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서 세부 강해 · Romans
11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1절부터 36절까지 — 은혜로 남은 자, 꺾인 가지와 접붙인 가지, 온 이스라엘의 비밀, 그리고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여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ROMANS 11:33
Introduction · 들어가며

11장 들어가며

9장은 하나님의 주권을, 10장은 사람의 책임을, 11장은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미래를 말합니다

10장은 하나님께서 "종일 손을 벌리셨으나" 이스라엘이 순종하지 않았다는 가슴 아픈 장면으로 끝났습니다(10:21).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을 버리셨는가? 하나님의 약속은 실패했는가? 11장은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답입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9–11장을 하나로 보면 흐름이 분명해집니다. 9장은 과거 — 하나님은 처음부터 주권적으로 택하셨다. 10장은 현재 — 이스라엘은 지금 복음을 거절하고 있다. 11장은 미래 — 그러나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끝까지 버리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은 폐하여지지 않았습니다(9:6).

11장의 흐름은 이렇습니다. ① 지금도 은혜로 택하신 남은 자가 있다(1–10절). ②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인 구원의 통로가 되었고, 그 끝은 이스라엘의 충만함이다(11–16절). ③ 감람나무 비유 — 접붙임 받은 이방인은 교만하지 말라(17–24절). ④ 비밀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온 뒤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25–32절). ⑤ 그리고 바울은 신학을 멈추고 찬양합니다(33–36절). 로마서 1–11장 전체가 이 송영으로 마무리됩니다.

핵심 그림

감람나무

뿌리는 족장들에게 주신 약속, 원가지는 이스라엘, 접붙인 가지는 이방인. 모두 같은 뿌리에서 진액을 받습니다.

핵심 구절

11:25–26, 29

이방인의 충만한 수, 온 이스라엘의 구원, 그리고 후회하심이 없는 은사와 부르심.

1–11장의 결론

33–36절

교리는 찬양으로 끝납니다.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2절 "송사하되"訟事, 고소하다. 원문 엔튕카노 — 원래는 ‘간구하다’(8:27, 34). 엘리야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고발’함.
7절 "우둔하여졌느니라"원문 포로오 — 굳어지다, 무감각해지다. 굳은살이 박이듯 마음이 둔해짐.
8절 "혼미한 심령"昏迷, 정신이 흐릿함. 원문 카타뉙시스 — 깊은 잠, 마비.
11절 "실족하였느뇨"失足, 발을 헛디딤. 다시 일어날 수 없게 ‘넘어지기까지’인가를 묻는 질문.
12절 "실패"원문 헷테마 — 패배, 모자람. ‘충만함’(플레로마)과 짝을 이룸.
17절 "진액"津液, 나무의 수액. 원문 피오테스 — 기름짐, 풍성한 기름.
22절 "엄위하심"嚴威, 엄하고 위엄 있음. 원문 아포토미아 — ‘잘라 냄’, 단호한 엄격함.
25절 "비밀"원문 뮈스테리온 — 숨겨졌다가 이제 하나님이 드러내신 계획.
29절 "후회하심이 없느니라"원문 아메타멜레타 — 철회되지 않는, 번복되지 않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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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10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바울은 질문으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리고 세 가지 증거로 답합니다. 첫째, 바울 자신이 증거다(1절). 둘째, 엘리야 시대에도 칠천 명이 남아 있었다(2–4절). 셋째, 지금도 은혜로 택하신 남은 자가 있다(5–6절). 그러나 나머지는 굳어졌다는 사실도 숨기지 않습니다(7–10절).

1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는가? 결코 아니다 — 나도 이스라엘인이다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라

직역 그러므로 나는 묻는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내버리셨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나 자신도 이스라엘 사람이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베냐민 지파 출신이다.

10장 끝에서 이스라엘이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10:21)이라는 말을 들었다면, 로마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은 이렇게 생각했을 수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끝내셨구나.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는구나.’ 바울은 그 생각을 정면으로 막습니다. "그럴 수 없느니라."

바울의 질문 자체가 구약의 말씀을 품고 있습니다. 시편 94:14 "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사무엘상 12:22 "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바울은 구약이 이미 대답한 질문을 던지고 있는 셈입니다.

첫 번째 증거는 바울 자신입니다. "나도 이스라엘인이요." 만약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통째로 버리셨다면, 교회를 핍박하던 유대인 바울이 구원받을 수 있었겠습니까? 바울은 자신의 혈통을 세 겹으로 밝힙니다. 이스라엘인, 아브라함의 씨, 베냐민 지파. 그는 ‘반쯤 유대인’이 아니라 뼛속까지 유대인이었습니다(빌 3:5). 그런 그가 지금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셨다는 살아 있는 증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버리셨느뇨 아포데오 — ‘밀쳐 내다’. 70인역 시 94:14, 삼상 12:22에서 같은 동사가 쓰였습니다. 바울은 성경의 언어로 질문하고 성경의 언어로 대답합니다.
  • 베냐민 지파 — 야곱이 가장 사랑한 라헬의 아들, 이스라엘 첫 왕 사울의 지파. 남유다와 함께 끝까지 다윗 왕조에 남았던 지파입니다. 바울(사울)의 이름도 그 왕에게서 왔을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94:14여호와께서는 그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시며 그 기업을 떠나지 아니하시리로다
  • 삼상 12:22여호와께서는 너희로 자기 백성 삼으신 것을 기뻐하신 고로 그 크신 이름을 인하여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 빌 3:5내가 팔일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의 족속이요 베냐민의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 렘 31:37위로 하늘을 측량할 수 있으며 밑으로 땅의 기초를 탐지할 수 있다면 나도 이스라엘 자손의 행한 모든 일을 인하여 그들을 다 버리리라
2하나님은 미리 아신 백성을 버리지 않으셨다 — 엘리야를 기억하라

하나님이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셨나니 너희가 성경이 엘리야를 가리켜 말한 것을 알지 못하느냐 저가 이스라엘을 하나님께 송사하되

직역 하나님께서는 미리 아신 자기 백성을 내버리지 않으셨다. 너희는 성경이 엘리야에 대해 무엇을 말하는지 알지 못하느냐? 그가 이스라엘을 고발하며 하나님께 아뢰기를,

"그 미리 아신 자기 백성." 이 말이 핵심입니다. 8:29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미리 정하셨으니"와 같은 단어입니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단순히 정보를 아는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암 3:2 "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하나님께서 먼저 사랑으로 택하신 백성을 어떻게 버리시겠습니까? 하나님의 선택은 사람의 실패보다 깊습니다.

이어서 바울은 두 번째 증거로 엘리야 이야기를 꺼냅니다(왕상 19장).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대결해 승리한 엘리야는, 곧이어 이세벨의 살해 위협을 받고 광야로 도망합니다. 로뎀나무 아래서 죽기를 구하고, 호렙산 굴에 숨어 하나님께 하소연합니다.

"송사하되." 흥미로운 단어 선택입니다. 이 동사는 8:27, 34에서 성령과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신다’고 할 때 쓰인 단어입니다. 성령과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데, 엘리야는 이스라엘을 대적하여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낙심한 사역자는 자기 백성을 위해 기도하기보다 고발하기 쉽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미리 아신 프로에그노 — 8:29, 벧전 1:2, 20에도 쓰였습니다. 9:6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를 다시 확인하는 표현.
  • 송사하되 엔튕카노 — 행 25:24 "유대의 온 무리가… 내게 청원하되"에도 쓰였습니다. ‘누구에게 탄원하다’는 뜻으로, 대상에 따라 변호도 고발도 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8:29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 암 3:2내가 땅의 모든 족속 중에 너희만 알았나니
  • 왕상 19:1-4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 롬 8:34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3주여, 저들이 선지자들을 죽였고 나만 남았습니다

주여 저희가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으며 주의 제단들을 헐어 버렸고 나만 남았는데 내 목숨도 찾나이다 하니

직역 "주님, 그들이 주님의 선지자들을 죽였고 주님의 제단들을 무너뜨렸습니다. 이제 나 혼자 남았는데, 그들이 내 목숨마저 노리고 있습니다."

열왕기상 19:10, 14의 인용입니다. 엘리야는 같은 하소연을 두 번이나 했습니다. 그의 말은 절반은 사실이었습니다. 이세벨은 실제로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였습니다(왕상 18:4, 13). 그러나 "나만 남았는데"는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그 장의 앞부분에는 오바댜가 선지자 백 명을 굴에 숨겨 먹여 살렸다는 이야기가 이미 나옵니다(왕상 18:13). 엘리야는 그 사실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치고 두려울 때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밖에 없다.’ ‘아무도 남지 않았다.’ 낙심은 시야를 좁힙니다.

바울이 이 이야기를 꺼낸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로마의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들의 불신을 보며 ‘이제 이스라엘에는 믿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생각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엘리야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하나님은 다르게 보셨다고.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왕상 19:10, 14. 바울은 순서를 조금 바꾸어(제단보다 선지자를 먼저) 자유롭게 요약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왕상 19:10이스라엘 자손이 주의 언약을 버리고 주의 단을 헐며 칼로 주의 선지자들을 죽였음이오며 오직 나만 남았거늘 저희가 내 생명을 찾아 취하려 하나이다
  • 왕상 18:13이세벨이 여호와의 선지자들을 죽일 때에 내가 여호와의 선지자 중에 백 인을 오십 인씩 굴에 숨기고 떡과 물로 먹였나이다
  • 살전 2:15유대인은 주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4내가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저에게 하신 대답이 무엇이뇨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을 꿇지 아니한 사람 칠천을 남겨 두었다 하셨으니

직역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은 무엇이었느냐? "내가 나를 위하여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칠천 명을 남겨 두었다."

엘리야의 하소연에 하나님은 따지지도 꾸짖지도 않으십니다. 그저 사실을 알려 주십니다. "칠천." 엘리야는 ‘나 하나’라고 했지만, 하나님은 ‘칠천’이라고 하셨습니다. 엘리야가 보지 못한 곳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셨습니다.

주목할 표현은 "내가 나를 위하여… 남겨 두었다." 히브리어 원문(왕상 19:18)은 단순히 ‘내가 남겨 두리라’인데, 바울은 ‘나를 위하여’를 강조합니다. 칠천 명이 남은 것은 그들이 특별히 용감하거나 신실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을 남기셨기 때문입니다. 남은 자는 사람의 업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입니다. 이것이 5–6절 ‘은혜로 택하심’으로 이어집니다.

