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25

야고보서,
형을 "주"라고
부른 동생

미쳤다며 형을 붙잡으러 갔던 동생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어 쓴 편지

야고보서 1–5장
여는 글

야고보서를 쓴 야고보는 예수님의 친동생이에요. 한 집에서 같이 자라고, 같은 밥을 먹고, 어쩌면 같은 목공소에서 일했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이 동생이 편지 첫 줄에 자기를 이렇게 소개해요.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1:1). "예수의 동생"이라고 하면 누구나 알아줬을 텐데, 그 말은 한 번도 안 해요. 😄 형을 "주"라고, 자기를 "종"이라고 불러요.

이 편지는 다섯 장에 명령문이 쉰 개가 넘을 만큼 단도직입적이에요. "기쁘게 여기라", "행하는 자가 되라", "혀를 조심하라"… 그래서 잔소리 편지처럼 느껴질 수도 있어요. 그런데 가만히 읽으면 그 안에 형님의 목소리가 들려요. 산상수훈의 메아리, 금가락지 낀 손님, 바울과의 오해, 작은 불씨, 그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까지요. 형을 믿지 않던 동생이 어떻게 이런 편지를 쓰게 됐는지, 그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 볼게요.

1부

야고보서는 어떤 책일까?

흩어진 성도들에게 보낸 "믿음의 실천 편지"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의 기둥 같은 지도자였어요. 바울은 그를 "주의 형제 야고보"(갈 1:19)라고 부르고, 게바와 요한과 함께 "기둥 같이 여기는"(갈 2:9) 사람이라고 해요. 예루살렘 회의에서 이방인 성도 문제에 결론을 낸 사람도 야고보였어요(행 15:13-21). 이 편지는 "흩어져 있는 열두 지파"(1:1), 곧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 성도들에게 보낸 거예요. 가난과 차별, 부자들의 억압, 말다툼으로 힘들어하던 교회들이었어요. 신약 서신 가운데 가장 이른 편지로 보는 학자도 많아요.

이름의 뜻"야고보"는 헬라어로 이아코보스, 곧 구약의 "야곱"이에요. 열두 아들을 낳아 열두 지파의 조상이 된 야곱처럼, 야고보는 "열두 지파"에게 편지를 써요. 이름부터 이스라엘의 냄새가 나요.
"지푸라기 서신"?종교개혁자 루터는 1522년 신약 성경 서문에서 야고보서를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에 비하면 "지푸라기 서신"이라고 불렀어요. 믿음보다 행함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였거든요. 그래도 루터는 이 책을 성경에서 빼지 않았어요.

※ 신약에는 야고보라는 사람이 여럿 나와요.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는 주후 44년 무렵 일찍 순교했기 때문에(행 12:2), 전통적으로 주의 형제 야고보를 저자로 봐요. 기록 연대는 40년대 중반부터 60년대 초까지 학자들의 견해가 나뉘어요.

야고보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명령문 가득
108절에 명령문이 쉰 개가 넘어요. 거의 두 절에 한 번씩 "하라"가 나와요.
2
산상수훈의 메아리
예수님이 산 위에서 하신 말씀이 곳곳에 울려요. 형님의 설교를 동생이 다시 풀어낸 것 같아요.
3
그림 같은 비유
바다 물결, 들풀, 말 재갈, 배의 키, 작은 불, 샘물, 안개, 농부… 눈에 보이는 그림으로 말해요.
4
행함 있는 믿음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2:17). 살아 있는 믿음은 움직여요.
5
가난한 자의 편
차별받는 가난한 성도를 편들고, 품삯을 떼먹는 부자들을 엄하게 꾸짖어요(2:1-7; 5:1-6).

야고보서의 중심에는 이 말씀이 있어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1:22). 그런데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사람 자랑이 아니에요.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오나니"(1:17).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요. 행함은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의 살아 있는 반응이에요.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형을 믿지 않던 동생부터 이른 비와 늦은 비까지

1

"형이 미쳤다"던 동생이
형을 "영광의 주"라 부르기까지

마가복음 3:21 · 요한복음 7:3-5 · 고린도전서 15:7 · 사도행전 1:14 · 야고보서 1:1 · 2:1
예수님 공생애 때
"이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VS
야고보서 첫 줄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 야고보는"(1:1)

예수님의 동생들은 처음에 형을 믿지 않았어요.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자 가족들은 "그가 미쳤다"며 붙잡으러 나왔어요(막 3:21). 초막절 때는 동생들이 형에게 유대로 올라가서 하는 일을 세상에 나타내 보라고 부추기기도 했어요. 요한은 그 이유를 짧게 적어요. "그 형제들까지도 예수를 믿지 아니함이러라"(요 7:5). 😄 솔직히 한집에서 같이 자란 형이 메시아라니, 믿기 쉽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데 무엇이 야고보를 바꿨을까요? 바울이 전하는 부활의 증인 명단에 한 줄이 있어요.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고전 15:7). 부활하신 예수님이 믿지 않던 동생을 찾아가신 거예요. 그 만남에서 무슨 말이 오갔는지는 성경이 말하지 않아요. 하지만 그다음 장면은 나와요.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 다락방에서 기도하던 무리 가운데 "예수의 아우들"(행 1:14)이 함께 있었어요.

