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계시록 세부 강해 · Revelation
21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1절부터 27절까지 — 처음 하늘과 땅이 사라지고 새 창조가 시작되며,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어린 양의 신부인 거룩한 성이 하늘에서 내려옵니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REVELATION 21:4
Introduction · 들어가며

21장 들어가며

성경 전체가 향해 온 마지막 장면.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시고, 모든 눈물이 씻기는 곳

20장에서 사탄과 사망과 음부가 모두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오직 새 창조입니다. 21장은 성경 전체가 향해 달려온 마지막 장면입니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로 시작된 이야기가 21:1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로 완성됩니다. 에덴에서 잃어버린 하나님과의 함께함이 회복되고, 바벨탑에서 하늘에 닿으려 했던 인간의 도시 대신 하나님이 하늘에서 내려 보내시는 도시가 세워집니다.

이 장은 크게 두 부분입니다. 1-8절은 새 하늘과 새 땅에 대한 선언입니다. 보좌에서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계시록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은 1:8과 이곳뿐입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9-27절은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대한 자세한 묘사입니다. 성의 빛, 성곽과 문, 기초석, 크기, 보석, 그리고 성전이 없는 성.

17장에서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가운데 하나가 요한을 광야로 데려가 음녀 바벨론을 보여 주었습니다. 21:9-10에서 같은 천사 가운데 하나가 요한을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가 신부 예루살렘을 보여 줍니다. 음녀와 신부, 바벨론과 예루살렘, 사람이 쌓은 도시와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도시. 계시록은 이 두 도시를 나란히 보여 주며, 우리가 어느 도시의 시민인지 묻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

1–8절

처음 것들이 지나가고 만물이 새로워집니다. 하나님이 친히 사람과 함께 거하십니다.

신부의 성

9–14절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는 성. 열두 지파의 문과 열두 사도의 기초석.

성의 척량

15–21절

12,000 스다디온의 정육면체, 보석의 기초석, 진주 문, 정금의 길.

성전 없는 성

22–27절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십니다.

큰 성 바벨론 (17–18장)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21–22장)
상징큰 음녀어린 양의 신부
요한이 본 곳광야 (17:3)크고 높은 산 (21:10)
기원땅에서 쌓아 올림 — 바벨탑처럼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옴
꾸밈금·보석·진주를 몸에 걸침성 자체가 정금·보석·진주
만국과의 관계음행의 포도주로 만국을 미혹함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님
땅의 왕들그와 음행하고 그를 위해 욺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옴
결말불에 살라져 다시 보이지 않음영원히 서 있음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본문은 저작권이 만료된 『개역한글』입니다. 『개역개정』과 다른 표현은 노트에서 짚었습니다. 노트는 눌러서 펼치거나 위 메뉴의 "노트 모두 펼치기"로 한 번에 열 수 있습니다.
번역상 짚어 둘 곳무엇을 알아야 하나
1절 "새"원문 카이노스. 시간적으로 새것(네오스)이 아니라 질적으로 새로운 것.
3절 "장막"원문 스케네. 광야의 성막. 요 1:14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에스케노센).
8절 "술객들"術客, 마술사·주술사(파르마코이).
11절 "벽옥"碧玉, 원문 이아스피스. 4:3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
15절 "척량"尺量, 자로 잼. 11:1, 겔 40-42장.
16절 "장광", "고"長廣·高, 길이와 너비, 높이.
16절 "일만 이천 스다디온"1 스다디온은 약 185m. 12,000 스다디온은 약 2,220km.
17절 "일백사십사 규빗"1 규빗은 약 45cm. 144 규빗은 약 65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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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8새 하늘과 새 땅,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요한은 새 하늘과 새 땅을 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을 봅니다. 이어서 보좌에서 큰 음성이 울리고, 마침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하십니다. 이 여덟 절은 성경 전체에서 가장 위로가 되는 말씀 가운데 하나입니다. 교회는 2,000년 동안 장례식에서, 병상에서, 슬픔의 자리에서 이 말씀을 읽어 왔습니다.

1새 하늘과 새 땅 —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지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직역 또 나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보았다. 이전의 하늘과 이전의 땅은 사라지고, 바다도 더 이상 없었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이사야 65:17 "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66:22 "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베드로후서 3:13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여기서 ‘새’(카이노스)는 시간적으로 ‘최근의’(네오스)가 아니라, 질적으로 ‘완전히 새로운, 전혀 다른 차원의’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옛 세상을 버리고 아무것도 없는 데서 다시 시작하시는 것일까요, 아니면 옛 세상을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키시는 것일까요? 성경 학자들 사이에 견해가 나뉘지만, 로마서 8:21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를 보면, 하나님은 피조 세계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시고 회복하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우리의 몸이 죽었다가 영광스러운 몸으로 부활하듯이(고전 15:42-44), 창조 세계도 ‘부활’합니다.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죄와 저주 아래 신음하던 옛 창조가 지나갔습니다. 창세기 3:17 "땅은 너로 인하여 저주를 받고." 로마서 8:22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그 탄식이 끝났습니다.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왜 하필 바다를 언급할까요? 바다는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아쉬운 말처럼 들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과 고대 세계에서 바다는 여러 의미를 가졌습니다. ① 혼돈과 악의 근원 — 창세기 1:2의 "깊음"(흑암의 물), 13:1에서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왔습니다. 다니엘 7:3의 네 짐승도 바다에서 나왔습니다. ② 분리 — 요한은 지금 바다에 둘러싸인 밧모 섬에 유배되어 있습니다(1:9). 바다는 그를 사랑하는 교회들과 갈라놓았습니다. ③ 죽음 — 20:13에서 바다는 죽은 자들을 품고 있었습니다. ④ 바벨론의 무역로 — 18:17-19에서 바다는 바벨론의 부를 실어 나르던 길이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 바다가 없다는 것은 아름다운 해변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혼돈과 악과 분리와 죽음이 더 이상 없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출애굽 때 홍해가 갈라져 하나님의 백성이 건넜듯이, 새 출애굽의 끝에서 바다는 완전히 사라집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더 이상 없는 것들’ — 21-22장에는 ‘다시 없다’가 여러 번 나옵니다. 바다(21:1), 사망·애통·곡·아픔(21:4), 밤(21:25, 22:5), 저주(22:3). 새 창조는 무엇이 있느냐만큼 무엇이 없느냐로도 묘사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65:17보라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창조하나니 이전 것은 기억되거나 마음에 생각나지 아니할 것이라
  • 사 66:22나의 지을 새 하늘과 새 땅이 내 앞에 항상 있을 것 같이
  • 롬 8:21피조물도 썩어짐의 종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 벧후 3:13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 고후 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2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직역 또 나는 거룩한 도성 새 예루살렘이 하늘에서 하나님에게서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신랑을 위하여 단장한 신부와 같이 준비되어 있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 바벨론은 ‘큰 성’이었지만, 새 예루살렘은 ‘거룩한 성’입니다. 옛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성전이 있던 곳이었지만 죄로 더럽혀졌고, 11:8에서는 "영적으로 하면 소돔이라고도 하고 애굽이라고도 하니 곧 저희 주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이라 불렸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거룩합니다. 3:12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나님의 성 곧 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을 약속하셨습니다. 갈라디아서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히브리서 11:10에서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아브라함부터 모든 믿음의 사람들이 바라보던 그 성이 마침내 나타납니다.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이 방향이 중요합니다. 창세기 11:4에서 바벨탑을 쌓던 사람들은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자"고 했습니다. 사람이 땅에서 하늘로 올라가려 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은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옵니다. 구원은 사람이 쌓아 올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려 주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늘로 ‘가는’ 것이 마지막이 아니라, 하늘이 땅으로 ‘내려오는’ 것이 마지막입니다.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됩니다. 주기도문의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가 완성됩니다.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새 예루살렘은 성이면서 동시에 신부입니다. 9-10절에서 천사는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성을 보여 줍니다. 성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들, 곧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입니다. 19:7-8에서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라고 했던 신부가 이제 단장을 마치고 신랑 앞에 섭니다. 이사야 61:10 "신부가 자기 보물로 단장함 같게 하셨음이라."

