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s · 로마서 강해

믿음으로 말미암는
하나님의 의

로마서 3장 절별 상세 강해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 로마서 3:28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3장 들어가며

로마서 전체의 신학적 정점 — 칭의론의 핵심 본문

2장은 "표면적 유대인이 유대인이 아니요"(2:28-29)라는 도발적인 결론으로 끝났습니다. 3장은 바로 그 지점에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질문 "그러면 유대인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느냐"(3:1)로 시작합니다. 바울은 1-8절에서 몇 가지 있을 법한 반론들을 짧은 문답 형식으로 처리한 뒤, 9-20절에서 구약 본문들을 촘촘히 엮어 유대인이든 이방인이든 모든 인간이 예외 없이 죄 아래 있다는 것을 확정합니다.

그리고 21절,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전환이 일어납니다. "그러나 이제는"(21절)이라는 짧은 표현과 함께, 절망적인 심판의 논증(1:18-3:20)이 끝나고 복음, 곧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은혜의 선언(3:21-26)이 시작됩니다. 이 여섯 절은 신학적 밀도가 극도로 높은 본문으로, 종교개혁 이래 기독교 구원론의 핵심 근거로 다뤄져 왔습니다. 이어지는 27-31절은 이 은혜의 복음이 인간의 자랑을 완전히 배제하며, 동시에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참뜻을 완성한다는 것을 밝힙니다.

이 장은 어려운 신학 용어(화목제물, 간과하심, 믿음의 법 등)가 집중되어 있는 장이기도 합니다. 각 구절 해설과 별도의 심화 팝업에서 이 용어들을 최대한 쉽게 풀어드립니다.

본문 안의 색상 하이라이트 — 버튼을 누르면 해당 범주만 강조되고, 나머지는 흐려집니다. 단어 위에 마우스를 올리면(모바일은 길게 터치) 간단한 뜻이 뜹니다.
3:1–8있을 법한 반론들에 답함

2장의 결론에서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는 네 가지 반론 — "유대인의 나음이 없다면 언약은 무의미한가", "인간의 불신이 하나님을 무력하게 만드는가", "인간의 죄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낸다면 심판이 부당한가", "그럼 악을 행해도 되는가" — 을 짧은 문답 형식(디아트리베)으로 신속하게 처리합니다.

1–2
그런즉 유대인의 나음이 무엇이며 할례의 유익이 무엇이냐. 범사에 많으니 첫째는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음이니라

2장이 "표면적 유대인은 유대인이 아니다"라고 했다고 해서, 유대인 됨과 할례 자체가 무가치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즉시 실질적인 유익들을 인정합니다 — 그 첫째는 하나님의 계시(구약 성경)를 맡아 보존해 온 특권입니다. 이 목록은 9:4-5에서 더 확장됩니다.

3–4
어떤 자들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어찌하리요 그들의 믿지 아니함이 하나님의 미쁘심을 폐하겠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사람은 다 거짓되되 오직 하나님은 참되시다 할지어다

일부 유대인이 믿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의 언약적 신실하심 자체가 무효화되는 것은 아닙니다. 사람의 신실하지 못함이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흔들 수 없다는 원칙은, 이후 9-11장에서 이스라엘 문제를 다룰 때 다시 등장할 중요한 전제입니다.

5–6
그러나 우리 불의가 하나님의 의를 드러나게 하면 무슨 말 하리요 진노를 내리시는 하나님이 불의하시냐. 결코 그렇지 아니하니라 만일 그러하면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을 심판하시리요

인간이 만들어낼 법한 궤변 — "내 죄가 오히려 하나님의 의를 더 돋보이게 하니 하나님이 나를 벌하시는 것은 불공평하다" — 을 바울은 단호히 반박합니다. 만약 그런 논리가 성립한다면 하나님은 세상을 심판하실 자격 자체를 잃게 되는데,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7–8
그러나 나의 거짓말로 하나님의 참되심이 더 풍성하여 그의 영광이 되었다면 ··· 그러면 선을 이루기 위하여 악을 행하자 하지 않겠느냐 ··· 이런 자들은 정죄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악을 행함으로 오히려 선(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난다면 악을 행해도 되지 않느냐"는 극단적 궤변까지 다룹니다. 바울은 실제로 이신칭의 복음을 전하는 자신이 이런 식으로 왜곡되어 비방당하고 있었음을 밝히며("어떤 이들이 우리를 비방하여"), 이런 논리를 펴는 자들은 마땅히 정죄받는다고 단호히 선을 긋습니다. 이 문제는 6장에서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는 질문으로 다시 본격적으로 다뤄집니다.

