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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교회 성경공부 시리즈 · 1 CORINTHIANS

고린도전서 연구

분열된 교회에서 그리스도의 몸으로 — 전체 16장 성경 연구
고전 1:1 – 16:24  ·  구조 · 교훈 · 심화 질문
전 16장 · 구조 · 신학적·목회적 교훈 · 심화 질문
Introduction

고린도전서 전체 서론

분열된 교회를 향해, 십자가의 지혜와 사랑의 길을 보이다.

저자와 기록 시기

고린도전서는 사도 바울이 제3차 전도여행 중 에베소에 머무를 때(16:8, "내가 오순절까지 에베소에 유하려 함") 기록한 서신으로, 대체로 AD 53–55년경으로 추정된다. 이 서신은 바울이 고린도교회와 주고받은 여러 서신 중 하나로, 이미 이전에 보낸 편지(5:9, "내가 너희에게 쓴 것")가 있었음을 본문 자체가 증언한다. 바울은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전해 들은 분쟁 소식(1:11)과, 고린도 교인들이 보낸 편지에 대한 답변(7:1, "너희가 쓴 말에 대하여는")을 배경으로 이 서신을 써 내려간다.

수신자와 정황

고린도는 BC 44년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된 신흥 상업 도시로, 두 개의 바다 사이 좁은 지협에 위치해 동서 무역의 요충지로 급성장했다. 그리스인, 로마인, 유대인이 뒤섞인 다문화 인구 구성과, 후원자-피후원자 문화·수사학적 웅변가 숭배·이스트미아 경기로 대표되는 경쟁적 성취 문화가 도시 전체를 특징지었다. 바울은 2차 전도여행 중 1년 6개월간 이곳에 머물며 교회를 개척했다(행 18장). 신흥 도시의 활력과 유동성 만큼이나, 그 가치관이 갓 세워진 교회 안으로 그대로 스며들어 분쟁, 소송, 성적 방종, 은사의 서열화 같은 문제들을 낳았다.

문체적 특징

복음서의 내러티브와 달리, 고린도전서는 구체적 질문과 보고에 응답하는 목회 서신의 성격을 강하게 띤다.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는 수사적 질문이 열 차례 가까이 반복되며, 고린도 교인들의 슬로건("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6:12, 10:23)을 그대로 인용한 뒤 되받아치는 논증 방식이 자주 등장한다. 신학적 논증과 매우 구체적인 생활 윤리 지침(결혼, 소송, 예배 질서, 식사 예절)이 촘촘히 엮여 있다는 점도 이 서신의 두드러진 특징이다.

핵심 신학 주제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지혜(1–4장)가 서신 전체의 신학적 토대를 놓으면, 이어서 몸의 거룩함(5–7장)과 사랑으로 제한되는 자유(8–10장)라는 윤리적 실천이 전개된다. 마지막으로 예배 공동체의 질서와 사랑(11–14장)을 거쳐, 서신 전체가 지향하는 궁극적 소망인 몸의 부활(15장)에서 절정에 이른다. 처음부터 끝까지,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에게 세상의 지혜와 가치 기준이 아니라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둔 삶을 촉구한다.

전체 구조 개관

1 – 4장
분열과 십자가의 지혜
파당 문제,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능력, 사도의 청지기 됨.
5 – 10장
윤리적 실천의 문제들
음행과 징계, 소송, 결혼과 독신, 우상의 제물과 사랑의 자유.
11 – 16장
예배 공동체의 질서와 소망
성찬과 은사, 사랑, 부활의 복음, 연보와 마지막 인사.

이 책의 사용법

각 장은 동일한 세 부분으로 구성된다. ①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은 해당 장을 몇 개의 단락으로 나누어 흐름을 요약하고, ②신학적·목회적 교훈은 본문에서 오늘의 신앙과 삶으로 이어지는 다섯 가지 통찰을 제시하며, ③깊이 생각해볼 문제는 원어 배경, 역사적 정황, 해석사적 논쟁 등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을 다룬다. 개인 묵상은 물론 소그룹·설교 준비 자료로도 사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Contents

목차

01 십자가 앞에 갈라진 사람들 분쟁 보고, 인사와 감사, 십자가의 어리석음 02 성령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지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성령의 깊은 것 03 육신에 속한 자들, 함께 짓는 집 바울과 아볼로, 하나님의 동역자, 심판의 불 04 그리스도의 일꾼, 십자가를 진 사도 청지기의 자세, 사도의 고난, 아버지의 권면 05 누룩을 내버리라 음행 사건과 교회의 징계 06 성도끼리 소송하는 부끄러움 세상 법정과 성령의 전 07 부르심 그대로 살라 결혼과 독신에 관한 권면 08 지식보다 사랑으로 우상의 제물과 약한 형제 09 권리를 내려놓은 사도 복음을 위해 모든 것을 절제함 10 광야의 경고, 우상숭배를 피하라 이스라엘의 실패와 주의 상 11 질서 있게 함께 모이라 머리의 문제와 주의 만찬 12 한 몸 많은 지체 성령의 다양한 은사 13 사랑은 가장 좋은 길 14 덕을 세우는 예배 방언과 예언, 질서 15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으니 부활의 복음과 소망 16 연보와 마지막 인사 성도의 교제와 협력
1 CORINTHIANS 1

1장 · 십자가 앞에 갈라진 사람들

고린도전서 1장 — 인사와 감사, 분쟁 보고, 십자가의 어리석음과 하나님의 능력
고전 1:1–31 사 29:14 · 렘 9:23–24 분쟁 보고와 십자가의 도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9절
인사와 감사
바울은 자신을 부르심을 받은 사도로 소개하며, 고린도교회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 부른다. 언변과 지식이 풍성하고 은사에 부족함이 없다고 감사하면서도, 이 모든 것의 목적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들을 흠 없게 하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있음을 미리 못박아 둔다.
10–17절
분쟁 보고
글로에의 집 사람들을 통해 들은 소식이 전해진다. 교회 안에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에게"라는 파당이 생겼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뉘었느냐"라는 날카로운 질문을 던지며, 자신의 사명은 침례가 아니라 오직 복음 전파임을 분명히 한다.
18–25절
십자가의 도
십자가의 말씀이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구원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다. 이사야 29:14을 인용하여 하나님이 지혜자의 지혜를 폐하신다고 선언한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바울은 오직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한다 —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나,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다.
26–31절
부르심의 역설
고린도 교인 중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 능한 자,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않다. 하나님은 오히려 세상의 미련한 것들과 약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과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신다. 그래서 예레미야 9:23–24을 반향하며 "자랑하는 자는 주 안에서 자랑하라"고 결론짓는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그리스도는 나뉠 수 없다
교회 안의 파벌은 단순한 의견 차이가 아니라, 온전한 그리스도를 조각내어 나눠 가지려는 시도다. 어떤 지도자를 따르든 그 중심에 그리스도가 계셔야 함을 잊을 때 분쟁이 시작된다.
②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다른 잣대를 쓴다
십자가는 인간의 논리로는 패배와 수치의 상징이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구원의 능력을 드러내신다. 겉보기의 성공과 실패로 하나님의 일하심을 판단할 수 없다는 원리다.
③ 부르심은 자격이 아니라 은혜다
미련하고 약하고 천한 자들을 택하신 것은 인간의 자랑할 여지를 원천적으로 없애기 위함이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의 사건이며, 그래서 자랑은 오직 주 안에서만 가능하다.
④ 사명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하라
바울은 침례를 준 사람이 적다는 것을 오히려 감사한다. 부수적인 일과 본질적인 사명(복음 전파)을 혼동하지 않는 자기 인식이 지도자에게 필요하다.
⑤ 은사가 성숙을 보장하지 않는다
고린도교회는 은사에 부족함이 없었지만 동시에 분쟁하는 교회였다. 신령한 은사의 풍성함과 인격적·관계적 성숙은 별개의 문제일 수 있다는 냉정한 통찰이다.
❝
"나는 바울파, 나는 아볼로파"라는 말, 오늘날로 치면 특정 목회자나 강사를 따라 교회를 옮겨 다니는 모습과 비슷하죠. 바울이 정작 자기 이름으로 파벌이 생긴 걸 가장 불편해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에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거리끼는 것"(스칸달론)이라는 표현의 배경
23절의 σκάνδαλον(스칸달론)은 신명기 21장의 저주받은 자가 나무에 달린다는 규정(갈 3:13 참고)과 연결되어, 유대인에게 십자가에 달린 메시아라는 개념 자체가 신학적 모순처럼 들렸음을 보여준다.
2고린도라는 도시가 왜 하필 이런 분쟁의 온상이었을까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로 재건된 신흥 상업 도시로, 후원자-피후원자 문화와 수사학적 웅변가에 대한 숭배가 강했다. 새로 세워진 교회가 이런 도시 문화의 가치관을 교회 안으로 그대로 들여왔다고 보는 해석이 유력하다. 즉 1장의 분쟁은 신학적 논쟁이라기보다 당대의 사회적 관습이 복음의 가치관과 충돌한 사건에 가깝다.
1 CORINTHIANS 2

