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사무엘상의 숨은 이야기

아이를 달라고 울던 여인, 잃은 나귀를 찾다 왕관을 얻은 청년, 돌멩이 하나로 거인을 쓰러뜨린 목동. 사사 시대가 저물고 왕의 시대가 열리는 길목에서, 사람들은 키를 재고 하나님은 마음을 보셨습니다. 사무엘상 서른한 장을 한 구절씩 걸으며 히브리어 단어 속 이야기와 그 시대의 풍경을 함께 만나 봅니다.

31장 810절시대 · 주전 11세기무대 · 실로에서 길보아까지주인공 · 사무엘, 사울, 다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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序

왕이 없던 땅

책을 펴기 전에 먼저 그 시대의 길을 걸어 봅니다

사무엘상은 사사기의 마지막 문장을 이어받습니다. "그 때에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삿 21:25). 대략 주전 11세기, 이스라엘 열두 지파는 느슨하게 흩어져 있었고, 서쪽 해안 평야에는 철 무기를 가진 블레셋 사람들이 버티고 있었습니다.

책은 세 사람을 따라갑니다. 마지막 사사이자 선지자 사무엘, 백성이 원해서 세운 첫 왕 사울, 그리고 하나님이 마음을 보고 고르신 다윗입니다. 무대는 에브라임 산지의 실로에서 시작해 블레셋의 아스돗과 가드, 엘라 골짜기와 엔게디 광야를 거쳐 북쪽 길보아 산에서 끝납니다.

히브리어 성경에서 사무엘상·하는 원래 한 권이었습니다. 헬라어 칠십인역이 처음 두 권으로 나누고 열왕기와 묶어 "왕국기 1–4권"이라 불렀습니다. 그래서 사무엘상은 "왕국의 시작"을 다룬 첫 권입니다.

31장, 모두 810절
주전 11세기사사 시대 끝에서 사울의 죽음까지
40년사울이 다스린 기간 (행 13:21)
약 57kg골리앗 갑옷의 무게 (놋 5천 세겔)
지도의 북쪽 끝 길보아 산과 벧산에서 사울의 이야기가 끝나고, 가운데 산지의 실로·라마·미스바에서 사무엘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남서쪽 엘라 골짜기에서 골리앗이 쓰러지고, 남동쪽 사해 가의 엔게디 광야에서 다윗이 사울의 옷자락을 벱니다. 구글 지도에서 크게 보기 ↗

사해 사본이 다시 연 사무엘서

1952년 쿰란 제4동굴에서 사무엘서 사본 조각들(4QSama 등)이 발견되었습니다. 주전 1세기 무렵 필사된 것으로, 지금 우리 성경의 바탕이 된 중세 히브리어 사본보다 천 년쯤 앞섭니다. 이 사본은 곳곳에서 헬라어 칠십인역과 같은 읽기를 보여 주어, 사무엘서 본문을 연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 페이지에서도 몇 군데 그 흔적을 함께 살펴봅니다.

1

한나의 눈물

아이 없던 여인의 기도에서 시작되는 왕국 이야기

1:1

에브라임 사람? 레위 사람!

엘가나는 "에브라임 산지 라마다임소빔"에 사는 "에브랏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그런데 역대상 6장의 레위 족보를 보면 엘가나와 사무엘이 고핫 자손 레위인 명단에 들어 있습니다(대상 6:26–28, 33–34).

레위인은 따로 땅을 받지 않고 여러 지파 땅에 흩어져 살았습니다. 그래서 에브라임 땅에 사는 레위인이었다고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사무엘이 성막에서 자라며 제사장의 일을 감당한 배경이 여기 있습니다.

역사
1:2

"진주"와 "은혜"

엘가나의 두 아내는 이름부터 대조됩니다. 브닌나(פְּנִנָּה 페닌나)는 "진주" 또는 "산호"라는 뜻이고, 한나(חַנָּה 한나)는 "은혜"라는 뜻입니다. 진주처럼 자식 많은 아내와, 은혜밖에 기댈 것이 없는 아내입니다.

이 책은 "은혜"라는 이름을 가진 여인의 눈물로 시작합니다.

원어
1:3

성경에 처음 나오는 "만군의 여호와"

"이 사람이 매년 자기 성읍에서 나와서 실로에 올라가서 만군의 여호와께 예배하며". "만군의 여호와"(יְהוָה צְבָאוֹת 야웨 체바오트)라는 이름은 성경 전체에서 바로 이 구절에 처음 나옵니다. 하늘의 군대와 별들과 모든 것을 거느리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나라는 약하고 성막은 타락했던 시대, 아이 없는 여인이 붙든 하나님은 바로 그 "만군의 여호와"였습니다(1:11).

원어
1:5

갑절일까, 한 몫일까

"한나에게는 갑절을 주니 이는 그를 사랑함이라". 히브리어 원문은 뜻이 분명하지 않아 번역마다 다릅니다. "한 몫을 주었으나"로 읽는 번역도 있고, "특별한 몫"으로 읽는 번역도 있습니다.

어느 쪽이든 엘가나의 사랑은 한나의 빈 품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내가 당신에게 열 아들보다 낫지 아니하냐"(1:8)라는 위로가 오히려 서운하게 들렸을 것입니다.

원어
1:6–7

해마다 반복된 성막 길의 아픔

"그의 적수인 브닌나가 그를 심히 격분하게 하여 괴롭게 하더라… 매년 한나가 여호와의 집에 올라갈 때마다". 가장 즐거워야 할 절기 순례 길이 한나에게는 해마다 상처가 덧나는 길이었습니다. 제사 고기를 자식 수대로 나눠 받는 자리에서 한나의 몫은 늘 초라했습니다(1:4).

문화
1:9

실로, 성막이 있던 언덕

실로는 여호수아 때부터 회막이 세워져 있던 곳입니다(수 18:1). 오늘날 이스라엘 중부 산지의 텔 실로 유적에서는 이 시대의 건물과 저장 항아리들이 발굴되었고, 주전 11세기 중엽 큰불에 탄 흔적도 나왔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것을 블레셋에게 언약궤를 빼앗긴 뒤(4장) 실로가 무너진 흔적으로 봅니다. 훗날 예레미야는 "실로에 가서… 내가 행한 것을 보라"(렘 7:12)고 외칩니다. 다만 유적과 성경 사건을 직접 연결하는 데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습니다.

실로 유적
텔 실로(키르벳 세일룬) 유적. 한나가 해마다 올라와 기도하던 성막이 이 언덕에 있었습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1:11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

한나는 아들을 주시면 "그의 평생에 그를 여호와께 드리고 삭도를 그 머리에 대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서원합니다. 삼손처럼 나실인으로 바치겠다는 서원입니다(민 6:5; 삿 13:5).

흥미롭게도 사해 사본 사무엘서(4QSama)의 1:22에는 사무엘을 "영원한 나실인"으로 드리겠다는 말이 더 있습니다. 사무엘은 마지막 사사였고, 사사기의 마지막 영웅 삼손처럼 나실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삼손과 달리 끝까지 그 서원을 지켰습니다.

역사
1:13

술 취한 줄 알았던 기도

"한나가 속으로 말하매 입술만 움직이고 음성은 들리지 아니하므로 엘리는 그가 취한 줄로 생각한지라". 당시에는 소리 내어 기도하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소리 없이 입술만 달싹이는 여인을 엘리는 술 취한 사람으로 오해했습니다.

"포도주나 독주를 마신 것이 아니요 여호와 앞에 내 심정을 통한 것뿐이오니"(1:15). 유대 탈무드(베라호트 31a)는 이 장면에서 마음을 다해, 입술을 움직여, 조용히 기도하는 법을 배운다고 말합니다.

깊은 묵상
1:18

기도한 뒤 바뀐 얼굴

"그 여자가 가서 먹고 얼굴에 다시는 수심이 있지 아니하니라". 아직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아이는 생기지 않았고 브닌나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 놓은 사람의 얼굴이 먼저 바뀌었습니다.

깊은 묵상
1:20

사무엘 이름 속의 "사울"

"그의 이름을 사무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여호와께 그를 구하였다 함이더라". 그런데 "구하다"는 히브리어로 שָׁאַל 샤알인데, 이 말은 "사무엘"보다 오히려 "사울"(샤울, "구한 자")이라는 이름과 소리가 꼭 맞습니다.

학자들은 "사무엘"이라는 이름 자체를 "하나님의 이름" 또는 "하나님이 들으셨다"로 풉니다. 성경은 사무엘의 탄생 이야기에 일부러 "구하다"는 말을 여러 번 넣어(1:17, 20, 27, 28), 백성이 "구할" 왕 사울을 미리 내다보게 합니다.

원어
1:24

젖 뗀 아이

한나는 아이가 젖을 뗄 때까지 기다렸다가 실로로 데려갑니다. 고대 이스라엘에서는 보통 두세 살 무렵 젖을 뗐습니다. 외경 마카베오하 7:27에는 "너를 삼 년 동안 젖 먹여 길렀다"는 어머니의 말이 나옵니다.

세 살 남짓한 아이를 성막에 두고 돌아서는 엄마의 발걸음을 생각해 보십시오. 한나는 그 길에서 슬픔이 아니라 찬양의 노래를 부릅니다(2장).

문화
1:28

"여호와께 드리되"는 "사울"

"그러므로 나도 그를 여호와께 드리되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 여기서 "드리다"로 번역된 말이 שָׁאוּל 샤울입니다. 직역하면 "그는 여호와께 구해진 자, 여호와께 맡겨진 자입니다"가 됩니다.

한나가 하나님께 "구한" 아이를 다시 하나님께 "맡겼습니다". 구한 것을 꽉 쥐지 않고 다시 드리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통해 새 시대를 여셨습니다.

원어
2

한나의 노래

낮은 자를 높이시는 하나님, 그리고 무너지는 엘리의 집

2:1

"내 뿔이 높아졌으며"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들소나 숫양이 머리를 높이 쳐든 모습에서 온 표현으로, 뿔은 힘과 존귀를 상징했습니다. 고개 숙이고 다니던 한나가 이제 고개를 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뿔"로 시작해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2:10)로 끝납니다.

문화
2:2

반석 같은 이가 없으시니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시니이다". "반석"(צוּר 추르)은 하나님을 부르는 오래된 이름입니다(신 32:4). 흔들리던 한나의 인생을 붙든 것은 남편의 사랑도 아들도 아니라 반석이신 하나님이었습니다.

원어
2:6

스올에서도 올리시는 분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죽음의 세계(스올)에서 다시 올리신다는 고백은, 구약 안에서 부활 신앙이 자라나는 씨앗 같은 말씀입니다.

깊은 묵상
2:7–8

천 년 뒤 마리아가 부른 노래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천 년쯤 뒤 갈릴리의 처녀 마리아가 이 노래를 다시 부릅니다. "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눅 1:52).

한나의 노래와 마리아의 찬가는 생각의 흐름도 단어도 놀라울 만큼 닮았습니다. 둘 다 기적으로 아이를 얻은 여인이 하나님의 뒤집으시는 구원을 노래합니다.

역사
2:10

왕이 없던 때 노래한 "메시아"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기름 부음 받은 자"는 히브리어로 מָשִׁיחַ 마쉬아흐, 곧 "메시아"입니다. 헬라어로 옮기면 "그리스도"가 됩니다.

이스라엘에 아직 왕이 한 명도 없던 때였습니다. 성경에서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가 왕을 가리키며 나오는 첫 자리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노래입니다. 아이 없던 여인이 왕보다 먼저 메시아를 노래했습니다.

원어
2:12

"벨리알의 아들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직역하면 "벨리알의 아들들"(בְּנֵי בְלִיַּעַל)입니다. "쓸모없음, 무가치함"이라는 뜻의 말로, 훗날 바울은 이 말을 사탄의 이름처럼 씁니다(고후 6:15).

그 뒤에 붙은 말이 더 무섭습니다. "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 성막에서 나고 자라 날마다 제사를 드리던 제사장 아들들이 하나님을 몰랐습니다.

원어
2:13–14

세 살 갈고리의 제비뽑기

제사장의 사환은 고기를 삶을 때 "세 살 갈고리"를 솥에 찔러 넣고 "걸리는 것은 제사장이 자기 것으로 가지되". 레위기는 제사장의 몫을 가슴과 오른쪽 넓적다리로 정해 두었습니다(레 7:31–34). 엘리의 아들들은 그 몫으로 만족하지 않고 갈고리로 더 깊이 찔렀습니다.

심지어 기름을 태우기도 전에 날고기를 내놓으라고 했습니다(2:15–16).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할 가장 좋은 부분을 사람이 먼저 가로챈 것입니다.

문화
2:18–19

해마다 한 치수씩 커진 겉옷

"사무엘은 어렸을 때에 세마포 에봇을 입고 여호와 앞에서 섬겼더라 그의 어머니가 매년… 작은 겉옷을 지어다가 그에게 주었더니". "겉옷"(מְעִיל 메일)은 사무엘상 전체에서 결정적인 장면마다 다시 나오는 옷입니다(15:27; 18:4; 24:4; 28:14).

해마다 한 치수씩 커졌을 그 옷에는 엄마의 기도가 한 땀 한 땀 들어 있었을 것입니다.

문화
2:22

회막 문의 여인들

엘리의 아들들은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과 동침"했습니다. 출애굽기 38:8에도 "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이 자기 놋 거울을 바쳐 물두멍을 만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성막을 섬기던 여인들의 경건한 전통이 제사장들 손에서 더럽혀졌습니다.

