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절부터 24절까지 — 가정과 일터에서 주께 하듯 섬기고,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고 굳게 서서, 모든 성도를 위해 깨어 기도하라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EPHESIANS 6:10–11
기독교한국침례회 은혜교회 · 담임목사 박동준
Introduction · 들어가며
6장 들어가며
앉고, 걷고, 이제 선다 — 에베소서의 마지막 장
6장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앞부분(1–9절)은 5:21에서 시작한 가정 규범의 나머지, 곧 자녀와 부모, 종과 상전의 관계입니다. 뒷부분(10–24절)은 에베소서 전체의 결론, 영적 전쟁과 기도, 그리고 작별 인사입니다.
얼핏 보면 가정 이야기와 전쟁 이야기는 서로 상관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둘은 깊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영적 전쟁의 최전선은 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가정과 일터입니다. 부모가 자녀를 노엽게 하는 곳, 종이 눈가림으로 일하는 곳, 주인이 위협하는 곳에 마귀는 틈을 탑니다(4:27). 반대로 주께 하듯 서로를 섬기는 가정과 일터는 마귀의 궤계를 이기는 진지가 됩니다.
에베소서는 세 개의 동사로 요약됩니다. 2:6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고, 4:1 부르심에 합당하게 걷고, 6:11, 13, 14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여 서라. 우리가 설 수 있는 것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자리에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바울은 마지막으로 ‘쇠사슬에 매인 사신’으로서 기도를 부탁하고, 은혜를 빌며 편지를 마칩니다.
약속 있는 계명
6:2–3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 부모 공경에는 약속이 붙어 있습니다.
일터의 신학
6:5–8
사람에게가 아니라 주께 하듯. 모든 일이 예배가 됩니다.
전신갑주
6:13–17
진리, 의, 평안의 복음, 믿음, 구원, 말씀. 모두 하나님이 주시는 무기입니다.
마지막 단어
6:24
"은혜". 1:2 은혜로 시작한 편지가 은혜로 끝납니다.
Reading Guide · 읽기 안내
이 장을 읽기 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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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상 짚어 둘 곳
무엇을 알아야 하나
4절 "노엽게"
격분하게 하다, 화나게 하여 낙심하게 하다.
4절 "교양과 훈계"
敎養, 원문 파이데이아(훈육). 訓戒, 원문 누테시아(말로 바로잡음).
5절 "육체의 상전"
上典, 이 땅의 주인. 하늘의 상전(9절)과 대조.
6절 "눈가림"
원문 옵탈모둘리아, ‘눈앞에서만 하는 종노릇’.
9절 "공갈"
恐喝, 위협, 으름장.
11절 "궤계"
詭計, 원문 메토데이아. 교묘한 전략, 계략.
11절 "전신갑주"
全身甲冑, 원문 파노플리아. 완전 무장.
14절 "흉배"
胸背, 가슴을 보호하는 갑옷.
16절 "화전"
火箭, 불붙인 화살.
18절 "무시로"
無時로, 정한 때 없이 언제나.
20절 "사신"
使臣, 왕이 보낸 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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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4주 안에서 순종하고 공경하라 —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가정 규범의 두 번째 짝입니다. 바울은 먼저 자녀에게 직접 말을 겁니다. 당시 교훈서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아이들도 교회의 예배 자리에서 이 편지가 낭독될 때 함께 앉아 들었다는 뜻입니다. 자녀들도 그리스도의 몸의 한 지체로서 주님 앞에 책임 있는 인격입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로마법에서 아버지는 ‘파트리아 포테스타스(아버지의 권한)’라는 절대 권력을 가졌습니다. 자녀를 팔거나, 버리거나, 심지어 죽일 권리까지 법적으로 인정되었습니다. 그런 세상에서 바울은 아버지들에게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1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
직역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은 일이다.
"자녀들아." 바울은 아이들에게 직접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막 10:14)고 하셨듯, 초대교회는 아이들을 예배의 한 부분으로 여겼습니다. 자녀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고 응답하는 신앙인입니다.
"순종하라." 원문 휘파쿠오는 ‘아래에서 듣다’, 곧 귀 기울여 듣고 그대로 따르는 것입니다. 아내에게는 ‘복종(휘포타소)’이라는 말을 썼는데, 자녀에게는 더 강한 ‘순종’을 씁니다. 자녀는 아직 자라는 중이기 때문에 부모의 보호와 가르침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부모에게",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에게입니다. 당시 로마 사회는 아버지의 권위만 강조했지만, 성경은 어머니도 똑같이 공경의 대상으로 세웁니다.
그런데 그 순종은 "주 안에서"입니다. 이 말에는 두 가지 뜻이 있습니다. 하나는 동기입니다.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은 주님을 섬기는 일입니다(골 3:20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다른 하나는 한계입니다. 부모가 주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 곧 죄를 요구할 때 자녀는 따를 수 없습니다. 주님이 부모보다 높으십니다. 그러나 그런 예외는 드뭅니다. 대부분의 경우 주님은 자녀가 부모에게 순종하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단순합니다. "이것이 옳으니라."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지으신 질서입니다. 그리스도인이든 아니든, 모든 문화에서 자녀가 부모를 따르는 것은 옳은 일로 여겨집니다. 예수님도 열두 살 때 성전에 남으셨다가 부모와 함께 나사렛으로 내려가 "순종하여 받드시더라"(눅 2:51)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 부모에게 순종하셨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순종하라휘파쿠에테 — 6:5 종들에게도 같은 단어. 골 3:20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주 안에서 — 일부 사본에는 이 말이 없지만, 대부분의 오래된 사본에 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부모에게’가 아니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로 읽습니다. 부모가 그리스도인이 아니어도 자녀의 순종은 주 안에서의 순종입니다.
옳으니라디카이온 — ‘의롭다’. 빌 1:7 "내가 너희 무리를 위하여 이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마땅하니(디카이온)".
함께 읽을 말씀
골 3:20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
눅 2:51예수께서 한가지로 내려가사 나사렛에 이르러 순종하여 받드시더라
잠 1:8-9내 아들아 네 아비의 훈계를 들으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라 이는 네 머리의 아름다운 관이요 네 목의 금사슬이니라
잠 6:20-22내 아들아 네 아비의 명령을 지키며 네 어미의 법을 떠나지 말고
막 10:14어린 아이들의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2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 약속 있는 첫 계명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 있는 첫 계명이니
직역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이것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바울은 1절의 근거로 십계명의 다섯째 계명을 인용합니다(출 20:12, 신 5:16). "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라." 1절의 ‘순종’은 주로 어린 자녀에게 해당하지만, ‘공경’은 평생 갑니다. 자녀가 자라 어른이 되어 더 이상 부모의 명령을 따를 필요가 없을 때에도,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계속됩니다.
‘공경하다’는 히브리어로 ‘카베드’, ‘무겁게 여기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카보드)’과 같은 뿌리입니다. 부모를 가볍게 여기지 않고 무게 있게, 귀하게 대하는 것입니다. 부모의 말을 존중하고, 부모의 필요를 돌보고, 늙은 부모를 부양하는 것까지 포함합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 드린다는 핑계로 부모 봉양을 피하는 바리새인들을 꾸짖으셨고(막 7:9–13), 십자가 위에서도 어머니를 요한에게 부탁하셨습니다(요 19:26–27).
그리고 이 계명은 "약속 있는 첫 계명"입니다. 십계명 가운데 구체적인 약속이 붙은 계명은 이것이 처음입니다(둘째 계명에도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푼다’는 말이 있지만, 그것은 하나님의 성품을 설명하는 일반적인 말이고, 개별 약속이 붙은 것은 다섯째 계명이 처음입니다). 또는 ‘첫’을 ‘가장 중요한’, ‘으뜸’이라는 뜻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주어진 계명 가운데 가장 으뜸이 되는 계명이라는 뜻입니다. 사람과의 관계를 다루는 둘째 돌판(5–10계명)의 첫 계명이기도 합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것은 이웃 사랑의 출발점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공경하라티마 — ‘존귀(티메)하게 여기다’. 딤전 5:3–4 "참 과부인 과부를 경대하라… 자손이 있거든 저희로 먼저 자기 집에서 효를 행하여 부모에게 보답하기를 배우게 하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 받으실 만한 것이니라".
첫 계명 — 해석이 여럿입니다. ① 약속이 붙은 첫 계명(가장 일반적), ② 자녀가 배우는 첫 계명, ③ 둘째 돌판의 첫 계명, ④ ‘으뜸 되는’ 계명. 『개역한글』은 원문 그대로 ‘약속 있는 첫 계명’이라고 옮겼습니다.
한국 교회와 효 — 성경의 부모 공경은 유교의 효와 닮은 점이 많지만, 근원이 다릅니다. 성경에서 부모 공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오고(레 19:3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부모보다 하나님이 먼저입니다(마 10:37).
함께 읽을 말씀
출 20:12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너의 생명이 길리라
신 5:16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한 대로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막 7:9-13모세는 네 부모를 공경하라… 너희는 가로되 사람이 아비에게나 어미에게나 말하기를 내가 드려 유익하게 할 것이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림이 되었다고 하기만 하면 그만이라 하고
요 19:26-27예수께서 자기의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섰는 것을 보시고…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잠 23:22너 낳은 아비에게 청종하고 네 늙은 어미를 경히 여기지 말지니라
3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이로써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직역 "그리하면 네가 잘되고 땅 위에서 오래 살리라."
다섯째 계명에 딸린 약속입니다. "네가 잘되고 땅에서 장수하리라." 원래 신명기 5:16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땅에서 오래 살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이라는 말을 빼고 그냥 "땅에서"라고 인용합니다. 에베소의 이방인 성도들은 가나안 땅에 살지 않습니다. 바울은 이 약속이 이제 특정한 땅을 넘어 온 세상의 하나님 백성에게 적용된다고 봅니다.
이 약속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부모를 잘 공경한 사람은 모두 오래 살고, 일찍 죽은 사람은 모두 부모를 공경하지 않았다는 뜻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잠언의 약속들처럼,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운영하시는 일반적인 원리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가정은 안정되고, 세대가 서로 존중하는 사회는 건강하며, 그런 공동체 안에서 사람들은 잘되고 오래 삽니다. 반대로 부모를 업신여기는 사회는 무너집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에게 이 약속은 더 깊은 뜻을 가집니다. 가장 오래 사는 것, 곧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집니다. 이 땅의 장수는 그 영원한 생명의 작은 맛보기입니다. 부모를 공경하는 자녀는 하늘 아버지를 공경하는 법을 배우고, 그 아버지의 집에서 영원히 삽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잘되고 — 신 5:16(70인역) "히나 유 소이 게네타이"를 그대로 인용합니다. 출 20:12에는 이 말이 없고 신 5:16에만 있습니다. 바울은 두 본문을 합쳐 인용했습니다.