칠천이라는 숫자도 의미가 있습니다. 7은 완전수입니다. 정확한 인구 조사라기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충분하고 완전한 수’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하나님은 아무리 어두운 시대에도 자기 사람들을 남겨 두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대답 크레마티스모스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하나님의 응답, 신탁’. 동사형은 마 2:12 "꿈에 지시하심을 받아"에 쓰였습니다.
  • 바알 — 원문에는 여성 관사(테 바알)가 붙어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바알이라는 이름 대신 ‘수치(보세트)’라고 읽던 관습의 흔적으로 보는 견해가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왕상 19:18그러나 내가 이스라엘 가운데 칠천 인을 남기리니 다 무릎을 바알에게 꿇지 아니하고 다 그 입을 바알에게 맞추지 아니한 자니라
  • 사 1:9만군의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조금 남겨 두지 아니하셨더면 우리가 소돔 같고 고모라 같았었으리로다
  • 롬 9:27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
5이와 같이 지금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

그런즉 이와 같이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

직역 그러므로 이와 같이 지금 이때에도 은혜의 선택을 따라 남은 자가 있다.

엘리야 이야기를 바울 시대에 적용합니다. "이와 같이 이제도." 엘리야 때 칠천 명이 있었듯이, 지금도 남은 자가 있습니다. 베드로, 요한, 야고보, 바울, 오순절에 믿은 삼천 명, 예루살렘 교회의 수많은 유대인 성도들(행 21:20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바로 그 남은 자입니다.

"남은 자"는 구약을 관통하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노아의 홍수, 엘리야의 칠천, 바벨론 포로 후 돌아온 자들 — 하나님은 심판 가운데서도 언제나 ‘남은 자’를 두셨습니다. 이사야는 아들 이름을 ‘스알야숩’, 곧 ‘남은 자가 돌아오리라’로 지었습니다(사 7:3). 남은 자는 하나님의 약속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표징입니다.

그리고 그 남은 자는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았습니다. 그들이 더 나아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하셨기 때문입니다. 9장의 ‘택하심’(9:11)이 여기서 다시 등장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남은 자 레임마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 9:27 "남은 자(휘폴레임마)만 구원을 얻으리니"와 짝을 이룹니다.
  • 은혜로 택하심 에클로게 카리토스 — 직역 ‘은혜의 선택’. 선택의 근거가 은혜라는 뜻.
함께 읽을 말씀
  • 사 10:20-22그 날에 이스라엘의 남은 자와 야곱 족속의 피난한 자들이…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
  • 행 21:20형제여 그대도 보는 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 명이 있으니
  • 롬 9:11택하심을 따라 되는 하나님의 뜻이 행위로 말미암지 않고 오직 부르시는 이에게로 말미암아 서게 하려 하사
  • 엡 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6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된 것이 아니다 —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행위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직역 그런데 만일 은혜로 된 것이라면 더 이상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렇지 않다면 은혜는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다.

바울은 5절의 ‘은혜’라는 말을 한 번 더 못 박습니다. 은혜와 행위는 섞일 수 없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하느니라."

선물을 생각해 보십시오. 생일 선물을 받고 돈을 조금이라도 낸다면, 그것은 더 이상 선물이 아니라 ‘할인된 구매’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한 조각이라도 기여해야 한다면, 그것은 은혜가 아니라 거래입니다.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이 원리는 남은 자에게 그대로 적용됩니다. 남은 자가 남은 것은 그들의 신실함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남은 자는 교만할 수 없고, 아직 돌아오지 않은 이스라엘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은혜는 자격 없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이니까요.

원어 · 번역 노트
  • 사본 — 일부 후대 사본에는 "만일 행위로 된 것이면 은혜로 말미암지 않음이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행위 되지 못하느니라"가 덧붙어 있습니다(KJV). 초기 사본에는 없어서 개역개정 등 대부분의 번역은 이를 생략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4:4-5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이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 엡 2:8-9이것이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치 못하게 함이니라
  • 갈 2:21만일 의롭게 되는 것이 율법으로 말미암으면 그리스도께서 헛되이 죽으셨느니라
  • 딤후 1:9우리의 행위대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한 때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7이스라엘은 구하던 것을 얻지 못했고, 택하심 받은 자는 얻었으며, 나머지는 굳어졌다

그런즉 어떠하뇨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을 얻지 못하고 오직 택하심을 입은 자가 얻었고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

직역 그러면 어떻게 된 것인가?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추구하던 것을 얻지 못했다. 그러나 택하심 받은 자들은 얻었고, 나머지는 굳어졌다.

1–6절을 정리합니다. 이스라엘은 두 무리로 나뉩니다. 택하심을 입은 자(남은 자)는 얻었고, 나머지는 굳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이 구하는 그것." 무엇을 구했습니까? 9:31과 10:3이 답합니다. 의, 곧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것. 그들은 열심히 구했지만, 행위로 구했기에 얻지 못했습니다. 반면 택하심 받은 자들은 은혜로 그것을 ‘얻었습니다’.

"우둔하여졌느니라." 개역한글에서 ‘우둔’으로 옮긴 헬라어 포로오는 원래 뼈가 부러진 자리에 굳은살(캘러스)이 생기는 것, 피부가 단단해지는 것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마음에 굳은살이 박여 하나님의 말씀에 감각이 없어진 상태입니다. 수동태로 쓰여서,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이기도 하다는 뜻을 담습니다. 9:18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와 이어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10:21이 보여 주듯, 그들 스스로 하나님의 벌린 팔을 거절한 결과이기도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우둔하여졌느니라 포로오 — 막 6:52, 8:17 "너희 마음이 둔하냐(굳어졌느냐)", 요 12:40, 고후 3:14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에도 쓰였습니다. 25절의 ‘완악하게 된 것’(포로시스)은 명사형.
  • 그 남은 자들은 — 개역한글의 ‘남은 자’는 여기서 5절의 ‘남은 자(레임마)’가 아니라 ‘나머지 사람들(로이포이)’을 뜻합니다. 개역개정은 "그 남은 자들은 우둔하여졌느니라"를 그대로 두었지만, 뜻은 ‘그 밖의 나머지’입니다. 혼동하지 않도록 주의하십시오.
함께 읽을 말씀
  • 롬 9:31-32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을 의지하지 않고 행위를 의지함이라
  • 고후 3:14-16그러나 저희 마음이 완고하여… 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 막 8:17너희 마음이 둔하냐
  • 롬 9:18그런즉 하나님께서 하고자 하시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고 하고자 하시는 자를 강퍅케 하시느니라
8하나님이 오늘날까지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을 주셨다

기록된바 하나님이 오늘날까지 저희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과 듣지 못할 귀를 주셨다 함과 같으니라

직역 기록된 바와 같다. "하나님께서 오늘날까지 그들에게 마비된 영과, 보지 못하는 눈과, 듣지 못하는 귀를 주셨다."

바울은 7절의 ‘굳어짐’을 구약으로 증명합니다. 이 인용은 두 본문을 합친 것입니다. 신명기 29:4 "여호와께서 오늘날까지 너희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아니하셨느니라"와 이사야 29:10 "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신명기 29장은 출애굽 세대가 40년 동안 광야에서 하나님의 기적을 보고도 깨닫지 못했다는 말입니다. 홍해가 갈라지고 만나가 내리는 것을 보고도, 그들의 마음은 열리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때와 똑같은 일이 "오늘날까지" 일어나고 있다고. 메시아가 오셔서 기적을 행하시고 부활하셨는데도, 이스라엘의 대부분은 보지 못했습니다.

"혼미한 심령." 헬라어 카타뉙시스는 ‘찔림, 마비, 깊은 잠’을 뜻합니다. 영적으로 잠들어 아무리 흔들어도 깨지 않는 상태입니다. 예수님도 이사야 6:9-10을 인용하며 같은 현실을 말씀하셨습니다(마 13:14-15).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신 29:4와 사 29:10의 결합. 바울이 여러 구절을 엮어 하나의 메시지를 만드는 방식은 랍비들의 성경 해석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 오늘날까지 — 신 29:4의 표현을 그대로 가져와 바울 시대까지 이어지는 현실로 적용합니다. 고후 3:14 "오늘까지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벗어지지 아니하고"와 같은 표현.
함께 읽을 말씀
  • 신 29:4여호와께서 오늘날까지 너희에게 깨닫는 마음과 보는 눈과 듣는 귀를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 사 29:10여호와께서 깊이 잠들게 하는 신을 너희에게 부어 주사 너희의 눈을 감기셨음이니
  • 사 6:9-10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 마 13:14-15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귀는 듣기에 둔하고
  • 행 28:26-27이 백성에게 가서 말하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도무지 깨닫지 못하며
9다윗의 말 —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이 되게 하소서

또 다윗이 가로되 저희 밥상이 올무와 덫과 거치는 것과 보응이 되게 하옵시고

직역 또 다윗이 말한다. "그들의 식탁이 올무와 덫과 걸림돌과 보응이 되게 하소서."

바울은 시편 69:22-23을 인용합니다. 시편 69편은 의인이 고난받는 시로, 신약에서 예수님의 고난과 자주 연결되는 시입니다. "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69:9, 요 2:17),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웠사오니"(69:21, 마 27:34, 48). 바로 그 다음 구절이 9–10절의 인용입니다.

그러니까 이 저주는 의로운 고난자를 핍박한 자들에 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은 자들에게 그들의 ‘밥상’이 오히려 올무가 된다는 것입니다.