역사
2:26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닮은 문장

"아이 사무엘이 점점 자라매 여호와와 사람들에게 은총을 더욱 받더라". 누가는 예수님의 어린 시절을 거의 같은 문장으로 기록합니다. "예수는 지혜와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엘리의 아들들이 타락해 가는 장면들 사이사이에 "아이 사무엘이 자라니라"는 짧은 문장이 끼어듭니다(2:11, 18, 21, 26). 어둠이 짙어지는 동안에도 하나님은 조용히 다음 사람을 키우고 계셨습니다.

역사
2:30

무거운 존중, 가벼운 멸시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나도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존중하다"(כָּבֵד 카베드)는 원래 "무겁게 여기다", "멸시하다"(קָלַל 칼랄)는 "가볍게 여기다"라는 뜻입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 때 주일 경기를 거부한 스코틀랜드 선수 에릭 리델은 400m 결승 직전 이 구절이 적힌 쪽지를 건네받았다고 전해집니다. 그는 그 경기에서 금메달을 땄습니다. 영화 『불의 전차』로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원어
2:35

"충실한 제사장"은 누구였을까

"내가 나를 위하여 충실한 제사장을 일으키리니". 이 예언은 솔로몬 때 이루어집니다. 엘리의 후손 아비아달이 쫓겨나고 사독이 제사장이 되었을 때, 성경은 "여호와께서 실로에서 엘리의 집에 대하여 하신 말씀을 응하게 하려 하심이더라"고 기록합니다(왕상 2:27, 35).

그리고 이 약속은 결국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집니다(히 7:24–26).

역사
3

듣는 아이

말씀이 희귀하던 밤에 들린 부르심

3:1

말씀이 희귀하던 시대

"그 때에는 여호와의 말씀이 희귀하여 이상이 흔히 보이지 않았더라". 성막도 있고 제사장도 있고 제사도 계속되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들리지 않았습니다. 종교 행사는 넘쳐도 말씀이 없는 시대, 그것이 사사 시대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깊은 묵상
3:2

눈이 어두운 제사장

"엘리의 눈이 점점 어두워 가서 잘 보지 못하는". 엘리의 몸의 눈만 어두워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들들의 죄를 보고도 바로잡지 못한 그의 영적인 눈도 함께 흐려져 있었습니다.

깊은 묵상
3:3

새벽이 오기 전의 등불

"하나님의 등불은 아직 꺼지지 아니하였으며". 성막의 등불은 저녁부터 아침까지 켜 두도록 되어 있었습니다(출 27:20–21). 그러니 이 장면은 등잔 기름이 거의 다 타들어 간 새벽 무렵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등불도 꺼지기 직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꺼지지 않았습니다.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이 한 아이를 부르셨습니다.

문화
3:7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아이

"사무엘이 아직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말씀도 아직 그에게 나타나지 아니한 때라". 성막에서 자라고 에봇을 입고 섬겼지만, 아직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지는 못했습니다. 2:12의 엘리 아들들("여호와를 알지 못하더라")과 같은 표현이지만, 사무엘에게는 "아직"이라는 말이 붙어 있습니다.

깊은 묵상
3:10

"여호와여"를 빼먹은 대답

엘리는 사무엘에게 "여호와여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하라"고 가르쳐 줍니다(3:9). 그런데 정작 하나님이 오셔서 부르시자 사무엘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말씀하옵소서 주의 종이 듣겠나이다."

"여호와여"가 빠졌습니다. 너무 떨려서 빼먹었을까요, 아직 그 이름을 부를 만큼 하나님을 몰라서였을까요? 어쨌든 하나님은 완벽한 기도문이 아니라 들으려는 마음을 보셨습니다.

깊은 묵상
3:11

"두 귀가 울리리니"

"보라 내가 이스라엘 중에 한 일을 행하리니 그것을 듣는 자마다 두 귀가 울리리니". 이 표현은 성경에서 큰 심판을 예고할 때만 나옵니다. 므낫세 시대 예루살렘의 멸망(왕하 21:12)과 예레미야의 예언(렘 19:3)에서 똑같이 쓰였습니다.

원어
3:18

엘리의 마지막 순종

사무엘이 두려워하며 심판의 말씀을 전하자 엘리가 대답합니다. "이는 여호와이시니 선하신 대로 하실 것이니라". 아들들은 바로잡지 못했지만, 하나님의 말씀 앞에 고개를 숙일 줄은 아는 노인이었습니다.

깊은 묵상
3:19–20

단에서 브엘세바까지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셔서 그의 말이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 하시니 단에서부터 브엘세바까지의 온 이스라엘이". 단은 이스라엘 북쪽 끝, 브엘세바는 남쪽 끝 마을로, 직선거리로 약 240km입니다. "온 나라"를 뜻하는 관용구지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게"라는 말이 아름답습니다. 활을 쏘면 과녁에 꽂히듯, 사무엘이 전한 말씀은 빗나가지 않고 다 이루어졌습니다.

역사
4

영광이 떠나다

언약궤를 부적처럼 들고 나간 날

4:1

아벡과 에벤에셀

이스라엘은 "에벤에셀 곁에", 블레셋은 "아벡에" 진을 쳤습니다. 아벡은 해안 평야에서 산지로 올라오는 길목으로, 오늘날 텔 아펙 유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재미있게도 "에벤에셀"(도움의 돌)이라는 이름은 이 패배의 현장에 이미 붙어 있었습니다.

20년 뒤 사무엘은 승리의 자리에 같은 이름의 돌을 세웁니다(7:12). 패배의 이름이 승리의 고백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역사
4:3

하나님 대신 상자를

첫 싸움에서 지자 장로들은 묻습니다. "여호와께서 어찌하여 우리에게 오늘 블레셋 사람들 앞에 패하게 하셨는고". 그런데 그 답을 하나님께 묻지 않고, "여호와의 언약궤를 실로에서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 중에 있게 하여"라고 결정합니다.

언약궤를 하나님의 임재가 아니라 승리를 보장하는 부적처럼 다룬 것입니다. "그것으로 우리를 우리 원수들의 손에서 구원하게 하자"(4:3). 하나님이 아니라 "그것"이 구원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깊은 묵상
4:5

땅이 울린 함성

"여호와의 언약궤가 진영에 들어올 때에 온 이스라엘이 큰 소리로 외치매 땅이 울린지라". 여리고에서도 큰 함성이 있었습니다. 그때는 성벽이 무너졌지만, 이번에는 땅만 울렸습니다. 함성의 크기가 하나님의 임재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깊은 묵상
4:7–8

블레셋 사람들이 알던 출애굽 이야기

블레셋 사람들이 두려워 외칩니다. "누가 우리를 이 능한 신들의 손에서 건지리요 그들은 광야에서 여러 가지 재앙으로 애굽인을 친 신들이니라". 출애굽 이야기는 수백 년이 지나 이웃 나라에까지 전해져 있었습니다.

다만 조금 뒤섞여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들"이라는 복수로 부르고, 재앙을 "광야에서" 내렸다고 말합니다. 😊 소문은 들었지만 그 하나님을 알지는 못했습니다.

역사
4:11

같은 날 죽은 두 아들

"하나님의 궤는 빼앗겼고 엘리의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는 죽임을 당하였더라". 2:34에서 하나님의 사람이 예고한 표징, "네 두 아들 홉니와 비느하스가 한 날에 죽으리니"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역사
4:12

전령은 사울이었다?

"그 날에 어떤 베냐민 사람이 진영에서 달려 나와서 자기의 옷을 찢고 자기의 머리에 흙을 덮고 실로에 이르니라". 옷을 찢고 머리에 흙을 뿌리는 것은 큰 슬픔과 재앙을 알리는 몸짓이었습니다.

유대 미드라시 전승은 이 이름 없는 베냐민 청년이 훗날의 사울이었다고 상상합니다. 성경에는 근거가 없는 이야기지만, 왕을 구하게 되는 비극의 날에 장차 왕이 될 지파의 청년이 달리고 있다는 대비는 흥미롭습니다.

역사
4:18

무거워진 제사장

"엘리가 자기 의자에서 뒤로 넘어져 문 곁에서 목이 부러져 죽었으니 나이가 많고 비대한 까닭이라". "비대하다"는 히브리어 כָּבֵד 카베드, "무겁다"는 말입니다. 2:29에서 하나님은 엘리가 아들들과 함께 제물의 좋은 것으로 "살찌게" 했다고 책망하셨습니다.

하나님을 "무겁게" 여기지 않고(2:30) 자기 몸만 무거워진 제사장. 엘리는 사십 년 동안 이스라엘의 사사로 있었지만 마지막은 이렇게 쓸쓸했습니다.

원어
4:21–22

"영광이 어디 있는가"

비느하스의 아내는 죽어 가며 아이 이름을 "이가봇"이라 짓습니다. "영광이 이스라엘에서 떠났다." "영광"은 כָּבוֹד 카보드, 원래 "무게"라는 말입니다. 이가봇은 "영광이 없다" 또는 "영광이 어디 있는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볍게 여긴 제사장 집안에서, 진짜 무게가 떠나 버렸습니다. 그런데 정말 영광이 떠났을까요? 다음 장에서 그 영광은 블레셋 신전 한복판에서 스스로를 드러냅니다.

원어
5

엎드러진 다곤

포로가 된 줄 알았던 하나님

5:2

다곤은 물고기 신이었을까

블레셋은 언약궤를 아스돗의 "다곤의 신당"에 가져다 다곤 곁에 두었습니다. 전쟁에서 빼앗은 상대 신의 상징을 자기 신 앞에 바치는 것은 고대의 흔한 승전 의식이었습니다.

다곤은 흔히 "물고기 신"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히브리어 "다그(물고기)"와 소리가 비슷해서 중세 유대 주석가들 사이에 퍼진 설명입니다. 그러나 고대 시리아와 메소포타미아 문헌에 나오는 신 "다간"은 곡식, 풍요와 관련된 신으로 보는 학자가 더 많습니다.

역사
5:3

하룻밤 만에 뒤바뀐 자리

"아스돗 사람들이 이튿날 일찍이 일어나 보니 다곤이 여호와의 궤 앞에서 엎드러져 그 얼굴이 땅에 닿았는지라". 승리한 신이 패배한 신 앞에 절을 하고 있었습니다. 😊

아스돗 사람들은 "다곤을 일으켜 다시 그 자리에 세웠더니". 자기 힘으로 일어서지 못하는 신을 사람이 일으켜 세우는 장면, 이것이 우상의 본모습입니다(사 46:7).

깊은 묵상
5:4–5

문지방을 밟지 않는 풍습

다음 날에는 다곤의 머리와 두 손목이 끊어져 문지방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래서 "다곤의 제사장들이나 다곤의 신전에 들어가는 자는 오늘까지 아스돗에 있는 다곤의 문지방을 밟지 아니하더라".

스바냐 1:9의 "문턱을 뛰어넘어서"라는 표현도 이런 블레셋식 풍습과 관련 있다고 보는 해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신이 부서진 자리를 거룩하다고 피해 다녔습니다. 하지만 그 문지방이 말해 주는 것은 다곤의 패배였습니다.

역사
5:6

독종과 쥐

"여호와의 손이 아스돗 사람에게 엄중히 더하사 독종의 재앙으로". 여기서도 "엄중히"는 כָּבֵד 카베드, "무겁게"입니다. 영광(카보드)을 가볍게 여기던 블레셋 위에 하나님의 손이 무겁게 임했습니다.

6장에서 "금 쥐"를 바치는 것을 보면, 이 재앙에는 쥐 떼가 함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쥐가 옮기는 페스트(흑사병)였을 것이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확실하지는 않습니다.

푸생의 아스돗의 역병
니콜라 푸생, 「아스돗의 역병」(1630–1631년, 루브르 박물관). 왼쪽 신전 안에 머리와 손이 부러져 쓰러진 다곤 상과 언약궤가 그려져 있고, 거리에는 쥐가 돌아다닙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5:8–10

뜨거운 감자가 된 언약궤

아스돗은 궤를 가드로 보내고, 가드는 다시 에그론으로 보냅니다. 에그론 사람들은 궤가 들어오자 비명을 지릅니다. "그들이 이스라엘 신의 궤를 우리에게로 가져다가 우리와 우리 백성을 죽이려 한다". 😊 전리품이 서로 떠넘기는 짐이 되었습니다.

문화
5:11

블레셋의 "방백들"

"블레셋 사람들의 모든 방백을 모으고". "방백"(סְרָנִים 세라님)은 블레셋의 다섯 도시 아스돗, 가사, 아스글론, 가드, 에그론을 다스리던 통치자들을 부르는 특별한 말입니다. 히브리어에서 블레셋 지도자에게만 쓰입니다.

이 말이 그리스어 "튀란노스(참주, 폭군)"와 같은 뿌리라고 보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에게해 쪽에서 건너온 "바다 민족"이라는 학설과 맞닿는 이야기입니다.

블레셋 채색 토기
주전 12–11세기 블레셋 채색 토기. 새 무늬와 기하학 무늬가 그리스 미케네 토기와 닮아, 블레셋 사람들이 에게해 쪽에서 왔다는 증거로 꼽힙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원어
6

스스로 돌아오신 궤

젖 나는 암소가 걸어간 길

6:2

제사장과 복술가에게 물은 블레셋

블레셋 사람들은 "제사장들과 복술자들"을 불러 궤를 어떻게 돌려보낼지 묻습니다. 다른 나라 신을 화나게 했을 때 예물을 바쳐 달래는 것은 고대 근동의 흔한 관습이었습니다.

문화
6:4–5

금으로 만든 독종과 쥐

"블레셋 사람의 방백의 수효대로 금 독종 다섯과 금 쥐 다섯 마리". 재앙의 모양을 본떠 금으로 만들어 바치는 것은, 재앙을 그 물건에 담아 떠나보낸다는 고대의 생각을 보여 줍니다.

