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3장은 구조적으로 독특합니다. 1절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은"이라는 문장은 원래 14절 "이러므로 내가 ···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로 곧장 이어지려던 기도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그 사이에(2-13절) 갑자기 곁길로 들어가, 자신에게 맡겨진 '비밀'의 직분을 설명합니다. 이런 문학적 곁가지를 흔히 '삽입구'(parenthesis)라 부릅니다.
이 삽입구의 핵심 단어는 '비밀'(뮈스테리온)입니다. 1:9에서 이미 예고된 이 단어가 3장에서 구체적으로 정의됩니다 — 이방인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유대인과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된다는 것(6절)입니다. 2장에서 이미 보여준 그 화해가, 이제는 창세 전부터 감추어져 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비로소 드러난 하나님의 영원한 계획이었음이 밝혀집니다.
3장은 결국 웅장한 기도(14-19절)와 송영(20-21절)으로 마무리되며, 1-3장 전체(교리 부분)의 대단원을 이룹니다. 이 송영은 이후 4장의 "그러므로"로 시작되는 실천 명령으로 넘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향한 찬양의 숨을 고르는 자리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갇힌 자 됨을 언급하다가(1절), 곧바로 자신에게 맡겨진 '비밀'이라는 계시로 방향을 돌립니다. 이 비밀의 내용이 명료하게 정의됩니다.
바울은 자신이 '로마의 죄수'가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갇힌 자라고 스스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그 갇힘의 이유가 다름 아닌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라는 것 — 이방인 선교와 유대인-이방인의 하나 됨을 전한 것이 실제로 그가 체포된 배경이었습니다(행 21장).
바울은 이 비밀을 스스로 발견한 것이 아니라 '계시로' 받았다고 말합니다. 인간의 지혜나 통찰이 아니라 하나님이 직접 알려주신 것이라는 점이 강조됩니다. '대강 기록하였으므로'는 1-2장, 특히 2:11-22에서 이미 이 비밀의 내용을 다뤘음을 가리킵니다.
드디어 '비밀'의 정확한 내용이 정의됩니다 — 이방인이 유대인과 완전히 동등하게(세 개의 '함께'가 강조하듯) 상속자·지체·참여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 비밀이 '다른 세대'(구약 시대)에는 이 정도로 명확하게 알려지지 않았다는 것은, 구약이 이방인의 구원을 전혀 예고하지 않았다는 뜻이 아니라(이사야 등에서 이미 암시됨), 유대인과 이방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하나의 몸을 이룰 것이라는 이 정도의 구체성과 충만함으로는 계시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이 위대한 비밀을 전하는 특권이 어떻게 자신과 같이 부족한 사람에게 맡겨졌는지를 바울은 깊은 겸손과 놀라움으로 고백합니다.
바울은 스스로를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라고 표현합니다. 이는 과장된 겸손이 아니라, 한때 교회를 핍박했던 자신의 과거(갈 1:13)를 늘 기억하며 나온 진심 어린 고백입니다. 그럼에도 이런 자에게 헤아릴 수 없이 풍성한 그리스도를 전하는 특권이 주어졌다는 것 자체가 은혜의 크기를 보여줍니다.
매우 놀라운 진술입니다 — 하나님의 지혜가 천사와 영적 세력들에게 드러나는 통로가 다른 무엇도 아닌 '교회'라는 것입니다. 유대인과 이방인이 하나 되어 함께 예배하는 교회 공동체 자체가, 온 우주의 영적 존재들이 지켜보는 하나님의 지혜의 전시장입니다. 교회의 존재와 연합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환난이 오히려 이방인 성도들에게 '영광'(부끄러움이 아니라 자랑거리)이라고 말합니다 — 그의 갇힘 자체가 이 비밀이 얼마나 큰 가치를 지녔는지를 역설적으로 증명하기 때문입니다.
1절에서 시작하려다 미뤄졌던 기도가 마침내 재개됩니다. 1장의 기도(지혜와 계시의 영, 소망, 능력을 알기를)에 이어, 이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의 광대함을 알기를 구하는, 에베소서에서 가장 아름다운 기도문입니다.
'아버지'(파테르)와 '족속'(파트리아)이 같은 어근에서 나온 헬라어 언어유희입니다 — 하늘과 땅의 모든 가족이 그 이름을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받았다는 것은, 하나님이 모든 존재의 궁극적 근원이심을 보여줍니다. 무릎을 꿇는 기도 자세는 유대 전통에서 흔치 않았던(보통은 서서 기도) 특별히 간절한 기도였습니다.
기도의 첫 요청은 성령을 통한 속사람의 강건함이며, 그 목적은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시게' 하려 함입니다(이미 믿는 자 안에 계시지만, 더 깊이 자리 잡고 다스리시기를 구하는 기도).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는 나무(뿌리)와 건물(터)이라는 두 은유를 겹쳐 사용해, 사랑 안에서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그립니다.
3장 기도의 절정이자 에베소서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절 중 하나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지식에 넘치는'(측정할 수 없는) 것이면서도, 역설적으로 우리가 그것을 '알기를' 구합니다 — 이는 완전한 정보적 이해가 아니라, 이해를 초월하면서도 동시에 체험적으로 알아가는 사랑을 뜻합니다. 너비·길이·높이·깊이라는 네 방향의 언어는 그 사랑이 우주 전체를 감싸는 광대함을 지녔음을 표현합니다. 그리고 이 앎의 최종 목적지는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충만해지는 것 — 우리 존재 전체가 하나님으로 가득 차는 것입니다.
1-3장(교리 부분) 전체를 마무리하는 웅장한 찬양입니다. 4장부터 시작될 실천 명령 앞에서, 먼저 이 모든 것을 이루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더 넘치도록'(휘페레크페리수)은 이미 강조 표현인 '넘치도록'(페리수)에 또 다른 강조 접두사(휘페르, ~을 초월하여)를 겹겹이 쌓은 최상급 중의 최상급 표현입니다. 우리가 구하거나 상상하는 것의 한계를 훨씬 뛰어넘어 일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언어의 한계까지 밀어붙여 표현한 것입니다.
영광을 돌리는 자리로 '교회'가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것이 인상적입니다 — 3:10에서 이미 교회가 하나님의 지혜를 드러내는 통로였듯, 여기서도 교회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특별한 처소로 그려집니다. 1-3장 전체(교리)가 이 짧고 힘 있는 '아멘'으로 마무리되고, 이제 4장의 '그러므로'가 실천을 향해 문을 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