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숨은 재밌는 이야기 · 22

디모데후서,
사형수가 부탁한
겉옷과 책

순교를 앞둔 바울이 남긴 마지막 편지,
그 끝에 적힌 소박한 부탁

디모데후서 1–4장
여는 글

디모데후서는 바울이 남긴 마지막 편지예요. 바울은 로마에서 사슬에 매여 있었고, 자기가 곧 죽는다는 걸 알고 있었어요.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4:6). 그런데 이 편지는 비장한 유언으로만 끝나지 않아요. 마지막 장을 보면 "겨울 전에 어서 오라", "올 때 겉옷 좀 가져오라", "책도 꼭 챙기라" 같은 부탁이 나와요. 😄 위대한 사도의 마지막 편지에 심부름 목록이 들어 있는 거예요.

그 소박한 편지 안에 이야기들이 숨어 있어요. 할머니에서 손자까지 이어진 믿음, 로마를 샅샅이 뒤져 감옥을 찾아온 사람, "하나님이 숨을 내쉬신" 책, 제단에 부어지는 포도주, 같은 "사랑"을 서로 다른 곳에 쓴 두 사람, 한때 데려가지 않으려던 마가를 다시 부르는 바울, 그리고 1,500년 뒤 감옥에서 똑같은 부탁을 쓴 번역자까지요. 그 모든 이야기의 끝에서 바울은, 다 자기를 버렸지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을 고백해요(4:16-17).

1부

디모데후서는 어떤 책일까?

사슬에 매인 사도가 아들에게 남긴 마지막 편지

이번 감옥은 처음과 달랐어요. 사도행전 끝에서 바울은 로마의 셋집에 머물며 찾아오는 사람들을 맞았어요(행 28:30). 그런데 디모데후서의 바울은 "죄인과 같이 매이는 데까지"(2:9) 고난을 받고 있고, 사람들이 찾아오기도 어려웠어요(1:17). 아시아의 많은 사람이 그를 떠났고(1:15), 곁에는 누가만 남았어요(4:11).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겨울이 오기 전에 서둘러 오라고 부탁해요(4:9, 21). 전통적으로는 네로 황제 때인 주후 64–67년 무렵에 쓴 편지로 봐요.

바울의 마지막 편지바울의 이름으로 된 열세 편지 가운데 가장 나중에 쓴 편지로 봐요. 전승에 따르면 바울은 이 편지를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로마에서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해요.
마지막 인사의 열일곱 사람4장 끝(9-21절)에만 열일곱 명의 이름이 나와요. 떠난 사람, 남은 사람, 해를 끼친 사람, 문안하는 사람까지요. 외로운 감옥에서도 바울은 사람들을 한 명 한 명 기억했어요.

※ 바울의 순교 시기와 방법은 성경에 나오지 않고 초대교회 전승에 기대요. 저자에 대한 학자들의 논의는 디모데전서와 같아요.

디모데후서의 큰 특징 다섯 가지
1
부끄러워하지 말라
1장에만 "부끄러워하지"라는 말이 세 번 나와요(1:8, 12, 16). 사슬에 매인 사도를 부끄러워하지 말라는 거예요.
2
믿음의 대물림
외조모 로이스, 어머니 유니게, 그리고 디모데(1:5). 삼대에 걸친 믿음이에요.
3
세 가지 그림
병사, 경기하는 사람, 농부(2:3-6). 모두 끝까지 참고 견뎌야 열매를 얻는 사람들이에요.
4
모든 성경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3:16). 성경의 권위를 말하는 대표 구절이에요.
5
마지막 경주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4:7).

디모데후서의 중심에는 이 부탁이 있어요.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1:8). 바울은 매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않았어요(2:9). 사람들은 떠났지만 주님은 곁에 서셨어요(4:17). 그래서 사형을 앞둔 사도가 두려움 대신 이렇게 말할 수 있었어요.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1:12).

2부

더 깊이 숨은 7가지 장면

할머니의 믿음부터 감옥 속 번역자의 편지까지

1

할머니에게서 손자에게로
이어진 거짓 없는 믿음

디모데후서 1:5 · 3:14-15 · 사도행전 16:1-3

"이 믿음은 먼저 네 외조모 로이스와 네 어머니 유니게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는 줄을 확신하노라"(1:5). 바울은 디모데의 믿음을 이야기하면서 할머니와 어머니의 이름을 불러요. 신약에서 "할머니"라는 단어가 나오는 곳은 여기 한 곳뿐이에요.