6:18은 금 쥐의 수가 다섯 방백의 성읍뿐 아니라 "견고한 성읍에서부터 시골의 마을까지" 모든 블레셋 성읍의 수대로였다고 말합니다. 재앙이 그만큼 넓게 퍼졌던 것입니다.

문화
6:6

바로처럼 마음을 무겁게 하지 말라

"애굽인과 바로가 그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 것 같이 어찌하여 너희가 너희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겠느냐". 블레셋 제사장들이 출애굽을 교훈으로 삼습니다. 여기서 "완악하게 하다"도 כָּבֵד 카베드, "무겁게 하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무거운 줄 모르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4장부터 6장까지 "무게"라는 말이 계속 이어지며 이야기를 꿰고 있습니다.

원어
6:7

새 수레와 한 번도 멍에를 메지 않은 소

"새 수레를 하나 만들고 멍에를 메어 보지 아니한 젖 나는 소 두 마리를 끌어다가 소에 수레를 메우고 그 송아지들은 떼어 집으로 돌려보내고". 수레를 처음 끄는 소, 그것도 송아지를 집에 둔 어미 소라면 길도 모르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것이 뻔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일부러 가장 불가능한 조건을 걸었습니다. 그래도 소가 이스라엘 쪽으로 간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손이라는 것이지요.

문화
6:12

울면서도 곧장 간 길

"암소가 벧세메스 길로 바로 행하여 대로로 가며 갈 때에 울고 좌우로 치우치지 아니하였고". 어미 소들은 송아지를 부르며 울었습니다. 그러나 발걸음은 한 번도 집 쪽으로 틀지 않았습니다.

사람이 지키지 못한 궤를, 하나님은 말 못 하는 짐승들을 통해 스스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깊은 묵상
6:14

벧세메스, "태양의 집"

궤는 "벧세메스 사람 여호수아의 밭 큰 돌 있는 곳에" 멈췄습니다. 벧세메스는 "태양의 집"이라는 뜻으로, 옛날 태양신 숭배와 관련된 이름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이곳은 여호수아 21:16에 따르면 제사장들에게 준 레위인 성읍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궤를 제사장의 마을로 돌려보내셨습니다.

역사
6:19

칠십 명일까, 오만 칠십 명일까

벧세메스 사람들이 궤를 함부로 들여다보다가 죽임을 당합니다. 히브리어 본문에는 숫자가 "칠십 명, 오만 명"이라고 어색하게 이어져 있어서, 원래 "칠십 명"이었는데 필사 과정에서 숫자가 덧붙었다고 보는 학자가 많습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도 『유대 고대사』에서 칠십 명으로 기록합니다.

역사
6:20

누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서리요

"이 거룩하신 하나님 여호와 앞에 누가 능히 서리요". 블레셋은 궤를 떠넘겼고, 이스라엘도 궤를 두려워해 기럇여아림으로 보냅니다(6:21). 하나님의 거룩함 앞에 설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이 질문의 답은 훗날 우리를 대신해 하나님 앞에 서신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깊은 묵상
7

에벤에셀

물을 쏟은 회개, 우레로 응답하신 하나님

7:2

기럇여아림의 20년

"궤가 기럇여아림에 들어간 날부터 이십 년 동안 오래 있은지라". 궤는 아비나답의 집에 머물렀고, 성막이 있던 실로로는 다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다윗이 왕이 된 뒤에야 예루살렘으로 옮겨집니다(삼하 6장). 그사이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궤를 잊고 살았습니다.

역사
7:6

물을 길어 쏟은 회개

"미스바에 모여 물을 길어 여호와 앞에 붓고 그 날 종일 금식하고". 구약에서 이런 의식은 여기에만 나옵니다. 땅에 쏟은 물은 다시 담을 수 없습니다(삼하 14:14).

예레미야애가 2:19는 이렇게 노래합니다. "네 마음을 주의 얼굴 앞에 물 쏟듯 할지어다." 이스라엘은 마음을 남김없이 쏟아 내는 회개를 몸으로 표현했습니다.

문화
7:9

젖 먹는 어린 양 하나

블레셋이 쳐들어오자 사무엘은 "젖 먹는 어린 양 하나를 가져다가 온전한 번제를 여호와께 드리고". 4장에서는 언약궤를 들고 나가 싸웠지만, 이번에는 어린 양의 제사와 기도로 시작합니다. 승리의 길이 달라졌습니다.

깊은 묵상
7:10

한나의 노래가 이루어진 날

"그 날에 여호와께서 블레셋 사람에게 큰 우레를 발하여 그들을 어지럽게 하시니 그들이 이스라엘 앞에 패한지라". 한나는 노래했습니다.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2:10). 엄마가 부른 노래가 아들의 시대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깊은 묵상
7:12

"여기까지 도우셨다"

"사무엘이 돌을 취하여 미스바와 센 사이에 세워 이르되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 하고 그 이름을 에벤에셀이라 하니라". 에벤(אֶבֶן)은 "돌", 에셀(עֵזֶר)은 "도움"입니다.

4:1에서 이스라엘이 패배했던 곳도 "에벤에셀"이었습니다. 장소는 다르지만 같은 이름이 패배의 기억에서 승리의 고백으로 바뀌었습니다. 이 돌에는 사무엘의 이름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 새겨져 있습니다.

원어
7:15–17

해마다 도는 순회 사사

"사무엘이 해마다 벧엘과 길갈과 미스바로 순회하여 그 모든 곳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렸고 라마로 돌아왔으니". 사무엘은 왕궁에 앉은 통치자가 아니라 해마다 길을 걸어 백성을 찾아간 지도자였습니다.

미스바는 오늘날 예루살렘 북쪽의 텔 엔-나스베 유적으로 보는 견해가 많지만, 다른 후보지도 있습니다.

텔 엔-나스베 유적
텔 엔-나스베 유적. 사무엘이 백성을 모아 물을 쏟으며 회개하게 했던 미스바로 많은 학자들이 지목하는 곳입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8

왕을 구하다

모든 나라와 같이 되고 싶었던 백성

8:1–3

이름은 좋았던 두 아들

사무엘의 아들들 이름은 요엘("여호와는 하나님이시다")과 아비야("나의 아버지는 여호와시다")였습니다. 이름만 들으면 신앙의 고백 그 자체입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들이 아버지의 길로 행하지 아니하고 이익을 따라 뇌물을 받고 판결을 굽게 하니라". 엘리의 아들들 문제가 사무엘의 집에서 되풀이되었습니다. 좋은 이름이 좋은 삶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원어
8:5

"모든 나라와 같이"

"이제 모든 나라와 같이 우리에게 왕을 세워 우리를 다스리게 하소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모든 나라와 다르게" 부르셨습니다(출 19:5–6). 그런데 백성은 다른 나라들처럼 되기를 원했습니다. 거룩함의 반대는 때로 악함이 아니라 "남들처럼"입니다.

깊은 묵상
8:7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림이니라"

사무엘은 서운했지만 하나님은 그를 위로하십니다. "그들이 너를 버림이 아니요 나를 버려 자기들의 왕이 되지 못하게 함이니라". 이스라엘의 진짜 왕은 처음부터 하나님이셨습니다(삿 8:23).

깊은 묵상
8:11–17

"가져가리라"를 되풀이한 경고

사무엘은 왕이 할 일을 하나하나 말해 줍니다. 아들들을 데려다가, 딸들을 데려다가, 밭과 포도원을 가져다가, 종들과 나귀들을 끌어다가. "가져가다"(לָקַח 라카흐)라는 동사가 이 단락에 거듭 나옵니다.

그리고 "너희의 곡식과 포도원 소산의 십일조를 거두어". 원래 하나님께 드리던 십분의 일을 이제 왕이 가져갑니다. 결론은 "너희가 그의 종이 될 것이라"입니다. 출애굽으로 벗어난 종살이로 스스로 걸어 들어가는 셈입니다.

원어
8:18

그날에 부르짖어도

"그 날에 너희는 너희가 택한 왕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되 그 날에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응답하지 아니하시리라". 사사 시대에는 부르짖으면 하나님이 구원자를 보내 주셨습니다. 그러나 스스로 택한 길의 열매는 스스로 거두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깊은 묵상
8:20

"우리 앞에 나가서 싸울 왕"

"우리의 왕이 우리를 다스리며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울 것이니이다". 백성이 원한 왕은 앞장서서 싸워 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17장에서 골리앗이 사십 일 동안 소리칠 때, 이스라엘에서 가장 키 큰 사람 사울은 앞에 나가지 않았습니다. 앞에 나가 싸운 사람은 기름 부음 받은 목동 다윗이었습니다. 진짜 왕은 백성의 싸움을 대신 싸우는 사람입니다.

깊은 묵상
9

나귀를 찾다가

사흘의 헤맴 끝에 만난 선견자

9:1–2

베냐민의 준수한 청년

"기스라 이름하는 유력한 사람이 있으니… 그에게 아들이 있으니 그의 이름은 사울이요 준수한 소년이라 이스라엘 자손 중에 그보다 더 준수한 자가 없고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더라". 첫 왕은 겉으로 보기에 흠잡을 데가 없었습니다.

"어깨 위만큼"은 다른 사람의 머리가 사울의 어깨에 닿을 정도라는 뜻입니다. 사무엘상은 이 "키" 이야기를 16:7에서 뒤집습니다.

역사
9:3

잃어버린 암나귀들

"사울의 아버지 기스가 암나귀들을 잃고 그의 아들 사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한 사환을 데리고 가서 암나귀들을 찾으라". 왕의 이야기가 이렇게 평범하게 시작합니다. 나귀를 찾으러 나간 길이 왕관으로 가는 길이 될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깊은 묵상
9:7–8

선견자에게 드릴 사례비

선견자를 만나러 가려니 "우리가 그 사람에게 무엇을 드리겠느냐 우리 주머니에 먹을 것이 다하였으니". 그때 사환이 말합니다. "내 손에 은 한 세겔의 사분의 일이 있으니".

한 세겔은 약 11.4g이니, 그 4분의 1은 은 약 2.85g입니다. 오늘 은 시세(2026년 10월 초, 1g에 약 2,700원)로 따지면 7,700원쯤입니다. 하지만 그 시절 은은 지금보다 훨씬 귀했으니, 젊은이가 비상금으로 챙겨 다니던 꽤 쓸 만한 돈이었습니다. 왕이 될 사람이 주인이 아니라 종의 주머니 덕분에 선지자를 만난 셈입니다. 😊

문화
9:9

"선견자"와 "선지자"

"옛적 이스라엘에 사람이 하나님께 가서 물으려 하면 말하기를 선견자에게로 가자 하였으니 지금 선지자라 하는 자를 옛적에는 선견자라 일컬었더라". 이 구절은 이야기 중간에 끼어든 설명입니다.

이 책이 사건 당시가 아니라 한참 뒤에, "선견자"라는 말이 이미 낡은 말이 된 때에 정리되었다는 것을 보여 주는 흔적입니다.

역사
9:11

우물가에서 만난 소녀들

"성읍으로 가는 비탈길로 올라가다가 물 길으러 나오는 소녀들을 만나". 성경에서 우물가는 만남의 자리입니다. 아브라함의 종은 우물가에서 리브가를, 야곱은 라헬을, 모세는 십보라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우물가에서 아내를 만나지 않고 길만 묻고 지나갑니다. 성경의 익숙한 장면 틀을 일부러 비튼 것이라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사울의 이야기는 처음부터 어딘가 어긋나 있습니다.

문화
9:16

"그들의 부르짖음이 내게 상달되었으므로"

하나님은 사무엘에게 미리 말씀하십니다. "내 백성이 부르짖으므로 내가 그들을 돌보았노라". 출애굽기 3:7–9를 떠올리게 하는 말씀입니다. 백성이 잘못된 동기로 왕을 구했어도, 하나님은 블레셋에게 시달리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깊은 묵상
9:20

"나귀는 이미 찾았느니라"

"사흘 전에 잃은 암나귀들을 염려하지 말라 이미 찾았느니라 온 이스라엘이 사모하는 자가 누구냐". 😊 사울이 사흘 동안 헤맨 문제를 하나님은 이미 해결해 두셨습니다. 그리고 그보다 훨씬 큰 일을 준비해 두셨습니다.

깊은 묵상
9:21

가장 작은 지파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 가장 작은 지파 베냐민 사람이 아니니이까". 베냐민은 사사기 마지막 장면에서 내전으로 거의 멸망할 뻔한 지파였습니다(삿 20–21장). 남자 600명만 겨우 살아남았지요. 그 지파에서 첫 왕이 나왔습니다.

역사
9:24

남겨 둔 넓적다리

"요리인이 넓적다리와 그것에 붙은 것을 가져다가 사울 앞에 놓는지라". 넓적다리는 제사 고기 가운데 제사장에게 돌아가는 귀한 부분이었습니다(레 7:32). 사무엘은 처음 보는 청년을 위해 그 몫을 미리 따로 떼어 두었습니다. 서른 명쯤 되는 손님들 앞에서 사울은 상석에 앉았습니다(9:22).

문화
10

기름병과 짐 더미

왕으로 세워진 날 숨은 사람

10:1

기름병과 기름 뿔

"사무엘이 기름병을 가져다가 사울의 머리에 붓고". 여기 "기름병"(פַּךְ 파크)은 작은 질그릇 병입니다. 그런데 다윗에게 기름을 부을 때는 "기름 뿔"(קֶרֶן 케렌)을 씁니다(16:1, 13).

