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이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로 끝났다면, 7장은 그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함'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를 파고듭니다. 1-6절은 결혼 관계의 비유로 신자가 어떻게 율법에 대해 죽고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자연스레 위험한 오해가 생길 수 있습니다 — "율법에서 벗어났다면 율법 자체가 나쁜 것이었나?" 7-13절은 이 오해를 단호히 반박합니다. 율법 자체는 거룩하고 의롭고 선하지만, 문제는 죄가 그 선한 율법을 '기회'로 삼아 오히려 죄를 자극한다는 데 있습니다.
14-25절은 로마서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을 불러온 본문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것을 행함이라"고 부르짖는 이 '나'는 누구일까요 — 아직 회심하지 않은 사람일까요, 아니면 회심한 그리스도인의 현재 경험일까요? 이 질문은 신학사에서 오랫동안 논쟁되어 왔고, 본문 해설과 팝업에서 함께 살펴보겠습니다.
6장의 '죄에 대해 죽음'에 이어, 이번엔 '율법에 대해 죽음'을 결혼 관계라는 일상적 비유로 설명합니다.
법의 기본 원리를 결혼법으로 예시합니다 — 결혼법은 배우자가 살아 있는 동안에만 유효하며, 배우자의 죽음은 그 법적 결속을 완전히 종결시킵니다. 이는 죽음만이 법적 관계를 정당하게 끝낼 수 있다는 원리를 세우기 위한 전제입니다.
비유가 적용됩니다. 흥미롭게도 문자 그대로라면 '남편'(율법)이 죽어야 하지만, 바울은 대신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십자가)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으로써 우리는 옛 관계(율법 아래 매임)에서 벗어나 부활하신 그리스도라는 새로운 대상과 결합하여, 이제 그분을 위해 열매를 맺습니다.
과거(육신에 있을 때 율법이 오히려 죄의 정욕을 자극해 사망의 열매를 맺음)와 현재(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김)를 대조합니다. '영의 새로운 것' 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라는 대비는 8장 전체를 여는 열쇠말입니다.
"율법에서 벗어났다"는 말이 "율법이 나쁜 것이었다"는 뜻으로 오해되지 않도록, 바울은 자신의 경험(1인칭 '나')을 예로 들어 율법과 죄의 관계를 정밀하게 구분합니다.
또 하나의 강한 부정("그럴 수 없느니라")으로 오해를 차단합니다. 율법의 진짜 기능은 죄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죄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3:20과 동일한 논리). 바울은 열 번째 계명('탐내지 말라')을 예로 듭니다 — 이는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이 아니라 마음의 상태를 겨냥한 계명이어서, 율법의 이런 내면적 기능을 가장 잘 보여줍니다.
죄의 작동 방식을 정밀하게 묘사합니다 — 죄는 계명 자체가 아니라, 계명을 '발판'(기회) 삼아 활동하는 별개의 세력입니다. 마치 금지 표지판이 오히려 호기심을 자극하듯, "하지 말라"는 계명이 죄에게 공격 지점을 제공하는 역설이 벌어집니다. 책임은 계명이 아니라 그 계명을 악용하는 죄에게 있습니다.
7-13절 전체의 결론입니다.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합니다 — 세 가지 형용사로 명확히 무죄를 선언합니다. 오히려 율법의 선함이 죄의 악함을 더욱 극명하게 드러내는 배경 역할을 합니다. 하얀 벽 위에서 얼룩이 더 선명히 보이듯, 선한 율법 앞에서 죄의 실체가 '심히 죄 되게' 드러납니다.
로마서에서 가장 격렬한 자기 고백의 본문입니다.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하는 내적 분열이 생생하게 묘사됩니다.
7장 전체에서 가장 치열한 논쟁을 낳은 구절이 시작됩니다. 시제가 6-13절의 과거형에서 여기서부터 현재형('나는 죄 아래에 팔렸도다', '내가 행하는 것을 알지 못하노니')으로 바뀌는 것도 해석에서 중요한 논점입니다. 화자는 원하는 선을 행하지 못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악을 행하는 뼈아픈 자기 분열을 고백합니다.
내가 원하지 않는 악을 행할 때조차, 그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사실 자체가 이미 마음 깊은 곳에서 율법(선한 것)에 동의하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바울은 여기서 인격을 둘로 나누려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 있는 죄의 세력이 얼마나 완강하게 뿌리내려 있는지를 강조합니다.
'원함'과 '행함' 사이의 간극이 반복해서 강조됩니다. 의지는 선을 향하지만 그것을 실제 행동으로 완수할 힘이 없다는 절망적 고백입니다. 이 간극이야말로 이어지는 8장에서 성령의 능력이 왜 필요한지를 예비합니다.
내적 싸움의 절정에서 터져 나오는 절망의 부르짖음이, 놀랍게도 즉각적인 감사로 이어집니다. 이 급격한 전환이 8장으로 가는 다리가 됩니다.
내적 싸움이 '법칙'(패턴)으로 요약됩니다 — 선을 원할 때마다 악이 함께 따라오는 반복적 현상입니다. 속사람(하나님을 향한 참자아)은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지만, 지체(몸) 속의 다른 법이 그 마음의 법과 전쟁을 벌여 결국 사로잡습니다.
7장 전체가 도달하는 절망의 정점입니다. 스스로의 힘으로는 이 싸움에서 결코 이길 수 없다는 완전한 무능력의 고백이자, 동시에 도움을 구하는 절박한 부르짖음입니다.
절망의 부르짖음 직후, 놀랍도록 갑작스러운 감사가 터져 나옵니다. 이 감사는 상황이 해결되었기 때문이 아니라(25절 후반부는 여전히 마음과 육신의 분열을 인정합니다), 그 해결자가 누구인지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이 감사가 8장 전체("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로 가는 문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