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에 매단 붉은 “줄”은
히브리어로 “소망”과 같은 단어였다
여호수아는 요단을 건너기 전에 정탐꾼 두 사람을 여리고로 보내요. 그들이 숨어든 곳은 성벽에 붙은 기생 라합의 집이었어요(2:15). 왕의 신하들이 들이닥치자 라합은 정탐꾼들을 지붕 위 삼대 사이에 숨기고, 그들이 이미 성문을 나갔다고 둘러대요. 그리고 놀라운 고백을 해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2:11). 사십 년 전 홍해 소식을 듣고 온 성이 떨었지만, 그 소식을 믿음으로 받은 사람은 라합 한 사람이었어요.
정탐꾼들은 약속의 표시로 창문에 “붉은 줄”을 매라고 해요(2:18). 여기서 “줄”로 옮긴 히브리어 티크바는 구약의 다른 곳에서 거의 다 “소망”이라는 뜻으로 쓰여요. “줄”을 잡아당기듯 무언가를 간절히 기다리는 마음이 같은 단어에 담긴 거예요. 라합의 집 창문에 걸린 것은 붉은 끈이자, 이방 여인이 붙든 소망이었어요. 그 붉은 줄은 유월절 밤 문설주에 발랐던 붉은 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해요.
성벽이 무너지던 날, 성벽에 붙어 있던 라합의 집과 가족은 살아남아요(6:22-25). 이야기는 거기서 끝나지 않아요. 마태복음 1장의 예수님 족보에 이런 줄이 있어요. “살몬은 라합에게서 보아스를 낳고”(마 1:5). 여리고의 기생이 다윗 왕의 고조할머니가 되고, 메시아의 족보에 이름을 올린 거예요. 히브리서는 그녀를 믿음의 사람으로(히 11:31), 야고보서는 믿음을 행함으로 보여 준 사람으로(약 2:25) 기억해요.
※ 붉은 줄을 그리스도의 피와 연결하는 해석은 1세기 말 로마의 클레멘스가 쓴 편지에도 나오는 오래된 해석이에요. “줄”과 “소망”이 같은 단어라는 점을 여기에 연결하는 것은 해석의 영역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