땅게 — ‘땅, 육지, 세상’. 바울은 약속의 범위를 가나안에서 온 땅으로 넓혔습니다. 마 5:5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처럼.
함께 읽을 말씀
신 5:16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가 생명이 길고 복을 누리리라
잠 3:1-2내 아들아 나의 법을 잊어버리지 말고 네 마음으로 나의 명령을 지키라 그리하면 그것이 너로 장수하여 많은 해를 누리게 하며
잠 30:17아비를 조롱하며 어미 순종하기를 싫어하는 자의 눈은 골짜기의 까마귀에게 쪼이고
마 5:5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4아비들아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또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직역 그리고 아버지들아, 너희 자녀를 격분하게 하지 말고, 오히려 주님의 훈육과 권면으로 그들을 길러라.
이제 부모, 특히 아버지들에게 말합니다. 앞에서 말했듯, 로마의 아버지는 자녀에 대해 거의 무제한의 권력을 가졌습니다. 갓 태어난 아기를 아버지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길에 버릴 수 있었고, 실제로 많은 아기, 특히 여자 아기들이 버려졌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바울은 아버지들의 권력을 제한하는 명령을 내립니다.
먼저 하지 말아야 할 것. "너희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고." ‘노엽게 하다’는 4:26의 ‘분’과 같은 뿌리로, 자녀를 격분하게 하여 결국 낙심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골로새서 3:21은 그 결과를 말합니다. "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어떻게 자녀를 노엽게 합니까? 지나친 통제와 간섭, 일관성 없는 기준, 공정하지 않은 대우와 편애, 모욕적인 말과 비교, 이유 없는 분노와 폭력, 약속을 지키지 않는 것, 아이의 말을 들어 주지 않는 것, 위선(말과 삶이 다른 것). 이런 것들이 쌓이면 자녀의 마음에 분노와 상처가 자라고, 결국 부모와 하나님 모두에게서 멀어질 수 있습니다.
그 대신 해야 할 것. "오직 주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하라." ‘양육하라’는 5:29에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양육하신다’고 할 때 쓴 말입니다.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먹이고 돌보시듯, 부모는 자녀를 먹이고 돌봅니다. 그리고 그 방법은 두 가지입니다. ① "교양" — 원문 파이데이아는 훈련과 훈육 전체, 때로는 바로잡기 위한 징계까지 포함합니다(히 12:5–11 "주의 징계"). ② "훈계" — 원문 누테시아는 ‘마음에 넣어 주다’, 곧 말로 가르치고 깨우치고 바로잡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주의" 교양과 훈계라는 것입니다. 부모 자신의 욕심이나 체면, 세상의 기준이 아니라 주님의 기준으로, 주님의 방식으로 자녀를 기릅니다. 그리고 부모 자신도 주님께 훈육받는 사람으로서 자녀를 대합니다.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는 가장 좋은 길은, 부모가 먼저 하늘 아버지 앞에서 겸손한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아비들아호이 파테레스 — 히 11:23에서 ‘부모(파테레스)’로 쓰인 것처럼, 이 말은 부모 모두를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당시 자녀 교육의 최종 책임자가 아버지였기에 바울은 특별히 아버지들에게 말합니다.
로마의 아버지 권한 — 로마의 ‘파트리아 포테스타스’는 아버지가 살아 있는 한 성인 자녀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기원전 1세기의 한 파피루스 편지에는 남편이 아내에게 "아들이면 기르고, 딸이면 버리라"고 쓴 내용이 남아 있습니다(옥시링쿠스 파피루스 744).
함께 읽을 말씀
골 3:21아비들아 너희 자녀를 격노케 말지니 낙심할까 함이라
신 6:6-7오늘날 내가 네게 명하는 이 말씀을 너는 마음에 새기고 네 자녀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며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에 행할 때에든지
잠 22:6마땅히 행할 길을 아이에게 가르치라 그리하면 늙어도 그것을 떠나지 아니하리라
히 12:5-11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달한 자들은 의의 평강한 열매를 맺나니
시 103:13아비가 자식을 불쌍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나니
딤후 3:15또 네가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가정은 가장 작은 교회입니다
자녀는 주 안에서 부모를 공경하고, 부모는 자녀를 노엽게 하지 않고 주의 방식으로 기릅니다. 서로를 향한 이 두 명령은 결국 하나입니다. 모두가 같은 주님 앞에 서 있다는 것입니다.
자녀인 우리는 오늘 부모님을 어떻게 ‘무겁게’ 여길 수 있을까요? 부모인 우리는 오늘 자녀의 마음을 상하게 한 일은 없었습니까? 하늘 아버지께서 우리를 오래 참으시고 따뜻하게 기르시는 것처럼, 우리도 그렇게 자녀를 기를 수 있도록 은혜를 구합시다.
6:5–9그리스도께 하듯 —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니
가정 규범의 세 번째 짝, 종과 상전입니다. 1세기 로마 제국 인구의 상당수(학자들은 대도시의 경우 3분의 1 정도로 추정합니다)가 노예였습니다. 노예는 가정의 한 부분이었고, 집안일, 농사, 장사, 교육, 의료까지 온갖 일을 했습니다. 교회 안에도 많은 노예가 있었고, 노예를 소유한 주인들도 있었습니다. 같은 교회에서 주인과 노예가 나란히 앉아 함께 떡을 뗐습니다.
바울이 노예 제도를 정당화한 것은 아닙니다(‘더 깊이’ 참고). 그는 그 시대의 현실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늘 우리의 일터, 곧 고용인과 고용주, 직원과 상사의 관계에 깊은 원리를 줍니다. 핵심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들이다.
5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상전에게 순종하라
종들아 두려워하고 떨며 성실한 마음으로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여
직역 종들아, 육신을 따라 너희 주인 된 자들에게 두려움과 떨림으로, 마음의 순전함으로 순종하라. 그리스도께 하듯.
바울은 "종들아" 하고 직접 부릅니다. 고대 문헌에서 노예는 물건처럼 다루어졌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노예를 ‘살아 있는 도구’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노예들에게 직접 말을 건넵니다. 그들도 하나님 앞에서 책임 있는 인격이고,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이며,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육체의 상전." 이 표현이 중요합니다. 그들의 주인은 ‘육체를 따른’, 곧 이 땅에서만의 주인입니다. 그들에게는 더 높은 주인, 하늘의 주인이 계십니다(9절). 이 땅의 주인은 그들의 몸을 소유할 수 있었지만, 그들의 영혼은 그리스도의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섬깁니까? 세 가지입니다. ① "두려워하고 떨며." 주인을 무서워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바울은 이 표현을 자기의 사역을 말할 때도 썼습니다(고전 2:3, 빌 2:12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맡은 일을 진지하게, 책임감을 가지고 한다는 뜻입니다. ② "성실한 마음으로." 원문은 ‘마음의 단순함’입니다. 겉과 속이 같고, 꾀부리지 않고,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③ "그리스도께 하듯." 이것이 핵심입니다. 그리스도인 노예는 주인을 섬길 때 그 너머에 계신 그리스도를 섬겼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 우리의 일터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나는 회사를 위해, 사장을 위해, 월급을 위해 일하는 것 같지만, 실은 그리스도를 위해 일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에게는 거룩한 일과 세속적인 일의 구분이 없습니다. 설거지도, 서류 작업도, 운전도, 청소도 그리스도께 하듯 할 때 예배가 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종둘로스 — 노예. 그러나 바울은 자기 자신을 ‘그리스도의 종(둘로스)’이라고 불렀습니다(롬 1:1, 빌 1:1). 6절에서 노예들도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불립니다. 이 땅에서는 사람의 종이지만, 더 깊이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정체성이 노예들에게 존엄을 주었습니다.
두려워하고 떨며 — 고전 2:3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하여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고후 7:15, 빌 2:12. 바울 서신에서 이 표현은 하나님 앞에서의 진지함을 가리킵니다.
골 3:22-24종들아 모든 일에 육신의 상전들에게 순종하되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와 같이 눈가림만 하지 말고 오직 주를 두려워하여 성실한 마음으로 하라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벧전 2:18-19사환들아 범사에 두려워함으로 주인들에게 순복하되 선하고 관용하는 자들에게만 아니라 또한 까다로운 자들에게도 그리하라
딛 2:9-10종들로는 자기 상전들에게 범사에 순종하여 기쁘게 하고 거스려 말하지 말며 떼어 먹지 말고 오직 선한 충성을 다하게 하라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
창 39:2-6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6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말고 그리스도의 종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
눈가림만 하여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직역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들처럼 눈에 보이는 데서만 섬기지 말고, 그리스도의 종으로서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며,
"눈가림만 하여." 원문 옵탈모둘리아는 바울이 만든 것으로 보이는 단어로, ‘눈(옵탈모스) + 종노릇(둘리아)’, 곧 ‘눈 앞에서만 하는 종노릇’입니다. 주인이 보고 있을 때만 열심히 일하고, 주인이 자리를 비우면 게으름을 피우는 것입니다. 상사가 지나갈 때만 바쁜 척하는 직장인, 감독관이 볼 때만 꼼꼼한 노동자, 부모가 볼 때만 공부하는 학생. 사람은 겉을 보지만 하나님은 중심을 보십니다(삼상 16:7).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처럼 하지 말고." 눈가림의 동기는 사람을 기쁘게 하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고, 칭찬받고, 혼나지 않으려고 일합니다. 그런 사람은 사람의 눈이 없을 때 일할 이유가 없습니다. 바울은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갈 1:10)고 했습니다.
그 대신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노예들은 이 땅에서 사람의 종이었지만, 바울은 그들을 ‘그리스도의 종들’이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종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뜻을 행"합니다. ‘마음으로’는 원문으로 ‘영혼으로부터’, 곧 진심으로입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보고 계십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성실합니다. 일이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에, 그 일을 맡겨 주신 하나님께 하듯 합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눈가림옵탈모둘리아 — 신약에서 여기와 골 3:22에만 나오는 단어. 고대 문헌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바울이 만든 말로 여겨집니다.
사람을 기쁘게 하는 자안트로파레스코이 — 골 3:22, 시 53:5(70인역). 살전 2:4 "우리가 이와 같이 말함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마음으로에크 프쉬케스 — ‘영혼으로부터’. 골 3:23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에크 프쉬케스) 주께 하듯 하고".
함께 읽을 말씀
삼상 16:7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갈 1:10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더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살전 2:4사람을 기쁘게 하려 함이 아니요 오직 우리 마음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 함이라
마 6:1-4사람에게 보이려고 그들 앞에서 너희 의를 행치 않도록 주의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의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잠 15:3여호와의 눈은 어디서든지 악인과 선인을 감찰하시느니라
7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단 마음으로 섬기기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직역 선한 뜻을 가지고 섬기라.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단 마음으로." ‘단’은 ‘달다’, 곧 기꺼운, 즐거운 마음입니다. 원문은 ‘좋은 뜻으로, 선의로’입니다. 억지로 끌려가며 마지못해 하는 일이 아니라, 기꺼이, 상대가 잘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하는 일입니다. 노예가 주인이 잘되기를 바라며 일한다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섬기는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원수까지 사랑하라고 하셨으니까요.
