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15절까지 — 에브라임의 교만, 요단 나루턱의 발음 시험, 사만 이천의 죽음, 그리고 세 명의 소사사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이라 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 하면JUDGES 12:6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12장 들어가며
외부의 적이 사라지자 형제끼리 칼을 겨누다
암몬을 이긴 입다에게 에브라임 사람들이 몰려옵니다. 8장에서 기드온에게 그랬듯이 “왜 우리를 부르지 않았느냐” 따집니다. 이번에는 더 과격합니다.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딸을 잃은 지 얼마 되지 않은 입다에게 ‘네 집을 불사르겠다’는 말은 얼마나 잔인했을까요.
기드온은 부드러운 말로 에브라임을 달랬지만, 입다는 맞섭니다. 그리고 길르앗과 에브라임 사이에 내전이 벌어집니다.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나루턱을 막고, 도망치는 사람마다 “십볼렛”이라고 말해 보라고 시킵니다. 에브라임 사투리로는 그 발음을 할 수 없었습니다. “씹볼렛”이라고 하는 사람은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날 에브라임 사람 4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한 글자의 발음 차이가 형제를 가르고 생명을 갈랐습니다. 사사기는 이제 외부의 원수가 아니라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이 더 큰 비극이 되는 시대로 들어갑니다. 장 끝에는 입산, 엘론, 압돈, 세 명의 소사사가 짧게 기록됩니다. 큰 전쟁 없이 25년이 흐르지만, 그 기록에는 하나님이 거의 등장하지 않습니다.
핵심 구절
12:6
“십볼렛이라 하라.” 한 글자의 발음이 생명을 가른 장면.
에브라임의 교만
12:1–3
같은 불평, 다른 대응. 기드온은 달랬고 입다는 맞섰습니다.
형제 전쟁
12:4–6
외부의 적을 이긴 칼이 형제를 향했습니다. 4만 2천 명.
세 소사사
12:8–15
입산, 엘론, 압돈. 많은 자녀와 나귀, 그러나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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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북으로 가서”
원문 ‘사폰으로 건너가서’. 사본은 요단 동쪽 갓 지파의 성읍.
3절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목숨을 손에 들고. 목숨을 걸고.
4절 “도망한 자”
피난민, 도망자. 길르앗을 낮춰 부르는 말.
5절 “나루턱”
강을 건너는 얕은 여울.
6절 “십볼렛”
‘이삭’ 또는 ‘흐르는 시내’. 쉬(ש) 발음을 시험하는 말.
6절 “구음”
口音, 입에서 나는 소리, 발음.
9절 “타국으로”
바깥으로. 자기 씨족 밖으로.
14절 “필”
匹, 말·나귀를 세는 단위.
15절 “아말렉 사람의 산지”
에브라임 땅 안의 아말렉 이름이 붙은 산지.
본문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그 범주만 강조됩니다. 밑줄 친 단어를 누르면(데스크톱은 마우스를 올리면) 짧은 뜻이 뜹니다.
12:1–3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와 입다를 위협합니다. 8:1에서 기드온에게 했던 것과 같은 불평입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그러나 이번에는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는 살해 위협까지 덧붙입니다.
입다는 기드온처럼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추지 않습니다. 그는 사실을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불렀지만 너희가 오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목숨을 걸고 싸웠고, 여호와께서 승리를 주셨다. 그런데 왜 이제 와서 나와 싸우려 하느냐. 그의 말은 옳았지만, 그 말은 분노를 쉬게 하지 못했습니다.
1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직역 에브라임 사람들이 소집되어 사본으로 건너가서 입다에게 말하였다. “너는 왜 암몬 자손과 싸우러 건너가면서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않았느냐? 우리가 네 집을 너와 함께 불로 태워 버리겠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요단을 건너옵니다. 그들의 불평은 8:1에서 기드온에게 했던 것과 똑같습니다.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에브라임은 중앙 산지의 강한 지파로, 자기들이 빠진 승리를 견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나아갑니다.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이것은 단순한 불평이 아니라 살해 위협입니다. 그리고 이 말이 얼마나 잔인한지 생각해 보십시오. 입다는 얼마 전 그의 집 문에서 나온 무남독녀를 잃었습니다. 그의 ‘집’에는 이제 아무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 사람에게 ‘네 집을 불사르겠다’고 위협한 것입니다.
