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기 세부 강해 · Judges
2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1절부터 23절까지 — 보김의 눈물, 한 세대의 끝, 그리고 사사기 전체를 돌리는 바퀴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JUDGES 2:10
Introduction · 들어가며

2장 들어가며

1장이 증거 목록이었다면, 2장은 판결문이자 사사기 전체의 설계도입니다

1장은 이스라엘 지파들이 가나안 사람을 “쫓아내지 못하였다”는 보고로 가득했습니다. 2장은 그 보고를 받아 하나님께서 판결을 내리시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나타나 이렇게 묻습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2절). 1장에서 핑계처럼 들렸던 ‘철병거’는 진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진짜 이유는 불순종이었습니다.

이어서 6–10절은 시간을 조금 되돌려 여호수아의 죽음을 다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사사기에서 가장 슬픈 문장이 나옵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출애굽과 정복의 기적을 직접 본 세대가 사라지자, 그 하나님을 모르는 세대가 나타났습니다. 신앙이 다음 세대로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11–23절은 사사기 전체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미리 보여 주는 설계도입니다. 이스라엘이 다른 신을 섬기고(죄), 하나님이 그들을 원수에게 넘기시고(심판), 그들이 괴로워 부르짖으면(부르짖음), 하나님이 사사를 세워 구원하시고(구원), 사사가 죽으면 다시 더 나빠집니다(타락). 이 바퀴가 3장부터 16장까지 일곱 번 넘게 돌아갑니다. 그런데 이 바퀴는 제자리를 맴도는 원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나선입니다.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19절).

핵심 구절

2:10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 사사기 전체 비극의 뿌리입니다.

사사기의 설계도

2:11–19

죄 → 심판 → 부르짖음 → 구원 → 다시 죄. 이 순환이 책 전체를 끌고 갑니다.

눈물의 장소

보김

‘우는 자들’. 백성은 울었지만 돌이키지는 않았습니다.

남겨 두신 이유

2:22

쫓아내지 않은 민족들은 이스라엘을 시험하는 도구가 됩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여호와의 사자”말아크 YHWH. 하나님 자신처럼 1인칭으로 말하는 특별한 사자.
2절 “청종”聽從, 듣고 따름. 원문 ‘목소리를 듣다(샤마 베콜)’.
3절 “옆구리에 가시”원문은 ‘옆구리에’만 있음. 민 33:55 “옆구리에”에서 온 표현.
3절 “올무”새나 짐승을 잡는 덫. 원문 모케쉬.
5절 “보김”‘우는 자들’이라는 뜻의 지명.
9절 “딤낫 헤레스”수 19:50, 24:30에서는 ‘딤낫 세라’. 글자 순서가 바뀐 이름.
10절 “알지 못하며”야다. 지식이 아니라 인격적 관계와 경험으로 아는 것.
11절 “바알들”복수형. 지역마다 섬기던 여러 바알 신상들.
14절 “파시매”팔았다(마카르). 종을 팔아넘기듯 넘기셨다는 뜻.
16절 “사사”士師, 원문 쇼페트. 재판관이자 구원자, 지도자.
17절 “음란하듯”자나. 언약을 깨고 다른 신을 따르는 것을 간음에 빗댐.
18절 “뜻을 돌이키셨음”나함. 불쌍히 여기셨다, 마음이 움직이셨다.
19절 “패괴”敗壞, 썩어서 무너짐. 원문 샤하트 ‘부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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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5여호와의 사자가 보김에 이르러 — “그리함은 어찜이뇨”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처음 진을 친 곳, 할례를 받고 유월절을 지킨 곳, 여호와의 군대 장관이 여호수아에게 나타난 곳입니다(수 4–5장). 그 출발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올라오셔서, 지금 이스라엘이 어디까지 왔는지를 물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네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① 내가 한 일(구원과 약속), ② 내가 명한 일(언약을 세우지 말고 단을 헐라), ③ 너희가 한 일(청종치 않음), ④ 그래서 일어날 일(가시와 올무). 이것은 고대 근동의 언약 소송 형식과 같습니다. 왕이 언약을 어긴 신하를 불러 판결하는 장면입니다.

1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에 이르러 — 내가 너희를 인도하였고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부터 보김에 이르러 가로되 내가 너희로 애굽에서 나오게 하고 인도하여 너희 열조에게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왔으며 또 내가 이르기를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직역 여호와의 사자가 길갈에서 보김으로 올라와 말하였다.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올라오게 하였고, 너희 조상에게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데려왔다. 그리고 내가 말하였다. ‘나는 너희와 맺은 내 언약을 영원히 깨뜨리지 않을 것이다.’”

“여호와의 사자.” 이분은 평범한 천사가 아닙니다. 그분은 “내가 너희를 애굽에서 나오게 하였다”,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이라고 1인칭으로 말씀하십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 내신 분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러니 이 사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심부름꾼이라기보다 하나님 자신이 나타나신 것처럼 말합니다. 창세기에서 하갈에게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도, 모세에게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의 사자도 그랬습니다(창 16:7–13, 출 3:2–6).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분을 사람이 되시기 이전에 나타나신 그리스도로 이해해 왔습니다.

그분은 길갈에서 올라오셨습니다. 길갈은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처음 진을 친 곳입니다. 거기서 그들은 할례를 받아 언약의 표를 회복했고, 유월절을 지켰으며, 만나가 그쳤고, 여호수아는 칼을 빼어 든 “여호와의 군대 장관”을 만났습니다(수 5:13–15). 은혜와 순종이 가장 뜨거웠던 출발점입니다. 하나님은 그 첫 사랑의 자리에서 올라오셔서, 지금 그들이 서 있는 자리를 보여 주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먼저 당신이 하신 일을 말씀하십니다. 애굽에서 나오게 하셨고, 인도하셨고, 맹세한 땅으로 이끌어 오셨습니다. 그리고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세운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 하나님은 결코 언약을 깨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무너진 것은 하나님이 약속을 어기셔서가 아니었습니다. 사사기 전체가 이 사실 위에 서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끝없이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언약을 버리지 않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여호와의 사자 말아크 YHWH — 사사기에서 여기와 5:23, 6:11–24(기드온), 13:3–23(마노아 부부)에 나옵니다. 마노아가 이름을 묻자 그분은 “내 이름은 기묘니라”(13:18)고 하시는데, 이사야 9:6에서 오실 메시아의 이름이 “기묘자”입니다.
  • 보김 — 위치가 분명하지 않습니다. 70인역은 “보김과 벧엘에”라고 읽습니다. 벧엘 근처 ‘알론바굿’(곡하는 상수리나무, 창 35:8)과 연결하는 견해가 있습니다. 4–5절에서 백성이 울었기 때문에 이 이름이 붙었습니다.
  • 길갈 — 수 4:19–20, 5:9 “내가 오늘날 애굽의 수치를 너희에게서 굴러가게 하였다 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오늘까지 길갈이라 하느니라”(‘굴리다’ 갈랄).
함께 읽을 말씀
  • 출 3:2-6여호와의 사자가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그에게 나타나시니라…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이니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니라
  • 수 5:13-15나는 여호와의 군대 장관으로 이제 왔느니라…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네가 선 곳은 거룩하니라
  • 창 17:7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 딤후 2:13우리는 미쁨이 없을찌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하실 수 없으시리라
  • 계 2:4-5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2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 너희가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너희는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며 그들의 단을 헐라 하였거늘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직역 “그리고 너희는 이 땅의 주민과 언약을 맺지 말고, 그들의 제단들을 헐라. 그런데 너희는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다. 너희가 한 이것이 무엇이냐?”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셨습니다. 첫째, “이 땅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둘째, “그들의 단을 헐라.” 하나는 사람과의 관계, 하나는 신과의 관계입니다. 가나안 사람과 조약을 맺으면 그들이 땅에 남고, 그들이 남으면 그들의 제단도 남습니다. 그리고 그 제단이 결국 이스라엘을 끌어당깁니다.