그리고 다시 반복합니다. "주께 하듯 하고 사람들에게 하듯 하지 말라." 5절 ‘그리스도께 하듯’, 6절 ‘그리스도의 종들처럼’, 7절 ‘주께 하듯’. 바울은 세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합니다. 이것이 일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관점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이 관점은 일을 대하는 태도를 완전히 바꿉니다. 내 상사가 불공평해도, 내 일이 하찮아 보여도,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 일합니다. 그분은 공정하시고, 내 일을 하찮게 여기지 않으시며,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는 하녀가 바닥을 쓰는 일도, 하나님의 소명으로 할 때 수도사의 기도만큼 거룩하다고 말했습니다. 모든 정직한 일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가 될 수 있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단 마음으로메트 유노이아스 — ‘좋은(유) + 생각(누스)’. 신약에서 여기와 고전 7:3 "남편은 그 아내에게 대한 의무(유노이안)를 다하고"(일부 사본)에만 나옵니다. 고대 파피루스에서 충성스러운 종의 덕목을 묘사할 때 쓰인 말입니다.
주께 하듯 — 5:22 아내에게 "주께 하듯 하라"와 같은 표현. 가정 규범 전체를 꿰는 열쇠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3:23-24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고전 10:31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롬 12:11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고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라
전 9:10무릇 네 손이 일을 당하는 대로 힘을 다하여 할지어다
8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인이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직역 이는 각 사람이 어떤 선을 행하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그것을 주님께로부터 돌려받을 것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다.
종들이 이렇게 섬길 수 있는 근거가 나옵니다. "주께로부터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라." 이 땅의 주인은 노예의 수고를 알아주지 않을 수 있습니다. 노예에게는 월급도, 승진도, 칭찬도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다르십니다. 주님은 모든 선한 일을 기억하시고, 마지막 날에 갚아 주십니다. 아무도 보지 않던 성실함, 아무도 알아주지 않던 수고, 억울함 속에서도 지킨 선함. 그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장부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는 신분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노예가 행한 선과 자유인이 행한 선은 똑같이 갚아집니다. 이 땅에서 아무 권리도 없던 노예가, 하나님 앞에서는 황제와 똑같은 무게로 평가받습니다. 이것이 노예들에게 얼마나 큰 위로였을지 생각해 보십시오. 갈라디아서 3:28 "종이나 자유자나…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이 약속은 2:8–9의 ‘행위로 구원받지 않는다’와 모순되지 않습니다.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지만, 구원받은 사람이 행한 선한 일에 대해 하나님은 상을 주십니다(고전 3:12–15, 고후 5:10). 그리고 그 상조차도 은혜입니다. 우리가 한 선한 일은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것이었으니까요(2:10).
원어 · 번역 노트
받을코미제타이 — ‘가지고 돌아오다, 받다’. 고후 5:10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코미세타이) 함이라", 골 3:25.
종이나 자유하는 자나 — 고전 12:13, 갈 3:28, 골 3:11. 바울 서신에서 이 짝은 그리스도 안의 평등을 말할 때 자주 등장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3:24-25이는 기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아나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 불의를 하는 자는 불의의 보응을 받으리니 주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심이 없느니라
고후 5:10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마 25:21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
갈 3:28너희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남자나 여자 없이 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니라
히 6:10하나님이 불의치 아니하사 너희 행위와 그의 이름을 위하여 나타낸 사랑으로 이미 성도를 섬긴 것과 이제도 섬기는 것을 잊어버리지 아니하시느니라
9상전들아 너희도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니
상전들아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공갈을 그치라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없는 줄 너희가 앎이니라
직역 그리고 주인들아, 너희도 그들에게 같은 것을 행하고 위협을 그치라. 그들과 너희의 주인이 하늘에 계시고, 그분에게는 외모로 사람을 취하는 일이 없다는 것을 너희가 알기 때문이다.
이제 상전, 곧 주인들에게 말합니다. 당시 교훈서에서 주인에게 하는 말은 대개 ‘노예를 효율적으로 부리는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말을 합니다.
"너희도 저희에게 이와 같이 하고." ‘이와 같이’는 원문으로 ‘같은 것들을’입니다. 5–8절에서 종들에게 한 말을 주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라는 것입니다. 종들이 진심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선한 뜻으로 섬기듯, 주인들도 진심으로, 그리스도께 하듯, 선한 뜻으로 종들을 대하라는 것입니다. 주인이라고 해서 다른 기준이 있지 않습니다. 같은 원리, 같은 주님입니다.
"공갈을 그치라." ‘공갈’은 위협입니다. 당시 주인들은 노예를 매질하겠다, 팔아 버리겠다, 가족과 떼어 놓겠다, 광산으로 보내겠다고 위협했습니다. 노예를 다스리는 가장 흔한 방법이 공포였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내려놓으라’고 합니다. 두려움으로 다스리는 것은 그리스도인 주인에게 맞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핵심입니다. "이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주인들도 주인이 있습니다. 하늘의 주인이십니다. 그리고 그 주인은 노예의 주인이기도 합니다. 주인과 노예는 같은 주인을 섬기는 동료 종입니다. 그래서 주인이 노예를 학대하는 것은 하늘 주인의 다른 종을 학대하는 것입니다. 게다가 "그에게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는 것이 없는 줄", 하나님은 사회적 신분으로 사람을 판단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주인이라는 지위는 아무런 특혜가 되지 않습니다.
오늘의 일터에 적용하면, 이 말씀은 고용주, 관리자, 상사에게 주는 말씀입니다. 직원을 위협과 공포로 관리하지 말고, 공정하게 대하고(골 4:1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정당한 대가를 지불하며(약 5:4), 그들도 같은 하나님 앞에 선 사람으로 존중하라는 것입니다. 나도 하늘에 주인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공갈아페일레 — ‘위협’. 행 4:29 "주여 이제도 저희의 위협함을 하감하옵시고", 행 9:1 "사울이 주의 제자들을 대하여 여전히 위협과 살기가 등등하여". 그치라아니엔테스 — ‘느슨하게 하다, 내려놓다’.
외모로 취하는 것프로소폴렘프시아 — ‘얼굴(프로소폰)을 받다(람바노)’, 곧 겉모습이나 신분을 보고 판단함. 롬 2:11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이니라", 골 3:25, 약 2:1, 9. 신 10:17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저희와 너희의 — 원문 ‘아우톤 카이 휘몬’. 일부 사본은 ‘너희 자신의’로만 되어 있지만, 대부분의 오래된 사본에 ‘저희와 너희의’가 있습니다. 주인과 노예가 같은 주인을 섬긴다는 강조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4:1상전들아 의와 공평을 종들에게 베풀지니 너희에게도 하늘에 상전이 계심을 알지어다
몬 1:15-16저가 잠시 떠나게 된 것은 너로 하여금 저를 영원히 두게 함이리니 이후로는 종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종에서 뛰어나 곧 사랑받는 형제로 둘 자라
신 10:17-19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사람을 외모로 보지 아니하시며 뇌물을 받지 아니하시고… 너희는 나그네를 사랑하라 전에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었음이니라
약 5:4보라 너희 밭에서 추수한 품군에게 주지 아니한 삯이 소리 지르며 그 추수한 자의 우는 소리가 만군의 주의 귀에 들렸느니라
욥 31:13-15나의 남종이나 여종이 나로 더불어 쟁변할 때에 내가 만일 그의 사정을 멸시하였더면… 나를 태 속에 만드신 자가 그도 만드시지 아니하셨느냐
마 18:32-33악한 종아 네가 빌기에 내가 네 빚을 전부 탕감하여 주었거늘 내가 너를 불쌍히 여김과 같이 너도 네 동관을 불쌍히 여김이 마땅치 아니하냐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나의 진짜 상사는 하늘에 계십니다
월요일 아침 일터로 나갈 때, 우리는 누구를 위해 일합니까? 바울은 종들에게도, 주인들에게도 같은 말을 합니다. 너희의 진짜 주인은 하늘에 계신다.
직원이라면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그리스도께 하듯 성실하게 일하십시오. 주님은 모든 선한 일을 기억하십니다. 관리자나 고용주라면 위협과 공포 대신 공정과 존중으로 사람들을 대하십시오. 나도 하늘의 주인 앞에 설 사람입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의 일터는 예배의 자리가 됩니다.
6:10–13주 안에서 강건하여지고 — 마귀의 궤계를 대적하고 서기 위하여
"종말로", 곧 ‘마지막으로’. 바울은 에베소서 전체를 마무리하는 권면을 시작합니다. 그리고 그 마무리는 놀랍게도 전쟁의 그림입니다. 1–3장의 하늘에 앉은 성도, 4–6장의 세상 속에서 걷는 성도는 이제 영적 전쟁터에 서 있는 성도입니다.
이 단락에서 ‘서다’라는 말이 네 번 나옵니다(11절 ‘대적하기’, 13절 ‘대적하고’, ‘서기’, 14절 ‘서서’). 에베소서의 영적 전쟁은 적진으로 쳐들어가는 공격이 아니라, 이미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신 자리를 굳게 지키는 싸움입니다. 바울은 먼저 누가 싸우는지(10절), 무엇과 싸우는지(11–12절), 어떻게 싸우는지(13절)를 말합니다.
10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종말로 너희가 주 안에서와 그 힘의 능력으로 강건하여지고
직역 마지막으로, 주 안에서, 그리고 그분의 강한 힘 안에서 강하게 되라.
"종말로." 세상의 종말이 아니라 ‘마지막으로 할 말은’이라는 뜻입니다. 바울은 편지를 마무리하며 가장 중요한 말을 남깁니다.
"강건하여지고." 원문은 수동태입니다. ‘스스로 강해지라’가 아니라 ‘강하게 되라’, ‘능력을 입으라’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우리의 힘은 우리 안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그 힘은 "주 안에서", 그리고 "그 힘의 능력으로" 옵니다.
‘그 힘의 능력’이라는 표현은 1:19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그리고 1:20은 그 능력이 무엇을 했는지 말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 오른편에 앉히시고, 모든 정사와 권세 위에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바로 그 능력, 부활의 능력, 모든 원수를 이긴 능력이 우리가 영적 전쟁에서 쓸 힘입니다. 우리는 패배한 원수와 싸우는 승리자 편에 서 있습니다.
또 1:19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이 능력을 ‘알게’ 되기를 기도했습니다. 이제 6:10에서 그 능력으로 ‘강건하여지라’고 합니다. 아는 것에서 누리는 것으로. 영적 전쟁에서 이기는 비결은 내 힘을 키우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힘에 나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을 때 열매를 맺듯이(요 15:5).