2장 · 성령이 아니면 알 수 없는 지혜

고린도전서 2장 —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만을 전함, 성령의 깊은 것을 통달하심
고전 2:1–16 사 64:4 · 사 40:13 말과 지혜가 아닌 성령의 나타남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5절
말과 지혜가 아닌 능력으로
바울이 처음 고린도에 왔을 때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했다고 말한다. 그의 말과 전도는 지혜의 설득력 있는 말로 하지 않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였으니, 이는 고린도 교인들의 믿음이 사람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다.
6–9절
온전한 자들 중에서 말하는 지혜
바울도 지혜를 말하지만 이 세대의 지혜가 아니요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다. 그는 은밀하게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니, 이는 창세 전에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다. 이 세대의 통치자들은 이 지혜를 알지 못하여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10–13절
성령이 통달하시는 하나님의 깊은 것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신다. 사람의 속에 있는 영이 아니면 사람의 사정을 알 수 없듯, 하나님의 영이 아니면 하나님의 사정을 아무도 알지 못한다. 우리는 세상의 영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온 영을 받아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되었다.
14–16절
육에 속한 사람과 신령한 사람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니 이는 그것이 그에게 어리석게 보이고 깨달을 수도 없기 때문이다.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신은 아무에게도 판단받지 않는다는 선언과 함께, 이사야 40:13을 인용하여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 주를 가르치겠느냐"고 묻고,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는 놀라운 결론으로 마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설득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
바울은 수사학의 도시 고린도에서 오히려 화려한 언변을 의도적으로 피했다. 복음의 능력은 말솜씨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에 달려 있다는 원칙은 오늘의 설교와 전도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② 십자가는 감추어졌던 지혜의 성취다
십자가는 뒤늦게 등장한 대안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하나님이 정하신 지혜의 실현이다. 인간의 눈에 우발적 비극으로 보이는 사건이 실은 영원한 계획의 정점이라는 시각이다.
③ 통치자들의 무지가 오히려 십자가를 이뤘다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통치자들의 승리가 아니라 그들의 무지의 산물이었다. 악의 세력이 자신도 모르게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는 데 쓰였다는 역설적 통찰이다.
④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성령의 선물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노력만으로는 하나님의 깊은 것에 이를 수 없다. 신학과 묵상은 필요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나님을 아는 것은 성령이 열어 주시는 은혜의 영역임을 겸손히 인정해야 한다.
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진 자의 정체성
신자는 세상의 지혜 체계 안에서 판단받는 존재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도리어 모든 것을 분별하는 존재로 부름받았다. 이는 열등감이 아니라 겸손한 확신의 근거가 된다.
❝
고린도는 수사학 학교가 유명했던 도시예요. 유창하게 말하는 사람이 곧 지혜로운 사람으로 대접받았죠. 그런 도시에서 바울이 일부러 서투르게 말하기로 작정했다는 게, 얼마나 파격적인 선택이었을지 상상해보면 좋아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이 세대의 통치자들"은 누구를 가리키는가
본문의 통치자들이 빌라도·헤롯 같은 정치 지도자만을 뜻하는지, 아니면 그 배후의 영적 세력(엡 6:12의 "통치자들과 권세들")까지 포함하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다. 어느 쪽으로 보든 본문의 핵심은 같다 — 세상에서 가장 강력해 보이는 권세도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스스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는 것이다.
고전 2:8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하나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2성령의 내적 조명과 인간 이성의 관계
14절은 이성 자체를 폄하하는 본문으로 오해되기 쉽지만, 정확히는 중생하지 않은 인간의 판단 능력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 신학사에서 이는 흔히 '성령의 내적 조명(illuminatio)' 교리로 발전했다 — 성경 본문 자체는 누구나 읽을 수 있지만, 그것을 구원에 이르는 진리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령의 내적 사역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1 CORINTHIANS 3

3장 · 육신에 속한 자들, 함께 짓는 집

고린도전서 3장 — 바울과 아볼로, 하나님의 밭·하나님의 집, 각자의 공적을 시험하는 불
고전 3:1–23 사 3:19–20 · 욥 5:13 동역자 됨과 심판의 불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4절
육신에 속한 신자들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을 신령한 자가 아니라 육신에 속한 자, 그리스도 안에서 어린아이들을 대하듯 대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한다. 단단한 음식이 아니라 젖을 먹였으니 이는 그들이 아직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시기와 분쟁이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이 여전히 육신에 속하여 사람을 따라 행함을 증명한다.
5–9절
바울과 아볼로는 동역자일 뿐
바울은 무엇이며 아볼로는 무엇이냐 — 그들은 각각 주께서 주신 대로 섬긴 사역자일 뿐이다. 바울은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자라나게 하신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다. 심는 이와 물 주는 이는 한 가지이며 각각 자기가 일한 대로 자기의 상을 받을 것이니,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동역자요 고린도 교인들은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다.
10–15절
각자의 공적을 시험하는 불
바울은 지혜로운 건축자와 같이 터를 닦아 두었고 이 위에 세우는 것은 각각 자기가 조심해야 한다. 이미 닦아 둔 터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능히 닦을 자가 없다. 금, 은, 보석으로 세우든 나무, 풀, 짚으로 세우든 각 사람의 공적이 불로 나타날 터인데 그 불이 각 사람의 공적을 시험할 것이라 한다. 공적이 남으면 상을 받고 불타면 해를 받되 자신은 구원을 받되 불 가운데서 받은 것 같으리라.
16–23절
너희는 하나님의 성전이라
고린도 교인 자신이 하나님의 성전이요 하나님의 성령이 그들 안에 거하신다. 누구든지 이 성전을 더럽히면 하나님이 그 사람을 멸하시리니, 성전은 거룩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 지혜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는 경고와 함께, 세상이나 생명이나 사망이나 다 고린도 교인의 것이요 그들은 그리스도의 것이요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것이라는 웅장한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은사의 유무와 영적 성숙은 별개다
고린도교회는 은사가 풍성했지만(1장) 여전히 젖먹이 수준의 영적 상태였다(3장). 화려한 현상과 인격적 성숙을 혼동하지 않는 분별이 필요하다.
② 사역자는 심고 물 주는 존재일 뿐,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다
성공적인 사역의 결과를 특정 인물의 능력으로 돌리는 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신학이다. 결과에 대한 궁극적 공로는 언제나 하나님께 있다.
③ 터는 이미 놓였다, 어떻게 세우느냐가 문제다
그리스도라는 터는 논쟁의 대상이 아니다. 관건은 그 위에 무엇으로, 어떤 태도로 세워 가느냐다. 사역의 양보다 질과 진정성이 시험대에 오른다.
④ 심판의 불은 구원을 위협하지 않되 공적을 정련한다
구원 자체는 은혜로 확정되지만, 사역의 내용과 방식은 반드시 평가받는다. 이는 두려움이 아니라 신실함으로 사역하도록 이끄는 건강한 긴장이다.
⑤ 공동체 자체가 거룩한 성전이다
성전은 건물이 아니라 성령이 거하시는 공동체다. 분쟁으로 공동체를 훼손하는 것은 곧 하나님의 거처를 더럽히는 심각한 죄로 취급된다.
❝
"나는 자라게 하시는 하나님만 의지한다"는 말, 사역의 결과에 일희일비하기 쉬운 우리에게 큰 숨통을 틔워주는 말씀이에요. 심고 물 주는 건 우리 몫이지만, 자라나게 하는 신비는 끝내 하나님의 영역이라는 거죠.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너희는 하나님의 성전"(16절)의 단수·복수 문제
헬라어 원문에서 "너희"(휘메이스)는 복수형이며 "성전"(나오스)도 단수로 쓰였다 — 즉 개인이 각자 성전인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하나의 성전이라는 뜻이다. 이는 고린도전서 6:19의 "너희 몸은 성령의 전"(개인의 몸을 가리키는 맥락)과 짝을 이루면서도 강조점이 다르다. 3장의 성전은 개인 경건이 아니라 공동체의 거룩함과 연합을 겨냥하고 있다.
2"세상 지혜로 스스로 속이지 말라"(18절)와 반전의 논리
바울은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 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고 역설적으로 권한다. 이는 1장부터 이어지는 '세상 지혜와 하나님 지혜의 전복' 주제의 결론부에 해당한다.
고전 3:19
이 세상 지혜는 하나님께 미련한 것이니 기록된 바 지혜 있는 자들로 하여금 자기 꾀에 빠지게 하시는 이라 하였고
1 CORINTHIANS 4