함께 읽을 말씀
  • 사 52:1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네 아름다운 옷을 입을지어다
  • 창 11:4성과 대를 쌓아 대 꼭대기를 하늘에 닿게 하여 우리 이름을 내고
  • 갈 4:26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 히 11:10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 계 3:12하늘에서 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의 이름과
3"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직역 그리고 나는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보아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있다.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계실 것이요,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이것이 새 하늘과 새 땅의 핵심입니다. 금길도, 진주 문도, 보석 성곽도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계시는 것입니다. ‘장막’(스케네)은 광야 시대의 성막을 가리킵니다. 출애굽기 25:8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하나님은 광야에서 성막 안에 거하시며 이스라엘 가운데 계셨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서 ‘거하시매’(에스케노센)는 ‘장막을 치셨다’는 뜻으로, 같은 어근의 단어입니다. 예수님은 사람의 몸이라는 장막을 입고 우리 가운데 오셨습니다. 이제 마지막에 하나님은 영원히 사람들과 함께 장막을 치십니다.

성경 전체의 이야기. 이 구절은 성경 전체의 큰 흐름을 하나로 모읍니다. ① 에덴 —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며 사람과 함께하심(창 3:8). ② 타락 — 사람이 하나님의 낯을 피해 숨고 동산에서 쫓겨남(창 3:8, 24). ③ 성막과 성전 — 하나님이 백성 가운데 거하시지만, 휘장으로 가로막혀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감. ④ 임마누엘 —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마 1:23). ⑤ 성령 — 성도의 몸이 성령의 전이 됨(고전 6:19). ⑥ 새 예루살렘 — 하나님이 영원히, 완전히, 가림 없이 사람들과 함께 계심. 잃어버렸던 에덴의 함께함이 더 크고 영원하게 회복됩니다.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이것은 구약 전체에 반복되는 ‘언약의 공식’입니다. 레위기 26:12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예레미야 31:33, 에스겔 37:27 "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하나님은 수천 년 동안 이 약속을 하셨고, 이제 완전히 이루십니다. 원문에서 ‘백성’은 복수형(라오이)으로 쓰인 사본이 많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스라엘 한 민족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서 온 ‘백성들’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레 26:11-12내가 내 장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 하나님이 되겠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 겔 37:27내 처소가 그들의 가운데 있을 것이며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되리라
  • 출 25:8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 요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 고후 6:16내가 저희 가운데 거하며 두루 행하여 나는 저희 하나님이 되고 저희는 나의 백성이 되리라
4모든 눈물을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직역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실 것이니, 다시는 죽음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고통도 없을 것이다. 이전 것들이 다 지나갔기 때문이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이 구절은 성경에서 가장 다정한 구절 가운데 하나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그냥 없애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친히 손으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엄마가 우는 아이의 눈물을 닦아 주듯이. 이사야 25:8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7:17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시편 56:8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나님은 우리가 흘린 모든 눈물을 기억하시고, 그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모든’ 눈물입니다. 남몰래 흘린 눈물, 아무도 이해하지 못한 눈물, 너무 깊어서 말로 표현할 수 없었던 눈물까지.

"다시 사망이 없고." 20:14에서 사망이 불못에 던져졌습니다. 이제 다시는 죽음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일, 병상을 지키는 일, 장례식장에서 우는 일이 다시는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5:26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18:7에서 바벨론은 "결단코 애통을 당하지 아니하리라"고 교만하게 말했지만, 결국 애통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은 이 땅에서 애통했지만(마 5:4), 이제 영원히 애통하지 않습니다. 이사야 65:19 "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이사야 35:10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몸의 아픔도, 마음의 아픔도, 관계의 아픔도 모두 끝납니다.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이 모든 것은 "처음 것들", 곧 죄와 저주 아래 있던 옛 세상에 속한 것들이었습니다. 이제 그 모든 것이 지나갔습니다. 고린도후서 5:17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 이 약속은 지금 고통 중에 있는 사람에게 소망이 됩니다. 지금의 아픔은 영원하지 않습니다. "처음 것들"에 속한 것이고, 반드시 지나갑니다. 로마서 8:18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25:8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 사 35:10여호와의 속량함을 얻은 자들이 돌아오되… 슬픔과 탄식이 달아나리로다
  • 사 65:19우는 소리와 부르짖는 소리가 그 가운데서 다시는 들리지 아니할 것이며
  • 시 56:8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 롬 8:18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
  • 계 7:17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
5보좌에 앉으신 이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시고 또 가라사대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시고

직역 그리고 보좌에 앉으신 분이 말씀하셨다. "보아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한다." 또 말씀하셨다. "기록하여라. 이 말은 믿을 만하고 참되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가라사대." 계시록 전체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직접 말씀하시는 것은 단 두 번입니다. 1:8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그리고 이곳 21:5-8입니다. 책의 처음과 끝에서 하나님이 직접 말씀하십니다. 4장부터 계속 보좌에 앉아 계셨지만 침묵하셨던 하나님께서, 모든 심판이 끝난 뒤 마침내 입을 여시고 하시는 첫 말씀이 이것입니다.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이사야 43:18-19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적 일을 생각하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하나님은 ‘새 만물을 만든다’고 하지 않으시고 ‘만물을 새롭게 한다’고 하십니다. 버리고 새로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있는 것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동사가 현재형입니다. "새롭게 하노라." 하나님의 새롭게 하심은 마지막 날에 갑자기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 중입니다. 고린도후서 4:16 "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고린도후서 5:17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그리스도인은 이미 이 새 창조의 첫 열매입니다.

"이 말은 신실하고 참되니 기록하라." 하나님은 요한에게 이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말이 "신실하고 참되다"고 확증하십니다. 19:11에서 백마 탄 이의 이름이 "충신과 진실"이었습니다. 신실하고 참되신 분이 하신 말씀이니 신실하고 참됩니다. 이 약속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박해 속에서, 고통 속에서, 이 약속이 너무 좋아서 믿기 어려울 때,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것은 참이다. 기록해 두어라."

함께 읽을 말씀
  • 사 43:18-19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 고후 5:17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 고후 4:16우리의 겉사람은 후패하나 우리의 속은 날로 새롭도다
  • 계 1:8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전능한 자라
  • 계 22:6이 말은 신실하고 참된 자라
6"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또 내게 말씀하시되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직역 또 내게 말씀하셨다. "다 이루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끝이다. 목마른 사람에게는 내가 생명수 샘물을 거저 주겠다."

"이루었도다." 16:17에서 일곱째 대접이 쏟아질 때 보좌에서 "되었다"는 음성이 났습니다. 심판이 완성되었다는 선언이었습니다. 이제 다시 "이루었도다"가 울립니다. 이번에는 새 창조가 완성되었다는 선언입니다. 그리고 이 두 선언은 십자가의 "다 이루었다"(요 19:30)에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이루신 일이 심판의 완성과 새 창조의 완성으로 이어집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 알파(Α)는 헬라어 알파벳의 첫 글자이고, 오메가(Ω)는 마지막 글자입니다. 한글로 하면 ‘ㄱ부터 ㅎ까지’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시작이시고 끝이십니다. 역사를 시작하신 분이 역사를 완성하십니다. 이사야 44:6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그리고 22:13에서 그리스도께서도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내가 생명수 샘물로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 우주의 시작과 끝이신 분이 하시는 말씀이 놀랍습니다.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값없이’. 이사야 55:1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요한복음 4: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한복음 7:37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18장의 바벨론에서는 모든 것을 돈으로 사고팔았습니다. 금, 은, 진주, 향료, 심지어 사람의 영혼까지.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 가장 귀한 것, 생명은 값없이 주어집니다. 조건은 단 하나, 목마름입니다. 자기의 목마름을 아는 사람, 그것이 이 초대를 받는 사람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44:6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 사 55:1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 요 4:14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 요 7:37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 계 22:17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7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직역 "이기는 사람은 이것들을 상속받을 것이다. 나는 그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이기는 자는 이것들을 유업으로 얻으리라." 2-3장에서 일곱 교회에게 일곱 번 "이기는 자에게는"이라는 약속이 주어졌습니다. 생명나무 열매(2:7), 둘째 사망의 해를 받지 않음(2:11), 감추었던 만나와 흰 돌(2:17), 만국을 다스리는 권세와 새벽 별(2:26-28), 흰 옷과 생명책(3:5), 하나님 성전의 기둥과 새 예루살렘의 이름(3:12), 보좌에 함께 앉음(3:21). 이제 그 모든 약속이 하나로 모입니다. "이것들", 곧 새 하늘과 새 땅과 새 예루살렘의 모든 것을 유업으로 받습니다. ‘유업’은 상속받는 재산입니다. 우리가 일해서 버는 것이 아니라, 자녀이기 때문에 받는 것입니다.