디모데의 집안 사정은 쉽지 않았어요. 어머니는 믿는 유대 여자였지만 아버지는 헬라인이었어요(행 16:1). 바울이 디모데를 데려갈 때 할례를 받게 한 것을 보면(행 16:3), 어릴 때 유대인의 관습대로 할례를 받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 집에서도 할머니와 어머니는 조용히 말씀을 가르쳤어요.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3:15). 여기 "어려서부터"의 어려서는 갓난아기를 가리키는 말이에요.

😄 아직 말도 못 하는 아기에게 성경을 읽어 주던 할머니를 떠올려 보세요. 그 작은 씨앗이 자라서 사도의 동역자, 에베소 교회의 목회자가 되었어요. 그리고 바울은 믿음이 그들 "속에 있더니" 네 속에도 있다고 해요. 믿음은 유전으로 물려받는 것이 아니에요. 할머니 안에, 어머니 안에, 그리고 디모데 안에 하나님이 한 사람씩 새로 심으신 것이에요.

※ 디모데가 어릴 때 할례를 받지 못한 이유가 헬라인 아버지 때문이라는 것은 본문에서 짐작한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나에게 믿음을 전해 준 사람들을 기억하며, 내 곁의 다음 세대에게 말씀을 들려주는 자리에 섭니다.
2

로마를 샅샅이 뒤져
감옥을 찾아낸 사람

디모데후서 1:15-18 · 4:19
부겔로와 허모게네
아시아에서 바울을 떠난 사람들(1:15)
VS
오네시보로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여"(1:16)

1장 끝에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와요. 먼저 아시아에서 바울을 떠난 사람들이요. 바울은 그중 부겔로와 허모게네의 이름을 적어요(1:15). 😄 두 사람은 성경에 딱 이 한 번 나오는데, 그게 하필 "떠난 사람" 명단이에요. 이름이 이천 년 동안 남긴 했는데, 좋은 일로 남지는 못했어요.

그 반대편에 오네시보로가 있어요. "그가 나를 자주 유쾌하게 하고 내가 사슬에 매인 것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여 로마에 있을 때에 나를 부지런히 찾아와 만났음이라"(1:16-17). "부지런히 찾아와"라는 말을 보면, 바울이 갇힌 곳을 찾기가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큰 도시 로마에서 사형을 기다리는 죄수를 찾아다니는 건 위험한 일이기도 했어요. 그 죄수와 가까운 사이라는 게 알려지면 자기도 곤란해질 수 있었으니까요.

오네시보로라는 이름은 "유익을 가져오는 사람"이라는 뜻이에요. 빌레몬서의 오네시모("유익한 사람")와 뿌리가 같은 이름이에요. 그리고 이 사람은 이름값을 제대로 했어요. 에베소에서도 많이 섬겼고(1:18), 로마까지 와서 감옥 문을 두드렸어요. 모두가 떠날 때 찾아와 준 한 사람, 그 한 사람이 바울에게는 주님이 보내 주신 위로였어요.

※ 바울이 오네시보로 본인이 아니라 "오네시보로의 집"에 문안하고(4:19), 그가 "그 날에" 주의 긍휼을 입기를 구하는(1:18) 것을 보고, 그가 이미 세상을 떠났을 거라고 보는 학자들도 있어요. 추정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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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 어려움 속에 갇혀 있을 때, 부끄러워하지 않고 먼저 찾아가는 한 사람이 되기를 구합니다.
3

모든 성경은
하나님이 숨을 내쉬신 것

디모데후서 3:14-17 · 창세기 2:7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3:16). 우리말로 "감동으로 된"이라고 옮긴 말은 헬라어로 한 단어인데, 신약 전체에 여기 딱 한 번 나와요. 뜻을 풀면 "하나님이 숨을 내쉬신"이에요. 성경은 하나님이 입김을 불어 내신 말씀이라는 거예요.

이 말은 창세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해요.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 2:7). 흙덩이가 하나님의 숨으로 살아났듯, 성경도 하나님의 숨이 담겨 있어서 살아 있는 책이에요. 그래서 성경은 사람을 가르치고, 책망하고, 바르게 하고, 의로 교육해요(3:16). 😄 그런데 바울이 말한 "모든 성경"은 디모데가 갓난아기 때부터 읽던 구약이었어요. 신약은 아직 쓰이는 중이었거든요. 바울은 지금 그 신약의 한 권을 쓰고 있었고요.