반론에 답하는 단락이 주는 메시지

은혜의 복음은 언제나 오해받기 쉽습니다. "어차피 은혜로 구원받으니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왜곡은 바울 당대에도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참된 복음의 이해는 언제나 죄를 가볍게 여기게 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공의 앞에서 더 진지하게 살게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3:9–20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음 — 구약의 증언

시편과 이사야 등에서 가져온 구절들을 한 줄로 엮어, 인간 전체의 상태를 머리끝부터 발끝까지("목구멍··· 혀··· 입술··· 입··· 발··· 눈") 그려냅니다. 1:18-3:8까지의 긴 논증을 마침내 하나의 판결로 봉인하는 단락입니다.

9
그러면 어떠하냐 우리는 나으냐 결코 아니라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다 죄 아래에 있다고 우리가 이미 선언하였느니라

1:18-2:29의 긴 논증을 한 문장으로 요약합니다. '죄 아래'라는 표현은 단순히 '죄를 지었다'는 뜻을 넘어, 죄가 마치 지배자처럼 인간 전체를 다스리고 있다는 것을 뜻합니다.

10–12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시편 14편과 53편에서 인용한 구절들입니다. '하나도 없으며'가 세 번 반복되며 예외를 완전히 차단합니다. 이는 인간이 '아주 나쁘지는 않다'는 정도가 아니라,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을 찾거나 선을 행할 능력 자체가 없는 전적 무능력 상태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13–14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여러 시편(5, 140, 10편)을 이어 붙여 '말'의 죄악을 집중적으로 묘사합니다. 열린 무덤에서 나는 악취처럼, 인간의 말은 겉으로 포장되어 있어도 그 속에서 부패와 독이 흘러나온다는 강렬한 이미지입니다.

15–17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신속하며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이사야 59장에서 가져온 구절로, 이번엔 '발' — 곧 행동과 삶의 방향으로 초점이 옮겨갑니다.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은 1:7에서 바울이 빌었던 '평강'과 정확히 대조를 이룹니다.

18
그들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

구약 인용 모음의 마지막이자 결론입니다. 목구멍·혀·입술·입·발까지 이어진 죄의 목록은 결국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는' 근본 문제로 귀결됩니다. 1:21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와 정확히 같은 진단입니다.

19–20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1:18부터 시작된 길고 긴 고발이 마침내 최종 판결에 이릅니다. '모든 입을 막고'라는 표현은 법정 이미지로, 피고가 더 이상 변명할 말을 찾지 못하는 상태를 그립니다. 20절은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중요한 결론 중 하나입니다 — 율법을 아무리 지키려 애써도 그것으로는 결코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인정받을 수 없으며, 오히려 율법의 진짜 기능은 우리가 얼마나 죄인인지를 더 선명히 깨닫게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모두가 죄 아래 있다는 선언이 주는 메시지

이 본문 앞에서는 누구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신앙의 연조, 도덕적 노력, 교회 안에서의 지위 그 무엇도 우리를 이 판결에서 비켜가게 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바로 이 절망적인 진단이 있기에, 바로 다음 절 "그러나 이제는"이 이토록 놀라운 소식이 되는 것입니다.

3:21–26그러나 이제는 — 하나님의 의가 나타남

로마서, 나아가 신약 전체에서 가장 신학적으로 밀도 높은 여섯 절입니다. 1:18부터 3:20까지 쌓아온 절망적 진단이 여기서 극적으로 반전되며,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칭의의 복음이 선언됩니다.

21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

'그러나 이제는'은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무거운 전환어입니다. 1:18부터 이어진 심판의 논증이 여기서 끝나고 복음의 선언이 시작됩니다. '율법 외에' 나타났지만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았다'는 말은, 이 새로운 의가 구약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구약이 처음부터 예고해 온 것(1:2 참조)임을 다시 확인합니다.

22–23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차별이 없느니라'는 1:16-17의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의 순서를 넘어서는 선언입니다 — 죄에서도 은혜에서도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습니다. 23절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는 성경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구절 중 하나로, 3:9-20 전체를 한 문장으로 압축합니다.