그런데 1장에서 보았듯 이스라엘은 정확히 그 반대로 했습니다. 가나안 사람을 남겨 두고 노역을 시키며 공존했습니다. 그리고 제단을 헐었다는 이야기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오히려 6장에서 기드온의 아버지 집 뜰에 바알의 단이 서 있습니다. 하나님의 판결은 단순합니다. “너희가 내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도다.” 철병거도, 힘이 없었다는 것도 진짜 이유가 아니었습니다. 듣지 않은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그리함은 어찜이뇨.” 원문은 ‘너희가 한 이것이 무엇이냐’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먹은 하와에게 하나님이 하신 질문과 똑같습니다(창 3:13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하나님은 몰라서 물으시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기가 한 일을 바라보게 하시려고 물으십니다. 이 질문은 정죄이면서 동시에 돌아오라는 부름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언약을 세우다 카라트 베리트 — 직역하면 ‘언약을 자르다’. 짐승을 둘로 쪼개고 그 사이로 지나가며 ‘약속을 어기면 나도 이렇게 되리라’고 맹세하던 고대 의식에서 왔습니다(창 15:9–18, 렘 34:18).
  • 명령의 출처 — 출 23:32–33 “너는 그들과 그들의 신과 언약하지 말라”, 34:12–13 “그들의 단들을 헐고 주상을 깨뜨리고 아세라 상을 찍을지어다”, 신 7:2–5.
  • 기브온과의 조약 — 수 9장에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묻지 않고 기브온 사람과 언약을 맺었습니다. 1장의 실패는 그때부터 이미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34:12-13너는 스스로 삼가 네가 들어가는 땅의 거민과 언약을 세우지 말라 그들이 너희 중에 올무가 될까 하노라 너희는 도리어 그들의 단들을 헐고
  • 신 7:2-5그들과 무슨 언약도 말 것이요… 그들의 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목상을 찍으며 조각한 우상들을 불사를 것이니라
  • 창 3:13여호와 하나님이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이렇게 하였느냐
  • 삼상 15:22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수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3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되고 그들의 신들이 올무가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또 말하기를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가시가 될 것이며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리라 하였노라

직역 “그래서 나도 말하였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않겠다. 그들이 너희 옆구리에 있을 것이고, 그들의 신들이 너희에게 덫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놀라울 만큼 조용합니다. 불을 내리시거나 땅을 갈라지게 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을 너희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않기로 선택했으니, 하나님도 쫓아내 주지 않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가장 무서운 심판 가운데 하나는, 사람이 고집하는 것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1장은 이것을 세 번이나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내어 버려 두사”(롬 1:24, 26, 28).

그리고 남겨 둔 것은 두 가지가 됩니다. “옆구리에 가시”, 그리고 “올무.” 옆구리의 가시는 늘 따끔거리며 괴롭히는 고통입니다. 가나안 사람은 이스라엘을 계속 괴롭히고 압제할 것입니다. 그러나 더 무서운 것은 올무입니다. 올무는 새가 모르는 사이에 발을 걸게 만드는 덫입니다. 가나안의 신들은 이스라엘을 끌어당겨 꼼짝 못 하게 묶을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사사기 전체에서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가나안 사람과 주변 민족들은 끊임없이 이스라엘을 압제하고(가시), 이스라엘은 계속해서 바알과 아스다롯에게 넘어갑니다(올무). 바깥의 적보다 안의 유혹이 더 위험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옆구리에 레치딤 — 원문은 ‘옆구리들에’만 있고 ‘가시’라는 말은 없습니다. 민 33:55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수 23:13도 비슷)를 기억하고 있던 독자에게는 ‘가시’가 자연스럽게 떠올랐을 것입니다. 일부 학자는 ‘적들(차림)’로 고쳐 읽기도 합니다.
  • 올무 모케쉬 — 출 23:33, 34:12, 신 7:16 “그 신을 섬기지 말라 그것이 네게 올무가 되리라”, 수 23:13. 사사기 8:27에서 기드온이 만든 에봇도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라고 같은 말로 묘사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민 33:55너희가 만일 그 땅 거민을 너희 앞에서 몰아내지 아니하면 너희의 남겨둔 자가 너희의 눈에 가시와 너희의 옆구리에 찌르는 것이 되어
  • 수 23:12-13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너희에게 올무가 되며 덫이 되며 너희 옆구리에 채찍이 되며
  • 롬 1:24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내어 버려 두사
  • 삿 8:27온 이스라엘이 그것을 음란하게 위하므로 그것이 기드온과 그 집에 올무가 되니라
4백성이 소리를 높여 울다

여호와의 사자가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이 말씀을 이르매 백성이 소리를 높여 운지라

직역 여호와의 사자가 이 말씀들을 이스라엘 모든 자손에게 말하였을 때, 백성이 그들의 목소리를 높여 울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백성은 소리를 높여 웁니다. 이것은 좋은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책망 앞에서 마음이 무너지는 것은 은혜의 시작입니다. 그런데 사사기를 끝까지 읽으면 질문이 생깁니다. 이 눈물은 진짜 회개였을까요?

사사기에서 이스라엘은 자주 웁니다. 20:23, 26에서 베냐민과 싸우다 패하고 울며, 21:2에서 베냐민 지파가 끊어질까 봐 “소리를 높여 크게 울며” 웁니다. 그러나 그 눈물들은 삶을 바꾸지 못했습니다. 2:11 바로 다음 문단에서 이스라엘은 바알들을 섬깁니다. 울음은 있었지만 돌이킴은 없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고후 7:10). 눈물의 양보다 중요한 것은 그 눈물이 어디로 향하느냐입니다. 들킨 것이 슬퍼서 우는 눈물이 있고, 하나님을 아프게 한 것이 슬퍼서 우는 눈물이 있습니다. 앞의 눈물은 마르면 끝나지만, 뒤의 눈물은 삶을 바꿉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소리를 높여 울다 — 원문 ‘바이스우… 콜람 바이브쿠’. 사사기에서 21:2에 같은 표현이 나옵니다. 룻 1:9, 14에서 나오미와 며느리들도 “소리를 높여 울었다”. 깊은 슬픔을 나타내는 관용구입니다.
  • 회개의 열매 — 마 3:8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침례 요한은 눈물보다 열매를 요구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7:10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은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루는 것이요 세상 근심은 사망을 이루는 것이니라
  • 욜 2:12-13너희는 이제라도 금식하며 울며 애통하고 마음을 다하여 내게로 돌아오라… 너희는 옷을 찢지 말고 마음을 찢고
  • 삿 21:2백성이 벧엘에 이르러 거기서 저녁까지 하나님 앞에 앉아서
  • 히 12:17저가 그 후에 축복을 기업으로 받으려고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하였느니라
5그곳을 보김이라 하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다

그러므로 그 곳을 이름하여 보김이라 하니라 무리가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더라

직역 그래서 그들이 그곳의 이름을 보김이라 불렀다. 그리고 그들이 거기서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다.

이스라엘은 그곳 이름을 “보김”, 곧 ‘우는 자들’이라고 부르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립니다. 눈물과 제사. 겉으로 보면 완벽한 회개의 장면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지 않은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것은 “그들의 단을 헐라”(2절)였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와의 제단에서 제사는 드렸지만, 가나안의 제단을 헐러 가지는 않았습니다. 제사는 쉽습니다. 짐승 한 마리를 잡으면 됩니다. 그러나 순종은 어렵습니다. 이익을 내려놓고, 편안함을 포기하고, 싸워야 합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삼상 15:22). 보김의 제사는 순종을 대신할 수 없었습니다. 예배는 드렸지만 삶은 바뀌지 않는 신앙, 그것이 사사기 시대의 모습이었고, 어쩌면 오늘 우리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제사 자바흐 — ‘(짐승을) 잡아 바치다’. 화목제나 감사제에 주로 쓰이는 말입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이 택하신 한 곳에서만 제사하라고 했는데(신 12:5–14), 사사 시대에는 여러 곳에서 제사가 드려졌습니다(6:26, 13:19 등). 성막은 실로에 있었습니다(18:31).
  • 보김과 벧엘 — 20:18, 26–27에서 이스라엘은 벧엘에서 울며 금식하고 번제와 화목제를 드립니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언약궤가 거기 있고”. 그래서 보김을 벧엘 근처로 보는 견해가 많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삼상 15:22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 목소리 순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 사 1:11-17너희의 무수한 제물이 내게 무엇이 유익하뇨… 악행을 그치고 선행을 배우며
  • 호 6:6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 마 15:8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눈물만으로는 부족합니다 — 단을 헐러 가야 합니다

보김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울었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 가나안의 제단을 헐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문단에서 바알을 섬깁니다. 감동은 있었지만 변화는 없었습니다.

설교를 듣고 눈물 흘리는 것, 수련회에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 눈물이 내 삶의 ‘가나안 제단’을 헐어 내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내가 헐어야 할 단은 무엇입니까? 예배당에서 흘린 눈물이 월요일의 삶까지 이어지기를 기도합니다.

2:6–10여호수아의 죽음과 장사, 그리고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

6–9절은 여호수아 24:28–31을 거의 그대로 다시 가져온 것입니다. 사사기 기자는 1:1에서 이미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라고 했는데, 여기서 다시 여호수아의 죽음을 이야기합니다. 1장이 지파별 정복 상황을 정리한 것이었다면, 2:6부터는 사사기 본론의 새로운 서론입니다. 한 시대를 정리하고, 다음 시대를 여는 문입니다.

이 단락의 무게는 10절에 있습니다. 여호수아와 그 세대의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 백성은 여호와를 섬겼습니다(7절). 그러나 그들이 죽자,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다른 세대가 일어났습니다(10절). 그 사이에 놓인 8–9절, 여호수아의 죽음과 장사 이야기가 이상할 만큼 자세한 것도 이 대비를 위해서입니다.