"밥상"은 무엇일까요? 해석자들은 여러 가지로 봅니다. 율법과 성전 제사, 언약의 복, 정결 규례를 따라 차린 식탁 등. 공통된 의미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복으로 주신 것들(율법, 성전, 언약)이 그것을 잘못 붙든 사람에게는 오히려 걸림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축복이 함정이 될 수 있습니다. 율법이 의를 얻는 수단이 될 때, 생명을 주려던 것이 사망의 덫이 됩니다(7:10).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시 69:22-23(70인역). 바울은 ‘덫(테라)’을 덧붙여 네 가지로 만들었습니다.
  • 거치는 것 스칸달론 — 9:33 "거치는 돌과 거치는 반석"과 같은 단어. 11절 ‘실족하다’와 이어집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69:22저희 앞에 밥상이 올무가 되게 하시며 저희 평안이 덫이 되게 하소서
  • 시 69:9, 21주의 집을 위하는 열성이 나를 삼키고… 목마를 때에는 초를 마시웠사오니
  • 롬 9:33보라 내가 걸림돌과 거치는 반석을 시온에 두노니
  • 롬 7:10생명에 이르게 할 그 계명이 내게 대하여 도리어 사망에 이르게 하는 것이 되었도다
10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등은 항상 굽게 하소서

저희 눈은 흐려 보지 못하고 저희 등은 항상 굽게 하옵소서 하였느니라

직역 "그들의 눈이 어두워져 보지 못하게 하시고, 그들의 등이 항상 굽게 하소서."

시편 69:23의 계속입니다. 8절의 ‘보지 못할 눈’과 이어집니다. 굳어진 마음은 결국 영적인 실명으로 나타납니다.

"등은 항상 굽게." 이것은 무거운 짐을 진 노예의 모습입니다. 율법의 멍에를 스스로 지려는 사람은 결국 그 무게에 눌려 허리를 펴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을 향해 "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마 23:4)라고 하셨고, 베드로는 율법의 멍에를 "우리 조상과 우리도 능히 메지 못하던 멍에"(행 15:10)라고 했습니다. 반면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마 11:28-30).

그러나 여기서 멈추면 안 됩니다. 바울은 바로 다음 절에서 이렇게 묻습니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이 무서운 굳어짐도 끝이 아닙니다. 굽은 등이 다시 펴질 날이 옵니다. 예수님이 18년 동안 꼬부라져 있던 여인을 일으키셨듯이(눅 13:11-13).

원어 · 번역 노트
  • 항상 디아 판토스 — ‘계속해서’. 그러나 11, 25절이 보여 주듯 ‘영원히’가 아니라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시 69:23저희 눈이 어두워 보지 못하게 하시며 그 허리가 항상 떨리게 하소서
  • 마 23:4무거운 짐을 묶어 사람의 어깨에 지우되 자기는 이것을 손가락으로도 움직이고자 아니하며
  • 마 11:28-30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 눅 13:11-13열여덟 해 동안을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곧 펴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지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만 남았다고 느낄 때

엘리야처럼 우리도 지칠 때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을 지키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우리 교회만, 우리 가정만 힘들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내가 나를 위하여 칠천을 남겨 두었다." 내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은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내가 지금 믿음 안에 서 있는 것도 ‘은혜로 택하심’ 때문입니다. 내가 더 나아서가 아닙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면, 아직 돌아오지 않은 사람들을 정죄하기보다 그들을 위해 기도하게 됩니다.

11:11–16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1–10절이 ‘지금도 남은 자가 있다’는 것이었다면, 11–16절은 ‘굳어진 나머지도 끝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넘어짐 속에 숨겨진 하나님의 목적을 보여 줍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은 이방인 구원의 문이 되었고, 이방인의 구원은 다시 이스라엘을 깨우는 도구가 됩니다.

여기서 바울은 ‘하물며’ 논법을 씁니다. 이스라엘의 실패가 세상에 이만큼 큰 복이 되었다면, 이스라엘의 회복은 얼마나 더 큰 복이 되겠는가!

11다시 일어설 수 없게 넘어졌는가? 결코 아니다 —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직역 그러므로 나는 묻는다. 그들이 걸려 넘어진 것은 완전히 쓰러지기 위함이었는가? 결코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범죄로 구원이 이방인들에게 이르렀고, 이는 이스라엘로 질투하게 하려는 것이다.

1절과 똑같은 형식의 두 번째 질문입니다. "저희가 넘어지기까지 실족하였느뇨?" 원문의 뉘앙스를 살리면 이렇습니다. ‘그들이 걸려 비틀거린 것이, 완전히 쓰러져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되기 위함이었는가?’ 비틀거리는 것과 완전히 쓰러지는 것은 다릅니다. 바울의 대답은 다시 "그럴 수 없느니라."

이스라엘의 넘어짐에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첫째,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것은 사도행전의 역사 그대로입니다. 바울은 가는 곳마다 먼저 회당에서 전했고, 유대인들이 거절하면 이방인에게로 갔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이것을 버리고…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행 13:46). 만약 이스라엘이 모두 예수님을 받아들였다면, 복음은 유대교 내부의 개혁 운동으로 머물렀을지도 모릅니다. 이스라엘의 거절이 복음을 땅끝으로 밀어냈습니다.

둘째,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이것은 10:19에서 인용한 신명기 32:21의 성취입니다. "나도 백성 아닌 자로 너희의 시기를 일으키며."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고, 이스라엘의 메시아를 찬양하고, 이스라엘의 성경을 사랑하는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이 ‘저것은 우리의 것인데!’ 하고 질투하며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탕자 비유의 큰아들처럼, 동생이 아버지 집에서 잔치하는 것을 보며 바깥에 서 있는 형을 아버지가 나와서 부르는 그림입니다(눅 15:28).

원어 · 번역 노트
  • 실족하였느뇨 프타이오 — ‘비틀거리다, 실수하다’. 약 2:10 "그 하나에 거치면", 약 3:2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에 쓰였습니다.
  • 넘어짐 파랍토마 — 5:15-20에서 아담의 ‘범죄’에 쓰인 단어. ‘옆으로 넘어짐, 헛디딤’이 원뜻.
  • 시기나게 파라젤로오 — 10:19, 11:14, 고전 10:22에 쓰였습니다. 10장의 ‘열심(젤로스)’과 같은 어근.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잘못된 ‘열심’을 바른 ‘질투’로 바꾸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 행 13:46하나님의 말씀을 마땅히 먼저 너희에게 전할 것이로되 너희가 이것을 버리고 영생 얻기에 합당치 않은 자로 자처하기로 우리가 이방인에게로 향하노라
  • 행 28:28그런즉 하나님의 이 구원이 이방인에게로 보내어진 줄 알라 저희는 그것을 들으리라
  • 신 32:21나도 백성 아닌 자로 그들에게 시기가 나게 하며 우준한 나라로 그들의 분노를 일으키리로다
  • 롬 10:19내가 백성 아닌 자로써 너희를 시기 나게 하며
12그들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그들의 충만함은 얼마나 더하랴

저희의 넘어짐이 세상의 부요함이 되며 저희의 실패가 이방인의 부요함이 되거든 하물며 저희의 충만함이리요

직역 그들의 범죄가 세상의 부요함이 되고 그들의 실패가 이방인들의 부요함이 되었다면, 그들의 충만함은 얼마나 더 큰 부요함이 되겠는가!

바울 특유의 ‘하물며’ 논법입니다(5:9-10, 15, 17에서도 썼습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갑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과 실패(작은 것, 부정적인 것)가 → 세상과 이방인에게 부요함이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의 충만함(큰 것, 긍정적인 것)은 → 얼마나 더 큰 부요함이 되겠습니까!

"실패"로 번역된 헷테마는 ‘패배’ 또는 ‘수가 줄어듦, 모자람’을 뜻합니다. 메시아를 믿은 유대인이 ‘적은 수’에 그친 것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에 대응하는 "충만함"(플레로마)은 ‘가득 찬 수’입니다. 지금은 남은 자만 믿지만, 언젠가 이스라엘이 ‘가득히’ 돌아올 날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26절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로 이어집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미래를 비관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의 회복이 세상에 줄 복을 기대합니다. 이방인 교회가 이스라엘의 미래를 소망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충만함 플레로마 — 25절 "이방인의 충만한 수", 13:10 "사랑은 율법의 완성(플레로마)", 엡 1:23, 골 1:19 등. ‘가득 채워진 상태’.
  • 하물며 포소 말론 — ‘얼마나 더욱’. 24절에서도 반복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5:15하나님의 은혜와 및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더욱 넘쳤느니라
  • 롬 11:25-26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 창 12:3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13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한다 — 나는 이방인의 사도로서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긴다

내가 이방인인 너희에게 말하노라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내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기노니

직역 이제 나는 이방인인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이상, 나는 내 사역을 영광스럽게 여깁니다.

바울은 여기서 처음으로 청중을 콕 집어 부릅니다. "이방인인 너희에게." 9–11장 전체가 유대인 문제를 다루지만, 이 말씀을 들어야 할 사람은 사실 로마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유대인을 업신여기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18, 20, 25절).

"내가 이방인의 사도인 만큼." 바울은 다메섹에서 부르심을 받을 때부터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세워졌습니다(행 9:15, 26:17-18). 그는 자기 직분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최선을 다해, 자랑스럽게 감당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바울이 이방인 사역에 열심을 내는 숨은 동기가 14절에 나온다는 것입니다. 이방인을 향한 사역이 결국 유대인을 향한 사랑과 연결되어 있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직분 디아코니아 — ‘섬김, 봉사’. 집사(디아코노스)와 같은 어근. 바울은 사도직을 권위가 아닌 섬김으로 이해했습니다(고후 4:1, 5:18 "화목하게 하는 직책").
함께 읽을 말씀
  • 행 9:15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갈 2:7-8내가 무할례자에게 복음 전함을 맡기를 베드로가 할례자에게 맡음과 같이 하였은즉
  • 롬 15:16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 엡 3:8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14혹시라도 내 동족을 시기 나게 하여 그중 얼마라도 구원하려 함이다

이는 혹 내 골육을 아무쪼록 시기 나게 하여 저희 중에서 얼마를 구원하려 함이라

직역 혹시 어떻게 해서든 내 혈육을 질투하게 하여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바울이 이방인 사역을 열심히 한 숨은 이유입니다. 이방인 가운데 복음이 왕성하게 퍼질수록, 유대인들이 그것을 보고 질투하여 돌아올 것을 기대했습니다. 이방인을 향한 사역이 곧 유대인을 향한 간접 전도였습니다.

"내 골육." 바울은 유대인을 ‘내 몸, 내 살’이라고 부릅니다. 9:3에서는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해 자신이 저주를 받아도 좋다고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죽이려 했지만(행 9:23, 23:12), 바울은 끝까지 그들을 ‘내 살’이라고 불렀습니다.

