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39

사사기,
영웅이 갈수록
작아지는 책

구원자는 계속 왔는데 백성은 점점 무너졌다,
그리고 모두가 진짜 왕을 기다렸다

사사기 1–21장
여는 글

사사기는 성경에서 가장 “막장 드라마” 같은 책이에요. 왼손잡이 암살자, 장막 말뚝을 든 여인, 포도주 틀에 숨은 겁쟁이 용사, 여우 삼백 마리에 횃불을 단 장사까지 나와요. 😄 주일학교에서는 삼손과 기드온 이야기를 영웅담으로 배웠지만, 어른이 되어 다시 읽으면 웃다가도 마음이 무거워지는 책이에요.

그 이유는 이 책이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처럼 짜여 있기 때문이에요. 처음 나오는 사사 옷니엘은 흠잡을 데가 없는데, 뒤로 갈수록 사사들 자신이 흔들려요. 기드온은 우상을 만들고, 입다는 성급하게 서원하고, 삼손은 자기 눈을 따라 살아요. 그리고 책은 이 한 문장을 되풀이하며 끝나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21:25). 이 무너지는 이야기 속에서도 백성이 부르짖을 때마다 구원자를 보내신 하나님을 따라가 볼게요.

1부

사사기는 어떤 책일까?

여호수아 이후 왕정 이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한 이스라엘의 이야기

사사기는 여호수아가 죽은 뒤부터 사울이 왕이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예요. 입다가 암몬 왕에게 “삼백 년” 동안 이스라엘이 그 땅에 살았다고 말하니(11:26), 꽤 긴 세월이에요. 여호수아 세대가 세상을 떠나자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2:10)라는 한 줄과 함께 내리막이 시작돼요. 그 뒤로 같은 순환이 일곱 번쯤 되풀이돼요. 백성이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이 이웃 나라의 손에 넘기시고, 백성이 부르짖고, 하나님이 사사를 보내 구원하시고, 그 사사가 죽으면 또다시 우상으로 돌아가요(2:11-19). 유대 전통은 사무엘이 이 책을 기록했다고 전해요.

이름의 뜻히브리어 이름 “쇼프팀”은 “재판관들”이라는 뜻이에요. 하지만 이 책의 사사들은 법정에 앉아 있기보다 싸움터에 나가 백성을 건지는 “구원자”에 가까워요(2:16). 보통 열두 명의 사사를 꼽아요.
두 개의 후렴앞부분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더라”가, 뒷부분에는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가 거듭 나와요(17:6; 18:1; 19:1; 21:25).

※ 사사들의 활동 기간을 모두 더하면 꽤 긴 세월이 되는데, 몇몇 사사는 서로 다른 지역에서 같은 시기에 활동했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사사기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돌고 도는 순환
죄, 압제, 부르짖음, 구원, 평안. 그런데 바퀴가 돌 때마다 조금씩 더 아래로 내려가요.
2
뜻밖의 구원자들
왼손잡이, 여인, 가장 작은 집 막내, 쫓겨난 서자. 하나님은 약한 사람을 쓰세요.
3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니”
구원의 힘은 사사들의 근육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에게서 왔어요(3:10; 6:34; 14:6).
4
웃음과 비극이 섞인 이야기
히브리어 말놀이와 풍자가 가득하지만, 결말로 갈수록 이야기가 점점 어두워져요.
5
왕을 기다리는 책
“왕이 없으므로”라는 마지막 문장이 다음 이야기, 곧 다윗과 참 왕을 향한 기다림을 남겨요.

사사기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노략자의 손에서 그들을 구원하게 하셨으나”(2:16). 백성은 같은 실수를 끝없이 되풀이했지만, 하나님은 그들이 부르짖을 때마다 구원자를 보내셨어요. 그리고 마침내 단 한 번의 구원으로 영원히 건지시는 분, 사사들이 가리키던 참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어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왼손잡이 에훗부터 돈으로 산 제사장까지

1

“오른손의 아들” 지파의 왼손잡이가
살찐 송아지 왕을 찾아갔다

사사기 3:12-30 · 20:16 · 고린도전서 1:27

모압 왕 에글론이 이스라엘을 열여덟 해 동안 괴롭히자, 하나님은 베냐민 사람 에훗을 구원자로 세우세요. 성경은 그를 “왼손잡이 에훗”이라고 소개해요(3:15). 재밌는 건 “베냐민”이라는 이름이 “오른손의 아들”이라는 뜻이라는 거예요. 게다가 “왼손잡이”로 옮긴 히브리어를 직역하면 “오른손이 묶인 사람”이에요. 오른손 지파 출신인데 오른손을 못 쓰는 사람이 구원자로 뽑힌 거지요. 사사기 20:16에는 물매로 머리카락도 맞히는 베냐민의 왼손잡이 칠백 명이 나와요. 일부러 왼손을 훈련시킨 전사들이었을 가능성도 있어요.