6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각기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이스라엘 자손이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직역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자, 이스라엘 자손이 각자 자기 기업으로 가서 그 땅을 차지하려 하였다.

“전에 여호수아가 백성을 보내매.” 『개역한글』은 ‘전에’를 넣어 이 장면이 1장보다 앞선 일임을 알려 줍니다. 여호수아 24장에서 여호수아는 세겜에 온 이스라엘을 모아 언약을 새롭게 하고, “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고 선언한 뒤 백성을 각자의 땅으로 보냈습니다.

“각기 그 기업으로 가서 땅을 차지하였고.” ‘차지하다’는 1장에서 수없이 나온 ‘쫓아내다(야라쉬)’와 같은 동사입니다. 원문은 ‘차지하려고’라는 목적의 뜻입니다. 여호수아는 백성을 땅을 차지하라고 보냈습니다. 그런데 1장에서 우리는 그들이 그 일을 끝까지 하지 못했다는 것을 이미 보았습니다. 같은 동사가 사명과 실패를 함께 보여 줍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기업 나할라 — ‘유산, 물려받은 몫’. 하나님이 주인이시고 이스라엘은 그 땅을 맡아 대대로 이어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땅을 함부로 팔 수 없었습니다(레 25:23, 왕상 21:3 나봇의 포도원).
  • 여호수아서와의 대조 — 수 24:28 “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사사기는 여기에 ‘땅을 차지하려고’를 덧붙여 사명을 강조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수 24:28백성을 보내어 각기 기업으로 돌아가게 하였더라
  • 수 24:15너희 섬길 자를 오늘날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 레 25:23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7여호수아와 큰 일을 본 장로들이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직역 백성은 여호수아의 모든 날 동안, 그리고 여호수아 뒤에 날들을 길게 산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들의 모든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살아 있는 동안, 그리고 여호수아 뒤에 남은 장로들이 살아 있는 동안 여호와를 섬겼습니다. 이 장로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였습니다. 홍해가 갈라지는 것을 보았고, 요단이 멈추는 것을 보았고, 여리고 성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고, 해와 달이 멈추는 것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직접 본 신앙이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위험이 숨어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이 이 사람들의 ‘사는 날 동안’만 이어졌다는 것입니다. 신앙이 한 세대의 경험에 묶여 있었고, 그 세대가 사라지자 신앙도 함께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큰 일을 보았지만,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충분히 들려주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을 미리 아셨습니다. 그래서 요단을 건넌 뒤 열두 돌을 세우게 하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후일에 너희 자손이 그 아비에게 묻기를 이 돌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자손에게 알게 하여 이르기를”(수 4:21–22). 기념비는 세워졌지만, 그 이야기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섬기다 아바드 — ‘일하다, 섬기다, 예배하다’. 11절 “바알들을 섬기며”에도 같은 동사가 쓰여 대조됩니다. 누구를 섬기느냐가 사사기의 질문입니다.
  • 장로들의 날 — 원문은 ‘여호수아 뒤에 날들을 길게 한 장로들’. 여호수아보다 오래 산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 여호수아서와 같은 구절 — 수 24:31 “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일을 아는 자의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더라” 여호수아서는 ‘안다(야다)’, 사사기는 ‘본다(라아)’를 씁니다. 사사기 10절의 ‘알지 못하며’와 대조하려는 듯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수 24:31이스라엘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여호와를 섬겼더라
  • 수 4:6-7, 21-22후일에 너희 자손이 물어 가로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뇨 하거든
  • 신 4:9너는 스스로 삼가며 네 마음을 힘써 지키라 두렵건대 네가 그 목도한 일을 잊어버릴까 하노라… 너는 그 일들을 네 아들들과 네 손자들에게 알게 하라
  • 시 78:4-7우리가 이를 그 자손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여호와의 영예와 그 능력과 기이한 사적을 후대에 전하리로다
8여호와의 종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다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직역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백십 세의 나이로 죽었다.

“여호와의 종.” 이 칭호는 원래 모세에게 붙던 이름이었습니다(신 34:5, 수 1:1). 여호수아는 젊은 시절 “모세의 시종”(수 1:1)이었습니다. 그런데 그의 생애 마지막에 성경은 그를 “여호와의 종”이라 부릅니다. 모세를 섬기던 사람이 마침내 모세처럼 하나님을 섬긴 사람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일백 십세.” 이것은 요셉이 죽은 나이와 똑같습니다(창 50:26). 여호수아는 요셉의 아들 에브라임 지파 사람입니다. 이집트에서 죽은 요셉은 “하나님이 정녕 너희를 권고하시리니 너희는 여기서 내 해골을 메고 올라가겠다”(창 50:25)고 맹세하게 했고, 그 뼈는 출애굽 때 함께 나와 세겜에 묻혔습니다(수 24:32). 요셉의 믿음이 그 후손 여호수아에게서 완성된 것처럼, 같은 나이가 두 사람을 이어 줍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110세는 이상적인 장수의 나이로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사사기에서 지도자가 ‘죽었다’는 말은 언제나 위기의 신호입니다. 옷니엘이 죽자(3:11–12), 에훗이 죽자(4:1), 기드온이 죽자(8:33)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합니다. 여호수아의 죽음은 그 첫 번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여호와의 종 — 구약에서 모세(신 34:5 등 여러 번), 여호수아(수 24:29, 삿 2:8), 다윗(시 18편, 36편 표제)에게 주로 붙는 칭호입니다. 이사야서의 ‘여호와의 종’(사 42, 49, 50, 52–53장)은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 110세 — 고대 이집트 문서에서 110세는 완전한 삶의 상징처럼 쓰였습니다. 요셉(창 50:22, 26)과 여호수아만 성경에서 이 나이로 기록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수 24:29이 일 후에 여호와의 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일백 십세에 죽으매
  • 창 50:26요셉이 일백 십세에 죽으매 그들이 그의 몸에 향 재료를 넣고 애굽에서 입관하였더라
  • 신 34:5이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여호와의 말씀대로 모압 땅에서 죽어
  • 마 25:21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9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다

무리가 그의 기업의 경내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고

직역 그들이 그를 그의 기업의 경계 안,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 산 북쪽의 딤낫 헤레스에 장사하였다.

성경은 여호수아가 묻힌 곳을 이상할 만큼 자세하게 말합니다. 그의 기업의 경내 → 에브라임 산지 → 가아스산 북쪽 → 딤낫 헤레스. 넓은 범위에서 점점 좁혀 들어가, 마치 주소를 적듯 정확한 지점을 짚어 줍니다. 왜 이렇게 자세할까요?

첫째, 약속이 이루어졌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기업의 경내’라는 말이 핵심입니다. 여호수아는 모든 지파가 땅을 다 나누어 받은 뒤에, 맨 마지막으로 자기 몫을 받았습니다(수 19:49–50). 백성을 먼저 챙긴 지도자였습니다. 그리고 그 땅에 묻혔습니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 묻힌다는 것은, 약속이 한 사람의 생애 안에서 끝까지 이루어졌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막벨라 굴을 사서 사라를 묻고(창 23장), 요셉의 뼈가 세겜에 묻힌 것처럼(수 24:32), 성경에서 무덤의 자리는 ‘이 땅이 하나님이 주신 우리 땅’이라는 고백입니다.

둘째, 모세와의 대조입니다. 모세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압 땅에서 죽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신 34:6). 광야 세대의 지도자는 땅 밖에서 묘도 없이 잠들었고, 정복 세대의 지도자는 땅 안에 주소까지 남기며 잠들었습니다.