4장 · 그리스도의 일꾼, 십자가를 진 사도

고린도전서 4장 — 청지기의 자세, 사도의 고난, 아버지의 심정으로 하는 권면
고전 4:1–21 시 37:6 맡은 자의 신실함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5절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
사람들은 바울과 아볼로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청지기로 여겨야 한다.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다. 바울은 사람에게 판단받는 것도, 심지어 자기 자신을 판단하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 자기를 판단하실 이는 오직 주님이시니, 때가 이르기 전에 판단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6–13절
사도의 낮아짐과 고린도 교인의 교만
바울은 자신과 아볼로를 예로 들어 "기록된 말씀 밖으로 넘어가지 말라"고, 서로 대적하여 교만하지 말라고 권한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미 배부르고 이미 부요하며 왕 노릇 한다고 자부하지만, 사도들은 "죽이기로 작정된 자 같이 세상의 구경거리"가 되어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맞으며 정처 없이 다니고 있다.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이 되었다는 극적인 대조가 이어진다.
14–17절
아버지의 심정으로 하는 권면
이 말은 부끄럽게 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녀 같이 권하려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어도 아버지는 많지 않으니, 복음으로써 그들을 낳은 자는 바울이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를 보내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행사를 각 교회에서 가르치는 것과 같이 생각나게 하려 한다.
18–21절
권세인가 사랑과 온유한 마음인가
어떤 이들은 바울이 다시 오지 않을 것처럼 교만해졌으나, 주께서 허락하시면 바울이 속히 가서 그 교만한 자들의 말이 아니라 능력을 알아보겠다고 한다. 하나님 나라는 말에 있지 않고 오직 능력에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으로 그는 묻는다 — "매를 가지고 너희에게 나아가랴 사랑과 온유한 마음으로 나아가랴."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충성이다
성과나 인기가 아니라 맡겨진 것에 대한 신실함이 사역자를 평가하는 참된 기준이다. 사람의 평판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자유는 여기서 나온다.
② 지금 판단하지 말라, 때가 있다
최종적 평가는 주님의 시간에 이루어진다. 성급한 인간의 판단에 정체성을 의탁하지 않는 것이 건강한 사역자의 자세다.
③ 성공의 신학과 십자가의 신학은 충돌한다
고린도 교인들의 "이미 왕 노릇 한다"는 자부심과 사도들의 실제 고난 사이의 극명한 대조는, 화려함을 영적 성숙의 증거로 삼는 오늘의 유혹에도 동일하게 경종을 울린다.
④ 참된 권위는 사랑에서 나온다
바울은 스승이 아니라 아버지로서 말한다. 권징과 권면 모두 궁극적으로 사랑에 뿌리내려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공허한 권세 다툼이 될 뿐이다.
⑤ 말이 아니라 능력이 하나님 나라의 증거다
화려한 언변과 자기주장이 아니라 실제 삶에서 나타나는 성령의 능력과 열매가 참된 영적 권위의 표지다.
❝
"매를 가지고 갈까, 사랑으로 갈까"라는 마지막 질문이 참 인상적이에요. 바울에게 권징은 목적이 아니라 최후의 수단이었다는 게, 오늘날 교회의 권위 행사 방식에도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세상의 구경거리"(9절), 로마 원형경기장의 이미지
헬라어 θέατρον(테아트론)은 로마의 개선 행렬에서 맨 마지막에 처형당하도록 끌려가는 포로들의 이미지를 배경으로 한다. 바울은 사도들을 그런 포로에 비유하며, 세상 눈에 가장 낮고 수치스러운 자리가 실은 그리스도를 위한 자리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2고린도 교인의 "이미 배부르고 이미 왕 노릇"이라는 조롱 섞인 인용
8절의 표현은 학자들 사이에서 바울이 고린도 교인들의 실제 발언이나 태도를 아이러니하게 재인용한 것으로 널리 이해된다. 이는 '이미와 아직'의 종말론(already-not yet)을 오해하여, 아직 완성되지 않은 영광을 이미 완성된 것처럼 착각하는 신학적 오류에 대한 비판이기도 하다.
1 CORINTHIANS 5

5장 · 누룩을 내버리라

고린도전서 5장 — 음행 사건에 대한 침묵, 교회의 징계, 누룩을 내버리라는 명령
고전 5:1–13 출 12:15 · 신 17:7 공동체의 거룩함과 징계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2절
이방인 중에도 없는 음행
어떤 사람이 그 아버지의 아내를 취했다는, 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음행이 교회 안에 있는데도 고린도 교인들은 오히려 교만하여 있다. 바울은 그들이 오히려 통한히 여겨 이런 일 행한 자를 공동체에서 쫓아냈어야 했다고 지적한다.
3–5절
주의 이름으로 내리는 판단
바울은 몸으로는 떠나 있으나 영으로는 함께 있어 이미 이 일을 행한 자를 판단하였다. 예수의 이름과 능력으로 모여 그 사람을 사탄에게 내주어 육신은 멸하고 영은 주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한다는 강력한 조치를 명한다.
6–8절
적은 누룩이 온 덩이에 퍼진다
고린도 교인들의 자랑은 옳지 않으니, 적은 누룩이 온 덩어리를 부풀게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유월절 어린양이신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으니, 묵은 누룩 곧 악독과 악의의 누룩을 내버리고 순전함과 진실함의 누룩 없는 떡으로 명절을 지키라고 권한다.
9–13절
교회 안과 밖의 구분
이전 편지에서 음행하는 자들을 사귀지 말라 했던 것은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을 뜻한 것이 아니다 — 그렇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욕을 부리거나 우상 숭배를 하면서도 회개하지 않으면 사귀지도, 함께 먹지도 말라는 것이다. 교회 밖 사람은 하나님이 심판하시려니와, 교회 안의 악한 사람은 공동체가 마땅히 내쫓아야 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죄에 대한 관용이 곧 사랑은 아니다
고린도 교인들은 이 사건을 방치하며 이를 관대함으로 여겼지만, 바울은 이를 슬퍼하고 통회해야 할 일로 규정한다. 침묵과 방관이 사랑의 증거가 아니라는 냉정한 교훈이다.
② 공동체의 거룩함은 개인의 자유보다 우선한다
한 사람의 죄를 방치하는 것이 공동체 전체의 건강에 영향을 미친다는 누룩의 비유는, 개인주의적 신앙관에 대한 강력한 반박이다.
③ 징계의 목적은 파괴가 아니라 회복이다
사탄에게 내주는 극단적 표현조차 궁극적으로는 그 사람의 구원을 목표로 한다. 교회의 권징은 언제나 회복을 지향해야 한다.
④ 교회 안과 밖의 기준은 다르다
바울은 세상 사람들의 죄를 판단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교회의 도덕적 요구는 우선적으로 신앙 공동체 내부를 향한다.
⑤ 그리스도는 우리의 유월절 어린양이다
묵은 누룩을 버리고 새 떡으로 명절을 지키라는 권면은, 그리스도의 희생 위에서 살아가는 신자의 삶이 마땅히 순전함과 진실함으로 특징지어져야 함을 보여준다.
❝
이 장면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어요. 그런데 바울이 진짜 문제 삼은 건 죄 자체보다, 그 죄 앞에서 아무렇지 않아 하는 교회의 무감각이었다는 걸 기억하면 좋겠어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그 육신은 멸하고"(5절)의 정확한 의미
이 구절의 해석은 크게 둘로 갈린다. 하나는 육체적 질병이나 죽음을 뜻한다는 견해(사탄의 영역인 세상에 넘겨져 육체적 고난을 겪는다는 것), 다른 하나는 교회의 보호막에서 벗어나 세상에 노출됨을 뜻한다는 견해다. 어느 쪽이든 목적절 "영은 주의 날에 구원을 받게 하려 함"이 이 조치의 궁극적 방향을 분명히 한다 — 처벌이 아니라 회개를 통한 회복이다.
2"이방인 중에서도 없는 음행"이라는 표현의 충격
고린도가 성적으로 매우 개방적인 도시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 표현은 상당한 무게를 지닌다. 로마법조차 계모와의 결합을 근친상간으로 엄격히 금지했는데, 그리스도인 공동체 안에 이런 일이 있고도 아무 조치가 없었다는 것은 세상의 도덕 기준보다도 못한 상태에 빠졌음을 의미한다.
1 CORINTHIANS 6

