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31

요한삼서,
문을 열라는
편지

나그네 된 형제들을 맞아들이라고 부탁한,
세 사람의 이름이 적힌 한 장짜리 편지

요한삼서 1–15절
여는 글

요한삼서는 헬라어 단어 수로 따지면 신약에서 가장 짧은 책이에요. 그런데 이 짧은 편지에 교회 이야기가 실명으로 나와요. 칭찬받는 가이오, 문제를 일으킨 디오드레베, 좋은 평판을 받는 데메드리오. 😄 요즘 같으면 “실명은 좀…” 하고 이니셜로 처리했을 텐데, 요한 할아버지는 이름을 그대로 적었어요.

요한이서가 거짓 교사에게 “문을 닫으라”는 편지였다면, 요한삼서는 참된 전도자들에게 “문을 열라”는 편지예요. 두 편지를 나란히 놓으면 교회의 문이 언제 닫히고 언제 열려야 하는지 보여요.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인사말, 예수님의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오는데 “그 이름”으로 가득한 편지, 으뜸이 되고 싶었던 사람까지, 요한삼서의 숨은 이야기를 따라가 볼게요.

1부

요한삼서는 어떤 책일까?

나그네를 대접한 한 성도에게 보낸 따뜻한 격려 편지

요한삼서도 요한이서처럼 “장로”가 쓴 편지예요(1절). 1세기 끝 무렵, 요한이 에베소를 중심으로 아시아 지방의 교회들을 돌보던 때로 봐요. 이번에는 교회가 아니라 가이오라는 한 사람에게 보낸 개인 편지예요. 그때 요한은 복음을 전하도록 순회 전도자들을 여러 교회로 보냈어요. 가이오는 이 나그네 형제들을 기쁘게 맞아 대접했어요. 그런데 같은 지역 교회의 지도자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편지도, 요한이 보낸 형제들도 받아들이지 않았고, 맞아들이려는 성도들까지 교회에서 내쫓았어요(9-10절). 요한은 가이오를 격려하고, 데메드리오를 추천하며, 곧 찾아가겠다고 약속해요.

세 사람의 이름가이오는 칭찬받는 사람, 디오드레베는 책망받는 사람, 데메드리오는 추천받는 사람이에요. 짧은 편지가 세 사람의 이야기로 짜여 있어요.
요한이서와 쌍둥이“장로”라는 자기소개,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 “쓸 것이 많으나”, “대면하여 말하리라”까지 요한이서와 표현이 꼭 닮았어요. 같은 사람이 비슷한 때에 쓴 편지로 봐요.

※ 4세기 문헌 「사도 헌장」은 사도 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을 버가모의 감독으로 세웠다고 전하지만, 요한삼서의 가이오와 같은 사람인지는 알 수 없어요.

요한삼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가장 적은 단어
헬라어 단어 수로 신약에서 가장 짧은 책이에요.
2
한 사람에게 보낸 편지
빌레몬서처럼 한 성도에게 보낸 개인 편지예요.
3
실명으로 나오는 교회 이야기
칭찬도 책망도 이름을 걸고 해요. 교회의 민낯이 그대로 보여요.
4
나그네 대접
복음 전하는 형제들을 맞아들이고 보내는 일이 편지의 중심이에요.
5
예수님 이름이 없는 책
신약에서 “예수”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한 번도 안 나오는 유일한 책이에요.

요한삼서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이는 그들이 주의 이름을 위하여 나가서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함이라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7-8절). 문을 열어 형제를 맞아들이는 작은 대접이, 온 세상에 예수님의 이름을 전하는 일에 함께하는 길이 돼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흔한 인사말부터 이름을 부르는 끝인사까지

1

흔한 편지 인사말,
그런데 기준이 “영혼”이다

요한삼서 1-2절 · 로마서 1:10
당시 편지의 흔한 인사
“무엇보다 먼저 그대가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VS
요한삼서 2절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됨 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2절). 한국 교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구절 가운데 하나지요. 그런데 이집트 사막에서 발견된 1-2세기 파피루스 편지들을 보면 재밌는 사실이 나와요. 당시 사람들은 편지 첫머리에 거의 공식처럼 이렇게 썼어요. “무엇보다 먼저 그대가 건강하기를 기도합니다.” 😄 요즘 “안녕하세요, 건강하시지요?”로 편지를 시작하는 것과 비슷해요.

요한도 그 흔한 인사 형식을 그대로 썼어요. 그러니까 이 구절은 원래 사랑하는 사람에게 건네는 따뜻한 안부였어요. 그런데 요한은 딱 한 가지를 바꿨어요. 기준을 넣었어요. “네 영혼이 잘됨 같이.” 가이오의 영혼은 이미 잘되고 있었어요. 진리 안에서 걷고 있었으니까요(3절). 요한은 그 영혼의 형편만큼 삶의 형편도 좋기를 빌어요.