원어 · 번역 노트
종말로투 로이푸 — ‘나머지에 관해서는, 마지막으로’. 갈 6:17, 빌 3:1, 4:8 "종말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살후 3:1.
강건하여지고엔뒤나무스테 — ‘안에(엔) + 능력(뒤나미스)을 받다’. 빌 4:13 "내게 능력 주시는(엔뒤나문티)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딤후 2: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은혜 속에서 강하고", 딤후 4:17.
힘의 능력 — 원문 ‘엔 토 크라테이 테스 이스퀴오스 아우투’. 1:19와 똑같은 단어 조합(크라토스, 이스퀴스)입니다. 사 40:26(70인역)에서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묘사할 때 쓰인 표현과 비슷합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1:19-21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수 1:9내가 네게 명한 것이 아니냐 마음을 강하게 하고 담대히 하라 두려워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삼상 30:6다윗은 그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빌 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고후 12:9-10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내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함이니라
11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직역 마귀의 계략들에 맞서 설 수 있도록,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전신갑주’는 원문으로 파노플리아, ‘모든(판) 무기(호플라)’입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완전히 무장한 군인의 장비 전체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전신갑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갑옷이면서, 동시에 하나님 자신이 입으신 갑옷입니다. 이사야 59:17에서 하나님은 "의로 흉배를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라고 묘사됩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입으시고 싸우신 그 갑옷을 이제 우리에게 입히십니다.
‘입으라’는 4:24 ‘새 사람을 입으라’와 같은 동사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날마다 새 사람의 옷을 입듯, 날마다 하나님의 갑옷을 입습니다. 그리고 ‘전신’ 갑주입니다. 하나라도 빠지면 그곳이 약점이 됩니다. 진리는 있는데 의가 없거나, 믿음은 있는데 말씀이 없으면 원수는 바로 그 틈을 공격합니다.
왜 입어야 합니까?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궤계’는 원문으로 메토데이아, 영어 method(방법)의 어원입니다. 마귀는 무작정 공격하지 않습니다. 계획적이고 교묘한 전략을 씁니다. 4:14에서 거짓 교사들의 ‘간사한 유혹(메토데이아)’이라고 했던 바로 그 말입니다. 마귀는 거짓 가르침으로(4:14), 해결되지 않은 분노로(4:27), 유혹의 욕심으로(4:22) 공격합니다. 정면에서 오기도 하고, 몰래 오기도 하고, 빛의 천사로 가장하기도 합니다(고후 11:14). 그래서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하고, 완전히 무장해야 합니다.
그리고 목표는 "대적하기", 원문으로 ‘맞서 서기’입니다. 공격하라는 것이 아니라 서 있으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신 땅을 내어 주지 말고 지키라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전신갑주파노플리아 — 신약에서 여기, 13절, 눅 11:22 "더 강한 자가 와서 저를 이길 때에는 그의 믿던 무장(파노플리안)을 빼앗고"에만 나옵니다.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은 사탄이라는 강한 자를 이기고 그의 무장을 빼앗는 더 강한 자이십니다.
궤계메토데이아 — 4:14와 여기에만 나옵니다. 고후 2:11 "우리가 그 궤계(노에마)를 알지 못하는 바가 아니로라".
마귀디아볼로스 — 4:27 노트 참고. ‘비방자, 이간질하는 자’.
로마 군인 — 바울은 감옥에서 자기를 지키던 로마 군인의 장비를 날마다 보았을 것입니다(행 28:16 "바울은 자기를 지키는 한 군사와 함께 따로 있게 허락하더라"). 그러나 바울의 그림은 로마 군인보다 이사야서의 하나님의 갑옷(사 11:5, 52:7, 59:17)에서 더 많이 왔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9:16-17자기 팔로 스스로 구원을 베푸시며 그 의를 스스로 의지하사 의로 흉배를 삼으시며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롬 13:12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고후 10:3-5우리가 육체에 있어 행하나 육체대로 싸우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싸우는 병기는 육체에 속한 것이 아니요 오직 어떤 견고한 진이라도 파하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약 4:7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벧전 5:8-9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고후 11:14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12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이 아니라 정사와 권세와 어두움의 주관자들과 하늘의 악의 영들에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직역 우리의 씨름은 피와 살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곳들의 악의 영적 세력들을 상대로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왜 하나님의 갑옷이 필요합니까? 우리의 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혈과 육’은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의 진짜 적은 사람이 아닙니다. 나를 괴롭히는 상사, 나를 비방하는 이웃, 나를 핍박하는 사람, 심지어 교회 안에서 나와 부딪히는 성도. 그들은 우리의 진짜 원수가 아닙니다. 그들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이고, 어쩌면 그들 자신도 그 뒤에 있는 어두움의 세력에게 이용당하고 있는 것일 수 있습니다.
이 사실은 매우 중요합니다. 우리가 사람을 원수로 보기 시작하면, 우리는 사람과 싸우게 됩니다. 그리고 그 싸움에서 이기면 사람을 잃고, 지면 나를 잃습니다. 교회가 분열하고, 가정이 깨지는 것은 대개 사람을 원수로 보기 때문입니다.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진짜 적인 자기는 숨고, 사람들끼리 서로 싸우게 만드는 것. 4:27의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가 바로 이것입니다.
"씨름." 원문 팔레는 레슬링입니다. 그리스 사람들에게 레슬링은 가장 인기 있는 경기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레슬링은 멀리서 활을 쏘는 싸움이 아니라 몸과 몸이 맞붙는 근접전입니다. 영적 전쟁은 멀리 있는 추상적인 싸움이 아니라 매일의 삶에서 맞붙는 싸움입니다. 내 생각, 내 말, 내 관계, 내 습관에서.
진짜 적은 네 가지로 불립니다. ① 정사, ② 권세 — 1:21과 3:10에서 이미 나왔습니다. ③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 — 원문 코스모크라토레스는 ‘세계를 다스리는 자’라는 뜻으로, 당시 점성술에서 운명을 지배하는 별들, 또는 신들을 부르던 이름입니다. 바울은 그들이 ‘이 어두움의’ 세상, 곧 하나님을 떠난 세상에서 활동한다고 말합니다(2:2 "공중의 권세 잡은 자"). ④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 — ‘하늘에 있는 곳들’은 에베소서의 다섯 번째이자 마지막 ‘에푸라니오이스’입니다. 우리가 복을 받은 곳(1:3), 그리스도께서 앉으신 곳(1:20), 우리가 함께 앉은 곳(2:6),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를 보여 주는 곳(3:10)에서 동시에 영적 전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잊지 마십시오. 1:21에서 그리스도는 이 모든 세력 ‘위에’ 앉으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웁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씨름팔레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그리스 레슬링에서는 상대를 세 번 넘어뜨려야 이겼습니다. 바울은 고전 9:24–27에서 달리기와 권투의 그림도 썼습니다.
세상 주관자들코스모크라토르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당시 마술 문헌과 비문에서 신들(헤르메스, 세라피스, 태양신 등)을 부르는 칭호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이 두려워하던 바로 그 존재들을 바울은 ‘악의 영들’로 정체를 밝힙니다. 요 12:31 "이 세상 임금", 요 14:30, 고후 4:4 "이 세상 신".
하늘에 있는 — 에베소서의 다섯 번의 ‘엔 토이스 에푸라니오이스’(1:3, 1:20, 2:6, 3:10, 6:12). 하늘에 있는 곳들은 복의 자리이자, 그리스도의 통치의 자리이며, 영적 전쟁의 자리입니다.
단 10장 — 다니엘이 기도할 때 응답하러 오던 천사가 ‘바사국 군’(페르시아의 영적 세력)에게 21일 동안 막혔다는 이야기(단 10:12–13, 20)는 보이지 않는 영적 전쟁의 구약 배경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1:20-21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모든 정사와 권세와 능력과 주관하는 자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나게 하시고
엡 2:2이 세상 풍속을 좇고 공중의 권세 잡은 자를 따랐으니 곧 지금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서 역사하는 영이라
골 2:15정사와 권세를 벗어 버려 밝히 드러내시고 십자가로 승리하셨느니라
단 10:12-13바사국 군이 이십일 일을 나를 막았으므로 내가 거기 바사 왕국에 머물러 있더니 군장 중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므로
요일 5:19또 아는 것은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고 온 세상은 악한 자 안에 처한 것이며
마 5:44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13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 악한 날에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직역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집어 들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맞서 버틸 수 있고, 모든 것을 다 이룬 후에 서 있을 수 있기 위함이다.
11절의 명령을 다시 반복하며 강조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취하라’는 군인이 전투 나팔 소리를 듣고 무기를 집어 드는 모습입니다. 갑옷을 창고에 걸어 두기만 하면 소용이 없습니다. 실제로 입고 들어야 합니다.
"악한 날에." 5:16에서 ‘때가 악하니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 전체가 악한 시대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특별히 공격이 몰려오는 날이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질병, 실직, 관계의 파탄, 강한 유혹, 깊은 낙심, 신앙에 대한 의심이 몰려오는 날. 그런 날은 예고 없이 찾아옵니다. 그래서 평소에 갑옷을 입고 있어야 합니다. 전쟁이 시작된 다음에 갑옷을 찾으면 늦습니다.
그 목표는 두 가지입니다. ① "능히 대적하고." 공격이 올 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것입니다. ②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전투가 끝난 후에도 여전히 서 있는 것입니다. 고대 전쟁에서 승리는 전투가 끝났을 때 전장에 서 있는 쪽의 것이었습니다. 쓰러지지 않고 끝까지 서 있는 것, 그것이 영적 전쟁의 승리입니다. 화려한 공격이 아니라 끈질긴 버팀입니다.
에베소서의 큰 흐름을 다시 생각해 보십시오. 2:6 앉으라 —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승리 안에서 쉬라. 4:1 걸으라 — 그 승리에 합당하게 살라. 6:13 서라 — 그 승리의 자리를 지키라. 우리가 설 수 있는 것은 먼저 앉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승리 위에 서 있기 때문에 무너지지 않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취하라아나라베테 — ‘집어 올리다’. 군사 용어로 전투 전에 무장을 갖추는 것. 70인역 렘 46:3–4(26:3–4) "너희는 큰 방패와 작은 방패를 예비하고 나가서 싸우라… 투구를 쓰고 서며".
악한 날 — 시 41:1 "환난 날에", 시 49:5 "죄악이 나를 따라 에우는 환난의 날". 마지막 심판의 날을 가리킨다는 해석도 있지만, 대부분은 삶 속에서 시험이 몰려오는 특정한 날로 봅니다.