"저희 중에서 얼마를." 바울은 현실적입니다. 모든 유대인을 당장 회심시키겠다고 하지 않습니다. ‘몇 사람이라도’. 고린도전서 9:22에서도 같은 마음을 말합니다. "여러 사람에게 내가 여러 모양이 된 것은 아무쪼록 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전도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아무쪼록 에이 포스 — ‘혹시 어떻게든’. 빌 3:11 "어찌하든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려 하노니"에도 쓰였습니다. 간절함과 겸손이 함께 담긴 표현.
함께 읽을 말씀
  • 롬 9:3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을 위하여 내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하는 바로라
  • 고전 9:20-22유대인들에게는 내가 유대인과 같이 된 것은 유대인들을 얻고자 함이요… 아무쪼록 몇 사람들을 구원코자 함이니
  • 롬 10:1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15그들을 버림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면, 그들을 받아들임은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다

저희를 버리는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거든 그 받아들이는 것이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이 아니면 무엇이리요

직역 그들을 내버림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다면, 그들을 다시 받아들이심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나는 생명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12절의 ‘하물며’를 더 강한 언어로 반복합니다. "저희를 버리는 것", 곧 이스라엘이 일시적으로 밀려난 것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습니다. 5:10-11에서 본 ‘화목’입니다. 하나님과 원수였던 세상이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습니다. 그 화목의 복음이 이스라엘의 거절을 계기로 온 세상에 퍼졌습니다.

그렇다면 "그 받아들이는 것", 곧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다시 받아들이실 때는 무엇이 일어납니까? "죽은 자 가운데서 사는 것." 이 표현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① 문자적 부활로 보는 견해 — 이스라엘의 회복이 마지막 날, 곧 그리스도의 재림과 죽은 자의 부활과 함께 일어난다는 뜻. 많은 교부와 현대 학자들이 이렇게 봅니다. ② 비유적 표현으로 보는 견해 — 이스라엘의 회복이 세상에 마치 죽은 자가 살아나는 것과 같은 엄청난 영적 부흥을 가져온다는 뜻. 어느 쪽이든, 바울은 이스라엘의 회복을 역사의 절정과 같은 사건으로 기대합니다. 에스겔 37장의 마른 뼈 골짜기가 다시 살아나는 그림이 떠오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버리는 것 아포볼레 — 신약에 두 번만 나옵니다(행 27:22 "생명에는 아무 손상이 없겠고"). ‘잃음, 내던짐’. 1절의 ‘버리셨느뇨’(아포데오)와 다른 단어로, 영구적 거절이 아니라 일시적 밀려남을 뜻합니다.
  • 화목 카탈라게 — 5:11, 고후 5:18-19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함께 읽을 말씀
  • 롬 5:10-11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 고후 5:19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 겔 37:12-14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서 나오게 하고 이스라엘 땅으로 들어가게 하리라
  • 눅 15:24, 32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시 얻었노라
16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하면 떡덩이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도 그렇다

제사하는 처음 익은 곡식 가루가 거룩한즉 떡덩이도 그러하고 뿌리가 거룩한즉 가지도 그러하니라

직역 첫 반죽 덩이가 거룩하면 반죽 전체도 거룩하고, 뿌리가 거룩하면 가지들도 거룩합니다.

바울은 이스라엘의 미래에 대한 소망의 근거를 두 개의 그림으로 보여 줍니다.

첫째 그림은 첫 반죽입니다. 민수기 15:17-21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서 떡을 만들 때 첫 반죽의 일부를 떼어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 첫 부분을 하나님께 드리면, 나머지 반죽 전체도 하나님께 속한 거룩한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둘째 그림은 뿌리와 가지입니다. 뿌리가 거룩하면 거기서 자라는 가지도 거룩합니다. 이 그림이 17–24절 감람나무 비유로 이어집니다.

그렇다면 ‘첫 반죽’과 ‘뿌리’는 누구입니까? 대부분의 해석자는 28절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를 근거로 족장들(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그들에게 주신 약속으로 봅니다. 하나님께서 족장들과 거룩한 언약을 맺으셨기에, 그 후손인 이스라엘도 여전히 하나님께 구별된 백성입니다. 지금 그들이 믿지 않는다 해도, 하나님의 약속은 그들을 놓지 않습니다. (첫 반죽을 믿는 유대인 남은 자로, 또는 그리스도로 보는 견해도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처음 익은 곡식 가루 아파르케 — ‘첫 열매, 맏물’. 8:23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 고전 15:20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 16:5 "아시아에서 그리스도께 처음 익은 열매"에 쓰였습니다.
  • 거룩한즉 — 여기서 ‘거룩’은 개인의 도덕적 거룩이 아니라 ‘하나님께 구별되어 속함’을 뜻합니다. 고전 7: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와 비슷한 용법.
함께 읽을 말씀
  • 민 15:19-21너희의 처음 익은 곡식 가루 떡을 거제로 드리라
  • 렘 11:16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 롬 11:28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 렘 2:3이스라엘은 나 여호와의 성물 곧 나의 소산 중 처음 열매가 됨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넘어짐을 쓰시는 하나님

이스라엘의 넘어짐이 세상의 화목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실패까지도 구원의 도구로 쓰십니다. 내 인생의 실패와 넘어짐도 하나님의 손에서는 끝이 아닙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기를 죽이려던 동족을 ‘내 살’이라 부르며 그들 중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 했습니다. 내가 포기한 사람은 없습니까? 하나님의 계획 안에서 그 사람의 이야기는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11:17–24참감람나무에 접붙인 가지 —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16절의 ‘뿌리와 가지’ 그림을 바울은 감람나무(올리브나무) 비유로 펼칩니다. 감람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나무입니다(렘 11:16, 호 14:6). 이 비유의 주된 목적은 분명합니다. 접붙임 받은 이방인 성도들이 꺾인 유대인 가지들을 향해 교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 비유를 이해하는 열쇠는 ‘뿌리가 너를 보존한다’(18절)입니다. 교회는 이스라엘을 대체한 새 나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이라는 같은 뿌리에 접붙여진 가지입니다.

17원가지 얼마가 꺾이고 돌감람나무인 네가 접붙임을 받아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다

또한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 되었은즉

직역 그런데 만일 가지들 가운데 얼마가 꺾이고, 야생 올리브나무인 당신이 그들 사이에 접붙여져서 올리브나무 뿌리의 풍성한 수액을 함께 나누는 자가 되었다면,

감람나무 비유의 등장인물을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참감람나무 — 하나님의 언약 백성. 뿌리 — 족장들과 그들에게 주신 약속. 원가지 — 이스라엘 백성. 꺾인 가지 — 믿지 않는 유대인. 돌감람나무 가지 — 이방인 성도.

"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얼마’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모든 가지가 아니라 일부입니다. 남은 자(5절)는 여전히 나무에 붙어 있습니다. 나무가 베어진 것이 아닙니다.

"돌감람나무인 네가." 돌감람나무는 야생 올리브나무입니다. 열매가 작고 기름도 거의 나오지 않아 쓸모가 없는 나무였습니다. 이방인은 하나님의 언약 바깥에 있던 ‘야생 가지’였습니다. 에베소서 2:12 "그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는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그런 야생 가지가 "접붙임이 되어" 참감람나무의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진액’(피오테스)은 ‘기름짐’이라는 뜻입니다. 올리브나무는 기름을 내는 나무이므로, 이것은 뿌리에서 올라오는 풍성한 생명과 복, 곧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의 복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복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습니다. 대체한 것이 아니라 함께 참여한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접붙임 엥켄트리조 — 신약에서 이 단락(17, 19, 23, 24절)에만 나옵니다. ‘찌르다(켄트레오)’에서 온 말로, 나무에 칼집을 내고 다른 가지를 끼워 넣는 것.
  • 함께 받는 자 슁코이노노스 — ‘함께 나누는 자, 동업자’. 고전 9:23 "복음에 참예하고자", 빌 1:7 "은혜에 참예한 자"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렘 11:16여호와께서 그 이름을 일컬어 좋은 행실 맺는 아름다운 푸른 감람나무라 하였었으나
  • 호 14:6그 가지는 퍼지며 그 아름다움은 감람나무와 같고
  • 엡 2:12-13, 19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이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의 권속이라
  • 갈 3:14아브라함의 복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18그 가지들을 향해 자랑하지 말라 — 네가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너를 지탱한다

그 가지들을 향하여 자긍하지 말라 자긍할지라도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이니라

직역 그 가지들을 향해 우쭐대지 마십시오. 만일 우쭐댄다면, 기억하십시오. 당신이 뿌리를 지탱하는 것이 아니라, 뿌리가 당신을 지탱하는 것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 경고입니다. "자긍하지 말라." 헬라어 카타카우카오마이는 ‘누구를 내려다보며 자랑하다’입니다. 로마 교회의 이방인 성도들이 유대인들을 향해, 그리고 교회 안의 유대인 성도들을 향해 이런 태도를 갖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배경을 기억하면 이해가 됩니다. 주후 49년경 글라우디오 황제가 유대인들을 로마에서 추방했습니다(행 18:2). 그동안 로마 교회는 이방인 중심으로 운영되었습니다. 54년 황제가 죽고 유대인들이 돌아왔을 때, 교회의 주도권은 이미 이방인들에게 있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백성은 우리다. 유대인들은 끝났다’는 생각이 퍼질 만했습니다. 14–15장의 ‘강한 자와 약한 자’ 문제도 이 긴장과 관련이 있습니다.