“북으로 가서.” 원문 ‘차포나’는 ‘북쪽으로’라는 뜻이지만, 요단 동쪽 갓 지파의 성읍 ‘사본’(수 13:27)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요단을 건너 길르앗 땅까지 쳐들어온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8:1과의 비교 — 8:1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하고 크게 다투는지라”. 12:1에서는 다툼이 살해 위협으로 커졌습니다.
불로 사르다 — 14:15 블레셋 사람들이 삼손의 아내에게 “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15:6 실제로 그녀와 아버지를 불사름. 9:49 아비멜렉이 세겜 망대를 불사름. 사사기 후반부에는 ‘불사름’이 반복됩니다.
사본 — 수 13:27 갓 지파에게 준 요단 골짜기의 성읍 가운데 하나.
함께 읽을 말씀
삿 8:1에브라임 사람들이 기드온에게 이르되 네가 미디안과 싸우러 갈 때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우리를 이같이 대접함은 어찜이뇨
삿 14:15너와 네 아비의 집을 불사르리라
잠 13:10교만에서는 다툼만 일어날 뿐이라
잠 27:4분은 잔인하고 노는 창수 같거니와 투기 앞에야 누가 서리요
2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고로
입다가 그들에게 이르되 나와 나의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툴 때에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고로
직역 입다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나와 내 백성이 암몬 자손과 크게 다투고 있었을 때, 내가 너희를 불렀으나 너희는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않았다.”
입다는 사실을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부르되 너희가 나를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지 아니한고로.” 내가 너희를 부르지 않은 것이 아니다. 불렀는데 너희가 오지 않았다.
11장에는 입다가 에브라임을 불렀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러나 10:9에 따르면 암몬은 에브라임까지 쳐들어왔습니다. 그때 길르앗이 도움을 청했을 수 있습니다. 또는 18년 동안 길르앗이 학대를 당할 때 에브라임이 외면했던 것을 말하는지도 모릅니다. 어느 쪽이든, 입다의 말은 에브라임이 위험할 때는 숨어 있다가 승리한 뒤에야 몫을 요구한다는 지적이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크게 다투다 — 원문 ‘이쉬 리브 하이티 … 메오드’, ‘내가 큰 다툼의 사람이었다’. 11:27 “판결하시옵소서”(리브와 연결)와 이어집니다.
구원하다야샤 — 에브라임은 구원자가 되기를 거부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0:9암몬 자손이 또 요단을 건너서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 족속을 치므로
잠 24:11-12너는 사망으로 끌려가는 자를 건져주며 살륙을 당하게 된 자를 구원하지 아니치 말라
3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쳤더니 여호와께서 붙이셨거늘
내가 너희의 구원치 아니하는 것을 보고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하고
직역 “너희가 구원하지 않는 것을 보고, 나는 내 목숨을 내 손에 들고 암몬 자손에게로 건너갔고,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주셨다. 그런데 너희는 왜 오늘 내게 올라와 나와 싸우려 하느냐?”
입다는 계속합니다.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건너가서 암몬 자손을 쳤더니.” 원문은 ‘내 목숨을 내 손바닥에 두고’입니다. 손바닥 위의 물건처럼 언제 떨어질지 모르는 목숨을 걸고 싸웠다는 뜻입니다. 9:17에서 요담이 기드온에 대해 “죽음을 무릅쓰고”라고 했던 것과 같은 정신입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내 손에 붙이셨거늘.” 입다는 승리를 여호와께 돌립니다. 그것은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다. 그런데 너희는 하나님이 주신 승리에 대해 시비를 거느냐.
“너희가 어찌하여 오늘날 내게 올라와서 나로 더불어 싸우고자 하느냐.” 입다의 말은 모두 옳았습니다. 그러나 옳은 말이 늘 평화를 가져오는 것은 아닙니다. 기드온은 사실을 따지지 않고 에브라임을 높여 주었고(8:2–3), 그들의 노가 풀렸습니다. 입다는 사실을 정확히 말했고,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잠언 15:1 “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물론 에브라임의 살해 위협 앞에서 입다가 달리 어떻게 할 수 있었을지는 생각해 볼 문제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생명을 손에 두다 — 원문 ‘바아시마 나프쉬 베카피’. 삼상 19:5 다윗 “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손에 두고), 28:21 엔돌의 신접한 여인 “내가 내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욥 13:14 “내가 어찌하여 내 살을 내 이로 물고 내 생명을 내 손에 두겠느냐”.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9:5그가 자기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여호와께서는 온 이스라엘을 위하여 큰 구원을 이루셨으므로
삿 8:2-3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아비에셀의 맏물 포도보다 낫지 아니하냐… 기드온이 이 말을 하매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잠 15:1유순한 대답은 분노를 쉬게 하여도 과격한 말은 노를 격동하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옳은 말과 평화의 말
입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습니다. 에브라임은 위험할 때 외면했고, 승리한 뒤에 몫을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살해 위협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입다의 옳은 말은 전쟁으로 이어졌고, 기드온의 겸손한 말은 평화로 이어졌습니다.