모든 일을 행한 후에하판타 카테르가사메노이 — ‘모든 것을 다 이룬 뒤에’, 곧 전투 준비와 싸움을 다 마친 뒤에. 또는 ‘모든 것을 이긴 뒤에’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5:16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고전 16:13깨어 믿음에 굳게 서서 남자답게 강건하여라
약 1:12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임이니라
출 14:13-14너희는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대하 20:17이 전쟁에는 너희가 싸울 것이 없나니 항오를 이루고 서서 너희와 함께 한 여호와가 구원하는 것을 보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사람은 나의 적이 아닙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사람과 싸웁니다. 배우자와, 자녀와, 동료와, 교회의 성도와. 그러나 바울은 우리의 씨름이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진짜 적은 사람들 사이에 틈을 만들고 서로 싸우게 하는 어두움의 세력입니다.
오늘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을 원수로 보지 말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나의 힘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무덤에서 일으키신 그 능력으로 강해지십시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싸웁니다. 끝까지 서 있기만 하면 됩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하나씩 설명합니다. 여섯 가지 장비입니다. 앞의 다섯 가지는 방어용이고, 마지막 성령의 검만 공격용입니다. 영적 전쟁의 대부분은 지키는 싸움이고, 우리가 가진 유일한 공격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장비들은 대부분 이사야서에서 왔습니다. 이사야는 하나님과 메시아가 입으신 갑옷을 묘사했습니다(사 11:5, 52:7, 59:17). 하나님께서 친히 입고 싸우신 갑옷을 이제 하나님의 백성에게 입히십니다. 그리고 각 장비의 이름을 보면, 그것들이 모두 복음과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진리, 의, 평화, 믿음, 구원, 말씀. 결국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롬 13:14).
14서서 진리로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의의 흉배를 붙이고
직역 그러므로 서라. 진리로 너희 허리를 동이고, 의의 가슴막이를 입고,
"그런즉 서서." 이 단락의 유일한 주명령은 ‘서라’입니다. 나머지(띠고, 붙이고, 신고, 가지고)는 모두 ‘서라’에 딸린 분사입니다. 갑옷을 입는 목적은 서기 위해서입니다.
① "진리로 너희 허리띠를 띠고." 로마 군인의 허리띠는 단순한 장식이 아니었습니다. 넓은 가죽 허리띠는 긴 옷자락을 걷어 묶어 움직이기 편하게 했고, 칼을 차는 고리가 달려 있었으며, 갑옷의 다른 부분을 고정시켰습니다. 허리띠가 풀리면 모든 장비가 흐트러집니다. 그래서 허리띠가 맨 먼저 나옵니다. ‘허리를 동이다’는 성경에서 행동할 준비를 갖춘다는 뜻입니다(출 12:11, 눅 12:35, 벧전 1:13). 이사야 11:5는 메시아에 대해 "공의로 그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몸의 띠를 삼으리라"고 했습니다.
‘진리’는 두 가지를 다 포함합니다. 하나님의 객관적인 진리, 곧 복음(1:13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 그리고 우리 삶의 진실함과 정직함(4:15, 25 "참된 것을 말하라"). 마귀는 ‘거짓의 아비’(요 8:44)입니다. 그의 첫 번째 무기는 거짓말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거짓말, 나 자신에 대한 거짓말. 그 거짓말을 막는 것은 진리입니다. 그리고 우리 삶에 거짓이 있으면, 허리띠가 풀린 것처럼 모든 것이 흐트러집니다.
② "의의 흉배를 붙이고." 흉배는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갑옷으로, 심장과 폐 같은 생명의 기관을 지킵니다. 이사야 59:17 "의로 흉배를 삼으시며". 여기서 ‘의’도 두 가지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의, 곧 칭의(롬 3:22, 빌 3:9)와, 그 의를 받은 사람이 살아가는 의로운 삶(4:24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마귀는 ‘참소하는 자’(계 12:10)입니다. "너 같은 죄인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냐?" 하고 우리를 고소합니다. 그때 우리는 내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입혀 주신 의로 대답합니다. 그리고 바르게 살아가는 삶이 마귀가 공격할 틈을 막습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서서스테테 — 부정과거 명령형. 11, 13절의 ‘서다(히스테미)’와 같은 동사. 이 단락에서만 네 번 나옵니다.
허리띠 — 원문은 ‘허리를 동이다(페리조뉘미)’. 사 11:5(70인역) "그는 의로 허리를 동이고(에조스메노스) 진리로 옆구리를 두를 것이다". 눅 12: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흉배토락스 — 가슴 갑옷. 사 59:17(70인역) "그는 의를 흉배(토라카)로 입으시고", 살전 5:8 "믿음과 사랑의 흉배를 붙이고". 대제사장의 ‘흉패’(출 28:15)와는 다른 말입니다.
③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군인에게 신발은 매우 중요합니다. 로마 군인은 ‘칼리가’라는 튼튼한 가죽 샌들을 신었는데, 바닥에 징이 박혀 있어 미끄러운 땅에서도 단단히 설 수 있었고 먼 거리를 행군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 제국이 넓은 영토를 정복할 수 있었던 비결 중 하나가 이 신발이었다고 합니다. 발이 상하면 군인은 싸울 수 없습니다.
‘예비한 것’은 두 가지로 해석됩니다. 하나는 ‘준비됨, 언제든 나갈 태세’입니다. 이사야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롬 10:15에서 인용). 복음을 전하러 언제든지 나갈 준비가 된 발입니다. 다른 하나는 ‘견고한 발판’입니다. 이 말은 70인역에서 ‘기초, 받침’이라는 뜻으로도 쓰였습니다. 평안의 복음이 우리가 굳게 설 수 있는 단단한 땅이 된다는 것입니다. 영적 전쟁에서 ‘서는’ 것이 목표라면(13–14절), 두 번째 해석이 문맥에 잘 맞습니다. 물론 두 뜻 모두 진리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평안의 복음"입니다. 전쟁터에서 평화의 신발을 신는다는 것이 역설적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싸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평화(롬 5:1) 위에 서 있기에 흔들리지 않습니다. 그리고 2:14–17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화평’이 되셔서 원수 된 둘을 하나로 만드셨듯, 우리의 싸움도 평화를 이루는 싸움입니다. 사람을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담을 허무는 싸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예비한 것헤토이마시아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준비, 준비됨’이 기본 뜻이지만, 70인역 시 89:14(88:15)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헤토이마시아)라", 단 11:20, 스 2:68 등에서 ‘기초, 터’로 쓰였습니다.
신을 신고휘포데사메노이 — 막 6:9 "신만 신고", 행 12:8 "신을 신으라".
평안의 복음 — 사 52:7(70인역) "평화의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유앙겔리조메누 아코엔 에이레네스)의 발". 엡 2:17에서도 이 이사야 구절을 떠올렸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사 52:7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산을 넘는 자의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롬 10:15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롬 5:1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
엡 2:14, 17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고
벧전 3:15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되
시 18:33나의 발로 암사슴 발 같게 하시며 나를 나의 높은 곳에 세우시며
16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라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화전을 소멸하고
직역 모든 것에 더하여 믿음의 방패를 집어 들라. 그것으로 너희는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끌 수 있다.
④ "믿음의 방패." 여기서 ‘방패’는 원문으로 쒸레오스, ‘문(쒸라)’에서 나온 말입니다. 작고 둥근 방패가 아니라 로마 군인이 들던 ‘스쿠툼’, 높이 120cm, 폭 75cm 정도의 문짝만 한 직사각형 방패입니다. 몸 전체를 가릴 수 있었습니다. 나무판 위에 가죽을 덧씌워 만들었는데, 전투 전에 가죽을 물에 적셔 두면 불화살을 맞아도 불이 붙지 않고 꺼졌습니다. 또 군인들이 방패를 나란히 붙이고 머리 위로도 들어 올리면 ‘거북 진형(테스투도)’이 되어 부대 전체가 하나의 철벽이 되었습니다.
"악한 자의 모든 화전." 화전은 화살촉에 송진이나 기름 먹인 천을 감아 불을 붙여 쏘는 불화살입니다. 몸에 박히면 상처를 줄 뿐 아니라 불이 번졌습니다. 마귀의 불화살은 무엇일까요? 갑자기 날아오는 의심(하나님이 정말 계실까?), 두려움(앞으로 어떻게 될까?), 정죄감(너는 용서받을 수 없어), 유혹(이번 한 번만), 분노와 원한(그 사람은 용서할 수 없어), 절망(아무 소용 없어). 이런 생각들은 순식간에 날아와 마음에 불을 지릅니다.
그것을 막는 것이 "믿음의 방패"입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의심의 화살이 날아올 때 ‘하나님은 신실하시다’, 두려움의 화살이 날아올 때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 정죄의 화살이 날아올 때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다’(롬 8:1)는 믿음으로 막습니다. 믿음은 불화살을 막을 뿐 아니라 "소멸", 곧 꺼 버립니다.
그리고 방패는 함께 들 때 더 강합니다. 로마 군인들이 방패를 나란히 붙였듯, 성도들이 함께 믿음의 방패를 들 때 교회는 무너지지 않는 진지가 됩니다. 내 믿음이 약할 때, 옆 사람의 방패가 나를 가려 줍니다. 그래서 영적 전쟁은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니라 공동체의 싸움입니다(18절 "여러 성도를 위하여").
원어 · 번역 노트
모든 것 위에엔 파신 — ‘이 모든 것에 더하여’ 또는 ‘모든 상황에서’. 『개역한글』은 ‘모든 것 위에’, 곧 ‘무엇보다도’라는 뜻으로 옮겼습니다. 일부 사본은 ‘에피 파신’(모든 것 위에)으로 되어 있습니다.
방패쒸레오스 —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옵니다. 작은 둥근 방패는 ‘아스피스’라고 불렀습니다. 70인역 시 5:12 "방패(호플론)로 함같이 은혜로 저를 호위하시리이다", 창 15:1 "나는 너의 방패요".
화전 — 시 7:13 "죽일 기계를 또한 예비하심이여 만든 살은 화전이로다", 시 120:4 "장사의 날카로운 살과 로뎀나무 숯불이리로다". 투키디데스, 리비우스 등 고대 역사가들이 불화살을 기록했습니다.
시 18:30하나님의 도는 완전하고 여호와의 말씀은 정미하니 저는 자기에게 피하는 모든 자의 방패시로다
요일 5:4무릇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벧전 5:9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
롬 8:1, 3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히 11:33-34저희가 믿음으로 나라들을 이기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17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직역 그리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받으라.
마지막 두 장비입니다. 그리고 동사가 바뀝니다. ‘가지라’는 원문으로 ‘받으라’입니다. 하나님께서 건네주시는 것을 손을 내밀어 받는 것입니다. 투구도 검도 우리가 만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⑤ "구원의 투구." 투구는 머리를 보호합니다. 아무리 다른 갑옷이 튼튼해도 머리를 맞으면 쓰러집니다. 이사야 59:17 "구원을 그 머리에 써서 투구를 삼으시며". 영적 전쟁에서 머리, 곧 생각은 가장 치열한 전쟁터입니다. 마귀는 우리의 생각을 공격합니다. ‘너는 정말 구원받았을까?’ ‘하나님이 너를 버리셨어.’ 그때 우리는 구원의 확신이라는 투구를 씁니다. 나의 구원은 내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합니다. 1:13–14에서 우리는 이미 성령의 인치심을 받았고, 그분은 우리 구원의 보증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5:8은 이것을 ‘구원의 소망의 투구’라고 부릅니다. 이미 받은 구원과 장차 완성될 구원의 소망이 우리의 생각을 지켜 줍니다.