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속량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

'속량'(아폴뤼트로시스)은 노예 시장에서 몸값을 치르고 노예를 해방시키는 데서 온 이미지입니다. 우리는 죄의 노예 상태에서 그리스도께서 치르신 대가로 해방되었습니다. '값없이'라는 단어는 이 해방이 우리의 어떤 공로나 대가 지불 없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진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써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이 절은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어려운 단어들이 밀집된 구절입니다. '화목제물'(힐라스테리온)은 헬라어 구약 성경(70인역)에서 지성소 언약궤 위의 '속죄소'(레위기 16장)를 가리킬 때 쓰던 바로 그 단어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곧 새로운 속죄소, 죄를 덮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시키는 자리가 되셨다는 뜻입니다. '간과하심'은 완전한 용서와는 결이 다른 표현으로, 구약 시대 동안 하나님께서 짐승 제사를 통해 죄를 임시로 '넘어가 주신' 것을 가리킵니다 — 그러나 그 짐승의 피는 결국 죄를 완전히 해결하지 못했고(히 10:4),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비로소 그 모든 '미뤄둔' 죄의 값이 완전히, 소급하여 치러졌습니다.

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

3:21-26 전체의 결론입니다. 십자가는 하나님의 두 속성 — 죄를 반드시 심판하시는 공의와, 죄인을 구원하시려는 사랑 — 이 서로 부딪히지 않고 동시에 완전히 만족되는 유일한 자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눈감아 주심으로써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그 죄의 값을 대신 치르심으로써 공의를 지키시면서도 믿는 자를 의롭다 하십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난 단락이 주는 메시지

이 여섯 절은 우리가 평생 되새겨야 할 복음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는 죄의 노예였지만,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고 우리를 자유롭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가 아니라 전적으로 값없이 주어지는 은혜입니다. 십자가 앞에 설 때마다 우리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동시에 완전하게 나타난 자리에 서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3:27–31자랑할 것이 없음, 그리고 율법을 굳게 세움

칭의의 복음이 인간의 자랑을 근본적으로 배제하며,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적용되고,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온전히 세운다는 것을 짧고 논리적으로 정리합니다.

27
그런즉 자랑할 데가 어디냐 있을 수가 없느니라 무슨 법으로냐 행위로냐 아니라 오직 믿음의 법으로니라

만약 구원이 조금이라도 우리의 행위에 근거한다면 자랑할 여지가 생깁니다. 그러나 구원이 전적으로 믿음으로 말미암기에 자랑은 원천적으로 차단됩니다. '믿음의 법'이라는 표현은 모세의 율법과 대조되는, 믿음이라는 새로운 구원의 원리를 가리킵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 우리가 인정하노라

3장 전체(나아가 1-3장 전체)의 결론을 한 문장으로 못박습니다. 루터는 독일어 번역에서 이 구절에 '오직'(allein)이라는 단어를 원문에 없이 삽입해 논란이 되기도 했지만, 문맥 전체(27, 20절)의 논리는 명백히 '오직 믿음으로'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29–30
하나님은 다만 유대인의 하나님뿐이시냐 또한 이방인의 하나님은 아니시냐 진실로 이방인의 하나님도 되시느니라. 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또한 무할례자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실 하나님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신명기 6:4('쉐마')의 대전제로부터, 구원의 길도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에게 동일하게 '믿음으로'만 열려 있다는 결론을 이끌어냅니다.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면 그분께 나아가는 길도 하나여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이신칭의 교리에 자연스레 따라오는 질문 — "그럼 율법은 필요 없어지는 것 아니냐" — 에 단호히 "그럴 수 없다"고 답합니다. 오히려 믿음의 복음은 율법이 본래 가리키던 것(그리스도, 그리고 은혜로만 가능한 순종)을 온전히 세웁니다. 이 주제는 8장(성령을 따라 행하여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삶)에서 더 깊이 다뤄집니다.

자랑할 것이 없다는 단락이 주는 메시지

우리 구원에는 내세울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신앙의 연조도, 도덕적 성취도, 교회 안에서의 지위도 자랑거리가 될 수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값없이 주어진 은혜만이 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 은혜는 율법을 무시하게 만들지 않고, 오히려 참된 순종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이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