"나는 저의 하나님이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라." 이것은 사무엘하 7:14에서 하나님이 다윗의 후손에 대해 하신 약속입니다. "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이 약속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졌습니다(히 1:5). 그런데 놀랍게도, 그리스도에게 주어진 그 약속이 이제 이기는 모든 성도에게 주어집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의 아들이 됩니다. 로마서 8:17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갈라디아서 4:7 "그러므로 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계시록에서 ‘아들’이라는 말이 성도에게 쓰인 것은 여기가 유일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아들" — 남성만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고대 사회에서 상속권을 가진 자녀를 뜻하는 법적 표현입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성도, 남녀 모두가 상속권을 가진 ‘아들’입니다(갈 3:26-29).
함께 읽을 말씀
  • 삼하 7:14나는 그 아비가 되고 그는 내 아들이 되리니
  • 롬 8:17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 한 후사니
  • 갈 4:7네가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이을 자니라
  • 요일 3:2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 계 2:7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
8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그러나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참예하리니 이것이 둘째 사망이라

직역 "그러나 비겁한 사람들과 신실하지 않은 사람들과 가증한 사람들과 살인자들과 음행하는 사람들과 마술하는 사람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쟁이들이 차지할 몫은, 불과 유황이 타오르는 바다뿐이다. 이것이 둘째 사망이다."

왜 여기에 이 경고가? 새 하늘과 새 땅의 아름다운 약속 바로 다음에 이 무거운 경고가 나옵니다. 이것은 독자들을 향한 마지막 호소입니다. 계시록은 먼 미래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책이 아니라, 지금 이 책을 읽는 교회들에게 결단을 요구하는 책입니다. 7절의 "이기는 자"와 8절의 사람들은 두 갈래 길을 보여 줍니다. 새 예루살렘의 유업인가, 불못의 몫인가.

"두려워하는 자들과 믿지 아니하는 자들과." 이 목록이 ‘두려워하는 자들’로 시작하는 것이 놀랍습니다. 살인자나 우상 숭배자보다 먼저 나옵니다. 여기서 ‘두려워하는 자’(데일로이)는 단순히 겁이 많은 사람이 아니라, 박해가 두려워서 믿음을 버리고 짐승에게 굴복한 사람들입니다. 7절의 ‘이기는 자’와 정반대입니다. 그리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아피스토이)은 ‘신실하지 않은 자들’로, 2:10 "죽도록 충성(피스토스)하라"와 대조됩니다. 계시록의 첫 독자들에게 가장 큰 유혹은 살인이나 음행보다, 박해를 피하기 위해 짐승 앞에 무릎 꿇는 것이었습니다.

"흉악한 자들과 살인자들과 행음자들과 술객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 이 목록은 계시록 전체에서 짐승과 바벨론을 따르는 자들의 특징을 요약합니다. 9:21 "그 살인과 복술과 음행과 도적질을 회개치 아니하더라." 18:23 "네 복술을 인하여 만국이 미혹되었도다." 그리고 마지막은 ‘모든 거짓말하는 자들’입니다. 사탄은 "거짓의 아비"(요 8:44)이고, 거짓 선지자는 거짓으로 미혹했습니다. 반대로 14:5에서 어린 양을 따르는 자들은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라고 했습니다.

회개의 문은 열려 있습니다. 이 목록은 무섭지만, 이것이 ‘영원히 정해진 사람들의 명단’은 아닙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6:9-11에서 비슷한 목록을 말한 뒤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과 우리 하나님의 성령 안에서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던 ‘두려워하는 자’였지만, 회개하여 교회의 기둥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죽이던 ‘살인자’였지만, 은혜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이 경고는 문을 닫기 위한 것이 아니라, 아직 열려 있는 문으로 들어오라는 마지막 호소입니다. 6절의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주리니"가 바로 앞에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22:15와 비교 —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거의 같은 목록이 마지막 장에서 다시 나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고전 6:9-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갈 5:19-21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 마 10:28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 계 2:10네가 죽도록 충성하라 그리하면 내가 생명의 면류관을 네게 주리라
  • 계 22:15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 밖에 있으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보라 내가 만물을 새롭게 하노라

하나님이 마지막에 하시는 일은 모든 것을 새롭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새 세상의 중심에는 금길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계십니다.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 계시고, 친히 우리의 모든 눈물을 닦아 주십니다.

지금 눈물 흘리는 일이 있습니까? 그 눈물은 "처음 것들"에 속한 것이고, 반드시 지나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 눈물을 하나도 잊지 않으시고, 그날 친히 닦아 주실 것입니다. 오늘 목마른 마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은 값없이 생명수를 주십니다.

21:9–14천사가 요한을 높은 산으로 데려가 어린 양의 아내,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다

17:1-3에서 일곱 대접을 가진 천사 가운데 하나가 요한을 광야로 데려가 음녀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제 같은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요한을 크고 높은 산으로 데려가 신부를 보여 줍니다. 그리고 그 신부는 거룩한 성입니다. 성의 빛, 성곽, 열두 문, 열두 기초석이 차례로 묘사됩니다. 그 모든 묘사는 에스겔 40-48장의 새 성전 환상과 이사야 54, 60장의 회복된 예루살렘 약속을 배경으로 합니다.

9일곱 천사 중 하나가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나아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

직역 마지막 일곱 재앙이 가득 담긴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가운데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였다. "이리 오너라. 내가 너에게 어린 양의 아내가 될 신부를 보여 주겠다."

"일곱 대접을 가지고 마지막 일곱 재앙을 담은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진노의 대접을 쏟았던 천사가 이제 신부를 보여 줍니다. 심판을 행한 바로 그 천사가 구원의 영광을 보여 주는 것은 의미가 깊습니다. 하나님의 심판과 구원은 별개의 일이 아니라 하나의 계획입니다. 바벨론이 무너져야 예루살렘이 세워지고, 음녀가 심판받아야 신부가 드러납니다.

"이리 오라 내가 신부 곧 어린 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17:1과 거의 같은 말입니다.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계시록은 의도적으로 두 장면을 나란히 놓았습니다. 음녀와 신부. 이 대조를 통해 요한은 묻습니다. 너는 어느 쪽에 속해 있느냐? 바벨론의 음녀처럼 세상과 음행하며 살 것이냐, 아니면 어린 양의 신부로서 신랑을 위해 정결하게 단장하며 살 것이냐?

함께 읽을 말씀
  • 사 54:5-6대저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여호와께서 너를 부르시되
  • 계 17:1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 계 19:7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 아내가 예비하였으니
10성령으로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직역 그 천사는 성령 안에서 나를 크고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도성 예루살렘을 보여 주었다.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17:3에서 요한은 "광야로" 갔고, 이제 "크고 높은 산으로" 갑니다. 광야는 황폐함과 멸망의 장소였고, 높은 산은 하나님의 계시와 임재의 장소입니다. 모세는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았고, 에스겔 40:2에서는 "하나님의 이상 중에 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고 했습니다. 이사야 2:2 "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높은 산에서 보아야 성의 전체 모습이 보입니다.