셋째,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다음 10절과의 대조입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어디에 묻혔는지 이렇게 정확히 알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10절). 지도자의 무덤 주소는 기억했지만, 그가 섬긴 하나님은 잊어버렸습니다. 기념비는 남았는데 신앙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이 자세한 주소는 그 공백을 더 아프게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작은 차이가 하나 있습니다. 여호수아서는 이곳을 ‘딤낫 세라’(남은 몫, 넉넉한 몫)라고 부르는데, 사사기는 ‘딤낫 헤레스’(태양의 몫)라고 부릅니다. 히브리어 자음 순서가 뒤바뀐 이름입니다(ס‑ר‑ח ↔ ח‑ר‑ס). 단순히 같은 곳의 다른 표기일 수도 있지만, 1:35의 ‘헤레스산’(태양의 산), 1:33의 ‘벧세메스’(태양의 집)처럼 가나안의 태양 숭배와 관련된 이름이 이스라엘 땅에 스며들고 있던 시대 분위기를 보여 준다고 읽는 해석도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무덤 이름마저 가나안식으로 불리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딤낫 세라 / 딤낫 헤레스 — 수 19:50, 24:30은 ‘팀나트 세라’, 삿 2:9은 ‘팀나트 헤레스’. 오늘날 세겜 남서쪽의 ‘키르벳 팁나’로 추정합니다. 유대 전통은 여호수아 무덤을 ‘태양’과 연결해, 그가 기브온에서 해를 멈추게 한 사람이었기 때문에(수 10:12–13) 무덤 곁에 해 모양을 새겼다는 이야기를 전하기도 합니다.
  • 가아스산 가아쉬 — ‘흔들리다, 진동하다’. 시 18:7 “이에 땅이 진동하고 산의 터도 요동하였으니”의 ‘진동하다’가 같은 뿌리입니다. 삼하 23:30에 ‘가아스 시냇가’ 사람 힛대가 다윗의 용사로 나옵니다.
  • 기업을 마지막에 받음 — 수 19:49–50 “이스라엘 자손이 그 경계를 따라서 기업의 땅 나누기를 마치고 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되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의 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 요셉의 뼈 — 수 24:32. 여호수아의 장사 기록 바로 뒤에 요셉의 뼈를 세겜에 장사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둘 다 110세에 죽은 에브라임 계열의 두 사람이 약속의 땅에 함께 묻힙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수 19:49-50자기들 중에서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기업을 주었으되 곧 여호와의 명령대로 여호수아의 구한 성읍 에브라임 산지 딤낫 세라를 주매
  • 수 24:30무리가 그를 그의 기업의 경내 딤낫 세라에 장사하였으니 딤낫 세라는 에브라임 산지 가아스산 북이었더라
  • 신 34:6벧브올 맞은편 모압 땅에 있는 골짜기에 장사되었고 오늘까지 그 묘를 아는 자 없으니라
  • 창 23:19-20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라를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 굴에 장사하였더라… 그 밭과 그 속의 굴을 헷 족속이 아브라함 소유 매장지로 정하였더라
  • 히 11:13이 사람들은 다 믿음을 따라 죽었으며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그것들을 멀리서 보고 환영하며
10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직역 그리고 그 온 세대도 그 조상들에게로 모아졌다. 그 뒤에 그들 다음으로 다른 세대가 일어났는데, 그들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고, 그분이 이스라엘을 위해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다.

사사기에서 가장 슬픈 문장입니다.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이것이 사사기 전체 비극의 뿌리입니다. 3장부터 21장까지 이어지는 모든 우상 숭배, 압제, 폭력, 혼란은 결국 이 한 문장에서 시작합니다.

“다른 세대.” 나이가 다른 세대라는 뜻만이 아닙니다. 앞 세대와 신앙이 단절된 세대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부모 세대와 같은 땅에 살고, 같은 성막을 보고,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수도 있습니다. 여호수아의 무덤이 어디 있는지도 알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히브리어 ‘야다’(알다)는 머리로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으로 만나고 경험해서 아는 것입니다. 아담이 하와를 ‘알았다’(창 4:1)고 할 때도 이 말입니다. 그러니 이 세대가 여호와를 몰랐다는 것은, 하나님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없다는 뜻이라기보다 하나님을 직접 만난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부모의 하나님이었지 나의 하나님이 아니었습니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신명기 6장에서 하나님은 분명히 명하셨습니다.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누웠을 때에든지 일어날 때에든지 이 말씀을 강론할 것이며”(신 6:7). 앞 세대는 하나님의 큰 일을 ‘보았지만’(7절), 그것을 다음 세대에게 ‘알게 하지’ 못했습니다. 신앙은 저절로 유전되지 않습니다. 한 세대만 놓쳐도 끊어집니다. 교회는 언제나 ‘다음 세대가 하나님을 아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 원문 ‘조상들에게로 모아졌다(아사프)’. 죽음을 말하는 구약의 표현입니다(창 25:8 아브라함, 49:33 야곱, 민 20:24 아론). 죽은 자가 먼저 간 조상들과 함께한다는 소망이 담긴 말입니다.
  • 알다 야다 — 출 5:2에서 바로는 “여호와가 누구관대…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라고 말했습니다. 사사기의 다른 세대는 바로와 같은 말을 듣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삼상 2:12 엘리의 아들들도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반대로 렘 31:34 새 언약의 약속은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입니다.
  • 한 세대 — 성경에서 ‘세대(도르)’는 대략 40년 안팎을 가리킵니다. 출애굽 세대가 광야에서 40년 만에 사라졌듯, 정복 세대도 한 세대 만에 사라졌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6:6-7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 출 5:2바로가 가로되 여호와가 누구관대 내가 그 말을 듣고 이스라엘을 보내겠느냐 나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니
  • 삼상 2:12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 시 78:5-8열조에게 명하사 저희 자손에게 알게 하라 하셨으니… 그 열조 곧 완고하고 패역하여 그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며 그 심령은 하나님께 충성치 아니한 세대와 같지 않게 하려 하심이로다
  • 요 17:3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 렘 31:34이는 작은 자로부터 큰 자까지 다 나를 앎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기념비는 남았는데, 신앙은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은 여호수아가 어디에 묻혔는지 정확히 알았습니다. 요단 가의 열두 돌도 남아 있었고, 세겜의 언약의 돌도 서 있었습니다(수 24:26). 그런데 다음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 기념비는 신앙을 대신하지 못합니다. 신앙은 돌이 아니라 사람을 통해, 이야기를 통해, 함께 사는 삶을 통해 전해집니다.

오늘 우리 교회와 가정은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남기고 있습니까? 건물, 행사, 전통은 남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우리 아이들이 “부모님의 하나님”이 아니라 “나의 하나님”을 만나도록, 우리가 경험한 하나님을 날마다 이야기해 주어야 합니다. 신앙은 한 세대만 놓쳐도 끊어집니다.

2:11–19죄, 심판, 부르짖음, 구원, 그리고 더 깊은 타락 — 사사기 전체의 설계도

이 단락은 사사기의 ‘목차’이자 ‘해설서’입니다. 3장부터 16장까지 펼쳐질 모든 사사 이야기는 이 단락이 그려 준 틀 안에서 움직입니다. 읽는 사람이 각 사사 이야기를 따로따로 영웅담으로 읽지 않도록, 기자는 먼저 큰 그림을 보여 줍니다.

그 큰 그림은 다섯 단계로 돌아갑니다. ①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함(11–13절) ② 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대적의 손에 넘기심(14–15절) ③ 이스라엘이 괴로워 부르짖음(18절) ④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워 구원하심(16, 18절) ⑤ 사사가 죽으면 더 깊이 타락함(17, 19절). 그리고 바퀴가 다시 돌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매번 조금씩 더 아래로 내려갑니다.

11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직역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눈에 악한 것을 행하였다. 그들은 바알들을 섬겼다.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이 말은 사사기에서 일곱 번 되풀이되는 후렴입니다(2:11, 3:7, 3:12, 4:1, 6:1, 10:6, 13:1). 새로운 사사 이야기가 시작될 때마다 이 말이 문을 엽니다. ‘목전’은 ‘눈앞’이라는 뜻입니다. 무엇이 악한지를 정하는 기준은 사람의 눈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입니다.

사사기의 마지막 문장과 비교해 보십시오.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21:25). ‘자기 소견’은 원문으로 ‘자기 눈에’입니다. 사사기 전체가 이 두 눈 사이의 싸움입니다. 하나님의 눈에 악한 것을 이스라엘은 자기 눈에 옳다고 여겼습니다. 오늘날 “내가 좋으면 그만”, “내 기준에서는 괜찮아”라고 말하는 시대와 똑같습니다.

그리고 그 악의 핵심은 “바알들을 섬기며”입니다. 사사기에서 악은 무엇보다 하나님 아닌 것을 섬기는 것입니다. 도덕적 타락, 폭력, 혼란은 모두 그 뒤에 따라옵니다. 하나님을 바꾸면 결국 모든 것이 바뀝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목전 — 원문 ‘베에네 YHWH’, 직역하면 ‘여호와의 두 눈에’. 『개역개정』도 ‘여호와의 목전에’. 열왕기에서도 왕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쓰입니다(“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 바알들 베알림 — 복수형. 바알은 ‘주인, 남편’이라는 뜻의 일반 명사이기도 해서, 지역마다 ‘브올의 바알’(민 25:3), ‘바알브릿’(언약의 바알, 삿 8:33), ‘바알세붑’(왕하 1:2) 등 여러 바알이 있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3:7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 목전에 악을 행하여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리고 바알들과 아세라들을 섬긴지라
  • 삿 21:25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였더라
  • 신 12:8우리가 오늘날 여기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서는 하지 말찌니라
  • 잠 14:12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12애굽에서 인도하신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좇다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 곧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아 그들에게 절하여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직역 그들은 그들을 애굽 땅에서 나오게 하신 그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를 버렸다. 그리고 다른 신들, 곧 그들 주변 민족들의 신들을 따라가서 그들에게 절하였다. 그래서 그들이 여호와를 노엽게 하였다.