“잘되다”는 유오도오예요. “좋은 길을 가다”라는 뜻이에요. 바울이 로마에 갈 “좋은 길 얻기를 구하노라”(롬 1:10)고 할 때도 같은 단어예요. 이 구절을 돈과 성공을 약속하는 공식으로만 읽으면 아쉬워요. 요한이 먼저 본 것은 가이오의 통장이 아니라 영혼이었어요. 삶의 길이 열리는 것도 귀하지만, 그보다 먼저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잘되는 것이 기준이에요.

돌아보기
형편이 잘되기를 구하기 전에, 먼저 내 영혼이 하나님 앞에서 진리 안에 잘 걷고 있는지 돌아봅니다.
2

“이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
노사도의 자녀 자랑

요한삼서 3-4절 · 요한이서 4절 · 고린도전서 4:15

가이오 소식은 형제들을 통해 요한에게 들려왔어요. “형제들이 와서 네게 있는 진리를 증언하되 네가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니 내가 심히 기뻐하노라”(3절). 가이오 집에서 대접받고 돌아온 전도자들이 입을 모아 칭찬했나 봐요. 😄 “장로님, 가이오 형제 집 밥이 정말 최고였어요. 그런데 밥보다 그 사람이 더 좋았어요.”

그리고 요한은 자기 인생의 가장 큰 기쁨을 고백해요. “내가 내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함을 듣는 것보다 더 기쁜 일이 없도다”(4절). 여기서 “내 자녀들”은 요한이 복음으로 낳은 영적인 자녀들을 말해요. 바울도 고린도 성도들에게 “내가 복음으로써 너희를 낳았음이라”(고전 4:15)고 했지요. 늙은 사도에게는 큰 교회도, 명예도 아닌, 자녀들이 진리 안에서 걷는다는 소식이 가장 기쁜 소식이었어요.

재밌는 건 “행한다”는 말이에요. 요한은 가이오가 진리를 “안다”고 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 곧 걸어간다고 해요. 가이오의 진리는 식탁에서, 문 앞에서, 나그네를 맞는 손길에서 보였어요. 요한의 기쁨은 결국 하나님 아버지의 기쁨을 닮았어요. 우리 아버지께서도 자녀들이 아들의 진리 안에서 걸어갈 때 기뻐하세요.

돌아보기
진리를 아는 것에 머물지 않고, 오늘 내 식탁과 문 앞에서 진리 안에 걸어가는 삶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합니다.
3

“하나님께 합당하게 전송하라”,
초대교회의 선교 후원

요한삼서 5-8절 · 로마서 15:24 · 디도서 3:13

가이오가 한 일은 “형제 곧 나그네 된 자들에게 행하는” 신실한 일이었어요(5절). 요한은 한 걸음 더 부탁해요. “네가 하나님께 합당하게 그들을 전송하면 좋으리로다”(6절). “전송하다”는 프로펨포인데, 문 앞에서 손 흔들어 주는 배웅 정도가 아니에요. 다음 사역지까지 갈 수 있도록 먹을 것과 필요한 것을 챙겨서 보내 주는 거예요. 바울도 로마 교회에 스페인으로 “너희가 그리로 보내 주기를”(롬 15:24) 바랐고, 디도에게 세나와 아볼로를 “부족함이 없게” 보내라고 부탁했어요(딛 3:13). 초대교회의 선교 후원이었던 거예요.

기준도 멋져요. “하나님께 합당하게.” 😄 대충 싸 주는 도시락이 아니라, 하나님을 대접하듯 준비해서 보내라는 거예요. 이유는 7절에 나와요. 이 형제들은 “이방인에게 아무것도 받지 아니”했어요. 복음을 팔아 돈을 벌지 않으려고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손을 벌리지 않았던 거예요. 그러니 교회가 그들을 돌보는 것이 마땅했어요.

물론 이 좋은 풍습을 악용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2세기 로마의 풍자 작가 루키아노스는 페레그리누스라는 사기꾼이 그리스도인들의 순진한 친절을 이용해 한몫 챙겼다고 비꼬아 썼어요. 그래서 요한이서는 “문을 닫으라”고, 요한삼서는 “문을 열라”고 해요. 기준은 같아요. 그 사람이 무엇을 위해 왔느냐예요. 그리고 요한은 문을 여는 사람을 이렇게 불러요.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8절). 직접 떠나지 않아도, 떠나는 사람을 보내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교에 함께하는 동역자예요.