"거룩한 성 예루살렘을 보이니." 천사는 "신부를 보이리라"(9절)고 했는데, 실제로 보여 준 것은 "거룩한 성"입니다. 신부가 곧 성이고, 성이 곧 신부입니다. 새 예루살렘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자체입니다. 이것은 고대 세계에서 도시를 여성으로 표현했던 방식과도 통합니다(‘딸 시온’, ‘딸 바벨론’). 이후 묘사되는 성곽, 문, 기초석, 보석은 모두 하나님의 백성 공동체의 아름다움과 영광을 그림 언어로 보여 주는 것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겔 40:2나를 데리고 그 땅에 이르러 나를 극히 높은 산 위에 내려놓으시는데 거기서 남으로 향하여 성읍 형상 같은 것이 있더라
  • 사 2:2말일에 여호와의 전의 산이 모든 산 꼭대기에 굳게 설 것이요
  • 히 12:22너희가 이른 곳은 시온 산과 살아 계신 하나님의 성시인 하늘의 예루살렘과
  • 계 17:3곧 성령으로 나를 데리고 광야로 가니라
11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직역 그 도성은 하나님의 영광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 광채는 매우 값진 보석과 같고, 수정처럼 맑은 벽옥과 같았다.

"하나님의 영광이 있으매." 성의 아름다움은 성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서 나옵니다. 에스겔 43:2-5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동쪽에서 성전으로 돌아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에스겔 10-11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죄로 더럽혀진 성전을 떠났는데, 마지막에 다시 돌아옵니다. 그리고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영광이 성 전체에 가득합니다. 이사야 60:1-2 "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그 성의 빛이 지극히 귀한 보석 같고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 ‘벽옥’(이아스피스)은 4:3에서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할 때 쓰인 보석입니다.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성이 벽옥처럼 빛난다는 것은, 성이 하나님의 영광을 그대로 반사한다는 뜻입니다. 고대의 벽옥은 오늘날의 불투명한 재스퍼와 달리, "수정 같이 맑다"는 표현을 보면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아마 다이아몬드 같은 보석을 가리켰을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 아니라, 달이 햇빛을 반사하듯 하나님의 영광을 반사합니다. 고린도후서 3:18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함께 읽을 말씀
  • 겔 43:2이스라엘 하나님의 영광이 동편에서부터 오는데… 땅은 그 영광으로 인하여 빛나니
  • 사 60:1-2일어나라 빛을 발하라 이는 네 빛이 이르렀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위에 임하였음이니라
  • 고후 3:18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 계 4: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12크고 높은 성곽과 열두 문, 문에 열두 천사,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그 문들 위에 이름을 썼으니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직역 그 도성에는 크고 높은 성벽과 열두 대문이 있었다. 그 대문에는 열두 천사가 지키고 있고, 대문 위에는 이스라엘 자손의 열두 지파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크고 높은 성곽이 있고." 고대 도시에서 성곽은 안전과 보호를 뜻했습니다. 그런데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원수가 없는데 왜 성곽이 필요할까요? 성곽은 방어를 위한 것이라기보다,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히 안전하다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입니다. 이사야 26:1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과 곽으로 삼으시리로다." 또한 성곽은 경계를 뜻하기도 합니다. 27절에서 보듯, 속된 것은 그 안에 들어올 수 없습니다.

"열두 문이 있는데 문에 열두 천사가 있고." 에스겔 48:30-35에서 새 예루살렘에도 열두 문이 있고, 각 문에 이스라엘 지파의 이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성의 이름은 "여호와삼마", 곧 "여호와께서 거기 계시다"였습니다(겔 48:35). 문마다 천사가 있다는 것은 창세기 3:24를 떠올리게 합니다. 하나님은 에덴동산 동쪽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셨습니다. 그때 천사는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 문지기였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천사들은 문을 지키되, 들어오는 하나님의 백성을 맞이하는 문지기입니다. 그리고 25절에서 그 문들은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자손 열두 지파의 이름들이라." 문에는 구약 하나님 백성의 이름이 적혀 있습니다. 14절의 기초석에는 신약 교회의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이 하나의 성을 이룹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겔 48:31, 35그 성읍의 문들은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을 따를 것인데… 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 사 26:1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을 성과 곽으로 삼으시리로다
  • 창 3:24에덴 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 도는 화염검을 두어 생명나무의 길을 지키게 하시니라
  • 사 60:18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13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

동편에 세 문, 북편에 세 문, 남편에 세 문, 서편에 세 문이니

직역 동쪽에 대문이 셋, 북쪽에 대문이 셋, 남쪽에 대문이 셋, 서쪽에 대문이 셋이 있었다.

사방으로 열린 문. 문이 동서남북 사방에 셋씩 있습니다. 이것은 민수기 2장에서 광야의 이스라엘 진영이 성막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세 지파씩 진을 쳤던 모습, 그리고 에스겔 48:31-34의 새 예루살렘 문 배치와 같습니다. 그런데 이 배치가 보여 주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이 성이 사방에서 들어올 수 있는 성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예하리니"(눅 13:29)라고 하셨습니다. 이사야 49:12 "어떤 사람은 원방에서, 어떤 사람은 북방과 서방에서, 어떤 사람은 시님 땅에서 오리라." 하나님의 성은 어느 한 민족이나 한 방향에서만 들어올 수 있는 곳이 아닙니다. 온 세상 모든 방향에서 들어올 수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민 2:2-3이스라엘 자손은 각각 그 기와 그 종족의 기호 곁에 진을 치되 회막을 사면으로 대하여 치라
  • 사 49:12어떤 사람은 원방에서, 어떤 사람은 북방과 서방에서
  • 눅 13:29사람들이 동서남북으로부터 와서 하나님의 나라 잔치에 참예하리니
14성곽의 열두 기초석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직역 그 도성의 성벽에는 주춧돌이 열두 개가 있는데, 그 위에는 어린 양의 열두 사도의 열두 이름이 적혀 있었다.

"그 성에 성곽은 열두 기초석이 있고." 성곽은 열두 개의 기초석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에베소서 2:19-20 "너희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권속이라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교회는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터 위에 세워졌습니다. 히브리서 11:10에서 아브라함이 바랐던 것도 "터가 있는 성"이었습니다.

"그 위에 어린 양의 십이 사도의 열두 이름이 있더라." 12절의 문에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이, 14절의 기초석에는 열두 사도의 이름이 있습니다. 구약의 하나님 백성(이스라엘)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교회)이 하나의 성 안에 함께 있습니다. 4장의 이십사 장로(12 + 12)도 같은 의미로 이해되곤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는 하나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민족에게 이루어졌습니다(갈 3:7-9, 29).

평범한 사람들의 이름. 열두 사도는 대부분 갈릴리의 평범한 어부와 세리였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고, 도마는 의심했고, 모두가 예수님이 잡히실 때 도망쳤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이름이 하나님의 영원한 성의 기초석에 새겨졌습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사람들을 들어 쓰셔서 영원한 일을 하십니다. 고린도전서 1:27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원어 · 번역 노트
  • 가룟 유다 대신 — 사도행전 1:26에서 맛디아가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열두 사도가 되었습니다. 바울이 열둘에 포함되는지는 본문이 말하지 않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28:16보라 내가 한 돌을 시온에 두어 기초를 삼았노니 곧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이라
  • 엡 2:20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 마 16:18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 히 11:10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사방으로 열린 문

새 예루살렘의 문은 동서남북 사방에 열려 있고, 그 문에는 구약의 이스라엘 지파들의 이름이, 기초석에는 연약했던 사도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성은 모든 방향에서, 모든 민족이, 은혜로 들어오는 성입니다.

에덴의 문은 천사가 화염검으로 지키며 막았지만, 새 예루살렘의 문은 천사가 지키며 맞이합니다. 그 문은 오늘도 열려 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왔든, 어떤 과거를 가졌든, 어린 양을 통해 들어오는 사람을 하나님은 기쁘게 맞이하십니다.

21:15–21금 갈대로 성을 척량하니 — 12,000 스다디온의 정육면체, 보석의 기초석, 진주 문과 정금의 길

천사가 금 갈대로 성을 잽니다. 11:1-2에서 요한은 성전을 척량했는데, 그것은 하나님 백성을 보호하신다는 뜻이었습니다. 이제 천사가 영원한 성을 척량합니다. 그 크기와 재료는 상상을 뛰어넘습니다. 한 변이 약 2,220km인 정육면체, 벽옥의 성곽, 정금의 성, 열두 보석의 기초석, 하나의 진주로 된 문. 이 묘사는 문자적 건축 설계도라기보다, 하나님 백성의 완전함과 영광과 아름다움을 보여 주는 그림 언어입니다.