우리가 옳을 때가 가장 위험할 수 있습니다. 내가 옳다는 확신은 상대를 이기려는 마음으로 쉽게 변합니다. 물론 진실을 말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을 말하는 방식, 그리고 진실보다 더 중요한 관계와 평화를 생각해야 합니다.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엡 4:15). 진실과 사랑이 함께 갈 때 평화가 옵니다.
12:4–6십볼렛이라 하라 — 요단 나루턱의 학살
입다는 길르앗 사람들을 모아 에브라임과 싸웁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들”이라고 모욕했기 때문입니다. 길르앗이 이깁니다.
그리고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나루턱을 막고, 건너가려는 사람마다 “십볼렛”이라고 말하게 합니다. 에브라임 사투리로는 ‘쉬’ 발음을 할 수 없어 “씹볼렛”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발음 하나로 4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7:24에서 에브라임이 미디안을 막았던 그 요단 나루턱에서, 이제 길르앗이 에브라임을 막습니다.
4에브라임과 싸웠더니 — 너희 길르앗 사람은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더니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파하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직역 입다가 길르앗의 모든 사람을 모아 에브라임과 싸웠다.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쳤다. 에브라임이 “너희 길르앗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사이에 있는 에브라임의 도망자들이다”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입다는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웁니다. 이스라엘의 지파와 지파가 칼을 겨눕니다. 사사기에서 지파 간 전쟁은 여기가 처음입니다(9장은 한 도시와 그 왕의 싸움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내전은 20장의 베냐민 전쟁을 미리 보여 줍니다.
그런데 왜 싸움이 이렇게 커졌을까요? 성경은 이유를 밝힙니다.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에브라임은 길르앗 사람들을 ‘도망자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너희는 진짜 지파가 아니다, 우리 에브라임에서 도망쳐 요단 건너편으로 간 떠돌이들일 뿐이다.
이것은 깊은 모욕이었습니다. 길르앗은 므낫세 반 지파와 갓 지파의 땅으로, 모세가 직접 준 정당한 기업이었습니다(민 32장). 그런데 에브라임은 요단 동쪽 사람들을 이류 이스라엘인으로 업신여겼습니다. 그리고 이 말은 기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쫓겨났던 입다의 상처를 다시 건드렸을 것입니다. 너희는 진짜가 아니다. 그 말 한마디가 4만 2천 명의 죽음을 불렀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도망한 자펠리트 — ‘피난민, 도망자, 생존자’. 같은 말이 5절에서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로 쓰입니다. 에브라임이 길르앗을 ‘도망자’라고 불렀는데, 결국 에브라임이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요단 동쪽과 서쪽 — 수 22장에서 요단 동쪽 지파들이 제단을 쌓자 서쪽 지파들이 전쟁을 하려 했던 일이 있습니다. 요단강은 이스라엘을 지리적으로뿐 아니라 심리적으로도 갈라 놓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22:24-25후일에 너희 자손이 우리 자손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너희가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희 르우벤 자손 갓 자손아 여호와께서 우리와 너희 사이에 요단으로 경계를 삼으셨나니
잠 18:21죽고 사는 것이 혀의 권세에 달렸나니
약 3:6혀는 곧 불이요 불의의 세계라
5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나로 건너게 하라 하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직역 길르앗이 에브라임 쪽 요단의 나루턱들을 점령하였다. 에브라임의 도망자가 “건너가게 해 주시오” 하면, 길르앗 사람들이 그에게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하고 물었다. 그가 “아니오” 하면,
전투에서 진 에브라임 사람들은 요단강을 건너 자기 땅으로 도망치려 합니다. 그런데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 장면은 3:28과 7:24를 떠올리게 합니다. 에훗은 요단 나루턱을 막아 모압 사람 1만 명을 죽였고, 기드온 때 에브라임은 요단 나루턱을 막아 미디안의 두 장군을 잡았습니다. 요단 나루턱은 이스라엘이 원수를 막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같은 나루턱에서 이스라엘이 이스라엘을 막습니다. 7장에서 나루턱을 지키던 에브라임이 이제 나루턱에서 죽임을 당합니다.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 형제가 형제를 검문합니다. 그런데 거짓말을 할 수 있었습니다. “아니라”고 대답하면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길르앗 사람들은 확실한 방법을 찾아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나루턱마바라 — ‘건너는 곳, 여울’. 3:28 에훗, 7:24 에브라임이 미디안을 막음. 수 2:7 정탐꾼들을 쫓던 사람들도 요단 나루턱까지 갔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7:24에브라임 사람들이 다 모여서 벧 바라와 요단에
삿 3:28요단강 나루를 잡아 지켜 한 사람도 건너지 못하게 하였고
6십볼렛이라 하라 — 씹볼렛이라 하면 죽였더라 — 에브라임 사람 사만 이천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이라 하라 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명이었더라
직역 그들이 그에게 “쉽볼렛이라고 말해 보라” 하였다. 그가 정확히 말하지 못하고 “십볼렛”이라고 말하면, 그들이 그를 붙잡아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다. 그때 에브라임에서 사만 이천 명이 쓰러졌다.