그리고 몇 해 뒤 야고보는 편지를 써요. 자기를 "종"이라고 부르고, 형을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2:1)라고 불러요. 형이라는 관계보다 주님이라는 고백이 더 중요해진 거예요. 가장 가까이에서 예수님을 보고도 믿지 못했던 사람을, 부활의 주님이 찾아가 주님의 종으로 바꾸셨어요.

※ 예수님의 "형제들"(마 13:55)이 마리아가 낳은 친동생들인지, 요셉의 전처 소생인지, 사촌인지에 대해서는 교회사 속에서 견해가 나뉘어 왔어요. 개신교에서는 대체로 마리아와 요셉 사이에서 태어난 동생들로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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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지 않던 동생을 찾아가신 부활의 주님이 나도 찾아와 주셨음을 기억하며, 예수님을 나의 주님으로 고백합니다.
2

"의인 야고보"의
낙타 무릎

야고보서 5:16-18 · 열왕기상 18–19장

야고보는 교회 밖에서도 존경받았어요. 1세기 유대 역사가 요세푸스는 『유대 고대사』에서 야고보의 죽음을 기록했어요. 주후 62년, 유대 총독 베스도가 죽고 새 총독이 아직 도착하지 않은 틈에, 대제사장 아나누스가 공회를 모아 "그리스도라 불리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라는 이름의 사람"을 돌로 치게 했다고요.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 일에 분개한 예루살렘 사람들이 아그립바 왕과 새 총독에게 호소했고, 결국 아나누스는 석 달 만에 대제사장 자리에서 쫓겨났어요.

2세기 교회사가 헤게십포스는 야고보가 "의인"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고 전해요. 그리고 재밌는 이야기를 하나 남겼어요. 야고보가 성전에 들어가 무릎 꿇고 백성의 용서를 구하며 얼마나 오래 기도했던지, 무릎이 낙타 무릎처럼 굳은살로 딱딱해졌대요. 😄 그래서 "낙타 무릎 야고보"라는 별명이 생겼어요.

그 이야기를 알고 야고보서 5장을 읽으면 느낌이 달라요. "의인의 간구는 역사하는 힘이 큼이니라"(5:16). 그리고 엘리야를 예로 들어요. "엘리야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사람이로되 그가 비가 오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한즉 삼 년 육 개월 동안 땅에 비가 오지 아니하고"(5:17). 엘리야도 우리처럼 두려워하고 지쳐서 로뎀 나무 아래 누웠던 사람이에요. 야고보가 말하려는 건 기도하는 사람이 대단하다는 게 아니에요.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대단하시다는 거예요.

※ 요세푸스의 기록은 역사 자료로 널리 인정받아요. "낙타 무릎"과 성전 꼭대기에서 떨어뜨려졌다는 순교 장면은 헤게십포스의 기록이 교회사가 유세비우스의 책에 인용되어 전해진 전승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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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성정이 같은 엘리야의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이 오늘 나의 기도도 들으심을 믿고 무릎을 꿇습니다.
3

"문안" 다음에 "기쁨",
꼬리에 꼬리를 무는 말 사슬

야고보서 1:1-8 · 4:8
1:1"문안하노라" — 카이레인
1:2"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 카라
1:4"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 레이포메노이
1:5"지혜가 부족하거든 … 구하라" — 레이페타이

야고보서 1장은 헬라어로 읽으면 말이 사슬처럼 이어져 있어요. 1절 끝 "문안하노라"는 카이레인, 곧 "기뻐하라"는 인사말이에요. 그러고 바로 2절이 "기쁨"(카라)으로 시작해요. 4절 끝이 "부족함이 없게"로 끝나면, 5절은 "부족하거든"으로 받아요. 5절이 "구하라"로 끝나면, 6절은 "구하고"로 이어요. 😄 앞 문장 꼬리를 뒤 문장이 물고 가는 끝말잇기예요.

이 사슬이 말하는 흐름은 이래요. 시험을 만나도 기뻐하세요. 시험은 인내를 만들고, 인내는 우리를 부족함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요. 그런데 그 과정에서 지혜가 부족하면요? 하나님께 구하세요. 하나님은 "모든 사람에게 후히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1:5) 분이에요. 몇 번을 구해도 "또 왔니?" 하지 않으세요.

