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s · 로마서 강해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로마서 8장 절별 상세 강해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 로마서 8:35, 37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8장 들어가며

로마서의 정상, 성령 안에서의 삶

많은 신학자들이 로마서 8장을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위대한 장으로 꼽습니다. 7장이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는 절망의 부르짖음으로 끝났다면, 8장은 정확히 그 질문에 대한 완전한 답변으로 시작합니다 —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7장에서 율법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원함은 있으나 행함이 없음)를, 8장은 성령의 능력으로 답합니다.

8장은 하나의 거대한 파도처럼 흐릅니다. 정죄 없음(1-4절)에서 시작해, 육신과 영의 대비(5-11절), 하나님의 자녀 됨(12-17절), 온 피조물의 소망(18-25절), 성령의 중보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26-30절)을 거쳐, 마침내 그 어떤 것도 우리를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는 승리의 찬가(31-39절)로 절정에 이릅니다.

이 장은 로마서 1-7장 전체(칭의, 아담과 그리스도, 죄와 은혜, 율법과 성령)를 하나로 묶어내는 동시에, 이후 9-11장(이스라엘 문제)으로 넘어가는 다리 역할도 합니다. 분량이 많은 만큼(39절), 여섯 단락으로 나누어 차분히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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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1–4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 생명의 성령의 법

7장의 절망에 대한 즉각적이고 완전한 답변입니다. 율법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하나님이 어떻게 이루셨는지를 밝힙니다.

1–2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유명한 선언 중 하나로 열립니다. '결코'(οὐδὲν, 우덴 — 하나도 없이)라는 단어가 예외 없는 완전함을 강조합니다. 7장에서 율법이 해낼 수 없었던 해방을, 이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이루어냅니다 — 이것이 8장 전체의 주제입니다.

3–4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죄로 말미암아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의 무능력(연약함)이 아니라 육신(타락한 인간 본성)의 연약함이 문제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들을 보내셔서 죄 자체를 육신 안에서 정죄하심으로 문제를 해결하셨습니다. 그 결과, 이제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이 본래 요구했던 것(거룩한 삶)이 성취됩니다 — 우리 자신의 노력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말입니다.

정죄함이 없다는 선언이 주는 메시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에게 정죄는 예외 없이 없습니다. 이는 우리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율법이 할 수 없던 일을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이루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죄책감에 눌려 있다면, 이 첫 절로 돌아가야 합니다 —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다면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8:5–11육신을 따름과 영을 따름

두 가지 삶의 방향 — 육신을 따름과 영을 따름 — 을 선명하게 대조하며, 성령이 신자 안에 실제로 거하신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합니다.

구분육신을 따르는 자영을 따르는 자
생각 (5절)육신의 일을 생각함영의 일을 생각함
결과 (6절)사망생명과 평안
하나님과의 관계 (7-8절)원수 됨, 기쁘시게 할 수 없음-
5–8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생각하다'(프로네오)는 단순한 지적 사고가 아니라 삶 전체의 지향점, 마음을 쏟는 방향을 뜻합니다. 육신을 따르는 삶은 단지 도덕적으로 부족한 정도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하나님과 적대적 관계에 있으며,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그 상태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9–11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또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시면 몸은 죄로 말미암아 죽은 것이나 영은 의로 말미암아 살아 있는 것이니라. 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령이 신자 안에 실제로 '거하신다'(거주하신다)는 것이 그리스도인 됨의 결정적 표지입니다. 그리고 이 성령은 단지 현재의 영적 삶만이 아니라, 장차 우리의 죽을 몸까지도 살리실 부활의 능력이십니다 —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바로 그 능력이 지금 우리 안에 거하십니다.

육신과 영 단락이 주는 메시지

우리 마음이 무엇을 향해 있는지가 우리의 실제 방향을 드러냅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은 단지 교리적 사실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생각과 마음을 새롭게 하시고, 장차 우리의 죽을 몸까지 살리실 능력이 우리 안에 있다는 뜻입니다.

8:12–17하나님의 자녀, 양자의 영

성령이 주시는 신분 — 종이 아니라 자녀 — 을 선언하며, 그 자녀 됨이 상속자로서의 영광과 고난을 동시에 함축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우리는 육신에게 빚진 것이 없습니다(육신을 따를 의무가 없습니다) — 우리는 오직 성령께 빚졌습니다. 성령으로 몸의 행실을 '죽인다'는 것은 6장의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 박음'과 같은 실천적 적용입니다.

14–17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 성령이 친히 우리의 영과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언하시나니, 자녀이면 또한 상속자 곧 하나님의 상속자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상속자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할 것이니라

이 단락의 핵심 이미지는 '양자 삼음'입니다. 로마법에서 입양된 아들은 친아들과 동일한 모든 법적 권리(상속권 포함)를 얻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에 떠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아람어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친밀한 호칭)라 부를 수 있는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반드시 상속자입니다 — 다만 그 영광의 상속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고난을 통과합니다.

하나님의 자녀 단락이 주는 메시지

우리는 두려움에 떠는 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아빠"라 부를 수 있는 자녀입니다. 이 신분은 특권이자 동시에 부르심입니다 — 상속의 영광은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고난의 길을 통과해서 이릅니다. 오늘의 고난이 헛되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8:18–25피조물의 탄식과 소망

고난과 영광의 대조가 개인의 차원을 넘어 온 우주적 차원으로 확장됩니다. 피조물 전체가 인간의 타락으로 함께 신음하며, 인간의 회복을 함께 고대합니다.