12절은 11절의 ‘악’이 무엇인지 자세히 풀어 줍니다. 먼저 그들이 버린 분이 누구인지 말합니다.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여 내신 그 열조의 하나님 여호와.” 그분은 낯선 신이 아니었습니다. 노예였던 그들을 구해 내신 분, 조상 때부터 함께하신 분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은인을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이 따라간 신은 “그 사방에 있는 백성의 신들”이었습니다. 진리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주변을 따라간 것입니다. 가나안 사람, 모압 사람, 암몬 사람, 시돈 사람이 섬기는 신을 보며, 이스라엘도 그것을 따라 했습니다. 이웃이 그렇게 사니까, 그것이 당연해 보였습니다. 1장에서 쫓아내지 않고 함께 산 결과가 바로 이것입니다.

“여호와를 진노하시게 하였으되.” 하나님의 진노는 변덕스러운 화가 아니라, 사랑하는 백성에게 배신당한 아픔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을 ‘질투하시는 하나님’(출 20:5)이라고 말합니다.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기 때문에 아내가 다른 사람을 따라갈 때 질투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그들이 우상을 따를 때 진노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버리다 아자브 — ‘떠나다, 버리다, 내버려 두다’. 렘 2:13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 좇아 — 원문 ‘~의 뒤를 따라 걸었다’. 신 6:14 “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와 거의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금하신 바로 그 말을 그대로 행했습니다.
  • 진노하시게 카아스 — ‘노엽게 하다, 슬프게 하다’. 신 32:16, 21 “그들이 다른 신으로 그의 질투를 일으키며 가증한 것으로 그의 진노를 격발하였도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6:14-15너희는 다른 신들 곧 네 사면에 있는 백성의 신들을 좇지 말라 너희 중에 계신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신즉
  • 렘 2:11-13어느 나라가 그 신을 신 아닌 것과 바꾼 일이 있느냐 그러나 나의 백성은 그 영광을 무익한 것과 바꾸었도다
  • 출 20:2-5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
  • 롬 1:23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느니라
13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기다

곧 그들이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을 섬겼으므로

직역 그들은 여호와를 버리고 바알과 아스다롯들을 섬겼다.

13절은 그 다른 신들의 이름을 밝힙니다. 바알과 아스다롯. 바알은 가나안의 폭풍과 비의 신이었습니다. 비가 오면 농사가 잘되고, 농사가 잘되면 먹고 살 수 있었습니다. 아스다롯은 바알의 짝으로 여겨진 여신으로, 다산과 사랑과 성(性)을 다스린다고 믿어졌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바알과 아스다롯이 결합해야 땅이 비옥해지고 가축과 사람이 번성한다고 믿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왜 이 신들에게 끌렸는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광야에서 유목 생활을 하다가 처음으로 농사를 짓게 되었습니다. 가나안 사람들은 “이 땅에서 농사가 잘되려면 바알을 섬겨야 한다”고 말했을 것입니다. 바알 숭배는 종교이면서 동시에 먹고사는 문제였습니다. 그리고 그 예배에는 성적인 의식이 포함되어 있어 사람의 욕망을 자극했습니다. 풍요와 쾌락, 이것이 바알과 아스다롯의 약속이었습니다.

오늘날 바알과 아스다롯은 이름만 바뀌어 여전히 있습니다. 돈이 있어야 살 수 있다는 믿음, 성공하려면 무엇이든 해야 한다는 믿음, 쾌락이 행복이라는 믿음. 하나님 대신 이것들을 의지하고 섬기는 것이 오늘의 바알 숭배입니다. 호세아 2:8에서 하나님은 슬퍼하십니다. “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원어 · 번역 노트
  • 바알 — 우가릿 문서(기원전 14–13세기)에 바알 신화가 자세히 나옵니다. 바알은 바다의 신 얌과 죽음의 신 모트를 이기고 왕이 되며, 그가 죽으면 땅이 말라붙고 살아나면 비가 내린다고 했습니다.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기 전 3년 반 동안 비가 오지 않은 것(왕상 17–18장)은 ‘비의 신’ 바알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 아스다롯 아쉬타로트 — 복수형. 메소포타미아의 이쉬타르, 페니키아의 아스타르테와 같은 여신. 시돈 사람의 여신(왕상 11:5, 33). 솔로몬도 노년에 이 여신을 따랐습니다. 히브리어 본문은 이 이름의 모음을 ‘보셰트’(수치)의 모음으로 바꾸어 읽게 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 아세라 — 3:7에서는 ‘아세라들’이 나옵니다. 아세라는 가나안의 어머니 여신으로, 나무 기둥이나 나무로 그 상을 세웠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10:6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과 아스다롯과… 섬기고 여호와를 버려 그를 섬기지 아니하므로
  • 삼상 7:3-4너희가 전심으로 여호와께 돌아오려거든 이방 신들과 아스다롯을 너희 중에서 제하고… 이스라엘 자손이 바알들과 아스다롯을 제하고 여호와만 섬기니라
  • 호 2:8곡식과 새 포도주와 기름은 내가 저에게 준 것이요 저희가 바알을 위하여 쓴 은과 금도 내가 저에게 더하여 준 것이어늘 저가 알지 못하도다
  • 골 3:5탐심은 우상 숭배니라
  • 마 6:24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14여호와께서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이시고 대적의 손에 파시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그들로 노략을 당케 하시며 또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직역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불타올랐다. 그분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 주셨고, 그들이 그들을 약탈하였다. 그분이 그들을 주변 원수들의 손에 파셨다. 그들은 더 이상 원수들 앞에 설 수 없었다.

이제 심판이 옵니다. “여호와께서… 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여.” 이 ‘붙이다’는 1:2, 4에서 하나님이 가나안 사람을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던’ 바로 그 말입니다. 같은 하나님, 같은 말인데 방향이 뒤집혔습니다. 순종할 때는 원수를 이스라엘 손에 붙이셨고, 불순종할 때는 이스라엘을 원수 손에 붙이십니다. 1:7의 아도니 베섹이 고백한 원리, “하나님이 나의 행한대로 내게 갚으심이로다”가 이제 이스라엘에게 적용됩니다.

“사방 모든 대적의 손에 파시매.” ‘팔다’는 종을 팔아넘길 때 쓰는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종이었다가 하나님이 값을 치르고 사셔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종으로 파십니다. 그들이 다른 주인(바알)을 택했으니, 그 주인의 세계, 곧 종살이의 세계로 돌려보내신 것입니다. 사사기에서 이 ‘파시매’는 3:8, 4:2, 10:7에서 되풀이됩니다.

그 결과 “그들이 다시는 대적을 당치 못하였으며.” 여호수아 시대에 하나님은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수 1:5)라고 약속하셨습니다. 그 약속이 뒤집혔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실 때는 아무도 이스라엘을 당하지 못했지만, 하나님이 떠나시자 이스라엘이 아무도 당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진노하사 — 원문 ‘바이하르 아프 YHWH’, ‘여호와의 코가 뜨거워졌다’. 화가 나면 콧김이 거세지는 모습을 그린 히브리식 표현입니다.
  • 파시매 마카르 — 신 32:30 “그들의 반석이 그들을 팔지 아니하였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어주지 아니하셨더면 어찌 한 사람이 천을 쫓으며 두 사람이 만을 도망케 하였을까”. 사 50:1 “너희는 너희의 죄악을 인하여 팔렸고”.
  • 노략하는 자 쇼심 — 6:3–6 미디안 사람들이 해마다 올라와 이스라엘의 소산을 멸한 것이 대표적인 예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3:8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 수 1:5너의 평생에 너를 능히 당할 자 없으리니
  • 레 26:17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 신 28:25여호와께서 너로 네 대적 앞에 패하게 하시리니
15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재앙을 내리시매 괴로움이 심하였다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곧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직역 그들이 나가는 모든 곳에서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해가 되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대로,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였다. 그래서 그들은 몹시 괴로웠다.