죽음을 앞둔 바울이 아들 같은 디모데에게 남긴 것은 돈도, 조직도, 자기 명성도 아니었어요. 성경이었어요. 사람은 떠나고 사도도 곧 떠나지만, 하나님의 숨이 담긴 말씀은 남아요. 그리고 그 말씀이 가리키는 곳은 한 분이에요.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3:15)를 주는 책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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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을 읽을 때 종이 위의 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숨결이 담긴 살아 있는 말씀으로 받습니다.
4

"드릴지라도"에서
"벌써 부어지고"로

디모데후서 4:6-8 · 빌립보서 1:23 · 2:17 · 민수기 28:7
빌립보서 · 첫 번째 감옥
"내가 나를 관제로 드릴지라도"(2:17)
VS
디모데후서 · 마지막 감옥
"관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4:6)

관제는 구약 제사 때 제물 위에 포도주를 부어 드리던 예물이에요(민 28:7에서는 "전제"). 한 번 부은 포도주는 다시 담을 수 없어요. 바울은 자기 삶을 그렇게 하나님께 쏟아 드린다고 말해요. 그런데 몇 년 전 빌립보서를 쓸 때는 "드릴지라도"였어요. 그럴 수도 있다는 가정이었죠. 이제 디모데후서에서는 "벌써 부어지고" 있다고 해요. 가정이 현실이 된 거예요.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4:6)라는 말도 재밌어요. "떠남"이라는 이 단어는 배가 부두에 묶어 둔 밧줄을 풀 때, 병사들이 천막을 걷을 때 쓰던 말이에요. 바울에게 죽음은 끝이 아니라 출항이었어요. 빌립보서에서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것"이 훨씬 더 좋다고 했을 때도(빌 1:23) 같은 뿌리의 말을 썼어요.

그리고 바울은 뒤를 돌아보며 말해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4:7). 앞에는 "의의 면류관"이 기다리고 있어요. 여기 면류관은 왕이 쓰는 관이 아니라, 경주에서 이긴 선수에게 씌워 주던 승리의 관이에요. 😄 그런데 이 경주는 1등만 상을 받는 경기가 아니에요.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4:8). 끝까지 주님을 기다린 사람은 모두가 받는 관이에요.

돌아보기
내 삶도 주님께 쏟아 드리는 관제가 되기를, 그리고 끝까지 주님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며 달려가기를 구합니다.
5

같은 "사랑"을
서로 다른 곳에 쓴 사람들

디모데후서 4:8-11 · 골로새서 4:14 · 빌레몬서 1:24
4:8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
VS
4:10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4:8과 4:10은 두 절 떨어져 있는데, 헬라어로 똑같은 동사가 쓰였어요. 아가파오예요. 4:8의 "사모하는"은 원래 "사랑하는"이에요. 주님이 오실 날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고, 바로 두 절 뒤에 이 세상을 사랑한 사람이 나와요. 데마예요.

빌레몬서"나의 동역자 마가, 아리스다고, 데마, 누가"(몬 1:24)
골로새서"사랑을 받는 의사 누가와 또 데마가"(골 4:14)
디모데후서"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4:10)

데마는 원래 바울의 동역자였어요.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그를 "나의 동역자"로 소개해요. 같은 때 쓴 골로새서에서는 조금 달라요. 누가에게는 "사랑을 받는 의사"라는 따뜻한 설명이 붙는데, 데마는 이름만 덩그러니 있어요. 그리고 몇 년 뒤 디모데후서에서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4:10).

😄 흥미로운 건 빌레몬서의 그 명단이에요. 마가, 데마, 누가가 나란히 있었어요. 세월이 흘러 데마는 떠났고, 누가는 끝까지 곁에 남았고(4:11), 한때 떠났던 마가는 다시 돌아와요. 사랑은 방향이에요. 무엇을 사랑하느냐가 결국 어디로 가느냐를 정해요. 데마는 하루아침에 떠난 게 아니라 천천히 식어 갔는지도 몰라요.

※ 골로새서에서 데마에게 설명이 붙지 않은 것이 그의 마음이 식기 시작한 표시라는 해석은 추정이에요.

돌아보기
이 세상보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더 사랑하고 있는지, 내 마음이 향한 방향을 돌아봅니다.
6

데려가지 않겠다던 마가를
"유익하다"며 부르다

디모데후서 4:11 · 2:21 · 사도행전 13:13 · 15:36-40 · 빌레몬서 1:11
사도행전 15장
마가를 데리고 가는 것이 옳지 않다(15:38)
VS
디모데후서 4장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4:11)

1차 전도 여행 때 마가는 중간에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어요(행 13:13). 그래서 2차 전도 여행을 앞두고 바나바가 마가를 다시 데려가자고 했을 때, 바울은 반대했어요. 두 사람은 "심히 다투어" 결국 따로 떠났어요(행 15:39). 😄 초대교회 최고의 동역자 두 사람이 한 청년 때문에 갈라선 거예요.