⑥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 전신갑주 가운데 유일한 공격 무기입니다. 여기서 ‘검’은 원문으로 마카이라, 길이 50–60cm 정도의 짧은 칼입니다. 로마 군인의 ‘글라디우스’처럼 근접전에서 정확하게 찌르는 칼입니다. 멀리서 휘두르는 긴 칼이 아니라 가까이서 정확하게 쓰는 칼입니다.
그 검은 "성령의" 검입니다. 성령께서 주시고, 성령께서 쓰시게 하시는 칼입니다. 그리고 그 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씀’은 원문으로 ‘로고스’가 아니라 ‘레마’입니다. 성경 전체라기보다, 특정한 상황에서 구체적으로 선포되고 사용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가장 좋은 예가 광야에서 시험받으신 예수님입니다(마 4:1–11). 마귀가 세 번 시험할 때마다 예수님은 "기록되었으되" 하시며 신명기의 말씀으로 정확하게 맞받아치셨습니다. 그리고 마귀는 떠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때그때 꼭 맞는 말씀을 꺼내 쓰셨습니다.
그러려면 말씀이 우리 안에 있어야 합니다. 칼집에 칼이 없으면 칼을 뽑을 수 없습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외우는 것은 칼을 칼집에 넣어 두는 일입니다. 그러면 시험의 순간에 성령께서 그 말씀을 생각나게 하십니다(요 14:26). 그리고 이 검은 원수를 물리칠 뿐 아니라, 복음을 전할 때 사람의 마음을 찔러 구원에 이르게 하는 검이기도 합니다(히 4:12, 행 2:37).
마 4:4, 7, 10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 사단아 물러가라
히 4:12하나님의 말씀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시 119:11내가 주께 범죄치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사 49:2내 입을 날카로운 칼같이 만드시고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오늘 아침 나는 갑옷을 입었습니까
매일 아침 옷을 입듯, 그리스도인은 매일 하나님의 갑옷을 입습니다. 진리로 허리를 동이고(정직하게 살기로 결단하고), 그리스도께서 입혀 주신 의를 붙이고, 복음의 평화 위에 굳게 서고, 믿음의 방패로 의심과 두려움의 불화살을 막고, 구원의 확신으로 생각을 지키고, 하나님의 말씀을 손에 쥡니다.
이 갑옷은 결국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그분이 진리이시고, 우리의 의이시며, 우리의 평화이시고, 믿음의 대상이시며, 우리의 구원이시고, 살아 있는 말씀이십니다. 오늘 그리스도로 옷 입고(롬 13:14) 하루를 시작합시다. 그리고 내 칼집에 말씀이 있는지 확인해 봅시다.
6:18–20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 쇠사슬에 매인 사신을 위하여
전신갑주의 목록 다음에 기도가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일곱 번째 무기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원문을 보면 기도는 별개의 무기라기보다, 모든 무기를 입고 쓰는 방식입니다. 18절의 ‘기도하고’는 17절의 ‘가지라(받으라)’에 이어지는 분사입니다. 갑옷을 입은 군인은 무전으로 사령관과 끊임없이 연락하듯, 그리스도인은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된 채 싸웁니다.
그리고 이 기도는 개인의 싸움을 넘어 모든 성도를 위한 기도, 그리고 특별히 복음을 전하는 바울을 위한 기도로 이어집니다. 감옥에 갇힌 사도는 석방을 위해서가 아니라 담대하게 복음을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18모든 기도와 간구로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깨어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라
모든 기도와 간구로 하되 무시로 성령 안에서 기도하고 이를 위하여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직역 모든 기도와 간구로, 모든 때에 성령 안에서 기도하며, 이를 위하여 모든 인내와 모든 성도를 위한 간구로 깨어 있으라.
바울은 기도에 대해 ‘모든’이라는 말을 네 번 씁니다. 모든 기도, 모든 때(무시로), 모든 인내(항상 힘쓰며), 모든 성도. 기도는 가끔 하는 특별한 행사가 아니라 영적 전쟁의 공기와 같습니다.
① "모든 기도와 간구로."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대화, ‘간구’는 구체적인 필요를 구하는 간청입니다. 찬양, 감사, 고백, 간구, 중보. 모든 형태의 기도입니다.
② "무시로." ‘정한 때 없이’, 곧 언제든지입니다. 아침 기도 시간, 주일 예배만이 아니라 하루 종일, 운전하면서, 일하면서, 걸으면서. 데살로니가전서 5: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마귀의 불화살이 언제 날아올지 모르기 때문에 기도도 언제나 깨어 있어야 합니다.
③ "성령 안에서." 기도는 우리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를 도우시고,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를 때 친히 간구하십니다(롬 8:26). 2:18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 성령 안에서의 기도는 내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구하는 기도입니다.
④ "깨어 구하기를 항상 힘쓰며." 겟세마네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하셨지만 제자들은 잠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밤 그들은 모두 넘어졌습니다. 깨어 있는 기도는 보초와 같습니다. 잠든 보초는 적의 침입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항상 힘쓰며’는 끈질기게, 포기하지 않고입니다(눅 18:1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⑤ "여러 성도를 위하여 구하고." 영적 전쟁은 혼자 하는 싸움이 아닙니다. 군인은 자기만 지키는 것이 아니라 옆의 전우를 지킵니다. 우리는 다른 성도를 위해 기도할 때 그들의 방패가 되어 줍니다. 1:15–23과 3:14–21에서 바울이 성도들을 위해 기도했듯, 이제 성도들이 서로를 위해 기도합니다. 이것이 4:3 ‘하나 되게 하신 것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법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기도프로슈케와 간구데에시스 — 빌 4:6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딤전 2:1.
무시로엔 판티 카이로 — ‘모든 때(카이로스)에’. 5:16 ‘세월(카이로스)을 아끼라’와 같은 단어. 기회의 때마다 기도하라.
깨어아그뤼프눈테스 — ‘잠을 자지 않다’. 막 13:33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눅 21:36 "이러므로 너희는…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히 13:17.
문법 — 18절의 ‘기도하고(프로슈코메노이)’와 ‘깨어(아그뤼프눈테스)’는 14절의 ‘서라’에 딸린 분사들입니다. 기도는 서 있는 방식, 갑옷을 입는 방식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살전 5:17쉬지 말고 기도하라
롬 8:26-27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마 26:41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골 4:2기도를 항상 힘쓰고 기도에 감사함으로 깨어 있으라
눅 18:1예수께서 저희에게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아야 할 것을 비유로 하여
유 1:20성령으로 기도하며
19나를 위하여 구하라 —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또 나를 위하여 구할 것은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하옵소서 할 것이니
직역 그리고 나를 위해서도 구하라. 내가 입을 열 때에 말씀이 내게 주어져서,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되도록.
바울은 성도들에게 자기를 위해서도 기도해 달라고 부탁합니다. 위대한 사도도 기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부탁하는 기도 제목이 놀랍습니다. 감옥에서 풀려나게 해 달라, 건강하게 해 달라, 재판에서 이기게 해 달라가 아닙니다. "내게 말씀을 주사 나로 입을 벌려 복음의 비밀을 담대히 알리게." 오직 복음을 전하는 것만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합니다.
① "내게 말씀을 주사." 바울은 평생 복음을 전했고, 누구보다 말을 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매 순간 하나님께서 말씀을 주셔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수님은 "너희를 넘겨줄 때에 어떻게 또는 무엇을 말할까 염려치 말라 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마 10:19–20)고 하셨습니다. 바울은 곧 로마 황제 앞에서 재판을 받을 것이었습니다. 그 자리는 변론의 자리가 아니라 복음을 전할 기회였습니다.
② "복음의 비밀을." 3장에서 길게 설명한 그 비밀, 곧 이방인들이 유대인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한 몸이 된다는 비밀입니다. 바울은 이 비밀 때문에 감옥에 갇혔지만(3:1), 감옥에서도 이 비밀을 전하기를 원합니다.
③ "담대히." 원문 파레시아는 3:12에서 하나님께 ‘담대함’으로 나아간다고 할 때 쓴 단어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담대한 사람이 사람 앞에서도 담대합니다. 바울도 두려움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담대함을 구했습니다. 담대함은 두려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입을 벌려 — 원문 ‘엔 아노익세이 투 스토마토스 무’, ‘내 입을 열 때에’. 시 51:15 "주여 내 입술을 열어 주소서 내 입이 주를 찬송하여 전파하리이다". 겔 3:27, 29:21.
담대히엔 파레시아 — 행 4:29–31에서 박해를 받던 초대교회도 "주여… 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라고 기도했고, 기도를 마치자 모인 곳이 진동하며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말씀을 전했습니다. 행 28:31 사도행전의 마지막 절은 로마에서 바울이 "담대히(메타 파레시아스) 거침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로 끝납니다.
골 4:3–4 — "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내가 이것을 인하여 매임을 당하였노라".
함께 읽을 말씀
골 4:3-4또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되 하나님이 전도할 문을 우리에게 열어 주사 그리스도의 비밀을 말하게 하시기를 구하라
행 4:29-31종들로 하여금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게 하여 주옵시며… 빌기를 다하매 모인 곳이 진동하더니 무리가 다 성령이 충만하여 담대히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니라
마 10:19-20그때에 무슨 말할 것을 주시리니 말하는 이는 너희가 아니라 너희 속에서 말씀하시는 자 곧 너희 아버지의 성령이시니라
살후 3:1종말로 형제들아 너희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주의 말씀이 너희 가운데서와 같이 달음질하여 영광스럽게 되고
렘 1:9여호와께서 그 손을 내밀어 내 입에 대시며 내게 이르시되 보라 내가 내 말을 네 입에 두었노라
20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되었다 —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이 일을 위하여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직역 이 복음을 위하여 나는 사슬에 매인 대사이다. 내가 마땅히 말해야 할 대로 그 안에서 담대히 말하게 되도록.
바울은 자기를 놀라운 이름으로 부릅니다. "쇠사슬에 매인 사신." ‘사신’은 왕이 다른 나라에 보낸 대사입니다. 고대 세계에서 대사는 보낸 왕의 권위를 지녔고, 아무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는 불가침의 존재였습니다. 대사를 해치는 것은 그 나라에 대한 선전 포고였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하늘 왕의 대사인데 쇠사슬에 묶여 있습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대사를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이것은 세상이 하나님 나라에 얼마나 적대적인지 보여 주는 역설입니다.