“그들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의 손이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매.” 출애굽 때 ‘여호와의 손’은 이스라엘을 위해 애굽을 쳤습니다(출 9:3). 그 손이 이제 이스라엘을 향합니다. 하나님의 손은 같은 손인데,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느냐에 따라 구원의 손이 되기도 하고 심판의 손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데 중요한 말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것과 같아서.” 이 재앙은 갑작스러운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이미 모세를 통해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레위기 26장과 신명기 28장은 순종하면 받을 복과 불순종하면 받을 저주를 자세히 기록합니다. 하나님은 언약에 신실하십니다. 복을 약속하신 대로 주시고, 경고하신 대로 심판하십니다. 1절에서 “내가 언약을 영원히 어기지 아니하리니”라고 하신 그 신실함이, 여기서는 심판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의 괴로움이 심하였더라.” ‘괴롭다’는 원문으로 ‘좁아지다’입니다. 사방이 막혀 숨 쉴 공간도 없는 상태입니다. 그런데 이 괴로움이 끝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 좁아진 자리에서 이스라엘이 부르짖기를 기다리십니다. 시편 118:5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고통(좁은 곳)에서 부르짖으면 하나님은 넓은 곳으로 이끄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여호와의 손 — 출 9:3 “여호와의 손이 들에 있는 네 생축… 에게 더하리니”, 신 2:15 “여호와께서 손으로 그들을 치사”, 삼상 5:6, 9 블레셋 사람들에게.
  • 괴로움 차라르 — ‘좁다, 압박받다’. 명사 ‘차라’는 ‘환난, 고통’. 시 18:6 “내가 환난에서 여호와께 아뢰며”, 118:5 “고통 중에”.
함께 읽을 말씀
  • 신 28:15, 25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고 네게 미칠 것이니
  • 레 26:14-17그러나 너희가 내게 청종치 아니하여… 너희가 너희 대적에게 패할 것이요 너희를 미워하는 자가 너희를 다스릴 것이며
  • 시 118:5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광활한 곳에 세우셨도다
  • 히 12:6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의 받으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니라
16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건져내게 하시다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노략하는 자의 손에서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직역 그러자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일으키셨다. 그들이 그들을 약탈자들의 손에서 구원하였다.

15절까지 읽으면 이스라엘은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16절은 놀라운 말로 시작합니다. “여호와께서 사사를 세우사.” 이스라엘이 버린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원수에게 파신 하나님이, 다시 구원자를 일으키십니다. 이것이 사사기의 은혜입니다. 심판이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이 아닙니다.

‘사사(士師)’는 원문 ‘쇼페트’를 옮긴 한자어입니다. 쇼페트는 ‘재판하다’라는 동사에서 왔지만, 사사기의 사사들은 주로 법정에 앉아 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군사적 구원자였습니다. 하나님이 특별한 때에 특별한 사람을 일으키셔서, 원수에게서 백성을 건지고, 그 뒤에 백성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왕도 아니고 세습도 되지 않았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부르실 때 일어나는 지도자였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사가 스스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신” 것이라는 점입니다. 옷니엘도, 에훗도, 기드온도, 입다도, 삼손도 모두 하나님이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영웅적인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왼손잡이(에훗), 겁 많은 농부(기드온), 기생의 아들(입다), 정욕에 약한 나실인(삼손). 하나님은 흠 많은 사람을 들어 구원을 이루십니다. 사사기의 진짜 주인공은 사사가 아니라 사사를 세우시는 하나님입니다.

“건져내게.” 히브리어 ‘야샤’(구원하다)입니다. 여호수아(예호슈아)의 이름이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이고, 예수님의 이름도 같습니다. 사사들은 모두 더 큰 구원자를 미리 보여 주는 그림자였습니다. 그리고 결국 하나님은 다시 넘어지지 않을, 죽어도 다시 사시는 영원한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사사 쇼페트 — 동사 ‘샤파트’는 ‘재판하다, 다스리다, 바로잡다’. 우가릿과 페니키아에도 같은 직함이 있었고, 카르타고의 최고 행정관을 로마인들은 ‘수페테스’라고 불렀습니다. 한자 ‘사사(士師)’는 ‘선비의 스승’이라는 뜻으로 중국 고대의 재판관 직함에서 빌려 온 말입니다.
  • 대사사와 소사사 — 학자들은 이야기가 길게 나오는 사사(옷니엘, 에훗, 드보라·바락, 기드온, 입다, 삼손)를 ‘대사사’, 짧게 기록된 사사(삼갈, 돌라, 야일, 입산, 엘론, 압돈)를 ‘소사사’라 부르기도 합니다. 합하면 열두 명(드보라를 넣고 바락을 빼면)이 됩니다.
  • 세우사 쿰 히필형 — ‘일으키다’. 3:9, 15에서 “여호와께서… 한 구원자를 세우시니”로 되풀이됩니다. 신 18:15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의 중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도 같은 동사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3:9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워 구원하게 하시니
  • 느 9:27환난을 당하여 주께 부르짖을 때에 주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크게 긍휼을 발하사 구원자들을 주어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거늘
  • 행 13:20그 후에 선지자 사무엘 때까지 사사를 주셨더니
  • 고전 1:27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 마 1:21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17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이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돌이켜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그들에게 절하고 여호와의 명령을 순종하던 그 열조의 행한 길을 속히 치우쳐 떠나서 그와 같이 행치 아니하였더라

직역 그러나 그들은 그들의 사사들에게도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은 다른 신들을 따라 음행하였고 그들에게 절하였다. 여호와의 명령에 순종하며 그들의 조상들이 걸어간 길에서 빨리 떠났다.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셔서 구원하셨는데, 이스라엘은 “그 사사도 청종치 아니하고.” 구원을 받았으면서도 마음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2절에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지 않았던 백성은, 하나님이 보내신 사사의 말도 청종하지 않았습니다.

“다른 신들을 음란하듯 좇아.” 성경은 우상 숭배를 자주 간음에 빗댑니다.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언약은 결혼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이스라엘은 아내였습니다(사 54:5, 렘 3:14). 그러니 다른 신을 따르는 것은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따라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바알과 아스다롯 숭배에는 성적인 의식이 포함되어 있었기에, 이 말은 비유이면서 동시에 사실이기도 했습니다. 호세아서 전체가 이 아픔을 그립니다.

“속히 치우쳐 떠나서.” ‘속히’라는 말이 아픕니다.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은 지 40일도 되지 않아 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출 32:8)라고 하셨습니다. 같은 말입니다. 사람의 마음은 은혜를 그렇게 빨리 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음란하다 자나 — ‘음행하다, 창녀처럼 행하다’. 출 34:15–16 “그들이 모든 신을 음란히 섬기며… 네 아들로 그들의 신들을 음란히 섬기게 할까 함이니라”. 사사기에서 8:27, 33에도 나옵니다.
  • 속히 떠나다 — 출 32:8, 신 9:12, 16 “급속히 여호와의 명하신 도를 떠났기로”.
함께 읽을 말씀
  • 출 32:8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 호 1:2여호와를 떠나 크게 행음함이니라
  • 렘 3:20이스라엘 족속아 마치 아내가 그 남편을 속이고 떠남 같이 너희가 정녕히 나를 속였느니라
  • 약 4:4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18사사와 함께 하셔서 구원하셨으니 — 부르짖음에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사사를 세우실 때에는 그 사사와 함께 하셨고 그 사사의 사는 날 동안에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셨으니 이는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직역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해 사사들을 일으키실 때마다, 여호와께서 그 사사와 함께 계셨고, 그 사사의 모든 날 동안 그들을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셨다. 그들을 짓누르고 괴롭히는 자들 때문에 그들이 신음하는 것을 보고 여호와께서 불쌍히 여기셨기 때문이다.

18절은 사사기의 은혜가 어디서 오는지 보여 줍니다. 하나님이 사사를 세우시는 이유는 이스라엘이 회개해서가 아닙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십시오. “그들이 대적에게 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하나님이 움직이신 이유는 그들의 회개가 아니라 그들의 신음이었습니다.

‘슬피 부르짖음’으로 옮긴 히브리어 ‘네아카’는 출애굽기 2:24에서 애굽의 이스라엘이 고된 노동으로 “탄식”할 때 쓰인 말과 같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그때 이스라엘은 회개한 것이 아니라 그냥 아파서 신음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신음을 들으시고 모세를 보내셨습니다. 사사기에서도 똑같습니다. 하나님은 고통 속에 있는 백성의 신음 소리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십니다.

“뜻을 돌이키셨음이어늘.” 원문 ‘나함’은 ‘불쌍히 여기다, 마음이 아프다, 위로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셨다는 것은 변덕을 부리셨다는 뜻이 아니라, 백성의 고통 앞에서 긍휼이 심판을 이겼다는 뜻입니다. 호세아 11:8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이것이 사사기에 흐르는 은혜입니다. 이스라엘은 받을 자격이 전혀 없었습니다. 회개도 제대로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은 그들의 아픔 때문에 다시 구원자를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구원도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원어 · 번역 노트
  • 신음 네아카 — 출 2:24, 6: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을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을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사사기 2:18의 신음은 출애굽의 신음을 떠올리게 합니다.
  • 압박 라하츠 — 1:34 아모리 사람이 단 자손을 ‘쫓아들였다’, 4:3 야빈이 ‘학대하였다’, 출 3:9 애굽 사람이 ‘괴롭게 하는 학대’.
  • 뜻을 돌이키다 나함 — 창 6:6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출 32:14 “여호와께서 뜻을 돌이키사”, 욘 3:10. 하나님의 본성은 변하지 않으시지만(민 23:19, 삼상 15:29), 사람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그분의 긍휼에 따라 움직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출 2:23-25이스라엘 자손은 고역으로 인하여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 호 11:8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아서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
  • 시 106:43-45여호와께서 여러 번 저희를 건지시나 저희가 꾀로 거역하며… 저희의 부르짖음을 들으실 때에 그 고통을 권고하시며 저희를 위하여 그 언약을 기억하시고
  • 애 3:22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 롬 5:8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19사사가 죽은 후에는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그들이 돌이켜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겨 그들에게 절하고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직역 그러나 그 사사가 죽으면, 그들은 돌아서서 그들의 조상들보다 더 부패하였다. 다른 신들을 따라가 그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절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행위와 그들의 완고한 길에서 아무것도 떨어뜨리지 않았다.