6장 · 성도끼리 소송하는 부끄러움

고린도전서 6장 — 세상 법정에서의 소송, 몸은 성령의 전, 음행을 피하라
고전 6:1–20 사 6:9–10 성도의 소송과 몸의 신학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8절
형제가 형제를 고발하다
성도가 이웃과 다투는 일이 있을 때 불의한 자들 앞에서 소송을 하고 성도 앞에서 하지 아니하느냐고 바울은 책망한다. 성도가 장차 세상과 천사까지도 판단할 터인데 지극히 작은 일 하나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는 것이다. 차라리 불의를 당하고 차라리 속는 것이 낫다는 강한 결론이 뒤따른다.
9–11절
불의한 자는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
음행하는 자, 우상 숭배하는 자, 간음하는 자 등 여러 죄의 목록이 나열되며 이런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한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곧바로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영으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받았느니라"는 은혜의 선언이 뒤따른다.
12–14절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
고린도 교인들의 슬로건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는 말을 바울이 되받아 "그러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요... 내가 무엇에든지 얽매이지 아니하리라"고 제한을 둔다. 몸은 음란을 위한 것이 아니요 오직 주를 위하며, 주는 몸을 위하시고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우리도 다시 살리실 것이다.
15–20절
너희 몸은 성령의 전
우리의 몸은 그리스도의 지체이며, 창세기 2:24을 인용하여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는 성적 연합의 의미를 설명한다. 음행을 피하라는 명령과 함께, "너희 몸은...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이라는 선언, 그리고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공동체는 스스로 화해하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세상 법정에 의존하기 전에 성도 간의 문제를 성숙하게 다루는 능력이 교회 안에 있어야 한다. 이는 정의의 포기가 아니라 관계 회복에 대한 우선적 헌신이다.
② 은혜는 과거를 덮되 정체성을 새롭게 한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라는 과거형은, 죄의 목록에 열거된 자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정체성을 얻었음을 보여준다. 과거가 현재를 규정하지 않는다.
③ 자유는 무제한이 아니라 유익과 얽매임 여부로 판단된다
"모든 것이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라는 원칙은 그리스도인의 자유가 방종이 아니라 유익과 자유로움(무엇에도 종노릇하지 않음)이라는 기준으로 다스려짐을 보여준다.
④ 몸은 하나님과 무관한 영역이 아니다
영지주의적 이원론과 달리, 성경은 몸을 부활의 대상이자 성령이 거하시는 거룩한 처소로 본다. 몸으로 행하는 모든 것은 영적으로 무의미하지 않다.
⑤ 값 주고 산 자의 정체성
성도는 자기 자신의 소유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고 사신 존재다. 이 정체성은 몸의 사용 방식에 대한 근본적 재구성을 요구한다.
❝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라는 말, 고린도 교인들이 자유를 내세우며 즐겨 쓰던 구호였던 것 같아요. 바울이 그 말을 그대로 받아서 "그러나 다 유익한 것은 아니다"라고 되치는 방식이 참 예리하죠.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성도가 세상을 판단하리라"(2절)는 무슨 뜻일까
이 표현은 다니엘 7장의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들이 나라를 얻으리라"는 종말론적 전통과 연결된다. 신자가 그리스도와 함께 마지막 날 심판에 참여할 것이라는 이 확신이, 지금 사소한 세상 문제 하나 다루지 못하는 것에 대한 강한 대조로 사용된다.
고전 6:3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하물며 세상 일이랴
2음행에 관한 경고가 유독 이 서신에 강하게 나오는 이유
고린도는 아프로디테 신전의 신전 매춘으로 유명했다는 전통적 설명이 있으나, 최근 고고학 연구는 이 신전 매춘의 규모가 과장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한다. 다만 항구 도시로서의 유동 인구와 상업적 성 산업이 실재했던 것은 분명하며, 이런 도시 문화가 새 신자들의 윤리 의식에 실제로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보는 데는 무리가 없다.
1 CORINTHIANS 7

7장 · 부르심 그대로 살라

고린도전서 7장 — 결혼과 독신, 이혼과 재혼, 부르심 그대로 행하라
고전 7:1–40 창 2:24 혼인·독신에 관한 권면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7절
부부의 의무와 절제
고린도 교인들의 편지에서 제기된 질문("남자가 여자를 가까이 아니함이 좋다")에 답하며, 음행을 피하기 위해 남편과 아내가 각각 배우자의 권리를 다하되 서로 분방하지 말라고 권한다. 다만 기도에 전념하기 위한 일시적 합의는 가능하나 다시 합하라 하니, 이는 사탄이 절제 못함을 틈타지 못하게 하려 함이다.
8–16절
독신자·과부, 그리고 믿지 않는 배우자
독신자와 과부에게는 바울처럼 지내는 것이 좋으나 절제할 수 없거든 결혼하라 한다. 이미 결혼한 자들에게는 주의 명령으로 이혼하지 말라 명하며, 믿지 않는 배우자가 함께 살기를 원하면 갈라서지 말라고 한다 — 믿는 배우자로 말미암아 믿지 않는 배우자가 거룩하게 되기 때문이다. 다만 믿지 않는 자가 떠나고자 하면 붙잡지 말라 한다.
17–24절
부르심 그대로 행하라
각 사람은 주께서 나눠 주신 대로, 부르실 때의 그 상태 그대로 행하라는 원칙이 반복해서 강조된다. 할례자나 무할례자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그 부르심의 자리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그 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25–40절
임박한 환난과 독신의 유익
처녀에 대해서는 주의 계명이 아니라 자신의 의견임을 밝히며, 임박한 환난 때문에 그 상태 그대로 지내는 것이 좋다고 권한다. 결혼하지 않은 자는 주의 일에, 결혼한 자는 세상 일과 배우자를 기쁘게 하는 일에 마음이 나뉜다. 이는 결혼을 낮추려는 것이 아니라 각자 하나님께 받은 은사가 다름을 인정하며 더 유익한 길을 제안하는 목회적 권면이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결혼과 독신 모두 하나님의 선한 부르심이다
바울은 어느 한쪽을 죄악시하지 않는다. 각자에게 주어진 은사와 상황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는 두 가지 정당한 방식이 있을 뿐이다.
② 몸은 배우자와의 관계 안에서 상호적이다
부부관계에서 몸의 권리가 일방적이지 않고 상호적이라는 원칙(4절)은, 당대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상당히 파격적인 평등의 원리를 담고 있다.
③ 믿는 배우자의 존재가 가정에 거룩함을 가져온다
혼인 관계가 깨어지지 않는 한, 믿는 배우자로 인해 믿지 않는 배우자와 자녀까지도 거룩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소망의 메시지다.
④ 부르심의 자리 자체보다 그 자리에서의 신실함이 중요하다
사회적 지위나 신분의 변화 자체를 추구하기보다, 지금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원칙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지혜다.
⑤ 목회적 권면과 절대적 명령을 구분하는 정직함
바울은 자신의 의견과 주의 명령을 스스로 구분해서 말한다. 이는 성경을 다룰 때 본문의 장르와 화자의 의도를 세심하게 살펴야 함을 보여주는 모범이다.
❝
7장을 읽을 때 놓치기 쉬운 게, 바울이 자기 의견과 주의 명령을 스스로 구분해서 말한다는 점이에요. 모든 구절을 똑같은 무게의 절대 명령으로 읽으면 오히려 본문의 의도를 놓치게 돼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임박한 환난"(26절)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가리킬까
학자들은 이를 두고 클라우디우스 황제 시대의 로마 제국 전역의 기근(AD 40년대 후반), 혹은 초대교회가 일반적으로 겪던 종말론적 긴박감과 산발적 박해의 정황으로 다양하게 해석한다. 어느 쪽이든 이 구절은 결혼 자체에 대한 영구적 폄하가 아니라, 특정한 시대적 위기 상황에서의 실용적 조언으로 이해하는 것이 본문에 충실한 독법이다.
2"거룩하게 되나니"(14절)는 믿지 않는 배우자의 구원을 의미하는가
이 구절은 믿지 않는 배우자나 자녀가 자동으로 구원받는다는 뜻으로 오해되기 쉽다. 그러나 문맥상 이는 관계적·언약적 거룩함을 말하는 것으로, 믿는 배우자와의 결합을 통해 그 가정이 하나님의 은혜의 영향권 안에 놓이게 된다는 의미에 가깝다. 개인의 구원은 각자의 믿음에 달려 있되, 가정 전체가 복음의 영향 아래 있게 된다는 목회적 소망의 표현이다.
1 CORINTHIANS 8

