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24

히브리서,
간단히 썼다는
열세 장짜리 설교

이름을 숨긴 설교자가
"예수님이 더 나으시다"고 외친 책

히브리서 1–13장
여는 글

히브리서는 좀 이상한 책이에요. 편지라면서 첫머리에 "누가 누구에게"라는 인사가 없어요. 보낸 사람 이름도 끝까지 안 나와요. 그런데 마지막 장에 가서 이렇게 말해요. "내가 간단히 너희에게 썼느니라"(13:22). 열세 장을 써 놓고 간단히 썼대요. 😄 설교자들이 "짧게 하겠습니다" 하는 말이 그때부터 있었나 봐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면 한 가지 말이 계속 들려요. "더 나으시다." 예수님은 천사보다, 모세보다, 대제사장보다, 옛 언약보다 더 나으세요. 흔들리던 성도들에게 설교자는 "돌아가지 마세요, 예수님보다 나은 분은 없어요" 하고 붙잡아요. 그 설교 안에 숨은 이야기들이 있어요. ㅍ으로 시작하는 첫 문장, 이름 없는 설교자, 족보 없는 왕, 휘장 안에 걸린 닻, 신약에서 가장 긴 인용, 시간이 모자란 명예의 전당, 그리고 성문 밖의 십자가까지요.

1부

히브리서는 어떤 책일까?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보낸 "권면의 말"

히브리서를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은 지 꽤 된 성도들이었어요. 믿음 때문에 비방과 환난을 당하고, 재산을 빼앗기면서도 기쁘게 견딘 적이 있었어요(10:32-34).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지쳐 갔어요. 모이기를 그만두는 사람도 생겼고(10:25), 예수님을 떠나 옛 제사 제도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설교자는 구약 성경을 한 구절 한 구절 풀면서, 그 모든 것이 예수님을 가리키는 그림자였다고 보여 줘요. 책 속에 성전 제사가 아직 계속되는 것처럼 말하는 부분이 있어서(10:1-2), 많은 학자가 주후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무너지기 전에 쓴 것으로 봐요.

누가 썼을까?본문에는 저자 이름이 없어요. 옛날부터 바울, 바나바, 아볼로, 누가 등 여러 이름이 거론됐어요. 3세기 교부 오리게네스는 결국 이렇게 말했대요. "누가 이 편지를 썼는지는 참으로 하나님만 아신다."
왜 "히브리서"일까?"히브리인들에게"라는 제목은 나중에 붙은 거예요. 주후 200년 무렵의 파피루스 사본(P46)에는 이미 이 제목으로, 바울 서신들 사이 로마서 바로 뒤에 들어 있어요. 구약 제사와 제사장 이야기가 가득해서 유대인 성도들을 향한 글로 읽혔어요.

※ 저자는 지금도 알 수 없어요. 바나바설은 2~3세기 교부 테르툴리아누스가, 아볼로설은 종교개혁자 루터가 내놓은 견해예요. 받는 사람들이 어디 살았는지(로마 또는 팔레스타인 등)도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어요.

히브리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더 나은
"더 나은"이라는 말이 열 번 넘게 나와요. 더 나은 소망, 더 나은 언약, 더 나은 제물, 더 나은 본향이에요.
2
구약으로 푼 설교
시편 110편, 예레미야 31장, 창세기 14장… 구약 인용이 가득해요. 옛 말씀이 모두 예수님을 향해 있어요.
3
대제사장 예수
신약에서 예수님을 "대제사장"이라고 분명하게 부르는 책은 히브리서뿐이에요.
4
경고와 위로의 교차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2:1) 하라는 경고와 "담대히 나아가자"(4:16)는 위로가 번갈아 나와요.
5
믿음의 사람들
11장은 아벨부터 선지자들까지 "믿음으로"라는 말로 이어지는 믿음의 명예의 전당이에요.

히브리서의 중심에는 이 부탁이 있어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지쳐서 뒤돌아보고 싶을 때, 설교자는 우리의 눈을 예수님께 돌려놓아요. 그리고 흔들리는 성도들에게 흔들리지 않는 한 문장을 남겨요.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13:8).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ㅍ으로 시작하는 첫 문장부터 성문 밖의 십자가까지

1

첫 문장부터
"ㅍ" 소리로 운을 맞춘 설교

히브리서 1:1-3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1:1). 우리말로는 평범한 문장인데, 헬라어로 읽으면 소리가 재밌어요. 폴뤼메로스, 폴뤼트로포스, 팔라이, 파트라신, 프로페타이스. 중요한 단어 다섯 개가 모두 "ㅍ" 소리로 시작해요. 😄 설교자가 첫 문장부터 운을 맞춘 거예요. 히브리서가 신약에서 가장 세련된 헬라어로 쓰인 책으로 꼽히는 이유예요.