그런데 15년쯤 뒤, 바울의 마지막 편지에 이런 말이 나와요.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4:11). 여기 "유익하니라"는 유크레스토스예요. 빌레몬서에서 도망쳤던 종 오네시모가 "이제는 나와 네게 유익하므로"(몬 1:11)라고 할 때 쓴 바로 그 단어예요. 이 단어는 신약에 딱 세 번 나오는데, 나머지 한 번이 디모데후서 2:21이에요. "주인의 쓰심에 합당하며".

무익했다가 유익해진 사람들. 오네시모가 그랬고, 마가도 그랬어요. 그리고 바울도 변했어요. 한 번 실패한 사람을 다시 믿어 주는 사람이 되었어요. 그 마가가 훗날 마가복음을 썼다고 교회는 전해요. 하나님은 실패한 사람을 버리지 않으시고, 다시 빚어 주인의 쓰심에 합당한 그릇으로 만드세요.

※ 1차 전도 여행과 디모데후서 사이의 기간은 대략적인 계산이에요. 마가복음을 이 마가가 썼다는 것은 초대교회 전승이에요.

돌아보기
한 번 실패한 나를 다시 불러 쓰시는 주님을 기억하며, 나도 넘어진 사람에게 다시 손을 내밉니다.
7

겉옷과 가죽 종이,
그리고 1,500년 뒤의 같은 부탁

디모데후서 4:9-22

이 편지의 가장 인간적인 한 줄이에요. "네가 올 때에 내가 드로아 가보의 집에 둔 겉옷을 가지고 오고 또 책은 특별히 가죽 종이에 쓴 것을 가져오라"(4:13). 그리고 조금 뒤에 "너는 겨울 전에 어서 오라"(4:21). 겨울이 오면 지중해에 배가 거의 다니지 않았어요. 그 전에 오지 못하면 봄까지 기다려야 했어요. 로마의 감옥은 춥고 습했고, 바울에게는 따뜻한 겉옷이 필요했어요. 😄 세상을 뒤집어 놓은 사도도 추위는 탔던 거예요.

그리고 책이요. 여기 "가죽 종이"는 헬라어 성경에 라틴어를 그대로 가져다 쓴 멤브라나예요. 양피지로 만든 공책이나 두루마리를 가리켜요. 그 안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아무도 몰라요. 구약 성경의 사본이었을 거라고 보는 사람이 많아요. 사형을 앞둔 바울이 마지막까지 원한 것은 몸을 덮을 겉옷, 그리고 말씀이었어요.

그로부터 약 1,500년 뒤, 비슷한 편지가 또 한 통 쓰였어요. 성경을 영어로 번역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윌리엄 틴데일이 1535년 겨울, 벨기에 빌보르드 성의 감옥에서 라틴어로 쓴 편지예요. 머리가 너무 추우니 더 따뜻한 모자와 겉옷을 보내 달라고, 그리고 무엇보다 히브리어 성경과 문법책과 사전을 보내 달라고 부탁했어요. 공부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다고요. 틴데일은 이듬해 1536년 10월에 순교했어요. 두 사람 모두 추위 속에서 겉옷과 말씀을 구했고, 그 말씀을 위해 목숨을 드렸어요.

그리고 바울은 이 편지를 이렇게 맺어요. 처음 재판 때 모든 사람이 자기를 버렸지만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에게 힘을 주심은"(4:17), 그리고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또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4:18). 모두가 떠난 겨울 감옥에도 곁에 서신 분이 계셨어요.

※ 가죽 종이에 무엇이 적혀 있었는지는 알 수 없어요. 구약 사본, 바울 자신의 편지 사본, 개인 기록 등 여러 추측이 있어요. 참고로 4:21에 문안하는 "리노"를 2세기 교부 이레니우스는 사도들 다음으로 로마 교회를 맡은 감독으로 기록했는데, 같은 사람인지는 전승이에요.

돌아보기
모두가 떠난 것 같은 추운 날에도 내 곁에 서 계신 주님을 기억하며, 무엇보다 그분의 말씀을 붙듭니다.
맺는 글
모두가 떠난 자리에
주님이 곁에 서셨다

디모데후서는 쓸쓸한 편지예요. 떠난 사람들의 이름이 있고, 사슬이 있고, 다가오는 겨울과 죽음이 있어요.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편지를 덮으면 슬픔보다 힘이 남아요. 바울이 자기 형편보다 자기 곁에 서신 분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바울은 매였지만 말씀은 매이지 않았어요. 바울은 떠났지만 디모데가 남았고, 디모데 뒤에는 또 다른 믿음의 사람들이 이어졌어요. 그 믿음의 줄은 이천 년을 건너 오늘 우리에게까지 와 있어요. 그리고 그 줄을 처음부터 끝까지 붙들고 계신 분은 한 분이세요. 우리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능히 지키시는 예수 그리스도예요.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4:7)

※ 본문 인용은 개역개정을 기준으로 했습니다.