15성과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내게 말하는 자가 그 성과 그 문들과 성곽을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직역 내게 말하던 천사는 그 도성과 그 대문들과 성벽을 측량하려고 금으로 된 측량자를 가지고 있었다.

"척량하려고 금 갈대를 가졌더라." 에스겔 40:3-5에서 천사 같은 사람이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새 성전을 쟀습니다. 그 장대의 길이는 "6척", 곧 약 3m였습니다. 11:1에서 요한도 "지팡이 같은 갈대"로 성전을 척량했습니다. 성경에서 무언가를 척량하는 것은 그것이 하나님의 소유이고 하나님이 보호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번 척량 도구는 ‘금’ 갈대입니다. 측량하는 도구조차 금으로 되어 있을 만큼, 이 성은 존귀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겔 40:3, 5그 손에 삼줄과 척량하는 장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손에 척량하는 장대를 잡았는데 길이가 팔꿈치에서 손가락에 이르고 한 손바닥 넓이가 더한 자로 육 척이라
  • 슥 2:1-2척량줄을 그 손에 잡았기로… 예루살렘을 척량하여 그 장광을 보고자 하노라
  • 계 11:1또 내게 지팡이 같은 갈대를 주며 말하기를 일어나서 하나님의 성전과 제단과 그 안에서 경배하는 자들을 척량하되
16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그 갈대로 그 성을 척량하니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직역 그 도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길이와 너비가 같았다. 천사가 측량자로 그 도성을 재어 보니, 길이가 일만 이천 스타디온이었고,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같았다.

"그 성은 네모가 반듯하여 장광이 같은지라." 성은 정사각형입니다. 에스겔 48:16에서도 새 예루살렘은 사방이 각각 4,500척인 정사각형이었습니다. 고대 세계에서 정사각형은 완전함과 안정의 상징이었습니다.

"일만 이천 스다디온이요." 1 스다디온은 약 185m이므로, 12,000 스다디온은 약 2,220km입니다. 이것은 서울에서 부산까지 직선거리(약 325km)의 약 7배이고, 한반도 남북 길이(약 1,000km)의 두 배가 넘습니다. 넓이는 약 490만 km²로, 한반도 전체(약 22만 km²)의 약 22배, 유럽연합 전체 면적(약 420만 km²)보다 넓습니다. 1세기 로마 제국이 다스리던 지중해 세계를 거의 다 덮을 수 있는 크기입니다. 그러나 이 숫자의 핵심은 크기 자체보다 상징입니다. 12,000은 12(하나님 백성, 열두 지파·열두 사도) × 1,000(완전한 충만)입니다. 7:4-8의 144,000(12 × 12 × 1,000)처럼,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완전하게 들어갈 수 있는 성이라는 뜻입니다.

"장과 광과 고가 같더라." 길이와 너비와 높이가 모두 같습니다. 성은 정육면체입니다. 높이가 2,220km라면, 국제우주정거장이 도는 높이(약 400km)의 다섯 배가 넘습니다. 그런데 성경에서 정육면체인 공간이 단 하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6:20 "그 내소의 속은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솔로몬 성전의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는 가장 거룩한 곳, 대제사장만 일 년에 한 번 들어갈 수 있었던 그곳이 정육면체였습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 전체가 지성소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성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삽니다. 그래서 22절에서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라고 합니다. 성 자체가 거대한 지성소이기 때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환산 — 1 스다디온 ≈ 185m(600 그리스 피트). 12,000 × 185m = 2,220km. 넓이 2,220 × 2,220 ≈ 493만 km².
함께 읽을 말씀
  • 왕상 6:20그 내소의 속은 장이 이십 규빗이요 광이 이십 규빗이요 고가 이십 규빗이라 정금으로 입혔고
  • 겔 48:16그 성읍의 척수는 북편도 사천오백 척이요 남편도 사천오백 척이요
  • 엡 3:18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 계 7:4인 맞은 자의 수를 들으니 이스라엘 자손의 각 지파 중에서 인 맞은 자들이 십사만 사천이니
17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그 성곽을 척량하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직역 또 그가 성벽을 재어 보니, 사람의 치수로 백사십사 규빗이었는데, 그것은 천사의 치수이기도 하다.

"일백사십사 규빗이니." 1 규빗은 팔꿈치에서 가운뎃손가락 끝까지의 길이로, 약 45cm입니다. 144 규빗은 약 65m입니다. 오늘날 20층 남짓한 아파트 높이입니다. 이것이 성곽의 높이인지 두께인지 본문은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높이라면, 성의 높이가 2,220km인데 성곽은 65m밖에 되지 않으니 이상해 보입니다.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두께로 봅니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이 숫자도 상징입니다. 144는 12 × 12입니다.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 하나님의 모든 백성의 완전함을 뜻합니다.

"사람의 척량 곧 천사의 척량이라." 천사가 쟀지만, 사람이 쓰는 단위로 쟀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하늘의 영광을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보여 주십니다. 우리는 아직 하늘의 실체를 다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은 우리가 알 수 있는 말과 숫자와 그림으로 그것을 미리 보여 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환산 — 1 규빗 ≈ 44.5~45cm. 144 × 0.45m ≈ 64.8m.
함께 읽을 말씀
  • 신 3:11그 침상은 철 침상이라… 사람의 보통 규빗으로 그 장이 아홉 규빗이요
  • 계 7:4십사만 사천이니
18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직역 그 성벽은 벽옥으로 쌓았고, 도성은 맑은 유리와 같은 순금으로 되어 있었다.

"그 성곽은 벽옥으로 쌓였고." 11절에서 성의 빛이 "벽옥과 수정 같이 맑더라"고 했습니다. 성곽 전체가 하나님의 영광(4:3)을 반사하는 보석으로 되어 있습니다.

"그 성은 정금인데 맑은 유리 같더라." 성 전체가 정금, 곧 순금입니다. 그런데 그 금이 "맑은 유리 같다"고 합니다. 이 땅의 금은 아무리 순수해도 투명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이 땅에 없는 금, 완전히 정결하여 빛이 그대로 통과하는 금입니다. 솔로몬은 성전의 지성소를 "정금으로 입혔습니다"(왕상 6:20-22). 새 예루살렘은 금으로 ‘입힌’ 것이 아니라 성 자체가 금입니다. 그리고 그 금은 투명해서 하나님의 영광이 막힘없이 비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완전히 정결해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조금도 가리지 않고 드러낸다는 뜻입니다. 18장의 바벨론은 금을 사고팔고 몸에 걸쳤지만(18:12, 16), 새 예루살렘에서 금은 사고파는 상품이 아니라 길에 깔린 것입니다(21절).

함께 읽을 말씀
  • 왕상 6:20-22정금으로 입혔고… 온 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 사 54:11-12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 계 18:16금과 보석과 진주로 꾸민 것인데
19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 — 벽옥, 남보석, 옥수, 녹보석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첫째 기초석은 벽옥이요 둘째는 남보석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녹보석이요

직역 그 도성의 성벽 주춧돌들은 각종 보석으로 꾸며져 있었다. 첫째 주춧돌은 벽옥이요, 둘째는 사파이어요, 셋째는 옥수요, 넷째는 비취옥이요,

"그 성의 성곽의 기초석은 각색 보석으로 꾸몄는데." 14절에서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진 열두 기초석이 이제 각각 다른 보석으로 묘사됩니다. 이사야 54:11-12 "너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여 보라 내가 화려한 채색으로 네 돌 사이에 더하며 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이 약속은 "곤고하며 광풍에 요동하여 안위를 받지 못한 자"에게 주어졌습니다. 고난받는 하나님의 백성이 마지막에 보석으로 꾸며집니다.