그런데 이 멋진 소리는 준비 운동이에요. 설교자가 정말 하고 싶은 말은 2절에 있어요. 옛날에는 여러 번, 여러 방법으로 조금씩 말씀하셨던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니"(1:2). 선지자들은 조각조각 말씀을 전했지만, 아들은 하나님의 말씀 그 자체예요.

3절은 그 아들을 이렇게 소개해요.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 여기 "형상"은 카락테르라는 단어인데, 원래 동전을 찍어 내는 틀이나 도장이 남긴 자국을 말해요. 영어 "캐릭터"가 여기서 나왔어요. 도장을 찍으면 도장 모양이 그대로 나오듯, 예수님을 보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대로 보여요.

돌아보기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궁금할 때, 하나님을 그대로 새겨 보여 주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2

이름은 숨기고
"권면의 말"만 남긴 설교자

히브리서 2:3 · 13:22-24 · 사도행전 13:15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
"만일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행 13:15)
VS
히브리서의 끝
"내가 너희에게 권면의 말을 용납하라"(13:22)

히브리서 저자는 자기 글을 "권면의 말"이라고 불러요. 그런데 이 말이 사도행전에도 나와요. 바울이 비시디아 안디옥 회당에 갔을 때, 성경 낭독이 끝나자 회당장들이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고 해요. 우리말 번역은 조금 다르지만 헬라어로는 같은 표현이에요. 회당에서 성경을 읽은 뒤 하는 설교를 그렇게 불렀던 거예요. 그러니까 히브리서는 편지 모양을 한 설교예요. 소리 내어 읽으면 한 시간 안쪽이라고 하니, 설교자 기준으로는 정말 "간단히" 쓴 걸지도 몰라요. 😄

그럼 이 설교자는 누구였을까요? 한 가지 단서가 있어요. 저자는 이 구원을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2:3)라고 해요. 예수님께 직접 들은 사람들에게서 전해 들었다는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복음을 "사람에게서 받은 것도 아니요 배운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로 말미암은 것"(갈 1:12)이라고 힘주어 말했어요. 그래서 많은 학자가 바울이 아닌 다른 사람이 썼을 거라고 봐요.

끝부분에 작은 소식들도 있어요.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13:23). 디모데가 감옥에서 풀려났다는 거예요. 그리고 "이달리야에서 온 자들도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13:24). 저자는 디모데를 "우리 형제"라고 부를 만큼 바울 곁 사람들과 가까웠어요. 이름은 끝내 숨겼지만, 설교자는 자기 이름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드러나기를 원했던 것 같아요.

※ 저자에 대한 여러 견해(바울, 바나바, 아볼로, 누가 등)는 모두 추정이에요. 누가 썼는지 알 수 없어도, 초대교회는 이 책을 성경으로 받아들였어요.

돌아보기
내 이름이 알려지는 것보다 예수님의 이름이 높아지는 것을 더 기뻐합니다.
3

족보도 없이 나타났다
사라진 왕, 멜기세덱

히브리서 7:1-10 · 창세기 14:18-20 · 시편 110:4

멜기세덱은 창세기에 딱 세 절 나오고 사라지는 사람이에요. 아브라함이 전쟁에서 이기고 돌아올 때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 축복하고, 아브라함은 그에게 십분의 일을 드렸어요(창 14:18-20). 그러고 끝이에요. 그런데 천 년쯤 지나 다윗이 시편에서 그 이름을 다시 꺼내요. "너는 멜기세덱의 서열을 따라 영원한 제사장이라"(시 110:4). 히브리서는 이 두 구절을 붙잡고 한 장 전체를 써요.

먼저 이름부터 풀어요. "그 이름을 해석하면 먼저는 의의 왕이요 그 다음은 살렘 왕이니 곧 평강의 왕이요"(7:2). 멜기세덱은 히브리어로 "의의 왕", 살렘은 "평화"예요. 의와 평강을 함께 가진 왕, 누가 떠오르세요? 그리고 설교자는 창세기가 말하지 않은 것에 주목해요. 성경에 족보가 그렇게 중요한데, 멜기세덱은 부모도, 족보도, 태어난 날도, 죽은 날도 안 나와요.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아들과 닮아서 항상 제사장으로"(7:3) 있는 그림이 돼요.

여기서 설교자의 재치 있는 논리가 나와요. 아브라함이 멜기세덱에게 십일조를 드렸으니, 아브라함의 증손자인 레위도 십일조를 드린 셈이래요. 왜냐하면 "레위는 이미 자기 조상의 허리에 있었음이라"(7:10). 😄 태어나지도 않은 레위가 할아버지의 할아버지 안에서 십일조를 냈다는 거예요. 결론은 이거예요. 레위 계열 제사장보다 멜기세덱 계열 제사장이 더 크다. 그리고 그 계열의 영원한 대제사장이 바로 예수님이세요. 예수님은 레위 지파가 아니라 유다 지파셨지만(7:14), 족보가 아니라 "불멸의 생명의 능력"(7:16)으로 제사장이 되셨어요.