8장 · 지식보다 사랑으로

고린도전서 8장 — 우상의 제물에 관한 문제, 지식과 사랑, 약한 형제를 배려함
고전 8:1–13 신 6:4 자유와 사랑의 균형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3절
지식은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세운다
우상의 제물에 관한 지식이 다 있는 줄 알지만, "지식은 교만하게 하며 사랑은 덕을 세우나니"라는 원칙이 먼저 제시된다. 무엇을 아는 줄로 생각하는 자는 아직 마땅히 알 것을 알지 못하는 자요,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도 그 사람을 아신다.
4–6절
신은 하나이시다
우상은 세상에 아무것도 아니며 신도 오직 하나이신 하나님뿐임을 재확인한다.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신자에게는 만물이 그로부터 있고 우리도 그를 위하는 한 하나님 아버지와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은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실 뿐이다.
7–8절
모든 사람에게 지식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이 지식이 모든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어서, 어떤 이는 우상에 대한 습관 때문에 그 제물을 여전히 우상의 것으로 여기고 먹으므로 그 양심이 약하여져 더러워진다. 음식이 하나님 앞에 우리를 세우지 못하니, 먹지 않는다고 부족하거나 먹는다고 풍족한 것도 아니다.
9–13절
자유가 약한 자에게 걸림돌이 될 때
바울은 이 자유가 도리어 약한 자들에게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 경고한다. 지식 있는 자가 우상의 집에 앉아 먹는 것을 약한 자가 보고 그 양심에 반해 우상 제물을 먹게 되면, 그 약한 형제가 그리스도로 인해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은 만일 음식이 형제를 실족하게 한다면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극단적 결단을 선언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옳은 지식도 사랑 없이는 파괴적일 수 있다
신학적으로 정확한 지식이라 해도, 그것이 공동체 안에서 어떻게 적용되느냐에 따라 세우는 도구가 될 수도, 무너뜨리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② 자유의 한계는 형제 사랑에서 나온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개인의 권리 주장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자유의 행사가 공동체의 약한 지체에게 미치는 영향까지 고려하는 것이 성숙한 자유다.
③ 신학적으로 옳다고 실천적으로 항상 유익한 것은 아니다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신학은 정확하지만, 그 신학을 무분별하게 적용하면 다른 이에게 해가 될 수 있다. 진리와 지혜로운 적용은 별개의 문제다.
④ 강한 자의 책임은 약한 자를 배려하는 데 있다
영적으로 더 자유롭고 지식이 많은 사람일수록, 그 자유를 절제할 책임도 함께 커진다는 역설적 원리다.
⑤ 궁극적 기준은 그리스도를 위한 형제 사랑이다
바울의 극단적 결단("영원히 고기를 먹지 아니하리라")은 원칙의 문제가 아니라, 형제 한 사람을 실족시키지 않는 것이 자신의 자유보다 더 소중하다는 사랑의 우선순위를 보여준다.
❝
"내가 아는 것이 옳으니 마음대로 행동해도 된다"는 생각, 신앙생활에서 은근히 자주 마주치는 유혹이에요. 바울은 옳고 그름을 넘어 '이 행동이 형제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까'까지 고려하라고 하죠.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우상의 제물이 실제로 시장에서 어떻게 유통되었을까
고대 제사에서 바쳐진 짐승의 고기 일부는 정작 다 태워지지 않고 시장(μάκελλον, 마켈론)에서 일반 식용으로 판매되었다. 즉 고린도의 그리스도인들은 일상적으로 시장에서 고기를 살 때마다 그것이 우상에게 바쳐졌던 것인지 아닌지 확인하기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었다. 이는 8장의 논의가 특별한 예외 상황이 아니라 매우 일상적이고 실제적인 딜레마였음을 보여준다.
210장의 논의와 8장의 관계 — 모순처럼 보이는 두 본문
8장은 약한 형제를 배려해 자유를 절제하라고 하지만, 10:25-27에서는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으라고 한다. 이는 모순이 아니라 상황의 차이다 — 개인적으로 아무도 문제 삼지 않는 상황(10장)과 그 행동을 보고 약한 형제가 실족할 수 있는 상황(8장)을 구분해서 다루는 것이다.
1 CORINTHIANS 9

9장 · 권리를 내려놓은 사도

고린도전서 9장 — 사도의 권리, 복음을 위한 자발적 절제, 상을 받기 위한 절제
고전 9:1–27 신 25:4 자유와 자발적 절제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14절
사도로서 마땅한 권리들
바울은 자신이 자유인이요 사도이며 예수를 본 자임을 확인한 후, 사도로서 먹고 마실 권리,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 생활비를 받을 권리가 있음을 조목조목 논증한다. 군인의 비유, 포도원의 비유, 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는 율법(신 25:4)까지 인용하며 복음 전하는 자들이 복음으로 살리라는 주의 명하신 바를 확인한다.
15–18절
권리를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노라
그러나 바울은 "내가 이 여러 가지 권리 가운데 하나도 쓰지 아니하였다"고 선언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은 자랑할 것이 없으니 부득불 할 일이지만, 값없이 복음을 전함으로 자신에게 있는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이 오히려 자신의 상이라고 말한다.
19–23절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되어
모든 사람에게서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다. 유대인에게는 유대인처럼,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 없는 자처럼,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처럼 — 이는 아무쪼록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 함이요,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다.
24–27절
썩지 않을 승리자의 관을 위하여
경기장에서 달리는 자들이 다 달리되 오직 상을 받는 자는 하나이니, 너희도 상을 받도록 달음질하라고 권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으려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한다. 바울 자신도 자기 몸을 쳐 복종하게 하니, 이는 남에게 전파한 후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권리를 가진 자만이 그 권리를 진정으로 내려놓을 수 있다
바울은 권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 오히려 정당한 권리를 충분히 논증한 후 자발적으로 내려놓음으로써, 그 절제가 결핍이 아니라 선택임을 분명히 한다.
② 복음의 자유로움을 지키기 위한 전략적 절제
순회 철학자들의 유료 강연 문화 속에서, 바울은 값없는 복음 전파를 통해 복음 자체와 자신의 동기를 구별했다. 사역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실천적 지혜다.
③ 문화적 적응은 타협이 아니라 복음을 위한 섬김이다
"모든 사람에게 모든 것이 된다"는 원칙은 진리를 굽히는 것이 아니라, 복음이 다양한 사람에게 다가갈 수 있도록 자신을 낮추는 선교적 유연성이다.
④ 구원의 확신과 자기 절제는 공존한다
바울조차 자기 몸을 쳐 복종시킨다는 표현은, 구원의 확신이 나태함의 근거가 아니라 오히려 끝까지 신실하게 달려가야 할 동기가 됨을 보여준다.
⑤ 영원한 상을 바라보는 삶의 긴박함
이스트미아 경기(고린도 인근에서 열리던 유명한 운동 경기)의 이미지를 빌려, 썩을 관과 썩지 않을 관을 대조하며 신앙생활의 진지함과 목적의식을 촉구한다.
❝
고린도 근처에서 2년마다 열리던 이스트미아 경기는 고린도 교인들에게 아주 익숙한 이미지였을 거예요. 바울이 굳이 운동 경기 비유를 쓴 것도, 그들의 삶의 배경에 딱 맞춘 것이었죠.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내가 복음에 참여하고자 함이라"(23절)의 의미
이 구절은 바울이 마치 아직 구원의 확신이 없는 것처럼 오해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문맥상 이는 개인의 구원 여부가 아니라, 복음 사역의 결실과 기쁨에 함께 참여하는 것을 뜻한다. 27절의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한다"는 표현도 마찬가지로, 구원의 상실 가능성보다는 사역자로서 자격을 잃고 상을 받지 못할 가능성에 대한 경계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다.
2"곡식을 밟아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9절)는 왜 인용되었나
신명기 25:4의 이 규정은 원래 짐승 학대 금지법이지만, 바울은 이를 복음 사역자의 생활비 지원을 정당화하는 유비로 사용한다. 일하는 자가 그 수고의 열매를 나눠 받는 것이 당연한 하나님의 원리라는 뜻으로 확장 적용한 것이다. 이런 해석 방식은 고대 유대교의 미드라쉬적 성경 해석 전통과도 맥이 닿아 있다.
1 CORINTHIANS 10

10장 · 광야의 경고, 우상숭배를 피하라

고린도전서 10장 — 이스라엘의 광야 실패, 우상숭배 경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
고전 10:1–33 출 32:6 · 민 25:1–9 광야 세대의 교훈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13절
광야 세대의 실패는 우리의 본보기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바다를 지나며 침례를 받고 신령한 음식과 음료(반석에서 나는 물, 그 반석은 그리스도)를 받았으나, 그들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사 광야에서 멸망했다. 이는 우리의 본보기가 되어 악을 즐겨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말라, 음행하지 말라, 주를 시험하지 말라, 원망하지 말라는 네 가지 경고가 이어진다. 그러나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 밖에는 허락하지 않으시고 피할 길도 내신다는 소망의 약속으로 마무리된다.
14–22절
주의 상과 귀신의 상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명하며, 축복의 잔이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요 떡을 떼는 것이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라고 말한다. 이스라엘이 제물을 먹음으로 제단에 참여자가 되듯,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할 수 없다는 원칙이 제시된다.
23–30절
모든 것이 가하나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
다시 한 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은 아니요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다"라는 원칙이 반복된다. 각자 자기의 유익이 아니라 남의 유익을 구하라 한다. 시장에서 파는 것은 양심을 위해 묻지 말고 먹되, 누군가 우상의 제물이라고 알려주면 그 알려준 자와 그의 양심을 위해 먹지 말라고 한다.
31–33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는 결론적 원칙이 제시된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자신의 유익이 아니라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하여 그들로 구원을 얻게 하라는 권면이 뒤따른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특별한 은혜의 경험이 안전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는다
침례와 신령한 양식을 받았던 이스라엘도 우상숭배로 넘어졌다. 신앙의 외적 표지가 있다고 해서 내적 신실함이 자동으로 보장되지 않는다는 경고다.
② 하나님은 감당할 시험 밖에 허락하지 않으신다
13절의 약속은 시험 자체를 없애 주신다는 뜻이 아니라, 감당할 수 있는 한도와 피할 길을 함께 마련해 주신다는 신실하신 성품에 대한 확신이다.
③ 성찬은 실제적 참여의 의미를 지닌다
떡과 잔을 나누는 것이 단순한 상징이 아니라 그리스도와의 실질적 교제를 뜻한다는 이해는, 성찬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는 경고와 연결된다.
④ 신앙의 자유는 타인의 유익을 향해야 한다
자유가 있다는 사실과 그 자유를 언제 행사할지에 대한 지혜는 다른 문제다. 자기 권리 주장이 아니라 이웃의 구원과 덕 세움이 최종 기준이 되어야 한다.
⑤ 일상의 모든 행위가 예배의 영역이다
먹고 마시는 지극히 평범한 일상까지도 하나님의 영광이라는 궁극적 목적 아래 놓인다는 것은, 삶 전체를 예배로 통합하는 신학적 비전이다.
❝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는 말씀, 시험 자체가 없어진다는 뜻이 아니라 감당할 만큼만 허락하시고 빠져나갈 길도 함께 준비하신다는 뜻이에요. 힘들 때 붙잡을 만한 약속이죠.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4절)의 해석
바울은 광야에서 물을 낸 반석(출 17장, 민 20장)을 그리스도와 동일시한다. 이는 유대 전통 일부에서 발전했던 '따라다니는 반석' 전설(반석이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 내내 함께 이동했다는 랍비 전통)을 배경으로, 그리스도께서 구약 시대에도 이미 자기 백성과 함께하며 그들을 돌보신 선재하신 분임을 시사하는 것으로 읽힌다.
고전 1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2주의 상과 귀신의 상이 겸할 수 없다는 원칙의 실제 적용
이는 우상 신전에서 열리는 제사 식사에 실제로 참여하는 것(단순히 시장에서 파는 고기를 먹는 것과는 다른 차원)을 금하는 것이다. 즉 8장과 10장 후반부(시장 음식)의 관용적 태도와, 10장 전반부(신전 제사 참여)의 엄격한 금지 사이에는 모순이 없다 — 우상 숭배 행위에 실질적으로 참여하는 것과 단지 그 고기를 먹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로 구분되기 때문이다.
1 CORINTHIANS 11