※ 루키아노스의 글(「페레그리누스의 죽음」)은 그리스도인을 비웃으려고 쓴 풍자라서 과장이 섞여 있어요. 그래도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나그네와 갇힌 자를 아낌없이 도왔다는 사실은 오히려 잘 보여 줘요.

돌아보기
복음을 위해 떠난 사람들을 기도와 물질로 “하나님께 합당하게” 보내며, 보내는 자리에서 진리의 동역자로 섭니다.
4

예수님 이름이 한 번도 없는 책,
그런데 “그 이름”을 위하여

요한삼서 7절 · 사도행전 5:41 · 빌립보서 2:9-10

요한삼서에는 신약의 다른 책에 없는 특징이 하나 있어요. “예수”라는 이름도, “그리스도”라는 호칭도 한 번도 나오지 않아요. 😄 신약 스물일곱 권 가운데 유일해요. 그렇다면 요한삼서는 예수님과 상관없는 편지일까요?

7절을 보면 달라져요. 개역개정은 “주의 이름을 위하여”라고 옮겼지만, 헬라어 원문에는 “주의”라는 말이 없어요. 그냥 “그 이름을 위하여”예요. 이름을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아는 이름, 초대교회에서 “그 이름”이라고 하면 누구를 가리키는지 설명이 필요 없었어요. 사도들이 공회에서 매를 맞고 나올 때도 “그 이름을 위하여 능욕 받는 일에 합당한 자로 여기심을 기뻐하면서”(행 5:41) 나왔어요.

그러니까 요한삼서는 예수님 이름이 없는 책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름 때문에 움직이는 책이에요. 형제들이 길을 떠난 것도, 가이오가 문을 연 것도, 요한이 편지를 쓴 것도 다 “그 이름”을 위해서였어요. 하나님은 그 이름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빌 2:9)으로 높이셨어요. 짧은 편지 속에 조용히 숨어 있지만, 요한삼서의 중심에도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예수님의 이름이 있어요.

돌아보기
내가 하는 작은 섬김과 수고가 누구의 이름을 위한 것인지 돌아보고, 그 이름, 예수님의 이름을 높입니다.
5

으뜸 되기를 좋아한 사람,
그 자리는 한 분의 것

요한삼서 9-10절 · 골로새서 1:18 · 마가복음 10:43-45
디오드레베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요삼 9절)
VS
예수 그리스도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이제 문제의 인물이 나와요.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 썼으나 그들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맞아들이지 아니하니”(9절). 디오드레베는 요한의 편지를 무시하고, 요한을 악한 말로 비방하고, 형제들을 맞아들이지 않고, 맞아들이려는 사람들까지 교회에서 내쫓았어요(10절). 이름의 뜻도 재밌어요. 디오드레베는 “제우스가 기른 자”라는 뜻이에요. 😄 이름부터 교회와는 좀 안 맞았네요.

문제의 뿌리는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마음이었어요. 헬라어로는 필로프로튜오, “첫째 자리를 사랑하다”라는 한 단어예요. 신약에서 여기에만 나와요. 그런데 이 단어의 뒷부분 “으뜸이 되다”(프로튜오)가 신약에 딱 한 번 더 나와요. 바로 그리스도에 대해서예요. “그는 몸인 교회의 머리시라… 이는 친히 만물의 으뜸이 되려 하심이요”(골 1:18).

그러니까 디오드레베는 교회에서 오직 한 분만 앉으실 수 있는 자리를 탐낸 거예요. 교회의 으뜸 자리는 이미 주인이 계세요.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막 10:44) 하시고, 친히 섬기러 오셨어요(막 10:45). 교회에서 우리가 설 자리는 첫째 자리가 아니라 으뜸이신 그리스도 아래 섬기는 자리예요.

※ 9절에서 요한이 “두어 자를 교회에 썼다”는 편지가 요한이서인지, 지금은 남아 있지 않은 다른 편지인지는 알 수 없어요.

돌아보기
교회와 가정에서 내가 첫째 자리를 탐내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고, 으뜸이신 그리스도께 자리를 내어 드리며 섬깁니다.
6

에베소의 또 다른 데메드리오,
그리고 한 장의 추천서

요한삼서 11-12절 · 사도행전 19:24-27 · 로마서 16:1-2 · 고린도후서 3:1-3

요한은 디오드레베 이야기를 마치자마자 이렇게 말해요. “사랑하는 자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라”(11절). 그리고 본받을 사람을 한 명 소개해요. “데메드리오는 뭇 사람에게도, 진리에게서도 증거를 받았으매 우리도 증언하노니”(12절). 모든 사람, 진리 자체, 그리고 요한까지 세 겹으로 보증을 받은 사람이에요.