돌아보기
죽음으로 끝나는 제사장이 아니라, 항상 살아서 나를 위해 간구하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의지합니다(7:25).
4

닻은 바다 밑이 아니라
휘장 안에 걸려 있다

히브리서 6:19-20 · 10:19-20 · 마태복음 27:51

"우리가 이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은 영혼의 닻 같아서 튼튼하고 견고하여 휘장 안에 들어가나니"(6:19). 그림을 떠올려 보면 좀 이상해요. 닻은 보통 바다 밑에 던지잖아요. 그런데 이 닻은 아래가 아니라 위로, 하늘 성소의 휘장 안으로 던져져 있어요. 😄 우리 인생이라는 배를 붙잡고 있는 줄이 하늘 지성소에 걸려 있다는 거예요.

그 닻을 누가 거기 걸어 두셨을까요? 바로 다음 절이 말해 줘요. "그리로 앞서 가신 예수께서"(6:20). 옛날 대제사장은 일 년에 한 번, 속죄일에만 휘장 안 지성소에 들어갈 수 있었어요(9:7). 그런데 예수님은 자기 피로 단번에 하늘 성소에 들어가셨어요(9:12). 그리고 10장에서 설교자는 놀라운 말을 해요. 그 길은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로운 살 길이요 휘장은 곧 그의 육체니라"(10:20).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마 27:51)라고 했어요. 아래에서 위가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요. 사람이 찢은 게 아니라 하나님이 여신 거예요. 예수님의 몸이 찢어질 때, 하나님께 가는 길이 열렸어요.

초대교회 성도들은 이 닻을 사랑했어요. 로마의 지하 무덤인 카타콤 벽과 묘비에는 닻 그림이 여럿 남아 있어요. 박해 속에서 먼저 떠난 가족을 묻으며, 성도들은 "우리 소망은 휘장 안에 걸려 있다"고 고백했던 거예요. 폭풍이 불어도 배가 떠내려가지 않는 건, 닻이 예수님께 걸려 있기 때문이에요.

※ 카타콤의 닻 그림이 히브리서 6:19에서 왔는지, 닻 모양이 십자가를 닮아서 쓰였는지는 해석이 나뉘어요. 닻이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소망의 상징이었다는 점은 분명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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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날에도 내 소망의 닻이 휘장 안에 앞서 들어가신 예수님께 걸려 있음을 기억합니다.
5

신약에서 가장 긴 인용,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

히브리서 8:8-13 · 10:15-18 · 예레미야 31:31-34

히브리서 8:8-12은 예레미야 31:31-34을 통째로 옮겨 온 거예요. 다섯 절이 넘는 이 인용은 신약 성경 안에서 가장 긴 구약 인용으로 꼽혀요. 설교자가 이 본문을 얼마나 중요하게 여겼는지 알 수 있어요. 게다가 10장에서 이 말씀을 한 번 더 인용해요(10:16-17). 😄 중요한 건 두 번 말하는 설교자예요.

예레미야는 예루살렘이 무너질 무렵의 선지자였어요. 성전이 불타고 백성이 바벨론으로 끌려가는 절망 한가운데서, 하나님은 "새 언약"을 약속하셨어요. 돌판이 아니라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8:10). 그리고 약속의 마지막 줄이 이거예요. "내가 그들의 불의를 긍휼히 여기고 그들의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아니하리라"(8:12).

설교자는 10장에서 이 마지막 줄만 따로 꺼내 결론을 내려요. "이것들을 사하셨은즉 다시 죄를 위하여 제사 드릴 것이 없느니라"(10:18). 옛 제사는 해마다 죄를 다시 "기억하게"(10:3) 했어요. 하지만 예수님이 "한 번의 제사로"(10:14) 드리신 제물은 죄를 기억하지 않게 해요.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인데, 우리 죄에 대해서는 일부러 기억하지 않기로 약속하셨어요.

설교자는 또 이렇게 덧붙여요. "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8:13). 이 말이 쓰이고 얼마 지나지 않은 주후 70년,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 성전을 무너뜨렸어요. 그 뒤로 성전 제사는 다시 드려지지 않았어요. 이제 남은 제사는 단 하나, 십자가에서 단번에 드려진 제사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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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다시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신 죄를 내가 붙들고 살지 않고, 새 언약의 은혜 안에서 삽니다.
6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명예의 전당과 경기장

히브리서 11:31-40 · 12:1-2

11장은 "믿음으로"로 시작하는 문장이 계속 이어져요. 아벨, 에녹, 노아, 아브라함, 사라, 이삭, 야곱, 요셉, 모세… 그런데 그 명단에 뜻밖의 이름이 있어요. "믿음으로 기생 라합은"(11:31). 이방 여인, 그것도 기생이 모세 바로 다음에 나와요. 32절에는 기드온, 바락, 삼손, 입다도 있어요. 사사기를 읽어 보면 다들 흠이 적지 않은 사람들이에요. 명예의 전당에 오른 이유는 그들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들이 믿은 하나님이 신실하셨기 때문이에요.