에훗은 한 규빗쯤 되는 양날 칼을 만들어 오른쪽 허벅지, 옷 속에 차요(3:16). 오른손잡이 경비병들은 왼쪽만 검사했을 테니 감쪽같았어요. 공물을 바치고 돌아가던 에훗이 되돌아와 “왕께 은밀한 일을 아뢰겠다”고 하자, 왕은 신하들을 다 내보내요. 에훗은 “하나님의 말씀을 왕에게 전할 것이 있다”며 왼손으로 칼을 빼요. 그런데 성경은 이 왕을 이렇게 소개해 두었어요. “에글론은 매우 비둔한 자였더라”(3:17). 이름 에글론은 “송아지(에겔)”를 떠올리게 해요. 칼자루까지 살 속으로 들어가 뺄 수가 없었어요(3:22).

더 웃긴 건 다음 장면이에요. 에훗은 다락방 문을 잠그고 빠져나가요. 신하들이 와 보니 문이 잠겨 있어요. 그들은 이렇게 생각해요. “왕이 분명히 서늘한 방에서 그의 발을 가리우신다”(3:24). 왕이 볼일을 보고 계신다는 점잖은 표현이에요. 😄 그래서 민망할 만큼 오래 기다리는 사이 에훗은 멀리 달아나 백성을 모아요. 그 뒤로 땅이 팔십 년 동안 평온했어요(3:30). 하나님은 사람들이 약하다고 보는 것을 들어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세요(고전 1:27). 그리고 마침내 세상이 가장 약하다고 본 자리, 십자가에서 가장 큰 구원을 이루셨어요.

※ 에글론과 송아지의 말놀이, 그리고 베냐민 전사들이 일부러 왼손을 훈련했다는 설명은 학자들이 제안하는 해석이에요. 본문이 직접 설명하지는 않아요.

돌아보기
내가 약점이라고 여기는 그 “왼손”까지 하나님이 쓰실 수 있음을 믿고, 약함 가운데 일하시는 예수님의 능력을 의지합니다.
2

영광은 “여인의 손”에 간다고 했는데,
그 여인은 드보라가 아니었다

사사기 4:4-22 · 5:20-31 · 창세기 3:15 · 누가복음 1:42
독자의 예상
여선지자이자 사사인 드보라가 영광을 얻겠지?
VS
실제 결말
장막에 사는 이방 여인 야엘이 시스라를 쓰러뜨려요.

가나안 왕 야빈의 군대 장관 시스라는 철 병거 구백 대를 가지고 이스라엘을 이십 년 동안 괴롭혔어요(4:3). 사사 드보라가 바락을 불러 싸우라고 하자 바락이 말해요. 드보라가 함께 가면 가겠지만, 함께 가지 않으면 자기도 안 가겠다고요(4:8). 드보라는 가겠다고 하면서 한마디 덧붙여요. 이번 길의 영광은 바락에게 돌아가지 않을 것이고, 여호와께서 시스라를 “여인의 손에” 파실 것이라고요(4:9). 읽는 사람은 당연히 드보라를 떠올리지요.

그런데 싸움 날, 하늘이 움직여요. 드보라의 노래는 “별들이 하늘에서부터 싸웠다”고, 기손 강이 시스라의 군대를 휩쓸어 갔다고 노래해요(5:20-21). 갑자기 쏟아진 비에 강이 넘쳐 철 병거들이 진흙에 빠진 것으로 보여요. 시스라는 걸어서 도망치다가 겐 사람 헤벨의 아내 야엘의 장막에 숨어요. 야엘은 우유를 주고 이불을 덮어 주고, 그가 잠든 사이 장막 말뚝을 그의 관자놀이에 박아요(4:21). 영광을 받은 “여인”은 드보라가 아니라, 이스라엘 사람도 아닌 장막 속 주부 야엘이었어요.