사사가 살아 있는 동안은 평안했습니다. 그러나 “그 사사가 죽은 후에는” 다시 바퀴가 돕니다. 이스라엘의 신앙은 하나님께 뿌리내린 것이 아니라 사사 한 사람에게 기대어 있었습니다. 지도자가 사라지면 신앙도 사라졌습니다. 7–10절에서 여호수아 세대가 죽자 신앙이 끊겼던 것과 똑같은 일이 사사가 바뀔 때마다 되풀이됩니다.

그런데 가장 무서운 말은 이것입니다. “그 열조보다 더욱 패괴하여.” 사사기의 순환은 같은 자리를 맴도는 원이 아닙니다. 매번 더 아래로 내려가는 나선입니다. 실제로 사사기를 읽어 보면 처음 사사 옷니엘은 흠이 없었지만, 기드온은 에봇을 만들어 우상이 되게 했고, 입다는 경솔한 서원으로 딸을 바쳤으며, 삼손은 이방 여인과 정욕에 빠져 살았습니다. 백성만 타락한 것이 아니라 사사들도 점점 흠이 많아집니다. 그리고 17–21장에 이르면 사사조차 없이 우상 숭배와 성폭력과 내전이 이어집니다.

“그 행위와 패역한 길을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원문은 ‘그들의 행위와 완고한 길에서 아무것도 떨어뜨리지 않았다’입니다. 하나도 버리지 않고 고스란히 붙들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스스로 죄의 바퀴에서 내려오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사기는 결국 사사보다 더 큰 구원자, 죽지 않는 왕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패괴 샤하트 — ‘썩다, 망가지다, 부패하다’. 창 6:11–12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 노아 홍수 이전의 세상을 묘사한 말과 같습니다.
  • 패역한 길 — 원문 ‘다르캄 학카샤’, ‘그들의 단단한(완고한) 길’. ‘목이 곧은’(출 32:9)과 비슷한 뜻입니다.
  • 그치지 아니하였으므로 — 원문 ‘로 히필루’, ‘떨어뜨리지 않았다’. 손에 쥔 것을 하나도 놓지 않았다는 그림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6:11-12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 삿 8:33기드온이 이미 죽으매 이스라엘 자손이 돌이켜 바알들을 음란하게 위하고 또 바알브릿을 자기들의 신으로 삼고
  • 렘 7:24-26그들이 청종치 아니하며 귀를 기울이지도 아니하고… 열조보다 악을 더 행하였느니라
  • 딤후 3:13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 히 7:23-25저희 제사장 된 자의 수효가 많은 것은 죽음을 인하여 항상 있지 못함이로되 예수는 영원히 계시므로… 항상 살아서 저희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은 신음 소리에도 귀를 기울이십니다

사사기의 바퀴는 우리를 두 번 놀라게 합니다. 한 번은 사람의 끈질긴 배신 때문에 놀랍니다. 구원을 받고도 “속히” 떠나고, 지도자가 죽으면 “더욱” 부패합니다. 또 한 번은 하나님의 끈질긴 긍휼 때문에 놀랍니다. 회개도 제대로 하지 않은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하나님은 또다시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혹시 지금 나도 같은 바퀴를 돌고 있지는 않습니까? 넘어지고, 괴로워하고, 부르짖고, 회복되었다가, 다시 같은 자리에서 넘어지는. 그 바퀴에서 내려오는 길은 더 좋은 사사를 기다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영원히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내 삶을 온전히 묶는 데 있습니다. 사사는 죽었지만, 그분은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2:20–23쫓아내지 아니하리니 —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남겨 두신 민족들

2장의 마지막 단락은 다시 1장의 질문으로 돌아옵니다. 왜 가나안 사람들이 땅에 남아 있는가? 1장에서는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못했다’고 했고, 2:3에서는 하나님이 쫓아내지 ‘않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제 20–23절은 그 이유를 한 걸음 더 깊이 설명합니다.

남겨 두신 민족들은 심판의 도구이면서 동시에 시험의 도구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통해 이스라엘이 정말 하나님의 길을 지킬지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3:1–6은 이 주제를 이어받아, 남겨 둔 민족의 목록과 또 다른 이유(전쟁을 가르치려 하심)를 덧붙입니다.

20이 백성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여 이르시되 이 백성이 내가 그 열조와 세운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직역 여호와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불타올랐다. 그분이 말씀하셨다. “이 민족이 내가 그들의 조상들에게 명령한 내 언약을 넘어서고 내 목소리를 듣지 않았으니,”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이 백성”이라고 부르십니다. 원문은 ‘이 고이’, 곧 ‘이 민족’입니다. 구약에서 ‘고이’는 주로 이방 민족을 가리키는 말이고, 하나님의 백성은 보통 ‘암’(백성)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이 고이’라고 부르신 것은, 그들이 이방 민족처럼 되어 버렸다는 탄식입니다. 마치 아버지가 집 나간 아들을 ‘내 아들’이라 하지 않고 ‘저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판결의 근거는 2절과 똑같습니다. “언약을 어기고 나의 목소리를 청종치 아니하였은즉.” 2장은 ‘청종치 아니하였다’로 시작해서(2절) ‘청종치 아니하였다’로 끝납니다(20절). 이스라엘의 문제는 처음부터 끝까지 듣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고이 — 출 19:6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처럼 이스라엘에게도 쓰일 수 있지만, 사사기의 문맥에서는 차가운 거리감을 줍니다. 사 1:4 “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 어기다 아바르 — ‘건너다, 넘어가다’. 정해진 경계선을 넘어간 것. 수 7:11, 15 아간의 범죄, 23:16.
함께 읽을 말씀
  • 수 23:16만일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을 범하고… 여호와의 진노가 너희에게 미치리니
  • 사 1:4슬프다 범죄한 나라요 허물 진 백성이요… 여호와를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만홀히 여겨
  • 렘 11:10그들이 내 말 듣기를 거절한 자기들의 선조의 죄악에 돌아가서 다른 신들을 좇아 섬겼은즉
21여호수아가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을 다시는 그들의 앞에서 하나도 쫓아내지 아니하리니

직역 나도 여호수아가 죽을 때 남겨 둔 민족들 가운데 한 사람도 그들 앞에서 더 이상 몰아내지 않겠다.

“나도.” 이 짧은 말에 무게가 있습니다. 이스라엘이 쫓아내지 않았으니, ‘나도’ 쫓아내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선택을 존중하시면서, 그 선택의 결과를 그대로 받게 하십니다.

“여호수아가 죽을 때에 남겨둔 열국.” 여호수아는 늙었을 때 아직 정복하지 못한 땅이 많이 남아 있었습니다(수 13:1). 그런데 그것은 실패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가나안을 “조금씩” 쫓아내시겠다고 하셨습니다(출 23:29–30, 신 7:22). 한꺼번에 쫓아내면 땅이 황폐해지고 들짐승이 번성하기 때문입니다. 남은 땅은 다음 세대가 믿음으로 차지해야 할 몫이었습니다. 그런데 다음 세대는 그 일을 하지 않았고, 하나님은 이제 그 남은 민족들을 이스라엘을 위해 쫓아내 주지 않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조금씩 — 출 23:29–30 “그 땅이 황무하게 되어 들짐승이 번성하여 너희를 해할까 하여 일년 안에는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지 아니하고 네가 번성하여 그 땅을 기업으로 얻을 때까지 내가 그들을 네 앞에서 조금씩 쫓아내리라”.
  • 여호수아의 경고 — 수 23:12–13 “너희가 만일 퇴보하여 너희 중에 빠져 남아 있는 이 민족들을 친근히 하여…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여호수아가 경고한 그대로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수 13:1여호수아가 나이 많아 늙으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나이 많아 늙었고 얻을 땅의 남은 것은 매우 많도다
  • 수 23:12-13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너희 목전에서 다시는 쫓아내지 아니하시리니
  • 신 7:2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민족들을 네 앞에서 점점 쫓아내시리니
22이스라엘이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시험하려 함이라

이는 이스라엘이 그 열조의 지킨것 같이 나 여호와의 도를 지켜 행하나 아니하나 그들로 시험하려 함이라 하시니라

직역 “이는 그들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는 것이다. 그들의 조상들이 지킨 것처럼 그들이 여호와의 길을 지켜 그 안에서 걷는지, 아닌지.”