"뿔"은 한나의 노래 마지막 줄,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2:10)에 나온 바로 그 말입니다. 깨지기 쉬운 질그릇 병과 짐승의 단단한 뿔. 두 왕의 앞날을 기름 그릇이 미리 보여 준다고 읽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원어
10:2–7

확인시켜 주신 세 가지 표징

사무엘은 사울에게 돌아가는 길에 일어날 세 가지 표징을 말해 줍니다. 라헬의 묘 곁에서 나귀 소식을 들을 것, 다볼 상수리나무에서 떡 두 덩이를 받을 것, 하나님의 산에서 선지자 무리를 만날 것.

모두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10:9). 하나님은 머뭇거리는 사람에게 작은 표징들을 차근차근 보여 주시며 부르심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깊은 묵상
10:11–12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사울이 선지자 무리와 함께 예언하자 사람들이 놀라 말합니다. "기스의 아들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느냐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 이 말은 속담이 되었습니다.

재미있게도 이 속담은 19:24에서 한 번 더 나옵니다. 처음에는 놀라운 변화를 가리켰지만, 두 번째는 다윗을 잡으러 갔다가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옷을 벗고 쓰러진 부끄러운 장면을 가리킵니다.

역사
10:22

짐보따리 사이에 숨은 왕

미스바에서 제비뽑기로 사울이 뽑혔는데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께 여쭈니 대답이 나옵니다. "그가 짐보따리 사이에 숨었느니라". 😊

겸손이었을까요, 두려움이었을까요? 백성이 그를 데려오니 역시 "어깨 위만큼 컸더라"(10:23). 아무리 숨어도 키는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마음은 아직 하나님을 의지하는 데까지 자라지 못했습니다.

깊은 묵상
10:25

책에 기록한 나라의 제도

"사무엘이 나라의 제도를 백성에게 말하고 책에 기록하여 여호와 앞에 두고". 신명기 17:14–20은 왕이 율법책을 곁에 두고 평생 읽으며 마음을 높이지 말라고 명령합니다.

이스라엘의 왕은 법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기록된 법 아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고대 근동에서 매우 독특한 생각이었습니다.

역사
10:27

사해 사본에서 나온 한 단락

"어떤 불량배는 이르되 이 사람이 어떻게 우리를 구원하겠느냐 하고 멸시하며 예물을 바치지 아니하였으나 그는 잠잠하였더라". 그리고 11장이 갑자기 암몬 왕 나하스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사해 사본 4QSama에는 이 사이에 한 단락이 더 있습니다. 나하스가 갓과 르우벤 사람들을 괴롭히며 오른 눈을 빼고 있었고, 도망친 7천 명이 야베스 길르앗으로 피했다는 내용입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그래서 일부 영어 성경(NRSV 등)은 이 단락을 본문에 넣었습니다.

역사
11

야베스 길르앗을 구하다

사울의 가장 빛나던 날

11:2

왜 하필 오른 눈일까

암몬 왕 나하스는 항복 조건으로 "너희 오른 눈을 다 빼야"라고 요구합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는 그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싸울 때 왼쪽 눈은 방패에 가려지니, 오른쪽 눈까지 잃으면 더 이상 군인 노릇을 할 수 없다고요.

목숨은 살려 주되 다시는 싸우지 못하는 수치스러운 백성으로 만들려는 계산이었습니다.

문화
11:6

하나님의 영과 사울의 분노

"사울이 이 말을 들을 때에 하나님의 영에 크게 감동되매 그의 노가 크게 일어나". 사울은 그때 밭에서 소를 몰고 돌아오는 중이었습니다(11:5). 왕으로 뽑혔지만 아직 궁궐도 없이 농사를 짓던 왕. 하나님의 영이 그를 사사들처럼 일으키셨습니다.

깊은 묵상
11:7

토막 낸 소와 기브아의 기억

사울은 소 한 겨리를 잡아 토막 내어 이스라엘 전역에 보내며 외칩니다. "누구든지 나와서 사울과 사무엘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의 소들도 이와 같이 하리라".

사사기 19장에서도 기브아 사건 때 한 레위인이 첩의 시신을 토막 내어 열두 지파에 보낸 일이 있었습니다. 사울의 고향도 바로 기브아였습니다(10:26). 그리고 그 사건 끝에 베냐민 지파가 거의 멸망했을 때, 남은 베냐민 남자들에게 아내를 준 성읍이 바로 야베스 길르앗이었습니다(삿 21:12–14). 사울은 조상의 은혜를 갚으러 달려간 셈입니다.

역사
11:11

새벽 세 부대

"이튿날 사울이 백성을 삼 대로 나누고 새벽에 적진 한가운데로 들어가서". 기드온도 군대를 세 부대로 나누어 밤에 미디안을 쳤습니다(삿 7:16). 사울의 첫 승리는 사사들의 승리를 꼭 닮았습니다.

역사
11:13

"오늘은 사람을 죽이지 못할지니"

백성이 "사울이 어찌 우리를 다스리겠느냐" 하던 자들을 죽이자고 하자, 사울이 말합니다. "이 날에는 사람을 죽이지 못할지니 오늘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중에 구원을 베푸셨음이니라". 승리를 하나님께 돌리고 반대자를 용서한 이 날, 사울은 가장 왕다웠습니다.

깊은 묵상
11:15

길갈에서 다시 세운 나라

"모든 백성이 길갈로 가서 거기서 여호와 앞에서 사울을 왕으로 삼고". 길갈은 여호수아 때 요단 강을 건너 처음 진을 치고 할례를 행한 곳입니다(수 4–5장). 새 출발의 자리에서 이스라엘은 새 시대를 시작했습니다.

역사
12

사무엘의 고별 설교

기도를 쉬지 않겠다는 약속

12:3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내가 누구의 소를 빼앗았느냐 누구의 나귀를 빼앗았느냐 누구를 속였느냐 누구를 압제하였느냐". 8장에서 사무엘은 왕이 "너희의 나귀들을 끌어다가" 쓸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8:16).

사무엘은 평생 아무것도 "가져가지" 않은 지도자였습니다. 백성은 대답합니다. "당신이 우리를 속이지 아니하였고 압제하지 아니하였고 누구의 손에서든지 아무것도 빼앗은 것이 없나이다"(12:4).

깊은 묵상
12:11

수수께끼의 사사 "베단"

"여호와께서 여룹바알과 베단과 입다와 사무엘을 보내사". 여룹바알은 기드온, 입다와 사무엘은 잘 알려진 사사입니다. 그런데 "베단"이라는 사사는 사사기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헬라어 칠십인역과 시리아어 번역은 이 자리를 "바락"으로 읽습니다. 히브리어 글자가 비슷해서 필사 과정에서 바뀌었다는 견해가 많습니다.

역사
12:17–18

밀 거두는 때의 우레

"오늘은 밀 베는 때가 아니냐 내가 여호와께 아뢰리니 여호와께서 우레와 비를 보내사". 이스라엘에서 밀 추수는 5–6월, 비가 거의 오지 않는 건기입니다. 이때 내리는 비는 기적이면서 동시에 추수를 망칠 수 있는 재앙이기도 했습니다.

백성은 크게 두려워하며 자기들의 죄를 깨닫습니다(12:19).

문화
12:22

"자기 이름을 위해서라도"

"여호와께서는 너희를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 것을 기뻐하셨으므로 여호와께서는 그의 크신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아니하실 것이요". 이스라엘이 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 구원의 가장 단단한 기초도 거기에 있습니다.

깊은 묵상
12:23

기도를 쉬는 죄

"나는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쉬는 죄를 여호와 앞에 결단코 범하지 아니하고". 사무엘은 은퇴하면서 오히려 기도의 자리로 들어갑니다. 그는 기도하지 않는 것을 "죄"라고 불렀습니다.

예레미야 15:1에서 하나님은 "모세와 사무엘이 내 앞에 섰다 할지라도"라고 하십니다. 사무엘은 모세와 나란히 기억되는, 백성을 위한 중보 기도자였습니다.

깊은 묵상
13

기다리지 못한 왕

칼 두 자루뿐인 나라

13:1

숫자가 사라진 구절

13:1은 히브리어 원문을 글자 그대로 옮기면 "사울은 한 살에 왕이 되었고, 이스라엘을 이 년 동안 다스렸다"가 됩니다. 숫자 일부가 필사 과정에서 사라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번역 성경마다 이 구절을 다르게 채웁니다. 사도행전 13:21은 사울의 통치를 "사십 년"이라고 말합니다.

역사
13:5

병거 삼만 대?

블레셋이 "병거가 삼만이요 마병이 육천 명이요 백성은 해변의 모래 같이 많더라". 병거가 기병보다 다섯 배나 많은 것은 부자연스럽습니다. 칠십인역 일부 사본과 시리아어 번역은 "삼천"으로 읽습니다. 숫자는 필사 과정에서 가장 쉽게 바뀌는 부분이었습니다.

역사
13:8–9

칠 일째의 조급함

사무엘은 길갈에서 칠 일을 기다리라고 했습니다(10:8). 사울은 칠 일을 기다렸지만, 사무엘이 오지 않고 백성이 흩어지자 직접 번제를 드립니다. "번제 드리기를 마치자 사무엘이 온지라"(13:10).

조금만 더 기다렸으면 되었습니다. 사울의 문제는 제사 그 자체보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흩어지는 백성을 더 두려워한 마음이었습니다(13:11).

깊은 묵상
13:14

"마음에 맞는 사람"

"여호와께서 그의 마음에 맞는 사람을 구하여 여호와께서 그를 그의 백성의 지도자로 삼으셨느니라". 바울은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 설교에서 이 구절을 인용합니다.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맞는 사람이라"(행 13:22). 그리고 곧바로 그 다윗의 씨에서 나신 구주 예수를 전합니다.

역사
13:19–21

고고학이 풀어 준 단어 "핌"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블레셋은 철 다루는 기술을 독점했고, 이스라엘 농부들은 농기구 날이 무뎌지면 블레셋 대장간까지 가서 돈을 내고 갈아야 했습니다. 그 값을 말하는 13:21에 구약에서 단 한 번 나오는 단어 "핌"이 있습니다.

옛 번역들은 이 말을 "줄(연장)" 같은 것으로 추측했습니다. 그런데 20세기 초 이스라엘 땅 여러 곳에서 "핌"이라고 새겨진 작은 돌 저울추들이 나왔습니다. 무게는 7.2–7.8g쯤, 한 세겔의 약 3분의 2였습니다. 은 7.6g은 오늘 은 시세로 2만 원 남짓이지만, 당시 농가에는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습니다.

원어
13:22

칼 두 자루의 군대

"싸우는 날에 사울과 요나단과 함께 한 백성의 손에는 칼이나 창이 없고 오직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에게만 있었더라". 이스라엘 군대 전체에 칼이 단 두 자루였습니다. 이것이 다음 장 요나단의 믿음이 더 빛나는 배경입니다.

깊은 묵상
14

요나단의 믿음, 사울의 맹세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않은 구원

14:4

"번쩍이"와 "가시덤불"

요나단이 건너가려던 길 양쪽에는 날카로운 바위가 있었는데, 이름이 "보세스"와 "세네"였습니다. 보세스는 "미끄러운, 번쩍이는", 세네는 "가시 돋친"이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이름만 들어도 올라가기 싫은 바위들이었습니다.

원어
14:6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가 이 할례 받지 않은 자들에게로 건너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일하실까 하노라 여호와의 구원은 사람이 많고 적음에 달리지 아니하였느니라". 칼 두 자루뿐인 군대의 왕자는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을 계산에 넣었습니다.

"일하실까 하노라"라는 겸손한 말도 아름답습니다. 하나님을 마음대로 움직이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맡기고 나아가는 믿음입니다.

깊은 묵상
14:15

하나님의 떨림

"들에 있는 진영과 모든 백성들이 떨었고… 땅도 진동하였으니 이는 큰 떨림이었더라". "큰 떨림"을 직역하면 "하나님의 떨림"입니다. 두 사람이 시작한 싸움을 하나님이 지진과 공포로 이어받으셨습니다.

원어
14:24

굶주린 군대와 왕의 맹세

"저녁 곧 내가 내 원수에게 보복하는 때까지 아무 음식물이든지 먹는 자는 저주를 받을지어다". 사울의 맹세에는 "내가", "내 원수"만 있고 하나님이 없습니다. 승리의 날에 사울은 백성을 굶겨 지치게 만들었습니다.

깊은 묵상
14:27

꿀을 맛보고 밝아진 눈

맹세를 듣지 못한 요나단은 지팡이 끝으로 꿀을 찍어 먹습니다. "그의 눈이 밝아졌더라". 하나님이 숲에 꿀을 흐르게 하셨는데, 왕의 맹세가 그것을 막고 있었습니다.

깊은 묵상
14:29

"괴롭게 한 자"라는 말

요나단이 말합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 땅을 곤란하게 하셨도다". "곤란하게 하다"(עָכַר 아카르)는 여리고 전리품을 훔친 아간에게 여호수아가 한 말과 같은 단어입니다. "네가 어찌하여 우리를 괴롭게 하였느냐"(수 7:25). 아간의 이름에도, 그가 묻힌 "아골 골짜기"에도 이 말이 들어 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왕을 아간과 같은 말로 부른 것입니다.

원어
14:35

사울이 처음 쌓은 제단

"사울이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을 쌓았으니 이는 그가 여호와를 위하여 처음 쌓은 제단이었더라". 왕이 된 지 꽤 지난 뒤였습니다. 성경은 이 짧은 메모로 사울의 신앙이 얼마나 늦게, 얼마나 얕게 시작되었는지 보여 줍니다.