다만 한 가지 조건이 있어요. 의심하지 말고 믿음으로 구하래요. 의심하는 사람은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1:8)예요. "두 마음"은 딥쉬코스, 직역하면 "영혼이 둘인 사람"이에요. 한 발은 하나님께, 한 발은 세상에 걸친 사람은 바람에 밀리는 바다 물결처럼 이리저리 흔들려요. 그래서 4장에서 야고보는 이렇게 불러요. "하나님을 가까이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하시리라 …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하게 하라"(4:8). 흔들리는 마음이 붙잡을 곳은 변함이 없으신 하나님(1:17)이에요.

※ "딥쉬코스"는 지금 남아 있는 헬라어 문헌 가운데 야고보서에서 처음 나타나는 단어예요. 야고보가 직접 만든 말인지는 확실하지 않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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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중에 지혜가 부족할 때, 꾸짖지 않고 후히 주시는 하나님께 한 마음으로 구합니다.
4

동생의 편지에서 들리는
형님의 산상수훈

야고보서 1:2 · 2:5 · 5:2 · 5:12 · 마태복음 5–7장
형님 예수님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마 5:37)
VS
동생 야고보
"그렇다 하는 것은 그렇다 하고 아니라 하는 것은 아니라 하여"(5:12)

야고보서는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인용한다고 밝히지 않아요. 그런데 읽다 보면 어디서 많이 들은 말이 계속 나와요. 맹세하지 말라는 말(5:12), 시험 중에도 기뻐하라는 말(1:2과 마 5:11-12), 가난한 자가 나라를 상속한다는 말(2:5과 마 5:3), 재물이 좀먹는다는 말(5:2과 마 6:19), 비판하지 말라는 말(4:11-12과 마 7:1)까지요. 학자들은 야고보서에 산상수훈과 닮은 구절이 스무 곳 안팎이라고 해요.

이게 재밌는 이유가 있어요. 야고보서는 신약 서신 중에서 예수님의 이름이 두 번밖에 안 나오는 책이에요(1:1; 2:1). 😄 그래서 "예수님 이야기가 별로 없는 책"이라는 말도 들어요. 그런데 이름은 두 번이지만, 목소리는 처음부터 끝까지 들려요. 동생은 형님의 설교를 외워서 인용한 게 아니라, 그 말씀으로 자기 삶이 빚어진 사람처럼 써요.

한때 형을 믿지 않았던 동생이, 이제는 형님이 가르친 말씀을 흩어진 교회들에게 전하고 있어요. 산 위에서 하신 예수님의 말씀이 동생의 편지를 통해 온 세상 교회로 흘러간 거예요.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사람을 바꾸고, 그 사람을 통해 흘러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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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말씀을 머리로만 기억하지 않고, 그 말씀이 내 말과 삶에 배어 나오도록 순종합니다.
5

교회 "회당"에 들어온
금손가락 손님

야고보서 2:1-9

2장에 짧은 촌극이 나와요. "만일 너희 회당에 금 가락지를 끼고 아름다운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오고 또 더러운 옷을 입은 가난한 사람이 들어올 때에"(2:2). 부자에게는 "여기 좋은 자리에 앉으라",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내 발등상 아래에 앉으라"(2:3). 😄 안내 위원의 얼굴이 눈에 선해요.

여기 숨은 단어가 두 개 있어요. 먼저 "회당"이에요. 야고보는 성도들의 모임을 쉬나고게, 곧 회당이라고 불러요. 신약에서 교회 모임을 이 단어로 부른 곳은 여기뿐이에요. 유대인 성도들이 처음 모이던 초창기 교회의 모습이 살짝 보여요. 또 하나는 "금 가락지를 낀"이라는 말이에요. 헬라어로는 크뤼소닥튈리오스, 직역하면 "금손가락"이에요. 성경 전체에서 여기 한 번 나오는 단어예요. 로마 사회에서 금반지는 높은 신분을 나타내는 표시이기도 했어요. 손가락마다 반지를 번쩍이며 들어온 손님이 떠올라요.

야고보는 이렇게 사람을 차별하면 "영광의 주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2:1)를 믿는 믿음과 맞지 않는다고 해요. 영광의 주님은 부자의 옷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어요. "하나님이 세상에서 가난한 자를 택하사 믿음에 부요하게 하시고"(2:5). 교회의 좋은 자리는 반지 낀 손이 아니라, 주님이 택하신 사람을 위한 자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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옷차림이나 형편으로 사람을 대하지 않고, 영광의 주님이 사랑하시는 한 사람으로 이웃을 맞이합니다.
6

바울과 야고보는
정말 다른 말을 했을까?