바울의 대답은 단호합니다. "네가 뿌리를 보존하는 것이 아니요 뿌리가 너를 보존하는 것이니라." 가지가 뿌리를 먹여 살립니까, 뿌리가 가지를 먹여 살립니까? 이방인 교회가 누리는 모든 복 — 성경, 메시아, 언약, 약속, 하나님에 대한 지식 — 은 다 이스라엘의 뿌리에서 온 것입니다. 예수님은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고 하셨습니다. 9:4-5에서 바울은 이스라엘에게 속한 것들을 나열했습니다.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이 저희 것이요 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원어 · 번역 노트
  • 자긍하지 말라 카타카우카오마이 — ‘~를 깔보며 자랑하다’. 약 2:13 "긍휼은 심판을 이기고 자랑하느니라", 약 3:14에도 쓰였습니다.
  • 보존하는 바스타조 — ‘짊어지다, 떠받치다’. 갈 6:2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의 ‘지다’.
함께 읽을 말씀
  • 요 4:22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
  • 롬 9:4-5저희는 이스라엘 사람이라 저희에게는 양자 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 롬 15:27만일 이방인들이 그들의 신령한 것을 나눠 가졌으면 육신의 것으로 그들을 섬기는 것이 마땅하니라
  • 고전 4:7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네가 받았은즉 어찌하여 받지 아니한 것같이 자랑하느뇨
19너는 말하리라 —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나를 접붙이기 위해서였다고

그러면 네 말이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하리니

직역 그러면 당신은 말할 것입니다. "가지들이 꺾인 것은 내가 접붙여지게 하려는 것이었다."

바울은 상상의 대화 상대를 세웁니다. 로마서에서 자주 쓰는 ‘디아트리베’(가상 논쟁) 방식입니다. 이방인 성도가 이렇게 반박한다고 가정합니다. "가지들이 꺾이운 것은 나로 접붙임을 받게 하려 함이라."

이 말은 절반은 맞습니다. 11절에서 바울 자신이 "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라고 했으니까요. 그런데 이 말 속에 숨은 태도가 문제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진짜 관심은 나였다. 저들은 나를 위해 치워진 것이다.’ 자기를 하나님 계획의 중심에 놓는 생각입니다.

구원받은 사람이 빠지기 쉬운 함정이 이것입니다. 은혜를 받은 뒤, 그 은혜를 ‘내가 특별해서’ 받은 것처럼 착각하는 것. 바울은 20절에서 이 생각을 바로잡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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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네 말이 — 단수 ‘너’. 바울은 17절부터 이방인 성도를 한 사람처럼 ‘너’라고 부르며 1:1 대화하듯 말합니다. 2장에서 유대인을 ‘너’라고 불렀던 것(2:1, 17)과 대칭을 이룹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2:17-20유대인이라 칭하는 네가 율법을 의지하며 하나님을 자랑하며… 스스로 믿으니
  • 롬 12:3마땅히 생각할 그 이상의 생각을 품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믿음의 분량대로 지혜롭게 생각하라
  • 신 9:4-5네 마음에 이르기를 나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나를 이 땅으로 인도하여 들여서 그것을 얻게 하셨다 하지 말라
20옳다. 그들은 믿지 않아 꺾였고 너는 믿음으로 서 있다 —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옳도다 저희는 믿지 아니하므로 꺾이우고 너는 믿으므로 섰느니라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직역 옳습니다. 그들은 불신앙 때문에 꺾였고, 당신은 믿음으로 서 있습니다. 교만한 생각을 품지 말고 오히려 두려워하십시오.

바울은 먼저 동의합니다. "옳도다." 그러나 곧바로 방향을 돌립니다. 가지들이 꺾인 진짜 이유는 ‘너를 위해서’가 아니라 "믿지 아니하므로"였습니다. 그리고 네가 서 있는 이유도 네가 특별해서가 아니라 "믿으므로"입니다.

여기에 교만을 없애는 논리가 있습니다. 믿음은 자랑할 수 있는 업적이 아닙니다. 믿음은 빈손을 내밀어 받는 것입니다(3:27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믿음으로 선 사람은 자기 발로 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기대어 선 것입니다.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도리어 두려워하라." 교만의 반대는 ‘두려움’입니다. 여기서 두려움은 불안이나 공포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경외, 겸손한 떨림입니다. 빌립보서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고린도전서 10:12 "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은혜로 선 사람은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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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메 휩셀라 프로네이 — 12:16 "높은 데 마음을 두지 말고"와 같은 표현. 딤전 6:17 "마음을 높이지 말고".
  • 섰느니라 헤스테카스 — 완료형. ‘서 있는 상태’. 5:2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서 있는"과 같은 동사.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10:12그런즉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 빌 2:12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 롬 3:27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뇨 있을 수가 없느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 잠 3:7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 롬 5:2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21하나님이 원가지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너도 아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이 원 가지들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너도 아끼지 아니하시리라

직역 하나님께서 본래의 가지들도 아끼지 않으셨다면, 당신도 아끼지 않으실 것입니다.

20절의 ‘두려워하라’의 이유입니다. 단순한 논리입니다. 하나님께서 원가지 — 아브라함의 혈통, 언약의 상속자, 율법과 성전을 가진 이스라엘 — 도 불신앙 때문에 꺾으셨다면, 나중에 접붙여진 야생 가지가 불신앙에 빠질 때 봐주실 이유가 있겠습니까?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이 동사는 8: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에 쓰인 것과 같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독생자도 아끼지 않으신 분이십니다. 그 사랑은 크지만, 그 사랑을 거절하는 불신앙을 가볍게 여기지도 않으십니다.

이 경고는 ‘한번 구원받으면 아무렇게나 살아도 된다’는 생각에 대한 경고입니다. 동시에, 개인의 구원을 잃을 수 있다는 의미인지는 해석자마다 다르게 봅니다. 많은 해석자들은 이 경고가 개인보다 이방인 교회 전체를 향한 것이며, 참된 믿음은 이런 경고 앞에서 겸손히 붙들려 계속 믿음에 거한다고 설명합니다(22절 "인자에 거하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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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원 가지들 카타 퓌신 클라도이 — 직역 ‘본성을 따른 가지들’. 24절의 ‘본성을 거스려’와 대조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 히 3:12-13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 고전 10:5-6그러나 저희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 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22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함께 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보라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는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그렇지 않으면 너도 찍히는바 되리라

직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격하심을 보십시오. 넘어진 자들에게는 엄격하심이, 당신에게는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있습니다. 당신이 그 인자하심 안에 계속 머문다면 말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당신도 잘려 나갈 것입니다.

감람나무 비유의 결론입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보라." 하나님의 두 얼굴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두 성품입니다. 둘 중 하나만 보면 하나님을 잘못 알게 됩니다.

인자하심(크레스토테스)은 2:4에서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에 쓰인 단어입니다. 따뜻하고 너그러운 선하심. 엄위하심(아포토미아)은 ‘잘라 내다’에서 온 말입니다. 가지를 자르는 정원사의 가위처럼 단호한 엄격함.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오는 단어입니다.

"넘어지는 자들에게는 엄위가 있으니 너는 하나님의 인자에 거하면 그 인자가 너희에게 있으리라." 꺾인 가지들은 하나님의 엄위를 경험했고, 접붙인 가지는 하나님의 인자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거하면." 계속 그 인자하심 안에 머물러야 합니다. 예수님의 포도나무 비유와 똑같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요 15:4, 6).

하나님의 인자만 보면 방종에 빠지고, 엄위만 보면 두려움에 갇힙니다. 둘을 함께 볼 때 우리는 은혜를 감사하면서도 은혜를 가볍게 여기지 않는 성숙한 신앙에 이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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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자하심 크레스토테스 — 2:4, 갈 5:22(성령의 열매 ‘자비’), 엡 2:7 "자비하심으로써", 딛 3:4 "하나님의 자비와 사람 사랑하심이 나타날 때에".
  • 엄위하심 아포토미아 — 부사형 ‘아포토모스’가 고후 13:10 "엄하게 쓰지 않게", 딛 1:13 "엄히 꾸짖으라"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2:4혹 네가 하나님의 인자하심이 너를 인도하여 회개케 하심을 알지 못하여
  • 요 15:2, 6무릇 내게 붙어 있어 과실을 맺지 아니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이를 제해 버리시고…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리워 말라지나니
  • 출 34:6-7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형벌 받을 자는 결단코 면죄하지 않고
  • 골 1:23만일 너희가 믿음에 거하고 터 위에 굳게 서서 복음의 소망에서 흔들리지 아니하면
23그들도 불신앙에 머물지 않으면 다시 접붙임을 받으리니, 하나님께 그 능력이 있다

저희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접붙임을 얻으리니 이는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직역 그들도 불신앙에 계속 머물지 않으면 다시 접붙여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시기 때문입니다.

이제 바울은 방향을 바꾸어 꺾인 가지들에게 소망을 말합니다. 22절에서 접붙인 가지도 ‘거하지 않으면’ 찍힐 수 있다고 했습니다. 반대로 꺾인 가지도 "믿지 아니하는데 거하지 아니하면", 곧 불신앙에서 돌아서면 다시 붙을 수 있습니다. 문은 양쪽으로 열려 있습니다. 기준은 혈통이 아니라 믿음입니다.

"저희를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자연에서는 한 번 잘려 나가 말라 버린 가지를 다시 붙이는 일이 불가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가능합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분이십니다(4:17). 사람의 눈에 끝난 것처럼 보이는 이스라엘도,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는 끝이 아닙니다.

이것은 오늘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적용됩니다. 믿음에서 떠난 가족, 교회를 등진 친구 — 사람 눈에는 끝난 것 같아도,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접붙이실 능력이 있으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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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능력이 있음이라 뒤나토스 — ‘능하시다’. 4: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14:4 "이는 저를 세우시는 권능이 주께 있음이니라"에 쓰였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후 3:16언제든지 주께로 돌아가면 그 수건이 벗어지리라
  • 롬 4:17그의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 슥 12:10내가 다윗의 집과 예루살렘 거민에게 은총과 간구하는 심령을 부어 주리니 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 겔 37:3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겠느냐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24본성을 거슬러 접붙여진 네가 그러할진대, 원가지는 얼마나 더 쉽게 제 나무에 붙겠느냐

네가 원 돌감람나무에서 찍힘을 받고 본성을 거스려 좋은 감람나무에 접붙임을 얻었으니 원 가지인 이 사람들이야 얼마나 더 자기 감람나무에 접붙이심을 얻으랴

직역 당신이 본래 야생 올리브나무에서 잘려 나와 본성을 거슬러 좋은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졌다면, 본래 가지인 이들이야 얼마나 더 쉽게 자기 올리브나무에 접붙여지겠습니까!

감람나무 비유의 마지막 ‘하물며’ 논법입니다. 이방인이 접붙임 받은 것은 "본성을 거스려" 된 일이었습니다.