역사
14:45

백성이 구한 왕자

사울은 맹세 때문에 요나단을 죽이려 합니다. 그때 백성이 막아섭니다. "이스라엘에 이 큰 구원을 이룬 요나단이 죽겠나이까… 그가 오늘 하나님과 동역하였음이니이다". 하나님과 "동역한" 사람을 왕의 맹세가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깊은 묵상
14:52

사무엘의 경고가 이루어지다

"사울이 힘 센 사람이나 용감한 사람을 보면 그들을 불러 모았더라". 8:11에서 사무엘은 왕이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자기 병거와 말을 다루게 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 장 끝의 짧은 문장이 그 경고가 시작되었음을 알려 줍니다.

깊은 묵상
15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찢어진 겉옷, 떠나간 나라

15:2–3

아말렉, 오래된 원수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 아말렉은 출애굽 직후 지친 이스라엘의 뒤쪽 약한 사람들을 쳤습니다(신 25:17–18). 하나님은 그때 이 일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라"고 하셨습니다(출 17:14).

역사
15:6

친절을 잊지 않으신 하나님

사울은 공격 전에 겐 사람들에게 떠나라고 알립니다.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 애굽에서 올라올 때에 너희가 그들을 선대하였느니라". 겐 사람은 모세의 장인 이드로 집안과 관련된 사람들입니다(삿 1:16). 수백 년 전의 작은 친절을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역사
15:11

후회하시는 하나님, 후회하지 않으시는 하나님

"내가 사울을 왕으로 세운 것을 후회하노니". 그런데 같은 장 15:29는 이렇게 말합니다. "이스라엘의 지존자는 거짓이나 변개함이 없으시니 그는 사람이 아니시므로 결코 후회하지 않으심이니라". 두 구절 모두 같은 동사(נָחַם 나함)를 씁니다.

모순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은 사람의 죄 앞에 깊이 슬퍼하시면서도 그분의 뜻과 약속은 결코 흔들리지 않으신다는 두 가지 진리를 한 장에 함께 담고 있습니다.

원어
15:12

"자기를 위하여" 세운 기념비

"사울이 갈멜에 이르러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우고". "기념비"는 히브리어로 "손"(יָד 야드)입니다. 훗날 압살롬도 자기 이름을 남기려고 같은 이름의 비석을 세웠습니다(삼하 18:18).

사무엘은 승리 뒤에 "여호와께서 여기까지 우리를 도우셨다"는 돌을 세웠습니다(7:12). 사울은 "자기를 위하여" 돌을 세웠습니다. 두 개의 돌이 두 지도자의 마음을 보여 줍니다.

원어
15:14

"양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사울은 사무엘을 맞으며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행하였나이다"라고 큰소리칩니다. 사무엘이 대답합니다. "그러면 내 귀에 들려오는 이 양의 소리와 내게 들리는 소의 소리는 어찜이니이까". 😊

진멸하라고 하신 짐승들이 뒤에서 매애 음매 울고 있었습니다. 순종했다는 말보다 양의 울음소리가 더 정직했습니다.

깊은 묵상
15:22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

"여호와께서 번제와 다른 제사를 그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것을 좋아하심 같이 좋아하시겠나이까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나으니". 사울은 "좋은 것은 하나님께 제사드리려고 남겼다"고 둘러댔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신 것은 비싼 제물이 아니라 말씀을 듣는 귀였습니다. 호세아(6:6), 미가(6:6–8), 그리고 예수님(마 9:13)까지 같은 진리를 반복하십니다.

깊은 묵상
15:23

점치는 죄와 같은 거역

"이는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 완고한 것은 사신 우상에게 절하는 죄와 같음이라". 이 말을 들은 사울은 훗날 정말로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 점을 칩니다(28장). 거역의 끝이 점치는 자리였습니다.

깊은 묵상
15:27–28

찢어진 겉옷자락

"사무엘이 가려고 돌이킬 때에 사울이 그의 겉옷자락을 붙잡으매 찢어진지라 사무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오늘 이스라엘 나라를 왕에게서 떼어 왕보다 나은 왕의 이웃에게 주셨나이다". "겉옷"(מְעִיל 메일)은 한나가 해마다 지어 주던 바로 그 옷입니다(2:19).

찢어진 옷자락이 찢어지는 나라를 보여 주었습니다. 이 "겉옷자락"은 24장 엔게디 동굴에서 다시 등장합니다.

원어
15:32–33

아각, 그리고 하만

사울이 살려 둔 아말렉 왕 아각은 결국 사무엘의 손에 죽습니다. 그런데 수백 년 뒤 에스더서에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이 등장합니다(에 3:1). 유대인을 모두 죽이려 한 그 하만입니다.

하만에 맞선 모르드개는 "베냐민 자손… 기스의 증손"이었습니다(에 2:5). 기스의 아들 사울이 끝내지 못한 싸움을, 기스 집안의 후손 모르드개가 페르시아 왕궁에서 마무리한 셈입니다. 유대 전통은 오래전부터 이 연결에 주목해 왔습니다.

역사
15:35

다시 보지 않았으나 슬퍼한 사람

"사무엘이 죽는 날까지 사울을 다시 가서 보지 아니하였으나 사무엘이 사울을 위하여 슬퍼하였고". 사무엘은 사울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결정 앞에서 울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다음 장에서 하나님은 물으십니다. "네가 사울을 위하여 언제까지 슬퍼하겠느냐"(16:1).

깊은 묵상
16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

양을 지키던 막내

16:1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너는 뿔에 기름을 채워 가지고 가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새에게로 보내리니". 사울에게는 기름병(10:1)이었지만, 다윗에게는 기름 뿔입니다. 한나가 노래한 "기름 부음 받은 자의 뿔"(2:10)이 이제 베들레헴으로 향합니다.

깊은 묵상
16:4

떨며 맞은 장로들

"베들레헴에 이르매 성읍 장로들이 떨며 그를 영접하여 이르되 평강을 위하여 오시나이까". 사무엘이 사울과 갈라선 뒤였습니다. 작은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선지자가 사울 왕의 눈 밖에 날 일을 가져온 것은 아닐까 두려웠던 것입니다.

역사
16:6–7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사무엘조차 큰아들 엘리압을 보고 "여호와의 기름 부으실 자가 과연 주님 앞에 있도다"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

사울도 키가 컸고, 엘리압도 키가 컸고, 곧 등장할 골리앗은 더 컸습니다. 사무엘상은 키를 재는 사람들 사이에서 마음을 보시는 하나님을 보여 줍니다.

깊은 묵상
16:11

"작은 자"가 남았습니다

일곱 아들을 다 보고도 하나님의 선택이 없자 사무엘이 묻습니다. "네 아들들이 다 여기 있느냐". 이새가 대답합니다. "아직 막내가 남았는데 그는 양을 지키나이다". "막내"(הַקָּטָן 학카탄)를 직역하면 "작은 자"입니다.

잔치 자리에 부르지도 않은 아이, 들판에서 양을 치던 "작은 자"를 하나님은 고르셨습니다. 훗날 그 다윗의 자손 예수님은 이 작은 마을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십니다(미 5:2).

원어
16:12

붉은 빛이 도는 소년

"그의 빛이 붉고 눈이 빼어나고 얼굴이 아름답더라". "붉다"(אַדְמוֹנִי 아드모니)는 성경에서 에서를 묘사할 때 한 번 더 나오는 드문 말입니다(창 25:25). 혈색 좋은 피부나 붉은 머리를 가리켰을 것으로 봅니다.

방금 하나님이 외모를 보지 말라고 하셨는데, 성경은 다윗의 외모를 칭찬합니다. 하나님은 외모를 기준으로 삼지 않으셨을 뿐, 그분이 고르신 사람을 아름답게 보셨습니다.

원어
16:13–14

임한 영과 떠난 영

"사무엘이 기름 뿔을 가져다가 그의 형제 중에서 그에게 부었더니 이 날 이후로 다윗이 여호와의 영에게 크게 감동되니라". 그리고 바로 다음 절. "여호와의 영이 사울에게서 떠나고". 두 절이 나란히 놓여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이 한 사람에게서 다른 사람에게로 옮겨 갔습니다.

깊은 묵상
16:16–23

음악으로 위로한 소년

신하들은 번뇌하는 사울을 위해 "수금을 잘 타는 자"를 찾자고 합니다. "수금"(כִּנּוֹר 킨노르)은 손에 들고 뜯는 작은 현악기 리라입니다. 고대 세계에서도 음악으로 마음의 병을 다스린다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다윗이 수금을 들고 와서 손으로 탄즉 사울이 상쾌하여 낫고 악령이 그에게서 떠나더라"(16:23). 시편의 많은 노래가 이 소년의 손끝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문화
16:18

목동의 이력서

한 소년이 다윗을 소개합니다. "수금을 탈 줄 알고 용기와 무용과 구변이 있는 준수한 자라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라". 음악, 용기, 전투력, 말솜씨, 외모. 화려한 이력서의 마지막 줄이 핵심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계시더라."

깊은 묵상
17

다윗과 골리앗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

17:1–3

엘라 골짜기

"블레셋 사람들이 그들의 군대를 모으고 싸우고자 하여 유다에 속한 소고에 모여 소고와 아세가 사이의 에베스담밈에 진 치매". 엘라 골짜기는 블레셋 해안 평야에서 유다 산지로 올라오는 중요한 길목입니다. 오늘날에도 그 골짜기와 소고, 아세가 언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언덕의 키르벳 케이야파 유적에서는 2008년 주전 10세기 무렵의 요새와 함께, 초기 알파벳 글자가 적힌 토기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다윗 시대 유다의 성읍으로 보는 학자들이 있지만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아세가 언덕에서 본 엘라 골짜기
아세가 언덕에서 내려다본 엘라 골짜기. 양쪽 산에 진을 친 두 군대 사이 이 골짜기에서 다윗과 골리앗이 맞섰습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17:4

골리앗의 키는 몇 미터였을까

"그의 키는 여섯 규빗 한 뼘이요". 한 규빗을 약 45cm, 한 뼘을 약 22cm로 잡으면 2m 90cm쯤 됩니다. 그런데 헬라어 칠십인역과 사해 사본 4QSama에는 "네 규빗 한 뼘", 곧 2m 남짓으로 적혀 있습니다. 1세기 역사가 요세푸스는 "네 규빗 한 뼘"으로 기록합니다.

어느 쪽이든 그 시대 사람들 평균 키를 훨씬 넘는 거인이었습니다. 사울보다도 훨씬 컸습니다.

역사
17:5–7

쌀 세 포대를 입은 장수

"놋 투구를 썼고 비늘 갑옷을 입었으니 그 갑옷의 무게가 놋 오천 세겔이며". 한 세겔을 약 11.4g으로 잡으면 약 57kg입니다. 쌀 20kg 포대 세 개 가까이를 입고 다닌 셈입니다. 창날만 "철 육백 세겔", 약 7kg이었습니다.

"그 창 자루는 베틀 채 같고". 베틀 채에는 실을 끼우는 고리가 달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던질 때 회전을 주는 끈 고리가 달린 창을 묘사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블레셋은 철로 무장했고, 이스라엘에는 칼이 두 자루뿐이었습니다(13:22).

문화
17:8–10

한 사람이 나와 싸우자

"너희는 한 사람을 택하여 내게로 내려보내라". 양쪽 군대의 대표 한 명씩 나와 싸워 전쟁의 승패를 정하는 방식은,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에 나오는 그리스 영웅들의 결투를 떠올리게 합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에게해 쪽에서 왔다는 학설과 함께 주목받는 장면입니다.

문화
17:11

가장 키 큰 왕의 두려움

"사울과 온 이스라엘이 블레셋 사람의 이 말을 듣고 놀라 크게 두려워하니라". 백성이 왕을 구한 이유는 "우리 앞에 나가서 우리의 싸움을 싸울" 사람이었습니다(8:20). 그리고 이스라엘에서 골리앗과 키를 겨룰 만한 사람은 "어깨 위만큼 더 큰" 사울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나가지 않았습니다.

깊은 묵상
17:16

사십 일

"그 블레셋 사람이 사십 일을 조석으로 나와서 몸을 나타내었더라". 성경에서 사십은 시험과 기다림의 숫자입니다. 홍수의 사십 일, 모세의 사십 일, 광야의 사십 년, 예수님의 광야 사십 일. 이스라엘은 사십 일 동안 아침저녁으로 거인의 조롱을 들으며 아무것도 하지 못했습니다.

깊은 묵상
17:17–18

도시락 심부름 온 막내

이새는 다윗에게 "볶은 곡식 한 에바와 이 떡 열 덩이"를 형들에게, "이 치즈 열 덩이"를 천부장에게 갖다주라고 합니다. 한 에바는 약 22리터로 봅니다. 당시 군인들은 집에서 먹을 것을 받아 버텼습니다.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꾼 싸움은 도시락 심부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문화
17:25–26

세금 면제라는 상

골리앗을 죽이는 사람에게는 "왕이 많은 재물로 부하게 하고 그의 딸을 그에게 주고 그 아버지의 집을 이스라엘 중에서 자유롭게 하시리라". "자유롭게"는 세금과 부역을 면제해 준다는 뜻으로 봅니다.

그런데 다윗이 물은 것은 상이 아니라 이것이었습니다. "이 할례 받지 않은 블레셋 사람이 누구이기에 살아 계시는 하나님의 군대를 모욕하겠느냐".

문화
17:28

큰형의 핀잔

엘리압은 다윗에게 화를 냅니다. "네가 어찌하여 이리로 내려왔느냐 들에 있는 양들을 누구에게 맡겼느냐 나는 너의 교만과 네 마음의 완악함을 아노니". 하나님이 "버렸노라"고 하신 키 큰 형(16:7)이 막내의 마음을 판단합니다. 사람은 여전히 겉을 보고 있었습니다.