대제사장의 흉패. 이 열두 보석은 출애굽기 28:17-20에서 대제사장이 가슴에 달았던 흉패의 열두 보석을 떠올리게 합니다. 대제사장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이름을 새긴 열두 보석을 가슴에 달고 하나님 앞에 나아갔습니다(출 28:21, 29). 하나님의 백성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 앞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새 예루살렘에서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가 그 보석이 됩니다. 성 전체가 하나님 앞에 선 대제사장의 흉패와 같습니다. 고대 보석 이름이 시대마다 달라 정확히 같은 보석인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칠십인역(헬라어 구약)의 흉패 보석 목록과 상당 부분이 겹칩니다.

첫 네 보석. ① 벽옥 — 11, 18절에서처럼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하나님의 영광(4:3). ② 남보석 — 푸른 사파이어. 출애굽기 24:10에서 이스라엘 장로들이 하나님을 뵈었을 때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③ 옥수 — 칼케돈(오늘날 튀르키예의 칼케돈 지방에서 나던 돌), 청록이나 회색빛 마노의 일종. ④ 녹보석 — 에메랄드. 4:3에서 보좌를 둘러싼 무지개가 "녹보석 같더라."

함께 읽을 말씀
  • 출 28:17-21그것에 네 줄로 보석을 물리되… 그 보석들은 이스라엘 아들들의 이름대로 열둘이라
  • 사 54:11-12청옥으로 네 기초를 쌓으며 홍보석으로 네 성벽을 지으며
  • 출 24:10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 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 계 4: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또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그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20홍마노, 홍보석, 황옥, 녹옥, 담황옥, 비취옥, 청옥, 자정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보석이요 일곱째는 황옥이요 여덟째는 녹옥이요 아홉째는 담황옥이요 열째는 비취옥이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두째는 자정이라

직역 다섯째는 홍마노요, 여섯째는 홍옥수요, 일곱째는 귀감람석이요, 여덟째는 녹주석이요, 아홉째는 황옥이요, 열째는 녹옥수요, 열한째는 청옥이요, 열둘째는 자수정이었다.

여덟 보석. ⑤ 홍마노 — 붉은색과 흰색 줄무늬가 있는 마노(사르도닉스). ⑥ 홍보석 — 붉은 보석(사르디온, 오늘날의 카넬리안). 4:3에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모습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였습니다. 첫째 기초석 벽옥과 여섯째 기초석 홍보석이 바로 하나님의 모습을 묘사한 두 보석입니다. ⑦ 황옥 — 원문 ‘금빛 돌’(크뤼솔리토스), 황금빛이나 황록색 보석. ⑧ 녹옥 — 녹색 베릴(녹주석). ⑨ 담황옥 — 연한 노란빛의 토파즈. ⑩ 비취옥 — 황록색 옥수(크뤼소프라소스). ⑪ 청옥 — 청자색 보석(휘아킨토스, 히아신스 꽃 빛깔). ⑫ 자정 — 보랏빛 자수정(아메쉬스토스).

무지개 같은 성. 열두 보석의 색을 모아 보면 투명한 빛, 파랑, 청록, 초록, 빨강과 흰 줄무늬, 빨강, 금빛, 녹색, 노랑, 황록, 청자, 보라. 거의 무지개의 모든 색이 들어 있습니다. 4:3에서 하나님의 보좌는 무지개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창세기 9:13에서 무지개는 하나님이 다시는 세상을 물로 멸하지 않으시겠다는 언약의 표징이었습니다. 새 예루살렘의 기초는 하나님의 언약의 무지개 위에 세워져 있습니다.

다양함 속의 하나. 열두 보석은 각각 다른 색, 다른 빛을 냅니다. 그러나 함께 하나의 성의 기초를 이룹니다. 하나님의 백성도 그렇습니다.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온 사람들이 각자의 아름다움을 가지고 하나의 성을 이룹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똑같게 만드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빛깔대로 빛나게 하시면서 하나로 모으십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보석 이름의 번역 — 고대 보석 이름은 오늘날의 광물 분류와 정확히 일치하지 않습니다. 개역한글, 개역개정, 새번역의 보석 이름이 서로 조금씩 다른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창 9:13내가 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었나니 이것이 나의 세상과의 언약의 증거니라
  • 겔 28:13각종 보석 곧 홍보석과 황보석과 금강석과 황옥과 홍마노와 창옥과 청보석과 남보석과 홍옥과 황금으로 단장하였음이여
  • 말 3:17나의 정한 날에 그들로 나의 특별한 소유를 삼을 것이요
  • 계 4:3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21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직역 또 열두 대문은 열두 진주로 되어 있는데, 대문마다 진주 한 개로 되어 있었다. 도성의 넓은 거리는 맑은 유리와 같은 순금이었다.

"그 열두 문은 열두 진주니 문마다 한 진주요." 각 문이 하나의 거대한 진주로 되어 있습니다. 18:12에서 보았듯이 1세기에 진주는 가장 비싼 보석이었습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진주 귀걸이 한 알이 오늘 돈으로 약 2,500억 원에 해당했습니다.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문 하나가 통째로 진주입니다. 유대 전승(탈무드 『바바 바트라』 75a)에도 하나님이 예루살렘의 문을 30규빗 크기의 보석과 진주로 만드실 것이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진주의 의미. 진주는 조개 안에 들어온 모래알 같은 이물질이 상처를 내면, 조개가 그 상처를 감싸며 오랜 시간 층을 쌓아 만들어집니다. 진주는 고통에서 태어난 보석입니다. 새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모든 문이 진주라는 것은 의미 깊습니다. 우리가 그 성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어린 양의 고난과 상처 때문입니다. 이사야 53: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입었도다." 그리고 하나님의 백성도 많은 환난을 지나 그 문에 이릅니다(행 14:22). 예수님은 천국을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 13:46)고 하셨습니다.

"성의 길은 맑은 유리 같은 정금이더라." 성의 길이 순금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가장 탐내고, 그것을 위해 싸우고, 죽이고, 영혼까지 파는 금이, 새 예루살렘에서는 발에 밟히는 길바닥입니다. 바벨론에서 가장 귀한 상품이었던 것이(18:12), 하나님 나라에서는 가장 평범한 것이 됩니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가 이 세상의 가치와 얼마나 다른지 보여 줍니다. 그곳에서 진짜 보물은 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시편 73:25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원어 · 번역 노트
  • ‘길’ — 원문 플라테이아, 넓은 거리, 큰길. 22:2에서 생명수 강이 흐르는 그 길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54:12석류석으로 네 성문을 만들고 네 지경을 다 보석으로 꾸밀 것이며
  • 시 73:25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 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 마 13:45-46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
  • 마 6:19-20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 계 18:12그 상품은 금과 은과 보석과 진주와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발에 밟히는 금

새 예루살렘의 문은 진주이고, 길은 순금입니다. 이 땅에서 사람들이 평생을 바쳐 얻으려 하는 금이, 그곳에서는 발에 밟히는 길바닥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진짜 보물은 금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 성의 모든 문은 진주입니다. 상처에서 태어난 보석입니다. 어린 양의 상처가 우리에게 문이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지나는 상처와 고난도, 하나님 손에서 진주가 될 것입니다. 오늘 무엇을 보물로 여기며 살고 있습니까?

21:22–27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며,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다

요한은 성 안을 둘러보다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합니다. 성전이 없습니다. 예루살렘의 중심은 언제나 성전이었는데,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해와 달도 필요 없습니다. 밤도 없고, 성문은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만국과 땅의 왕들이 그리로 들어옵니다. 이 단락은 이사야 60장의 예언이 거의 그대로 이루어지는 장면입니다.

22성 안에 성전을 보지 못하였으니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이는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직역 나는 그 안에서 성전을 보지 못하였다. 전능하신 주 하나님과 어린 양이 그 도성의 성전이시기 때문이다.

