은 겁 많은 기드온이 아니라 그를 끝까지 참아 주신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의 믿음도 흔들립니다. 약속을 알면서도 다시 묻고, 응답을 받고도 다시 의심합니다. 그런 우리를 하나님은 꺾지 않으시고 붙들어 주십니다.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오늘 흔들리는 마음이 있다면 기드온처럼 하나님께 가십시오. 그리고 이미 주신 가장 큰 표징, 십자가를 바라보십시오.

Growing Faith · 정리

6장, 겁 많은 농부에서 나팔 부는 사사로

한 장 안에서 기드온의 자리와 마음이 어떻게 바뀌는지 따라가 봅니다
절기드온의 모습하나님의 일하심
11포도주 틀에 숨어 몰래 밀을 텀상수리나무 아래 앉아 기다리심
12–13“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질문함“큰 용사여” 부르심
14–15“내가 무엇으로?” 자기 약함을 봄“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
16–21표징을 구하고 예물을 드림“반드시 함께 하리라”, 반석에서 불
22–24두려워 떨다가 단을 쌓음“샬롬, 두려워 말라”, 여호와 살롬
25–27두려워서 밤에 바알 단을 헒집 안의 우상부터 명하심
28–32죽을 위기, 여룹바알이 됨아버지 요아스의 마음을 돌이키심
34–35공개적으로 나팔을 불어 지파들을 모음성령이 기드온을 옷 입으심
36–40다시 흔들려 양털로 두 번 확인함두 번 다 그대로 응답하심

기드온의 믿음은 곧게 자라지 않았습니다. 나아갔다가 흔들리고, 다시 나아갔다가 다시 흔들립니다. 그러나 그가 서 있는 자리는 분명히 바뀌었습니다. 포도주 틀(숨는 곳)에서 타작마당(드러난 곳)으로, 밤에서 공개적인 나팔 소리로. 그리고 그 모든 과정에서 변함없는 것은 하나님의 인내였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6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미디안1–33절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아들의 자손. 아라비아의 유목민.

산성山城 · 2절

산의 요새, 숨을 곳.

파종播種 · 3절

씨를 뿌림.

동방 사람3, 33절

요단 동쪽 사막의 유목 부족들.

소산所産 · 4절

땅에서 나는 것, 수확물.

약대5절

낙타의 옛말.

미약微弱 · 6절

가난하고 힘이 약함.

선지자先知者 · 8절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전하는 사람.

포도주 틀11절

바위를 파서 만든 포도 짜는 구덩이.

타작打作 · 11, 37절

곡식의 이삭을 떨어 낟알을 거둠.

용사勇士 · 12절

용맹한 사람. 원문 기보르 하일.

표징表徵 · 17절

하나님의 말씀을 확증하는 표.

에바19절

곡식을 되는 단위. 약 22리터, 밀가루 13–15kg.

무교전병無酵煎餠 · 19–21절

누룩 없이 얇게 구운 빵.

양푼19절

음식을 담는 넓은 놋그릇. 원문은 솥.

여호와살롬24절

‘여호와는 평강이시라’.

아세라25–30절

가나안의 여신. 나무 기둥 형태의 상.

규례規例 · 26절

정해진 법도, 바른 방식.

백주白晝 · 27절

대낮.

훼파毁破 · 28–32절

헐어 부숨.

쟁론爭論 · 31–32절

다투어 따짐, 변호함.

여룹바알32절

‘바알이 다투게 하라’. 기드온의 별명.

강림降臨 · 34절

내려오심. 원문은 ‘옷 입으셨다’.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미디안은 이스라엘이 땀 흘려 가꾼 열매를 해마다 빼앗아 갔습니다(3–4절). 내 삶에서 수고는 많은데 남는 것이 없다고 느껴지는 영역은 어디입니까? 그 원인을 하나님 앞에서 돌아봅시다.
  2. 하나님은 구원자보다 먼저 선지자를 보내 문제의 뿌리를 짚으셨습니다(8–10절). 나는 문제만 해결해 달라고 기도합니까, 그 뿌리를 보여 달라고 기도합니까?
  3. 포도주 틀에 숨은 기드온을 하나님은 “큰 용사여”라 부르셨습니다(12절). 하나님이 지금의 나를 넘어 보시는 ‘앞으로의 나’는 어떤 모습일까요?
  4. “여호와께서 함께 계시면 어찌하여 이 모든 일이…”(13절). 내가 하나님께 정직하게 묻고 싶은 질문은 무엇입니까?
  5. 기드온은 “내가 무엇으로?” 하고 물었고, 하나님은 “내가 함께 하리니”로 대답하셨습니다(15–16절). 지금 나는 ‘무엇으로’를 보고 있습니까, ‘누구와’를 보고 있습니까?
  6. 하나님은 미디안보다 먼저 아버지 집의 바알 단을 헐라고 하셨습니다(25절). 내 삶의 ‘집 마당’에 서 있는 우상은 무엇입니까?
  7. 기드온은 두려워서 밤에 순종했습니다(27절). 두려움 속에서라도 내가 시작해야 할 순종은 무엇입니까?
  8. 하나님은 두 번의 양털 요청을 모두 참아 주셨습니다(36–40절). 하나님의 약속을 알면서도 확신하지 못하는 일이 있다면, 오늘 어떤 말씀을 붙들어야 할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