그런데 성경에는 에베소와 관련된 데메드리오가 한 명 더 나와요. 사도행전 19장의 은장색 데메드리오예요. 은으로 아데미 신상 모형을 만들어 팔던 사람인데, 바울의 복음 때문에 장사가 안되자 동업자들을 모아 온 도시를 들썩이게 만들었지요(행 19:24-27). 데메드리오라는 이름은 곡식의 여신 “데메테르”에서 온 흔한 이름이었어요. 😄 같은 에베소 땅에 복음을 막아선 데메드리오와, 진리에게서 증거를 받은 데메드리오가 있었던 거예요.

데메드리오는 아마 이 편지를 들고 가이오에게 간 사람이었을 거예요. 그렇다면 요한삼서는 한 장의 추천서이기도 해요. 바울이 뵈뵈를 로마 교회에 추천했듯이(롬 16:1-2), 초대교회는 편지로 형제를 소개했어요. 하지만 바울은 가장 좋은 추천서는 종이가 아니라 사람이라고 했어요.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그리스도의 편지”(고후 3:2-3). 데메드리오의 가장 큰 추천서도 그의 삶이었어요. 누가 우리를 보증할 수 있을까요? 결국 우리를 참으로 증언하시는 분은 진리이신 하나님이세요.

※ 사도행전의 은장색 데메드리오와 요한삼서의 데메드리오가 같은 사람이라는 증거는 없어요. 흔한 이름이었기 때문에 다른 사람으로 보는 것이 자연스러워요. 데메드리오가 편지를 전한 사람이라는 것도 본문에서 추정한 것이에요.

돌아보기
악한 것이 아니라 선한 것을 본받으며, 내 삶이 그리스도를 보여 주는 한 장의 편지가 되기를 구합니다.
7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

요한삼서 13-15절 · 요한복음 10:3 · 15:14-15

요한삼서의 끝은 요한이서와 거의 똑같아요. “내가 네게 쓸 것이 많으나 먹과 붓으로 쓰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속히 보기를 바라노니 또한 우리가 대면하여 말하리라”(13-14절). 요한이서에서는 “종이와 먹”이었는데, 이번에는 “먹과 붓”이에요. 여기서 붓은 갈대를 깎아 만든 펜이에요. 😄 쌍둥이 편지가 끝인사까지 닮았어요.

그런데 마지막 인사가 특별해요. “평강이 네게 있을지어다 친구들이 네게 문안하느니 너는 친구들의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15절). 신약의 편지들은 대개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는데, 여기서는 “친구들”이에요. 요한은 예수님이 마지막 밤에 하신 말씀을 기억했을지도 몰라요. “너희는 내가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너희를 친구라 하였노니”(요 15:14-15). 예수님이 먼저 제자들을 친구라 불러 주셨기 때문에, 성도들도 서로 친구가 되었어요.

“이름을 들어” 문안하라는 말도 따뜻해요. “모두에게 안부 전해 줘” 하고 뭉뚱그리지 말고,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을 불러 인사하라는 거예요. 디오드레베가 사람을 내쫓던 교회에서, 요한은 이름을 부르는 교회를 꿈꿨어요. 그것은 선한 목자이신 예수님을 닮은 모습이에요. “그는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3). 교회는 우리의 이름을 아시고 부르시는 목자를 따라, 서로의 이름을 불러 주는 곳이에요.

돌아보기
나를 친구라 부르시고 내 이름을 아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오늘 한 사람의 이름을 불러 안부를 전합니다.
맺는 글
닫아야 할 문이 있고,
활짝 열어야 할 문이 있다

요한이서와 요한삼서는 짧은 두 편지지만 함께 읽으면 교회의 문 이야기가 돼요. 예수님을 부인하는 가르침 앞에서는 문을 닫고, 그 이름을 위해 길을 떠난 형제들 앞에서는 문을 활짝 열어요. 그 문지기의 기준은 언제나 “진리”, 곧 예수 그리스도세요.

가이오의 열린 문은 작았어요. 식탁 하나, 방 한 칸, 길 떠나는 사람의 도시락 하나였어요. 하지만 그 작은 문을 통해 복음이 다음 마을로 흘러갔어요. 우리가 열어 드리는 작은 문도 그래요. 그 문으로 드나드시는 분은 결국 우리가 아니라, 그 이름을 온 세상에 알리시는 하나님이세요.

“그러므로 우리가 이 같은 자들을 영접하는 것이 마땅하니
이는 우리로 진리를 위하여 함께 일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라” (8절)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