"성 안에 성전을 내가 보지 못하였으니." 1세기 유대인에게 이것은 거의 상상할 수 없는 말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성전이 있기 때문에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에스겔 40-48장의 회복된 예루살렘 환상도 대부분이 새 성전에 대한 묘사였습니다. 그런데 요한이 본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이 글이 쓰일 무렵 예루살렘 성전은 이미 주후 70년에 로마에 의해 불타 무너진 상태였습니다. 많은 유대인들은 성전이 다시 세워지기를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요한은 말합니다.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필요 없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와 및 어린 양이 그 성전이심이라." 성전이 없는 이유는 성전이 필요 없기 때문입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하나님이 직접 함께 계시니,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특별한 장소가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 자신이 성전입니다. 예수님은 요한복음 2:19-21에서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예수는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4:21, 23에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리라…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나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날이 마침내 완전히 이르렀습니다.

16절의 정육면체와 연결. 16절에서 성 전체가 지성소처럼 정육면체였습니다. 성 전체가 성전이니, 성 안에 따로 성전이 있을 필요가 없습니다. 휘장도, 제단도, 제사장의 중재도 필요 없습니다. 모든 하나님의 백성이 언제나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봅니다(22:4).

원어 · 번역 노트
  • "하나님… 및 어린 양" — 계시록 마지막 장면에서 하나님과 어린 양은 언제나 함께 나옵니다. 성전(21:22), 빛(21:23), 보좌(22:1, 3). 어린 양은 하나님과 동등한 영광을 받으십니다.
함께 읽을 말씀
  • 겔 48:35그 날 후로는 그 성읍의 이름을 여호와삼마라 하리라
  • 요 2:19-21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 성전된 자기 육체를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라
  • 요 4:21, 23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신령과 진정으로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오나니
  • 고전 3:16너희는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계 22:4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23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는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직역 그 도성에는 해나 달이 비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이 그 도성을 밝혀 주고, 어린 양이 그 도성의 등불이시기 때문이다.

"그 성은 해나 달의 비췸이 쓸 데 없으니." 이사야 60:19-20 "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달도 네게 빛을 비취지 않을 것이요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네 하나님이 네 영광이 되리니 다시는 네 해가 지지 아니하며 네 달이 물러가지 아니할 것은 여호와가 네 영영한 빛이 되고 네 슬픔의 날이 끝날 것임이라." 해와 달은 창세기 1:14-16에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빛입니다. 고대 세계의 많은 사람들은 해와 달을 신으로 섬겼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서는 창조된 빛이 필요 없습니다. 창조주 자신이 빛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1:3에서 하나님은 해와 달을 만드시기 전(넷째 날)에 이미 첫째 날 "빛이 있으라"고 하셨습니다. 그 첫 빛, 하나님에게서 나오는 빛이 새 예루살렘을 비춥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취고 어린 양이 그 등이 되심이라."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고, 어린 양이 그 빛을 담은 등불입니다. 요한복음 8:12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요한복음 1:9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고린도후서 4:6 "어두운 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하나님의 영광은 어린 양을 통해 비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얼굴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봅니다. 18:23에서 바벨론의 "등불 빛이 결코 다시 네 가운데서 비취지 아니하고"라고 했지만, 새 예루살렘의 등불은 영원히 꺼지지 않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60:19-20다시는 낮에 해가 네 빛이 되지 아니하며… 오직 여호와가 네게 영영한 빛이 되며
  • 창 1:3하나님이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
  • 요 8:12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 고후 4:6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으로
  • 계 22:5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24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직역 민족들이 그 도성의 빛 가운데로 걸어 다니고, 땅의 왕들이 자기들의 영광을 가지고 그 도성으로 들어올 것이다.

"만국이 그 빛 가운데로 다니고." 이사야 60:3 "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계시록에서 ‘만국’은 대부분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으로 나왔습니다.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하고(18:3), 짐승을 따르고(13:7), 성도들을 박해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만국이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걸어 다닙니다. 15:4의 노래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가 이루어집니다. 이것은 모든 민족에서 구원받은 사람들, 5:9와 7:9의 "각 족속과 방언과 백성과 나라"에서 온 사람들입니다.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리라." 이것은 놀라운 반전입니다. 17-18장에서 "땅의 왕들"은 바벨론과 음행하고(17:2, 18:3), 짐승에게 권세를 주고(17:13), 어린 양과 싸우고(17:14, 19:19), 바벨론이 무너질 때 멀리 서서 울었습니다(18:9). 그런데 이제 땅의 왕들이 새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그들이 가져오는 것은 "자기 영광"입니다. 이것은 각 민족과 문화가 가진 아름다운 것들, 하나님이 각 민족에게 주신 선물들이 새 예루살렘에서 정화되어 하나님께 드려진다는 뜻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사야 60:5-11에서 열방의 재물,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 스바의 금과 유향, 다시스의 배가 예루살렘으로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이 땅의 모든 좋은 것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구속하고 완성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 ‘땅의 왕들’의 정체 — 19:19-21에서 하나님을 대적한 왕들은 이미 심판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서 들어오는 왕들은 회개하고 구원받은 민족들의 지도자들, 또는 각 민족이 가진 영광을 대표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60:3열방은 네 빛으로, 열왕은 비취는 네 광명으로 나아오리라
  • 사 60:11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이는 사람들이 열방의 재물을 네게로 가져오며 그 왕들을 포로로 이끌어 옴이라
  • 시 72:10-11다시스와 섬의 왕들이 공세를 바치며… 모든 왕이 그 앞에 부복하며 열방이 다 그를 섬기리로다
  • 계 15:4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25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직역 그 도성의 대문들은 하루 종일 닫히지 않는다. 거기에는 밤이 없기 때문이다.

"성문들을 낮에 도무지 닫지 아니하리니." 고대 도시의 성문은 밤이 되면, 그리고 적이 쳐들어올 때 굳게 닫혔습니다. 성문을 닫는 것은 안전을 지키기 위해서였습니다. 느헤미야 7:3 "해가 높이 뜨기 전에는 예루살렘 성문을 열지 말고 아직 파수할 때에 곧 문을 닫고 빗장을 지르며." 그런데 새 예루살렘의 성문은 결코 닫히지 않습니다. 원수도, 위험도 없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60:11 "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거기는 밤이 없음이라." 낮에 닫지 않는다고 했는데, 밤이 아예 없으니 성문은 영원히 열려 있습니다. 성경에서 밤은 어둠, 위험, 두려움, 죄, 슬픔의 상징입니다. 시편 30:5 "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요한복음 13:30에서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러 나갔을 때 "밤이러라." 새 예루살렘에는 그런 밤이 없습니다. 영원한 아침입니다. 22:5 "다시 밤이 없겠고 등불과 햇빛이 쓸데없으니 이는 주 하나님이 저희에게 비취심이라."

열린 문. 이 열린 문은 3:8에서 빌라델비아 교회에게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에덴의 문은 닫혔고, 노아의 방주 문도 닫혔고(창 7:16), 열 처녀 비유의 혼인 잔치 문도 닫혔습니다(마 25:10). 그러나 새 예루살렘의 문은 영원히 열려 있습니다. 하나님의 환영은 끝이 없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60:11네 성문이 항상 열려 주야로 닫히지 아니하리니
  • 슥 14:7여호와의 아시는 한 날이라 낮도 아니요 밤도 아니라 저녁 때에 빛이 있으리로다
  • 시 30:5저녁에는 울음이 기숙할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 계 3:8볼지어다 내가 네 앞에 열린 문을 두었으되 능히 닫을 사람이 없으리라
  • 계 22:5다시 밤이 없겠고
26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직역 사람들은 민족들의 영광과 명예를 그 도성으로 가지고 들어올 것이다.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그리로 들어오겠고." 24절에서 땅의 왕들이 자기 영광을 가지고 들어왔는데, 이제 사람들이 만국의 영광과 존귀를 가지고 들어옵니다. 하나님의 새 창조는 획일적인 세상이 아닙니다. 각 나라와 민족과 문화가 가진 아름다움, 음악과 언어와 예술과 지혜가 정화되어 하나님의 성에 드려집니다. 7:9에서 흰 옷 입은 무리가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나왔다는 것은, 새 예루살렘에서도 그 다양함이 사라지지 않고 각자의 방식으로 하나님을 찬양한다는 뜻입니다.