남겨 두신 민족들은 시험의 도구가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남겨 두신 것은 이스라엘을 괴롭히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여호와의 길을 지키는지 드러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여기서 ‘시험하다’(나사)는 사탄이 사람을 넘어뜨리려고 하는 유혹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이삭을 바치라고 하셨을 때(창 22:1), 광야에서 만나를 주시며 이스라엘을 시험하셨을 때(출 16:4, 신 8:2) 쓰인 말입니다. 신명기 8:2은 그 목적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시험은 마음속에 숨은 것을 드러내고, 그것을 통해 믿음을 단련하는 것입니다.

이 시험은 오늘 우리에게도 같습니다. 하나님은 왜 내 삶에서 어떤 어려움을 즉시 없애 주지 않으실까요? 왜 유혹이 여전히 곁에 있게 하실까요? 그것을 통해 내가 정말 하나님의 길을 걷는지, 아니면 주변을 따라 걷는지가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야고보는 말합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것에 옳다 인정하심을 받은 후에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약 1:12).

원어 · 번역 노트
  • 시험하다 나사 — 창 22:1, 출 15:25, 16:4, 20:20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8:2, 16, 13:3. 3:1, 4에서도 같은 말로 이어집니다.
  • 도 데레크 — ‘길’. 17절 “열조의 행한 길”, 19절 “패역한 길”. 2장은 세 가지 길을 나란히 놓습니다. 열조가 걸은 순종의 길, 이스라엘이 고집한 완고한 길, 그리고 하나님의 길.
함께 읽을 말씀
  • 신 8:2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알려 하심이라
  • 삿 3:1, 4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이스라엘을 시험하사 여호와께서 모세로 그들의 열조에게 명하신 명령들을 청종하나 알고자 하셨더라
  •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 벧전 1:6-7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23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신 이유

그 열국을 머물러두사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직역 그래서 여호와께서 그 민족들을 남겨 두셨고, 그들을 빨리 몰아내지 않으셨으며, 그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주지 않으셨다.

2장의 마지막 구절은 여호수아 시대로 시선을 돌립니다. 하나님은 그 민족들을 “여호수아의 손에 붙이지 아니하셨음이 이를 인함이었더라.” 다시 말해, 남겨 둔 민족들은 여호수아의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이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처음부터 다음 세대가 그 민족들을 상대하며 믿음을 시험받게 하실 뜻이 있었습니다.

“속히 쫓아내지 아니하시며.” 여기 ‘속히’라는 말이 17절과 맞물립니다. 이스라엘은 열조의 길을 “속히” 떠났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가나안 민족을 “속히” 쫓아내지 않으셨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빨리 떠나는데, 하나님은 사람의 원수를 빨리 없애 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시간표는 우리의 시간표와 다릅니다. 그분은 원수를 단번에 없애 주시는 것보다, 그 원수 앞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선택하는 것을 더 원하십니다.

이렇게 2장은 사사기 전체의 무대를 완성합니다. 땅에는 가나안 민족들이 남아 있고, 이스라엘은 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가 되었으며,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하시면서도 부르짖을 때마다 사사를 보내실 것입니다. 3장부터 그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머물러두사 누아흐 히필형 — ‘쉬게 하다, 놓아두다’. 3:1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남겨두신 열국이 이러하니”에서 같은 말로 이어집니다.
  • 문단 나눔 — 히브리어 성경에서 2:20–3:6은 하나의 단락으로 이어집니다. 3:1–6은 남겨 두신 민족들의 목록과 두 번째 이유(전쟁을 가르치려 하심)를 다룹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삿 3:1-3여호와께서 가나안 전쟁을 알지 못한 이스라엘을 시험하려 하시며… 남겨두신 열국은
  • 사 55:8-9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 벧후 3:9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남겨 두신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모든 어려움과 유혹을 한 번에 없애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로 그것들을 “머물러 두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무력하시기 때문이 아니라, 그 앞에서 우리가 누구를 따르는지 드러내시고 우리의 믿음을 단련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내 삶에 아직 남아 있는 ‘가나안’이 있습니까? 그것이 나를 넘어뜨리는 올무가 될 수도 있고, 내 믿음을 단련하는 시험이 될 수도 있습니다. 차이는 그 앞에서 내가 하나님의 목소리를 청종하느냐에 있습니다. 2장은 “청종치 아니하였다”로 시작해 “청종치 아니하였다”로 끝났습니다. 우리의 이야기는 “청종하였다”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The Cycle · 정리

2:11–19, 사사기 전체를 돌리는 바퀴

3장부터 16장까지 이 다섯 단계가 되풀이됩니다
단계2장의 표현사사 이야기에서
① 죄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바알들을 섬기며 (11)3:7, 3:12, 4:1, 6:1, 10:6, 13:1
② 심판노략하는 자의 손에 붙이시고 대적의 손에 파시매 (14)3:8, 3:12, 4:2, 6:1, 10:7, 13:1
③ 부르짖음압박과 괴롭게 함을 받아 슬피 부르짖으므로 (18)3:9, 3:15, 4:3, 6:6, 10:10
④ 구원사사를 세우사 그들을 건져내게 하셨으나 (16)옷니엘, 에훗, 드보라·바락, 기드온, 입다, 삼손
⑤ 평안과 타락사사가 죽은 후에는… 더욱 패괴하여 (19)3:11, 3:30, 5:31, 8:28, 8:33

이 바퀴는 같은 자리를 맴도는 원이 아니라 아래로 내려가는 나선입니다. 사사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부르짖음’은 약해지고(삼손 때는 부르짖음조차 없음), ‘평안의 기간’은 사라지며(입다 이후로는 ‘땅이 평온하였다’는 말이 없음), 사사 자신의 흠은 커집니다. 그리고 17–21장에서는 사사조차 없이 바닥까지 내려갑니다. 사사기는 이렇게, 사사보다 더 큰 구원자와 참된 왕을 기다리게 만듭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2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사자使者 · 1절

심부름하는 자. ‘여호와의 사자’는 하나님 자신처럼 말씀하시는 특별한 분.

열조列祖 · 1, 10, 12절

여러 대의 조상들.

언약言約 · 1, 2, 20절

하나님이 스스로 묶이신 약속. 원문 베리트.

청종聽從 · 2, 17, 20절

듣고 따름.

올무3절

새나 짐승을 잡는 덫.

보김5절

‘우는 자들’이라는 뜻의 지명.

기업基業 · 6, 9절

하나님이 대대로 물려주신 몫, 유산.

경내境內 · 9절

경계 안쪽.

목전目前 · 11절

눈앞. 하나님이 보시는 기준.

바알11, 13절

가나안의 폭풍과 비의 신. ‘주인, 남편’이라는 뜻.

아스다롯13절

가나안의 다산과 사랑, 전쟁의 여신.

진노震怒 · 12, 14, 20절

하나님의 거룩한 분노.

노략擄掠 · 14, 16절

떼를 지어 재물을 빼앗음.

사사士師 · 16–19절

하나님이 세우신 재판관이자 구원자. 원문 쇼페트.

음란淫亂 · 17절

언약을 깨고 다른 신을 따르는 것을 간음에 빗댄 말.

압박壓迫 · 18절

짓누름.

패괴敗壞 · 19절

썩어서 무너짐, 부패함.

패역悖逆 · 19절

거스르고 완고함.

도道 · 22절

길. 하나님이 정하신 삶의 방식.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보김의 백성은 하나님의 책망을 듣고 울고 제사했지만, 가나안의 단을 헐지는 않았습니다(4–5절). 나는 말씀 앞에서 감동하고 끝나는 편입니까, 삶이 바뀌는 편입니까? 지금 내가 헐어야 할 ‘단’은 무엇입니까?
  2. 여호수아의 무덤 주소는 정확히 알았지만 하나님은 알지 못한 세대(9–10절). 우리 가정과 교회에 남아 있는 ‘기념비’는 무엇이고, 다음 세대에게 정말 전해지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나는 ‘부모님의 하나님’, ‘교회의 하나님’을 넘어 ‘나의 하나님’을 알고 있습니까?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안다’는 것은 내게 어떤 의미입니까?
  4. 오늘날 우리를 끌어당기는 ‘바알과 아스다롯’은 무엇일까요?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하나님보다 앞세우게 되는 것이 있습니까?
  5. 하나님은 회개도 제대로 하지 않은 백성의 신음 소리를 듣고 사사를 보내셨습니다(18절). 이 하나님의 긍휼이 지금 넘어져 있는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6. 내 신앙도 ‘죄 → 고통 → 부르짖음 → 회복 → 다시 죄’의 바퀴를 돌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 바퀴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 필요할까요?
  7. 하나님이 내 삶에 아직 ‘남겨 두신’ 어려움이나 유혹이 있다면(22절), 그것을 통해 하나님은 나에게서 무엇을 보고 싶어 하실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