11장 · 질서 있게 함께 모이라

고린도전서 11장 — 여자의 머리 문제, 주의 만찬의 오용과 바른 시행
고전 11:1–34 창 1:27 · 창 2:18–23 머리 됨의 질서와 성찬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16절
머리를 가리는 문제
바울은 그리스도는 각 남자의 머리요 남자는 여자의 머리요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머리라는 머리 됨의 질서를 제시하며, 당시 문화 속에서 예배 중 남녀의 머리를 가리는 관습에 관한 권면을 편다. 남자가 여자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에게서 났으나,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으니 만물이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상호 의존의 원리로 균형을 잡는다.
17–22절
주의 만찬이 아닌 자기 만찬
모일 때에 유익이 되지 못하고 도리어 해로운 상황을 지적한다. 교회에 분쟁이 있다는 말을 들었고 어느 정도는 믿는다며, 먼저 자기 만찬을 먹으므로 어떤 사람은 시장하고 어떤 사람은 취한다는 부끄러운 상황을 책망한다. 하나님의 교회를 업신여기고 빈궁한 자들을 부끄럽게 하느냐는 강한 질책이 이어진다.
23–26절
주께 받은 것을 그대로 전함
바울은 주께 받은 것을 그대로 전한다며 최후의 만찬 전승을 인용한다 —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내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이 잔은 내 피로 세운 새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이 떡을 먹으며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것이 된다.
27–34절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에 대한 경고
합당하지 않게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 먹고 마셔야 한다. 주의 몸을 분별하지 못하고 먹고 마시는 자는 자기의 죄를 먹고 마시는 것이니, 이 때문에 병든 자와 잠든(죽은) 자가 적지 않다고 경고한다. 서로 기다리라는 실천적 권면으로 마무리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상호 의존 속의 질서, 위계가 아닌 관계의 원리
머리 됨의 질서는 우열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주 안에는 남자 없이 여자만 있지 않고 여자 없이 남자만 있지 않다"는 상호성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② 예배 형식보다 그 안의 사랑과 공평이 우선이다
주의 만찬이 사회적 신분 차별의 무대가 되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주의 만찬"이라 불릴 수 없다는 바울의 단호함은 예배의 본질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진다.
③ 성찬은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선포하는 행위다
떡과 잔은 단순한 기념이 아니라 "주의 죽으심을 오실 때까지 전하는" 선포적 행위이며, 이는 과거의 사건을 현재화하고 미래의 소망을 향하게 하는 시간을 관통하는 예전이다.
④ 성찬 앞에서의 자기 성찰
합당하지 않게 참여하는 것에 대한 경고는 두려움을 조장하려는 것이 아니라, 성찬의 의미를 진지하게 대하며 회개와 화해 가운데 나아오라는 목회적 권면이다.
⑤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가 함께 먹는 식탁
초대교회 성찬의 사회적 함의는, 서로 다른 계층의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실제로 하나의 식탁 공동체를 이루어야 한다는 급진적 평등의 비전을 담고 있다.
❝
성찬이 원래는 실제 저녁 식사와 함께 이뤄졌다는 걸 알면, 이 장의 갈등이 훨씬 더 생생하게 다가와요. 누구는 배불리 먹고 누구는 굶주린 채 앉아 있는 식탁 — 그게 '주의 만찬'이라 불릴 수 있었을까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천사들 때문에"(10절)라는 표현은 무슨 뜻일까
이 구절은 신약에서 가장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 중 하나로 꼽힌다. 창조 질서를 지켜보는 천사들 앞에서 합당한 모습을 갖추라는 뜻이라는 견해, 쿰란 문헌에 나타나는 예배 중 천사의 임재 개념과 연관된다는 견해 등이 제시되지만 학계의 합의는 없다. 확실하지 않은 본문 앞에서 성급한 결론보다 겸손한 유보가 필요한 대목이다.
2머리 가리는 관습에 대한 현대적 적용 문제
1세기 고린도에서 머리를 가리는 것은 사회적 신분과 정숙함을 나타내는 강한 문화적 기호였다. 오늘날 많은 신학자들은 이 본문의 항구적 신학 원리(상호 존중과 질서 있는 예배)와 시대·문화적 표현 방식(머리 수건이라는 구체적 관습)을 구분해서 적용해야 한다고 본다. 이는 성경 해석에서 원리와 적용을 어떻게 구분할 것인가라는 해석학적 과제를 잘 보여주는 본문이다.
1 CORINTHIANS 12

12장 · 한 몸 많은 지체

고린도전서 12장 — 성령의 다양한 은사, 한 성령 한 몸, 지체 됨의 상호성
고전 12:1–31 롬 12:4–5 은사의 다양성과 한 몸의 연합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3절
예수를 주시라 시인함의 기준
바울은 신령한 것에 대해 알기를 원한다며, 예수를 저주할 자라고 하는 것도,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있는 것도 다 성령으로만 가능함을 말한다. 이는 성령의 참됨을 분별하는 가장 근본적인 기준이 된다.
4–11절
은사는 여럿이나 성령은 하나
은사는 여러 가지나 성령은 같고, 직분은 여러 가지나 주는 같으며, 역사는 여러 가지나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같다는 삼위일체적 구조가 제시된다.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 영들 분별함, 방언, 방언 통역 등이 나열되며, 이 모든 것은 같은 한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는 것이다.
12–20절
한 몸에 많은 지체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다.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다 한 성령으로 침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다. 발이 손더러 나는 손이 아니니 몸에 속하지 아니한다 할 수 없고, 눈이 손더러 내가 너를 쓸 데 없다 할 수 없으니, 하나님이 그 원하시는 대로 지체를 각각 몸에 두셨다.
21–31절
약해 보이는 지체가 더욱 요긴하다
오히려 몸에서 더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욱 요긴하며, 덜 귀히 여기는 그것들을 더욱 귀한 것들로 입혀 준다. 하나님이 몸을 고르게 하여 분열이 없고 서로 같이 돌보게 하셨으니, 한 지체가 고통을 받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고통을 받고 한 지체가 영광을 얻으면 모든 지체가 함께 즐거워한다. 교회 안의 다양한 직분(사도, 선지자, 교사 등)이 나열되며, 사랑이라는 더 좋은 길을 향한 전환이 예고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성령의 임재를 확인하는 근본 기준은 예수를 주로 고백함이다
화려한 은사 현상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것이 성령 역사의 가장 우선적이고 근본적인 표지다.
② 다양성의 근원은 하나다
은사, 직분, 역사가 각기 다르지만 그 근원(성령, 주, 하나님)은 하나라는 삼위일체적 구조는, 다양성이 분열의 근거가 아니라 하나 됨 안에서의 풍성함임을 보여준다.
③ 은사는 개인의 우월함이 아니라 공동체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은사는 "각 사람에게 유익하게 하려"(7절) 주어진다. 은사를 자기 과시나 서열 매기기의 도구로 삼는 것은 그 목적을 근본적으로 왜곡하는 것이다.
④ 약해 보이는 지체일수록 더 존귀히 여겨야 한다
세상의 가치 기준과 정반대로, 교회는 눈에 덜 띄고 연약해 보이는 구성원을 더욱 존귀하게 대우해야 한다는 하나님 나라의 역전된 가치관이다.
⑤ 한 지체의 고통과 기쁨은 온 몸의 것이다
공동체적 연대의 원리는 감정적 동정을 넘어, 실제로 서로의 삶에 깊이 연결되어 있다는 몸의 신학에 근거한다.
❝
"약하게 보이는 지체가 더욱 요긴하다"는 말이 참 위로가 돼요. 은사가 화려하지 않다고, 눈에 띄지 않는다고 덜 중요한 게 아니라는 거죠. 교회 안에서 조용히 섬기는 모든 손길이 다 요긴한 지체라는 뜻이에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방언이 이 시대에도 동일하게 지속되는가에 대한 논쟁
이 질문은 오늘날 교단과 신학 전통에 따라 크게 갈린다. 은사지속론은 모든 은사가 오늘날에도 동일하게 나타난다고 보며, 은사중지론은 사도 시대의 계시 완결과 함께 표적적 은사가 그쳤다고 본다. 고린도전서 13:8-10의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는 구절이 이 논쟁의 핵심 본문 중 하나로 다뤄지며, 어느 견해를 취하든 이 장의 핵심 메시지(다양성 속의 하나 됨과 상호 존중)는 그대로 유효하다.
2은사 목록이 롬 12장·엡 4장과 다른 이유
바울은 로마서 12장, 에베소서 4장에서도 은사 목록을 제시하지만 그 항목이 조금씩 다르다. 이는 각 목록이 완결된 전체 목록이 아니라 각 서신의 목회적 상황에 맞춰 예시로 제시된 것임을 시사한다. 고린도전서의 목록이 유독 방언·예언·병 고침 등 표적적 은사에 집중된 것은, 바로 그 은사들을 둘러싼 서열 다툼이 고린도교회의 실제 문제였기 때문일 것이다.
1 CORINTHIANS 13