대사들은 특별한 행사 때 금 사슬 목걸이를 걸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바울이 건 사슬은 금 사슬이 아니라 죄수의 쇠사슬이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 쇠사슬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대사의 영광스러운 표시였습니다. 고린도후서 5:20 "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고 바울은 다시 기도를 부탁합니다.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 대사의 의무는 왕의 메시지를 정확하게, 두려움 없이 전하는 것입니다. 바울은 쇠사슬에 묶여 있어도 그 의무는 멈추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몸은 묶였어도 말씀은 묶이지 않습니다(딤후 2:9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실제로 바울의 투옥은 복음을 막지 못했습니다. 빌립보서 1:12–13에서 바울은 "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위대 안과 그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라고 썼습니다. 황제의 근위대 병사들이 교대로 바울을 지키면서 복음을 들었고, 가이사의 집안에도 성도들이 생겼습니다(빌 4:22). 오늘 우리도 각자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우리를 묶고 있는 쇠사슬이 무엇이든, 그 자리가 바로 하나님 나라 대사관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사신프레스뷰오 — ‘대사로 일하다’. 신약에서 여기와 고후 5:20에만 나옵니다. 장로(프레스뷔테로스)와 같은 뿌리로, 원래 ‘연장자’가 사절로 파견된 데서 온 말입니다.
쇠사슬할뤼시스 — 손목을 군인에게 묶는 사슬. 행 28:20 "이스라엘의 소망을 인하여 내가 이 쇠사슬에 매인 바 되었노라", 딤후 1:16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 아니하여".
당연히 할 말 — ‘데이’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신적 필연성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고전 9:16 "부득불 할 일임이라 만일 복음을 전하지 아니하면 내게 화가 있을 것이로다".
함께 읽을 말씀
고후 5:20이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로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구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빌 1:12-14나의 당한 일이 도리어 복음의 진보가 된 줄을 너희가 알기를 원하노라 이러므로 나의 매임이 그리스도 안에서 시위대 안과 그 나머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났으니
딤후 2:9복음을 인하여 내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 고난을 받았으나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
행 28:30-31바울이 온 이태를 자기 셋집에 유하며 자기에게 오는 사람을 다 영접하고 담대히 거침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께 관한 것을 가르치더라
빌 4:22모든 성도가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 집 사람 중 몇이니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묶인 몸, 묶이지 않은 말씀
바울은 감옥에서 자기의 석방을 위해 기도해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복음을 담대히 전할 수 있도록 기도해 달라고 했습니다. 그에게 감옥은 대사관이었고, 쇠사슬은 대사의 표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대사입니다. 가정에서, 직장에서, 병상에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늘 깨어 성령 안에서 기도합시다. 나 자신을 위해, 함께 싸우는 모든 성도를 위해,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와 선교사들을 위해. 그들이 담대히 복음의 비밀을 전할 수 있도록.
6:21–24두기고를 보내며 — 평안과 사랑과 은혜가 있을지어다
에베소서는 짧은 소식과 축복으로 끝납니다. 바울은 편지를 전달할 사람 두기고를 소개하고(21–22절), 평안과 사랑과 은혜를 빕니다(23–24절). 로마서 16장처럼 긴 인사 목록이 없는 것은, 이 편지가 여러 교회에 돌려 읽히는 회람 서신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1:1 노트 참고).
이 마지막 네 절에는 에베소서 전체의 핵심 단어들이 다시 나옵니다. 사랑, 평안, 믿음, 은혜. 1:2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로 시작한 편지가 6:23–24 "평안과… 사랑이… 은혜가 있을지어다"로 끝납니다.
21사랑받은 형제요 신실한 일꾼 두기고가 모든 일을 알게 하리라
나의 사정 곧 내가 무엇을 하는지 알게 하기 위하여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인 두기고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직역 너희도 나의 사정, 곧 내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도록, 사랑받는 형제요 주 안에서 신실한 일꾼인 두기고가 모든 것을 너희에게 알려 줄 것이다.
"두기고." 이 편지를 에베소(와 주변 교회들)에 전달한 사람입니다. 두기고는 아시아 지방 출신으로(행 20:4), 바울의 3차 전도 여행 때 예루살렘 교회를 위한 연보를 함께 가지고 간 일행 중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후 바울이 로마에 갇혔을 때 곁에 있었고, 에베소서와 골로새서(골 4:7–9), 그리고 아마 빌레몬서까지 함께 전달했습니다. 나중에도 바울은 그를 그레데와 에베소에 보냈습니다(딛 3:12, 딤후 4:12).
바울은 두기고를 두 가지로 소개합니다. "사랑을 받은 형제요 주 안에서 진실한 일군." ‘형제’는 그와의 관계를, ‘일군’은 그의 섬김을 말합니다. ‘일군(디아코노스)’은 3:7에서 바울이 자기 자신을 부를 때 쓴 바로 그 말입니다. 위대한 사도와 이름 없는 전달자가 같은 칭호를 공유합니다. 그리고 ‘진실한’은 ‘신실한, 믿을 만한’입니다. 1:1에서 성도들을 ‘신실한 자들’이라고 불렀던 그 단어입니다.
두기고는 편지만 전달한 것이 아니라 "모든 일을 너희에게 알게" 했습니다. 편지에 다 쓰지 못한 바울의 소식, 로마 교회의 형편, 재판의 진행 상황을 직접 이야기해 주었을 것입니다. 성경은 이렇게 이름 없이 묵묵히 섬긴 사람들을 기억합니다. 로마에서 에베소까지는 1,600km가 넘는 먼 길이었습니다. 배와 걸어서 몇 주가 걸렸을 그 길을 두기고는 편지를 품고 걸었습니다. 오늘 우리가 에베소서를 읽을 수 있는 것은 이런 신실한 일꾼 덕분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두기고튀키코스 — ‘행운의’라는 뜻의 이름(튀케, 행운의 여신). 행 20:4 "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 골 4:7, 딛 3:12, 딤후 4:12 "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드로비모와 함께 아시아 출신이었다는 점(행 21:29 드로비모는 에베소 사람)으로 보아 두기고도 에베소 근처 출신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골 4:7–8과 거의 같음 — "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두 편지가 같은 때, 같은 사람을 통해 보내졌음을 보여 줍니다.
너희도 — 원문에 ‘너희도(카이 휘메이스)’가 있습니다. 골로새 교회처럼 너희도, 라는 뜻으로 읽힙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4:7-9두기고가 내 사정을 다 너희에게 알게 하리니 그는 사랑을 받는 형제요 신실한 일군이요 주 안에서 함께 종이 된 자니라
행 20:4아시아 사람 두기고와 드로비모라
딤후 4:12두기고는 에베소로 보내었노라
딛 3:12내가 아데마나 두기고를 네게 보내리니
고전 4:17이를 인하여 내가 주 안에서 내 사랑하고 신실한 아들 디모데를 너희에게 보내었으니
22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특별히 보내었노라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내가 특별히 그를 너희에게 보내었노라
직역 나는 바로 이 목적을 위하여 그를 너희에게 보냈다. 너희가 우리에 관한 일들을 알고, 그가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고.
두기고를 보낸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①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3:13에서 바울은 성도들이 자기의 환난 때문에 낙심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감옥에 있는 사도의 소식이 궁금하고 걱정되었을 성도들에게, 두기고는 바울이 어떻게 지내는지, 그가 감옥에서도 얼마나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고 있는지 전해 주었을 것입니다.
② "너희 마음을 위로하기 위하여." 감옥에 갇힌 사람이 밖에 있는 사람들을 위로합니다. 역설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바울입니다. 그는 자기의 고통보다 성도들의 마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위로하다’는 원문으로 파라칼레오, 4:1에서 ‘권하노니’로 번역된 그 말입니다. 곁에 와서 격려하고 힘을 북돋아 주는 것입니다. 진짜 위로는 문제가 사라져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여전히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 때 옵니다(고후 1:3–4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우리의 모든 환난 중에서 우리를 위로하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받는 위로로써 모든 환난 중에 있는 자들을 능히 위로하게 하시는 이시로다").
원어 · 번역 노트
특별히에이스 아우토 투토 — ‘바로 이것을 위하여’. 골 4:8과 같은 표현입니다.
위로하기파라칼레세 — 4:1 "권하노니(파라칼로)". 같은 단어가 권면과 위로 두 가지로 쓰입니다. 성경에서 진짜 권면은 위로이고, 진짜 위로는 권면입니다.
함께 읽을 말씀
골 4:8내가 저를 특별히 너희에게 보내는 것은 너희로 우리 사정을 알게 하고 너희 마음을 위로하게 하려 함이라
고후 1:3-4찬송하리로다 그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시요 자비의 아버지시요 모든 위로의 하나님이시며
엡 3:13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사 40:1너희 하나님이 가라사대 너희는 위로하라 내 백성을 위로하라
살전 3:2우리 형제 곧 그리스도 복음의 하나님 일군인 디모데를 보내노니 이는 너희를 굳게 하고 너희 믿음에 대하여 위로함으로
23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평안과 믿음을 겸한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을지어다
직역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평화와, 믿음과 함께하는 사랑이 형제들에게 있기를.
바울은 두 개의 축복으로 편지를 마칩니다. 23절은 평안과 사랑의 축복입니다.
"평안." 에베소서는 평안으로 가득합니다. 1:2 첫 인사의 "평강", 2:14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2:15 "화평하게 하시고", 2:17 "평안을 전하셨으니", 4:3 "평안의 매는 줄로", 6:15 "평안의 복음".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그리고 원수 된 사람들 사이에 이루신 평화가 이제 형제들 가운데 머물기를 빕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 1:15에서 바울은 성도들의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듣고 감사했습니다. 이제 마지막에 그 믿음과 사랑이 계속 함께 있기를 빕니다. 믿음 없는 사랑은 뿌리가 없고, 사랑 없는 믿음은 열매가 없습니다. 갈라디아서 5:6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그리고 그 축복은 "형제들에게"입니다. 원래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나뉘어 서로 원수였던 사람들이 이제 한 아버지의 자녀, 형제자매가 되었습니다(2:19 "하나님의 권속"). 에베소서의 가장 큰 주제인 ‘하나 됨’이 이 한 단어에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옵니다. 1:2와 같은 근원입니다.
원어 · 번역 노트
3인칭 축복 — 바울 서신의 마지막 축복은 대개 2인칭(‘너희에게’)인데, 여기서는 3인칭(‘형제들에게’)입니다. 이 편지가 여러 교회에 돌려 읽힌 회람 서신이었다는 또 하나의 증거로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믿음을 겸한 사랑 — 원문 ‘아가페 메타 피스테오스’. ‘믿음과 함께하는 사랑’. 살전 5:8 "믿음과 사랑의 흉배", 딤전 1:1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함께 읽을 말씀
엡 1: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엡 1:15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갈 5:6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
갈 6:16무릇 이 규례를 행하는 자에게와 하나님의 이스라엘에게 평강과 긍휼이 있을지어다
민 6:26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
24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직역 썩지 않는 사랑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이들에게 은혜가 있기를.