드보라의 노래는 마지막에 카메라를 적국으로 돌려요. 창가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시스라의 어머니가 보여요. “그의 병거가 어찌하여 더디 오는가.” 지혜로운 시녀들은 노략물을 나누느라 늦는 거라고 달래요(5:28-30). 그 어머니는 아들이 돌아오지 않는다는 걸 아직 몰라요. 승리의 노래 끝에 적의 슬픔까지 비추는 이 장면은 묘한 여운을 남겨요. 드보라는 야엘을 “장막에 있는 여인들보다 더욱 복을 받을 것”이라 노래했는데(5:24), 원수의 “머리”를 부순 여인의 이야기는 창세기 3:15의 약속, 여자의 후손이 뱀의 머리를 부술 그날을 떠올리게 해요.

※ 야엘 이야기를 창세기 3:15와 연결하는 것, 그리고 “여인 중에 복을 받은” 야엘과 마리아(눅 1:42)를 나란히 읽는 것은 해석의 영역이에요.

돌아보기
내가 예상한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 택하신 사람을 통해 일하시는 것을 인정하고, 원수의 머리를 부수신 그리스도의 승리를 찬양합니다.
3

포도주 틀에 숨은 겁쟁이를 “큰 용사여”라 부르셨는데,
그 아들의 이름은 “내 아버지는 왕”이었다

사사기 6:11-16 · 7:2-22 · 8:22-31 · 9:1-6

미디안 사람들이 해마다 메뚜기 떼처럼 몰려와 곡식을 빼앗아 가던 때였어요. 기드온은 미디안 사람 눈에 띄지 않으려고 포도주 틀 안에 숨어서 밀을 타작하고 있었어요(6:11). 바람이 잘 부는 언덕에서 해야 할 타작을 움푹 꺼진 포도주 틀에서 몰래 하고 있었던 거예요. 그런 그에게 여호와의 사자가 나타나 처음 하신 말씀이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6:12)예요. 😄 기드온이 대답해요. 우리 집은 므낫세 지파에서 가장 약하고, 자기는 그 집에서도 가장 작은 사람이라고요(6:15).

하나님은 군대도 줄이세요. 삼만 이천 명이 모였는데 “너무 많다”고 하세요. 이유가 분명해요. 이스라엘이 “내 손이 나를 구원하였다” 하며 자랑할까 봐서였어요(7:2). 두려워하는 사람 이만 이천 명을 돌려보내고, 물가에서 다시 걸러 손으로 물을 떠서 핥아 먹은 삼백 명만 남겨요. 그 삼백 명이 손에 든 것은 칼이 아니라 나팔과 항아리와 횃불이었어요. 한밤중 항아리를 깨뜨리고 횃불을 들며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다” 외치자, 미디안 진영은 자기들끼리 칼로 치며 무너졌어요(7:20-22).

그런데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백성이 기드온에게 왕이 되어 달라고 하자 그는 멋지게 거절해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8:23). 여기까지는 완벽한데, 바로 다음 순간 백성에게서 금 귀고리를 거둬 에봇을 만들어 고향에 두었고, 그것이 온 이스라엘과 기드온의 집에 “올무”가 되었어요(8:27). 그리고 세겜에 있던 첩이 낳은 아들의 이름을 아비멜렉이라고 지어요(8:31). 뜻이 “내 아버지는 왕”이에요. 입으로는 왕을 거절했는데, 아들 이름에는 왕을 새긴 거예요. 결국 그 아비멜렉은 형제 칠십 명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돼요(9:5-6). 사람 사사들은 끝내 왕의 자리를 감당하지 못했어요. 이스라엘에게 필요했던 건 스스로 낮아져 종이 되신 참 왕이셨어요(빌 2:7-8).

