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mans · 로마서 강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로마서 10장 절별 상세 강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 로마서 10:13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10장 들어가며

9장의 주권에서 10장의 초청으로

9장이 하나님의 주권적 택하심을 강조했다면, 10장은 그 주권이 결코 인간의 책임과 초청을 없애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간절한 마음을 밝히며(1절), 이스라엘이 실패한 진짜 이유 —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 한 것(2-3절) — 을 명확히 짚습니다.

10장의 중심은 구원이 얼마나 가까이, 얼마나 넓게 열려 있는지를 보여주는 데 있습니다. "그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8절)는 선언에서 시작해,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13절)는 로마서 전체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초청의 말씀으로 이어집니다. 그리고 그 부름을 위해서는 전파하는 자가 필요하다는 실천적 사명(14-17절)으로 나아갑니다.

마지막 단락(18-21절)은 다시 이스라엘의 문제로 돌아옵니다 — 그들이 정말 듣지 못해서 믿지 않은 것인지, 아니면 듣고도 순종하지 않은 것인지를 구약 인용을 통해 짚어내며, 11장에서 본격적으로 다룰 이스라엘의 미래를 예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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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

이스라엘을 향한 바울의 사랑이 다시 한번 표현되며, 9:31-33에서 지적된 이스라엘의 실패 원인이 더 명확하게 설명됩니다.

1–2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9:1-3의 근심에 이어, 바울은 다시 한번 이스라엘의 구원을 향한 간절한 기도를 밝힙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열심의 부족이 아니었습니다 — 오히려 그들에게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그 열심의 방향이 잘못되었다는 데 있습니다.

3–4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9:32에서 지적된 문제(믿음이 아니라 행위를 의지함)가 여기서 더 정밀하게 설명됩니다 —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주시는 의를 몰라서, 스스로 쌓아 올린 자기 의를 세우려 했습니다. '마침'(텔로스)이라는 헬라어 단어는 '끝남'과 '목표/완성' 두 뜻을 동시에 담을 수 있어, 그리스도가 율법 체계의 종결이자 동시에 율법이 본래 지향했던 목표의 성취이심을 압축적으로 보여줍니다.

자기 의와 하나님의 의 단락이 주는 메시지

종교적 열심 그 자체는 결코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진짜 질문은 우리가 무엇을 향해 열심인가입니다 — 스스로 쌓아 올린 의를 향한 열심인지, 아니면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의를 향한 믿음인지를 정직하게 돌아봐야 합니다.

10:5–13입으로 시인하고 마음으로 믿음 — 가까운 구원

모세의 글과 신명기를 인용하여, 하나님의 의에 이르는 길이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입과 마음에 가까이 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5–8
모세가 기록하되 율법으로 말미암는 의를 행하는 사람은 그 의로 살리라 하였거니와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는 이같이 말하되 ··· 그 말씀이 네게 가까워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다 하였으니 곧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이라

신명기 30:11-14을 인용하며(원래 문맥은 율법 순종의 접근 가능성을 말함), 바울은 이를 믿음의 의에 창의적으로 적용합니다. 구원은 하늘에 올라가거나 무저갱에 내려가야 얻을 수 있는 멀고 어려운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의 입과 마음 가까이에 와 있는 말씀입니다.

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네 마음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구원에 이르는 길이 명료하게 요약됩니다 — 마음으로 믿는 것(내적 신뢰)과 입으로 시인하는 것(외적 고백)이 함께 갑니다. '예수를 주로 시인함'은 초대교회 신앙고백의 핵심 문구("퀴리오스 예수스", 예수는 주님이시다)로, 로마 황제를 '주'(퀴리오스)로 숭배하던 시대 상황에서 목숨을 건 선언이었습니다.

11–13
성경에 이르되 누구든지 그를 믿는 자는 부끄러움을 당하지 아니하리라 하니,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이사야 28:16(11절)과 요엘 2:32(13절)을 인용해, 이 구원의 초청이 인종과 배경을 초월해 '누구든지'에게 열려 있음을 못박습니다. 13절은 로마서 전체, 나아가 성경 전체에서 가장 널리 사랑받는 구원의 초청 구절 중 하나입니다.

가까운 구원 단락이 주는 메시지

구원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특별한 자격이나 대단한 성취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믿고 입으로 고백하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는다는 이 약속에는 예외가 없습니다.

10:14–17전파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 전도의 사슬

13절의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는 약속에서 자연스레 이어지는 질문 — 어떻게 부를 수 있는가 — 을 통해 전도의 필연성을 논증합니다.

14–15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

13절에서 시작된 사슬을 역방향으로 하나씩 풀어냅니다: 부름 ← 믿음 ← 들음 ← 전파 ← 보내심. 각 단계가 이전 단계 없이는 불가능하다는 논리적 필연성을 통해, 복음 전파가 왜 반드시 필요한 사역인지를 보여줍니다.

보내심→ 전파→ 들음→ 믿음→ 부름(구원)
16–17
그러나 모두가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였도다 이사야가 이르되 주여 우리가 전한 것을 누가 믿었나이까 하였으니, 그러므로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전파의 사슬이 완성되어도 모두가 믿는 것은 아니라는 현실(이사야 53:1 인용)을 인정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통상적 경로는 명확합니다 —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복음 전파의 사역이 대체될 수 없는 이유입니다.

전도의 사슬이 주는 메시지

구원의 약속이 아무리 넓게 열려 있어도, 전하는 사람이 없다면 아무도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오늘 복음을 아는 것도 누군가 보내심을 받아 전했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가 그 사슬의 다음 고리가 되어야 할 차례입니다.

10:18–21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 듣고도 순종하지 않음

이스라엘의 실패가 정보의 부재(듣지 못함) 때문인지, 아니면 태도의 문제(듣고도 순종하지 않음) 때문인지를 구약 인용을 통해 명확히 가려냅니다.

18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냐 그렇지 아니하다 그 소리가 온 땅에 퍼졌고 그 말씀이 땅 끝까지 이르렀도다 하였느니라

첫 번째 가능한 변명 — "듣지 못해서 못 믿은 것 아니냐" — 을 시편 19:4 인용으로 차단합니다. 복음은 이미 광범위하게 전파되었습니다. 정보의 부재가 이스라엘의 문제는 아니었습니다.

19–21
그러나 내가 말하노니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먼저 모세가 이르되 내가 백성 아닌 자로 너희를 시기하게 하며 ··· 이사야는 매우 담대하여 이르되 내가 내게 묻지 아니한 자들에게 찾은 바 되고 ··· 이스라엘에 대하여 이르되 순종하지 아니하고 거슬러 말하는 백성에게 내가 종일 내 손을 벌렸노라

두 번째 가능한 변명 — "알지 못해서 못 믿은 것 아니냐" — 도 신명기 32:21(모세)과 이사야 65:1-2 인용으로 차단됩니다. 오히려 하나님을 찾지도 않던 이방인이 하나님을 발견했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종일 손을 벌리셨음에도 순종하지 않고 거역했습니다. 문제는 정보나 기회의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알지 못하였느냐 단락이 주는 메시지

이스라엘의 이야기는 오늘 우리에게도 경고입니다 — 문제는 대개 정보의 부족이 아니라 마음의 완악함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위로가 되는 것은, 하나님이 거역하는 백성에게조차 '종일 손을 벌리셨다'는 표현입니다. 이 오래 참으시는 사랑이 11장에서 펼쳐질 이스라엘의 소망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