에베소서의 마지막 문장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어는 "은혜"입니다. 원문의 어순으로는 ‘은혜’가 맨 앞에 오지만, 『개역한글』에서는 마지막에 놓였습니다. 어느 쪽이든 이 편지는 은혜로 시작해서(1:2 "은혜와 평강이") 은혜로 끝납니다. 그 사이에 있는 모든 것, 택하심과 구속과 인치심(1장), 죽은 자를 살리심(2장), 비밀의 계시(3장), 하나 됨과 새 사람(4장), 빛과 성령 충만과 가정(5장), 영적 전쟁(6장), 이 모든 것이 다 은혜입니다. 2:8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그 은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있습니다. 놀라운 마무리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라고 하지 않고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자에게’라고 말합니다. 신앙은 교리를 믿는 것을 넘어 한 인격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세 번 물으신 것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요 21:15–17)였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반대로 "만일 누구든지 주를 사랑하지 아니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고전 16:22)라고도 했습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핵심입니다.
그 사랑은 "변함없이" 하는 사랑입니다. 원문은 ‘썩지 않음 안에서’, 곧 ‘불멸성 안에서’입니다. 이 단어는 고린도전서 15장에서 부활의 몸이 ‘썩지 아니할 것’이라고 할 때 쓰였습니다(고전 15:42, 50–54). 그러니 이 사랑은 시간이 지나도 식지 않고, 고난이 와도 썩지 않으며, 죽음도 끊을 수 없는 영원한 사랑입니다. 요한계시록 2:4에서 에베소 교회는 훗날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듣습니다. 바울의 마지막 축복은 바로 그 위험을 미리 내다본 것 같습니다. 그리스도를 처음처럼, 아니 처음보다 더 깊이,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에게 은혜가 있기를.
이 축복은 지금 이 편지를 읽는 우리에게도 주어집니다. 1장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받은 우리는, 6장 끝에서 다시 은혜의 축복을 받으며 세상으로 나갑니다. 앉고, 걷고, 서는 모든 순간에 그 은혜가 우리와 함께합니다. 아멘.
원어 · 번역 노트
변함없이엔 아프타르시아 — ‘썩지 않음, 불멸’. 롬 2:7 "썩지 아니함을 구하는 자에게는 영생으로 하시고", 고전 15:42, 50, 53–54, 딤후 1:10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 이 말이 ‘사랑하는 자’에 붙는지(변함없이 사랑하는), ‘은혜’에 붙는지(썩지 않는 은혜가), 또는 그리스도에 붙는지(썩지 않음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 해석이 갈리지만, 『개역한글』처럼 ‘사랑’에 붙여 읽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은혜헤 카리스 — 관사가 붙은 ‘그 은혜’. 에베소서 전체에서 말한 바로 그 은혜입니다. 바울은 모든 편지를 ‘은혜’로 마칩니다(롬 16:20, 고전 16:23, 고후 13:13, 갈 6:18, 빌 4:23, 골 4:18, 살전 5:28, 살후 3:18, 딤전 6:21, 딤후 4:22, 딛 3:15, 몬 1:25).
아멘 — 일부 후대 사본에는 끝에 ‘아멘’이 있습니다(KJV).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없습니다.
함께 읽을 말씀
엡 1:2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엡 2:8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요 21:15-17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여 그러하외다 내가 주를 사랑하는 줄 주께서 아시나이다
벧전 1:8예수를 너희가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이제도 보지 못하나 믿고 말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즐거움으로 기뻐하니
계 2:4-5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롬 8:38-39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
TODAY'S MESSAGE · 오늘의 메시지
처음 사랑을 끝까지
에베소서의 마지막 축복은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주어집니다. 훗날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버렸다는 책망을 들었습니다. 수고와 인내와 바른 교리는 남아 있었지만 사랑이 식었습니다.
오늘 나의 신앙은 여전히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입니까? 처음 그분을 만났을 때의 감격을 기억하십시오. 그리고 에베소서 1장부터 6장까지 우리가 받은 모든 은혜를 다시 세어 보십시오. 그 은혜가 오늘도 우리와 함께합니다. 은혜로 시작했으니, 은혜로 끝까지 갑시다.
The Armor · 전신갑주
14–17절, 하나님의 전신갑주 한눈에 보기
로마 군인의 장비, 이사야서의 배경, 그리고 에베소서 안의 연결
장비
로마 군인에게
영적 의미
구약 배경
에베소서 안의 연결
진리의 허리띠
옷을 걷어 묶고 칼을 차는 넓은 가죽띠
복음의 진리, 삶의 정직
사 11:5
1:13 진리의 말씀, 4:15, 25 참된 것을 말하라
의의 흉배
가슴과 등을 지키는 금속 갑옷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 의로운 삶
사 59:17
4:24 의와 진리의 거룩함
평안의 복음의 신
바닥에 징 박은 가죽 군화(칼리가)
복음 위에 굳게 섬, 복음을 전할 준비
사 52:7
2:14–17 그는 우리의 화평
믿음의 방패
문짝만 한 큰 방패(스쿠툼), 물에 적신 가죽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함
창 15:1, 시 18:30
2:8 믿음으로 말미암아, 3:12
구원의 투구
머리를 지키는 청동 투구
구원의 확신과 소망, 생각을 지킴
사 59:17
1:13–14 인치심과 보증, 2:5, 8
성령의 검
근접전용 짧은 칼(글라디우스)
상황에 맞게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
사 11:4, 49:2
5:26 말씀으로 깨끗하게
(기도)
사령관과의 끊임없는 연락
모든 때에 성령 안에서, 모든 성도를 위하여
단 6:10
1:16–19, 3:14–19 바울의 기도
여섯 가지 장비 가운데 다섯은 방어용이고, 공격 무기는 말씀 하나뿐입니다. 영적 전쟁의 대부분은 이미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자리를 ‘지키는’ 싸움입니다. 그리고 이 장비들은 하나같이 복음과 그리스도 자신을 가리킵니다. 그분이 진리이시고(요 14:6), 우리의 의이시며(고전 1:30), 우리의 화평이시고(엡 2:14), 믿음의 주이시며(히 12:2), 구원이시고(눅 2:30), 살아 있는 말씀이십니다(요 1:1).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는다는 것은 곧 그리스도로 옷 입는 것입니다(롬 13:14).
Ephesians · 전체 흐름
앉고, 걷고, 서라 — 에베소서 여섯 장 돌아보기
은혜로 시작해 은혜로 끝나는 편지
장
핵심
열쇠 구절
자세
1장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 — 아버지의 택하심, 아들의 구속, 성령의 인치심
1:3
앉으라 (2:6) —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안에서 쉼
2장
죽었던 자를 살리시고, 둘로 하나를 만드심
2:8–10, 14
3장
그리스도의 비밀과 교회를 통해 드러나는 하나님의 지혜, 그리고 기도와 송영
3:6, 10, 19–20
4장
하나 됨을 지키고, 은사로 서로 세우며,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음
4:1–3, 22–24
걸으라 (4:1) — 부르심에 합당하게 삶
5장
사랑과 빛과 지혜 가운데 걷고, 성령으로 충만하며, 그리스도와 교회처럼 사랑하는 가정
5:8, 18, 32
6장
가정과 일터에서 주께 하듯 섬기고, 전신갑주를 입고 서서 기도함
6:10–11, 18
서라 (6:11, 13–14) — 그리스도의 승리를 지킴
에베소서의 첫 인사는 "은혜와 평강"(1:2)이었고, 마지막 축복은 "평안과… 사랑… 은혜"(6:23–24)입니다. 그 사이의 모든 내용은 결국 은혜가 무엇을 하는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은혜는 우리를 하늘에 앉히고, 세상 속에서 새롭게 걷게 하고, 영적 전쟁 속에서 끝까지 서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은 우리 혼자가 아니라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일어납니다.
Glossary · 단어 사전
6장 어려운 단어 사전
옛 한자어와 원어를 오늘의 말로 풀었습니다
공경恭敬 · 2절
공손히 받들어 존중함. 히브리어로 ‘무겁게 여김’.
장수長壽 · 3절
오래 삶.
노엽게 하다4절
화나게 하여 낙심하게 만듦.
교양敎養 · 4절
가르치고 기르는 훈육 전체. 원문 파이데이아.
훈계訓戒 · 4절
말로 가르쳐 바로잡음. 원문 누테시아.
상전上典 · 5, 9절
주인. 종을 거느린 사람.
눈가림6절
보는 앞에서만 하는 척함.
공갈恐喝 · 9절
겁을 주어 위협함.
외모로 취하다9절
겉모습이나 신분을 보고 판단함, 편애함.
종말로終末 · 10절
마지막으로. 편지의 끝맺음.
궤계詭計 · 11절
간사한 꾀, 교묘한 계략.
전신갑주全身甲冑 · 11, 13절
온몸을 무장하는 갑옷과 투구 전체.
혈과 육血 · 肉 · 12절
피와 살, 곧 사람.
주관자主管者 · 12절
다스리고 관할하는 자.
흉배胸背 · 14절
가슴과 등을 보호하는 갑옷.
화전火箭 · 16절
불을 붙여 쏘는 화살.
무시로無時로 · 18절
정한 때 없이 언제나.
간구懇求 · 18절
간절히 구함.
사신使臣 · 20절
임금의 명을 받아 다른 나라에 간 대사.
일군21절
섬기는 사람. 원문 디아코노스.
For Reflection · 묵상과 나눔
묵상과 나눔을 위한 질문
(자녀로서) 나는 부모님을 어떻게 ‘무겁게’ 여기고 있습니까? 이번 주에 부모님께 공경을 표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입니까? (2절)
(부모로서) 나도 모르게 자녀를 노엽게 한 일은 없습니까? ‘주의 교양과 훈계’로 기른다는 것은 우리 가정에서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요? (4절)
나는 직장이나 학교에서 ‘눈가림’으로 일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그리스도께 하듯’ 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요? (6–7절)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을 ‘원수’로 보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라’는 말씀은 그 관계를 어떻게 바꿉니까? (12절)
전신갑주 여섯 가지 가운데 지금 나에게 가장 약한 부분은 어디입니까? 마귀가 요즘 나를 어떤 ‘불화살’로 공격하고 있습니까? (14–17절)
내 ‘칼집’에는 말씀이 들어 있습니까? 시험의 순간에 꺼내 쓸 수 있도록 이번 주에 마음에 새길 말씀 한 구절을 정해 봅시다. (17절)
나는 누구를 위해 깨어 기도하고 있습니까? 우리 교회의 목회자와 성도들, 그리고 복음을 전하는 이들을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해 봅시다. (18–20절)
에베소서 여섯 장을 다 읽고 나서, 나는 지금도 그리스도를 ‘변함없이’, 처음처럼 사랑하고 있습니까? (24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