돌아보기
나를 있는 모습보다 크게 부르시는 하나님 앞에서, 입술의 고백과 숨은 욕심이 엇갈리지 않도록 마음을 지킵니다.
4

한 줄로 끝난 사사들,
그리고 나귀 삼십 마리와 성읍 삼십 개

사사기 3:31 · 5:6 · 10:1-5 · 12:8-15 · 히브리서 11:32

사사기에는 이야기가 길게 나오는 “큰 사사”들 사이사이에 한두 절로 끝나는 “작은 사사”들이 있어요. 가장 짧은 사람은 삼갈이에요. 그의 이야기는 딱 한 절이에요.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3:31). 칼도 창도 아닌, 소를 몰 때 쓰는 뾰족한 막대기 하나로요. 드보라의 노래에 따르면 삼갈의 시대에는 큰길이 텅 비고 사람들이 오솔길로 몰래 다닐 만큼 위험했어요(5:6).

그런데 작은 사사들 이야기에는 이상한 숫자가 반복돼요. 야일은 아들 서른 명이 어린 나귀 서른 마리를 탔고 성읍 서른 개를 가졌다고 해요(10:4). 히브리어로 읽으면 말놀이예요. “어린 나귀들”과 “성읍들”이 둘 다 아야림처럼 들려요. 서른 아들이 서른 나귀를 타고 서른 성읍을 다스린 거예요. 입산은 아들 서른과 딸 서른을 집안 밖으로 시집 장가보냈고(12:9), 압돈은 아들 사십과 손자 삼십이 어린 나귀 칠십을 탔어요(12:14). 고대 근동에서 나귀를 타는 건 귀족과 지도자의 표시였어요.

숫자는 화려한데 이들이 백성을 어떻게 구원했는지는 한 줄도 없어요. 사사가 점점 집안을 늘리고 나귀를 늘리는 작은 왕처럼 변해 가는 모습이에요. 히브리서는 기드온과 바락과 삼손과 입다의 믿음을 말하려면 “시간이 부족하리로다”(히 11:32)라고 했지만, 이 작은 사사들에 대해서는 자손과 나귀의 숫자만 남았어요. 성경은 우리가 무엇을 남기며 사는지 조용히 묻는 것 같아요. 그리고 훗날 참 왕이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오셨어요. 귀족의 행차가 아니라 “겸손하여 나귀”를 타신 왕의 모습으로요(마 21:5).

※ 삼갈은 “아낫의 아들”이라고 불리는데(3:31; 5:6), “아낫”은 가나안의 전쟁 여신 이름이기도 해서 그의 출신을 두고 여러 해석이 있어요.

돌아보기
성경에 한 줄로 남더라도 하나님 손에 들린 막대기처럼 쓰이기를 바라고, 나귀를 타고 오신 겸손한 왕을 따릅니다.
5

쫓겨난 아들이 머리가 되었지만,
형제를 발음 하나로 갈랐다

사사기 11:1-11, 29-40 · 12:1-6 · 마태복음 26:73

입다는 기생의 아들이었어요(11:1). 본처의 아들들이 자라자 “너는 다른 여인의 자식이니 우리 아버지의 집에서 기업을 잇지 못하리라” 하며 그를 쫓아내요(11:2). 입다는 돕 땅으로 가서 건달들과 어울려 지내요. 그런데 암몬이 쳐들어오자 그를 내쫓았던 길르앗 장로들이 찾아와 장관이 되어 달라고 부탁해요. 입다가 말해요. “너희가 전에 나를 미워하여 내 아버지 집에서 쫓아내지 아니하였느냐”(11:7). 버림받은 사람이 머리가 된 거예요.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된 그림을 미리 보는 것 같아요.

하지만 입다의 이야기는 두 번 어두워져요. 첫 번째는 성급한 서원이에요. 승리를 주시면 집 문에서 처음 나와 자기를 맞는 것을 번제로 드리겠다고 했는데, 그를 맞으러 나온 것은 소고를 치며 춤추는 외동딸이었어요(11:31-34). 두 번째는 형제와의 싸움이에요. 싸움이 끝나자 에브라임 지파가 왜 자기들을 부르지 않았냐며 입다에게 덤벼요. 결국 길르앗 사람들은 요단 나루를 막고, 건너려는 사람에게 한 단어를 말해 보게 해요. 쉽볼렛. 에브라임 사람들은 “쉬” 발음을 못 해서 “십볼렛”이라고 했고, 그렇게 사만 이천 명이 죽었어요(12:5-6).