실제 농사에서는 보통 좋은 품종의 가지를 야생 나무의 뿌리에 접붙입니다. 튼튼한 야생 뿌리에 좋은 가지를 붙여 좋은 열매를 얻는 것이지요. 그런데 바울의 그림은 정반대입니다. 쓸모없는 야생 가지를 좋은 나무에 붙였습니다. 농부라면 하지 않을 일입니다. 바울은 이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본성을 거스려"라고 말합니다. 이방인의 구원은 자연스러운 일이 아니라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로 된 기적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결론은 분명합니다. 본성을 거슬러서라도 야생 가지를 붙이신 하나님께서, 본래 그 나무에서 난 원가지를 다시 붙이시는 것은 "얼마나 더" 쉬운 일이겠습니까? 그 나무는 처음부터 "자기 감람나무", 곧 그들의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감람나무 비유는 이방인에게는 겸손을, 이스라엘에게는 소망을 줍니다. 그리고 25절부터 바울은 그 소망을 ‘비밀’로 밝힙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본성을 거스려 파라 퓌신 — 1:26 "순리를 거슬러(파라 퓌신)"와 같은 표현. 1장에서는 죄의 역리였지만, 여기서는 은혜의 역리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연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일합니다.
  • 농업 배경 — 1세기 로마의 농학자 콜루멜라는 늙은 올리브나무를 되살리려고 야생 가지를 접붙이는 방법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바울의 그림이 전혀 비현실적인 것은 아니지만, 바울 스스로 ‘본성을 거스려’라고 하여 이것이 은혜의 역설임을 강조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26이와 같이 그들의 여자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 엡 2:13-14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 엡 3:6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뿌리가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나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라는 뿌리에 접붙여진 가지입니다. 내가 누리는 모든 복은 내가 만든 것이 아니라 뿌리에서 올라온 것입니다. 그 사실을 기억하면 교만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을 함께 보십시오. 은혜를 감사하되 가볍게 여기지 말고, 오늘도 그 인자하심 안에 ‘거하십시오’. 그리고 꺾인 가지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쉽게 단정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는 그들을 다시 붙이실 능력이 있습니다.

11:25–32이 비밀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그리고 온 이스라엘이

감람나무 비유로 소망을 보여 준 바울은 이제 그 소망을 하나님의 ‘비밀’로 선포합니다. 이스라엘의 굳어짐은 부분적이고 일시적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면,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9–11장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32절).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심판이 아니라 긍휼입니다.

25이 비밀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굳어진 것이다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비밀을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비밀은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이라

직역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지 않도록, 이 비밀을 모르기를 나는 원하지 않습니다. 그 비밀은 이것입니다.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일부가 굳어진 것입니다.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바울이 이 비밀을 밝히는 이유는 이방인 성도들의 교만 때문입니다. 그들은 ‘우리가 이스라엘을 대신했다’는 자기 나름의 ‘지혜’를 갖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 생각을 하나님의 계시로 바로잡습니다.

"비밀." 성경에서 비밀(뮈스테리온)은 ‘풀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 없어서 감추어져 있었지만 이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계획’입니다(16:25-26, 엡 3:3-6). 바울은 이 비밀을 계시로 받았습니다.

비밀의 내용은 세 부분입니다. ① "이스라엘의 더러는 완악하게 된 것" — 굳어짐은 부분적입니다. 모든 이스라엘이 아니라 ‘일부’입니다(남은 자가 있으므로). ②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 굳어짐은 일시적입니다. 끝이 정해져 있습니다. ‘충만한 수’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이방인의 온전한 수, 곧 하나님께서 이방인 가운데서 부르실 모든 사람이 다 들어오는 때를 가리킵니다. ③ 그리고 26절 —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예수님도 비슷한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 ‘이방인의 때’가 차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향한 새로운 일을 시작하실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비밀 뮈스테리온 — 16:25, 고전 2:7, 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엡 3:3-6, 골 1:26-27. 바울에게 비밀은 ‘이제 드러난 하나님의 구원 계획’.
  • 들어오기까지 에이셀테 — ‘들어가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고 하실 때 쓰신 말(마 7:13, 18:3)과 같은 동사. 이방인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오는 것.
  • 스스로 지혜 있다 — 잠 3:7(70인역)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의 표현. 12:16에서 다시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눅 21:24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
  • 엡 3:4-6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이방인들이… 함께 후사가 되고
  • 롬 16:25영세 전부터 감추어졌다가
  • 행 15:14하나님이 처음으로 이방인 중에서 자기 이름을 위할 백성을 취하시려고
26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시리라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기록된바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시겠고

직역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받을 것입니다. 기록된 바와 같습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셔서 야곱에게서 불경건함을 제거하실 것이다."

로마서 9–11장의 절정이자, 신약에서 해석이 가장 많이 갈리는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리하여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으리라."

"그리하여"(후토스)는 ‘그 다음에’라는 시간적 의미라기보다 ‘이와 같이, 이런 방식으로’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의 부분적 굳어짐 →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옴 → 이스라엘의 질투와 회복이라는 하나님의 방식을 통해서 온 이스라엘이 구원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온 이스라엘"이 누구를 가리키는지에 대해서는 크게 세 가지 견해가 있습니다(아래 ‘더 깊이’ 참고). 문맥상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해석은, 25절의 ‘이스라엘’과 같은 의미로 민족으로서의 이스라엘을 가리키며, 마지막 때에 이스라엘 민족이 대규모로 그리스도께 돌아오리라는 것입니다. ‘온’은 모든 유대인 한 명 한 명이라기보다 ‘민족 전체로서의 이스라엘’이라는 뜻입니다(구약에서 ‘온 이스라엘’은 대표적인 전체를 가리키는 관용 표현, 삼상 7:5, 대하 12:1).

그리고 바울은 이사야 59:20-21을 인용합니다. "구원자가 시온에서 오사." 구원자는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야곱에게서 경건치 않은 것을 돌이키실’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구원도 결국 그리스도를 통해서라는 점입니다. 유대인을 위한 별도의 구원 길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10:12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사 59:20-21과 27:9(70인역)의 결합. 히브리어 본문은 "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인데, 70인역은 "시온을 위하여", 바울은 "시온에서"라고 씁니다. 하늘의 시온(갈 4:26, 히 12:22)에서 오시는 재림의 그리스도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 그리하여 후토스 — ‘이와 같이, 이런 방식으로’. 시간 순서(‘그 후에’)보다 방식을 강조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59:20구속자가 시온에 임하며 야곱 중에 죄과를 떠나는 자에게 임하리라 나 여호와의 말이니라
  • 슥 12:10그들이 그 찌른 바 그를 바라보고 그를 위하여 애통하기를
  • 마 23:39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
  • 행 3:19-21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 렘 31:34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27내가 그들의 죄를 없앨 때 그들과 맺을 나의 언약이 이것이다

내가 저희 죄를 없이 할 때에 저희에게 이루어질 내 언약이 이것이라 함과 같으니라

직역 "이것이 그들과 맺는 나의 언약이니, 내가 그들의 죄를 없애 줄 때이다."

26절의 인용이 계속됩니다. 이사야 59:21 "내가 그들과 세운 나의 언약이 이러하니"와 이사야 27:9 "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을 합친 것입니다.

"내 언약." 이것은 예레미야 31:31-34에서 약속하신 새 언약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은 최후의 만찬에서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눅 22:20)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구원은 그들의 노력이나 율법 준수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들의 "죄를 없이 하실" 때, 곧 그리스도의 피로 세우신 새 언약을 통해 이루어집니다. 이방인이 구원받은 것과 똑같은 방식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이스라엘에게서 철회되지 않았고, 그 언약은 결국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사 59:21상 + 사 27:9. 렘 31:33-34의 새 언약 주제와 깊이 연결됩니다. 히 8:8-12, 10:16-17이 렘 31장을 길게 인용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27:9야곱의 불의가 속함을 얻으며 그 죄를 없이 함을 얻을 결과는
  • 렘 31:31-34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세우리라…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그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 눅 22:20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
  • 히 8:10-12내가 저희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저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28복음으로는 너희 때문에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는 조상들 때문에 사랑받는 자다

복음으로 하면 저희가 너희를 인하여 원수 된 자요 택하심으로 하면 조상들을 인하여 사랑을 입은 자라

직역 복음에 관해서는, 그들이 여러분을 위하여 원수가 된 자들이지만, 택하심에 관해서는, 그들이 조상들 때문에 사랑받는 자들입니다.

바울은 지금 이스라엘의 상태를 정교한 대구로 요약합니다. 이스라엘은 동시에 두 가지 관계에 있습니다.

"복음으로 하면… 원수 된 자요." 복음을 거절한 점에서 보면, 지금 그들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자리에 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너희를 인하여"라고 덧붙입니다. 그들이 원수 된 것은 이방인인 너희가 복음을 받게 하기 위한 하나님의 섭리 안에 있었다는 것입니다(11절).

"택하심으로 하면… 사랑을 입은 자라." 하나님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사랑받는 백성입니다. 그 이유는 "조상들을 인하여"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과 맺으신 언약 때문입니다. 신명기 7:7-8 "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다만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이것은 오늘 교회가 유대인을 어떻게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말씀입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는 유대인을 ‘그리스도를 죽인 자들’, ‘하나님께 버림받은 자들’로 정죄하며 핍박한 부끄러운 과거가 있습니다.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원수 된 자 에크트로이 — 5:10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와 같은 단어. 우리도 한때 원수였습니다.
  • 사랑을 입은 자 아가페토이 — 1:7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고"(로마 성도들에게 쓴 말)와 같은 단어. 바울은 믿지 않는 이스라엘에게도 같은 말을 씁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신 7:7-8여호와께서 너희를 기뻐하시고 너희를 택하심은… 다만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심을 인하여, 또는 너희 열조에게 하신 맹세를 지키려 하심을 인하여
  • 신 10:15여호와께서 오직 네 열조를 기뻐하시며 그들을 사랑하사 그 후손 너희를 만민 중에서 택하셨음이 오늘날과 같으니라
  • 롬 5:10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목되었은즉
  • 롬 9:5조상들도 저희 것이요 육신으로 하면 그리스도가 저희에게서 나셨으니
29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은 후회하심이 없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직역 하나님의 은사들과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28절의 이유이자, 9–11장 전체의 신학적 기초가 되는 구절입니다.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후회하심이 없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선물과 한번 하신 부르심을 거두어들이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사람은 약속했다가도 상대가 실망스러우면 마음을 바꿉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르십니다. 민수기 23:19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여기서 "은사"는 9:4-5에 나열된 이스라엘의 특권들 — 양자 됨, 영광, 언약들, 율법, 예배, 약속들 — 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부르심"은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그 후손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으신 부르심입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했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 약속을 취소하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9:6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에 대한 최종 답입니다.

