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s · 로마서 강해

죄에 대하여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다

로마서 6장 절별 상세 강해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 로마서 6:11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6장 들어가며

은혜의 복음이 방종의 면허장이 아닌 이유

3:8에서 바울은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는 비방을 잠깐 언급하고 넘어갔습니다. 5:20-21은 "죄가 더한 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렇다면 자연스레 이런 질문이 떠오릅니다 — "은혜가 죄보다 크다면, 죄를 더 지어서 은혜가 더 넘치게 하면 되지 않는가?" 6장은 바로 이 질문에 대한 바울의 정면 답변입니다.

바울의 답은 도덕적 훈계("그러면 안 된다")가 아니라 신학적 사실("그럴 수 없다, 왜냐하면 이미 일어난 일 때문에")입니다. 그는 침례를 근거로 논증을 시작합니다 — 그리스도인은 침례를 통해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연합하여 죄에 대해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의 부활과 연합하여 이미 새 생명 가운데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1-11절). 이것이 사실이라면, 죄에 계속 거하는 것은 이미 죽은 옛 신분으로 돌아가려는 논리적 모순이 됩니다.

12-23절은 이 신학적 사실을 실제 순종에 어떻게 적용할지를 다룹니다. 바울은 '종'이라는 이미지를 사용해, 우리가 더 이상 죄의 종이 아니라 의의 종이 되었다는 것, 그리고 이 신분에 걸맞게 몸의 지체를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는 것을 촉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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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7그리스도와 함께 죽음 — 침례가 말하는 것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질문에, 바울은 침례가 상징하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이라는 신학적 사실로 답합니다.

1–2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5:20의 논리를 왜곡해서 나온 궤변에 바울은 "그럴 수 없느니라"(3:4, 3:6, 3:31에서도 반복된 강한 부정)로 즉각 답합니다. 근거는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실입니다 — 우리는 이미 죄에 대해 죽었습니다.

3–4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침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침례를 논증의 근거로 삼습니다. 침례는 단순한 의식이 아니라, 물속에 잠기는 행위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장사되심을, 물에서 나오는 행위로 그리스도의 부활을 시각적으로 나타냅니다. 침례를 받은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함께 장사되었다는 영적 실재를 몸으로 선언한 것입니다.

5–7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그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라

'연합'(수피토스)은 나무를 접붙일 때 두 나무가 하나로 자라 붙는 이미지를 담은 단어입니다. 우리의 '옛 사람'(그리스도 밖에서, 아담 안에 있던 옛 자아)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할 법적 권한을 갖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죽은 사람에게는 어떤 법도 더 이상 요구할 것이 없듯,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에게는 죄가 더 이상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음이 주는 메시지

우리가 죄와 싸우는 것은 아직 죄의 종이면서 벗어나려 애쓰는 싸움이 아닙니다. 이미 죄의 지배에서 법적으로 벗어난 자로서, 그 사실에 걸맞게 살아가는 싸움입니다. 침례를 기억할 때마다 우리는 이 정체성 — 옛 사람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는 사실 — 을 다시 붙들어야 합니다.

6:8–14그리스도와 함께 삶 — 죄에게 다시 내어주지 말라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실에서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으로 논증이 이어지며, 이 신학적 사실을 실제 삶에서 어떻게 '여기고' '드릴' 것인지 구체적 명령으로 전환됩니다.

8–10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이는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가 죽으심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으심이요 그가 살아 계심은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계심이니

그리스도의 부활은 반복되지 않는 단회적 승리입니다 —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단번에'(에파팍스)라는 단어는 히브리서에서도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의 완결성을 강조할 때 쓰이는 표현으로, 반복될 필요가 전혀 없는 완전한 승리임을 못박습니다.

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에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6장 전체의 핵심 명령입니다. '여기다'(로기조마이)는 4장에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신' 바로 그 회계 용어입니다. 여기서는 명령형으로 쓰여, 이미 사실인 것(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살았다는 것)을 계속해서 우리 자신에게 '계산해 넣으라'는 뜻입니다. 이는 없는 것을 있다고 믿는 자기 최면이 아니라, 이미 객관적으로 참인 신분을 매일 붙드는 믿음의 행위입니다.