18
생각하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비교할 수 없도다

17절의 '고난도 함께 받아야'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위로입니다. 현재의 고난이 아무리 커도, 장차 나타날 영광에 견주면 저울에 올릴 수조차 없을 만큼 가볍다는 선언입니다.

19–22
피조물이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하게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을 겪고 있는 것을 우리가 아느니라

창세기 3장에서 아담의 범죄로 땅까지 저주를 받았듯(창 3:17-19), 자연 만물 전체가 인간의 타락으로 인해 '허무함'과 '썩어짐'에 굴복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 피조물이 인간의 최종적 회복('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는 것')을 목이 빠지게 고대하며 함께 탄식하고 있다는 우주적 스케일의 통찰이 펼쳐집니다.

23–25
그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속량을 기다리느니라.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우리도 피조물처럼 아직 완전하지 않은 상태에서 탄식하며 기다립니다 — 몸의 최종적 구속(부활)을 향해서입니다. 소망은 이미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참음의 기다림입니다. 이것이 로마서 5:3-4의 인내 논리와 다시 연결됩니다.

피조물의 탄식과 소망이 주는 메시지

우리의 신음과 기다림은 혼자만의 것이 아닙니다. 온 우주가 함께 탄식하며 회복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향한 이 참음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은 이유는, 그 소망의 대상이 확실하기 때문입니다.

8:26–30성령의 간구와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의 중보에서 시작해, 창세 전부터 영화롭게 됨까지 이어지는 하나님의 흔들림 없는 구원 계획으로 이어집니다.

26–27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기도할 바를 모를 때조차, 성령께서 우리를 대신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탄식으로 간구하십니다. 삼위일체 안에서 성령이 성도를 위해, 아버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중보하시는 이 장면은 신자의 기도 생활에 깊은 위로를 줍니다.

28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로마서에서 가장 많이 암송되는 위로의 구절 중 하나입니다. '모든 것'에는 8:18-25에서 다룬 고난까지 포함됩니다. 다만 이 약속은 조건 없는 낙관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라는 특정한 대상에게 주어지며, 이어지는 29-30절이 그 '부르심'의 배경을 설명합니다.

29–30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이 다섯 단계로 펼쳐집니다. 이 사슬은 처음(미리 아심)부터 끝(영화롭게 하심)까지 단절 없이 이어지며, 신자의 구원이 결코 우연이나 불확실한 과정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확고한 계획임을 보여줍니다.

미리 아심→ 미리 정하심→ 부르심→ 의롭다 하심→ 영화롭게 하심
30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흥미롭게도 '영화롭게 하셨느니라'가 아직 완성되지 않은 미래의 일임에도 과거시제로 쓰였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계획이 너무나 확실해서,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일조차 이미 이루어진 것처럼 말할 수 있다는 확신을 보여줍니다.

성령의 간구와 하나님의 계획이 주는 메시지

우리가 기도할 말을 잃을 때에도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탄식하며 간구하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구원은 우연이 아니라 창세 전부터 정해진 하나님의 흔들림 없는 계획입니다. 이 확신이 있기에 우리는 오늘의 고난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않습니다.

8:31–39넉넉히 이기느니라 — 승리의 찬가

로마서 1-8장 전체가 도달하는 웅장한 절정입니다. 일련의 수사 질문을 통해, 그 무엇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31–32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첫 번째 수사 질문입니다 — 하나님이 자기 아들조차 아끼지 않고 내주셨다면(가장 큰 것을 이미 주셨다면), 그보다 작은 것들(모든 것)을 주시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이는 5장에서 반복된 '더욱'(much more) 논증과 같은 구조입니다.

33–34
누가 능히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을 고발하리요 의롭다 하신 이는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실 뿐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법정 이미지가 이어집니다 — 누가 하나님이 이미 의롭다 하신 자를 고발할 수 있겠습니까? 그리고 그리스도는 죽으셨을 뿐 아니라 부활하시고 하나님 우편에서 지금도 우리를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이는 8:1의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 시작된 논증이 완전한 원을 그리며 돌아오는 지점입니다.

35–37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박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일곱 가지 극한의 고난을 나열하며 시편 44:22("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며")을 인용해, 이 고난이 결코 이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그리스도인들이 겪는 현실임을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가운데서도 우리는 단지 '이기는' 정도가 아니라 '넉넉히' 이깁니다 — 승리가 아슬아슬한 것이 아니라 압도적입니다.

38–39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로마서 1-8장 전체의 대단원입니다. 존재할 수 있는 모든 범주(생사, 영적 존재, 시간, 공간, 그 밖의 모든 피조물)를 총망라하여,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다고 선언합니다. 1장에서 시작된 인류의 죄와 심판 이야기가, 8장 끝에서 이보다 더 완전할 수 없는 확신의 찬가로 마무리됩니다.

넉넉히 이기느니라 단락이 주는 메시지

우리가 겪는 어떤 환난도, 어떤 세력도, 심지어 죽음조차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이 확신은 고난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고난 한가운데서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 안에 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로마서 8장을 덮을 때, 우리는 이 확신을 품고 다시 삶으로 나아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