길르앗 사람들의 방법은 간단했습니다. “십볼렛이라 하라.” ‘십볼렛’(쉽볼레트)은 히브리어로 ‘이삭’ 또는 ‘흐르는 물, 시내’라는 뜻입니다. 강을 건너는 곳에서 ‘시내’라는 말을 시킨 것이니 자연스러운 낱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의 첫 소리는 ‘쉬’(sh)입니다.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 하면.” 에브라임 사투리에서는 ‘쉬’ 소리를 ‘스’로 발음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쉽볼렛’을 ‘십볼렛’이라고 말했습니다. (개역성경은 이 차이를 ‘십볼렛’과 ‘씹볼렛’으로 옮겼습니다.) 한국어에서도 지역마다 ‘쌀’과 ‘살’을 다르게 발음하는 것처럼, 같은 히브리어를 쓰면서도 지역에 따라 발음이 달랐습니다.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단 한 글자의 발음 차이가 생과 사를 갈랐습니다. 같은 하나님을 섬기고, 같은 조상 야곱의 후손이고, 같은 히브리어를 쓰는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발음 하나 때문에 ‘우리’와 ‘그들’로 나뉘었고, 그 자리에서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명이었더라.” 4만 2천 명. 엄청난 숫자입니다. 암몬과의 전쟁보다 형제와의 전쟁에서 더 많은 이스라엘 사람이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사기는 이제 외부의 원수보다 내부의 분열이 더 큰 비극이 되는 시대로 들어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쉽볼렛/십볼렛 — 원문 ‘שִׁבֹּלֶת’(쉬볼레트)와 ‘סִבֹּלֶת’(시볼레트). 첫 글자 쉰(ש, sh)과 사멕(ס, s)의 차이. 이 일화에서 영어 낱말 ‘shibboleth’(어떤 집단을 구별하는 표지, 암호)가 생겼습니다.
사투리 — 고대 히브리어에도 지역 방언이 있었다는 증거로 자주 인용됩니다. 마 26:73 베드로가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갈릴리 사투리 때문이었습니다.
42,000 — ‘엘레프’를 ‘천’이 아니라 ‘부대’로 읽어 더 작은 숫자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큰 손실이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마 26:73너도 진실로 그 당이라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 하거늘
갈 5:15만일 서로 물고 먹으면 피차 멸망할까 조심하라
엡 4:3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시 133:1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작은 차이가 형제를 가를 때
에브라임과 길르앗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였습니다. 그러나 ‘도망자’라는 한마디 모욕이 전쟁을 불렀고, ‘쉬’와 ‘스’라는 한 소리의 차이가 생명을 갈랐습니다. 4만 2천 명이 죽었습니다.
오늘 교회 안에도 ‘십볼렛’이 있습니다. 예배 형식, 신학의 작은 차이, 출신 교회, 말투와 문화. 그것들이 형제를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시험이 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하나로 묶는 것은 발음이나 형식이 아니라 같은 주님, 같은 믿음, 같은 침례입니다(엡 4:5). 작은 차이로 형제를 정죄하기보다,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12:7사사가 된 지 육 년 —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입다는 6년 동안 사사로 섬기고 죽습니다. 다른 사사들에 비해 짧은 기간입니다. 그리고 그의 무덤은 정확한 장소가 기록되지 않고 “길르앗 한 성읍”이라고만 되어 있습니다.