13장 · 사랑은

고린도전서 13장 — 사랑 없는 은사의 공허함, 사랑의 성품, 가장 좋은 길
고전 13:1–13 고전 12:31 가장 좋은 길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3절
사랑 없는 은사는 아무것도 아니다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예언하는 능력과 모든 지식과 산을 옮길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다. 재산을 다 구제에 내주고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
4–7절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사랑에 대한 시적 묘사가 이어진다. 사랑은 오래 참고 온유하며 투기하지 아니하며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딘다.
8–12절
부분적인 것은 폐하고 온전한 것이 온다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한다. 지금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지만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한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보리라"는 종말론적 소망이 제시된다.
13절
믿음, 소망, 사랑 중 제일은 사랑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사랑은 은사를 대체하지 않고 은사에 방향을 준다
13장은 은사를 부정하는 장이 아니라, 모든 은사가 작동해야 할 근본 동기와 목적을 제시하는 장이다. 사랑 없는 능력은 방향을 잃는다.
②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구체적 행동의 목록이다
4-7절의 사랑 묘사는 낭만적 감정이 아니라, 오래 참음·온유함·무례하지 않음 등 실천 가능한 구체적 태도와 행동들로 이루어져 있다.
③ 사랑만이 영원하다
예언, 방언, 지식 같은 은사들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되면 그 역할을 다하고 사라지지만, 사랑은 영원한 나라에서도 계속되는 성품이다.
④ 지금의 앎은 부분적이라는 겸손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다"는 표현은 현재의 신학적 지식과 확신에 대한 겸손한 자기 인식을 요청한다. 완전한 앎은 종말에 가서야 주어진다.
⑤ 믿음, 소망, 사랑의 관계 속에서 사랑이 으뜸이다
세 가지 모두 신앙생활의 핵심 덕목이지만, 사랑은 하나님의 본질(요일 4:8,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과 가장 직접적으로 연결되기에 특별한 위치를 갖는다.
❝
결혼식 축사로 워낙 자주 인용되다 보니 낭만적인 느낌으로만 읽히기 쉬운데, 원래 맥락은 은사를 둘러싼 교회의 갈등 한복판에서 나온 아주 실전적인 권면이었다는 걸 기억하면 훨씬 깊이 있게 다가와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1절)의 배경
고린도에는 실제로 소리를 증폭시키는 청동 그릇들이 극장이나 신전 의식에 사용되었다고 전해진다. 화려하지만 공허한 소음을 내는 이 물건들의 이미지는, 사랑 없이 행해지는 화려한 방언이나 예언이 결국 시끄러운 소음에 지나지 않는다는 바울의 신랄한 비유를 뒷받침한다.
213장이 왜 12장과 14장 사이에 배치되었을까
12장은 다양한 은사를, 14장은 방언과 예언의 구체적 질서를 다룬다. 13장이 그 사이에 배치된 것은 우연이 아니라 문학적·신학적 의도로 보인다 — 은사에 대한 모든 논의(12장)와 그 실천적 적용(14장) 사이에 사랑이라는 렌즈를 끼워 넣음으로써, 이후의 모든 논의가 사랑의 원칙 아래서 읽혀야 함을 구조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1 CORINTHIANS 14

14장 · 덕을 세우는 예배

고린도전서 14장 — 방언과 예언의 비교, 통역의 필요성, 질서 있는 예배
고전 14:1–40 사 28:11–12 공동체를 세우는 예배 질서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19절
예언이 방언보다 나은 이유
사랑을 따라 구하되 신령한 것을 사모하고 특별히 예언하기를 사모하라 한다. 방언하는 자는 하나님께 말하고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나, 예언하는 자는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한다. 교회에서 통역 없는 방언 만 마디보다 깨달은 마음으로 하는 다섯 마디가 낫다는 결론이 제시된다.
20–25절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적으로서의 방언과 예언
이사야 28:11-12을 인용하며 방언은 믿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적이나, 예언은 믿지 않는 자를 위한 것이 아니요 믿는 자를 위한 것이라 설명한다. 만일 온 교회가 함께 모여 다 방언으로 말하면 믿지 않는 자들이 미쳤다 할 것이나, 다 예언을 하면 믿지 않는 자가 자기 마음의 숨은 일이 드러나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게 될 것이다.
26–33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질서 있게
교회에 모일 때 각각 찬송시, 가르치는 말씀, 계시, 방언, 통역함을 가지고 있으니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하여 하라. 방언을 말하면 두세 사람이 차례를 따라 하고 통역하되 통역하는 자가 없으면 교회에서는 잠잠하라. 예언하는 자도 둘이나 셋이 하고 다른 이들은 분별할 것이니,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34–40절
품위 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여자에 관한 특정 상황적 권면과 함께,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것이 주의 명령임을 확인시킨다. 방언 말하기를 금하지 말고 모든 것을 품위 있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는 원칙으로 예배에 관한 논의를 마무리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공적 예배의 기준은 공동체의 덕 세움이다
개인적으로 은혜로운 경험이라도 공동체 전체가 알아듣고 함께 세워지지 않으면 공적 예배에서는 제한되어야 한다는 원칙이다.
② 은사는 통제할 수 있고 통제되어야 한다
"예언하는 자들의 영은 예언하는 자들에게 제재를 받는다"(32절)는 원리는, 성령의 은사가 무질서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③ 이해할 수 있는 말이 예배의 기본 조건이다
외국인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 예배에 참여했을 때 무엇을 경험하게 되는지에 대한 배려는, 예배가 내부자들만의 신비 체험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선교적 감수성을 보여준다.
④ 하나님은 무질서가 아니라 화평의 하나님이시다
영적 은사의 활발함과 예배의 질서는 대립하지 않는다. 오히려 하나님의 성품 자체가 화평과 질서를 지향하신다.
⑤ 원칙과 상황적 적용을 구분하는 해석의 지혜
34-35절의 구체적 권면은 당대 고린도 회당과 예배 문화의 특정한 혼란상을 배경으로 하는 상황적 지침으로 이해하는 학자들이 많다. 본문의 항구적 원리(질서와 존중)와 시대적 적용을 구분하는 것이 신중한 해석이다.
❝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오직 화평의 하나님이시니라"는 구절, 은사가 풍성한 예배일수록 오히려 더 세심한 질서와 배려가 필요하다는 걸 일깨워줘요. 뜨거움과 질서는 반대말이 아니라는 거죠.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방언이 "믿지 않는 자를 위한 표적"(22절)이라는 인용의 난해함
바울이 인용한 이사야 28:11-12은 원래 앗수르의 낯선 언어로 심판을 선포받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가리키는 본문이다. 바울이 이를 방언에 적용하는 방식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해석이 분분하다. 다만 전체 논지는 분명하다 — 통역되지 않는 방언이 외부인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실천적 경고다.
234-35절의 여성 침묵 권면과 11장의 조화 문제
11장에서는 여성이 예배 중 기도하거나 예언하는 것을 전제로 규정을 두었는데(11:5), 14장에서는 여성에게 잠잠하라고 하는 것처럼 보여 두 본문이 표면적으로 긴장을 이룬다. 이 긴장을 해소하기 위해 학자들은 여러 견해를 제시한다 — 특정한 무질서한 발언(예: 질문을 던지며 예배를 방해하는 것)에 대한 상황적 제재였다는 견해, 혹은 이 구절이 후대 사본 전승 과정에서 삽입되었을 가능성을 제기하는 본문비평적 견해 등이다. 확정적 결론이 없는 만큼 겸손한 해석적 유보가 필요한 대목이다.
1 CORINTHIANS 15