이 구절은 이방인 성도인 우리에게도 큰 위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지키신다면, 우리에게 하신 약속도 지키실 것입니다. 8:30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우리의 신실함에 달려 있지 않습니다(딤후 2:13).

원어 · 번역 노트
  •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아메타멜레타 — 신약에 두 번 나옵니다. 고후 7:10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 원문에서 이 단어가 문장 맨 앞에 와서 강조됩니다.
  • 은사 카리스마타 — 12:6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 6:23 "하나님의 은사(카리스마)는… 영생이니라"와 같은 단어.
함께 읽을 말씀
  • 민 23:19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식언치 않으시고 인자가 아니시니 후회가 없으시도다
  • 삼상 15:29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 딤후 2:13우리는 미쁨이 없을지라도 주는 일향 미쁘시니 자기를 부인할 수 없으시리라
  • 말 3:6나 여호와는 변역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야곱의 자손들아 너희가 소멸되지 아니하느니라
  • 롬 9:6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폐하여진 것 같지 않도다
30너희가 전에 불순종했으나 이스라엘의 불순종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다

너희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하더니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이제 긍휼을 입었는지라

직역 여러분이 전에는 하나님께 불순종했지만, 이제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긍휼을 입은 것처럼,

30–32절은 9–11장 전체를 마무리하는 하나님의 긍휼에 대한 정리입니다. 30절과 31절은 정확한 대칭 구조를 이룹니다.

이방인의 이야기 (30절): 전에 불순종 →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통해 → 이제 긍휼을 입음.

이방인은 "전에 하나님께 순종치 아니했습니다." 1:18-32에서 본 것처럼, 하나님을 알면서도 영화롭게 하지 않고 우상을 섬겼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긍휼을 입은 것은 그들이 변해서가 아니라 "이스라엘의 순종치 아니함으로", 곧 이스라엘이 복음을 거절했기 때문에 복음이 이방인에게 갔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불순종까지도 이방인 구원의 통로로 쓰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순종치 아니하더니 아페이테오 — ‘설득되지 않다, 불순종하다, 믿지 않다’. 10:21 "순종치 아니하고 거스려 말하는 백성"과 같은 어근. 바울에게 불순종과 불신은 같은 것의 두 면입니다.
  • 긍휼 엘레오 — 9:15-18, 23에서 반복된 단어. 30–32절에 네 번 나옵니다. 9–11장의 마지막 열쇠말.
함께 읽을 말씀
  • 엡 2:2-4그때에 너희가 그 가운데서 행하여…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 골 3:7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 롬 9:15-16내가 긍휼히 여길 자를 긍휼히 여기고… 원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달음박질하는 자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오직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이니라
31이와 같이 그들도 지금 불순종하나, 너희가 받은 긍휼로 그들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다

이와 같이 이 사람들이 순종치 아니하니 이는 너희에게 베푸시는 긍휼로 이제 저희도 긍휼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직역 이와 같이 이들도 지금은 불순종하지만, 그것은 여러분에게 베푸신 긍휼로 말미암아 이들도 이제 긍휼을 입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이야기 (31절): 지금 불순종 → 이방인이 받은 긍휼을 통해 → 그들도 긍휼을 얻게 됨.

30절과 정확히 거울처럼 대칭입니다. 이방인은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통해 긍휼을 입었고, 이스라엘은 이방인이 받은 긍휼을 통해 긍휼을 입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은 유대인과 이방인이 서로를 통해 구원받도록 짜여 있습니다. 누구도 혼자 구원받지 않고, 누구도 다른 쪽을 업신여길 수 없습니다.

"이제 저희도." 일부 사본에는 ‘이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가 있다면, 바울은 이스라엘의 긍휼이 먼 미래의 일만이 아니라 지금 이미 시작되고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바울 자신과 같은 유대인 신자들이 그 증거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사본 — ‘이제(뉜)’는 일부 중요한 사본에 있고 일부에는 없습니다. 개역한글은 ‘이제’를 넣어 번역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롬 11:11저희의 넘어짐으로 구원이 이방인에게 이르러 이스라엘로 시기나게 함이니라
  • 롬 15:8-9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의 진실하심을 위하여 할례의 수종자가 되셨으니… 이방인들로 그 긍휼하심을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하심이라
  • 사 49:6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32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불순종 가운데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직역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불순종 안에 가두신 것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시기 위함입니다.

로마서 1–11장 전체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이 구절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치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가두어 두심." 헬라어 쉥클레이오는 ‘사방을 막아 가두다’, 물고기를 그물에 가두는 것(눅 5:6)에 쓰인 말입니다. 1–3장에서 바울은 이방인도(1장), 유대인도(2장),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다는 것을 증명했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3:10),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3:23). 하나님은 모든 탈출구를 막으셨습니다. 아무도 자기 의로 빠져나갈 수 없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왜 그렇게 하셨습니까? 정죄하려고가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고 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순종의 감옥에 갇혔을 때, 남는 출구는 단 하나, 하나님의 긍휼뿐입니다. 아무도 ‘나는 내 힘으로 나왔다’고 말할 수 없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22도 같은 말을 합니다. "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여기서 ‘모든 사람’은 모든 개인이 예외 없이 구원받는다는 보편구원론의 근거가 아닙니다. 문맥에서 ‘모든 사람’은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 곧 사람의 종류에 차별이 없다는 뜻입니다.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똑같이 불순종 안에 갇혔고, 똑같이 긍휼로만 나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심판이 아니라 긍휼입니다. 그 사실 앞에서 바울은 더 이상 논증을 이어 가지 못하고 찬양으로 터져 나옵니다(33–36절).

원어 · 번역 노트
  • 가두어 두심 쉥클레이오 — 눅 5:6 "고기를 에워싼 것이 심히 많아", 갈 3:22-23 "죄 아래 가두었으니… 율법 아래 매인 바 되고".
  • 모든 사람 — 원문은 ‘모든 자들(투스 판타스)’에 관사가 붙어 ‘그 모든 자들’, 곧 앞에서 말한 유대인과 이방인 두 무리 전체를 가리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갈 3:22성경이 모든 것을 죄 아래 가두었으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약속을 믿는 자들에게 주려 함이니라
  • 롬 3:9, 23유대인과 헬라인이 다 죄 아래 있다고 우리가 선언하였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 딤전 2:4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얻으며 진리를 아는 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 애 3:22-23여호와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함이니이다 이것들이 아침마다 새로우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하나님의 마지막 말씀은 긍휼입니다

하나님은 한번 하신 약속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이스라엘이 불순종했어도 그 부르심은 철회되지 않았습니다. 그 신실하심이 오늘 나를 붙들고 있습니다. 내가 넘어져도 하나님의 부르심은 후회함이 없습니다.

모든 사람이 불순종 안에 갇혀 있었습니다. 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그 감옥에서 나를 꺼낸 것은 나의 노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긍휼이었습니다. 오늘 그 긍휼을 기억하며, 아직 그 감옥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같은 긍휼을 전하십시오.

11:33–36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여 — 만물이 주에게서, 주로, 주에게로

11장, 아니 로마서 1–11장 전체가 여기서 찬양으로 끝납니다. 바울은 인류의 죄(1–3장),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3–5장), 성화(6–8장),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9–11장)을 다 설명한 뒤, 더 이상 설명하지 않고 무릎을 꿇습니다.

좋은 신학은 언제나 찬양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알수록 우리는 하나님을 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 앞에서 경배하게 됩니다. 이 송영은 이사야 40장과 욥기 41장의 말씀을 엮어 만든 찬양시입니다.

33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직역 오, 하나님의 부요함과 지혜와 지식의 깊음이여! 그분의 판단은 얼마나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은 얼마나 추적할 수 없는지요!

"깊도다!" 원문은 감탄사 ‘오(오)’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지금 논증하지 않습니다. 감탄하고 있습니다. 9–11장의 어려운 질문들 — 왜 어떤 이는 택하시고 어떤 이는 굳게 하시는가, 왜 이스라엘이 넘어지고 이방인이 구원받는가 — 을 붙들고 씨름하던 바울이, 그 모든 것 위에 계신 하나님의 계획을 보고 말을 잃습니다.

원문은 세 가지 깊음을 말합니다. "부요함과 지혜와 지식의 깊음." ① 부요함 — 10:12 "부르는 모든 자에게 부요하시도다", 2:4 "인자하심의 풍성함(부요함)". 하나님의 끝없이 풍성한 은혜. ② 지혜 — 이스라엘의 넘어짐조차 이방인 구원의 통로로 쓰시는 하나님의 설계. ③ 지식 — 모든 것을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앎(8:29, 11:2).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측량치 못한다’(아넥세라우네타)는 ‘끝까지 파고들 수 없다’는 뜻입니다. 광부가 아무리 깊이 파 내려가도 바닥에 닿을 수 없는 광산과 같습니다.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찾지 못한다’(아넥시크니아스토이)는 ‘발자국을 따라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지나가신 길의 흔적을 사람이 다 추적할 수 없습니다. 시편 77:19 "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다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신뢰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은 이해의 끝에서 신뢰와 경배로 나아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찾지 못할 것 아넥시크니아스토스 — 엡 3:8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에도 쓰였습니다. 70인역 욥 5:9, 9:10 "측량할 수 없는 큰일을 행하시며"에서 온 표현.
  • 문장 구조 — 33절은 세 가지 깊음(부요, 지혜, 지식)을 말하고, 34–35절은 세 개의 질문으로 이를 하나씩 받습니다. 34절 상(지식) — 하(지혜), 35절(부요). 정교하게 짜인 찬양시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55:8-9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내 길은 너희 길보다 높으며
  • 욥 11:7-8네가 하나님의 오묘를 어찌 능히 측량하며 전능자를 어찌 능히 온전히 알겠느냐
  • 시 139:6, 17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 시 77:19주의 길이 바다에 있었고 주의 첩경이 큰 물에 있었으나 주의 종적을 알 수 없었나이다
  • 엡 3:8, 10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부요함을…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34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으며,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는가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직역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는가? 누가 그분의 조언자가 되었는가?"