영어에서 “shibboleth”는 지금도 어떤 무리를 가려내는 말버릇이나 표시를 뜻해요.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형제를 발음 하나로 갈라 죽인 슬픈 기원이에요. 신약에도 말투가 사람을 드러낸 장면이 있어요. 대제사장의 뜰에서 사람들이 베드로에게 말해요. “네 말소리가 너를 표명한다”(마 26:73). 갈릴리 말투 때문이었지요. 그날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 베드로를 다시 찾아가 세 번 물으시며 회복시키셨어요(요 21:15-17). 사람은 말투 하나로 형제를 가르지만, 예수님은 부인한 제자까지 다시 품으세요.

※ 입다가 딸을 실제로 번제로 드렸는지, 아니면 평생 결혼하지 않고 하나님께 바친 것인지(11:37-39)는 오래전부터 해석이 나뉘어요. 어느 쪽이든 하나님이 이 서원을 요구하신 적은 없어요.

돌아보기
말투나 배경으로 형제를 가르는 마음을 내려놓고, 부인한 제자까지 다시 부르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사람을 대합니다.
6

삼손의 머리털은 다시 자라기 시작했고,
그는 죽을 때 가장 크게 이겼다

사사기 13:5 · 14:5-18 · 15:4-16 · 16:4-30 · 골로새서 2:15

삼손은 태어나기 전부터 나실인으로 구별된 사람이었어요.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시체를 가까이하지 않고, 머리에 삭도를 대지 않아야 했지요(13:4-5; 민 6:3-6). 그런데 삼손의 이야기는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어기는 이야기처럼 흘러가요. 사자의 주검에서 꿀을 떠먹고(14:8-9), 잔치를 열고(14:10), 마지막엔 머리털까지 잘려요. 그래도 그의 이야기는 재치가 넘쳐요. 혼인 잔치에서 낸 수수께끼가 “먹는 자에게서 먹는 것이 나오고 강한 자에게서 단 것이 나왔느니라”(14:14)예요. 손님들이 아내를 졸라 답을 알아내자 삼손이 말해요. “내 암송아지로 밭 갈지 아니하였더면 내 수수께끼를 능히 풀지 못하였으리라”(14:18). 😄

나귀 턱뼈로 천 명을 친 뒤 부른 노래도 말놀이예요. 히브리어로 나귀는 “하모르”, 무더기도 “하모르”예요(15:16). 우리말로 옮기면 “나귀 턱뼈로 나귀 떼를 쌓았네” 같은 느낌이에요. 블레셋 다섯 방백은 그를 잡으려고 들릴라에게 각자 은 천백 세겔씩 주겠다고 해요(16:5). 다 합하면 은 오천오백 세겔, 약 63kg이에요. 요즘 은 시세로 억 단위가 넘는 돈이에요. 결국 들릴라의 꾐에 넘어가 머리털이 밀리고 두 눈이 뽑힌 채 가사 감옥에서 맷돌을 돌리게 되지요(16:21).

그런데 바로 다음 절에 성경이 조용히 한 줄을 넣어요. “그의 머리털이 밀린 후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니라”(16:22). 블레셋 사람들은 다곤 신전에 모여 잔치를 벌이며 삼손을 불러내 놀려요. 삼손은 신전을 받치는 두 기둥 사이에 서서 두 팔을 벌려 기둥을 붙잡고 기도해요. 신전이 무너지고 성경은 이렇게 적어요. “삼손이 죽을 때에 죽인 자가 살았을 때에 죽인 자보다 더욱 많았더라”(16:30). 두 팔을 벌린 채 죽음으로 원수를 이긴 그 장면은, 십자가에서 팔을 벌리시고 죽음으로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신 예수님(골 2:15)을 떠올리게 해요. 물론 삼손은 자기 원수를 갚으려 했고, 예수님은 원수를 위해 기도하셨다는 점이 다르지요.

※ 이스라엘 텔 카실레에서 발굴된 블레셋 신전 터에는 지붕을 받치던 기둥 두 개의 주춧돌이 가까이 붙어 있어서 삼손 이야기의 구조를 떠올리게 한다는 지적이 있어요. 또 삼손의 죽음을 그리스도와 연결하는 것은 교회의 오래된 해석이에요. 1세겔은 약 11.4g으로 계산했고 은값은 시세에 따라 달라요.