12–14
그러므로 너희는 죄가 너희 죽을 몸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여 몸의 사욕에 순종하지 말고, 또한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내주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 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

11절의 '여기라'는 명령이 12-13절에서 구체적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 몸의 지체를 죄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의의 무기로 사용하라는 것입니다. 14절은 이 모든 논증의 실천적 결론이자, 이어지는 15-23절의 서두이기도 합니다 —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있는 것은 율법 아래(정죄의 체계) 있지 않고 은혜 아래(능력을 주는 체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삶이 주는 메시지

날마다 우리 자신에게 "나는 죄에 대해 죽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 있다"고 말하는 것은 감정적 자기암시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실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그리고 이 믿음은 반드시 몸의 실제 행동으로 이어집니다 — 우리의 손과 발, 입과 눈을 무엇을 위해 쓸 것인지를 매일 선택하는 것입니다.

6:15–19두 종류의 종 — 누구에게 순종하는가

1절의 질문("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과 짝을 이루는 두 번째 질문("법 아래 있지 않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에 답하며, '종'이라는 이미지로 순종의 불가피성을 설명합니다.

15–16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내주어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하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14절이 결코 "죄를 지어도 된다"는 방종의 허가가 아니었음을 재차 못박습니다. 바울은 인간에게 '완전한 자율'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없다고 말합니다 — 누구나 반드시 무언가의 종이 됩니다. 문제는 종이 되느냐 마느냐가 아니라, 누구의 종이 되느냐입니다.

17–18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너희가 본래 죄의 종이더니 너희에게 전하여 준 교훈의 본을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로부터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었느니라

과거(죄의 종이었음)와 현재(의의 종이 됨)의 극적인 전환을 감사로 선언합니다. 자유는 '아무에게도 순종하지 않음'이 아니라 '옳은 주인에게 순종하게 됨'으로 정의됩니다 — 역설적이게도 그것이 진짜 자유입니다.

19
너희 육신이 연약하므로 내가 사람의 예대로 말하노니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내주어 불법에 이른 것 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내주어 거룩함에 이르라

'육신이 연약하므로'라는 표현은 인간의 눈높이에 맞춰 쉬운 비유(종 됨)로 설명함을 알리는 것입니다. 과거의 방향(부정과 불법)과 이제의 방향(의와 거룩함)을 정확히 대칭시켜, 삶의 방향 전환이 급진적이면서도 명료해야 함을 보여줍니다.

두 종류의 종 단락이 주는 메시지

완전히 자유로운 '주인 없는 삶'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무언가의 종입니다. 진짜 질문은 "나는 지금 누구에게 순종하고 있는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죄의 종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고, 이것이야말로 진짜 자유입니다.

6:20–23죄의 삯과 은혜의 선물

두 주인 아래서의 삶을 최종적으로 대조하며, 로마서에서 가장 널리 암송되는 구절(23절)로 6장을 마무리합니다.

구분죄의 종이었을 때이제 의의 종이 되어
의에 대해자유로웠음 (20절)매여 있음 (18절, 재진술)
그때 얻은 열매지금 부끄러워하는 일들 (21절)거룩함에 이르는 열매 (22절)
마지막사망 (21, 23절)영생 (22, 23절)
20–21
너희가 죄의 종이 되었을 때에는 의에 대하여 자유로웠느니라. 그때에 너희가 무슨 열매를 얻었느냐 이제 너희가 그 일을 부끄러워하나니 이는 그 마지막이 사망임이라

과거의 죄의 삶을 냉정하게 돌아보게 합니다 — 그때 얻은 것이 무엇이었는지 물으면, 지금 돌아보아 부끄러운 것들뿐이었다는 것입니다. 죄가 주는 자유는 진짜 자유가 아니라 파멸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으니 그 마지막은 영생이라

정확한 대칭입니다. 죄의 종이었을 때는 부끄러운 것들이 열매였지만, 이제 의의 종이 되어서는 거룩함이 열매입니다. 그리고 그 마지막은 사망이 아니라 영생입니다.

23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로마서에서 가장 널리 암송되는 구절이자 6장 전체의 완벽한 요약입니다. '삯'(옵소니아)은 병사가 일한 만큼 정확히 받는 급료를 가리키는 단어입니다 — 죄를 섬긴 대가는 정확히 사망입니다. 반면 '은사'(카리스마)는 일한 것과 무관하게 값없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이 한 절 안에 4장의 '삯 대 은혜'(4:4-5) 논리와 6장 전체의 '두 주인' 논리가 압축되어 있습니다.

죄의 삯과 은혜의 선물이 주는 메시지

죄는 정확히 일한 만큼 갚아주는 냉정한 고용주입니다 — 그 삯은 언제나 사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일한 것과 무관하게 그리스도 안에서 영생을 선물로 주십니다. 오늘 우리가 누구를 섬기고 있는지, 그 섬김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지를 정직하게 물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