이사야 40:13의 인용입니다. 이사야 40장은 바벨론 포로 중에 있던 이스라엘에게 "위로하라 위로하라 내 백성을"로 시작하는 위로의 장이며, 동시에 비교할 수 없는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하는 장입니다. "누가 손바닥으로 바닷물을 헤아렸으며… 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사 40:12-13).

두 개의 질문이 33절의 지식과 지혜를 받습니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 하나님의 지식을 따라잡을 자는 없습니다.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 하나님께 조언할 만큼 지혜로운 자도 없습니다.

이 질문들은 로마 교회의 ‘스스로 지혜 있다 하는’(25절) 성도들에게 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해 ‘이스라엘은 끝났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셔야 한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9:20에서 바울이 "이 사람아 네가 누구관대 감히 하나님을 힐문하느뇨"라고 한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참모가 아니라 하나님의 피조물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사 40:13(70인역). 바울은 고전 2:16에서도 같은 구절을 인용하고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고 덧붙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가 스스로 알 수 없지만, 성령을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계시된 만큼은 알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40:13-14누가 여호와의 신을 지도하였으며 그의 모사가 되어 그를 가르쳤으랴 그가 누구로 더불어 의논하셨으며
  • 렘 23:18누가 여호와의 회의에 참여하여 그 말을 알아들었으며
  • 고전 2:16누가 주의 마음을 알아서 주를 가르치겠느냐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졌느니라
  • 욥 38:4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35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는가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직역 "누가 먼저 주께 드려서 주께서 그에게 갚으셔야 하겠는가?"

욥기 41:11(히브리어 성경 41:3)의 인용입니다. "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하나님께서 폭풍 가운데 욥에게 말씀하시는 장면입니다.

이 질문은 33절의 부요함을 받습니다. 하나님은 너무나 부요하셔서, 누구도 하나님께 먼저 무언가를 드려 하나님을 빚진 자로 만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것은 원래 하나님의 것입니다. 역대상 29:14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이 질문은 로마서 전체의 메시지를 요약합니다. 행위로 의를 얻으려는 사람은 사실상 하나님께 ‘먼저 드리고 갚으심을 받으려는’ 사람입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나님은 나를 의롭다 하셔야 한다.’ 그러나 바울은 말합니다. 아무도 하나님께 먼저 드릴 수 없습니다. 구원은 거래가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선물입니다(4:4-5, 11:6). 그렇기 때문에 모든 영광은 하나님께만 돌아갑니다(36절).

원어 · 번역 노트
  • 인용 — 욥 41:11(히브리어 본문에 가까운 번역). 70인역은 이 구절을 다르게 번역했는데, 바울은 히브리어 본문의 뜻을 따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욥 41:11누가 먼저 내게 주고 나로 갚게 하겠느냐 온 천하에 있는 것이 다 내 것이니라
  • 대상 29:14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
  • 고전 4:7네게 있는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뇨
  • 행 17:25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36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간다 — 영광이 영원히 그에게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직역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고, 그분에게로 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영광이 영원히 있기를! 아멘.

로마서 1–11장의 마지막 구절이자, 성경 전체에서 가장 장엄한 고백 중 하나입니다. 세 개의 짧은 전치사구가 온 우주와 역사 전체를 담고 있습니다.

① "주에게서 나오고"(엑스 아우투) — 하나님은 만물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서 시작되었습니다. 창조, 선택, 부르심, 구원의 계획 — 모두 하나님에게서 나왔습니다.

② "주로 말미암고"(디 아우투) — 하나님은 만물의 통로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을 통해 유지되고 진행됩니다. 이스라엘의 넘어짐도, 이방인의 구원도, 내 인생의 굴곡도 하나님의 손을 통해 흘러갑니다.

③ "주에게로 돌아감이라"(에이스 아우톤) — 하나님은 만물의 목적이십니다. 모든 것이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므로 결론은 하나입니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근원도 하나님, 과정도 하나님, 목적도 하나님이시라면, 영광도 오직 하나님께만 돌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종교개혁자들이 말한 ‘오직 하나님께 영광(Soli Deo Gloria)’입니다. 바흐는 자신의 악보 끝에 ‘S.D.G.’라고 적었습니다.

그리고 이 송영 바로 다음에 12:1이 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찬양은 삶으로 이어집니다. 1–11장의 교리가 12–16장의 삶이 되는 다리가 바로 이 송영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세 전치사 — 고전 8:6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골 1:16 "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히 2:10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자".
  • 아멘 — 히브리어 ‘아만(확실하다)’에서 온 말. 1:25, 9:5, 15:33, 16:27에서도 송영 끝에 쓰였습니다. ‘그렇습니다, 진실로 그러합니다’라는 동의와 확신.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8:6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
  • 골 1:16-17만물이 그에게 창조되되… 다 그로 말미암고 그를 위하여 창조되었고 또한 그가 만물보다 먼저 계시고 만물이 그 안에 함께 섰느니라
  • 계 4:11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 시 115:1여호와여 영광을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우리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오직 주는 인자하시고 진실하시므로 주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소서
  • 롬 12:1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이해의 끝에서 경배가 시작됩니다

바울은 9–11장에서 가장 어려운 질문들과 씨름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답을 다 얻지 못했을 때, 그는 불평하지 않고 찬양했습니다. "깊도다!" 하나님을 다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실패가 아니라 경배의 출발점입니다.

내 인생에도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길이 있습니다. 그러나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갑니다. 내 인생도 그렇습니다. 오늘 이해되지 않는 그 길 위에서도 고백하십시오.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

The Olive Tree · 감람나무

17–24절, 감람나무 비유 한눈에

누가 무엇을 가리키는지, 그리고 각자에게 주는 말씀
그림가리키는 것주시는 말씀
참감람나무하나님의 언약 백성 (하나의 나무)교회는 새 나무가 아니라 같은 나무
뿌리족장들과 그들에게 주신 약속 (16, 28절)뿌리가 너를 보존한다 (18절)
꺾인 원가지믿지 않는 이스라엘불신앙에 머물지 않으면 다시 붙는다 (23절)
남은 원가지믿는 유대인, 남은 자 (5절)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았다
접붙인 돌감람나무 가지믿는 이방인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두려워하라 (20절)
진액언약의 복과 생명함께 받는 자 (17절)

비유의 핵심은 믿음입니다. 원가지도 믿지 않으면 꺾이고, 야생 가지도 믿으면 붙습니다. 혈통도, 교회 출석 연수도 기준이 아닙니다. 그리고 꺾인 가지와 붙은 가지 사이에는 교만이 들어설 자리가 없습니다. 모두 같은 뿌리에서 은혜로 진액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Romans 9–11 · 흐름

9–11장, 이스라엘에 관한 세 장의 흐름

하나님의 말씀은 폐하여지지 않았다(9:6)는 질문에 대한 세 겹의 대답
장시간강조핵심 구절
9장과거하나님의 주권적 선택9:16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음
10장현재사람의 책임과 복음의 초대10:13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
11장미래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긍휼11:29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

세 장은 서로를 지우지 않고 함께 서 있습니다. 하나님은 주권적으로 택하시고(9장), 사람은 복음 앞에서 책임 있게 반응해야 하며(10장), 하나님은 끝까지 약속을 지키십니다(11장). 그리고 이 모든 것을 다 설명할 수 없을 때, 바울은 송영으로 마칩니다(11:33-36).

Glossary · 단어 사전

11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남은 자5절

심판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은혜로 남겨 두신 자들. 하나님의 약속이 끊어지지 않았다는 표징.

우둔하다·완악하다7, 25절

마음이 굳은살처럼 굳어 하나님의 말씀에 무감각해짐.

혼미한 심령昏迷 · 8절

깊이 잠든 듯 마비된 영적 상태.

실족失足 · 11절

발을 헛디뎌 비틀거림. 완전히 쓰러짐과는 다름.

시기 나게11, 14절

질투를 일으켜 돌아오게 함. 이방인의 구원을 통해 이스라엘을 깨우시는 하나님의 방법.

충만함12, 25절

가득 찬 수, 온전한 수. 하나님께서 정하신 때와 수가 다 참.

처음 익은 곡식 가루16절

하나님께 먼저 드린 첫 반죽. 전체가 하나님께 속함을 나타냄.

돌감람나무17절

야생 올리브나무. 언약 밖에 있던 이방인.

진액津液 · 17절

뿌리에서 올라오는 풍성한 수액. 언약의 복과 생명.

인자와 엄위仁慈 · 嚴威 · 22절

하나님의 너그러운 선하심과 단호한 엄격하심.

비밀25절

감추어졌다가 이제 하나님께서 드러내신 구원 계획.

후회하심이 없다29절

하나님께서 한번 주신 은사와 부르심을 철회하지 않으심.

긍휼矜恤 · 30–32절

불쌍히 여기시는 하나님의 마음. 9–11장의 마지막 열쇠말.

송영頌榮 · 33–36절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양.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엘리야처럼 ‘나만 남았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그때 하나님은 내가 보지 못한 어떤 ‘칠천’을 준비하고 계셨을까요? (3-4절)
  2. ‘은혜가 은혜 되지 못한다’는 말씀 앞에서, 내가 은혜에 무언가를 보태려 했던 부분은 무엇입니까? (6절)
  3. 하나님께서 나의 실패나 넘어짐을 다른 사람의 복으로 바꾸신 경험이 있습니까? (11-12절)
  4. ‘뿌리가 너를 보존한다’는 말씀은 내가 다른 그리스도인이나 다른 교회를 바라보는 태도에 어떤 도전을 줍니까? (18절)
  5.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엄위하심’ 중 내가 한쪽만 보고 있던 것은 없습니까? (22절)
  6.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다’는 말씀이 지금 나에게 어떤 위로가 됩니까? (29절)
  7.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길 앞에서, 나는 불평합니까 경배합니까? 이번 주 33-36절을 나의 기도로 드려 보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