그리고 32절에 설교자의 속마음이 드러나요. "내가 무슨 말을 더 하리요 … 말하려면 내게 시간이 부족하리로다." 😄 설교하다가 시계를 본 거예요. 할 이야기는 끝이 없는데 시간이 없대요. 그래서 이름만 줄줄이 부르고 넘어가요.

12장으로 넘어가면 무대가 경기장으로 바뀌어요.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12:1). 11장의 믿음의 선배들이 관중석을 가득 메우고, 지금 달리는 우리를 보고 있어요. 그런데 설교자는 관중석을 보라고 하지 않아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12:2). "믿음의 주"는 앞장서 길을 여는 분, "온전하게 하시는 이"는 끝까지 완주하게 하시는 분이에요. 경주의 출발선에도, 결승선에도 예수님이 계세요.

11장 마지막 절도 놀라워요. 그 믿음의 선배들은 약속을 받지 못하고 죽었는데, "우리가 아니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11:40). 아벨부터 선지자들까지, 그리고 오늘 우리까지 한 팀이라는 거예요. 우리는 그 이어달리기의 마지막 주자들이에요.

돌아보기
믿음의 선배들이 달려온 길을 이어 달리며, 앞서 길을 여시고 끝까지 이끄시는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7

성문 밖으로,
그리고 다섯 번의 "아니"

히브리서 13:5 · 13:11-14 · 레위기 16:27 · 요한복음 19:17-20

레위기에는 이런 규정이 있어요. 속죄일에 드린 속죄 제물의 피는 성소 안으로 들어가지만, 그 몸은 "진영 밖으로" 내다가 불살라야 했어요(레 16:27). 거룩한 곳 안이 아니라, 부정한 것들이 버려지는 바깥이에요. 히브리서는 이 규정을 예수님께 연결해요. "그러므로 예수도 자기 피로써 백성을 거룩하게 하려고 성문 밖에서 고난을 받으셨느니라"(13:12).

실제로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 밖 골고다에서 십자가에 달리셨어요. 요한은 그곳이 "성에서 가까운"(요 19:20) 곳이었다고 기록해요. 성전 안에서 제사를 드리던 사람들이 보기에 성문 밖은 버림받은 자리였어요. 그런데 하나님은 바로 그 자리에서 세상의 죄를 해결하셨어요. 그래서 설교자는 이렇게 초대해요. "그런즉 우리는 그의 치욕을 짊어지고 영문 밖으로 그에게 나아가자"(13:13). 옛 제도의 안락한 울타리 안에 머물지 말고,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나가자는 거예요.

성문 밖으로 나가는 길은 외로울 수 있어요. 그래서 설교자는 조금 앞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들려줘요.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13:5). 이 문장을 헬라어로 보면 부정어가 다섯 번이나 겹쳐 있어요. 우리말로 옮기면 "절대, 결코, 아니, 절대로 너를 버리지 않고 떠나지 않으리라"쯤 돼요. 😄 문법책에서는 과하다고 할 만큼, 하나님은 힘주어 약속하셨어요.

이 땅의 도성은 영원하지 않아요. "우리가 여기에는 영구한 도성이 없으므로 장차 올 것을 찾나니"(13:14). 성문 밖에서 우리를 만나 주신 예수님은, 우리를 흔들리지 않는 나라(12:28)로 이끄세요.

돌아보기
편안한 울타리를 떠나 성문 밖에서 나를 부르시는 예수님께 나아가며, 결코 나를 떠나지 않으시는 약속을 붙듭니다.
맺는 글
돌아갈 곳을 찾는 이에게
더 나은 분을 보여 준 설교

히브리서를 받은 성도들은 지쳐 있었어요. 믿음 때문에 잃은 것도 많았고, 옛날 방식으로 돌아가면 편할 것 같았어요. 이름 없는 설교자는 그들을 꾸짖기만 하지 않았어요. 구약 성경을 펼쳐 놓고 한 장 한 장 보여 줬어요. 여러분이 돌아가고 싶은 그곳은 그림자였고, 실체는 예수님이라고요.

천사보다, 모세보다, 대제사장보다, 성전 제사보다 더 나으신 분. 우리 연약함을 아시고, 한 번의 제사로 우리 죄를 다시 기억하지 않게 하시고, 지금도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분. 그분이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세요.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12:2)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