쫓겨난 기생의 아들로 시작해, 길르앗의 머리가 되고, 암몬을 이기고, 딸을 잃고, 형제 지파와 싸운 입다. 그의 삶은 승리와 비극이 뒤엉킨 삶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후손 없이 떠났습니다.
7입다가 사사가 된 지 육 년이라 —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육년이라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직역 입다가 이스라엘을 육 년 동안 다스렸다. 그리고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어 길르앗의 성읍들 가운데 장사되었다.
“입다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육년이라.” 6년. 돌라의 23년, 야일의 22년, 기드온의 40년과 비교하면 매우 짧습니다. 입다의 시대는 짧았고, 그 짧은 시간도 승리와 비극으로 가득했습니다.
“길르앗 사람 입다가 죽으매 길르앗 한 성읍에 장사되었더라.” 다른 사사들은 대부분 무덤의 장소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돌라는 사밀(10:2), 야일은 가몬(10:5), 기드온은 아비에셀 사람의 오브라에 있는 아버지 요아스의 묘실(8:32). 그런데 입다는 그저 ‘길르앗 한 성읍’, 원문으로는 ‘길르앗의 성읍들에’입니다. 정확한 장소가 남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에게는 후손이 없었습니다. 그의 무남독녀는 남자를 알지 못한 채 떠났습니다(11:39). 기드온은 아버지의 묘실에 묻혔지만, 입다는 아버지의 집에서 쫓겨났기에 가족 묘에 들어가지 못했을 것입니다. 쫓겨남으로 시작한 그의 인생은, 이름 없는 무덤으로 끝났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하나님이 보내신 구원자로 입다의 이름을 불렀고(삼상 12:11), 히브리서는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기록했습니다(히 11:32).
원어 · 번역 노트
길르앗 한 성읍 — 원문 ‘베아레 길아드’, ‘길르앗의 성읍들에’. 70인역 일부 사본은 ‘그의 성읍 길르앗 미스바에’로 읽습니다. 후대 유대 전승(미드라쉬)은 입다가 서원 때문에 벌을 받아 몸이 조각조각 나서 여러 성읍에 묻혔다는 설명을 덧붙이기도 했습니다.
입다의 무덤은 정확한 장소가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후손 없이, 짧은 사역을 마치고 떠났습니다. 그의 생애는 상처와 승리와 실수와 비극이 뒤엉킨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잊지 않으셨습니다. 사무엘은 그의 이름을 구원자의 목록에 넣었고, 히브리서는 그를 믿음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했던 믿음을 기억하십니다. 사람들이 잊어도, 무덤이 남지 않아도, 하나님은 우리를 아십니다. “주께서 자기 백성을 아신다.”
12:8–15입산, 엘론, 압돈 — 조용히 지나간 이십오 년
입다 뒤에 세 명의 소사사가 이어집니다. 베들레헴 사람 입산(7년), 스불론 사람 엘론(10년), 비라돈 사람 압돈(8년). 모두 합쳐 25년입니다.
이들의 기록에는 전쟁도, 구원도, 하나님의 이름도 나오지 않습니다. 대신 많은 아들과 딸, 정략결혼, 나귀 70필이 기록됩니다. 사사들이 점점 지방의 부유한 귀족처럼 되어 가는 모습입니다. 그리고 이 조용한 25년이 지나면, 13장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하고 40년 동안 블레셋의 손에 붙여집니다.
8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의 뒤에는 베들레헴 입산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직역 그 뒤에 베들레헴의 입산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입다 뒤에 베들레헴 입산이 사사가 됩니다. 베들레헴은 유다의 베들레헴일 수도 있고,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수 19:15)일 수도 있습니다. 바로 뒤의 엘론이 스불론 사람이므로 스불론의 베들레헴으로 보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유다의 베들레헴이라면 의미가 있습니다. 사사기 마지막 부분(17–21장)에서 베들레헴은 중요한 장소로 등장하고, 룻기의 무대가 되며, 다윗과 예수님의 고향이 됩니다. 후대 유대 전승(탈무드)은 입산을 룻기의 보아스와 같은 사람으로 보기도 했지만, 성경적 근거는 없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베들레헴 — 수 19:15 스불론 지파의 베들레헴(나사렛 북서쪽 약 11km). 유다의 베들레헴은 17:7, 19:1, 룻 1:1, 미 5:2.