깊은 묵상
17:34–37

들판에서 배운 믿음

"주의 종이 아버지의 양을 지킬 때에 사자나 곰이 와서 양 떼에서 새끼를 물어 가면 내가 따라가서 그것을 치고". 다윗의 자신감은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들판에서 하나님과 함께 싸운 경험이 쌓여 있었습니다.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내신 여호와께서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이다."

깊은 묵상
17:39

맞지 않는 갑옷

사울은 다윗에게 자기 군복과 놋 투구와 갑옷을 입힙니다. 그러나 다윗은 "익숙하지 못하므로" 벗어 버립니다. 이스라엘에서 가장 키 큰 사람의 갑옷이 소년에게 맞을 리 없었습니다. 😊 하나님은 다윗을 사울처럼 만들어 쓰지 않으셨습니다.

깊은 묵상
17:40

매끄러운 돌 다섯

"손에 막대기를 가지고 시내에서 매끄러운 돌 다섯을 골라서 자기 목자의 제구 곧 주머니에 넣고 손에 물매를 가지고". 물매는 장난감이 아니라 고대 전쟁의 정식 무기였습니다. 사사기 20:16은 베냐민의 물매꾼 700명이 "물매로 돌을 던지면 조금도 틀림이 없는 자들"이었다고 말합니다.

고대 유적지에서는 주먹만 한 물맷돌이 무더기로 발굴됩니다. 잘 훈련된 물매꾼이 던진 돌은 매우 빠른 속도로 날아갔습니다.

라기스에서 발굴된 물맷돌
라기스 유적에서 발굴된 물맷돌. 다윗이 시냇가에서 골랐을 돌도 이만한 크기였을 것입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17:45–47

이름과 이름의 싸움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나아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나아가노라". 골리앗은 자기 신들의 이름으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17:43). 이 싸움은 무기의 싸움이 아니라 이름의 싸움이었습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한나가 처음 부른 "만군의 여호와"(1:3, 11)라는 이름이 엘라 골짜기에서 울려 퍼집니다.

깊은 묵상
17:49

또 한 번 엎드러진 블레셋

"물매로 던져 블레셋 사람의 이마를 치매 돌이 그의 이마에 박히니 땅에 엎드러지니라". 5장에서 블레셋의 신 다곤이 언약궤 앞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러졌습니다(5:3). 이번에는 블레셋의 영웅이 같은 모습으로 쓰러집니다. 신도 영웅도 이스라엘의 하나님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깊은 묵상
17:51

거인의 칼

"다윗이 달려가서 블레셋 사람을 밟고 그의 칼을 그 칼집에서 빼내어 그 칼로 그를 죽이고". 다윗은 자기 칼이 없었습니다. 골리앗의 칼은 훗날 놉의 성소에 보관되어 있다가 도망치는 다윗의 손에 다시 들어갑니다(21:9). "그같은 것이 또 없나니 내게 주소서".

역사
17:55–58

"저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사울은 다윗이 나가 싸울 때 묻습니다. "이 소년이 누구의 아들이냐". 그런데 16장에서 다윗은 이미 사울 곁에서 수금을 타고 무기를 드는 자가 되었습니다(16:21). 왜 사울은 다윗을 모르는 것처럼 물을까요?

흥미롭게도 칠십인역의 중요한 사본(바티칸 사본)에는 17:12–31과 17:55–18:5 등이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두 가지 전승이 합쳐졌다는 견해도 있고, 사울이 다윗이 아니라 그 "아버지의 집"을 알고 싶었다는 설명(17:25 상을 줄 집안)도 있습니다.

역사
18

사랑과 시기

요나단의 겉옷과 사울의 창

18:1

하나로 묶인 마음

"요나단의 마음이 다윗의 마음과 하나가 되어 요나단이 그를 자기 생명 같이 사랑하니라". "하나가 되다"는 직역하면 "묶이다"입니다. 창세기 44:30에서 야곱의 생명이 베냐민의 생명과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고 할 때 쓴 말입니다. 왕위 계승자가 자기 자리를 위협할 사람과 생명으로 묶였습니다.

원어
18:4

왕자가 벗어 준 겉옷

"요나단이 자기가 입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었고 자기의 군복과 칼과 활과 띠도 그리하였더라". 왕자의 겉옷(메일)과 무기를 준다는 것은 사실상 자기 자리를 내어 준다는 뜻이었습니다.

사울은 사무엘의 겉옷을 붙잡아 찢었지만(15:27), 그의 아들은 자기 겉옷을 벗어 주었습니다.

깊은 묵상
18:7

천천과 만만

여인들이 노래합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히브리 시에서는 "천"과 "만"을 짝 지어 쓰는 것이 흔한 표현 방식이었습니다(시 91:7). 둘 다 칭찬이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울은 비교로 들었습니다. 이 노래는 블레셋 땅에까지 퍼져서, 블레셋 사람들도 두 번이나 이 노래를 인용합니다(21:11; 29:5).

문화
18:9

"주목하였더라"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 "주목하다"는 히브리어로 "눈"이라는 말에서 나온 동사로, 의심의 눈초리로 지켜본다는 뜻입니다. 우리말의 "눈 밖에 나다", "눈엣가시"와 비슷합니다. 시기는 눈에서 시작됩니다.

원어
18:10–11

수금을 든 손과 창을 든 손

"다윗은 평일과 같이 손으로 수금을 타는데 그 때에 사울의 손에 창이 있는지라 사울이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다윗을 벽에 박으리라 하고". 한 사람은 왕을 위로하려 수금을 들었고, 한 사람은 그를 죽이려 창을 들었습니다. 사울의 손에서 창은 이 뒤로 거의 떠나지 않습니다(19:9; 20:33; 22:6).

깊은 묵상
18:20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사울의 딸 미갈이 다윗을 사랑하매". 구약에서 여인이 남자를 "사랑했다"고 직접 말하는 거의 유일한 구절로 꼽힙니다. 그런데 이 사랑마저 사울에게는 다윗을 블레셋 손에 죽게 할 덫이 됩니다(18:21).

깊은 묵상
18:25–27

왕의 사위가 되는 값

사울은 신부 값으로 "블레셋 사람의 포피 백 개"를 요구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손에 죽기를 바란 것이지요. 그런데 다윗은 "이백 명"을 죽이고 돌아옵니다(칠십인역은 "백 명"). 덫은 오히려 다윗의 명성을 더 높였습니다.

문화
18:28–29

평생의 대적

"사울이 여호와께서 다윗과 함께 계심을 보고 알았고 사울의 딸 미갈도 그를 사랑하므로 사울이 다윗을 더욱 두려워하여 평생에 다윗의 대적이 되니라". 사울은 하나님이 다윗과 함께하심을 "보고 알았습니다". 그것을 알고도 하나님 편에 서지 않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사람과 싸우기로 했습니다.

깊은 묵상
19

창과 드라빔

아내와 친구가 지켜 준 사람

19:4–6

요나단의 중재

요나단은 아버지에게 말합니다. "왕은 신하 다윗에게 범죄하지 마옵소서… 그가 자기 생명을 걸고 블레셋 사람을 죽였고". 사울은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그가 죽지 아니하리라" 합니다. 그러나 그 맹세는 오래가지 못했습니다(19:10).

깊은 묵상
19:13

침대 위의 드라빔

미갈은 창문으로 다윗을 달아 내려 피신시킨 뒤, "우상을 가져다가 침상에 누이고 염소 털로 엮은 것을 그 머리에 씌우고 의복으로 그것을 덮었더니". 이 "우상"은 드라빔, 곧 집안의 수호신상입니다. 사람 머리 크기만 했던 모양입니다.

창세기 31장에서 라헬도 아버지 라반의 드라빔을 훔쳐 숨기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두 딸이 드라빔으로 아버지를 속여 남편을 지켰습니다. 그런데 다윗의 집에 드라빔이 있었다는 사실은 그 시대 신앙의 흐릿함도 함께 보여 줍니다.

문화
19:18

라마로 도망친 다윗

"다윗이 도피하여 라마로 가서 사무엘에게로 나아가서". 다윗이 쫓길 때 가장 먼저 찾아간 사람은 늙은 선지자 사무엘이었습니다. 왕궁에서 쫓겨난 기름 부음 받은 자가 그를 기름 부은 사람에게 갔습니다.

역사
19:20–24

잡으러 갔다가 사로잡힌 사람들

사울은 다윗을 잡으라고 전령들을 세 번이나 보냅니다. 그런데 그들은 라마의 선지자 무리를 만나 모두 예언을 합니다. 결국 사울이 직접 갔는데 그도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그의 옷을 벗고… 종일 종야에 벗은 몸으로 누웠더라".

그래서 "사울도 선지자들 중에 있느냐"는 속담이 또 생겼습니다(10:12 참고). 하나님은 칼 하나 들지 않고 다윗을 지키셨습니다.

깊은 묵상
20

화살로 맺은 우정

요나단과 다윗의 마지막 약속

20:5

초하루 잔치

"내일은 초하루인즉 내가 마땅히 왕을 모시고 앉아 식사를 하여야 할 것이나". 이스라엘은 매달 초하루(월삭)에 나팔을 불고 제사를 드리며 잔치를 열었습니다(민 10:10; 28:11). 왕의 상에 다윗의 자리가 비는 것이 사울의 속마음을 알아보는 시험이 되었습니다.

문화
20:20–22

화살 세 개의 암호

요나단은 과녁을 쏘는 척하며 화살을 날리고, 화살 줍는 아이에게 하는 말로 다윗에게 신호를 보내기로 합니다. "화살이 네 이쪽에 있으니 가져오라" 하면 안전하다는 뜻이고, "화살이 네 앞쪽에 있다" 하면 떠나라는 뜻이었습니다(20:21–22). 엿듣는 사람이 있어도 알아챌 수 없는 우정의 암호였습니다.

문화
20:30

아들에게 쏟아 낸 분노

사울은 다윗 편을 드는 요나단에게 욕설을 퍼붓습니다. "패역무도한 계집의 소생아". 그리고 진짜 속마음을 드러냅니다. "이새의 아들이 땅에 사는 동안은 너와 네 나라가 든든히 서지 못하리라"(20:31).

사울은 아들의 왕위를 걱정했지만, 정작 요나단은 그 왕위에 관심이 없었습니다. 사울은 결국 아들에게까지 창을 던집니다(20:33).

깊은 묵상
20:41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다윗이 곧 바위 남쪽에서 일어나서 땅에 엎드려 세 번 절한 후에 서로 입 맞추고 같이 울되 다윗이 더욱 심하더니". 전쟁터의 영웅이, 골리앗 앞에서도 담대했던 사람이, 친구와 헤어지며 가장 크게 울었습니다.

깊은 묵상
20:42

후손까지 이어진 약속

"여호와께서 영원히 나와 너 사이에 계시고 내 자손과 네 자손 사이에 계시리라". 이 약속은 수십 년 뒤에 이루어집니다. 왕이 된 다윗은 "사울의 집에 아직도 남은 사람이 있느냐 내가 요나단으로 말미암아 그에게 은총을 베풀리라" 하며 다리를 저는 요나단의 아들 므비보셋을 왕의 식탁에 앉힙니다(삼하 9장).

역사
21

놉과 가드

거룩한 떡과 미친 척

21:1

놉의 제사장 아히멜렉

실로가 무너진 뒤,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근처 놉에 모여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다윗은 혼자 도망쳐 아히멜렉 제사장을 찾아갑니다. 아히멜렉은 "떨며" 다윗을 맞습니다. 왕의 사위가 혼자 왔다는 것이 이상했기 때문입니다.

역사
21:6

예수님이 인용하신 장면

"제사장이 그 거룩한 떡을 주었으니 거기는 진설병 곧 여호와 앞에서 물려 낸 떡밖에 없었음이라". 원래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이었습니다(레 24:9).

예수님은 안식일 논쟁 때 이 장면을 인용하십니다(막 2:25–26). 그런데 마가복음에는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라고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는 아히멜렉이고, 아비아달은 그의 아들입니다(22:20). 아비아달이 그 자리에 있었고 훗날 더 유명한 대제사장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이름으로 시대를 가리켰다는 설명이 많습니다.

역사
21:7

그 자리에 있던 한 사람

"그 날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는데 그는 에돔 사람이요 이름은 도엑이라". 이야기 한가운데 슬쩍 끼어든 이 한 줄이 다음 장의 비극을 예고합니다. 성경은 작은 디테일을 허투루 쓰지 않습니다.

깊은 묵상
21:13–15

가드 왕 앞에서 미친 척

다윗은 하필 골리앗의 고향 가드로 도망칩니다. 신하들이 "이는 그 땅의 왕 다윗이 아니니이까"라며 알아보자, 다윗은 미친 척하며 "대문짝에 그적거리며 침을 수염에 흘립니다". 아기스 왕의 반응이 압권입니다. "내게 미치광이가 부족하여서 너희가 이 자를 데려다가 내 앞에서 미친 짓을 하게 하느냐". 😊

시편 34편 제목은 "다윗이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나서 지은 시"입니다. 아비멜렉은 블레셋 왕을 부르던 칭호였다고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그 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내가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가드로 추정되는 텔 에스-사피 유적
골리앗의 고향 가드로 여겨지는 텔 에스-사피(텔 차핏) 유적. 다윗은 이곳 아기스 왕 앞에서 미친 척을 했습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22

아둘람 굴의 사람들

빚지고 원통한 사람들의 우두머리

22:1–2

사백 명의 오합지졸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들이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

훗날 다윗 왕국의 용사들이 될 사람들이 처음에는 사회에서 밀려난 사람들이었습니다. 시편 142편 제목은 "다윗이 굴에 있을 때에 지은 마스길 곧 기도"입니다. 굴은 다윗이 기도를 배운 학교였습니다.