15장 ·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셨으니

고린도전서 15장 — 그리스도의 부활,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에 대한 반박, 몸의 부활
고전 15:1–58 호 13:14 · 사 25:8 부활의 복음과 소망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11절
전해 받고 전한 복음
바울이 전해 받아 고린도 교인들에게 전한 복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와 열두 제자, 오백여 형제, 야고보, 모든 사도, 그리고 바울 자신에게도 보이셨다는 것이다.
12–19절
부활이 없다면 믿음도 헛것
죽은 자의 부활이 없다고 말하는 자들이 있으나, 그렇다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을 것이라고 반박한다.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신 일이 없으면 전파하는 것도 믿음도 다 헛것이요, 오히려 하나님을 거짓 증언하는 자가 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도 망하였고 신자들은 모든 사람 가운데 더욱 불쌍한 자가 된다는 논증이 이어진다.
20–34절
첫 열매와 마지막 원수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을 것이니, 각각 자기 차례대로 되되 첫 열매는 그리스도요 다음은 그가 강림하실 때 그에게 속한 자다. 마지막에 사망이 멸망 받을 원수로 폐하여지고, 만물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신 이에게 아들 자신도 복종하여 하나님이 만유의 주로서 만유 안에 계신다.
35–49절
썩을 것과 썩지 아니할 것
어떤 몸으로 부활하느냐는 질문에, 씨를 심으면 죽어야 살아나며 심는 것은 장래 몸이 아니라 벌거벗은 알갱이지만 하나님이 그 뜻대로 형체를 주신다는 비유로 답한다.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난다.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도 있으니,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것 같이 하늘에 속한 이의 형상도 입을 것이다.
50–58절
죽음이 승리에 삼켜지리라
혈과 육은 하나님 나라를 이어받을 수 없으니 마지막 나팔에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될 것이다. 호세아 13:14, 이사야 25:8을 반향하며 "사망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고 외친다. 사망을 삼키고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며, 그러므로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는 실천적 결론으로 마무리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부활은 부가적 교리가 아니라 복음의 근간이다
부활을 제거하면 복음 전파도 믿음도 다 무너진다는 바울의 단호함은, 부활이 기독교 신앙의 여러 요소 중 하나가 아니라 그 전체를 떠받치는 기초임을 보여준다.
② 그리스도의 부활은 신자 부활의 보증이다
"첫 열매"라는 표현은 그리스도의 부활이 고립된 기적이 아니라, 장차 모든 신자에게 일어날 부활의 시작이자 패턴임을 의미한다.
③ 부활의 몸은 연속성과 변화를 동시에 지닌다
씨와 열매의 비유는 부활의 몸이 이전 몸과 전혀 무관한 것도, 완전히 동일한 것도 아니라, 신비로운 변화를 통해 이어지는 존재임을 보여준다.
④ 죽음은 정복된 원수다
죽음을 자연스러운 삶의 일부로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부활로 이미 결정적으로 패배한 "원수"로 규정하는 것은 강한 소망의 근거가 된다.
⑤ 부활의 소망은 오늘의 수고를 헛되지 않게 한다
58절의 결론("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라...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다")은, 부활 신앙이 미래에 대한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오늘의 삶과 헌신에 실제적 의미를 부여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라"는 이 마지막 문장이 참 힘이 돼요. 부활을 믿는다는 건 결국, 지금 이 삶에서의 신실한 수고가 다 의미 있다는 걸 믿는 거니까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침례를 받는 자들"(29절), 죽은 자를 위한 침례란 무엇일까
이 구절 "만일 죽은 자들이 다시 살지 못하면 죽은 자들을 위하여 침례 받는 자들이 무엇을 하겠느냐"는 신약에서 가장 난해한 구절 중 하나로 꼽힌다. 문자 그대로 죽은 이를 대신해 침례를 받는 관습이 고린도교회 일부에 있었다는 견해, 혹은 죽음을 목전에 두고 침례를 받는 것을 가리킨다는 견해 등이 있으나 확정된 결론은 없다. 바울이 이 관습의 타당성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부활을 부정하는 자들의 논리적 모순을 지적하기 위해 그들 스스로도 하고 있는 행위를 예로 들었을 가능성이 유력하다.
2"순식간에 홀연히"(52절) 변화에 대한 표현
헬라어 ἐν ἀτόμῳ(엔 아토모)는 문자적으로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순간'을 뜻하며, 오늘날 '원자(atom)'라는 단어의 어원이 된 표현이다. 부활의 변화가 점진적 과정이 아니라 즉각적이고 완전한 사건임을 강조하는 표현이다.
1 CORINTHIANS 16

16장 · 연보와 마지막 인사

고린도전서 16장 —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 방문 계획, 마지막 인사와 문안
고전 16:1–24 고후 8–9장 성도의 교제와 협력
01

본문 구조와 핵심 내용

전체 장은 몇 단락으로 흐른다.

1–4절
예루살렘 성도를 위한 연보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관하여는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 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고 권한다. 매주 첫날에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얼마씩 저축하여 두어 바울이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하니, 이는 계획적이고 정기적인 헌금의 원리를 보여준다.
5–9절
바울의 방문 계획
바울은 마게도냐를 지나 고린도로 가서 겨울을 지낼 계획을 밝히며, 에베소에는 오순절까지 유하려 하니 이는 effectual한 문(효과 있는 문)이 열려 있고 대적하는 자가 많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사역의 기회와 저항이 공존하는 현실적 상황을 솔직하게 나눈다.
10–12절
디모데와 아볼로에 대한 당부
디모데가 가거든 두려움 없이 지내게 하라고 부탁하며, 아볼로에 대해서는 여러 번 권하였으나 지금은 갈 뜻이 없고 기회가 있으면 가겠다고 전한다. 동역자들 사이의 자율성과 존중이 엿보이는 대목이다.
13–24절
마지막 권면과 문안
"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라 너희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요약적 권면과 함께, 스데바나의 집과 여러 동역자들에 대한 인정과 문안이 이어진다. 마지막으로 마라나타(우리 주여 오시옵소서)라는 아람어 기도와 은혜의 축도로 서신 전체를 마무리한다.
02

신학적·목회적 교훈

본문에서 끌어낼 수 있는 다섯 가지 교훈.

① 신학은 반드시 구체적 실천으로 이어져야 한다
부활이라는 최고의 신학 주제 바로 뒤에 연보라는 매우 실제적인 문제가 이어지는 구조는, 교리와 삶이 분리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② 계획적이고 정기적인 나눔의 지혜
"매주 첫날에... 얼마씩 저축하여 두라"는 권면은 감정적이고 즉흥적인 헌금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지속 가능한 나눔의 습관을 형성하라는 실천적 지혜다.
③ 사역의 기회와 저항은 함께 온다
"효과 있는 문이 열렸으나 대적하는 자가 많다"는 바울의 고백은, 열매 있는 사역이 반드시 순탄한 것은 아니라는 현실적 통찰을 제공한다.
④ 동역자 간의 자율성을 존중하는 리더십
아볼로가 지금은 고린도에 가지 않기로 한 결정을 바울이 그대로 존중하며 전달하는 모습은, 사역자들 사이의 건강한 자율성과 상호 신뢰를 보여준다.
⑤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최종 요약
서신 전체(분쟁, 성 윤리, 은사, 예배, 부활)를 관통해 온 주제들이 결국 "모든 일을 사랑으로 행하라"는 한 문장으로 압축되며 마무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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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린도전서는 이렇게 분쟁 이야기로 시작해서 연보와 문안 인사로 끝나요. 처음엔 갈라졌던 교회가, 마지막엔 서로를 위해 돈을 모으고 서로의 안부를 챙기는 모습으로 방향을 잡아가길 바랐던 바울의 마음이 느껴지는 구성이에요.
03

깊이 생각해볼 문제

확정적 답보다 함께 씨름할 가치가 있는 지점들.

1"마라나타"(22절)는 왜 굳이 아람어 그대로 남겨졌을까
헬라어로 쓰인 서신 안에 마라나타라는 아람어 표현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것은, 이 기도문이 헬라어권 교회에까지 번역되지 않고 그대로 전해질 만큼 초대교회 예배에서 이미 고정된 예전적 표현으로 자리 잡았음을 시사한다. 이는 초대교회가 매우 이른 시기부터 임박한 재림에 대한 강렬한 소망을 예배 언어 속에 담아 왔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흔적이다.
2"저주를 받을지어다"(22절)라는 강한 표현이 사랑의 권면 바로 다음에 나오는 이유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라는 구절은 얼핏 앞의 따뜻한 인사말들과 어울리지 않아 보인다. 그러나 이는 바울 서신에서 종종 발견되는 패턴으로, 서신을 마무리하며 핵심 메시지를 가장 첨예한 형태로 다시 한 번 각인시키려는 수사적 장치로 이해된다 — 이 서신 전체가 결국 '그리스도를 향한 참된 사랑이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수렴됨을 마지막까지 놓치지 않게 하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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