입산 — 유대 전승(바바 바트라 91a)은 입산을 보아스로 보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수 19:15갓닷과 나할랄과 시므론과 이달라와 베들레헴이니
미 5:2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너는 유다 족속 중에 작을찌라도 이스라엘을 다스릴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올 것이라
9아들 삼십과 딸 삼십 —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보내고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왔더라
그가 아들 삼십과 딸 삼십을 두었더니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 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 왔더라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된지 칠년이라
직역 그에게는 아들 서른 명이 있었고, 딸 서른 명을 바깥으로 시집보냈으며, 아들들을 위해 바깥에서 딸 서른 명을 데려왔다. 그는 이스라엘을 칠 년 동안 다스렸다.
입산에게는 아들 삼십과 딸 삼십, 모두 60명의 자녀가 있었습니다. 이만큼의 자녀를 두려면 많은 아내가 필요했습니다. 8:30의 기드온, 10:4의 야일처럼 입산도 왕처럼 살았습니다.
그리고 그는 딸들은 타국으로 시집 보내었고 아들들을 위하여는 타국에서 여자 삼십을 데려 왔더라. ‘타국’으로 옮긴 말은 원문으로 ‘바깥으로’(하후차)입니다. 이방 나라라기보다는 자기 씨족이나 지파 바깥을 뜻하는 것으로 봅니다. 입산은 60번의 혼인으로 다른 가문, 다른 지파들과 동맹을 맺었습니다. 정략결혼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넓힌 것입니다. 고대 근동의 왕들이 하던 방식입니다.
만약 ‘타국’이 정말 이방 민족을 뜻한다면 더 심각합니다. 3:6에서 이스라엘은 “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들에게 주고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고 했습니다. 이방인과의 혼인은 우상 숭배로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다음 장의 삼손은 블레셋 여인과 혼인하려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타국으로 — 원문 ‘하후차’, ‘바깥으로’. 신 25:5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가지 말 것이요”(하후차, 가문 밖으로). 그래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씨족 밖으로’로 이해합니다.
정략결혼 — 왕상 3:1 솔로몬이 바로의 딸과 혼인, 11:1–3 많은 이방 여인. 삼하 3:2–5 다윗의 여러 아내.
함께 읽을 말씀
삿 3:6그들의 딸들을 취하여 아내를 삼으며 자기 딸들을 그들의 아들에게 주며 또 그들의 신들을 섬겼더라
삿 10:4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성읍 삼십을 두었었는데
신 7:3-4또 그들과 혼인하지 말찌니 네 딸을 그 아들에게 주지 말 것이요 그 딸로 네 며느리를 삼지 말것은 그가 네 아들을 유혹하여 그로 여호와를 떠나고 다른 신들을 섬기게 하므로
10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직역 입산이 죽어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다.
“입산이 죽으매 베들레헴에 장사되었더라.” 7년의 사역을 마치고 그는 고향에 묻힙니다. 소사사들의 기록은 늘 이 형식을 따릅니다. 이름, 출신, 기간, 그리고 장사된 곳. 짧지만 각 사람이 하나님이 맡기신 시대를 살고 떠났다는 기록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소사사의 형식 — ① 그의 뒤에 ② 누가 ③ 이스라엘을 다스림 ④ 가족·재산 ⑤ 기간 ⑥ 죽어 어디에 장사됨. 10:1–5, 12:8–15.
함께 읽을 말씀
전 1:4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
11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 년 동안 다스렸더라
그의 뒤에는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어 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직역 그 뒤에 스불론 사람 엘론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그는 이스라엘을 십 년 동안 다스렸다.
다음은 스불론 사람 엘론입니다. 스불론은 4–5장에서 바락과 함께 시스라와 싸웠고, 드보라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5:18)이라고 칭찬한 지파입니다. 그 스불론에서 사사가 나왔습니다.
엘론에 대한 기록은 이것이 전부입니다. 가족도, 재산도, 업적도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저 “십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더라.” 그러나 10년 동안 이스라엘을 다스렸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맡기신 일을 감당했다는 증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엘론 — 창 46:14 “스불론의 아들 곧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조상의 이름을 이어받았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창 46:14스불론의 아들 곧 세렛과 엘론과 얄르엘이니
삿 5:18스불론은 죽음을 무릅쓰고 생명을 아끼지 아니한 백성이요
12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으매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더라
직역 스불론 사람 엘론이 죽어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되었다.