깊은 묵상
22:3–4

모압으로 간 부모

다윗은 부모를 모압 왕에게 맡깁니다. "나의 부모가 너희에게로 나와서 함께 있게 하기를 청하나이다". 왜 하필 모압이었을까요?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모압 여인 룻이었기 때문입니다(룻 4:17). 룻이 모압에서 베들레헴으로 와서 시어머니를 섬겼는데, 이제 그 증손자가 부모를 모압으로 보내 맡깁니다. 가족의 이야기가 한 바퀴를 돌았습니다.

역사
22:5

선지자 갓

"선지자 갓이 다윗에게 이르되 너는 이 요새에 있지 말고 떠나 유다 땅으로 들어가라". 갓은 이후 다윗의 평생 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선지자입니다(삼하 24:11). 쫓기는 다윗 곁에는 이제 선지자(갓)와 곧 제사장(아비아달)까지 함께하게 됩니다.

깊은 묵상
22:18

도엑의 학살

사울의 명령에 신하들은 제사장을 치기를 거부했지만, 에돔 사람 도엑은 "그 날에 세마포 에봇 입은 자 팔십오 명을 죽였고" 제사장의 성읍 놉의 남녀와 아이와 가축까지 쳤습니다. 사울은 아말렉은 진멸하지 않더니 하나님의 제사장들은 진멸했습니다.

시편 52편 제목은 "에돔인 도엑이 사울에게 이르러 다윗이 아히멜렉의 집에 왔다고 그에게 말하던 때에"입니다.

역사
22:20–23

살아남은 한 사람

"아히멜렉의 아들들 중 하나가 피하였으니 그의 이름은 아비아달이라". 엘리의 집에 대한 예언(2:31–33)은 이렇게 무섭게 이루어져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사람을 남기셨습니다. 다윗은 그에게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내게 있으라… 네가 나와 함께 있으면 안전하리라".

역사
23

광야에서 묻는 사람

하나님께 묻는 다윗, 산을 사이에 둔 추격

23:2

"내가 가서 치리이까"

블레셋이 그일라를 친다는 소식에 다윗은 먼저 묻습니다.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23장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계속 묻습니다(23:2, 4, 10, 11, 12). 반면 사울은 하나님께 묻지 않다가, 마지막에 물었을 때는 아무 대답도 듣지 못합니다(28:6).

깊은 묵상
23:6

에봇을 들고 온 제사장

"아히멜렉의 아들 아비아달이 그일라 다윗에게로 도망할 때에 손에 에봇을 가지고 내려왔더라". 에봇에는 하나님의 뜻을 묻는 우림과 둠밈이 딸려 있었습니다. 사울이 제사장들을 학살한 결과, 하나님께 묻는 도구가 다윗에게로 넘어왔습니다.

역사
23:16–17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한 친구

"사울의 아들 요나단이 일어나 수풀에 들어가서 다윗에게 이르러 그에게 하나님을 힘 있게 의지하게 하였는데". 직역하면 "하나님 안에서 그의 손을 강하게 해 주었다"입니다. 요나단은 다윗에게 자기를 의지하라고 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하게 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왕이 되고 나는 네 다음이 될 것을". 이것이 성경에 기록된 두 친구의 마지막 만남입니다.

깊은 묵상
23:26–28

"갈라짐의 바위"

사울은 산 이쪽으로, 다윗은 산 저쪽으로 갑니다. 포위망이 좁혀지는 순간 전령이 달려옵니다. "급히 오소서 블레셋 사람들이 땅을 침노하나이다". 사울은 추격을 멈춥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이 "셀라하마느곳"이 되었습니다. "갈라짐의 바위" 또는 "피함의 바위"라는 뜻입니다. 한 산을 사이에 둔 아슬아슬한 순간, 하나님은 블레셋을 쓰셔서 다윗을 지키셨습니다.

원어
24

엔게디 동굴

베어 낸 것은 옷자락뿐이었다

24:1–2

들염소 바위

사울은 삼천 명을 거느리고 "들염소 바위로" 다윗을 찾으러 갑니다. 엔게디는 사해 서쪽 절벽 아래 샘이 솟는 오아시스입니다. 지금도 이곳에는 누비아 아이벡스(야생 염소)가 바위 사이를 뛰어다닙니다. 절벽에는 숨기 좋은 동굴이 많습니다.

엔게디 폭포
엔게디의 폭포. 메마른 유대 광야 한가운데 샘이 솟는 이 골짜기의 동굴들이 쫓기던 다윗의 은신처였습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24:3

"발을 가리러" 들어간 왕

"사울이 뒤를 보러 들어가니라".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발을 가리러"입니다. 긴 옷을 입고 쭈그려 앉으면 옷자락이 발을 덮는 데서 온, 용변을 보는 일을 점잖게 이르는 말입니다(삿 3:24에도 같은 표현). 😊

하필 그 동굴 깊은 곳에 다윗 일행이 숨어 있었습니다. 왕이 가장 무방비한 순간이었습니다.

원어
24:4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다

다윗의 사람들이 속삭입니다.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원수를 네 손에 넘기리니"라는 날이 바로 오늘이라고요. 다윗은 일어나 "사울의 겉옷 자락을 가만히 베니라". "자락"(כָּנָף 카나프)은 "날개"라는 뜻도 있는 말입니다.

룻이 보아스에게 "당신의 옷자락(카나프)으로 덮으소서"(룻 3:9)라고 했던 그 단어입니다. 다윗의 증조할머니가 덮어 달라고 구했던 옷자락을, 다윗은 베어 냈습니다. 그리고 곧 그 일을 아파합니다.

원어
24:5–6

마음이 찔린 사람

"그 후에 사울의 옷자락 벰으로 말미암아 다윗의 마음이 찔려". 겉으로는 아무도 다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권위에 손을 댄 것을 아파했습니다.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내 주를 치는 것은 여호와께서 금하시는 것이니 그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가 됨이니라". 한나의 노래에 나온 "기름 부음 받은 자"(2:10)가 여기서 다시 울립니다.

깊은 묵상
24:14

죽은 개와 벼룩 한 마리

다윗은 동굴 밖에서 사울에게 외칩니다. "이스라엘 왕이 누구를 따라 나왔으며 누구의 뒤를 쫓나이까 죽은 개나 벼룩을 쫓음이니이다". 😊 삼천 명의 군대가 벼룩 한 마리를 잡으러 광야를 헤매고 있었습니다.

깊은 묵상
24:16–20

"내 아들 다윗아"

"이것이 네 목소리냐 내 아들 다윗아 하고 소리를 높여 울며". 사울은 울면서 고백합니다.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보라 나는 네가 반드시 왕이 될 것을 알고". 베어 낸 옷자락 하나가 왕의 입에서 진실을 끌어냈습니다.

엔게디 동굴의 사울과 다윗 그림
빌럼 더 포르터, 「엔게디 동굴의 사울과 다윗」(17세기, 바르샤바 국립박물관). 잠든 사울 곁에서 옷자락을 베는 다윗을 그렸습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깊은 묵상
25

나발과 아비가일

이름값을 한 어리석은 부자, 피 흘림을 막은 지혜로운 여인

25:1

사무엘의 죽음

"사무엘이 죽으매 온 이스라엘 무리가 모여 그를 두고 슬피 울며 라마 그의 집에서 그를 장사한지라". 한나의 기도로 시작된 사람이 조용히 무대에서 내려갑니다. 사무엘은 사울에게 기름을 붓고, 다윗에게 기름을 부었습니다. 두 왕을 세운 마지막 사사였습니다.

역사
25:3

"어리석은 자"라는 이름

"그 사람의 이름은 나발이요… 그 남자는 완고하고 행실이 악하며 그는 갈렙 족속이었더라". 아비가일 스스로 남편을 이렇게 소개합니다. "그의 이름이 그에게 적당하니 그의 이름이 나발이라 그는 미련한 자니이다"(25:25). 나발은 "어리석은 자"라는 뜻입니다.

"갈렙"이라는 이름은 "개"(켈레브)와 소리가 비슷해서, 히브리어로 들으면 은근한 말놀이가 된다는 해석도 있습니다.

원어
25:10–11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양털 깎는 잔칫날, 다윗이 자기 양 떼를 지켜 준 대가로 먹을 것을 청하자 나발은 대답합니다. "다윗은 누구며 이새의 아들은 누구냐 요즈음에 각기 주인에게서 억지로 떠나는 종이 많도다". 나발의 문장 속에는 "내 떡과 내 물과 내 양털 깎는 자를 위하여 잡은 고기"처럼 "내"가 가득합니다.

깊은 묵상
25:18

아비가일의 선물 목록

아비가일은 급히 준비합니다. "떡 이백 덩이와 포도주 두 가죽부대와 잡아서 요리한 양 다섯 마리와 볶은 곡식 다섯 세아와 건포도 백 송이와 무화과 뭉치 이백 개". 육백 명의 굶주린 사람들을 위한 출장 잔칫상이었습니다.

문화
25:29

"생명 싸개"

"내 주의 생명은 내 주의 하나님 여호와와 함께 생명 싸개 속에 싸였을 것이요 내 주의 원수들의 생명은 물매로 던지듯 여호와께서 그것을 던지시리이다". 소중한 것을 보자기에 싸서 간직하듯 하나님이 다윗의 생명을 지키신다는 말입니다. 물매 이야기를 하는 것도 골리앗을 이긴 다윗에게 꼭 맞는 비유입니다.

이 "생명 싸개"라는 말은 오늘날까지 유대인 묘비에 새겨집니다. "그의 영혼이 생명의 싸개 속에 싸이기를"이라는 문장의 머리글자(ת.נ.צ.ב.ה)가 많은 유대인 묘비 맨 아래에 있습니다.

역사
25:32–33

피 흘림을 막아 준 사람

"오늘 나를 영접하게 하신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할지로다 또 네 지혜를 칭찬할지며 또 오늘 내가 피를 흘릴 것과 친히 복수하는 것을 네가 막았으니". 24장에서는 원수를 살려 준 다윗이, 25장에서는 모욕을 참지 못해 칼을 찼습니다. 하나님은 지혜로운 여인을 보내 다윗 자신에게서 다윗을 지키셨습니다.

깊은 묵상
25:37–38

돌처럼 굳은 "가죽부대"

나발은 잔치에서 크게 취했다가, 이튿날 "포도주에서 깬 후에" 아내에게 모든 일을 듣고 "낙담하여 몸이 돌과 같이 되었더니" 열흘쯤 뒤 죽습니다.

"나발"은 "포도주 가죽부대"나 "항아리"를 뜻하는 말과도 소리가 같습니다. 포도주로 가득 찼던 "가죽부대"가 돌처럼 굳어 버린 셈이라는 말놀이로 읽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원어
26

창과 물병

두 번째로 살려 준 왕

26:7

머리맡에 꽂힌 창

"다윗과 아비새가 밤에 그 백성에게 나아가 본즉 사울이 진영 가운데 누워 자고 창은 머리 곁 땅에 꽂혀 있고". 다윗을 향해 몇 번이나 던졌던 그 창이 이제 사울의 머리맡에 꽂혀 있었습니다.

깊은 묵상
26:8

"한 번만 찌르겠습니다"

아비새가 속삭입니다. "청하오니 내가 창으로 그를 찔러서 단번에 땅에 꽂게 하소서 내가 그를 두 번 찌를 것이 없으리이다". 😊 다윗은 이번에도 거절합니다.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깊은 묵상
26:12

여호와께서 내리신 깊은 잠

"그들이 다 잠들었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그들을 깊이 잠들게 하셨음이었더라". "깊은 잠"(תַּרְדֵּמָה 타르데마)은 하나님이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하시고 하와를 지으실 때(창 2:21),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맺으실 때(창 15:12) 쓰인 말입니다. 하나님이 일하실 때 사람들은 잠들어 있었습니다.

원어
26:15–16

경호 대장을 놀리다

다윗은 맞은편 산꼭대기에서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을 부릅니다. "네가 어찌하여 네 주 왕을 보호하지 아니하느냐… 이제 왕의 창과 왕의 머리 곁에 있던 물병이 어디 있나 보라". 😊 왕의 창과 물병이 증거물이 되었습니다.

깊은 묵상
26:19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함이니이다"

"그들이 이 날 나를 쫓아내어 여호와의 기업에 참여하지 못하게 하며 너는 가서 다른 신들을 섬기라 함이니이다". 고대 사람들에게 땅과 신은 함께 묶여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땅에서 쫓겨난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할 자리를 빼앗긴다는 뜻이었습니다. 다윗에게 가장 큰 아픔은 목숨보다 예배였습니다.

문화
26:20

산에서 "부르는 새"

"이스라엘 왕이 산에서 메추라기를 사냥하는 자와 같이 한 벼룩을 수색하러 나왔음이니이다". 여기 "메추라기"로 옮긴 새는 히브리어로 "코레", 곧 "부르는 자"라는 뜻입니다. 우는 소리 때문에 붙은 이름이지요.

산꼭대기에서 사울을 "부르고"(26:14) 있는 다윗 자신이, 왕에게 쫓기는 "부르는 새"였습니다. 히브리어로 읽으면 살아나는 말놀이입니다.

원어
26:25

마지막 대화

"내 아들 다윗아 네게 복이 있을지로다 네가 큰 일을 행하겠고 반드시 승리를 얻으리라". 이것이 사울과 다윗이 나눈 마지막 대화입니다. 사울은 원수로 쫓던 사람을 축복하며 돌아갑니다. 두 사람은 이 땅에서 다시 만나지 못합니다.