야고보서 2:14-26 · 로마서 4:1-5 · 창세기 15:6 · 22:1-19 · 히브리서 11:31
바울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얻는 것은 율법의 행위에 있지 않고 믿음으로 되는 줄"(롬 3:28)
VS
야고보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2:24)

이 두 구절을 나란히 놓으면 싸우는 것처럼 보여요. 😄 루터가 야고보서를 "지푸라기"라고 부른 것도 이 때문이었어요. 그런데 둘 다 아브라함을 예로 드는데, 보고 있는 장면이 달라요. 바울은 창세기 15장을 봐요. 아브라함이 아무것도 하기 전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자 "이것을 그의 의로 여기시고"(창 15:6). 야고보는 창세기 22장을 봐요. 여러 해가 지나 그 믿음이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순종으로 드러난 장면이에요.

그리고 야고보도 창세기 15:6을 똑같이 인용해요(2:23).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은 야고보도 인정해요. 다만 그 믿음이 진짜라면 반드시 삶으로 드러난다는 거예요. 야고보가 싸우는 상대는 바울이 아니라 입으로만 믿는다는 사람이에요.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2:19). 귀신도 하나님이 한 분이신 줄은 알거든요. 바울이 말하는 행위는 구원을 얻으려는 행위이고,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구원받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열매예요.

재밌는 연결고리가 하나 더 있어요. 야고보가 아브라함 다음에 드는 예가 "기생 라합"(2:25)이에요. 히브리서 11:31도 라합을 믿음의 사람으로 소개했어요. 히브리서는 라합의 "믿음"을, 야고보서는 라합의 "행함"을 말해요. 같은 사람, 같은 사건이에요. 라합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에 정탐꾼을 숨겼어요. 믿음과 행함은 한 사람 안에서 하나였어요.

※ 야고보가 바울의 가르침을 오해한 사람들을 염두에 두고 썼는지, 바울 서신과 상관없이 따로 썼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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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믿음으로 받은 구원에 감사하며, 그 믿음이 오늘 내 손과 발로 드러나게 합니다.
7

작은 불씨 하나,
그리고 이른 비와 늦은 비

야고보서 3:3-10 · 5:7-11 · 신명기 11:14

3장에서 야고보는 혀를 세 가지로 그려요. 말의 입에 물리는 작은 재갈, 큰 배를 움직이는 작은 키, 그리고 작은 불씨예요. "보라 얼마나 작은 불이 얼마나 많은 나무를 태우는가"(3:5). 그리고 무서운 말이 이어져요. 혀는 "삶의 수레바퀴를 불사르나니 그 사르는 것이 지옥 불에서 나느니라"(3:6). 여기 "지옥"은 게헨나예요. 이 단어는 신약에 열두 번 나오는데, 열한 번은 복음서에서 예수님이 하신 말씀이고, 나머지 한 번이 여기예요. 신약에서 이 단어를 쓴 사람은 예수님과 동생 야고보뿐이에요.

야고보는 한 입의 모순도 꼬집어요.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3:9). 😄 주일 아침 찬양하던 입으로, 예배 끝나고 주차장에서 누구 흉을 보면 안 된다는 거예요. 한 샘에서 단물과 쓴물이 같이 나올 수 없으니까요(3:11).

5장에서 야고보는 농부를 불러와요.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5:7). 이스라엘 땅에는 가을에 씨 뿌릴 때 내리는 이른 비와, 봄에 이삭이 여물 때 내리는 늦은 비가 있어요. 둘 다 와야 추수를 할 수 있어요. 모세 때부터 하나님은 "너희의 땅에 이른 비, 늦은 비를 적당한 때에 내리시리니"(신 11:14)라고 약속하셨어요. 농부는 비를 만들 수 없어요. 약속하신 분을 믿고 기다릴 뿐이에요.

그리고 야고보는 말해요.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5:8). "보라 심판주가 문 밖에 서 계시니라"(5:9). 형님이 다시 오실 날을 동생은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그 기다림이 헛되지 않은 이유는 하나예요.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5:11). 늦은 비는 반드시 와요.

돌아보기
찬송하는 입으로 사람을 살리는 말을 하며,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약속하신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참고 기다립니다.
맺는 글
형을 믿지 못했던 동생이
형님의 말씀을 살아 냈다

야고보서는 잔소리 편지가 아니에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인생이 뒤집힌 사람이 쓴 편지예요. 한때 "형이 미쳤다"고 했던 동생이, 이제는 형을 "영광의 주"라고 부르며 무릎이 굳도록 기도했어요. 그래서 야고보는 "행하라"고 말할 자격이 있었어요. 자기가 먼저 그 말씀 앞에 무릎 꿇었으니까요.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우리 힘으로 쌓는 공로가 아니에요.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부터 내려온 좋은 선물을 받은 사람의 자연스러운 반응이에요. 뿌리가 살아 있으면 열매가 맺히듯, 영광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은 살아서 움직여요.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 (1:22)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