바벨론과의 대조. 18:11-17에서 상인들은 만국의 모든 귀한 것을 바벨론으로 실어 날랐습니다. 그것은 탐욕과 사치를 위한 것이었고, 결국 "일시간에" 망했습니다. 그러나 새 예루살렘에 들어오는 만국의 영광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같은 세상의 아름다움이 바벨론에서는 우상이 되었고, 새 예루살렘에서는 예배가 됩니다. 그리스도인이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선한 일, 예술과 학문과 일과 섬김이 하나님 나라에서 의미를 갖는다는 소망을 주는 말씀입니다(고전 15:58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함께 읽을 말씀
  • 사 60:5바다의 부가 네게로 돌아오며 열방의 재물이 네게로 옴이라
  • 학 2:7내가 만국을 진동시킬 것이며 만국의 보배가 이르리니 내가 영광으로 이 전에 충만케 하리라
  • 고전 15:58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을 앎이니라
  • 계 7:9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27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직역 그러나 속된 것은 무엇이나 그 도성에 들어가지 못하고, 가증한 일과 거짓을 행하는 자도 들어가지 못한다. 다만 어린 양의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만 들어간다.

"무엇이든지 속된 것이나 가증한 일 또는 거짓말하는 자는 결코 그리로 들어오지 못하되." 문은 영원히 열려 있지만(25절), 아무나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속된 것’(코이논)은 부정하고 더러운 것, ‘가증한 일’은 우상 숭배와 관련된 일(17:4-5 음녀의 "가증한 것들"), ‘거짓말하는 자’는 8절의 목록 마지막에도 나왔습니다. 이사야 52:1 "거룩한 성 예루살렘이여… 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새 예루살렘은 완전히 거룩한 성입니다. 그곳에는 죄도, 악도, 거짓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곳은 완전히 안전하고, 완전히 평화롭습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그렇다면 누가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 모두는 한때 속되고, 가증하고, 거짓말하던 사람들이 아닙니까? 바로 그래서 이 마지막 말이 복음입니다. 들어갈 수 있는 기준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입니다. 20:12, 15에서 보았듯이, 생명책은 우리의 행위가 아니라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의 은혜에 근거합니다(13:8). 우리의 속됨은 어린 양의 피로 씻겼고(7:14, 고전 6:11), 우리의 이름은 은혜로 그 책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성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거룩하신 어린 양이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21장의 마지막 말. 21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뿐이라." 새 하늘과 새 땅, 진주 문과 정금의 길, 하나님의 영광과 어린 양의 등불. 그 모든 영광의 문은 오직 어린 양을 통해서만 열립니다. 예수님은 "나는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요 10:9)라고 하셨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 사 52:1이제부터 할례 받지 않은 자와 부정한 자가 다시는 네게로 들어옴이 없을 것임이라
  • 사 35:8거기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깨끗지 못한 자는 지나지 못하겠고
  • 요 10: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 고전 6:11너희 중에 이와 같은 자들이 있더니… 씻음과 거룩함과 의롭다 하심을 얻었느니라
  • 계 20:15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더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성전이 필요 없는 곳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어린 양이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해와 달도 필요 없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빛이 되시기 때문입니다. 성문은 결코 닫히지 않고, 밤도 없습니다. 그곳의 중심은 건물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입니다.

그리고 그 문은 "오직 어린 양의 생명책에 기록된 자들"을 위해 열려 있습니다. 우리가 거룩해서가 아니라, 어린 양이 우리를 씻기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그날의 예배를 미리 드리는 것입니다. 그날 우리는 휘장도, 성전도 없이 하나님의 얼굴을 직접 뵐 것입니다.

Measurements · 척량

새 예루살렘의 치수를 오늘의 단위로

16–17절의 숫자들을 오늘의 단위로 풀어 보고, 그 상징을 함께 살펴봅니다
본문고대 단위오늘의 단위비교상징
성의 한 변 (16절)12,000 스다디온약 2,220km서울~부산 직선거리의 약 7배, 한반도 남북 길이의 2배 이상12(하나님 백성) × 1,000(충만)
성의 넓이—약 490만 km²한반도의 약 22배, 유럽연합 전체보다 넓음모든 민족이 들어갈 수 있는 충분한 공간
성의 높이 (16절)12,000 스다디온약 2,220km국제우주정거장 궤도(약 400km)의 5배 이상정육면체 = 지성소 (왕상 6:20)
성곽 (17절)144 규빗약 65m20층 남짓한 아파트 높이12 × 12 (열두 지파 × 열두 사도)
측량 도구 (15절)금 갈대약 3m (겔 40:5)—하나님의 소유와 보호

환산 기준: 1 스다디온 ≈ 185m, 1 규빗 ≈ 45cm.

숫자를 어떻게 읽을까. 이 숫자들을 문자 그대로 건축 설계도로 읽으면, 높이 2,220km의 성에 65m의 성곽이 있다는 것은 어색하고, 지구의 대기권을 훨씬 넘어서는 구조물이 됩니다. 요한은 이 숫자들을 통해 하나님의 성이 ① 하나님의 모든 백성이 들어갈 수 있을 만큼 충분히 크고(12,000), ② 완전하게 균형 잡혀 있으며(정육면체), ③ 성 전체가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있는 지성소이고, ④ 구약과 신약의 하나님 백성이 함께 이룬 성(12 × 12)이라는 것을 보여 줍니다. 우리가 붙들 것은 정확한 크기가 아니라 그 크기가 말하는 하나님의 넉넉하심입니다. 예수님은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요 14:2)라고 하셨습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21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새 하늘과 새 땅1절

질적으로 새로워진 창조 세계(카이노스).

바다1절

혼돈·악·분리·죽음의 상징. 새 창조에서 사라짐.

새 예루살렘2, 10절

하늘에서 내려오는 거룩한 성. 어린 양의 신부, 하나님의 백성.

장막3절

스케네. 광야의 성막. 하나님이 사람과 함께 거하심.

알파와 오메가6절

헬라어 알파벳의 처음과 끝. 시작과 끝이신 하나님.

생명수 샘물6절

값없이 주시는 영원한 생명.

유업遺業 · 7절

상속받는 재산. 자녀이기에 받는 것.

술객術客 · 8절

마술사, 주술사.

둘째 사망8절

불못. 하나님과의 영원한 분리.

벽옥碧玉 · 11, 18–19절

투명하게 빛나는 보석. 하나님의 영광(4:3).

성곽城郭 · 12절

성벽. 안전과 보호, 거룩함의 경계.

기초석基礎石 · 14, 19절

주춧돌. 열두 사도의 이름이 새겨짐.

척량尺量 · 15–17절

자로 잼. 하나님의 소유와 보호.

스다디온16절

약 185m. 12,000 스다디온은 약 2,220km.

장광고長廣高 · 16절

길이, 너비, 높이. 정육면체.

규빗17절

약 45cm. 144 규빗은 약 65m.

정금正金 · 18, 21절

순금. 유리처럼 맑은 금.

진주 문21절

하나의 진주로 된 문. 고통에서 태어난 보석.

생명책27절

어린 양께 속한 사람들의 이름이 기록된 책.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1.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가장 먼저 선포되는 것은 금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입니다. 내가 그리는 천국의 중심에는 무엇이 있습니까? (3절)
  2.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지금 내가, 또는 내 주변의 누군가가 흘리고 있는 눈물은 무엇입니까? 이 약속을 붙들고 함께 기도합시다. (4절)
  3. 하나님은 "목마른 자에게 값없이" 생명수를 주십니다. 나는 무엇에 목말라 있습니까? 그 목마름을 무엇으로 채우려 하고 있습니까? (6절)
  4. 불못의 목록 맨 앞에 ‘두려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나에게 신앙을 지키는 일을 가장 두렵게 만드는 것은 무엇입니까? 그 두려움을 이기는 힘은 어디에서 옵니까? (8절)
  5. 새 예루살렘에서 금은 길바닥이고, 문은 상처에서 태어난 진주입니다. 내가 지금 보물로 여기는 것은 무엇이며, 하나님 나라의 가치로 보면 어떻습니까? (18, 21절)
  6. 새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성전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나의 삶의 어떤 자리를 예배의 자리로 만들 수 있을까요? (22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