깊은 묵상
27

블레셋 땅의 다윗

지친 믿음의 1년 4개월

27:1

"내가 이제 망하리니"

"다윗이 그 마음에 생각하기를 내가 후일에는 사울의 손에 붙잡히리니 블레셋 사람들의 땅으로 피하여 들어가는 것이 좋으리로다". 하나님께 묻던 다윗(23장)이 이번에는 "그 마음에" 생각합니다. 두 번이나 기적 같은 보호를 받고도 지친 믿음은 이렇게 흔들립니다.

깊은 묵상
27:2–3

육백 명과 함께 가드로

다윗은 육백 명과 그 가족들을 데리고 다시 가드 왕 아기스에게 갑니다. 처음 갔을 때는 미친 척하며 도망쳐야 했지만(21장), 이번에는 사울의 원수가 된 다윗을 아기스가 쓸모 있는 용병으로 받아들입니다.

역사
27:6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아기스가 그 날에 시글락을 그에게 주었으므로 시글락이 오늘까지 유다 왕에게 속하니라". "오늘까지"라는 말은 이 책이 정리될 때 이미 유다 왕국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블레셋 왕이 준 작은 마을이 훗날 유다 왕의 땅이 되었습니다.

역사
27:7

1년 4개월

"다윗이 블레셋 사람들의 지방에 산 날 수는 일 년 사 개월이었더라". 다윗의 생애에서 이 시기에 쓴 시편은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블레셋 땅에서 보낸 시간은 기도보다 계산이 앞선 시기였는지도 모릅니다.

역사
27:10–12

거짓말 위에 쌓은 안전

다윗은 그술, 기르스, 아말렉을 치고는 아기스에게 "유다 네겝"을 쳤다고 거짓으로 보고합니다. 그리고 소식이 새지 않도록 "남녀를 살려 두지 아니하였습니다". 아기스는 다윗을 철석같이 믿었습니다. 그러나 이 거짓말은 곧 다윗을 큰 곤경으로 몰아넣습니다(29장).

깊은 묵상
28

엔돌의 밤

대답 없는 하늘과 신접한 여인

28:3

자기가 쫓아낸 자들을 찾아가다

"사울은 신접한 자와 박수를 그 땅에서 쫓아내었더라". 사울도 처음에는 율법(레 19:31; 신 18:10–11)대로 점치는 자들을 쫓아냈습니다. 그런데 이 장에서 그는 자기가 쫓아낸 그 사람들을 몰래 찾아갑니다. 15:23의 "거역하는 것은 점치는 죄와 같고"가 그대로 이루어집니다.

역사
28:6

꿈도, 우림도, 선지자도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세 가지 길이 모두 닫혔습니다. 우림은 제사장의 에봇에 딸린 것이었는데, 그 제사장들을 사울이 학살했고 에봇은 다윗에게 가 있었습니다(23:6).

깊은 묵상
28:7–8

변장한 왕의 밤길

"사울이 다른 옷을 입어 변장하고 두 사람과 함께 갈새 그들이 밤에 그 여인에게 이르러". 엔돌은 블레셋이 진 친 수넴(28:4) 바로 북쪽, 다볼 산 근처 마을입니다. 사울은 적진 옆을 돌아 밤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이스라엘의 왕이 변장을 하고 밤에 몰래 다니는 모습이 비참합니다.

역사
28:12–14

정말 사무엘이었을까

여인은 사무엘을 보고 크게 소리칩니다. 마치 자기도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 같습니다.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28:14). 사울은 그 겉옷을 보고 사무엘인 줄 압니다.

이것이 정말 사무엘이었는지, 하나님이 특별히 허락하신 일인지, 속임수였는지는 교부 시대부터 해석이 나뉘었습니다. 분명한 것은 그가 전한 말이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였다는 것입니다(28:17–19).

역사
28:19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죽음의 예고였습니다. 한때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컸던 왕이 "땅에 완전히 엎드러지니"(28:20). 키 큰 왕이 땅에 쓰러진 모습은 다음 장면을 미리 보여 줍니다.

깊은 묵상
28:24–25

마지막 만찬

신접한 여인은 집에 있던 "살진 송아지"를 잡고 떡을 구워 사울과 신하들에게 먹입니다. "그들이 먹고 일어나서 그 밤에 가니라". 사울이 이 땅에서 먹은 마지막 식사가 하나님이 금하신 집에서 차린 식탁이었습니다.

깊은 묵상
29

돌려보내진 다윗

하나님이 막아 주신 싸움

29:3–5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블레셋이 이스라엘과 싸우러 나가는데, 다윗과 그 부하들이 아기스의 뒤를 따라갑니다. 블레셋 방백들이 화를 냅니다. "이 히브리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느냐… 이는 그들이 춤추며 노래하여 이르기를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던 그 다윗이 아니니이까".

다윗이 꾸민 거짓말(27장) 때문에 자칫 자기 백성을 치는 싸움에 나갈 뻔했습니다. 하나님은 블레셋 방백들의 의심을 통해 그 길을 막으셨습니다. 18:7의 노래가 이번에는 다윗을 살렸습니다.

깊은 묵상
29:6

여호와의 이름으로 맹세한 블레셋 왕

아기스가 다윗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정직하여". 😊 블레셋 왕이 이스라엘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합니다. 다윗과 지내는 동안 그 이름을 자주 들었던 모양입니다. 혹은 다윗을 안심시키려고 다윗의 하나님을 불렀을 것입니다.

역사
29:9

"하나님의 사자 같이"

"네가 내 목전에 하나님의 전령 같이 선한 것을 내가 아나". 거짓말로 아기스를 속인 다윗을 아기스는 "하나님의 사자 같다"고 칭찬합니다. 다윗은 그 칭찬을 들으며 부끄러웠을까요? 하나님은 부족한 다윗을 그의 실수에서도 건지셨습니다.

깊은 묵상
30

시글락의 회복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다

30:1–4

불탄 시글락

다윗이 사흘 만에 돌아와 보니 아말렉이 시글락을 불사르고 여자들과 아이들을 모두 사로잡아 갔습니다. "다윗과 그와 함께 한 백성이 울 기력이 없도록 소리를 높여 울었더라". 15장에서 사울이 끝내지 못한 아말렉이 이번에는 다윗의 집을 쳤습니다.

역사
30:6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백성이 각기 자녀들 때문에 마음이 슬퍼서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다윗이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 가족도 잃고 부하들에게 돌에 맞을 위기에 처한 다윗. 사울은 위기 때 신접한 여인을 찾아갔지만(28장), 다윗은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용기를 얻었더라"는 직역하면 "스스로를 강하게 했다"입니다. 23:16에서 요나단이 해 주던 일을, 이제 다윗은 혼자서 하나님 안에서 해냅니다.

깊은 묵상
30:7–8

다시 묻기 시작한 다윗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블레셋 땅에서 1년 4개월 동안 하나님께 묻는 장면이 없던 다윗이, 다시 묻기 시작합니다.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깊은 묵상
30:11–12

버려진 애굽 소년

다윗의 사람들은 들에서 사흘 동안 굶은 애굽 소년을 발견합니다. 아말렉 사람의 종이었는데 병들자 주인이 버리고 간 것입니다. 그들은 "무화과 뭉치에서 뭉치 하나와 건포도 두 송이"를 먹이고 그를 살립니다.

버려진 종 한 사람에게 베푼 친절이 아말렉 진영으로 가는 길을 열었습니다. 아말렉이 버린 사람이 아말렉을 무너뜨리는 열쇠가 되었습니다.

깊은 묵상
30:24–25

"오늘까지 이스라엘의 율례가 되니라"

지쳐서 브솔 시내에 남았던 이백 명에게 전리품을 나누지 말자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다윗은 말합니다. "전장에 내려갔던 자의 분깃이나 소유물 곁에 머물렀던 자의 분깃이 같을지니 같이 분배할 것이니라". 이 원칙은 "그 날부터 이스라엘의 율례와 규례가 되어 오늘까지 이르니라".

싸운 사람과 지킨 사람의 몫이 같습니다. 은혜의 나라가 보여 주는 셈법입니다.

역사
30:26–31

유다 장로들에게 보낸 선물

다윗은 전리품을 유다 장로들에게 보내며 "여호와의 원수들에게서 탈취한 것을 너희에게 선사하노라" 합니다. 헤브론을 비롯해 다윗이 떠돌며 머물렀던 마을들이 목록에 나옵니다. 곧 다윗은 바로 그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됩니다(삼하 2:1–4).

깊은 묵상
31

길보아 산

쓰러진 왕과 밤새 달려간 사람들

31:1–2

요나단의 죽음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과 그의 아들들을 추격하여 사울의 아들 요나단과 아비나답과 말기수아를 죽이니라". 다윗의 가장 귀한 친구 요나단은 끝까지 아버지 곁에서 싸우다 죽었습니다. 다윗은 훗날 그를 위해 "활의 노래"를 지어 웁니다(삼하 1:17–27).

길보아 산
길보아 산. 사울과 세 아들이 블레셋과의 싸움에서 쓰러진 곳입니다. 다윗은 이 산을 향해 “이슬과 비가 너희 위에 내리지 아니하며”라고 슬피 노래했습니다(삼하 1:21).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31:4

스스로 칼에 엎드러진 왕

사울은 무기 든 자에게 자신을 찔러 달라고 하지만, 그는 "심히 두려워하여" 거절합니다. 결국 "사울이 자기의 칼을 뽑아서 그 위에 엎드러지매". 훗날 한 아말렉 청년이 자기가 사울을 죽였다고 다윗에게 말하지만(삼하 1:10), 상을 받으려 지어낸 말로 보는 해석이 많습니다.

사울이 진멸하지 않고 남겨 둔 아말렉 사람이 사울의 왕관을 들고 나타났다는 것은 씁쓸한 아이러니입니다.

역사
31:9–10

다곤 신전에 걸린 머리

블레셋은 사울의 머리를 베고 갑옷을 "아스다롯의 집에 두고 그의 시체는 벧산 성벽에 못 박으매". 역대상 10:10은 "그의 머리를 다곤의 신전에 단지라"고 덧붙입니다.

5장에서 언약궤 앞에 머리가 부러져 엎드러졌던 다곤. 그런데 하나님을 떠난 이스라엘의 왕은 그 다곤 신전에 머리가 걸렸습니다. 사무엘상은 엎드러진 다곤으로 시작해 다곤 신전에 걸린 왕의 머리로 끝나는, 무서운 대칭을 품고 있습니다.

텔 벧산 유적
벧산(벳 셰안)의 옛 언덕 유적. 블레셋은 사울과 아들들의 시체를 이 성의 성벽에 매달았습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역사
31:11–12

밤새 달려간 사람들

"야베스 길르앗 주민들이 블레셋 사람들이 사울에게 행한 일을 듣고 모든 장사들이 일어나 밤새도록 달려가서 사울의 시체와 그의 아들들의 시체를 벧산 성벽에서 내려 가지고". 야베스에서 벧산까지는 요단 강을 건너 밤새 걸어야 하는 길이었습니다.

사울이 왕이 되고 처음으로 구해 준 성읍이 바로 야베스 길르앗이었습니다(11장). 사람들은 그의 처음 은혜를 잊지 않았습니다. 사울의 이야기는 그가 가장 빛났던 날을 기억하는 사람들의 손에서 끝납니다.

깊은 묵상
31:13

에셀나무 아래에서

"그의 뼈를 가져다가 야베스 에셀나무 아래에 장사하고 칠 일 동안 금식하였더라". "에셀나무"(אֵשֶׁל 에셸)는 광야에서도 잘 자라는 위성류(타마리스크) 나무입니다.

22:6에서 사울은 기브아의 "에셀나무 아래" 앉아 창을 들고 신하들을 다그치고 있었습니다. 에셀나무 아래 앉아 다윗을 쫓던 왕이, 에셀나무 아래 묻혔습니다. 아브라함도 브엘세바에 에셀나무를 심고 "영원하신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창 21:33). 사울의 이야기는 끝났지만, 영원하신 하나님의 이야기는 다윗을 통해 계속됩니다.

원어
後

그 후의 이야기

사무엘하로, 그리고 다윗의 자손에게로

사울의 죽음 소식을 들은 다윗은 기뻐하지 않았습니다. 옷을 찢고 저녁때까지 울며 금식했습니다(삼하 1:11–12). 그리고 사울과 요나단을 위해 슬픈 노래를 지었습니다. "사울과 요나단이 생전에 사랑스럽고 아름다운 자러니 죽을 때에도 서로 떠나지 아니하였도다"(삼하 1:23). 자기를 평생 쫓던 왕을 "아름다운 자"라고 부른 것입니다.

다윗은 헤브론에서 유다의 왕이 되었고, 7년 반 뒤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되어 예루살렘으로 언약궤를 옮겨 옵니다. 4장에서 빼앗기고 7장부터 20년 동안 잊혔던 그 궤입니다. 하나님은 다윗에게 영원한 나라를 약속하셨고(삼하 7장), 천 년 뒤 그 약속은 베들레헴에서 태어난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한나가 사무엘을 엘리에게 데려온 그림
헤르브란트 반 덴 에크하우트, 「한나가 어린 사무엘을 엘리에게 데려오다」(17세기, 애슈몰린 박물관). 사무엘상의 모든 이야기는 이 한 장면, 엄마가 기도로 얻은 아이를 하나님께 드린 데서 시작되었습니다.사진: Wikimedia Commons · 촬영자·라이선스 보기 ↗

키를 재던 책, 마음을 보신 하나님

사무엘상에는 키 큰 사람들이 계속 나옵니다. 어깨 하나만큼 컸던 사울, 하나님이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하신 엘리압, 그리고 3m 가까운 골리앗. 그러나 하나님이 고르신 사람은 잔칫상에도 부르지 않은 "작은 자"였습니다. 아이 없던 여인의 기도로 시작해 길보아 산에서 끝나는 이 책은, 지금도 우리에게 말합니다.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16: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