엘론은 스불론 땅 아얄론에 장사됩니다. 히브리어 원문에서 ‘엘론’과 ‘아얄론’은 자음이 같습니다(אילון). 그래서 그가 묻힌 곳이 그의 이름을 딴 곳이었을 수도 있습니다. 1:35의 아얄론(단 지파 땅)과는 다른 곳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얄론 — 1:35, 수 10:12 “달아 너도 아얄론 골짜기에 그리할찌어다”의 아얄론은 예루살렘 서쪽 단 지파 땅입니다. 여기는 스불론 땅에 있는 다른 곳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삿 1:35결심하고 헤레스산과 아얄론과 사알빔에 거하였더니
13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그의 뒤에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이었더라
직역 그 뒤에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이스라엘을 다스렸다.
마지막 소사사는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입니다. 비라돈은 에브라임 땅에 있었습니다(15절). 4–6절에서 4만 2천 명을 잃은 에브라임에서 사사가 나왔습니다. 하나님은 형제 전쟁으로 큰 상처를 입은 지파에서도 지도자를 세우셨습니다.
그의 이름 ‘압돈’은 ‘섬김’ 또는 ‘종’이라는 뜻의 낱말(에베드)에서 왔습니다. 섬기는 자라는 이름의 사사. 그러나 다음 절의 그의 모습은 섬기는 자라기보다 섬김을 받는 자에 가까웠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비라돈 — 오늘날 세겜 남서쪽 약 10km의 파르아타로 추정합니다. 삼하 23:30, 대상 11:31 다윗의 용사 브나야가 비라돈 사람이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삼하 23:30비라돈 사람 브나야와
막 10: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14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어린 나귀 칠십 필을 탔었더라
그에게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있어서 어린 나귀 칠십필을 탔었더라 압돈이 이스라엘의 사사가 된지 팔년이라
직역 그에게는 아들 사십 명과 손자 삼십 명이 있었는데, 그들은 어린 나귀 칠십 마리를 탔다. 그는 이스라엘을 팔 년 동안 다스렸다.
압돈에게는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 모두 70명의 자손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어린 나귀 칠십필을 탔습니다. 10:4에서 야일의 아들 30명이 나귀 30마리를 탔는데, 압돈은 그보다 훨씬 많습니다.
숫자 70이 다시 나옵니다. 8:30 기드온의 아들 70명, 9:5 아비멜렉이 죽인 형제 70명. 그리고 압돈의 자손 70명. 사사들의 가문이 점점 왕족처럼 커지고 있었습니다. 기드온이 “나도 내 아들도 다스리지 않겠다”고 했던 그 원칙은 이미 희미해졌습니다.
소사사들의 기록을 보면 한 가지 흐름이 보입니다. 야일의 아들 30, 입산의 자녀 60, 압돈의 자손 70. 그들의 가문은 점점 커지고 부유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록에는 하나님의 이름도, 구원의 기록도 없습니다. 외적인 번영이 커질수록 하나님과의 관계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압돈이 죽은 뒤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합니다(13:1).
원어 · 번역 노트
나귀 — 5:10 “흰 나귀를 탄 자들”, 10:4 야일의 아들들. 슥 9:9 메시아는 겸손하여 나귀 새끼를 타십니다. 같은 나귀지만, 귀족의 위세와 겸손한 왕의 모습은 다릅니다.
세 소사사 — 입산 7년 + 엘론 10년 + 압돈 8년 = 25년.
함께 읽을 말씀
삿 10:4그에게 아들 삼십이 있어 어린 나귀 삼십을 탔고
삿 8:30기드온이 아내가 많으므로 몸에서 낳은 아들이 칠십인이었고
슥 9:9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15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으매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되었더라
직역 비라돈 사람 힐렐의 아들 압돈이 죽어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에 있는 비라돈에 장사되었다.
압돈은 에브라임 땅 아말렉 사람의 산지 비라돈에 장사됩니다. 에브라임 땅 안에 ‘아말렉 사람의 산지’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5:14에서 드보라는 “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박힌 자요”라고 노래했습니다. 한때 아말렉 사람들이 그 지역에 살았거나, 아말렉과 관련된 일이 있었던 곳으로 보입니다.
이스라엘의 땅 한가운데 원수의 이름이 남아 있었습니다. 1장에서 시작된 ‘다 쫓아내지 못한’ 이야기의 흔적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소사사들의 조용한 시대가 끝납니다. 다음 장에서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하고, 사사기의 마지막 사사 삼손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말렉 사람의 산지 — 원문 ‘베하르 하아말레키’. 5:14 “아말렉에 뿌리박힌 자”. 아말렉은 이스라엘의 오랜 원수로, 출 17:8–16, 신 25:17–19, 삿 3:13, 6:3.