돌아보기
실패한 자리에서도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은혜를 기억하며, 죽음으로 승리를 이루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7

은 열 개에 팔린 제사장,
사본은 그 할아버지의 이름을 감추려 했다

사사기 17:1-13 · 18:14-31 · 열왕기상 12:28-30 · 히브리서 7:24-27

사사기의 마지막 이야기들에는 사사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아요. 대신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17:6)가 나와요. 에브라임 산지의 미가라는 사람이 어머니의 은 천백 세겔을 훔쳤다가, 어머니가 도둑을 저주하는 소리를 듣고 겁이 나서 돌려줘요(17:1-2). 그러자 어머니는 그 은을 여호와께 거룩하게 드린다며 신상을 만들어요(17:3-4). 😄 하나님께 드린다면서 하나님이 금하신 신상을 만든 거예요. 미가는 신당을 차리고 아들을 제사장으로 세워요.

마침 떠돌이 젊은 레위인이 지나가자 미가는 그를 제사장으로 고용해요. 조건은 “해마다 은 열과 의복 한 벌과 먹을 것”(17:10)이었어요. 은 열 세겔이면 약 114g, 요즘 은값으로 수십만 원짜리 연봉이에요. 그런데 땅을 찾아 북쪽으로 가던 단 지파 사람들이 이 신당을 털어 가요. 레위인이 말리자 그들이 제안해요. 한 사람의 집 제사장이 낫겠냐, 한 지파의 제사장이 낫겠냐(18:19). 성경은 그 반응을 이렇게 적어요. “제사장이 마음에 기뻐하여”(18:20). 더 큰 자리를 주자 신상을 챙겨 따라간 거예요.

이야기 맨 끝에야 이 레위인의 이름이 나와요. “게르솜의 아들 요나단”(18:30). 그런데 그 할아버지가 누구인지가 문제예요. 원래 본문은 “모세의 손자”로 보이는데, 히브리어 사본에는 “모세(MSH)” 사이에 작은 글자 “눈(N)”이 위로 살짝 걸쳐 쓰여 있어서 “므낫세(MNSH)”로 읽히게 되어 있어요. 위대한 모세의 손자가 우상 제사장이 되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워서 필사자들이 글자 하나를 걸쳐 놓았다고 보는 학자들이 많아요. 그래서 우리말 성경도 번역에 따라 “므낫세의 손자”와 “모세의 손자”로 갈려요. 단 땅은 훗날 여로보암이 금송아지를 세운 곳이 되었어요(왕상 12:29). 돈 몇 푼과 더 큰 자리에 팔리던 제사장의 시대에, 하나님은 마침내 자기 자신을 단번에 드리신 영원한 대제사장 예수님을 보내셨어요(히 7:24-27).

※ 18:30의 “걸쳐 쓴 눈(N)”은 히브리어 마소라 사본에 실제로 남아 있는 표시예요. 그 이유에 대한 설명은 유대 전승과 학자들의 해석이에요.

돌아보기
더 큰 자리와 더 많은 사례에 따라 움직이는 신앙이 아닌지 돌아보고, 나를 위해 자기를 드리신 대제사장 예수님을 따릅니다.
맺는 글
모두가 자기 소견대로 살던 시대,
하나님은 참 왕을 준비하고 계셨다

사사기는 “하나님 없이 각자 옳은 대로 살면 어떻게 되는가”를 보여 주는 책이에요. 처음엔 웃음이 나던 이야기가 갈수록 어두워지고, 마지막 장들은 차마 소리 내어 읽기 어려울 만큼 무너진 모습을 보여 줘요. 사사들도 점점 작아져요. 옷니엘에서 시작해 삼손으로 끝나는 동안, 구원자들은 백성을 건졌지만 백성의 마음은 바꾸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 어두운 책 안에도 놓치면 안 되는 문장이 있어요. 백성이 부르짖을 때마다 “여호와께서 사사들을 세우사” 구원하셨어요(2:16). 하나님은 한 번도 백성을 영영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리고 바로 다음 책 룻기는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룻 1:1)로 시작해서 다윗의 이름으로 끝나요. 각자 소견대로 살던 시대 한복판에서 하나님은 조용히 왕의 족보를 이어 가고 계셨어요. 그 족보의 끝에 우리를 다스리시는 참 왕 예수 그리스도가 계세요.

“여호와께서
너희를 다스리시리라” (8:23)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