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초부터 계신 말씀을
손으로 만져 보았다
요한일서의 첫 문장은 점점 가까이 다가가요. “태초부터 있는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우리가 들은 바요 눈으로 본 바요 자세히 보고 우리의 손으로 만진 바라”(1:1). 멀리서 듣던 소리가, 눈앞의 모습이 되고, 오래 바라보다가, 마침내 손끝에 닿아요. 요한복음이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요 1:1)로 시작했다면, 요한일서는 그 말씀을 만져 본 사람의 증언으로 시작해요.
“만지다”는 프셀라파오예요. 이 단어가 재밌어요. 부활하신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나를 만져 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눅 24:39) 하실 때 같은 단어가 쓰였어요. 그리고 바울이 아덴 사람들에게 “사람으로 혹 하나님을 더듬어 찾아 발견하게 하려 하심”(행 17:27)이라고 할 때도 같은 단어예요. 😄 아덴 사람들은 어둠 속에서 하나님을 더듬고 있었는데, 요한은 그분을 실제로 손으로 만져 봤다는 거예요.
요한이 이렇게 몸의 감각을 강조한 데는 이유가 있어요. 그때 “하나님의 아들이 진짜 몸을 입었을 리 없다, 그렇게 보였을 뿐이다”라고 가르치는 사람들이 있었거든요. 요한은 말해요. 아니다, 내 손이 그분을 만졌다. 기독교는 좋은 생각이나 신비한 체험에서 출발하지 않아요.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신(요 1:14) 역사적인 사실에서 출발해요.
※ 예수님이 몸을 가진 것처럼 “보였을 뿐”이라는 주장을 교회사에서는 가현설(헬라어 도케오, “~처럼 보이다”)이라고 불러요. 요한일서가 맞선 거짓 가르침이 정확히 어떤 형태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