함께 읽을 말씀
삿 5:14에브라임에게서 나온 자는 아말렉에 뿌리박힌 자요
삿 13:1이스라엘 자손이 다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번영의 기록, 하나님 없는 기록
입산, 엘론, 압돈의 기록에는 하나님이 나오지 않습니다. 구원도, 기도도, 여호와의 영도 없습니다. 대신 많은 자녀, 정략결혼, 나귀 70필이 기록됩니다. 25년 동안 큰 전쟁 없이 평온했지만, 그 평온은 하나님 없이 흘러갔습니다. 그리고 그 끝에 이스라엘은 다시 악을 행했습니다.
우리 삶에도 큰 위기 없이 평온한 시절이 있습니다. 그때 우리는 무엇을 쌓고 있습니까? 재산과 인맥과 지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과의 관계입니까? 평온한 때야말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갈 때입니다. 번영의 기록이 아니라 믿음의 기록을 남기는 삶을 구합시다.
Compare · 비교
에브라임의 불평 — 기드온과 입다
같은 지파, 같은 불평, 다른 결말
기드온 (8:1–3)
입다 (12:1–6)
에브라임의 말
“우리를 부르지 아니하였으니 … 어찜이뇨”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 하지 아니하였느냐 …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에브라임의 상황
오렙과 스엡을 잡는 공을 세움
전쟁에 참여하지 않음
사사의 대응
상대를 높이고 자기를 낮춤
사실을 따져 반박함
핵심 말
“에브라임의 끝물 포도가 … 낫지 아니하냐”
“너희가 나를 … 구원하지 아니한고로”
결과
“그들의 노가 풀리니라”
내전, 에브라임 사만 이천 명 죽음
요단 나루턱
에브라임이 미디안을 막음(7:24)
길르앗이 에브라임을 막음(12:5)
같은 갈등이 지도자의 말 한마디에 따라 평화로도, 학살로도 이어졌습니다. 물론 에브라임의 태도도 8장보다 12장에서 훨씬 과격했습니다. 사사기는 이스라엘 내부의 분열이 점점 깊어지는 과정을 보여 줍니다. 8장의 말다툼은 12장의 내전이 되고, 20장의 지파 멸절 전쟁으로 이어집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12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사르다1절
불에 태우다.
생명을 돌아보지 아니하고3절
목숨을 걸고.
파하다破- · 4절
쳐서 무찌르다.
도망한 자逃亡- · 4–5절
피난민, 도망자.
나루턱5–6절
강을 건너는 여울목.
십볼렛6절
‘이삭’ 또는 ‘시내’. 쉬(sh) 발음.
씹볼렛6절
에브라임 사투리. 스(s) 발음.
구음口音 · 6절
발음.
사사士師 · 7–14절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구원한 지도자.
타국他國 · 9절
원문 ‘바깥’. 자기 씨족 밖.
필匹 · 14절
말·나귀를 세는 단위.
산지山地 · 15절
산이 많은 지역.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에브라임은 위험할 때는 숨어 있다가 승리 뒤에 몫을 요구했습니다(1–2절). 나는 수고 없이 인정만 받으려 한 적이 없습니까?
입다의 말은 옳았지만 전쟁으로 이어졌습니다(2–3절). 내가 옳다고 확신할 때, 나는 어떻게 말하고 있습니까?
에브라임의 ‘도망자들’이라는 모욕이 내전을 불렀습니다(4절). 내가 쉽게 던진 말이 다른 사람의 깊은 상처를 건드린 적은 없습니까?
‘십볼렛’ 한 글자가 형제를 갈랐습니다(6절). 우리 교회나 공동체에서 형제를 ‘우리’와 ‘그들’로 나누는 작은 차이는 무엇입니까?
입다는 정확한 장소가 남지 않은 무덤에 묻혔지만 하나님은 그를 기억하셨습니다(7절).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이 기억하신다는 사실이 내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세 소사사의 기록에는 번영은 있지만 하나님은 보이지 않습니다(8–15절). 평온한 시절에 나는 무엇을 쌓고 있습니까?
압돈의 이름은 ‘섬김’이지만 그의 자손은 나귀 70필을 탔습니다(13–14절). 나는 섬기는 사람입니까, 섬김을 받으려는 사람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